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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의 이데올로기와 복식 Dress and Ideology during the period of 4.19 Revolution and the 5.16 Coup in the early 1960s Korea
ABSTRACT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의 이데올로기와 복식

Ideology which symbolizes the belief system about the order of human society represents itself in a concrete form through dress which reflects material and conceptual world. In the early 1960s Korea, where a civil revolution and a military coup took place, good examples of dress representing ideology could be found.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ress representing ideology of the period, and examines its manifestation and aspect of transition. Literature survey and case study were conducted.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First, dress representing ideology was symbolically verifying its differences and was changing with the course of time. There were the flow going down from the government, and the flow going up from the movement of the civilian. Through this process, design elements of ideological dress were combined in a dialectic way to form a new representational dress such as Jaegunbok. Second, costly and luxurious clothes meant a tool to rule over people, and the opposition was uniform meaning equality. In 1960 Korea, black waves of school uniforms appeared to lead the social change. A year later, the military government seized power in a 5.16 coup and it enforced uniform upon every people to achieve equal austerity and modernized spirit. Lastly, cotton, which was originated from Gandhi’s movement in India, was symbolizing nationalism till the early 1960s in Korea meaning the funding own development with own resources.

KEYWORD
복식 표상 , 이데올로기 , 4.19 혁명 , 5.16 군사정변 , 재건복
  • 1. 서 론

    인간 사회의 기술, 사회구조의 토대 위에 사회의 질서에 대한 신념 체계를 상징하는 단어인 이데올로기(Hamilton, 1987)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를 반영하는 복식 표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것을 반영하는 사회 변천의 거울로서의 복식 표상은 매 시대마다 나타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격변기였던 1960년대 초반에도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에 등장했던 프리지아 보넷, 삼색, 상퀼로트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다양한 복식 표상들이 등장했으며, 그 착용자들은 특이한 이마쥬를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표상으로서 복식은 대응하는 물질적 차이와 개념적 차이의 체계를 전달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상징적인 방식으로 증명했다.

    20세기 한국 복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크게 근대화, 국가주의, 페미니즘, 체제저항의 주제로 분류되어 연구되었다. 근대화는 미국화, 서구화와 유사한 용어로 사용되면서 한복(韓服) 개량과 양장(洋裝)으로의 변천이라는 소재로 나타났다. Choi(1962)의 연구를 시작으로 Hong(1990), Keum et al.(2002), Kim et al.(1993), Park(1993) 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2000년도 이후에는 문화 접변, 미국화·탈미국화, 규율권력의 틀로 분석되었다(Ahn, 2001; Choi, 2009; Sung, 2001). 국가주의적 도구로서 복식은 주로 일제 강점기의 국민복과 백의탄압, 몸뻬에 대해 조명되었다(Ahn, 2007; Gong, 2005). 그 밖에도 페미니즘 시각의 연구와 체제 저항 학생 운동의 복식 연구가 수행되었다(Choi, 2000; Gan, 1998).

    이상과 같은 선행연구에서 다각도의 접근이 이루어졌으나 사회 변동과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극적 대립 양상이 복식으로 표상되었던 1960년대 초반을 주목한 연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으며, 1962년 그 모습을 드러낸 중산복, 마오복, 인민복과 유사한 형태의 한국의 재건복에 대한 연구나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Kim et al.(1993)은 재건복을 정치적 변화보다는 이념적 측면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며 연구 과제를 남긴 바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4.19 시민 혁명과 5.16 군사정변이라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1960년대 초반에 주목하였으며, 이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 해방 이후인 1945년에서부터 제3공화국으로의 민정이양 시기인 1963년까지 한국 사회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적 복식 표상을 각 시기별로 살펴보고, 복식 표상의 발현과 그 변화, 갈등, 소멸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문헌 연구와 사례 연구를 병행하였다. 사례 연구 자료로서 신문, 잡지, 사진집, 정부 문서 등의 1차 자료와 서적, 논문 등의 2차 자료를 활용하였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로는 광복 후부터 제1공화국, 4.19 혁명, 제2공화국, 5.16 군사정변, 그리고 1963년 대통령 선거를 통한 민정이양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4.19 혁명은 4·19 혁명 공식 법인(http://www.419revolution.org)의 용어로, 5.16 군사정변은 국사편찬위원회(http://contents.history.go.kr)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데올로기가 표상된 복식의 연구는 사회를 읽을 수 있는 문화 코드에 대한 연구이다. 사회 질서를 위해 배치된 지배 이데올로기적 복식들과 변화를 요구하는 갈등 관계에 있는 대항 이데올로기적 집단의 복식을 함께 살펴보면 그 사회가 변화하는 방향이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이원적 혹은 다원적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복식 표상 연구를 통해 현대 한국 복식사 연구에 있어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으로 복식과 사회를 바라보는 개념틀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당시 대한민국 사회와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2. 4.19 혁명 시기 사회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표상된 복식 사례 고찰

       2.1. 광복 후부터 4.19 혁명까지: 마카오 신사·홍콩양단과 검은 교복물결

    광복 후 새로운 근대 국가를 건국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중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제 잔재청산이었다(Yoo, 1990). 왜색(倭色)을 띤 국민복, 간단복과 몸뻬와 각반을 벗어버리고, 흰색 한복을 다시 입었다. 여름철이었던 해방 공간의 복식은 흰색 복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남자들은 흰 셔츠나 개화복, 통 넓은 양복바지나 한복바지를 입었다. 여대생들이나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개량한복을 입고, 일반 부인들은 전통적인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산과 수출입을 관할하던 일본인들의 귀국으로 각 생활용품의 생산이 중단되어 생필품의 품귀와 폭등이 심하였고,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왜색을 탈피하자는 주장 속에서도 서민 남자는 일본 군복 또는 국민복을 사다가 고쳐 입었고, 여자는 일제 강점기 때 입던 몸뻬에다 저고리 또는 간단복을 만들어 입었다(Fig. 1). 미 군정체제에서는 미국에서 유입되는 구호물자와 밀수품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미군과 관련된 정부관련 인사들과 상류층, 구호물자를 받아 입는 빈민들과 미군 상대 접객업소 여성들이라는 양 극단에서부터 미국적인 서양 문물, 생활양식, 의상 등이 수용되기 시작했다(Kim, 1998).

    제1공화국 시기 한국은 관료들의 기세가 높은 관존민비 사회였다. 벼슬을 해야 양반행세를 할 수 있었던 신분차별이 심했던 전통사회의 영향 때문이었다. 특히 전쟁 후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한 정부는 원조물자 배정, 도시민에 대한 식량 배급권, 농촌에 대한 비료와 생필품 공급 등으로 도시민과 농어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부가 경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 하므로써 정경 유착을 불러왔다. 관료들은 소수 특권층과 부유층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의 빈민들은 대부분 날품을 팔아 연명했고, 실업자가 넘쳤다. 농촌은 절대 빈곤에 시달렸다. 195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농민의 절반가량이 하루 세끼 식사조차 힘든 절량(絶糧)농가였다(Seo, 2005).

    이와 같은 사회구조는 특권층과 서민들의 복식의 간극으로 나타났다. 소수 특권층이나 부유층들은 밀수를 통해 미(美)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당시 기사에 기록된 것처럼 “마카오 복지”와 “빌로드”, “나일롱”, “양단” 옷감은 당시 최고 남녀 멋쟁이의 상징이었다(“Three years of”, 1953). 마카오 신사는 주로 마카오를 통해 밀수한 영국 복지로 당시 미국인 사이에 유행했던 세계적 모드인 T룩 스타일의 양복을 입은 첨단 패션을 표현한 남성 멋쟁이를 일컬었다. 여성들은 홍콩에서 밀수한 홍콩 양단과 일제(日製)이지만 홍콩 또는 마카오를 통해 밀수 되었던 빌로드를 걸치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었다(Ko, 2001). 밀수품 빌로드는 촉감이 부드럽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법 따뜻하기도 해서 한 여름철을 빼놓고는 늘 외출복으로 이용되었으며, 1950년 경 빌로드 치마 한 감은 대학 등록금이 24만원 정도였을 때, 25만원 정도였다(Yoo, 1990). 1956년 영화 <자유부인>에서 여주인공이 벨벳으로 만든 한복을 입고 나온 뒤 벨벳 붐이 다시 일어났고, 혼숫감으로 최고 품목이었다(Ko, 2001). 1950년대 초반 밀수로 들어오던 나일론은 여성의 치마 저고리와 블라우스 감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1954년 수입이 허가되자 그 해 여름은 ‘서울 거리를 휩쓰는 나일론 선풍’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Park, 1993). 홍콩 양단은 나일론에 싫증을 느낀 사모님 족과 마담 족 사이에서 1958년 겨울부터 1960년 경까지 유행하였다(Lee et al., 2005).

    반면, 물가 폭등과 전쟁의 참화로 빈민들이 가득했던 현실속에서 일반 민중들은 원조물자, 구제품에 의지해야 했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복을 물들이거나 탈색하여 입었다. 물자 부족의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생필품과 직물류 등 구호물자를 일반인에게 배급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구호물자는 직접 개인에게 전달되기 보다는 중간에서 빼돌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다(Ko, 2001). 교복도 배급되었는데 바느질이나 염색이나 도무지 형편이 없어서 양복감만 희생되는 상황이었으며, 배 급 기구에 계단이 많아서 값도 비싸고, 생도들의 몸에도 맞지 않고, 학교의 특색도 무시되었다(“School uniforms distributed”, 1947; “School uniforms in”, 1948).

    계층별 복식의 간극을 줄이고 근대화를 도모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국민생활합리화운동을 추진하였다. 당시 신생활운동에서는 공무원을 위시한 권력층에게 사치 금지를, 일반 민중들에게는 색상 있는 옷(色服)을 입도록 하였다. 1949년 6월, 서울시 신생활촉진회에서 결정한 간편한 여름 복장은 남자는 상의 자켓을 걸치지 않고, 노타이셔츠만을 입도록 하였으며, 여자는 일반 가정부인이나 여학생도 전부 동정과 깃이 없는 적삼에 통치마로 정하여 예식과 외출에 착용하도록 하였다. 표본을 시내 각 백화점에 전시하고 일반에게 적극 장려하였다. Fig. 2는 여름철 신생활 적삼 도식화와 착용사진이다. 1949년 8월, 문교부는 국민의복개선요령을 정식으로 결정하고 전국적으로 일대 생활개선운동을 추진하였다(“Nationddds food & clothing”, 1949b). 스탠 깃의 해방 전의 국민복과 유사한 형태의 건국복이 남자 공무원복으로 제시되었다. 여자 공무원의 경우, 봄, 가을, 겨울에는 코트와 바지를 착용하고, 여름에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착용하고 양말이나 덧버선을 신도록 하였다. 한복을 착용할 경우에는 조끼허리통치마를 입고, 근로할 때에는 몸뻬를 입도록 하였다. 남녀가 같이 개선할 점으로는 반드시 색복(色服)으로 하고, 옷고름은 없애고 단추로 고치고, 세탁할 때마다 뜯어 빠는 불경제한 폐단이 없도록 박아 짓도록 하였으며, 다듬이를 폐지하고 세탁하고 다리기만 하면 입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용가치가 적고 사치한 옷감을 짜지 말 것을 결정하였다. 1950년 5월,「국민내핍생활개선안」실시요령이 결정되어 시행될 예정이었으나(aaDecision on the methodbb, 1950), 같은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의 발발로 중단되었으며, 1952년 8월 다시 전시에 내핍 생활을 강조하는「전시생활개선법」으로 명칭을 바꾸어 그 시행령까지 통과되었으나 전쟁이 종료된 1955년까지도 공포(公布)는 미루어졌다(“Wartime living enforcement”, 1952).

    전쟁 후인 1955년에 다시 국민생활 검소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산품과 색복의 착용, 통치마, 바지 착용, 옷고름 폐지, 외국산 고급품과 귀금속 폐지가 장려되었다. 직업상 보수성이 강한 여교사들에게 인체 노출을 금지하고, 착용하는 옷의 종류는 한복이나 양복을 자유롭게 선정하되 검소한 복장을 요구하였다(Nam, 1989). 국회에서도 생활개선에 관한 법안이 상정되었다(Lee, 1955). Fig. 3은 국무위원 및 각급 공무원으로 하여금 솔선하여 착용하도록 건의된 국산복지의 신생활복착용 안이다. 남자 공무원복은 스탠 깃으로 1949년의 건국복 스타일과 비슷하다. 그러나 국회에서 통과된 신생활복 착용안은 결국 공포되지 않았다(「Transfer of a case: Enforcement of wearing ShinSaenghwakbok to simplify people′s life」, 1955).

    Im(1955)은 신생활운동이 이미 진부한 운동이 되어버렸고, 실천되지는 못하면서도 피상적인 운동의 형태로서만 전개되어왔다고 비판하면서, 국민의 생활을 연구하여 국민적 표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Choi(1952)는 당시 대부분의 권력층 지도계급은 신생활개선안을 호령만 하고 민중들에게 강요할 뿐 언제나 열외에서 교란자의 장본인이었다고 비판하였다. 시행령과 개선안들은 제시만 될 뿐 실천되지 않았다. 물질적 현실을 반영하는 생활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지도자 계급의 솔선수범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단행하여 민주주의를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이용했고, 4월 19일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에 맞서 항거하였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면서 제1공화국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엘리트 기성세대와 시민들도 합세했지만 1960년 대한민국에 변혁을 가지고 온 두드러진 집단은 검은 교복을 착용한 학생들이었다. 순수한 정의감으로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에 이어 대학생들의 물결은 거리를 짙게 물들였고, 초·중학생들도 교복차림으로 합세했으며, 시민들, 교수들까지 합세하여 정의와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였다(Fig. 4). 4월 혁명은 기득권층을 거부하고 살아 있는 정신으로서 이 사회를 쇄신하고 변화시키려는 동력이 되었다(Seo, 2005).

       2.2. 4.19 혁명 후부터 제2공화국 시기까지: 면 작업복·면 골덴제복·교복

    4.19 혁명 후 1960년 7.29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대통령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책임제가 실시되었다.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줘보자”는 것이 민주당 정부의 이념이었다(WCPC, 1967). 제2공화국은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웠다(Seo, 2005). 경제개발을 계획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을 완성했고, 국토건설사업을 위해 국토건설단을 공채로 뽑았다. 국토건설사업의 상징은 면 작업복이었다. 특히 부흥부는 장관 이하 모든 직원이 면작업복 차림이었다(Kang, 2004a; Lee, 1999). Fig. 6은 면 작업복을 착용한 장면 총리로 작업모와 작업복을 솔선 착용하여 국토건설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혁을 외치는 소장파 국회의원들도 이에 호응했다(“Cheongjo movement permeating”, 1961). 신민당 소장파 의원의 모임인 청조회는 청조운동(淸朝運動)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갈색의 골덴 제복을 입고 등원하였으며(Fig. 7), 자가용차 폐지, 요정 출입 금지, 이권운동 금지와 같은 실천사항도 발표했다. 신생활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흰 셔츠에 감색 또는 검은색 바지의 하복 교복이나 소박, 단순, 저렴한 의상을 착용하였다(Fig. 5). 당시 흰색과 감색의 대학생 교복은 청신한 기풍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밀수 등을 철저히 단속하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건전한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내각의 노력이었던「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1961)은 1961년 5월 10일 제정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인 6월 2일 하반기 무역계획에서 법안 시행 안이 발표되었고, 그 시행은 박정희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3. 5.16 군사정변기 사회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표상된 복식 사례 고찰

       3.1. 군인에 의한 국민 혁명기: 군복과 간소복

    4.19 혁명으로 교체된 국민에 의한 장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주었던 자유는 당시의 현실로서는 무능으로 간주되었다. 민주주의는 시위의 자율로 폭발되었으며, 1961년 봄에는 통일논쟁이 뜨겁게달아올랐다. 당시 한국사회에는 근대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집단으로 학생 집단과 전쟁으로 인해 규모가 커진 군부가 존재했다(Cho, 2007). 군부에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위시한 육사 8기들이 중심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켰다. 혁명 공약 증 첫 번째는 반공이었고, 그들의 복식은 군복 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에게는 혁명 주체로서의 동질성이 강하지 않았다. 특정한 이념적 지향을 공유했다기보다는 당시 사회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정치화된 군인인 자신들이 척결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쿠데타군들은 18일부터 다른 병사와는 달리 하얀 바탕에 하늘색으로 ‘혁명군’이라 새겨진 글자에 ‘군사혁명원회’라는 시뻘건 도장이 찍힌 혁명군 완장을 찼다(Fig. 8). 완장을 찬 군인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를 지킨다는 긍지로 눈에 핏발을 세웠다(Kang, 2004a). 장면 내각 총사퇴와 함께 국회의사당에 국가 재건최고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국가재건최고위원회는 윤보선 대통령 산하의 혁명내각으로 각 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32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었다(Fig. 9). 서울특별시장, 각도지사, 시장, 군수 등 대부분의 중요 직책도 군인으로 채워졌다(Cho, 2007). 국가 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된 박정희 의장은 군복을 계속 착용하고, 정무를 보았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세력의 저변 확대를 꾀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적극 동원하였지만, 그들이 허용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군인들의 보조에 지나지 않았다(Kang, 2004b). 박정희의 검은 선글라스는 스스로는 보이지 않으면서 수인을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처럼, 스스로를 감추면서 지배를 관철시키고자하는 파시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Hwang, 2000).

    군사 정권의 공무원들은 청교도적인 모범을 보여야 했으므로 노타이 차림으로 출근해야 했다(Fig. 10). 공무원들의 의복 간소화 정책은 내부 지침으로부터 시작되어, 정부 기관부터 솔선수범되었다. 남성 노타이셔츠 디자인과 패턴이 신문에 기고 되었다(Choi, 1961). 대학생들은 다시 교복을 입게 되었다. 제복, 제모 착용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이 결정되었고, 7월 1일부터 일제히 실시되었다(“Obligation to use”, 1961). 남자 대학생은 감색 또는 검정 바지에 반소매 노타이, 여자 대학생은 감색 또는 검은 후레아 스커트에 스포츠카라의 반소매 블라우스가 교복으로 지정되었다(Fig. 11, Fig. 12). 국산품 애용, 학부형의 부담경감, 검소한 생활의 습관화와 내핍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복장도 개선되었다. 소재는 국산면직 또는 합성섬유로 하고, 검소한 색깔을 택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여학생은 파마를 금하고 단발을 원칙으로 하며, 남자는 신사형 머리를 금했다. 남자 중·고등학생은 여름에는 남방샤쓰, 겨울에는 스탠드칼라 학생복으로 통일하였으며, 흑색 운동화를 원칙으로 하고 국산가죽흑색편상화도 허용하였다. 여자 중·고등학생은 하의를 치마로 통일하고 바지는 제지하였다. 머리에 쓰는 마후라도 금지했다(“Skirt for female students”, 1961).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하위 기구인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는 전 국민의 의복 간소화라는 외형적인 개혁으로부터 시작하여 국민의 정신을 바꾸고자 하였다. 재건국민운동본부의 초대 본부장은 해방 후부터 신생활운동을 추진하던 고려대 총장 유진오 박사가, 차장에는 이지형 육군 준장이 취임하였다. 재건국민 운동은 5.16 군사정변을 혁명으로 상정하고, 청신한 기풍을 배양하고 신생활체제를 견지하며 반공 이념을 확고히 하는 등의 혁명 이념을 범국민적으로 구현하고 수행하기 위한 사업들을 추진하였다(「Act on the national reconstruction movement」, 1961). 1961년 6월 12일부터 7월 3일까지는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각도 단위의 국민운동촉진대회가 대대적으로 열림으로써 전국적인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내 남녀중고등학생과 공무원, 각 기관 단체 인원과 일반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재건국민운동 대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피켓, 현수막, 어깨띠, 완장, 흉장, 유니폼 등이었다. 어린이 교통경찰대를 만들어 팔에는 완장, 어깨에는 하얀 띠를 두르고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게하였다. 흰 저고리에 검은 통치마는 해방 후 여자 대학생의 교복으로 엘리트 여성의 복식 표상이었는데, 재건국민운동을 교육시키는 부녀자에게 착용시켰다(Fig. 13).

    한편, 본부 안에서 통일적인 제복 착용 분위기와는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재건국민운동 본부장이었던 유진오는 재건국민운동이 민주생활의 기본 원칙인 사생활의 자유를 침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No intrusion on”, 1961i). 1961년 6월 25일에 진행되었던 여성 신생활복장 행진에서는 개량한복, 원피스, 투피스, 여대생복장 등 다양한 컨셉의 신생활복이 등장하였다(Fig. 14)(“Shinsaenghwalbok on the street”, 1961). 7월 11일부터 대한가정학회에서 주최한 신생활복 전시와 바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능률적인 작업복이 전시되었다. 7월 22일에는 양장계 인사가 참석한 재건운동본부 주최 의복 간소화 좌담회가 개최되었으며, 8월 12일에는 국산 천으로 만든 신생활 간소복 패션쇼가 열렸다. 여자 외출복, 목면천의 남자양복, 농촌 아가씨의 작업복 등이 선보인 패션쇼에 등장했던 신생활복 중에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상의와 바지가 붙어 있는 점프수트 스타일(Skinner, 2001)도 선보였다.

    유진오 본부장의 의복 간소화 정책은 일원적이 아니라 다원적인 것이었으며,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간소한 의상이면 모두 간소복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에서 다양한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혼란과 무질서였다. 그들은 국민 모두에게 모두 같은 형태의 옷을 입히기를 원했다. 유진오 본부장은 8월 28일 재건국민운동본부장직을 사임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건국민운동본부는 정부의 협조를 얻어 9월 17일 전 국민들이 입을 겨울 신생활복을 제정하였다. 다음 달인 10월 1일 표준 간소복이 공포되었고, 그 달 15일 공무원(국가 및 지방 공무원 포함)과 국영기업체 및 국가 관리 기업체 종사원을 위시하여 재건국민운동본부 전원에게 표준간소복을 일제히 착용시켰다.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10월 1일 공포한 표준 간소복은 남자 근무복, 남자 여름 근무복, 여자 근무복, 여자 여름 근무복, 여자 개량한복의 4가지 스타일이었다(Fig. 15). 재건국민운동 서울시 지부는 새생활실천의 사업계획으로 서울역과 시청 앞에 간소복을 입은 마네킹을 설치하고 일반인들에게 입을 것을 권장하였다(“Mannequin in the”, 1961). 17세기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봉건적인 의복제도를 일시에 뜯어고치기 위해서 양복 본보기를 만들어 궁궐문 앞에다가 걸어놓고 포고문을 붙여놓아 겁을 집어먹은 민중들이 개복(改服) 하게 된 러시아의 양복 개조 일례와 유사했다(“Babble-Shinsaenghwalbok”, 1961).

    ‘짧은 치마 입기 운동’을 통해 여성의 경우 긴 치마를 짧게 하고, 넓은 배래를 지닌 저고리의 형태를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개량한복 스타일은 보통 한복 치마로 입는 4폭 치마가 아니라 통치마 폭인 2폭 치마였으며 바닥에서 13 cm정도 떨어진 길이였다. 상인들에게 긴 치마감보다 짧은 치맛감을 팔도록 하고, 지도요원과 가족들로부터 먼저 입도록 하였다(“A campaign for”, 1962). 이와 같은 당시 상황을 만평에는 ‘뉴-스타일’이라고 하여 노부인의 길고 넓은 양단 치마를 가위로 자르려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Fig.16). 노부인에게도 젊은 여자에게 적합한 무릎길이의 치마 스타일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사치스런 어린이 옷도 근절하기 위해 어린이 옷 탈취 사건 기사가 연재되기도 하였다(“How to prevent”, 1961). 또한 헌 옷으로 아기 옷을 만들 것을 장려하기도 했다(“Making baby clothes”, 1961).

    표준간소복이라는 단조로운 디자인의 의복만 입히려는 정부의 강요에 국민들은 반대하기도 하였으며, 표준간소복을 권장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국민운동집단촉진회 간부들조차 회피하려 하였다(“Disappearing initiatives”, 1961). 이와 같은 의복 간소화 분위기에서 1950년대 후반 “…아랫 내의를 입고 나왔다는 말이 알맞을 듯하게 몸에 밀착하고 깡뚱하게 짧은 홀태바지로 눈에 거슬렸던”(Kim, 1958) 통 좁은 슬랙스인 맘보바지가 통 넓은 바지를 시골티 나는 “핫-바지”로 보이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제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Fig. 17).

    군사 정부는 효율성과 추진력을 동원하여 민간 정부가 할 수 없었던 과감한 조치들을 단행하여 차별성을 확보했다. 특히 국민의 지표인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는 견지에서 전 공무원들에게 신생활복을 일제히 착용시킨 것은 앞선 정부에서 시도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대목이었다. 당시 복식학자 석주선은 5.16 군사정변기에 이루어진 복식간소화 정책을 통해 날개치던 허영과 사치는 꼬리를 감추었고, 쇄신된 사회의 새로운 면모를 소박하고 간편한 옷차림에서 볼 수 있었으며, 정부 관리들이 솔선 착용한 신생활복은 국민에게 모범이 되었고, 남녀를 막론하고 의복이 간소화 되었다고 언급하면서, 옷치레에서 사치를 떨쳐 버린 것은 관의 힘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평가하였다(Suk, 1961). 효율성과 추진력 대목에서는 일부 지식인들이나 민중들은 군사정변에 비판적이지 않았지만, 국가와 사회의 군대식 재구조화 측면에서는 두려워하고 반발심을 갖게 되었다.

       3.2. 민정이양기: 재건복의 유행과 소멸, 그리고 재창조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를 장식한 단어가 ‘혁명’이었다면, 혁명의 기운이 추슬러들던 1961년 말경에는 ‘재건’이란 단어가 일반에게 익숙해졌으며, 유행어처럼 휩쓸고 있었다. 아침, 저녁 인사로 “재건합시다!” 라고 했으며, 국민 보건체조는 재건 체조로 바뀌었다. 돈 없이 하는 데이트는 재건데이트라 했다. 이와 같은 유행 때문에 사람들은 신생활복이나 간소복이란 명칭보다는 서서히 재건국민운동으로 인해 등장한 옷이란 의미의 재건복에 익숙해졌다. 재건복은 주로 남자 공무원(국가 및 지방 공무원 포함)과 국영기업체 및 국가 관리 기업체 종사원을 위시하여 재건국민운동본부요원들의 옷을 의미했으며, “갈색 골덴 소재의 유니폼에 노란 실로 ‘재건’이라 써 붙여 다니는” 형태였다(“Slogan: Jaejun”, 1962). Fig. 18(d)에서 ‘재 건’이라 자수 놓은 모자를 착용한 공무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재건복은 양복점에서 맞추어 입거나 고쳐 입었다(“Becoming a first-year”, 1963). 순모는 금지되었고, 모 70%에 면 30%의 모혼방 또는 면 골덴지가 사용되었다. 색상은 자유로 하였다. 겨울철에는 주로 짙은 갈색, 감색, 검정색, 쥐색 등 어두운 색상이 사용되었다. 표준 간소복에 준하지만 조금씩 개성이 반영된 다양한 재건복들이 등장했고, 몇 가지 스타일들이 경쟁했다. Fig. 19는 공무원 겨울철 신생활복(표준 간소복)으로 제시된 형태로 (a)가 노타이형 스포츠카라, (b)가 앞의 형태에서 단추를 잠근형, (c)가 의식 장소 외국인 접대시의 신생활복이다. Fig. 18의 사진들은 1961년에서 1962년 사이 입혀진 다양한 재건복 형태이다. Fig. 18(a)Fig. 19(a)의 “노타이형/스포-쓰카라” 재건복으로 귀순용사 70쌍 합동결혼식에서 신랑들이 단체로 착용한 감색 골덴 재건복이다(“Receiving the thousandfold”, 1962). 왼쪽 가슴에는 웰트 포켓이 달려있지만, 양옆구리 주머니는 커다란 아웃포켓을 달았다. Fig. 18(b)Fig. 19(b)와 같이 맨윗 단추를 잠근 형태이다. 기준대로 가슴 웰트 주머니에 양옆구리 뚜껑 주머니 형태이다. Fig. 18(c)Fig. 19(c)와 같은 의식 장소 또는 외국인 접대 시의 재건복이지만, 단추의 갯수가 4개이다. Fig. 18(d)는 스포츠 카라 형태 재건복 양쪽 가슴에 단추로 고정하는 뚜껑 달린 주머니를 달았으며, 가슴 주머니에는 가운데 부분에 플리츠가 잡혀 있다. 그리고 금속 단추를 달았다. 금속 단추는 Fig. 18(a)에서도 보인다. Fig. 18(b), Fig. 18(c)에는 재건복 왼쪽 칼라에 공무원 배지를 착용하고 있다.

    5.16 군사정변으로 군부세력은 국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혁명을 완수하면 군에 복귀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민심을 잡고, 선거를 통해 재집권해야했다. 그들의 민정이양 약속은 군복을 재건복으로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Kim, 1993). 민주공화당 창당 작업은 김종필의 주도 아래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Fig. 20은 창당 작업이 한창이었던 1961년 11월경 군복에서 재건복으로 갈아입은 5·16 주체들의 사진이다. 우측에서 세 번째 인물이 짙은 갈색 재건복 차림의 김종필이다. 김종필과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의 재건복에서 양쪽 가슴 또는 양옆구리 아웃 포켓을 확인할 수 있다.

    Fig. 21은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의 재건복 착용 사진이다. 짙은 쥐색 모혼방 소재로 목이 약간 올라오는 스탠카라 스타일이다. 가슴 웰트 포켓은 없으며, 양 옆구리에 잘 보이지 않는 입술 주머니가 달려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관료들 사이에 퍼진 재건복은 국가를재건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집권자의 강력한 표어로서 작용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재건복을 착용한 모습은 1964년 초반까지에만 관찰되고(aaLeading the renovationbb, 1964), 그 이후 공식석상에서 재건복 착용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1969년경이 되면 공무원 차림에서도 재건복을 찾기 힘들어졌다(Yang, 1969).

    재건복의 포기는 통화 개혁 실패에 따른 대외 개방노선으로의 선회와 시기를 같이했다. 당시 미국의 원조는 급속히 감소하고 있었고, 수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던 원조 중심의 경제에서 국내에 과잉 시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면방직 업체들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데 정부가 뒷받침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통화 개혁 실패를 통해 내자(內資) 동원에 의한 민족주의적 경제 개발 전략이 어렵다는 사실을 판단한 군사정권은 이후 외자도입, 보세가공무역, 수출입국 같은 대외 개방노선의 경제정책으로 선회하게 되었다(Kang, 2004b). 이와 같은 개방 노선으로의 선회에 따라 국산 면의 사용을 증대시켜 자주적 공업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 국민의 재건복 착용은 불필요해졌고, 외자도입을 통한 국가주도의 계획적인 시장경제체제가 성립되었다. 이에 재건복은 공무원복에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재건국민운동본부 조직원복으로 축소되게 된다.

    재건국민운동본부의 재건복 스타일은 민간복이지만 군복의 양식을 조합한 것이었다(Fig. 23). 모두 양 가슴에 뚜껑달린 포켓을 부착하였고, 양쪽 옆구리에도 뚜껑달린 주머니를 부착하였다. 주머니의 형태는 육군 정복의 주머니와 유사하게 하였다(Fig. 22). Fig. 23의 재건국민운동본부 각도 지부차장들을 박정희 대통령이 격려하는 사진에서 그들의 바짝 깎은 머리스타일과 통일된 하복 재건복 착용 모습에서 민간이지만 군복을 연상시킨다. 재건복은 1972년 새마을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새마을 운동 모자와 완장과 함께 새마을복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새마을복이 무엇인지를 어르신들에게 물었을 때 “재건복과 새마을운동 모자”라고 언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재건복은 새마을복이라는 새로운 이름에 압도되지 않고 나름의 정체성을 지니면서 자리매김 하였다. 그 사이 재건복의 주머니 모양이 정복 군복 주머니 모양에서 자연스럽게 각이 진 형태로 변화하였고, 실용성을 강조하여 불룩해지도록 디자인되기도 하였다(Fig. 24). 반면, 동복으로서 갈색 면 골덴 재건복은 소멸되고 있었다. 골덴 재건복은 한번 빨면 변색하기가 쉽고 빨리 해지고, 방한이 충분하지 못하고, 모양이 없다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원모수입량을 정부에서 제한해서 생긴 양모 수급불균형에 따른 양복 값의 앙등현상에도 공무원들의 골덴 재건복 착용은 흐지부지 되었다(“Examining economy”, 1963).

    4.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 이데올로기와 복식 표상의 변화

    해방과 함께 대한민국에서는 자유 민주주주의 원심운동 속에서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과는 차별되는 자유가 강조되었다(Kwon & Cheon, 2012). 그러나 당시의 자유는 정부, 권력층과 부유층들의 사치와 방종을 보장하고 있었으며, 민중들의 계속된 가난을 방치하고 있었다. 소수 권력층과 부유층들의 복식들은 마카오 신사, 넥타이, 벨벳, 나일론, 홍콩 양단, 레-스 등과 같은 외래어로 나타났다. 반면, 민중들의 복식은 간단복, 몸뻬, 사리마다 등의 일본어와 면 바지저고리, 면 치마저고리 등의 한국어로 나타났다. 전쟁과 미국의 원조가 내포된 물들인 군복, 구제, 원조물자와 형편없는 바느질과 막염과 같은 수식어도 민중의 복식 표상으로 나타났다. 권력층의 멋쟁이를 상징하는 마카오 신사, 홍콩 양단과 같은 복식 표상은 밀수 지역인 마카오나 홍콩의 이름을 붙여 물질문화에 대한 동경(憧憬)과 함께 깨끗하지 못한 권력층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 구시대의 유물인 물들인 군복, 몸뻬와 같은 복식 표상에는 성장에 함께하지 못하고 소외되었음이 암시된다. 이와 같은 복식 표상의 가상적 대립 구도는 당시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빚어진 빈부격차의 사회 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근대화는 민중들에게 색복(色服) 착용을 장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색복 착용은 백의(白衣)를 고수하던 조선 민중들에게 대한제국 시기부터 장려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된 사항이었다(Lee & Kim, 2011). 간소화와 검소화 경향은 고름의 폐지, 단추 사용, 남자는 노타이셔츠, 여자는 통치마와 적삼 또는 서양복으로서 블라우스, 치마, 바지로 나타났다. 권력층과 민중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1948년의 건국복과 1955년의 신생활복과 같은 유니폼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였다.

    제1공화국은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해방 후 한글세대 고등학생들은 부정선거를 계기로 순수한 정의감으로 거리로 나가 검은 교복의 물결을 만들었다. 당시 원조 경제로 인해 교복은 전국적으로 일률적 형태로 배급되었으며, 전국의 고등학생 교복은 모두 한 가지 디자인이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검은 교복 물결을 가능하게 하였다. 검은 교복 물결은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부유하건 가난하던 지위를 막론하고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복식 표상을 통해 암묵적으로 보여준 시위였다. 고등학생들의 시위는 대학생들을 합세하게 하였으며, 그 중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대학교 교복을 착장하고 머리에는 붉은 색으로 “고 대”라고 쓰인 흰수건을 동여매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불의에 대항하는 상징으로서의 흰색 머리띠는 1894년 폐정개혁조목을 내걸고 고부 관아에 밀어닥쳤던 동학농민군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4.19혁명을 계기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된 대학생들은 이후 신생활 운동을 전개했고, 교복 착용을 통해 청신한 기풍과 정의감을 보여주었고, 적극적인 현실 참여 의지를 나타냈다.

    혁명 이후 등장한 민주당 장면 정부는 경제 제일주의를 역설했다. 이는 대한민국 공무원 공채 1기였던 국토 건설단의 면작업복으로 표상되었다. 젊은 정치인들도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갈색 면 골덴 제복을 착용하였다. 제2공화국에서는 제1공화국에서 장려되었던 국산 복지가 국산 면 소재로 한정되어 나타났다. 이는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과잉시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면 방직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데 정부가 뒷받침을 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Seo, 2005). 국산 면 소비 장려는 급감하는 무상 원조와 함께 해외차관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 해외 차관에 기대지 않는 민족자력 개발 노선을 택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자국의 면 산업을 일으켜 민족 자력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의 근원지는 1930년대 인도 간디의 스와라지(자주) 스와데시(국산품 애용) 운동이었다. 이와 같은 자력 개발의 노력과 함께 장면 정부에서는 권력층의 사치와 방종에 제동을 거는 사치품 금지관련 법안인「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안」을 제정하고 시행 안을 가결하였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법의 공포 및 시행은 박정희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5.16 군사정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층 상부에 군인이라는 특수한 계층이 자리 잡게 되었다. 첫 번째 혁명 공약이자, 국시(國是)가 반공(反共)이었고, 그에 따른 복식은 대한민국 육군 군복으로 나타났다. 내핍 생활을 전 국민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과거 민간 정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군대라는 강력한 기제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혁명 정부 산하의 재건 국민운동 본부에서는 일률적인 표준 간소복을 제시하였으며, 국산 면을 장려하였다.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남자 간부들에겐 노타이셔츠 형태의 유니폼이 입혀졌고, 여자 간부들에게는 해방 직후 여대생의 교복으로 착용했던 흰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가 입혀졌다. 거리 운동에는 깃발, 완장, 어깨띠, 모자가 동원되었다. 한편, 재건국민운동본부 내부에는 이와 같은 남성주의적이고 일률적인 횡보에 반대하는 흐름이 함께 존재했는데, 이는 지식인과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다양한 형태의 신생활 간소복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민정이양 단계에서 군복은 남성 신생활복과 결합하여 재건복이라는 복식 표상을 만들어 냈다. 재건이라고 쓰인 자수의 노란 색은 새마을운동 상징에서도 부, 황금, 번영의 상징으로 나타났다. 재건복은 초반에 주로 입혀졌던 갈색이라는 색상으로 국토건설 이념을, 면 또는 모/면 혼방 소재로 민족 자력 개발을 위한 내핍생활을, 노타이 스포츠카라 형태로 간소화를, 군복형 주머니와 단추로 군사정권을 표상하였다. 재건복을 착용한 5.16 군사정변 세력들은 민정이양에 성공하여 제3공화국을 열었고 이를 통해 정치 군인화되어 권력층에 안착했다. 국산 면 소재의 재건복은 국내 면 산업을 통한 민족자력개발노선을 포기하면서 사라지게 되지만, 그 함축된 의미는 면면이 이어져 다시 1972년 새마을 운동의 복식 표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Table 1은 이상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Table 1.] Dress and Ideology during the 4.19 revolution and 5.16 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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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ss and Ideology during the 4.19 revolution and 5.16 coup

    5. 결 론

    철옹성 같았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 시민혁명과 그 시민 혁명을 통해 획득된 민중의 자주권을 탈취하면서 성장 일변으로 달리게 한 5.16 군사정변이라는 두 일련의 사건은 그 이전의 가난과 부패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를 바꿀만한 특단의 조치들이었다. 아래에서부터의 시민혁명과 위로부터의 군사정변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추동력이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복식 표상을 사회 질서를 위해 배치된 복식들과 변화를 요구하는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의 복식 사례라는 이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복식 표상의 형성 과정과 변화, 소멸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 양상과 방향을 좀 더 면밀히 살필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빠른 근대화와 재건을 열망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집적된 재건복이라는 주목할 만한 이데올로기적 복식 표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에 이데올로기가 표현된 다양한 복식 표상들을 고찰하고, 그에 따른 갈등, 변화 양상들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표상으로서 복식은 대응하는 물질적 차이와 개념적 차이의 체계를 전달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다른가도 상징적인 방법으로 증명하였다. 각 시기별로 시대를 지배하는 힘이 표상된 복식이 다르게 나타났으며, 지배와 대항, 권력과 민중 간의 상호작용과 갈등을 표현한 복식들이 변화하고 있었다. 정권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흐름과 운동세력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흐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복식 디자인 요소들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재건복과 같은 새로운 복식 표상이 등장하였다. 둘째, Moore(1516/2012)의 <유토피아>에 서술된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 비싸고 사치스러운 옷은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기 위한 도구로 표상되었으며, 이에 대항하는 복식은 유니폼 스타일로 나타났다. 유니폼은 평등을 의미했다. 당시 한국에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으로 학생과 군대가 나타났으며, 복식표상은 각각 교복과 군복으로 나타났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부는 전 국민의 평등한 내핍생활과 근대화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표준간소복이라는 유니폼을 강요했다. 셋째, 보편적으로 20세기 초반에 면은 민족주의의 표상이 되고 있었다. 1930년대 인도 간디의 스와라지 스와데시 운동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의 표상으로서의 면은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민족자력 개발의 표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본 연구는 문화연구의 시각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틀로 현대 한국 복식사를 탐색할 수 있는 연구방법을 마련하여 추후 현대 한국 복식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성장 틀이 마련된 1960년대의 한국 사회를 복식 표상을 통해 설명하면서 그 면밀한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추후 진행될 재건복과 동시대의 다른 국가의 마오복, 인민복과의 비교 연구는 60년대 한국 재건복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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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 여학생은 겨울에도「치마」[Skirt for female students even in winter]. KyungHyangShinmoon(eve.) P.3 google
  • 70. 10월은 새생활 실천의 달-의복의 간소화부터- [October, the new life action month ?starting from the simplifying clothes]. KyungHyangShinmoon(eve.) P.4 google
  • 71. 표준간소복 [Standard simpliflied clothes]. DongAIlbo(mor.) P.4 google
  • 72. 簡素服 입은「마네킹」 서울驛과 市廳앞에 登場 [Mannequin in the simplified clothes appeared in front of Seoul station and city hall]. KyungHyangShinmoon(eve.) P.3 google
  • 73. 꽁무니 빼는 솔선수범 [Disappearing initiatives]. KyungHyangShinmoon(eve.) P.1 google
  • 74. 횡설수설(신생활복) [Babble-Shinsaenghwalbok]. DongAIlbo(mor.) P.1 google
  • 75. [만평] 뉴 스타일 [Cartoon-new style]. ChosunIlbo(eve.) P.1 google
  • 76. 어떻게 막나? 꼬리무는 옷탈취사건 [How to prevent? Continuous robbery of clothes]. ChosunIlbo(mor.) P.4 google
  • 77. 헌옷으로 아기옷 만들기 [Making baby clothes out of old clothes]. ChosunIlbo(mor.) P.4 google
  • 78. 통 좁은 슬랙스 [Narrow-legged slacks]. ChosunIlbo(mor.) P.4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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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 부디萬福(만복)누리도록-귀순용사 70쌍 합동결혼식 성황 [Receiving the thousandfold blessing: Seventy couples' of defecting soldiers some communal marriage!]. Kyung HyangShinmoon(eve.) P.3 google
  • 82. 1962 하복 재건복 [Summer Jaegeonbok]. Jaeguntongshin P.6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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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 景氣打診(경기타진) 그 現況(현황)과 展望(전망) (14) 毛織物(모직물) [Examining economy, its present and future (14)wool]. KyungHyangShinmoon P.4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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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테이블
  • [ Fig. 1. ]  Morning. (1954). http://blog.daum.net/filmclub/2
    Morning. (1954). http://blog.daum.net/filmclub/2
  • [ Fig. 2. ]  Shinsaenghwal Juksam. DongAIlbo (June 1, 1949).
    Shinsaenghwal Juksam. DongAIlbo (June 1, 1949).
  • [ Fig. 3. ]  Shinsaenghwalbok [신생활복], 1955. Cultural History of Korean Women1 (2004), p. 199.
    Shinsaenghwalbok [신생활복], 1955. Cultural History of Korean Women1 (2004), p. 199.
  • [ Fig. 4. ]  4.19 Revolution. National Museum of Korean Contemporary History ⓒKyungHyangShinmoon.
    4.19 Revolution. National Museum of Korean Contemporary History ⓒKyungHyangShinmoon.
  • [ Fig. 5. ]  New-life movement. Seo (2005), p.199.
    New-life movement. Seo (2005), p.199.
  • [ Fig. 6. ]  Prime Minister Jang, Myeon(in the lead) in country-constructioncorps uniform. http://db0353.blog.me/10092972697.
    Prime Minister Jang, Myeon(in the lead) in country-constructioncorps uniform. http://db0353.blog.me/10092972697.
  • [ Fig. 7. ]  Young politicians in brown corduroy uniforms. DongAIlbo(January 26 1961a).
    Young politicians in brown corduroy uniforms. DongAIlbo(January 26 1961a).
  • [ Fig. 8. ]  Military uniform of Republic of Korea and armband in 5.16 Coup. http://www.yonhapnews.co.kr ⓒYonhapnews.
    Military uniform of Republic of Korea and armband in 5.16 Coup. http://www.yonhapnews.co.kr ⓒYonhapnews.
  • [ Fig. 9. ]  National Reconstruction Supreme Council[국가재건최고위원회](May 21, 1961). OPGK5 (2001).
    National Reconstruction Supreme Council[국가재건최고위원회](May 21, 1961). OPGK5 (2001).
  • [ Fig. 10. ]  Official's no-tie shirts. KyungHyang Shinmoon (June 2 1961).
    Official's no-tie shirts. KyungHyang Shinmoon (June 2 1961).
  • [ Fig. 11. ]  Male college students in uniforms. KyungHyangShinmoon (June 15 1961).
    Male college students in uniforms. KyungHyangShinmoon (June 15 1961).
  • [ Fig. 12. ]  Female college students in uniforms. DongAIlbo (July 2 1961)
    Female college students in uniforms. DongAIlbo (July 2 1961)
  • [ Fig. 13. ]  March of representatives of the National Reconstruction Young Men & Women Association (1961.6). Jaegeongukminundong (1963).
    March of representatives of the National Reconstruction Young Men & Women Association (1961.6). Jaegeongukminundong (1963).
  • [ Fig. 14. ]  Shinsaenghwalbok on the street. Yeowon (August 1961).
    Shinsaenghwalbok on the street. Yeowon (August 1961).
  • [ Fig. 15. ]  Standard Simplified Clothes[표준 간소복]. (a) man's business uniform (b) man's summer business uniform (c) woman's business uniform (d) woman's modified Hanbok. KyungHyangShinmoon (October 1 1961).
    Standard Simplified Clothes[표준 간소복]. (a) man's business uniform (b) man's summer business uniform (c) woman's business uniform (d) woman's modified Hanbok. KyungHyangShinmoon (October 1 1961).
  • [ Fig. 16. ]  Truncating Hanbok-Skirt. ChosunIlbo (Nov. 20 1961).
    Truncating Hanbok-Skirt. ChosunIlbo (Nov. 20 1961).
  • [ Fig. 17. ]  Narrow-legged slacks. ChosunIlbo (Dec. 19 1961).
    Narrow-legged slacks. ChosunIlbo (Dec. 19 1961).
  • [ Fig. 18. ]  Various Jaegunbok styles. (a) sports collar with metal buttons (b) 5- plastic-buttons buttoned up (c) ceremorial occasion (d) metal buttons sewn the pleated chest pockets. OPGK5 (2001).
    Various Jaegunbok styles. (a) sports collar with metal buttons (b) 5- plastic-buttons buttoned up (c) ceremorial occasion (d) metal buttons sewn the pleated chest pockets. OPGK5 (2001).
  • [ Fig. 19. ]  Standard simplified clothes- man's uniforms. (a) sports collar (b) sports collar buttoned up (c) ceremonial place or meeting VIP or foreigners. National Archives of Korea. http://theme.archives.go.kr.
    Standard simplified clothes- man's uniforms. (a) sports collar (b) sports collar buttoned up (c) ceremonial place or meeting VIP or foreigners. National Archives of Korea. http://theme.archives.go.kr.
  • [ Fig. 20. ]  5.16 Coup members in Jaegunbok Sisa Journal, vol. 294. ⓒBaek, Tae-ha.
    5.16 Coup members in Jaegunbok Sisa Journal, vol. 294. ⓒBaek, Tae-ha.
  • [ Fig. 21. ]  President Park, Chung-Hee in Jaegunbok (March 3, 1964). OPGK6 (2001).
    President Park, Chung-Hee in Jaegunbok (March 3, 1964). OPGK6 (2001).
  • [ Fig. 22. ]  ROK army full-dress uniform. OPGK5 (2001).
    ROK army full-dress uniform. OPGK5 (2001).
  • [ Fig. 23. ]  Summer Jaegunbok. Jaeguntongshin 6 (1962).
    Summer Jaegunbok. Jaeguntongshin 6 (1962).
  • [ Fig. 24. ]  1990s Saemaulbok. http://blog.daum.net/mojjustice/8704809.
    1990s Saemaulbok. http://blog.daum.net/mojjustice/8704809.
  • [ Table 1. ]  Dress and Ideology during the 4.19 revolution and 5.16 coup
    Dress and Ideology during the 4.19 revolution and 5.16 coup
(우)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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