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공간, 삶, 이야기, 역할연기로 이루어진 연극은 치유의 예술이다. 특히 오늘날 연극은 제의식의 강조,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촉발된 일탈과 해방에 초점을 두면서 직접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모레노는 사이코드라마를 개발하여 연극의 기능을 심리치료와 접목시켰으며, 무대를 혁명의 예행연습이라고 지칭했던 보알의 토론연극은 집단 치유의 드라마로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개인의 억눌린 무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관객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배우들이 연행하는 폭스의 재생연극도 훌륭한 치유의 드라마로 간주된다. 한편 연극치료는 드라마의 특성을 치료를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제닝스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연극적으로 풀이하고, 연극의 제의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연극과 치료를 접목시키고 있다. 랜디는 전통 연극을 연구하고 전형적인 역할을 모델화하여 이를 연극치료에 대입시킨다. 그는 심리학 및 상담학에서 이론적 근거없이 역할연기를 행하던 것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이 외에도 현재 각 문화권에서 연극의 독창적인 특징을 자기화하여 고유한 형태의 연극치료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 그리고 연극치료를 통틀어 치유의 드라마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들 치유의 드라마는 주체-치료사와 객체-참여자가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은 각자 치료의 주체와 객체가 되어 치유의 무대를 만들어 간다. 주체와 객체는 치료의 유형과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사이코드라마에서 주체는 디렉터가 되고 안내를 받는 객체는 주인공이 된다. 토론연극에서는 조커와 관객으로, 재생에서는 진행자와 화자로. 연극치료에서는 연극치료사와 참여자로 나뉜다. 이들의 관계는 연극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연출가, 배우, 관객의 개념으로 대입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본 연구는 치유의 드라마에서 주체와 객체 사이에 어떤 관계 양상이 존재하는지 살펴보고, 이로부터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 그리고 연극치료의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치유의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즉흥적이며 집단창작의 특징을 지닌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즉흥극과 집단창작은 무의식을 외부로 표출시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원시연극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치유의 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극적인 장점을 취한다면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치유의 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Le théâtre qui consiste en mouvement, espace, vie, histoire, jeu du rôle, peut être considéré comme l’art de guérison. En particulier, le théâtre d’aujourd’hui sert directement de la thérapie en mettant le focus sur l’insistance du rite, sur la déviation et la libération produits par le festival de Dionysos. Par exemple, Moreno greffe une fonction de théâtre sur la thérapie psychologique pour le psychodrame, le ‘forum théâtre’ de Boal qui a nommé son théâtre la répétition de la révolution attire l'attention comme le drame de guérison. En plus, Le ‘playback théâtre’ de Fox représenté sur scène directement par les acteurs en écoutant l’histoire de l’un des spectateurs est également considéré comme un excellent drame de guérison. Le théâtre-thérapie use intentionellement des caractéristiques du drame pour la guérison. S. Jennings branche le théâtre sur la thérapie en fixant les yeux sur les attributs du rite du théâtre. R. Landy se modèle les rôles dramatiques typiques en étudiant des pièces dramatiques classiques. Il offre une base théorique sur le jeu de rôle employé souvent dans la psychologie. Sauf cela, on travaille sans cesse pour l’exploitation des moyens du théâtre-thérapie propre de sa culture dans le monde.
On va nommer arbitrairement le ‘drame de guérison’, psychodrame, playback théâtre, forum théâtre and théâtre-thérapie. Ce drame de guérison a de points communs; sujet-thérapeute, objet-participant. Par exemlpe, dans le psychodrame, on peut se deviser en directeur et héro ; dans le forum théâtre, en joker et public; dans le playback théâtre, en dirigéant et parleur; dans le théâtre-thérapie en théâtre-thérapeute et participant. Bien sur, on est capable de substituer leur rapport au metteur en scène, l’acteur et le spectateur.
En plus, il est très intéressant de voir ce que le drame de guérison a communément le trait distinctif de la création collective et du théâtre improvisé. C’est peut-être qu’ils sont des meilleurs processus pour que l'inconscient peut s’exprimer en dehors. En même temps, ils sont étroits avec la forme du théâtre primitif. Donc, si l’on se sert des mérites du drame de guérison, il semble qu’il peut devenir l’outil précieux du traitement pour les gens d’aujourd’hui.
현재 예술매체는 그 치료적 기원을 바탕으로 마음과 영혼의 치유 가능성에 다양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예술적 매체는 치료적 행위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 물질적인 대상의 영역에서는 물론 정신적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영역에서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예술은 특별한 치료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1) 연극 또한 인간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던 제의식의 기원,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촉발된 일탈과 해방, 연극 자체가 지니고 있는 치유에 초점을 두면서 직접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모레노(Moreno)는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를 개발하여 연극의 기능을 심리치료에 접목시켰으며, 억압받는 민중을 교육시키는 것을 연극의 목표로 삼았던 브레히트(Brecht)의 서사극이나 혁명의 예행연습이라고 지칭했던 보알(Boal)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 즉 토론연극(Forum Theatre)은 집단 치유의 드라마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개인의 억눌린 무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관객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배우들이 연행하는 폭스(Fox)의 재생연극(Playback Theatre)도 훌륭한 치유의 드라마로 간주된다. 연극치료는 아예 드라마의 특성을 치료를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제닝스(Jennings)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연극적으로 풀이하고, 연극의 제의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연극과 치료를 접목시키고 있다. “연극치료는 연극이라는 문화적 형식의 중요성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인간 자체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 극적 의식은 삶의 여정을 지나는 매 단계에서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2) 랜디(Landy)는 연극을 연구하고 전형적인 역할을 모델화하여 이를 연극치료에 대입시킨다. 랜디의 “역할 접근법에서 치료의 목적은 참여자가 하나의 역할에 압도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취하여 서로 다른 역할의 병존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역할연기는 다양한 역할 탐구의 일환이며 그로부터 사회적 역할을 익히고 타인과의 소통 능력과 사회성을 획득하는데 있다.”3) 랜디는 심리학 및 상담학에서 이론적 근거 없이 역할연기를 행했던 것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이 외에도 현재 각 문화권에서 연극의 독창적인 특징을 자기화하여 고유한 형태의 연극치료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 그리고 연극치료를 통틀어 임의로 치유의 드라마라고 부르고자 한다. 치유의 드라마는 주관자-치료사와 대상자-참여자가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각자 치료의 주체와 객체가 되어 치유의 무대를 만들어 간다. 주관자와 대상자는 치료의 유형과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사이코드라마에서 주관자는 디렉터(Director)가 되고 안내를 받는 사람은 주인공이 된다. 토론연극에서는 조커(Joker)와 관객으로, 재생에서는 진행자와 화자(Teller)로. 연극치료에서는 연극치료사와 참여자로 나뉜다. 이들의 관계는 연극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연출가, 배우, 관객의 개념으로 대입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본 연구에서는 치유의 드라마에서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연출가의 개념을 바탕으로 개괄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주체와 객체 사이에 어떤 관계 양상이 존재하는지 살펴보고, 이로부터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 그리고 연극치료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치유의 드라마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대연극에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연출가를 조명하고, 그에 따른 즉흥극과 집단창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Knill 외, 『치료미학』, 이모영 외 옮김, 시그마프레스, 2011. 4쪽. 2)Jennings 외, 『연극치료 핸드북』, 이효원 옮김, 울력, 2010, 10쪽. 3)이선형 외, 「예술치료를 위한 역할개념 연구」, 『한국연극학』 43권, 2011, 211쪽.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예술가의 협업이 필요하며, 이들을 이끌 우두머리도 필요하다. 서양 연극사를 보면 19세기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극작품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극작가 또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배우나 극단을 운영하는 극단주가 연출가격인 우두머리를 담당하였다. 사실 연극에 연출가라는 직함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다. 부르주아 연극 또는 낭만주의 연극에서 “연극 연습은 극단이나 악단의 단장 또는 작가, 또는 권위가 있는 배우에 의해 행해졌다. 물론 포스터에는 연출가라는 이름이 없었다.”4) 연출사에서 연출가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사람은 독일 작센-마이닝겐의 공작 게오르크 2세(George II)이다. 그는 일관된 연출적 관점을 지향하면서 사실적인 대사와 무대창조에 주력하고 심리적 깊이를 지닌 인물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은 앙트완느(Antoine)와 스타니슬라프스키(Stanislavski)로서 이들 셋의 공통점은 연극의 사실주의와 연출가의 권위다. 이후 아피아(Appia), 크레이그(Craig), 브레히트, 아르토(Artaud)와 같은 절대적인 연출가가 등장하면서 연극은 연출 지상의 연극이 된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19세기말 통속극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하나의 반동으로 연출가라는 새로운 인물의 유형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연출가는 지휘자처럼 작품해석을 제시하거나 작품의 양식에 충실한 등가물을 만들어 내는 등, 연출이라는 것이 고유의 하나의 양식 적어도 어떤 양식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5) 현대연극에서 연출이란 예술적 해석이며 개성적 양식으로 간주된다. 연출가는 자신의 독특한 예술적 세계를 펼치기 위해 텍스트에 해석을 가하고 자신의 연출 미학적 양식으로 덧씌우기를 하여 무대화시키는 것이다. “전통 개념에 따르면 연출가는 쓰인 작품의 조형적 범위를 정하고, 그 연기를 통제한다.”6)
인류 사회는 양차대전을 겪는 와중에 질서와 복종이 사회적 덕목이 되었다. 군대에서 상사의 명령이 절대적일수록 가정에서 부권, 병원에서 의사의 권한, 연극에서 연출의 권한이 상승하였다. 환자에게 군림했던 프로이트(Freud)나 융(Jung), 연출의 절대화를 꾀했던 아르토의 잔혹연극의 연출미학도 이 맥락에 해당한다. 이 때의 정신과 의사는 아버지의 권위를 지닌 권위자였고 환자는 질문을 삼가면서 복종해야 하는 자녀와 같았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를 내리고 수용하도록 강권하면 환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엄격한 수직적 관계는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아르토 잔혹연극의 특징은 연출가의 절대성이라는 점이다.7)
양차대전의 비극으로 인해 이성과 질서와 절대의 개념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린 후 생겨난 허무주의, 이를테면 니체(Nietzsche)의 생성철학과 하이데거(Heidegger)의 실존철학은 절대 존재와 이상을 거부하고 사실적 현상, 개인의 주체성과 다양성에 힘을 불어넣은 사상이다. “니체는 삶에서 진리를 창조하는 예술가”8)였으며, “하이데거에게 있어 인간은 존재하는 한 나 자신의 고유한 모습이 되도록 선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9) 또한 이들을 토대로 지향성(intentionality)의 원리를 지닌 현상학이 대두되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심리학에서는 인본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로저스(Rogers)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중심인물이다. 그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치료자 중심에서 내담자 중심으로 심리치료의 초점을 바꾸면서 심리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과는 달리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 의사는 지시를 내리는 자이고 환자는 수용하는 자라는 명령과 복종의 도식을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10)
이와 때를 같이하여 연극에서도 연출가의 위상과 역할에 변화가 생겨났다. 연출가는 연극 전체 사항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주도자의 위치가 아니라 연기자 및 스태프와 더불어 예술적 성격이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하는 역할로 옮아갔다. 말하자면 연출은 파도를 헤쳐 나가는 거대한 선박의 엔진이기보다는 키 역할로 거듭났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본주의 심리학과 연출가의 역할변화는 치유의 드라마가 활성화되는 시점과 비슷하며, 일정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즉흥극과 집단창작의 면모가 그러하다. 그렇다면 연출가의 역할 변화와 맞물려 있는 즉흥극과 공동창작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이 치유의 드라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4)Pignarre, R., Histoire de la mise en scène, PUF, 『연출사』, 박혜경 옮김, 탐구당, 1987, 113쪽. 5)위의 책, 12쪽 참조. 6)Knill 외, 앞의 책, 434쪽. 7)연극치료에서 아르토의 잔혹연극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연극의 치유적이며 제의적인 특징이지 결코 연출의 권위는 아니다. 아르토에게 있어 연출의 우위성은 연극의 문학에서의 해방 즉 텍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텍스트 없음에 대해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잔혹연극에서 텍스트 없음이 즉흥적일 수 있다는 짐작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잔혹연극은 즉흥극과는 거리가 멀다. 잔혹연극이 문학과 대결하고자 했던 것은 말, 언어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며 동시에 순수하게 무대의 연극, 몸의 연극을 목표로 하였던 것이다. 그가 텍스트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였음에도 기존의 텍스트 가운데 잔혹연극의 주제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각색을 통해 무대에 올렸다. 무대와 객석의 통합이란 배우와 관객의 구분을 없애는 것을 뜻한다. 아르토는 궁극적으로 텍스트가 없는 연극을 추구했다. 연극이 문학에서 해방될 때 진정한 연극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8)Levine 외, 『표현과 치료』, 최은정 역, 시그마프레스, 2013, 22쪽. 9)Knill 외, 앞의 책, 13쪽. 10)프로이트는 환자의 무의식이야말로 그의 행동과 사고의 근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을 분석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무의식의 흔적인 꿈, 유머, 실수, 망각 등을 분석하는 프로이트는 무엇보다도 엄격하고도 철저한 분석가였다. 반면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든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을 하나의 전체적 유기체로 연구해야 하며 인간의 고유한 특유성을 인정하여, 피동적 행위보다 능동적·솔선적 행위에 더 중점을 두었으며 인간의 주관적 경험과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였다.”정미경 외, 『심리학 개론』, 양서원, 2009, 22쪽.
일반적으로 즉흥극이란 텍스트 없이 오로지 연기자의 상상력에 의존하거나, 이야기의 커다란 줄거리만 존재하고 그 틈새를 연기자와 관객이 메우는 연극을 일컫는다. 즉흥극은 몇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원시적 연극 행태로의 회귀를 뜻한다. 원시적 제의는 텍스트가 없는 즉흥적 연극 형태였다. 둘째, 즉흥극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꾀한다. 비록 인물의 유형이 존재하긴 하지만 파블라 아텔라나(Fabula Atellana),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하회탈춤에서 즉흥적 장면들은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즉흥극은 탈문학의 형태로 연출가의 연극을 뜻한다. 1960년대 이래 대두된 실험연극들의 공통적인 흐름은 탈문학이다. 탈문학이란 극텍스트에서의 해방이며, 언어보다는 퍼포먼스 중심의 비언어연극(non-verbal theatre)이며 연출의 연극11)을 뜻한다. 이를테면 실험극단 리빙 씨어터(The Living Theatre)를 이끈 베크(Beck)는 “우리는 텍스트가 아니라 행위를 필요로 한다”12)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공연이란 텍스트를 배제하고 배우와 관객이 체험을 공유하는 창조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즉흥극과는 달리 실험연극에서 즉흥극은 배우에게 모든 것이 열려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인물의 유형화나 이야기의 테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배우의 자발적 연기로부터 극적 메시지를 창조하고자 한다. 베크는 즉흥연기로 만들어지는 자유로운 연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매 순간을 사실(Reality)로 만들어라. (…) 무대 위에서 사실성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호흡과 같은 즉흥연기. 그것은 즉흥성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인생을 창조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충분히 자유로운 형식으로 연극을 구성해야 한다.”13) 베크의 즉흥극은 사전에 결정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인생과 닮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점은 폭스에게도 발견된다. 폭스는 “대본이 없고 앞을 예기치 못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하여 항상 살아있는 생각을 수용하는 것”14)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현대 즉흥극에서도 일정한 기본틀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때 주어진 틀은 즉흥극이 그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로토프스키(Grotowski)가 무방비의 즉흥극보다는 연기악보(score)와 같은 일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간주한 것은 이 같은 원리이다.15)
한편 즉흥극을 구성하는 즉흥연기는 치유의 드라마에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와 장소의 변화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기는 배우의 상상력과 자발성을 극대화시킨다. 즉흥연기는 “배우가 자기를 제어하면서 상상력에 의해 즉각적으로 구성된 상황 하에서 새로운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16)이다. 즉흥연기의 의미는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배우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창조성을 확산시킨다. 따라서 즉흥연기는 배우들의 연기훈련에서 자주 활용된다. 셍 드니(Saint Denis)는 즉흥연기는 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상상력의 채널이 되기도 하고, 배우들의 용기와 자발성 그리고 창의력의 원천이 되며, 배우의 문자에 대한 종속을 깨뜨림으로써 극에 창조적인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배우의 창조적인 상상력과 심적이고 신체적인 재능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언급한다.17) 둘째, 즉흥연기는 연극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배우는 즉흥적 연기를 통해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브룩(Brook)은 이렇게 언급한다. “연습기간 동안 즉흥연기나 실험을 통해 배우들을 훈련시키는 목적은 항시 똑 같다. 즉 죽은 연극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즉흥연기는 연극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짐작하듯이 방만한 자기도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식의 행위가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배우들로 하여금 진실이 흔히 거짓으로 대치되곤 하는 그 지점으로 배우들을 인도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 만일 배우가 거짓이 발생하는 순간을 발견하거나 목도할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보다 깊고, 보다 창조적인 충동에 스스로를 개방할 수 있으리라.”18) 배우는 즉흥연기를 통해 지금까지의 거짓 연기를 깨닫게 되고 진실한 상황에 도달할 것이며 기꺼이 창조적인 충동에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즉흥연기는 무의식의 탐구와 해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배우가 즉흥연기를 통해 창조적인 역할을 실연할 때 무의식이 자극되어 외부로 드러나고, 내면에 침잠해 있던 본능적 정서를 분출시키는 것이다. 셍 드니는 즉흥연기에서 배우-참여자는 “집중과 관찰을 통해 배운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자신이 창조하고 있는 극중 인물에 안전하게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19)고 언급한다. 또한 펠드만(Feildman)은 “우리들의 목적은 (…) 현대생활에 대한 연기자 자신의 감성을 노출시키는 즉흥극이며 비합리적인 동작을 통해 그의 무의식 세계를 해방시키는데 있었다”20)고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즉흥연기는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재정립시킨다. 즉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폐쇄된 무대가 아닌 열린 마당에서 배우와 관객의 자유로운 참여로써 진행되는 즉흥연기는 한마당의 개념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집단창작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즉흥극이 상상력과 창조성 개발, 진실 탐색, 무의식 세계의 탐구와 치유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치유의 드라마에서 대단히 주목하는 부분이다.
11)연출의 연극을 연출가가 지배하는 연극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연출의 연극은 언어가 주를 이루는 극작가의 연극이 아니라 극적 행동이 주를 이루는 수행성이 강조된 연극이라는 의미다. 12)Fox, J., Acts of Service: Spontaneity, Commitment, Tradition in the Nonscripted Theatre, New Paltz, NY: Tusitala Publishing, 1986, 62쪽, 재인용 이은선, 2006, 43쪽. 13)Beck, J., The Life of the Theatre, California : City Light Books, 1972, 45 Improvisation : Free Theatre에서 인용, 재인용 김영실, 13쪽. 14)앞의 책, 재인용 이은선, 46쪽. 15)그로토프스키의 즉흥연기에서 스코어는 어느 정도 골격을 갖추고 있다. “다음에 충고하고 싶은 것은 무대에서 스코어 없이 자발성을 추구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연습할 때는 전혀 다르다. 무대 공연 중에는 스코어 없이 참다운 자발성을 구할 수가 없다. 무질서에 의해 자발적 행위가 파괴되기 때문에, 모방된 자발성이 남게 될 뿐이다. 연습을 통해 스코어는 확고한 세부를 구성하는데 이 완성된 세부의 골격 안에서만 즉흥연기를 행하도록 충고하고 싶다.” Grotowski, Towards a poor theatre, New York : Simon and Schuster, 1968, p.234. 재인용 김영실, 28쪽. 16)Miton E. Polsky, Let’s Improvise, NewJersey : Prentice – Hall Inc, 1980, P.x., 재인용 김영실, 2쪽. 17)Saint-Denis, Michel, 『연기훈련』, 윤광진 옮김, 예니, 1994, 134-135쪽 참조. 18)Brook, The Empty Space. New York : Atheneum, pp.112-113, 1968. 재인용 김영실, 12쪽. 19)앞의 책, Saint-Denis, 134쪽. 20)Croyden, M., 『현대연극개론 : 광인, 연인, 시인들』, 송혜숙 옮김, 한마당, 1984, 203쪽.
4. 집단창작(collective creation)의 개념과 의미
통상 현대연극의 무대화 작업에서 극텍스트 선정, 캐스팅, 연기훈련, 블로킹, 장면 만들기는 연출가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실험과 해체의 시대에 들어서고 연출의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면서 집단창작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집단창작이란 “공동으로 극 창작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21) 집단창작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문학 즉 언어와 극작가로부터의 해방을 들 수 있다. 이는 바르트(Bartes)가 언급한 『저자의 죽음』(1968, La mort de l’auteur)과도 상통하며 절대경전으로서의 극텍스트를 해체시키는 해체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탈텍스트는 기존의 텍스트가 아닌 연극집단이 텍스트를 공동으로 창작한다는 의미로써, 극작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연기자들이라는 뜻이다. 즉 집단창작은 연기자 중심의 연극이 된다. 둘째, 문학으로부터의 해방은 수행성의 추구로 이어진다. 집단창작은 “문학으로부터 연극의 해방이라고 하는 공연성의 추구에 더 큰 의미가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 극작자의 아이디어를 충실히 재현하는 대신에 한 집단의 아이디어가 공동창조 방법의 과정인 주제선정, 극의 형식 결정, 장면 만들기를 통해 구출되며 이런 과정은 집단창작 작업을 발전시키는 수단인 토의, 연구, 즉흥에 의해 이행된다.”22) 연극에서 수행성의 추구는 배우의 몸에 대한 관심과 퍼포먼스 형식의 연극으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행성을 강조하는 집단창작은 재현적 연극과는 달리 극적 공간도 파격적이다. 무대와 객석이 엄격하게 분리된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벗어나 삶과 직결된 거리, 광장, 교회나 학교 강당, 헛간, 강가23) 등 소위 멍석을 깔만한 자리는 모두 공연장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수행성이 강조된 집단창작에서 연출가와 배우의 수평적 관계, 열린 공간, 무의식의 탐구는 치유의 드라마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이다. 셋째, 집단창작에서 배역은 결정적이지 않다. 극텍스트가 주어지고 연출가에 의해 캐스팅이 결정된다면 결정된 배역은 끝까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집단 창작은 역할을 수시로 바꾸면서 적절한 연기와 배역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항상 유동적이다. “오픈 씨어터의 <뱀>(The Serpent)에서 연기자들은 코러스가 되었다가 다음에 계속 행해지는 에덴동산 장면,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장면, 잉태 장면 등 여러 다른 장면들에서 다른 역할들을 수행”24)한다. 배역의 유동성은 치유의 드라마에서 역할연기와 상통한다. 넷째, 극적 공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집단창작은 배우와 관객의 동등한 참여가 가능한 창작형식이다. 하회탈춤과 같이 원형적이고 수평적인 공간은 이 점에서 유리하다. 집단창작을 표방한 ‘극단 자유’의 <무엇이 될꼬하니>(1978)에서 추구했던 것도 연기자와 관객의 자유로운 소통이었다. 이 공연에 출연한 배우 박정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객석과 무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관객과 교통하는, 관객을 좀 더 연극 속에 끌어들이고 참여시키는 이 작업은 그때까지 그런 종류의 연극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25)
한편,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집단창작의 방식을 실천하고자 할 때 의사결정의 어려움, 상대영역의 침입, 감정의 손상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집단토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며 극단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므느슈킨(Mnouchkine)의 ‘태양극단’에서는 연출가가 제안을 하면 배우들이 알아서 인물을 만들어 낸다.26) <무엇이 될꼬하니>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연출자가 배우들에게 장면을 제시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면 배우들은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 연후에 연출자는 배우들의 생각을 간추려 재구성을 하는 식의 작업이었다.”27) 또 다른 집단창작의 예는 미국의 ‘리빙 씨어터’나 ‘오픈 씨어터’처럼 추상적이거나 신화적인 상황에 기초하면서 언어나 심리학과 단절된 고함이나 비분절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무의식의 탐구를 목표로 한다. 개인의 의견이 연출가로 수렴되기보다는 개인적인 창조가 강조되는 방식이다.28)
집단창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출가가 존재한다. ‘태양극단’에는 므누슈킨이 있고 ‘리빙 씨어터’에는 베크가 있으며 ‘오픈 씨어터’에는 체이킨(Chaikin)이 있다. 그러나 배우와 스태프는 어떤 경우라도 연출가와 토론할 수 있고 맞설 수 있으며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이들은 지시를 내리는 자와 지시를 받는 자가 아니라 참여자와 동반자의 관계인 것이다. ‘태양극단’은 연습 과정에서 “작업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료를 가져올 수 있다. 누구나 연출가와 맞서 어떤 자율성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그의 자율적 행동을 지켜보는 증인이 필요하다. 그는 억눌린 감정을 즉흥연기를 통해 이끌어낼 수 있다. 그 감정을 다른 형태로 변화시켜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숨에 즉흥 기들이 드러내는 감정의 표현 효과를 보고 특이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29) 태양극단의 집단창작의 예는 즉흥연기가 억눌린 감정과 자기표현에 얼마나 효율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치유의 드라마에서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21)최치림, 「공연과 텍스트의 관계에 관한 연구」, 『한국연극학』, Vol.15 No.1, 2000, 49쪽. 22)Theodore Shank, Collective Creation. The Drama Review, Vol.16. No.2.(T-54), June, 1972. p.4, 재인용 최치림, 50쪽. 23)위의 책, 52쪽 참조. 24)Croyden, M., 앞의 책 206-210 참조. 재인용 위의 책, 54쪽. 25)박정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312/h2003121817514321930.htm. 26)“태양극단이 처음부터 집단창작을 구현한 것은 아니다. 집단창작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태동한 작품은 <광대들>(1969)이다. <광대들>에서 배우의 상상력과 즉흥적 연기가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새로운 집단창작 방식이 선보였다. 이 창작 방식은 오늘날 태양극단의 독창적인 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선형, 『프랑스연극의 이론과 실제』, 동문선, 2009, 391쪽. 27)박정자, 앞의 책. 28)박형섭, 「현대극의 집단창조 연구」, 『프랑스문화연구』 제3집, 1999, 117쪽 참조. 29)위의 책, 12쪽.
즉흥극과 집단창작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행적이다. 언어와 극텍스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의 표현이 가능하다. 둘째, 극적 공간은 테두리가 분명하게 구획되어 있지 않다. 일상공간도 훌륭한 공연 장소가 될 수 있다. 셋째, 역할이 정해진 것이 없다. 배우들은 수시로 역할을 바꾸면서 제일 적합한 역할을 찾는 배우 중심의 연극이다. 넷째, 수평적 관계이다. 연출가와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진다. 다섯째, 관객이 자유롭게 참여한다. 이들의 특징은 치유의 드라마에서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치유의 드라마는 관객-참여자-대상자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탈텍스트이며, 연출가-주체와 객체가 함께 이야기를 써나간다는 점에서 집단창작이 된다. 물론 치유의 세션에 들어서면 수행성이 강조되고 즉흥적 장면 만들기가 이루어진다. 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이코드라마는 무대, 역할, 이야기라는 연극적 방법을 사용하지만 연극 자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통상 연극은 오랜 기간의 연습을 거쳐 완성된 무대를 공연하는 것임에 비해, 사이코드라마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가 가능한 즉흥적인 무대다. 연극은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아무도 개입할 수 없지만 사이코드라마의 디렉터는 진행 중인 무대를 수시로 멈추게 하면서 방향을 조정한다. 또한 무대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고 자발적으로 불신이 중지된 연극의 관객과, 언제든지 주인공 혹은 보조자가 될 수 있는 사이코드라마의 관객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 연극과 사이코드라마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코드라마는 관객 중 한 사람이 그날의 주인공이 된다. 선정된 주인공은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 문제를 제시한다. 보조자-연기자의 도움을 받아 주인공의 현재 상황이 무대에서 펼쳐지며 그 문제가 과거의 사건과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생겨났는지 탐구한다.30)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보조자를 안내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고, 말뿐만 아니라 직접 몸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장성과 사실성을 획득한다. ‘그때’ ‘거기’가 ‘지금’ ‘여기’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경찰의 현장검증과 비슷한 이치를 지니고 있다.31) 주인공은 장면구축으로부터 그 동안 자신의 감정을 가로막았던 것이나 억제된 감정은 무엇인지,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이 떨어진 이유나 사회생활에서 위축되거나, 스스로 피해자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까닭, 비합리적 신념의 근원을 점차 깨닫게 된다.
사이코드라마에는 디렉터와 주인공, 보조자 이외에도 분신, 조력자가 있다. 분신은 주인공의 또 다른 모습으로 주로 관객이 담당하며, 조력자는 어린 주인공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조력자의 존재와 더불어 장면은 잉여 현실(surplus reality)로 넘어간다. 잉여 현실에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며 그곳에서 주인공은 그때까지 부인했던 것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조력자는 어린 주인공이 입은 마음의 상처, 질투심, 분노,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털어놓도록 한다. 분신은 여전히 주인공의 뒤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감정이 상승하면 주인공은 조력자와 역할을 바꾼다. 이처럼 사이코드라마는 매 장면 꾸준히 역할을 바꿈으로써 공감대를 확산시킨다. 조력자의 지지를 받은 어린 주인공은 문제의 장면으로 되돌아가 문제의 사람과 대면한다. 이 장면은 주인공에게 힘든 순간일 수 있지만 조력자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분노와 고통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주인공은 역할 바꾸기를 통해 상대방이 되어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 이 때 주인공은 상대방의 후회의 감정과 보상에 대한 욕망을 경험한다. 보조자의 도움과 지속적인 역할 바꾸기를 통해 주인공이 상대방의 감정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할 수 있고 기존의 신념 체계에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게 되며, 삶에 근원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는 사라졌다. 그리고 변화는 오직 현재와 미래에만 일어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주인공이 새로운 역할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역할 연기에서 자각된 신념을 곧바로 현실에 적용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보조자 두 사람이 과거의 내적 목소리의 역할을 맡아 언어와 신체를 사용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이 장면은 연극적인 방법이 사용되며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큰 소리 지르기, 물건 던지기와 같은 방법이 있다. 그 노력이 성공한다면 주인공은 현실에서 새로운 역할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무리 단계는 집단 전체가 주인공의 작업에 대해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극의 초점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이동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디렉터가 공감의 과정이 판단적이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무대 작업이 관객에게도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주인공의 반응은 다른 사람이 다시 주인공이 될 때 또 다른 사이코드라마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32)
이상의 사이코드라마의 전개과정을 보면 즉흥극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디렉터와 관객의 동등한 관계에서 시작하여 동등한 관계에서 끝맺음을 한다는 점, 지속적으로 역할 바꾸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디렉터는 지시하거나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않는다. 또한 관객의 참여가 없다면 사이코드라마는 성립하지 않으며, 탈텍스트, 몸의 연극이란 점에도 의의가 있다. 나아가 즉흥연기, 역할 바꾸기, 집단창작의 형식 속에서 관객-주인공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현재의 참자아를 찾는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폭스가 개발한 재생연극은 치유를 위한 특별한 토론의 무대이다. 재생연극에서 행해지는 토론은 관객 당사자 뿐 아니라 배우와 관객 전체를 아우르는 집단토론이다. “재생연극은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공동체 대화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대화는 하나가 아니라 많은 주제를 내포하며, 종종 간접적인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며, 민중적 진리를 표현할 배출구를 부여한다.”33) 재생연극과 일반연극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재생연극의 기본구조는 무대에서 관객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배우들이 이를 시연하는 것이다. 재생연극의 구성요소는 관객-화자(audience-teller), 배우(actors), 연주자(musicians), 진행자(conductor)이다. 관객-화자도 무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배우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집단창작 형태로써 모두가 관객이면서 배우가 된다. 진행자는 연출가처럼 공연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가지만 화자 곁에서 중립상태로 존재하면서 화자를 전적으로 수용한다. 재생연극의 진행자와 배우는 화자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공감적으로 확인해주는 동시에 화자의 감정과 욕구 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심리치료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재생연극은 사이코드라마처럼 진행자가 관객을 무대에 이끌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34) 재생연극 역시 관객의 참여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연극이며, 관객의 우연한 참여는 즉흥적 성격을 말해준다. 다만 재생연극에서 공간의 배치는 주의 깊게 이루어진다. 악사는 무대 오른쪽, 배우들은 무대 안쪽, 화자와 진행자는 무대 왼쪽에 배치가 되고 관객은 무대를 향해 타원형 모양으로 배치되어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배우들의 준비단계와 장면 마무리 단계 순서는 항상 같다. 무대장치도 언제나 동일하다. 이는 재생연극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쉽고, 이전에 참여한 적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속성을 준다. 제의적 요소들과 함께 이러한 구조적 안배는 존중, 친근감, 안전함의 분위기를 주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그 안에서 관객과 배우들은 모험적이고 자발적이고, 창조적이도록 유도된다.”35) 화자는 자기 이야기를 토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장면이 끝나면 의견을 피력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자신이 생각과 다르거나 원하는 결말이 아닐 경우 다시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처럼 관객은 공동 생산자가 된다. 재생연극의 배우는 관객-배우(audience actor)로 명명되는데, 이 의미는 첫째, 배우는 관객과 충분히 소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객석과 무대가 나뉘어 있긴 하지만 엄격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다만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개입은 자제된다. 둘째, 전문배우 뿐 아니라 관객도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관객은 배우가 되어 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재생연극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생연극은 교정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 화자와 관객의 인식과 통찰에 있어 주체적이고 자율적이 되도록 한다. 둘째, 진행자는 화자의 이야기에 대해 논평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화자의 이야기가 불행한 결말로 끝날 경우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재생연극은 고대 무속 제의에서 발견되는 망아체험과 그 치유력에 주목한다.36) 이처럼 재생연극은 철저하게 자율적이고 즉흥적이며 집단창작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으며, 평등성, 자율성, 능동적인 참여는 치유의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토론연극의 창시자 보알은 연극인이자 문화운동가이자 혁명적인 정치가이다. 보알의 다양한 연극개념은 저서 『억압받은 사람들을 위한 연극』의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으로 종합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극이 억압받는 사람을 위로하기보다는 무대에 직접 참여하고 토론함으로써 억압받는 현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은 무대와 객석의 근본적인 구분이 폐지되고 배우와 관객이 상호 교감하도록 한다. 사이코드라마나 재생연극처럼 관객은 주인공이 되어 무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변화 계획을 논의한다. 보알에게 있어 연극은 단순한 예술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도록 하는 실존적 예술인 것이다. 토론연극과 일반연극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보알의 토론연극은 억압에 익숙한 상태에 빠져있는 수동적인 민중들에게 자극을 가하여 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억압받음에 익숙해져 있는 수동적인 민중은 서구의 전통적 연극에서 어두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태도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토론연극은 무엇보다도 민중-관객을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토론연극의 진행은 질문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질문과 토론을 하는 동안 관객은 자기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토론연극의 웜업은 간단한 몸 풀기에서부터 신체로 표현하기, 감각을 일깨우기, 집단의 응집과 교감하기, 인물을 창조하기 등으로 실시된다. 웜업이 끝나면 본 활동은 무대 위의 배우들이 참여 관객의 억압의 상황을 재현한다. 제시된 억압의 상황이 다른 관객들이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면 관심과 참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토론연극에서 주제의 선정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항은 첫째, 참여 관객의 공통적 관심사를 선정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여 문제를 극복하고 해방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그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주제로 제시된 억압의 상황은 해결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나 총살형 같은 불가항력의 사건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배제된다. 셋째, 토론연극의 무대로 초대된 주인공의 문제는 나름의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야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론연극은 논쟁거리를 제공하므로 반-모델로 지칭된다. 실패한 장면이 끝나면 조커-연출자는 관객을 무대로 초청하여 실패한 주인공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이를 실연하도록 한다. 장면은 관객이 개입되는 횟수만큼 얼마든지 반복된다. 따라서 토론연극은 해결책 자체보다도 많은 참여와 토론을 유발시키는 논쟁거리가 더욱 중요하다.
토론연극의 주요 역할에는 조커-연출자가 있다. 보알은 17세기에 일어났던 흑인들의 투쟁을 현재 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로 형상화시킨 연극, <원형극장은 줌비를 말한다>(Arena Conta Zumbi, 1965)에서 조커 시스템(Jocker System)을 창출했다. 이 연극은 “와일드카드 인물을 사용하여 등장인물과 관객들 사이를 조정하고, 이야기에 대해 비판적으로 주석하고, 어떤 지점에서는 배우로 직접 간섭하기도 했는데, 이후 토론연극의 형식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37) 조커는 재생연극의 진행자처럼 무대와 객석을 왕래하면서 공연을 촉진시키는 인물이다. 서양카드에서 농담하는 사람, 익살꾼으로 그려진 조커는 어느 패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와일드카드나 으뜸 패의 구실을 한다. 마찬가지로 토론연극의 조커도 한 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조커는 연출자이자 참여자이자 배우이자 관객이 된다. 무대와 객석을 수시로 왕래하는 조커는 무대에 동화하려는 관객을 방해하며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도록 안내한다. 심지어 조커는 극을 중단시키거나 특정 장면을 반복시키거나 기존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도록 할 수도 있다. 또한 무대의 인물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설명을 요청할 수도 있다. 물론 필요하다면 조커는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무대 위의 인물에게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극 전반을 꿰뚫고 있는 조커는 배우가 한 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돌아가면서 역할을 맡도록 하기도 한다. “조커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장면마다 배우들이 다른 배역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을 폐지하는 것이다. <원형극장은 줌비를 말한다>는 이러한 조커 시스템을 충실하게 실현한 공연인데 모든 배우가 돌아가면서 모든 등장인물을 연기했을 뿐 아니라 같은 배역을 두 번 이상 맡지 않았다.”38) 주의해야 할 것은, 조커는 권위적인 일반연극의 연출가와는 구별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연출가와는 달리 조커는 촉진자이자 안내자로서의 위치를 고수한다.
한편 토론연극의 관객은 언제든지 배우가 될 수 있으므로 배우-관객(spect-actor)이 된다. 관객은 진행 과정을 바라보면서 자발적으로 무대에 개입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시학은 “민중-관객 즉 연극이라는 현상에서 수동적인 존재들을 주체로, 배우로, 연극행위로 변화중의 과정들로 바꾸는 것이다.”39) 관객은 극의 진행이 자신의 의견과 다를 때 배우가 되므로, 관객의 개입은 단순히 관객에서 배우로의 변신이 아니라 극 전반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극의 흐름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판단하고 무대에 올라간 관객-배우는 직접 배역을 맡아 원하는 방향으로 극을 이끌고 간다. 무대와 객석이라는 엄격한 분리의 벽을 깨트리는 관객의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에 대해 불신을 자발적으로 조장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 속에 들어가 자신의 문제와 직면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고민거리로 다가 온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관객-참여자-배우의 무대 경험은 진정한 변화를 위한 체험의 과정이며 이로부터 유연한 사고가 가능해진다. 무대의 경험은 현실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예행연습인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억압받는 사람으로 살아온 순응적 자세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며, 혁명적 태도로 사회의 변화를 향한 동참으로 이어질 것이다. “토론연극은 관객을 연극적 행동의 주인공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사회를 해석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시민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40)
토론연극의 핵심은 배우와 관객이 동참하는 것이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며, 갈등과 문제를 표출시키고 토론을 거쳐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극 양식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지만 않다면 사실적이든 비사실적이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토론연극은 공연이 행해지는 장소, 환경, 내용, 관객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된다. 토론연극은 즉흥적이며 집단창작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재생연극과는 달리 텍스트가 있다. 다만 텍스트는 지배적이 아닌 기본적인 역할을 제공할 뿐이다. 토론연극은 기초적인 텍스트는 배우와 관객의 우연성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사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즉흥극이다.
연극치료는 연극(theatre)과 치료(therapy)가 결합된 단어다. 음악치료나 미술치료가 음악이나 미술이라는 예술매체를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사용하는 것처럼, 연극치료는 연극을 매체로 치료를 행한다. 영국연극치료사협회(badth, http://badth.org.uk/)는 연극치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연극치료는 치료과정으로 드라마와 연극의 치유적 측면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창조성, 상상력, 학습, 통찰력과 성장을 용이하도록 행동을 활용하는 작업방식이자 놀이방식이다. (…) 증상 완화,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통합, 개인적 성장이라는 치료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드라마와 연극 과정 및 관련된 기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41)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는 연극치료의 주된 목표는 첫째, 증상 완화로써 참여자의 정신적・심리적인 문제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통합으로써 감정과 몸의 상태를 스스로 조절하여 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조절 능력을 몸에 익혀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도록 한다. 셋째, 참여자가 창조성, 상상력, 통찰력을 길러 성숙된 자기를 갖도록 하면서 개인을 성장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야기와 움직임이 있는 예술, 즉 상황에 맞게 짜인 일정한 이야기 속에서 연극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연극치료인 것이다. 종합하면 연극치료는 의도적으로 연극적 방법을 활용하여 참여자의 심신안정에 도움을 주고, 의사소통 기술을 향상시켜 대인관계를 원활하도록 하며, 정신병리적 현상을 완화시키고 개인의 학습과 성장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연극치료는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과는 달리 정형화된 방식이 없으며, 연극치료 전문가에 따라 연극적 방법이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만큼 연극치료는 애매하고 광범위하다. 아동교육연극 전문가인 슬레이드(Slade)는 연극치료와 사이코드라마의 차이점에 대해, 사이코드라마가 주어진 구조와 상징을 특징으로 한다면, 연극치료는 놀이에서 영감을 얻은 활동을 강조하고 드라마 경험 자체에서 발생하는 치유에 바탕을 둔다고 언급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즉흥적인 놀이를 통해 극적인 경험을 하면서 치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연극치료라는 관점에서 아동의 자유놀이가 중요하다.42)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놀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극적인 경험에서 연극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린크비스트(Lindkvist)는 우연히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과 연극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드라마 방식이 매우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되었고, 캐츠 프로그램(CATS program)을 만든다. 캐츠 프로그램은 극단의 단원들이 직접 병원을 찾아가는 서비스로써, 환자-참여자가 활동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도록 간단한 드라마와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는 연극치료 훈련과정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간단한 연극적 방식이 연극치료 과정으로 정착된 것이다.43) 또한 제닝스는 연극치료에서 연극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치유적 효과를 중시한다. 제닝스는 정신건강과 관련하여 연극이 예방적이라면 연극치료는 치유적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사람들이 개인과 집단으로서 긍정적인 태도와 보다 성숙한 지각을 견지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변형(transformation)의 매체이며, 연극치료 역시 병들고 장애가 있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매체로서 기능한다. 그러므로 제닝스의 연극치료는 연극에서 비롯된 모든 테크닉, 이를테면 움직임, 목소리, 춤, 연극, 게임, 역할연기, 즉흥극, 텍스트 작업, 꼭두인형, 가면 등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44)
다양한 연극치료 방식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치료사와 참여자와의 관계이다. 즉 치료사와 참여자는 진심으로 동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치유의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즉흥극 및 집단창작과 유사한 맥락이다. 치료사가 주기만 하고 참여자가 받기만 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 교감하는 양방향인 것이다. “치료사의 역할은 대상자가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촉진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치료사-대상자의 관계는 역동적이다.”45) 제닝스는 연극치료사는 자유로움과 엄격함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 하며 자발적인 치료가 행해지기를 권한다. 치료사가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안전하고 융통성 있는 구조 내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것과 엄격한 형식을 가지고 드라마를 하는 사이에 중용을 찾는 것이다. (…) 세션은 자극제들을 제공하고 한걸음 물러서서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대로 발전하도록 할 때 더 성공적으로 되돌아온다.”46) 미첼(Mitchell) 역시 치료적 공연모델에서 치료사는 안내자가 될 것을 권유한다. 연극치료사는 참여자가 연극적 기술을 습득하도록 독려하고 연극 제작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작품 선택과 분석, 새로 쓰기 과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되 결코 지시적인 연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47) 연극치료에서 치료사는 촉진자, 안내자로 머물기를 종용한다. 결국 다른 치유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주체와 객체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즉흥적이며 집단적인 드라마 창작이 그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0)사이코드라마는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를 탐색하고 다시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는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다시 안으로의 나선형 방식으로 진행된다. 31)경찰은 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였을 때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현장검증’을 실시한다. 사건을 장면으로 재구성하는 현장검증은 당시(그때) 그곳(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지금 여기로 재현하는 것으로 과거의 사건을 명확하게 떠올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현장검증에는 사건에 개입된 모든 역할이 동원된다. 직접 사람이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면 마네킹을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 현장검증에서 피의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뉘우친다고 한다. 통제 불가한 상태에 빠져 과오를 저지른 과거의 순간을 생생한 장면으로 재현하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일 것이다. 현장검증에는 피의자 이외에도 피해자를 대역하는 보조자(혹은 마네킹)가 필요한데, 사이코드라마 역시 장면 구축에 있어 보조자를 동원하여 과거의 장면에 필요한 역할들을 대역하게 한다. 만일 경찰에서 피의자가 그때 그곳에서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경험할 것을 종용한다면 역할 바꾸기가 제격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검증은 사건을 구성하여 진실을 파헤치려는 것이 목적인만큼 대개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32)Jennings 외, 『연극치료 핸드북』, 2010, 190-200쪽 참조. 33)Fox, J., A Ritual for Our Time, in Fox, Jonathan, eds, 1999, p.120. 재인용 모미나, 「재생연극의 연극적 특성과 치유원리」, 『연극학보』, Vol.32, 2004. 402쪽. 34)재생연극이 사이코드라마와 다른 점은 관객과 배우의 관계이다. 후자는 배우가 보조자가 되어 관객의 지시에 따라 무대를 만드는 반면, 재생연극은 관객의 이야기를 배우가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35)위의 책, 404쪽. 36)위의 책. 399-418쪽 참조. 37)김현정,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解)의 작업에 활용된 A. 보알(Augusto Boal)의 연극 메소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36쪽. 38)원준식, 「비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미학(1): 감정이입에서 능동적인 소통으로」, 2011, 164쪽. 39)김겸섭, 「사회적 비판과 인식의 드라마로서의 컴퓨터게임」, 독일어문학, 제51집, 2010, 7쪽. 40)앞의 책, 원준식, 168쪽. 41)앞의 책, Jennings 외, 184쪽. 42)Jones, Phil, 『드라마와 치료』, 이효원 옮김, 울력, 1996, 144쪽. 43)위의 책, 150-155쪽 참조. 44)Jennings, S., 『수 제닝스의 연극치료 이야기』, 2003, 9쪽. 45)앞의 책, Jennings 외, 29쪽. 46)위의 책, 26쪽. 47)위의 책, 88-89쪽 참조.
치유의 드라마에서 이야기는 핵심이다. 이야기가 없는 드라마는 없다. 치유의 드라마는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실타래를 풀듯 이를 극화시키는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개인의 이야기는 문학 텍스트처럼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참여자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즉흥적이며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치유의 드라마에서 관객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배우가 될 수 있다. 관객 스스로 일정한 역할을 맡아 개인적 문제, 대인 문제,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깨우치는 것이다. 관객과 배우, 배우와 관객이 함께 참여하고 때때로 전이가 이루어지는 치유의 드라마는 역할 연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창작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한다. 치유의 드라마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지시자는 물론 권위적 텍스트도 사라진다. 권력자-연출가-치료사는 자취를 감추고, 디렉터, 진행자, 조커, 연극치료사들이 그들을 대신한다. 이 때 그들은 열린 공간에서 참여자 모두와 감정을 공유하며 상호 교감하는 존재가 된다. 일반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다리가 놓여있다. 두 공간은 절대로 섞여서는 안 되며 인물과 관객은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여야 한다. 조명이 꺼진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마치 영화 스크린이나 TV브라운관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시청자의 입장처럼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간접 체험할 수밖에 없다. 섞일 수 없다는 것은 일방통행이며 상호소통의 불가를 뜻한다. 그러나 치유의 드라마는 섞임과 혼합의 연극, 직접 체험의 연극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그로토프스키 연극론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오로지 연극의 본질적인 요소만으로 연극을 창조하고자 한 ‘가난한 연극(Poor Theatre)’ 이후 ‘참여연극(Theatre of Participation)’, ‘원천연극(Theatre of Sources)’, ‘객관적 연극(Objective Drama)’에서 배우는 자기 몸 이외의 모든 이질적 요소를 던져버리고 내면을 통찰하는 성스런 배우(holy actor)가 되고자 한다. 성스런 배우는 무아지경(trance)의 상태가 되어 전적으로 관객과 교감하고 치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즉흥극과 집단창작 역시 관객과 배우 사이를 가로막은 두꺼운 벽을 허물기 위한 것이다. 배우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배우가 되는 드라마의 기능적 수단이 연극의 즉흥성이며 집단창작 방식인 것이다. 이들 방식은 상상력과 창조성을 활성화시키고 무의식을 표출시키기 위한 테크닉이며 제의적 원시연극의 형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치유의 드라마를 통해 인간은 자기 억제와 사회적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를테면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벗어나고, 건강한 몸이 있으나 행할 수 없었던 것을 실천하며,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고삐 풀린 고함과 움직임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원시적 욕망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코드라마, 재생연극, 토론연극, 연극치료 나아가 다양한 교육연극을 가미하여 각각의 드라마의 장점을 취한다면 치유의 드라마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의미의 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