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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study on the Im Kwon-taek’s film style 임권택 감독의 영화스타일 연구*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study on the Im Kwon-taek’s film style

이 논문에서는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라고 평가 받는 임 감독 영화의 스타일적 양식과 특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려고 한다. 한국적 전통과 소재를 서사화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시각적 양식을 임 감독은 채택하고 있는지가 논의의 중심 대상이 될 것이다. 임 감독 영화의 한국적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과 집중에 비해 그의 스타일적 양식에 대한 탐구와 진지한 성찰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다른 감독들과는 차별화되는 임 감독 고유의 영화 스타일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그 스타일적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한국적 영화스타일로 평가될 수 있는지가 탐구의 대상이다. 더불어 서구에서 개발된 영화 미학이 임 감독의 영화에는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는지, 그리고 아시아권이나 동구권처럼 비-할리우드 지역의 감독들의 영화 미학과는 어떤 유사성과 차별성을 지니는지 등을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임 감독 고유의 시각적 스타일뿐만 아니라 한국적 영화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KEYWORD
cinematic style , long take , Korean film style , classical continuity , Korean aesthetics
  • 1. 서 론

    국내외 영화 관계자나 대중에게 현존하는 감독 중 가장 한국적인 감독을 꼽으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임권택 감독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임 감독은 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한국적 전통과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만들어 칸느와 같은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대중에게 한국적인 감독으로 그 명성을 얻어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한 한국인에 대한 영화, <족보>(78)를 시작으로, 유교적 전통과 관습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그린 <씨받이>와 <아다다>, 득음을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승려들을 다룬 <만다라>와 <아제아제 바라아제>, 분단 이데올로기로 고통 받는 가족과 민족 갈등을 그린<길소뜸>과 <태백산맥>, 판소리를 소재로 한 <서편제>, 우리의 장례문화를 다큐적인 사실성으로 재현한 <축제>, 그리고 도예가의 삶을 그린 <취화선>과 대표적인 민족 설화인 <춘향전>에 이르기까지, 임 감독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둔 민족적인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임 감독의 영화들이 특별히 민족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단순히 소재와 배경이 한국적이어서가 아니라 영화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삶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궤적과 중첩되어 있거나 전통적 가치관과 교차하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즉, 영화 주인공들이 겪는 격동의 삶 자체가 한국적인 특수성에 기인하는 민족 담론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

    하지만 임 감독 영화의 한국적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과 집중에 비해 그의 스타일적 양식에 대한 탐구와 진지한 성찰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다른 감독들과는 차별화되는 임 감독 고유의 영화 스타일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그 스타일적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한국적 영화스타일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과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임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에서 지니고 있는 중요도에 비해 그 동안 영화 내러티브에 대한 논의에만 편중되어온 채, 시각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간과 되어 왔다. 영화에서 서사 내용의 완성은 시각적 스타일에 의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임 감독 스타일 연구가 관심 밖에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라고 평가 받는 임 감독 영화의 스타일적 양식, 즉, 미장센과 편집 양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려고 한다. 한국적 전통과 소재를 서사화하는데 있어서 영상 스타일의 중심 도구인 미장센과 편집을 통해 임 감독이 어떠한 시각적 양식을 채택하고 있는지가 논의의 중심 대상이 될 것이다.

    더불어 서구에서 개발된 영화 미학이 임 감독의 영화에는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는지, 그리고 아시아권이나 동구권처럼 비-할리우드 지역의 감독들의 영화 미학과는 어떤 유사성과 차별성을 지니는지 등을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임 감독 고유의 시각적 스타일뿐만 아니라 한국적 영화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1)임권택 영화의 내러티브와 서사 미학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 「한국영화 미학 탐구: 임권택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23호, 한국영화학회, 2004, 240-269쪽에서 자세히 논의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음.

    2. 임권택 영화 스타일 vs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

    1920년대 소련의 영화인들에 의해 개발된 영화 몽타주 기법은 여타 다른 예술 장르와 뚜렷하게 구별될 수 있는 영화만의 독특한 양식이 되어 왔다. 영화 몽타주, 즉 편집 기법은 다른 기존의 연극과 무용과 같은 전통 예술들이 담아 내기 힘든 시, 공간의 자유로운 이탈과 교차, 그리고 압축과 확장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다.

    편집에 의한 영화만의 고유 문법은 소련의 몽타주 이론을 근간으로 30년대에 이미 할리우드에서 하나의 양식으로 정립되었는데 이것을 ‘할리우드 고전적 양식(classical style)’이라고 부른다. 영화 표현의 근간이 되는 할리우드의 고전적 양식을 살펴보면, 시, 공간을 구성하는데 있어 일정한 기본 패턴을 따르고 있다. 즉, 동일한 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위를 재현하는 하나의 씬(scene)은 대개는 ‘설정/분절/ 재설정’으로 구성된다.

    처음 설정 쇼트는 공간의 전체적 배경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고 분절은 정사/역사를 통해 대상을 개별적으로 묘사하며 인물이 이동하거나,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어 씬에 변화가 있을 시에 재설정의 수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한 씬에서 개별 쇼트로 공간을 분절할 경우, 인물의 시선이나 행위가 180도 라인을 중심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되는 ‘시선의 일치’와 ‘행위의 일치’가 준수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고전적 할리우드 미학의 기본이 되는, 이러한 커트cut에 의한 편집 양식은 원론적으로는 공간과 시간을 분할하는 해체적 속성을 지니지만 시, 공간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연속된 흐름으로 구성됨으로서 그 해체적 힘을 은폐시키고 잠재우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스타일 연구가, 데이비드 보드웰에 따르면, 30년대 정립된 이와 같은 할리우드 고전적 양식이 현대 영화에서도 지배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2) 지금까지 거의 대다수의 대중 영화들이 이 고전적 양식의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전 세계 영화 관객들과 영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할리우드 고전적 양식은 시대, 언어, 문화가 다른 관객들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표준으로서 오랫동안 국제적인 영화언어로 기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보드웰이 보기에, 고전적 시스템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는 현대영화인들은 이 시스템을 훨씬 더 발전시키고 상승시킨 ‘강화된 연속체계’ intensified continuity를 기반으로 영상을 재현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강화된 연속체계’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스타일이 지배적으로 사용되는 특성을 보여준다.3)

    우선 첫 번째로 두드러지는 특성은 매우 ‘빠른 편집’rapid editing이다. 3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는 한편의 영화에서 사용된 한 쇼트shot의 평균 지속 시간이 8초에서 11초였으나 60년대 이후, 쇼트의 평균 속도가 점점 빨라져, 현재 2000년대에 와서는 한 쇼트의 평균 지속시간이 2초 이하의 영화들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만약 현재 한 영화에서 한 쇼트의 평균 지속시간이 고전 영화에서처럼 8초에서 11초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이것은 오늘날 예술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롱 테이크longtake에 해당될 수 있다.

    이처럼 빠른 편집은 단순히 화면의 속도만 기계적으로 빨라졌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영상이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무쌍하게 전환된다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카메라 움직임 중간에 커트하는 것이 회피되었는데 현재에는 트랙 쇼트track shot나 팬 쇼트pan shot 중간에도 커트가 행해지거나 전경과 후경 사이에서의 초점의 변화, 전경을 가로지르는 빠른 팬과 리프레이밍reframing등 다양한 테크닉이 사용되면서 영상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현대 영화감독들은 이런 영상의 다양한 변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스크린에 집중한 채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는다.

    대화 장면만 보더라도 정사shot/역사reverse shot의 교환이 더욱 강력하고 빠르게 진행되도록 전체 공간을 보여주는 설정쇼트가 생략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데 설정쇼트의 부재는 더욱 강력한 180도 연속체계를 요구한다. 쇼트의 전환이 빠르거나 설정쇼트가 부재할 경우 대화에서의 앵글과 시선의 일치가 더욱 분명하면서도 엄격해야 공간의 통일성을 더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쇼트의 빈번한 생략은 이전 보다 더욱 타이트한 클로즈업close up이 지배적으로 사용되게 만드는데 보드웰은 ‘강화된 연속체계’의 두 번째 특성으로 ‘클로즈업에 대한 의존’을 들고 있다. 이전 시대에는 배우의 무릎이나 허벅지로 커팅하면서 두 사람을 한 프레임frame에 담는 비교적 긴 쇼트가 주로 사용된 것에 비해 현대에 와서는 프레임에 한 명의 배우만 근접해서 담는 싱글 쇼트single shot와 어깨 너머 쇼트over the shoulder shot가 지배적이다.

    이런 싱글 클로즈업의 지배적 사용이 더욱 빠른 편집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드웰은 말한다. 와이드 스크린 프레이밍에서 싱글 클로즈업 쇼트는 프레임 중앙에 배우의 얼굴을 놓고 그 뒤 배경을 꽤 잘 보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설정 쇼트와 재설정 쇼트의 필요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다음 ‘강화된 연속체계’에서 세 번째로 두드러지는 특성은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이다. 가벼워진 카메라와 스테디 캠과 같은 장비 덕분에 실내에서 방과 방을 통하거나 실외에서 인물들을 쫓는 쇼트들이 폭넓게 사용된다. 커트 대신에 카메라 움직임에 의해 표현될 때 카메라가 고정된 채 정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물의 움직임이 없는 대화 씬 조차도 인물의 얼굴을 향해 줌 인하거나 앞으로 트랙킹으로 다가가면서 얼굴을 천천히 확대해나간다.

    현대 영화감독들은 이러한 인물을 향한 카메라의 완만한 움직임이 그 씬 scene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빠른 커팅과 함께 움직이는 프레이밍이 씬scene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고 생각하여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한 카메라 움직임은 영상의 단면들을 분리해서 좀 더 확장된 회화적인 공간을 창조한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마지막, 네 번째 스타일적 특성은 롱 렌즈와 와이드 앵글 렌즈, 양극단의 렌즈가 동시에 사용되는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먼 거리 액션을 확대 할 수 있고 야외 촬영에서 유리한 롱 렌즈의 장점과 깊은 심도의 촬영에 유리한 와이드 앵글 렌즈를 한편의 영화에서 자유롭게 혼합해서 사용하는 경우를 프란시스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현대의 유명한 감독들 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60년대 이후부터는 싱글 쇼트에서 양극단의 두 개의 렌즈 길이를 이용하는 것이 ‘강화된 연속체계’의 이정표가 될 정도였고 감독들은 보통 렌즈의 사용을 피하고 망원과 광각 렌즈들을 혼용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빠른 커팅 속도, 타이트한 싱글 쇼트에의 의존, 카메라의 자유로운 움직임, 망원 렌즈와 광각 렌즈의 혼용, 이 네 가지 테크닉은 ‘강화된 연속체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테크닉들은 단독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서로 함께 작용함으로서 현재 할리우드 스타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지배적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할리우드 스타일과 임권택 영화의 스타일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선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시공간의 통일성을 유지하는데 기본이 되는 설정 쇼트와 정사/역사로 분절되는 연속체계를 임권택 영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을까?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전체적으로 전달하는 설정 쇼트나 정사/역사의 구성에 의한 인물의 주관적 시점의 형성, 또 이로 인한 간헐적인 싱글 클로즈 업 사용, 그리고 대화 씬scene에서의 정사/역사의 교차가 임권택의 영화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처럼 사용된다. 거기다 롱 렌즈와 와이드 앵글의 혼용, 완만한 카메라 움직임 또한 임권택 영화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들만 본다면 스토리를 구성하는 임 감독의 스타일은 할리우드 연속체계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임 감독의 스타일의 기본적 구성방식은 할리우드 연속체계를 따르더라도 그 틀 내에서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재현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와는 사뭇 다른 요소들이 있다. 우선 임 감독의 영화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정사/역사의 사용 빈도가 매우 제한적이다. 정사/역사로 의미화되는 주관적 시점 쇼트의 경우, 사용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 사용 횟수가 많지 않다. 그런가하면 대화 장면에서의 정사/역사의 교환 또한 한 씬에서 한번 사용이 될 정도로 매우 한정되어 있다.

    대신 임 감독의 대화 장면에서는 프레임 아웃 사운드를 이용한 대화 구성이 주도적으로 쓰인다. 카메라가 한 명의 인물에게 고정되어 있고 맞은편 다른 인물의 표정은 보이지 않은 채 프레임 밖 사운드로 그 인물의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영화 <서편제>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대화 장면은 영화 첫 대목에서부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동호와 주막 여주인이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을 보면, 카메라가 동호 얼굴에 고정된 채 프레임 아웃 사운드로 여주인의 대사가 지속되거나 혹은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대사를 하고 있는 주막 여주인의 어깨 너머 쇼트로 동호의 반응 쇼트를 구성하기도 한다. 여주인이 부르는 판소리 또한 화면 밖으로 여주인이 나간 상태에서도 계속 들리면서 동호의 얼굴 클로즈 업close up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물간의 대화와 반응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정사/역사의 교환이 자연스럽게 생략되거나 지연 혹은 변형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동호와 누나 송화가 어린 시절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판소리와 북 장단을 배우는 장면에서도 프레임 아웃 사운드를 이용한 대사와 함께 임 감독의 독특한 정사/역사의 교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의 정사 쇼트는 어린 송화가 판소리를 부르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앞으로 한껏 몸을 구부리고 판소리를 힘겹게 부르는 송화가 프레임 중앙에 잡힌다. 송화에게 고정된 이 프레임에서 화면 밖 사운드로 북장단을 멈추고 송화의 구부러진 자세를 야단치는 유봉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커트되어 바로 이어지는 역사 쇼트에는 유봉 대신 어린 동화가 송화의 판소리에 북장단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잡힌다. 다시 판소리를 부르는 송화를 담은 정사 쇼트로 돌아오고 그리고 이어 송화, 동호, 유봉, 세 명 모두를 보여주는 설정(마스터) 쇼트로 이 씬은 마무리 된다.

    말하자면 처음 송화를 담은 정사 쇼트에서는 유봉의 존재를 프레임 밖 사운드로만 처리하고 다음 역사 쇼트에서는 유봉의 위치에 동호를 보여줌으로서 정사/역사가 동일한 시간에 연결된 것이 아닌 시간의 불일치, 즉, 두 쇼트 사이에 긴 시간의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북 장단을 맞추는 고수의 역할이 유봉으로부터 동호로 이행되었음을 역사 쇼트의 변화를 통해 제시한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정사/역사의 빈번한 사용은 등장인물들의 반응에 집중함으로서 극적, 심리적 효과를 높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의 정사/역사의 기능은 이런 일반적 사용으로부터 이탈된,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를 알려주는 기능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더구나 이 장면의 프레임 아웃 사운드는 정사/역사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신 함으로서 서사 내용을 더욱 간결하게 압축, 전달하는 기능까지도 겸하고 있다.

    이처럼 정사/역사의 교차를 대신하는 프레임 아웃 사운드 사용은 임 감독 영화의 많은 장면들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방식이다. 할리우드의 정사/역사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변형된 구성을 통해 임 감독은 스타일적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

    임 감독의 영화에서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인물이 대상을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 쇼트에서 카메라를 향한 인물의 시선 방향이 할리우드 영화의 그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구도로 형상화 된다는 점이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의 프레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의 각도는 사선 방향으로 프레임 밖을 응시하는 측면 구도를 이용해 ‘시선의 일치’를 구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임 감독의 영화에서는 인물이 프레임 밖 대상을 응시할 때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정면 구도로 형상화 하는 쇼트들이 간혹 등장한다.

    이러한 카메라를 향한 정면구도는 인물의 측면구도에 의한 시선의 일치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순간적인 혼동을 주기도 하는데 영화 내의 대상이 아닌 관객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한, 그래서 관객의 관음증적 시선을 순간적으로 자각시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의 정면을 응시하는 주관적 시점 쇼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크린의 관음증적 성격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할리우드 방식에서 이탈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임 감독의 쇼트의 지속 시간이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짧지 않다는 점도 두드러진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9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서 평균 쇼트의 지속 시간은 2~4초인데 비해 임 감독의 쇼트는 대체로 10초이상 지속되는 화면이 많아 할리우드에 비해 장면 전환이 빠르지 않고 변화가 역동적이지 않다. 카메라 움직임에 있어서도 쇼트의 지속 시간이 길다보니 대단히 완만하고 느리며 종종 대상을 향해 오랜 동안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빈번히 볼 수 있다.(할리우드에서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는 고정된 쇼트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과적으로 임 감독의 영상 스타일은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연속체계의 기본 틀은 유지하고 있지만 그 세부적인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양식을 지닌다. 특히 느린 템포와 변화가 많지 않은 화면은 임권택 영화를 정적이면서도 열린 형식이 지배적인 영화로 특성화 한다.

    2)Bordwell, David, The Way Hollywood Tells I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y and Los Angeles, California, 2006.  3)ibid. pp.121~138.

    3. 롱 테이크에 의한 미장센 비교

    임 감독의 정적이면서도 열린 영화 형식은 할리우드에서는 더 이상 보기 드문 롱 샷long shot 혹은 익스트림extreme 롱 샷 long shot에 의한 롱 테이크long take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임 감독의 영화에는 클로즈 업과 롱 샷에 비해 중간사이즈의 미디엄 샷이 오히려 적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카메라 움직임없이 익스트림 롱 쇼트에 의해 구성되는 롱 테이크는 임 감독의 모든 영화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구성인데 임 감독 영상 스타일의 독특한 서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유난히 주인공들이 길을 떠나 방랑하는 쇼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길 위에서의 인물들이 산과 들을 배경으로 익스트림 롱 쇼트에 의한 롱 테이크로 담겨진다. 길 위의 인물들은 오랜 동안 관조하는 듯 일말의 동요도 없는 롱 테이크에 의해 잡혀지는데, 화면 중앙에 주인공이 있지만 인물이 카메라를 향해 등을 지고 멀어지거나 혹은 사선방향으로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극단적인 익스트림 롱 쇼트에 잡힌다. 그리하여 인물들은 모두 얼굴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의 하나의 점을 연상시키는 작은 크기로 형상화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쇼트들은 에피소드 사이, 사이에 불현듯 삽입되면서 마치 서사의 흐름을 잠시 동안 정지시켜 놓는 ‘휴지기’pause 같은 효과를 낸다. 즉, 임 감독의 롱테이크에서는 인물은 거의 시야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에 인물 대신 산과 들의 자연 풍광이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 중심이 된다. 그리하여 화려한 기교나 꾸밈이 없는 임 감독의 정지된 롱 테이크는 한국의 자연 그 자체를 응시하게 만들면서 잊고 있었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서정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의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점이 임 감독 특유의 롱 테이크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임 감독의 롱 테이크를 다른 비-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의 롱 테이크와 비교한다면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을까? 우선 일본의 미조구지겐지, 대만의 후 샤오시오엔, 러시아의 타르코브스키, 이태리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그리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테오도르 앙겔로플로스가 롱 테이크 사용의 거장들로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감독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할리우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인 롱 테이크를 독특하게 사용함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들이다.

    여기서는 일본의 겐지와 대만의 후, 그리스의 앙겔로플로스, 이 세 사람의 스타일을 중심으로 임 감독의 스타일과 비교해보려고 한다. 이 세 명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 모두 스타일적 측면에서 임 감독과 특정한 부분에서 동일한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스타일이 빚어내는 영상 효과와 의미작용은 각기 다른 이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동일한 스타일이 어떻게 이질적인 재현효과를 파생시키는가를 알려주는 비교 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교는 임 감독의 스타일적 특성을 더욱 분명하게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임 감독을 제외한 이들의 스타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공통적으로 정사/역사의 분절을 토대로 한 연속체계(continuity) 없이 거의 모든 영상을 오로지 마스터 쇼트(설정 쇼트) 위주로 장면을 구성 한다는 점이다. 간혹 롱 테이크가 마스터 쇼트에서, 서서히 카메라 이동에 의해, 근접 쇼트로의 변화는 있더라도 할리우드식의 정사/역사에 의한 연속 체계는 거의 없다.

    이에 반해 임 감독은 부분적으로는 정사/역사의 고전적 연속체계로 구성되고 있어 이들 세 명의 감독들에 비해 쇼트의 분절이 더욱 빈번하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임 감독의 영화에는 쇼트의 분절에 따른 주관적 시점 쇼트로인해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동일화를 어느 정도 유도한다는 점 또한 이들의 비-정형화된 스타일과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된다.

    임 감독이 일부분 할리우드 연속체계를 수용하고 있어 파생되는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임 감독과 이들 세 명의 감독들의 스타일은 비-할리우드적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여러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임 감독을 포함한 이들 모두가 비-할리우드 스타일이라는 동일한 범주 내에서 차별성 없는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임 감독을 포함한 네 명의 감독들 모두가 동일한 먼 거리 롱 테이크를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각자 자신만의 미장센mise-en-scene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특유의 롱 테이크를 구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동일한 탈-할리우드 양식 내에서 유사하면서도 차별화된 표현들이 교차하면서 이 교차점들은 각자의 독특한 영상 스타일을 가시화하는 지점들이 된다.

    첫 번째로 일본의 미조구찌 겐지의 스타일을 임 감독의 스타일과 비교해 보면, 임 감독처럼 겐지도 심도 깊은 공간성을 지닌 롱 쇼트를 통해 인물의 행위를 오래도록 관찰하는 롱 테이크를 사용한다. 임 감독처럼 겐지 또한 여러 인물들의 행위를 한 프레임내의 전경과 후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시킴으로서 먼 거리 깊이를 유지하는 입체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성이 강한 심도 깊은 공간성과 정교하고 치밀한 미장센에 의한 롱 테이크는 두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이다. 특히 롱 테이크에서 요구되는 정교한 장면화(미장센)는 두 감독 모두 ‘사각 틀’ 구도가 지배적 형태로 재현되면서 구체화된다.

    두 감독의 장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격자처럼 인물들을 포위한 채 인물을 부분적으로 가리거나 드러내면서 시각적 디자인이 장면화의 중심적 구성요소로서 기능하도록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겐지의 장면들이 임 감독 보다 훨씬 더 회화적이면서 복잡한 장식적 스타일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겐지의 영화들에서 사각 틀의 장면화가 더욱 빈번히 나타나는데 일본 특유의 다다미 가옥의 형태와 문양이 회화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겐지의 먼 거리 롱 쇼트에 의한 실내 장면을 보면, 빼곡하게 들어찬 장식적인 세팅과 복잡한 시각적 패턴이 프레임을 가득 메우고 있어 여백 없는 화려한 회화성을 보여준다. 여백 없이 꽉 찬, 시각적 장식이 돋보이는 사각 틀 구도는 일본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겐지의 표식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겐지의 영화에서도 임권택과 유사하게 느린 페이스에 먼 거리 롱 샷에서 인물의 등을 보여주거나 얼굴 표정을 불명확하게 묘사하는 스타일적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미장센에 내포된 두 감독의 의도와 이런 묘사들로부터 얻어지는 영화적 효과는 매우 상이하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임 감독의 롱 샷에 의한 정지된 롱 테이크에서는 인물이 아닌 인물을 에워 싼 자연 배경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중심 대상이다. 임 감독은 거의 모든 영화에서 방랑하는 인물의 모습을 담을 때 어김없이 자연을 배경으로 먼 거리 고정된 롱 테이크를 주도적으로 사용한다.

    이에 비해 겐지는 고정된 롱 테이크에 의한 롱 쇼트를 실외가 아닌 실내 장면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 실내 장면들에서 인물의 얼굴이 세트에 가려서 보이지 않거나 아니면 카메라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종종 표현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비애와 슬픔이라는 극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재현된 겐지만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겐지의 이런 표현 방식은 <오하루의 일생>(52년)에서 오하루가 연인으로부터 이별 편지를 받고 슬픔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레임 전경에는 기모노가 가장 지배적인 요소로서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데 걸려 있는 기모노 뒤에 가려진 채 오하루가 엎어져 있는 모습이 일부분만 보인다. 사운드로 들리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이별 편지로 인해 그녀가 절망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이어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이나 대사가 아닌 그녀가 움켜쥔 칼을 보여줌으로서 그녀의 심리 상태를 전달한다.

    데이비드 보드웰에 따르면,4) 이 장면은 표정과 대사에 집중시키는 일반적인 '직설 화법'과는 달리 블록킹blocking과 칼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슬픈 감정을 고양시키는 겐지만의 '우회적인 화법'이라고 평가한다. 즉, 주요 얼굴 표정이나 행위를 숨기는 블록킹과 일부만이 드러나는 신체. 그리고 동반되는 슬픈 음악이 오하루의 비애를 더욱 극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겐지의 다른 영화들의 장면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주인공들이 엎드려 있거나 관객에게 등을 돌리거나 세팅에 의해 그들의 모습이 가려진 채 슬픔과 비애가 재현되고 있다.

    하지만 임 감독의 경우, 슬픔을 표현할 때 겐지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임 감독은 다른 감독들의 일반적인 방식과 동일하게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얼굴을 한 인물에 대한 근접 쇼트를 통해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즉, 임 감독은 대사와 얼굴 표정을 통해 뚜렷한 스토리 정보를 제공하는데 슬픈 장면들은 근접 쇼트, 슬픈 음악, 느린 카메라 움직임이라는 스타일의 외연적 차원을 통해 비극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임 감독의 비극적 표현은 겐지가 스토리 행위의 불투명성을 통해 비극성을 강화하려는 방식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두 감독이 동일하게 먼 거리 롱 테이크로 인물의 등을 보여주거나 얼굴을 불명확하게 묘사하는 시각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영화상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다른 효과를 창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후 샤오시오엔은 대만을 대표하는 또 한명의 롱 테이크 미학자이다. 후 샤오시오엔은 임권택 감독처럼 민족적인 주제의식과 정서가 강한 작품들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아시아 감독이다. 임 감독의 영화 배경이 한국 근대사의 격변의 시기에 집중하듯이, 후 감독도 <비정성시>(1989), <인형 주인>(1993), <좋은 남자, 좋은 여자>(1995) 등을 통해 20세기 근대사를 관통하는 대만인들의 격변의 세월과 삶을 집중 조명한다. 공통적으로 두 감독 모두 정치적 격동과 근대화의 과정을 직접적으로 서사화하기 보다는 이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처한 곤경과 난관을 통해 역사적, 민족적 서사를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후 감독은 롱 테이크 미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움직임이 빈약한, 오랫동안 카메라가 고정된 채 쇼트를 지속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임권택과 겐지가 고정된 롱 테이크를 사용하긴 하지만 후 감독만큼 그렇게 한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후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각인시킨 대표작, <비정성시>를 보면, 오랫동안 고정된 카메라에 담긴 사실적 미장센은 대만 특유의 생활문화와 양식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사실성이 강한, 정교한 구도의 미장센에서 후 감독도 역시 임과 겐지처럼 사각 틀 구도가 지배적으로 형상화 된다. 하지만 후의 미장센은 임과 겐지처럼 심도 깊은 공간성을 지니기 보다는 실내에서의 어두운 조명과 롱 렌즈의 사용으로 시종일관 약화된 공간성을 재현한다.

    이 약화된 공간성은 프레임 아웃 사운드로 빈번하게 채워지는데 <비정성시>의 첫 장면부터 시, 청각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직면하게 된다. 명암 대비가 극심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조명은 프레임 중앙에서 담배를 피면서 향을 피우는 첫 아들 문응의 모습만을 간신히 국부적으로 드러내면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 장면에서 고정된 카메라와 키아로스쿠로 조명은 철저히 시각적 정보를 문응에게만 제한하면서 심한 경우 문응이 화면의 후경으로 이동하여 한동안 암흑 속에 갇힌 채 행위와 대사를 한다.

    이렇듯 시각적 억제가 지배하는 순간에 프레임 아웃 사운드는 영상 정보의 빈약성을 보충하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 방송과 문응의 부인이 출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소리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문응에게 고정된 영상과 프레임 아웃 사운드의 병행은 40년대 말 대만의 시대적 격변과 개인적 상황을 이중으로 중첩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응과 그의 동생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전개될, 국가의 격변의 시기에 희생되는 개인의 운명을 영화의 시작부터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정사/역사의 화려한 시각적 전환 대신 프레임 아웃 사운드를 이용한 스토리 전개 방식은 임과 후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요소이다. 하지만 임 감독의 프레임 아웃 사운드가 인물간의 대화 장면에서 쇼트의 분절을 대신 해 사용된 경향이 강한 반면 후의 프레임 아웃 사운드 이용은 영화 전반에 걸쳐 좀 더 폭넓게 사용된다.

    후의 프레임 아웃 사운드는 앞에서 제시한 키아로스쿠로 조명뿐만 아니라 벽면이나 창문과 같은 세트 혹은 등을 보이고 있는 인물들에 의해 시야가 가로막혀 있거나 아니면 오프 스크린offscreen 액션 장면에서 시야가 블록킹 되었을 경우, 서사를 완성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후의 스타일의 독특성은 '억압된 시각적 재현'과는 상반되게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운드'에 의해 완성되는 장면화(미장센)의 앙상블에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후의 억제된 시각성과 자유로운 사운드의 조화는 궁극적으로 영화 전체를 브레히트적인 거리두기 효과나 탈-드라마화로 확장시키는 결정적 수단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런 방식을 통해 스토리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탈-극화의 양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정성시> 중반에, 경찰이 문응을 잡으러 집을 급습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집안 거실에 고정되어 있고 프레임 오른편 중경에는 화려한 무늬를 한 불투명 유리가 집안 내부를 볼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프레임 전경 왼편으로는 아들을 체포하려는 경찰에 항의하는 문응의 아버지와 경찰 간부가 말다툼을 하고 있지만 어둠에 갇힌 채 카메라에 등을 지고 서 있어서 어느 누구의 얼굴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전경에서 아버지가 항의하는 큰 소리와 함께 집안 내부에서 격렬하게 쫓고 쫓기는 몸싸움을 벌이는 프레임 아웃 사운드가 멀리서 들려온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매국노로 몰려 경찰에 잡혀 갈 위기에 처한, 그래서 가장 많은 액션과 극적 진장이 요구되는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 감독은 의도적으로 사건의 절정 부분을 키아로스쿠로 조명과 인물의 등진 모습과 시야를 막고 있는 세트로 블록킹한 채 관객의 극적 동일화와 긴장감을 반감, 해체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거리두기에 의한 탈-극화는 <비정성시>나 <밀레니엄 맘보>에서 격렬한 격투가 발생하는 여러 명의 칼싸움이나 몸싸움과 같은 폭력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후의 폭력 장면들의 대다수는 인물의 격렬한 몸짓을 극단적인 먼 거리(익스트림) 롱 쇼트로 담고 있어서 행위가 조그만 점 크기로 보여 식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니면 인물들 간의 격투가 어두움에 갇혀 있거나 나무와 숲 뒤에서 벌어지거나 오프 스크린으로 묘사되는 조용하면서도 이탈된 방식으로 액션을 재현한다. 이 때 변함없이 스토리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은 프레임 내, 외 사운드의 몫이다.(앞페이지 사진)

    겐지도 후 감독처럼 한 프레임 내에서의 블록킹 기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블록킹에 의한 시각적 억제와 건조한 긴장감이 파생시키는 후의 거리두기 효과와는 정반대로 겐지는 슬픔과 비애라는 극적 고양을 위해 인물들의 얼굴 표정을 카메라로부터 블록킹한다는 점에서 둘의 스타일은 크게 다르다.

    또한 임 감독과의 비교에서도 후와 임, 둘 다 서사 내용과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재현방식에서는 상당히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민족의 격변의 시기에 희생되는 주인공들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임 감독이 감성적인 한의 정서로 비애스럽게 묘사하는 반면 후 감독은 비극적인 내용을 전혀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의 영화들은 비애스런 상황에서도 브레히트적인 거리두기에 의한 매우 건조한 톤을 유지하면서 감성적인 면이 탈색 혹은 산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개입되지 않은 채 관찰자적인 객관적 관점으로 민족사를 목격하게 만드는 절제된 스타일이 후의 특이성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또 한명의 롱 테이크 스타일리스트인 그리스의 감독, 테오도르 앙겔로플로스의 영화는 다분히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앙겔로플로스도 먼거리 롱 테이크를 주로 사용하지만 임, 후, 겐지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벗어나지 않는 사실적인 미학을 고수하는 반면 앙겔로플로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성이 탈구되어 있는 장면들이 많다. 앙겔로플로스 영화는 한 프레임 내에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거나 경계가 불분명한 내적 영상이 삽입되는 초월성을 지닌다. 이는 신화적이면서도 초월적인 특성의 롱 테이크로 유명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브스키를 연상시킨다.

    구도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임, 후, 겐지의 영상이 공통적으로 사각 틀 구도가 강한 반면 앙겔로플로스의 영상은 면을 이용한 수평적인 구도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앙겔로플로스의 <영원과 하루>(98)에서는 그의 어떤 다른영화보다도 바다와 평지를 배경으로 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이 프레임 내에 자주 등장하면서 수평적 구도가 더욱 두드러진다.

    제시된 사진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앙겔로플로스의 영화는 수평적 구도와 함께 프레임 내에 빈 공간의 여백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공허함과 허무함이 이 여백의 공간을 통해 재현되고 있는 듯, 특유의 상실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여백의 공간 또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장면화가 특색인 세 명의 아시아 감독들의 스타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앙겔로플로스의 개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임 감독과 앙겔로플로스 감독은 특정한 장면 스타일에서는 매우 흡사한 유사성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다. 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왜소한 인물에 광대한 배경이 시야의 중심이 되는 먼 거리 롱테이크를 앙겔로플로스도 동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임 감독처럼 앙겔로플로스의 먼 거리 롱테이크에서도 인물이 오랜 동안 등을 보인 채 카메라로부터 멀어지면서 인물이 아닌 그 주위를 둘러 싼 배경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겐지와 후와의 비교에서도 확인했듯이, 임과 앙겔로플로스, 두 감독이 동일한 스타일적 특징을 공유할지라도 그 스타일의 세부적인 구성 방식은 여러 차이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첫째, 임 감독의 배경이 중심인 롱 테이크에서는 산과 들, 자연 풍경이 그 배경을 일관되게 차지하는 반면 앙겔로플로스의 장면들에서는 집이나 건물과 같은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건축양식들이 그 배경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임 감독의 영상에는 서구화와 근대화의 흔적이 실종된 자연그대로의 한국적 모습이 담겨 있는 반면 앙겔로플로스 영상에서는 자연이 아닌 서구의 문화 환경이 그 중심을 차지한다.

    둘째는 이런 장면들에서 임 감독의 영상이 앙겔로플로스의 영상보다 훨씬 더 광활한 배경을 담고 있는 열린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임 감독은 크레인 쇼트로 카메라가 하늘의 높은 지점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저 멀리 높은 산과 광활한 지형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배경을 담고 있는 반면 앙겔로플로스는 먼 거리이지만 거의 수평에 가까운 높이에서 건축양식에 한정되는 국부적인 배경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앙겔로플로스의 이런 장면들은 임 감독 보다는, 도시 건축을 배경으로 인물을 왜소하게 담는 안토니오니의 영상들과 더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셋째는 임 감독은 자연이 중심인 롱 테이크 영상이 타이트한 클로즈 쇼트들사이, 사이에 삽입되는 경향이 있기에 서사의 흐름을 지연시키는, 그래서 잠시 쉬어가는 듯 휴지기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앙겔로플로스의 장면들은 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린, 특유의 완만한 리듬을 형성하는데 배경이 시야의 중심을 차지하는 장면에서도 이 리듬은 변함없이 지속된다. 앙겔로플로스의 경우, 이런 장면들에서 서사 리듬의 변주에 의한 시각적 강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임과 앙겔로플로스의 비교를 통해 두 감독이 동일하게 인물 보다는 배경이 중심이 되는 영상을 구성하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임감독의 롱 테이크에서는 근대화되지 않은 자연풍경을 강조하는 반면 앙겔로플로스의 롱 테이크는 인간과 도시환경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스타일이지만 두 감독의 관심의 대상이 달라짐에 따라 영상에 담기는 내용 또한 질적으로 다른, 표현의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4)Bordwell, David, Figures Traced in Light: On Cinematic Staging, pp.90~92.

    4. 한국적 영상의 의미

    지금까지 임 감독과 동일하게 먼 거리 롱 테이크 스타일을 고수하는 겐지, 후, 앙겔로플로스의 영상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타일상에서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네 명 모두 동일한 스타일적 요소를 지녔을지라도 그 요소가 파생시키는 효과와 의미는 각기 다른, 창의적인 표현들을 엿 볼 수 있었다. 즉, 네 명 모두 카메라로부터 돌아선 인물을 먼 거리 롱테이크로 담는 공통적인 스타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스타일이 파생시키는 결과들은 사뭇달랐다. 겐지는 등을 진 인물의 롱 테이크에서 슬픔과 비애를 창출하는가 하면, 후는 이런 인물의 모습을 통해 브레히트적인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임과 앙겔로플로스는 인물 보다는 배경이 중심인 화면을 통해 인물을 둘러 싼 환경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임과 앙겔로플로스가 중요시하는 환경의 대상은 문화적 차이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결과적으로 겐지, 후, 앙겔로플로스, 어느 누구에게서도 임 감독처럼, 등을 지고 멀어져가는 인물의 롱 테이크를 통해 자연 풍광 그 자체를 주목시키는 그런 예는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어떤 감독보다도 임 감독의 영화에는 주인공 인물 이상으로 한국의 자연 풍경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특성이 강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친화적 경향이 임 감독을 다른 문화권의 감독들과 차별화시키는 특수성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임 감독의 후기 작품, <춘향전>(1999)과 <취화선>(2002)에서는 자연풍경이 프레임의 중심인 시각적 서정주의, 그 이상으로 발전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 여전히 자연풍경이 프레임의 중심을 차지하면서도 동시에 자연풍광이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대변하는 서사 전달의 매개체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춘향전>초반부에서, 남원에 내려온 이 몽룡이 그네 타는 춘향을 만나기 직전, 정자에 앉아 남원의 풍광을 감상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원의 봄기운의 정취와 낭만을 만끽하고 있는 그의 심상은 완만한 곡선으로 어우러져 있는 산등성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들, 그리고 연못에 비치는 정자의 모습 등, 자연 산수의 빼어난 풍광을 통해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 몽룡의 시야에 들어온 그네 타는 춘향의 모습에서도 그네 위의 춘향은 뒷모습을 보여주거나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위치시킨 채 여전히 그네를 에워싼 나무들과 숲의 풍경들이 프레임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서정적인 미학을 창출한다. 자연을 통한 화창한 봄의 낭만에 대한 포착은 이 몽룡이 춘향에게 품게 되는 낭만적 연정을 시각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과는 다르게 동일한 자연 풍광이더라도 인물의 황량함과 비애를 묘사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영화 중반부 이 몽룡이 떠난 후, 실의에 젖은 춘향의 비애는 눈 내린 벌거벗은 산의 영상들과 교차되면서 춘향의 황량한 마음의 상태를 오로지 자연을 통한 상징적 표현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취화선>에서도 자연에 대한 은유적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다. 주인공, 장승업이 예술적 고뇌로 괴로워하는 심적 갈등을 강한 바람에 의해 심하게 요동치는 나무들의 격한 움직임의 영상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젊은 장승업의 시선에 포착되는 연못에 떠 있는 붉은 꽃들에 대한 연속된 클로즈 업들은 그가 사모하게 된 주인집 딸의 청초함과 그의 마음을 표상하는 화면들이다.

    이처럼 한국의 자연 풍광을 자신의 영화의 핵심적 묘사 대상으로 담는 임감독의 특색은 자연과 자아의 일치, 자연미를 추구하는 한국 회화의 전통 미학과 닮은 점이 있다.

    김형기와 허영환 등 한국 미학자들은 한국의 미술을 비움의 예술로 정의 내리고 있다.5) 한국적 전통 미학이 비움의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를 우리 민족이 살아가는 자연환경, 즉, 우리나라 땅의 모양과 산의 생김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제시한다. 예술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민족의 미의식과 미적 태도는 그 민족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형은 노년기 지형이어서 완만한 둥근 형태나 부드러운 곡선의 지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장년기의 험준한 산이나 유년기에 나타나는 날카로운 단면의 극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 외국의 지형과 다른 점이다. 유년기성 지형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대표적인데 날카로운 굴곡에 의한 단면으로 인해 수평방향의 지각성과 수직방향의 지각성이 대립됨으로서 긴장감을 일으키는 형태이다. 이런 긴장감을 주는 지형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험심과 도전 의식을 자극하여 정복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분석한다.6)

    반면에 노년기성 한국의 지형은 상하의 기복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유연함과 끊이지 않는 선의 흐름으로 ‘탈긴장’의 심리를 형성하게 한다고 말한다. 알프스나 히말라야 산은 꼭지점이 뾰족한 삼각형이어서 심리적 긴장감을 전해주는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산은 꼭지점이 분명하지 않은 둥근 형태이어서 심리적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그래서 정복 대상이 아닌 세속을 잊게 하는 편안한 대상으로 심상에 새겨지게 된다는 것이다.7)

    이런 지형과 환경은 우리 민족이 어떤 형태를 아름답다고 보는 미적 기질과 성향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면서 심미적 형상화라는 미학적 차원에서 다른 나라의 미학과는 뚜렷한 차이를 형성해낸다. 서양이 인간의 신체를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미라는 관점에서 인체미를 강조한 반면 중국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연과 자아의 일치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자연미를 추구하면서 외형 자체보다는 외형을 통해 정신과 마음을 담으려는 미학을 중시한다.8)

    중국과 조선이 동양이라는 큰 범주에서는 그림에 정신을 담으려는 예술 의식은 유사할지라도 그것을 형상화하는 구체적인 화법이나 미의식과 미감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산수화만 보더라도 중국은 화폭에 크고 작은 수많은 산, 수십 수백 척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 울창한 나무들, 우람한 바위들, 여기저기에서 여러 형태를 취한 인물들, 여러 척의 배 등을 복잡하게 그려 넣는 대신에 한국화는 비산비야라 할 수 있는 낮은 산, 조용한 개울, 몇 그루의 나무, 한 두 명의 인물들을 그리기를 즐겨한다.9)

    다시 말해 중국은 크고 가지 많은 나무나 탐스러운 꽃으로 화려하게 채색하는 복잡한 구도인 반면 한국화는 화폭을 사물로 가득 채우는 번잡스러움을 가급적 피하고 한두 줄기의 난이나 한두 그루의 대나무를 담는 단순한 구도를 선호한다. 따라서 한국 전통 예술로부터 느껴지는 미감은 고고함과 여유로움이다. 한국화와 예술의 고고함과 청초함은 화려한 기술적 기교에 얽매이지 않은 ‘탈기교’의 자연주의 정신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조선 예술의 특징은 한국 국민이 살아온 주변 환경, 즉, 평온함과 안정감을 전해주는 한국적 지형과 자연을 떠나서는 한국적 미의식의 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한국미의 관점으로 임 감독의 자연 중심의 영상을 바라보면, 유독 한국의 둥근 산들과 완만한 지형들을 빈번히 섬세하게 포착하는 그의 영상 자체가 한국적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자연 경관 그 자체가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특수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 풍광을 담고 있는 영상들의 구도를 보면, 먼 거리에서 한, 두 명만의 인물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 산과 들만으로 구성된 단조롭고 단순한 구도로 형상화 되어 있어 한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여기에다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임 감독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롱 테이크에서의 정지된 화면구성과 정적인 전개 방식은 화려한 기교가 배제된 탈기교가 주도한다.

    더불어서 이 장면들은 서사의 흐름을 느슨하게 하는 휴지기 효과를 창출하면서 한국화의 미학과 유사한, 관조적인 미감과 여유로운 감흥을 동일하게 전달하고 있다. 임 감독의 자연 중심의 롱테이크만큼은 한국적인 특수성이 내제된 한국적인 영상인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임 감독의 한국적 영상이 곧 한국적 스타일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위의 논의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인물이 등을 진, 먼 거리 롱 테이크는 다른 나라의 감독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동일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임 감독의 영상의 특수성은 동일한 스타일지라도 거기에 담겨진 대상, 즉, 프레임이 담고 있는 자연풍광이라는 그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임 감독의 영화에는 한국적인 영상은 존재하더라도 그만이 갖고 있는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한국적 스타일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5)김형기, 『한국미의 이해』, 이화학술총서, 1998, 허영환, 『동양미의 탐구』, 학고재, 1999.  6)김형기, 위의 책, 168~170쪽.  7)김형기, 위의 책, 174~177쪽.  8)허영환, 앞의 책, 163쪽.  9)허영환, 위의 책, 166쪽,

    4. 결론

    지금까지 임의 영상 스타일과 다른 스타일을 비교해본 결과, 임의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할리우드의 고전적 스타일과 비-할리우드 방식인 롱 테이크 미학이 혼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비-할리우드 롱 테이크 미학의 다른 감독들, 겐지, 후, 앙겔로플로스와, 임 감독의 스타일 비교에서도 스타일적 유사성과 차이점이 혼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영상 표현상에서의 스타일적 차이는 문화권의 차이가 스타일적 간격을 벌려 놓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시아권의 감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과 창문을 이용한 사각 틀 구도와 수직적 경향은 아시아권의 전통 가옥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 사실적 공간 구성에 의한 사실주의가 지배적인 것도 아시아권의 감독들 영화에서 드러난 공통된 특성이다.

    이에 비해 앙겔로플로스는 동일한 롱 테이크라 하더라도 수평적 구도가 강하면서 심도 깊은 공간성이 사실성이 아닌 주관적인 내적 영상으로 작용, 초현실주의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앙겔로플로스는 타르코브스키나 안토니오니와 같은 서구의 영화 감독들과 더 많은 유사성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물 보다는 배경이 중심이 되는 화면 구성이 많다는 점에서는 임과 앙겔로플로스의 스타일적 유사성이 다른 어떤 감독들과의 유사성보다도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두 감독의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적 유사성을 강하게 공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문화적 환경이 스타일적 특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즉, 스타일의 차이는 문화적 영향과 함께 제작 환경에 따른 개인적 선택이 중요 결정 요인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같은 아시아권의 롱테이크라 하더라도 감독들 개개인의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와 선택에 따라 다른 효과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일한 블록킹 기법을 사용하는 겐지와 후가 전혀 다른 효과를 창출하거나 동일한 프레임 아웃 사운드를 임과 후가 사용하지만 그 용도는 매우 상이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결과적으로 스타일 비교에서 정확히 어느 양식이 한국적 스타일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 스타일이란 각각의 문화적 영향 아래서 다양한 제작 환경과 개인적 선택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다만 임 감독 영화에서 다른 감독들의 영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한국적 영상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그의 모든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국의 사계절을 충실히 담아내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임 감독의 자연 중심의 롱테이크 만큼은 한국적인 특수성이 내재된 한국적인 영상인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임 감독의 한국적 영상이 곧 한국적 스타일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위의 논의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인물이 등을 진, 먼 거리 롱테이크는 다른 나라의 감독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동일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임 감독의 영상의 특수성은 동일한 스타일지라도 거기에 담겨진 대상, 즉, 프레임이 담고 있는 자연풍광이라는 그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스타일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영상에 담겨 있는 대상과 내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주목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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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Bordwell David 2006 The Way Hollywood Tells It google
  • 9. Bordwell David 2005 Figures Traced in Light: On Cinematic Staging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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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1 ]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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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2 ]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시선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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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의 주관적 시점 쇼트(시선의 일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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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겐지의 <수치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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