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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클로드 시몽의 『플랑드르 가는 길 La Route des Flandres』에 나타난 전쟁과 생존에 관한 고찰 Etude sur la guerre et de la survie dans La Route des Flandres de Claude Simon
  • 비영리 CC BY-NC
ABSTRACT
클로드 시몽의 『플랑드르 가는 길 La Route des Flandres』에 나타난 전쟁과 생존에 관한 고찰

La Route des Flandres est un roman qui évoque un lieu concret dès son titre chez Claude Simon par rapport à ses oeuvres précédentes. Les “Flandres” ou La “Flandre” indique une région cô tière de la Mer du Nord en Europe de l'Ouest. Ce lieu est un point capital sur la ligne maginot contre les offensives des Allemands à la Seconde Guerre mondiale. C'est dans une route de cette région que l'assassinat du capitaine de Simon avait lieu au 17 mai 1940. Cet événement historique correspond à un épisode fondamental du roman: “mai 1940”. Comme l'auteur l'a dit, ce roman est “un récit autobiographique”.

Ce roman se constitue de trois parties avec trois épisodes principals inclus : le désastre du mai 1940, la captivité au camp de prisonniers et le désir de la survie et du sexe. Ce qui importe dans ce roman, c'est le moment de commencer à désagréger la vie même à partir de la mort de son capitaine par l'assassinat. La guerre et la survie sont le thème essentiel de la Route des Flandres. La condition réelle de la guerre fait tomber un individu dans un état déraisonnable et dans la réalité absurde. Ce roman montre la souffrance sans raison d'un individu innocent, l'existence de l'être humain et le désir de la survie en face de la mort à travers la condition réelle de la guerre.

KEYWORD
플랑드르 , 전쟁 , 죽음 , 생존 , 섹스
  • 1. 머리말

    클로드 시몽의 『플랑드르 가는 길』1)은 196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누보로망(Nouveau Roman)’ 계열의 소설이다. 출판 당시는 로브그리에, 미셸 뷔토르, 나탈리 사로트 등 누보로망 작가들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던 시기였고, 시몽도 누보로망 작가 계열에 속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형식을 거부한 ‘새로운’ 소설구조의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이 작품은 줄거리가 없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의 구분도 명확치 않다. 심지어 쉼표나 마침표도 거의 없이 단락구분도 안된 채 끊임없이 나열되는 장황한 서술, 묘사, 대화로 된 작품구성은 한마디로 ‘혼란(désordre)’ 그 자체를 드러내는 소설로서 평가되었다2). 그러나 시몽의 작품은 줄거리가 없는 누보로망이라 는 소설기법의 혁신이 아니라 형식과 내용의 측면에서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대변하는 현대적 글쓰기로 점점 재평가되고 있다. 시몽의 『플랑드르 가는 길』은 어떤 필연적 이유에 의해 줄거리가 감춰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45년 시몽의 처녀작인 『사기꾼 Le Tricheur』이후 7번째 작품으 로 내용적인 면에서 시몽의 이후 작품들의 근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1940년 5월”의 사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은 이후 시몽의 대부분의 작품들, 『호텔 Le Palace』(1962), 『이야기 Histoire』(1967), 『농경시 Les Georgiques』 (1981), 『아카시아 L'Acacia』(1989), 『식물원 Le Jardin des Plantes』 (1997) 등에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렇다면 ‘1940년 5월’의 사건은 무엇일까? 『플랑드르 가는 길』은 이전 작품들인 『바람 Le Vent』(1957), 『풀 L'Herbe』(1958) 등과 달리 이미 제목 자체가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고 있다. 플랑드르는 벨기에에 위치한 북해연안의 저지대 지역을 말한다. 플랑드르는 역사적 변천에 따라 그 경계가 변화하였으나, 본디 교통의 십자로였기에 무엇보다 무역이 번창하였던 지역이었고, 또 전쟁 시에는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 잡았던 곳이다. 그렇기에 플랑드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요새로 구축된 프랑스 마지노선의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바로 이 플랑 드르에서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던 “1940년 5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시몽은 직접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는 1939년 8월 27일에 동원되어 31연대의 기병대에 속했고, 그의 기병중대는 뤼네빌 (Lunéville)에 주둔한 정예부대였다. 시몽의 소설에 등장하는 ‘1940년 5월’ 가운데 5월 10일에서 21일 동안 프랑스는 독일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당시 시몽의 기병대는 독일의 공군과 기갑사단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마지노선상의 아르덴(Ardenne)지방에 파견되었다. 이 지역은 벨기에와의 국경에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의 하나였다. 시몽의 중대는 5월12일 첫 공격을 받았고 저항을 계속했지만, 5월17일 새벽 쿠솔르(Cousole)에서 독일 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지휘관이 죽고 부대는 완전히 붕괴되어 패주하였다. 아르덴이 속한 플랑드르 지역은 연합군과 프랑스의 마지노선상의 중요한 장소로서, 마지노선의 붕괴는 연합군의 패배이자 프랑스의 패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시몽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생존자들과 패주하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슈탈라크(Stalag) IV-B 포로수용소에 끌려간다. 그리고 5개월 후 시몽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프랑스로 귀국하였다3).

    따라서 작품의 제목 ‘플랑드르 가는 길’은 시몽이 속한 부대의 패주 경로였던 아벤느(Avesnes)의 길로부터 플랑드르 지역에 이르는 곳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정작 작품 속에서는 ‘플랑드르’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la route” 또는 “cette route”라는 표현으로 명명된다. 장소나 인물의 구체적 명칭 없이 거의 보통명사로 언급 되는 이야기들은 여러 조각으로 분산되어 논리적 인과관계 없이 작품 전 체에 펼쳐져 있다. 두서없이 연결되는 이 에피소드들은 마치 머릿속에 뒤엉켜있는 오래된 기억의 실타래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작품 속 ‘1940년 5월’의 사건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일치하는 측면에서 『플랑드르 가는 길』은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도 “『플랑드르 가는 길』은 자전적 이야기다.(La Route des Flandres est un récit autobiographique)” 라고 말한 바 있다.4) 하지만 자전적 요소인 작가, 서술자, 주인공이 통일5) 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통일성이 없다. 서술자는 1인칭 “je”에서 3인칭 시점으로 끊임없이 교차하고, 주인공 조르주(Georges)와 서술자 도 동일한 인물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설의 분해된 각 단편들을 연결하면 작가, 서술자, 주인공이 일치되어 마침내 일관되고 통일된 이야기가 구성된다. 1960년 작품 간행 직후 클로드 사로트(Claude Sarraute)와의 인터뷰6)에서 시몽은 『플랑드르 가는 길』의 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시몽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작품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분산되어 존재하는데, 이를 조합해보면 세 가지 중요한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 주인공 조르주의 기억이 환기하는 에피소드들 가운데 i) “1940년 5월”은 2차 대전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마지막까지 투항하고 있었던 연 합군 진영인 프랑스 군대의 지휘관이 독일군에게 암살당하면서 군대가 와 해되어 패주하였던 역사적 사건의 시기를 가리킨다. ii) “억류기간”은 조 르주의 부대가 와해된 후,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던 기간이며, “열차”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동안 탑승했던 열차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에피소드에 첨가되는 또 다른 중요한 에피소드는 iii) 생존 과 섹스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조르주는 패주하던 중 우연히 만난 농가의 처녀와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살해당한 조르주의 상관 레삭의 부인인 코린느(Corinne)는 남편의 부하였던 이글레지아(Iglésia)와 간통을 하며, 또 전쟁이 끝난 후에는 조르주와 재회하여 정사를 나눈다. 여러 단 편적 이야기들을 재구성해볼 때 이들 세 가지 중요한 에피소드가 작품의 전체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본 연구는 클로드 시몽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자전적 소설 『플랑드르 가는 길』에서 줄거리 없이 혼란스럽게 제시되는 과거, 현재, 체험, 상상, 독백 등 파편적 이야기들 속에 내재하는 세 가지 중요한 에피소드를 재구성하여, 이들 이야기가 제시하는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고자 한다.

    1)본고에서 사용한 판본은 다음과 같다. Claude Simon, La Route des Flandres, Editions de Minuit, 1960. 이후 RF 로 표기한다.  2)“En effet, la plupart des critiques comprennent que le désordre apparent fait partie de la composition. Anne Villelaur explique : ‘Le flot verbal n'est jamais un délire verbal.’ ‘L'ouvrage est d'ailleurs fort bien composé’, ajoute André Dalmas : le centre ‘autour duquel tout prolifère’, est ‘interminable chevauchée des quatre chevaliers le long de la route des Flandres’”. Cf. Claude Simon, OEuvres, édition établie par Alastair B. Duncan avec la collaboration de Jean Duffy, Gallimard, 2006, p.1279.  3)Ibid., pp.1274-1275.  4)Propos recueillis par Jean-Louis Ezine, “Simon sort du désert”, Le Nouvel Observateur, 25-31 octobre, 1985 재인용.  5)Philippe Lejeune, Le pacte autobiographique, Seuil, 1996, p.15.  6)cf. Une interview de Claude Simon avec Claude Sarraute à propos de La Route des Flandres, Le Monde, le 8 octobre 1960.

    2. 전쟁의 패배 : 레삭의 죽음

    『플랑드르 가는 길』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장의 제사 (épigraphe)는 작품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다. 1부는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나는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죽는 방법을 배웠다”7)이다. 2부는 마르틴 루터의 신이 창조한 인간의 번식을 인용했고, 3부는 말콤 드 샤잘(Malcolm de Chazal)의 “쾌락은 두 생명체가 죽음의 육체를 껴안는 것이다. 여기서 “시체”란 어떤 한정된 기간 동안 살해되어 촉각과 동질이 된 시간이다”8)라는 글이 인용되었다. 제사의 인용문이 제목이나 텍스트 자체에 대한 해명 또는 때로는 결정적인 설명이나 주석이 될 수 있다9)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의미, 생명의 탄생, 섹스라는 테마 구조10)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테마구조는 세 가지 중요한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의 첫 번째 중요한 에피소드는 레삭의 죽음이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사전설명 없이 3인칭 주어인칭대명사 “그(Il)”가 화자인 “나(je)”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건네는 장면 - “그는 편지를 손에 쥐고 있었고, 눈을 치켜떠서 나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편지 그리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11) - 으로 시작된다. 3인칭 대명사 ‘그’는 레삭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레삭이라는 인물은 서두에 등장하여 수많은 에피소드들과 관련되며 여러 가지 분해된 이야기 파편의 단초가 되다가 결국 살해당하는 장면의 묘사와 더불어 마무리된다. 레삭의 죽음은 화자 조르주에 의해 “어떻게 된 거 지?(comment était-ce?)”라는 의문과 함께 끊임없이 작품 전체에 반복된다.12) 그렇다면 레삭에 대한 의문이 이처럼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삭에 대한 의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작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작품 전체내용을 요약하는 1부의 도입부를 보면 화자 조르주의 부대는 플랑드르로 가는 ‘길(la route)’에서 적군의 함정에 빠져 중대장 레삭이 살해당하고 패주하게 되는 장면이 소개된다. 그런데 사실이 대목은 시몽이 실제로 경험했던 사건이 소설에 투영된 것이다. 시몽이 속했던 31연대 지휘관이었던 레이대령(colonel Ray)의 죽음이 작품 속에서 레삭이란 인물의 죽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화자는 작품 속에서 살해당한 레삭 대령의 죽음을 회상한다. 화자의 기억 속에 말을 타고 총검을 휘둘렀던 레삭의 모습은 불에 탄 트럭, 총탄에 터져버린 타이어의 고무 타는 냄새 등과 같은 전쟁의 잔상들과 뒤섞여 교차되어 있다.

    이 회상장면에서 레삭이 총검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과 전쟁의 잔해가 대비되는데, 이는 레삭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전쟁의 패배이기 때 문이다. 지휘관이 사라진 군대는 와해되어 적군에 의해 전멸 당하였다. 선 두에서 전투를 이끌던 레삭의 용맹한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바닥에 나뒹 구는 트럭, 터진 타이어와 역겨운 고무 타는 냄새들이 패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살아남은 생존자는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끌 려갔다. 한 지휘관의 죽음에서 시작된 상황은 갑자기 엉뚱하게 전쟁의 실상 깊은 곳으로 인도된다. 화자는 뜻하지 않게 포로수용소에서 배고픔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힘겨운 노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자, 인간으로서 왜 자신이 이러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지 끊임없는 의혹을 가 질 수밖에 없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전복되어버린 삶은 근본적인 회 의로 다가온다. ‘어떻게 된 거지?’란 의문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의혹이면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질문이자 실마리가 된다.

    작품 속에서 화자 조르주는 레삭과 사촌간의 관계로 다음과 같이 밝혀 진다. 조르주가 제기하는 레삭의 죽음에 대한 의혹부분은 18세기 조르주 의 한 선조(un ancêtre)의 자살 에피소드와 연결된다. 이 대목을 보면 화자 조르주는 레삭의 사촌임을 밝힘 - “그(레삭)가 말하길, 나는 우리가 그다지 멀지않은 사촌지간인 것 같다”14) - 으로써, 18세기의 선조는 레삭과 화자에게 동일한 조상이 된다. 이 선조는 프랑스대혁명의 시기였던 1789 년 8월4일 국민의회(La Convention)에서 봉건제의 폐지를 위한 국왕의 처형에 찬성하였고, 군대경험이 많았기에 스페인과의 전쟁에 파견되었지만 패하였다. 그는 고결하게도 스스로 귀족신분을 거부하였고 패전에 대해 아무런 변호나 변명 없이 결과에 책임을 지고 권총으로 자살하였던 인 물15)로 소개된다. 레삭과 18세기의 선조는 자살 또는 암살로 끝나지만, 두 인물의 죽음은 결국 수많은 인명 피해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이들의 부하들은 모두 원인도 모르는 채 죽음의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현재 레삭의 죽음과 과거 선조의 죽음은 당시 상황이나 지금 상황에서 볼 때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레삭의 암살과 선조의 자살의 원인은 다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죽음은 후대에 영웅적 죽음으로서 모두에게 부각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부하들의 죽음은 아무도 기억 못하는 가축의 죽음처럼 어떤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어떻게 된 거지?’라는 의문제기는 전쟁의 명분, 승리, 패배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유 없이 전쟁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무명의 군인들의 죽음과 관련된다. 조르주는 상관이었던 레삭의 죽음과 전 쟁터에서 나뒹구는 말의 시체를 끊임없이 떠올린다.

    길 위에 가득 널린 사람과 말의 시체, 특히 인간의 시체보다 말의 썩어 가는 사체의 묘사는 가축의 죽음으로 전락한 비참하고 무가치한 죽음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5월의 더위에 여러 날 방치된 말 사체의 썩 는 냄새와 흙빛으로 변한 몸뚱이는 ‘기괴하고 비현실적이고 여러 가지가 뒤섞여버린 어떤 것(quelque chose d'insolite, d'irréel, d'hybride)’이 되 었다. 말의 사체는 늠름하게 말위에서 총검을 휘둘렀던 레삭의 모습과 대 조된다. 언제 죽었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말의 사체는 이제는 부패되어 흙의 일부로 돌아가고 있지만, 기병대 장교의 죽음은 전선의 선두에서 총 검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마치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세워놓은 동상처럼 뇌리에 각인된다. 말의 사체로 비유되는 소소한 인간의 죽음과 지휘관의 투사적인 모습의 대비는 지극히 모순적인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전쟁은 역사적 상황이나 전투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거나 혁명의 의미, 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부각된다. 예를 들어 스탕달의 『파므르 수도원 La Chartreuse de Parme』에서 주인공 파브리스(Fabrice)의 워터루(Waterloo) 전쟁 참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1812년 나폴레옹 군대의 러시아 침공 전투, 말로의 『희망 L'Espoir』에서 스페인 내전을 통해 혁명의 성공을 위한 인간의 고뇌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시몽의 소설은 전쟁의 역사성이나 전쟁을 겪는 인간의 고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명분과 달리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무참하게 희생되는 수많은 무명의 개인들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시몽의 소설은 인류 전체적 관점이 아니라 개인 실존의 관점에서 삶의 붕괴를 조명하고 있다. 전쟁은 개인에게 아무런 논리적 합당성 없이 그저 파괴적인 폭력에 불과하고, 인간을 잔인 하게 죽음이란 절대적 공포 속으로 내몬다. 개인에게 있어 전쟁은 그야말로 개인의 이해를 뛰어넘는 모순적 상황의 총체에 불과하다. 시몽의 작품은 전쟁이 개인의 생존이라는 실존의 의미를 뛰어넘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7)“Je croyais apprendre à vivre, j'apprenais à mourir”. RF, p.7.  8)“La volupté, c'est l'étreinte d'un corps de mort par deux êtres vivants. Le “cadavre‘ dans ce cas, c'est le temps assassiné pour un temps et rendu consubstantiel au touche”. RF, p.233.  9)Gérard Genette, Seuils, Seuil, 2002, p.145.  10)“Ces trois citations révèlent ainsi la structure thématique de La Route des Flandres (...)”. Stuart Sykes, Les romans de Claude Simon, p.65.  11)“Il tenait une lettre à la main, il leva les yeux me regarda puis de nouveau la lettre de nouveau moi”. Claude Simon, La Route des Flandres, RF, p.9.  12)이 질문은 유사한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다음과 같이 반복 된다 : “comment le sais-tu?”(RF, p.60), “Mais comment savoir?”(RF, p.78), “Mais qu'en sait-tu?”(RF, p.183), “Mais comment le sais-tu à la fin”(RF, p.184), “comment le savoir?(RF, p.196),” mais comment savoir?(RF, p.272, 277, 278, 282) 등.  13)RF. p.12.  14)“il(Reixach) dit Je crois que nous sommes plus ou moins cousins”. RF, p.10.  15)“comment ce de Reixach avait pour ainsi dire désavoué de lui-même sa qualité de noble pendant la fameuse nuit du quatre août, comment il avait plus tard siégé à la Convention, voté la mort de roi, puis sans doute en raison de ses connaissances militaires, été délégué aux armées pour finalement se faire battre par les Espagnols et alors, se désavouant une seconde fois, était venu se faire sauter la cervelle d'un coup de pistolet”. Cf. RF, p.53.  16)RF, pp.25-26.

    3. 죽음의 공간 : 열차와 포로수용소

    『플랑드르 가는 길』의 두 번째 중요한 에피소드는 화자가 겪는 극한 상황에 관한 것으로 열차이동과 포로수용소의 경험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레삭의 갑작스런 죽음과 부대의 와해는 화자 조르주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조르주는 본인의 의지와 관련 없이 포로수용소를 체험하게 된다. 지휘관의 죽음이라는 중대한 사건과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절대적 패배이자 부조리로 요약되는 전쟁의 실상을 함의하고 있다. 전쟁은 화자에게 그 자체로 실존의 패배이자 어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부조리이며, 모든 이치나 논리를 벗어나 오직 원인과 결과로만 주어진다. 화자에게 전쟁은 지휘관의 죽음이라는 원인과 부대의 패주, 화자의 포로수용소의 삶 등이 결과로 제시되지만 합당하거나 이치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이 부조리한 현실과 부조리한 결과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포로수용소는 전쟁의 원인이 한 개인에게 결과로 제시하는 가혹한 고통과 공포의 현장이 된다. 여기서 레삭의 죽음은 모든 기억의 출발점이자 의혹의 시작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수많은 포로들의 사지와 뒤엉켜서 열차의 가축운반 칸에 몸을 실은 주인공 조르주는 왜 자신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일순간 갑자기 당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화자는 마치 마법에 걸려 돌연히 가축이 되어버린 것처럼 믿기 힘든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이를 부정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과거의 기억들, 동료들과 함께 녹색 들판 위를 말을 타고 속보했던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추어져버리고,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치 데자뷰(déja-vu)처럼 포로수용소 간수의 발아래 쓰러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즐거웠던 모든 추억이 일순간 사라져버린 멍한 상태에서 밀려오는 “혐오(dégout), 경악(stupeur), 절망(désespoir)” 앞에서 현재 화자는 과거의 장소와 시간을 애써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열차 에서 시체처럼 뒤엉킨 육체들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가축운반 칸에 실려서 서로 포개진 육체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배설물의 악취로 요약되는 악몽 그 자체이다. 어디로 끌려가는지, 갑자기 왜 자신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주인공 조르주는 “어떻게 된 거지?”만 반복한다. 숨막히는 열차안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가축을 운반하는 화물칸에 포로를 싣고 가는 캄캄한 열차의 내부는 지옥이라 할 만큼 끔직한 공간이다. 가축처럼 사지가 뒤섞여 서로 포개진 포로들의 땀과 지독한 습기, 악취들은 서로 범벅이 되어 시체를 떠올리게 한다. 화물칸은 그야말로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이다. 질식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호흡하려고 애쓰는 인간의 모습은 물 밖의 물고기를 닮았다. 포로들은 좁은 공간에서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어둠을 온몸으로 맞이하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짐작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지옥행 기차가 도달한 곳은 슈탈라크 포로수용소이다. 수용소의 생활은 참을 수 없는 허기, 담배의 갈증, 노역의 연속이다. 수용소 막사(la baraque)의 바닥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나 담뱃잎 조각을 찾아 해매거나, 빼앗긴 군복대신 죽은 병사의 외투나 전리품으로 얻은 군복을 입은 포로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막사 안의 조르주와 동료 블룸(Blum), 이글레지아 세 사람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세 사람의 모습은 굶주림과 헐렁한 넝마군복, 짧은 머리로 인해 ‘유령’ 과 흡사하다. 이들의 모습은 모두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 또한 전쟁의 부산물인 것이다. 독일 작센지방의 혹독한 겨울추위 속에서 화물열차의 석탄을 부리는 노역은 고통으로만 각인되는 현실이다. 화자로서는 고통을 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기억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동원하여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인간은 고통의 기억이 극에 달한 순간 고통을 떠올리는 것을 지속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즐거운 것을 찾게 된다. 고통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불러들이는 즐거운 연상의 전환은 “쓴 약을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달콤한 사탕으로 위장하는 것”21) 과 비슷하다. 추위, 배고픔, 노역의 고통을 잊기 위해 조르주와 블룸은 끊 임없이 여자를 떠올린다. 그들에게 섹스의 대상인 여자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위장하는 사탕이 된다. 조르주의 섹스 이야기는 “밤색 암말을 올라타다(monter cette alezane)”라는 대화, 즉 “이번엔 나는 밤색암말, 금발암말에 대해서 말한다(cette fois je parle de l'alezane-femme, la blonde femelle)”22)로 이어진다. 르네 방트레스크 (Renée Ventresque)의 지적대로 여자는 “굶주림을 채워주는 환상(un fantasme nourricier)”23)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섹스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라도 견뎌야 하는 포로수용소의 생활은 또 다른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잠재적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의 의지가 불현듯 섹스의 환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수많은 의문의 출발점이었던 부대가 적의 함정에 빠져 지휘관이 죽고, 이어지는 패주의 상황은 화자에게 부조리 그 자체였다. 그리고 패주 중에 적에게 체포당하고 화물칸에서 낯선 포로들과 시체처럼 끌려가는 일련의 현실도 그저 엉뚱하고 황당하다. 부조리한 현실은 시간과 공간은 물론 인과관계도 모호하다. 낮과 밤의 구분이 안 되는 창도 없는 어두운 화물칸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사라진다. 화자와 포로들이 겨우 도착한 곳 은 포로수용소라는 결과로 주어진 현실뿐이다. 하지만 인과관계의 왜곡은 추위와 허기, 고통스런 노역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만큼 처참하고 혹독하며 비참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서 인간의 생존이란 그야말로 비굴한 실존의 상황인 것이다. 생존은 시간도 공간도 원인도 결과도 없는 굴욕으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살아야만 하 는 욕망만이 생존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굴욕의 한 가운데 인간의 섹스의 욕망이 분출한다. 시몽은 모든 자유가 구속된 상태에서 인간의 생존욕구를 기억과 상상의 섹스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17)RF, pp.91-92.  18)RF, p.93.  19)RF, pp.19-20.  20)RF, p.158.  21)“comme ces pâtes vaguement sucrées sous lesquelles on dissimule aux enfants les médicaments amers”. RF, p.169.  22)RF, p.170.  23)Renée Ventresque, “Le trou et la trame : le sexe à l'oeuvre”, La Route des Flandres Claude Simon, Ellipses, 1997, p.112.

    4. 생존의 욕구 : 여자와 섹스

    마지막 세 번째 중요한 에피소드는 생존의 욕구와 섹스에 관한 것이다. 시몽의 작품세계에서 에로티시즘(érotisme)은 특별한 의미를 띤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는 이전 작품인 『풀』에서 “자연(la nature)” 또는 “풀 (herbe)”로 대변되고, 『호텔』에서는 “원천(source)” 또는 “자궁(matrice)” 으로, 『이야기』에서는 “대지(la terre)”로 드러난다. 『플랑드르 가는 길』에 등장하는 여성은 레삭의 아내 코린느, 150년 전 선조(先祖)의 아내인 비르지니(Virginie), 시골처녀(une paysanne)이다. 이 여성들은 모두 남성 등 장인물들에게는 섹스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코린느는 남편의 부하와 간통 을 저지르고, 비르지니는 하인과 불륜에 빠지게 된다. 코린느와 비르지니 는 “배신(la trahison)”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섹스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코린느와 시골처녀는 단순히 섹스라는 욕망의 대상으 로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섹스의 욕망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통의 삶을 극복하는 사탕처럼 삶을 지탱하는 대체 수단이기도 하다. 섹스의 욕망 자체가 살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한다. 조르주에게 섹스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망각의 우유(lait de l'oubli)”(RF, p.241)이다. 시골처녀에 대한 묘사가 ‘우유빛’으로 그려지는 것도 망각의 우유와 무관하지 않다. 코린느의 육체는 “스폰지(éponge), 꽃(fleur), 해양생물(organisme marine)”로 표현되고, 코린느와의 섹스는 ‘풀과의 접촉’으로 비유된다.

    시몽의 작품에서 여성의 육체는 디디에 알렉상드르(Didier Alexandre) 가 주목하는 것처럼 “생명의 원천이 되는 장소(lieu même où s'origine la vie)”24)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육체는 풀이나 대지가 상징하는 것처럼 우주적 생명을 잉태하는 장소가 된다. 또한 섹스는 “우주인 여성의 육체 속에 남성의 육체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을 분출하는 것”25)으로 볼 수 있다. 『플랑드르 가는 길』에서 수용소에 수감된 조르주와 블룸은 점차 혹독 해지는 노역의 고통을 잊고자 여자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이 두 사람의 코린느와 이글레지아의 불륜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어느덧 도덕적 여과 없이 코린느의 도발적이고 과감한 유혹적인 행동과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이글레지아와의 만남, 그리고 이들의 은밀하고 지속적인 관계의 이야기로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속하기까지 한 욕망의 의미도 극한 상황을 벗어난 곳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쟁이 끝난 후, 조르주는 재혼한 코린느와 몇 번의 육체적 관계를 갖지만, 이전과 달리 유리벽처럼 이질감을 느낀다.

    서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조르주는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마치 유리 어항’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듯 한 느낌을 갖는다. 왜냐하면 조르 주와 코린느는 서로 갈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르주에게 코린느는 단지 육체관계의 대상일 뿐이다. 항상 그녀를 보면서 조르주는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과 거절당할 것 -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 한다 : 나는 그것을 할 거야. 그러면 그녀는 나를 때리고, 사람을 불러서 나를 문밖으로 내쫓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할 거야...”27) - 이라는 생각에 집착한다. 반면 코린느는 조르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혹에서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전쟁 후, 조르주에게 정 사는 포로수용소 탈출 이후 “풀밭(le pré)”에서 만끽하는 자유와 해방감과 같다. 하지만 풀밭에서의 자유와 해방감은 구속의 압박감이 깃든 절실한 갈망과 달리 밋밋한 자유이자 해방이 된다. 그때부터 코린느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생각 그 자체, 모든 여자의 상징(non pas une femme mais l'idée même, le symbole de toute femme)”28)처럼 실체가 없이 관념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전쟁 전과 전쟁 후 섹스는 그 의미가 다르다.

    전쟁당시 시골처녀와 정사가 이루어졌던 여인숙의 곳간과 그 곳간의 마른 풀 더미의 무거운 먼지 냄새는 이제 과거의 추억이자 향수에 불과하다. 전쟁 후 과거의 질식할 것 같았던 어둠은 평화로운 밤으로 전환되고, 자신의 곁에서 자고 있는 여인은 거친 숨결이 아닌 조용한 호흡소리만 낼 뿐이다.

    극단적 고통의 상황에서 섹스는 생에 대한 격렬한 욕구가 되지만, 평화 로운 상황에서는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조르주가 수용소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식욕의 욕구를 채워주는 섹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블룸과의 끝없는 섹스 이야기가 있었기에 화자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조르주가 죽음의 공간인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여 풀밭에 엎드려 처음으로 호흡하게 될 때, 그는 자신이 풀 을 갈망하기보다 풀이 인간의 육신을 갈망30)하는 식으로 갈망의 대상이 전도됨을 느낀다. 조르주에게 있어 자유의 공간인 풀밭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육신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존의 처절한 절실함이 사라진 충족의 세계에서 욕망은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변하면서 희미해지지만, 포로수용소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떠올렸던 섹스의 이야기는 고통과 삶을 견디는 생존을 위한 사탕이자 환상인 것이다.

    24)Didier Alexandre, Le Magma et L'Horizon ; Essai sur La Route des Flandres de Claude Simon, Klincksieck, 1997, p.215.  25)“Dans ce corps univers le corps masculin projette ce qu'il désire atteindre la vie”. Ibid.  26)RF, p.216.  27)“lui la regardant, pensant toujours : Je vais le faire. Elle va ma frapper, appeler quelqu'un et me faire mettre à la porte, mais je vais le faire...”. RF, p.216.  28)RF, pp.38-39.  29)RF, p.39.  30)“alors ce serait l’herbe qui se nourriait de moi ma chair engraissant la terre”. RF, p.238.

    5. 맺음말

    『플랑드르 가는 길』에서 줄거리 없이 이어지는 분산된 이야기의 단편들은 이를 재구성하게 될 때 비로소 일관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작품 서두의 레삭의 죽음으로 한 부대가 패배하고 와해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갑자기 겪게 되는 주인공 조르주의 혼란과 회의는 하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떤 일관된 이야기보다 생생한 기억의 파편으로 제시되는 ‘혼란’ 그 자체를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 죽음과 생을 넘나들게 되는 극한의 혼란, 집단적 명분이나 가치가 아닌 집단의 구성원인 개인이 합당한 이유도 없이 한순간 죽음의 위기에 내몰려야하는 상황이 더 중요한 것이다. 지휘관의 죽음이라는 작은 사건에서 시작하여 갑자기 극한 상황 속에 빠진 부하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면서 끝없는 존재론적 회의에 빠진다. 그리고 화자와 동료가 포로수용소의 극한의 고통 속에서 끝없이 이어가는 섹스 이야기는 생존의 자양분이 아닐 수 없다. 섹스에 관한 일화들도 단순히 성적욕망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극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몽은 전쟁을 사회, 국가, 인류 또는 역사라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평범한 병사라는 한 인간의 생존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죽음과 생의 문턱을 오갈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현실 속에서 한 개인 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라는 상황에서 보면, 생존은 영웅적 죽음과 무관하게 그야말로 비겁함과 비굴함의 대가로 얻는 것일 수 있다. 생존은 더 이상 윤리적 문제가 아니 라 명분도 타당한 목적도 제시되지 않은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절대적인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자문이다. 그것은 지휘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삶 자체가 일순간에 와해 되어 버린 주인공 조르주의 근본적인 회의로부터 생겨난 ‘어떻게 된 거지?’ 또는 ‘어떻게 알 수 있지?(comment savoir?)’라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의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던진 자문으로서 작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단초가 된다. 시몽은 한 대담에서 이 자문을 몽테뉴의 유명한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에 비유31)하였다.. 시몽은 ‘어떻게 된 거지?’ 또는 ‘어떻게 알 수 있지?’라는 자문을 자신의 전 작품의 제사(題 詞)로 쓰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의 글쓰기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 사실 이 자문은 이후 대부분 작품들에서 반복하여 등장한다.

    『플랑드르 가는 길』에서 전쟁과 생존은 이러한 자문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실제 모습은 개인에게 있어 어처구니없는 부조리의 현실에 불과하다. 전쟁의 실상을 겪어본 자에게는 그 어떤 명분도 그 어떤 주장도 황당하기까지 한 배신과 혼란으로 존재할 뿐이다. 전쟁은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신과 부조리일 뿐만 아니라 극한의 고통이기도 하다. 『플랑드르 가는 길』은 전쟁의 실상을 통해 비겁하고 처참하기조차한 생존의 의미와 적나라한 인간 실존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왜 이런 부조리한 현실이 시작되었는지 의문하고 회의하는 곳이 바로 ‘플랑드르 가는 길’이 인도하는 길이다.

    31)“Peut-être cela ressemble au «Que sais-je?» de Montaigne. Une interrogation, donc... On pourrait la mettre en exergue à tous mes livres. C'est en partie pour répondre à cette question que j'écris”. Entretien de Claude Simon avec A. Clavel, “La guerre est toujours là”, L'Événement du jeudi, 31 août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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