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 de Louis-Sébastien Mercier est une oeuvre bien intéressante suivant quelques points de vue : Celle-ci est la première oeuvre importante d’uchronie, ou utopie représentée dans le temps ; elle n’est guère proche du modèle d’une littérature utopique classique à caractère insulaire ; l’auteur se justifie comme un écrivain/philosophe de la dernière génération des Lumières en revendiquant la réforme et le progrès réalisables. Surtout, Mercier n’a pas brisé dans son uchronie le lien entre le monde réel et le monde imaginaire en l’élaborant dans une continuité : la condition contradictoire de la société du XVIIIe siècle est devenue objet d’une amélioration pour une société meilleure. L’uchronie de Mercier a donc pour finalité de rénover la société et de suggérer une société d’avenir. Cette déscription de l’utopie pré-révolutionnaire est révélatrice d’un courant nouveau de la philosophie des Lumières et d’une ambition de la littérature de la fin du XVIIIe siècle. Notre étude commence donc par quelques questions. Louis-Sébastien Mercier est-il philosophe des Lumières? Si oui, de quel point de vue il peut être philosophe des Lumières? Pour tenter de répondre à ces questions, il a été nécessaire de rappeler la notion de progrès mercierien qui apparâit dans dans l’An 2440, d’étudier l’infrastructure du récit ressemblant à celui de l’encyclopédie, et de mettre à jour la loi de la nature qui meut tout une utopie qu’est le Paris du 25e siècle. Une lecture minitieuse de l’An 2440 qui veut mettre à jour l’image de Mercier en tant que philosophe des Lumières, nous a permis de constater qu’il est de la dernière généaration des Lumières pratiquant effectivement sa philosophie au service du bonheur de l’homme, et de confirmer que l’image des Lumières est largement modifiée avant la Révolution.
굴르모(Jean M. Goulemot)는 계몽주의 시대 말엽의 가장 특징적인 문학적 흐름 가운데 하나는 현재의 세계를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1) 이는 18세기 전반에 걸쳐 전개된 사유의 과잉에서 비롯한 염증에서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에서든 현상을 직접 보고 확인하려는 새로운 독자층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18세기 말엽에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작품이 아니라 진실성authenticité을 담보한 작품에 대한 독자의 요구가 제기되었다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2) 굴르모는 이러한 독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용한 작가로 메르시에(Louis Sébastien Mercier, 1740-1814)와 레티프(Réstif de la Bretonne)를 꼽았다. 메르시에의 『파리의 정경 Tableau de Paris, 1781-1788』과 레티프의 『파리의 밤 Les Nuits de Paris, 1788』은 작가의 관찰, 조사 및 취재에 기초한 저널리즘을 지향한다.3)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쓴 르포르타주 형식의 문학 장르에 속한다.4) 객관성을 견지한 관찰자/화자가 자신의 시선에 일차적으로 포착된 모든 것을 - 파리의 거리, 하층민의 일상, 카페, 교회, 궁정, 귀족 등 - 상세히 묘사하다 자신의 비판적 분석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두 작품은 서사적 구조 측면에서 문학적 특성을 잘 갖췄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18세기 프랑스와 관련된 모든 학문분야에서 여전히 즐겨 인용되고 있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메르시에는 자신이 파리에서 경험한 파리의 모든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증언하는, 즉 ‘파리의 정경’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의 총체로 형상화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굴르모의 표현처럼 메르시에는 “현장위주의 활동가”이자 “세심한 관찰자” 그리고 “유능한 분석가”이기에, 그래서 정확한 정보와 판단으로 독자에게 호소하기에 동시대 계몽철학자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5)
일반적으로 유토피아 문학이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일차적 목적이라면 메르시에의 『서기 2440년 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은 18세기 프랑스가 지닌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하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유토피아 문학에 속한다. 그러나 각 작품이 장르의 측면에서 성격이 다를지라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즉 하나의 장(章)에 제목을 부여하여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했다는 점, 각 장은 쪽수에 구애 받지 않고 짧게는 2-3쪽 길게는 20-50쪽에 이른다는 점, 그리고 두 작품에서 다뤘던 내용 등이 매우 유사하다.6) 어떤 면에서 18세기 말엽 새로운 철학을 표방하는 철학자/작가의 소명이 현실비판은 물론 자신이 속한 사회의 미래상을 검토하는 것이라면7) 두 작품은 동일선상에 놓여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서기 2440년』이 18세기 프랑스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중엽에 비해 말엽의 철학적 논점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철학자들의 글쓰기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계몽주의 작가/철학자라는 이미지로 화석화된 18세기 작가의 이미지가 세기말에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메르시에는 50여 편의 희곡작품을 비롯해 시집, 소설집, 비평서, 주석서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여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다작의 작가로서 문학사상 가장 정력적인 문학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집필한 많은 작품들 가운데 아직까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2종류 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는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글쓰기 덕분에 18세기 프랑스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파리의 정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펴낸 이후 사회적 모순과 그 대안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프랑스 학교 교육과 문학연구에서 여전히 중요시되는 『서기 2440년』이다.
우리는 이 두 작품 가운데 『서기 2440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국내에서 메르시에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하다. 몇몇 연구자들이 『파리의 정경』을 단편적으로 연구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8) 최근 정해수/장연욱이 「Louis Sébastien Mercier의 『파리의 정경』과 『서기 2440년』에 나타난 여성, 그리고 프랑스대혁명」를 발표했으나 이 연구도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서기 2440년』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유명 작가들에 비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더라도 대혁명 직전의 사상을 잘 표현한 메르시에의 『서기 2440년』을 연구하는 것은 유명작가 위주의 연구가 내포한 균형 잡히지 않은 시각을 바로잡고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 대한 소개에 이어 메르시에가 재현한 유토피아의 구성 원리 마지막으로 미래사회 건설을 위해 메르시에가 제시한 대안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18세기 말엽의 철학자/작가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추적할 것이다.
1)Jean M. Goulemot, La Littérature des Lumières, Bordas, 1989, pp.160-168. 2)디디에 마쏘는 대혁명 직전 수많은 작가들이 소설작품에서 진실성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음을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Didier Masseau, Le Roman à la veille de la Révolution. Formes narratives et pratiques de lecture, Thèse, Univ. François Rabelais, 1992, Chapitre I, pp.54-107. 특히 2-3의 Le désir de l’authenticité 참조. 3)메르시에는 파리의 모든 곳을 직접 조사하여 『파리의 정경』을 집필했음을 공공연히 밝혔다 : “J’ai tant couru pour faire le Tableau de Paris que je puis dire l’avoir fait avec mes jambes ; aussi ai-je appris à marcher sur le pavé de la capitale d’une manière leste, vive et prompte.” Goulemot (Jean M.), 앞의 책, p.162에서 재인용. 4)정해수, 장연욱, 「Louis Sébastien Mercier의 『파리의 정경』과 『서기 2440년』에 나타난 여성, 그리고 프랑스대혁명」, 『프랑스학연구』, 제58집, 2011, p.376. 5)Jean M. Goulemot, 앞의 책, p.162. 6)예를 들어 『서기 2440년』 제4장의 「짐꾼들」과 38장의 「여성들」은 『파리의 정경』에서도 동일한 제목으로 삽입되어 있다. 7)Jean M. Goulemot, 앞의 책, p.167. 8)학술연구정보서비스 RISS에서 검색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발표된 메르시에 관련 자료는 다음과 같다. 주명철,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의 앙시앵레짐 문화 비평」, 『프랑스사연구』, No.14, 2006. / 주명철,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1740∼1814)의 앙시앵 레짐 검열제도 비판」, 『역사와 담론』, Vol.46, 2007. / 이영목, 「파리와 문학 ; 계몽주의 정신이 그린 파리: 『파리 풍경』의 277∼285장」, 『불어문화권연구』, Vol.15, 2005. / 이영목, 「메르시에의 『파리 그림』의 “그림” 개념」, 불어불문학연구, Vol.78, 2009. 2011년 임정택은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이라는 저서에서 8쪽에 걸쳐 『서기 2440년』의 시간의 의미를 탐구했다.
레몽 트루쏭은 자신의 주저에서 유토피아 문학에 재현된 유토피아의 일반적인 특성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9) 우선 토마스 모어 이후 유토피스트들이 즐겨 상상해왔던 공간인 외부와 단절된 섬의 폐쇄성, 즉 Insularisme이10) 있다. 물론 유토피아의 배경이 반드시 섬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베링턴(Simon Berington)의 『고덴치오 디 루카 공의 회상록 Memoirs of Sig. Gaudentio di Lucca, 1737』에서처럼 아프리카 중앙의 평원이 될 수도 있고, 모느롱(Mosneron)의 『다다를 수 없는 산골짜기 Le Vallon aérien, 1810』에서처럼 피레네 산맥의 한 골짜기가 유토피아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 공동체가 현실세계의 타락과 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립된 환경에 위치해 있으며, 이에 따라 자립경제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유토피아의 두 번째 특성은 규칙성(régularité)이다. 유토피아 세계는 시계의 기계장치처럼 모든 부분이 정확히 작동하는 완벽한 세계로, 그 정점에 입법자législateur가 있어 공동체의 균형과 질서를 완전무결하게 제어한다. 가옥이나 도로정비에서부터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신념과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획일성uniformité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한 축이다. 입법자는 이러한 획일성에 따라 계급사회를 철폐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한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규칙성이란 『신엘로이즈』의 클라랑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11) 공공의 행복을 너무 강조하여 유토피아 주민들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공공의 안녕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체계에 있다. 즉 재현된 거의 모든 유토피아 공동체 주민이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교육체계 하에서 동일한 시민 의식을 고취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설명을 종합하면 트루쏭이 말하는 문학적 유토피아란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일정한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원칙에 기초한 공동체로서 상상의 공간이든 현실의 공간이든 작가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재현된 이상향을 말한다. 그런데 메르시에가 재현한 유토피아는 몇 가지 측면에서 토마스 모어 이후의 유토피아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서기 2440년』에 재현된 유토피아는 엄밀한 의미에서 Utopie라기보다는 Uchronie라는 사실이다. Utopie의 어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ou’와 장소라는 의미의 ‘topos’의 결합에서 온 것이라면 Uchronie의 어원은 시간의 의미를 지니는 ‘chronos’를 대신 채택한 신조어이다.12) 즉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에서는 공간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간의 차원이 문제가 된다. 수많은 유토피스트들이 현실세계의 비판 또는 보다 더 나은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섬이나, 영국, 또는 유럽 이외의 공간에서 유토피아를 그리고자 했던 반면 메르시에는 미래의 파리를 유토피아로 설정했다. 그러므로 메르시에의 Uchronie는 현실 세계와 유토피아 사이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최선의 세계로 이행하는 새로운 차원의 유토피아다. 『서기 2440년』의 유토피아가 7세기를 격(隔)한 파리라는 것은 분명 유토피아 문학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다. 임정택의 표현을 빌면 “메르시에는예외적으로 역사의 흐름과 함께 사회가 발전한다는 계몽주의적 상상력을 표현”13)한 것이다.
물론 Uchronie를 재현하려고 했던 작가는 메르시에뿐만 아니었다. 귀탱(Jacques Guttin)은 『현재와 유사한 미래의 이야기
이런 측면에서 『서기 2440년』의 Uchronie는 상상의 세계라기보다는 현실세계에서 출발하여 독자에게 현실의 모순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개혁의 모델이다. 작품에 묘사된 많은 세부사항이 구체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25세기 파리의 물 관리 시스템은 개선과 개혁을 향한 작가의 의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파리 곳곳에는 모든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급수장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화자를 안내하는 25세기 파리사람이 이 급수장은 18세기 수학자인 데파르시외의16) 발명과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한 것임을 밝힌다.
Uchronie 사람들이 철들 무렵부터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를 읽는다는 내용에 비춰18) 25세기 파리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가치를 적용하여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르시에는 ‘계몽’이 부조리한 모든 것을 타파하고 항상 진보를 촉진하여 더 나은 세계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메르시에는 종종 주석을 달아 소설에 불쑥 등장하여 ‘계몽’의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역할을 독자에게 강조한다.19) 이처럼 기술 분야에서든 과학 분야에서든 진보를 통해 최선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선에 대한 인간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며, 역으로 기술적‧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개선을 위한 인간 의지의 결과인 것이다. 메르시에는 이러한 의지를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현재의 인류가 선인들이 이룩한 성과를 토대로 진보를 성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후대의 인류도 현대인을 능가하는 진보를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메르시에는 무엇이든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의지 또는 정신이야말로 지구상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단언한다.20) 이런 측면에서 『서기 2440년』에 묘사된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18세기 말엽, 인간의 개선 의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나타낸 것에 다름 아니다.
9)Raymond Trousson, Voyages aux pays de nulle part : histoire littéraire de la pensée utopique, Bruxelles, Université de Bruxelles (3e éd., revue et augmentée, en 1999). 1975, pp.15-19. 10)트루쏭의 신조어로 우리는 ‘섬의 폐쇄성’으로 번역했다 11)정해수, 「18세기 대혁명 전후의 프랑스 문학과 사상 연구 3 - 유토피아에 관한 글쓰기」,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76집, 2011 참조. 12)위의 논문에서 Uchronie와 관련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음. 13)임정택,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파주, 21세기북스, 2011, p.179. 14)Grime et Diderot, Correspondance littéraire, philosophique et critique de Grimm et de Diderot depuis 1753 jusqu’en 1790, Paris, Chez Furne, 1829, 8 juin 1771, p.471. 이 서지사항은 Google books에서 인용한 것임. 15)Raymond Trousson, 앞의 책, p.162. 16)1746 아카데미 회원이 된 데파르시외(Antoine Deparcieux 1703-1768)는 1751년 퐁파두르 부인 소유의 성 가운데 하나(Crécy-Couvé)에서 수차를 이용해 성으로부터 50여 미터 떨어진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성의 유지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17)Louis Sébastien Mercier, 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 rêve s’il en fût jamais, Londres, 1771, Chapitre 8, p.40. 이 연구의 분석 대상으로 1771년 판본을 삼을 이유는 유토피아에 대한 메르시에의 견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786년 판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기의 생각과는 다른 견해들이 삽입되어 메르시에의 사상적 면모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혼란을 준다. 우리는 2010년 Burozoïque 출판사에서 이 판본을 토대로 펴낸 텍스트를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이 텍스트는 웹상에서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http://fr.wikisource.org/wiki/L%E2%80%99An_deux_mille_quatre_cent_quarante). 이 서지사항은 앞으로 『서기 2440년』으로 표기함. 18)“- (...) dès qu’ils ont atteint l’âge du raisonnement, nous leur mettons en main votre fameux dictionnaire encyclopédique que nous avons redigé avec soin. – Vous me surprenez! L’encyclopédie, un livre élémentaire! Oh, quel vol vous avez du prendre vers les hautes sciences, et que je brûle de m’instruire avec vous!” 『서기 2440년』, Chapitre 11 Les Nouveaux Testaments, p.54. 19)“On peut avancer avec une espèce de certitude que les Lumières faisant chaque jour de nouveaux progrès, descendant par degrée dans presque tous les États, anéantiront d’une manière sûre cette foule bizarre de lois, & y substitueront des usages plus naturels, plus sensés. La raison publique aura une volonté puissante & sage qui changera la face des nations. Ce sera l’imprimerie qui rendra cet important service à l’humanité. Imprimons donc ! & que tout le monde lise, femmes, enfants, valets, etc., mais, en meme temps, n’imprimons que des choses vraies, utiles, & méditons bien avant d’écrire.” 『서기 2440년』, Chapitre 29 Les gens de lettres, p.177, n°5. 20)메르시에는 주석을 달아 다음과 같이 썼다. “Tout est révolution sur ce globe : l’esprit des hommes varie à l’infini le caractère national, change les livres et les rend méconnaissables. Est-il un seul auteur, s’il sait penser, qui puisse se flatter raisonnablement de n’êtresoo point siffle chez la génération suivante? Ne nous moquons-nous pas de nos devanciers? Savons-nous les progrès que feront nos enfants?” 『서기 2440년』, Chapitre 28 La Bibliothèque du roi, p.156, n°1.
『서기 2440년』의 제 1장은 메르시에(화자)의 오랜 친구인 영국인이 파리에서 보고 느낀 점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화자는 영국인 친구로부터 구체제의 폐해, 즉 부패, 기근, 빈곤, 권력 남용, 불안정, 불결, 특권층의 오만함 등에 대해 늦은 시간까지 듣고 잠이 들었다. 2장 이후의 모든 에피소드는 꿈 이야기이다. 672년간의21) 잠에서 깨어난 화자는 갑자기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랐고 밖으로 나가 거대한 기둥에 새겨진 2440년이란 글씨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700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직후 화자는 자신이 살았던 18세기의 파리와는 완전히 달라진 파리의 정경을 확인한다. 우선 넓고 잘 정리된 대로와 간편한 복장을 한 주민들이 서두르지 않고 평화롭게 길을 걷는 모습이 화자의 눈에 들어왔고 18세기 파리에서 흔히 듣던 귀를 찢던 고함소리가 사라졌으며 전속력으로 질주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마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22) 전혀 다른 파리의 모습을 경탄해 마지않던 화자에게 지나던 행인한 사람이 안내인을 자청해, 그의 안내로 18세기 파리사람의 25세기 파리의 여행은 시작된다. 유토피아 탐방은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의 연속이다. 상점이나 짐꾼들처럼 사소한 주제에서부터 학교, 상업, 소르본느, 사원, 사회계급, 문인들, 아카데미, 왕권에 이르기까지 화자의 시선에 포착된 모든 것은 현실세계 - 제 1장에서 영국인 친구가 비판한 모순으로 가득 찬 18세기 사회 - 와의 비교와 고찰의 대상이자 화자가 개선되기를 갈망했던 대상들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화자가 화자만큼 늙어버린 루이 14세를 폐허가 된 베르사유 궁전에서 만나는 장면에 할애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를 건설하기 위해 신하들과 국민을 혹사시키고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킨데 대해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에피소드는 이 소설이 절대왕정의 폐해를 폭로하고 개선 방법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루이 14세가 말을 맺으려는 순간 화자가 뱀에 물려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서기 2440년』의 3가지 판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초판과 두 번째 판본이다. 초판은 1771년에 출판되었고 두 번째는 1786년 마지막 판본은 1786년의 판본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1799에 출판되었다. 초판은 모두 4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고 두 번째 판본은 총 82개의 장에 부록으로 「철인을 꿈꾸다 L’homme de fer, songe」를 추가하여 3권으로 분량이 늘어났다. 즉 두 번째 판본은 초판의 제41장 이후에 수십 개의 장을 추가하고 마지막을 초판과 같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맺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구성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초판과 두 번째 판본에 나타난 메르시에가 다룬 주제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초판에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점은 루소의 자연사상이다. 비록 작품 전체에 걸쳐 과학과 기술에 경도된 화자의 태도가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제 1장에서부터 화자의 영국인 친구가 루소를 언급하며 대도시에서의 삶을 혐오한다는 진술은 분명 루소적이다.
작품은 루소의 화두인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것이다. 메르시에도 주석을 통해 종종 문명을 멀리한 전원의 삶에 큰 애착을 보이거나 검소함을 강조하곤 했다.24) 그러나 1786년 판본에서 메르시에는 전원에 대한 애착이나 문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약하게 표출한 반면, 작품 곳곳에서 오히려 과학과 진보에 의한 문명에 열광하고 소비와 상업의 장려하거나25), 사치에 대한 찬사26)를 늘어놓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메르시에의 관점이 루소적 문명 비판론에서 볼테르적 문명 찬양론으로 옮겨간 것이라 할 수 있다.27) 『서기 2440』의 세 개의 판본 간에 어떤 긴밀한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하나의 판본만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작품의 통일성을 찾기는 어렵다. 1771년 판본에서처럼 문명을 비판하다가도 작품 곳곳에 문명을 찬양하는 모순된 작가의 입장이 자주 표출된다. 게다가 소설형식으로 작품이 전개되다가 자주 기획안 같은 인상을 주는 글쓰기 양상을 보일 때도 많다.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등과 같은 파리의 제도들에서부터 과학과 기술, 일상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들이 작품에서 일관성 없이 다뤄진 점 역시 독자의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코다이(Manal Kodeih)가 적절하게 지적한것처럼 메르시에의 유토피아를 여러 층위의 주제로 분화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여긴다면,28) 즉 복잡한 시스템인 사회의 측면에서 고찰한다면 메르시에가 재현한 유토피아의 비일관성의 문제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가 재현한 유토피아가 정태적이긴 하지만 사회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은 이질적인 동시에 동질적인 층위에 의해 그리고 분명한 역동성에 의해 작동되는 네트워크가 아닌가? 이러한 이질적인 동시에 동질적인 층위가 작품 곳곳에 산재되어 유토피아의 공간을 작동하기 때문에29) 메르시에의 유토피아는 통일성이 결여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서기 2440년』은 작품의 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유토피아 문학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즉 다른 유토피아 소설과 달리 이 작품에서 작가가 서사구조를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느낄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작품의 구성 측면에서 『서기 2440년』과 거의 동일한 『파리의 정경』을 연구한 바이들러(Anthony Vidler)가 메르시에는 “어떤 질서나 특별한 동기도 없는 파리를 그려냈지만 기발한 문학적 형식을 고안했다”30)라고 지적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니까 『파리의 정경』뿐만 아니라 『서기 2440년』에서도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는 거의 무시된 셈이다. 바이들러는 『파리의 정경』에 적용된 새로운 문학형식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서기 2440년』도 여러 장면들의 모음집과 같다. 그런데 『서기 2440년』은 『백과전서』를 모방하여 집필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우선 번호를 매기고 제목까지 부여한 44개의 각 장은 『백과전서』의 각 항목과 흡사하다. 게다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한 세기에 걸쳐 행복을 추구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32) 오디디에르가 주장한 것처럼 『백과전서』의 상징인 디드로의 오랜 염원이 지식의 진보를 통한 인간의 행복이라면,33) 그래서 『백과전서』의 편찬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것이라면 『서기 2440년』은 『백과전서』를 모방하여 재현한 유토피아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기 2440년의 파리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메르시에는 작품의 서문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작품에 나타난 메르시에의 담론에 종종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치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수백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필진을 아우르며 거대한 지식체계를 완성했듯이 메르시에도 질서와 균형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당시의 모든 철학적 견해를 종합하고 그것을 토대로 유토피아를 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메르시에의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적 백과전서encyclopédie utopique인 것이다.35)
21)이 작품의 집필은 1768년에 시작됐다. 22)『서기 2440년』, Chapitre 2 J’ai sept cents ans, p.24. 23)『서기 2440년』, Chapitre 1 Paris entre les mains d’un vieil anglais, p.20. 24)아름답고 유쾌한 전원생활에 대해 36쪽, 181쪽, 261쪽에서 묘사한 내용에는 루소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25)“(...) car s’ils ne consomment rien, ou peu de choses, ils n’achèteront rien; & si la terre n’est pas cultivée avec un soin tout particulier, & une grande somme d’intelligence, elle ne produira point suffisamment, & le commerce languissant ne donnera aucune activité à la circulation.” Louis Sébastien Mercier, 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 Rêve s‘il en fût jamais, 3tomes, 1786, t.III, Chapitre 74 Consommations des grandes villes, p.141. 이 서지사항은 웹 사이트 http://gallica.bnf.fr/에서 열람할 수 있다. 26)앞의 책 Chapitre 75 Luxe. 27)1786년의 이러한 성격은 기술적인 진보가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볼테르의 낙관론과 거의 일치한다. 특히 75장 사치luxe의 내용과 볼테르의 「세속적 쾌락을 쫓는 사람 le Mondain, 1736」의 내용은 다를 바없다. “J’aime le luxe, et même la mollesse; Tous les plaisirs, les arts de toute espèce, La propreté, le goût, les ornements : Tout honnête homme a de tels sentiments.” Jean M. Goulemot, 앞의 책, p.53에서 재인용. 28)Manal Kodeih, Topographies du savoir : Configuration du discours utopique chez Louis Sébastien Mercier, Mémoire de maîtrise de l’Université de Western Ontario, 1999, p.82. 29)“Nous revenons donc à la considération de l’utopie de Mercier comme un système, c’est-à-dire un ensemble de réseaux mus par un dynamisme caractérisé, à l’instar et en dépit du statisme emblématique du texte et de ce qu’il peint, par des niveaux hétérogènes ou homogènes, qui y figurent et s’y cisèlent, et qui font jouer ces espaces utopiques.” Manal Kodeih, 앞의 논문, p.83. 30)Geneviève Boucher, Histoire, Révolution et esthétique. Le temps et ses représentations dans le Tableau de Paris et le Nouveau Paris de Louis Sébastien Mercier, Thèse, Univ. de Montréal/de Paris IV, 2009, p.335에서 재인용. 31)Geneviève Boucher, 앞의 논문, p.335에서 재인용 32)모지(Robert Mauzi)는 자신의 주저 L’Idée du bonheur au XVIIIe siècle에서 18세기 철학자들과 작가들의 논점이 ‘행복’의 문제에 집중되었음을 밝혔다. 33)“C’est cette sagesse que le philosophe (...) nous propose : « Il n’y a qu’une vertu, la justice ; qu’un devoir, de se rendre heureux(...).» (Eléments de physiologie). (...) Diderot nous invite à travailler à notre bonheur(...). Sa philosophie est une recherche de la sagesse qui exhorte à jouir (...).” Sophie Audidière, http://www.univ-paris-diderot.fr/ diderot/ presentation/savie.html. 34)『서기 2440년』, p.14. 35)Manal Kodeih, 앞의 논문, p.87.
18세기 작가들이 가장 많이 즐겨 사용했던 단어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개념과 현실을 포함하는 “자연nature”이다.36) 계몽주의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들이 “자연”을 논하지 않았던 경우는 없다. 에라르(Jean Ehrard)가 자신의 주저에서 천착한 내용은 계시종교를 거부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계몽철학자들이 “자연”을 중심으로 사유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계시종교와의 관계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로 대체하려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탐구한 것으로 에라르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시작으로 자연과 법체계, 자연과 도덕, 자연과 종교, 자연과 사회, 자연과 행복 등 계몽철학자들의 지적 여정을 추적했다.37) 계몽철학자들이 각자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자연”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자연’, ‘이성’, ‘철학’, ‘진보’를 논했던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의 마지막 세대에 속한 메르시에가 자신의 자연사상을 피력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메르시에가 자연을 논하는 방식은 전 세대 철학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즉 그들이 모든 주제들을 직접적이고 이론적으로 고찰했다면 메르시에는 그러한 주제들, 특히 당시에 논의되었던 ‘자연’이란 대주제를 유토피아의 논리적 토대로 적용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랄르망은 『서기 2440년』의 후기에서 25세기 파리가 18세기에 논의되었던 자연사상을 토대로 재현되었음을 주장했다.38) 그러니까 『서기 2440년』의 유토피아는 계시종교를 백지화하고 자연사상을 중심으로 작동되는 공동체로서 메르시에가 철저하게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의 염원을 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화자가 긴 잠에서 깨어 마주친 평온함이 감도는 2440년의 파리,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 미관, 건강한 시민, 모두가 화합하여 하나 된 사회,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등은 계몽주의 시대가 요구했던 덕목이 아니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자연사상에 기초한 축복받은 25세기 파리를 재현한 것은 메르시에가 자신의 자연관을 피력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에서 종교, 정치체제, 풍속, 무역, 세제, 교통 등, 화자가 마주친 파리와 파리사람들의 모든 일상의 단면에 자연사상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25세기 파리는 자연사상에 입각한 세계관, 즉 이신론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음을 금방알 수 있다.39) 화자가 안내인의 인도로 사원에 도착해서 입구 대문의 그림에 적힌 다음의 시구는 유토피아의 종교와 세계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시구의 절대자란 스피노자나 벨르의 주장처럼 자연의 법칙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종교에서 말하는 기적 따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41) 이는 마치 숲 속을 헤매는 원시인이 하늘과 자연을 응시하고 거기에서 절대자를 찾는 것에 다름 아니며, 메르시에가 주석에서 밝힌 것처럼 진정한 종교에 가장 근접한 종교행위가 된다.42) 그러므로 『서기 2440년』의 유토피아 구성원들은 자연의 법칙에서 신을 찾는다. 그들은 절대자인 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성에 기초한 ‘자연학 physique’을 숭상한다. 자연학이야 말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며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자연의 불가사이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고찰하여 자연의 법칙과 절대자의 예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기 때문이다.43) 자연의 탐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도구는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관찰과 실험을 중요시한 계몽철학이 취한 방법론을 상징한다. “두 무한의 일체Communion des deux infinies”라는 제목의 22장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크게 기여한 두 가지 도구를 통해 유토피언들이 자연을 관찰하여 어떻게 절대자의 예지를 이해하는지 보여준다. 화자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젊은이가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내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안내인은 화자에게 유토피아의 모든 주민은 종교에 입문하여 창조주의 예지를 확인하고 행복해 진다든 이야기를 해준다. 화자가 보았던 젊은이도 방금 전 종교에 입문했던 터였다. 젊은이가 종교에 입문하는 과정은 천문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무한대의 우주를 바라보는 의식으로 진행된다. 부모와 친구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젊은이 눈앞에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고 경탄에 마지않을 때 의식을 진행하는 사제가44)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엄 있는 사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이에게 새로이 펼쳐진 광경은 현미경을 통해 본 미세한 세계이다. 망원경을 통해본 우주보다 더 경이로운 이 미세한 세계는 젊은이에게 신의 예지를 감지할 수 있는 신의 속성을 드러낸다. 사제는 젊은이에게 다시 말한다.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감지한 젊은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이성에 기초한 종교에 입문하여 유토피아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입문과정을 거치는 만큼 창조주의 법칙, 즉 자연의 법칙은 25세기 파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이며 모두가 따라야 하는 유일한 준거이다. 자연의 법칙은 흔들림 없는 탑과도 같으며 불화를 조장하지 않고 평화와 평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47) 더구나 메르시에가 주석을 달아 주장한 것처럼 자연의 법칙은 간결하고 순수해서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48)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은 유토피아의 구성원은 물론 모든 제도에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유토피아의 재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입법체계는 정확히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안내인은 화자를 파리의 곳곳으로 안내하면서 처음부터 18세기 파리 사람들이 불행했던 것은 입법체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49) 강조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25세기 파리는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Lycurgue)와 아테네의 솔론(Solon)의 사상을 수용하여 법체계를 완성했음을 암시한다.50) 원로원을 설치하여 왕과 시민의 중간에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 점이나, 시민 사이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 토지의 공평한 배분, 사치와 방종 추방 등과 같은 입법안은 리쿠르고스나 솔론의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25세기 파리가 고대인의 사상을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전적으로 자연의 법칙에 의거했기 때문이다.51) 안내인은 화자에게 다음과 같이 강변한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모든 제도는 평화와 평등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보장하며 이 가운데 정치제도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도 25세기의 왕은 철학자로서 18세기 철학자들의 이상적인 군주상과 일치한다. 게다가 왕위에 개의치 않기에 왕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그는 허망한 권력보다는 사람들의 행복에 집착한다.53) 그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특권도 누리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민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산다.54) 모든 유토피아 구성원이 평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55) 그런데 이런 군주제가 세습적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토피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왕자에 대한 독특한 교육 방식이 있다. 즉 왕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몇몇 궁인과 궁을 떠나야하는 만큼 자신의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20세가 될 때까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산책과 여행 그리고 신체단련”56)을 받는다. 그동안 왕자는 전국의 모든 사람들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교육은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20세가 되어 궁에 들어와 곧 왕이 될 왕자의 훈육관이 말한다.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에서 채택된 통치형태는 엄밀한 의미에서 세습군주제이다. 그러나 안내인은 25세기 파리의 통치형태가 군주제도, 민주제도 또는 귀족정치제도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유토피아에서 중요한 것은 통치형태가 아니다. 어떤 통치형태를 취하든 이치에 맞게 구성원들이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다.58) 그리고 창조주는 인자하시니59)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그리스어나 라틴어처럼 사어가 된 언어교육을 포기하고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4개의 외국어 즉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교육에 투자하는 것은60) 모든 면에서 더 유용하기 때문이며, 되지도 않는 명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소르본느에 해부학 교실을 연 것은61) 의학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이다. 즉 후세의 행복을 공고히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재능과 공정한 경쟁에 의한 신분구별, 결혼제도, 문예, 병원, 의복등 화자의 눈에 포착된 유토피아의 모든 것도 자연의 법칙에 기초하고 있다.62)
이처럼 『서기 2440년』의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된 모든 부분에는 자연의 법칙에 의거한 행복의 추구라는 큰 줄기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메르시에의 유토피아는 이전 시대 또는 동시대 작가가 재현한 유토피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메르시에게는 더 이상 현실에 대한 비판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과제는 이제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진보를 주장하는 것이다.
36)Michel Launay/Georges Maihos, Introduction à la vie littéraire du XVIIIe siècle, Bordas, 1969, p.116. 37)Jean Ehrard, L’Idée de Nature en France à l’aube des Lumières, Flammarion, 1970. 38)“L’An 2440 est tout entier modelé par cette pensée de la nature propre au XVIIIe siècle.” Michel Lallement, Postface de 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 rêve s’il en fût jamais, Burozoïque, 2010, p.319. 39)우리는 이미 18세기 철학자들이 계시종교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자리를 이성에 의한 자연신으로 대체했음을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정해수, 「18세기 프랑스 철학사상의 핵심주제, 모랄에 대한 논의와 싸드의 소설이 가지는 의미」, 『외대어문논총』, n°7, 1995. 40)『서기 2440년』, Chapitre 29 Le temple, p.94. 41)김응종, 「근대 무신론의 철학적 기원 -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와 피에르 밸을 중심으로」, 『프랑스사연구』, n°20, 2009, p.55. 42)“Un sauvage errant dans les bois, contemplant le ciel et la nature, sentant, pour ainsi dire, le seul maître qu’il reconnaît, est plus près de la véritable religion qu’un chartreux enfoncé dans sa loge et vivant avec les fantômes d’une imagination échauffée.” 『서기 2440년』, Chapitre 29 Le temple, p.95. 43)“C’est à l’aide de la physique, cette clef de la nature, cette science vivante et palpable, que parcourant le dédale de cet ensemble merveilleux, nous leur apprenons à sentir l’intelligence et la sagesse du Créateur.” 『서기 2440년』, Chapitre 12 Le collège de Quatre-Nations, p.60. 44)메르시에는 18세기의 사제들을 공격하기 위해 25세기의 사제를 정반대 이미지로 그렸다. 이들은 현명하고 양식이 있으며 관용적이어서 모든 구성원의 사랑을 받는다.(Chapitre 18, Les ministres de paix, p.89) 또한 그들에게는 독신의 의무가 없어서 모든 유토피언들과 동일한 가정생활을 누린다. (Chapitre 17, p.85) 45)『서기 2440년』, Chapitre 21 Communion des deux infinies, p.108. 46)『서기 2440년』, Chapitre 21 Communion des deux infinies, p.109. 47)“La loi naturelle est une tour inébranlable ; elle n’apporte point la discorde, mais la paix et l’égalité.” 『서기 2440년』, Chapitre 21 Communion des deux infinies, p.114. 48)“La loi naturelle, si simple et si pure, parle un langage uniforme à toutes les nations : elle est intelligible pour tout être sensible ; elle n’est point environnée d’ombres, de mystères ; elle est vivante ; elle est gravée dans tous les coeurs en caractères ineffaçables : ses décrets sont à couvert des révolutions de la terre, des injures du temps, des caprices de l’usage. Tout homme vertueux en est le prêtre. Les erreurs et les vices sont ses victimes. L’Univers est son temple, et Dieu la seule divinité qu’elle encense.” Ibid. 49)“Vous étiez inhumains, parce que vous n’aviez pas su faire de bonnes lois.” 『서기 2440년』, Chapitre 8 Le nouveau Paris, p.34. 50)『서기 2440년』, Chapitre 15 Théologie et jurisprudence, p.70. 51)18세기 사상가들 중에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회 재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특히 모렐리의 견해는 가장 과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자연의 법전 Le Code de la nature, ou le véritable Esprit de ses loix』의 제 4부의 한 장의 제목처럼 <자연의 의도에 일치하는 입법모델>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taieb.net/auteurs/Morelly/Code.html 참조. 모렐리는 서사시 『바질리아드 Le Naufrage des Isles flottantes, ou Basiliade du célèbre Pilpaï, 1753』에서도 자연의 법칙에 의한 유토피아로 공산주의와 무정부부의가 혼합된 형식의 사회를 재현했다. 여기에서 자연 상태의 섬 주민들은 모든 것을 공동의 소유로 하고, 왕의 역할은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권력도 없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소유권도, 경찰기능도, 교회의 특권도 없으며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결혼도 없다. 여기에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근친상간도 당연한 행위로 받아들인다. 정해수, 「18세기 대혁명 전후의 프랑스 문학과 사상 연구 3 - 유토피아에 관한 글쓰기」,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76집, 2011 참조. 52)『서기 2440년』, Chapitre 15 Théologie et jurisprudence, p.70. 53)『서기 2440년』, Chapitre 36 Forme du gouvernement, p.230. 54)“Les besoins du monarque ne sont pas plus étendus que ceux du dernier de ses sujets.” 『서기 2440년』, Chapitre 37 De l’héritier du trône, p.244. 55)“Les citoyens sont égaux : la seule distinction est celle que mettent naturellement entre les hommes la vertu, le genie et le travail.” Chapitre 36 Forme du gouvernement, P.236 56)“(...) on le promène, on le fait voyager, on dispose son éducation physique qui doit toujours precede l’éducation morale.” 『서기 2440년』, Chapitre 37 De l’héritier du trône, p.239. 이러한 교육 방식은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한 바와 동일하다. 57)『서기 2440년』, Chapitre 37 De l’héritier du trône, p.243. 58)“[Notre gouvernement] n’est ni monarchique, ni démocratique, ni aristocratique ; il est raisonnable et fait pour des hommes.” 『서기 2440년』, Chapitre 36 Forme du gouvernement, p.226. 59)“Oui, tu es bon, autant que tu es grand ; tout nous le dit, et surtout notre coeur.” 『서기 2440년』, Chapitre 19 Le temple, p.98. 60)『서기 2440년』, Chapitre 12 Le collège de Quatre-Nations. 61)『서기 2440년』, Chapitre 13 Où est la Sorbonne? 62)한정된 이 지면을 통해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없음을 밝힌다. 게다가 유토피아 문학의 많은 부분이 서로 유사해서 여기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발표된 유토피아에 관한 우리의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유토피아 문학에 대한 레몽 트루쏭의 방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이후, 그리고 특히 유토피아 문학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서기 2440년』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되링 (Ulrich Döring)과 후데(Hinrich Hudde) 등의 연구63)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메르시에는 여전히 『파리의 정경』의 작가였던 것이다. 물론 프랑스의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자주 다뤄지는 작품이고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나 『서기 2440년』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보다는 유토피아 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간헐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국내에서 『서기 2440년』에 대한 연구 성과가 전무하기에 작품 소개에 무게를 두고 시작된 이 연구가 어려웠던 점은 바로 연구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혁명 이전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논점을 살펴봄으로써 이전 세대가 천착했던 주제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이전 세대와는 달라진 철학자/작가의 이미지는 어떠한지 규명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설정된 좌표를 향해 우리는 메르시에가 재현한 Uchronie에서 진보의 의미를 추출하려고 했고, 첫 번째 판본에서 두 번째 판본 사이의 논점의 변화와 백과전서 형식의 작품구조를 밝혔고, 마지막으로 Uchronie를 지탱하는 변함없는 토대가 자연사상이라는 점을 추출했다.
이 연구에서 유토피아 문학은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라는 당연한 주장은 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와 비슷한 내용의 주장을 수없이 해온 마당에 여기에서 또 다시 비슷한 내용의 논지를 반복하여 전개하는 것은 너무도 진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대부분의 유토피아 문학이 현실에 대한 비판에 비중을 둔 반면 메르시에의 소설은 매우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즉 토마스 모어 이후의 작가들과는 달리 메르시에는 실현 가능한 희망과 진보를 부각했다는 점을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파리를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파리사람들과 파리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메르시에는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지식인들과 토론을 통해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라 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파리는 물론 프랑스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독자들에게 그 문제점을 보고한 작가이다. 이런 점에서 메르시에는 동시대 철학자/작가들과 차별성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용하지 않은 지식체계,64)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지양하고 이론을 적용하는 실용적 작가가 실현가능한 인류의 진보와 개선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것은 당시로서는 분명 새로운 철학자/작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메르시에와 유사한 글쓰기 방식을 선보인 레티프까지 고려할 때, 18세기 전체에 걸쳐 작가/철학자의 이미지는 물론 역할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즉 대혁명 직전에 이르러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지식인이라면 이제 모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류의 개선가능성과 진보에의 신념을 설파하는 것이 새로운 계몽사상가라는 것을 메르시에가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63)Hinrich Hudde et Peter Kuon. De l’Utopie à l’uchronie. Formes, signzjkations, fonctions. Tübingen, Gunter Narr Verlag, 1988. / Ulrich Do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