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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책임과 정의: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Responsibility and Justic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책임과 정의: <세일즈맨의 죽음>*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individual responsibilities and social justice in Death of a Salesman. Raising issues which are central to the American consciousness, Miller writes about success and failure, guilt and betray, and most importantly, about love and responsibility in this social tragedy. On a general level, all of Miller's drama attempts to create a better society by exploring the demands of morality, and uncovering important individual and social needs. His thematic concerns would be issues regarding responsibilities and connection, the damages caused by capitalism and materialism. Meaningful, for his social tragedy, means a life which takes on both individual and social responsibility, and actively participate in trying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Death of a Salesman is about Willy Loman's life and death and his failure to make his dreams come true in a capitalistic society and his own misguided dreams aggravated by the society. Willy had accepted ideas of material success, and therein lies his tragedy. He lacks the sense of the real, the ability of self-adjustment to new circumstance, and social morals. He is himself responsible for his failure in the business world. His downfall and final defeat illustrate not only the failure of a man but also the failure of a prejudiced way of life. But though Willy is destroyed in the process, he is motivated by love and his death allows us to learn the importance of true values. Through Willy's sacrifice, Biff is able to accept his father's love, but recognizes the emptiness of the dreams willy left. He gains self-knowledge. Miller asserts that our society and its values have to be changed to be right and moral. Death of a Salesman underlines responsibility and social justice.

KEYWORD
사회극 , 사적 공적영역으로서의 가정 , 개인적 , 사회적 책임과 정의 , 표현주의 기법 , 부자갈등 , 죽음과 구원
  • 1. 사적, 공적영역으로서의 가정

    밀러(Arthur Miller, 1915-2005)는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사회에 의해서 소외되고 희생되는 소시민의 파멸의 원인이 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및 도덕성의 부재와 사회의 그릇된 가치질서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개인과 사회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밝히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도 아래 밀러는 그의 초기 사회극작품들인 <모두 나의 아들들>(All My Sons, 1947)과 <세일즈 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9)에서 당대 미국사회를 악에 물들게 한 타락한 기업윤리, 가족 이기주의, 왜곡된 미국적 신화, 비인간적인 경쟁심, 물질주의적인 가치 등을 비판하고 문제 삼아 개인의 책임과 사회정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적 정체성과 책임을 통찰, 유지하지 못하고 고독, 좌절 그리고 마침내는 절망으로 치닫는 비극적 현대인의 무기력하고 왜곡된 태도가 비판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비극을 일으키는 동인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병폐가 주된 문제로 다루어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경제적 성공이 보장이 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과, 한편으로는 윌리를 인생의 낙오자로 만드는 비인간화된 물질문명과 무자비한 자본주의 때문에 정신착란과 절망속으로 빠져드는 소시민의 미국적 꿈의 어둡고 위험한 측면이 비판의 대상이다.

    아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념적 세대가 기성세대의 고루한 질서와 윤리, 경직성과 배타성을 거부함으로써 세대갈등은 사회극의 주제가 된다. 이와 관련 하여 밀러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그 연관성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했을 때, 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의 충만함을 느꼈다. 거기서 <모두 나의 아들들>의 요지가 형성되었고, <세일즈맨의 죽음>의 뿌리가 발아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1)(M. Essay 126). 밀러의 극에서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개인과 사회 간의 폭넓은 관계를 분석하는 수단이 된다. 해롤드 클러만(Harold Clurman)은 밀러의 극작품에 나타난 “가부장제의 강력한 가족관계”를 지적한다2).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따르고자하는 모범적인 미덕과 가치를 대변해야 된다. 그러나 권위 있는 역할을 실현할 수 없는 아버지들인 죠 켈러(Joe Keller)나 윌리 로만(Willy Loman)은 아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완전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 두 작품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약점과 부정직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정과 불의의 책임이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그것을 재현하는 대리자에 불과하며, 아버지 위에 군림하는 감춰진 힘들이 아버지의 타락과 몰락의 주된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힘들은 죠 켈러와 윌리 로먼의 이데올로기를 고착화하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 기인하며, 이는 이들의 좌절과 실패의 원인이 물질중심 사회에 있음을 증명한다3). 이처럼 가정은 사적 영역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정치, 사회적 문제들이 논의되는 사건의 공적 영역이 된다. 밀러는 경제적 가치질서의 붕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본질적으로 왜곡하고, 또 개개인이 이러한 무질서로 빚어진 참담한 현실에서 자신의 명백한 잘못이나 책임감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개인의 자존심이나 욕망이 사회적인 책임과 충돌하는 딜레마, 이로 인한 개인의 정체성 상실과 희생, 개인과 사회 상호간의 개인적, 공적 책임 문제, 사회의 낡은 가치의 극복과 함께 새로운 가치의 발견, 그리고 올바른 삶의 방향 탐색 등을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이 연구의 필요성은 부조리한 현대사회 속에서도 좌절과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인식에로 나아가는 보통의 인간들을 탐구하여 사회개선과 인간구원에 대한 밀러의 극적 비전을 구체화하는데 있다.

    1)Arthur Miller, The Theatre Essays of Arthur Miller. ed. Robert A. Martin, New York: Viking Penguin, 1978, p. 257, 이하 이 책의 인용은 Theatre Essay, 페이지로 표기함.  2)Harold Clurman, “Arthur Miller's Later Plays.” Arthur Miller: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Ed. Robert W. Corriga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69, p. 145.  3)Janet Nafenda Balakian, “The Revolution of Arthur Miller's Dramaturgy 1944-to the Present.” Diss. New York Univ., 1991, p. 159-60.

    2. 표현주의적 기법과 비극적 동인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밀러는 한 문화가 인간의 정신을 임의로 결정짓고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과정을 드러내어 보다 절박하게 사회적인 책임, 정의 구현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그는 부도덕한 비즈니스 윤리, 물질주의적 성공신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로 인한 인간, 가정, 사회의 윤리적인 왜곡과 붕괴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죠 켈러가 단편적으로 인식하는 위기들이 확장, 심화되어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양식으로 표현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단지 한 인간의 특별한 고통이 아닌, 현대 미국의 도덕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이다. 윌리는 “자아이고 동시에 사회, 즉 끊임없이 파괴되어 가는 미국”을 형상화하는 인물이다4). 윌리의 정신은 사회적 지위와 성공, 스포츠, 인기와 명성 등에 사로 잡혀 있는 현대 미국인의 정신이다. 심리적인 붕괴위기에 놓여있는 윌리의 혼란스럽고 분명치 않은 정신상태가 미국적 신화들의 붕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개인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이윤과 효용성의 가치를 중하게 여기는 전후 미국사회의 결점들을 폭로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외부 세계가 개인의 정신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드러내기 위해 윌리 로만의 내적인 혼란을 면밀히 조사한다. 이 희곡의 최초 제목은 <그의 머리 속>(The Inside of His Head)이었다. 밀러는 삶의 다양한 진실을 탐구하고 도덕적, 윤리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을 상징적인 형태로 극화하기 위하여 사실주의극의 제 4의 벽을 표현주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과거/현재, 여기/저기, 환상/실재라는 선형적 시공간을 초월한다.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접목시켜 밀러는 대공황 이후의 세일즈맨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실적 상황을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주인공 머리 속의 주관적 사고와 결합한다. 다시 말해 밀러는 아주 막연한 꿈을 내포한 개인적 생활과 사회적 생활 간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형식, 요컨대 표현주의의 주관성과 사실주의의 객관성을 결합하는 연극양식을 고안하였다5). 표현주의적 무대 장치,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윌리의 조그만 집 주변의 견고한 고층 아파트 건물들은“ 꿈의 영기가 흐르고 있는”6) 가정에 대한 도시경제의 침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거대한 아파트 빌딩 숲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과 무자비한 자본 주의의 상징으로 가공할만한 사회적 억압을 나타낸다.

    밀러는 또한 음향과 조명효과를 이용한 표현주의적 세부묘사를 통해 윌리가 자기 환경에서 전적으로 고립된 사람임을 보여준다. 플루트 음악은 윌리가 선택한 가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보다 그의 본성에 더 잘 어울리는 소박한 꿈과 윌리의 선친을 되살아나게 하여 도시와 전원 간의 충돌을 구체화한다. 또한 오직 푸른 저녁 하늘빛만이 집과 무대 앞에 깃들이고, 그 주위는 성난 오렌지 빛으로 덮여 있다. 푸른빛이 무한한 희망과 약속된 미래를 상징한다면, 오렌지 빛은 절망과 꿈이 없는 현실을 뜻한다. 푸른빛이 약속인 동시에 인간이 잡고 싶어도 끝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을 재생해내기 위한 상징의 빛이라면, 오렌지 빛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윌리에게 과거의 불륜이나 현대의 근심을 상기시키는 현실의 빛이다. 하늘빛이 가진 자의 빛이라면, 오렌지 빛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패배 당한 자들의 빛이다. 그것은 화려함의 외양 속에 가려진 절망의 실체이며 인간이 직시하기를 거부하지만 끝내 직시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진실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꿈에 가려진 이면이다.

    외부의 적대적 압력과 그 자신의 개인적 결점, 노력 부족, 의사 단절, 그리고 자신감의 상실 등에 기인한 윌리의 희생과 좌절은 도덕성과 윤리질서가 무너지고 타락한 물질중심 산업사회에서 생존위기에 직면한 현대인이 처한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꿈은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안을 인정 하거나 상상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독단적인 형태로 변형된다. 그 모순 때문에 점차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윌리는 대공황 전후의 모순된 가치들이 드러내는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을 구현한다. 그는 우선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제시한 근면과 성실의 직업윤리, 자립정신, 인품과 개성을 통한 성공방식을 제외한 다른 어떤 관념도 생각하지 못한다. 구시대의 인간적 기준과 현대의 물질적 사고의 갈등에서 파생되는 윌리의 그릇된 가치관은 자신의 욕망과 경제적 가치들을 신화적으로 구현한 그의 선친과 형 벤(Ben) 그리고 데이브 싱글맨 (Dave Singleman)에게서 연유한다. 세 사람은 그가 견주어볼 만한 대성공 방식의 본보기로서 그에게 자기중심적인 이상을 제공한다.

    윌리의 선친은 성공을 위해 어린 자식도 버린, 개척시대의 자급자족적인 행상인이었다. 그러나 윌리가 선친에게 물려받은 “양키 행상인과 개척자”로서의 허황한 꿈이 그의 가치관의 왜곡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7).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아버지의 이력이 구시대적인 성공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윌리에게 공감은 줄 수 있지만, 현실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형 벤은 윌리 자신이 바라던 욕망과 이상을 실현시킨 그의 “다른 자아 혹은 분신”으로서 20년 전의 일에 대한 윌리의 추억과 상상 속에서 등장한다8). 벤은 선친의 전철을 밟아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대성공위업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벤의 성공에는 행운이 결정적으로 따라주었다. 냉혹함과 이기심에 있어서 하워드(Howard)와 가장 가까운 인물인 벤은 비뚤어진 자본주의 사회의 화신이다. 무정한 벤이 상징하는 사회적 힘은 윌리를 자살로 끌어 들인다. 윌리는 형제의 혈연적인 우애를 통해서도 벤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에 실패한다9). 벤은 윌리에게 그릇된 꿈이고 행복했던 과거의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윌리는 성공한 벤이야말로 자신을 지도할 수 있고 자신과 가족의 유대를 강화시켜 줄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밀러의 말대로 “윌리 로만은 무더운 7월 어느 날 얼음 케이크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려고 한다”(Theatre Essays 142). 공적으로 윌리는 판매성과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현대의 세일즈맨이나, 사적으로 윌리는 산업혁명 이전의 전원세계에 애착을 보이고 가문의 낡은 가치들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10).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사람을 벤은 엄청난 혼란과 왜곡된 상태로 몰아넣고 만다.

    데이브 싱글맨 역시 윌리로 하여금 현실과 일치하는 자아상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성공의 꿈을 불어넣은 세일즈맨의 모델이다 싱글맨은 인기를 통해서 성공신화의 꿈을 실현시킨 과거의 세일즈맨이다. 싱글맨은 윌리가 그토록 갈 망했던 “사랑의 세계, 마음의 안식, 정체성과 명예”를 가정 밖의 외부 세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Theatre Essay73). 그는 벤의 초인적인 기질이 아니라 고객의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너그러운 인간관계를 통해서 성공 하였다11). 닐 카슨(Neil Carson)의 지적대로 싱글맨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유 로운 기업가”를 대변한다12). 그래서 윌리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약자들로부터 물질적인 부를 획득하는 정글에서의 모험적인 성공보다는 미소, 호감, 접촉을 무기로 일급 외판원이 되고자 하는 꿈을 선택한다. 윌리의 이러한 선택에는 일 견 자신의 유약한 성격을 고려하는 타당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윤추구의 경쟁사회에 편입해보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 윌리의 직업 선택 역시 자신의 개성과 재능보다는 금전적인 보상의 크기를 전제로 결정된 측면이 더 크다. 아더 간즈(Arthur Ganz)의 지적대로 “윌리가 추종했던 싱글맨이 판매업으로 존경과 우애를 손에 넣었지만, 윌리는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세계 속에 혼자 있다."13) 그는 자기 선친, 벤, 싱글맨의 외형적인 성공신화에만 매달려 자신을 그토록 왜곡시킨 그들의 구시대적 성공 방식과 존재 양식의 허구성을 꿰뚫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대공황 이후 현대사회는 자본을 통한 성공의 시대이다. 냉정한 자본 가인 하워드가 군림하는 비인간화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전문적 식견, 생산성, 판매고가 비즈니스맨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 각자에 고유한 절대적 가치가 부수적인 가치로 격하되고 인간의 가치가 능률적 생산성의 필요 밑에 서게 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기계에 봉사하게 되고 기계는 멈추어서거나, 결함이 생기거나, 더러워지거나, 또는 구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인간들만이 흠이 나고, 멈추어서고, 더러워지고 외로운 존재로 남는다”(Theatre Essay 60). 밀러는 현대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작은 부속품으로 전락된 인간의 실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시대가 개인에게 시대 상황에 부합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는 능력과 변화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철저하게 비인간적인 업적주의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바뀐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윌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원 시지포스”(ur-Sisyphus)는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없는 윌리이다14). 이런 세일즈맨은 돌아갈 바위가 없다. 이는 윌리의 비극이 아니다. 그의 비극은 세일즈맨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정과 순수한 이상과 손재주를 갖고 타고난 실제의 윌리가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갈 바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윌리는 대안을 갖고 있으나 결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선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인으로 변신하려는 기회와 의지를 갖지 못한 점이 윌리의 비극적 결함이다. 그러나 소시민의 부적응을 야기한 책임은 시대적 사회 상황 혹은 개인, 이 양자에 존재한다. 이 때 밀러는 어느 한 쪽에 분명한 책임을 묻지 않고 시대의 왜곡된 상황과 개인의 잘못된 태도를 나란히 결합시키고 있다.

    4)D. L. Hoeveler, “Death of a Salesman as Psychomachia.” Modern Critical Interpretations: Arthur Miller's Death of a Salesman. Ed. Harold Bloom. New York: Chelsea House, 1987, p. 82.  5)Arthur Miller, Timebends. New York: Grove, 1987, 188. 이하 이 책의 인용은 Timebends 페이지로 만 명기함.  6)Arthur Miller, Miller Plays: One, London: Methuen Drama, 1988, Death of a Salesman p. 130. 이하 작품 본문의 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만 기재함.  7)Barry Gross, “Peddle and Pioneer in Death of a Salesman.” Modern Drama 9, 1965, p.406.  8)Neil Carson, Arthur Miller, New York: St. Martin, 1982, p. 52.  9)Campo, p. 121.  10)Barclay Bates, W, “The Lost Past in Death of a Salesman.” Modern Drama11, 1968, p. 164  11)Irving Jacobson, “Family Dreams in Death of a Salesman.” American Literature47, 1975, p. 251.  12)Carson, p. 51.  13)Arthur Ganz, Realism of the Self: Variations on Theme in Modern Drama. New York: NYU Press, 1980, p. 127.  14)John Wilson Turttle, “Arthur Miller's Revision of America.” Diss. NYU Press, 1989, p. 96.

    3.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정의

    윌리는 사회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권위를 얻기 위해 투쟁한다. 그는 외부 세계와 싸우지 않고 입신출세의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거부한다. 삶에 굴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탐색하려는 그의 집요한 의지력과 투쟁이 그를 비극적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는 두 아들에게 생계를 의탁하라는 하워드의 충고를 거절하고, 일자리를 제공해 주겠다는 찰리(Charley)에게도 자기는 직업이 있다고 강변한다. 그는 산업사회의 기계화된 현실에 대한 거부감에서 현관 입구와 지하실을 손수 수리하고 욕실과 차고를 만들기도 하며, 하워드에게 해고당하고 레스토랑에서 두 아들에게 배신을 당한 뒤 씨앗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서 한 밤중에 씨를 심는 등 자신의 삶과 가치를 필사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윌리는 이렇게 독립된 사회적 존재로서, 가족을 부양할 가장으로서, 자립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개인에 대한 평가기준이 성취 능력과 능률로 바뀐 미국사회는 사회가 요구한 자질을 갖지 못한 윌리의 자아실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의 사회적 자아실현의 실패는 하워드와의 면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워드는 늙은 윌리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예속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고, 더 이상 효율적인 업무수행이 어렵다는 핑계로 해고시켜 버린다15). 하워드는 개인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로 물질적인 이득을 착취하면서도 개인적 곤경과 도움의 요청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황금 만능주의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화신이다. 이러한 사회적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채 “오렌지 알맹이만 먹고 껍질을 버리듯이 인간을 취급할 수는 없는 거요, 인간은 과일이 아니니까”라고 윌리는 항변한다(181). 경제적 효율성 앞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뒤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한 인간의 이러한 외침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만성, 이기주의, 무책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요, 사회적인 책임과 정의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공평한 기회균등 및 생존권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바로 그런 분배의 불평등이 연출한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사랑과 인정의 세계가 비인간적인 자본가의 힘 앞에서 파괴되거나 타락한다.

    윌리와 하워드의 대화 장면에서 밀러는 표현주의적 조명을 사용하여 우리가 윌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보는 것처럼 그 세계를 바라봤다는 사실을 입증한다(Timebends 190). 그의 지각은 우리의 지각이 되고, 우리는 윌리의 욕망과 불안을 관찰할 수 있다. 레이몬드 윌리암스는 윌리의 정신적 붕괴와 표현주의 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위기상황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한다16). 그는 산업화의 확산과 전문화가 인간을 사회적 장치에 예속시켜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당대적인 현실과 결부시켜 윌리의 개인적 파멸을 이해했다. 윌리는 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타인의 비위와 기호에 맞춰 개성까지도 팔아야 되는 존재이다. 윌리는 물질적 성공을 확보해줄 것 같은 새로운 사회적, 인위적인 개성을 몸에 익힘으로써 실제 본성을 잃어버리고, 결국 자기자신을 판매한다. 윌리 로만이 무엇을 팔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밀러는 그 자신이라고 대답했다(Theatre Essays 41).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1942)에서 자신과의 소외된 관계 때문에 기만을 쫒다가 개인 생활뿐만 아니라 직업 활동 까지 파멸시키는 인간의 왜곡된 상황을 기술한 바 있다. 시장경제에서 인간은 상품을 팔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팔며 자기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느낀다. 그러므로 자신감과 아이덴티티는 타인들이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17). 인간은 무의미한 직업 속에서 단지 산업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소비자, 투표자, 납세자 등등의 기능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하나의 기능이 되었을 뿐 이제 주체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멈추게 된 것이다. 밀러는 비인간화된 현대사회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능률형태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의와 존엄성을 상실한다. 그러나 밀러는 다른 한편으로 윌리 개인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다. 그는 기존사회에 개인의 파멸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의 허구성이나 부도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한 윌리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윌리는 사회적 자아실현과 성공에의 꿈을 자신의 노력과 태도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찰리와 버나드(Bernard)의 삶에서 입증된다. 밀러는 두 인물 찰리와 버나드를 제시하여 자본주의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찰리는 친절하고 겸손하고, 인정이 많아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동정적인 인물”으로서 윌리를 아주 좋아하고 존중한다18). 그는 미국자본주의가 직면한 핵심적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기할 수 있는 “도덕적인 인물”이다19) 윌리가 인기 없는 공부벌레라고 조롱했던 찰리의 아들 버나드 역시 출세한 변호사로서 정의와 기회를 구현하는 성공신화를 입증한다. 사회극은 단지 특정한 사회체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절대가치임을 강조하여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도덕적 각성의 필요성이 윌리의 혼란상을 통해서 드러난다.

    윌리는 꿈, 환상과 자기기만으로 자신의 진정한 실체에 대면하는 것을 계속 거부하고, 결국은 현실과 과거가 교차된 무의식 세계에 갇혀 정신착란 증세까지 일으키게 된다. 밀러는 보이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상실한 인간에게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공포를 전달하고자 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밖의 현실세계와 기억, 기만과 망상으로 가득한 윌리의 내면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함으로써 그는 주인공의 심리적인 파멸을 극화하였다. “허공에 대고 결코 오지 않을 구조대에게 소리치고 있는 공포에 질린 로만(Loman)”(Timebends 179) 이라는 이름이 자아내는 불안과 혼란은 비상식적이고 갑작스러운 데가 있으며 또한 금방 서정적이 되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사건진행처럼 윌리의 분열된 의식상태를 나타낸다. 윌리는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파괴해버리고, 자신의 꿈과 기대를 좌절시킨 암담한 현실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간다. 그는 성공의 외면에 나타난 화려함으로 인해 이상화된 과거를 단지 현실의 고통스러운 절망감을 잊기 위한 탈출구로서 뿐만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찾으려는 시도로서 회상한다. 윌리는 그가 일생동안 물어온 질문, 즉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과거 속에서 찾는다. 윌리는 인기를 얻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인기는 개인의 성공과 거의 관계가 없다. 밀러는 이 작품에서 단지 성실(찰리와 버나드), 유산(하워드) 혹은 행운(벤)을 사람들이 미국적 꿈을 달성할 수 있는 성공의 열쇠로 예증한다.

    15)Thomas E. Porter, “The Mills of the Gods: Economics and Law in the Plays of Arthur Miller.” Arthur Miller: New Perspective. Ed. Robert W. Martin Prentice-Hall, 1982, p. 79.  16)Raymond William, “Arthur Miller: An Overview.” in Modern Critical Views: Arthur Miller. Ed. Harold Bloom. New York: Chelsea House, 1987, p. 12.  17)Eric Fromm, Escape from Freedom. London: Routledge, 1960, p. 103.  18)Brain. Parker, “Point of View in Arthur Miller's Death of a Salesman.” in Arthur Miller: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Ed. Robert W. Corriga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69, p. 104.  19)Susan C. W. Abbotson, Students Companion to Arthur Miller. Westport: Greenwood, 2000, p. 46.

    4. 가정의 가치질서와 도덕률의 붕괴

    성공의 동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두 아들에게 물질적 성공과 허황한 미래를 약속하는 윌리 로만의 왜곡된 가치관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내재해 있던 갈등상황을 악화시킨다. 아버지는 올바른 도덕과 가치들을 자녀에게 가르쳐야할 책임이 있고, 반면 자녀들은 존경, 헌신과 사랑의 감정을 갖고서 아버지를 올려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 가정의 주된 문제는 아들들이 아버지의 지도를 따르고 실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윌리에게 있다. 그는 아들의 거짓말과 도둑질까지도 진취적 정신으로 추켜세우고, 오로지 성공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주입시킨다. 모스는 이러한 가치관의 왜곡에 대해 “윌리 로만은 아버지로서, 비즈니스맨으로서 자신이 갈망하는 성공업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도덕적인 한계를 부지중에 드러낸다”고 지적한다20). 진실, 양심, 도덕성, 공적/사적 공평함 그리고 책임을 찾아볼 수 없는 윌리의 탈법적 교육에서 가정의 붕괴가 이미 예시된다. 밀러는 소시민의 가정위기를 사회도덕과 정의를 외면하고 인간의 존재 의의를 왜곡하는 현대사회의 탓으로 돌린다. 사회라는 거대한 비인간적 구조가 무자비하게 가정의 윤리의식과 가치질서를 황폐화시킨다. 성공한 사람은 존경과 명성을 얻지만,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명예와 체면, 동료들의 관심을 잃는다. 성공을 너무 강조한 사회에서 실패는 재난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윌리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아들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윌리는 비정상일정도로 사회적 기준에 사로잡혀 그들에게 친구로서 혹은 아버지로서의 진실한 관심을 갖지 못한다. 그는 다만 가족을 버린 선친의 “냉혹함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21). 그러나 그는 육체적으로는 그들을 버리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올바르게 교육시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그 결과 비프(Biff)와 해피 (Happy)는 버림받게 된다. 밀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주기 위해 우리가 훈련하는 모든 것은 받는 것이다”고 쓰고 있다(Theatre Essay 14). 이는 윌리의 아들들과의 관계에 해당되는 적합한 진술이다. 그는 진실로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고 그리고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준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그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은 단지 받도록 지도한다. 아버지가 심어준 헛된 꿈과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사고방식 때문에 두 아들은 성공은 고사하고 일정한 생활의 안식처도 마련하기 어려운 불행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피는 부패한 물질만능주 의자이며 바람둥이이다. 비프도 사회적응과 자기실현에 실패하는데, 그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에 대한 도덕적 실망과 그로 인한 심리적 좌절이다. 수학시험 에서 낙제하여 고등학교를 졸업 못하게 된 비프는 보스턴(Boston)의 한 호텔에서 아버지의 불륜행각을 목격함으로써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출세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 비프가 가치관의 붕괴를 경험한 충격적인 보스턴 사건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바꿔놓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22).

    자신의 약점과 치부가 아들에게 폭로되자, 윌리는 편협한 사고와 이해력의 부족 때문에 적당히 덮어버리고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밀러는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도 반복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전도”를 예시한다23). 비프는 18살이지만 자신의 실패를 아버지와 의논하여 해결책을 찾고자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부도덕한 처신에 대해 달아나는 어리석은 태도를 취한다. 비프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성실한 학생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윌리는 비프의 도움으로 다시 존경받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윌리는 부자간의 이해와 사랑이 일시적인 어떤 실수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고립된 윌리가 간통이라는 부도덕한 행위로 도피하여 고독과 소외와 상실감을 견디어내려다가 아들에게 적발되는 사건 이후 부자간에 신뢰와 믿음, 가족의 희망과 일체감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로 인해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가정 은 개선의 가망이 없이 붕괴된 미국신화의 초상이 된다.

    섹스는 로만가를 분열시킨다. 윌리의 이중생활은 아내 린다와의 부부관계에 의사소통의 위기를 초래한다. 린다는 부자간에 비밀로 지켜진 가정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보스턴 사건을 알지 못한다. 린다가 윌리의 간통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녀가 부자의 소원해진 관계를 중재 하고 신뢰와 희망에 가득한 이전의 가정생활로 되돌아갈 해결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윌리의 “바탕과 버팀목”(130)인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든 남편을 돕고자 한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윌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의 괴로움과 절망을 알고 있지만 린다는 윌리가 성공에의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린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안이한 대응방식과 무딘 현실감각 때문에 윌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로만 부부는 생계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불완전한 관계를 보여준다.

    로만 부부는 자식들과 유리되어 있다 로만 가족은 상호이해에 이르지 못한 각기 괴리된 사람들로, 린다가 진혼곡에서 “집이 텅 빌 것이라”(222)고 말하듯 이전처럼 더 이상 한 가족이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해피는 절망에 빠진 윌리를 자기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해버리고 홀로 남겨둔 채 여자들 과 나가버린다. 해피는 냉정함의 유산을 계승하는 윌리의 진짜 아들이 된다. 비프 또한 17살 사춘기 때의 의식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34살의 성년 에도 불구하고 방황과 도둑질을 되풀이하는 방탕한 떠돌이 신세에 머물러 있다. 그의 도벽은 윌리가 강요했던 성공한 삶의 모델을 거부하는 행위로 아버지 에 대한 도전이자 저항이다24). 그러나 비프는 절도죄로 약 3개월간 들어가 있었던 감옥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고 결국 도시에서보다는 전원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자기인식에 이르고,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려 한다. 비프와 윌리의 관계는 죄의식으로 얽혀있다. “집을 떠나서 비프는 아버지에 대한 대가없는 사랑을 느끼고, 그들 사이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 결과 그는 죄의식을 느낀다.”라고 밀러는 아버지와의 소원해진 관계에서 비롯된 비프의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뇌와 갈등을 설명한다25). 비프는 자신의 실패로 인해 공허하고 비참해진 아버지의 삶을 보상해 주어야 된다는 책임감과 양심의 고통을 느낀다. 비프가 아버지에 대한 동정과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그를 미워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밀러는 비프가 느끼는 죄의식과 책임, 증오와 사랑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 극의 이해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였다. 그는 비프를 반항심과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벗어나 변화와 내적인 성장을 겪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윌리도 똑같이 비프에 대해 대가 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보스턴 사건으로 인한 자책감과 책임감뿐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기대를 저버린 비프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을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윌리는 비프의 실패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비프가 해피와 함께 스포츠용품 상인 빌 올리버(Bill Oliver)에게서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는다. 윌리도 아들의 새로운 계획에 덩달아 용기를 얻어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으리 라는 기대에 말려든다. 꿈이 유지되는 한, 그것은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거짓 신념에 토대를 두고 있는 로만 부자의 꿈은 각박한 현실이 개입 되자마자 물거품이 되고 꿈꾸는 사람에게 가혹한 환멸을 안겨준다. 윌리는 하워드의 회사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확인되어 세일즈맨의 일자리까지 잃게 된다. 그는 완전히 자포자기하고 이 끔찍한 상황에서 도피하듯이 곧장 보스턴 호텔에서의 부정에 대한 회상으로 빠져든다. 비프도 사업자금을 마련해볼 생각으로 올리버를 찾아가지만, 냉대를 받고 돈을 마련하는 데도 실패한다. 그러나 비프는 과거로 도피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올리버의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통해 자신의 실상을 재확인하고 철저한 현실인식을 이루게 된다.

    비프는 과거 속으로 돌아가 있는 아버지에게 올리버와의 면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고 그의 만년필을 집어 들고 나왔던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려한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실패자, 도둑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할 수가 없다. 윌리는 아들의 실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윌리는 아들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이러한 “불성실, 불안정과 독선적인 태도”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26). 그래서 비프는 현실에 대면해야 되는 의지와 용기를 갖지 못하고 더 절박하게 아들에 대한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는 아버지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태도를 반박하기 위해 윌리가 자살하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감추어둔 고무 튜브를 꺼내어 식탁위에 올려놓으면서 아버지가 처한 처참한 상황을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결국 윌리의 부정과 자살기도, 즉 과거의 위기와 현재의 위기가 중첩되어 회한과 고통으로 가중된 강박상태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이 없는 리얼리티에 직면하도록 강요한다. 아버지를 응징했던 <모두 나의 아들들>의 크리스(Chris)와는 달리 비프는 증오심을 떨쳐버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윌리는 자신의 두 팔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비프를 보고 그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윌리가 뒤늦게 깨달은 아들의 사랑은 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동정과 증오, 죄의식과 책임감 등 상반되는 감정의 복합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항상 허황한 꿈을 도래할 현실로, 거짓을 사실로 왜곡해왔던 윌리는 비프의 눈물조차도 단순한 사랑의 증거라기 보다는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증거로 속여 실패한 인생을 대면하기보다는 자식을 위해 보험금을 남긴다는 명분 아래 죽음을 선택한다.

    20)Leonard Moss, Arthur Miller. Boston: Twayne, 1980, p. 25.  21)Campo, p. 106.  22)Henry Popkin, “Arthur Miller: The Strange Encounter.” American Drama And Its Critics. Ed. Alan S. Downer.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65, p. 236.  23)Campo, p. 106.  24)Hoeveler, p. 79.  25)Arthur Miller, Salesman in Beijing. New York: The Viking, 1984, p. 79.  26)Moss, p. 34.

    5. 사회개선 및 인간구원의 비전으로서의 죽음

    윌리가 끝내 자신의 진실한 정체에 대면하기를 거부하고 돈을 위해 선택한 자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윌리의 자살은 한편으로는 황금만능의 사회풍조에 노출된 개인의 왜곡된 선택을 나타낸다. 이는 사회정의와 도덕과 윤리가 실종된 자본주의체제가 빚어낸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윌랜드는 “윌리는 가정문제에 대한 그 자신의 책임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비프가 2만 달러의 보험금으로 성공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확신하면서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인다”고 주장한다27). 비프는 보험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로만 가족과 찰리 부자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윌리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초라한 장례식은 윌리의 실패한 인생을 입증하고, 사랑의 부재와 인간관계의 단절로 비인간화된 사회의 타락상을 나타낸다. 결국 윌리가 맹신했던 산업사회의 물질신화가 윌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당시 자본주의의 병폐로 치부되던 기계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에 의존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일즈맨 윌리의 죽음은 절망과 부정 속에서 언도된 그의 시대에 대한 냉엄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캄포(Carlos Alejando Campo)는 “윌리의 죽음은 아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아버지의 감동적인 마음의 움직임이고 물질주의 사회에서 돈만이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라는 아버지의 깨달음이다. 보험금은 윌리에게 비프가 보여주는 사랑과 같은 것이다. 그의 죽음은 삶의 희생을 통해 실현되는 윌리의 마지막 꿈이다”고 주장한다28). 아메드(Kanis Khwaja Ahmed)는 윌리는 “그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속죄양으로서의 행위의 필요성”을 깨닫는다고 말한다29). 윌리는 사랑에 의해서 동기화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비극을 보여준다. 인간이 계약과 거래에 수반되는 부가상품쯤으로 치부되는 무정한 자본주의 사회와 잘못된 꿈의 희생자인 윌리의 자살은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차원에 도달한다. 그의 파멸을 통해 관객은 가치와 의미의 상실 속에 있는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게 된다. 그래서 밀러는 윌리의 자살을 공허함으로부터의 비상이라고 부른다(Theatre Essay 147). 그러므로 윌리의 죽음에는 자기구원,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실천하고 개인의 정당한 지위와 품위를 얻으려고 분투하는 영웅적인 불굴의 정신과 비극적 승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윌리암스는 이 작품이 대립적인 부자관계를 극복하는 발전적 비전을 통해 아들의 희망에 찬 미래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암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살아나갈 구제책이 없는 비극적 상황에서 “새로운 의식,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와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희생자의 의식”이 생겨난다는 것이다30). 그는 윌리의 죽음을 비프와의 인간적인 유대와 상호이해를 회복하고 성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행위로 해석한다. 테리 오튼(Terry Otten)도 “윌리의 죽음을 패배의 인정과 그 결과로부터의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희생을 통한 현실극복의 단언적 의지”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31). 그리스극에서부터 보면, 윌리의 죽음을 적극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참된 삶을 구현해보려는 윌리의 마지막 희망은 비프를 통해서 확인된다. 비프는 그 자신을 실패자로 인정한다. 윌리에 대해서 “아버지는 그릇된 꿈, 하나같이 그릇된 꿈을 가지고 계셨지요”(221)라고 말함으로써 비프는 아버지의 편협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성공하겠다는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망상에서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해피와는 달리, 비프가 새로운 자아와 삶의 대안을 탐색하는 것으로 부자의 대립과 갈등이 해소된다. 더 나아가 불공정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관계 없이 자기개선과 구원을 모색하는 그의 새로운 출발은 정의와 기회균등의 이상을 향한 사회적 비전으로 승화되고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기본적으로 미국신화를 다루고 있는 가정극이고 사회극이지만, 현대인이 처한 절망적 상태에 대한 구원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국인만의 연극이 아닌, 세계의 모든 관객을 감동시키는 연극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사적 그리고 공적 갈등은 하나이고 동일하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윌리의 정신을 탐구하는 형식을 취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객관적 시각과 냉정한 판단력을 갖고 자아를 잃은 인간과 몰가치하고 무의미한 사회를 관찰하고,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정의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왜곡된 인간과 사회가 변화되고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덕적 당위성을 확인한다. 사회극은 사회와 개인 양쪽에 책임을 묻고 사회개선과 인간 구원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새로운 변화와 가치를 대변하는 아들들은 기성세대의 편견과 독선 그리고 구속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한 개인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의지를 얻는다. 밀러는 부자갈등을 매개체로 새로운 윤리와 질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정의를 규명하고, 특히 사회와 개인의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아 극복하는 개인적,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올바른 정체 회복과 구원을 강조했던 것이다.

    27)Dennis Welland, Miller the Playwright. London: Methuen, 1980, p. 27.  28)Campo, p. 140.  29)Kaniz Khwaja Ahmed, Human Image in the Plays of Arthur Miller. New Delhi: Nice Printing, 2000, p. 80.  30)Raymond Williams, Modern Tragedy. Stanford California: Standford University Press, 1966, p. 104.  31)Terry Otten, “Death of a Salesman at Fifth-Still Coming Home to Roost.” Texas Studies in Literature and Language 41(1999),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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