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고보의 연기메소드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개념인 ‘중립(neutral)’은 신극과 앙그라를 통틀어 매우 실험적이고 ‘ 평화혁명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이 개념은 1973년 아베 고보 스튜디오의 결성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개념이 아니라, 1950년대 중반부터 예비되어 왔다. 문학적 배우의 거짓을 폭로하고, 의도적으로 연극에서 희곡을 과소평가하며, 흉내를 잘 내는 기술, 이른바 ‘육체치환술’을 통해 ‘종합과정’으로서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디드로의 역설, 그리고 코포의 ‘중립(neutrality)’개념과 ‘불투명한 연기’를 제안하며 자신만의 연기관을 다져간다.
1950년대의 아베 고보는, 일반적으로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던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브레히트의 공통점에 주목하여, 내면적·심리적 접근보다는 캐릭터에의 외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디드로의 ‘무감성’이론과 자크 코포의 ‘중립’을 접목시켜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인 ‘중립적 육체’ 개념을 제시했다. 1950년대에, 작가로서 텍스트보다 배우의 육체나 연기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연극성을 모색했던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본 연극사상 아베 고보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The key concept “neutral” of Abe Kobo System, which was the Acting method of Kobo Abe, was the highly experimental and peacefully revolutionary result in the whole area such as Shingeki and Angura. However, this concept did not suddenly emerge with forming of Abe Kobo Studio in 1973, but has been reserved since the mid‐1950s.
This system disclosed the actor’s false, intentionally underestimated a dramatic piece in the play. And it emphasized the paradoxical effect of the Denis Diderot who understood a literary work as synthetic course through the technique of body substitution which was great at imitating, and proposed the concept for Jacques Copeau’s ‘neutrality’ and an opaque acting.
In 1950s, Abe Kobo noting something in common between Stanislavsky and Brecht that were generally considered in antipodes, he emphasized the necessity of the external approach rather than internal and mental approach and proposed the key concept “the neutral body” by connecting the Denis Diderot’s theory of nulle sensibilite and Jacques Copeau’s ‘neutrality’. In the way that we can hardly the examples of searching for theatricality through the actor’s body and style not text, Abe Kobo, as a writer, gives so special meaning to us in the Japanese play history.
소설 <모래의 여자>와 <타인의 얼굴>로 한국에서도 이미 ‘인기작가’ 반열에 올라선 아베 고보. 사실 그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까지 희곡작가이자 연출가, 연기지도자로서 일본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은 연극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99년 국립극단에 의해 <친구들(友達)>이라는 작품이 공연되었지만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1950년대 아베 고보의 등장은 일본연극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1) 당시 일본연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신극과 재현주의 연극에 반기를 들고, 어떤 흐름이나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고 ‘아베 고보적인’ 연극만을 고집했기에, 그의 연극에는 ‘아방가르드’와 ‘대중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수식어가 동시에 따라다니곤 했다. 본 논문에서는 아베 고보의 방대한 작업들 가운데 1950년대의 연극활동을 중심으로 아베 고보의 연기메소드인 ‘아베 고보 시스템’ 형성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고 그것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베 고보가 자신의 극단인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결성한 것은 1973년 1월 11일이다. 1953년 7월, 처녀희곡 <소녀와 물고기>를 발표한 후 20년만의 일이다.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결성한 아베 고보는 ‘아베 고보 시스템’이라는 독자적인 배우훈련 메소드를 개발하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 연극적 실험을 이어간다. 그때까지 아베 고보의 희곡은 대부분 극단 하이유자(俳優座)의 센다 고레야(千田是也) 연출로 무대화되었다. 그러나 작가로서 단순히 대본을 전달하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종종 연습에 참가하며 연출가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극단을 결성하기에 이른다.2) 센다 고레야에 대한 불만은 195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언급되고 있지만, 본격적인 대립이나 논쟁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는다. 아베 고보 자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문학연구자 도날드 킨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아베 고보 시스템’이 1973년 아베 고보 스튜디오 결성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베 고보의 연극활동의 필연적 결과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아베 고보 메소드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가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아베 고보 시스템을 파악하고자 한다. 우선, 아베 고보와 어떤 공통점도 없다고 여겨져 왔던 스타니슬라프스키에 대해, 정작 아베 고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과 아베 고보의 연기론은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지 고찰할 것이다. 나아가 디드로와 자크 코포가 아베 고보 시스템 형성에 끼친 영향과, 일본의 신극적 심리주의 연기에 반기를 들고 ‘중립’의 연기를 주장했던 아베 고보의 실험이 1973년 아베 고보 스튜디오의 결성과 함께 어떤 과정 속에서 결심을 맺게 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조차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던 아베 고보 연극론에 대한 서론이자 새로운 문제제기가 될 것이다.
1)日高昭二, 「幽霊と珍獣のスペクタクル-安部公房の1950年代」, 『文学』, 2004年11-12月, p.18. 2)コーチ・ジャンルーカ, 『安部公房スタジオと欧米の実験演劇』, 彩流社, 2005年, p.17. 3)ドナルド・キーン, ナンシー・K・シールズ著, 「序文」, 『安部公房の劇場』, 新潮社, 1997年, p.10.
‘중립(neutral)’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1950년대 아베 고보가 생각했던 육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아베 고보의 육체론은 주로 ‘변형을 통한 타자화’와 ‘얼굴’에 관한 담론에 집중되어 있다.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발표된 아베 고보의 희곡에서도 인간의 육체가 물리적·질적 변화를 경험하거나 왜곡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1953년 7월 『군상(群像)』에 발표된 <소녀와 물고기>4)라는 작품에서는 성장엑기스를 마신 아기의 신체가 소녀의 신체로 급속하게 성장하거나, 다시 아기의 신체로 수축하거나를 반복한다. 이듬해 같은 잡지에 발표된 <제복>5)에서는 인간에서 유령으로 육체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같은 해 7월, 『신일본문학』에 발표된 <노예사냥>6)에서는 인간이, 특히 딸이라는 인물이 ‘웨’라는 가공의 동물로의 신체적 변형을 ‘선택’하며, <영구운동>7)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인간도, 로봇도 아닌’ 인조초인으로 해체되어 ‘재구성’된다. 이처럼 육체의 변형과 재구성을 경험하면서 인물들의 육체는 타자화되고 대상화된다.
아베 고보에게 육체의 변형이나 재구성은 강렬하면서도 사실에 가까운 리얼리티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그러한 변형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눈앞에 아른거리며, 그것이 마음 깊숙한 곳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 그 강렬한 광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8)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는 고정관념보다는, 대담한 가설에 의해 떠오르는 의외의 현실이, 더욱 더 생생하게 현실의 모습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9)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의 육체보다는, 그것을 ‘부정’하는 육체적 변형이 더욱 생생하게 현실을 묘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생각은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과 라디오드라마 등 그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그려지고 있다.
타자화의 과정은 인물들이 사회의 지배적 질서로부터 배제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녀와 물고기>에서는 “몸에 딱 맞게 들러붙어” “아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 옷도 함께 쑥쑥” 자람으로써 소녀는 다른 인물들과 차별적 존재로 인식되어 간다. <노예사냥>에서 딸은 스스로 우리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행위를 통해 가공의 동물 ‘웨’라는 타자화된 육체로 변신한다. 그리고 <영구운동>에서는 발명가의 조수가 “로봇 아닌 로봇” 인조초인이 되어 관객들 앞에 ‘전시’된다. 육체의 타자화는 ‘보이지 않는 육체’에서 ‘보이는 육체’로의 전이를 뜻한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보이는 육체’, 즉 타자화된 육체는 감시와 차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아베 고보의 작품에서 육체의 변형을 경험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푸코의 이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아기(<소녀와 물고기>)이거나,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노예사냥>)이거나, 조수(<영구운동>) 등이 바로 그 대상이다.
타자화는 육체와 사회(자연)와의 유기적 관계가 단절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질서와 관계의 회복, 조화와 균형에 대한 욕망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소녀와 물고기>에서는 변형된 소녀의 육체, 즉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눈물이 세상을 휩쓸고 가버린다는 설정을 통해 상당히 공격적인 방식으로 조화와 균형을 꾀한다.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소녀의 눈물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홍수를 일으켜 더럽혀진 세상을 심판하고 정화한다. <노예사냥>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자신의 우리를 열고 밖으로 나오며 “자, 인간을 찾아 나섭시다… 불쌍한 인간들을요… 여러분, 모두 웨가 됩시다….”라고 말하며 탐험가와 함께 ‘인간사냥’을 떠난다. 가공의 동물‘웨’와 인간의 입장이 역전되어, 오히려 인간이 ‘웨’의 사냥감이 되어 버린다. <영구운동>에서는 인조초인이 새로운 지배자로서 자기를 발명해준 인간 위에 폭력적으로 군림한다. 육체와 사회(자연)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파괴됨으로써, 육체와 사회의 조화와 균형 또한 이처럼 파괴적 형식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아베 고보 육체론의 핵심이 되는 또 하나의 개념은 ‘가면론’이다. 1951년 발표된 소설 <벽> 3부작 가운데 하나인 에서 1964년 <타인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주로 소설을 통해 ‘얼굴’이나 ‘가면’을 테마로 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1950년대 발표한 에세이를 통해 가면론에 기반한 연기술의 이론적인 기반을 다져나간다. 우리가 ‘얼굴’, 즉 ‘가면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베 고보의 연기론, 다시 말해 ‘아베 고보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얼굴에 집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소다 고이치(磯田光一)는,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인 1944년, 아베 고보가 징병을 피하기 위해 진단서를 위조하여 만주로 탈출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10) 기호의 실체인 자기 자신보다, 위조 진단서라는 거짓 기호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증명사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실제 경험을 통해 얼굴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천착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론하고 있다. 아베 고보 또한 ‘두 손으로 푹 가리고도 남을 육체의 그 작은 면적이, 인간의 전존재를 지배하고, 운명을 결정해버리는 비밀’11)에 대해 일관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개인을 증명해주는 사회적 기호로서의 얼굴은 개인의 실존을 사회적으로 규명해주는 핵심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베 고보는 “얼굴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이어주는 통로이므로, 심리·생리·형체도 얼굴과 결합되기 쉬운 것이다. 조건반사 이론을 근거로 하여, 그 결합을 역사적·합법칙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12)고 말한다. 익명화되어 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이름 없이는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의 주인공의 경우처럼, 얼굴은 이름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증명해주는, 그리고 타인과의 종합적 관계 규정이 가능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얼굴을 사회적 기호로 다루고 있는 의 주인공 ‘나’의 시점에서 볼 때, 얼굴의 상실에 의해 ‘나’는 ‘나’라는 존재를 공적으로 확인할 방법마저 상실하고 만다. 이는 개인의 실존을 사회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핵심적 조건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호로서의 개인의 얼굴을 ‘사회적 가면’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가면’에 대해 아베 고보는 「마스크의 발견」이라는 에세이에서 배우의 연기와 관련 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얼굴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이어주는 통로”이면서 의상이나 메이크업과 같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배우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인 마스크를 찾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때마다 하나하나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는 상태에서는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배우의 육체적 준비상태를 나중에 아베 고보는 ‘중립(neutral)’이라고 이름 붙여 연기메소드의 하나로 개념화한다.
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바다에 투신한다. 여인은 죽고 아이는 물고기들에 의해 구조되어 물고기의 왕이 사는 궁전으로 끌려온다. 성장엑기스를 마시고 소녀가 된 아기는 왕으로부터 물고기의 밥이 될 것이냐 물고기가 될 것이냐 선택을 강요받는다. 소녀는 조금만이라도 인간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부탁을 하고 왕은 이를 받아들인다. 왕은 소녀를 다시 갓난아기로 만들어 육지로 돌려보낸다. 가난한 어부 부부에 구조된 아이는 한 달 만에 소녀로 성장한다. 한편 소녀가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을 탐내던 이웃 마을 카라멜 공장 사장부인이 소녀를 납치하고 감금하여 강제로 옷을 벗겨 내려 하지만 몸과 하나가 된 옷을 벗겨내지 못한다. 몇 날 며칠을 눈물로 보내던 소녀는 풀려나고, 소녀의 눈물이 사람들의 몸에 난 상처를 금방 낫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장부부는 다시 소녀를 유괴하여 강제로 눈물을 흘리게 한 후, 그것을 병에 담아 상품으로 팔 계획을 세운다. 소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멈추지 않는 소녀의 눈물이 홍수가 되어 마을을 휩쓸어 버린다. 5)일본 패전 6개월 전, 조선의 어느 항구에서 벌어지는 전 순사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 순사 살인의 누명을 쓰고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은 조선인 청년, 전 순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차례대로 살해되어 유령이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살인사건의 핵심을 파고든다는 이야기다. 6)각하라고 불리는 전 군인이 사설 동물원을 만들어 ‘동물자기클럽’을 운영한다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물에서 나오는 자기장으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클럽. 어느 날, 이 클럽이 방송에 소개되어 유명해지자, 자칭 탐험가라는 사람이 ‘웨’라는 가공의 동물을 팔러 찾아온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인간보다 번식력도, 성장도 훨씬 빠른 ‘웨’라는 동물을 보자, 각하는 이 동물을 번식시켜 군대를 만들려는 야심에 불탄다. 각하의 딸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이 동물을 보는 순간, 자신도 ‘웨’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웨’가 사실은 탐험가가 꾸며낸 거짓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하는 이 사실을 숨기고 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인 대신이 경찰을 데리고 와 각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우리 속에 가두고, 수술로 ‘웨’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은 스스로 ‘웨’가 되어 인간을 찾아 나서자며 선동한다. 7)1956년 3월 『문학계』에 발표된 단막물. 발명가가 자신의 조수의 육체를 개조하여 ‘인조초인’이라는 만능머신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만능머신이 자신을 만든 발명가를 죽이고 다른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8)「アヴァンギャルド」, 『全集009』, p.415. 9)Ibid, p.416. 10)磯田光一, 「移動空間の人間学-安部公房論」, 『現代日本文学大系76』, 筑摩書房, 1969年, p.441. 11)「顔」[1963.6.1], 『全集005』, 2009年3月, p.128. 12)「文体と顔」[1955.11.5], 『全集030』, 1997年12月, p.349. 13)書き出し(가키다시). 가부키 용어로, 배역표의 첫머리에 이름이 적히는 인기 있는 젊은 배우를 뜻하는 말이지만, 이 글에서는 ‘팸플릿에 적힌 배역’으로 번역하였다. 14)「マスクの発見」[1957.7.1], 『全集007』, p.322.
2. 1950년대 아베 고보의 연기관과 ‘중립(neutral)’
그럼 사회적 가면으로서의 외적 캐릭터 창조에 대한 아베 고보의 생각이 어떤 맥락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아베 고보 시스템’의 근간이 된 그의 연기관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1950년대 아베 고보는 작가로서는 많은 주목과 인기를 얻었지만 연출가로서는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1957년 <웨(신 노예사냥)>라는 작품을 연출한 것 말고는 거의 모든 작품을 극단 하이유자의 센다 고레야에게 연출을 의뢰했다. 주로 극작가로서 활약했지만, 1970년대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몇 가지 개념은 이 시기에 벌써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중립적인 육체’개념과 ‘육체의 자기객체화’ 등에 대한 언급은 195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연기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스타니슬라프스키에 대한 관심이다. 1950년대에 일본에서는 벌써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기 시작한다.15) 1955년 3월 <제복>의 초연을 연출했던 다카하시 켄(高橋健)도, 그 1년 전에 이미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무대의 제일보』를 번역했다. 아쉽게도 일본 연극사에서 아베 고보와 브레히트의 영향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스타니슬라프스키와 아베 고보의 영향관계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당시 극단 세이하이(青俳) 예술연구소에 합격하여 아베 고보의 수업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조차도 “당시 신극의 대세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명배우이자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기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심리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실제로 역을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육체는 심리와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아베 고보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이론이었다.”16)고 잘라 말할 정도로 아베 고보와 스타니슬라프스키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아베 고보는 브레히트와 스타니슬라프스키를, 그리고 자신과 스타니슬라프스키를 ‘정반대의 위치’에 놓지 않는다. 1950년대의 아베 고보는 주로 영화 장르에 대한 에세이 형식을 빌어 연극과 연기에 관한 자기 견해를 주장한다. 그 자신이 연극 연출 경험이 부족했던 데다가 자신의 희곡을 전담하다시피 연출하고 있던 센다 고레야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에세이 가운데 스타니슬라프스키에 대한 생각도 영화론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아베 고보가 스타니슬라프스키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부분이므로,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아베 고보에 의하면, 브레히트와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두 가지 점에서 공통적이다. 먼저, 브레히트는 동독에,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소비에트에 굉장히 비판적인 안티테제로서의 문제적 연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회비판적·체제 비판적 연극을 만들었다는 것은 다분히 의식적이고 추상적인 색채가 강하고, 방법론적·비판적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논외로 한다. 다음, 아베 고보는 스타니슬라프스키뿐만 아니라, 브레히트의 연극에도 실제로는 감정적으로 고양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비판적이면서도 풍자적인 측면이 강하여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특징이 있다는 의견이다. 지금이야 다소 일반적인 논의지만, 도그마로서 브레히트를 수용하고 있던 1950년대 일본의 연극적 풍토에서 아베 고보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브레히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반대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위의 좌담에서 아베 고보는 ‘브레히트 전문가’ 센다 고레야가 연출한 <가정교사>라는 작품을 보고 난 후의 감상에 대해 “대체로 지금까지의 (브레히트의) 연극은 감정적으로 고양되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난 모종의 분위기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굉장히 훌륭했다.”고 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두 사람을 도그마로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1955년 11월에 발표한 「문체와 얼굴」이라는 글에서 아베 고보는 “얼굴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이어주는 통로이므로” “인상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가능하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을 배울 것. 새로운 문법의 확립. 배우의 육체는 현실의 육체를 초월한다.”18)고 쓰고 있다. 즉, 얼굴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모든 물질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배우의 얼굴(인상)도 그 영원한 과정 속에서 변화하고, 끊임없이 지양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현실의 육체를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과 외면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생각은 자크 코포의 ‘중립(neutrality)’ 개념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다음 해, 아베 고보는 더욱 더 확신을 갖고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
위의 대담에서 아베 고보는, 캐릭터 창조에 관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후기 견해와 거의 일치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초기 작업에서는, 배우가 연극에서 요구되는 감정과 정서를 규정하고, 자신의 정서적 기억 안에서 상상과 집중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도록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정서라는 것은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러한 내적 메커니즘을 ‘무의식’이라고 칭했다. 컨트롤이 불가능한 이 감정을 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킬 가능성, 즉 인간의 정서적 상태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작용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후기에는 ‘무의식에 이르는 의식적 방법’을 찾아내, 그의 연기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외적 자기감각’을 탄생시켰다. 전자는, 정서를 먼저 규정한 후, 배우가 그 정서의 표출에 의해 행동하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심리와 신체를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심리학 이론에 기초하여 행동을 분석하고, 그 행동이 이론성과 타당성을 갖출 경우, 그 행동에 따른 정서가 따라 온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심리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다.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 구축에 필요한 모든 환경, 즉 심리·신체행동의 요소를 의식적으로 불러내어 잠재의식의 세계로 접근해갈 것, 진실한 체험을 통해 잠재의식적인 즉흥을 불러일으킬 것, 이것이 바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외적 자기감각’의 핵심 내용이다.20) 그리고 아베 고보는 이러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외적 자기감각’이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연기와 본질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2. 디드로의 ‘무감성’과 자크 코포의 ‘중립(neutrality)’
앞 장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스타니슬라프스키 이전에 아베 고보의 생각 속에는 디드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디드로의 『배우에 관한 역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1954년이지만, 아베 고보가 이 책을 근거로 논의를 전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직접 인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2차 자료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50년대의 아베 고보는 영화,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영화에 관심을 갖고 「영화배우론」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다. 그 에세이를 통해 영화배우와 연극배우, 영화연기와 연극연기의 차이와 특징을 논하며, 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나간다. 특히 디드로와 자크 코포에 대한 관심은 이후 ‘육체를 통한 자기객체화’, 즉 ‘중립적 육체’의 기초가 되는 개념으로서 주목을 요한다.
이 에세이에 근거하여 디드로에 대한 아베 고보의 생각을 간단히 살펴보자. 디드로에 의하면, 배우의 기술은 흉내를 잘 내는 기술이다. 배우의 재능을 완성시키는 것은 타고 난 목소리와 감수성뿐만 아니라, 흉내 낼 대상을 설정하고, 착실한 노력과 폭넓은 경험을 통해 그 대상에 접근해가려는 노력과 의지이다.
여기서 아베 고보는 하나의 가면이 무대 위 배우의 전 존재를 규정하듯이, 배우가 무언가를 느껴서 행동하는 것보다, 먼저 행동함으로써(무감성) 내면과 심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디드로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공통점이 브레히트와의 대립에 이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텍스트를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배우를 ‘문학적 배우’로 명명하며, 디드로는 여기서 문학적 배우의 거짓을 폭로할 작정으로 일부러 연극에서 희곡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대창조는 단순히 현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곡이라는 ‘종합과정’과 대결함으로써 처음으로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초기의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태도와 같은 심리적 종합주의자들과 맞서기 위해 일부러 분석과정을 강조한다.
아베 고보는 “배우의 기술은 잘 흉내 내는 기술이라는 디드로의 생각은 그렇게 이해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예로, 1955년 6월17일부터 7월10일까지 센다 고레야 연출로 극단 하이유자의 제33회 공연으로 상연된 <노예사냥> 공연 당시, 무대감독 역할을 진짜 무대감독이 맡으면서 벌어진 해프닝을 소개한다.
만약 디드로의 말대로라면 흉내내기의 달인인 이 무대감독의 완전한 실패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베 고보는 “그가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즉, 그는 배우가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할 종합과정, 즉 외적 캐릭터를 창조하고 다시 텍스트에서 근거를 찾아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는 의미다. 종합과정을 수반하지 않은 ‘흉내의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냉정하고, 침착하며, 통찰력을 지닌 관찰자로서의 배우, 즉 ‘무감성(nulle sensibilité)’의 배우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아베 고보는 “배우의 재능은 육체를 통해 자기를 객체화해 나가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즉, “육체를 통한 자기 객체화”란, 대본을 종합적으로 이해해 나가는 ‘종합과정’의 하나로, 표현의 영역에서는 육체의 내부와 외부가 연결된 상태로, 어떤 자극에도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육체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파블로프의 개의 예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럼 조건반사가 가능한 육체의 상태란 무엇일까? 아베 고보는 ‘흉내내기의 달인인 무대감독의 완전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코포가 디드로의 ‘배우에 관한 역설’에 대해 행했던 비판과 ‘중립(neutrality)’개념을 언급하고 있다.24) ‘중립적 육체’에 대해서는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지만, 이 시기에도 ‘내면과 외면의 통로’로서, 그리고 대본을 종합적으로 이해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육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코포에 의하면 ‘중립(neutrality)’은, “표현의 출발점, 휴지, 평온, 해방 혹은 편한 휴식, 침묵 내지는 순박한 상태”25)를 뜻한다. 이 말을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일 경우, ‘중립’이라는 개념이 마치 배우의 완전한 휴지상태, 멍한 상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혹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상태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중립’의 실제 의미는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자세, 언제나 튀어 오를 수 있는 스프링처럼 준비된 상태, 육체의 외부와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흥미진진한 상태’26)를 의미한다.
그리고 ‘육체를 통한 자기객체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내면과 외면이 시시각각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원활하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 내면과 외면의 조화는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부조화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코포는 ‘피의 동결(the freezing of bloo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코포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내적인 충동이 외면화되는 과정에서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경험하는 순간을 ‘피의 동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중립’에 방해가 되는 치명적 요인으로, 훈련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디드로의 ‘무감성’과 코포의 ‘중립(neutrality)’ 개념이 1970년대 아베 고보의 ‘중립(neutral)’ 개념 형성에 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두 개념과 아베 고보의 ‘중립’은 방법론과 실천적인 면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문학적 배우’를 철저하게 지양했던 아베 고보와 달리, 코포의 경우 ‘문학을 통해서’ “작품이 지니고 있는 지성에 순응해야 한다고 선언”28)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이 시기 번역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자서전』 (1942), 『배우와 극장의 윤리』(1952), 『신체적 행동』(1953), 『무대의 제일보』(1954), 『배우수업』(1955‐56), 『연출과 배우』(1955). 16)인터넷 블로그 http://sayfox.wordpress.com에 실려 있는 니나가와 유키오의 에세이 중에서 인용. 17)「映画についての断想」〔1955.9.1〕, 『全集005』, 1997年12月, p.271. 18)「文体と顔」[1955.11.5], 『全集005』, 1997.12, p.351. 19)「解体と綜合[対談]安部公房・針生一郎」[1956. 2. 1], 『全集005』, 1997年12月, p.437. 20)コンスタンチン・スタニスラフスキー, 堀江新二ほか訳, 『俳優の仕事-俳優教育システム』 第二部, 未来社,2008年, pp.380-381. 21)「映画俳優論」〔1957.1.11〕, 『全集006』, 1998年1月, p.470. 22)Ibid, p.471. 23)Ibid, p.472. 24)Ibid, p.471. 25)アリソン・ホッジ, 佐藤正紀ほか訳, 『二十世紀俳優トレーニング』, 而立書房, 2005年, p.151. 26)Ibid, p.151. 27)앞의 책, p.125. 28)에블린 에르텔, 이선형 역, 「유럽연출가노트, ‘코포와 카르텔(연극4인방): 연극 연습 기술」, 『한국연극』, 2003년 5월, 115쪽. “작가의 영감과 공연 사이에 어떤 것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연출가가 작가와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속에서 발견하고 재창조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영감이다. 작품에는 독특한 양식과 고유한 정신이 있다. 결국 작품을 연출하는 연출가는 ‘작가는 텍스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유일무이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쓸데없는 엑세서리와 무대장치를 거절한 코포는 배우의 연기와 해석, 무대적 행동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주의를 기울이고자 했다.”(위의 글)
아베 고보가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다. 그때까지 아베 고보는 극단 하이유자의 센다 고레야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많은 작품을 그에게 의뢰하고, 자신은 극작활동에만 전념해왔다. 작가와 연출가로서 두 사람의 관계는 1955년 <노예사냥>을 센다 고레야가 연출하면서 시작되어, 1971년 <유령은 여기에 있다> 재공연과 <미필적 고의>의 연출에 이르기까지 17년간 이어진다. “센다 씨 덕분에 무대의 살아있는 문체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29) 라고 말할 정도로, 1950‐60년대, 센다 고레야에 대한 아베 고보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평론가적 시선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며 자신의 연기관을 피력했다. 이 장에서는 아베 고보 시스템의 탄생배경의 하나로서 1950년대 아베 고보의 연기에 대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다루고, 그 시기에 도출된 개념이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인 ‘중립’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고찰할 것이다.
1959년, 아베 고보는 뮤지컬 <귀여운 여자>30) 공연 후 ‘불투명한 연기’ 개념을 제안한다. 사르트르의 ‘투명한 말과 불투명한 말’의 예를 들며, 연기에도 ‘투명한 연기와 불투명한 연기’가 있다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투명한 말은, 가령 산문에서처럼, 그 말 자체보다도 대상의 명확함이 존중되는 경우이며, 불투명한 말은 시와 같이 드러나는 대상보다도 그 말 자체의 색깔이나 향기나 뉘앙스가 존중되는 경우이다. 즉, 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장미’라는 말은 투명하지만, 노래나 시에 등장하는 ‘장미’는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위 글은 뮤지컬 <귀여운 여자>의 연기에 대한 문제점을 논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귀여운 여자>에서는 배우들이 투명한 연기밖에 보여주지 못해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즉, 불투명한 연기라는 것은,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보다 많은 색깔과 향기와 뉘앙스를 분출하여 자신의 육체를 보여주는 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귀여운 여자>에서는 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만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투명한 연기’, 즉 신극적 심리주의 연기만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고 지적하고 있다. 투명한 연기와 불투명한 연기는 상호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한 명의 배우 내면에서도 이 두 개의 개념이 서로 모순하면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래의 리얼리즘 연극에서 요구되던 배우상, 배우의 연기가 ‘투명한 연기’였다고 한다면, 그 밖의 연극, 새로운 장르의 연극에서는 ‘불투명한 연기’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아베 고보의 이러한 반응은, 외면적으로는 배우에 대한 불만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연출을 맡았던 센다 고레야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 표명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약 3개월 후, 어느 대담 자리에서 아베 고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대담에서 아베 고보가 말하는 이야기의 초점은, 일본의 신극 전통 내에서는 그의 작품이 완전히 이해되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배우들이 능숙하게 연기하기 어렵다는 점, 자신의 작품과 브레히트의 작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연출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출이 신극적 리얼리즘의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새로운 연극은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작가로서 기성 연극의 두터운 벽을 실감하고, 거기에 대한 위기감과 불만이 약간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그로 하여금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결성하게 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1960년대에는 연기에 관한 언급이나 문제제기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던 가운데, 1971년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에 아베 고보의 실험연극에 관한 기사가 게재된다. 아베 고보의 연극에 ‘실험연극’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도 처음일 것이다. “일정한 대본 없이, 연습 중에 배우들의 즉흥과 애드리브로 완성대본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33)으로, “배우들에게는 행동과 해석에 관한 지시서(가이드북)가 주어질 뿐”34)이라는 내용이다. 마치 초창기 신파극의 ‘구치다테(口立て)를 연상시키는 이 수법은, 배우의 육체를 텍스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아베 고보 특유의 새로운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사 가운데 아베 고보의 인터뷰를 보면, 1950‐60년대에 걸쳐 그가 가지고 있던 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지향 등이 <가이드북> 공연을 통해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가로서 텍스트 중심의 연극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관습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스스로 ‘연구회’라는 연극그룹(아베 고보 스튜디오의 전신)을 만들고, 나아가 ‘아베 고보 시스템’이라는 연기체계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는 배우의 신체훈련 메소드를 만들어내기까지 깊이있게 파고든 연극인은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베 고보가 동료 배우 14명과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정식으로 발족한 것은 1973년 1월11일이다. 약 5개월 후, 도쿄 시부야의 세이부(西武)극장에서는 이 극단의 창립공연 <사랑의 안경은 색유리(愛の眼鏡は色ガラス)>가 공연되었다. 전작인 <가이드북>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은 대본 없이 작가가 제시하는 상황 설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사를 말하거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형식의 공연이다. 예를 들어, “폭동으로 도쿄혁명을 꾀하는 학생들과, 체제유지파의 정신병원 관리자들과의 토론이라는 설정. 대본이 없기 때문에 배우들은 자신의 지식과 언변을 최대한 살려 상대를 논파하려고 노력한다. 연극조의 부자연스러움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과 허구의 혼합이 빚은 기묘한 리얼리티. 이런 즉흥적 연극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 마지막으로 아베 고보 씨의 대본이 전달된다.”36) 이런 순서로 연습을 진행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대사도 하루나 이틀 만에 소화해낼 수 있으며, 신극 특유의 심리주의적 부자연스러움도 사라진다고 아베 고보는 말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희곡의 상황 모두를 미리 배우가 주체적으로 체험해 둘 것. 그에 따라 원래 즉흥성을 특색으로 하는 배우의 매력과, 본질적으로 즉흥성에 대립하는 희곡의 매력을 모두 함께 빛내고자 하는 것이 아베 고보 시스템의 제1 목표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아베 고보는, 육체표현에서 중립적인 것, 다시 말해 순수한 ‘관계’로서 자기 자신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중립적인 상태의 기본적인 목표는, 배우를 신체의 움직임이나 발성법 등의 전통적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모델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다. 배우들에게 중립적인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아베 고보가 생각해낸 기본적인 연습은 다음과 같다.
아베 고보는 이러한 ‘중립적’ 상태를 ‘제로의 중립’에 지나지 않으며, 이 ‘제로의 중립’을 기점으로 무수한 중립의 변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
물론, 배우가 사형수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보는 사람을 사로잡아, 그 일상으로부터 떼어 놓고, 목격이라는 체험 속에서 상대방에게 자기의 재창조를 강제한다.”는 점이다. 즉,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웅변술이 아니라, 존재술이라는 것이다. 사형 10분 전의 사형수의 상태가 중립이며, 그것은 존재 자체이지 표현이 아니라는 의미다. 앞 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배우에게는 대본의 “의미나 줄거리의 운반자뿐만 아니라, 그 순간 순간의 상황과 관계 자체를 표현으로서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중립이라는 것은 배우의 존재 자체가 표현으로서 성립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동시에, 연기하는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관계의 집중점’으로서의 역할도 완수한다.
결국, 연극이 나와 세계, 배우와 배우, 배우와 관객 사이의 관계성에서 성립하는 장르인 이상, 그 관계 만들기가 더욱 더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연극학자 다카하시 노부요시는 중립적 관계 만들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어진 상황에 녹아 들어가는 것도, 역할에 동화되어 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배우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적확한 관찰력’이지 배우 자신의 무책임한 믿음이나 결심이 아니라는 것. 역할을 모방하기 위해 자기모방에 빠져버리는 관찰력 따위는 필요 없다.39)
즉, 배우는 ‘적확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적확한 표현력’을 지향해야 하며, 그런 가운데 자기모방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베 고보는 1957년 “배우의 재능이란, 육체를 통해 자기를 객체화해 나가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40)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는 육체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신의 의식마저 객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베 고보가 <가이드북>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배우의 매력과 희곡의 매력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기메소드인 ‘불투명한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아베 고보의 ‘중립’은 그 자체가 존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텍스트를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코포의 ‘중립’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코포의 중립은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자세, 항상 튀어 오를 수 있는 스프링처럼 준비되어 있는 상태, 육체의 외부와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흥미진진한 상태를 의미하는 한편, 아베 고보의 중립은, 마치 사형 10분 전의 사형수처럼, 그 상태로 벌써 하나의 캐릭터를 존재적으로 어필하는 고도의 표현술이다. 아베 고보의 말을 빌리자면, ‘중립’은 “최고도에서 회전하기 위해, 반대로 완전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팽이의 상태”인 것이다.
29)「千田是也と花田清輝」[1963.11.20], 『全集017』, 1999年1月, p.320. 30)1959년 공연된 아베 고보의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읜 일명 귀여운 여자. 그에게 대부업자, 도둑조합 두목, 형사가 차례로 접근하여 청혼을 한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귀여운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속여 가며 3명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사회적 대립관계에 있는 3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상대로 4각 관계를 형성한다. 결국 귀여운 여자가 한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3명의 남자는 ‘우정’, ‘신뢰’, ‘협력’을 노래하며 그녀를 용서한다는 이야기다. 당시 2천만엔 이상의 거액을 들여 야심차게 시도한 뮤지컬이었지만 상업적·예술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31)「ミュージカルの反省」[1959.10.1], 『全集011』, 1998年7月, p.199. 32)「新劇の可能性と観客への期待」[1960.1.10], 『全集011』, 1998年7月, p.365. 33)‘安部公房氏が実験演劇’, 『朝日新聞』, 1971年10月5日. 34)‘安部公房氏の実験演劇’, 『読売新聞』, 1971年10月14日. 35)『朝日新聞』, 위의 기사. 36)‘安部公房スタジオの旗あげ公演に打込む安部公房氏’, 『朝日新聞』, 1973年3月6日. 37)「ニュートラルなもの-周辺飛行17」[1973.3.1], 『全集023』, 1999年8月, p.410. 38)「再び肉体表現における、ニュートラルなものの持つ意味について-周辺飛行18」[1973.4.1], 『全集024』,1999年9月, p.147. 39)高橋信良, 『安部公房の演劇』, 水声社, 2004年, p.47. 40)「映画俳優論」〔1957.1.11〕, 『全集006』, 1998年1月, p.472.
이상으로 1970년대 등장한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인 ‘중립’의 등장배경과 역사적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립(neutral)’이라는 메소드는, 신극과 앙그라를 통틀어 매우 실험적이고 ‘평화혁명적’인 성과였다. 그런데, 이 개념은 1973년 아베 고보 스튜디오의 결성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개념이 아니라, 1950년대 중반부터 준비되어 온 것이다. 문학적 배우의 거짓을 폭로하고, 일부러 연극에서 희곡을 과소평가하여, 흉내를 잘 내는 기술, 이른바 ‘육체치환술’을 통해 ‘종합과정’으로서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디드로의 역설의 영향, 그리고 코포의 ‘중립’개념, ‘불투명한 연기’의 제안 등, 아베 고보 시스템은 1950년대부터 예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950년대의 아베 고보가 특별한 이유는, 동시대 해외 연극의 여러 사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최종적으로는 ‘아베 고보 시스템’이라는 독창적인 연기메소드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브레히트의 공통점에 주목하여, 내면적·심리적 접근보다는 캐릭터에의 외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디드로의 ‘무감성’이론과 자크 코포의 ‘중립’을 접목시켜 아베 고보 시스템의 핵심인 ‘중립적 육체’ 개념을 제시했다. 앙그라 연극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1950년대에 이미 배우의 육체에 주목하여, 당시 주류를 점하고 있던 ‘문학적 배우들’을 텍스트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 당시, 작가로서 텍스트보다 배우의 육체나 연기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연극성을 모색했던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본 연극사상 아베 고보는 매우 특별한 의미는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