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ene O’Neill’s one-act play Before Breakfast (1916) depicts a morning scene of a married couple who live in a slovenly flat at Greenwich Village. There is no apparent dramatic action occurring in the play. Instead, the play is full of Mrs. Rowland’s incessant complaints about her husband Alfred’s loafing around bars with artists friends, neglecting his role as breadwinner. An irony is that every morning she prepares breakfast for the good-for-nothing husband even in the moment of complaining. It is worth noting that Alfred is an ‘unseen character’ who is never directly observed by the audience but is only described by her wife. Deprived of all chances to speak and present himself on stage, he is kept in the room throughout the play. In contrast, Mrs. Rowland dominates the stage, monopolizing language and action. The audience has to listen to her, judge from her statements, and take her one-sided complaints. The accused husband, with zero chance of showing up and defending himself, has no choice but to be the sinner as the wife intends. Another irony is that the audience’s feeling about the situation is quite different from what is expected. The wife’s complaints are regarded to be unfair and groundless in the reason that the situation is monopolized by her. In case of the husband, in contrast, the loss of voice and presence stresses the injustice of his dead-lock situation. In other words, the ‘absent’ quality of Alfred works to evoke the audience’s sympathy for himself and subsequently makes his presence recognized, not visually but emotionally, by the audience throughout the play. Discovered in this paradoxical moment where the spectators understand or ‘see’ the status of the unseen and the devoiced message is successfully conveyed to the listeners, is the theatricality of absence. Adding to the function as theatrical device, the ‘unseen character’ Alfred works as a device of self-reflection to mirror the author’s own life. Alfred, the alter-ego of O’Neill, effectively exorcises the author’s life-long feeling of guilty as the unfaithful husband and father in the unhappy first marriage, successfully evoking the audience’s sympathy for himself.
미국 드라마 사에서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의 위상을 논하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일이 되어버렸다. 굳이 언급하자면, 이전 미국 무대에서 좀처럼 탐구되지 않은 인간심리 영역을 파헤침으로써 미국적 주제 발굴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 그리고 극 주제 표출수단 혹은 전달매개로서 가면(mask)·방백(asides)·독백(monologues) 등 극장치의 실험을 통해 무대연출 테크닉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은 대표적인 오닐의 업적으로 여겨진다. “미국 최초의 메이저극작가”로서 오닐이 미국 연극 발전과 후대 극작가들에 끼친 상기한 영향력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를“현대 미국 드라마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American drama)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Magill 1406). 지금껏 출간된 오닐에 관한 다수의 전기와 그의 극작에 대한 방대한 연구는 상기한 오닐의 위상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오닐의 초기 극에 대한 연구가 양적·질적으로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오닐 연구는 최초 장막극『지평선 너머』(
『조식 전』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 알프레드 로랜드(Alfred Rowland)는 시인으로, 밤마다 술집을 전전하며 예술가들과 사교를 즐기고 아침에는 숙취로 방에 누워있다. 반면, 매일아침 집안일과 식사준비로 바쁜 로랜드 부인(Mrs. Rowland)은 무위도식하는 남편에게 연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극은 특별한 사건 없이 아내의 불만 표출과 그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부의 갈등으로 가득하다. 흥미롭게도 남편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방안에 있는 그는 숙취로 인한 신음과 면도소리를 통해 존재감을 간간이 알릴뿐, 정작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보이지 않는’인물이다. 단말마와 같은 신음 외에 단 한마디 대사도 할당받지 못한 그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를 갖지 못 한다. 부부의 대결 국면 속에서 관객은 시종일관 아내의 입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진술로 정황을 판단하며, 그녀의 고발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발당한 남편은 항변의 기회 없이 아내의 의도대로 나쁜 남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러니인 점은, 일방적 대결구도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드는 느낌이 예상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아내의 불평은 발언권을 독점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과하고 억지스런 것으로 들리는 반면, 말없는 남편의 경우 발언권 상실로 인해 그가 처한 상황의 부당성이 부각된다. 관객은 무대를 독점하는 아내의 존재감을 통해 남편의 딱한 처지를동정하고, 남편의 부재성은 이러한 정서를 부추기는 장치가 된다. 보이지 않음 으로써 보는 이를‘깨닫게’(see)하고, 말하지 않고도 듣는 이에게 의미가 전달되는 이 역설의 지점에서, 필자는‘부재의 연극성’(theatricality of absence)을 발견한다.
본 논문은『조식 전』에서 남편 알프레드를 무대 안에 등장시키지 않는 오닐의 의도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의도가 비단 연극적 장치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자전적 삶의 일면을 투사하는 자기반영적 장치로서 의미도 갖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상기한 극장치가 일차적으로는 부재한 남성인물을 향한 독자의 공감 유발을 의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오닐 자신이 평생 가졌던 첫 번째 결혼 시절의 과오에 대한 죄책감을 떨어내려는‘씻김’(exorcism)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타진한다.
1『황제 존스』(The Emperor Jones, 1921), 『안나 크리스티』(Anna Christie, 1921),『털복숭이 원숭이』(The Hairy Ape, 1922), 『느릅나무 밑의 욕망』(The Desire Under the Elms, 1924), 『위대한 신 브라운』(The Great God Brown, 1926), 『이상한 막간극』(Strange Interlude, 1928),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 1931),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 1946), 그리고 작가 사후에 출간된『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1956),『 휴이』(Hughie, 1959)가 여기 포함된다. 2네 편의 해양단막극은 1924년『S.S. 글랜캐언호』(S. S. Glencairn)라는 제목으로 묶여 공연되었고 1940년에는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오닐의 선원생활 체험을 소재로 한 초기 해양단막극으로『안개』(Fog, 1914),『 갈증』(Thirst, 1914),『 경고』(Warnings, 1914),『 고래』(Ile, 1918) 등이 있다.
극은 무대인 아파트 내부에 대한 장황한 묘사로 시작한다. 부엌겸용 거실, 삼면의 벽과 그 공간을 채우는 싱크대, 스토브, 탁자, 의자 등 집기, 찬장에 진열된 접시와 가재도구, 침실과 복도로 연결된‘실용 문’(practical door)에 대한 세밀한 설명은 이 극이 당시 유럽을 풍미한 사실주의 혹은 자연주의 극 실험의 세례를 받았음을 말해준다.3 창문으로 내다뵈는 비상구 계단과 방치되어 죽어가는 화분식물은 주변 공간의 분위기를 전함과 동시에, 언급한 창문이 장식적 용도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후 찬장을 메운 식기와 가재도구 역시 로랜드 부인의 손에 꺼내어지고 스토브로 옮겨지고 식탁에 오름으로써 실용성을 드러낸다. 기존의 미국 드라마에서도 무대 세트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발견할 수 있긴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보여주기’에 급급한 사실성이었던 반면, 오닐의『조식 전』에서 관객과 독자는 비로소 실용성이 더해진 진정한 의미의 사실주의 무대를 만나게 된다.
뉴욕 맨해튼 크리스토퍼 가(Christopher Street)의 아파트 거실 안으로, 로랜드 부인이 초가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등장한다. 부스스한 모습에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해대는 그녀는 관성적으로 옷걸이에서 앞치마를 꺼내 두르고 스토브를 켜고 커피포트를 올린다. 그녀는 다시 관성적으로 식탁의자에 털썩 앉아 두통이 있는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간다. 그녀의 아침은 이처럼 뭔가 개운치 않은 아침이며, 집안일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그녀의 관성적 움직임은 이러한 일상의 시작에 이미 익숙해져 있음을 말해준다. 그녀는 관성적 움직임 끝에 남편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처음 입을 연다.
여기서 부인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와의 대화를 목적한다기보다 그가 깨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의도를 띤다. 이는 부인이 자기만의 은밀한 놀이를 즐기기 위함인데, 그것은 남편‘몰래’술을 마시는 것이다. 목적달성을 위한 부인의 노력—까치발로 걷기, 남편의 인기척 확인, 소음 최대한 줄이기— 은 놀이에 긴장감과 스릴을 더한다. 오히려 부인은 술 자체보다 긴장감과 스릴을 더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녀가 놀이에서 성취감과 재미를 얻으려면 남편이 몰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놀이 현장에 그가 끼어들면 안 된다. 즉, 알프레드는 아내의 놀이공간에 원천적으로 부재해야 하는 인물인 것이다. 부인은 남편이 방 안 혹은‘무대 밖’에 잘 있는지 재차 확인하려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이는 무대 안에‘부재해야’(ought to be absent) 하는 남편의 ‘부재적 당위성’을 강조한다.
취기가 오른 부인은 보다 대범한 놀이를 시도하는데, 그것은 남편의 주머니를 ‘몰래’뒤지는 일이다. 부인은 이번에도 남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부재와 그로부터의 안전한 거리를 확인하며 자족적 즐거움을 감행한다.
주머니에서 편지를 발견한 부인의‘이럴 줄 알았다’라는 짧으나 의미심장한 반응에서 알프레드가 평소 의심 살 만한 애정행각을 벌여왔으며 로랜드 부인이 자신의 의심을 증명해줄 뭔가를 찾아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증을 확보한 이상 남편을 대하는 부인의 태도는 전과 같지 않다. 특히 편지를 읽는 그녀의 얼굴에서 전에 없던 감정 표출이 목격되는데, “분노와 증오”(hatred and rage, 197)로 시작한 부인의 표정은 편지를 다 읽을 무렵엔“의기양양한 악의” (triumphant malignity, 197)로 가득하고 이는“입가의 잔혹한 미소”(a cruel smile on her lips, 198)에서 정점에 달한다. 편지와 남편의 옷가지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완벽한 훔쳐보기를 마친 부인은, 다시 한 번 남편의 이름을 부른다.
이번 호칭은 이전과 느낌과 정황을 달리한다. 상대의 약점을 잡은 그녀는 남편과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남편을 부르는‘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그녀의 달라진 입장을 표출한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이 아침마다 나른해 하는 이유에 대해“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 말하며 뭔가 알고 있음을 은근슬쩍 과시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반대로, 아내에게 약점을 잡힌 남편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결국 방 속에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된다. 은밀한 놀이를 위해 남편의 눈치를 보던 부인은 이제 남편 앞에 당당하다. 전세는 역전되어 상대방의 존재를 경계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남편이다. 아내가 무대에 버티고 있는 이상 남편은 감히 무대로 나오지 못하며, 아내가 거실에 상주하는 동안 남편의 부재성은 영구화된다. 부인의 호출에 남편은 전과 달리 인기척으로 답한다. 이러한 반응의 변화는 그의 불리해진 상황을 전한다. 졸음에 겨운 신음소리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연민의 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그의 애처로운 상황을 강조한다. 대결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부인은 본격적인 남편 제압에 돌입한다. 그녀는 우선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을 지적한다. 남편이 시계를 전당잡혀 시간조차 알 길 없다는 말로 포문을 연 아내는 급기야 남편의 남성성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밖에서 일하는 것이 남자의 직분이라면, 이를 유기한 남편은 더 이상 남자일 수 없다. 반면, 밖에서 일을 하는 부인은 스스로에게 남성성을 부여한다. 그녀는 경제적 무능력을 예술가 집단 전체의 성격으로 일반화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보기에 남편과 그의 예술가 친구들은 남자의 직분을 잊고 무위도식하는 인생 낙오자들인 것이다.
부인의 비방은 남편을 포함한 예술가 집단의 위선에 대한 고발로 이어진다. 그녀는 집세를 못 내 거리에 나앉을 상황에도“일자리가 없다고 말하는”남편을 “거짓말쟁이”라고(You say you can’t get a job. That’s lie and you know it, 199) 규탄한다. 진실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예술가”(You never even look for one, 199)에 있는 것이다. 부인이 보기에“팔리지도 않는 멍청한 시와 이야기를 쓰는”(writing silly poetry and stories that no one will buy, 199) 예술가는 경제활동과 무관한 존재이며 굶주림과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하지 못 한다. 상처받은 인간의 영혼을 달래겠다는 예술가의 고상한 포부는 노동의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부인은 현실로 뛰어들어 돈을 구해오라고 남편을 다그치면서도, 그럴 수 없는 그의 무능력을 조롱한다.
무대를 장악한 부인은 남편에게 보다 과감한 태도를 취한다. 그녀는 직접 방에 얼굴을 들이밀고 남편에게 말하며, 이는 남편을 더욱 방 안으로 내몬다. 심지어 부인은“많은 걸 알고 있다”(I know a lot of things, 199)는 말을 통해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유리해진 입지를 강화한다. 방 안에 몰린 알프레드는 아내의 맹공에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대신 그의 부재성을 무대 안으로 투사한다.
주목할 점은 무대를 장악하고 발언권을 독점하며 남편과 예술가 집단을 비방하는 와중에도 로랜드 부인은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무능력을 폭로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손은“식탁 위의 컵과 접시를 과민하게 만지작거리고”(plays nervously with a cup and saucer on the table, 199) 있으며, 예술가 집단의 위선을 매도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스토브로 건너가“물이 끓고 있는지 확인”(see if the water is boiling, 199)한다. 심지어 남편에게 그의 외도사실을 알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에도, 그녀는“찬장으로 건너가 접시와 컵을 꺼내며”(goes over to the dish closet and takes out plates, cups, 200) 아침밥상을 준비한다. 부인의 모순적 태도는 몸에 베인 습성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음을, 그리고 이런 결과를 초래한 관성적 성역할의 골이 그만큼 크고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아내의 비방에도 남편은 계속 돈 안 되는 글을 쓰며무위도식할 것이며 결국 부인이 그를 부양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아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술가 알프레드의 몸에 베인 관성적 습성의 무게는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기엔 너무 큰 것이다.
아침식사 준비로 바쁜 부인의 모습에서 관객은 식탁에 없는 남편의 존재를 인지한다. 자신을 위한 식탁이라면 출근을 서둘러야 할 그녀가 식사준비로 부산할이유가 없다. 부인은 빨리 나가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get breakfast ready, 200) 또는“먹을 게 없다”(not that there’s anything much to get, 200)고 말하며 자신이 차리는 아침식탁이 남편을 위한 것임을 은연중 표출한다. 이처럼 부인은 남편에 대한 의식에서 시종일관 자유롭지 못 하며, 결국 그녀는 남편을 위한 식탁차림을 완료한다.
위에서‘빵과 버터와 커피뿐’이라느니, 바느질품을 판 덕에‘이마저도 있다’ 느니, 상한 빵이지만‘그래도 맛있게 먹으라’느니, 자격도 안 되는 남편을 위해 ‘자기가 왜 고생인가’등의 표현을 통해 로랜드 부인은 남편을 구박하고 있으나, 이러한 피상적 의미 이면에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증어린 배려가 묻어난다. 부인은 남편에게‘시중들 생각이 없다’하면서도 실제로 그의 옷매무시를 점검하고 안색을 살피며 씻을 물을 데워준다. 이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남자 알프레드의 정체성은 역설의 연극성을 표출한다. 즉, 부인의 말과 행동이 무대를 지배하는 동안 방안에 갇힌 알프레드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관객은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정작 그는 아내의 입과 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관객의 인지 속에 현전시킨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관객은 그가 잠에서 깨어 옷을 거의 다차려입었고, 수염이 덥수룩해 있음을 안다. 또한 부인이 차리는 아침밥상을 통해 그가 먹을 찬거리의 종류와 상태가 파악된다. 비록 알프레드는 식탁에 없지만, 관객은 그 밥상이 알프레드를 위한 것임을 안다. 이처럼 알프레드는 무대안에 부재하지만 관객의 인지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부인이 무대를 장악할수 록, 그로 인해 무대 안에서 알프레드의 부재성이 강화될수록 그가 관객의 인식을 장악하고 그 안에 현전하는 강도는 반대로 강화된다.
이와 관련하여, 헤이에스(Richard Hayes)는‘시각적 부재와 인지적 현전’으로 요약되는 알프레드의 정체성 또는 역설의 연극성을‘평행편집’(parallel editing)이라는 영화 기법에 빗대어 설명한다. 『조식 전』에서 로랜드 부인의 가시적 행위와 알프레드의 비가시적 행위가 동시에 관객에게 제시되는데, 부인의 행동과 독백이 무대를 장악할수록 방에 갇힌 알프레드의 비가시적 행위가 상세한 이미지로—단속적인 면도에서 최종적 자살기도로 이어지는—관객의 인지속에 각인된다는 것이다(54). 심지어‘보이지 않는 캐릭터’알프레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무대를 장악한 로랜드 부인의‘보이는’반응을 유발하기까지 하면서“부재 속 존재감”(presence-in-absence)을 무대에 현전시킨다(Byrd 23). 즉, 극은 부인의 가시적 행위와 알프레드의 비가시적 행위가 상호작용함으로써 구동되며, 이 상호작용은 전자의 존재론적 가시성이 후자의 인식론적 가시성을 강화함으로써 관객의 인식 속에 알프레드의 불리한 입장과 처지를 각인시키는 역설의 효과를 낳는다.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남는 극에 대한 감상은“감수성 여린 남편과 시끄럽고 상스런 아내의 밀고 당김”(interplay between the sensitive husband and the loud, crude wife)이 된다(Hayes 54).
결과적으로 알프레드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키고, 또한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함으로써 관객에게 동정을 호소한다. 반대로 부인은 시종일관 무대를 장악하고 대사를 독점하면서 유리한 입장에 서지만, 오히려 이 점이 관객의 동정적인 반응을 얻는데 실패하는 요인으로작용한다. 그녀의 거친 입담은 관객이 듣기에 과한 것으로 들리기 쉽고, 때문에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알프레드는 말 한 마디 없이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데 성공한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단말마적인 신음소리는 그의 애처로운 상황을 효과적으로 부각하는 장치가 된다. 알프레드는 침묵의 항변을 통해 밥상머리 싸움을 자기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이끈다. 극중 알프레드의 침묵은 아내의 수다보다 강하다. 말 많은 아내가 밥상을 차릴 때까지 남편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아침밥상 받을 준비를 한다.
아내가 거실을 지배한 가운데 말없이 방안에 갇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알프레드는‘남성성 부재’(absence of masculinity) 모티브를 체현한다. 알프레드의 부재성을 가시화하는 극장치와 이미지들—말과 모습의 박탈(devoicing and effacing), 방안에 갇힌 남자(man in closet) 등—은 작가의 노련한 계산을 통해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인식에 알프레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상반된 효과를 발생시킨다. 반대로 로랜드 부인은“관객으로부터 어떠한 동정도 받지 못 하는 술독에 빠진 심술쟁이”(alcoholic shrewd who evokes no audience empathy)로 내몰리며(Barlow 23) 남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부재의 역습을 당한다.
3맥린(Robert S. McLean)은 1993년 가을 뉴욕에서 공연된『조식 전』의 리뷰에서 이작품을 실패한 젊은 남성의 고통스런 마지막“삶의 한 조각에 대한 청년 오닐의 자연주의적 시선”(O’Neill’s naturalistic slice-of-life glimpse)이라 평하면서, 특히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1848-1912)의 영향력을 발견한다(167). 맥린은 스트린드베리의『강자』(The Stronger, 1889)에서 사용되는 두 인물의 등장, 한 인물의 독백 독점 등의 기법이『조식 전』에서 차용되지만 오닐의 독백 실험이 스트린드베리의 것보다 더 급진적인 면모를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강자』의 경우 한 인물이 독백을 독점하지만 두 인물 모두 무대에 등장하여 관객에게 동등한 시선을 받는 반면, 『조식 전』에서 알프레드는 대사도 없고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음으로써 부재성의 극단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오닐의 극 대부분이 작가의 개인사에 기초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벌린 (Normand Berlin)은“오닐이 무대를 자신의 거울로 삼았으며 그의 극을 모두 합치면 한 편의 자서전이 된다”는 보가드(Travis Bogard)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닐을 들어“가장 자서전적인 극작가”(the most autobiographical of dramatists)라 단언한다(26). 한 예로, 가장 자전적인 작품으로 여겨지는『밤으 로의 긴 여로』(1956)는 오닐 가문의 아픈 가족사를 폭로한다. 유명 배우 제임스 오닐(James O’Neill)과 그의 아내 엘라(Ella Quinlan O’Neill)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유진은 위로 형이 둘 있었다. 맏형 제임스(James O’Neill Jr.)와 둘째 에드먼드(Edmund O’Neill)가 그들인데, 에드먼드가 두 살도 안 되어 제임스로부터 홍역에 감염되어 죽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유진이 집안의 차남이 되었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 등장하는 티론 일가(the Tyrone family)는 실제 오닐 일가를 모델로 하며, 유진의 둘째 형 에드먼드의 죽음에 얽힌 가족의 갈등과 미묘한 애증관계를 극화한다. 흥행배우로 부를 쌓았지만 가족에게 금전적으로 인색했던 아버지, 약물 중독자였던 어머니, 음주와 방탕을 일삼던 형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결핵에 걸렸던 작가의 어두운 과거사도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1912년으로, 오닐의 자전적 인물 에드먼드(Edmund Tyrone)가 결핵판정을 받은 것은 실제로 작가가 결핵판정을 받은 시점과 일치한다. 극은 집안의 차남 유진(Eugene Tyrone)의 죽음과 관련하여, 약물 중독자가 된 어머니 매리(Mary Tyrone)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는데, 벌린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녀는 남편의 순회공연을 쫓아다니느라 아이들 곁을 떠나야 했던 죄책감과 장남 제임스가 질투심에서 의도적으로 동생에게 병을 옮긴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27). 특기할 점은, 티론 일가의 장남 제임스의 경우 오닐의 실제 큰형의 이름이 그대로 사용된 반면, 극중 홍역으로 죽은 차남 유진과 오닐의 자전적 인물인 막내 에드먼드의 경우는 오닐의 실제 둘째형과 자신의 실명이 뒤바뀌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오닐은 둘째형 에드먼드가 살아있다면 자기가 태어날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그는 모친이 약물 중독자가 된 것이 둘째형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 때문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임신한 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극에서 오닐이 자기 이름과 둘째형의 이름을 바꿔 사용한 것은, 자신을 대용물로 전락시킨 둘째형에 대한 원망과 그 대신 자신이 삶을 영위한다는 죄책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에 대한 반영이라 하겠다.
『조식 전』역시 오닐의 개인 체험에 기초한 자전적 극의 성격을 지닌다. 이런점에서, 이 극이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허름한 아파트 실내를 배경으로 하며 극중 알프레드의 직업이 작가로 설정되어 있는 점은 놀라울 것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 극이 집필된 1916년을 전후하여 오닐은 실제로 그리니치빌리지의 아파트 셋방에서 단막극을 쓰며 견습기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다. 또한 극중 알프레드가 백만장자 부친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처럼, 이 시기 오닐은 흥행배우로 부를 축적한 아버지로부터 주급 10달러의 생활비를 원조 받고 있었다 (Miller 95). 1916년은 오닐의 문학 이력을 통해서도 매우 뜻 깊은 해였다. 그해 여름 오닐은 극단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Provincetown Players)의 희곡 공모에『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를 제출했는데, 이는 그가 견습기를 청산하고 전업 극작가로 첫발을 대딛는 순간이었다.
『조식 전』이 오닐의 자전적 극임을 말해주는 또 다른 근거들이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극중 알프레드가 술에 탐닉하는 것처럼, 청년 시절 오닐은 대단한 애주가였다. 그의 폭음은 15세이던 1903년에 이미 시작되었고, 프린스턴대학교 신입생이던 1906년에는 기숙사에서 프랑스산 독주 압생트(absinthe)를 병째 마시는 그의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Gelb 1962: 112). 앞서 말했듯이, 오닐의 모친은 차남 에드먼드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가책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그녀는 죽은 자식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이를 갖기를 원했고 그 결과가 유진의 출생이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에드먼드에 대한 죄책감, 여전한 남편과의 고된 순회공연 동행, 거기에 난산의 힘겨움이 가중되면서 그녀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악화되었다. 결국 그녀는 출산 직후 모르핀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이후 평생을 정신마비 상태로 보내게 된다(Grecco 142). 오닐의 출생이 그녀가 약물에 탐닉하게 된 일차적 원인은 아닐지라도, 작가 스스로는 모친이 그런 상황에 이른것이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을 버리지 못 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아버지 제임스가 오닐의 자전적 인물 에드먼드에게 던지는“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if you hadn’t been born, Act 4: 142)이라는 말, 어머니 매리가 남편에게 건네는“그 애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I should never have borne him, Act 3: 122)는 말, 그리고 최종적으로 에드먼드가 이에 수긍하며 전하는“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큰 실수였다”(it was a great mistake, my being born a man, Act 4: 153)는 말은 상기한 오닐의 자책의 감정을 표출한다. 즉, 오닐은 죽은 형의 대용물이자 모친을 정신적 황폐함으로 몰고 간 자신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혹은‘잘못 태어난’(misbegotten) 존재로 여겼다. 이처럼 모친의 약물 중독과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아픈 가족사는 오닐에게 평생의 짐이었다. 오닐 자신이 술의 효용가치 중 하나로‘망각’(forgetfulness) 효과를 강조했듯(Sheaffer 323), 어린 나이에 시작된 그의 폭음과 술에 대한 탐닉은 모친의 경우처럼 아픈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행각으로 이해된다(Berlin 28).4 특히 프린스턴대학교를 중퇴한 1906년부터 첫 항해에 나선 1910년 사이, 오닐은 뉴욕에서 싸구려 장신구 통신판매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큰형 제임스를 따라 술집을 전전했으며(Berlin 31), 항해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1911년부터 다시 이어진 그의 주벽은『조식 전』을 집필한 1916년경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극심해졌다(Grecco 143). 오닐이 1934년 금주를 선언하기 전까지 술은 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으며, 이 시기 폭음과 술에 대한 탐닉은 오닐의 암울했던 시절에 대한 표상으로 여겨진다.
극중 알프레드가 섬망증(Delirium Tremens) 의심환자로 아내의 수발을 받아야 하는 병약한 인물로 설정된 것 역시 오닐의 병상체험에 대한 회고기로서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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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도 밝혀지듯, 실제로 오닐은『조식 전』이 출간되기 4년 전인 1912년 결핵판정을 받고 12월부터 5개월간 요양원에 입원했다. 오닐의 극이 갖는 자서전적 성격을 감안할 때, 극중 알프레드의 병약함은 오닐의 병상체험에 대한 전조이자 회고일 수 있으며, 아울러 극의 시간적 배경을 오닐이 요양원에 입원한 1912년 겨울 전후부터 극 집필 시점인 1916년경 사이의 어느 하루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요양원 생활이 오닐을 극작가로 거듭나게 한 중대 전환기가 되었다는 것이다(Berlin 32, Bigsby 36). 오닐에게 있어 5개월의 휴식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유럽 극작가들을 섭렵하며 새 삶을 준비했다. 오닐이 1936년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회고하듯, 그에게 현대드라마의 비전을 제시한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1849-1912)를 처음 접한 것도 요양원에서였다(Sheaffer 190). 오닐은 퇴원 직후인 1913년 단막극 9편과 장막극 2편을 써내기까지 했다. 습작들의 수준을 의심한 그는 이듬해 가을 하버드대학교의 베이커(George Pierce Baker) 교수에게서 극작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극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오닐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는지는 대학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 그가 베이커 교수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서 확인된다. 오닐은“지도받지 않은”(indirected) 자신은“흔한 날품팔이 극작가”(mediocre journeyman playwright)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본인은“아무것도 아닌 존재” (nothing)가 아니라“예술가”(artist)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Cargill 20). 오닐은 극작수업 1년만인 1915년 여름 그리니치빌리지로 돌아와 주점‘황금백조’ (Golden Swan)를 출입하며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5 이 중에는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를 결성한 쿡(George Cram Cook)과 글라스펠(Susan Glaspell) 부부가 있었다. 상업극에 맞서 순수 예술을 표방한 이들과의 만남은 오닐이 직업 극작가 혹은‘예술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중대한 기회였으며, 그가 희구했던‘예술적’극작의 첫 가시적 결과가 이 극단에서 발표한『조식 전』을 포함한 단막극들이었던 것이다.6
벌린은 오닐이 1953년 6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지만‘예술가’오닐은 극작을 중단한 55세에 이미 죽었다고 말하면서, “예술가 아닌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when he was not an artist he was nothing)고 단언한다(35). 마찬가지로, 예술가를 꿈꾸지만 견습작가에 불과했던 1913년경 25세 청년 오닐 역시‘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이러한 작가의 자의식적 부재감은『조식 전』에서 아내에 의해 쓸모없는 인간으로 폄하되는 시인 알프레드의 부재성으로 표출된다. 견습작가 오닐처럼 그는 아내의 몰이해와 생활이라는 현실적 요구 앞에서 예술적‘방향성을 잃고’(indirected) 벌이에 연연하는‘흔한 날품팔이’(mediocre journeyman)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운명이 두려운, 그리고 예술가이기를 고집하는 알프레드는 결국 방 안에 갇힌 보이지 않는 남성으로 남는다.
오닐의 견습작가 시절은 그가 오랫동안 세상에 드러내기 꺼려했던 또 다른 개인사를 포함하는데, 바로 첫 결혼에 대한 기억이다. 오닐은 평생 세 번 결혼했다. 21세 때인 1909년 캐슬린 젠킨스(Kathleen Jenkins), 1918년(30세) 아그네스 보울턴(Agnes Boulton), 1929년(35세) 칼로타 몬트레이(Carlotta Montrey) 와의 결혼이 그것인데, 특히 주목할 것은 첫 번째 결혼이다. 보울턴은 소설가이고 몬트레이는 배우였던 반면, 첫 번째 배우자인 젠킨스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닐 자신이 이 여인과의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자 했다. 분명한 것은 첫 번째 결혼이 오닐에게 행복한 생활이 아니었고, 그 자신이 가장의 책임을 심하게 방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오닐은 3년만인 1912년 10월 아내와 이혼하고 그 사이에 난 아들의 양육권도 그녀에게 넘겼다. 오닐의 가족 방치는 결혼 직후인 1910년 봄부터 시작되었다. 남미 온두라스로의 첫 해외여행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오닐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임신 중인 젠킨스는 그해 5월 홀로 아들을 출산했다. 오닐은 생후 한 달을 갓 넘긴 아들을 놔두고 6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생애 첫 항해를 떠나는데, 이는 가족 부양의 부담에서 비롯된 도피행각으로 보인다(Graham-Yooll 95, Bigsby 36). 오닐에게 있어 항해 체험은 견문을 넓히고 성숙해지는 기회이자 향후 그의 문학여정에 글감을 제공할 귀중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지만, 한편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선택이기도 했다.7 청년기 오닐의 자유분방함을 미루어 볼 때, 그의 첫 결혼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던 철부지 시절의 충동적 행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닐 자신이 첫 번째 결혼을‘실수’(mistake)였다고 표현한 점은 이러한 해석에 신빙성을 더한다(Carpenter 38).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그가 1912년 젠킨스와 이혼 직후 요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오닐이 첫 결혼과 숨겨진 자식에 대해 함구하려 했던 것은, 요양 기간 중 비로소 깨달은 철부지 시절의 무모함과 가장으로서의 무책임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흥미로운 점은『조식 전』이 오닐이 비밀에 붙이고자 했던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한 극화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상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이 극을 통해 탐색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극이 오닐의 두 번째 결혼 시점인 1918년보다 2년이나 앞선 1916년에 집필되었음을 감안할 때, 극중 부부의 이야기는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한 회고일 가능성이 높다. 즉, 이 극은 첫 번째 결혼 기간(1908-1912년) 중의 어느 초가을 아침을 시간적 배경으로, 오닐이 요양원 생활과 베이커 교수와의 인연 직후 그리니치빌리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무렵(1915-1916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극중 로랜드 부인은 오닐의 첫 부인 젠킨스를 모델로 한 것이며, 극중 부부의 갈등은 오닐의 첫 번째결혼 체험에 대한 극화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유추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극중 부부 관계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오닐의 첫 부인에 대한 정보와 첫 결혼생활의 실상, 당시 오닐의 정서 상태 등을 역추적함으로써 베일에 가려진 오닐의 삶에 대한 자서전적 이해를 돕는다는 데 있다.
『조식 전』의 도입부에 묘사된 로랜드 부인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무대에등장한 그녀의 자태를 통해 독자와 관객은 오닐의 첫 아내 젠킨스와 대면하게된다.
오닐의 전기를 집필한 겔브 부부(Arthur and Barbara Gelb)에 따르면, 오닐이 처음 만났을 때 젠킨스는“크고 파란 눈에, 단정히 틀어올린 금발머리를 한이십 세”(big blue eyes, and fair hair piled high on her head. . . at twenty)의 사랑스런 소녀였다(1962: 131). 불과 몇 년 사이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다른모습으로 변해 있다. 부스스 흘러내리는 머리를 핀으로 대충 고정한 그녀의 용모는 망가진 몸매를 가리고 있는 추레한 실내복만큼이나 볼품없다. 그녀의 무표정한 파란 눈은 예전의 총기를 잃었고, 그녀의 머릿결도 생기 없이 칙칙해져 있다. 이십대 초반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나이 들어 뵈는 그녀의 얼굴에서 옹색한 살림과 삶의 무게가 드러난다.
이어, 로랜드 부인은 남편의 출신배경을 언급한다. 그녀는 재력가의 외아들에 명문대학 졸업자라는 유리한 조건을 지녔음에도 사람 구실을 못 하는 남편을 비난한다. 덧붙여 그녀는 여기저기 빚을 지고 죽은 백만장자 시아버지보다 일개 식료품상에 불과하지만 정직한 친정아버지가 훨씬 낫다고 주장한다. 친정식구를 두둔하는 그녀의 태도는 분명 자신의 출신배경에 대한 자부심 또는 자존심을 표출하고 있으나, 반면 남편 알프레드에 대한 계급적 열등감을 은연중 드러낸다.
부인의 언급은 오닐의 첫 아내 젠킨스의 출신배경이 문학적·문화적 소양을 갖춘 두 번째, 세 번째 아내의 경우와 매우 대조적이었음을 가늠케 하며, 그로 인해 그녀가 남편 오닐에 대해 가졌을 계급적 열등감을 드러낸다. 한편 부인의 말은 극중 알프레드가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가졌을지 모르는 열등감과 자괴감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닐이 부모에 대해 가졌던 불편한 감정—흥행배우인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과 그의 인색함에 대한 증오, 약물에 중독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오롯이 투영한다.
한편, 『조식 전』의 중간부에 로랜드 부부의 아픈 가족사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식의 죽음이다. 그녀는 신혼 초기, 부부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던 시아버지가 돈으로 회유하여 부부를 떼어놓으려 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던 남편을 매도한다.8 남편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부인의 비난은 출산 중인 아내 곁을 지키지 못한 남편의 과오에 대한 언급에서 절정에 달한다. 설상가상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아이의 운명은 남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그 불쌍한 것이 죽어 태어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It’s lucky the poor thing was born dead, after all, 203)라는 부인의 한 마디는 가장으로서 알프레드의 무책임과 죄책감을 환기 시킴과 동시에“그런 아버지였었던”(What a father you’d have been!, 203) 그의 현존재를 각인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극중 자식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오닐의 첫 번째 결혼생활과도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닐은 젠킨스와의 사이에 아들 유진(Eugene O’Neill, Jr., 1910-1950)을 낳았고 이혼과 함께 아내에게 아들의 양육권을 넘겼다. 아들은 철학자로 성장해 대학교수가 됐으며 40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는 오닐이 사망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극중 자식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오닐이 실제 겪게 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전조가 된다. 극중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는 설정은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가장의 책임을 유기하고 말았다는 오닐의 죄책감이 극대화되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없이태어나 결국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유진 2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을 오닐의 형 에드먼드처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극중 죽은 자식에는 오닐의 죽은 형 에드먼드와 그가 방치했던 첫 아들 유진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아울러 극중 죽은 아이에 대한 언급은 오닐이 형 에드먼드에게 가졌던 애증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오닐은 형 대신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자신을 대용물로 전락시킨 형에 대한 원망을 버리지 못했는데, 이 복잡한 심경 속에서 오닐은 스스로를‘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여겼다. 오닐의 이러한 비관적 자기정체성은 극중 죽은 아이의 존재로 투영되고 나아가 작가의 분신인 알프레드의 자살로 결말지어진다. 극중 로랜드 부인이 죽은 아이를 떠올리며 던지는“죽어 태어난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말은 이처럼 오닐과 알프레드와 죽은 자식을 한데 묶어주는‘잘못 태어난 존재’혹은‘불출’(不出: the misbegotten)의 정체성을 환기시킨다.9 이처럼 극중 부부의 죽은 자식에 대한 언급은 오닐의 형 에드먼드에 대한 애증의 감정에서 비롯된 비관적 자기정체성, 청년 시절의 방탕과 방종의 삶,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처럼 자신도 자식과 가정을 유기해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자괴감과 부인에 대한 죄책감, 경제적 필요에 의해 예술성의 숭고함을 희생시켜야 할 위기에 처한 견습작가 시절의 불안과 절망, 혼란을 투영한다.
4오닐은“예술가는 긴장완화, 망각, 흥분을 위해 술을 마시며, 예술을 위한 경우를 제외한 어떤 것이든 음주의 목적이 된다”(The artist drinks, when he drinks at all, for relaxation, forgetfulness, excitement, for any purpose except his art)고 말했다. 그러나 쉐퍼(Louis Sheaffer)는 실제 오닐의 예술은 음주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술에 대한 탐닉이 절정에 달했던 1913년에서 1933년 사이 오닐은 40여편 이상의 작품을 써내며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Sheaffer 323). 5오닐은 베이커 교수의 극작수업을 중도 포기했는데,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체이틴(Norman C. Chaitin)은 오닐이 하버드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로 그가 베이커교수에게서 배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233). 힐튼(James Hilton)은 극작수업이 오닐에게 준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설령 있다 해도 좋은 영향은 아니었을 것이라 주장하며 베이커 교수의 영향력을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한다(289). 맬론(Andrew E. Malone)은 오닐이 베이커 교수에게서보다 선원생활 체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 단언한다(Cargill 263). 오닐에게 미친 베이커 교수의 영향력을 축소 평가하는 입장들과는 달리, 보엘커(Paul D. Voelker)는 베이커 교수가 기존의 부정적 시각을 상쇄 혹은 일축할 만한 긍정적 영향을 오닐에게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베이커 교수의 가르침이 오닐과의 충돌을 야기한 면이 없진 않지만 오닐은 스승의 조언을 극작에 적용하고 실험하며 완숙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이유에서 보엘커는 베이커 교수와 오닐의 관계를‘청출어람’의 관계로 평가하고, 이는“스승이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the most gratifying tribute a teacher could hope for)라 결론짓는다(220). 6『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는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와 함께 한 오닐의 처녀 공연작으로 1916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의‘선창가 극장’(Wharf Theatre)에서 공연되었다. 『조식 전』은 그해 12월 1일 극단의 겨울 시즌 세 번째 작품으로,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맥도걸 가(MacDougal Street)에 새로 문을 연‘극작가의 극장’ Playwrights’Theatre)에서 공연되었다. 7겔브 부부(Arthur and Barbara Gelb)는 오닐의 전기(O’Neill: Life with Monte Cristo, 2000)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이 오닐의 인생, 창작, 성숙에 큰 역할을 했음을 피력한다. 그래엄-율(Andrew Graham-Yooll)은 오닐은 첫 항해 체험을 기억 속에, 그리고 극작품 속에 평생 간직했다고 말한다(96). 아울러 그래엄-율은 오닐이 항해를 결정한 이유로 약물 중독자인 어머니와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 더욱 직접적으로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아들의 출생으로 인해 가중된 부양의 책임감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을 들면서, 결국 오닐의 첫 항해가 도피행각의 성격을 지녔음을 지적한다(96). 8실제로 오닐의 부친은 오닐의 첫 번째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신혼부부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갖은 시도를 했다. 오닐이 온두라스로 여행을 떠난 것 역시 부부를 떼어 놓으려는 아버지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9‘죽은 자식’,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 ‘잘못 태어난 생명’혹은‘불출’등의 모티프는 훗날 오닐의『느릅나무 밑의 욕망』과『밤으로의 긴 여로』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며, 특히『불출들의 달』(A Moon for the Misbegotten, 1952)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전면으로 부각되는 주제가 된다.
『조식 전』은 알프레드의 자살로 막을 내린다. 직접 목격할 수 없으므로 로랜드 부인의 반응과 사건의 정황을 통해 추측해야 하는 것이지만, 오닐 학자와 비평가들은 극의 결말을 알프레드의 자살로 보는데 이견이 없다. 침실에서 면도중이던 남편은 끝없는 아내의 질타와 책망을 견디다 못해 결국 면도날로 목숨을 끊게 되며, 이것이 어느 햇별 좋은 초가을 아침 부부가 맞게 되는‘조식 전’풍경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오닐 학자와 비평가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알프레드에게 동정의 시선을 견지하는데, 이 극을“악처에 의해 자살로 내몰린 한 남자”(a man driven to suicide by the harridan)의 이야기로 결론짓는 발로우(Judith E. Barlow)의 입장은 이러한 정서를 대변한다(23). 빅스비(Christopher Bigsby)는 오닐의 초기 극을 관통하는 주제로“변덕스런 힘의 산물로서 자아”(self as a product of arbitrary forces), “우발적 임신, 결핵, 분별없는 결혼으로 파괴되는 삶”(lives being destroyed by stray pregnancies, by tuberculosis, by illconsidered marriages), 그리고“방탕, 병, 가난, 죽음으로 파멸할 청춘”(youth to be destroyed by dissipation, illness, poverty, and even death) 등을 지적하는데(38), 이들은『조식 전』에서 알프레드가 처한 환경과 운명에 대한 설명에 다름 아니다. 빅스비의 표현을 빌리면, 결혼은 알프레드를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변덕스런 힘’이다. 분별없이 결정한 결혼은 그를 술과 방탕이라는 일시적도피처로 탐닉하게 했고, 그를 가난과 병으로 내몰았다.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알프레드는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통해‘변덕스런 힘’과의 인연을 끊는다. 극중 알프레드가 기거하는 방은 더 이상 도망할 곳 없는 막다른 상황에 대한 상징이며, 알프레드 부인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변덕스런 힘’의 상징이 된다. 이처럼 빅스비 역시‘당하는’입장에 있는 알프레드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표출한다.
알프레드의 자살은 실제 오닐의 자살 기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 역시 젠킨스와의 결혼생활 중 발생한 일이다. 9개월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을 마치고 1911년 4월 뉴욕에 도착한 오닐은, 가정을 유기한 채 또 다시 배를 타고 남아프리카 더반(Durban)으로 항해를 떠났다. 그해 10월 맨해튼으로 돌아온 오닐은 여전히 가정에 정착하지 못 하고 술집을 전전하던 중, 단골술집 ‘지미 더 프리스츠’(Jimmy the Priest’s)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방랑벽에 걸림돌이 되었을 가족의 존재와 가장의 부양책임에 대한 부담이 오닐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닐의 분신인 알프레드 경우에도 예술적 이상의 발목을 잡는 생계라는 현실이 그를 죽음의 도피로 이끈다. 이와 관련하여, 맥린(Robert S. McLean)은 알프레드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로랜드 부인이 남편에게 던진“결코 이혼을 허용하지 않을 것”(you can’t get a divorce from me, 1276)이라는 최후통첩이 알프레드에게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168). 어느 경우가 되었든, 알프레드가 체감하는 결혼생활의 힘겨움은 죽음을 불사할 만큼 견디기 힘든것이다. 실제 오닐의 삶도 알프레드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오닐의 가족과 동료가 증언하듯, 그의 자살 기도는“힘겨운 결혼생활에 대한 심적 고통”(distress over marriage difficulties)에서 비롯되었다(Miller 94).10
『조식 전』에는 이처럼 오닐의 1912년 요양원 입원을 기점으로 나뉘는 전후의 두 자전적 상황이 교차하고 혼융된다. 첫 번째 상황은 청년기의 방탕과 방종, 결혼생활의 굴레, 방랑벽과 가정의 방치, 자살기도와 이혼, 그리고 발병으로 점철된 암울한 삶이다. 두 번째 상황은 이 극을 집필하던 1916년 무렵까지 작가가 키워온 예술에 대한 열망—요양원에서 싹터 베이커 교수와의 극작수업을 통해 구체화되고,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와의 만남을 통해 실현된—이 지배하는 삶이다. 그 결과는 술에 찌들고 병약하며, 가장의 책임과 예술적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다 자살로 생을 마치는 작가 알프레드의 모습으로 수렴된다.
바닥에 쓰러져 주검이 된 알프레드와 겁에 질려 밖으로 도망치는 아내의 장면으로 극을 마감함으로써, 오닐은 알프레드의 부재성을 극대화한다. 알프레드는 죽어서조차 아내에게 외면당하고 방안에 격리된다. 명을 달리한 이상 그가 무대안으로 자신을 드러낼 가망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러한 결말은 알프레드가 느꼈을 절망, 불안, 소외감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독자와 관객에게 피력한다. 알프레드의 부재성이 극대화될수록 관객을 향한 그의 호소력은 그만큼 커진다. 극의 종결부에 관객에게 각인되는 알프레드의 최종적인 인상은 로랜드 부인이 숱하게 강조했던 무능한 남편이 아니라, 그러한 비난을 일방적으로‘당해야’했고 예술적 욕망을 꽃피우지 못하고 죽음으로‘내몰린’억울한 남편이다. 결국 알프레드에게 있어 부재성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강력한 무기로 변신한다. 이 역설의 지점에서 알프레드의 갇힌 상황과 죽음은‘부재의 연극성’을 시연한다.
한편, 이러한 종결 방법을 통해 오닐은 첫 번째 결혼생활과 맞물린 떳떳하지 못한 개인사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오랜 마음의 짐을 떨어내고자 하는 또 다른 의도를 드러낸다. 오닐은 알프레드를 경제적 필요에 의해 예술정신을 희생시켜야 하는 위기의 작가로 설정하고, 그에게 자전적 모습을 투영시킴으로써 견습작가 시절 자신이 체험했을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작가와 극중인물 사이의 상호반영성은 오닐의 삶에 대한 어느 비평가의 짧고 통찰력 있는 기술에서도 잘 드러난다.
벌린의 오닐 묘사는『조식 전』의 알프레드를 빼닮았다. 술과 결핵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이목이 가는 부분은 오닐의 결혼생활과 자살기도 에 언급이다. 무대에서 말이 없는 알프레드처럼 오닐 역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닐과 직접 인터뷰한 비평가 버드(Carol Bird)의 회고처럼, 오닐은“입이무겁고, 말수 적고, 내성적이고, 소심한”(taciturn, laconic, reserved, shy) 사람이었다(9). 극중 커피를 받기 위해 내미는“섬세하고 가는 손가락”(a sensitive hand with slender fingers, 1274)의 가녀린 떨림을 통해 추측되는 알프레드의 외모는 실제 오닐의 모습을 통해 구체성을 띤다. 상기한 비평가의 표현대로, 오닐은“중간 체구에 홀쭉하고 깡마른 얼굴, 우울함이 깊게 밴 우수에찬 눈빛”(he is a slender, lean-faced man with medium build, . . . his eyes are somber, with a tender melancholy in their dark depths)을 지닌 남자였으며(Bird 9), 방안에 갇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알프레드처럼 극작가로 데뷔할 무렵 오닐은“신비한 기질”(mystical temperament)을 지닌 청년이었다(Blackburn 109). 이와 관련하여, 극의 1916년 겨울 초연 당시 오닐 자신이 알프레드의 역으로 무대에 섰다는 사실(Miller 134, Barlow 23)은 두 인물 간의 상호반영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준다. 이 극을 집필할 무렵 오닐은 애초부터 자신의 캐스팅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극중 잠깐스치듯 보이는 알프레드의‘파리하고 연약한 예술가의 손’을 실제 무대에서 제공한 이는 다름 아닌 오닐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닐은 자전적 인물 알프레드를 시종일관 동정적인 인물로 극화함으로써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관객의 이해를 유도하는 한편, 이 가상인물에 대한 관객의 동정과 이해를 자신의 몫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첫 번째 결혼시절 그의 과오와 그로 인한 죄책감에 대해서도 독자의 이해를 끌어내고자 한다. 오닐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극을 쓰는 이유와 극을 통해 독자와 관객이 얻었으면 하는 바를 밝혔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불운하고, 상처받고, 억압받는’자들에 대한대중의 동정과 인간애였다.
오닐은 극중 자전적 인물의 부재성을 빌어 자신에 대한 세상의 동정과 인간애를 호소한다. 알프레드와 마찬가지로, 청년기 오닐 역시‘짐, 고통, 약점’으로 점철된 생의 낙오자이자,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따스한 인간애로 보듬어주어야 할‘불운하고, 상처받고, 억압받는’불쌍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발병과 요양원 생활, 과거에 대한 반성, 극작에 대한 결심,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와의 만남 등 오닐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기를 메우는 일련의 사건들을 고려할 때, 『조식 전』은 극작가로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오닐이 지난날을 정리하며 쓴 회고와 반성의 극이자, 또한 청년기의 방탕, 날품팔이 작가와 예술가의 기로에 선 견습작가 시절의 방황과 혼란을 떨쳐내는‘씻김’(exorcism)의 극일수 있다.11
한편, 무대에서 시종일관 제시되는 알프레드의‘갇힌 상황’과 이를 통해 극의 지배적인 모티브로 부각되는 알프레드의‘부재성’은 극 장치의 측면에서 볼때, 작가 오닐 자신의 어두운 내면 심리—아내와 자식에 대한 가책과 뿐만 아니라 모친과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까지도 포함하는—에 대한 주관적이고 외적인표출 형태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조식 전』은 향후 1920년대를 풍미할 오닐의 표현주의 양식 실험—『황제 존스』,『 털복숭이 원숭이』,『 위대한 신 브라운』, 『이상한 막간극』등으로 대표되는—의 초기 형태를 가늠케 하는 사료적 가치도 지닌다 하겠다.
10이러한 진단을 내린 이들은 오닐의 두 번째 아내 아그네스 보울턴(Agnes Boulton), 오닐과 오랫동안 연극작업을 한 제작자이자 비평가 케네스 맥고완(Kenneth Macgowan), 그리고 오닐의 전기(The Curse of the Misbegotten: A Tale of The House of O’Neill, 1959)를 집필한 저널리스트 크로스웰 보웬(Croswell Bowen) 등이다. 11실제로 오닐은 3년 후『씻김』(Exorcism, 1919)이라는 제목의 극을 썼다. 자살을 통해 과거의 죄를 떨어내려는 주인공을 선보이는 이 극은, 1912년에 발생한 오닐의 자살기도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카펜터(Frederick Carpenter)가 주장하듯, “자기파괴적인 이전 자아를 씻어내는”(exorcising his self-destructive former self)데 성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오닐은 무책임한 방관자에서 미래의 예술가로의 변신을 꿈꾸는 자신을 투사한다(44). 이런 점에서『씻김』과『조식 전』은 작가의 자전적 극이자‘씻김’의 극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