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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Wine, Madness and Bad Blood: Re-Reading Imperialism in Jane Eyre 포도주, 광기 그리고 나쁜 피―『제인 에어』 속 제국주의 다시 읽기*
  • 비영리 CC BY-NC
ABSTRACT

Charlotte Brontë’s novel Jane Eyre has long been doted on as one of the canonized texts of British literature since its publication. Seemingly, this romantic novel has nothing to do with plantation based on slave trade. However, paying a keen attention to the fact that Jane’s enormous inheritance results from wine plantation at a colony, this essay re-interprets Bertha’s drinking and madness as evidence of imperialism. For the porter/jin Bertha and Grace Poole enjoy might have some suspicious connection with wine, the very root of Jane’s great expectations. Jean Ryes’ Wide Sargasso Sea, writing Jane Eyre back, records Bertha as “a white resident of the West Indies, a colonizer of European descent” (326). However, Jane Eyre, in my interpretation, describes Bertha pretty much as a black Creole. At any rate, the view that the white West Indians are tainted by miscegenation proves contemporary racism and is reflected in the text through Bertha and her mother’s intemperate drinking and madness. Drinking and madness are stigmatized as the evidence of the so-called “bad blood”; embodying the stereotypes of drinking, madness, and sexual corruption, Creoles, the very inescapable product of imperialism, provide a convenient excuse for justifying imperialism for purity, civilization, and moral cleanness. In this way, Jane Eyre needs to be re-interpreted politically and historically in the context of colonialism. British imperialism pursues a tremendous amount of profits through grape plantation and wine trades; however, it cleverly leaves in the colony the associated images such as intemperate drinking and madness. Bertha, transferred from Jamaica to Britain, takes in these negative images of “savageness.” Transcending the narrow confines of feminist criticism obsessed with doubling between Bertha and Jane, this essay, accordingly, reads Bertha the prisoner in the attic as the captive for perpetuating imperialism. This reading hinges upon interpreting Rochester and St John as colonizers bearing the socalled “white men’s burden” to cultivate and civilize savages much like crops such as grapes and sugarcane in the colonial plantation.


KEYWORD
Jane Eyre , imperialism , drinking , madness , creole , myth , wine , rum
  • I. 들어가며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는 출판된 이후로 지금까지 영문학 정전으로서 끊임없이 사랑받아왔다. 평범한 외모의 가난한 고아 소녀 제인(Jane Eyre)이 성장하여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게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성장소설(bildungsroman)로, 나이 많은 귀족 로체스터(Rochester)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로맨스소설로, 그리고 다락방에 갇힌 광녀 버사(Bertha)에 초점을 맞추어 고딕소설로 읽혀왔다. 1980년대 이후로는 버사의 광기를 제인의 성적 욕망의 더블(double)로 해석하는 페미니스트 비평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고, 비교적 최근에는 버사의 인종(크레올)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를 토착민으로 분석하는 후기식민주의 비평 또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포도주가 갖는 의미를 눈여겨 본 독자/비평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품 속에서 포도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제인이 물려받게 되는 재산의 근원이 식민지에서의 포도주사업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본 논문은 버사의 음주와 광기를 당대의 제국주의의 흔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버사와 그레이스 풀(Grace Poole)이 즐겨 마시는 흑맥주와 제인의 재산의 근원인 포도주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다소 엉뚱한 추측에서 본 논문은 출발한다.

    『제인 에어』를 후기식민주의 입장에서 되받아 쓴 작품인 진 리스(Jean Ryes)의 『광활한 사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에서 버사는 백인 크레올(“a white resident of the West Indies, a colonizer of European descent,” 326)로 묘사된다. 그러나 원작인 『제인 에어』는 버사의 인종을 흑인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서인도제도의 혼종 크레올에 대해 다른 인종 간의 출산(miscegenation)으로 더럽혀졌다고 보는 견해(Nesbitt 309)가 당시에 팽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를 반영하며 『제인 에어』에서는 이를 혼종 크레올인 버사와 그녀의 어머니의 무절제한 음주와 광기로 형상화한다는 사실이다. 음주와 광기는 이렇게 특정 인종 소위 “나쁜 피”의 문제로 둔갑하게 되고, 제국주의의 피할 수 없는 파생물인 혼종 크레올은 음주와 광기, 그리고 성적 타락이라는 전형을 부여받아 결국 정화와 문명화, 그리고 도덕적 청결함을 표방하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제인 에어』에서 술과 광기는 정치/역사적 함의를 지닌다. 후기식민주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영국 제국주의는 피식민지의 땅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포도를 생산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지만 치밀하게도 술에 있어서의 무절제와 그로 인한 광기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피식민지에 두고 온 셈이다. 비록 영국으로 이송되었지만 실제로는 자메이카 출신인 버사의 존재는 식민주의가 연상시키는 피식민지의 “미개함”을 온몸으로 떠안는다. 따라서 본 논문은 버사와 제인 사이의 더블링에 집착하는 그간의 페미니즘 비평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 속에서 술주정뱅이이자 문란한 성욕의 화신 그리고 광기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는 다락방의 수인 버사를 영국이 제국주의적 이윤추구를 영속시키기 위해 볼모로 붙잡고 있는 포로로 재해석하여, 소설 『제인 에어』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팽창해나가는 제국주의를 어떻게 표방 내지는 묵인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II. 제인-버사 더블링을 넘어서서

    샌드라 길버트(Sandra M. Gilbert)는 그녀의 논문 “평범한 제인의 역정”(Plain Jane’s Progress)에서 『제인 에어』를 “여성 성장소설”(female bildungsroman)로 해석한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비평가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것은 제인 에어의 성적인 면이 아니라 사회의 형식과 관습에 대한 ‘반기독교적’거부—즉, 반항적인 페미니즘이었다”(780)고 주장하며, 『제인 에어』를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텍스트로 숭앙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버사를 제인에 대한 “어두운 더블”(dark double)로 읽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위의 인용에서 나타나듯, 길버트는 버사의 광기를 제인의 숨겨진 분노와 욕망을 투사하는 대응물로 해석한다. 뒤이어 길버트는 수잔 거버(Susan Gubar)와 더불어 출간한 저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The Madwoman in the Attic)에서 거울을 매개로 서로의 거울 이미지(mirror image)가 되는 제인과 버사 사이의 더블링에 한층 더 천착한다.

    물론 버사와 제인이 똑같은 베일을 머리에 쓰게 되고, 로체스터 부인(Mrs. Rochester)이라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며, 그보다 3층의 방에 갇혀 있는 버사의 상황이 빨간 방(red room)에 갇혔던 어린 제인의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등 두 인물 사이의 더블링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버사를 제인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개성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이용할 뿐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아무리 진보적인 페미니즘 비평이라 해도 버사를 희생하는 한 완전할 수 없다. 비평가 러너(Laurence Lerner) 역시 “버사와 비평가들”(Bertha and the Critics)이라는 논문에서 버사를 제인의 성적 욕망에 대한 투사체로 분석하려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비평은 사회적 문제를 성적 문제로 대체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프로이드식의 정신분석에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억압된 리비도의 힘과 우선적으로 적대적이고도 위험한 충동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회제도와 권력 구조와는 별개로 이 억압된 리비도의 힘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다루려는 필요성에 관심을 이끈다”(286).

    『제인 에어』를 페미니즘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비판으로는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스피박은 “여성의 세 가지 텍스트 그리고 제국주의 비판”(Three Women’s Texts and a Critique of Imperialism)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9세기 영문학을 읽음에 있어 제국주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언급한다(243). 버사를 “백인 자메이카 크레올”로서 “제국주의의 공식이 낳은 인물”(247)로 해석하는 스피박은 버사의 인종성을 간과한 채 버사를 심리학적 용어들로만 파악하여 제인의 “어두운 더블”로 해석하는 페미니스트 비평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스피박은 오히려 개인의 정체성과 같은 은밀한 부분일수록 제국주의의 정치성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며 제인의 지위상승에 있어서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담론의 장을 공급해 준다고 주장한다(247). 실제로 제인의 신분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막대한 유산에는 제국주의적 상업주의의 영향이 컸다. 스피박은 또한 버사가 식민지 신흥부자의 역할을 맡으며, 영국 본토의 고풍있는 가문에 비하면 열등한 이전 노예 플랜테이션 주인의 딸로서 아버지가 축적한 부의 더러운 근원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다(247-51).

    스피박의 지적처럼,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열등함은 우선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야수인지 인간인지”(whether beast or human being), “기다”(grovelled), “으르렁거리다”(growled), “기이한 야생 동물”(strange wild animal), “갈기처럼”(like a mane), “옷을 입힌 하이에나”(the clothed hyena), “큰 소리로 울다”(bellow) 등의 표현은 버사를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깝게 묘사한다. 특히 “으르렁거리다”(growl)와 “큰 소리로 울다”(bellow) 그리고 “뒷발”(hind feet)과 같은 늘 동물에게 부여되는 어휘들은 버사를 단순히 동물의 모습에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동일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듯 버사는 인간과 동물의 중간 위치에 서게 되고, 그녀를 감금하고 그녀의 재산으로 호사를 누리는 로체스터는 정작 술고래/미치광이 크레올을 버리지 않고 돌보는 휴머니스트로 포장된다. 특히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쏜필드 저택에 불을 지르고 지붕에 올라간 버사를 구하느라 팔을 다치고 눈을 실명하는 로체스터의 희생은 서인도제도에 대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기획이 상업주의적 이윤추구가 아니라, 반인반수와도 같은 원주민들을 개화하려는 “백인의 책임”(the white man’s burden)과도 같은 휴머니즘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작품 속에서 버사가 동물로 묘사되는 부분과 관련하여, 스피박 역시 버사와 로체스터 사이의 관계는 결혼이나 성적 재생산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유럽과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타자”(not-yet-human Other) 간의 “인간만들기”(soul making)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결혼이나 성적 재생산이 아니라 유럽과 유럽의 아직 채 인간이 되지 못한 타자에 대한 그리고 인간만들기에 대한 기록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제국의 정복의 현장은 여기에서 지옥으로 각인된다”(247). 이렇듯 버사의 광기는 인도주의라는 거짓된 식민주의의 기획이 미치지 못하는 영향력을 보여주며, 오히려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한다. 결국 버사의 음주와 광기는 로체스터가 주장하듯 유전적인 영향이 아니라, 식민화를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적 “에피스테메의 횡포”(epistemic violence)가 그녀를 광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국주의적 역학관계 속에서 버사를 “토착주체”(native subject)로 읽지 않고, 제인에 대하여 적용한 “개인주의적인 인간성”(humanity)으로부터 그녀를 완전히 배제한(Meyer 250) 프랑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 역시 버사를 향해 또 다른 담론적 “에피스테메의 횡포”를 휘두르는 셈이다.

    III. 포도주 그리고 제국주의

    로체스터가 유럽여행으로부터 돌아오기 전 적막한 쏜필드(Thornfield)에서의 변화 없는 삶 가운데 제인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 단락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의 필요성에 대한 제인/브론테의 생각을 입증하는 텍스트 근거로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 의해 흔히 인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음단락에서 제인의 생각은 별안간 그레이스 풀에게로 옮아간다. 이는 남녀불평등의 주제와 광녀 그레이스 풀—물론 나중에는 버사임이 드러나지만—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즉,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여성성은 광기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억압”(restraint), “침체”(stagnation), “감금”(confine), “기이한”(eccentric)과 같은 어휘들은 다락방 속의 광녀 버사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금된 광녀 버사가 결국은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모든 여성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은유임과 동시에 사회 속에서 용인된 여성성을 지키지 않을 때 가해지는 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인용 두 번째 단락에서, 하녀 그레이스 풀이 흑맥주를 들고 가는 모습을 서술하면서 서술자로서의 제인이 “낭만적인 독자여, 저를 용서하세요”(Oh, romantic reader, forgive me)라고 말하는 부분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생물학적 사회적 욕구가 있음을 역설하긴 하지만, 제인/브론테의 페미니즘에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꽤 흥미롭다. 이렇듯 『제인 에어』에서 술은 서구 중심의 이성적 페미니즘이 갖는 한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약이 된다. 더 나아가, 제인/브론테가 감추고 싶어하는 그레이스 풀/버사의 술은 단순히 낭만의 문제를 넘어서서, 광기의 문제와 더불어 당대 영국 제국주의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여지를 남긴다.

    롤랑 바르뜨는 그의 역작 『신화들』(Mythologies)에서 언어에 각인된 한 사회의 가치 체계로서의 신화를 분석한다. 바르뜨에게 있어서 신화는 일종의 신비화된 언어체계인데 이는 탈정치화된 언어—물론 구어(oral speech)로 국한되지는 않지만—로서 현실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사람들에 의해 언급되는 구술(oral)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전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고 바르뜨는 언급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닫힌 무언의 존재에서 구술적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사물에 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09).

    바르뜨에게 있어 포도주는 일종의 신화이다. 프랑스에 있어서 포도주는 일상적인 저녁 식사에서부터 큰 행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의식”(daily ritual)으로 굳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친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정치성도 숨어 있을 것 같지 않은 포도주 속에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횡포라는 무시무시한 정치적 현실이 숨어 있다고 바르뜨는 지적한다.

    포도주가 제공해주는 우아한 분위기 속에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종의 “토템-음료”(totem-drink, 58)로서 포도주가 자리 잡는 사이, 먹을 빵도 부족한데 밀과 같은 곡류가 아닌 그들에게 하등 필요도 없는 기호식품인 포도를 재배해야 하는 알제리 농부의 피와 땀의 역사는 은폐된다. 프랑스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굳어진 포도주가 사실은 프랑스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더욱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착취의 결과물인 포도주가 일종의 “상위문화” 내지는 “고급문화”로 군림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포도주 혹은 술이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맥락 속에서 차지하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제니퍼 네스빗(Jennifer P. Nesbitt)의 논문 “럼주의 역사”(Rum Histories)에 따르면, 럼주 역시 단순한 알콜음료가 아니라 경제적 제도와 더불어 내재화된 믿음체계를 통해 식민주의를 영속화하는 역사적,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309). 캐리비안에 있어 럼주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술에 취한 인디언에 대한 전형 역시 식민 역사에 있어 상당히 일찍부터 등장해왔고, 그만큼 알콜은 서인도제도에서의 삶에 있어 팽배해 있는 현상이었다(312).1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마치 서인도제도의 원주민들의 본질이라도 규정하는 것처럼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로 흔히 오인되는 럼주가 실은 다름 아닌 유럽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사실이다(312).2 또한 네스빗은 럼주가 어떻게 식민주의를 가속화하는데 사용되었는지 밝히고 있는데, 주로 힘든 노동을 견뎌내도록 하기 위해 노예농장주들은 노예들에게 럼주를 나누어 주었고, 또한 노예무역에도 식민주의자에게 이로운 거래를 위해 럼주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인용문 중 “달래다”라는 의미의 단어 “pacify”는 우는 어린 아기에게 물리는 고무젖꼭지(pacifier)를 연상시켜, 결국 럼주가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못하고 노예봉기와 같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순간적인 미봉책이었음을 드러낸다.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럼주는 애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인용문이 밝히듯 술은 원주민의 타자성을 드러내는 기호로서 인종적 열성(inferiority)을 강조함으로써 원주민들의 노동력에 대한 계속적인 착취를 정당화하게 한다. 제국주의를 가속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입된 술이 결국 원주민들은 선진민족으로부터 식민화가 필요한 미개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따라서 영국의 노예제도폐지론자들이 설탕과 럼주 불매운동을 벌이며 노예제에 항의한 것은 유명한 예인데, 술과 식민주의 사이의 상관성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니콜라스 워너(Nicholas O. Warner)도 논문 “‘여성의 노래,’ 『의식』, 그리고 『새벽의 집』에 나타난 음주의 이미지”(Images of Drinking in ‘Woman Singing,’ Ceremony, and House Made of Dawn)에서 인디언 사회에 있어서 음주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미국 원주민(American Indian)들 역시 자신들을 조종하고 말살하려는 백인들의 시도로서 음주를 간주한다고 언급한다(15). 왜냐하면 대부분의 백인들은 인디언들의 음주를 타락과 원시성의 상징으로 파악하여 유럽인들에 대한 원주민들의 열등함을 명백히 하는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15). 이렇듯 “술에 미친 미개인”(liquor-maddened savage)으로서의 인디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수많은 책의 지면과 영화와 텔레비전 화면을 활보하게 되었고, 이는 백인들의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되었으며 동시에 백인의 문명 앞에 자멸하는 인디언에 대한 상징으로도 활용되었다(15).3

    워너의 설명에 따르자면, 1685년 퀘벡지방의 압나키스족 추장은 그의 추종자들이 프랑스와 영국의 무역업자들에 의해 음주를 강요받게 되자 종족의 복지와 안녕에 대해 우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디언들의 본질적 성향처럼 오인되는 음주가 결국에는 식민주의의 불공평한 거래 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백인들이 애용하였던 방법인 것이다. 아일랜드에 있어서도 아일랜드인에 대해 술고래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이용하여 스스로 정치할 수 없는,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민족인양 취급했지만, 사실은 기네스맥주의 생산을 공모하여 식민화를 가속화, 정당화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술주정뱅이/미치광이 버사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도 음주를 식민주의의 맥락 속에 위치한 후 분석한다면, 소설 전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광기는 이러한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버사의 광기는 작품 속에서 음주와 성욕으로 표현되며 로체스터는 버사의 광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로체스터에게 있어서 광기는 음주와 더불어 여성에게 허용될 수 없는 특성인 것이다. 광녀(madwoman)면서 동시에 술꾼(drunkard)이었던 크레올 여성의 딸로서 버사는 태생부터 이미 열성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치부된다. “말 잘 듣는 아이”(the dutiful child)라는 말과 “친딸”(the true daughter)이라는 표현은 버사의 광기와 음주를 유전자의 문제로 환원한다. 두 번째 인용에서 로체스터가 버사에게 사용하는 “무절제하다”(intemperate)는 표현은 전반적인 행동방식과 더불어 특히 음주에 있어서의 폭음으로 인한 술주정을 뜻한다. 그리고 “정숙하지 못하다”(unchaste)는 표현 역시 여성은 정숙해야 한다는 당대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억압을 내비친다. 결국 버사의 광기는 당대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잣대가 가한 폭력의 징후인 것이다. 또한 광기와 음주는 19세기 흑인들에게 부여되었던 가장 흔한 두 가지 스테레오타입이기도 하다(Meyer 253). 따라서 버사의 집안이 삼대에 걸쳐 술주정뱅이와 미치광이로 표현된 것은 브론테가 헤어나올 수 없었던 당대의 인종담론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음주는 단순히 피식민지와 인종적 타자에 대해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을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급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평가 네스빗에 따르면 사실 진(gin) 역시 노동계급의 타락을 드러내는데 많이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윌리엄 호가스로부터 이후로 진은 노동계급의 타락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즐겨 사용되었다. 앙트와네트/버사를 지키는 자인 그레이스 풀은 진을 마시고 금을 좋아한다. 『제인 에어』에서 진을 좋아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럼주를 즐겨 마시는 서인도제도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319). 『제인 에어』에서 역시 그레이스 풀은 진을 즐겨 마셨던 것으로 묘사된다.

    위의 인용에서 로체스터는 그레이스 풀의 “고칠 수 없는 결점”(a fault of her own, of which it appears nothing can cure her)을 지적하는데, 작품 후반 부분에서 여관집 주인의 언급으로 이 약점은 바로 음주였음이 드러난다. 결국 음주는 피식민지와 원주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층민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기표로도 쓰이고 있다. 그레이스 풀의 음주는 나중에 버사의 탈출과 그로 인한 쏜필드 저택에의 방화와 몰락의 원인이 된다. 이렇듯 술은 종주국과 식민지 그리고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무어 하우스(Moor House)에서 지내며 모튼 학교(Morton School)에서 봉사하는 제인은 영국의 농민을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과 비교하면서 영국의 우수성에 대해 사색하는데, 여기에서도 음주는 인종의 우수함과 그렇지 않음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영국 농민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배우고 가장 좋은 매너를 가졌으며 스스로를 가장 잘 존중한다: 예전서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들을 보아왔지만, 그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들조차도 내게는 모튼 소녀들에 비하면 무지하고, 거칠고, 술에 취해 있는(besotted) 것처럼 보였다”(JE 449). 결국 술은 열등한 인종성을 드러내는 기호로 언급되며 영국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다시 한 번 강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사와 대조를 이루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여성인물로 로체스터와 작가 브론테가 칭송하는 인물인 제인이 물려받게 되는 유산 상속인 존 삼촌(Uncle John Eyre)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마이데라 섬의 포도원에서 와인을 제조하고 판매하여 부를 축적하게 된다는 설정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쏜필드를 떠나기 전날 제인을 찾아온 게이츠헤드의 하녀 베시는 제인의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는 나중에 제인이 상속받게 되는 막대한 유산에 대한 중요한 복선이 된다. 그런데 브론테는 제인의 삼촌을 왜 하필 마데이라(Madeira)로 보냈던 것일까? 그리고 제인 에어(Jane “Eyre”)를 제인 에어(Jane “heir”)로 만들어준 존 삼촌의 막대한 유산을 왜 하필 마데이라에서의 포도주 사업의 결과물로 설정했던 것일까? 마데이라는 모로코 서쪽 대서양상에 있는 섬인데, 현재 “마데이라”라는 말은 섬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이 섬에서 만들어지는 포도주인 마데이라주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더 많이 사용될 정도로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로마의 통치를 받다가 15세기 중엽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화된 마데이라는 19세기 초엽 잠시 영국의 지배를 받은 후 다시 포르투갈로 귀속되었다가 최근 독립한, 역사 대부분이 식민주의로 점철된 국가이다. 또한 버사의 오빠인 리차드 메이슨(Richard Mason)은 영국에서 자메이카로 돌아가는 여정 중 이 섬에 들렀다가 존 에어(John Eyre)를 만나는데 메이슨의 여정은 영국-마데이라-자메이카로 이어지는 노예거래의 삼각경로와 무관하지 않으며 따라서 존 에어가 노예무역에도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Meyer 267). 이렇듯 제인이 물려받는 막대한 유산과 영국의 식민주의와의 공모관계는 뚜렷하다.

    결국 영국은 식민 경영을 통해 피식민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상업적 이윤을 남기지만 그 결과물과 관련된 좋지 않은 이미지는 고스란히 피식민지에 남겨두고 오거나 하류계급의 고칠 수 없는 특징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텍스트는 버사의 음주의 문제를 선천적인 문제, 유전적인 문제, 즉 “나쁜 피”의 문제로 환원해 버린다. 즉 버사의 인종을 흑인에 가까운 혼혈로 묘사하며 여성의 음주를 성적 타락으로 연결짓는 것은 버사와 같은 원주민/토착민의 오염된 피는 식민화와 문명화에 의해 정화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듯하다. 결국 버사의 음주와 광기가 대표하는 피식민성은 영국의 상업적 제국주의에 의해 초래되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다시 로체스터라는 영국 순수혈통에 의해 그리고 세인트 존(St. John)이 대표하는 기독교라는 우월 종교에 의해 순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작품 『제인 에어』는 말한다.

    1술과 인디언 사이의 스테레오타입의 역사 역시 상당히 깊다. 17세기 영국의 탐험가 헨리 혹스(Henry Hawkes)는 인디언들은 늘 술에 취해 있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모든 와인도 서인도제도 하나만을 위해서는 충분치 않다고 밝힌 바 있다(Warner 재인용 15).  2『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는 자신의 첫 번째 부인 버사에 대해 “무절제하고도 정숙치 못하다”(at once intemperate and unchaste)고 칭함으로써 술과 여성의 성적 타락을 병치시킨다. 그러나 진 리스의 소설에 의하면 막상 버사/앙뜨와네뜨에게 술을 권하고 그녀로 하여금 럼주를 마시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로체스터였다(130).  3다른 비평가들의 분석처럼 마이어 콘래드(Maia Conrad) 역시 인디언 사회 속에서 음주가 보편화됨에 있어 식민주의가 미친 영향이 작지 않음을 지적한다: “In addition, the closer and more frequent contact between the two societies meant that alcohol was more readily available to the Iroquois; they could imbibe more often”(8). 그리고 제국주의의 횡포와 그로 인한 전쟁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인구 감소 등은 인디언의 자기방어 능력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통일성 또한 불구로 만들었다(9).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경계들은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새로운 경계를 재건하는 과정 중에 음주의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t the end of the seventeenth century the Iroquois faced tot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decline; they had to confront the real possibility of being conquered by the Europeans. As a means of reestablishing boundaries for behavior and creating a new definition of deviance, the Iroquois expanded their tolerance of behaviors to include that which was previously deemed unacceptable and warranted punishment. Drunkenness became an accepted excuse for violent behavior, an opportunity to act in ways that were normally forbidden, a means of coping with rapidly changing circumstances that negatively affected their society”(9). 결국 인디언들의 음주는 단순히 환각 혹은 환영(vision)을 경험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견해는 인디언 사회에 있어서 음주가 차지하는 사회, 정치적 맥락을 거세하는 것이다.

    IV. 광기 그리고 제국주의

    로체스터와의 결혼 전 날 악몽을 꾼 후, 제인은 자신의 방을 습격한 버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진 리스의 『광활한 사가소 바다』는 버사의 인종을 백인 크레올로 확정짓지만, 위의 인용 중 “변색한”(discoloured), “야만인의 얼굴”(a savage face), “검은”(blackened), “검고 부어있는 입술”(the lips were swelled and dark) 등의 표현이 말해주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분명 버사의 인종을 흑인에 가까운 크레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비평가 수 토마스(Sue Thomas)는 이러한 표현들을 백인 크레올 여성 사이에 팽배해 있는 술과 성에 있어서의 무절제(intemperance) 즉 도덕적 타락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언급한다(11). 즉 인종 지정학적 담론에 있어서의 브론테의 묘사 속에서 크레올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타락한 존재로 묘사된다는 것이다(12). 그러나 『제인 에어』는 메이슨 집안이 로체스터 집안과 혼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로체스터의 순수 혈통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녀의 집안은 나를 붙잡고 싶어했소, 왜냐하면 나는 좋은 혈통이었기 때문이오”(Her family wished to secure me, because I was of a good race)(352). 본문주석에서 드러나듯 여기서 “좋은 인종”은 계급도 계급이거니와 유럽 순수혈통을 의미한다: “좋은 ‘혈통’(높은 계급) 혹은 이 맥락에서는 아마도 유럽 인종임”(Davies 569). 결국 『제인 에어』는 버사의 음주와 광기를 나쁜 피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순수혈통으로 정화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버사의 재산을 가로채고 그녀를 감금한 로체스터는 술고래/미치광이 크레올을 버리지 않고 돌보는 휴머니스트로 묘사하면서, 서인도제도에 대한 영국의 제국주의의 기획이 상업주의적 포획이 아닌, 반인반수와도 같은 원주민들을 개화하려는 휴머니즘임을 암시한다.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광기는 이렇듯 선천적인 것(“the true daughter of an infamous mother”[353])으로서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과 육체적 질병으로 그려진다. 음주와 더불어 광기 역시 이렇게 특정 인종 혹은 특정 토양의 일부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다. 1838년 “군 사망 및 병약자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의장을 맡은 바 있는 헨리 마샬(Henry Marshall)은 세계 모든 곳에서 있을 수 있는 광기에 대해 “대기의 기온이 높은 저위도의 이주토착민 사이에서 유독 성행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Bewell 재인용 795), 이는 자메이카의 크레올 버사를 떠올리게 한다. 엘리자베스 도날드슨(Elizabeth J. Donaldson) 역시 골상학과 광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에서 『제인 에어』의 메이슨 집안의 광기를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것으로 낙인찍는다. 작품 속에서 리차드 메이슨은 눈과 눈 사이가 넓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골상학적 특징은 리차드 역시 백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며 따라서 버사의 집안 전체의 생물학적 운명(biological destiny)이 이미 출생과 동시에 결정지어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로체스터는 “악명높은 엄마의 친딸”(353)로서의 버사의 광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녀의 무절제는 광기의 세균을 일찍 키워냈다”(her excesses had prematurely developed the germs of insanity)(353). 즉, 이미 선천적으로 타고난 버사의 광기가 그녀의 무절제한 생활방식—성과 음주를 뜻함—에 의해 일찍부터 나타났다며, 로체스터는 버사의 “나쁜 피”와 “나쁜 행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 켈러(Richard Keller)는 그의 논문 “광기와 식민화: 영국과 프랑스 제국에 있어서의 정신의학, 1800-1962”(Madness and Colonization: Psychiatry in the British and French Empires, 1800-1962)에서 식민주의와 정신의학 사이의 수상쩍은 공모관계를 밝혀낸다. 식민시대의 수용소(asylum)는 병원(hospital)과 감옥(prison)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며(296-7)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원주민의 심리상태를 알려는 욕망과 더불어 문명화의 사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297). 특히 식민시대의 정신의학은 식민주의에 있어서 인종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였고 따라서 인종주의적 정책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를 제공하기도 하였다(298).

    무엇보다도 수용소에 수감된 환자/죄수의 존재는 식민주의가 표방하는 인도주의에 대한 전시효과를 발휘하기에 충분하였다(301). 그러나 사실 수감된 정신병 환자/죄수 대부분은 농업전통에서 도시 봉급 노동자로의 심리적 전환을 이겨내지 못한 원주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아프리카인들은 정치적 리더십이 결핍된 미개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공고히 하는 데 악용되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정치적 저항운동들은 자유를 향한 합법적인 선거권을 향한 운동이 아니라 심리적 충동으로 치부되었다(308-09). 결국 식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광기가 원주민들의 유전설계 일부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식민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강요되는 사회적 변화와 착취로 인하여 후천적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더 높고, 식민화에 반하는 운동이 광기로 오인되는 일도 빈번했다. 그리고 이렇게 광인과 알콜중독자들을 감금하고 교화하는 것으로 제국주의는 인도주의의 전시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광기를 후천적인 질병으로 생각한다 해도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19세기 당대의 의학자들은 대부분 질병 역시 특정 지역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앨런 비웰(Alan Bewell)의 논문 “『제인 에어』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의학 지리학”(Jane Eyre and Victorian Medical Geography)에 따르면 제임스 린드(James Lind)는 1768년 Essay on Diseases Incidental to Europeans in Hot Climates라는 저서에서 서아프리카를 “몇 군데 제외하고는 전혀 개발되지 않고 대부분 숲과 나무로 둘러싸여 상쾌한 바람이 전혀 통과할 수 없는, 야생동물의 서식지로서만 적합한 곳”(Bewell 재인용 773)으로 묘사한 바 있다고 한다. 당대 낮은 의학 수준에서 질병은 전염(contagion)이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의 해로운 공기에 의해 오염(contamination)되는 것이라 잘못 믿어졌기에 질병에 대하여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것(the mapping of the entire world in terms of disease)은 문명과 원시성으로 대표되는 피식민지의 지도와 일치했던 것이다(776). 의학적 지리학은 이렇듯 식민주의의 성공적 팽창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악용되었다(780).

    따라서 질병과 미개함의 공간인 피식민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민화를 통해 유럽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유도된다(784-5). 그러나 문제는 그 이득과 혜택이 모두 어디로 향하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제인이 물려받게 되는 존 삼촌의 재산의 근원 역시 포도재배이므로 식민화의 일환인 농업적 재배/개화(agricultural cultivation)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포도재배로 인한 상업적 이윤은 존 삼촌과 제인에게 귀속되고 그 땅이 갖는 원래의 건강하지 못한 이미지는 그 땅에 거주하는 “게으르고 무절제한” 원주민/토착민을 대표하는 인물인 버사에게로 귀속되는 것이다.

    『제인 에어』 작품 속에서도 영국이 건강한 장소로 서인도제도는 질병과 광기의 공간으로 설정되는 것은 이러한 당대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제인과의 결혼식이 어긋난 후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을 역설하며 서인도제도를 답답한 곳으로 묘사한다.

    질병을 옮기는 곤충인 모기가 윙윙거리고 유황 냄새 가득한 서인도제도는 오염과 질병의 공간이 되고, 이러한 공간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치유하는 개화의 사명감은 백인남성들의 등에 지워지는 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옥과도 같은 공간으로부터 버사를 구출해 “달콤한 바람”이 부는 희망의 공간인 유럽으로 데리고 온 로체스터는 백인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휴머니스트로 포장된다. 그리고 로체스터가 버사를 감금하는 것은 인종적 “오염”(contamination)에 대한, 혹은 백인 여성의 열대지방에서의 도덕적 파행성을 망각 속에 묻어두기 위한 시도로 분석되기도 한다(Thomas 7). 어쨌든 흥미로운 점은 인용 마지막 부분 로체스터에 대한 “신과 인류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책무를 다 이행하였노라”라는 구절은 작품 마지막 부분에 기독교 전파를 위해 인도로 떠나는 세인트 존을 묘사하는 부분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인도로 전도를 떠난 세인트 존의 이야기는 『제인 에어』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 “바위와 위험물”(rocks and dangers)로 묘사되는 인도에서의 기독교 전파는 “인류”(his race)의 “진보”(improvement)를 위한 희생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렇듯 소설 『제인 에어』가 세인트 존의 기도로 끝나는 것은 인류를 구제할 책임을 백인남자의 등에 지우며, 앞서 다룬 버사의 술과 광기를 치유할 수 있는 최종적인 힘을 기독교로 대표되는 백인의 문명에서 찾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 모두를 피식민지에 대한 문명화 사명의 책임을 수행하는 백인남자의 모습으로 영웅시하고 있다.

    V. 맺음말─『제인 에어』 그리고 제국주의

    브론테의 주요 작품 각각에 식민주의가 비유적으로 나타나있다고 주장한 비평가 수잔 마이어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 “Colonialism is. . . present—and used figuratively—in each of Bronte¨’s major novels”(247).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역시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상징적으로 식민주의의 여러 면모를 드러내주는 듯하다. 특히, 존(John)이라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세 인물인 존 에어 삼촌(Uncle John Eyre), 세인트 존(St. John Rivers), 그리고 존 리드(John Reed)는 식민주의자 역할의 다양한 층위를 나타낸다. 먼저 존 삼촌은 직접 피식민지에 주둔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식민주의를 보여주고, 제인의 사촌인 존 리드는 이러한 식민주의로 인해 축적된 부가 종주국에서 어떻게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을 통해 낭비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제인의 또 다른 사촌인 세인트 존은 피식민국에 파견되어 식민주의를 정당화할 영혼의 개화를 추구하는 종교적 식민주의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식민주의에 대한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인물관계는 바로 버사와 로체스터 사이의 관계이다. 버사와 로체스터의 관계는 앞서 분석하였듯이 식민주의자와 원주민/토착민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며,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쏜필드에 방화를 한 버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대목에 이르도록, 로체스터는 원주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백인남자로서 미화된다. 19세기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뜻하는 말로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라는 표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제인 에어』의 제인이“집안의 천사”의 모습을 십분 표현한다면 버사는“다락방안의 악마”(Demon in the Attic)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악마성은 음주와 광기로 표현된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하였듯 버사의 악마성은 영국의 상업적 제국주의와 관계가 깊다. 식민주의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원주민에게 술과 광기로 대표되는 미개함과 위험성의 오명을 씌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버사의 집안 내력에 대해 버사의 가족과 로체스터의 아버지가 결혼 당사자인 로체스터에게 침묵하였듯, 버사의 음주와 광기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 서술자로서의 제인과 작가 브론테는 침묵한다. 그러나 사실 웅장한 쏜필드 저택에서의 로체스터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버사와의 결혼으로 인하여 가능해졌기에 로체스터와 버사와의 결합 자체가 식민 경영의 이윤추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버사의 부모님의 재산 역시 식민 현장에서의 합법적이나 분명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를 통한 원주민 노동력 착취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역사적 맥락들은 텍스트 깊숙한 곳에 숨겨지게 되고 버사의 악마성은 오히려 제인의 이상적인 여성성과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의 희생적 백인의 우월함을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버사가 대표하는 술과 광기는 이성과 질서의 범주에서 비껴가 있다는 의미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 음주자와 광인은 사회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가 혹은 자본주의 사회가 각각 피식민지와 하류층에 대해 술과 광기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부여하여 경멸하는 것은, 술과 광기가 갖는 전복적 에너지를 부정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바르뜨는 와인이 갖는 변화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상황과 상태를 바꿀 수 있는, 객체로부터 그 반대를 추출할 수 있는 변화의 물질이다—예를 들어, 약한 사람을 강하게, 말없는 자를 수다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랜 연금술의 유전인 무에서 변화하고 창조하는 철학적 힘이라 하겠다”(58). 말이 없는 사람을 수다스럽게 만들고 약한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술은 결국 피권력자의 저항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마이아 콘래드(Maia Conrad) 역시 논문“병리학적 음주”(Disorderly Drinking)에서 음주는 음주자로 하여금 맨 정신으로는 하지 못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가면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7). 따라서 술과 광기의 오명을 피식민지와 하류계급에 부여함으로써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는 술과 광기가 갖는 사회전복적 에너지와 더불어 피식민지와 하류계급의 실천성(agency)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결국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은 버사의 음주와 광기로 묘사되는 오염된 피식민지를 정화시킬 우월 민족/우월 종교인으로서의 “백인의 책임”(white man’s “burden”)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작품 속에서 제인의 삼촌 존 에어가 포도주 상인으로서 포도주 사업을 통한 이윤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도록 설정된 것은 버사의 음주와 광기가 동시에 “백인의 책임”(white man’s “fault”)이기도 함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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