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n francisco Mime Troup is the oldist surviving regional theatre company, and the oldist running political theatre company in America. Despite its regional based theatre, the company has won three Obie awards and two Tony award. This study examines the San Francisco Mime Troup’s Directing Strategy and theatrical technique as Political Theatre. Their early productions(1959∼1963) were not political, although there were social reasons for performing them. There is no specific political content in their works. The political theatre came out in the second period(1963∼1969) of the mime troupe history which is represent as ‘guerilla theatre’. In this study, I focus on the guerilla theatre, which is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Mime Troupe’s Theatrical ideology. Chapter one investigates the history of the Troupe’s ideological development. It shows how ideology gradually assumed a position of paramount importance in the Troupe’s work. In 1965, R,G. Davis wrote an essay analysing “what we had done in the past few years.” Davis believed that theatre must be readapted in order to teach, direct toward change, be an example of change. Chapter two investigates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Mime Troupe’s brand of ‘guerilla theatre’. As a genre, guerilla theatre may b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1) theatrical performance, and 2) events which extended beyond theatrical boundaries into the realm of demonstrations and media events. Chapter three examines the troup’s Directing Strategy. The company has deliberately used a number of dramatic style and play including vaudeville, minstreal show, circus turns, and commedia dell’arte. However, commedia dell’arte was the mime troups’s dominant theatrical form during the guerilla theatre period. For example, of some thirty-one productions staged by the mime troupe peior to 1970, ten were adaptation of origina commedia dell’arte scripts. According to Davis, it can expose a great many people who have never seen live theatre to a basic form of stage entertainment. However, they did not adapt the whole theatrical idea from origin of commedia dell’arte. The troupe’s adaptation of script is far from the original text. Troups members wrote new scenes, added new characters, and even changed the emphasis of entire plays. However, they retain stock characters such as the young lovers, the braggart warrior and the elderly merchant. Troupe members have created a style which is suited to outdoor performance, which is characterized by its serious intent by its profusion of popular entertainment techniques, and by its clarity of political statement,
1998년 <망가진 의료(Damage Care, 1998)>공연으로 「과천마당극제」에 처음 소개된바 있는 샌프란시스코마임극단(이하 마임극단)
본 연구자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걸쳐 연극을 사회현실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극 전문극단들이 많이 생겨났음에 주목하고, 1960년대 가장 급진적인 연극단체로 인식되는 마임극단의 정치극을 연출적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마임극단이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의 시대’로 특징지어 질 정도로 정부의 통치와 지배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저항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으며,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대 정부 투쟁시위가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하게 부각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정서에 부합하여 예술가들도 자신들의 예술매체를 이용하여 불합리한 사회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저항예술’, ‘참여예술’, ‘시위예술’, ‘선전선동예술’과 같은 다양한 이름의 정치극이 탄생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치극이란 정부의 통치와 지배에 대한 복종, 협력, 비판, 저항 등의 사회적 활동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 정의된다. 미국의 연극 이론가이자 연출가인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는 이것을 좀 더 압축하여 정치극이란 정부에 대한 정치적 행동 의도가 작품속에 명확하게 드러나는 공연으로 규정하고 있다.3) 이러한 정치극의 예로서 리빙 씨어터(Living Theatre)의 창시자인 벡(Julian Beck)과 말리나(Judis Malina)는 <지금 천국으로 (Paradise Now, 1968)>와 같은 작품을 통해 국가가 강요하는 규범적 가치와 제도를 비판하는가 하면, 사회체제의 잔학성(정치제도, 인종차별, 전쟁)을 폭로하여 사회를 변형시키고자 하였다. 동시에 이들은 사회체제와 법률 속에 학습으로 제한된 인간의 사고를 해방시켜 동시대 사회제도에 대항하는 비폭력적 혁명을 유발하면 세상은 변형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엘 떼아뜨로 캄페시노 극단의 발데스(Luis Valdez)는 연극을 통해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계-미국 농민들의 권익보호를 주장하였으며, 퍼포먼스 그룹의 세크너(Richard Schner)는 흑인 인권보호를 위해 1963년 ‘자유 남부극단’을 창단하였다. 또한, ‘거리극 연희자들’4)의 브라운(Michael D. Brown)은 1967년 1월 뉴욕에서 ‘분노의 예술주간(Angry Art Week)’행사를 통해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반대하는 공연들을 선보였으며, ‘빵과 인형극단’의 슈만(Peter Shuman) 역시 거리에서 베트남 참전 반대 공연들을 올린 것으로 기록된다.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려는 마임극단의 창시자인 데이비스(R. G. Davis)5)는 “이것은 우리들의 지역사회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다면 부숴버려야 한다.”6)라고 언급하면서 예술가들이 사회변화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인간의 운명은 고대 희랍시대의 연극처럼 고정되어 있어 변화 불가능한 것이 아닌 개조되고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연극은 “일반 대중에게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가르쳐서(to teach)’ 정부를 상대로 ‘변화를 요구하게 만들고(direct toward change)’, ‘변화시킨 예를 제시(be an example of change)’7) 하는 것이 목표임을 밝혔다.
정치극의 구체적인 연극형태를 고찰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1960년대 미국 정치극 연출가들의 연출전략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8) 우선, 정치극은 서구 사실주의 전통 연극에서의 관객에 대한 개념 거부에서 시작한다. 이들 연출가들은 사실주의 연극과 달리 관객을 단지 관람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실제적 인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극 연출가들은 관객들이 대정부 투쟁과 같은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을 촉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극의 특성상 관객과의 상호소통에 있어 생산자(행위자) 보다 수용자(관객)에 주목한다. 소통9)이란 발신자와 수신자 상호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발신자의 메시지가 공동의 약호(code, 기호들이 조직화된 체계)를 통해 수신자에게 전달되어 상호간에 의미교환이 이루어 졌을 때 커뮤니케이션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극에 대입해 보면, 공동의 약호(기호 혹은 표현재료)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연극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지기도 쉬워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조셉 체이킨(Joseph Chaikin), 리차드 포먼(Richard Foreman)과 같은 표현주의 연출가들의 작품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일반관객들이 작품의 내용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대사가 아닌 다양한 상징적, 은유적 약호(기호)들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정치극 연출가들은 이러한 표현주의 연출가들의 연극을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생산주의자 중심의 연극으로 단정한다. 따라서 이들은 연극을 경험해보지 못한 대중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상징적이며 관념적인 연극이 아닌, 관객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춘 공연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가령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해설자를 등장시켜 관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하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을 패러디하여 관객들이 빠른 시간 안에 상황과 사건을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다음으로 발견되는 공통점은 다큐멘터리식 연출기법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어떤 상황을 배우의 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과 피해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을 경우 그 느낌의 강도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극 연출가들은 전쟁의 잔혹함을 관객들이 현실감 있게 느끼게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관객들이 전쟁포로와 같은 역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거나, 메시지의 진정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불합리한 미국 사회제도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직접 무대 위로 올라와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할 수 있게 연출하였다. 구체적인 작품으로 ‘패전트연희자들’의 <왕의 연극(King Play, 1968)>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대중) 사이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연출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왕, 왕비, 장관, 지쳐있는 여자(세탁소 직원), 신경질적인 사람(공무원)과 같은 사회적 이름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연출은 관객들이 인물 상호간의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다음 단계로 연출은 아래 인용 장면에서와 같이 사회자가 작품을 이끌어가면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극중 상황에 참여시킨다.
특히 1960년대 미국 정치극 단체 중에서 마임극단은 게릴라연극과 같은 독특한 형식의 정치극을 최초로 시도한 극단이다. 마임극단이 추구한 ‘일반 대중들을 가르치고, 변화시키자’는 연극이념에 의하여, 연출은 난해한 형식을 실험하기 보다는 작품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게릴라연극은 그 특성상 단시간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은 주저없이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따라서 ‘거리극 연희자들’의 연출가 브라운은 게릴라연극은 짧고(short), 화려하고(colorful), 활기차게(energetic)게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10) 연극을 볼 준비가 안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뭔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며 대사는 짧고 명확하게 직접화법으로 말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야외극 연출전략을 활용하여 마임극단은 관객이 밀집한 거리, 학교, 공원과 같은 야외공간을 찾아가서 그들의 관심을 자극시킬 수 있는 동시대 이야기를 소재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었다.11)
원래 데이비스가 ‘샌프란시스코 배우극단(Sanfrancisco Actor’s Studio)’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1959∼1962)의 작품들은 마임, 음악, 비주얼 아트 등을 조합한 ‘실험극’형식의 공연으로 정치적인 색깔은 전혀 없었다. 앞서 인용한 윌슨, 체이킨, 포먼과 같은 표현주의 연출가들과 마찬가지로 데이비스는 작가의 대본에 기초한 언어적 텍스트가 아닌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텍스트를 활용하여 관객과 상호소통 하였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전공한 무용과 이후 프랑스 마임학교 유학에서 습득한 마임을 연출작업의 주요 표현재료로 활용한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극단의 연작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이벤트1(Event1, 1959)>은 대사 없이 마임과 무용적 움직임으로 구성된 일종의 해프닝 형식의 작품이다. <이벤트2(Event2, 1960)>, <이벤트3(Event3, 1964)>와 같은 공연은 움직임에다 대사를 첨가하였지만 여전이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 중심의 작품으로 관객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작품으로 일반관객과 평론가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마임극단의 정치극은 극단의 첫 번째 야외극 공연인 <지참금(Dowry, 1962)>을 기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대본을 이용하였으며, 코메디아 텔아르테 기법을 차용하여 주 무대공간을 야외공원으로 옮겨갔다. 공연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극단의 브랜드인 코메디아 텔아르테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예외와 관습(The Exception and the Rule, 1965)>, <대사 없는 연극 2 (Act Without Words 2, 1966)>12)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은 코메디아 델아르테 형식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자는 1960년대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극 전문극단으로 인식되면서도 연극이념이나 연출전략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부족했던 마임극단의 공연작품들을 연출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마임극단의 연극이념을 반영하여 정치극 색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릴라연극을 살펴보고 코메디아 델아르테식의 열린대본, 패러디와 풍자, 야외극 무대공간으로 구분하여 연출전략의 특징을 고찰해 볼 것이다. 연구범위는 마임극단의 창시자인 데이비스가 극단의 상임연출로서 활동한 ‘게릴라연극시기(1965∼1969)’로 한정하였다.
1)1959년 창립 초기에는 극단설립자인 로니 데이비스의 이름을 극단명(R. G. Davis Mime Troup)으로 사용하다 1963년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마임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미국의 대표적인 이미지연출가 중 한 명으로 지칭된다. 2008년 LG아트센터에서 <인형의 집>을 연출했다. 3)정치극이란 무엇인가? 정치극과 비정치극을 구분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는 그의 논문 ‘정치극(On Political Theatre)’에서 ‘정치극이란 정부에 대한 정치적 ‘행동의도’가 작품속에 명확하게 드러나는 공연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그는 고리키의 <밑바닥에서(The Lower Depths,1950)>를 공산주의 정부가 상연을 허락한 것도 정부에 대한 극중 등장인물들의 정치적 ‘행동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Michael Kirby, “On Political Theatre” The Drama Review, 10.4 1975.3.25. p.107. 4)1965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D.Brown)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게릴라 거리극전문집단으로 1971년까지 활동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왕의 연극(King Play, 1968)>, <꿈의 연극(Dream Play, 1968)>등이 있다. Arthur sainer, The Radical Theatre Notebook, The Hearst Corporation, 1975, p.228. 5)로니 데이비스(R. G. Davis)는 오하이오 주립대학(Ohio University)과 뉴멕시코 대학(New Mexico University)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였다. 대학 졸업 후 마임을 배우기 위해 미국마임학교(America Mime Theater)에 입학하여 2년간 수학하였다. 그 후 그는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하여 프랑스의 대표적인 마임예술가인 에티엔느 드 크루(Etienne Decrous) 문하생으로 6개월간 전문적인 지도를 받았다. 6)Roy L, Walford, Guerrilla theater Essays1: California, Sanfrancisco Mime troupe, 1970, p.157. 7)Ronald G Davis, The San Francisco Mime Troupe: The First Ten Years, Ramparts Press, 1975, p.149. 8)1960년대 미국 정치극의 연출적 성향은 한국의 1970년대 마당극(혹은 민중극)과 유사해 보인다. 첫째, 동시대의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내용을 소재로 한다는 점 둘째, 형식적인 측면에서 연극의 문학적 기능보다 음악적 기능과 배우의 신체적 기능을 중요시하는 점 셋째, 관객들의 참여가 용이한 야외무대에서 연극을 현장감과 역동감 있게 만드는 연출적 발상을 갖는다는 점이다. 다만, 구체적인 연출적 접근방법이나 무대 표현재료(배우연기, 무대, 의상, 음악, 영상과 같은 시청각 자료)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 극단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9)언어학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소통에 필요한 구성요소로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 콘텍스트(context), 접촉(contact), 약호(code)등 6가지를 언급했다. 이때 콘텍스트란 메시지가 발생한 전후 상황 및 문맥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약호는 발신자와 수신자 상호간에 이해 될 수 있는 일반적인 규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또한 접촉이란 채널(channel)과 같은 의미로 수신자와 발신자가 메시지를 교환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10)Arthur sainer, Op.cit, p.228. 11)마임극단은 새로운 연출방법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현재까지 극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다. 12)<예외와 관습>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형식을 실험한 작품이며, <대사 없는 연극 2>는 그로토우스키의 가난한 연극에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차용하였다. Susan Vaneta Mason, The Sanfrancisco Mime Troupe Reader, Michigan: University of Michigan, 2005, p.17.
게릴라연극은 1960년대 마임극단을 상징하는 용어이자 반전, 반체제 정치극을 하는 극단을 대표하는 용어이다. 게릴라는 원래 군사용어로 “체 게바라(Chu Guevare, 1928∼1967)의 게릴라 전투교본에서 힌트를 얻은 것”13)으로 전해진다. 군사용어를 연극에 도입한 사람은 1965년 마임극단의 전속작가인 버그(Peter Berg)이다. 그가 1969년 샌프란시스코마임극단의 활동(1959∼1969)에 관한 에세이를 출판하면서, 극단의 대표인 데이비스에게 책 제목으로 게릴라연극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여 만들어졌다. 게릴라연극의 탄생은 1962년 극단의 첫 번째 야외공연인 <지참금>에서 출발한다. 샌프란시스코 시 공원관리국은 마임극단이 공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일 년에 두 번으로 제한함과 동시에 극단의 공연내용을 사전 심의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맞서 극단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며 몇 년간 시 당국과 투쟁을 한다. 마침내 1965년 시 당국은 마임극단의 공연 <칸델리오 2탄(ⅡCandelaio, 1965)>이 외설적이라 공원에서 공연하기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공연을 금지시킨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누구도 작품을 심판할 권리도, 시민의 말할 권리를 판단할 수도 없다. 장 주네와 제임스 본드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14)라고 비판하면서 공연을 강행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데이비스는 법정에 구속되어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정부는 일반시민들의 여론과 예술단체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공원에서의 공연을 허락하였다. 이 사건은 이후 게릴라연극의 모델로 많은 급진적 예술가들을 자극시켰으며, 게릴라연극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게릴라연극은 짧은 시간 안에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즉흥적으로 벌이는 이벤트형식의 게릴라공연과, 대본과 무대장치를 사용하는 연극적인 형식의 게릴라공연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게릴라연극은 이벤트형식의 공연을 지칭한다. 이러한 게릴라연극은 데이비드의 「게릴라 연극 지침서」15), 세크너(Schechner Richard)의 논문 「게릴라연극」16)과 같은 이론서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소개되었다. 이들이 논문이나 서적을 통해 밝힌 게릴라연극의 전략은 공연형식적인 측면에서 유사한데, 데이비드의 「게릴라 연극 지침서」의 주요 내용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공연은 한 시간 이내에 끝나야 한다. 2)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 3) 공연의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1) 공연대본과 관련하여 데이비스는 공연대본은 짧고,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강의내용이 어려우면 일반학생들이 따라가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구성이 복잡하면 관객들과 상호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목적 하에 극단의 작가와 연출은 자신들의 상황에 적합하도록 장면과 인물을 압축하여 한 시간 이내의 길이로 각색을 하였으며 구성 또한 단순화 시켰다.17) <전화기(Telephone, 1970)>, <한가운데 있는 사람(Centerman, 1966)>은 그 구체적인 작품의 예로서 15분 정도의 단막극 형태이다.
2) 공연형식과 관련하여 데이비스는 ‘코미디’와 같은 극적 재미를 강조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야외에서 공연을 하는 게릴라연극의 특성상 재미가 없으면 관객들을 붙잡아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데이비스는 연극적 볼거리가 풍부한 16세기 이태리의 코메디아 텔아르테, 미국의 서커스 광대, 보드빌, 카니발, 인형극 등 대중연극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공연 중간 중간에 사용하였다. 특히 코메디아 텔아르테의 유형화된 인물과 가면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동시에 일인 다역을 해야 하는 그룹의 특성상 배우들의 역할변신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3) 공연의 내용과 관련하여 데이비스는 연극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배경을 중요시하였다. 그는 “공연 프로그램은 그룹의 정체성에 따라 다르다. 락앤롤 음악 혹은 거리 인형극일 수도 있다. 어떠한 형태의 공연이든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18)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데이비스는 배우들에게 대사를 직접 창작하게 하였으며, 배우의 캐스팅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흑인역할은 흑인이, 멕시칸 역할은 멕시칸이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릴라연극의 주요 작품으로는 <한가운데 있는 사람(Centerman, 1966)>, <하던 대로 일해(Business as Usual, 1967)>, <전화기(Telephone, 1970)> 를 들 수 있다.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마임극단 작가인 버그가 쓰고 데이비드가 연출한 작품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버클리 대학의 본관건물 앞에서 공연되었다. 버그는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하고 싶었다.”19)라고 작품의도를 밝혔다. 공연은 3명의 포로와 한 명의 미군헌병에 의해 진행된다. 미군헌병 역을 맡은 배우가 포로 중 한 명을 죽을 때까지 잔인하게 때린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학생들 중 일부는 침묵하거나 앰뷸런스를 부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미군헌병 역의 배우가 저항하는 힉생들에게 큰소리로 꺼지라고 소리치자 다들 침묵으로 일관한다. 한가운데 있는 포로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그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음으로 <하던 대로 일해>20)는 흑인과 라틴민족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뉴욕에서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백인이 권총으로 살해당했다고 했을 경우와 흑인, 또는 라틴민족이 살해됐다고 했을 경우,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미국정부의 인종차별정책을 일반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1970년에 공연된 <전화기>는 반전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미국정부는 베트남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화에 특별세를 붙이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대한 반발로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방법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준다. 다음 장면은 전화교환원이 일반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일반 관객들이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쓰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편, 셰크너는 게릴라연극을 공연하는 목적에 따라 1)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공연, 2) 문제의 결과를 알게 하는 공연, 3) 문제 해결 방법을 보여주는 공연으로 구분하였다. 즉 관객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동시대의 민감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일반인들이 인식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한 부르조아 계층이 모여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서 기습적으로 공연을 올린다. <브로드웨이 연극>의 경우 배우들이 브로드웨이 극장을 찾아가서 막이 오르기 직전 혹은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에 게릴라처럼 기습적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시대의 가장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관객들에게 환기 시킨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의 결과가 초래할 영향에 대해 환기시키는 공연은 이미 문제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절실하게 자기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집단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찾아가서 공연 한다.
이어서 그는 공연하는 장소에 따라 1) 행위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 2) 행위자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는 장소, 3) 행위자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구분하였다. 게릴라연극은 야외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마임극단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과 같은 공연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으며 미군헌병이 구경꾼들 중 한 명에게 위협을 가했을 때 양자 간에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셰크너는 관객들의 수준에 따라 또는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을 경우 예기치 못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으며, 상황을 잘 조절할 수 있는 경험이 많은 행위자들을 투여할 것을 지시한다. 이러한 대상(관객)과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사전 조사를 근간으로 게릴라 연극을 펼쳐야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22)
지금까지 데이비드의 「게릴라 연극 지침서」와 셰크너의 “Guerilla Theater”의 내용에 언급된 게릴라연극의 특징을 중심으로 마임극단의 정치극 성향과 연극이념을 알아보았다. 다음 3장에서는 마임극단의 정치극을 코메디아 델아르테식의 열린대본, 패러디와 풍자, 야외극 무대공간으로 구분하여 연출전략의 특징을 보다 세부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3)Lance Haro Jencks, “The San Francisco Mime troupe In It’s Social Context”, University of California, 1978, p.50. 14)Lance Haro Jencks, Ibid, p.10. 15)Roy L, Walford, Op.cit. 16)Schechner Richard, “Guerilla Theater” The Drama Review, 10.4, 1996, p.113. 17)Davis, Op.cit. p.82. 18)Roy L Walford, Op.cit. 참조. 19)Beverly Ann Redman, “The San Francisco Mime Revising Revolution” Irvine University of California, 2005, p.119. 20)Schechner, Op.cit. p.167. 21)Schechner, Ibid, p.167. 22)Schechner, Ibid, p.168.
무엇보다 마임극단의 연출적 특징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시 한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관객들에게 공연을 ‘어떻게’ 보여줄까 보다는 ‘무엇을’ 보여줄까에 초점을 둔다. 이런 점에 있어 마임극단은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로버트 윌슨, 조셉 체이킨, 리처드 포먼 등과 같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표현주의 연출가들과 구별된다. 이들 표현주의 연출가들이 인간 내면의 주관적 의식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면, 마임극단은 인간의 외형적 현실세계를 기록영화처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마임극단은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과 같은 동시대의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문제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이러한 소재를 무대화시키는 방법에 있어 마임극단 소속연출가들은 패러디기법을 주로 이용하였다. 관객들이 잘 아는 대중적 인물이나 사건을 모방하여 보여주는 패러디는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장점을 지닌다. 연출은 이러한 패러디의 속성을 거리의 소음으로 관객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야외무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출적 도구로 이용하였다. 또한 연출은 작품의 내용이나 작가의 메시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펀치(punch)’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펀치는 작품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행동을 보충설명해주는 해설자의 기능과 사회제도의 문제점을 관객들에게 직접 말하는 대변인 기능을 함께 지닌다.
본 장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마임극단의 연출 경향을 코메디아 텔아르테식 열린대본, 패러디와 풍자극, 야외극 무대공간으로 구분하여 정치극 수행을 위한 연출전략의 특징을 세부적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3-1. 코메디아 텔아르테(commedia dell’arte)식 열린대본, 즉흥연기, 펀치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게릴라연극의 성향은 즉흥성과 현장성이다. 공연은 현장에서 행위자와 관객사이의 긴장감 속에 벌어진다. 물론 배우들이 공연에 대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연습해서 공연장으로 가지만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와 같이 게릴라연극의 특성인 현장에서의 즉흥성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정치적 행동(action)을 촉진시키기 위해 마임극단은 16세기(1550년경) 이태리에서 발생한 코메디아 텔아르테의 즉흥연기23)를 이용하였다. 마임극단은 1959년 창단 이후 초기 10년간의 공연(총31편) 중 10편을 코메디아 텔아르테 대본을 직접 각색해서 올릴 정도로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단체로 평가된다.24) 마임극단이 코메디아 델아르테를 활용한 방법을 대본과 연기로 구분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본을 활용하는 방법에 있어 마임극단은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주제 전달에 필요한 상황과 인물만 빌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16세기 코메디아 텔아르테는 대본자체가 상황과 사건의 개요 정도만 언급한 것으로 배우들 상호간에 주고받는 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공연할 경우 재창작 할 수밖에 없다. 대본에 등장인물 상호간에 주고받는 대사를 기록한 것은 18세기 이태리의 골도니(Carlo Osvaldo Goldoni)와 같은 극작가들이 코메디아 델아르테를 문학의 한 장르로 편입시키면서 부터이다. 예를 들어, 다음에 인용한 코메디아 텔아르테 대본을 보면 극적인 상황과 행동, 장소에 대한 설정이 있을 뿐 인물들 상호간의 대사는 적혀 있지 않다.
마임극단은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fourberies de Scapin)>와 같이 대사가 있는 작품을 각색할 경우에도 16세기 코메디아 텔아르테 배우들이 한 것과 동일하게 극단소속 배우들의 즉흥연기를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데이비스는 작업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자기 역할 수행에 필요한 대사와 신체적 움직임은 배우 스스로 만들 것을 지시하였다. 물론 구성 및 전체적인 작품의 골격을 만드는 작업은 항상 극단 소속의 작가에게 위임하지만, 텍스트를 조합하고 대사를 만들고 대사에 적합한 신체적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몫으로 이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배우들이 인물창조의 주체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움직임을 찾게 하는 것은 일단 인위적인 연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동시에 배우들이 특정한 역할을 모방/재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연기법에 기초한 역할연기에서 벗어나 배우들이 자기 자신으로 무대에 존재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연대본 구축방법이 적용된 작품으로는 16세기 로페 드 루다(Lope de Rueda)의 소극
또한 마임극단은 원작을 짧고 단순하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내용 전달상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원작에 없는 일종의 해설자 역할인 ‘펀치’를 새롭게 창조하였다. 1967년 공연한 <군인 애인(L`amamt Militaire, 1967)>26)에서 처음 시도한 ‘펀치’는 공연 중간 중간에 등장하여 해설자처럼 내용을 보충해서 설명해 주는 기능과 관객들을 선동하는 역할을 수행한다.27) 즉 ‘펀치’는 베트남 전쟁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며 군대복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선동가처럼 관객들에게 직접 말한다. 다음에 인용한 <군인 애인> 1막 8장에서 ‘펀치’는 판탈로네가 퇴장하고 난 뒤 등장하여 딸을 싸구려로 팔아넘기려는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는 동시에 젊은이들이 군대 가는 것은 섹스를 즐기러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전쟁의 허상을 알려준다.
이어서 펀치는 1막 13장에 다시 등장하여 군대 징집을 피하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것과 동시에 전쟁반대 운동에 동참하자고 관객들을 선동한다.
패러디의 장점은 관객들의 빠른 반응에 있다. 일반 대중들이 한눈에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인물이나 사건들을 모방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브레히트는 그의 작품 <아르토 우이(Aruto Ui, 1959)>에서 히틀러를 마피아 갱단의 두목(우이)으로 패러디 하여 보여준다. 극중에서 우이는 마피아 보스가 되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절친한 친구를 살해하는가 하면 친구의 아내를 강탈하는 인물이다. 브레히트는 은유적으로 우이의 이러한 비열한 행위들이 히틀러가 권력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자행한 비인간적인 행동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패러디하여 보여준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적인 우상인 히틀러를 마피아두목으로 패러디하여 공포스럽고 폭력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부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마임극단의 데이비스 역시 브레히트와 유사한 패러디기법을 반전운동과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공연에 사용하였다.28) 공연을 통해 나타난 데이비스의 패러디 특징은 우선 등장인물들을 유형화(지배계층, 피지배계층, 희생자 등)시켜 관객들이 쉽게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물의 전형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면까지 씌웠다. 이러한 유형화된 인물의 등장과 가면의 사용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관객들이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패러디 기법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으로 <군인 애인)>을 들 수 있다. 카를로 골도니의 작품을 극단의 배우이자 작가인 홀든(Joan Holdrn)이 각색하고 데이비스가 연출하였는데 베트남 반전운동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마임극단의 정치적 색깔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원작은 스페인이 이태리를 침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마임극단은 이 작품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이면에 미국정부의 무기수출 전략이 함축되어 있음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연출은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극중인물 판탈로네(시장역, 미국정부를 암시)를 이태리 정부군과 반란군 양쪽에 다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유대인으로 등장시켰다. 심지어 판탈로네는 돈벌이를 위해서 자기 딸 로잘린다를 스페인 장군과 정략 결혼시키려고 시도한다. 다음의 2막 4장 인용 장면은 자신의 애인이 징병에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로잘린다가 스페인장군 가르시아에게 전쟁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는 장면이다.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9) 먼저 스페인장군 가르시아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거창하게 말한다.
여기서 로잘린다는 미국정부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난한다.
이에 대해 로잘린다가 전쟁은 살인행위라고 반박하자 가르시아장군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토론은 무의미한 것으로 몰아붙이면서 대화를 중단한다.
인종차별정책을 패러디한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민스트럴 쇼 혹은 크렉크 바렐에서의 시민의 권리(A Minstreal Show or Civil Right in a Cracker Barrel, 1965)>, <두 가지로 보기(Seeing Double, 1968>를 예로 들 수 있다. <민스트럴 쇼 혹은 크렉크 바렐에서의 시민의 권리>는 미국의 대중연극인 ‘민스트럴 쇼’에서 형식을 빌려왔다. ‘민스트럴 쇼’는 원래 19세기 말 백인들이 흑인들을 조롱거리로 만들기 위해 행한 공연이다. 백인 연기자들이 흑인처럼 까맣게 분장하고 흑인노예들의 행동을 과장되게 왜곡해서 보여주는 공연이다.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공연인 ‘민스트럴 쇼’를 패러디하여 마임극단의 연출은 미국인종차별정책을 비판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연출자 데이비스는 모든 등장인물들(흑인역 3명, 백인역 3명)을 배역에 상관없이 까맣게 분장을 시켜 가면을 씌웠다. 이렇게 하여 데이비스는 누가 백인인지 흑인인지 관객들이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가면 안에 있는 실제 사람은 인종에 구분 없이 다 똑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연출기법은 <두 가지로 보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정치적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연출은 등장인물을 유대계-미국인, 팔레스타인계-미국인으로 만든 후에 한 명의 배우가 두 가지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도록 하여 동일한 사람이 똑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취급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내극과 야외극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한 정치극 연출가들이 야외공간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내극은 조명, 음향, 배우연기 등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아래 진행된다. 배우들은 고정된 무대장치 사이를 움직이면서 연기를 해야 하며 조명이 있어야 연기가 가능하다. 관객들 또한 지정된 좌석에 앉아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공연 중간에 출입이 불가능하다. 이와 반대로 야외극(지정된 객석이 없는)은 거리의 소음, 날씨변화, 관객들의 반응 등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불편한 공연조건에도 불구하고 정치극 연출자들이 거리, 공원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현장성’과 ‘역동성’에 있다. 실내극과 달리 불특정 다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야외극은 사전 리허설이 불가능하며 할 필요도 없다. 행위자-관객-텍스트가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서 실시간(in the moment) 이루어진다. 상황이 어떻게 발전될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행위자-관객 모두에게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1989년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일어난 중국의 노동자, 시민, 학생들의 시위현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젊은 대학생이 밀려오는 탱크를 맨몸으로 저지하는 장면은 관객(구경꾼, TV시청자)-행위자 모두에게 최고의 극적 긴장감을 제공한다. 중국인들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일반 관객(TV시청자들 포함)들의 저항심을 자극시켜 궁극적으로 직접적인 행동(do it yourself)을 촉진시킨다. 마임극단의 연출자 데이비스는 천안문 광장 이벤트와 같이 관객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action)을 폭발시키고 사회를 치유하는 공간으로서의 무대를 강조한다.
야외공간의 두 번째 장점은 ‘이동성’에 있다. 1960년대의 경우 사회생활의 피해자들은 부르조아 계급이 아닌 노동자, 하층민들이었다. 이들을 값비싼 실내극장으로 불러들여 사회제도의 불합리성을 논의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정치극 연출가들은 브레히트가 그의 서사극이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노동자를 위해서는 노동현장으로, 빈곤층을 위해서는 그들이 밀집한 거주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서 하는 공연을 시도하였다.31) 마임극단의 <전화기> 공연의 경우 15분 정도의 짧은 소극으로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버클리 대학을 찾아가서 공연하였다. 또 다른 예로서, 셰크너는 <브로드웨이 연극 행동(Broadway Theatre Action)>으로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한 부르조아 계층이 모여 있는 브로드웨이 극장을 배우들이 직접 찾아가 기습적으로 공연을 올리도록 하였다. 배우들은 막이 오르기 직전 혹은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에 무대 위로 기습적으로 올라가 미리 준비한 리플릿과 녹음테이프 등을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장 민감한 이슈를 환기 하였다.
이렇듯 찾아가는 공연은 그 특성상 이동이 용이하고 짧은 시간에 설치 할 수 있는 무대장치가 요구된다. 마임극단의 무대가 대중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단정도의 크기로 작은 것도 이러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무대장치의 부족한 부분을 배우들의 신체적인 움직임, 라이브 음악, 춤과 노래 등의 시각적, 청각적 볼거리로 대체하였다. 배우들의 신체적인 움직임에 있어 데이비스는 배우들에게 “극적인 환상을 자신의 몸을 통해 구현해야 하며, 배우의 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을 정도까지(irreducible self on-stage)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보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32) 청각적인 부분에서는 라이브음악 연주를 주로 이용하였는데, 연극에서의 라이브연주는 지금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1960년대에는 거의 드문 일이었다. 마임극단은 전속 음악팀을 운영하면서 모든 공연에 라이브음악을 사용하였고, 공연에 필요한 효과음 역시 현장에서 이들 음악팀이 해결하였다. 라이브 음악연주는 야외공연 특성상 산만할 수 있는 공연장 분위기를 바로잡는 방편으로도 이용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마임극단은 일반대중을 교육시키고 사회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연출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데이비스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실내극을 포기하고 ‘생활과 예술’의 경계가 없는 거리, 공원, 학교 캠퍼스와 같은 일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공연을 하였다. 야외공연 특성상 무대 장치는 최소화 시키는 대신 배우들의 아크로바틱과 같은 신체적 움직임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볼거리를 충족시켰다. 동시에 코메디아 텔아르테식 즉흥연기를 이용하여 배우들이 현장에서 관객들과 상호 반응하도록 하였으며 패러디와 풍자를 통해서 관객들이 연극의 메시지를 용이하고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23)코메디아 텔아르테는 공연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이름들이 붙여졌다. 존 루딘(John Rudlin)은 이러한 명칭들을 1)코메디 예술임을 알 수 있는 Comedy of the artists, 2) 가면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수 있는 Commedia alla Maschera, 3) 마지막으로 즉흥적으로 연기했음을 암시하는 Commedia Improvviso, Commedia dell’arte all’improvviso.로 분류하였다. 이극은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마임극단을 포함하여, 리빙씨어터, 야외극연희자들, 프랑스 태양극단의 창시자인 아리안느 므누쉬킨(Arine Muouchkine)등에 의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연출가들의 공연을 분석해보면 코메디아 텔아르테가 담고 있은 다양한 속성(열린대본, 유형화된 인물, 마스크의 사용, 즉흥연기, 아크로바틱한 신체적 연기, 간편한 무대장치)을 활용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John Rudlin, Commedia dell’Arte: An Actor’s Handbook, Routledge, 1994, p.13. 24)Davis, Op.cit, p.82. 25)John Rudlin, Commedia dell’Arte: An Actor’s Handbool, Routeedge, 1994, p.51. 26)몰리에르의
정치극은 관객과 배우가 서로 용해되어 정치적 ‘집단행동’을 이루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 논의한 1960년대 마임극단의 정치극은 관객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적 전략으로 형식 보다는 내용을 중요시 하고 있으며, 문학적 요소보다는 음악적 요소와 무용적(마임, 판토마임, 아크로바틱, 춤)요소를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극적 환상을 만들어 내기위해 홀로그램과 같은 최첨단 영상이나 조명을 이용하는 대신, 배우들의 유연한 신체적 움직임과 관객들에게 친숙한 보드빌이나 민스트럴쇼와 같은 미국대중예술을 이용하여 관객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객과의 소통방법을 이용하여 일반관객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인식하도록 ‘가르쳐서(to teach)’ 궁극적으로는 마임극단과 정치적 이념과 행동을 같이하는 동지로 만들고자 의도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있어 마임극단의 연출은 첫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나 사건을 패러디, 풍자하는 한편,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직접 설명해주는 ‘펀치’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마임극단의 연출자 첨리는 민중언론의 오도엽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풍자는 문제점이나 갈등, 정치적 이슈를 찍어서 밝혀 주는 밝은 빛과 같아요. 그 빛은 민중에게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고, 변혁에 나설 수 있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첨리의 주장처럼 마임극단은 패러디와 풍자 기법을 이용하여 상징적인 인물(대통령, 장군)을 공포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하게 만들어 폭력적인 성격이 느껴지는 부정적인 인물로 변화시켰다. 예컨대 <군인 애인>에서 연출은 미국 존슨대통령이 남부 출신임을 패러디 하여 극중 장군역을 맡은 배우가 거칠고 듣기 싫은 남부 사투리를 사용하게 만드는가 하면, <올리브 함정>에 등장하는 사기꾼 역의 ‘보라치노(borrichio)’는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고 오리처럼 걷는다. 이와 같이 연출은 사회적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 등장인물들의 속성(허영심, 편견)을 패러디하거나, 인물의 속성을 반영한 신체적 움직임을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였다.
둘째로 마임극단의 연출은 예술의 문학적 요소보다는 무용적, 음악적 요소를 강조한다. 즉 예술의 엄격주의에서 탈피하여 서커스, ‘민스트럴 쇼’, 보드빌, 코메디아 텔아르테, 인형, 팝송, 아크로바틱등 다양한 대중예술을 연출작업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1959년 극단 창단이후 초기 10년간 공연(총31편)을 분석해 보면 코미디와 인형을 조합한 작품 <그게 뭐야, 머리?(What’s that, a Head?, 1966)>, <판탈렌 소극(The Farce of Patelin, 1968)>, <미터 메이드(Meter Maid, 1968)>가 있는가 하면, 영화미스테리극 <여자 용의 복수(The Dragon Lady’s Revenge, 1971)>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공연하였다. 이들 작품에 일관되게 보이는 것은 대사보다는 신체적 움직임이 중요시 되는 코메디아 델아르테식의 코미디 종합연기이다. 데이비스는 코메디아 델아르테를 차용한 이유에 대해 “열린 공간에 마스크의 사용, 음악, 개그 등 다채로운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백 드롭이나 플랫폼은 무대를 간편하게 세울 수 있기 때문”33)이라고 밝혔다. 마임극단의 연출가 첨리 또한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형식으로 코미디를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코미디는 메시지를 설교 투로 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교조적으로 받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극을 하는 사람들이 코미디를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임극단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정치극 연출가들의 공연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야외공간에서 뭔가 볼거리, 들을거리가 없으면 관객들은 주저 없이 자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끝으로 마임극단은 무대공간을 채우는 방법에 있어 무용과 마임 연출기법을 활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연출가들이 무대장치를 포기하고 빈 무대를 선택하는 것은 공연을 배우의 신체적 움직임 중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예로서 폴란드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는 무대장치, 의상, 분장을 일종의 속임수로 간주하고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직 배우의 신체와 기술만을 사용하여, 극적공간을 변화시키고 소도구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킬 것을 주장한다. 마임극단의 데이비스 또한 자신의 연출적 배경인 무용과 마임을 주무기로 빈 무대공간을 오로지 배우들의 신체적 움직임으로 채우는(극중 장소, 시간, 대소도구) 다양한 기법을 선보였다. 아울러 마임극단은 의상, 가면과 같은 움직이는 무대장치를 활용하여 관객들의 볼거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전문연주가들은 극중에서 배우들과 상호 앙상블을 이루면서 공연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마임극단 정치극 연출의 이념과 전략을 수립·수행했던 데이비스가 극단 운영과 관련한 내부적인 갈등으로 1969년말 극단을 떠나면서 마임극단 정치극도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34) 데이비스가 떠난 이후 극단은 집단 연출체제로 전환하였고, 코메디아 텔아르테가 외국에서 빌려온 형식인 점에 반대하여 미국연극에 뿌리를 둔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대중적 요소가 풍부한 뮤지컬 드라마, 뮤지컬 코미디 형식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형식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임극단이 지난 60여년간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사회개혁의 의지와 실천의식은 공연형식에 상관없이 현재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베트남전이 종결되고 미국에 평화주의가 만연하면서 대부분의 정치극 전문극단들이 활동을 중단한 반면, 마임극단은 새로운 연출전략의 작품으로 한결같이 야외공연장을 찾아다니며 극단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1959년 창단 이후 100여 편 이상의 공연을 올려온 마임극단은 작품의 형식 또한 마임극, 코메디아 델아르테, 인형극, 서사극, 멜로드라마, 뮤지컬드라마, 뮤지컬 코미디 등 주제와 내용에 따라 다양하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마임극단의 정치극은 관객들에게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밀접하게 연동함은 물론 시기적인 변화의 추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연출전략을 고안하면서 지속해 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극 연출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지면의 한계상 마임극단의 정치극이 자리잡은 1960년대 초반의 ‘게릴라연극시기’의 연출전략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변화시기인 1970년대 이후의 마임극단의 연출전략에 대해서는 후속연구로 남기고자 한다.
33)Roy L, Walford, Op.cit. 34)60년대 말 데이비스는 게릴라연극 10년을 결산하면서 기존의 마임극단이 추구해온 선동선 전형의 정치풍자극에서 탈피하여 예술성과 정치성을 미학적으로 조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 첫 번째 시도로 그는 브레이트의 <투란도트(Turandot), 1969)>를 공연하였다. 이 작품을 공연하는 과정에서 데이비스는 두 시간 반 정도 분량의 원작을 야외에서 공연하는 것에 반대하는 극단소속 배우들과 갈등을 격었으며, 한 시간 반 분량으로 각색해서 공연을 올렸지만 기존의 마임극단 공연에 익숙한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였다. 이 작품을 계기로 단원들이 작품선정에서 극단운영까지 단원전체가 참여하는 집단운영체제를 요구하자 데이비스는 자신이 창단한 극단을 자의반 타의반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