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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A Study in Conversion of Media from Novel to Filmic Adaptations 소설에서 영화로의 매체전환 연구 -소설 <내 마음의 풍차>에서 영화 <어제 내린 비>의 경우-
  • 비영리 CC BY-NC
ABSTRACT
A Study in Conversion of Media from Novel to Filmic Adaptations

이 논문은 소설에서 영화로의 매체 전환 연구를 통해 서사 변화의 동력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소설과 영화가 지닌 매체의 상이함은 동일한 주제의식을 지녔더라도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상이한 주제의식으로 각색할 때에는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인물의 성격과 내러티브의 골격도 달라진다. 따라서 각색 작업에 있어서 주지해야 하는 사실은 문자언어와 영상언어의 변별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고의 분석 텍스트는 최인호 소설 <내 마음의 풍차>와 김승옥 시나리오 <어제 내린 비>이다. 소설이 유동적 근대성에 직면한 주체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영화는 한 여성을 향한 이복형제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제의식의 변화를 통해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가 변화되었다. 또한 소설의 자유로운 내적 서술들을 다양한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으로 영상화하였다. 청년영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김승옥의 각색 작업에 관한 연구는 각색과정에 나타난 동학뿐 아니라 당대인들의 인식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서 의의를 지닌다.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각색이 대중성을 확보한 것은 고진이 말한 자의식이 곧 시대의식이라는 맥락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KEYWORD
adaptation , conversion of media , written language , film language , the given circumstance
  • 1. 서론

    본고에서는 소설 <내 마음의 풍차>에서 영화 <어제 내린 비>로의 각색 과정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각색이란 ‘한 작품의 장르를 다른 장르로 전환시키거나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소설을 희곡화, 시나리오화, 방송극본화하는 경우 또한 그 반대의 경우가 해당된다.1) 각색의 태생적 이유는 시각화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문자로 형성된 ‘영상 파노라마’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싶은 관객의 욕망에 기인한다. 현대는 영화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지의 시대는 곧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을 중심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도 존재했던 시각 중심주의의 연장이다. ‘보다’라는 동사 속에서 서양 문명의 사유 방식이 숨어있다.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되는 서구 인식론의 문제는 눈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정교하고 명증하게 변형시켰고2) 서구의 이식된 근대성은 우리의 시지각도 빠르게 변화시켰다.

    우리 영화사에서 각색의 시작은 ‘문예영화’로부터 비롯된다. ‘문예영화’라는 장르는 일본에서 쓰이기 시작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문학작품 각색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취향을 지닌 영화를 일컬음으로써 폭넓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6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고 김승옥 역시 ‘문예영화’ 각색에 동참하였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이 성취를 이루자 대중소설을 젊은 감독이 동시대의 문화적 코드를 담아 세련된 영상과 음악을 포장하는 ‘청년영화’가 트렌드가 되었다.3) <별들의 고향>의 성공 이후 최인호 소설의 각색은 영화인들에게 매력적인 소구 대상이 되었다. <별들의 고향>을 연출했던 이장호 감독이 최인호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어제 내린 비>는 김승옥 각색, 안인숙, 김희라, 이영호 주연으로 제작되었고 개봉 초부터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1975년 1월 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했고 1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작으로 꼽혔지면 작품성으로나 흥행 기록 면에 있어서 <별들의 고향>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승옥은 최인호의 <내 마음의 풍차>, <침묵의 소리>, <정원사>의 세 작품을 취합하여 영화 <어제 내린 비>를 각색한다. <정원사>와 <침묵의 소리>는 단편소설로써 에피소드만 삽입되었다. <정원사>에서는 기타 공연을 하는 동생의 여자를 뺏는 내용을 차용4)하고 있으며 <침묵의 소리>에서는 도시의 밤을 즐기는 형제의 모습과 동생의 자살 모티프를 삽입했다. <어제 내린 비>의 정치한 각색은 성장 소설 <내 마음의 풍차>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내 마음의 풍차>와 <어제 내린 비>를 비교 분석함으로 써 소설의 각색화를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더불어 1976년에 영화 <내 마음의 풍차>가 최인호 각색, 김수용 연출로 다시 제작되었음을 밝힌다.

    본고에서는 소설가에서 각색자로 전환함으로써 한국 영화사에 기여를 한 김승옥의 각색 연구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최인호 각색의 <내 마음의 풍차>는 논외로 하겠다. <어제 내린 비>를 논의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기존의 ‘청년영화’로 분류되는 김승옥의 대표적인 각색 작품들 중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등은 많은 연구가 진척되어진데 반하여 <어제 내린 비>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매체 전환 과정을 고찰해봄으로써 서사 변화의 동력과 그 발생 연원을 살펴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할 것이다.

    김승옥 연구는 대부분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동인지 『산문시대』에 발표된 작품들로 한정된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행해진 16편이 넘는 각색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나리오에 관한 연구는 소략하다.5) 이는 문학과 영화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매체적 위계와 통속영화라는 장르적 위계에서 비롯된다. 연구자들은 그의 후기 소설들과 시나리오들에 대하여 본격적인 비평과 학술 논문으로 다루기 부담스러워 하는데 이는 문란한 성도덕의 묘사, 타락한 여성, 매춘 등이 주된 내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6) 그러나 전기의 순문학, 후기의 통속소설이라는 규정은 소극적 이분법적 구도에 의한 것이다. 통속적인 것을 상상력이라는 감수성의 세계로 인식을 전환할 때, 통속성과 진지성에 대한 적극적인 이분법으로 변화한다.7) 김승옥의 영화작업 또한 적극적인 이분법의 관점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소설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여했던 영화 작업을 통해, 유동적인 근대성의 풍경들을 전경화한다. 근대적 개인이 가족적이고 공동체적인 연대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전통과 보수주의의 중압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주체들은 모순되고 혼란된 상황 안에 놓인다. 소설과 영화에 각각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적 방황과 행위들을 통해 이러한 지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내용적 측면과 더불어 원작 소설이 시나리오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세부적인 변화의 원인을 매체의 성격과 결부지어 우선적으로 고찰해 볼 것이다. 원작 소설이 시나리오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현상들의 원인은 다양하다. 매체의 특성, 주제의식의 변화, 장르, 각색자의 성향, 시대적 분위기, 상업적 요인 등의 필수적인 요소와 우연적인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최종적인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8) 매체가 상이하다고 해서 주제의식이 반드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주제의식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매체의 상이함은 다른 양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위의 예들 중 한 가지 요소로 변화가 수반되지는 않는다. 그러함에도 각색자의 선택과 배제의 원리에 의해 매체전환이 이루어짐에는 틀림없다. 변화의 동력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이유는 각각의 매체가 지닌 고유성을 파악하여 성공적인 각색에 임하기 위한 전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맹아인 영화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성의 성취이다. 따라서 각색자는 대중성을 전제로 각색을 하게 마련이다. 소설에서 시나리오의 변화 과정 연구는 대중성을 성취하는 요인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1)홍재범, 「각색 방법론 정립을 위한 시론」, 『한국극예술연구』, 제36집, 2012, p.191.  2)노명우, 「시선과 모더니티」, 『문화와 사회』, 제3권, 2007, pp.52-53.  3)백문임, 「70년대 문화지형과 김승옥의 각색 작업」, 『현대소설연구』, 제29집, 2006, p.61.  4)김지혜, 「김승옥 각본 작업에 나타난 남성 주체 연구」, 『현대문학이론연구』, 제48집, 2012, p.294.  5)김명석,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과 영화 <안개>비교 연구」, 『현대소설연구』, 제23집, 2004. 백문임, 「70년대 문화지형과 김승옥의 각색 작업,」, 『현대소설연구』, 제29집, 2006. 이수현, 「김승옥 각색 작업에 나타난 멜로드라마적 특성」, 『현대문학이론연구』, 제31집, 2007.  6)차미령, 「김승옥 소설의 탈식민주의적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2, p.63.  7)박성봉, 『대중예술의 미학』, 동연, 2001, p.62.  8)홍재범, 「소설의 시나리오 전환 과정 고찰」, 『한국근대문학연구』, 제19집, 2009, p.336.

    2. 서사 변화의 동력: 주제의식의 변화

    본장에서는 서사 변화의 동력을 살펴보기 위해 소설과 시나리오의 상동성과 변별점을 분석해 볼 것이다. 텍스트의 내러티브를 분석한다는 것은 그 내용과 형식적 국면 모두를 잘라 본다는 것이다. 하나의 유기체인 텍스트를 난도질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원하여 봉합하여야 한다. 따라서 텍스트 분석은 쉽지도 않거니와 건조한 물리적 공정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 분석의 첫걸음은 텍스트 분절에서 시작된다. 9)

    소설은 장편소설이며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나리오는 183씬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가 공유하고 있는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공유하는 위의 사건들을 통해 소설과 극 텍스트의 상동성을 독자/관객은 인식하게 된다. 배다른 형제가 한 집에 기거하게 되는 ➁가 시초에 해당되며 여자가 영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➅은 종말에 해당된다. 플롯이 구성되기 위해서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다. 사물이나 생물은 일정한 크기를 가져야 하고 그 크기는 쉽게 통관할 수 있어야 하듯이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10)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내적 초점화라 할 수 있는 원텍스트는 동생의 외모와 자폐적인 삶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서 동생과 함께 살게 된 사연으로 플래쉬백된다. 쥬네트는 이를 소급제시라 명명하는데 시간상의 퇴행으로 앞선 사건이 나중에 거론되는 것이다.11) 소설에서는 시간 전환이 비교적 자연스럽지만 영화에서의 잦은 플래쉬백은 혼돈을 가중시킴으로써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따라서 극 텍스트에서는 영후가 아버지 집으로 오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전사와 과거 회상은 플래쉬백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소설에서 도도한 명숙의 모습에 반한 영후는 성관계 후 그녀의 처녀성을 깨트린 것을 알게 되고 당황한다. 극 텍스트 역시 영후와 민정이 정사를 나눈 후의 장면이 등장한다.

    두 텍스트에서 여성의 순결이 통과의례처럼 가시화되고 있다. 1970년대 한국 멜로 영화에서 성관계 이후 ‘침대위의 혈흔’이라는 상투적인 장면 구성은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원작에서 여성에 대한 순결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영화는 이미지와 스펙터클에 의존하는 매체이며 장르이고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므로 여성의 육체이미지를 중심으로 전시한다. 두 텍스트 모두 남성의 시선을 통해 여성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고자 하는 충동으로써12)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텍스트는 다수의 담화에 형체를 부여하며, 그 텍스트가 생산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한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13)

    원작에서 명숙의 임신이 영후에게 ‘극적인 것’에 해당되며 이는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하는 데에 비해 시나리오에서 민정의 임신은 다른 사건을 발생시키는 서사 추동력이 된다.

    명숙/민정의 임신에 대한 영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는 영후의 자기부정에 기인한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관습에 의해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영후는 근대적 사회의 상징질서와 충돌을 일으킨다. 두 텍스트에서 임신 소식을 접한 영후의 첫 반응은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상이한 결말을 초래한다.

    영화에서 영후는 시간-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있다. 트라우마는 고통의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는 상태이다. (#174에서 #176까지)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 이미지는 상처의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일상 속에 은폐된 억압에 대응하는 내면의 응시로 작용한다.14) 시간-이미지는 단순한 소급제시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 판단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인간의 내면에서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에 동일한 작용을 하면서 삶의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영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부분은 감정-이미지에도 해당된다. 이는 인물의 얼굴 표정에 상응하는 어떤 대상 이미지의 은유화로 나타난다. 카메라의 외부성에 의존하는 영화에서 얼굴 클로즈업은 정서표현의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얼굴이란 우리 신체 중에서 ‘내부로부터 물결치는 것’을 이미지-기호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15)

       2.1. 소설에만 존재하는 사건

    모더니스트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자아의 파편화 현상이 재현된다. 파편화 현상을 통해 서술자는 서커스 공연장의 배회자이자 동시에 자신이 엿보는 불쌍한 광대가 되기도 하고, 관찰하는 나이자 동시에 관찰되는 내가 되기도 한다.16) 즉, 화자와 인물이 동일인이고 화자로서의 ‘나’와 인물로서의 ‘나’라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나’의 존재 입증과 세계에 대한 진실의 표명이 서로 뒤섞이는 것이 바로 1인칭 주인공 소설이다. 따라서 1인칭 주인공 소설은 ‘자아(나)’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인칭 주인공인 소설에서 경험자아가 서술자아로 전환되는 순간은 일생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의 순간이다. 사건을 겪은 후 ‘나’는 격정에 사로잡혀 인생에 대한 중대발언을 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격정이 진정되면 ‘나’의 충동은 서사적 진술의 욕망으로 전이되어 이야기의 첫 부분을 서술하게 된다. 이러한 서술의 충동은 경험자아가 겪은 상처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상처의 경험이란 자아를 동일화할 수 없을 만큼 분열과 고통에 시달리는 순간들이다.17) 소설에 등장하는 형제들의 외연은 자아의 파편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의 도시 일상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풍경과 유사하다. 연일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하위주체들의 도시 상경이 이루어지며 군중들이 거리를 누비게 된다. 대도시의 군중을 처음 목격하는 자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불안, 역겨움, 전율이다.18) 영욱은 중학시절 도시에서 길을 잃은 후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침묵의 세계 안에 자신을 유폐시킨 채 살아간다. 영후는 영욱을 정상인으로 만들겠다는 구실로 데리고 나가 도시의 밤을 즐긴다. 영후는 아버지 법 안에서 양육된 영욱에게 증오를 갖고 그가 가진 침묵의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 이는 아버지라는 대타자에 대한 분노와 상징질서를 위반하고 싶은 욕망에 다름 아니다. 화자는 내면의 피폐함을 자세히 상술하는 대신 ‘거짓웃음’과 ‘도벽’통해 행위화한다. 도벽이 있는 영후는 영욱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창녀촌에서 여성의 육체에 눈 뜨게 한다. 이들의 모습은 도시를 유동하는 산책자와 유사하다. 화려한 네온싸인과 새로운 건축물 등은 도시가 지닌 스펙터클에 해당된다. 자본주의가 초래한 웅장한 사회 경제적 변화들은 일련의 사회 현상들을 촉발시키거나,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된 대도시는 삶의 구조를 변화시켰다. 보들레르가 명명한 도시 산책자들은 대도시의 시각적, 청각적 오락 요소들에 홀려 뭔가 흥미를 당기는 진기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정처 없이 거닐면서, 불변하는 즉각성이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자극의 현장을 경험했다.19) 스팩터클화된 도시는 근대인들의 시지각을 변화시킨다. 벤야민을 통해 의미화된 ‘도시 산책자의 초상’은 근대 이후 문학에서의 새로운 주체 구성을 암시한다. 텍스트에서 도시 산책은 자아정체성을 획득하는 기제이다. 위태로워 보이는 두 인물의 행위를 통해 독자는 텍스트의 몰입과 이완을 반복하며 서사의 거래에 참여한다. ‘인물의 눈’을 사용하는 소설은 자연스럽게 정서와 심리를 드러내면서 독자들이 감정이입 되도록 한다. 20)

    영후는 명숙과 영욱이 성관계를 맺도록 유인하며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명숙의 임신으로 인해 영후는 동생과 연인을 불신한다. 영후의 자기파괴적 본능은 자신을 향해 순수한 관계를 맺으려는 이들의 노력까지 무화시킨다.

    영욱의 충고로 인해 명숙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더불어 영욱이 침묵의 도시를 파괴 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자신 역시 소용돌이치던 자기세계가 고요해짐을 느낀다. 그가 자폐적인 영욱을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영욱과 명숙으로 인해 불안정한 자신의 세계가 안정된 것이다. 영욱의 자폐적인 증세는 겉으로 드러나기에 치유 가능한 것이었으나 웃음 띈 얼굴로 내면을 숨기는 영후의 자아가 더 위태로운 것이었다. 영후를 향한 명숙과 영욱의 ‘사랑’은 영후로 하여금 자아 정체성을 획득하게 한다. 아버지의 집을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영후는 어머니가 있는 옛 집으로 향하며 명숙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길 부탁한다.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기 이전, 어머니에게 훈육된 위치에서 어머니와 임신한 명숙을 위하는 보호자적 위치로 변주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저널리즘의 상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대중 소설은 자본주의적인 상품논리보다는 작가와 독자라는 문학 내적 연관 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성격이 강했다. 70년대 신진 작가들의 대중소설은 지식인 문학과 상업적 대중 문학 양쪽에서 다소의 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소설가와 독자가 동일한 ‘세대적 정체성’을 지녔으며 이들의 ‘세대적 정체성’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대변될 수 있다.21)

       2.2. 시나리오에만 등장하는 사건

    원작의 시공간을 일부 변경하거나 새로운 상황과 사건을 ‘서사적 채워 넣기’22)를 통해 삽입하는 것은 각색의 필수 과정이다. 각색자는 매체와 장르의 고유한 특성을 먼저 인식하고 극적 효과를 위해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각색 텍스트의 구체적인 장면화를 이루어야 한다.23)

    소설에서 명숙의 임신이 ‘극적인 것’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이었다면 시나리오의 민정의 임신은 파국으로 향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극적인 것’은 민정과 영욱의 동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극적인 것’을 발생시키는 내적 변화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계기는 발견-깨달음이다. 이는 반성적 성찰, 기왕에 세계를 바라보던 관점의 붕괴, 삶 자체에 대한 인식지평의 심화, 확대 혹은 인간 관계의 질적 전환 등 변화를 의미한다. ‘극적인 것’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삶의 모습과 방향성은 확연히 달라진다.24) 둘의 죽음 이후에 제시되는 영후의 삶의 방향에 관해 유추한다면 극 텍스트의 영후는 사랑했던 여자와 자신의 아이, 동생을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림으로써 더 처참한 삶을 살아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원작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시나리오의 결말은 비극에 해당된다.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패배주의에 대한 경고로써 해피엔딩적 결말을 유도하는 정부의 지침에도 반한다. 이는 ‘정체성 찾기’에 해당되는 원작이 '이복형제간의 삼각 멜로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촉발된 주제의식의 변화 때문이다.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갈등 구조는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상황임을 내포한다. 이는 창작자 및 대중들의 상징질서를 유지하길 원하는 인륜적 총체성의 회구라 할 수 있다.25)

    9)서정남, 『영화 서사학』, 생각의 나무, 2004, pp.90-91.  10)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시학』, 문예출판사, 2002, pp.56-57.  11)마이클 J 툴란. 김병욱 역 ,『서사론』, 형설출판사, 1993, p.83.  12)주유신, 「포르노그래피와 여성의 성적 주체성」, 『영화연구』, 제26호. p.399.  13)마리 매클린, 임병권 역, 『텍스트의 역학』, 한나래, 1997, p.96.  14)나병철, 『영화와 소설의 시점과 이미지』, 소명출판사, 2009, p.447.  15)위의 책, p.358.  16)마리 매클린, 앞의 책, p.119.  17)나병철, 앞의 책, pp.246-247.  18)발터 벤야민, 반성완 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p.142.  19)위의 책, p.58.  20)나병철, 앞의 책, p.295.  21)백문임, 앞의 논문, p.64.  22)서사적 채워 넣기: 텍스트의 빈곳에 다양한 이유로 해서 언급되지 않은 필수적이거나 있음직한 사건, 특성, 대상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 (시모어 채트먼, 김경수 역,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민음사, 1990, p.64)  23)홍재범, 앞의 논문, p.343.  24)홍재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한국 극예술의 접점』, 연극과 인간, 2006, pp.31-33.  25)구현경, 「김승옥 각색 시나리오의 여성 재현 연구」, 『인문과학』, 제64호,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2012, p.137.

    3. ‘주어진 상황’의 변형

       3.1. 인물 성격과 관계의 변화

    각색자가 주제의식의 변화를 의도한 후 각색에 임할 때 ‘주어진 상황’을 변형시킨다. ‘주어진 상황’이란 용어는 푸시킨이 미완성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로 스타니 슬랍스키가 자신의 연기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극작가가 제시한 상황을 연기자 자신의 상황으로 받아들여 그 속에서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이는 각색에도 적용된다. 원텍스트의 작가에 의해 ‘설정된 상황’을 이어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두 텍스트는 대부분의 ‘주어진 상황’을 서로 공유하고 있지만 약간의 변형을 통해 전혀 다른 장르로 변주된다.

    작중인물과 사건은 서사물의 논리상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형식주의자들은 작중인물을 플롯의 하위 범주로 보았지만 이야기란 사건과 존재물이 다 나타나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26) 따라서 인물은 사건만큼 중요한 등가개념이 된다. 포스터는 인물을 ‘입체적 인물’과 ‘평면적 인물’을 분류한다. 현대 서사물에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입체적 인물 양상을 지닌다. 입체적 인물은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모순적이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입체적 인물은 보다 더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열린 구성물을 만들어낸다. 27) 입체적 인물은 ‘극적인 것’의 체험과 연결된다. 입체적 인물은 자신의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사건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면모를 보이면서 변화해 나간다. 따라서 텍스트가 시작할 때의 성격과 변화되어 텍스트를 끝맺는다.28) 두 텍스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입체적인 인물로서 각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요구한다.

    1) 이복형제인 영후와 영욱

    원작과 각색텍스트에서 이복형제인 영후와 영욱은 친형제와 다를 바 없이 의좋은 형제로 비춰진다. 주요인물이 이복형제라는 것은 새롭지 않지만 처음부터 서로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은 핍진성이 부족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인 사건은 혈연관계를 통해서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친형제가 아닌 배 다른 형제 사이의 갈등은 극단적으로 치닫기 때문에 이는 본고의 두 텍스트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드라마나 영화에 있어서 주요한 인물관계를 형성한다. 표면적으로 두 텍스트의 ‘주어진 상황’은 동일해 보이지만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다.

    소설속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나’의 내적독백을 통해서 내포작가의 상호 텍스트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개념은 하나의 행위는 다른 행위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담화를 사용하지만 다른 사람의 담화의 재생산에서 끊임없는 돌연변이를 확보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29)

    내포작가는 기존의 소설 관습에 항거하며 자신만의 발상의 전환을 꾀한다. 또한 이는 텍스트에서 사생아로 낙인찍힌 사회적 인습에 항거하기 위한 필연적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영후와 영욱의 내면적 고독과 방황을 내포독자로 하여금 수긍케 하여 이복형제라는 관계 설정이 개연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내면 서술이 어려운 극 텍스트에서는 이들의 관계는 갈등의 행위화를 위한 것으로 작용한다.

    영후와 영욱의 뒤틀린 내면은 상반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들의 성격 형성 과정은 환경결정론에 입각한다. 작중인물과 사건 양자 사이의 관계는 인과적이거나 유사할 것이다. 배경의 자질은 작중 인물들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원인이나 결과에 해당된다.30) 영후의 어머니는 늘 술에 취한 채 화투패를 돌리며 자신의 아들을 학대한다. 대조적으로 영욱의 어머니는 기도문을 외우는 등 종교생활에 집착하는 모습이 서술된다. 한 남자에 의한 여인들의 상처는 다른 양상으로 표출되며 이는 자식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후가 보이지 않은 자기세계에 갇혀 산다면 영욱의 자기세계는 외재화된다. 하지만 극 텍스트의 특성상 상세한 서술과 묘사가 어렵기 때문에 영욱이라는 인물에 대한 밀도 있는 통찰을 어렵게 만든다.

    극 텍스트에서는 성인과 다름없는 영욱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한정적으로 시각화된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 의해 인물 성격이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극 텍스트는 소설의 주제의식인 ‘자아 정체성 찾기’에서 벗어나 ‘한 여자와 이복형제의 삼각관계’로 변하기 때문에 영욱과 영후의 내면의 상처에 관한 고찰은 축소된다. 원작의 병적인 인물이 극 텍스트에서는 유약하면서 예술적 감성을 지닌 평범한 인물로 변주된다. 하지만 영욱이라는 인물의 내면이 소거된 채 ‘미성숙한 어른’이라는 외양만을 소설과 동일하게 시각화한데 있어서 개연성을 얻지 못한다. 한 등장인물이 카메라에 의해 보여 질 때와 소설가에 의해 표현되어질 때와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각색자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육체적 존재가 사건 배치에 끌어들일 수도 있을 불균형에 신경을 써야 한다.31) 소설의 특징인 내면 묘사가 소거된 채 인물들의 외연만을 극 텍스트에 수용했을 때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개연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모든 서사물은 수용자와의 소통을 염두 해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서사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청중은 다양한 서사 텍스트 모두에서 연행의 본질적인 창조 행위에 부분적으로 참여한다. 32) 이를 서사적 채워 넣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서사물은 빈 시공간, 틈새가 존재하고 이러한 틈새를 서사의 흐름과 동시에 수용자가 적절하게 메워나가는 작업이다. 33)

    원작에서 영욱은 훤칠한 외모에 통기타를 치는 모습의 외양 묘사에 그치지만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기 위해서 극 텍스트에서는 통기타 가수로 시각화된다. 이는 음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음향은 영상의 하위단계가 아닌 등가개념으로 작용한다. 음향은 우리가 영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구체화시켜 준다. 하나의 영상에 대사, 음악, 음향효과가 있으며, 다양한 음향 요소들과 시각적 가능태들이 결합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다. 34) 영화는 소위 음악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음향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싸롱 안의 풍경이외에도 영화 내내 흐르는 배경음악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가인 ‘어제 내린 비’는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 시각화된 싸롱의 풍경과 음악은 1970년대 젊은이들의 정서와 문화를 적절히 반영하여 세련된 음악영화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으며 청년영화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소설의 영욱은 영후로 인해 도시의 밤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는 자신이 만든 침묵의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어둠 속에 갇힌 자기세계에서 벗어난다. 또한 영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음을 통해 영후가 정체성을 찾도록 이끄는 중요한 인물이다. 원텍스트에서 영후는 의도적으로 명숙과 영욱을 관계를 맺게 하려 만들고 영욱은 명숙에게 이끌려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는 영욱의 의지가 아닌 영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명숙의 의도였다. 동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각 인물들의 목표가 다르다면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극 텍스트의 인물에게 목표가 중요한 이유는 목표로부터 인물들의 모든 행위가 출발하고 그 행위들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며 서사가 추동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목표는 그가 말하는 무엇이아니라 무엇을 획득하기 위한 구체적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다.35)

    극 텍스트의 전반부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캐릭터가 영후였다면 극 텍스트의 후반부의 서사를 추동하는 인물은 영욱이 된다. 원작의 영욱이 치유 가능한 병인인데 반해 극 텍스트의 영욱은 평범한 인물에서 영후와 민정에 대한 배신감과 사랑에 대한 상실로 비극적 결말을 택하는 광기 어린 인물로 변한다.

    극 텍스트에서는 영욱이 민정에게 동반여행을 가길 부탁한다. 이 지점에서 삼각관계의 욕망은 정점에 달한다. 그들이 여행을 떠난 사이 영후의 질투심과 의심도 상승한다. 권총을 숨긴 채 여행을 떠나는 영욱의 목표는 민정과의 동반 죽음이다. 형과 정혼녀의 사랑이 상실감과 배신감을 수반하며 ‘죽음 충동’을 발생시킨다. 각색자는 단편 「침묵의 소리」에서 동생의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주어진 상황’을 가져왔다. 여러 작품과 혼용하여 각색화 하는 이유는 영화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현대의 관객에게 이러한 비극적 장치는 개연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대에 있어서 이러한 지점들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 문법의 도식에 충실하게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당대의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등장 하는 청년들의 원인 모를 ‘자살’은 당대의 유신 정권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을 함의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영욱과 민정의 이별 여행은 비극적 결말을 향한 단초이다. 민정의 임신 때문에 죽음을 미룬 채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들은 영후에게 버림받게 되고 영욱은 자기파괴를 통한 복수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2) 명숙/민정

    소설에서는 영후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명숙이 각색되면서 영욱의 유치원 친구인 민정으로 설정된다. 이는 삼각관계의 욕망을 드러내며 갈등을 가시화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이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는 스테레오 타입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주된 모티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민정은 영욱의 정혼녀와도 마찬가지다. 인물 관계의 설정은 변하지만 명숙/민정의 성격은 유사하다. 명숙/민정은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명숙이 영후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인물이라면 민정은 영후를 사랑하면서 영욱의 부탁으로 이별 여행을 떠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3) 영후모

    원작에서 영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오이디푸스적 욕망으로 형상화된다. 어머니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다.

    영후모는 일반적인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된 아들을 향해 욕설을 남발하며 퇴폐적인 몸짓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는 남성 권력에 의한 피해자인 여성의 황폐한 내면이다. 그녀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내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이 낳은 아이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호적에 올릴 수 없다. 영후는 자신의 아들이면서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이다. 이는 깊은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아들 앞에서 떳떳한 어미가 될 수 없는 자기부정의 몸짓은 영후에게도 대물림된다. 늘 영후에게 욕설을 내뿜으며 강한 척 했던 어머니는 영후가 본가로 들어가고 아프기 시작한다. 이를 시각화한데 있어서 영화 속의 영후모의 외연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의 슬픔은 다르게 표출된다. 소설 속의 영후모는 막연히 영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극 텍스트의 영후모는 재혼을 함으로써 영화가 다른 결말을 맺게 만든다.

    원텍스트에서 영후모의 존재는 자기 정체성의 지난한 방황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의 어머니가 불온한 자아를 만들고, 방황하고 완성시켜주는 존재론적 인물인데 반해 극 텍스트에서 영후모의 재혼으로 영후는 끝내 자기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를 취하게 되는 치정적인 멜로드라마로 향하게 한다.

       3.2. 문자언어의 영상화

    소설 속의 상세한 내면 묘사는 내포독자로 하여금 이들의 성격 형성 과정을 긍정하게 한다. 한 등장인물이 카메라에 의해 보여 질 때와 소설가에 의해 표현되어질 때와는 동일하지가 않다.36) 인물의 눈을 사용하는 소설은 정서와 심리를 드러내면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해 내지만 ‘카메라의 눈’인 영화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영상기법을 사용해야 한다. 인물시점, 클로즈업, 몽타주 등이 그것이다.37) 더불어 이들의 성격묘사를 위해 영화 속에서 다양한 상징적인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상황38)’의 물리적 차원에 해당한다. 물리적 차원은 소도구, 장면배치, 조명, 음향, 소음 등 무대 위에 고려해야 할 물리적인 무대적 환경이다.39) 영화는 다양한 사건과 소도구들의 세부 모습을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며 평범한 주위 환경을 탐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필연성에 대한 통찰의 기회를 확보해준다.40)

    현대의 수용자에게는 생소한 ‘웃음기계’의 등장은 소설 속에서 늘 가식적인 웃음을 띄며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영후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나는 늘 웃고 다녔다. 한 번도 상판에 웃음기가 없었던 적은 없었어. 선생에게 야단맞을 때도 나는 늘 웃기만 했었어. 청소하면서도 늘 웃기만 했어… 바보 같은 녀석들은 진짜의 나를 모르고 있단 말야. 나는 늘 웃으며 다니고 있었지만 실상 내 내면에 숨겨진 우울함, 슬픔, 그리고 야비함, 교활함. 이 모든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거야.” 원작의 내적 서술은 인물의 심리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내적 서술은 표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이나 클로즈업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웃음기계’는 전원을 켜면 비소와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난감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물건으로 영후가 늘 지니고 다닌다. 소도구에 대한 클로즈업은 영화의 암시적 묘사41)에 해당된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묘사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쥬네트가 정의한 ‘휴지’ 없는 시간 흐름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42) 시간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특정 소도구의 클로즈업과 롱 쇼트를 통해 암시적 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웃음기계’의 빈번한 출현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깨트리기도 한다. 원작을 접한 수용자들은 ‘웃음기계’의 의미가 이해되지만 영화만을 접한 관객, 수용자들은 인지가 어렵다.

    ‘웃음기계’의 역할이 내러티브 안에서는 개연성을 떨어트리고 있지만 영상 매체의 청각화에 인해 ‘웃음기계’의 비소는 관객들에게 서스펜스를 조성시키며 불행한 결말을 짐작 가능케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차의 추락과 동시에 울리는 ‘웃음기계’의 기괴한 웃음소리는 상징질서를 위반하려는 인간의 허튼 욕망에 대한 경고를 함의한다.

    극 텍스트에만 등장하는 영후의 ‘교수용 올가미’ 역시 소설속의 자기파괴적 성향을 지닌 영후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한 중요한 소도구이다.

    죽음을 염두 해 두고 살아가는 영후의 교수용 올가미는 백지와도 같은 영욱의 내면을 물들인다. 영후를 따르고 의지했던 영욱은 형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심을 자기파괴를 통해 완성한다. 그는 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죽음을 자처한다. 영후가 지녔던 자기파괴적 속성은 빠르게 전염되어 자신이 아닌 타인을 희생시킨다.

    원작에서 어머니의 학대와 자신의 출생에 대한 회의를 지닌 영후의 분노는 ‘도벽’과 ‘거짓 웃음’으로 묘사된다. 풍차가 돌아가듯 혼란스러운 그의 내면은 영화에서 운동선수로 시각화된다. 이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섬세하고 유약한 영욱과 대조적인 성격으로 부각시키며 민정이 마초적인 성향을 지닌 영후의 남성성에 이끌리게 하는 역할도 제공한다.

    극 텍스트는 영후가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택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축구에서 권투로, 다시 마라톤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이를 통해 내면의 고통을 운동을 통해 표출했다는 것을 추이해 볼 수 있다. 신체를 통해 사유가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43) 영후라는 인물은 단체생활을 힘들어하고 경쟁을 극도로 기피하며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잊기 위해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시각화한다.

    영후는 마라톤 시합에서 선두 주자로 1위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음에도 경쟁이 가져다져는 불안감으로 인해 시합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욕망을 참지 못하고 동생의 여자를 취하긴 했지만 결국 동생과의 한 여자를 둔 경쟁구도 역시 회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욱과 민정이 함께 여행을 떠난 것에 분개한 영후가 그들을 외면하려 도피한 곳도 결국 마라톤 연습장이다. 민정과 영욱이 사고를 당하는 씬 다음으로 마지막 엔딩씬에서 영후는 그들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도로 위를 질주하는 모습이 롱쇼트로 부감된다. 이를 보는 관객은 영후의 자기부정의 몸짓은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만 알 수 있는 극적 아이러니구조로 시각화된다. 영상 이미지는 대상 쪽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우월한 반면 이러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주관적 의미작용에서는 미결정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소설에서 서술자가 자신의 내면을 소상히 전달하는 데에 비해 영화에서의 수용자가 주관적으로 취하게 되는 선택의 문제가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이 비단 영후라는 한 개인의 내면을 시각화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주어진 상황’의 층위에는 ‘정신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이 있는데 ‘극적 공간’은 ‘정신적 차원’의 ‘주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극적 공간’은 극이 발생하는 ‘시대적 공간’에 해당된다. 1970년대 고도의 산업화 시대는 아버지 세대의 강요로 인해 과도한 경쟁의 부추김을 받는다. 아버지 세대와의 다른 젊은이들의 가치관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 마라톤은 한국의 1970년대라는 극적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의 사회적, 문화적 코드는 배경이 되는 쇼트를 통해 암시되기도 하고, 인물의 행동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방식 자체에서 사회, 문화적 코드가 작동되기도 한다.44)

    영화는 ‘주어진 상황’을 원작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상징을 통해 시각화시킨다. 각색자가 소설가인 김승옥이기 소도구에 문학적 상징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리라 추측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을 통해서 각색 작업이 처한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다. 원작을 접한 관객과 영화만 접한 두 층위의 각기 다른 수용자를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문학적 자질이 우수하고 결정적인 작품 일수록 각색은 그 작품의 균형을 뒤흔들어놓고 그것은 또한 동일한 균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옛 균형과 등가의, 새로운 균형에 의해, 작품을 재구성하기 위한 창조적인 재능을 필요로 한다.45) 바쟁이 의미하는 바는 문학성이 높은 텍스트에 해당될수록 문자언어를 영상언어로 전환시키는데 창조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6)시모의 채트먼, 최상규 역, 『원화와 작화』, 예림기획, 1998, p.149.  27)위의 책, pp.175-176.  28)홍재범, 앞의 책, p.32.  29)마리 매클린, 앞의 책, p.22.  30)마이클 J 툴란, 앞의 책, p.151.  31)앙드래 바쟁, 박상규 역, 『영화란 무엇인가』, 시각과 언어, 1998, p.147.  32)마리 매클린, 앞의 책, p.39.  33)홍재범, 앞의 논문, p.209.  34)서정남, 앞의 책, pp.72-74.  35)홍재범, 「만화의 시나리오 전환과정 고찰(2)」,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6집, 2008, p.529.  36)앙드래 바쟁, 앞의 책, p.147.  37)나병철, 앞의 책, p.295.  38)주어진 상황: 무대 위에서 배우의 작업을 위한 모든 상황, 배우가 창조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완성을 위해 고려해야하는 모든 여건과 상황들(홍재범, 앞의 책, p.158).  39)홍재범, 앞의 책, p.158.  40)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도서출판 길, 2009, p.82.  41)암시적 묘사는 우선 특별하게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42)시모어 채트먼, 한용완 역, 『영화와 소설의 수사학』, 2002, p.68.  43)나병철, 앞의 책, p.429.  44)홍재범, 앞의 책, p.361.  45)앙드래 바쟁, 앞의 책, p.133.

    4. 맺음말

    본고에서 선정한 텍스트 서사 변화의 동력은 주제의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주제의식의 변화로 인해 ‘주어진 상황’과 인물 성격의 변화를 통해 사건을 변화시킨다. 주제의식의 변화는 장르의 변화까지 함의하고 있다. 서술자의 의식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내적 초점화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각색화함에 있어 김승옥은 다양한 상징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의 공식에 알맞게 변경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십대 청춘의 방황과 정체성 찾기’인 성장소설에서 ‘이복 남매의 삼각 멜로드라마’로 변주한 그 연원에는 대중성의 성취가 가장 큰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당대 대중들에게 가장 소구력이 높은 장르영화라 할 수 있다.

    영상매체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독자들은 글을 읽음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영상 파노라마’를 떠올리고 이를 구체적인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시각화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다. 이미지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 깊이 천착되고 있어 문학작품의 각색화는 날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대중에게 인기를 확인받은 베스트셀러 소설들은 대부분 영상화된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소설의 영화화가 무조건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원작을 능가하는 성공적인 각색 작품은 소수에 국한된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재현할 수 있는 영상의 범위는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개별자들의 다양한 영상 파노라마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시각적 충족은 획득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각색이 어려운 이유는 각색이라는 작업을 철저한 준비 작업 없이 임하는 기획자와 각색자의 인식 때문이다. 각색을 과소평가 하는 태도는 성공적인 각색으로 이끌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각색 시나리오가 창작 시나리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자와 영상이라는 다른 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며 두 층위의 수용자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색자의 각색을 임하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모든 서사물의 목적은 소통에 있고 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작가/감독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문자언어와 영상언어의 차이를 인식한 후에 선택과 배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각색 시나리오의 전환 과정을 고찰해보는 연구는 시의성을 지닌다. 더불어 그동안 통속성으로 폄하되어 온 김승옥의 후기 작업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성취한 성공적인 각색자라는 인식 전환과 함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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