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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전복의 미학 L'Esthetique de la subversion de Prosper Merime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전복의 미학

Les critiques ont toujours constaté le style sec de Prosper Mérimée, cet écrivain insolent qui voulait pourtant divertir son lecteur. A la fois agressif et poli envers son public, comme Antonia Fonyi dit, il écrit de la même manière que sa personne, c'est-à-dire avec une brièveté parfois étonnante. On rencontre souvent des phrases qui sont détachées sans subordination, ni coordination dans son oeuvre. C'est alors par le lecteur que le lien logique entre ces phrases doit être reconstitué.

Cette écriture est apte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 dans laquelle il importe de révéler tout en dissimulant le surnaturel. Dans Lokis, les indices de l'homme-ours sont à découvrir de la part du lecteur, en tenant compte de l'opposition binaire entre la civilisation et la sauvagerie. Or, l'auteur crée une autre piste compliquée qui nous conduit à la rencontre de notre propre bête, la pulsion destructive dans l'inconscient. Nous découvrons que le narrateur et le protagoniste doté de bestialité se rapprochent à tel point qu'ils deviennent comme une paire inséparable. Le procédé est d'autant plus subversif que le narrateur-personnage représente la civilisation et incarne la sincérité et la raison.

C'est par l'assimilation du lecteur que ce dernier se rend compte de ladite pulsion, assimilation avec le narrateur, ce double de l'homme-ours. Nous constatons que le narrateur et cet être hybride partagent le même désir ardent de la peau blanche et du sang. Désormais le lecteur est entraîné à éprouver un effroi plus fort parce qu'il découvre non seulement l'homme-ours devant lui, mais aussi sa propre bête réprimée, homme primitif caché en lui-même.

Très attentif au problème de cette pulsion, l'auteur a bien su y faire ouvrir les yeux du lecteur. Il souligne ici le rôle du lecteur qui est capital pour cette découverte. Chacun suivra la piste, et il verra la bête accroupi en lui.

KEYWORD
Merimee , fantastique , narrateur , bestialite , double
  • 1. 서론

    19세기 초부터 프랑스에서 환상문학 장르가 문학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대혁명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변혁이라는 시대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사회·문화적 격변기에 문학 역시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신에 반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낭만주의 문학이 대두되는 풍토에서 환상문학 역시 합리주의를 벗고서 그 뿌리를 새롭게 내리고 성장해 나간 것이다. 물질 중심의 문화 속에 거주하면서 기존 문학과의 대비를 전방에 내세우고 실천한 낭만주의 시대 작가들이 전복의 문학1)인 환상문학에 다소의 차이를 두고 경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 균열을 만들고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어지는 것을 들여오거나 엿보는 형태로 전복을 꾀했다. 그러한 작품들이 실제 사회 내에서 기능하는 방향은 충동을 중화하는 쪽으로 향한다 할지라도 그 이야기는 기존의 질서 뒤집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뒤집기는 환상문학만의 시학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독자 편의 특별한 감정을 유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자에게 극도의 불안, 공포와 같은 효과를 야기할 것을 추구함으로써 고유의 시학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 장르가 지닌 역설, 즉 정확히 재현될 수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해야 하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인 것들, 일반적으로 사실이라 믿어지지 않는 피조물이나 현상들, 독자가 속하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에서는 그 어떤 언어외적인 ‘지시내용 référence’이 없는 것에 대한 포착을 주제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환상성의 본질은 결국 수사학과 시학의 차원이 된다. 소설 속에 구현된 현실적 세계에 츠베탕 토도로프 Tzvetan Todorov가 말한 ‘망설임2)’이 개입되는 것은 수사학이나 서술형태의 변형과 쇄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알려진 바대로 문체와 관련하여 생존 당시부터 20세기까지도 비판을 받아 왔던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이러한 질문에 소홀하였던가? 스스로 문학가임을 자부한 바 없는 그를 따라다닌 혹평에는 그 근거가 없지 않다. 스탕달 Stendhal의 ‘끔찍이 짧은 문장’이라는 평이나, 생트-뵈브 Sainte-Beuve가 이 작가의 글을 특징짓는 ‘메마름’과 ‘칼침’을 지적한 것은 일견 일리 있다. 앙토니아 포니 Antonia Fonyi가 말하듯 마치 문학이 그에게 진정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는 듯, 문학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메리메는 극히 간결하게, 보란 듯이 단순하게 생경한 효과를 내는 글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3). 그것은 하나의 도발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의 간결함이다.

    이 작가에 대한 비판을 부추긴 것은 그의 냉정하고 독립적인 태도, 비도덕성 등 작품 외적인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869년 메리메가 청중들 앞에서 직접 낭독한 『로키스』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오귀스탱 필롱 Augustin Filon은 그 소설의 뛰어난 작품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작가의 ‘불쾌하고 유감스러운 어조4)’ 때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자와의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는 메리메의 특성과 비평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작품의 올바른 평가를 저해할 정도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와 같은 태도가 메리메의 작품 전체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짐작할 만하다. 사실 『로키스』는 발표 당시에 작가가 했던 언급으로 인해 특별히 주목해볼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작품을 낭독한 후 오귀스트 필롱에게 “당신은 이해하지 못했군요, 잘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독자의 이해를 바라는 대신 무언가를 감추려 애쓰고 그에 만족하는 듯한 작가의 태도는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이는 예의 ‘망설임’과 연관될 수 있으면서도 더 특별한 의도를 읽어내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20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이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숨기고자, 또는 그 이해를 지연시키고자 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본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곧 그 엄폐 방법을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며, 이 방법에서 서술의 문제, 나아가 작가의 시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복의 문학인 이 소설이 사실적인 세계를 전복하는 과정에 어떤 논리가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비틀리고 낯설어진 세계를 통해 작가가 현실을 보는 시선을 파악하고 그 변형 과정에 개입된 이미지로 작가의 상상력의 본질과 그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술이 환상적 효과를 이루어내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하다. ‘인정된 질서의 단절, 일상의 변치않는 적법성 내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침입5)’에서 오는 효과는 환상문학의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메리메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리는 작업에 동참하고자 한다. 그새 비평의 장6)은 최근에야 열렸고 그의 문학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1)로지 잭슨은 환상을 전복으로, 억압되어 왔고 그 때문에 표현되지 못했던 것들을 다루는 수단으로 보았다. 『환상성-전복의 문학』,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역, 문학동네, 2001.  2)잘 알려진 바와 같이, 츠베탕 토도로프는 현실과 상상적 세계 사이에서 독자와 인물이 갖는 ‘망설임’을 환상으로 정의했다. Tzvetan Todorov, 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 Paris, Éditions du Seuil, 1970, p.29.  3)“Introduction” de La Vénus d'Ille, Paris, GF-Flammarion, 1982, p.6.  4)메리메는 1869년 7월 Saint-Cloud에서 황후를 포함한 여러 청중 앞에서 『로키스』를 낭독했다. 이 일을 회상하며 오귀스탱 필롱은 자신이 느낀 불쾌감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Un peu après avoir fini, il se leva et me dit à demi voix, d'un ton brusque : “Avez-vous compris vous?” Je dus avoir l'air assez niais. J'aurais peut-être fini par trouver une réponse encore plus niaise, mais il ne m'en donna pas le temps. “Vous n'avez pas compris, c'est parfait!” “Jugements” in ibid, p.276.  5)Roger Caillois, Au coeur du fantastique, Paris, Gallimard, 1965, p.161.  6)앙토니아 포니를 중심으로 1997년부터 학회가 개최되어, 작가이자 고고학자, 역사학자, 정치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친 메리메에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며 ‘메리메회 La Société Mérimée’의 활동 역시 두드러진다.

    2. 문명과 야수성

    메리메가 인간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 『로키스』를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물은 메리메의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은 자주 동물에 비유된다. 크리스티앙 쉘르부르 Christian Chelebourg에 따르면 메리메의 작품 속에서 여성의 포식자적 본성은 남성의 ‘먹이’ 이미지와 쌍을 이루며 반복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여성의 관능성이 상상되는 방식 또한 사냥 용어를 통해서이며 여성이 남성을 보호하려 할 때조차 남성은 그녀의 ‘먹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7). 카르멘은 제 먹이를 와작와작 씹어 먹을 준비가 된, 매력적이고 음산한 ‘악어’에, 콜롱바는 ‘사자’, ‘암호랑이’에 비유된다. 여성의 이미지는 탄력 있고 민첩한 동물의 위험한 에너지와 연관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 이미지는 환상 이야기 안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 동물 이미지가 일반 소설 내에서는 인물의 성격을 특징짓는 비유로 한정되어 사용되었다면, 환상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양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메리메의 마지막 소설 『쥬만 Djoûmane』에서는 이 경계 흐리기가 여성-뱀의 형태로 나타난다. 뱀에 물리고 거대한 뱀이 사는 우물에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어린 소녀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성으로의 변신이 일어난다. 여인의 ‘까마귀 날개처럼 검은’ 색깔의, ‘어깨와 긴 의자 위, 그리고 발치의 카펫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은 뱀의 긴 몸을 연상시킨다. 또한 조그마한 발끝에 걸친 금색 가죽신을 변화무쌍한 몸짓으로 우아하게 흔드는 모습은 꼬리를 흔드는 뱀과 닮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여성과 유혹하는 뱀의 쌍이 만들어내는 악의 이미지가 분명한 만큼 그 위험성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메리메의 상상력에 관여하는 여성 이미지는 이처럼 동물성과 위험성이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 달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남성-동물의 혼종이 『로키스』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앞서의 여성-뱀이 문화 저변의 고착화된 이미지와 부합하는 것이라면 이 남자-곰은 생소하고 공포스러운 감정을 유발한다. 그 혼종적 존재의 위험성은 『쥬만』에서와는 달리 직접적인 폭력의 양상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남성성과 맹수가 지닌 가공할 힘과 포악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가능하다. 결혼 첫날밤의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주인공 셰미오트 Szémioth 백작의 야수 성향은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즉, 숲속에서 만난 암컷 곰이 백작을 핥아 준 일화나 일반적으로 인간과 친화적인 말이나 개와 같은 동물들이 백작에 대해 보이는 두려움, 우연히 만난 늙은 마녀의 예언, 말의 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한 백작의 특별한 관심 등에서 그러한 성향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징후들로만 제시된 그의 야수적인 성향은 결정적인 사건에서 구체적인 그림으로 완성된다. 죽은 신부의 ‘끔찍이 찢어진 얼굴, 피가 넘쳐흐르는 찢어진 목8)’으로 구성되는 이 충격적인 그림은 그 상처가 칼에 의한 것이 아닌 물어뜯어서 생긴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의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남성 주체의 욕망의 대상, 지배하고 싶은 존재로 그려지는 여성-동물과는 달리 스스로 욕망하고 제압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남자-곰’인 셰미오트 백작은 환상문학에서 주체와 타자가 맺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유령, 그림자, 흡혈귀, 늑대인간, 분신, 부분적인 자아, 반영물(거울), 괴물, 짐승, 식인종 등 환상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들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 로지 잭슨이 주장하듯이 ‘나 아닌 존재’에 대한 공포는 차이를 악으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는데9) 이 소설은 그러한 관계를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타자성이 숨겨졌기에 상정된 동질성 덕분에 셰미오트 백작은 이빈스카 Iwinka를 욕망하는 남성 주체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가 ‘나 아닌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포가 유발되고 차이는 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숲속 깊은 곳에 동물들의 나라 ‘마테츠닉 matecznik10)’이 설정된 것은 흥미롭다. 원시의 자연 속에 위치한 이 세계는 동물의 후예인 셰미오트 백작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제시되면서 이 인물의 동물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자궁으로 해석되는 마테츠닉은 생명의 근원이자 이상적 동물 사회이다. 일반적으로 환상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개별적인 데 반해 마테츠닉은 집단적이며 문명사회와 나란히 존재하면서 문명사회를 침입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많은 환상이야기의 독자가 느끼는 공포는 결국 초자연적 현상 뒤에 더 큰 타자적 세계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세계가 구체적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의 비너스 La Vénus d'Ille (1837)』에서 동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그로 인해 문명사회에 해악을 끼칠 힘을 가진 세계가 지하에 존재하며 어느 때고 현실 세계를 뚫고 들어올 수 있음을 보았다11).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발아래 도사리는 이 세계처럼 마테츠닉은 원시림 한가운데에, 그러나 리투아니아 안에 자리한다. 공화국 또는 입헌 정부 체제하에 맹수들도 사이가 좋은 이 세계의 질서는 ‘못된 짐승’을 추방하고 그 짐승이 인간들의 세계를 모험한다는 것이다. 이 타자의 세계가 생각보다 더 가까이 문명세계와 같은 무게를 지닌 채 그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것은 위협적이다. 인간 세계로 흘러들어온 ‘못된 짐승’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후예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메리메가 즐겨 그렸던 폭력적인 장면은 환상소설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폭력성은 메리메의 작품 활동 초기부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크리스티앙 쉘르부르는 『클라라 가쥘의 극 Theatre de Clara Gazul』을 낭만주의 전투에 용감히 뛰어든 투쟁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면서 난폭함을 메리메식 낭만주의의 요소로 꼽는다12). 고전주의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길 중 하나였던 난폭함은 그의 창작원칙으로 남았고 폭력적인 장면은 전 작품에 걸쳐 점철되어 있다. 그리하여 난폭하고 잔인한 행동을 거침없이 행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메리메의 소설 세계는 작가의 성적이고 공격적인 충동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앙토니아 포니가 그의 소설 등장인물들을 야만인과 문명인의 두 범주로 나눈13) 것은 옳다. 프로이드 이론에 따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충동을 억제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현실원칙을 따르는 편과,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완전한 만족을 추구하는 편으로 인물들을 나눈 것이다. 현실원칙에 따라 복잡하게 발달하는 문명사회와 달리 메리메의 야만인들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멈추며 이 공동체를 해하는 이방인들을 모두 학살하는 쪽을 선택한다. 공격성은 쾌락원칙과 연결되는데, 그것이 같은 대상을 탐내어 나의 쾌락을 방해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공격적 행위가 나의 파괴적인 충동을 발산하도록 하여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앙토니아 포니는 메리메의 야만인, ‘영광스러운 살인자’가 ‘악을 저지르는 쾌락을 위해 악을 저지른다’는 문장을 인용14)하며 이 작가가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이 ‘파괴 본능’을 인식하고 그에 경도되었음에 주목하였다. 이런 이유로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야만인들은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고 하겠는데 메리메가 그리는 야만인들의 난폭하고 극단적인 행동은 환상소설에서 환상이 개입되는 지점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상문학과의 경계에 자리하는 것이다.

    『로키스』의 ‘남자-곰’은 이처럼 쾌락의 원칙을 따르는 인물들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다. 에로틱한 환상이 덧입혀진 이 난폭한 짐승은 인간들 사이에, 문명사회 깊숙이 들어와 그 질서를 조롱하고 금기의 봉인을 열어젖혀 새디스트적인 판타지를 완성한다. 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 즉 물어뜯는 행위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환상소설 작가들에게는 언제나 환상을 개입시키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독자에게서 불안, 초조, 공포와 같은 감정을 얻어내지 못하면 그 환상 이야기는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서술자에 의해, 어떤 징후들을 거쳐,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초자연적 현상을 끼어들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실천적 기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환상소설의 이해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과정일 것이다.

    7)크리스티앙 쉘르부르는 『샤를 9세의 통치 연대기』를 인용하면서 성바르톨레미 사건이 있던 밤 Mergy를 자신의 집에 붙잡아 두기 위해 Diane de Turgis가 보이는 관능적인 몸짓이 동물 은유를 통해 드러남을 지적한다. 이를 위해 인용된 대화는 다음과 같다 : Reste ici, mon seul amour ; reste avec moi, mon brave Bernard, disait-elle en le serrant et l'enveloppant de son corps comme un serpent qui se roule autour de sa proie.[...] Prosper Mérimée, le sang et la chair : une poétique du sujet, Paris-Caen, Lettres modernes minard, 2003, p.85.  8)Lokis in La Vénus d'Ille, p.220.  9)로지 잭슨, op. cit., p.74.  10)폴란드어로 자궁이라는 뜻. 미키에비치의 시에 등장한 단어로 ‘동물들의 천국’이라 정의되고 있다. Lokis 미주 36번 p.225 참고.  11)김영주,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일의 비너스La Vénus d'Ille』에서의 소설적 대화와 환상」,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51집, 한국프랑스학회, 2005, pp. 153-170 참고.  12)크리스티앙 쉘르부르는 문학이든 학식에 관해서든, 메리메의 영감은 유혈이 낭자한 원천에서 길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 La violence est, à part entière, une composante du romantisme mériméen. op. cit., p.12.  13)Antonia Fonyi, “Sauvagerie/Civilisation, Principe de Plaisir/Principe de réalité, Un conflit au coeur de l'oeuvre de Mérimée”, in Littératures, n° 51, 2004, p.61.  14)앙토니아 포니는 신랄한 Alfred-Auguste Cuvillier-Fleury의 비판을 다르게 해석·인용하면서 메리메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공격성을 설명하고 있다.

    3. 서술자의 자격

    환상적 이야기의 서술자에게는 몇몇 조건이 요구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이 서술자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로 공포, 당혹감, 충격 등의 감정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이는 전적으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 필요불가결한 이유이다. 서술자는 이야기를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익숙한 현실 세계로 인식하게 한 후 이를 전복하여 초자연적인 것의 침입으로 듣는 이가 혼란을 겪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독자 편에서의 신뢰가 우선시되는데 환상 이야기의 서술자가 의사, 학자 등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직업군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로키스』의 서술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술적 목적의 긴 여정 중인 언어학자이자 교수로 등장한다. 이 서술자는 메리메의 다른 서술자보다 더 상세히 그 여정의 개연성을 언급하여 ‘현실 효과’에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가 믿을 만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게다가 그는 이보다 더 높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자질, 성직자라는 신분도 갖추었다. 꼼꼼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경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하는 개신교 목사라는 지위에 의해 신실함은 배가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환상적 이야기가 요구하는 예의 그 감정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등장인물 중 하나와 동일시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은 서술자의 몫으로 돌아오기가 쉽다. 토도로프가 ‘모든 독자는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증인’과 더 잘 동일시함15)을 주목했듯이 자신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면서 사건을 목격하는 역할의 재현된 서술자가 이러한 동일시 과정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증인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모른 채 독자와 같은 속도로 사건들을 겪고 알아 나간다는 점에서 독자 편에서의 동일시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서술자로서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으나 등장인물의 지위로는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는 데에 독자와 같은 시간이 걸리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진 것이 바로 재현된 서술자16)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재현된 서술자는 독자의 신뢰와 동일시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 독자는 이 과정을 통해 서술자의 이성적 판단을 옳은 것으로 믿으며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서술자의 반응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서술자를 지시하는 대명사 ‘나’는 결국 각각의 독자, 즉 누구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로키스』의 서술자는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일의 비너스』(1837)의 화자17)처럼 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고 있다. 서술 시점 이전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인물은 보조 서술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주인공 셰미오트 백작의 어머니를 돌보는 의사인 프뢰베르Froeber의 경우이다. 그는 『일의 비너스』의 카탈로니아 안내자가 그러하듯이 이야기 초반의 대화를 주도하며 삽입된 여러 에피소드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맡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대화의 특징은 자발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오랜만에 대화 상대자를 만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는 생생한 장면을 그려내기 위해 현재 시제를 사용하며 감탄하고 질문하면서 대화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다만 카탈로니아 안내자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이 인물은 의사답게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성적 설명 능력을 내보인다. 그리하여 이 보조 화자에 의해 백작의 잉태과정에 생긴 중요한 사건과 그 영향이라는 전체 이야기의 토대가 마련된다. 또한 백작이 숲속에서 만난 야생 암컷 곰이 백작을 핥아 준 일화와 같이 백작의 숨겨진 야수성에 대한 암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때 재현된 주 서술자는 보조 서술자 역할을 맡은 이 기능적 인물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들릴 수 있도록 최대한 말수를 줄이고 대화는 속행된다.

    우리는 『일의 비너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소설의 세 표현체계 중 대화가 초자연적 현상을 숨김과 동시에 드러내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며 마침내 환상이 사실적 세계로 넘어 들어오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보았다. 미셸 뮈라 Michel Murat가 강조한 대화의 서술기능18)을 십분 발휘한 이 작품처럼 『로키스』에서 역시 이야기의 초반부에서는 대화체가 소설적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관찰자로서, 이야기의 진위를 보장하는 증인으로서 이 소설의 서술자가 사건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중심인물과의 첫 대화에서 백작의 말은 직접화법으로 들려주고 자신의 말은 간접화법, 자유간접화법 등으로 옮기는 ‘목소리의 둔탁화’, 피아노의 소프트페달을 밟는 듯한 강약의 차이로 백작의 언사를 강조하는 방법이 쓰인다. 이때 인물에 대한 확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화가 속행되는 것은 이 인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 위함이다.

    이런 방식은 초자연적인 현상의 개입 때까지 백작의 야수성이 천천히 밝혀지도록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서술자가 말의 피를 마신 일화를 들려준 후의 인물들의 반응은 강약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진술된다.

    서술자는 ‘소프트 페달’을 이용하여 백작의 목소리를 약음화하는 대신 장난기 많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빈스카의 말을 강하게 들려준다. 백작이 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해 갖는 진지한 관심을 드러내는 대사는 지문 역할을 하는 서술 속에 섞여 들게 하여 약화시키고, 익살스럽게 과한 반응을 보이는 이빈스카의 말을 크게 울리게 하는 것은 백작의 야수성을 드러내 보이면서도 감추는 효과가 있다. 두 인물의 언담은 모두 백작의 비밀을 들추어내고 있지만 그 진실 여부는 유보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서술자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는 시점까지 정묘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술자는 등장인물로서의 지위를 점차 강조해 나감으로써 『일의 비너스』의 서술자와 차별화하고 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의 후방에 목격자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인물과 함께 사건을 겪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는 일관되게 자리를 지키면서 의혹을 증폭시켜 나가도록 하는, 실제로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그런 서술자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서술자로서의 자질로 언급했던 신뢰성이 약화될 조건이 주어지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키에비치 Mickiewicz의 시19)를 리투아니아의 민중시로 잘못 알고 백작에게 소개한 실수가 그것인데, 그는 ‘만약 그 시를 원작으로 출판했다면 도르파 Dorpat 대학의 교수가 얼마나 즐거워할 것인지’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다. 『일의 비너스』의 서술자가 비너스의 동상에 새겨진 글귀를 엉터리로 해석하는 페이르오라드 Peyrehorade씨에게 가만히 웃음 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황한 그는 학자로서뿐만이 아니라 서술자로서의 신뢰도에 손상을 입는 것으로 보인다. 서술자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관찰적인 서술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 미키에비치의 시구절 ‘암고양이처럼 장난치기 좋아하고, 크림처럼 하얀 Folâtres comme des chattes, blanches comme la crème20)’은 이야기 중에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재해석되며 이빈스카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는데, 이 구절에 서술자 비템바흐의 욕망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미키에비치의 시를 번역한 직후 백작과 나누는 대화에서 비템바흐는 페르시아의 다른 시를 인용하면서 ‘붉은 포도주를 마실 때 포도주가 그 목구멍을 따라 지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섬세하고 흰 피부를 언급하며 이에 대해 백작의 동의를 얻어낸다. 이빈스카가 눈처럼 희고 차갑다는 백작의 생각을 바꾸어 위의 시구절이 그녀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을 설득한 것이 바로 비템바흐인 것이다. 이후 백작과 비템바흐 모두 이빈스카의 흰 피부에 점점 집착하는 듯 보이는데 시구의 반복 인용에서, 그리고 백작의 잠꼬대에서, 사랑에 실망한 백작의 말 속에 어김없이 흰 피부가 중심이 되고 있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빈스카양의 저택에서 방문객들과 함께 체험하게 되는 놀이 또한 여러모로 비템바흐 교수의 권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남성 방문객 모두가 차례로 거북해 하며 눈을 가린 채 방 한가운데에서 벽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꿀이 들어 있는 단지에 손가락을 넣어 보는 단순한 놀이이다. 성적인 함의가 매우 강해 보이는 이 놀이는 목사이자 교수인 그의 지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놀이인 것이다. 여기에서 비템바흐는 백작대신 사건의 중심에 있다. 눈을 가린 뒤 무언가 차갑고 끈적한 물질이 들어 있는 것에 손가락을 넣을 때 느끼는 불쾌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음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못마땅한 기분의 주인공은 바로 이 언어학자인 것이다.

    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무대 전방으로 자리를 옮겨 중심인물과 같은 체험을 하고, 그것으로 그 인물의 감각을 대체하여 표현하고 있다. 인물을 관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체험과 감정을 공유하며 이야기 속으로 점점 더 많이 얽혀 들어가는 것이다. 비템바흐와 셰미오트 백작 모두의 뇌리에 박힌 ‘크림같이 흰’ 피부라는, 먹고 싶은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는 점점 강화되어 그 피부 아래를 지나는 포도주, 말의 피를 마신 일화를 거쳐 마침내 물어뜯겨 피가 흥건한 채로 찢어지는 절정 상태로 나아간다. 서술자와 중심인물은 이 점에 있어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중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백작한 쪽만의 욕망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5)Tzvetan Todorov, op. cit., p.89.  16)우리는 『일의 비너스』와 관련하여 재현된 서술자의 지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김영주, op. cit., pp.155-160.  17)우리는 『일의 비너스』의 화자가 가치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경도되지 않도록 중립을 표방하려 애쓰고 있음을 주목한 바 있다.  18)미셸 뮈라는 ‘모든 대화는 원칙적으로 나누는 대화이면서 동시에 서술의 조각이라는 이중논리를 따른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비록 대화체의 기능이 직전에 서술된 내용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대화는 잉여의 것이 아니며 대화의 전과 후의 이야기는 같은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Le Dialogue romanesque dans Le Rivage des Syrtes”, in DRLAV 29, 1983, p.179.  19)발라드 “Les Trois fils de Boudry”를 프슈킨이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메리메는 이것을 푸슈킨의 것으로 믿고서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이 대목은 그런 자신에 대한 비꼬기이며, 동시에 자신이 익명으로 발표한 초기작 『구즐라 La Guzla』를 Illyrie 왕국의 시로 믿으며 번역가들이 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한 사실에 대한 비꼼이기도 하다.  20)Lokis, p.194.

    4. 남자-곰의 분신

    남자-곰의 이야기에서 다루어지는 이중성은 이 인물의 분열된 내부에 자리한 이중성일 것이다. 사람이면서 동시에 맹수인 인물이 느끼는 갈등과 잠재우기 힘든 야수성이 그것이다. 실제로 셰미오트 백작과 비템바흐 교수의 첫 번째 조우는 그러한 이중성이 작용한 결과이다. 서로 통성명도 하기 전에 짐승처럼 나무 위에 올라앉은 백작의 얼굴을 먼저 목격한 것은 백작의 야수성 때문인 것이다. 서술자는 극히 예의바르고 친절한 백작의 ‘세련된(문명화된)’ 태도와 ‘별난 성격’을 대비시키며 한 측면이 우세해져서 다른 측면을 침범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구축해 나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형이상학을 논하고 생리학을 공부하지만 밤에는 정원을 배회하고 나무를 기어오르며 경박한 여인의 흰 피부에 집착하는 극히 상반되는 백작의 성향은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서술자는 그러한 대립을 그리면서도 백작이 욕망하는 이빈스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은 학술여행을 위해 약혼을 연기하고 리투아니아를 찾은 비템바흐 교수가 더 이상 약혼녀를 생각하지 않게 된 데에서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몇 차례 있었던 그의 약혼녀 제르트뤼드 베버 양에 대한 언급은 이빈스카의 피부에 대한 대화 이후 완전히 사라진다. 마치 백작과 그녀의 흰 피부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로 그의 약혼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듯하다. 이처럼 자신의 욕망에 주의를 기울이는 서술자는 독자 편에서의 신뢰를 희생시키고 있다. 학자로서 냉철한 관찰을 통해 독자에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사실만을 들려준다는 믿음을 저버릴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반면, 이것은 서술자와 동일시하여 이야기를 따라가던 독자에게 그와 같은 욕망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일이기도 하다. 독자는 서술자의 욕망, 나아가 백작의 욕망을 동일시 과정을 통해 이해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셰미오트 백작 내부의 이중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중성에 주목할 필요가 생긴다. 비템바흐 교수는 동일시 과정을 통해 백작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쌍을 이룬다. 즉, 우리는 그를 백작의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뱀을 데리고 다니는 마녀 같은 노파로부터 마테츠닉의 왕으로 선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녀는 곧이어 그 주인공이 비템바흐가 아니라 셰미오트 백작이라고 고쳐 말하는데 동물들의 왕으로 선출될 자질을 공통적으로 갖추었다는 이 예언에서 두 인물의 연결이 드러난다. 그들은 같은 체험을 하고 신선한 말의 피를 마시는 풍습을 두둔하며 피에 대한 욕구를 공유한다. 또한 같은 대상에 페티시즘적인 욕망을 투사하여 그 대상에 대해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품는다. 따라서 비템바흐 교수는 백작의 이성적 분신인 것으로 보이는데, 두 인물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납고 끔찍한 생각,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자 하는 충동이나 가장 절친한 친구를 총으로 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양쪽은 각각 이성과 본능적 충동에 입각하여 주장을 펼친다. 결국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분열 현상이 이 두 인물에 의해 구현된 것인데, 이 대화는 양쪽의 타협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며 끝을 맺음으로써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비템바흐의 이성적 주장에 설득되지 못한 백작이 반대편의 충동에 이끌려 결혼 첫날밤 자신의 아내를 물어뜯고 그 신선한 피를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충동에 의한 내적 갈등이 백작과 그의 분신으로 육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앞서 다루었던 문명사회와 야만성이라는 대립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 문제에 좀 더 접근하여 살펴보면 단순한 대립항으로 양편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우선, 서술자가 만나는 인물들은 일반적인 기대를 벗어난다. 프뢰베르는 의사라는 그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으로 적잖이 충격을 준다. 정신이상자인 백작부인을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백작이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배출구인 여자가 필요하다는 물질주의적 논리는 목사이자 교수인 비템바흐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저택에서 시중을 드는 집사가 오히려 더 예의바르고 격식을 갖추었다. 이빈스카의 숙모 역시 리투아니아의 고대유적이나 언어학에 대한 지식을 갖춘 교양 있는 인물이지만 백작과 이빈스카의 결혼식에 참석하여서는 혼인 서류를 작성하기 전에 조카의 뺨을 세게때리는 ‘가증스러운’ 풍습을 따르기도 한다. 자비에 부르드네 Xavier Bourdenet가 지적하듯이 메리메의 작품에서 문명의 뜻이 ‘폭력의 배제나 소멸21)’로 매김될 수 있다면 폭력성에 젖은 이러한 인물들의 행위 역시 문명세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로빈 맥켄지 Robin Mackenzie는 이 소설의 공간을 분류하면서 성과 숲을 대비시켜 성은 문화와 상호작용과 관련시키고 숲은 혼돈 상태의 위협적인 공간으로 정의하는데, 백작의 성 메딘틸타스 Médintiltas는 그 구분이 모호하다고 평하고 있다22). 리투아니아어로 ‘나무 다리’라는 뜻의 이성의 이름 또한 나무로 만든 다리를 뜻하기도 하고 숲으로 가는 다리를 뜻하기도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 성은 숲, 즉 야만의 세계와 가깝다. 곰에게 겁탈당해 미쳐버렸을지 모를 어머니와 그 곰의 피를 물려받았을 아들이 사는 이 공간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명사회를 표방하는 도프기엘리 Dowghielly 성의 도프기엘로 부인과 이빈스카가 메딘틸타스에서는 자신들의 문화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의 뺨을 때리는 결혼식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그토록 백작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했던 이빈스카의 재기발랄함은 ‘야만적’ 결혼 풍습에 순응하는 아이 같은 태도로 변한다. 결혼식이 시작된 후 그녀에게는 단 한 차례 말이 주어지는데 그 격의 없는 말투와 농담23)은 신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무례함은 과도하다. 사라져 가는 오랜 관습을 되살리자는 뜻에서 새신부의 구두에 술을 부어 하객들이 마시도록 제안하는 흰 수염의 나이 든 귀족, 구두에 담긴 술을 쏟아가며 옷을 적신 채 그 술을 마시는 손님들, 저택 밖의 정원과 안마당에 자리 잡고 술에 취해 뒹구는 그 모습이 전쟁터를 떠올리게 하는 하인들과 농부들, 외설적인 춤을 추는 보헤미안들. 이 모든 모습은 혼돈과 이성의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메딘틸타스 저택은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던 것이 발현하는 공간이다. 그 보이지 않던 것들이란 본능적인 것, 동물에 가까운 것, 무의식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경계를 흐리고 이성적이고 문명화된 반대편을 침범하여 장악한다.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것은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비템바흐가 몸 둘곳을 찾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 머무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과 관련하여 일상생활의 법과 질서를 제의 속에서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라 설명하며 차이를 무화시키는 카니발 방식을 언급했다. 메니피아의 전통과 구별되지 않는 이 방식은 『로키스』의 결혼피로연 장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금기는 깨어지고 경계는 흐려져 저택 내의 귀족들이나 밖의 하인, 농부들 사이에 취함의 정도나 놀이의 비속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소란스러운 현상은 결혼식에서의 박수 소리, 예포 소리, 환성 소리, 배고픈 하객들의 식기 부딪치는 소리로 전조를 보인다. 문명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인 언어는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 언어가 아닌 소리로 시끌벅적한 장이 마련되고 예의 그 늙은 귀족의 선언을 계기로 모든 금기가 풀리는 것처럼 서술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범절을 잊는다. 억압되었던 것들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현실세계를 전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카니발의 장에서 남자-곰의 야수성이 발현되고 살인이 저질러진다. 그것은 마치 경계가 흐려진 틈을타 굴레를 벗은 짐승이 경계를 넘어 침입한 것과 같다.

    결정적인 사건에 직면한 후 이야기를 끝맺는 방식은 메리메의 소설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빠르고 갑작스럽다. 액자식 구성의 이 소설에서 돌연한 끝맺음은 외부의 이야기에 의해 부연되는데 이야기 첫머리에 수수께끼 처럼 던져진 속담(둘은 한 마디 한 마디 짝을 이루네. 로키스랑 미숑(미셸)은 둘 다 똑같다네24))에 대한 답이 제시된다. 비템바흐가 언어학자로서 속담의 의미를 산스크리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어원을 찾아 풀이하지만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뜻풀이로 남자-곰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입증하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복잡한 경로로 어원을 찾아갈수록 그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그 의미는 흐려진다. 이 작품의 다른 연구 논문25)이 밝히고 있듯이 산스크리트 어원에 대한 비템바흐의 증명은 오류가 있다. 여기에서는 비템바흐가 진지하게 그 어원을 밝히려 했다는 사실로서 백작과 곰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는 서술자의 입장이 확인될 뿐이다.

    환상문학에서 요구되는 공포는 이와 같은 의심에서 가능함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이 소설에서 독자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초자연적 현상의 개입은 남자-곰에게 죽임을 당한 신부를 발견하는 대목이겠으나 공포는 여기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공포는 독자가 각자의 무의식에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 충동이 존재함을 느끼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것은 서술자가 악으로 간주되는 타자와 조우하고 일치하는 경험을 하는데에서 그 폭을 넓히고 있다. 문명사회를 대표하는 서술자가 남자-곰의 분신이 되어 ‘크림처럼 흰 피부’의 여인을 욕망하듯이, 서술자와 동화되던 독자가 자기 안의 짐승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승이 경계를 넘어 통제 불능의 혼돈상태를 가져오게 될 가능성, 그 두려움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짐승이 ‘현실 원칙’에 의해 다스려져 억제되어 있으나 방심한 사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는 ‘쾌락 원칙’을 따르는 충동임을,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성과 인간 폭력의 기원임을, 그것이 원시의 과거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결국 이 짐승을 만나는 것은 원시의 인간을 만나는 것이고 셰미오트 백작에게서 원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같은 성격의 욕망과 무의식을 억누르고 있는 서술자를, 독자를, 그리고 우리 자신, 인류 전체를 재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셰미오트가 욕망한 이빈스카 역시 한 여인에서 어떤 욕망의 대상으로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26). 메리메는 자신이 대단히 민감하게 감지하던 파괴적인 충동을 한 인물에 투영시키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고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하여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 서술자, 독자 등 모든 층위에서 총체적으로 일어나는 공포는 그러한 우리의 기원에 대한 자각을 생생한 방법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1)Xavier Bourdenet, “Animalité et bestialité chez Mérimée”, Colloque international L'Animal du XIXe siècle, Université Paris Diderot-Paris7, 2008. 10. 17, p.10. http://www.equipe19.univ-paris-diderot.fr/Colloque%20animal/Bourdenet.pdf  22)Robin Mackenzie, “Space and self and the role of the Matecznik in Mérimée's Lokis”, in Forum for modern language studies, Vol. 46, n° 2, 2000, p.201.  23)술을 담아 마실 수 있도록 구두를 벗어 달라는 늙은 귀족에게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 “Viens le prendre, monsieur... mais je ne te ferai pas raison dans ta botte.” Lokis, p.219.  24)‘Miszka su Lokiu / Abu du tokiu’ Lokis, p.181.  25)Kisten A. Fudeman, “Linguistic Science and Mystification in Prosper Mérimée's Lokis”, in Nineteenth-Century French Studies, 2012, vol. 40, n° 1-2, p.113.  26)이 인물의 이름으로 Iwinska, Ioulka, Julienne 등 여러 이름이 사용되는데 이는 그녀의 변덕스럽고 장난스러운 성격을 반영함과 동시에 단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할 수 없는, 따라서 모든 이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대표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5. 결론

    메리메의 텍스트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적·공간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나 상태에 대한 문장들을 매우 가깝게 집약시켜 놓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문장들마저도 간결함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은 고전주의에 연결되는 지점이며 반고전주의적 성향의 문학가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따로 떨어져 병렬되어 있는 각각의 문장들 사이에 분명한 논리가 존재하며 그 논리를 읽어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27). 그가 『로키스』를 발표하면서 청중이 이해하지 못한 것에 만족한 듯 보인 것은 작가가 독자를 대단히 의식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설정하여 글을 쓰곤 했던 이 작가는 문학작품이 요구하는 독자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이 점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그가 숨기고자 했던 것, 또는 독자 편의 이해를 유보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본 연구를 시작했다. 마치 작가가 모자이크의 조각을 텍스트 내부의 흩어진 곳에 숨겨 두고 독자가 이 조각들을 찾아내어 맞춰보기를 바라는 것 같은 수수께끼가 던져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무 쉽고 빠른 이해가 아니라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처럼 독자의 노력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조각들을 맞추어 나갈수록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곰의 현상이 주는 단순한 두려움에서부터 감정이 증폭됨을 볼 수 있었다. 독자는 자신의 내부에 엄연히 자리하고 있는 짐승, 문명사회 속을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서 억압해 두었던 짐승을 만나는 공포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술자가 남자-곰의 분신이 되는 경험을 통해, 또 독자가 그 서술자를 신뢰하고 그와 동일시 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포는 심해지고, 그만큼 전복의 규모도 확대된다.

    이 소설은 문명사회 안에 안주하며 그 사회의 법칙을 따르고 세련된 예의범절에만 익숙한 현세의 인류에게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메리메가 고고학자로서, 문헌학자로서 평생 해왔던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학문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인류의 과거, 원시의 시대까지 파고들어 발견한 것이 바로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은폐해 버리게 된 원시의 인간이며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다. 작가는 야수와 다르지 않았던 이 먼 과거의 인간을 남자-곰이라는 혼종적인 존재를 통해 충격적인 방법으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그 존재가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혼란스러움, 당혹감, 불안, 공포의 감정이 독자를 사로잡게 된다. 이로써 환상 이야기가 목표하는 효과는 다른 환상소설에서보다 훨씬 더 깊고 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만년의 작가가 20년의 침묵 후에 내어놓은 이 작품은 자신의 학문적 탐구활동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근거로 하는 하나의 우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과거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야수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야수를 독자 앞에 세우고 스스로 자기 안의 야수를 발견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시간을 두고 독자가 조각을 맞추어야 하는 일이고 만약 독자가 그 조각들을 찾지 못한다면 눈앞의 짐승만을 발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메리메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보여 주듯이.

    27)Éric Bordas, “Sur un aspect du « style sec » de Mérimée”, in Littératures, n° 51, 2004,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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