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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Robert Southey, Colonialism, and the East: 로버트 사우디, 식민주의, 그리고 동양
  • 비영리 CC BY-NC
ABSTRACT
Robert Southey, Colonialism, and the East:
KEYWORD
Robert Southey , Thalaba the Destroyer , colonialism , the East , the epic , the panorama
  • I. 들어가는 말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로버트 사우디(Robert Southey)는 영국 낭만주의 연구에서 그다지 중요한 작가로 부각되지 않았다. 낭만주의 당대에 사우디가 영국의 계관 시인으로서 상당한 명성을 떨쳤고 다른 낭만 시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작품은 영국 낭만주의에 대한 비평적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다. 그나마 사우디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는 그와 코울 리 지 (Samuel Taylor Coleridge)가 함 께 주 도 했 던 팬 티 소 크 라 시(Pantisocracy) 공동체에 대한 논의나 바이런(George Gordon, Lord Byron)의 작품에서 그가 풍자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에 대한 논의의 맥락에 한정되어 있었다. 낭만주의 비평에서 그가 이런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을 반영하듯이, 사우디의 작품은 체계적으로 편집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자연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사우디의 작품이 갖는 중요성을 가장 먼저 지적한 낭만주의 비평가는 메릴린 버틀러(Marilyn Butler)이다. 버틀러는 사우디를 낭만주의 정전에 편입시키는것이 단순히 잊혀졌던 작가 하나를 복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 문학 자체에 대한 현재적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Repossessing”83). 사실 대부분의 낭만주의 시인들이 사우디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당대의 다른 텍스트를 분석하는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Repossessing”77-82). 예컨대, 코울리지의「쿠블라 칸」“( Kubla Khan”)은 사우디의 동양을 다룬 시들에 나오는 장면과 매우 유사하고,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서곡』 (The Prelude) 역시 인간 정신의 영적인 모험을 서사시적으로 서술하는 구조적 측면에서 사우디의『파괴자 탈라바』(Thalaba the Destroyer)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제 2세대 낭만주의 시인들이 사우디에게서 받은 문학적 영향력은 더욱 명확하여,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앨라스터』(Alastor)『, 아틀라스의 마녀』(The Witch of Atlas),『이슬람의 반역』(The Revolt of Islam), 그리고 바이런의『아비도스의 신부』(The Bride of Abydos),『이단자』(The Giaour)등의 작품들은 사우디의『파괴자 탈라바』나『케하마의 저주』(The Curse of Kehama)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사우디가 당대에 명성과 문학적 영향력을 누렸던 작가라는 점을 생각할 때 현재 그의 작품이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비평적 문제를 던져 준다. 버틀러는 사우디의 작가적 위치가 변모한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 문학정전(literary canon)이 형성되고 견고해지는 과정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지적한다. 버틀러의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의 논쟁적인 문체, 그리고 당대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그의 직접적 관심은 빅토리아 시대 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따라서 그는 이 당시 국가적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영문학”의 형성 과정에서 배제되기에 이른다( “Repossessing”72). 개인의 철학적인 정신세계를 찬미하고 독자의 마음 속에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배양시켜 주는 워즈워스의 시가 정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과는 반대로, 사우디의 문제적인 서사시들은 낭만주의 시기 주요 작품의 위치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서정시는 낭만주의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장르로 부각되고, 문학의 사회적이고 공적인 영역들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게 된다.

    사우디가 이렇게 오랫동안 낭만주의 비평의 주변부를 떠돌게 된 것이 문학 정전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난 15년간 그의 작품이 비평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최근 낭만주의 비평에서 두드러지는 역사적 관심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우디의 작품들은 최근 들어 대영 제국의 확장과 문화적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1799년에 사우디는 세계의 모든 신화체계에 근거하여 일련의 서사시를 창작하겠다는 매우 야심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에 따라 미국 원주민들의 역사를 다룬『매독』(Madoc), 이슬람 세계를 다룬『파괴자 탈라바』, 그리고 힌두 신화를 다룬『케하마의 저주』를 연속적으로 집필한다. 바이런, 셸리, 드 퀸시 (Thomas De Quincey)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사우디의 이 작품들은 식민화의 과정에서 조우하게 된 미지의 타자에 대한 인식이 서구 문화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통상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는 1878년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보통이지만,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에서 말한 것처럼“유럽의 대외적 헤게모니는 18세기 후반에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58)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에 근거하여, 최근에 영미 낭만주의 연구자들은 18세기 말의 작품들이 타자의 존재에 대해 반응하고 문화적 제국주의의 과업에 그 나름으로 저항하거나 순응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사이드의“오리엔탈리즘”이론이 주로 식민지의 문화와 원주민들에 대한 서구 작가들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형상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최근 낭만주의 비평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서구와 타자의 조우 과정에 내재한 불안감 과 불안정성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나이젤 리스크(Nigel Leask)는『영국 낭만주의 작가와 동양』(British Romantic Writers and the East)에서 주로 동양에 대한 낭만주의 담론 내부의“불안감”(anxieties)을 강조한다. 리스크는“동양의 타자에 대한 형상화를 결정하고 약화시키는 내적, 외적인 압력 요소들은 사이드의 주장보다 훨씬 다양하다”(2)고 말한다. 팀 펄포드(Tim Fulford)와 피터 킷슨(Peter K. Kitson) 역시“사이드의 타자 개념은 식민주의 담론 내부에 나타나는 모호성과 불확정성을 과소평가했다”(10)고 주장하면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이항 대립과 외재적 진실을 해체” 하는 당대 작품의 근원적“불안정성”(instability)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동양을 다룬 사우디의 시들은 낭만주의 시기의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린다 프랫(Linda Pratt)이 회고적으로 분석하듯이, 과거에 사우디의 작품이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통상적인 문학적, 역사적 범주로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xx-xxi). 사우디의 작품을 특징짓는 불확정적이고 복합적인 특질들은 사후에 그의 문학적 명성이 사라지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런 특질들로 인해 그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텍스트의 모호성과 불안정성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분석하는 비평적 경향에 가장 잘 들어맞는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입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단순한 태도를 넘어서서, 사우디의 작품들은 종종 서로 갈등하는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을 통해 당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미지의 문화적 요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양산되는 깊은 불안감을 체현하고 있다. 식민주의 담론의 일환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사우디의 작품들은 타자에 대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확신에 차서 제시한다기보다는 제국주의 문화의 내면에 나타나는 내적인 동요의 과정 을 드러내 보여 준다.

    본 논문은 사우디의『파괴자 탈라바』를 낭만주의 시기의 문화적 식민주의와의 관계에서 분석하고 이 작품이 타자(the Other)를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본 논문은 사우디의 텍스트 속에서 구성되는 동양의 모습이 제국주의적 주체가 미지의 타자와 형성하게 되는 불안정한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표출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문의 앞부분에서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에 주목하여“서사시”(epic)라는 장르가 이 텍스트에서 발현되는 방식을 살피고, 그 속에서 당대 서구가 동양과의 조우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했던 불안감(anxiety)이 반영되고 있음을 밝히도록 하겠다. 논문의 뒷부분에서는 주로『파괴자 탈라바』에 붙어 있는 방대하고 장황한 각주 (footnotes)를 중심으로, 사우디가 여러 출처로부터 수집하여 독자들에게 나열하여 보여 주는 동양의 다기한 모습이 일종의“파노라마”와도 같이 서구의 독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할 것이다.

    II. 서사시 장르의 내적 불안정성

    『파괴자 탈라바』는 무운의 행들과 불규칙한 연들로 이루어진 12권의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족의 살해에 대한 복수를 이루고 신의 가호에 따라 악한 마법의 힘에 저항하고자 하는 탈라바의 모험을 담고 있다. 시의 첫부분에서 일군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을 파괴시키게 될 예언이 실현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호데이라(Hodeirah) 가족 전원을 말살시키려 한다. 이 계획에 의해서 호데이라 일가 대부분이 살해되게 되지만, 어린 아들 탈라바와 그의 어머니 제이납(Zeinab)은 살육의 현장에서 도주하는 데 성공한다. 제이납이 죽은 후 탈라바는 모스(Moath)라는 종교적 지도자에 의해서 양육되고, 탈라바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법사들은 압달라(Abdalar)를 보내 탈라바를 죽이려 한다. 탈 라바가 압달라를 물리쳤을 때 그의 강력한 마법 반지가 탈라바의 소유물이 되고, 탈라바는 이 반지의 힘을 지닌 채 신의 예언에 따라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이슬람 세계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사우디의 작품들은 낭만주의기에 창작된 다른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문학적 범주로 환원시키기 어려운 특징들을 보여 주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혼종성(hybridity)이나 장르적 결합(generic combinations)과 같은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우디 자신은『파괴자 탈라바』를 가리켜“로맨스”라고 지칭한 바 있지만, 사실 이 작품에는 서사시(epic)의 특징도 상당 부분 나타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에 따르면 서사시는“영웅적이고 전설적인 인물(들)의 모험이나 행적을 서술한 긴 시”이고, 『파괴자 탈라바』는 서사시의 이런 정의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다. 서사시 전통의 연구자들 중에서 허버트 터커 (Herbert F. Tucker)는『파괴자 탈라바』를 서사시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터커는 주인공인 탈라바의 형상화를 통해서“새로이 성장하는 근대적 개인”(89)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서사시의 실험적인 형태가 창출되었다고 설명한다. 브라이언 윌키(Brian Wilkie)의 경우에는 이 작품을 기본적으로는 로맨스 전통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윌키 역시『파괴지 탈라바』에 주요하게 나타나 있는“근본적인 도덕적 의도”(35)가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사우디의 좀 더 전통적인 서사시인『잔다르크』(Joan of Arc)나『매독』을 매개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파괴자 탈라바』에 나타난 서사시적 요소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점은 이작품의 1838년 판에서 사우디가 스펜서(Edmund Spenser)의『요정 여왕』(The Faerie Queene)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하면서, 캐롤 볼튼(Carol Bolton)은 사우디가 스펜서의 기독교적 텍스트를 사용함으로써 이슬람 영웅의 모험담을 일종의 프로테스탄트 서사시로 전환시킨다고 주장한다. 볼튼이 말하듯이“사우디는『파괴자 탈라바』에서 아랍의 삶에 대한 유럽인의 글을 자기 나름의 정신적 탐색 이야기에 겹쳐놓았고, 결코 거짓되지 않고 거의 성인군자 수준의 미덕을 갖춘 경건한 영웅을 등장”“( Thalaba”단락 13)시킨다. 악에 맞서는 탈라바의 개인적인 고뇌와 도덕적 가치를 향한 내적 탐색 과정은 리 스덴(E. L. Risden)이 다음과 같이 정의했던 프로테스탄트 서사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보여 준다. “이렇게 거짓과 위험, 그리고 악으로 가득찬 복잡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덕 있는 기독교적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는가?”(76)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프로테스탄트 서사시와 유사하게 선과 악이라는 기본 구도에 의거하여 타자와의 투쟁을 전개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되어 가는 영웅적 주인공의 모습을 중심에 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괴자 탈라바』는 악한 마법의 세력에 의해 파괴된 세상에서 주인공이 고통을 받는 것으로 시작되어서 탈라바의 영적인 성숙을 향해 전개되어 나간다. 이작품의 첫머리에서 주인공의 어머니인 제이납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욥(Job)과도 같은 어조로 가문의 비극적인 몰락을 신의 뜻에 귀속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이 때 어린 소년 탈라바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살육이라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신의 선한 의지를 부정하며 회의주의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 이 시점 이후에 이 작품의 전개 과정은 탈라바의 이런 의심과 회의가 사라져 가는 영적, 도덕적 성장을 보여 준다. 주인공의 모험담은 단지 악에 맞서는 물리적인 승리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신의 뜻을 이해하고 신앙을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마치 다윗(David)과 골리앗(Goliath)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5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탈라바가 모하렙(Mohareb)을 물리쳤을 때, 그는 자신의“부적은 신앙”(The Talisman is Faith, V. 519)이라며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하게 된다. 탈라바의“부적”은 작품의 서사적 전개의 전 과정에서 주인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6권에서 술과 여인으로 들끓는 음탕한 향연에서 이기기 어려운 유혹을 받을 때에도 탈라바는 이“부적”에 의지하여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하고 그 곳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도덕적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 대의 영국 독자는 탈라바의 엄격한 도덕성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며, 신의 의지에 따라 악에 맞서는 선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개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전체 플롯은 기독교 문화에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볼튼은 탈라바의 정신 세계에 투영된 기독교적인 면에 착안하여 사우디가 형상화하는 이슬람 세계가 외국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좋은”면과“나쁜”면으로 이분화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Writing”182-84). 볼튼의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 작품에서 목가적인 삶을 살아가는 베두인 족(the Bedouins)을 상당히 우호적인 시각에서 묘사하여 주인공 탈라바에게 가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려 내는데, 독자는 이런 인물들을“기독교 전통”과 쉽게 연결짓게 된다. 2권에서 모스(Moath)와 그의 가족들이 등장할 때 그들은 무엇보다도“순수한” (pure) 사람들로 소개되며, 이들이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내놓는 쌀조차 이 순수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듯이 깨끗한 흰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그려진다. 탈라바는 이런 인물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때묻지 않은 신앙과 티없는 영혼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는 탈라바의 양육 과정을 형상화하면서, 모스의 가르침 아래에서 그의 마음은“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으며”(pure and uncontaminate, III.219) 그는“결함이 없는”(without a spot, III.221) 청년으로 자라났다고 묘사한다.

    볼튼은 사우디가“선한”베두인 족과“악한”마법사/군주들로 아랍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들을 구별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구별은 존 배럴(John Barrell)이스피박(Gayatri Spivak)을 원용하면서 구분했던“자아를 강화시켜 주는 타자”(self-consolidating other)와“절대적 타자”(absolute other) 개념(10)과 통해있는 것이다. 생경한 문화와 조우하게 될 때, 주체는 자신과의 동일성과 차이에 비추어 그 문화를 해석하는 관점을 구성하게 되고, 이에 기초하여 자신들과 더 비슷한 것과 동일시하는 반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다른 것은 밀쳐 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소화하기에 이른다. 배럴의“자아를 강화시켜 주는 타자”와 “절대적 타자”사이의 구분에 의거하여 볼튼은『파괴자 탈라바』에서 긍정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 베두인 족과 수동적이고 독재적이며 음탕하고 의심스러운 다른 동양인들을 구별짓는다( “Thalaba”단락 23). 따라서, 볼튼은 궁극적으로 미지의 세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부정적인 인물들을 파괴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이 작품이 급진주의에서 보수주의로 변화한 사우디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파괴자 탈라바』는 전반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에 대한 문화적인 지지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사우디의 정치적 진보주의를 강조하는 대표적 비평가인 메릴린 버틀러는『파괴자 탈라바』를“혁명을 재연하는 알레고리적 서사”“( Plotting”135)로읽는다. 사우디가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제국의 묘사와 상상적인 타도의 과정은 외국이라는 배경에서 혁명적인 이상을 재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버틀러의 분석에서“정원”(the garden)의 이미지는 중요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정원”은 단순히 자연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이 기입되어 있는“사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이 작품에서 사우디가 보여 주는 “낙원”(the paradise)과도 같은 정원은 그 위선적인 모습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담은 공간이다. 예를 들어, 1838년판『파괴자 탈라바』6권의 제사(epigraph)에서 사우디는“낙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진 스펜서의 시 구절을 인용하지만, 막상 사우디가 재창조하는“낙원”은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공간에 불과하다. 폭군이고 마법사인 알로딘(Aloadin)이 지배하는 이“낙원”에는“눈먼 군중”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버틀러는 사우디가 그려내는“낙원”의 허구성이 독재자의 표리부동한 지배에서 나온“사회 구성원의 망상적인 사고 방식”(149)에 의해 지탱된다고 설명하면서 탈라바가 이 정원을 전복하는 것은“일종의 혁명가적 기획”(149)이라고 결론짓는다. 버틀러의 설명을 따르자면 『파괴자 탈라바』의 플롯은 궁극적으로 타자의 공간으로 규정된 이슬람 세계에서 서구인들이 자아의 정치를 실현하는 형태를 띤다고 볼 수 있다.

    볼튼과 버틀러의 비평은 공통적으로『파괴자 탈라바』에 등장하는 긍정적인 인물군들을 부각시키고 서구의 독자가 이들에게 투영할 수 있는 공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이 막상 사우디의 정치적 성향을 판별하는 면에서는 서로 상이한 결론을 향해 간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식민주의적 시각을 적용하기보다는 자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타국의 상황에 투영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버틀러의 시선에서 볼 때, 동양 세계의 독재자의 모습은 볼튼이 상정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타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일차적으로 두 비평가의 방법론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적 차이에 기인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한편으로 이는 이 작품이 당대 식민주의 기획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의미가 쉽게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반된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모순적 요소들을 동시에 노출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사실, 작품에 등장하는 이슬람 문화의 긍정적인 측면들이 독자와 이질적인 문화 사이의 가교로 작용하면서 일종의 동질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쉽게 합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동양세계의 부정적 요소들로 그려진 측면들이 단순히“절대적 타자”로 밀려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파괴자 탈라바』에 등장하는 위선적인 독재자들의 모습은 사우디의 이전 작품인『잔다르크』나『와트 테일러』(Wat Taylor)에 나오는 서구 군주들의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권에서 거대한 궁궐과 정원을 건설해 놓고“눈먼 군중”(the blinded multitude, VII.207)을 대상으로 전제 권력을 휘두르는 알로딘(Aloadin)의 모습은 서구의 근대혁명이 타도하고자 했던 절대 왕권을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9권에서 모하렙(Mohareb)이 자신의 백성들 앞에 나타나는 장면 역시 다음과 같이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이런 장면에서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모하렙의 모습은 구체제(ancienregime)를 지배하던 서구의 절대 군주와 지울 수 없는 유사성을 보이며, 이 유사성은 팀 펄포드가 관찰하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사우디의 텍스트가“구분지으려 애쓰는 차이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되는”“( Romanticism”36) 이유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1권에서 이렘(Irem)의 궁을 묘사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쉐다드(Shedad)라는 전제 군주가 지상에 존재하는 온갖 물질적 부와 자원을 축적하여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건축물을 조성하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쉐다드의 탐욕은 자연물을 그 터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타국인들을 착취하는 제국주의적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쉐다드의 궁에 대해 사우디가“무더기”(pile)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한다는 점은 이 건축물이 물질적 축적의 과잉으로 특징지워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환기시킨다.

    사우디가 아라비아의 화려한 궁궐들과 성들을 묘사하는 장면의 많은 부분은 그가 각주에서 여러 번 밝히고 있듯이 프랑스 작가 콩스땅땡 볼니(Constantin Volney)의『폐허들』(Les Ruines)에서 가져온 것인데, 공화주의자였던 볼니는 이 책에서 전제 군주의 왕권을 상징하는 이런 건축물들이 결국은 독재의 타파과정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임을 일반화시켜 보여 주고자 했다. 또한, 사우디 자신 역시『비망록』(Commonplace Book)에서『파괴자 탈라바』의 기획 과정을 기록하면서, “돔다나엘이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체제들을 알레고리화할 수는 없 을까?”(Cannot the Dom Danael be made to allegorise those systems that make the misery of mankind?, 812)라는 물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밝힌 사실 또한 이 작품을 읽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프랜시스 제프리(Francis Jeffrey)가『에딘버러 리뷰』(The Edinburgh Review) 첫 호에서 무려 스무 페이지를 이 작품에 대한 비평에 할애하고 사우디를 후에“호반파”(the Lake school)라 불리게 될 작가들의 우두머리로 지칭하여 그 위험성을 경계한것은『파괴자 탈라바』가 지닌 정치적 성격의 일면을 잘 보여 준다. 제프리는 이 작품이 사회적 위계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과 파급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제프리가 직시하였던 것처럼, 타국의 정치적 구조가 지닌 부정성을 고발하면서 그것이 제국주의 권력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상황은 사우디의 이야기 시의 구조가 지닌 불안정성과 그에서 초래되는 전복적인(subversive) 성향을 드러낸다.『파괴자 탈라바』는 얼핏 보기에 프로테스탄트 서사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선한 주인공이 악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전개해 가지만, 이 작품에서 구분지어진 선과 악은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으로 편안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사우디의 이야기 시에 등장하는 독재자의 모습은 유럽의 전제 군주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 주며, 이런 유사성은 서구의 문화적 제국주의 기획이 의존하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구분이 실제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근대적 주체의 형성은 타자와의 구별, 나아가서는 타자에 대한 지배에 의해 규정되어 왔지만, 『파괴자 탈라바』와 같은 작품은 자아와 타자를 가르는 경계자체가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얻어지는 주인공의 도덕적 각성은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서사시적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 독자는 주인공 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단순히 타자로 규정하고 묵살할 수 없다. 오히려, 작품에 등장하는 독재적 권력의 부정성은 서구에서 일어난 혁명이 좌절된 경험을 환기시키고, 이를 통해 사우디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구분을 교란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파괴자 탈라바』에서 주인공이 폭정에 맞서는 혁명을 재연할 때, 그 저항의 힘은 텍스트 속에 상상된 허구의 왕국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정원”을 구성하고자 하는 실재의 제국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수집한 신화와 전설을 서구적인 프로테스탄트 서사시 형식으로 변환시키고자 했던 사우디의 시도는 한편으로 당대의 제국주의 담론에 대해 예기치 않았던 비평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III. 각주에 나타난 동양의“파노라마”적 재현

    한편, 영미권의 몇몇 비평가는『파괴자 탈라바』에 직접적으로 표출된 정치적입장에 주목하기보다는 동양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과정이 이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방식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예컨대, 달리아 포터(Dahlia Porter)는 타 문화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위한 경험적 방법론을 포착하여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포터의 분석에 따르면, 『파괴자 탈라바』가 영국과 이슬람 세계의 비교를 통해 문화적인 동일화 작업을 달성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문화적 유추의 과정 속에서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 주는 파열(ruptures)의 순간들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675-76). 리스크 역시 이 작품에 드러난 사우디의 정치성에 대하여 포터와 유사한 결론을 내린다. 리스크에 의하면, 『파괴자 탈라바』의 기본적인 입장은 동양 문명의 효과적인 식민지화라는 문화적 기획을 달성하는 것이지만, 사우디는 한편으로 동양을 형상화하는 당대적 방식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이데올로기적인 모순의 징후”를 노출시키고 있기도 하다 “( Wandering”183). 포터와 리스크는 공통적으로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전복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두고 이런 요소들이 작품의 외재적인 전략을 해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미지의 문화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문화적인 불안감을 끊임없이 재생산했으며, 따라서 텍스트 안에 내재하는 전복적인 요소들은 이런 불안감을 징후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특히, 『파괴자 탈라바』에서 동양을 묘사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일련의 이미지와 신화들은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텍스트가 의도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업에 반하는 독서 경험을 가져오게 된다. 예컨대, 포터는 타 문화를 과학적으로 묘사하겠다는 사우디의 외재적인 목적이 지나치게 느슨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에피소드들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다(676). 작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은 외국 문화를 영국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이었다고 할지 라도(672), 작품의 창작 방식에서 나타나는 일관성의 결여는 결국 작가의 전반적인 의도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것이 포터의 견해이다. 사우디의 절친한 친구인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가『파괴자 탈라바』에 대해 논하면서 내린 다음과 같은 평가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하겠다.

    또한, 리스크는“사우디가 단지 이미지와 의상 정도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시적인 신화에 깃든“기괴한”문체까지도 기록했다”“( Wandering”183)고 평가하면서, 사우디가 동양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당대에 유행했던“파노라마”혹은“판토마임”에 대응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분명한 원근감을 드러내면서 고정된 관점에 의거하여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팬옵티콘”적인 형상화 양식과는 대조적으로, “파노라마”는 액자(frame)를 없애고 작품 전체를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관점 역시 지워 버린 채 마치 관객을 형상화된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윌리엄 갤퍼린(William H. Galperin)은 낭만주의 시대의 시각적인 형상화 방식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면서, 이러한“파노라마”가 관객과 재현된 세계 사이의 역학 관계를 전복시켜서 보는 사람을 작품 속으로 흡수해 버리기에 이른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우디가 그려낸 동양은“파노라마”형식으로 펼쳐져 있을 뿐 전체를 총괄하는 시점으로 통일성 있게 배치되어 있지 않으며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작품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의 각주(footnotes)이다. 당대의 평자들이 이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의심했던 이유도 사실 본문을 구성하는 텍스트보다는 길고 장황한 각주 때문인 경우가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랜시스 제프리는“『파괴자 탈라바』는완전히 동양 이야기책과 마호메드 국가들의 여행기에서 빌려온 조각들로 구성되었고, 영국 독자를 위해 거기에다 우리 담시의 부분들, 옛날 설교의 조각들을 가미한 것”(Madden 8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제프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일관된 미적 구조를 결여한 사우디의 작품은 다양한 문화에 기반을 둔 원전에서 아무렇게나 발췌한 모음집(collection)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영국 비평가』(The British Critic)에 실린 비평에서도 이 작품의 페이지는 “주석으로 넘쳐나고 있으며,”이 주석들은 매우“터무니없는”(nonsensical)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Madden 64).

    리스크는『파괴자 탈라바』에 대한 분석에서 이 각주가 사우디의 제국주의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서,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가 각주의 내용과 이데올로기적인 간격을 보여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각주를 독해하면서 얻게 되는 실감은 이 방대한 주석이 결코 명확한 식민주의 담론을 지시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우디의 각주는 미지의 세계인동양에 대해 작가가 수집한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으며, 그 결과 뚜렷한 서사 구조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본 작품보다도 훨씬 분 명하게“파노라마”적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파괴자 탈라바』의 전체적인 독서 과정은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직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수없이 붙어 있는 각주들 사이를 헤쳐 나가면서 여러 번의 우회를 거듭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독서 과정에서 분명한 정치적 관점은 실종될 수밖에 없으며, 대신 서구의 독자를 압도하는 것은 동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또한 동시에 매력적이고도 유혹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들이다.

    최근에 알렉스 왓슨(Alex Watson)은 작품의“주변부”(margin)에 덧붙여진 주석(annotation)에 대해 이론적인 논의를 전개하면서, 사우디의 각주가 지니는 이중적인 성격을 명확하게 짚어낸 바 있다. 한편으로, 텍스트 각 페이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타자”에 대한 서술은“국가의 이해와 상충하는 정치적, 지역적 정체성의 형태들을 주변화”(6)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충동의 문학적 발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이 목소리들은“권력의 위계질서를 교란”(6)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18세기의 여행기들, 중세의 이국적인 이야기들, 동양에 대한 연구 자료 등에서 얻어진 온갖 정보들을 자유롭게 뒤섞어 놓은 사우디의 각주는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독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회의적 비평의 목소리와 더불어 생경한 “타자”에 대한 매혹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 또한 함께 만나게 된다.

    왓슨은 주로 동양의 초자연적인 미신에 대한 사우디의 태도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작품의 각주에 내재한 이중성을 논하는데, 이와 함께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경향은 동양 세계를 채우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다층적 반응의 양상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의 1권에 등장하는 궁전의 묘사에 덧붙여진 각주를 보면, 사우디는“푸른빛”(azure)이라는 색상과 관련해 동양건물의 다채로운 색채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곧바로 이 건물들이 많은 경우 금으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장황한 인용을 하고 있다.

    각주의 이 부분에서 사우디가“허영”이라는 단어로 가치 평가를 하고는 있지만, 막상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동양 문명의 지나친 장식성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온통 금빛 건물들로 빛을 발하는 미지의 세계의 강렬한 이미지이다. 이런 패턴은 각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2권에서 탈라바에게 신비한 힘을 더해 주는 마법의 반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사우디는“수정”(Crystal)에 대해 자세한 각주를 붙여 동양의 유명한 수정들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3권의 첫머리에 붙은 각주는 동양 세계에 알려져 있는 여러 종류의 보석들과 그들이 지니는 마법적인 힘에 대한 길고 장황한 서술을 제공한다. 이런 각주들을 통해서 사우디가 그려내는 동양의 모습은 한없이 매혹적이고 풍요로 우며, 동시에 그는 이 물질적 풍성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동양의 매력을 강조해 준다. 이슬람 군주들의 착취와 물질적 축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서사시의 내용과는 달리, 사우디의 각주에서 동양의 모습은 금과 보석이 빛나는 땅으로 형상화되어 독자를 유혹적으로 압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에서 일견 혼란스럽고 모순되어 보이는 사우디의 태도에는“상업 자본주의”(mercantile capitalism)에 기반을 둔 관점에서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 겹쳐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사리 막디시(Saree Makdisi)는 낭만주의 시대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대별하면서 18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산업 자본주의”(industrial capitalism)적 제국주의 이전에“상업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적 진출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설명한다(109). 자본주의적 관계 자체를 수출하여 식민지에 정착시켜야 하는“산업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양은 서구와 대비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발전의 단계에서 시간적으로 낙후되어“과거”에 머물러 있는 공간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반면에, 새로운 세계에서 상품화될 가치가 있는 요소들을 선별하고 파악해야 하는“상업 자본주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동양은“타자”(the Other)화되어 서구의 현존하는 사물들과 상이한 가치를 지닌 잠재적 상품들을 지닌 물리적 공간으로 재현된다(109-10). 사우디는『파괴자 탈라바』의 서사를 통하여 봉건적인 전제 권력을 바탕으로 타국에 대해 물질적침탈과 착취를 자행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를 취하고 있지만, 각주에서 그가 펼쳐 놓는 동양의 문물과 이미지들은 서구인들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상품성을 지닌 대상들로 규정되어“파노라마”와도 같이 진열된다. 후에 셸리의『앨라스터』나『이슬람의 반역』등이 좀 더 분명하게 동양 세계를 서구에 비 해 시간적으로 낙후된 공간으로 규정하는 반면에, 1801년에 출판된 사우디의『파괴자 탈라바』는 동양의 모습을 미지의 타자로 그려내면서 그 풍요로움과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압도당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포터가 이 작품의 동양 세계를 단순히 영국의“야만적인”과거에 대응시켜 바라보는 것(675)은 각주를 채우고 있는 동양의 물질 문명이 지닌 매혹적인 위력을 간과하는 것이라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사우디에게 이슬람 세계는 금과 보석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풍성한 공간이면서, 끝없는 전설과 신화를 보유하고 있어서 새로운 문학적인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유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1권에 붙어 있는 각주의 한 대목에서 사우디는 동양의 이야기들을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것”(transmuting lead into gold)이며“연금술이라는 꿈을 실현하는 것”(realizing dreams of alchemy, 194)이라고 말한다. 『아라비아 이야기』(The Arabian Tales)가 서구에서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거름망”(the filter)을 통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94). 작가로서 성공을 꿈꾸는 문학적 야심과 서구인으로서 미지의 땅에 대해 가지는 문화적 관심은 이 대목에서“금”이라는 지극히 상징적인 물질적 보상에 대한 기대를 매개로 통합된다. 실제로, 코울리지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서『파괴자 탈라바』에 대해 언급하다가 사우디는“돈, 돈만이 오직 내가 원하는 것”(money, money is my only want)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The New Letters 203). 하지만, “연금술”이라는 사우디의 비유에서 이미 전제되어 있듯이, 동양에 대한 그의 작가로서의 관심은 반드시 물질적인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 지극히 실험적인 모색의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사우디의 각주는 동양의 화려한 문물을 상품으로 전화시키고자 하는 서구 주체의 욕망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감을 드러낸다. 우선, “장식”(ornament)과“노고”(labour)를 낭비하는 것이 동양 문화의 특징이라고 비판(194)하는 사우디의 모습은 물질적 과잉에 대해 일시적이나마 거리를 취함으로써 그 욕망 자체를 제어하고자 하는 도덕적 판단을 보여 준다. 사우디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의 이야기를 개작한 이슬람 설화를 인용하는 대목에서도, 신은 아담을 숨겨 주지 않은 금나무와 은나무에게 포상을 하면서“인간이 이제부터 너희들의 노예가 될 것이며, 너희들을 찾아 그들은 땅의 내장을 파헤치게 될것”(201)이라 말하면서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전해 주고있다.

    또한, 타국의 문물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은 단순히 도덕적인 제어의 필요성을 느끼는 차원을 넘어서서 체벌에 대한 잠재적인 두려움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동양의 문화적 유산 중 가장 거대하고 위엄 있는 것으로 당대 서구인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던 피라미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서술을 하고있다.

    피라미드 내부에 매장되어 있는 진귀한 보물들은 끝없는 도굴꾼의 행렬을 불러오게 마련이겠지만, 그 보물을 탐하는 자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복수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 이 대목은 타 문명의 유산에 대한 물질적인 욕망이 끔찍한 처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동양의 문물에 매혹된 서구 주체를 동요하게 하는 내적 불안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의 가장자리에 위치한“타자”의 공간인 각주를 통해, 사우디는 동양의 다양한 보물들과 문화유산들을 나열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잠재적인 상품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서구 주체의 욕망을 부분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파괴자 탈라바』의 장황한 주석은 동양에 대한 매혹의 감정 자체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때로는 도덕적 비판의식 또한 함께 표현하면서 서구 문화가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에서 경험했던 모순적이고 복잡한 정서적 반응을 엿볼 수 있게해 준다고 하겠다.

    IV. 나가는 말

    사우디의『파괴자 탈라바』에서 형상화된 동양의 이미지는 주인공 탈라바가 마녀 마이무나(Maimuna)를 만나는 장면에 등장하는 가느다란 금사로 집약되어 은유된다.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장한 마이무나가 잣고 있는 금사는 서구인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미지의 세계로의 접근을 추동하지만, 너무나 가늘어서 손에 넣기 어려운 그 금사는 지배와 통제의 바깥으로 끝없이 미끄러져 갈 뿐이다. 더구나, 탈라바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그를 포박하는 마이무나의 금사는 새로운 세계의 문물이 지닌 매혹이 어느 새 서구 주체를 위협하고 결박할 수 있는 잠재 력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금사에 대해 사우디가“불가해한”(unintelligible)이라는 형용사를 거듭하여 사용하는 것은 동양에 대한 인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조차도 서구인들에게는 극히 위험하고 불가능한 과업일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후에 사우디의 정치적 성향은 점점 더 보수화를 거듭하여, 끝내는 영국의 보수적인 계관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넬슨(Nelson)에 대한 글을 써서 식민지 탐험을 시작하는 모든 영국인들에게 충성심을 다지는 교과서적인 문헌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파괴자 탈라바』에서 사우디가 보여 주는 동양권의 타자에 대한 복잡다단한 형상화 과정은 그가 이같이 보수화되어 가는 과정이 결코 직선적이고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일깨워 준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슬람세계의 독재 세력에 대한 사우디의 묘사는 서구 군주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환기시켜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진보적인 정치 성향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하며, 동양의 이야기와 문물에 대한“파노라마”적 형상화는 타 문화를 인식론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잠재적인 상품성을 발견하는 상업 자본주의적인 시선을 투영하고는 스스로의 물질적 욕망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이를 제어하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서구의 비평가들이 사우디의 제국주의적 면모에 주로 관심을 가져온 데 비해 예멘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계 비평가인 모하메드 사라푸딘(Mohammed Sharafuddin)은『파괴자 탈라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슬람 문화의 형상화를“사실주의적 오리엔탈리즘”(realistic orientalism)이라 명명하면서 이 작품이 타국 문화를 사실적으로 전달해 주는 긍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49). 사라푸딘이 관찰하는 것처럼, 사우디의 서사시와 각주는 그가 후에 명시적으로 드러낸 우경화된 정치적 의도에 결코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매우 다 층적이고 복잡한 방식으로 동양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미지의 대륙에 관한 진실의 단면들을 포착하고 있다. 『파괴자 탈라바』를 통하여 표현된 타자와의 매혹적인, 그러나 동시에 불안한 조우의 양상은 당대 서구인들이 동양권의 문화에 대해 형성해 가고 있었던 인식론적 지형의 일부분을 매우 흥미롭게 예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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