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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Heroic Dreams and Mad Wish-fulfillment in Don Quixote and Hamlet 『돈키호테』와『햄릿』에 나타난 영웅적 꿈과 광기의 욕망충족*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is study is to analyze dreams and madness in Don Quixote and Hamlet which makes these two heroes quite identical rather than antithetical. Don Quixote is usually considered to be an idealistic, enthusiastic, and unselfish doer, whereas Hamlet is a skeptical, melancholic, and self-conscious thinker. However, Don Quixote and Hamlet both reveal a heroic desire to embody an ideal world into a reality through their dreams and madness. Based on Freud’s interpretation of the similarities between dream and neurosis, this article focuses on the aspects of Don Quixote’s waking dream and Hamlet’s affected madness to find out their characteristics as new types of heroes. Don Quixote, the waking dreamer, acts like a maniac and tries to remain in a state of madness to sustain the dream world where he wanders to save the weak, the poor, and the deprived. He accepts psychic breakdown as well as physical trauma if only he can do the role of a knight errant. Sleepless Hamlet witnesses the dream world and experiences it tangibly while he hears an order from the murdered King’s ghost. Yet, instead of becoming a neurotic, Hamlet waits for the chance to perform his task to regain the harmony of his family and kingdom. Even on the border of madness, Hamlet does not forsake his own life and duty but dreams in reality and acts without losing his reason. Although there are some apparent outstanding differences between Don Quixote and Hamlet, they have fundamental similarities with each other; Both of them exemplify a new type of hero who desperately tries to fulfill a mad dream to face the suffocating, suspicious, and strange world.


KEYWORD
Don Quixote , Hamlet , dream , madness , sleep , death , hero
  • I. 들어가는 말

    유럽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와 햄릿은 서로 대비되는 유형으로 평가되며 수많은 후속인물의 모델이 되었다. 투르게네프 (Ivan Trugenev)가 전 인류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기본적인 두 인물의 유형으로 나누어진다고 하였듯이, 이 둘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을 대조하여 드러내는 인물로 간주되어왔다. 투르게네프의 설명에 따르면 햄릿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자의식적이고,명상적이며, 자기 회의적이어서 행동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돈키호테는 박애주의와 자기희생정신이 가득한 진보적인 행동가로 표현된다. 투르게네프는 햄릿을“사색하고, 분석하며, 숙고하고, 당혹스러워하는”북유럽인의 정신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로, 돈키호테를“정이 많고, 명랑하며, 겸손하고, 감수성이 강한”남유럽의 기질을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한다. 이에 덧붙여 그는 햄릿과 같은“철학적이고 몽상적인”유형보다는 돈키호테 같은“무모하고 이상주의적”유형이 러시아에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한다(104). 돈키호테가 주저 없이 자신의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사나이로, 햄릿이 회의하며 자신의 선택을 망설이는 사색가로 평가된 것은 두 인물에 대한 통상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키호테 역시 햄릿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면모를 드러내고, 햄릿 또한 복수의 확고한 근거 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하고 실천한다. 이들 두 인물은 정의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고 광기를 통해서라도 이를 구현하려는 공통점을 보인다. 돈키호테가 “미쳐 있고 미쳐야만 하는”존재로서 기사도의 회복을 열망한다면, 불면의 햄릿 역시 이상적 왕국을 되찾기 위해 광기 속에서도 분투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이 두인물에 대한 논의는 행동가와 사색가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꿈과 광기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한 공통된 면모에 주목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비평에서‘광기’와‘꿈’이 화두가 되면서, 돈키호테와 햄릿에 대한 분석역시 욕망의 억압과 표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또한 돈키호테가 실제로 미쳤는지 아니면 정교하게 미친 사람의 상태를 연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필두로, 광기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회복이 갖는 의미에 대한 비평이 있어 왔다. 햄릿에 대한 분석에서도 그의 광기가 실제인지 가장인지에 대한 논의는 물론, 그의 복수가 지연되는 것을 어머니와의 관계를 토대로 해석하는 논의가 있었다. 햄릿의 복수가 지연되는 원인을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에서 찾는 존스(Ernest Jones)의 분석이 그 한 예이다. 존스는 햄릿에게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려는 금지된 욕망을 읽고, 이러한 욕망으로 인해 햄릿 자신도 클로디어스와 동일한 인물이 되고 만다고 지적한다. 그는 복수가 지연되는 원인을 햄릿의 도덕적 운명(moral fate)이 클로디어스와 한 데 묶여 햄릿이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는 클로디어스도 죽일 수 없게 된 데서 찾는다 (88). 브래들리(A. C. Bradley) 역시 정신분석적 접근을 하는데, 그는 복수가 지연되는 원인을 성욕이 아닌 우울한 절망에서 찾는다. 그는 햄릿이 복수를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부정한 여인으로서 어머니의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 도덕적 충격을 받아 좌절감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98, 9). 존스와 브래들리는 모두 복수가‘지연’되는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에서 찾는다.

    돈키호테와 햄릿에 대한 비교 연구에서도 햄릿의 복수가‘지연’되는 것은 돈키호테의 영웅적 행동과 대조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듀란(Manuel Duran)이「돈키호테와 햄릿: 타인인가 형제인가?」(“Don Quixote and Hamlet: Strangers or Brothers?”)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열망이 이들의 광기에 드러나는 공통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그 역시 인물간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에 더욱 치중한다. 그는『돈키호테』(Don Quixote)의 결말은 카타르시스를 가져오지만, 『햄릿』(Hamlet)에서는 핵폭발과 같은 파괴와 죽음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햄릿을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여 고립된 인물로, 돈키호테를 탐색의 여정을 떠난 더욱 영웅적 인물로 듀란은 평가하는 것이다. 에이컨(Annalise Acorn)의 논문「광기란 처신을 위한 방어인가?」(“Is Insanity a Demeaning Defense?”)에서는 두 인물의 광기에 공통된 심리적 방어기전이 논의되고 있으나,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인물 분석에 정신 병리학적 접근을 직접 적용하고 있다. 또한 논의의 초점 역시 법정에서 나타나는 범죄자의 심리 이해에 맞춰져 있다. 돈키호테가 분열과 망상의 증상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햄릿이 폴로니어스를 죽이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무자비한 살인자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이들을 각각“정신병자”와“살인자”로 규정하는 것은 병의 증상과 실제의 병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고 문학의 주인공과 실제 인간 사이의 거리를 배제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돈키호테』와『햄릿』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정신분석적 접근을 도입할 때는, 햄릿이 르네상스 시대 비극의 영웅이고, 돈키호테가『햄릿』과 동시대의 작품이자 근대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소설의 주인공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햄릿의 복수 지연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선택이자 행동이고, 그것의 영향력이 돈키호테의 영웅적 탐색과 비견할 만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복수의 지연’이라는 일견 비영웅적인 선택은 햄릿의 내적 분투와 탐색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도 새로이 장비를 갖추고 편력기사의 삶을 떠나는 돈키호테의 면모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돈키호테의 꿈과 햄릿의 광기는 단순한 망상이나 자의식의 과잉을 넘어, 이상적 가치를 위해 투신하고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는 영웅적 성격을 띤다. 이들 인물은 공통적으로 르네 상스적 영웅에게 요구되는 용기와 실천, 명상과 철학을 겸비하기 위해 분투한다. 햄릿을 르네상스 시대의 영웅으로 평가하면서 리즈(Theodore Lidz)가 지적한 바와 같이, 햄릿에게 있어서는“그 주요 임무가 적이 아닌 스스로를 정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오레스테스처럼 어머니를 죽이거나, 오이디푸스와 같이 욕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대신, 자신의 행동의 동기와 결과에 대해 숙고한다. 이는 고대 비극의 영웅과는 차별되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왕자로서 뿐 아니라, 가정의 문제를 겪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문제와 대면한다. 그리고 그는 죽음조차 멸시하는 전통적 영웅의 위세보다는, 삶과 죽음 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숙고하며 새로운 유형의 영웅상을 드러낸다(108). 돈키호테 역시 일상의 안위와 소박한 만족을 포기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명상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하되 극복하려 하고, 개인적 열망을 견지하되 이를 공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표출하려 한다. 비록 그의 영웅적 투신이 희극적으로 재현되고 비극적 종말을 맞고는 있으나, 이 안에 담긴 풍자는 단순한 조롱의 의미를 넘어선다. 오히려 이것은 평범한 인간도 오직 분투하는 정신과 그 실천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돈키호테가 소설적 영웅의 실례가 될 뿐 아니라, 낭만주의적 영웅상을 예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햄릿의 복수 지연과 돈키호테의 무모한 여정은 좌절이나 분노, 혹은 정신병을 넘어 영웅적 꿈과 광기 어린분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정신분석적 비평방식으로『햄릿』과『돈키호테』에 접근하되, 문학의 주인공과 실제 인물 사이의 거리를 확보하고, 정신병과 정신병의 증상을 구분하는 범위 내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프로이드 이래로 정신분석비평에서 화두가 된 것은 금지된 욕망과 관련된 인간의 꿈과 광기였다. 『꿈의 해석』1장에서 프로이드가 여러 저자들을 인용하여 주장한 바와 같이 꿈과 광기는 내재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프로이드가 칸트의“광인이란 잠을 깬 꿈꾸는 자이다”라는 규정과 크라우스의“광기란 감각이 깨어있을 때 꾸게 되는 꿈이다”라는 말, 그리고 쇼펜하우어의“꿈은 짧은 광기, 광기는 긴 꿈”이란 지적을 인용하는 것은, 꿈과 광기의 동질성을 부각시킨다. 프로이드의 주장처럼 꿈과 광기 는 현실의 원리와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감각적 경험을 이끈다는 점에서 동일한 작용과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드가 스피타를 인용하여 설명한 바와 같이, 꿈과 광기는 자의식의 중지나 지연, 감각 기관에 의해 획득되는 인식의 조절, 사고 사이의 연관성의 부족, 인격 혹은 성격의 변화 혹은 전도 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160-65). 돈키호테의 망상과 꿈이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햄릿의 광기와 꿈이 반드시 연계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금지된 욕망을 향한 이들의 광기와 꿈이 상호 유사하게 표출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프로이드의 통찰이 주목할 만하다. 돈키호테의 반복되는 행동과 변함없는 이상, 햄릿의 지속적인 탐색과 불굴의 의지는 그들의 꿈과 광기 속에서 동질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돈키호테』와『햄릿』이 보여주는 광기의 원인과 증상을 그들의 영웅적 꿈과 연관하여 분석하고, 이것이 갖는 함의를 주변에 미치는 인물의 영향력을 토대로 고찰하고자 한다.

    II. 광인 기사 돈키호테의 깨어 있는 꿈

    돈키호테는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는 세계를 재현하고자 하는 강력한 소망을 품고 등장한다. 듀란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것은 시인의 삶이고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거짓된 삶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가장“숭고한 지점”(high point)은 바로 이러한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8). 그는 자신의 무한한 자유를 바탕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세계를 상정하고, 그 세계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은 프로이드가 말한 바, 깨어서도 꿈꾸는 자, 즉 광인의 양태를 띤다. 이처럼 돈키호테가 일상에서도 충실하게 꿈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지인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의 눈에도 광인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돈키호테의 광기는 이전의 문학작품에서 등장 한 인물의 광증과는 구분된다. 슈거(Dale Shug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서사시나 로맨스에 등장하는‘미친’인물들의 광증은 대개 신의 뜻을 거스른 것에 따른 처벌의 의미를 지녀왔다. 가령 오이디푸스의 광기는 신들을 무시하고 어머니와 동침한 것에 대한 벌이자 속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광기는 희극적인 어조로 다루어지고 있고 풍자적 의미에 가깝다(153). 돈키호테의 시대착오적인 공상과 엉뚱한 외양은 기사도를 향한 그의 진지한 노력과 현실의 차이를 부각시키며 비판적 의미를 띤다.

    돈키호테가 초라하고 왜소한 50대 중반의 기인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호의와 공감을 얻는 것은 광기의 지속성과 그 안에 드러나는 한결같은 선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약자를 보호하고 선량한 자를 위로하는데 주력한다. 돈 페르난도와 도로테아, 카르데니오와 루스신다의 결합이 성취되고, 약한 여성과 선량한 그리스도인이 보호받으며, 마르셀라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모두 돈키호테의 개입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돈키호테의 욕망은 단순한 신경증이나 자기애와는 구분된다. 프로이드는 자아도취(narcissism)란 개인의 리비도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에고를 향하는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카플란(Harold I. Kaplan) 역시 리비도의 내면화가 정신 병 환자가 보이는 현실감각의 상실을 설명한다고 지적한다. 환자의 망상(grandiosity)과 전능함(omnipotence)은 리비도가 에고에 과도하게 투자된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213). 그러나 돈키호테의 망상과 분열은 이러한 병적상태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는 편집증 혹은 자아도취라 불릴 만한 증상을 드러내지만, 단순한 자기애로 환언할 수 없는 이타적 태도를 견지하고 스스로도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편력 기사의 삶을 살겠다는 돈키호테의 소망과 이에 따른 환시, 착란, 망상 등은, 실제의 환자와는 구분되는 의도적 노력에 따른 감각의 왜곡인 것이다.

       1. 일상 속의 외상― 광기의 당위성

    돈키호테가 기사의 임무를 수행하며 꿈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그가 지닌 공상의 힘 덕분이다. 편력기사로 나서기 위해 돈키호테는 조상의 낡은 갑옷과 투구를 닦고 개량하여 갖추고, “기억”(memory)과“공상”(fancy)을 더해 말의 이름을 로시난테로 짓는다. 그리고『골의 아마디스』(Amadis of Gaul)를 본떠 자신의 성(姓)에도 고향의 이름을 붙여 스스로를 돈키호테 드 라만차라고 명명한다. 또한 그는 알돈사 로렌소라는 평범한 마을의 처녀를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 칭하며, 그녀에게 충성된 사랑을 맹세한다. 이때 돈키호테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임의로 변형하여 자신이 기획한 바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훌륭한 말, 화려한 무기, 아름다운 귀부인이 없을지라도 그의 임무에 아무런 지장을 가져올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장비가‘칼’이 아닌‘투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데에서도 가상현실을 체험해 내는 공상의 힘이 부각된다. 존슨(Carroll B. Johnson)이 지적한 바와 같이, 돈키호테는“무기”(arms)와“문자”(letters)가 르네상스적으로 겸비된 삶을 지향했다. 하지만 그는 무기, 특히 기사의 필수품인‘마법의 검’을 지녀본 적이 없다. 대신 그는‘투구’에 집중한다. 돈키호테는 실제로 물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그 영향력을 상정하고 자신의 방식을 실천하는 스스로의 정신적 능력을 보호하려 한다. 더들리(Edward Dudley)의 지적과 같이, 돈키호테에게 있어 힘의 원천은“무기가 아닌 머리”인 것이다(Johnson 66 재인용) 이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세계와 조건을 창조하는 것은, 돈키호테의 공상 저변에 있는 정교하고도 의식적인 노력을 드러낸다.

    공상의 세계 내에서 돈키호테가 담당하는 기사의 역할과 임무는 매우 장대하다. 그는 강력한 적수와의 대결을 요구하는 환상을 만드는데, 이로 인해 돈키호테는 육체적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풍차에 창을 휘두르는 장면은 대표적인 예이다. 산초의 설명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풍차가 거인이라 믿고 이에 맞선다. 풍차에 대한 환각은 돈키호테가 스스로를 거인을 물리칠“단 하나의”기사로 인식하고, 이 거인을 물리쳐 세상을 구하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장면에 대해 와트(Ian Watt)는 개인이 상상하는 목적과 대상의 강력한“견고 함”(imperviousness) 사이의 우스꽝스러운“불균형”(disparity)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돈키호테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류를 돕는다는 숭고하지만“착각과도 같은”(illusory) 생각에 고무되는데, 이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65). 풍차의 바람에 날려간 돈키호테가 진정“슬픈 상태”로 묘사되듯, 돈키호테의 공상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나 커 심각한 외상을 가져온다. 그러나 외상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환상을 유지하려 한다.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여관을 돈키호테가 재창조하여 인식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노력은 반복된다. 굶주린 상태로 하루 종일 걷고 난 후 여관에 도착하자, 돈키호테는 이곳을 포탑, 빛나는 은으로 된 첨탑, 가동교, 그리고 해자가 있는 커다란 성으로 그려낸다. “그려내다”(picture)는 동사에서 나타나듯, 그는 수동적으로 환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스스로의 기대에 맞게 재창조하여 인식한다. 이처럼 강력한 상상력으로 실제를 재창조할 때 그의 굶주림과 피로가 보상받게 된다. 머베인(John S. Mebane)은 돈키호테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환상의 기능이 파우스트가 불러낸 헬렌을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파우스트의 헬렌은 상상력의 승리를 느끼게 함으로써 관객이나 독자로 하여금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등장한 헬렌은 트로이의 헬렌이 아닌, 헬렌의 모습을 가장한 악마이기 때문에, 파우스트의 비전은“헛된 환상”(idle fantasies)에 그친다(128). 죽음을 기다리던 파우스트가 악마가 꾸며낸 헬렌의 형상에서 일시적인 위로만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돈키호테는 지속적으로 스스로가 그려낸 세계를 경험하고 타인을 위해 분투할 삶의 동력을 얻는다. 파우스트의 자기중심적인 욕구와 그에 따른 헛된 환영과는 달리 돈키호테의 환상은 기사도의 실천을 위한 상상력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다. 러셀(P. E. Russell)의 지적처럼 이것은 시인과 같이 사물을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부합하도록 거주하는 세계를 변형시킴으로써“진정한 창의성”(ingenuity)을 드러내는 것이다(96). 환상속의 기사 돈키호테가 주변 세계의 변화를 이끌게 되는것은 시인의 상상력에 상응하는 힘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돈키호테로 인한 세상의 개선 가능성은 주변의 인물에게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통해 나타난다. 돈키호테의 탐색과 분투를 제지하고 그를 조롱하던 사람들조차도 기사도에 대한 호의와 공감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기사도 문학의 독자일 뿐 아니라 비밀스레 그 임무에 매료된‘잠재적 돈키호테’임을 암시한다. 돈키호테가 여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물론 신부조차도 기사도 문학에 대한 지식과 흥미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이안 와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여관 주인, 산초, 신부를 포함해 돈키호테를 둘러싼 인물도 사실은 기사도 문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들은 돈키호테에 대해 복잡하고 모순된 입장을 취한다(53). 돈키호테 주변의 인물들은 돈키호테를 단지 광인으로만 취급하여 배척하기보다는 환상에 일정부분 동참하며 오히려 그의 공상을 자극한다. 돈키호테 역시 이들의 공감과 참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헌신의 의지를 다진다. 이것은 정신분열 환자의 상태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해커와 뢰슬러(Helen Haker and Wulf Ro¨ ssler)는 정신분열 환자와 대조군을 분석하며, 분열을 앓는 환자는 타인에 대한 감정 표현으로서의“동조”(resonance)를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웃음이나 하품과 같은 행동에 대해 대조군은 동조로 공감을 나타내는 반면, 환자군은“전염성 웃음”(contagious laughing)이나“전염성 하품”(contagious yawning)을 보이는 빈도가 낮아 손상된 공감능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산초와 교감하고 돈키호테의 주변 인물이 그의 여정에 내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돈키호테와 분열 환자의 차이점을 명확히 한다. 돈키호테는 폐쇄 병동에 감금되거나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그들의 동조를 촉구하는 한편, 그들로부터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자극을 받기도한다. 다시 말해, 돈키호테는 주변 인물들을 기사의 세계에 초대하고 그를 통해 그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준다고 할 수 있다.

       2. 광기로부터의 회복― 자살 혹은 자연사

    외상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기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진정한 위기는 강력한 적을 만나는 때가 아니라 꿈과 광기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좌절감은 가장 심각한 외상이 아니라, 더 이상 외상을 입을 수 없는 상태 즉, ‘하얀달의 기사’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 닥쳐온다. 자신의 친구 학사 카르라스코가 가장한‘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함으로써, 돈키호테는 고향으로 돌아가 목동생활을 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편력기사로의 임무는 약속에 대한 충실한 이행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돈키호테는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배반하는 길을 갈 수 없다. 이처럼 모순된 상황 하에서 돈키호테에게 임박한 파국은 오랜 시간에 걸친 잠으로 예고된다. 싸움에서 패한 돈키호테는 6일간 침상에 누워“아프고, 침울하며, 우울하여”(sick, melancholy, moody) 패배라는 불행한 사건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 돈키호테 뿐 아니라 주변인물에게도 그의 패배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돈 안토니오(Don Antonio)가 총독에게 카르라스코의 실체와 돈키호테의 패배를 알렸을 때, 총독이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패배는 다른 이들에게도 꿈과 쾌락의 종식을 가져온다. 돈키호테의“광적인 행동들”(mad things)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그의 은퇴는 즐거움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789). 돈키호테의 광적인 행동은 그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일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행복과 만족을 가져오는 주 요계기였음이 거듭 확인된다.

    돈키호테에게 기사의 꿈이 삶을 유지하는 동력이었음은 귀향을 결심하는 순간 그가 급속히 쇠약해가는 것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미덕을 버리지 않았음을 자부하고, 고향으로 은둔하여 새로운 능력을 회복하고 1년이 지나면 다시 무도의 길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지만(792, 793), 단 한순간도 기사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에 심각한 괴로움을 느낀다. 산초의 숙면과 대조되는 돈키호테의 불면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구체화된다. 첫잠을 한 숨자고 나면 다음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돈키호테와는 달리 산초는 두 번째 잠을 자본 적이 없을 만큼 늘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계속해서 잠을 잔다. 튼튼하고 걱정이 없는 산초와 달리 돈키호테는“근심”(cares)으로 인해“잠들지 못하는” (restless) 상태에 있다. 돈키호테는 총독이 되고, 백작이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작위를 얻을 기대를 상기시켜 산초를 깨우려 하지만, 산초는 잠을 통해 더 큰위로를 받으려 한다.

    산초에게 있어서 잠은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꿈을 잊게 하는 기능을 한다. 깨어 있는 순간 그는 돈키호테와 더불어 꿈을 꾸고 환상에 동참함으로써 고행을 겪지만, 잠든 순간에는 모든 희망과 기대를 버리고 오로지 죽음과 같은 휴식을 누린다. 산초는 잠과 꿈을 연계하기보다는 잠을 통한 휴식이 환상이나 꿈을 중단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 정신의학의 설명에서도 나타난다. 이란조(Alex Iranzo) 등은 불면증이 인지 기능과 정신운동 능력의 감퇴와 연관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들은 세르반테스도 수면장애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여, 돈키호테의 정신 이상을 잠의 부족과 관련짓고 있다고 지적한다(97). 수면 부족이 돈키호테의 광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명의 예는 비교적 빈번하게 발견된다. 일례로 세르반테스가 후아르테(Dr. Juan Huarte de San Juan)의 아들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잠과 기질의 관계에 대해 논의를 전개한 존슨(Carroll B. Johnson)의 비평을 들 수 있다. 후아르테는 인간의 기질을 뜨겁고, 차갑고, 습하고, 건조한 네 가지 특성을 토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시켰는데, 존슨은 세르반테스가 이에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타고난 기질이“성마른”(choleric) 돈키호테에게 수면의 부족은 그를 더욱 건조하게 만들어“온전한 지점”(point of sanity)을 넘어서게 했다고 설명한다(16-19). 이처럼 수면 부족이 돈키호테의 광기를 자극했다는 설명은 현대 정신의학 뿐 아니라, 4요소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기질 분석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돈키호테의 불면이 그의 광기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지적이지만, 정신병의 원인이나 결과로 작용하는 불면과, 꿈의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로 표현되는 불면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불면이 환각을 자극하고 정신병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지만, 돈키호테가 잠들지 못하는 것이 그의 정신병으로 인함이라거나, 수면부족이 그의 광기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상에 대한 꿈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인물은 문학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존재로서, 이들에게 있어서 불면은 질병의 의미이기보다 는, 깨어 꿈꾸는 존재로 남고자 하는 열망에 가깝다. 돈키호테의 불면이 끝없는 잠으로 이어져 그의 꿈이 진정으로 종식되지만, 그것이 새로운 삶이 아닌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에서 돈키호테는 더 이상성이나 탑을 그려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평범한 주막집만을 인식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업적과 용맹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이를 기념하고 싶어 하지만, 깨어서 꿈꾸는 능력은 영영 잃고 만다. 이것은 그가 잠에 굴복하여 죽음의 세계에 다가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열병이 나 엿새 동안 침대에 누워있는데, 이때 그를 검진한 의사는 이것이 불쾌감과 권태, 또 우울의 상태라고 진단한다. 가정부와 조카딸이 돈키호테가 너무 많이 자서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그 잠은 지나치게 깊고 지속적이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잠에서 깨어나자 광기로부터 극적으로 회복되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미친 사람이 그리 쉽게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돈키호테가 죽어가는 것을 추정하게 하는 증거라고 표현되듯, 돈키호테에게 있어서는 광기 그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었으므로 꿈을 포기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게된다. 산초가 돈키호테를 달래며“이 세상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미친 짓은 아무도 죽이지 않는데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돈키호테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아니라“아론소 키하노”라고 인정한 돈키호테는 빠른 속도로 죽음의 길을 달려간다.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죽음은 자연사이지만 또한 자살과도 같은 것으로 욕망을 억압당하고 삶의 동력을 빼앗긴 인간에게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죽음뿐임을 보여준다. 산손 카르라스코가 돈키호테의 비명으로“미친 사람으로 살고 정신이 들어 죽었다”고 쓴 것처럼,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삶의 동인은 광기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광기와 꿈으로 영웅적 임무를 추구한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죽음은 기행의 결과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 무한한 욕망을 표현하는 또 다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III. 배반당한 왕자 햄릿의 금지된 욕망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삼촌과 어머니의 급작스런 재혼에 따른 분노에 사로잡힌 왕자로 등장한다. 그는 선왕이 통치하던 이상적인 세계를 살아본 경험이 있고 그 세계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꿈’을 꾸지만, 그 꿈의 실현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햄릿으로서는 건재한 숙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바랄 수 없고, 정당한 명분 없는 살인도 실행하기 어렵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왕위계승의 가능성조차 모두 잃은 상태에서 햄릿의 꿈은 불가능하거나 금지된 욕망일 뿐이다. 정신분석비평에서는 이러한 상태에 놓인 햄릿을 종종 우울(menlancholy)에 사로잡힌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햄릿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마땅한 복수를 지체하는 인물로 해석되어 왔다. 존스(Ernest Jones)가 햄릿 을 이성적 사고보다는 무의식의 힘에 사로잡힌 노예상태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그는 햄릿이 이성에 따라 결단하고 이를 실행을 하기보다는, 어머니를 향한 무의식적 욕망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본다. 인간의 무의식에서 사건의 주요 원인을 찾는 이러한 시도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갈등의 원인을 무의식으로 환원하여 작품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뿐 아니라, 비극의 영웅을 무의식의 노예이자 어머니를 갈망하는 유아기적 인간으로만 평가절하할 우려마저 있다. 돈키호테에게 가치 있는 시간이‘회복’이후가 아닌 광기 아래에 있던 투신의 시기였던 것처럼, 햄릿에게 있어서도 복수의 실행보다는 광기로 내몰리는 극심한 상황에서 분투하며 탐색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햄릿의 광기에 나타난 내적 갈등과 주변의 변화는 비극의 주인공이자 르네상스시대의 영웅으로서 햄릿이 갖는 영향력을 드러낸다.

       1. 어둠 속의 환영― 꿈의 억압과 가장된 광기

    『햄릿』의 배경은 돈키호테가 처한 현실과 마찬가지로 충성심과 질서를 회복해야 할 사회, 다시 말해 이상적 가치가 상실된 세계로 제시된다. 이 극의 첫 막에서 선왕의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선왕의 유령은 이전의 조화롭고 행복했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한편 현실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덴마크 왕국의 현실적인 문제는 호레이쇼와 마셀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임박한 전쟁의 징후와 맞물려 나타난다. 선왕의 유령이 갑옷을 입고 있고, 그의 표정이 노르웨이왕과 싸울 때나 폴란드인들을 물리칠 때와 유사하다는 호레이쇼의 묘사는 나라에 있을 불길한 징조를 암시한다. 이는 노르웨이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룬다. 노르웨이에는 정의와 명예에 대한 열망이 팽배해져 있고, 왕자 포틴브라스의 강력한 지도력이 발휘되고 있다. 그는 삼촌이 왕위를 계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군사를 일으킬 뿐 아니라 선왕의 패전으로‘기사도의 법’에 따라 덴마크에 넘어간 땅의 일부도 점령해 되찾으려 한다. 그의 군사적 용맹과 주저 없는 행동은 고전적 영웅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구질서가 보존되는 전통적 공간으로서의 노르웨이를 부각시킨다. 햄릿은 이러한 포틴브라스의 용맹과 충성심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스스로는 이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재혼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위를 되찾는 이전 시 대의 영웅적 행동을 막는 복잡한 갈등의 요소를 파생시키기 때문이다. 이 결과 햄릿은 포틴브라스에 비해서 더욱 근대적인 인물로서 복잡한 시대 상황과 인간사의 다양한 갈등을 드러내며 영웅적 분투를 예시하게 된다.

    햄릿이 겪는 갈등이 구체화되는 것은 선왕의 유령이 등장함으로 인해서이다. 암스트롱(Philip Armstrong)은 셰익스피어가 아믈렛의 전설(Amleth legend)이나『햄릿』의 초기 버전에는 없던 유령의 등장 장면을 삽입한 것에 대해 존스와 랭크(Otto Rank),두 비평가의 논의를 들여와 설명한다. 존스가 셰익스피어의 수정을“외적 투쟁에서 내적 비극으로 극을 변모시키려는 의도”로 평가했다면, 랭크는“늘어가는 정신신경증의 본성”(the increasingly psychoneurotic nature)으로 인해“정신분석적 세련화”(psychoanalytic sophistication)가 나타나고 또 필요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암스트롱은 이들의 해석을 토대로 셰익스피어의 수정은 카타르시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을 갱신한다고 평가한다. 문명이 복잡해짐에 따라 공포와 불안 역시 더 강렬하게 억압되는데,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공포를 예술적 창작을 통해 억압하고 드러내면서 결과적으로 자신과 사회의 심리적 위생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암스트롱은 비극의 사회적 가치와 정신분석의 개인적 효용은 상호 유사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 둘 모두가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자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억압된 것들을 안전하게 충족시켜 정신위생을 이끈다고 설명한다(28, 9). 암스트롱의 지적과 같이 유령의 등장은 햄릿의 억압된 욕망을 러내는 장치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을 건전하고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분투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유령이 등장함으로써 햄릿은 자신의“예언하는 영 혼”(prophetic soul)을 확인하면서도, 단순한 실행보다는 사회적 승인과 이상적 달성 방안을 모색하며 분투하는 것이다.

    선왕의 유령을 따라간 햄릿은 광증에 내몰리지만, 이것은 호레이쇼의 우려와 같이“이성의 통치권”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에서 이성을 통 해 광기를 통제하고 활용하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유령과의 만남은 자신의 억압된 열망을 드러내고 이를 안전하게 성취할 방안을 의식적으로 모색하는 계 기가 되는 것이다. 스코필드(Scofield Martin) 역시 유령의 마지막 말이“복수 하라”가 아니라“나를 기억하라”로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며, 유령이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아들을 통제할 뿐 아니라 사적인 차원을 넘어 정의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144). 유령과의 대화 도중에는 빠른 복수를 약속했지만(1. 5. 28-30), 유령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 후에는 행동이 지연되는 것 역시 이와 관련되 어 해석할 수 있다. 햄릿은“상상력으로 필사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긴”(1. 4. 87) 했지만, 아버지를 기억함으로 인해 어머니는 헤치지 않고, 클로디어스에게 회개 의 기회를 주지 않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져와야 함을 인지한다. 또한 그는 왕 자이자, 연인, 학자이자, 군인으로서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욕망과 갈등을 해 결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어머니를 되찾고 싶은 욕망 뿐 아니라, 왕위를 계승 하려는 의지, 오필리아를 정직하고 순결한 연인으로 곁에 두고자 하는 뜻이 그 의 내면에 공존해 있다. 이러한 강렬한 욕망으로 인해 햄릿은 진실을 은폐하거 나 왜곡하여 자신을 훼방하는 이들을 단호하고 과감하게 처단한다. 이 점을 고 려할 때, 햄릿의 광기어린 대사는 자신의 욕망을 은폐하기 위한 무의미한 독백 이 아니라, 주변 인물의 각성을 촉구하고 그들의 행동과 사고를 교정하기 위한 의도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햄릿의 내면에는 선왕의 복수를 넘어서 는 다양하고 상충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은 클로디어스의 죽음 이전 에 주요 사건들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되찾고자 하는 햄릿의 욕망은 거트루드의 성욕(sexuality)에 대한 비난으로 표현된다. 리즈의 지적과 같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햄릿은 어머니의 우선적인 관심이 자신을 향하리라는“오이디푸스적인 감정”(oedipal feelings)을 느낀다. 하지만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와 재혼하고 성적 만족을 누리며 햄릿을 여전히 부차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햄릿은 이에 대한 분노를 어머니의 침실에서“부친과 같은 존재”즉 폴로니어스를 살해하는 것으로 표출한다(82). 어머니를 되찾으려는 햄릿의 욕망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그의 연인 오필리어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로니어스의 죽음에 햄릿이 동정이나 후회를 표하지 않는 것은, 왕위계승과 오필리어와의 진실된 관계 유지에 있어 폴로니어스가 미친 부정적인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욕망이 좌절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뿐 아니라, 왕권과 사랑을 향한 햄릿의 열망을 훼방한 것에 대한 처벌이라고 볼 수 있다.

    햄릿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 클로디어스를 죽이기 전에, 연인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면서 그의 광기는 더욱 격심해 지고 주변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필리어를 향한 그의 비난과 그 결과 오필리어가 정신 이상(mental breakdown)을 보이면서 자살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햄릿은 오필리어를 사랑하고 그녀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오필리어는 오빠 레어티스 뿐 아니라 아버지 폴로니어스로부터도 정절을 당부 받는다. 거짓없는 정절을 유지하면서도 한결같이 햄릿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버지 폴로니어스로부터 왕자의 맹세를 믿어 몸을 허락하는 일이 없도록 왕자를 멀리해야 한다는 당부를 받았기 때문에, 오필리어는 햄릿을 외면하고 그의 욕구를 거듭 좌절시키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폴로니어스의 의도대로 이는 햄릿의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매우 파괴적이다.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로 인한 억압과 좌절에 시달려 온 햄릿에게 오필리어의 거부는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초래하여, 애정의 철회선언으로 이어진다. 오필리어를 향해 햄릿이, “얼음처럼 순결하고 눈처럼 순수해도 비방을 면치 못할 것”(3. 1. 136-37)이라고 비난하고, “사랑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의 욕망을 방증한다. 이처럼 강한 열망은 오필리어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잃고 연인으로부터도 버림받지만, 사랑을 되찾고 가족의 위로를 얻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햄릿은 냉담하고 어머니에 상응하는 인물 거트루드는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되고 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오필리어의 정신 이상과 자살은, 왕권과 어머니, 그리고 연인을 향한 햄릿의 강렬한 열망을 변주할 뿐 아니라, 그녀 안에 감춰진 욕망을 일깨우고 표출하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2. 소망 성취와 꿈의 허용― 왕위 혹은 죽음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는 것의 당위성을 확인하고 그 실천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광기 속에 갈등하면서 자살까지도 고려하지만, 자살로 꿈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이상을 성취해야 함을 깨닫는다. 잠과 죽음, 그리고 꿈과 사후세계에 대한 햄릿의 독백에서는 이와 같은 사색이 드러나고 있다.

    햄릿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를 고통을 견뎌내는가 아니면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인가로 구분한다. 사는 것이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것 즉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라면, 죽는 것은 저항과 파괴 그리고 자멸로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햄릿이 살아 있음으로 인해 견뎌야 하는 것들로 열거하는 것은 돈키호테가 겪은 고난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시대의 채찍과 비웃음, / 압제자의 과오, 교만한 자의 무례한 언동, / 가치 없는 사랑으로 인한 고통, 법의 늑장, / 관리의 무례함, 끈기 있는 공적이 / 무가치한 자들로부터 받는 경멸”(3. 1. 70-74) 등은 돈키호테가 경험한 조롱과 압제, 고통, 그리고 비난과도 닮아 있다. 돈키호테가 온갖 멸시와 조롱, 반대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 택을 견지하듯, 햄릿 역시 삶을 지속하면서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뎌낸다. 단순하게는 죽음이 더 쉬운 선택이고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이지만, 햄릿은 이것이 죽음 이후 닥쳐올 수 있는 악몽을 간과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현실의 고통과 좌절을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죽음 역시 안식이 아닌 또 다른 절망적 꿈의 세계가 될 것임을 인지한다.

    죽음과 잠, 꿈의 세계에 대한 명상을 토대로 햄릿은 욕망과 그로 인한 갈등의 해결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수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것은 검술에 뛰어난 레어티스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레어티스와의 검투가 확정된 것은 햄릿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는 비겁하게 도전을 피하기보다는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에도 명예롭고 용감하게 이를 받아들인다. 리즈의 지적과 같이, 햄릿은 지구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탁월함을 인지하고 자신의 생명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지만, 다가오는 죽음은 비겁하게 피하려 하지 않는다(209). 돈키호테가 한결같이 기사도의 부흥을 위해 투신한 것처럼, 햄릿 역시 왕국과 가정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분투를 멈추지 않는다. 햄릿이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레어티스와 대결하여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클로디어스를 죽여 복수를 마무리하고, 호레이쇼에게 왕국의 미래를 위한 당부의 말을 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분투는 지속된다. 그는 개인적 욕망을 성취할 뿐 아니라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영향력 있는 영웅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햄릿은 자살의 유혹을 이겨내고 명분이나 실리가 없는 살인의 기회도 피하면서, 어머니를 되찾고, 사랑을 확인하며, 왕국의 개선을 열망하는 자신의 꿈을 확인한다. 광기 속에서도 이성을 유지하여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왕국의 질서와 안위를 되찾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햄릿의 비극적 죽음이 진정한 영웅적 선택임을 시사한다. 햄릿에게 있어서 죽음은 현실과 꿈을 화해시키고, 악몽으로부터 왕국을 구원하며, 미치고싶고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삶에 광기를 잠재우는 최후의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IV. 나오는 말

    돈키호테의 깨어 있는 꿈과 햄릿의 죽음과도 같은 광기는 현실에서는 금지되어 있으나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상세계에 대한 인간의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고 그 실현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꿈과 광기를 통해 희구하는 세계를 경험한 돈키호테와, 광증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행동의 동인을 얻은 햄릿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욕망이 발현되고 강력하게 추구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엘만(Maud Ellmann)은 문학 작품 속의 인물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창작자의 감응(fascination)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문학 속의 인물을 정신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음을 지적한바 있다(3,4). 기사를 자처하는 돈키호테가 실제의 정신병자가 아니고, 폴로니어스를 죽인 햄릿이 무도한 살인자가 아닌 것처럼, 정신분석비평을 문학의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햄릿의 꿈과 광기가 인간의 행동 저변에 담긴 강력한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이 개인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동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의 광기와 꿈, 그리고 욕망이 문학적 맥락 안에서 이해될 때 그 진정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돈키호테의 꿈은 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 속에서 사실적으로 제시되는 주인공으로 인해 의미를 지니고, 햄릿의 광기 역시 르네상스시대 비극 안에서 내적으로 분투하는 영웅에 의해 가치를 갖는다. 요컨대 돈키호테와 햄릿은 꿈과 광기를 통해 이상세계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를 실천하려 한 영웅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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