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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Andre Malraux et la mythomanie 앙드레 말로와 공상 허언증*
  • 비영리 CC BY-NC
ABSTRACT
Andre Malraux et la mythomanie
KEYWORD
Malraux , mythomanie , mythe , demythification , imagination creative
  • Ⅰ. 머리말

    앙드레 말로는 ‘작가’라는 한 가지 이력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작가 못지않은 비중을 갖는 다양한 이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신화적’이니 ‘전설적’이니 하는 수식어들도 어김없이 덧붙는다. 과연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말로보다 인정받는 작가도 많았고, 말로보다 뛰어난 모험가, 투사, 영화인, 정치가는 더욱 많았지만, 이 모든 이력 마다마다에 ‘흔적cicatrice’1)을 남길 수 있었던 한 개인이 말로 외에 또 있었던가?

    과연 프랑스 정부는 1996년에 앙드레 말로 20주기를 기념하며 그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장했다. 이로써 말로는 팡테옹 정면에 새겨진 문구2)에 합당한 ‘위인들grands hommes’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인된 셈이다. 그런데 그는 과연 프랑스 전 국민이 납득할 만큼 ‘위대한’ 삶을 살았던 인물인가? ‘신화적’인 것과 ‘위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 ‘신화성’ 마저 의혹의 대상이 될 때 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팡테옹 이장 이전부터 이미 야기되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논란의 키워드가 바로 ‘공상허언증mythomanie’ 이다. 『로베르 소사전Le Petit Robert』에 따르면 공상허언증은 “정신이상의 한 형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것이 특징”3)이다. 즉, 이 논란은 대부분 앙드레 말로가 병적인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신화화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정말 공상허언가mythomane였는가?

    위의 사전이 싣고 있는 예문에서 그 대답의 힌트를 구해보기로 하자. 유일한 예문이 이렇게 제시되어 있다.

    말로의 독자라면 누구나 이 예문의 출처가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이며, 여기에서 언급된 ‘그’가 클라픽Clappique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작가는 지금껏 없던 독창적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1905년에 만들어진 이 정신의학 전문용어4)를 차용하였고, 클라픽을 ‘공상허언가’의 전형으로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말로가 그 어떤 작가보다 일찌감치 그리고 예민하게 이 질환에 관심을 가졌음을 알려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를 둘러싼 논란이 ‘공상허언증’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만약 그가 이 낯선 어휘를 독자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장본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저 과장이나 허풍에 능한 인물쯤으로 치부되는 데 그치지 않았을까? 결국 말로는 그의 삶을 통해서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고, 자신이 과거에 창조한 허구의 인물을 통해 논란의 키워드까지 일찌감치 마련해둔 격이 되었다.

    말로에 관한 전기나 평전이 양산되고 또 꾸준히 읽히는 배경에는, 그의 독자나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 주제가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는 소설이라는 허구적 세계로 독자를 매혹했던 그가, 사후에는 소설보다 더 허구적이라는 의혹을 사는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또 다른 의미에서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본 연구 역시 말로를 둘러싼 공상허언증 의혹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되었다. 다만 우리는 의학적 관점이나 정치적 관점을 가급적 배제한 채, 순수 문학적 관점에서 이 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검토하게 될 것은 그의 소설에 나타난 등장인물의 공상허언증이다. “소설가 말로는 공상허언증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으로는, 말로의 전기를 중심으로 소위 ‘말로의 공상허언증’ 과 관련된 연구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말로는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공상허언가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이러한 질문과 그 대답을 통해, 말로가 묘사한 공상허언증과 말로에게 내려진 ‘진단’의 근거를 비교하여, 양자 간의 상호역학적 관계를 뚜렷이 드러내고 쟁점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André Malraux, (Œuvres complétes I, Gallimard, Bibl. de la Pléiade, 1996, 412쪽 참조. (“Je veux laisser une cicatrice sur cette carte”).   2)“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3)Forme de déséquilibre psychique, caractérisée par des propos mensongers auxquels l'auteur croit lui-même.   4)Dic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에 수록된 것은 1935년.

    Ⅱ. 공상허언증

    말로의 작품 가운데 공상허언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왕성의 길La Voie royale』과 『인간의 조건』이다. 『왕성의 길』의 경우, 단 한 차례 ‘공상허언가’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 생소한 어휘가 독자들에게 남겼을 강한 인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다짜고짜 “이번에는...”으로 시작하는 단도직입적인 도입부, 머나먼 아시아의 밀림으로 들어간 모험가들의 등장이 만들어 낸 이국적 분위기 등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효과적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공상허언가’를 입에 올리는 인물은 캄보디아로 가는 배의 선장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 배에 승선한 클로드Claude는 페르캉Perken이라는 또 다른 승객에 대해 점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에 대한 평판이 궁금해지는데, 이 노련한 선장에게조차 페르캉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인 모양이다.

    여기에서 선장의 단언은 인도차이나에 떠도는 모험가들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스당 족Sedangs의 밀림에서 피살된 프랑스 탐험대장 오덴달Odend'hal,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스당 족을 통치했던 메레나Mayrena와 같은 실존인물들의 모험에 관한 전설이다.6) 오랜경험을 통해 선장은 이러한 모험가들이 하나같이 공상허언가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선상에 떠도는 또 다른 전설의 주인공인 페르캉으로 인해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상허언가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딱 여기까지이다. 소설의 화자도, 등장인물인 선장도 더 이상 공상허언가를 입에 올리지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문맥상, 기존의 모험가들에게 공통된 공상허언가의 특징은 페르캉의 ‘똑 부러지는 행동, 조직에 대한 감각, 자기 삶에 대한 함구’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페르캉이 간파한 메레나의 특징이 오히려 공상허언가의 이미지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배우가 어떤 역을 연기하듯 자기 전기를 연기하는 데 악착스러운”, 그리고 “정복하기보다는 그런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7) 메레나의 이미지가 그것이다.8) 이것 역시 페르캉의 이미지와 대척되는 것임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클로드가 본 페르캉은 “자기 전기를 연기하는 기쁨이나 자기 행위에 대한 도취와는 거리가 먼 사나이, 어떤 심오한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사나이”9)이기 때문이다. 클로드의 이러한 시각을 통해 우리는 모험가-공상허언가의 이미지를 한 번 더 역으로 확인한 셈이다. 메레나에게 정복 보다 중요한 것이 정복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라면, 페르캉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심오한 의지’라는 점에서 이들의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클로드가 점점 페르캉에게 매료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왕성의 길』에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된 모험가-공상허언가의 이미지는, 말로가 직접 정의한 모험가, 즉 미지의 대상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이끌림, 현실이 강요하는 사회규범에 대한 거부로 상징되는 말로의 분신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10)

    공상허언증이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을 통해서이다. 작가는 공상허언가 클라픽을 등장시킴으로써 그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이색적인 인물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조건』에서 클라픽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일곱 개인데, 이 장면들이 하나씩하나씩 클라픽-공상허언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완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소설의 흐름을 따라 불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클라픽-공상허언가의 이미지를 완성시키기기 위해서 먼저 요구되는 과정은, 일곱 개의 장면들을 스토리와 분리한 다음, 공상허언증과 관련된 묘사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하게 도식화하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상의 도식화 과정은, 작가가 화자와 등장인물, 그 가운데서 특히 클라픽의 말과 생각 등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서 클라픽의 공상허언증을 중층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묘사에 중첩된 특징적 요소들을 다시 한 번 요약함으로써 우리는 말로가 제시하는 클라픽-공상허언가의 이미지를 이렇게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첫째, 클라픽-공상허언가는 자신의 공상허언증을 자각하고 있다.

    둘째, 예술가가 연극이나 소설을 통해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듯, 그는 상상과 거짓말을 통해 자기만의 비현실적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현실의 삶, 즉 자기 삶을 부정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셋째, 그는 언제라도 현실의 고통, 고독, 공포, 책임에서 해방되어, 낯설고 행복하고 짜릿한 감각 속으로 빠져 들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셈이다.

    넷째, 어떠한 깊이도 현실성도 없는 그의 세계에는 진실도 없지만 거짓 또한 있을 수 없다. 인생을 더 많이 누리고자 하는 그의 진실한 욕구가 있고, 참이든 거짓이든 그가 겪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실을 가장하는 연극이나 소설보다 더 진실한 세계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와 공상허언가는 ‘이야기를 꾸며 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글로 쓸 뿐이고, 공상허언가는 이야기를 삶으로 겪어낸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클라픽-공상허언가의 모습은 『왕성의 길』의 모험가-공상허언가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복합적이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그들의 거짓말이 남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기 위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이 둘 사이에는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두드러진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자기존재에 대한 집착이다. 클라픽은 결코 “자기 전기를 연기하는 기쁨이나 자기 행위에 대한 도취”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행위나 전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꾸며낸 삶을 떠들썩하게 지껄여대거나, 허구 속에서 기꺼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면 그만이다. 이런점에서 볼 때, 『왕성의 길』의 모험가-공상허언가가 자기 신화(mythe)를 구축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물(mane)이라면, 클라픽은 신화적인 거짓말(mensonge mythique)을 병적으로 꾸며내는 인물(mane)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특징이 한 마디로 신화화mythification라면, 후자의 특징은 병적 거짓말이라 하겠다.

    5)André Malraux, 같은 책, 378쪽.   6)위의 책, 374-375쪽 참조.   7)“Je pense que c'était un homme avide de jouer sa biographie, comme un acteur joue un rôle. (...) ces hommes qui attachent plus d'importances à...voyons, oui...à bien jouer le rôle qu'à vaincre.” (위의 책, 375쪽, 강조는 저자에 의함).   8)실제로 말로는 『반회고록』의 개정판(1972년)과 결정판(1976년)에서 “Mayrenamythomane”라고 명기하고 있다.   9)(...) cet homme indifférent au plaisir de jouer sa biographie, détaché de besoin d'admirer ses actes, et mû par une volonté profonde(...). (André Malraux, 같은 책, 378쪽).   10)Gaëtan Picon, Malraux par lui-même, Seuil, 1968, 78-80쪽 (말로의 주석) 참조.   11)André Malraux, 같은 책, 527쪽. (이하, 본문 괄호 속에 쪽수만 표기).

    Ⅲ. 신화와 탈신화화demythification

      >  Ⅲ-1.

    지금까지 출판된 앙드레 말로의 전기 가운데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마 장 라쿠튀르Jean Lacouture가 쓴 『말로, 세기의 삶 Malraux, une vie dans le siècle』(1973)12)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전기는 말로의 정치 경력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 의혹을 제기한 책이기도 하다. 라쿠튀르는 이 책을 통해 당시까지, 다시 말해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일반 독자는 물론 말로 연구자들까지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중국혁명의 투사이자 1925년 광둥 반란의 영웅인 말로의 신화’를 정면에서 반박하였다. 그는 말로가 중국 혁명을 이끌기는커녕, 이 신화의 원천이 되었을 『정복자 Les Conquérants』(1928) 발표 이전에 중국 땅을 밟은 것은 1925년 8월에 홍콩에서 보낸 며칠이 전부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런데도 신화가 만들어지고 또 끈질기게 지속되었던 원인을 그는 말로 자신의 태도와 비평가들의 오류에서 찾고 있다. 그가 문제 삼은 말로의 태도는, 과장된 소문이나 추측을 바로잡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한 점이다. 그리고 권위 있는 말로 연구자들의 오류 가운데 라쿠튀르가 대표적으로 꼽은 것은 앙드레 방드강André Vandegans의 경우이다. 『앙드레 말로의 문학 청년시절La jeunesse littéraire d'André Malraux』(1964)에서 방드강은 「아시아 민족주의를 위하여Au service du nationalisme asiatique」라는 장chapitre의 각주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자료를 소개한 바 있다.13) 첫 번째 자료는 『정복자』의 독일어 번역판에 붙은 부제와 작가 소개이다. 방드강의 각주에서는 독일어 원문대로 인용되어 있던 이 자료를 라쿠튀르는 프랑스어로 번역, 재인용하여 문제점을 더욱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먼저, 소설의 부제인 “광둥 전투의 일기Journal des combats de Canton”는 이 책의 내용이 곧 작가의 체험담이라는 암시로 이해된다.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이 책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이다. 여기에 따르면 말로는 “파리 태생. 식민성에서 파견된 캄보디아와 시암 지역 고고학 탐사관(1923), 청년안남당 지도위원(1924), 코친차이나 국민당 위원(1924-1925), 보로딘 관할 광둥국민운동 선전위원 대행(1925)”이라는 것이다.

    라쿠튀르가 재인용한 두 번째 자료는, 미국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에게 보낸 말로의 1933년10월2일자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말로는 “인도차이나 국민당 위원을 역임하고 마침내 광둥 국민당 위원까지 역임”한 것으로 자기소개를 했다고 한다. 라쿠튀르는 이와 같은 왜곡, 오류, 방치의 과정을 밝혀내는 가운데, 말로가 보여준 ‘비장한 미화’를 ‘기만’, ‘속임수’, ‘짜깁기’, ‘허풍’ 가운데 어떤 것으로 불러야 할지 자문하고 있다.14)

    그런데 이 책의 중반 이후 라쿠튀르는, 흔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불리는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 E. Lawrence와 말로를 ‘이 두 명의 위대한 mythagogues’15)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말로가 실제로 스페인 내란에 참전하여 전과를 올린 대목에 이르러 드디어 “이 공상허언가는 (...)”16)이라는 어휘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어휘 선택의 과정은, 그가 말로를 ‘공상허언가’로 지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신화에 대한 의혹과 결부 시키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말로를 비난하기 위하여 이 어휘를 동원한 것도 아니며, 이 표현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게 한다. 이 전기의 제사épigraphe로 인용된 보들레르 Baudelaire의 산문시 『창문Les Fenêtres』의 마지막 대목은, 자신을 둘러싼 신화와 그 의혹을 대하는 말로의 자세는 물론, 전기 작가 라쿠튀르의 시각까지도 대변하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말로의 전기를 다룬 라쿠튀르의 대담집(2008년)에서도 우리는 그의 일관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꿈이 그가 꾸며낸 거라면, 그건 공상허언가라기 보다는 신화론자mythologue 말로의 면모를 입증해 줄 멋진 조작인 셈이죠. 맞아요, 그는 신화론자지요.”18)

      >  Ⅲ-2.

    1996년은 말로의 20주기를 맞아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이어진 해였다. 부아데프르Boideffre, 스테판Stéphane, 리오타르Lyotard 같은 비중 있는 작가들이 이 한 해에 말로의 전기를 쏟아냈다. 저자들은 출판 시점의 우연성을 주장하지만 어쨌든 이 저서들이 20주기와 팡테옹 이장에 때맞춰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전기들과 더불어 말로의 팡테옹 입성이 그의 작품 못지않게 삶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비록 일부에서라고는 하나 팡테옹 이장의 합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확하게 30년 전에 말로 자신이 주재했던 장 물랭Jean Moulin의 유해 이장(1966년)을 상기시키는 이 국가적 행사를 향한 의혹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장을 결정하고 직접 행사를 주관한 드골주의자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 대한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말로가 비록 ‘위대한 작가’였을지언정 팡테옹에 안치될 만큼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시각이다. 바로 이 ‘위대한’ 업적과 관련하여 공상허언증 논란이 재점화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말로와 친분이 두터웠던 피에르 드 부아데프르는 『앙드레 말로, 죽음과 역사André Malraux, la mort et l'histoire』에서 말로를 ‘위대한 인간’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프랑스 정부가 그의 유해를 베리에르Verrières의 묘지에서 팡테옹으로 이장하기로 결정한 사실에 대해 “이것으로 인해 말로의 영광에 덧붙여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19)라고 평가했다. 이 평전은, 말로가 전기나 회고록을 믿지 않았다는 단언으로 시작된다. 말로는 전기를 ‘거짓 속내이야기’로, 회고록은 ‘거짓 고백’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자신도 오랜 세월 말로의 전설을 ‘전적으로’ 믿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20) 저자는 전설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배경을 추적하는 데 한 장chapitre를 할애하고 있다. 「전설은 어떻게 구축되는가Comment se construit une légende」라는 장에서 저자는 독일어판 『정복자』의 발행인들에게 거짓 이력을 흘린 사람은 바로 말로 자신이 아니겠는가, 라고 반문하면서도 이것이 “단순한 꾸며대기simple affabulation”이며, 그 이후 작품의 원동력ressort이라고 평가한다. “다소 교묘하게 퍼뜨려진 전설”이 그의 실제 행동을 앞질렀던 것뿐이라는 관점에서, 저자는 말로를 “대단한 작화증에 빠진 인물Grand Fabulateur”이라고 다소 익살스럽게 부를 뿐, 공상허언증을 거론하지는 않는다.21)

    라쿠튀르에 이어 부아데프르 역시 ‘전설’에 포함된 오류의 단초를 방드강과 『앙드레 말로의 문학 청년시절』에서 찾았다면,22) 로제 스테판의 관점은 이들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방드강의 각주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라쿠튀르는 편지와 작가 약력만을 재인용하여 비판의 논거로 삼았던 데 비해, 스테판은 각주 전문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방드강의 “비평적 직감”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방드강이 말로의 편지를 인용한 다음, 말로가 인생의 중요한 연도, 직함 등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불확실하다”라고 덧붙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어 변역판의 부제와 작가 이력에 관해서도 방드강은, 자료는 분명 말로 자신이 제공한 것이겠지만, 이 작품을 작가의 체험담으로 만들고 있는 부제 “광둥 전투의 일기” 나 작가소개는 독일어 번역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23)

    방드강의 각주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로제 스테판은 젊은 시절의 말로와 관련된 자료들을 독자적 시각으로 제시할 뿐, 공상허언증에 관한 개인적 판단은 내리지 않고 있다.24)

    한편,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는 중국혁명과 관련된 시기뿐 아니라 말로의 생애 전반과 작품세계를 소위 신화에 대한 그의 집착과 결부시켜 고찰하였다. 다만 그는 말로가 소설에서 묘사한 공상허언증을 소설가 자신의 이미지로 환원시키는 데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우선, 리오타르가 보는 소설 속 공상허언증의 힘은 이런 것이다. “지조르가 (『인간의 조건』에서 연극을 투우 경기와 대립시키듯) 소설과 대립시켰던 ‘공상허언증’은 예술적 제스처의 위력을 얻었다. 임상적 관점에서 볼 때 편집증의 증후군인 공상허언증은 실제로 신화생산의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인생이 그 어떤 역사적 맥락도 벗어나게 할 수 있고, 그것이 본보기가 되도록 할 수도 있으며, 또 그것을 일반적 부패 상태에서 건져낼 수도 있다.”25)

    하지만, 말로의 삶에서 신화, 즉 프로메테우스적인 야망이 갖는 의미를 통찰한 리오타르는 말로의 삶에 관한 한 공상허언증 대신 “신화생산 mythopoïèse”이라는 조어를 제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화생산은 이른바 ‘인생’이라는 것을 허구화하는 것이다.”26) 공상허언증이 말로의 소설을 통해 예술적 제스처로 비춰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신의학적 병명으로 작가를 진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실된 것은 신화생산이 서명하는 바 그것이지, 제삼자가 확인하거나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27)라는 그의 단언은 말로를 표적으로 한 공상허언증 시비 자체를 일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  Ⅲ-3.

    2001년은 말로 탄생 100주년이면서 25주기를 맞는 해였다. 이번에도 말로의 작품보다는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관심을 끌었고, 어김없이 그의 신화와 결부된 공상허언증이 거론되었다.

    R.P.F(프랑스국민연합) 출범(1947년) 이후 30년 가까이 말로를 보좌했고, 두 차례나 말로의 보도 담당관을 역임했던 브리지트 프리앙Friang의 『말로 주위의 작은 탑Petit tour autour de Malraux』28), 전기 작가 올리비에 토드Olivier Todd의 『앙드레 말로, 인생André Malraux, Une vie』이 때맞춰 나왔다. 공상허언증에 관한 한 이미 알려진 사실들 외에 특별한 내용을 밝힌 바 없는 프리앙에 비해, 토드의 전기는 많은 관심과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토드는 말로의 생애 전반의 ‘신화’를 낱낱이 파헤치면서, 현실과 허구를 천연덕스럽게 뒤섞어가며 자기 신화에만 매달린 말로는 평생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영원히 소년으로만 머문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신화가 확산된 1차적 책임이 당연히 말로 자신에게 있는 이유이다. 흥미로운 것은, 토드 역시 30년 전에 라쿠튀르가 그랬던 것처럼 2차적 책임을 전기작가, 비평가에게 물으면서 그 가운데서도 특히 라쿠튀르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라쿠튀르가 전설의 근거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결과 오히려 신화를 확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토드의 시각이다.29)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전기작가보다 더 집요하고 치밀하게 ‘참’과 ‘거짓’을 대조한 다음, 누구보다 단호하게 “인간 말로와 그의 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상허언증이 필요했다.”30)고 쓰고 있는 토드의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소위말로의 공상허언증으로 쏠리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출판 직후에 나온 신문기사들이 이러한 대중적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기만, 꾸며낸 전설적 삶, 말로는 말로의 창작품, 그의 걸작” (Le Figaro), “기막힌 거짓말쟁이, 사기꾼” (Le Nouvel Observateur), “능동적이고 서사시적이며 실용적인 공상허언증” (L'Express)31) 등이 그 예이다.

    게다가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전문가들 사이의 지상紙上 논쟁이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끝나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실시간, 쌍방향의 온라인 논쟁으로 번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 가운데 몇몇 온라인 논쟁은 지금도 뜨겁게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논쟁의 공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자크 오시Jacques Haussy 가 운영하는 www.legrandmalraux.fr 이라는 사이트이다. 사이트의 개설 목적 자체가 “‘위대한 인물’ 말로의 신화 타파 démystification du ‘grand homme’ Malraux” 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10년 이상 집요하게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해온 운영자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말로의 모든 행적은 물론 그의 창작세계까지 철저한 ‘폭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12)Jean Lacouture, Malraux, une vie dans le siècle, Editions du Seuil, 1973,   13)André Vandegans, La jeunesse littéraire d'André Malraux, Jean-Jacques Pauvert, 1964, 240-241쪽.   14)Jean Lacouture, Malraux, une vie dans le siècle, Editions du Seuil, 1973, 94-96쪽.   15)위의 책, 191쪽.   16)위의 책, 216쪽.   17)위의 책, 5쪽.   18)Jean Lacouture, Malraux, itinéraire d'un destin flamboyant, André Versaille éditeur, 2008, 72쪽   19)Voilà qui n'ajoute rien à sa gloire... (Pierre de Boisdeffre, André Malraux, la mort et l'histoire, Edition du Rocher, 1996, 225쪽).   20)위의 책, 9쪽.   21)위의 책, 164-169쪽 참조.   22)위의 책, 165쪽 참조.   23)스테판이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킨 이 대목을 제외하면, 방드강의 전반적 논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라쿠튀르를 비롯한 대부분 비평가들은 “말로의 주장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이러한 자료의 정확성을 싸잡아 부인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건 아마 지나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방드강의 안이한 해석을 비판했던 것이다. (André Vandegans, 같은 책, 240-241쪽 참조).   24)Roger Stéphane, André Malraux, premier dans le siècle, Gallimard, 1996, 51-53쪽 참조.   25)La ‘mythomanie’ que Gisors oppose au roman (comme au théâtre la tauromachie) acquiert la vertu d'un geste artistique ; syndrome maniaque au point de vue clinique, elle exerce en vérité la puissance d'une mythopoïèse ; elle fait de la vie une oeuvre, elle peut la soustraire à tout contexte historique, la rendre exemplaire et la sauver de la putrescence ordinaire où elle est condamnée. (J-F. Lyotard, Signé Malraux, Grasset, 1996, 136쪽)   26)Mais la mythopoïèse, on le verra, fictionne la prétendue ‘vie’. (위의 책, 119쪽).   27)Authentique est ce qu'elle(=mythopoïèse) signe, non ce qu'un tiers vérifie ou confesse. (위의 책, 19쪽).   28)Brigitte Friang, Petit tour autour de Malraux, Éditions du Félin, 2001. (출판 후 가진 TF1 기자와의 대담에서 프리앙은 “전설을 일부러 방치한 것과 진짜 거짓말 가운데 ‘진짜’ 말로는 어떤 사람이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진짜’ 말로를 아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 그는 자기 삶을 글로 썼고, 자기 삶을 소설로 꾸몄다.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믿는 것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http://Ici.tf1.fr/impression/79/34/0 참조).   29)Olivier Todd, André Malraux, Une vie, Gallimard, 2001, 951-952쪽 참조.   30)위의 책, 874쪽.   31)http://alalettre.com/actualite/ma;raux-todd.htm 참조.

    Ⅳ. 공상허언증과 창조적 상상력

    이상에서 소개된 평전이나 전기는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연구와 취재의 결과로서, 말로의 삶과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가운데 말로의 공상허언증 논란과 관련된 대목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그 개요를 검토해 보았다. 말로를 공상허언가로 진단하는 이들이 주로 거론하는 “날조된 이력”은 광둥혁명 외에도 스페인 내전, 항독 투쟁 등 20세기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된 말로의 영웅적인 행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말로가 실제로 공상허언가인지 아닌지를 파헤치는 대신, 전문가들의 선행연구를 요약하여 제시하는 것에 머물렀다. 본 연구의 목적이 사실 여부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추적하고, 논란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공상허언증이 엄연히 정신질환의 한 종류인 이상, 그 증상을 진단하고 원인을 추론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는 정신분석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던 작가임을 잊지 말자. “정신분석적 탐구가 초래한 괴물들”32), “우리는 얼마나 ‘사소한 진실들’에 민감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커다란 진실에 민감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33), “무의식에 관한 심리학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 감추고 있는, 그리고 대개는 민망스럽기나 할뿐인 것을,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것과 쉽게 혼동해 버렸다.”34) 와 같은 그의 진술은 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확고한 입장을 말해준다.

    또한, 우리 자신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들으면서 타인의 목소리는 귀로 들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타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로의 일관된 인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결코 “인간의 밑바닥에 가 닿을 수 없는”35) 우리의 인간적 현실을 인정한다면, 메레나 또는 클라픽 같은 허구의 인물을 분석하는 것과 그 창조자를 분석하는 것이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말로의 거짓말이나 허풍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본 연구의 몫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자들은 거짓말이 때로는 상호역동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모두가 진실을 왜곡하는 데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36). 광둥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고조된 인도차이나와 중국에 대한 관심, 말로의 인도차이나 문화재 밀반출 사건을 기억하는 독자들, 그리고 새로운 소재, 새로운 유형의 작가를 기다리는 문단의 분위기 등, 말로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자전적 이야기로 수용하게 이끌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돌이켜 보게 하는 지적이다. 『절대의 악마Le Démon de l'absolu』의 서문에서 말로 역시 신화 탄생의 배경을 이러한 상호역동적 과정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인간의 조건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오랜 열망으로 헤라클레스를 탄생시킨 이래, 인간은 어느 시대건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37) 『왕성의 길』에 제시된 다음과 같은 묘사 또한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신화 탄생의 상호역동적 과정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러한 속성을 무시한 도덕적 비판의 이율배반성까지 암시하는 이 대목이 작가 자신의 전기와 겹쳐질 때 우리는 그가 언급했던 “예감적 예술창조créations prémonitoires”39)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반회고록Antimémoires』의 프롤로그에서, 소설가가 창조한 허구가 자기 운명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예감적 예술창조라고 부르면서, 위고Hugo, 헤밍웨이Hemingway, 니체Nietzsche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실례를 열거한 바 있다. 소설가의 삶이 과거에 자신이 지어냈던 허구를 닮아갈 때 소설은 “자기 운명의 예고”가 된다. 그가 『왕성의 길』에 도입한 공상허언증이라는 생소한 어휘, 『인간의 조건』에서 창조한 클라픽의 캐릭터 등이 후일 작가 자신을 규정하는 용어로 차용되었다는 점 외에도, 방금 인용한 페르캉의 상황이 마치 말로를 둘러싼 공상허언증 논란의 예고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이것 역시 예감적 예술창조의 실례로 보아야 할까? 혹은 역으로, 소설에 투영된 작가 자신의 삶으로 보아야 할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의 삶과 작품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앞서 우리가 검토했던 선행연구 가운데 일부 오류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아무리 자전적인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작가의 삶과 대조하여 일치 여부를 문제 삼거나 참과 거짓으로 구분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판단한다. 앞서 우리가 소개했던 전기 가운데 부아데프르와 토드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동일한 범주에 포함시킨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로서 범주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소설뿐 아니라, 『반회고록』이나 『밧줄과 생쥐La Corde et les Souris』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에서 역사적 엄밀성exactitude historique을 문제 삼는 것도 오류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반회고록』의 초판에서 작가는 무려 12쪽에 달하는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이 왜 ‘반’anti회고록인지를 역설하였고, 회고록은 역사가 아니라 문학작품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본문에서 일관되게 나타낸 바 있다. 『밧줄과 생쥐』 역시 프롤로그로 쓰인 짤막한 우화를 통해, 현실의 구속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초자연적 상상력의 세계를 암시함으로써 표제의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40) 누구보다 작가와 작품 간의 거리를 강조했던 말로는 소위 ‘고백록’ 조차도 그 작가의 삶을 판단할 합당한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영역은 삶의 영역이 아니다. 루소Rousseau의 오만한 수치심은 장 자크Jean-Jacques의 가련한 수치심을 허물어뜨리기는커녕 불멸의 약속을 보장해 주었다.”41) 삶과 작품, 현실과 예술을 구분해서 고찰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 전제가 되어 마땅한 이유이다. 더구나, 현실과 허구의 혼재를 공상허언증 비판의 논거로 삼았던 비평가들이 정작 말로의 삶과 작품을 뒤섞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2)André Malraux, Antimémoires, Gallimard, 1967, 15쪽   33)위의 책, 15쪽.   34)위의 책, 16쪽   35)위의 책, 17쪽.   36)찰스 포드, 우혜령 역, 『마음을 읽는 거짓말의 심리학』, 이끌리오, 2006, 140-141쪽 참조.   37)André Malraux, Œuvres complétes II, Gallimard, Bibl. de la Pléiade, 1996, 819쪽, 823쪽.   38)André Malraux, Œuvres complétes I, Gallimard, Bibl. de la Pléiade, 1996, 378쪽.   39)André Malraux, Antimémoires, Gallimard, 1967, 19쪽   40)“그러자 ‘불굴의 황제’는 ‘위대한 화가’에게 교수형을 언도하였다. 화가는 오로지 양쪽 엄지발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해야 할 판이었다. 힘이 다 빠질 때면...그는 한쪽 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했다. 다른 쪽 엄지발가락으로는 모래 위에 생쥐들을 그렸다. 생쥐들을 얼마나 잘 그렸던지, 그것들이 화가의 몸을 기어 올라가 밧줄을 갉아먹어 버렸다. ‘불굴의 황제’는 ‘위대한 화가’가 굴복할 때 다시 오겠노라 했었기에, 화가는 종종걸음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는 생쥐들도 데리고 갔다.” (André Malraux, Œuvres complétes III, Gallimard, Bibl. de la Pléiade, 1996, 485쪽).   41)André Malraux, Antimémoires, Gallimard, 1967, 13쪽.

    V. 맺는 말

    우리는 본 연구의 도입부에서, 말로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공상허언증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의 작품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바 있다. 대부분의 영웅 신화에 따라다니기 마련인 과장, 허풍, 거짓말 등의 일반적 수사가 아닌 정신의학적 전문 용어로 작가를 ‘진단’하는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공상허언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먼저 말로의 작품을, 그 다음으로는 말로에 관한 전기를 분석해 보았다.

    『왕성의 길』에서 메레나로 대표되는 모험가-공상허언가가 자기 신화에 집착하는 인물이라면, 『인간의 조건』의 클라픽은 아예 자기 존재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 병적인 거짓말쟁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오히려 대조적이다. 그러므로 말로가 병적인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신화화했다는 의혹은 양자의 이미지와 전적으로 일치하지도 상충하지도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꿈과 현실이 혼재하는 그들의 거짓말이 남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메레나와 클라픽의 닮은 점이라면, 말로의 거짓말도 여기에 속하는가? 말로의 전기 작가들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말로의 거짓말을 기만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비난하기 위하여 그를 공상허언가로 규정했다면, 그것은 말로가 소설에서 제시한 이미지와는 무관한 개념을 적용한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대부분의 말로 연구자들이 그의 소설에서 공상허언증이라는 용어 자체와 일부 제한된 이미지만을 차용하여 전기와 결부시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본고의 제2장에서 인용했던 클라픽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우리가 합리적 판단이라는 구실 아래 스스로 제한해버린 사유의 틀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꾸며낸다, 라고 하면 이야기를 쓴다는 뜻이지 이야기를 삶으로 겪어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렇다. 작가에게는 소설이 있을 뿐이지만, 공상허언가에게는 참이든, 거짓이든, 그가 겪은 삶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소설보다 더 진실한 세계라는 클라픽의 믿음이 만약 작가자신의 믿음이라면, 그에게 있어 공상허언증은 창조적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현실에서 공상허언증이 병적 상상력이나 부도덕한 기만42)으로 간주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하여도, 이것이 미학적 욕구와 만날 때는 예술적 창조성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상허언증 의혹은 정치가 말로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검증 사안이지만, 작가 말로에게는 처음부터 무의미한 논쟁거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42)그러나, 공상허언증 환자들이 양심의 가책이나 감정적 자각 없이 쉽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이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찰스 포드는 말한다. (찰스 포드, 같은 책,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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