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approaches Sir Thomas More, Coriolanus, Pericles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of food to national identity. These three plays examine ways in which food is essential to what constitutes English national identity, and food shortages give rise to riots thereby throwing everyday life into disorder. In Sir Thomas More food shortages are caused by foreign foodstuff and foreign habits of consumption. Rioting Londoners fear that the European foreigners’ strange dietary habits would do harm on English food, the English body and English economy. In Coriolanus starvation is the primary trigger for the enmity between the senators and citizens. Menenius employs the fable of the belly to quell the hungry citizens’ anger and to emphasize the senators’ role as a store of nutrition to feed the body, that is, the citizens. Coriolanus’ contempt for the body’s need comes to a devastating end. In Pericles the famine is brought about by the gluttonous consumption of specific foods. The problem of greedy consumption becomes that of living in the cannibalistic situation where mothers are willing to eat their children and married couples one another. Pericles feeds the hungry people with bread, and is also saved from starvation by the fishermen after shipwreck. In this way the three plays provide the examples of Shakespeare’s notion on healthy food and feeding.
본 논문은 셰익스피어 극작품들에서 묘사되고 있는 르네상스시대 영국 음식 문화가 영국다움을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핵심요소로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토마스 모어 경』(
음식으로 대변되는 일상성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도록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비평서는 빌리히(Michael Billig)의『평범한 민족주의』(
르네상스 극작품들을 영국 가정의 일상사 측면에서 접근한 비평서는 월(Wendy Wall)의『가정생활 무대화하기』(
그러나 본 연구는 음식을 통해 재현되는 민족정체성의 일상적 표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빌리히와 에덴서가 정체성의 재현을 대중화, 공간화, 물질화 측면에 치중하여 논하는 일상성 이론과는 차별화된다. 또한 논의의 범위를 셰익스피어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월과는 달리 이 논문은 셰익스피어 극작품에서 나타나는 일상생활의 음식물 섭취와 국가적 문화정체성 간의 관계를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된다.
『토마스 모어 경』(
필사본의 첫 출판은 1844년에 이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여긴 셰익스피어협회(Shakespeare Society) 주관 하에 이루어졌으며『이제 비로소 처음 출판된 극작품』(
본 논문에서『토마스 모어 경』에 관한 논의는 셰익스피어가 쓴 두 장면 중에서‘Addition II’에 포함된 Scene 6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필사본의 시작부분에 실려 있는 검열관 틸니의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을 무시하고 그 대신에 폭동 사건의 정황을 음식과 민족정체성 간의 관계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폭동은 헨리 8세(Henry VIII)의 재위기간인 1517년 5월 1일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서 런던에 거주하는 유럽출신 외국인들에 대한 런던 사람들의 증오감이 폭발하여 거대한 시민봉기로 전개되었던 소위 ‘불운의 5월 1일’(Ill May Day)을 뜻한다. 사건의 주동자들은 반역죄로 처형되었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등장인물 링컨(John Lincoln)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유럽대륙에서 이주해오는 외국인 상인 및 장인들을 자국의 경제력과 자국민의 기본생활권을 침해하는 위협요소로 보았다. 증가하는 외국인 수와 비례하여 적대감 또한 만연해지자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는 1559년에 외국인도 자국인과 똑같이 국법에 따라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법령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왕의 외국인 보호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토마스 모어 경』대본작업을 하던 즈음과 직후인 1592년과 1595년에도 대규모 시민봉기가 일어났다. 역사적 정황을 고려해볼 때 틸니가 시위와 관련된 장면을 엘리자베스 1세의 외국인 이주민 보호정책에 대한 과감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Honigmann 79). 그는 런던시민의 분노를 자극한 외국인 출신 범위를 비교적 소수에 불과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Lombardy) 지역에서 이주해 온 롬바르드 사람들(the Lombards)로 제한함으로써 작품에 담긴 폭동 문제의 심각성과 여파를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폭력 시위를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던 실재 인물 카블리에(Cavelier)는 본래 프랑스인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롬바르드인으로 변경되었다. 금융업에 능숙했던 롬바르드 출신들은 13세기 후반에 영국에 이주해왔고 이들의 사업 근거지였던 런던의 롬바르드가(Lombard Street)는 지금까지 영국 금융계의 중심이 되어오고 있다. 당시에‘롬바르드 사람들’이라는 용어는 통상적으로 롬바르드가에 살던 부유한 외국 상인들과 은행가들을 지칭하였다. 하지만『토마스 모어 경』이 나온 16세기 말에 이르게 되면 롬바르드인 공동체는 거의 사라진 상태에 있었으며 당대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대상이 되지못했다.
셰익스피어는 틸니의 지적사항을 수용하는 대신에 시위 주모자들이 집단행동의 이유와 명분을 정당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원래 대본의 연극적 전개방식을 준수하고자 하였다. 폭동을 정치적 반란 행위로 규정하기 보다는 음식으로 대변되는 영국문화의 연속성과 안락함을 영위하려는 영국인의 일상적 욕구의 표현으로 묘사하였다. 이럼으로써 셰익스피어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음식에 담긴 영국적 정서가 민족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주장을 펼치고자한 것이다. 개정작업 당시 정치기류의 변화도 그가 검열사항을 간과할 수 있는 데 한 몫을 하였다. 1603년 튜더(Tudor) 왕가의 마지막 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스튜어트(Stuart) 왕가의 제임스 1세(James I)는 유럽의 가톨릭 적대 국가에 대해 화해외교를 진행하면서 평화유지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외교전략은 제임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위해 직접 쓴 지침서인『국왕다운 자질』(
셰익스피어는 시민봉기를 영국 식생활의 근본을 흔드는 외국인 이주자들의 상술에 대처하는 저항의 양상으로 묘사하면서 문화정체성을 회복하여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집단적 의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음식을 생산국가와 동일시하여 정체성을 논할 때 이는 음식에 각인된 집단성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점은 시위를 주도한 링컨이 국내산과 외국산 식품을 차등하고 이 차이에서 외국인과 다른 영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서 드러난다. 국내외 식품 간에 경계선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민족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외국에서 수입된 식품을 국가경제와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소로 규정한다. 링컨의 비난은 4가지 측면에 초점을 둔다. 즉, 외국인들이 식품시장의 상권을 점유하여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과도하게 식탐을 부려 많은 양의 음식을 소비함으로써 식량부족 현상을 야기하며, 활기에 찬 젊은이의 건강에도 해로운 수상한 농작물을 수입하는 바람에, 이러한 독성식품을 섭취한 영국인들이 나쁜 질병에 감염되고 있다는 점이다.
링컨은 외국인을 향한 적개심을 도덕적 당위성 측면에서 정당화한다. 외국산 채소는 영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질병의 위험성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통제되어야만 하는 타자로 간주한다. 토착 식문화의 건강질서를 무너뜨리는 수입산 식품은 마땅히 배제와 거부의 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점을 확고히 한다.
링컨은 건강한 신체, 건전한 식습관, 자연친화적 유기농법을 영국성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오염시키는 외국산 유해성 작물로 파스닙을 실례로 든다. 하지만 그가 질타하는 파스닙의 속성은 독성이 많아서 인체에 치명적이고 햇빛에 닿으면 피부염을 일으키는 야생종에 더 적합하다. 식용 파스닙의 경우는 이 작품이 나온 16세기 말 경에 이미 영국 농가에서 재배되는 영국채소로 토착화되었고 “위, 신장, 방광, 폐 등에 좋은”식품으로 공인되었다(Evans 1781 n. 9. 재인용). 영국산 식품으로 정착한 파스닙의 위상은 영국이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식 민지를 개척할 때 가져간 주요 농작물 중의 하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그런데도 링컨이 실제 양상과는 무관하게 파스닙을 이방인의 음식으로 배척하는 이유는 롬바르드인과의 연계성 때문이다. 롬바르디 지역은 파스닙의 근원지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의 핵심 도시인 밀라노(Milan)에서는 파스닙을 천상의 선물로 칭송하였으며 환상적 진미의 음식으로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식문화 관습으로 인해 파스닙은 롬바르드인과 동일시되었고 이탈리아 원산지 식품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따라서 링컨이 파스닙을“bastards”라고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실제로는 이를 즐겨 먹는 롬바르드인 드 바르드(Francis de Barde)와 카블리에를 지목하는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두 인물은 영국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부도덕하고 부적법한 행동으로 악명 높다. 드 바르드는 결혼한 여성들을 유혹하여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후 이를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행동으로 영국인 공동체에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겨준다. 카블리에는 별미의 식재료인 비둘기를 구입해주기로 하고 돈을 미리 받아 내고서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상거래법을 위반하고서도 오히려 그는 비둘기 고기 같은 고급 음식은 영국인의 천박한 식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영국인 식사로는 일반 소고기나 고기 삶은 국물 그리고 이 국물에 적신 빵 정도면 충분하다고 조롱하는 카블리에는 음식과 식성의 차이에서 영국인의 식생활을 통제하려는 당위성을 찾고 있다. 그의 식품시장 개입은 영국인이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즐겨야 할 음식을 탈취하여 일용할 수 있는 음식량을 부족하게 만들고 이로써 가격폭등을 유도하여 부를 축적하는 외국인의 약탈행위를 대변한다. 이처럼 드 바르드의 성적 탐닉과 카블리에의 상업적 탐욕은 영국의 것을 자의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링컨이 사용하는 ‘bastard’ 용어는 영국문화의 소비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외국인에 대한 분개심의 표출이 된다.
링컨을 비롯한 주모자들이 봉기를 결심한 이유는 외국인이 상권을 남용하여 영국민을 배고픔과 결핍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데도 헨리 8세의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주재 이탈리아 영사관이 철저하게 롬바르드인의 경제활동을 보호하는 것과는 달리 식량문제를 겪고 있는 자국민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헨리 8세 정부의 처사에 격분한 것이다. 런던시민의 시위는 뜻한 바대로 당국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 반역행위로 지목을 받게 되고 모어의 충고에 따라 사면을 청원하는 처지가 된다. 모어의 설득전략은 상상적 공감에 기초한다. 그는 시위자들에게 해외에 나가 외국인이 되었을 경우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를 상상해보도록 촉구하면서 국내에서 폭력으로 외국인을 대하면 이후 외국에 나갔을 때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모어는 음식에 의한 배타주의가 국가 간 분리주의로 확대되어 반목과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시위자들에게 음식문화의 차이에 관한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세계적 경험을 사유할 것을 요구하며 이들을 회유한다. 내국인이나 국인이나 모두 법의 보호 하에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시킨다(Bate 310).
『토마스 모어 경』에서 음식은 영국인의 자기재현과 자기구성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외국인들이 음식의 가격폭등, 무절제한 식습관, 불량식품 수입에 의한 역병의 확산 등을 야기하면서 영국 식문화 질서에 개입할 때 이는 영국인의 주체성 형성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민봉기는 음식이 영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보편적 언어로 존재하지 못하고 영국인의 생활권을 위협하는 약탈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발발하였다. 모어는 음식으로 인한 약탈이 폭동이라는 또 다른 약탈로 전개되는 양상을“사람들이 몹시 굶주린 물고기처럼 서로 상대방을 잡아먹게 되는”(men, like ravenous fishes, / Would feed on one another)(96-97) 상황으로 비유한다. 그가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역과 민족에 묶이지 않은 문화적 개방성을 강조한 것은 음식이 먹잇감 사냥의 이미지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 것이다.
『코리올레이너스』(
1607년에 중부지역에 전례 없는 흉작이 들어 곡물 수거량이 턱없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폭등하자 기근의 원인이 소작농의 곡물재배지 사용을 금한 지주계층의 인클로저(enclosure)에 있다는 불만감이 극대화되었다. 이미 1601년에 엘리자베스 1세가 인클로저 운동과 흉년으로 농민들이 걸인과 유랑민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교구(parish) 단위의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빈민을 책임지고 구제를 마련하도록 하는 구빈법(Elizabethan Poor Law)을 제정하였지만 재난을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민법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교구주민이 내는 구빈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흉작이 드는 경우 급증하는 빈민을 구제할 재정적 능력이 있는 교구는 극소수에 불가하였다. 또한 구호대상자의 분류는 전적으로 지방관리 구빈감독관들(Overseers of the Poor)의 판단력에 의존하였는데 지방행정 특성상 업무에 대해 보수를 받을 수가 없어 이를 충당할 명분으로 부정과 부패가 빈번히 일어났다. 이에 농민반란은 인클로저 방식을 도입하여 공용농경지를 사유목축지로 변경하고 농민을 농촌에서 내몰아 빈곤과 기아를 야기한 지주계층에 대한 분개심이 폭발한 것이다(Fitzpatrick 82). 『코리올레이너스』의 시작부분에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우리는 빈민으로 분류된다”(We are accounted poor citizens)(1.1.14)라며 자신들의 신분을 천명하고 “굶주리기보다는 싸우다 죽기로 모두 결심했다”(all resolved rather to die than to / famish)(1.1.4-5)며 비장함을 보이는 장면은 당시 영국의 심각한 빈민문제를 시사해준다. 실제로 “to die than to famish”라는 말은 1607년에 영국 중부지역의 워릭셔(Warwickshire) 주민들이 제출한 탄원서에 들어있는 표현이기도 했다(Miola 211. 재인용). 이처럼 고대 로마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음식고갈의 문제는 17세기 초반 영국인이 직면한 기근의 절박함과 같은 맥락에 있다.
1603년에 제임스 1세가 등극한 이후로 국왕대권(royal prerogative)의 영역을 놓고 하원과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는 서민의 식량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한 제임스 1세는 단일왕조의 강력한 군주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대브리튼의 국왕’(King of Great Britain)이라는 칭호를 채택하였고 1598년에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선포하였던 『군주의 자주권』(
이 작품에서 식량의 문제는 귀족들이 곡류를 개인 창고에 저장해두고 독식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에 초래된다. 일용할 음식을 이용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권력계층의 탐욕에 분개한 시민들의 청원은 귀족들이 곡식을 배분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시민1(First Citizen)의 주장처럼 시위자들은 인간다운 삶과 건강 유지에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음식이 지배층의 악정에 의해 소유와 권력의 상징으로 변질되어 버린 상황에 저항하고 있다.
시민1은 귀족들이 음식을 시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계층 간의 경계를 굳건히 하여 우월주의를 보존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면서, 이에 대항하여 기본 식생활 보장을 주장하는 자신들에게 음식은 수동적인 지배대상에서 능동적 행동주체로 변화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 대사는 시민들이 필수 영양분 공급에 대한 요구를 통해 의식적이고 자각적인 활동자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음식부족으로 인해 야기된 시민들의 집단행동을 진정시키고자 원로원 의원대표로 나선 메니니어스(Menenius)는 기지를 발휘하여 신체를 구성하는 부분과 국가를 구성하는 계층을 연계하는 비유법을 만들어낸다. 비유법에서 신체는 로마라는 국가정체를 상징하며 신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귀족과 평민의 유기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메니니어스는 국민의 복지 향상에 힘쓰는 원로원 의원들을 “전체의 건강을 위해 음식물을 소화시키는”(digest things rightly /Touching the weal o’th’common)(1.1.148-49) 일을 하는 복부(belly)와 비교한다.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하여 신체의 모든 부분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변화시키는 복부의 기능은 귀족층의 역할로 비유된다. 반면에 이런 복부에 대해 빈둥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독식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폭동을 일으킨 신체의 다른 부위들(members)은 평민층으로 비유된다. 통상적으로 지배계층은 수직적 위계질서 개념을 적용하여 신체 부위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머리로 상징되곤 하였다. 이에 반해 메니니어스는 귀족과 평민의 관계를 신체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 복부에서 상하좌우 주변 부위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협력체계로 묘사하면서 시위자들을 “나의 한 몸 친구들”(my incorporate friends)(1.1.128)이라 칭한다. 그의 비유기법은 복부의 기능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신체의 다른 부분처럼 평민층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귀족층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복부에게 음식물 저장 임무가 맡겨진 것은 신체의 각기 다른 부위들이 요구하는 영양분을 적시에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구성원 전체의 공공복지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복부는 가지고 있는 음식을 모두 나누어주다 보니 항시 비어있을 수밖에 없다. 텅 빈 복부의 이미지는 받음보다는 베풀음의 기능을 부각시킨다. 이는 귀족이 식량을 창고에 저장해두고 방출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평민들에 대한 귀족 측의 항변이기도 한다.
메니니어스의 복부 비유는 시민폭동을 진압하는 데 수사학적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배고픔에 고통 받는 시위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자양분” 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당대 통념에 의하면 복부는 식욕기관이지만 신체에 만족을 줌으로써 마음도 만족시키는 지혜의 기관으로 인식되어졌다(Appelbaum 122). 그러나 메니니어스의 비유법은 이 기능을 배제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국가공동체를 주장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층적 상하질서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점은 시위주모자인 시민1을 신체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엄지발가락”(the great toe)(1.1.153)으로 비유하여 조소하면서 계급구조상 “가장 낮고, 가장 천하고, 가장 빈곤한”(lowest, basest, poorest)(1.1.155) 신분임을 인식시키는 모습에서 확연해진다. 시민1이 이에 반발하자 메니니어스는 시위자들을 음식이나 훔쳐 먹고 질병이나 퍼뜨리는 “쥐새끼들”(rats)로 총칭하면서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로마라는 국가신체에서 제외해버린다.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이 그가“이제 로마와 쥐새끼들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야. 어느 한 편이 파멸될 때까지 싸우게 되겠지”(Rome and her rats are at the point of battle. / The one side must have bale.)(1.1.160-61)라고 말하는 것은 음식의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계층 간 정체성 분리를 초래하고 있음을 확증해준다.
그러나 정작 식량문제로 인한 계층 간 분쟁에 휘말려 로마라는 정치적 신체에서 추방된 인물은 마셔스이다. 볼스키스(Volsces)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코리 올레이너스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그는 집정관(consul)으로 임명되기에 앞서 로마시민의 동의를 구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통치자가 되려면 평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공손과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례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민과의 대면은 오히려 코리올레이너스가 평소에 갖고 있던 평민층에 대한 혐오감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계기가 되고 그들과의 절대적 거리감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만다. 자신이 경멸하는 계층으로부터 신임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에 격분한 그는“당연히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을 구걸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굶주리는 편이 낫겠다”(Better it is to die, better to starve, /Than crave the hire which first we do deserve.)(2.3.113-14)라며 절식에 대한 의지를 밝힌다. 자기유도의 절식은 식량배급을 요청하는 시민들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을 향한 경멸감이 음식거부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코리올레이너스는 그리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평민들에게 양식을 무료로 제공하여 그들의 힘과 자만심을 키웠던 탓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위자들의 요구를 무시해버린다. 평민들 입장에서는 사회구조상 복부 역할을 하는 귀족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음식공급을 거부하는 그를 증오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다.
코리올레이너스의 금식은 음식의 공급만이 아니라 수요 자체를 거부하는 관계로 귀족들에게도 위협이 된다. 그는 복부로 상징되는 귀족층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음식물에서 자양분을 추출해내어 신체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복부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거부한다. 이에 대한 우려감은 복부비유를 만들어낸 메니니어스에 의해 감지된다. 시민들에 의해 추방당한 코리올레이너스가 적장인 오피디어스(Aufidius)와 힘을 합쳐 로마를 침공하려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평화사절로 위촉된 그는 면담시간을 일부러 코리올레이너스가 식사를 한 직후로 정하려고 한다. 자기보다 먼저 사절로 파견된 코미니어스(Cominius)가 설득에 실패한 이유는 식사하기 전 공복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계획에도 불구하고 메니니어스는 파수병(Watchman)의 저지로 코리올레이너스가 식사를 마쳤는지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고 그 결과 회담은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그에게 교육과 양육의 자양분을 베풀었던 어머니 보울럼니어(Volumnia)가 될 수밖에 없다.
『코리올레이너스』에서 음식의 부재는 국가 내 계층 간 정체성 갈등을 야기한다. 평민들은 식량부족과 영양결핍의 문제를 들어 폭동을 일으키며 귀족층에게 항의한다. 귀족층은 국민의 복리를 위해 애쓰는 자신들의 노력을 몰라주는 평민들을 향해 질타와 분노를 표출한다. 명예의식에 사로잡힌 코리올레이너스는 음식섭취와 육체적 안락함을 포기하면서 평민층과 귀족층 모두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어느 계층과도 정체성을 공유하기를 거부한 그는 수많은 승전을 통해 수호해왔던 고국 로마의 민족정체성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다. 이처럼 음식부재 현상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야유와 조소의 격정적 소리로 채워진다. 셰익스피어의 어느 작품보다도 적대감으로 가득 찬“소리”(voice)라는 단어가 40번이 넘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Tanner 668). 논리성이 결여된 외침의 소리는 차이와 차별, 소외와 분리를 양산할 뿐이다. 『토마스 모어 경』에서 모어가 지적한 것처럼 코리올레이너스도 음식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잡아먹게 되는”(which else / Would feed on oneanother)(1.1.185-86) 상황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모어와는 달리 갈등적 상황을 중재하지 못하고 정체성 분열 현상만 남긴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페리클리즈』(
하지만 극적 소재로 등장하는 음식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 또한『토마스 모어경』과『코리올레이너스』의 경우처럼 흉년, 기근, 폭동으로 얼룩진 17세기 초반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영국의 국내 문제를 반영해주는 두 작품과는 달리『페리클리즈』에서는 식민지 확장에 열심이던 영국의 신세계 개척사와 상관성이 있다. 페리클리즈가 항해와 난파의 과정을 통해 예기치 않게 도착한 여러 다른 국가들에서 겪게 되는 경험은 이 작품의 산출 시기인 1607년에 영국으로서는 처음으로 북아메리카에 식민지 제임스타운(James Town)을 건설하였던 역사적 사건을 시사해준다(Fitzpatrick 99).『 토마스 모어경』과『코리올레이너스』에서는 기근의 원인이 서민층을 홀대하는 국내 거주 외국인과 귀족들의 탐욕에서 기인하고 불공정 식량공급 체계의 책임이 지배층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에, 『페리클리즈』에서는 통치자의 입을 통해 기근의 발생요인을 국가의 음식문화와 국민의 식습관 탓으로 표현한다.
페리클리즈가 항해 중 도달하게 되는 국가 중의 하나인 타서스(Tarsus)의 총독 클리온(Cleon)은 자국에 닥친 기아 현상이 자국민의 탐닉과 쾌락의 결과라고 자책한다. 과거에는 외국인들에게 경외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로 부귀영화가 넘쳐났지만 그릇된 식생활로 인해 이제는 외국의 원조를 기다리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고 통탄한다. 국가가 부유해지면 사회적 유동성의 폭이 커지게 되고 계층 간의 구별이 소유재산의 과시로 대체되어진다. 과시적 소비행태는 제일 먼저 값비싼 천과 화려한 장식으로 만든 호사스러운 의상에서 나타난다(Korda 20). 그리고 가정경제에 악영향을 미침으로써 일상품이던 음식은 경제수준을 전시하는 사치품으로 변질되어간다. 음식이 건강을 제조하는 생산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눈요기로 즐기는 소비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타서스에 기근이 들은 것은 음식이 공동체의 일상성에서 벗어나 등급과 차등의 위세세력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타서스 상태는 식량고갈의 원인이 부족함이 아닌 풍요로움에서 야기되는 사례가 된다. 의복이 신체보호라는 본래 기능을 잃어버리고 유행의 상징이 된 것처럼 음식 또한 건강유지라는 원래 기능을 상실한 채 찬사와 감탄의 대상이 됨으로써 기근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클리온은 굶주림의 고통을 인간의 탐욕에 대한 신의 응징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사치한 의복으로 비유되던 음식의 남용은 여기서 보금자리 기능을 상실한 폐가로 비유된다. 가정경제의 핵심인 음식이 일상영역을 이탈하게 되면 생활을 해나가는 장소인 집도 일상성을 잃어버리고 버려질 수밖에 없다. 클리온의 비유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인 음식, 옷, 집의 삼위일체를 강조하면서 그 중심에 주식인 빵을 위치시킨다. 빵은 흙, 물, 공기 등 자연이 베푼 자원에 의해 생산된 생필 양식으로서 신이 인류에게 내린 은총의 음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타서스 사람들이 빵을 버리고 사치음식에 빠진 것은 신의 관용을 저버린 배은망덕한 행동이 된다. 생명의 양식인 빵을 무시하고 분수없이 호화음식에 집착하여 식탐을 내는 식습관으로 인해 타서스인들은 신성모독의 죄악을 범한 것이 다. 클리온은 신의 선물인 자연식품에 등을 돌리고 기이한 식습관에 빠져들었던 자국민의 절제되지 않은 생활을 “defiled” 와 “inventions” 단어를 통해 단적으로 지적해주면서 빵을 성령의 상징으로 보는 영국 국교의 교리를 시사해준다.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혹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는 사물의 질서를 무너뜨리게 되고 그 여파는 제일 먼저 질서체계의 기초를 이루는 가정에 도달하게 된다. 가정이 흔들리면 가족관계에 틈이 가고 가족경제의 견실함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게 되는데 바로 타서스 사람들의 처지가 이러하다. 이들의 참담한 사정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가족까지 잡아먹는 충격적인 상황으로 은유되고 있다. 『토마스 모어 경』과『코리올레이너스』에서도 기아에 허덕이는 상태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지만 동족 간의 개념이지 이 작품에서처럼 가족관계의 개념은 아니다.
자연의 혜택을 무시한 자만심에 대한 천벌로 부부, 부모, 자식 사이에 자연히 형성되는 질서인 인륜을 저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때 페리클리즈가 선박에 곡식을 가득 싣고 나타나 타서스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하는 모습은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한 구세주의 이미지를 구현한다(Fitzpatrick 102). 구세주 상징성은 페리클리즈가 클리온에게“제 선박들은 . . . 귀하의 궁핍한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곡식을 싣고 있으니 굶주려 빈사 상태에 빠진 그들에게 나누어주어 생기를 회복하도록 하시오”(these our ships . . . Are stored with corn to make your needy bread, / And give them life whom hunger starved half dead)(4.91-95)라고 말하는 대사에 서 표현되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타운 식민지 건설 측면에서 보면 페리클리즈는 식인풍습(cannibalism)을 가지고 있는 무지한 원주민에게 자연에서 생산된 음식의 중요성을 알리는 식민지 개척자가 된다(Appelbaum 249-50). 식인을 하는 식성은 일반적으로 대식 또는 폭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독교 전통교리 에서 금하는 일곱 가지의 큰 죄(seven deadly sins) 중의 하나가 된다. 식습관과 연관된 이 죄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규정됨으로써 너무 빨리 먹기, 너무 비싼 음식 먹기, 너무 많이 먹기, 너무 열심히 먹기, 너무 맛있는 음식만 먹기 등의 행위를 금지한다(Fitzpatrick 11-12). 이러한 유형들은 까다롭게 진미의 음식만을 찾다가 식량이 고갈되어 식인까지 하게 된 타서스 사람들의 식생활 방식과 연계된다. 따라서 페리클리즈가 빵의 주원료인 곡식을 타서스 사람들에게 가져와 보급하는 행동은 절제 없이 식인생활에 빠져든 미개인들을 교화하여 인간다운 음식문화의 질서를 바로 잡는 개척자 행위를 상징한다.
타서스의 기아현상은 클리온의 말대로 백성들의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복지국가를 향한 통치자의 개입이 어려워져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가경제의 토대를 형성하는 가정경제의 중요성을 무시한 인물들은 지배층인 클리온 부부이다. 타서스로 귀국하는 항해 중 불어 닥친 폭풍우 속에서 아내가 딸을 출산하고 죽자 페리클리즈는 어린 딸의 양육을 클리온 부부에게 위탁하게 되고, 클리온 부부는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원한 페리클리즈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그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때 클리온은 페리클리즈 딸을 돌보는 것이야 말로 식량보급으로 올바른 음식문화 회복의 혜택을 받은 자국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만약 양육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 지상에서는 백성들이 반기를 들 것이고 하늘에서는 신이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벌을 내릴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러나 만일이라는 가정된 상황을 예시한 이 말은 결국 사실이 되고 만다. 클리온 부부가 페리클리즈의 딸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타서스 사람들이 분개하여 이들과 가족 모두를 궁전과 함께 불태워버린 것이다. 클리온이 예측한대로 백성들은 음식혜택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양식제공의 은혜를 베푼 구세주에 대한 배신행위는 음식문화의 윤리체계를 범하는 행위로서 신의 응징을 받게 된다는 이들의 믿음이 클리온에 대한 봉기를 정당화한다. 클리온 부부는 페리클리즈에게 받은 자양물을 그의 딸에게 되돌려주는 양육의 의무를 저버린 대가로 가정이 파괴되고 집안이 멸족 당하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반면에 폐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던 페리클리즈는 죽은 줄 알았던 아내와 딸과 재회하고 꿈에 그리던 가정을 이루게 된다. 페리클리즈 가족의 재생과 재활의 삶은 음식의 자양분으 로 활력을 되찾은 몸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음식을 민족정체성의 핵심요소로 보고 타서스 사람들을 구제했던 그에게 구원과 정체성 회복의 축복이 내린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페리클리즈와 클리온이 처하게 되는 상반된 상황은 음식의 공급과 수요 간 균형과 식문화의 질서의 근본책임이 지배층에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세 작품들은 음식의 결핍, 고갈, 기근 현상으로 절박한 공동체의 결단과 대처를 요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토마스 모어 경』에서 식량부족에 항의하는 군중시위는 비난의 화살을 영국의 자급자족 경제를 잠식하는 유럽외국인 이주자들의 탐욕적 식습관 탓으로 돌리면서 열등한 외국인의 음식문화로 인해 영국인의 일상생활이 위협을 받는 것을 민족적 자존심과 우월감에 대한 도전으로 확대시킨다. 안정된 식생활 확립에 대한 요구로 시작된 시위는 외국인 추방이라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로 전개되고 있다. 『코리올레이너스』에서 일상사를 유지할 정도의 식량보급을 원하는 시민들은 복종과 인내를 주장하며 수사학적 어휘로만 자신들을 진정시키려던 국가영웅을 축출시킨다. 시민의 일상문화가 민족정체성을 이룬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영웅주의와 귀족주의를 내세우던 전쟁영웅은 추방당한 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외국국가의 군대를 이끌고 고국을 침범함으로써 민족적 일상구조에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범한다. 결국 일상의 익숙함과 생소함을 구분할 수 없게 된 그는 양분된 정체성 사이에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비극적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페리클리즈』에서는 일상의 음식을 섭취할 수 없을 때 서슴없이 식인행위를 자행하는 외국 타서스 사람들의 타락한 식습관을 보여주면서 음식문화를 규범적 성격을 동반하는 윤리적 원리로 제시한다. 외국인들에게 닥친 음식부족 현상을 사회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폭음폭식 습관에 의한 것으로 표현하고 타당성과 도덕성의 잣대로 외국의 음식문화를 타자화한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페리클리즈가 제공하는 음식은 영국인의 기본 일상식품인 빵이다. 빵은 타락한 외국식문화를 쇄신하는 영국인의 구원자 역할을 상징한다.
세 작품들은 기본 생계수단인 음식이 결핍되어 마음에 평온과 만족감을 주는 기능을 상실할 때 긴장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를 재현해보이면서 음식공급이 중단되고 익숙한 식습관이 파괴되는 위기상황이 국민의 일상화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위축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특징을 보이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이들 작품에서 음식을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민족성의 상징적 기표로 제시함으로써 정형화된 추상적 관념이 아닌 현실의 평범한 차원에서 정체성을 논의할 수 있는 비평적 여지를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