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search is the third one as part of a series of researches on Korean scenario writers after Han Woon-sa amd Kim Ji-heon. Choi Geum-dong, who is the first Korean scenario writer, started his literary career with a movie novel in 1936 and left more than 100 works until the 1980s. In the world of his works, in which his favorite materials were historical events or actual great men and Buddhist materials, he left exemplary legacy in both aspects of consciousness and original writings with the charging spirit and thorough historical consciousness throughout his lifetime. There have been minimal researches on scenarios in our country and the approach to the summation of this scenario writer has not yet been made. It is because his works have been excluded from the category of genuine literature on the ground that they are popular and in movies, approaches to directors and actors have been the mainstream. Based on such a critical mind, this research plans to continue to study the writer basically in the historical aspect an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encompassing the overall works of an individual writer from both aspects of themes (materials) and dramaturgy and to clarify the meanings from the viewpoint of history of scenarios. The materials of Choi Geum-dong’s scenarios can be categorized into historical events and great men highlighting national consciousness, society charging materials through actual persons, human success stories of problematic main characters, and they are, on the whole, characterized by masculine and fluent tones of lines and texts. As writing technique, the works were based on classical narrative methods, and character-oriented play writing methods were highlighted by the description of circumstances and the use of narration, and he frequently used the methods in which plot was formed by presenting actually existent main characters and assistants, and as the result of applying Greimas’ actant model, not only the composition of the desires of main characters and assistants but also the composition of senders and recipients were grasped as relatively clearly being contrasted. When the personality of main characters is more heroic, this makes clearer composition and it can be seen that the benefits of recipients flow into the impersonal category. As the result of this analysis, Choi Geum-dong’s scenarios form a main stream of historical works in the flow of Korean scenarios and are characterized by showing scenarios of masculine sentiments without flowing into melodramatic works or popular tastes in connection with unique material tastes of macroscopic discourse. Particularly in the 1950s-1960s when original works were shown most actively and when the dramas mainly featured literary works, literature adaptations, anti-Communist plays, domestic tragedies, he wrote original scenarios based on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became the writer who were sufficiently recognized as the possessor of writer’s consciousness determining supply and demand of original writings autonomously.
본 연구는 한국 시나리오 작가 연구의 일환으로 한운사, 김지헌에 이어 세번째 작가연구 가 된다. 최금동은 최초의 한국 시나리오 작가로 1936년 영화소설로 등단해 1980년대까지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했던 위인들과 불교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고발정신과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일생을 걸쳐 의식과 창작의 양면에서 귀감이 될 만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의 시나리오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지만 그 작가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해 보는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문학에서는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본격문학의 법주에서 도외시했고, 영화에서는 감독이나 배우 위주의 접근 방식이 주류를 이루어 온 탓이다. 본고는 이런 문제의식에 착안해 기본적으로 통사적인 측면에서 작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며, 주제(소재)와 드라마트루기의 양 측면에서 개별 작가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특질을 고찰하고 시나리오사적 의의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최금동의 시나리오는 소재상으로는 민족의식이 돋보이는 역사적 사건과 위인, 불교소재, 실존인물을 통한 사회고발성 소재, 문제적 주인공의 인간승리 소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남성적이고 유려한 대사톤과 지문을 특징으로 한다. 작법상으로는 고전적인 내러티브 방식에 기초하였고, 인물 위주의 극작법으로 선 상황의 묘사나 나레이션의 사용이 두드러지며, 실존하는 주인공과 가상의 조력자를 등장시켜 플롯을 형성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델을 적용한 결과 주인공의 욕망과 조력자, 반대자의 구도는 물론, 발신자와 수신자의 구도도 비교적 명확히 대립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주인공의 성격이 영웅적일수록 더 분명한 구도를 이루고 수신자의 혜택이 보다 인물 외적인 범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최금동의 시나리오는 한국시나리오의 흐름에서 특히 역사물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는 것과 거시적인 담론이라는 특유의 소재취향과 연관하여 멜로물적이거나 대중취향으로 흐르지 않고 남성적인 정서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1950-6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창작물을 보여주던 시기, 문예물이나 문학 각색물, 반공극, 가정비련극 등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도 역사의식에 기초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창작하며 자신의 주관대로 시나리오 창작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작가의식의 소유자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충분한 작가로 자리매김 될 수 있겠다.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은 한국 시나리오 역사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인물이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이나 문학으로서의 시나리오의 영역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없던 1930년대에 ‘영화소설’로 등단하여 1980년대의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시나리오계를 대표했던 시나리오 작가계의 태두라 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1930년대는 일제강점 하에서 한국의 영화산업이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발전을 이루며 더불어 시나리오에 대한 전문적 요구도가 팽배했지만 아직 현대적 의미의 완결된 시나리오가 생산되지 못했고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이중연쇄극이라는 연극과의 혼종형태로 시작됐던 한국 최초의 영화계는 무성영화기를 거치고 발성영화가 등장하여 현대적 의미의 시나리오가 탄생하기까지 그 양상은 맹아적이고 미완적인 형태들만을 볼 수 있다.1)
영화소설은 이미 1920년대부터 선을 보이면서 시나리오 문학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지만 1930년대는 한국 시나리오 문학이 문학장르로서 자리잡기 시작한 성숙기2)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는 영화와 문학이라는 이중의 영역에 걸쳐있는 창작물로 시나리오가 문학으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것을 전문적으로 창작했다는 것과 완결된 형태의 영화대본이라는 인식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전문작가에 대한 그동안의 영화안팎의 바램이 실현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최금동은 이 시기에 등장하여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전문성에 대한 자리매김과 영화와 문학이라는 선체험적 동기를 작품의 근간으로 하면서 창작에 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등장도 오래가지 않아 일제강점기 국가적 난국에 동승하게 되고 더 이상 창작세계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생의 유일한 직업이었던 기자로서 활약상이 두드러지지만 그의 시나리오는 해방 이후에 다시 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영화소설로서는 마지막 작품을 내놓고, 당대의 모든 창작예술인들이 식민지의 질곡으로 더욱 강하게 빠져 들어가 헤맬 수밖에 없었던 일제말기의 한국 작가의 공동운명으로 침잠하게 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 80년대까지 왕성하게 작품을 창작하며 그는 한국시나리오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하게 된다.
최금동을 최초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입장은 데뷔 이후 지속적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견지하며 주목할 작품들을 창작해 왔다는 사실이다. 단편적으로 한 두 작품을 생산하고 사라진 초창기의 작가들3)과는 다르게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타이틀에 일생을 통해 충실해 왔던 전문 시나리오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연구는 주지하다시피 전무한 실정이다.4) 대부분의 연구는 영화를 텍스트로 하거나, 초기의 자료 발굴적 측면에서 사적인 자리매김에 그치거나, 연대기적으로 시나리오의 양상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연구동향은 학문적 층위로만 문제의식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문학이나 영화의 그 어느 것으로도 온전하게 대상화하지 못하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학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는 본격문학에 들어서지 못하는 대중예술에 적당히 걸쳐져 있는 이단아처럼 취급되었고, 영화에서는 영화라는 최종결과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감독을 예술의 근거로 보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는 아이디어 제공 정도의 왜소한 위치만을 부여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 하에 시나리오 작가의 위치는 문학도 영화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최금동이라는 최초의 시나리오 작가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최금동은 최초의 전문 시나리오 작가일 뿐만 아니라 투철한 작가의식으로 일생을 견지해 왔던 인물이었다. ‘산처럼 의연한 시나리오 작가’5) ‘타협을 몰랐던 작가’6) ‘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국 최초의 본격 시나리오 작가’7)등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모두가 그의 결연한 작가의식을 내비치는 칭송 일변도의 것들이었다. 그의 이러한 작가의식이나 창작태도는 작품 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한국시나리오계에선 보기 드물게 선 굵은 역사의식과 남성적인 터치를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본 연구는 최금동 작가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두 권의 시나리오 선집8)을 텍스트로 삼았고, 논의의 방향은 시나리오 내적인 면에서 형식적인 특질과 주제론적인 특질을 규명하고, 여기서 작가의식의 추이를 추적하여 시나리오 작가계에서의 그의 위치와 변별적인 특징들을 고구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 시나리오 외적인 측면에서 영화계의 환경이나 작가의 사적인 환경에 대한 근거맥락도 연결하여 역사주의적 관점에 근접한 논의도 진행해 보려고 한다. 이는 작가에 대한 연구 성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작가의 전면모를 가장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서술체계는 그의 창작물을 크게 영화소설과 일반 시나리오 형식으로 나누어 각개의 특질을 분석하고 각론에서는 시나리오에 대한 형식적, 내용적 분석을 시도하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시나리오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1)이운곡, 「시나리오론:시나리오 작가의 지위」, 『조광』, 1937. 11. p.322.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진 희곡같은 거라든지, 거진 소설에 가까운 거라든지 심한 것은 영화해설이라든지 또 한편으로는 카메라의 위치까지 지정한 콘티뉴이티에 가까운 것 등등 各人各色의 여러 가지 형식의 시나리오 중에서 대체 시나리오 문학의 경지를 자부하고 나아갈 형식이 과연 어느 형식의 시나리오야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규정도 짓지 못한 채, 그저 단순한 讀物 이상으로 시나리오에도 독자적인 문학성이 있다는 것만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데 그치는 듯하다” 2)이영제, 「초창기 한국 시나리오문학 연구」, 연세대 대학원 석사논문, 1989, p.43. 3)김수남, 『조선시나리오의 제형식』,도서출판 월인, 2009. p.3. ‘일인을 포함한 해방 전 시나리오 작가가 99명 정도에 이르며 이들은 대부분 전문 시나리오 작가라기보다 관계 영화인이라고 보고 있다’ 고 하였다. 4)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전문적인 연구는 오영진 정도에서 이루어졌으나 그것도 그의 희곡연구의 일각에서 시나리오를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작가의 시나리오 전반을 아우르는 연구는 졸고인「한운사 시나리오 연구」와 김지헌의 시나리오를 연구한「문화환경과 드라마트루기의 적용양상연구」를 들 수 있다. 5)김수용, 『영화를 뜨겁게 하는 것들-김수용 시네에세이』, 도서출판 대원, 1995. p.275. 6)『씨네21』, 2002.1.「최초의 신문 시나리오 당선, 타협을 몰랐던 작가 최금동」 7)『씨네21』, 2002.1.「자기 세계 없이 작품다운 작품 쓸 수 없다-최금동」 8)최금동,《건너지 못하는 강》, 태창문화사, 1981. 최금동,《쇠사슬을 끊을 때까지》, 태창문화사, 1981. 이 외에 커뮤니케이션북스의 ‘한국 시나리오 걸작선’에 수록된 작품이 있으나 대부분 앞의 두 권에 실려 있다.
2.1. 시나리오 문학의 발아기- 영화소설 <환무곡>
한국 시나리오의 역사에서 ‘영화소설’과 같은 혼종의 장르현상이 나타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며, 아직 독자적인 시나리오 인식이 없던 시절에 문학과의 접점에서 초창기적인 형태를 구했다는 것은 문학주도적인 입장에서 영화를 흡수하게 된 현상으로 보인다. 콘티뉴이티와 같은 촬영지시에 가까운 시나리오 형식도 동시에 존재한 것을 보면 영화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었다기 보다는 문학과 영화의 접점에서 문학의 고정적인 장르형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새로운 것에 대한 창작욕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본다.
그러나 영화소설의 발생은 영화배급업자나 출판사 등에서 영화의 유명세에 힘입어 후속타 소설로 돈을 벌어보려는 상업적 의도에서 기획한 것이라 당대의 논객들은 대부분 영화소설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곤 하였다.10) 영화소설의 상업적 풍토를 비판하며 그 형식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당시의 논의들은 문학에 대한 통념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상 영화소설은 시나리오 문학의 발달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영제는 그의 논문11)에서 영화소설이 하나의 완결된 문학작품 형태로 접근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과, 순수창작 시나리오 문학으로의 길을 열었다는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최금동의 영화소설을 보더라도 완결된 형태뿐만 아니라 영화의 시각적인 표현 경향과 속도감 등에 있어 일반 소설보다는 변별적인 특질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또한 레제드라마로서 소설형식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읽힐 수 있게 해준다. 시나리오 독법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독서물로서 보다 용이한 형식이 영화소설이었을 것임에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심훈의 <탈춤>을 시발로 1939년 최금동의 <鄕愁>에 이르기까지 영화소설은 20여 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최금동은 영화소설이 한 때 주춤했다가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한 1936년, 동아일보 제1회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幻舞曲>으로 당선되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가 보여준 영화소설은 193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鄕愁> <解氷期>12)와 더불어 총 세 편이 있다. 이 시기는 발성영화가 시작되어 시나리오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이 무성영화시절에 비해 강하게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요구는 영화소설에 있어서도 그 장르적 애매성으로 비판받기보다는 완결된 형태의 양식들을 창작하고자 하는 인식의 전문성을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소설을 투고하던 당시 최금동은 완성된 형태의 창작 시나리오를 볼 수도 없었고, 시나리오의 작법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보면 이 시기가 시나리오에 대한 전문적 창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그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문학과 영화계의 양측면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천리』지에 게재된 시나리오를 연구한 김남석13)은 <씨나리오 성황당>과 유사한 수준의 정제된 형식미를 보이며, 1939년 시점을 조선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영화는 이미 발전을 거듭하여 발성영화로 진전되고 있었던 마당에 시나리오가 자생적인 힘으로 초창기의 혼란을 경험하며 시나리오화 하는 분수령에 영화소설은 존재했다고 보여지며, 그 맥락에 최금동은 전문 작가로서 입지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의 영화소설 역시 표준적인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오지만, 최금동의 경우 영화소설이 이미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에 등단하여 문학적 완성도에 있어서 여타의 영화소설 중에도 뛰어난 작품세계를 보인다. 최금동은 이미 시조 등의 장르로 문예현상에서 당선되는 등 문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출발한 상태였다.
<환무곡>은 동아일보에 당선된 이듬해 <劇硏座>에서 김유영의 연출, 이효석 각색의 <愛戀頌>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된다. 제작은 당시 극작가인 서항석이 맡고 문인이나 연극계의 유명인사들이 대거 출연한 것으로 보아 당시로서는 매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보인다. 최금동은 이 작품의 집필 동기에 대하여 문학청년기 문학을 능가하여 그에게 감명을 안겨준 영화 <미완성 교향곡>과 <그대 젊은 시절>의 영향이 컸다는 것과 어릴 때부터 싹텄던 자그마한 민족의식이 담겨있다고 술회하고 있다.14)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을 바이올리니스트로 설정하고 배경이나 효과음으로 클래식을 활용하는 등 음악영화로부터 영향관계를 충분히 느낄 수 있거니와 음울한 주인공들의 내면이 일제하의 젊은 군상들을 대변하는 색채로 느껴져 그의 창작동기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느껴져 오는 작품이다.
스토리는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기반한 낭만성이 짙게 깔려 있다. 여주인공 남숙은 음악도인 철민을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학교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원치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결국 옛사랑을 잊지 못해 중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러한 낭만적 스토리 기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전체적인 정조는 그리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다. 최금동은 영화소설 형식으로 발휘할 수 있는 문체의 정조를 통하여 비극적 내면을 표출하는데, 그것은 매우 저음의 톤으로 느껴지게 한다. 남자 주인공 철민의 다음과 같은 독백을 보자.
주인공 철민은 가난한 음악도이지만 그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이 땅의 현실 그리고 그로 인한 허무의 감정들이다. 그래서 조선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고 싶어하는데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조선! 어둡고 가난한 이 조선이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소”라고 고백한다. 작가가 앞서 밝힌 ‘자그마한 민족의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대의를 위하여 사랑도 접은 채 조선을 떠나는 철민이나 아버지의 숙원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는 남숙의 선택이 빚어내는 플롯과 극적인 갈등은 이 작품에 정서적인 무게를 부여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이 비록 영화소설이라는 이름의, 오늘날과 같은 시나리오의 전단계의 형식이라고 하지만 촬영지시에 가까운 콘티뉴이티 시나리오의 성격이 아닐 뿐 시나리오의 영화적인 효과와 기능을 근접하게 감당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장소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씬의 개념이 81개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숫자는 오늘날 100개 내외의 씬을 평균으로 볼 때 그다지 모자라는 편이 아니며, 그 전개를 보더라도 다소의 쿠션씬만 추가하면 영화를 찍는데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또한 플롯에 따르는 발단부의 설정을 보더라도 오늘날의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작법에서 멀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총 81개의 씬 중 10개 내외의 씬 안에서 중요인물의 소개, 그들의 동기와 목적, 갈등, 작은 의미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관계 설정, 배경 제시 등이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플롯의 전개도 단순한 추보식 구성을 보이지만 전개에서 위기, 파국으로 이어지는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환무곡>이 비록 오늘날과 같은 시나리오의 형식에 근접해 있다고는 하나 아직 영화소설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지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선 시나리오의 언어적 원칙인 지문과 대사 등에 있어 엄밀한 구분이 없이 소설에 가까운 묘사와 갈등의 구축보다는 갈등의 전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대본으로서의 시나리오의 시각적 표현에 있어 형식적 미흡함을 보이는 영화소설의 특징에서 부각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진행으로 전개시켜야 할 극을 과거 서술형으로 제시하거나15) 남숙의 남편인 필호의 성격을 약화시켜 갈등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 등이 아직은 이 작품을 영화소설의 맥락에 위치시킬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최금동의 데뷔작인 영화소설 <환무곡>은 영화대본으로서의 시나리오의 지시적 특성을 형식적으로 따르지는 않고 있지만, 시나리오로서의 기본적인 개념과 플롯, 인물의 설정 등에 있어 시나리오 전단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문체적 정조는 작품의 주제나 인물의 내면과 잘 어우러져 일제하 식민지의 허무한 젊음을 감동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외에도 <환무곡>은 민족과 역사라는 최금동 작가의 일생의 화두를 발아적인 의미에서 고찰해 볼 수 있어서 앞으로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지 추이를 짐작케 해주는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2.2.1. 시나리오 개관
영화소설을 포함한 최금동의 시나리오 작품은 100여 편16)에 이른다. 1986년의 <중광의 허튼소리>를 끝으로 50여 년에 이르는 그의 작가이력은 해방 후 일제의 사슬에서 자유로와진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나리오는 역사와 민족의 현장, 그리고 문제적 주인공을 통한 사회의식의 구현 등으로 대분해 볼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가정소극류 등도 일부 보이지만 수적으로 극히 미미하고 대개가 각색된 작품들이어서 그의 작품세계는 전술한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일생을 관통하는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역사 속에서 사건과 인물을 포착해 낸 것들로 사실이나 전기의 픽션화를 전문으로 한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우리 영화사에서 역사나 전통 소재만큼 영역이나 빈도수가 큰 경우도 드물다. 같은 레파토리를 두고도 누가 어떻게 제작을 하느냐에 따라 극적인 성패가 갈리는 경우도 있거니와 오리지널 창작에 비해 대중친화력에 있어 더욱 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의 입장에서 이들 소재는 한국영화의 고질적 병폐와 더불어 ‘우려먹기’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어서 작가의 예술적 인고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금동의 경우 우리의 역사나 위인이라면 한 번 쯤 궁금증을 품어볼만한 대부분의 인물을 형상화하고 또 그를 위해 오랜 시간 자료수집과 집필 과정으로 남다른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6.25에 이르기까지 대표적 사건과 인물은 모두 그에 의해 작품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대표작들이 실려 있는 두 권의 작품집만 보아도 <청춘극장>이나 <팔도며느리>같은 인기작들은 제외된 채 역사현장이나 불교적 소재를 위주로 편선된 것은 작가의식의 또 다른 접근점이 되고 있다. 월탄 박종화도 최금동의 작품집 추천사에서 ‘40여 성상을 걸려 한결같이 추구해 온 그 주제와 소재가 대부분 우리 민족사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들과 인물, 그리고 고유문화유산에 얽힌 전설들로 일관되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팔리는 시나리오보다는 비상업성 각본에 평생을 매달려 그 지조를 버리지 않았다는 그에 대한 회고담들은 시나리오에 대한 최금동의 작가적 인식을 잘 말해준다. 신문사 기자직을 수행하면서 그가 지닌 사회에 대한 문제적 인식은 거침없던 그의 필력과 숱한 일화로도 전해져 오는데, 이것은 시나리오 창작에 있어서도 작품의 기저에 그대로 흐르는 주제의 줄기가 되고 있다. ‘작가가 고발성이 없으면, 문장에 고발성이 없는 글을 쓴 작가는 죽은 작가나 마찬가지이다’17) 라고 피력한 그의 글쓰기 소신은 이러한 사회 고발적 작품세계를 또한 잘 말해주고 있다.
사실(史實) 과 전기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소재는 크게 삼국과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한국동란, 불교세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존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은 <화랑도> <원효대사> <태조 이성계> <성웅 이순신> <3.1독립운동> <유관순> <동학난> <아아 백범 김구선생> <상해임시정부> <의사 안중근> <중광의 허튼소리> 등이 있고,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픽션화한 것은 <안시성의 꽃송이>(고구려 안시성 항쟁) <정복자>(항일독립운동) <이름 없는 별들>(광주학생운동) <쇠사슬을 끊을 때까지>(8.15광복) <무상>(6.25) <에밀레종>(성덕신종 설화) <팔만대장경>(팔만대장경) <비극은 없다>(6.25) <대평원>(일제 학병) 등이 있다.
이 외에 작가의 사회의식이나 고발정신을 기초로 한 작품으로 대부분 실존인물을 극화한 경우가 많다. <태백산맥> <영산강> <빛도 소리도 없이> <벽>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2.2. 작법적 특질
가. 선(先) 상황 후(後) 인물의 플롯
최금동이 바라보는 역사 속의 인물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어떻게 위인적 면모를 발휘하는가와 그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고뇌하고 자신의 대업을 성취해나가는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플롯의 중요 맥락인 사건과 인물에서 인물의 내적인 동인에 따라 사건을 끌고 가는 인물 위주의 구성 방식을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이라는 반복적인 착상이 특유의 작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대개의 작품이 고전적인 내러티브 구성과 연대기적인 서사를 따르는데, 발단의 양상이 대부분 인물이 처한 상황의 제시로 시작된다는 특징을 들 수 있겠다. 인물 위주의 전개에서 작가는 왜 일반적인 내러티브 방식과는 동떨어진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것이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 특유의 장치라는 것과 상황 속의 인물이라는 사실주의적인 주제의식의 맥락을 볼 수 있겠다. 전기적 특성을 위주로 하는 인물 취재의 경우 이러한 작법이 특별히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몇 편의 예를 들어보자.
<이순신>의 경우, S#1에서 S#5까지 현 정세를 바라보는 대신들의 분열과 권력과 고리가 맺어져 있는 후궁의 얘기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주지하다시피 이순신이 선조 임금 시절 맹장으로서 활약하다 죽음을 맞기까지 조정의 분열과 그로 인한 세력 다틈 속에서 위기를 맞곤 했던 사실에 기초한 것이며, 그것이 성웅이면서 시대의 아픔을 몸소 안고가야 했던 인간 이순신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설정은 ‘여차여차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고뇌했다’라는 행동의 당위성 혹은 장애물로서의 상황에 대한 의도를 내포함과 동시에 이것이 결국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안중근>의 경우도 시작부터 S#25에 이르기까지 포츠담회담과 을사보호조약을 계기로 조선을 속국화 하려는 일본의 야욕과 당시의 주변 정세 그리고 독립을 지키려는 열사들의 항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중근은 비로소 S#25의 말미에 “안창호 선생을 지켜라”는 외침으로 등장하는데, 이또오나 고종, 민영환, 안창호 등의 주변 인물에 이미 시선의 강도가 쏠려 있어 주인공의 등장치고는 미미한 무게만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일경에게 쫓기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의 아내인 아려가 등장하여 아버님이 위독하다고 외치고 이를 뿌리치며 안창호를 보호하는 장면 연출은 그가 주인공으로서 주목받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앞의 두 작품에서 보이는 발단의 상황묘사와는 다르지만 나레이션을 통한 주변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 역시 또 다른 상황제시의 기법이 되고 있다. <김구>의 경우가 그러한데, 서두에서 이미 김구의 죽음과 장례식을 배경화면으로 깔면서 조가 내지는 찬가의 의미를 지닌 나레이션으로 김구라는 인물을 제시한다.
한국동란 당시 빨치산 운동과 관련된 비화를 극화한 <無常>의 경우도, 보이스오버의 장치를 빌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두륜산에 대한 묘사와 작중의 사건을 듣게 된 경위 등을 마치 소설의 액자형식처럼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주요인물인 신산스님과 목포댁, 빨치산 김상원 등이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것처럼 극적인 틀을 잡아내는데, 이 보이스오버의 인물이 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에 극적인 기능으로는 나레이션과 다를 바가 없다 하겠다. 이러한 ‘소리’를 통한 발단의 도입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장치 중의 하나로 <건너지 못하는 강>에서도 극중 이야기가 실재했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자막을 통하여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밝히는 장치와 극적인 기능은 유사하여 나레이션, 보이스오버, 자막과 같은 장치를 통하여 상황을 제시하고 들어가는 그의 작법 상 변형된 또 다른 작법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많은 역사극들이 나레이션이나 자막으로 발단부를 장식하는 예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설명이라는 문학적 장치가 효과적이지 않은 시나리오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희곡이나 시나리오 같은 대사체 장르만의 대안적인 장치라 볼 수 있겠다. 최금동의 경우도, 6.25나 3.1운동, 광주학생 운동 등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펼쳐지는 여러 작품들에서 즐겨 나레이션을 사용하여 주요 사건의 배경이나 의의를 일단 짚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특징적 수법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 상황에 대한 제시부터 시작되는 그의 이러한 작법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국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우리는 인물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 최금동은 역사적 인물을 그리는 데 있어 그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적 고뇌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이것이 그가 한 인간을 바라보는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개인사적인 측면에서도 일부 유추해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술회는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작품 속의 인물이 자신의 심장이고 목소리라고 말하는 최금동의 고백은 우리가 귀 기울여 동조할 만한 가치가 있고, 그의 작품을 분석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순신의 경우만 하더라도 20년 동안에 15회나 고쳐 썼다고 전해진다.18) 대상 인물에 대한 단순한 작가적 고집만으로 이런 작업이 가능하지는 않다. 그것은 그의 개인사적인 고뇌와 연관하여 인물과 자신을 하나의 자아로 인식하는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어찌 보면 작가 자신의 투영체이기도 한 작중인물이 어떻게 작가의 플롯 안에서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에밀레종>에서 종장(鐘匠)인 참마루는 자신의 친딸이 종의 인주로 세워져 희생된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종의 완성을 위하여 한 인간을 그것도 어린 아이를 제물로 삼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종을 완성하지 못하면 공주를 해치려했다는 누명으로 죽음에 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희생되어질 한 인간에 대한 연민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순신>에서도 주인공을 그려나가는 포인트는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장수로서의 면모이고, 그에 못지않게 그의 인간적인 면도 부각되어지는데, 아비이자 아들이고 지아비인 이순신의 입장은 물론 일벌백계의 의미로 처형시킨 부하의 가정을 생각하는 그의 내면 등도 두드러진다.
이 외에도 안중근, 김구, 홍난파, 유관순 등 전기성이 짙은 작품에서 인물 위주의 플롯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겠으나, 3.1운동, 광주학생운동, 6.25 등 사건적인 맥락이 두드러지는 소재의 경우에도 가상의 인물과 실존의 인물을 결합하여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사건을 만들어 나가는 플롯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시나리오는 사건에 종속되어 인물이 끌려갈 수도 있고, 인물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끌어갈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관건이 될 것인데, 최금동의 경우 인물을 위주로 하는 극구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3.1 독립운동>에서 보면, 이 운동에 참여한 많은 위인들이 있겠으나 주인공은 송계백이라는 실존 인물과 신철과 명주 남매가 엮어가는 메인 스토리에 3.1절 거사라는 사건을 서브 스토리로 엮어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핵심은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실상보다 신철 형사와 그의 누이 명주, 혹은 금옥과 같은 역사 한 켠의 가상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3.1절 거사라는 사건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하여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는데, 특히 적대적 인물의 변화라는 유사한 반전 장치를 통하여 감동과 주제의 효과를 동시에 성취한다.
광주학생운동을 다룬 <이름 없는 별들>의 경우도 실제의 사건을 그대로 극화하되 가상으로 설정된 상훈의 가족과 최형사 남매 등이 이끄는 인물의 이야기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창조해내고 있다. 일본에 대항하려했던 당시 학생들의 기개나 사건의 전말도 중요하지만 최형사와 그의 누이 동생 영애, 상훈 등의 스토리가 내러티브의 핵심을 이루며, 그것이 발단에서 결말로 이어지는 극의 전개를 이끌고 있어 마치 그들이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존했던 인물이고 그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이렇게 극적인 장치로서 무엇보다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 상황의 제시나 유사한 장치로 나레이션, 보이스오버 등을 볼 수 있었다. 최금동의 인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인간적인 측면에서 위인을 부각시키고 인물이 사건보다 우선하여 플롯을 이끄는 작법적 특징을 통하여서도 고찰해 볼 수 있겠다.
나. 능동자와 조력자로서의 가상형 인물
이야기의 취재가 사실성에 근거하는 경우, 창작된 내러티브 속에서 가상의 인물은 작가의 특별한 의도를 내포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들 가상의 인물들은 주인공이 아니라 부수적 등장인물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주인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배경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또한 비교나 동일시를 통하여 반대되는 것이나 대립되는 것을 제시하거나 성격의 어느 한 면을 부각시키면서 서로가 서로를 드러낸다.19) 시나리오에서는 이들을 조연 혹은 코믹릴리프, 조력자 등의 용어로 부르는데,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면 협조자나 적대자의 양 방향에 모두 위치 할 수 있다.
또한 주연이든 조연이든 등장인물이 단순히 행동에 의해 작용을 받는 수동적 입장이라면 그것을 수동자로 볼 수 있겠고, 반대로 행동을 유발할 때는 능동자라고 볼 수 있겠다.20) 사실성에 근거한 극들에서 가상의 인물이 주연과 능동자의 캐릭터를 동시에 지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최금동의 경우, 픽션화된 인물이면서 조력자와 능동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주목을 받을 이유는 가상의 인물이면서 주인공과 함께 플롯을 이끌고 있다는 것인데, 일부는 극의 낭만적 정조 형성에 기여하고, 일부는 플롯의 핵심에 위치하여 주제의식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주인공이 다수인 그의 시나리오에서 이 역할은 대개 여성 인물에게 주어지는데, 대사의 흐름이나 전체적인 정조에 있어 남성적인 톤이 느껴지는 가운데 멜로물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이순신>의 인물 ‘옥엽’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전장을 이탈한 명목으로 참수되는 임금만의 아내로 인간의 속성상 이순신에게 적대감을 지녀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순신을 사모하여 일본인 적장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가 적대적 위치에서 어떻게 이순신을 사모하는 처지로 바뀌었는지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군졸인 남편을 죽이고도 인간적인 아픔 때문에 자신을 위로해 주거나,(여기서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옥엽의 어깨를 감싸 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이순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만의 집을 찾아와 가족의 안부를 묻는 장면의 설정으로 이순신이 지닌 인간적 면모에 독자들은 옥엽의 연정에 동일시됨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결국 일본인 간첩 요시라와 이순신 사이에서 이순신을 구하게 되는 사건은 장수 원균이나 일본과의 대립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플롯을 형성해 낸다. 이 작품에는 옥엽뿐만 아니라 장수 박해룡과 보화의 사랑이야기도 중요한 서브 스토리를 형성하는데 이순신 못지않은 장수의 기개로 죽음을 맞이하는 박해룡과 보화의 슬픈 사랑은 작품의 감성적 정조에 기여하며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역할은 <안중근>의 ‘소담’과 <김구>의 ‘소조’ 등의 캐릭터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안중근>의 소담은, 안중근이 일경을 피해 도망 중에 우연히 마주친 기생으로, 안중근을 도와 일본군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여인이다. 물론 소담은 가상의 인물이다. 안중근의 항일 독립운동이나 이또오 총격 사건과는 거리가 먼 일개 기생의 신분일 뿐이지만 그녀는 안중근에게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언젠가 저의 앞을 스쳐가 버린 어떤 분이 계셨어요. 커다란 발자국이었어요”라며 안중근의 위인적 면모를 부각시킨다. 또한 그녀는 안중근이 일군과 대치하는 현장에서 그를 돕다가 죽게 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과 플롯을 형성하며 극의 감성적 측면을 자극한다.
이에 비하면 <김구>의 소조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역은 아니지만 김구의 청년시절 스친 인연으로 애틋한 사랑의 느낌을 전해주며 , 후에 기생인 명주가 독립군들을 도와주려다 총격을 입고 죽는 장면의 설정 등도 조력자이면서 능동적으로 플롯을 이끄는 인물형의 반복적 형상들이다.
이외에도 <쇠사슬을 끊을 때까지>의 박병도와 그의 딸 운주, <3.1 독립운동>의 신철 형사와 그의 동생 명주, <이름 없는 별들>의 최영석과 그의 여동생 영애의 설정 등은 일본과 조선의 대립에서 친일 쪽의 인물로 주인공과 적대관계를 형성하다 결국 애국과 사랑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인물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가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라는 적대관계의 인물 구도를 이루며 그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으로 주인공을 돕는 비련의 인물로 여성을 등장시키고, 반전의 결말을 맺는 유사 플롯 속에 놓여있다. 세 작품 모두 역사의 현장을 무대로 하기 때문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이 주요 맥락이 되는데 이들 인물들은 모두 가상의 설정이면서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중심에 놓인다. 여성형 인물의 주인공을 향한 사랑은 주인공이 하는 항일 독립운동과 같은 대업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주인공의 면모를 클로즈업 시키며 낭만적 정서를 통하여 감동의 여파를 더욱 확장시키는 기재로 작용한다.
때로는 이러한 가상인물의 구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현장만 다를 뿐이지 작가가 유도하는 세계는 유사하기 때문에 동어반복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는 편이다. 그러나 여성형 인물의 극적인 행동이 주인공의 목적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으며, 작품의 주류는 남성 주인공들의 거시적 가치관과 행동이기 때문에 이들은 조력자로 남아작품의 밑면을 형성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최금동의 시나리오에는 가상으로 설정된 인물이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플롯상으로는 능동자의 역할로 위치하면서 작품의 낭만적 정조를 형성하는 캐릭터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작가의 특질적인 작법의 양상이면서 인물을 위주로 전기적인 특성을 고수하는 작품들에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역 인물에 대한 조력의 의미로 파악했던 위의 인물들 외에 주역에 상응하는 역할로 설정된 여성형 인물의 경우도 또 다른 맥락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역사와 민족이라는 주제의 줄기에서 보다 다양화된 지평으로 주제를 확장시키는 가운데, 남자 주인공과 이성(異性)의 관계로 함께 플롯을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이성으로서의 그들의 관계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게 되는데, 최금동의 시나리오에서 드물게도 여성적인 색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주목해 볼 수 있다.
<태백산맥>은 탄맥을 찾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제대 군인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 이일석이 보여주는 목표에 대한 의지력과 인간다운 인간을 찾아 이일석의 곁을 지키는 윤정옥의 결의 또한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빛도 소리도 없이>는 군대에서 집단적으로 조롱의 대상이 된 주인공이 비정상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하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가 조롱을 당하게 된 원인이 여주인공과 나눈 연서 때문이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존엄이 무너지면 어떤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벽>은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편견을 다루고 있는데, 애인의 죽음에 억울한 누명을 쓴 조선인 고학생의 비화를 다루고 있다. 1980년대 그의 마지막 작품인 <중광의 허튼소리>에서도 세속의 관념을 벗어나 기행으로 구도를 찾아가는 중광이라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주된 플롯은 손정희라는 여인과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여인 또한 중광의 곁에서 그의 비정상적인 내면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고지순의 여성형인데, 그녀의 사랑으로 중광의 세계가 현실적 설득력과 공감을 얻는다고 하겠다.
이들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형 인물들은 주인공과 함께 내러티브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 가상의 인물로서 조력자의 위치에 머물던 위의 작품들은 주인공의 목표의식이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대업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위인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태백산맥> <빛도 소리도 없이> <벽>은 주인공의 목적의식이 개인이나 사회적인 범위로 축소되는데다 주인공이 사회 안에서 장애를 만나 비극을 맞는 현대 비극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부각시킬 조력자가 구성상 필수적이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의 여성형 인물은 주인공과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플롯을 지배하는 동력이자 능동자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이중의 인과적 구조와 플롯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주인공과 여성형 인물의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목표성취와 관련된 것이다. 이 두 개의 플롯라인이 같은 궤도를 그리면서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는 것이 특징이며, 조력자로서의 능동자와는 그 무게중심 면에서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영웅적(위인적) 면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 행위자 모델 분석
최금동의 시나리오는 ‘민족’과 ‘역사’ 혹은 ‘사회’라는 거시적 담론과 강렬한 고발정신이 기저가 되는 작품으로 그의 시나리오 역사를 써내려가는 작가임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작가정신은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는 문학의 특성상, 그 형식적 요인에 힘 있게 작용하여 특정한 양상으로 표출됨을 볼 수 있다. 특히 시나리오에서는 다른 장르에 비해 인물, 플롯, 대사 등의 형식적 수단에서 그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바, 특히 작가의 정신(혹은 주제의식)을 실어 나르는 매체인 인물은 이러한 측면에서 작가의 중요한 작법 수단이 된다.
최금동의 경우, 그의 극적 장치들은 ‘사실과 실존’이라는 두 개의 사실적 고리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특히 인물의 경우 강한 목적의식을 지닌 주인공과 거시적인 욕망의 형태, 성취 혹은 실패의 결말이라는 정해진 작법을 고수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러티브의 구성요소로서 인물의 성격에 대한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델 분석은 유용한 접근방식이 될 수 있다. 극적인 주체가 대상을 욕망하고, 이에는 반드시 조력자 내지는 반대자가 존재하는데, 그레마스의 모델에서 가장 애매한 개념인 발신자와 수신자의 틀을 도입함에 있어서도 이항대립관계의 추출이 명확해지는 특성이 있다.
그레마스의 행위자 모델은 영화나 서사물의 내러티브 분석을 위한 방법론으로 빈번히 사용되는 이론으로, 등장인물을 하나의 행위소로 보고 그들 사이의 역할이나 관계를 도식화해 보고자 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하나의 작품 전체를 유기적인 관계로 코드화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스토리나 플롯, 인물을 인과관계의 맥락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유용한 서사분석방법론이다.
그레마스의 모델에 의하면 이야기의 모든 행위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여섯 가지의 배역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도식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주체는 주인공으로 대치해 볼 수 있는 개념으로 그가 대상을 욕망한다는 것은 주인공의 목적과 그것을 향한 열망을 의미한다. 주인공의 목적 열망은 그것을 반대하는 적대자와 상대적으로 협조적인 조력자가 있기 마련인데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협조적인 조역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주체의 욕망의 대상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축을 형성하는데, 발신자는 주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수신자는 그것을 받는, 혹은 혜택을 받는 입장을 말한다.
최금동의 인물을 이 도식에 맞춰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작품 중 역사적 위인을 대상으로 한 것, 불교소재, 실존인물 극화, 실재와 상관없는 작품 등에서 대표적으로 한 작품만 선택해서 예시해 보고자 한다.
그레마스의 행위자모델에 근거해 도식화해 본 이러한 결과는 최금동의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역사적 사건 혹은 위인을 대상으로 하는 극의 경우- 여기서는 <이순신>-주체의 욕망이 국가의 안위라는 거대사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상을 욕망하게끔 발화적 역할을 하는 발신자나 혜택을 입는 수신자의 경우 이것도 국가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분석은 주체의 목적의식이 개인의 범주를 떠나 이타적이고 거시적인 범주에 놓인다는 특성이 있어 작가의 인물 위주의 극 구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끔해준다.
불교를 소재로 한 <에밀레종>과 같은 작품에서도 이러한 구도는 반복적으로 드러나는데, 주체가 욕망하는 대상이 국가라는 거대사회는 아니지만 대상의 성격이 국가와 다를 바 없다. 이는 그가 구현하는 불교적 세계가 불법의 이념 자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호국불교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 주체가 실존인물이지만 위인의 범주가 아닌 경우 그가 욕망하는 대상이 개인의 욕망과 관련된 범주로 변화하고, 조력자인 여성형 인물의 위치가 주인공에 맞먹는 무게로 격상됨을 볼 수 있다. 이는 주체의 캐릭터가 영웅적일수록 조력자의 위치가 미미하며 또한 가상의 인물일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여성형 조력자의 위치가 주동인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태백산맥>의 윤정옥은 이일석이 탄맥을 찾는 과정에서 끝까지 그를 격려하며 후원하는 플롯의 핵심이 되고, <영산강>의 명주나 명옥도 주인공의 행위나 선택에 결정적인 사건의 고리를 만든다.
라. 대사와 지문
시나리오에서 대사나 지문은 작가의 유일한 문학적 수단이며, 영화의 대본으로서 여타의 영상적 기재가 있지만 주제의식이나 플롯의 진행, 인물의 성격 구현 등 내러티브 형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우리가 특정한 문체를 통하여 작가의 개성을 엿볼 수 있듯이 시나리오에서 문체의 영역은 대사나 지문을 통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최금동 시나리오의 언어적 특징은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유려함, 그리고 남성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큰 뜻을 품고 장애를 이겨내는 불굴의 위인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물의 대사도 그러한 맥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문이나 나레이션을 통해 보더라도 그의 문학적 배경이 그대로 전해올 만한 묘사가 다수 발견된다. 시나리오의 문장이 지시적이고 시각적인 연상을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 할 수는 없으나 이것이 스텝을 위한 정보전달의 역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문학적 구사들은 유용한 정서나 배경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나레이션이나 지문을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 지문은 그의 문학적 색채를 드러내는 예들로 거의 전 작품에 걸쳐 아름다운 문장의 지문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빛도 소리도 없이>의 결말부분은 후기를 부가하면서 작가의 의사를 적어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시를 적어놓거나(<안중근>의 경우), 작품 말미에 노래 가사를 적기도 하여(<빛도 소리도 없이>) 시나리오를 영화를 위한 대본으로서 단순히 받아들인것이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인식적인 측면도 강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9)후에 <애련송>으로 개제되어 영화화 되었다. 여기서는 현상공모 당선 당시의 영화소설 형태로 <환무곡>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자 한다. 10)이영제의 논문 p.23에 보면, 서광제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광제, ‘영화의 원작문제:영화소설 기타에 관하여’, 『조광』, 37년 7월. 원래 영화소설이라는 이름이 생기기는 영화배급업자와 출판사에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어떠한 유명한 영화가 나오면 그것을 소설체로 고쳐 써서 단행본으로 만들어 영화소설이라고 판매했다. 그러나 영화예술이 발전되고 영화문학이 확립됨에 따라 <시나리오>가 생기고 <시나리오>문학이 논의되어 지금에는 일본 내지에서는 영화소설이라는 그 글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요사이 조선에서 영화소설이라는 時代遲한 모순된 이름을 붙이고... 11)이영제, 앞의 논문, p.27. 12)『매일신보』, 1939년. 13)김남석, 「1930년대 시나리오의 형식적 특성과 변모과정 연구-『삼천리』에 게재된 초창기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현대문학이론학회, 2011, p.126. 14)이영일, 『한국영화인열전』, 1983, 영화진흥공사, p.248. 15)작품집 『애련송』 p.81에 보면, 남숙이 수녀원에 들어간 후 그녀의 행동에 대하여 뒤늦은 설명을 가하고 있다. ‘호화롭던 부귀도 새파랗던 젊음도 남편의 사랑도,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홀연히 집을 나선 그녀는 여러 가지 어렵고 까다로운 관문을 거쳐 이 수녀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16)논문 말미 작품 목록 참조. 17)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1950년대 한국영화』, p.288. 18)유현목, 《쇠사슬을 끊을 때까지》작품 해설, p. 208. 19)안느 위에 지음, 『시나리오』,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 83 인용. 20)안느 위에, 앞의 책, p. 67 참조. 21)http://blog.naver.com/ykha2001/140007089720 김태환,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델의 수용과 해석’에서 인용.
이와 같이 최금동의 시나리오를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최금동의 시나리오는 소재상으로는 민족의식이 돋보이는 역사적 사건과 위인, 불교소재, 실존인물을 통한 사회고발성 소재, 문제적 주인공의 인간승리 소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남성적이고 유려한 대사톤과 지문을 특징으로 한다. 작법상으로는 고전적인 내러티브 방식에 기초하였고, 인물 위주의 극작법으로 선 상황의 묘사나 나레이션의 사용이 두드러지며, 실존하는 주인공과 가상의 조력자를 등장시켜 플롯을 형성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델을 적용한 결과 주인공의 욕망과 조력자, 반대자의 구도는 물론, 발신자와 수신자의 구도도 비교적 명확히 대립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주인공의 성격이 영웅적일수록 더 분명한 구도를 이루고 수신자의 혜택이 보다 인물 외적인 범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최금동의 시나리오는 한국시나리오의 흐름에서 특히 역사물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는 것과 거시적인 담론이라는 특유의 소재취향과 연관하여 멜로물적이거나 대중취향으로 흐르지 않고 남성적인 정서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1950-6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창작물을 보여주던 시기, 문예물이나 문학 각색물, 반공극, 가정비련극 등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도 역사의식에 기초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창작하며 자신의 주관대로 시나리오 창작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작가의식의 소유자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충분한 작가로 자리매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