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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Heracles’ Madness and War Neurosis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전쟁신경증
  • 비영리 CC BY-NC
ABSTRACT

Heracles has been adored as one of the bravest mythical heroes all times and all places because it was thought that he protected his people and lands from invasion, plunder, or enslavement. However, I argue Heracles should be criticized as a war machine of violence and murder. War is homicide itself, which means humans kill humans, unlike other violent and sensual animals such as dogs, apes or pigs. It is ironically ambivalent to celebrate an excellent hero in homicide in this age of nuclear weapons. This irony leads to S. Freud’s ‘Death instinct’ or Malcolm Potts’s ‘war genes’. Unlike Freud, Malcolm Potts insists that humans’ war genes can be changed into peace genes because they were just remains of Stone Age. According to Apollodoros’ myth or Euripides’ tragedies, he was mad enough to kill his own sons and wife after he had murdered the king Lycos in Thebes. Though Rene Girard says that his madness was derived from contagion of violence and blood, I think that his madness came from horrible experiences of cruel wars as well as Hera’s maltreatment in his childhood. It will be demonstrated to be war neurosis, that is,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In a different way from the modern media in which Heracles is being glorified as a purest macho and war machine, his old myths show the ambivalence of his violence and murder, and his daily misfortunes owing to his madness. In this sense, his myth is a kind of warning to the humans not to kill each other, or to stop wars.


KEYWORD
Heracles , madness , homicide , war neurosis , PTSD , sacrifice
  • I. 헤라클레스, 양가적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용맹스런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신화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될 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의 소재이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어린이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있는 영웅이다. 하지만 그의 용맹함을 좀 더 생생하게 말하면 폭력과 살인의 대가라 할 수 있는데 그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나 신화적 인물들이 기억 속에 사라지거나 연구용이나 일부 호사가들의 입담으로 남아있는데 비해 헤라클레스만이 유독 그 오랜 서사적 생명력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웅이 칭송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 즉 국가가 폭력조직을 갖추고 타공동체로부터의 침입과 위협을 물리치기 이전에 공동체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웅의 불굴의 의지와 용맹함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울타리로 삼고 싶어하는 가장 큰 미덕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Achilles)의 용맹은 그리스가 전쟁의 승기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10년 전쟁에 지친 그리스 군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듯이, 헤라클레스의 용맹함은 도리아 족이 스파르타의 지배 종족이 되게 하고 스스로 스파르타의 시조신이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의 용맹은 사자나 암여우, 머리가 백 개 달린 용 들의 괴물이나 적대적인 외부 공동체의 적들을 살해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에게도 그 용맹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미덕을 넘어 폭력 그 자체가 된다. 영웅의 용맹이 적들에게 공포를 주고 공동체 내에는 안도감과 안정감을 주어야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용맹은 공동체 내에도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을 환대하는 청년을 절벽에 던져버리고 자신의 아이를 불 속에 던져버리거나 화살로 쏘아죽이며 자신에게 술을 따르는 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죽여버린다. 더나아가 욕정에 못이겨 여자의 남자 가족들을 살해하고 그 여자를 데려온다. 영웅의 폭력이 외집단으로 향하지 않고 내집단으로 향할 때 신화는 그것을 광기라고 명명한다.

    조폭이나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폭력적인 이런 헤라클레스가 고대 그리스에서 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 나아가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칭송되고 인류의 영웅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대 앗시리아에서부터 바이블에 나오는 잔혹한 족장, 중세의 십자군의 만행, 프랑스 외인부대의 아프리카에서의 살육 등 인류 역사이래 많은 잔혹한 지도자들은 비난받고 부정적인 영웅으로 제시되었지 칭송의 대상은 아니었다. 칭기스칸의 경우도 중앙 아시아인들은 옛 영광을 그리워하며 칭송할지언정 다른 사회의 사람들은 그 야만적 행위에 분개한다.

    현대사회는 폭력을 음성적으로 부추길지언정 양성적으로 폭력을 찬미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헤라클레스가 찬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이들 잔혹하고 용맹한 무수한 영웅들의 지역이 그리스가 아닌 반면, 헤라클레스는 현대 서구문명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이 지닌 양면성은 전근대적인 비그리스의 폭력적인 문화는 야만으로 치부하는 반면 전근대의 그리스적인 폭력성은 영웅으로 미화한다는데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작동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이 글의 초점은 아니다. 이 글은 왜 그리스인가가 아니라 인류는 왜 폭력적인 살인과 전쟁을 행하며 신화적 탈을 쓰고 그것을 찬미하는가를 고찰한 다음, 헤라클레스의 광기에 드러난 폭력의 양가성을 통해 인류의 반면교사로서 신화를 살펴보자는데 있다.

    II. 폭력에 대한 찬미―죽음본능과 전쟁유전자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행위를 대단하게 평가하며 그의 서사를 즐겨 읽거나 관람한다. 그런데 영웅적이라 일컬어지는 이런 행위는 괴물이나 동물에 대한 살해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에 대한 살해와 여성에 대한 강간이다. 개, 돼지, 원숭이는 모두 인간처럼 성에 관심이 많고 폭력적인 행동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인간과는 달리 동족 말살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데 인간은 왜 동종살해를 하는 자를 찬미할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동종살해는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등장에는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없었다고 역사는 보고한다. 더 나아가 단지 죽이고 전쟁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전쟁과 살인, 그 영웅들에 관한 영화나 소설, 역사적 기록물을 즐겨보고 그것 역시 주요한 하나의 문화적 형식이자 내용이 되었다는 사실은 ‘전쟁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이론과 ‘인간은 전쟁유전자를 원래 가지고 있다’는 이론으로 나아가는 근거가 된다. 많은 학자들이 살인과 전쟁을 행하고 찬미하는 인류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 글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죽음본능 이론과, 말콤 포츠(Malcolm Potts)와 토머스 헤이든(Thomas Hayden)의 전쟁유전자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1차 세계대전으로 대규모 집단살상의 회오리에 빠져든 인류에 대해 비관하면서 전쟁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인간의 성적 욕망인 리비도를 인간의 기본본능으로 보던 이론에서 한발 후퇴해서 인간에게는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이중본능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죽음의 본능을 기본적으로 추동하는 것은 공격성이다.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성욕이나 공격성향은 모두 인간의 자기보존 및 종족보존을 위해 주어진 동물적 본능인데 전자는 인간의 몸과 정신을 움직이는 ‘삶’의 힘(libido)으로, 후자는 인간 존재를 결국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본능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가 죽음의 본능이론을 제시하면서 전 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찬성했다고 할 수 없다. 그는 비관적 전망을 가지고 음울하게 인류의 동종살해를 수용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말콤 포츠는 헤이든과 함께 지은『전쟁유전자』(Sex and War)에서 인간의 동종살해가 인간에 내재된 전쟁유전자 때문이라 본다. 그에 따르면, 유인원과 흡사한, 숲속에 살던 인간 조상에게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나 이로 인해 성인남성이 형제나 사촌들과 연합하여 이웃을 습격하거나 살해하게 되었고 그러한 성향을 보였던 이들이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나와있다. 더 넓은 영역은 더 많은 자원을, 더 많은 자원은 더 많은 여성을, 더 많은 여성은 더 많은 성교의 기회를, 더 많은 성교의 기회는 폭력적 성향을 포함한 해당 남성의 유전적 소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많은 수의 자손을 의미한다. 집단 내에서 폭력을 도모했던 남성들은 냉혹한 자연의 투쟁에서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다(28). 이들이 역사에서 승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냉혹한 폭력적 남성의 후손들이 더 많으며1 따라서 우리의 생물학적 기반에는 사람을 죽이고 여성을 강간하는 그런 장면을 즐겨하는 감정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들에 그런 장면과 소재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콤 포츠는 프로이트가 음울하게 1차 대전을 관망했던 것과 달리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이 넘도록 개별적인 종으로 존재했는데 이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해온 수십억 년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인류 역사의 95%는 수렵채취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씨족 집단 내에서의 생존과 번식, 그리고 싸움으로 점철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성적 행위의 바탕을 이루거나 폭력을 유발하는 행동체계는 석기시대의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한 것으로 협력이 다수에게 도움이 되고 핵폭탄이나 생물학적 무기가 사용자를 포함한 인류 전체에 해를 입힐 수 있게 된 이 글로벌 공동체에 맞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31).

    이러한 말콤 포츠의 주장대로라면 헤라클레스는 원시시대의 석기 시대적 영웅이지 현대의 영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의 헤라클레스라 할 수 있는 람보가 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지니고 하나의 마을을 몰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람보를 현대의 영웅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문화의 진화속도가 생물학의 진화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인간의 석기시대 행동을 몸에 새긴 전쟁유전자를 억제하고 그 기저에 깔린 정서적 반응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것을 뜻한다.2

    12003년 각국의 유전학자로 구성된 어느 팀에서 중앙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DNA분석을 발표했다(T. Zerjal 외 717-21). 중앙아시아 남성의 8퍼센트가 사실상 동일한 Y염색체를 지니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는 단지 신기한 생물학적 사항이 아니라 인류라는 집단의 과거에 대한 중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이 Y염색체는 남성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동일한 Y염색체를 지니는 남성들은 모두 한 명의 동일한 남성의 후 손임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가지다. 최근 천년 이내 역사의 어느 시점에 한 남성이 엄청난 수의 자손을 낳았다는 것이다. 말콤 포츠는 1206년에서 몽골제국의 황제로 군림하여 1227년까지 살았던 칭기스칸이 바로 이러한 역할에 들어맞는 역사적 인물이라고 말한다(23).  2황헌영은「전쟁관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정신분석: 대상관계론적 치료적 접근을 통한 목회상담학적 담론」에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도구로 한 폭력포교’를 정당화한 기독교교회에 대해 비판한다. 기독교회가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관으로 우리의 정신과 영성을‘무장’시키는 죄를 범해왔다고 본다.

    III.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폭력의 양가성

    헤라클레스 신화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이슬람교도, 비서구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서구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찬양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헤라클레스 신화는 양가적이다. 헤라클레스는 가장 살육적이고 잔혹한 영웅이면서 자신의 가족까지도 살해하는 광기로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자신이 타자에게 행한 폭력이 여러 겹의 과정을 거친 결과 결국 그 자신까지도 희생된다. 이러한 폭력의 양가성은 이미 석기 시대에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폭력행위의 결과가 내집단의 공동체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다른 공동체를 멸망시키기 위해 만든 핵폭탄이나 화생물학적인 무기로 인류가 절멸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플루타르크(Plutarch)에 따르면, 영웅이란 반신반인을 말한다. 부모의 한쪽은 신이고 나머지 한쪽은 인간이다. 트로이 전쟁의 대표적 영웅인 아킬레스는 아버지는 인간이나 어머니는 테티스이다. 반신반인이라 함은 신적인 능력을 지녔으되 인간으로서 불사의 생명을 가지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영웅은 항상 비극적 존재이다. 아킬레스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불사의 존재가 될 뻔했으나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음으로써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이 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아킬레스나 다른 영웅과 달리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올림프스 산으로 올라가 신이 되어 불사의 영생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헤라클레스는 왜 신이 되었을까? 헤라클레스를 신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혈통이 신적계보를 따라야 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알크메네(Alcmene)이다. 알크메네는 암피튀리온(Amphitryon)과 결혼을 하였으되 남편이 출정을 갔다 돌아오기 하루 전날 밤에 제우스가 남편으로 변신하여 잠자리를 가진 후 헤라클레스를 잉태하고, 다음날 남편과의 관계를 가진 후 이피클레스(Iphicles)를 잉태하여 둘을 한꺼번에 낳는다. 아킬레스는 어머니만 여신이고 아버지는 인간인데 비해 헤라클레스는 아버지를 제우스로 할 뿐 아니라 탄생의 서사를 예수 탄생의 서사와 같은 장치를 들이댄 것이다. 요셉과 잠자리를 하기 전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시킨 것과 알크메네에게 제우스의 아들을 잉태시킨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알크메네의 모성을 부정하여 헤라가계모로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는 유일신이 아니라 다신의 세계이다. 전지전능한 유일신과 달리 그리스 신들은 자신의 전문영역을 특화시킨다. 이성과 합리의 신인 아폴론이나, 전쟁의 신 아테나나 아레스 그리고 상업의 신 헤르메스와 대장장이 기술의 신헤파이스토스 들이 그 예이다. 헤라클레스에게 신성은 다양한 능력 가운데 살육기술과 정력이다. 정력은 제우스 역시 그에 못잖기 때문에 실제로 헤라클레스의 신성은 그 어느 인간 개체가 꿈꿀 수 없을 정도의 살육의 능력과 기술로 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헤라클레스는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을 훨씬 더 능가하는 괴력의 소유자이다. 이런 괴력은 신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가 태어난 지 여덟 달이 되었을 때 헤라는 아이를 죽이려고 거대한 뱀 두 마리를 아이의 침대로 보냈다. 헤라클레스는 일어나 두 손으로 그 뱀들을 목 졸라 죽였다고 한다. 그는 전차 모는 법과 레슬링, 그리고 활 쏘는 법을 배우며 중무장하고 싸우는 기술을 연마하면서 고대그리스의 전형적인 귀족 기마전사로 자라난다. 그리고 오르페우스(Orpheus)와 형제간인 리노스(Linos)3에게 키타라(kithara)4 연주를 배운다. 고대에 음악은 전사이자 귀족인 사내들의 사나운 성정을 순화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과목이다. 충동을 제어하고 성정을 다스리는데 음악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거꾸로 충동을 제어하고 아주 단순하고 지겨운 것의 반복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제대로 배우지 않자 키타라 스승 리노스가 나태하여 제대로 열심히 배우지 않는다고 키타라로 헤라클레스를 때린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분격하여 스승 리노스를 바로 그 키타라로 때려죽인다(아폴로도로스 2.3.8-9)). 이때부터 헤라클레스는 용맹이 그 한도를 넘어 제어하기 힘들게 된다. 공동체의 안정된 구성원으로서 질서있는 문화적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적을 섬멸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전쟁기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지게 되는 셈이다.

    아버지 암피트뤼온은 헤라클레스가 또다시 그런 짓을 할까 두려워 그를 소 떼를 지키는 목동으로 보내버린다. 그곳에서 귀족전사로서 왕궁이나 성채에서 자라지 않고 헤라클레스는 시골 촌구석에 방치되는 셈이 된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자라며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체격과 힘을 지니게 된다. 외모만 보아도 제우스의 아들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는 전 한다(2.4.9). 키가 4완척이나5 되고 두 눈에는 불이 번득였으며 활을 쏘든 창을 던지든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와 인근 유력자 테스피오스(Thespios)의 소떼를 괴롭히는 사자를 18살 때 때려죽이는 용맹을 발휘한다. 그는 사자를 제압한 뒤 사자의 가죽을 몸에 둘렀고 쩍 벌어진 사자의 입을 투구로 사용하여 범접못할 잔혹한 전사의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한다(아폴로도로스 2.4.10).

    이처럼 목동으로서 야만의 상태에서 자라오던 헤라클레스가 지도력과 전투력을 인정받게 된 것은 테바이와의 관계에서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헤라클레스는 테바이인들이 공물을 바치던 미뉘아이 족의 왕 에르기노스의 전령들을 폭행하고 귀와 코와 손을 잘라 노끈으로 그들의 목에 묶은 다음 그것을 공물로 에르기노스와 미뉘아이 족에게 갖다주라 한다. 이에 분개한 에르기노스가 쳐들어오자 아테나 여신에게서 무구를 받아 전투를 이끌고 에르기노스를 죽이고 미뉘아이 족을 패퇴시킨다. 이제 미뉘아이 족은 테바이에게 공물을 그 전의 두 배로 바치게 된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크레온(Creon)에게서 그의 장녀 메가라(Megara)를 승리의 상으로 받아 가정을 꾸리고 테리마코스, 크레온티아데스, 데이코온 3명의 아이를 낳는다(2.4.11).

    보통의 옛날 이야기가 그렇듯‘헤라클레스가 결혼을 한 후 한 번씩 원정을 나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며 평화시에는 사자와 멧돼지를 사냥하면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더래요’에 머물었다면 헤라클레스 신화는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편안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고 폭력과 광기의 악순환으로 끝없이 내몰린다는데 신화의 참 의미가 있다. 신화는 어리석은 듯 하지만 세계와 우주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폭력의 본질은 광기에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광기를 부르고 광기는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야 말로 자신의 하체를 먹으면서 식욕을 채우는 괴물과 같다. 맘껏 배가 부른 순간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거칠지만 공동체에 꼭 필요한 전사이자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고 결혼을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삶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공동체의 생활에 안착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미뉘아이족과의 전투가 끝난 뒤 헤라의 질투로 미쳐 메가라가 낳아준 자기 자식들을 이피클레스의 두 아이와 함께 불 속에 던져 살해한다(아폴로도로스 2.4.12).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헤라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의 광기가 일어난 것은 12고역을 마친 이후라고 본다(922-26행). 12고역의 마지막을 마치려고 케르베로스(Cerberos)를 끌고 오기 위해 저승에서 오래 동안 헤라클레스가 지체하는 동안 뤼코스(Lycos)가 테바이의 왕 크레온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왕위찬탈은 헤라클레스가 없는 틈을 타서 힘의 공백기에 이루어진 셈인데 뤼코스는 그가 돌아오기 전에 테바이에 있던 헤라클레스의 가족을 제물로 제단에 바치려고 한다. 이때 헤라클레스가 돌아와 뤼코스와 그 일당들을 살육한다. 그리고는 그 폭력의 피를 정화하기 위해 희생제의를 드리다가 헤라가 보낸 광기의 여신 륏사에 의해 미쳐서 자신의 아들들과 아내를 살해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자신에게 고역을 시킨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의 아들로 착각하여, 한 명의 아들은 심장을 화살로 쏘고, 제단 아래 웅크리고 있던아들이 “아버지”부르며 매달리자 활을 쏘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 “발갛게 단무쇠를 망치질 하는 대장장이처럼 몽둥이로 아들의 금발머리를 내리쳐 두개골을 박살내”(992-93행) 죽인다. 그러자 아내 메가라가 아이를 몰래 데려가 방문을 잠그자 헤라클레스는 문짝들 밑을 파고는 지레로 들어올려 문설주들을 뜯어내어 화살 하나로 아내와 아들을 쓰러뜨린다. 그 이후에 노인인 아버지를 죽이려고 덤벼들다가 갑자기 나타난 어떤 환영에 의해 졸도하게 되면서 잠들게 된다(1002-05행).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의 신화이든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든 상황은 설정은 조금씩 다르나 헤라클레스가 광기로 자식을 살해하는 것은 다름이 없다. 광기로 자식들을 살해한 헤라클레스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에서는 자신에게 스스로 추방형을 선고하고 테스피오스에게 죄를 정화받은 뒤 에우뤼스테우스가 부과하는 12고역을 완수하는 것으로 가족 살해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걸로 되어 있다(2.4.12). 이것은 뮈케나이 왕 에우뤼스테우스가 공동체의 대표자로써 헤라클레스가 작게는 가족의 살해, 크게는 공동체인 내집단에 미치게 될 폭력의 광기를 제어하고 충성심을 제고하기 위해 내린 명령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인간 살해가 지닌 측면은 포악성인 동시에 이타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외집단에 대해서는 포악성을 발휘하여 살해하기 위해서는 내집단 내의 이타성과 충성도가 반드시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역설이 가능하다. 사실 사회적 동물에게 이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말콤 포츠의 말대로, 죽이려고 하는 대상을 탈동일시하는 일종의 신경조직을 진화시키지 않았다면 지능과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 동족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78).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공격성에 대하여』(On Aggression)에서 동물들이 같은 종을 공격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지만 이것은 악이 아니라 종족 보존을 위한 선으로 본다. 공격본능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억눌러 동족을 살상하지 않게 하는 장치도 존재하기 때문에 동종에 대한 공격이 경쟁에 머물고 서로 절멸 상태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즉 “같은 종끼리 서로 상처입히고 죽이는 것을 막는 여러 행동생리학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교적 고등한 동물의 사회적인 행동양상으로는 대체로 범해서는 안되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말콤 포츠는 외집단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탈동일시의 전략이 진행되면서도 진화는 그 눈먼 실험에서 인간의 마음에 “일종의 감정이입 스위치”를 달아놓음으로써 내집단에 대한 살해충동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102). 감정이입 스위치를 자유로이 조절하여 대상을 내집단이나 외집단 중 어느 쪽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하는지에 따라 인간은 같은 인간을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공감과 연민으로도, 냉혹한 무감동과 무관심으로도 대할 수 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에게는 이런 역설적 측면, 즉 포악하면서도 이타적인 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상황에 따라 충동을 실현하거나 제어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폭력과 광기의 메카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는 아이를 살해한 행위를 단 두 줄로 언급하고 있지만, 특히 에우리피데스의「헤라클레스」에서 집중 조명되는 것은 ‘폭력과 피의 감염’이다. 헤라의 하녀 륏사가 광기를 보냈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조명되는 것은 여신에의한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헤라클레스가 행한 ‘폭력과 피’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살해된 집에서 나온 사자(使者)가 코로스의 연로한 시민들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이 나라 왕 뤼코스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집밖으로 던진 뒤 살육의 피로부터 집을 정화하기 위한 제물이 차려진 제우스의 제단 앞에 서 있었다. 헤라클레스에 광기가 몰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이들이 보기 좋게 할아버지 암피트뤼온과 어머니 메가라와 조용히 서 있는데 그는 횃불을 집어 성수에 담그려다 말고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활과 몽둥이를 달라고 말한다. 또한 쇠지레와 곡괭이를 가지러 가는 시늉을 하다가 갑자기 연회장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더니 이스트모스의 숲 우거진 평야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한 후 옷을 벗고 알몸으로 있지도 않은 상대와 레슬링 경기를 한다. 그러고는 스스로 전령이 되어 자기가 이겼노라 선언한다. 이때 아버지 암피튀리온이 말한다. “내 아들아. 네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설마 네가 방금 죽인 자들의 피가 널 미치게한 것은 아니겠지?”(965-66행). 아버지 암피튀리온이 두려워하는 것은 피와 폭력의 본질이다. 피의 존재는 학살을 말해주며 동시에 새로운 비극을 예고한다. 피는 폭력을 죽음의 색깔로 접하는 것 모두를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e)에 따르면, 전사의 귀환은 본래의 신화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바로 사회학적인 또는 심리학적인 용어로 해석된다. 전장에서 돌아옴으로써 “조국의 자유를 위협하는 개선장군은 이제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역사이다”(65). 나라와 공동체를 지킨 전사들은 후방의 비전투요원들의 패배주의에 분개하는데 실제로 폭력으로 충만된 전사들의 몸은 어떤 조그만 계기로도 그 방향을 바꾸어 내집단으로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다. 로렌츠는 영역 싸움을 하던 숙적을 떼어내고 나면, 항상 자기가족에게로 공격 성향을 돌려서 마침내 가족을 멸망시키고 마는 어떤 물고기 종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폭력을 어떻게 정화시킬 것인가, 즉 충만된 폭력의 전염성을 어떻게 차단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이에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희생제의라는 정화의식이다. 희생제의는 적이든 자신의 편이든 인간의 살육이라는 나쁜 폭력을 희생제의라는 좋은 폭력으로 정화하고 순화시켜서 그 폭력의 감염성을 줄이자는 취지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살인을 했을 경우 그 피의 감염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정화의식을 한다. 아이스퀼로스(Aeschylos)의「자비로운 여신들」(Eumenides)과 에우리피데스의「타우리케의 이피게니아」(Iphigeneia he en Taurois)에서는 모친살해범 오레스테스의 정화의식에 대해 말하고 있고 헤로도토스(Herodotos) 또한 이러한 정화의식은 헬라스 인들에게만 아니라 그가『역사』에서 다루는 지중해 지역의 다양한 나라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사례를 들어 언급하고 있다(1권 35.) 고대의 정화의식은 이처럼 폭력이 과잉되어 그 전사의 폭력이 공동체 내로 유동적으로 흘러오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다.

    이와 유사하게, 하지만 많이 달리, 스티프 비덜프(Steve Biddulph)는 뉴질랜드 원주민의 정화의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타우포 근처 작은 골짜기에는 여행자들의 눈에도 띄지 않고 멋진 호텔로부터도 몸을 숨기고 있는 마오리족 소유의 자그마한 온천이 하나 있다. 작은 시냇물이 화산 활동으로 끓어 오르는 뜨거운 진흙과 바위 위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서, 무성한 이파리들로 둘러싸인 공터의 작은 절벽 위에서 펄펄 끓는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이곳이 바로 신성한 장소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전사들은 거기서 증오와 두려움, 그리고 전쟁에서 흘린 피를 씻어 버리고 다시 인간이 되는 의식을 치렀다(45).

    그런데 뉴질랜드의 이런 정화의식과 달리 고대 그리스의 희생제의는 초기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여서 그 피를 뿌린다. 아이스퀼로스의「아가멤논」(Agamemnon)에 나오는 이피게니아나 에우리피데스의「헤라클레스의 자녀들」(Herakleidai)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딸 마카리아는 살해되어 그 피가 제단에 뿌려진다. 「헤라클레스」나 아폴로도로스에 나오는 희생제의는 동물을 희생물로 쓴다. 지라르는 희생제의는 동종의 인간을 살해하는 나쁜 폭력을 순화시키는 좋은 폭력으로 보지만, 동물이든 인간이든 살아있는 피를 본다는 의미에서 둘 다 폭력의 본질은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에우리피데스의「헤라클레스」에서 자신의 아이 셋과 아내를 살해한 현장이 바로 희생제의를 들이는 곳이었다는데 주목한다. 그의 말대로 주인공이 행한 희생은 다시 주인공에게 폭력을 집중시킬 따름이다. 희생제의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의 살해가 최근 도시에서 이루어진 살육의 피를 불러오면서 헤라클레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 것이다. 이에대해 르네 지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라르가 보기에 살육이든 제의든, 나쁜 폭력이든 좋은 폭력이든 피는 모두 불순한 것이다. 제의적 정화의식을 처방하는 것으로는 충만된 폭력의 전염성만을 확인할 뿐이다.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휩싸이게 된 순간은 정화의식을 통해 폭력이 다시 튀어올라 공동체에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전사가 행한 외부적 폭력은 희생제물에서 흘린 피를 통해 다시 튀어 올라 공동체에 오히려 폭력을 감염시킴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헤라클레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가족을 제단에 바치려는 뤼코스의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여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를 정화의식에 제물로 바치게 되고 만다. 결국 헤라클레스의 뤼코스 살해는 자신의 몸을 먹는 괴물처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파멸시키는 행위였다.

    3테베의 전설에 따르면 리노스는 천문을 관장하는 뮤즈인 우라니아와 음악가인 암피마로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그 자신도 위대한 음악가였다. 리노스는 ‘리노스의 노래’를 만들었지만 감히 아폴론의 경쟁자로 나섰다는 이유로 그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4나무로 된 공명판과 상자 모양의 몸통(공명통), 여기에서 뻗어나온 2개의 텅빈 나무팔에 횡목을 붙여 줄을 매달았다. 처음에는 현이 3개였으나 나중에 12개까지 늘었고, 이것들은 횡목에서 악기 몸통의 맨 아래까지 연결되었으며 그 사이의 공명판에는 줄받침이 걸려 있다. 현은 대개 채로 연주했고 소리내는 현 이외의 현들은 왼손으로 감싸 불필요한 배음을 없앴으며, 때로는 여러 현들을 동시에 누르거나 배음을 내기도 한다. 독주 악 기로 사용할 때는 양 손으로 현을 뜯어 연주했다. 바로 세워 연주하거나 연주자 쪽으로 약간 기울여 어깨나 팔목에 기대기도 했다(다음백과 참조).  5이집트의 단위인 완척(腕尺cubit)은 고대사회에서 가장 널리 퍼진 선형측정단위라고 알려졌다. 이 단위는 BC 3,000년경에 쓰였는데 팔꿈치에서 펼친 손끝까지의 길이로 54cm 정도로 보면 된다. 이렇게 보면 헤라클레스의 키는 약 216cm가 된다.

    IV. 광기와 전쟁신경증 혹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헤라클레스가 희생제의를 드리던 중 미쳐서 자신의 아들들을 불 속에 던져버리는 것처럼 최소한의 가족이나 친족 내집단에서의 감정이입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위기일 뿐 아니라 엄청난 공동체의 위기이다. 자식과 아내도 몰라보는 인면수심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것은 단지 헤라클레스가 키타라 스승 리노스를 죽였던 것처럼 살인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본질적으로 잔혹한 인간의 문제일까? 신화가 전하는 대로 그는 인간적 고뇌나 공포 등 정서적 감응이 전혀 없는 전쟁기계일 뿐일까? 그의 광기는 그가 단지 타고난 전쟁기계나 전문화된 살인의 신이 아니라 자의든 타의든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 내몰린 결과라 할 수 있다.

    때때로 단일 유전자나 특정 호르몬이 이러한 경향이나 성향을 제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동물에게서 특정 유전자가 결핍되면 자기파괴적 대담성이 표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이 유전자가 없는 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다 눈에 잘 띄는 물체에 기어올라 고양이나 여타 포식자 앞에서도 숨지 않고 자신을 노출시킨다. 물론 인간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세포의 상호소통에 사용되는 분자인 호르몬의 작용을 통해서다. 남성 호르몬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은 지위와 공격에 대한 대부분의 남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충동제어를 형편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폭력 범죄나 가정폭력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연관이 있음이 발견되었다(J. H. Brooks 외 475-83).6 20-24세 사이의 미혼 남성은 동일한 연령집단의 기혼 남성에 비해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3배나 높다. 그러나 인간의 성욕이나 이웃에 대한 증오심 등 대부분의 행동은 수많은 유전자 집합 간의 복잡하고도 변화무쌍한 상호작용에 달려 있으며 주변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뤼코스에 의해 희생제물로 바쳐지려 했던 순간을 간신히 모면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아내와 아이들이 제단 앞에서 나란히 서 있는데 헤라클레스가 횃불을 성수에 담그려다 말고 가만히 서서 머뭇거리자 놀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 안에서는 눈알들이 구르고 눈의 핏줄들은 벌겋게 튀어나와 있었으며 텁수룩한 수염에는 거품이 뚝뚝 듣고 있었다”(에우리피데스「헤라클레스」932-34행). 이것은 전형적인 간질발작의 형태이다. 헤라클레스의 광기발작은 헤라가 보낸 것이라 하여 신의 병이라 하기도 하지만, 오스웨이 템킨(Oswei Temkin) 등 많은 학자들은 신성한 질병은 간질에 대한 대중적인 이름이었다는 많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Simon 221). 히포크라테스 역시 epilepsis를 epileptic seizures와 연관시킨다(section Ⅷ). 여기서 사로잡힘이란 하나의 공격으로서 불연듯이 외부에서 오는 것을 의미하고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광기에 빠진 사람들도 역시 자신이 ‘사로잡힌 것’(seizure or captive)으로 본다. 이것은 개인이 갖는‘자신에 대한 자아감각’(the person’s sense of himself)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광기는 신의 개입이나 영웅적인 함축성을 갖게 되는데 시몬은 sacred(신성한)는 라틴어 사케르(sacer)가 지닌 양가성, 즉 ‘신성하면서 도 저주받은’(both holy and accursed)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221). 발작의 상태는 위험하지만 그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공동체는 피해야 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용맹에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적 행위로 공동체의 발전 확대에 많은 기여를 하지만 그의 광기발작이나 그에 뒤이은, 혹은 그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가족이나 내집단 구성원들의 살해는 그를 양가성을 지닌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만든다.

    현대의 간질환자들의 발작은 극히 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발작을 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뿐 주변사람들에게 가해자로서 혹은 공격자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헤라클레스가 양가적 영웅이 된 것은 단지 발작이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헤라클레스의 광기는‘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일종인 전쟁신경증의 산물이라 본다.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Christina von Braun)은 19세기 말 전쟁경련증에 대한 용어가 등장하였고 1차대전 후 의미가 더 커졌다고 본다(355). 전쟁경련증 군인들은 신체 기관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이유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경련을 보임으로써 전투임무를 거부했다. 너무 많은 전쟁경련증 환자들로 말미암아 이러한 질병을 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는 공격하는 나라들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였다. 이들 나라의 군인들에게 전쟁은 “자신”의 전쟁으로 느낄 수 없는, 그들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투였던 것이다.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의 전쟁으로 동일시할 수 있었던 반대진영의 군인들과 사정이 정반대였다. 이러한 전쟁경련증은 여성의 전환히스테리와는 다른 “정신적 외상에 의한 히스테리”로 전통적인 정신과치료에서 인정했던 남자 히스테리형태로 일종의 전쟁신경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1982년부터 정신의학계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채택한다.

    인간에게 설령 전쟁유전자가 내재해 있지만, 그리고 상대방이 실제로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잔인하게 몰아간 경우도 그리 많지 않는 경우, 주로 가해자와 공격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 살육이 주는 정신적 육체적 부담과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가해자와 공격자의 심성을 주로 가지게 되는 것은 헤라클레스가 직접겪은 학대나 살육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우선 헤라클레스가 가해자와 공격자로의 심성을 강화하게 되는 계기가 유년기의 학대 경험에서 비롯 될 수도 있다.7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 의해 신의 아들이라고 말해지기는 하나 사생아로 태어난 헤라클레스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양어머니 헤라의 질투와 양아버지 암피튀리온의 은밀한 학대로 이루어졌다. 헤라클레스를 죽이기 위해 여덟 달된 아이에게 헤라는 뱀을 보내며, 일설에는 아버지 암피튀리온이 누가 자기 아들인지 알아보기 위해 뱀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후 헤라클레스의 삶은 자신의 잔인한 행동만큼이나 잔인한 형벌을 받는다. 유년기의 학대는 뇌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신체적 혹은 성적으로 학대를 받았던 성인은 해마 부위의 크기가 더 작다.8 아동 학대의 장기적 영향을 연구한 마틴타이처(M. Tiecher)와 하버드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손상이 아닌 적응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68-75). 타이처는 “유년기 스트레스에의 노출은 성인이 되었을 때 위험한 세계 속에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적응하는 방식으로 신경발달을 변화시키는 분자학적, 신경학적 효과를 낳는다”고 본다. 미국 웨스트 포리스트 연구진 역시 이에 대해 “사람이나 새나 학대받은 뒤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는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주7번 자료에서 재인용).

    이처럼 학대와 공격을 경험하는 경우 움츠려들고 피학적으로 빠져들기 쉬운데 어떻게 공격적인 기질로 변할까? 이에 대해 머니키를(R. E. Money-Kyrle)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이론에 근거하여 “광적 진행”(manic proces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46-53). 즉 어린아이는 처음에는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나 동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방법을 통해서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들 학대자들이나 공격자들을 아이들은 내면화된 대상으로 만들어 곧 자신을 곧 그 나쁜 대상의 힘과 공격성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심리적 힘을 얻게 되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광적 성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이가 맞딱드리게 되는, 어두운 숲 속에서 괴성과 함께 덮치는 사자는 아주 무서운 존재이다. 하지만 아이는 의외로 사자 자신이 되어 사자로 인한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때 외부의 나쁜 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내면의 아이를 머니키를은 “광적 진행의 내적 아이”(the inner child of manic process)라 한다. 이“광적 진행의 내적 아이”는 현실을 왜곡하는 편집증적 망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위험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기질에는 큰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헤라클레스의 공격적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진 위험보다 더 높은 수위의 공격을 감행하고 이겨냄으로써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역시 끊임없는 목숨에 대한 위협과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 그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시련에 더 높게 대응해야 한다.

    유년기 이후 헤라클레스의 삶은 부족들간의 전쟁 뿐 아니라 10명이하의 무리로 구성된 잦은 원정과 산적에 버금가는 약탈과 살육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헤라클레스를 제압하기 위해 많은 도전들이 이루어지며 그 도전을 모두 이겨내야할 뿐 아니라 광기로 인해 공동체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내쫓겨 스스로 모든 위험과 긴장을 부담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과도한 피로나 소진, 무기력상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전쟁터의 병사들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가해자와 공격자로서 느끼는 전쟁거부 증세 뿐 아니라 대량학살을 목격하거나 직접 학살의 대상으로써 겪게 되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연구를 모두 포함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간한『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제 4판(DSM-IV: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4th edition)에 의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상해, 개인의 신체적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나 목격, 또는 가족이나 친지의 예기치 못한 무자비한 죽음이나 심각한 상해를 경험한 충격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 무력감, 두려움을 느끼며 그 외상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거나 그와 관련된 자극을 회피하는 들의 증세를 보이는 반응의 형태를 말한다.PTSD 증후군은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이나 심각한 상해를 입을 수도 있고 일상 자체가 위기와 긴장의 연속이며 자신이 신적인 능력을 발휘해야하는 부담으로 가득차 있다(32-65 참조).

    에이브람 카디너(Abram Kardiner)는 1920년 이후 2차 대전 기간에 이르기까지 참전했던 병사들에 대한 임상적 연구를 통해 도덕적 결함(moral invalids)이나 이미 어릴 적부터 형성된 허약한 성격구조를 가진 병사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전쟁후유증(fatigue)이 아니라고 하였다(93). 그는 전투 현장에서 빚어진 부상과 전우의 죽음 목도 그리고 이에 따른 충격과 심리적 증세들이 자아기능(ego function)에 손상을 가져와“생리적 신경증”(physioneurosis)을 초래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긴장 조정력, 정서 상태, 사물 인식력, 일상경험에 대한 의미파악 기능 들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313-14).

    이러한 항상적 외상이 내면세계에 미치는 영향들을 조사한 헨리 크리스탈(Henry Krystal)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퇴행성 기억상실증, 퇴행적 행위들, 꿈속에서 외상에 대한 강박적인 반복경험, 극심한 신체화 증세”들의 증상들을 주요증세로 추가하였다(24). 크리스탈이 연구한 대상은 유태인 수용소의 생존자들이지만 헤라클레스에게 적용해보면, 헤라클레스는 살육의 경험이 주는, 외상에 대한 강박적인 반복경험은 살인충동을 항상화시켜서 그 충동제어가 어려운 신체화된 증상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헤라클레스도 다양한 방법의 치유행위를 통해 일상적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헤라클레스가 아무리 천하무적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무수한 생명 위해의 위기를 겪었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오갔을 것이다. 그때 느꼈을 공포와 불안, 분노, 자신에 대한 절망 등을 털어놓거나 감정의 교유 등 적절한 치료가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 상처는 다음 단계를 기다리며 대뇌 변연계라는 뇌의 원시적 기관에 얼어붙게 된다(Shin 외 67-79). 이 대뇌변연계가 가진 문제는 시간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충격적인 경험이 저장되면 당사자는 마치 그 경험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다 그 충격적인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 일로 느꼈던 감정들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나면 그때서야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은 두뇌의 신피질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상처는 현재상황이 아니라‘전에 일어났던 어떤 일’, 즉 단순한 기억이 된다. 더 큰 삶 속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전혀 구별없이 들이닥치는 것을 플래쉬백이라고 한다. 플래쉬백은 과거 경험에 대한 생생한 재체험을 말하는데 당시의 이미지와 감각을 그대로 느끼며 극적인 운동반응이 동반된다(김순진 13). 희생제의를 드리던 상황에서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테우스의 고역 기간 동안 생사를 다투던 위기 상황을 생각해내자 그것이 플래쉬백을 보이면서 마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끼고 에우뤼테우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그때 자기 옆에 있던 무방비상태의 아이들은 전혀 두려움 없이 공격할 수 있는 좋은 사냥감이고 일순간 자신의 아이들을 에우뤼테우스의 아들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영화「람보」에서 재현되고 있다. 「람보」1편에서는 베트남에서 귀국한 람보는 자신을 불량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찰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당하자 일순 베트콩에게 잡혀 고문을 받던 상황이 플래쉬백 되면서 내집단의 경찰이 가하는 어느 정도 가벼운 가혹행위가 생사를 건 상황으로 오버랩되면서 급기야 조국인 미국에서 여러 명의 경찰 뿐 아니라 하나의 마을을 초토화하기에 이른다.

    소리내어 우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비덜프가 소개한 뉴질랜드의 정화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에서처럼 동물살해를 통해 피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을 행할 때 그들은 죽은 동족들을 애도하고 다른 사람을 죽인 고통과 끔찍함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것이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폭포 아래서 그들은 소리높혀 울었다. 여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이 다시 가족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 그들은 이런 의식을 통해 신들이 자기들에게서 고통과 분노 슬픔들을 가져갔다고 믿었다(45). 하지만 그리스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이유를 슬픔은 여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라 했듯이 헤라클레스 그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기 때문에 역시 소리내어 울지도, 아내나 아버지에게 털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김봉률 115).

    남성다움에 대한 신화로서 헤라클레스에 대한 영웅적 요구와 기대는 그를 평화가 불편한 자로 만든다. 전쟁이 있어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자가 되고 내면 역시 폭력적 충동을 발산해야만 하는,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 어려운 존재로 내몰린다.

    6성적을 향상시키고 체질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테스토스테론이나 기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는 운동선수의 경우 성격이 급해지고 쉽게 싸우는 성향이 심해지는 이른바 ‘스테로이드 분노’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7라이브사이언스 닷컴(livescience.com)이 2011년 10월 4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웨스트 포리스트 대학 연구진은 갈라파고스(Galapagos) 섬에 사는 나스카 부비(Nazca boobies) 어른 새들이 종종 이웃의 어린 새들을 폭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장기간 관찰했다. 그 결과 어려서 폭행을 당한 새들은 어른이 되어 이웃의 어린 새들에게 똑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는 미국조류연맹(AOU)이 발간하는 계간지The Auk(바다쇠오리)에 실렸다. 연구진은 “많은 어른 새가 제 핏줄이 아닌 어린 것들에게 정말로 가혹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 새가 이처럼 폭행당한 과거를 갖고 있으면 장차 어른이 돼서 이런 행동을 할 확률이 매우 커진다”고 밝혔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10/05/0200000000AKR20111005099100009.HTML?did=1179m 검색일자: 2011. 10. 6.  8이와 달리 어릴 때 많이 사랑받는 경우는 스트레스에 훨씬 강하다. 쥐의 경우 다른 어미보다 새끼를 더 많이 핥고 쓰다듬어 주는 어미가 있다. 그렇게 손길을 많이 받은 새끼일수록 어미의 보살핌을 덜 받은 새끼들보다 스트레스에 더 침착하게 반응하며 뇌 내부에도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러한 행동은 후손에게 나타나고 다시 3대째로 전달된다(D. D. Francis 외 286).

    V. 마무리

    헤라클레스는 인류가 지상에 온 이래 가장 용감한 전사로 신화적 인물로 숭앙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기계로서 폭력과 살육의 영웅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역시 갖고 있음을 보았다. 전쟁이란 자연계의 일반 동물들에게는 거의 볼 수 없는 동종살해이다. 인간을 죽이는데 가장 능한 인간을 가장 훌륭한 영웅으로 기린다는 것은 동종살해의 양가성이자 아이러니이다. 이런 아이러니로 인해 보 다 더 공격적이고 경쟁에 강한 남성이 유전자 풀에 훨씬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인간의 호전적 성향 역시 점차 강화된다. 이런 기저에 깔린 정서적 공감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살인마와 조직 폭력배가 난무하고 여성들은 강간되거나 아니면 헤라클레스 못지않은 폭력적인 전사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람보영화와 같은 살육 시리즈를 보면서 폭력에 대한 처음의 열광이 환멸과 지겨움으로 변하는 걸 느낀다. 그것은 살해와 살육에 대한 쾌감의 정서가 차츰 불쾌의 정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헤라클레스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람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살육의 영웅은 현실에서 배제된다. 헤라클레스가 신이 된 데에는 그를 현실의 삶에서 배치시킬 위치가 없기 때문이다. 왕보다도 뛰어난 인간을, 마음 내키면 왕이든 다른 유력자든 몽둥이나 레슬링으로 언제든지 때려잡아 죽일 수 있는 전사를 공동체에 마음 편하게 두고자 하는 왕이나 지도자는 없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공동체를 구하지만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호모 사케르이다. 신성하지만 평화 시에는 공동체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현대에서 헤라클레스를 용감한 전사로만 다양하게 리메이크하는 것과 달리 신화는 그의 광기를 통해 동종살해의 양가성이 귀착하는 최종 귀결을 보여준다. 그의 용맹함은 피와 폭력의 통제할 수 없는, 스스로 증식하는 메커니즘에서 비롯되는 전쟁신경증을 보여주고 그 결과 폭력의 양가성을 확실하게 실현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적에게 겨눈 칼날이 자신의 공동체의 구성원들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스 신화는 인류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하다. 그것은 핵무기나 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취의 석기시대 감수성으로 더 이상 헤라클레스를 정복의 영웅으로만 찬양하지 않고 인류에 대한 하나의 경고로 해석하게 된다면 헤라클레스는 아마 3,000여 년을 건너뛰어 새로운 신화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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