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에 의하면 2012년 기준으로 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가 10년째 자살율 1위의 불명예를 차지했다고 한다1). 2014년 11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에서, 자살은 남성의 사망원인 중 4위, 여성의 사망원인 중 6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0대부터 50대까지의 사망 3대 원인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2). 이 조사에 의하면 사망원인 중 ‘고의적 자해(자살)’로 인한 사망은 1990년 3,251명에서 2013년 14,427명으로 4.4배 이상 증가 하였다2).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국가적 대책으로 2011년 3월 30일부터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입법화되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30일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공포하여, 자살 예방을 위한 자살실태조사와 자살예방센터 설치와 업무 등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살예방 상담 교육기관의 범위에는 의료법으로 정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인 ‘한방병원’도 포함되어 있으나3), 이를 위한 한의학 연구와 구체적 시행 방안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한국한의학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전통의학정보포탈(OASIS)4)과 특허청 소속의 한국전통지식포탈5)에서 ‘자살’, ‘자해’, ‘suicide’를 keyword로 검색한 결과, ‘자살’과 관련된 한의학 연구는 한 건도 없었다. 우울증의 한방적 이해에 관한 문헌고찰6), 불안 및 불안병증에 대한 한의학적 연구7) 등 자살의 원인이 되는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질환에 대한 논문은 있었으나 ‘자살’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저자는 국민의 보건과 정신 건강을 담당하는 의료인으로써 자살예방을 위한 한의학적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의보감(東醫寶鑑)』8)에 근거한 자살관련 문헌과 한의학적 인간관 그리고 ‘자살’ 예방과 치료를 위한 한의학적 접근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자살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으로, Crosby는 ‘죽고자 하는 어떤 의도를 지닌 자해행동에 의해 유발된 죽음’을 자살이라고 정의내렸다9). 다른 원인으로 죽는 것과 자살을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자살의도(sucide attempt)’이다. 자살의도는 죽으려는 목적으로 자행된 잠재적 상해를 입힐만한 행동으로, 실제 시도가 성공했을 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9).
자살에 이르는 과정은 대부분 3단계로 알려져 있다.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사고단계(1단계)’, 자살의 유혹이 강렬해져 구체적인 자살계획을 세우게 되고 금방이라도 자살여부를 결정해야할 것 같은 갈등을 느끼는 ‘계획단계(2단계)’, 자살을 결정하고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자동조종단계(3단계)’로 진행된다10).
자살이란 수없이 많은 요소가 극도로 복잡한 유기적 연관성을 갖는 현상들의 최종 산물이기 때문에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살의 원인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정신장애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11).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자살사고를 지니고 있는 환자의 경우 병력을 자세히 청취하고 정신상태 검사를 통해 자살 위험을 평가해야 하며, 자살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하던 환자가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침착해진다면 곧 자살시도를 할 징후이므로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자살사고를 갖고 있는 환자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들을 제시하며 고통을 유발한 환경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환자의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다면 즉각적으로 폐쇄병동에 입원시켜야 한다11).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현대 의학적으로는 직접적인 형태의 정신치료를 이용한 상담치료를 통해 환자의 의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약물치료를 병행하여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심한 우울증 망상이 있다면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한다11).
2. 한의학적 자살의 의미와 예방 및 치료방법 -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중심으로
1) 『동의보감(東醫寶鑑)』 소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610년 왕실 태의(太醫)였던 허준(許浚)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25권 25책의 백과사전적 의서이다. 중의학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의 실상에 맞게 확립된 한의학을 집대성한 임상 실용서적으로, 한의학적 내용을 당시의 도가철학이나 유가사상과 접목하여 심신(心身)을 통합적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관점으로 편집하였다. 특히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있어서 정기신(精氣神) 사상은 심신이 불가분의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적 일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12).
2)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보이는 ‘자살’에 대한 인식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래와 같은 몇가지가 있다.
(1) 『雜病篇ㆍ救急門ㆍ救自縊死」
(2)「湯液篇ㆍ禽部ㆍ丹雄鷄肉ㆍ朱雄鷄冠血」
(3)「雜病篇ㆍ解毒門ㆍ蠱毒治法ㆍ太乙紫金丹」
(4)「雜病篇ㆍ解毒門ㆍ救諸中毒方」
- 이상과 같은 부분들을 통해 당시에 ‘자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나, 자살의 원인을 고찰하거나 이에 대한 치료법을 따로 만들어 논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3) 『동의보감(東醫寶鑑)』에 근거한 한의학적 인간관
본 논문에서는 한의학에서의 ‘자살’에 대한 고찰하기 위해 먼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나타난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인간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생명중시, 관계중심 사상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편 도입부를 인체의 기능 위주로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표현한 측면도인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로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內景篇ㆍ身形藏府圖」
天有十二時, 人有十二經. 怴天有二十四氣, 人有二十四兪. 天有三百六十五度, 人有三百六十五骨節. 天有日月, 人有眼目. 天有晝夜, 人有寤寐. 天有雷電, 人有喜怒. 天有雨露, 人有涕泣. 天有陰陽, 人有寒熱. 地有泉水, 人有血怴. 地有草木, 人有毛髮. 地有金石, 人有牙齒. 皆稟四大ㆍ五常, 假合成形.” 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사이에 사람은 가장 귀(貴)한 존재다.’ 라고 한 것은 한의학에서 인간에 대한 생명중시 사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한의학의 원전이라고 하는 『황제내경 소문(黃帝內經 素問)』13)에서도 ‘만물가운데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라고 한 것과 손 등14)이 ‘한의학에서의 생명에 대한 이해’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고, 발이 모난 것은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천인상응론으로서 관계중심적 인간상을 말하는 것으로 자연계와 인간계가 상응하여 인체의 여러 변화가 자연계의 변화에 맞추어 발생하며, 인체는 자연을 닮은 ‘소우주(小宇宙)’라는 자연과의 관계, 사람사이의 관계에서의 관계중심적 사고를 표현하였다.
(2)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생명의 3요소 ‘정기신(精氣神)’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편에서는 인체생명의 근원을 ‘정기신(精氣神)’이라는 3요소라고 하여, 인체의 오장육부와 육체의 구조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요소로 보았다.
한의학에서 ‘정(精)’은 인체활동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 핵심 에너지를 표현한 것으로, 만물이 정기(精氣)로부터 태어난다고 보았다. ‘기(氣)’는 인체와 우주를 구성하며, 인체의 생명활동을 추동하는 작용을 한다. ‘신(神)’은 만물의 작용을 주재하는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협의로는 인체의 정신ㆍ사유활동을 의미한다11). 『황제내경 소문(黃帝內經 素問)』13)에서는 “根于中者,命曰神機, 神去則機息.”라고 하여 신이 떠나가면(형체가) 그 작용을 멈춘다고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오진편(悟眞篇)』 주해를 인용하여 “悟眞篇註曰,人之一身,稟天地之秀氣而有生,託陰陽陶鑄而成形. 故一身之中,以精氣神爲主,神生於氣,氣生於精,故修眞之士,若執己身而修之,無過煉治精氣神三物已.”
또한 구선(仙)의 『활인심법(活人心法)』을 인용하여 “臞仙曰,精者身之本,氣者神之主,形者神之宅也. 故神太用則歇, 精太用則竭,氣太勞則絶,是以人之生者神也. 形之托者氣也. 若氣衰則形耗,而欲長生者未之聞也. 夫有者因無而生焉. 形者須神而立焉. 有者無之館,形者神之宅也.⋯夫神明者生化之本,精氣者萬物之體,全其形則生,養其精氣則性命長存矣.”
따라서 수명의 차이도 정기신(精氣神)을 잘 보존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품부받은 만큼 제 수명을 살기 위해서는 정기신(精氣神)을 아껴 살아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3)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타난 신형일체(神形一體) 관계
한의학에서는 특히 신체적인 요소인 ‘형(形)’과 정신작용의 측면에서의 ‘신(神)’의 상관관계를 중요시하였다. ‘형(形)’이란 인체 생리기능의 외적인 표현이며, ‘신(神)’이란 넓게는 인체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신활동의 측면에만 국한시켜 생각해본다면 ‘의식, 사유, 감정’ 등으로 나타난다11,14).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내경(內經)』을 인용하여 “太上養神,其次養形. 故養神者,必知形之肥瘦,榮衛血氣之盛衰. 血氣者,人之神,不可不謹養也. 註云,神安則壽延,神去則形弊. 故不可不謹養也.”
외적인 표현으로 형체(形)가 건강하면 정신활동(神)이 왕성하고, 신(神)이 없으면 형체(形)가 무너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본 것이다. 따라서 정신활동의 측면에서 ‘신(神)’의 이상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라고 하여도 ‘형(形)’과 연관지어 신체를 치료함으로써 정신질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한의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11).
‘신(神)’은 ‘心藏神’이라고 하여 기본적으로 심장(心)의 통솔을 받지만 오장(五臟)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신(神)이 각각의 장부에 배속되어 ‘혼신의백지(魂神意魄志)’, 혹은 ‘혼신의지백지정(魂神意智魄志精)’으로 인간의 의식활동을 다섯가지(五神), 혹은 일곱가지(七神)로 나눌 수 있다고 하여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內經曰,五藏所藏,心藏神,肺藏魄,肝藏魂,脾藏意,腎藏志. 又曰,脾藏意與智,腎藏精與志,是謂七神. 註云,神者,精氣之化成也. 魄者,精氣之匡佐也. 魂者,神氣之輔弼也. 意者,記而不忘者也. 志者,專意而不移者也. 靈樞曰,兩精相薄謂之神,隨神往來謂之魂,並精出入謂之魄,心有所憶謂之意,意之所存謂之 志,因慮而處物謂之智也.”
또한 인간의 감정 표현양식을 한의학에서는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의 ‘칠정(七情)’으로 표현하는데,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神이 七情을 거느리고 있어 七情이 과하면 오장을 상하게 하여 병이 든다고 하였고, 七情 각각이 과도했을 각각 질환이 발생한다고 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心藏神,爲一身君主,統攝七情,酬酢萬機,七情者,喜怒憂思悲驚恐也. 又魂神意魄志,以爲神主,故亦皆名神也.”
(4)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예방중심적 치료관 (治未病, 以道療病)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人身猶一國”
또한 “又曰,至人治於未病之先,醫家治於已病之後,治於未病之先者,曰治心,曰修養,治於已病之後者,曰藥餌,曰砭焫,雖治之法有二,而病之源則一,未必不由因心而生也.”
이처럼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병을 치료할 때, 이미 병이 온 후에는 막기 어려우니 예방이 중요하다는 ‘治未病’을 강조하였다. 또한 形-神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몸(形)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항상 먼저 마음(神)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마음의 수양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이도요법(以道療病)’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대표적으로 정신활동에 대해 정리한 ‘신문(神門)’의 순서를 보면, 먼저 질환을 말하기 보다는 신체와 정서(七情)가 생리적인 상태에서 병리적인 상태로 변하는 과정을 비교하여 그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후 질환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이를 통해 ‘治未病’을 중시하였던 예방 중심적 치료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商法治驚’, ‘五志相勝爲治’ 등 감정 조절을 통해 신체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以道療病’을 중심으로 하는 치료적 접근이라고 보인다.
- 요약하면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인간관에서는 인체를 자연과 상응하는 귀중한 존재로 인식하여 그 기본 구성요소가 되는 ‘정기신(精氣神)’을 아껴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특히 ‘형(形)’과 ‘신(神)’관계를 중시하여 ‘신기(神氣)’의 조절을 통한 형체의 보존을 강조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일상생활에서는 ‘신기(神氣)’의 통솔을 받는 ‘칠정(七情)’이 병리적인 상태로 변하지 않도록 미리 마음을 먼저 다스려 예방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4)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자살’의 이해
이처럼 25권 25책의 방대한 분량의 『동의보감(東醫寶鑑)』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나 그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숙고해보고자 하는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인체를 귀중하게 여기는 인간관으로 인해 ‘자살’을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금기시하였던 이유 때문으로 사료된다.
본 논문에서는 현대의학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자살’의 원인을 먼저 한의학적으로 고찰해보고, 이를 통해 예방 방법, 치료적 관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자살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있을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크게 생물학적 원인, 심리학적 원인, 사회학적 원인, 정신장애와 관련된 원인이다11).
(1) 자살의 생물학적 원인은 자살에 대한 가족력이 있다는 가계 연구를 통해 연관성이 밝혀져 있다. 우울증, 정신분 열병, 양극성 장애, 알코올 의존과 같이 자살에 흔히 수반되는 정신질환들은 유전성과 관련이 깊다10).
한의학적으로 인체의 핵심 에너지를 ‘정(精)’이라고 하는데, 내경에서는 출생 시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의 정(先天之精)’과 곡기를 통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후천의 정(後天之精)’으로 나누었다. 인체의 정신활동을 의미하는 ‘신(神)’은 ‘선천의 정’으로부터 생성되어 ‘후천의 정’의 자양을 받아 생명력을 유지한다. 따라서 ‘정(精)’이 풍족하면 ‘신(神)’의 활동도 왕성해지고, ‘정(精)’이 부족하면 ‘신(神)’의 정상기능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여 ‘정-신(精-神)’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였다15).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神爲一身之主(신은 우리 몸의 주인이다.)”
이를 통해 『동의보감(東醫寶鑑)』 시대에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형질(gene, 先天之精)과 정신활동(神)이 연관 있으며, 선천적 유전형질의 이상이 정신기능의 이상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같은 유전형질을 지닌 쌍둥이라 하더라도 환경적인 영향을 받아 정신질환의 발병에는 차이가 있다는 연구를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개념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정(精)’을 몸의 근본이자 지극한 보배로 생각하였으며, ‘정(精)’을 지키기 위해서는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하며 마음을 다스려 신체적 질병을 예방하는 ‘이도요법(以道療病)’의 수련을 강조하였다.
(2) 심리학적으로는 자살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두 가지는 정신 역동적 이론과 인지 행동적 이론이다. 정신 역동적 이론에서 S. Freud는 자살을 양가감정의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 공격으로서 자신에게로의 공격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으며, 인지행동적 이론에서는 자살하려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부적응적 대처기술을 행동적으로 소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10). 결국 자살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여 일어난 내면적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갈등상황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외부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칠정(七情)’으로 표현하고, 그것이 지나치면 ‘기(氣)’의 흐름에 변화를 일으켜 ‘장부(臟腑)’의 병리적 상황까지 발생시킨다고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칠정변화로 인한 병리적 기의 변화를 ‘칠기(七氣)’, ‘구기(九氣)’로 표현하였고, “怒則氣上,喜則氣緩,悲則氣消,恐則氣下,寒則氣收,炅則氣泄,驚則氣亂,勞則氣耗,思則氣結,九氣不同,何病之生,岐伯對曰,怒則氣逆,甚則嘔血及飱泄,故氣上矣. 喜則氣和志達,榮衛通利,故氣緩矣. 悲則心系急,肺布葉擧而上焦不通,榮衛不散,熱氣在中,故氣消矣. 恐則精却,却則上焦閉,閉則氣還,還則下焦脹,故氣不行矣. 寒則腠理閉,氣不行,故氣收矣. 炅則腠理開,榮衛通,汗大泄,故氣泄矣. 驚則心無所倚,神無所歸,慮無所定,故氣亂矣. 勞則喘息汗出,內外皆越,故氣耗矣. 思則心有所存,神有所歸,正氣留而不行,故氣結矣.”
따라서 항상 마음을 수련하여 감정을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감정이 치우쳤을 때 치료법으로는 “오지상승위치(五志相勝爲治)”라 하여 각자의 감정을 상극관계를 통해 서로 승(勝)하게 하여 조절할 수 있다고 하였다. “內經曰,肝在志爲怒,怒傷肝,悲勝怒,心在志爲喜,喜傷心,恐勝 喜,脾在志爲思,思傷脾,怒勝思,肺在志爲憂,憂傷肺,喜勝憂,腎 在志爲恐,恐傷腎,思勝恐.”
(3) 사회학적으로는 자살을 개인의 특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친구들과 같은 중요한 관계로부터 고립되는 경우, 예후가 좋지 않은 신체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 실업자의 경우 등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에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사회적 지위 변화로 인한 ‘우울감’과 함께, 타인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면서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는 ‘절망’을 느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우울’이다10). 아론벡(Aaron Beck)은 자살행동의 연구에서 ‘우울’이라는 정서적 요인이 통제된 상태에서는 ‘절망’이라는 인지적 요인이 결합되었을 때 자살과 더욱 상관성이 높다고 하였다9).
『동의보감ㆍ신문(東醫寶鑑ㆍ神門)』에는 ‘탈영실정증(脫營失精證)’
(4) 정신장애와 관련된 요인으로, 기분장애, 물질사용장애, 알코올 의존장애 같은 정신장애나 정신분열증, 성격장애 같은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살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자살 사망자의 90%가 정신질환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었으며 이 중 가장 흔한 진단이 59~87%를 차지하는 ‘주요우울장애’였다10).
한의학적으로는 자살과 관련성이 높은 정신장애와 유사한 개념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기분장애와 유사한 것은 ‘기분이 안정되지 않고 쉽게 화를 내거나 우는’ 증상을 보여 현대의학의 갱년기장애, 우울증과 비슷한 범주로 생각되는 ‘울증(鬱證)’11)과 ‘공연히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여’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증상을 보이는 ‘부인장조증(婦人臟躁症)’11)이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도 기록되어 있는 ‘전광(癲狂)’11)은 현대의학의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장애와 유사한 면을 보이는 질환이며,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질환을 의미하는 ‘주상(酒傷)’11)은 오래되면 ‘怔忡不寐’ 및 ‘昏狂忘懼’하는 현상을 일으킨다고 기록되어 있어 알코올로 유발된 정신병적 장애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정신장애는 한의학에서 ‘울증(鬱證)’, ‘부인장조증(婦人臟躁症)’, ‘전광(癲狂)’, ‘주상(酒傷)’ 등의 범주로 보고 한방적 변증을 통해 치료적 접근을 해볼 수 있겠으나, 환자의 체질과 질환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치료적 접근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 본 논문에서는 자살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주요우울장애’에 해당하는 한방적 개념인 ‘울증(鬱證)’에 대해서만 고찰하기로 한다.
현대의학에서는 기분장애의 범주에 속하는 우울증(주요우울장애)의 증상과 한의학에서 情志不舒로 인해 氣機가 鬱滯되어 발생하는 ‘울증(鬱證)’의 증상(心情抑鬱, 情緖不寧, 胸部滿悶, 脇肋脹痛, 惑易怒欲哭, 惑咽中如有異物梗塞.)이 서로 비슷하여, 임상에서는 울증(鬱證)을 우울증을 비슷한 개념으로 보고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울증 치료시에는 ‘이기개울(理氣開鬱)’을 원칙으로 하여 변증에 따라 탕약으로 치료한다고 하였으며11),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교감단(交感丹), 목향균기산(木香勻氣散), 목향조기산(木香調氣散), 상하분소도기탕(上下分消導氣湯) 등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 종합하자면 자살의 현대학적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 심리학적 원인, 사회학적 원인, 정신장애와 관련된 원인 등이 있으며, 한의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정기신(精氣神)’의 조화와 ‘칠정(七情)’ 조절을 통해 ‘형(形)’과 ‘신(神)’의 균형을 맞추어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여야 한다. 질병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한방변증을 통한 침구치료와 탕약치료를 이용해야하며, 심리치료의 방법으로는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 등을 적용하여 치료해 볼 수 있다.
1.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구급문(救急門)」의 “自縊死者⋯”, 「탕액편ㆍ금부(湯液篇ㆍ禽部)」의 “自縊死⋯”, 「해독문(解毒門)」의 “自縊⋯”, “人遇事急智盡術窮或爲人所陷始自服毒⋯”등 몇가지 기록을 통해 ‘자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나, 자살의 원인을 고찰하거나 이에 대한 치료법을 따로 만들어 논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2.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인간관에서는 인체를 자연과 상응하는 귀중한 존재로 인식하여 그 기본 구성요소가 되는 ‘정기신(精氣神)’을 아껴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특히 ‘형(形)’과 ‘신(神)’관계를 중시하여 ‘신기(神氣)’의 조절 통한 형체의 보존을 강조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일상생활에서는 ‘신기(神氣)’의 통솔을 받는 ‘칠정(七情)’이 병리적인 상태로 변하지 않도록 미리 마음을 먼저 다스려 예방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간중심적, 관계중심적 한의학적 사고가 환자와 치료자간의 관계성 확립을 위한 안전의 장 구축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3. 이처럼 『동의보감(東醫寶鑑)』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나 그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숙고해보고자 하는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인체를 귀중하게 여기는 인간관으로 인해 ‘자살’을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금기시하였던 이유 때문으로 사료된다.
4. 한의학적 관점에서 ‘자살’의 원인과 그에 따른 예방 및 치료방법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살의 생물학적 원인은 한의학에서는 ‘정-신(精-神)’ 연관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생물학적 요인이 있는 경우 예방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섭생을 통해 후천(後天)의 정(精)을 보전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이도요법(以道療病)’의 수련을 통해 ‘정신보전(精神保全)’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2) 자살의 심리학적 원인은 한의학에서 과도한 ‘칠정(七情)’자극으로 기의 병리적 변화가 일어나 장부손상에 이르게 된 상태와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 항상 마음을 수련하고, 감정이 치우쳤을 때는 치료법으로 오지(五志) 상극관계를 통해 서로 승(勝)하게 하여 조절하는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을 이용할 수 있다.
(3) 자살의 사회학적 원인은 한의학에서는 사회적 지위 변화로 인해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발생하는 ‘탈영실정증(脫營失精證)’과 연관지어볼 수 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이미 병이 발생한 것이므로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 가감진심단(加減鎭心丹), 승양순기산(升陽順氣湯), 청심보혈탕(淸心補血湯) 등 탕약으로 치료한다고 하였다.
(4) 자살의 정신장애와 관련된 요인으로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울증(鬱證)’, ‘부인장조증(婦人臟躁症)’, ‘전광(癲狂)’, ‘주상(酒傷)’ 질환의 범주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우울증과 관련있는 ‘울증(鬱證)’의 경우 ‘이기개울(理氣開鬱)’을 원칙으로 하여 변증에 따라 교감단(交感丹), 목향균기산(木香勻氣散), 목향조기산(木香調氣散), 상하분소도기탕(上下分消導氣湯) 등 탕약으로 치료한다. 심리치료로는 내경에 기록된 ‘정(精)을 움직여서移) 기분(氣)을 바꾼다(變)’는 뜻에서 유래된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을 이용하여 환자의 정신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 현시대, 자살의 예방을 위해서는 현대의학적 차원의 접근 뿐만 아니라 생명을 귀하게 인식한 한의학적 인간관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기신(精氣神)’, ‘형-신(形-神)’ 균형을 유지하려는 심신통합적 치료관점과 治未病, 以道療病의 예방중심적 치료관, 그리고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과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을 통한 치료적 개입을 통해 자살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과 임상적 적용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