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opposition to the long-standing tradition of humanist criticism upholding Shakespeare as a canon with universal values and transhistorical truths, cultural materialists have argued that Shakespeare is not merely a well-wrought urn for aesthetic celebration but a political text open to rereading and rewriting under the circumstances of its reception. Likewise, the history of Shakespeare’s reception in twentieth-century Germany, Brecht and Müller in particular, has demonstrated that the national poet of England can be deconstructed and appropriated for the ideological interests of their contemporary society. This insistence upon the needs of demystifying and historicizing Shakespeare is the common denominator of British cultural materialism and German Marxist drama. The introduction examines the key concepts of British cultural materialism, and locates the position of Müller in the history of German reception of Shakespeare. The first chapter draws in the notion of 'the historicity of texts and the textuality of histories’ by comparing two examples of rewriting Shakespeare, Terence Hawkes’s <Telmah> and Müller’s <the Hamletmachine>. The second chapter discusses the politics of theater and the theatricality of politics in Müller and his emphasis on the Brechtian dramaturgy of diegesis as means of foregrounding meta-critical function and political self-consciousness, and also compares the different textual effects of subversion and containment in terms of character-oriented reading and plot-centered reading. The third chapter investigated Müller’s politics of deconstructing Shakespeare’s plot and his strategy of reading formation whereby the liberal humanist concept of ‘individual’ is transformed into the cultural materialist counterpart of ‘subject’. Although cultural materialism and Müller’s drama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in genre, background, and emphasis, they share a series of ideological underpinnings. First, both serve a historical comment in the mode of creative writing. Second, both emphasize the political commitment and ideological effect of literary text or theatrical performance. Third, both put their ideological base on Marxism so as to construct a new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finally create a better society by means of cultural practices. There commonalities underlie the politics of Marxist Shakespeare wherein the constant dialogue between past and present are made possible and desirable as well.
보편 진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서 셰익스피어의 정전적 입지를 옹호하는 기존 휴머니즘 비평에 반기를 들고자, 문화유물론은 역사분석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도구적으로 변형되어 온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셰익스피어를 논한다. 또한 외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사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이력을 쌓아온 독일은 기존의 고전 연극에 대항하는 브레히트와 뮐러의 출현으로 인해 셰익스피어의 탈정전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서론에서는 셰익스피어 탈정전화 논쟁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 문화유물론에 대해 기술한다. 본론의 1장에서는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의 예 중에 혹스의 <텔마>와 뮐러의 <햄릿머신>을 비교함으로써 ‘텍스트의 역사성, 역사의 텍스트성’을 논하고, 2장에서는 양자의 메타비평적 성격과 정치적 자의식을 부각시키는 디에게시스의 강조, 플롯 중심 읽기와 인물 중심 읽기를 통해 본 전복과 봉쇄의 문제를 다루며, 3장에서는 플롯의 정치성, 그리고 해체를 통한 개인의 주체화를 살펴본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비평과 희곡이라는 장르상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맑시즘을 기본으로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탈정전화 논쟁을 돕는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을 공유한다. 첫째, 창조적 글쓰기를 동원한 역사논평의 형태를 취한다. 둘째,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텍스트의 정치적 유통과 재생산에 관심을 두고 정치적 참여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셋째, 무엇보다 맑시즘의 역사관에 기반을 두고 자율적이고 미시적인 실물역사관을 첨가하여 새로운 역사의식 설정에 주력한다.
객관적 역사 서술보다는 역사화 과정과 역사성(historicity) 자체에 대한 강한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역사 연구의 최근 경향이다. 20세기에 들어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역사 분야에서는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미시사(microstora)가 소설적 기법을 활용하여 과거를 재구성하는 역사기술방법을 선보였고, 문학비평에서는 1980년대 중반 영국의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1)이 현재의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적인 비문학 텍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아 과거의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려는 역사주의 운동을 펼쳐왔다. 역사학과 문학비평의 이러한 조짐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리얼리티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를 통찰함에 있어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의 텍스트성을 분명히 직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학의 외형을 쓰고 새로운 역사관의 형성을 추구하는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의 연극은 단순한 무대미학을 넘어 사회주의 유토피아 실현과 관련한 당대 동독의 현실에 대해 정치․사회․역사적 논평을 함축한다. 뮐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을 공시적․통시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전유하여 하나의 정치적 실천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고전․정전․셰익스피어에 정치의식을 투영해 <햄릿머신>(Die Hamletmaschine/The Hamletmachine, 1977)을 쓰고자 한다. 이와 같은 창작의도 및 원리는 문화유물론적 글읽기, 더 나아가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의 그것과 많은 부분 상응한다. 문화유물론과 뮐러의 역사관은 양자 모두 맑시즘을 기반으로 하는데 전자는 문학비평을 통한 정치적 실천을, 후자는 극작과 무대화를 통한 정치적 실천을 추구하면서 역사비평 행위와 창조적 글쓰기의 접점에 존재한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역사분석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셰익스피어가 문학과 미학의 연구 대상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예증한다. 서구문화의 뿌리인 휴머니즘과 보편주의의 인식론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것인데, 셰익스피어는 가치중립적인 보편 진리를 담지한 위대한 작가로 추앙됨으로써 영문학 사상 가장 두드러진 정전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휴머니즘 비평에 반기를 들기 위해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와 문화유물론은 초기 근대 영국과 유럽의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이 문학을 포함하는 문화현상들과 맺는 역사적 상관관계에 주목하는 가운데, 특히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도구적으로 변형되어 온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셰익스피어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편 외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사에 있어서 가장 괄목할만한 이력을 쌓아온 독일은 20세기에 들어 기존의 고전 연극에 대항하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출현으로 인하여 셰익스피어 해석 및 수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또한 셰익스피어의 탈정전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셰익스피어를 이중적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자 하였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극단적 개인주의가 낳은 야만과 살육의 세계로 비판하면서도, 작품 속에 편재하는 복합성, 비규정성, 모순성이 삶의 복잡다단한면모를 그려내어 준다는 점에 있어서 셰익스피어를 관객의 수동성과 무력감을 교정시켜줄 위대한 리얼리스트로 보았다.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셰익스피어는 변증법으로 파악될 수 있는 요소들을 충분히 함유한 연구 대상이었기에 그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번안과 각색 작업을 하였으나, 브레히트의 해석 방식을 준수하면서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을 보다 명확하게 실천한 사람은 바로 뮐러였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비록 비평과 희곡이라는 장르상의 격차를 두고 있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과 역사분석에 대한 의식의 노출이라는 점에서 양자 모두 셰익스피어에 대한 급진적인 전유의 예이자, 셰익스피어를 정전으로 여겨온 기존의 휴머니즘 비평에 대항하는 메타 비평텍스트들로 볼 수 있다.
문화유물론은 조너선 돌리모어(Jonathan Dollimore)와 앨런 신필드(Alan Sinfield)가 그들의 편저, 『정치적 셰익스피어』(Political Shakespeare)(1985)의 부제로 붙이면서 유통되기 시작한 용어이나,2) 원래 레이먼드 월리엄즈(Raymond Williams)에 의해 명명되었다. 문화유물론은 르네상스 연구와 관련하여 특히 발전을 보였는데, 문화와 역사의 형성을 억압하는 제반 조건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역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자율성을 부각시키며, 국가와 지배층의 권력에 대해 전복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점에서 문화유물론은 사회 질서의 변형을 꿈꾸는 미하일 바흐찐(Mikhail Baktin)의 카니발(carnivalesque) 이론과 결합한다.3)
문화유물론은 ‘텍스트의 역사성’과 ‘역사의 텍스트성’을 동등하게 강조한다. 양자가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상이한 지류를 형성하는 분기점의 하나인 ‘공동텍스트’(co-text)4)의 개념에 있어서도, 문화유물론의 경우에는 문학 텍스트와 동등하게 올려놓고 검토하는 비문학 텍스트의 대다수가 평자가 속한 동시대를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있으며 자의적으로 선택된다.5)
무엇보다 본고의 목표는, 셰익스피어의 정전화 논쟁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는 문화유물론을 셰익스피어의 전유의 예 중 <햄릿머신>에 드러난 뮐러의 역사관과 비교함으로써 그 친연적 함수를 밝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셰익스피어 탈정전화 논쟁을 실제 희곡 개작 및 창작과 관련지어 구체화하고 20세기 이후에 셰익스피어가 영국 국내(문화유물론)와 국외(독일의 브레히트 및 뮐러)에서 비판적으로 해석 및 수용되는 양상을 고찰하려는 것이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 양자는 비록 직접적인 영향관계나 실질적인 친연성은 없으나 몇 가지 상응점들을 공유한다.
첫째, 문화유물론과 뮐러의 연극은 창조적 글쓰기를 동원한 역사적 비평의 형태를 취한다. 둘째, 양자는 그와 같은 글쓰기를 통해 텍스트의 정치적 유통과 재생산에 관심을 두고 정치적 참여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셋째, 양자는 무엇보다 맑시즘의 역사관에 기본을 삼고 여기에 자율적이고 미시적인 실물 역사관을 첨가하여 새로운 역사의식 설정에 주력한다.
본문에 앞서, 연극을 통한 뮐러의 역사비평 행위가 독일의 연극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특히 동독이 어떤 이유로 영국의 문화유물론 전통과는 별개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정치적 전유의 전례를 누적시켜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로버트 바이만(Robert Weimann)은 동독이 “탈구조주의와 서구 신역사주의의 수혜를 받기 이전부터 셰익스피어를 역사적 국면에 위치시키고자 노력”해왔으며, “헤르더, 괴테, 헤겔, 맑스 등의 역사적 성찰을 동원”하여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6) 헤르더(Johann Gottlried von Herder)는『셰익스피어』(Shakespeare)에서 셰익스피어를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북유럽의 유일한 천재적 작가로 신화화하였고,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은「함부르크 희곡론」(Hamburgische Dramaturgie)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프랑스의 코르네이유, 라신의 비극과 대비시켜며 높이 평가하였다.7) 괴테의 경우에는 자신의 희곡이 전통적인 삼일치 법칙에서 벗어난 창조적 예술성을 지녔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를 부각시켰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문어체와 속어를 혼용하는 강력한 언어적 표현력을 가졌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질풍노도의 시대에 이르러 독일의 희곡 이론은 셰익스피어를 문학 사상의 새로운 전형이자 자연에 순응한 천재적 작가로 삼기에 이른다. 이후, 쉴레겔(August Wilhelm Schlegel)은 스페인극과 셰익스피어극의 낭만성에 대한 언급을 토대로 낭만주의극의 이론적 근거를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19세기의 극작가 뷔히너(Georg Büchner)는 이러한 낭만주의극 이론의 개방형․혼합형 구조와 셰익스피어극의 모자이크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8) 셰익스피어를 독일 연극 부흥의 핵심으로 삼고자 했던 독일 극문학계는, 18세기 함부르크 국립 극장이 창설된 이래로 독일 내 극장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발전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으나 199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극장은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정치적 변화의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는 20세기에 들어 통일 이전과 이후의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가 되었다.9)
바이만에 따르면, 분단 이전 독일은 질풍노도의 시대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후기 낭만주의, 브레히트를 거치는 동안 대단히 다양하고 복잡한 셰익스피어 수용 양상을 겪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중산계급을 대변하고 있었던 까닭에 셰익스피어 극 속에 있는 민중적이고 대중적인 요소들은 배척하고 ‘세련되고 정제된 시인의 사유’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셰익스피어를 수용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혹시라도 작품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전복적 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당국의 문화적 통제와 검열로 인해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 작품들의 번역이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졌다.10) 그러면서도 이 시기 동독에서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극과 비평이 발전을 보이면서 이를 맑스 레닌주의 안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감행되었다. 맑스주의의 비판적 사실주의 이론과 그것을 통한 셰익스피어 독해는 분명 영국의 문화유물론과 별개의 현상이며, 궁극적인 사상적 자양분이 맑스주의라는 사실 외에는 서로 각기 독자적인 노정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화유물론은 대중의 정치․사회적 참여를 통해 그들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주목하는 정치적 낙관론이라는 점에서 브레히트의 맑스적 낙관주의, 뮐러의 건설적 패배주의와 유사하다. 또한 문화유물론이 고전 텍스트가 오늘날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통시적 맥락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뮐러가 관객이 속한 시대를 고전보다 더 큰 원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과 상통한다. 문화유물론은 문화가 결코 단일한 성질의 것이 아니며 항상 생성 중임을 잘 간파한 비평방식이다. 이에 대해 뮐러의 후기극,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햄릿머신>은 다양한 비문학적 텍스트들의 병치와 혼합, 과정으로서의 연극이라는 특질을 통해 문화유물론의 입장과 하나의 맥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현재의 이데올로기를 접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실제를 탐색하고자 하였다는 것은 담론적 실천인 문화유물론과 연극적 실천인 뮐러극이 만나는 지점이다. 문화유물론은 비관적, 반인본주의적이라 비난받는 신역사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참여를 의도하는가? 뮐러는 고전․정전․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전유하며 그것을 통해 어떠한 정치 운동을 계획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국내의 담론 및 공연의 지형도에 있어서 주체적 해석이라는 과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980년대의 정치적 혼란과 학생 운동의 여파로 국내의 브레히트 연구는 미진하였고 뮐러 또한 뒤늦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비로소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도입 시기로부터 줄곧 뮐러극은 정치성이 배제된 채 한국에서 공연되어왔다.11) 목표대상으로 삼는 관객이 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터인데, 따라서 희곡이 아닌 공연에 있어서는 뮐러에 대해 맑시즘이 아닌 해체주의적 독법이 평단의 주류를 형성해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연예술 현장에서 ‘서구 문화의 주체적 수용’이라는 오래된 숙제를 역사․철학적 담론이 아닌 미장센의 측면과 주로 연관시켜 논의하고, ‘전통의 현대화’라는 직면 과제에 대해서는 고전 텍스트를 현대화하는 자체에 몰두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정전에 관한 역담론의 정립과 점검에 소홀해지지는 것이다.12)
특히 국내에서 유통되는 있는 뮐러극에 대한 해체주의적 독법의 예를 보면, 마크 포티어(Mark Fortier)는『현대연극과 이론』(Theory/Theater: An Introduction)에서 유물론,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라는 논리적으로 다소 유연하지 못한 묶음으로 하나의 장을 구성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의 대표적인 예로 톰 스토파드(Tom Stoppard), 안나 디비어 스미스(Anna Deavere Smith), 그리고 뮐러를 들고 있다.13) 물론 그의 이러한 분류 방식은 연극이 언어적 모델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육체적이고 감각적이며 내면충동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글쓰기의 차원에서 실행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라이트(Elizabeth Wright)도 『포스트모던 브레히트』(Postmodern Brecht)에서 ‘브레히트적인 포스트모던’의 예로 뮐러를 꼽고 있다.14) 그는 이 용어를 통해 브레히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융합한 형태 속에서 뮐러의 위치를 찾으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는데, 여기서 ‘포스트모던’이라 함은 라이트가 무엇보다 뮐러의 연극적 실험성을 염두에 두고 붙인 개념이다. 20세기의 정치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맺는 불가분의 양상에 대한 뮐러의 언급을 인용함으로써 라이트는 연극형식에 대한 논평에만 안주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브레히트적’(post-Brechtian)이라는 용어가 오히려 걸맞을 뮐러극을 본질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결부시키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이렇게 현대 연극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영향력 있는 저서들이 뮐러극의 근원인 정치적 관객을 무시하고 형식미학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려 함으로써 <햄릿머신>을 해체주의의 대표작으로 분류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뮐러극에 대한 일방적인 해체주의 분석은 뮐러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 뮐러는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해체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방법론과 분석틀로서 전유하긴 했으나, 관객과 공연 간의 소통 작용을 중시하는 뮐러의 사상과 역사관에 기울이는 각별한 주의를 전제하지 않고 형식과 무대 연출론을 강조하는 것은 뮐러극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뮐러의 역사관․연극관 자체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여 그를 또 하나의 정전화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뮐러는 동독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근거하여 셰익스피어를 전유하였기 때문에 그의 방식이 또 하나의 보편으로 선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역사․정치의식을 강조하는 연극일수록 관객의 정체성과 상황의 특수성이 바로 ‘독해상황’이며 ‘공연문맥’이 된다. 왜 독일과 한국의 뮐러극은 그 해석 방식의 관심사와 무대 결과에 있어서 다른 양상을 띠는가?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공연학적 시각을 통해서만 다루어질 사항이 아니라 문학비평의 시각으로 보완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한국과 독일, 양국의 해석 방식을 비교하는 것은 고전의 다시 쓰기와, 더 나아가 비교문화연구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확보하는 의의를 지닌다. 문화유물론과 뮐러 역사관의 비교는 결국 한국에서 셰익스피어가 일면 담론과 연극의 양차원에서 얼마나 비정치적이고 몰역사적으로 수용되어 왔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부연할 것은,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의 입장을 통하여 셰익스피어의 해석방식을 재고함은 단순히 서양의 것을 서양의 인식틀로 견주어 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셰익스피어라는 영국의 문화적 자산을 영국내 좌파성향의 문예비평 중의 하나인 문화유물론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것은, 셰익스피어 신화를 비판하기 위한 영국 문예비평계의 자구적인 시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뮐러극은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독일이 자국의 문화적 함양을 위해 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노력한 가장 적극적인 예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주체적 담론형성을 위한 시각 확보 차원에서 영국 내의 좌파문예비평을 독일과 같은 외국의 셰익스피어 수용사와 함께 견주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론의 제1장은 문화유물론의 글쓰기 방식에 관한 것으로, 고전․정전․셰익스피어에 대한 문화유물론과 뮐러의 입장을 유사성의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양자의 대표적인 글쓰기의 예를 제시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문화유물론의 글읽기 방식에 연극학적 논의를 첨가하여 동독 초기의 사회현실과 관련된 브레히트의 역사관과 연극론을 뮐러가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대한 꿈을 <햄릿머신>에 투영하고자 하였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햄릿머신>이 셰익스피어를 전유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탈정전화의 새로운 비평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1)문화는 하나의 전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점에서 문화유물론은 좀 더 포괄적인 학문운동으로서의 영국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문화연구 대신 문화유물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로 한다. 2)문화유물론과 신역사주의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Jonathan Dollimore, "Introduction: Shakespeare, Cultural Materialism and the New Historicism" in Political Shakespeare: New essays in Cultural Materialism, eds., Jonathan Dollimore and Alan Sinfield,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5, pp. 2-17 참조. 3)프랑크 렌트리키아, 『신역사주의』, 김옥수 옮김, 서울: 한신문화사, 1994, 366쪽 참조. 4)피터 베리, 『현대문학이론 입문』, 한만수 외 옮김, 서울: 시유시, 2001, 293쪽 참조. 5)Louise Montrose, "New Historicisms," in Redrawing the Boundaries: the Transformation of English and American Literary Studies, eds., Stephen Greenblatt and Giles Gunn, New York: The 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1992, p.78. 6)Robert Weimann, "A Divided Heritage: Conflicting Appropriations of Shakespeare in (East) Germany," in Shakespeare and National Culture, ed., John J. Joughin,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7, p. 182. 7)송윤섭 외(편), 『독일 연극이론 1: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렛싱까지』, 서울: 연극과 인간, 2000, 141쪽 참조. 8)김종대, 『독일 희곡 이론사』,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86, 88-141쪽 참조. 9)같은 책, 43쪽 참조. 10)Weimann, p. 152. 11)뮐러극의 국내 공연 양상은 정민영,「하이너 뮐러의 희곡에 나타난 역사관과 극작 기법」, 박사학위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 1996의 1-2쪽 참조. 12)Helen Gilbert and Joanne Tompkins, Post-colonial Drama: Theory, Practice, Politics, London: Routledge, 2001, p. 17. 13)마크 포티어, 『현대 이론과 연극』, 백현미, 정우숙 옮김, 서울: 월인, 1999, 142-198쪽 참조. 14)엘리자베스 라이트, 『포스트모던 브레히트』, 김태원, 이순미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2000, 184쪽 참조.
“작가의 의도는 문학적 효과의 원인이 아니라 그 효과들 중의 하나다”15)라는 제임스 카바나(James H. Kavanagh)의 말은 정전에 대한 문화유물론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뮐러가 <햄릿머신>에서 작가의 사진을 찢는16) 상징적 행위를 지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문화유물론자들에게 셰익스피어는 ‘전 문학적’(pre-literary)17) 개념이기 때문에 그의 이데올로기를 추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문화적 통화’(cultural currency)18)로서 유통되는 셰익스피어의 정전적 입지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데, 이는 뮐러가 셰익스피어를 다만 현실 인식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여기는 것과 유사하다. 뮐러는 각 고전의 개별적 가치가 아니라 ‘고전’이라는 문화적 통화의 기호적 소비를 의도한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고전의 당대와 관련한 역사적 문맥에 대해서 의도적 무관심을 가장한다.
문화유물론은 “담론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의 상호구성을 강조”19)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문화 텍스트에 대한 독해과정에는 당연히 주관성이 개입하므로 성별, 인종, 계급, 연령, 직업을 초월한 기술과 설명이 불가능”20)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독해 과정이 필연적으로 불순하다는 전제는 또한 <햄릿머신>에 드러나는 근본적인 역사관으로서 뮐러는 공연 텍스트의 진행 자체가 역사화 작업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위해 뮐러는 서지적 자아 개념으로부터 고전·정전으로서의 셰익스피어를 해방시키고, 단일한 메시지를 보내는 권위적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까지도 해체하고자 한다. 작가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은 곧 단일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었고, 관객의 적극적이며 자율적인 인식 배양을 목표로 삼는 그가 배척한 것은 무대의 교조성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브레히트식 교육극으로부터 1977년의 <햄릿머신>에 이르는 뮐러의 극작 활동은 ‘작가주의에 반대하는 작가주의’라고 할 만한 것인데, 그의 대부분의 극들이 1985년『정치적 셰익스피어』를 축으로 태동한 문화유물론에 시기적으로 앞서고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탈정전화 논쟁을 위해 양자를 비교 논의하고자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양자는 맑시즘을 배경으로 하며 역사성을 논의의 구심점으로 삼는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문화유물론의 목적론적 관점은 윌리엄즈가 제시한 문화삼분법에 투사되어 있는데, ‘잔여하는, 지배하는, 부상하는’(residual, dominant, emergent)21) 문화가 그것이다. 이것은 권력과 문화의 역동성을 강조한 그람시적 개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유물론자들은 이를 억압받는 주변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모형으로 이해하였다. 문화유물론자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권력과 문화라는 것이 “독점된 것이 아니라 여러 힘들에 의해 전유된다”22)는 사고를 반영한다. 어느 시대이든 지배하는 요소는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데, 그 권력에 의해 억압받아 온 잔여하는 세력들은 불안정한 요소들로서 일부는 지배하는 요소에 편입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지배 세력에 대한 투쟁과 전복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서 특히 문화의 측면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햄릿머신>에서 <햄릿>이라는 고전은 ‘지배하는’ 과거의 권력으로서 이제 위협적으로 현재에 재출몰하려는 역사의 유령이다. 따라서 대중은 그러한 과거의 현재화 기획을 저지하는 사고를 배양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현실의 다양한 목소리들과 충돌해야 하는데 뮐러는 이를 위해 이질적인 비문학 텍스트를 동원하고 있다. <햄릿머신>속의 햄릿은 인식의 분열을 통해, 배우와 역할의 분열을 통해 ‘지배하는’ 존재인 동시에 ‘잔여하는’ 세력의 이중성을 대표하고 있다.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진보하는 문화 헤게모니의 변증법적 분열을 통해 예상되고 기대되는 것은 바로 새로이 ‘부상하는’ 문화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정치․사회․경제적 요소들을 통해 고전을 가로질러 읽으려 한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잔여 세력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믿음의 측면에서 또한 맑시즘이라는 뿌리를 공유한다.
뮐러극이 셰익스피어를 극단적으로 재료화하는 방식은 문화유물론의 핵심개념인 ‘전유’(appropriation)와 맞닿는 것인데, 전유라는 개념은 지배세력에 대한 잔여 세력이 일부는 편입, 일부는 저항하여 기존의 억압구조가 창출해낸 가치들을 새롭게 생산, 변형함으로써 전복의 담론, 즉 부상하는 문화를 성취하도록 이끄는 인식 기재를 말한다. 이러한 전유의 개념과 연결하여 유물론적 비평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역사·문화적 측면은 ‘강화, 전복, 봉쇄’(consolidation, subversion, containment)23)이다. 강화의 작용과 효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신역사주의와 달리 문화유물론은 강화의 과정과 전복의 가능성에 대해 이중적인 관심을 가진다. <햄릿머신>에서도 <햄릿>은 권력의 통합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분석의 틀로서 제시되는 동시에 전복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는 주변문화로 전유된 양면적 <햄릿>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문화유물론과 뮐러 역사관은 강화와 전복을 한꺼번에 읽어내려고 노력하면서 과거와 역사의 전유, 즉 역사성에 근본적으로 주목한다.
둘째,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문학 텍스트가 이데올로기적 일관성과 안정성을 가진다는 환상을 불신한다. 고전에 대한 전복의 가능성은 그와 같은 ‘절합의 맥락’(context of articulation)24)에서파생되는 것인데, 이는 “너무나 많은 문화적 부호가 서로 융합하고 상호작용하기 때문에”25) 이데올로기적인 일관성과 안정성은 거의 불가능하고 대신 다수의 이질적 역사와 사회적 특정성들이 문학 텍스트 위로 부상하는 현상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몬트로즈의 지적처럼 여기에 토니 베넷(Tonny Bennett)이 말하는 ‘독해구성체’(reading formation)26)의개념이 연결된다는 점이다. 문화유물론이 독해구성체의 정치·문화적 현실을 문학 텍스트 위로 전치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듯이, 초기작부터 브레히트의 학습극(Lehrstück)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뮐러는 <햄릿머신>을 포함한 1970년대의 실험적인 작업들을 통하여 대중의 정치 인식 배양을 위해 ‘지금, 여기’를 상기시키는 다양한 자료들을 선택함으로써 <햄릿>을 하위 텍스트로 전도시킨다. 양자 모두 이질적인 텍스트들의 혼합을 통해 “그 내부에서 전복을 회고적으로 각인하고 확인하고 해석”27)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역사(History)에서 소역사(histories)로의 전이를 모색하는 글쓰기의 구성 원리를 보여준다.
셋째, 문화유물론과 뭘러극은 맑시즘, 페미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이론적 · 참여적 담론을 망라한다. 양자는 맑시즘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후기 구조주의적 성향의 한 특성으로서 단절로서의 역사와 주변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소역사들의 재현과 복구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을 셰익스피어 탈정전화 논의에 유용성을 제공하는 비교연구의 출발점에 세우고자 한다. 우선,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의 예로서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글은 테렌스 혹스(Terence Hawkes)의 <텔마>(Telmah)28)이다. 문화유물론의 대표 주자인 돌리모어와 신필드의 글쓰기를 뒤로하고 혹스를 살펴보는 이유는, 전자에 비해 후자가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가설을 창작적 글쓰기에 의해 형상화한 극단적 표본으로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희곡의 양식을 탈피해서 희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산문이나 비평문 같은 인상의 ‘극텍스트’라는 모호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뮐러극과 비교하기에 효과적이다. 더욱이 혹스는 <햄릿>텍스트 자체의 전복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햄릿>에 대한 비평사까지 다루고 있으므로 그의 <텔마>는 <햄릿>에 대한 재현의 역사로서, <햄릿머신>이라는 다시쓰기를 실천한 뮐러와 마찬가지로 전례의 셰익스피어 비평사에 대한 메타비평으로 볼 수 있다.
‘햄릿’의 영어 철자를 거꾸로 읽는 ‘텔마’는 셰익스피어와 영문학 교육의 정전화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 존 도버 월슨(John Dover Wilson)의 비평 경력에 대한 메타비평이다. 글의 시작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이루는 수미쌍관의 순환구조를 언급하던 혹스는 논리적 인과관계 없이 도약하여 문학 텍스트로서의 <햄릿>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에 관하여 묻기 시작한다. 그의 초점은 ‘문화적 통화’로서 대중들에게 내면화된 <햄릿>의 심상에 있다. 고전보다 고전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전의 여파 아래 있는 현대의 사회상을 주된 관심사로 떠올리는 혹스의 비평적 정체성은 바로 정치적 자의식이다.
혹스는 고전 텍스트의 역사성, 역사의 텍스트성을 언급하면서 고전에 대한 현대인들의 상호주체적(intersubjective) 해석의 입장을 커튼콜에 불려나온 배우들의 모습에 견준다. 커튼콜을 맞이한 햄릿은 고전 텍스트와 연극 속에서 이미 죽었으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해서 햄릿 역을 맡은 배우의 원래 모습으로 완전히 귀환하지는 못한 그런 존재이다. 이것은 현재의 우리가 고전 텍스트와 관련을 맺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시사해주는 ‘피란델로식 시간’(the ultimate Pirandellian moment)30)의 포착인 동시에 혹스의 글쓰기 전략자체를 누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텔마>라는 글 전체를 통해서 <햄릿>에 대한 구체적인 본문 비평, 윌슨의 비평행위와 그것에 얽힌 국제 정치적 배경, 혹스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를 오가는 피란델로식 시간을 펼친다. 결국 혹스는 “이야기되는 행위와 이야기를 동시에 나타내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의 대상을 혼동하는 다의적인 가치를 역사적 개념이 갖는다는 사실”31)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혹스는 자신이 추적하는 것은 ‘햄릿’이 아니라 ‘텔마’라는 점을 명시한다. 그것은 결국 “<햄릿> 당대의 시간과 계급적 차원에서 벗어나” 현 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텍스트가 된 과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 재개정하고,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33)
혹스는 이번에는 제2의 텍스트인 월슨의 비평에 대해 언급하고자 실제의 역사적 자료와 기록들에 의거하면서 소설과 같은 이야기체를 빌어 1917년이라는 시간을 재구성한다. “선더랜드를 향하여”(To the Sunderland Station)라는 제목이 붙은 소단원에서 1917년 11월 17일자 기록 속의 윌슨은 마치 이 소단원의 제목을 단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재현되어 선더랜드행 기차를 타고 그렉(W.W. Greg)의 <햄릿>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다. <햄릿>과 <햄릿> 속의 <쥐덫>은 몽타쥬되어 그 자체가 순환적이면서도 자의적인 ‘절합의 맥락’을 이룬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독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사이의 영향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데, ‘절합의 맥락’은 텍스트의 일원적 흐름을 깨고 독자의 다양한 사고를 부추기기 위한 기획이다. 이는 관객에게 자율적으로 사고할 여지를 제공하고자 브레히트에 이어 뮐러가 구사했던 ‘거리두기’에 해당하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혹스의 관심은 더욱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으로 옮겨간다. 윌슨은 틸리야드(E.M.W. Tillyard)식의 구역사주의가 담보하는 질서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사로 잡혀, 클로디어스를 악인이 아닌 보다 복잡한 성격의 인물로 분석하고자 시도한 그렉의 논문을 비판하면서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햄릿>이 직면한 위협을 불식시키고자 한다. 혹스는 월슨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뉴볼트 위원회(the Newblot Commitee)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든 “잉글랜드의 영문학 교육에 관한 보고서”(The Teaching of English in England)의 일부를 이 글에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통합을 지향하는 권력의 알리바이를 밝히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국가의 교과과정 수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문화유물론적 비평의 한 특징이다.
이 외에도 혹스는 연극의 무대 지시문에 대한 모방적 글쓰기36), 기록으로 남은 윌슨의 언급37)이나 논문38), 여러 가지 신문기사39), 편지40), 뉴볼트 위원회와 관련한 공식 연설41) 등을 구체적으로 활용하여 텍스트의 역사화 과정의 한 예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비문학 텍스트들은 문학 텍스트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오히려 정전을 압도함으로써 독자에게 정치적 참여의식을 촉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유물론적 비평은 혹스의 표현대로 “재즈 트럼펫 연주자”42)의 즉흥성을 본받아 문학 텍스트라는 악보를 자유롭게 전유하면서 연주하는 글쓰기라고 하겠다.
문화유물론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뮐러가 전유한 셰익스피어 또한 규범적 힘을 갖지 않는다. <햄릿머신> 속의 <햄릿>은 이상적 텍스트나 잃어버린 원전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마이클 브리스톨(Michael D. Bristol)은『진짜 셰익스피어』(The Authentic Shakespeare)에서 스티븐 오걸(Stephen Orgel)이 “판본수정론자들의 이상적인 믿음 속에나 존재하는 ‘잃어버린 원전’43)은결코 성문화된 텍스트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던 바를 재론하면서, 극은 애초에 ‘극-텍스트’(play-text)로 실행된 것이므로 성문화된 텍스트와 불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44) 이와 같은 시각은 이상화된 저자의 개념보다 사회적 대리인들의 ‘집단 업적’에 주목하는 것으로써 고전에 대한 뮐러의 입장과 동일하다. 뮐러도 셰익스피어의 이데올로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햄릿머신>은 일방향의 ‘문화변용’(transculturation)45) 과정을 극복하고 쌍방향의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의 변증법적 실현 가능성을 예증해준다.
<햄릿머신>은 독어에 영어 낱말들을 함유한 2개 국어로 되어 있으며 제목부터 이질적 요소들의 합인 꼴라쥬 방식으로 되어있다. 고전·정전·셰익스피어를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 즉 사회의 담론적 구성물로 놓는 것, 궁극적으로 정치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뮐러가 문화유물론적 글읽기 및 글쓰기와 공유하는 전제이다. 문화유물론적 비평의 대표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비문학적 텍스트의 적극적인 활용 또한 뮐러에게서도 두드러진다. 그런데 문학비평 방법론인 문화유물론이 문서위주로 꼴라쥬해나가는 것과 달리, 공연대본인 <햄릿머신>이 비문학적 텍스트를 차용하는 구체적인 양상은 주로 미장센을 통해서이다. 이는 <햄릿머신>이 공연대본이라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뮐러가 가진 역사관과 연극미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은유는 정치적 암시를 위한 것일지라도 고차원의 상징을 띠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뿐만 아니라 무대의 삼차원을 채우는 다각적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하여 언어와 더불어 유기적인 함축성을 창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언어는 고전 텍스트로부터 해방되어 비언어 현상을 빚게고 정치적 상징의 구체화는 무대 위의 오브제들을 중심으로 실현된다.
가령 <햄릿머신>안의 이질적인 무대배경, 의상, 소도구 등의 미장센 요소들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우선 시각적으로 낯선 것으로 만들고 있는데, 먼저 무대를 보면, 2장 여자의 유럽에 나오는 거대한 방, 죽은 여자들의 전시장, 3장 스케르쪼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대학교, 4장 부다의 페스트(PEST INBUDA), 5장 심연 속 물고기들의 폐허 등의 배경설정은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관념적인 모호함을 지닌 미장센 스케치이다.
의상과 소도구는, 2장의 시계로 된 오필리어의 심장, 3장의 죽은 철학자들이 던지는 책, 관, 오필리어의 여자 옷, 화장, 우산, 유방암 분장, 4장의 빈 갑옷, 투구, 도끼, 가면, 냉장고, 텔레비전, 작가의 사진, 영사기, 피, 맑스·레닌·마오의 두상, 5장의 휠체어, 흰 붕대 등이 등장한다. 이 외에도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춤과 폭력 또한 넓은 의미의 미장센 요소들이다.
아래 인용문은 뮐러가 “가족앨범”(FAMILY ALBUM)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부분인데, 셰익스피어의 <햄릿> 텍스트와는 무관하다. 자신이 ‘햄릿’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는 이 음성은 고전 연극의 독백 형식을 답습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쩌구저쩌구”(BLABLA)와 같은 말을 내뱉는 식으로 독백을 무화시킨다. ‘햄릿이었던 자’는 “리쳐드 3세”의 폭력 이미지(RICHARD THE THIRD I THE PRINCEKILLING KING)를 통과하여 “공산주의의 봄에 제2의 광대”(SECOND CLOWN IN THE SPRING OF COMMUNISM)가 된 사상가 블로흐(Ernst Bloch)의 모습과 중첩되면서 정체성의 ‘절합’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햄릿>이 “텔마”가 되듯 역사의 텍스트성을 강조하면서 관객의 역사 참여를 요구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뮐러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암시하는 동시에,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과 1956년의 헝가리 10월 봉기 등을 지시하는 “우울한 10월”(cheerless October)과 같은 현대사의 함의를 병치시킴으로써 인용된 과거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 셰익스피어극 속에 등장하는 올드 햄릿의 국장 행렬은 스탈린의 죽음과 겹쳐지고 상호텍스트성을 형성하면서 메타비평으로서의 <햄릿머신>의 특질을 드러낸다. 그러나 <햄릿머신>에 표출된 뮐러의 역사관은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는데, 거시적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과거의 어떤 요인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고 타락한 현재로부터 완전히 구축된 미래를 향해 진보하고자 하는 발생론·목적론·총체론의 도식을 따른다는 점에 있어서 맑스적이지만, 동시에 미시적으로는 단절과 불연속성에 근거하여 과거·현재·미래의 역사가 논리적 연관 없이 재편되고 있으며 하나의 사태 이면에 존재하는 요인들의 복잡성·다원성·우연성을 드러내 보이려 하기 때문에 일탈과 전복의 기류가 텍스트 전체에 흐른다.
역사의 총체성을 세우면서 동시에 그 환상을 무너뜨리는 이중적 기법은 문화유물론적 비평의 대표적인 예, <텔마>에서도 실행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뭘러극이 이중적이고 절충주의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를 공연학의 측면에서 설명하면, 뮐러극이 현재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주관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무대 위에 가시화하려 했던 표현주의 연극의 모티브를 차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기록과 르뽀르따쥬의 방식을 동원하는 신즉물주의 연극을 혼합하고 있음이 희곡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46)
전술했던 바와 같이,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이 정치․사회․경제적 요소를 부각시킨다는 것은 이들이 맑시즘의 역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정치․사회적 측면과 더불어 <햄릿머신>에는 “매일 혐오감을 자아내는 텔레비전”(Television / The daily revulsion: 4) 속의 “미리 준비된 수다와 제조된 즐거움에 대한 역겨움”(Disgust at prefabricated babble / At manufactured merriment: 4), “소비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백화점의 얼굴들”(the streets malls faces with scars of the shopping blitz: 4), “하일 코카콜라”(Heil COCA COLA: 4)등의 표현을 통해 경제적 측면의 부조리인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심도 드러나고 있다.
권력 구조를 전복하려는 뮐러의 시도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물질적 기반을 나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의도적 재배열과 모자이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햄릿머신>의 텍스트는 문장 형성의 수준에서는 미완이라 할 수 있을 구문들로 넘쳐난다. 해석할 수 없는 문장들과 순수 구문들이 고전․정전․셰익스피어라는 관용어의 단조로움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전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문연습은 결국 뮐러가 목적한 “모든 관계를 전복시키는 것”(OVERTHROWING ALL SOCIAL RELATIONS: 4)을 위한 언어학 차원의 전략인 것이다. 그러면서 뮐러는 “그(관계의 전복) 안에 인간이 있으니”(IN WHICH HUMAN BEINGS ARE: 4)라고 덧붙인다. 다음은 전복에 대한 메시지와 뒤이어지는 의도적 비문의 예이다.
언어에 있어서 이와 같은 의도적 균열은 뮐러극이 자기반영성과 메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모든 논평은 메타논평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47)라고 하였듯이 뮐러도 관객의 해석 행위와 연극의 자의식을 강조한다. 제임슨이 작품의 역사 상황 뿐 아니라 해석자가 처한 역사상황 자체로 주의를 돌릴 때 진정한 해석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듯이, 뮐러도 “드라마는 무대 위에서가 아닌,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48)고 언급함으로써 연극의 자기반영성이 담긴 피란델로식 시간을 정치적으로 형상화하려하였다.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와 뮐러극은 이와 같은 메타논평의 자의식을 특징으로 하기에 고전에 대한 적극적인 전유를 실행할 수 있다. 이어서「문화유물론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II」에서는 혹스와 뮐러의 즉흥성 강한 재즈적 글쓰기를 ‘피란델로의 시간’이라는 연극적 모티브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5)James H. Kavanagh, “Shakespeare in Ideology,” in Alternative Shakespeare, ed., John Drakakis, London: Methuen, 1985, p. 161. 16)"Tearing up of the Photograph of the author"(4): 뮐러의 1979년도 판본에 대한 Dennis Redmond의 2001년 영역본 The Hamletmachine을 텍스트로 삼되 장 번호를 본문과 본문 내 인용 끝 괄호안에 표기하기로 한다. 17)Kavanagh, p. 147. 18)Scott Wilson, Cultural Materialism: Theory and Practice, Oxford: Blackwell, 1995, pp. 95-96. 19)Montrose, p. 395. 20)Ibid., p. 396. 21)Raymond Williams, Marxism and Litera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pp. 121-127. 22)Dollimore, p. 12. 23)Ibid., p. 11. 24)Ibid., p. 13. 25)Montrose, p. 406. 26)Ibid., p. 398. 27)Montrose, p. 405. 28)Terence Hawkes, “Telmah,” in That Shakespearian Rag, London: Methuen, 1986, pp. 92-199. 29)Ibid., pp. 94-95. 30)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Sei Personaggi in cerca d'autore, 1921)을 염두에 둔 것이다. 31)프란시스 도스, 김미겸 옮김, 『역사: 성찰된 시간』, 서울: 동문선, 2001, 64쪽. 32)Hawkes, p. 95. 33)Hawkes, p. 96. 34)Ibid., p. 101. 35)Ibid., p. 111. 36)Ibid., p. 92. 37)Ibid., p. 104. 38)Ibid., p. 107. 39)Ibid., p. 104. 40)Ibid., p. 116. 41)Ibid., p. 112. 42)Ibid., p. 118. 43)Michael D. Bristol, Shakespeare's America, America's Shakespeare, London: Routledge, 1990, p. 131. 44)Bristol, p. 101. 45)Jyotsna G. Singh, "Shakespeare and the Civilizing Mission," in Colonial Narratives/Cultural Dialogues: "Discoveries" of India in the Language of Colonialism, London: Routledge, 1996, p. 100. 46)김미혜,「20세기 독일어권 연극의 특징」, 한국연극학회(편), 『20세기 독일어권 연극』, 서울: 연극과 인간, 2001, 14-16쪽 참조. 47)김용권 외, 『현대문학비평론』, 서울: 한신문화사, 1994, 579쪽. 48)정민영,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