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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Court Dance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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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Court Dance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KEYWORD
court dance garment , Jangsaengboyeonjimu , Yeonbaekbokjimu , Jesuchang , Choehwamu
  • 1. 서 론

    본 연구는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제수창(帝壽昌), 최화무(催花舞) 복식의 종류 및 형태, 변화 특징을 이해하고, 이들 복식에 사용된 색채의 배색 특성을 고찰한 연구이다. 이들 4개의 궁중 무용은 모두 19세기 초에 새롭게 창제된 당악 정재로서, 20세기 초까지 연행되었던 것들이다. 현재는 창덕궁, 경복궁, 운현궁 등에서 재현되는 궁중 무용 가운데 일부가 전승되고 있다.

    지금까지 궁중 무용 복식에 관한 연구가 많이 행해져 왔으나 이들은 대체로 특정 시기에 편찬된 하나의 의궤를 분석 대상으로 하거나, 하나의 정재 복식에 대한 통시적 고찰이 주를 이루어 왔다. 필자는 지난 십 여간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정재들을 함께 묶어 형태와 색채를 분석해 왔으며(Nam, 2000; Nam, 2003; Nam & Kim, 2005; Nam & Kim, 2006), 본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유사한 성격의 정재 복식을 함께 묶어 분석해 보는 것은 형태와 색채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이 많은 정재 복식의 성격을 고려할 때 효율적인 연구 방법이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19세기에 새롭게 창제된 당악 정재 복식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의 결과는 19세기 당악 정재 복식의 고증 제작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오행의 원리가 실제 궁중 무용 복색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무동 및 여령 복식의 종류와 형태를 살펴보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특징을 파악한다. 둘째, 오행의 상생상극관계에 의거하여 무동 및 여령 복식의 배색 관계를 분석한다. 본 연구는 문헌 연구로서, 연구에 이용된 자료는 『純祖戊子進爵儀軌(Sunjo Muja Jinjak Uigwe)』 (1828), 『純祖己丑進饌儀軌(Sunjo Gichuk Jinchan Uigwe)』 (1829), 『憲宗戊申進饌儀軌(Heonjong Musin Jinchan Uigwe)』 (1848), 『高宗丁亥進饌儀軌(Gojong Jeonghae Jinchan Uigwe)』 (1887), 『高宗壬辰進饌儀軌(Gojong Imjin Jinchan Uigwe)』(1892), 『高宗壬寅進宴儀軌(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등이다. 문헌과 더불어 정재도를 볼 수 있는 채색 자료로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축진찬도(1829), 무신진찬도(1848), 정해진찬도(1887),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광무 5년(1901) 신축진연도 등에 나타난 정재 복식을 분석하였다.

    2.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의 유래와 특징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는 모두 19세기 초, 순조 때에 창작된 당악정재이다. 순조조는 한국의 궁중무용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시기로서, 이 시기 궁중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효명세자의 성심과 전악(典樂) 김창하의 열성으로 상당수의 궁중무용이 창작된다는 점이다(Heo, 2005). 이 시기에 창작된 정재는 가인전목단, 경풍도, 고구려무, 만수무, 사선무, 춘앵전 등 대부분 향악정재였다(Heo, 2005). 향악정재는 고려 이전 시대로부터 전승된 전통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르며, 죽간자의 인도가 없고, 춤의 시작과 끝에 절을 하는 형식이다(Seong, 1995). 그런데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는 모두 ‘죽간자’와 ‘구호’ 등의 형식을 갖춘 당악정재를 표방한 정재들이다. 당악정재는 한문으로 된 창사(唱詞)를 죽간자와 무원이 부르며, 춤이 시작하자마자 두 명의 죽간자의 인도로 무용수들이 들어오고 춤이 끝나면 곧 바로 나가는 형식이다(Seong, 1995).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는 비록 당악정재를 표방했지만, 실제로 반주음악은 ‘향당교주’를 사용했다(Heo, 2005). 즉, 이들 정재는 비록 당악형식이었지만, 민족미감의 향유가 중시되었던 추세에 따라 향악과 당악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시대의 대표적 당악정재로 이해할 수 있다(Heo, 2005).

    장생보연지무는 임금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내용의 춤이다(Nam, 1995). 장생보연지무는 불교와 연관된 춤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는 장생보연지무 기록이 있는 각 의궤의 의주(儀註)에 ‘장생보연지무보살만(長生寶宴之舞菩薩蠻)’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Lee & Son, 2010a). 불교에서 ‘보살(菩薩)’은 부처의 다음 가는 사람을 지칭하며, ‘만(蠻)’은 한족과는 다른 종족을 말한다(Lee & Son, 2010a). 문헌에 장생보연지무의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순조 29년(1829)으로 『기축진찬의궤』에 보인다. 『기축진찬의궤』 정재악장의 기록에 따르면, 장생보연지무는 “여기(女妓) 2인이 죽간자를 받들고 좌우에 나눠 서고, 1인은 앞에, 1인은 중앙에, 1인은 뒤에, 1인은 좌측에, 1인은 우측에 자리하여, 서로 바꿔가며 춤춘다.”라고 하였다. 이 정재의 특징으로는 제1변에서 제9변까지의 변화가 다양함을 꼽을 수 있다. 제1변 상대무(相對舞), 제2변 수수무(垂手舞), 제3변 상배무(相背舞), 제4변 산작화무(散作花舞), 제5변 수수무(垂手舞), 제6변 오방무(五方舞), 제7변 염수무(斂手舞), 제8변 사선무(四仙舞), 제9변 염수무로 구성된다(National Gugak Center, 1981). 고종 30년(1893) 『계사년홀기』를 비롯하여 광무 5년(1901)『신축외진연홀기』 ,『신축진연홀기』 ,『신축무동홀기』 , 『신축진찬홀기』 ,『신축진찬익일회작홀기』 , 『신축여령홀기』에 장생보연지무 정재의 진행 순서가 전해진다(Lee & Son, 2010a).

    연백복지무는 온갖 복을 펼치는 내용의 긴 창사를 부르는 것이 중심을 차지하는 정재이다. 다른 춤에 비하여 창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Lee & Son, 2010a). 순조 29년(1829)『기축진찬의궤』에 처음으로 기록이 보인다. 『기축진찬의궤』 정재악장에 따르면, “무동 2인은 죽간자를 받들고 동서로 나눠서고, 4인은 뒤에 자리하여 한 줄로 서며, 1인은 그 뒤를 따르는데, 모두 북향하여 서로 바꿔가며 춤춘다.”라고 하였다. 고종 30년(1893)『계사년홀기』 , 광무 5년(1901)『신축외진연홀기』 ,『신축진연홀기』, 『신축여령홀기』, 『신축무동홀기』에 연백복지무정재의 진행 순서가 전해진다(Lee & Son, 2010a).

    제수창은 임금이 덕이 높아 상제께서 장수로 보답하여 창성하게 한다는 내용의 정재이다. 순조 28년(1828) 자경전 진작 때 임시로 지었던 ‘제수창지곡(帝壽昌之曲)’에 효명세자가 죽간자 구호와 치어(致語)를 만들어 창(唱)하여 순조 29년(1889) 6월 19일 대전진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Lee & Son, 2010b). 『기축진찬의궤』정재악장의 기록에 따르면, “무동 2인은 죽간자를 받들고, 1인은 족자(簇子)를 받들고 앞으로 나아가 벌려선다. 4인은 두 줄로 나뉘어 사방에 서며, 1인은 중앙에 자리한다. 1인은 황개(黃蓋)를 받들고 뒤따른다. 또 4인은 그 뒤에 위치하여 벌려 선다. 모두 북향하여 춤춘다.”라고 하였다. 『계사년홀기』, 『신축진연홀기』, 『신축무동홀기』에 제수창 정재의 진행 순서가 기록되어 있다.

    최화무는 꽃피기를 재촉하고, 봄이 오기를 고대하는 내용의 정재이다. 문헌에 최화무의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순조 28년(1828)으로 『무자진작의궤』에 나타난다. 최화무 협무창사 중 4번째의 금도초전사(金刀初剪詞) 부분은 육화대(六花隊)의 삼념시(三念詩)가 그대로 쓰였고, 죽간자의 후구호도 육화대의 죽간자 후구호를 기본으로 하여 수정하여 사용하였다(Lee & Son, 2010c). 『무자진작의궤』부편에 「도서집성(圖書集成)」을 인용하여, “송나라 태종(太宗)이 친히 창제한 소석조(小石調) 아홉 번째가 최화발(催花發)이다. 무동 6인이 나란히 서서 북향하여 춤춘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기축진찬의궤』부편에서는 “무동 2인이 죽간자를 들고 앞에서 나란히 서고, 1인은 그 뒤에서 북향하여 춤춘다.”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순조 29년(1829)에 춤의 형식이 약간 고쳐졌던 것으로 보인다. 『계사년홀기』, 『갑오외진연홀기』, 『신축진찬홀기』에 최화무정재의 진행순서가 기록되어 있다(Lee & Son, 2010c).

    3.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복식의 종류 및 형태

       3.1.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의궤』는 효명세자가 순조의 40세 생일을 기념하여 올린 2차례(2월과 6월)의 연향에 대한 기록이다(Kim, 2007). 장생보연지무는 이 연향의 외연과 내연에서 모두 거행되었다. Fig. 1은 『기축진찬의궤』권수 정재도에 전하는 장생보연지무로 외연에서는 무동이, 내연에서는 여령이 춤을 추고 있다. 오른쪽의 여령 정재도에서 죽간자 아래에서 춤을 추는 5인 여령의 춤사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29년 기축진찬도(유물번호: 덕1665) (Natinoal Museum of Korea, 2010)에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Fig. 2). Fig. 1에서 앞의 2인은 죽간자(竹竿子)를 들고 있고 나머지 5인은 춤을 추고 있다. 죽간자는 붉은 칠을 한 나무 자루 위에 세죽(細竹) 100여개를 꽂고 붉은 실로 엮은 후 금박한 수정 구슬을 달아서 장식한 의물인데,『기축진찬의궤』에 그려진 장생보연지무 죽간자의 형상은 Fig. 3과 같다.

    무동 복식에 관해서는 『기축진찬의궤』권3 부편 공령조에 “무애, 최화무, 가인전목단, 장생보연지무의 무동은 각건, 홍포, 백질흑선중단의, 남야대, 흑화를 착용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권수 복식도에 그려진 무동 복식의 형태는 Fig. 4와 같다. 각건은 앞이 낮고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사진 사면이 있는 복두와 같은 형태이다. 홍포는 대수 단령포의 형태이며, 백질흑선중 단의는 깃, 수구, 도련에 선이 둘러진 동정 달린 직선 깃의 포형태이다. 복식도에는 전악의 은야대(銀也帶)가 그려져 있으나, 우측에 있는 ‘금동홍남야대동(金銅紅藍也帶同)’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남야대도 동일한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야대는 ‘야자대(也字帶)’라고도 하는데, 대의 한쪽 끝이 아래로 늘어져 한문 글자의 ‘也’자 형상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Heonjong Musin Jinchan Uigwe, 2006). 흑화는 전악, 악공, 무동의 것이

    동일하다.

    『기축진찬의궤』에서 장생보연지무 여령 복식에 관한 기록이 별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장생보연지무 여령의 복식은 일반 여령의 복식을 따랐음을 수 있다. 『기축진찬의궤』 권3 부편 공령에서 “각무정재여령은 화관(花冠)을 쓰고, 초록단의(草綠丹衣), 황초단삼(黃單衫), 이남색상표홍초상(裏藍色裳表紅裳), 홍단금루수대(紅緞金鏤繡帶), 오채한삼(五彩汗衫), 초록혜(草綠鞋)를 착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Fig. 5와 같이 복식도에서는 일반 여령의 화관, 황초삼, 홍초상(또는 황초상), 오색한삼, 수대가 그려져 있다(Fig. 5). 화관은 높은 원통형 모자 위에 꽃이 달린 형상이며, 황초삼은 동정 달린 합임의 반소매 옷으로 양 옆과 뒤 중심에 트임이 있다. 홍초상은 무릎을 가릴 정도 길이의 앞치마 형태이며 옆선이 곡선적이다. 오색 한삼은 손목에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수대에는 5개의 한자어가 수놓아져 있다. 1895년 정조의 화성 행차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도설부분을 채색 필사한 화첩 원행정리의궤도(유물번호: 신201)(National Museum of Korea, 2012)에 그려진 여령 복식의 형태와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없으나, 다만 황초삼의 소매 배래가 직배래에서 곡선배래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Fig. 6).

    Fig. 7은 헌종 14년(1848) 『무신진찬의궤』권수 정재도에 전하는 여령의 장춘보연지무이다. 동일한 춤사위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48년 무신진찬도(유물번호: 본13243)(National Museum of Korea, 2010)에 그려져 있다(Fig. 8). 『무신진찬의궤』는 순원왕후(1789-1857)의 육순을 경축하여 베푼 연향에 대한 기록으로(Kim, 2004), 이 의궤 정재도에 전하는 장춘보연지무는 고종 24년(1887)『정해진찬의궤』정재도 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87년 정해진찬도(유물번호: 덕6184)(National Museum of Korea, 2010)에 그려진 장생보연지무와 명칭만 다를 뿐 춤사위가 동일하므로 같은 정재임을 알 수 있다(Fig. 9). 『무신진찬의궤』권3 공령조에 “각무 정재여령은 화관, 황초단삼, 리남색상 표홍초상, 홍단금루수대, 오색한삼, 초록혜를 착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신진찬의궤』권수 복식도에 그 려진 일반 여령의 복식은 Fig. 10의 왼쪽 그림에 보이는 바와 같다. 『기축진찬의궤』에 보이는 여령 복식 Fig. 5와 비교해 볼 때, 화관의 크기가 많이 축소되어 족두리 형상으로 변화했 고, 황초삼의 배래 곡선이 완만해 졌으며, 홍초상의 형태가 일 반치마와 같이 폭이 더 넓어지면서 옆선의 곡선이 사라졌다. 수 대의 문양 배치도 조금 바뀌었다.

    Fig. 8Fig. 9에 보이는 바와 같이 1848년과 1887년 장생 보연지무 여령은 머리에 족두리 모양의 화관을 쓰고, 기본복으 로 수구에 흰색 끝동이 달린 녹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었 다. 남 치마 위에 홍 치마를 덧입었고, 표의로는 반소매의 황색

    삼을 입고 있다. 허리에는 홍색 대를 매었는데 대의 끝 부 분 색은 초록이다. 손에는 오색한삼을 들었는데 오색의 구성과 배치는 그림마다 조금씩 달랐다. 이러한 복식 구성은 연세대학 교 박물관 소장 광무 5년(1901) 신축진연도(Nam, 1995)에 채 색으로 그려진 장생보연지무 여령 복식과 거의 차이가 없다.

    Fig. 11은 광무 6년(1902)『임인진연의궤』에 전하는 장생보 연지무로, 고종 29년(1892)『임진진찬의궤』와 동일하게 그려 져 있다. 외연에는 무동이, 내연에는 여령이 추고 있다. 고종 29년(1892) 『임진진찬의궤』이후의 의궤에서 장생보연지무 무동복식에 관한 별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음을 볼 때, 1892 년 이후 장생보연지무의 무동은 모두 일반 무동의 복식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복식 형태에 대해서는 복식도에 그려 진 일반 무동 복식 Fig. 12를 참고 할 수 있다. 이전 시기의 장생보연지무 무동 복식과 비교해 볼 때, 구성 품목 및 형태의 변화가 나타난다. 순조 29년(1829)의 제도와 비교해 보면, 각건 이 화관으로 바뀌었고, 홍포의 이름이 홍화주의(紅禾紬衣)로 바 뀌면서 가슴에 흉배를 부착하고 있다. 홍색의 하상(紅禾紬裳)이 새로 생겨났으며, 백단의(白單衣)의 소매통이 좁아지고 선이 사 라졌다. 하상의 경우 홍화주의 속에 입어서 가려졌기 때문인지 정재도 Fig. 11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고종 29년(1892) 및 광무 6년(1902)의 일반 여령 복식의 구 성 품목 및 형태(Fig. 13)는 헌종 14년(1848)의 제도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변화라고 한다면, 복색에 있어서 일반 여령의 단삼색이 고종 29년(1892)까지는 황색(黃 單衫)이던 것이 광무 5년(1901) 이후에는 녹색(綠單衫)으로 바뀌었다는

    [Table 1.] Dancing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長生寶宴之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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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長生寶宴之舞)

    점이다. 그러나 광무 5년(1901) 신축진연도에 보이는 여령의 단삼이 여전히 모두 황색임을 볼 때 바뀐 제도의 실효 성 여부가 확실치는 않다. 장생보연지무 복식을 시기별로 정리 하면 Table 1과 같다.

       3.2.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Fig. 14는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의궤』에 전하는 연백복지무로 2인의 무동이 죽간자를 들었고, 그 아래에는 5인의 무동이 춤을 추고 있다. 순조 29년의 『진찬의궤』권3 부편 공령조에 “연백복지무 무동 중 원무(元舞)는 각건(角巾), 홍포(紅袍),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線中單衣), 남야대(藍也帶), 흑화(黑靴)를 신고, 선모(仙母) 및 죽간자(竹竿子) 무동은 복두(?頭), 남포(藍袍), 백질흑선중단의, 홍야대(紅也帶), 흑화를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할에 따라 무동 복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원무 무동의 복식은 순조 29년(1829) 장생보연지무 무동 복식 과 동일하다. 선모 및 죽간자 무동이 착용한 복두의 형태는 Fig. 4에 그려진 바와 같이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식으로 층이진

    [Table 2.] Dancing garments of the Yeonbaekbokjimu(演百福之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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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garments of the Yeonbaekbokjimu(演百福之舞)

    형태이며 양 각이 달려 있다.

    Fig. 15는 고종 24년(1887) 『정해진찬의궤』에 전하는 연백복지무이다. 동일한 춤사위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87년 정해진찬도(유물번호: 덕6184)(National Museum of Korea, 2010)에 그려져 있다(Fig. 16). 고종 24년(1887)의 장생보연지무와 마찬가지로 일반 여령의 복식을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Fig. 10). Fig. 17은 광무 6년(1902)『임인진연의궤』에 전하는 연백복지무로 고종 29년(1892)『임진진찬의궤』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외연에서는 무동이, 내연에서는 여령이 연행했는데, 앞에는 2인이 죽간자를 들었고 그 아래에는 5인이 나란히 춤을 추고 있다. 1829년과 1887년에 원무가 앞으로 나선 것으로 표현되었던 바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고종 29년(1892)년, 광무 6년(1902)의 연백복지무 무동과 여령은 장생보연지무와 마찬가지로 일반 무동 및 일반 여령의 복식을 입었던 것으로 판단된 다(Fig. 12 and Fig. 13). 연백복지무 복식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Table 2와 같다.

       3.3. 제수창(帝壽昌)

    Fig. 18은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의궤』에 전하는 제수 창으로 앞의 가운데 무동 1인은 족자(簇子)를 들었고, 앞의 양

    [Table 3.] Dancing garments of the Jesuchang(帝壽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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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garments of the Jesuchang(帝壽昌)

    옆 무동 2인은 죽간자를 들었으며, 아래에는 10인의 무동이 춤 을 추고 있다. 그 가운데 1인은 황개(黃蓋)를 들고 있다. 제수 창에 이용된 족자와 황개의 형상은 Fig. 19와 같다. 『기축진 찬의궤』 권3 공령조에는 제수창 무동 복식에 관한 별도의 기 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Fig. 18에 보이는 바와 같이 제 수창 정재도에서 무동들이 각건을 쓴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볼 때, 순조 29년(1829) 외연에서 제수창 무동들이 장생보연지무 무 동과 동일한 품목들, 즉 각건, 홍포, 백질흑선중단의, 남야대, 흑 화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Fig. 20은 광무 6년(1902) 『임인진연의궤』에 전하는 제수창 으로 고종 29년(1892) 『임진진찬의궤』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 다. 외연에서는 무동이, 내연에서는 여령이 연행하고 있다. 고 종 29년(1892)년, 광무 6년(1902)의 제수창 무동은 장생보연지 무, 연백복지무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일반 무동 복식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Fig. 12).

    Fig. 21은 광무 5년(1901) 신축진연도에 그려진 제수창으로

    앞의 가운데 여령 1인은 족자를 들었고, 앞의 양 옆 여령 2인 은 죽간자를 들었으며, 아래에는 10인의 여령이 춤을 추고 있 다. 여령의 복식은 화관, 황초삼, 홍초상, 수대, 오색한삼으로 일반 여령의 복식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광무 6년(1902) 『임인진연의궤』와 고종 29년(1892)『임진진찬의궤』에 전하는

    [Table 4.] Dancing garments of the Choehwamu(催花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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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garments of the Choehwamu(催花舞)

    제수창 여령도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일반 여령 복식을 따랐던 것으로 판단된다(Fig. 13). 제수창 복식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Table 3과 같다.

       3.4. 최화무(催花舞)

    Fig. 22는 순조 28년(1828) 『무자진작의궤』에 전하는 최화무로 무동 6명이 나란히 춤을 추고 있다. 『무자진작의궤』권부편 공령조에 “춘광호, 첩승, 최화무 무동은 아광모, 홍라포, 백질흑선중단의, 남질흑선상, 주전대, 흑화를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1828년 최화무 무동이 착용한 복식의 형태는 Fig. 23에 그려진 바와 같다. 아광모는 모정이 둥글고 높은 사모와 유사한 형상인데 앞 중앙에 실꼬임인 듯한 장식선을 댄 것이 특징이다. 홍라포는 흉배가 없는 대수 단령포이다. 백질흑선중단의는 ‘백중단남선’의 도식 우측에 ‘홍흑선동(紅黑同)’이라 기록되어 있어 색만 다르고 제도가 같았음을 알 수 있는데, 대수의 직령 깃의 포이며 깃, 수구, 도련, 옆선에 선을 둘렀다. 남질흑선상 역시 ‘홍상남선’의 도식 우측의 ‘남상흑선 남상홍선 옥색상흑선동(藍裳黑藍裳紅玉色裳黑同)’기록을 기준으로 형상을 이해할 수 있는데, 치마의 앞과 뒤가 분리된 의례용 상 형태로서 앞폭과 뒤폭의 너비가 다르며 밑단과 옆트임에 선을 둘렀다. 주전대는 야자대(야대)와 달리 늘어진 부분이 그려져 있지 않다. 흑화는 전악, 악공, 무동이 함께 착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오화(烏靴)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신코가 약간 올라와 있고 바닥이 얇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는 목화(木靴)의 형태이다.

    Fig. 24는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의궤』에 전하는 최화무로 앞에는 2인의 무동이 죽간자를 들고 있고 아래에는 5인의 무동이 춤을 추고 있다. 순조 28년(1828) 최화무의 춤사위와 같지 않다. 또한 순조 28년(1828) 최화무에는 보이지 않았던 죽간자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악 정재의 형식을 더욱 갖춘 것으로 보인다. 『기축진찬의궤』권3 부편 공령조에서 최화무 무동의 복식은 장생보연지무 무동의 복식과 동일하게 각건, 홍포, 백질흑선중단의, 남야대, 흑화로 기록되어 있다. 1828년의 최화무 무동 복식의 종류와 비교해 볼 때, 관모와 대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828년에는 아광모와 주전대를 사용했으나,

    [Table 5.] Boy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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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y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1829년에는 각건과 남야대를 사용하고 있다(Table 4).

    Fig. 25는 고종 29년(1892)『임진진찬의궤』내진연 정재도에 전하는 최화무로 앞에 2인의 여령이 죽간자를 들고 있고 가운데 1인, 뒤에 4인의 여령이 춤을 추고 있다. 순조 29년(1829)의 최화무와 동일한 춤사위로 보인다. 1892년의 최화무여령 역시 별도의 기록이 없음으로 보아 당시 일반 여령의 복식을 따랐을 것으로 판단된다(Fig. 13). 광무 5년(1901)의 『신축진찬의궤』정재도에도 『임진진찬의궤』와 동일한 구도로 여령의

    [Table 6.] Female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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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male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최화무가 그려져 있는데(Lee & Son, 2010c), 이들 역시 일반 여령의 복식을 착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축진찬의궤』권3 공령조에 “각무 정재여령은 화관, 녹초단삼, 이남색상표홍초상, 홍단금루수대, 오색한삼, 초록혜를 착용한다.”고 되어있으며(Kim, 2005), 복식도에서는 여령의 녹초삼이 그려져 있다(Lee & Son, 2010c). 그러나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광무 5년(1901)의 병풍에 그려진 진연도에서 여령들이 모두 황초삼을 착용한 것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01년의 최화무 여령 복색이 녹색이었을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최화무 복식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Table 4와 같다.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4개 정재를 종합 하여 무동 복식과 여령 복식의 변화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Table 5, Table 6과 같다.

    4.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복식의 배색

       4.1.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와 색채

    고대의 동양인들은 우주의 많은 개념과 존재를 다섯 가지 기본 요소와 연관시켜 생각해 왔다, 오행상생설이란 하나의 원기가 다른 원기를 생성하는 것으로, 오행상극설은 하나의 원기가 다른 원기를 상극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상 체계이다(Nam & Kim, 2006) 오행은 서로 상생하여 부족한 것을 보충하거나, 서로 상극하여 넘치는 것을 조절하여 조화의 묘를 이루게 된다(Mun, 1973). 고대로부터 동양에서 가장 기본으로 인식되어 온 색은 적, 청, 황, 백, 흑의 다섯 가지 색이었다. 이들 다섯 가지 색은 5가지 바른 색으로서 오정색(五正色), 혹은 5가지 방위를 나타내는 색으로서 오방색(五方色)이라 불리기도 했다.

    『규합총서』(Yi, 1975) 염색제법 채색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오정색(오방색)의 상생 상극 관계를 정리해보면, 오정색(오방색)의 상생 관계는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의 상생 방향으로 각 요소에 해당하는 색을 대입함으로써, 상극 관계는 “금극목,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의 상극 방향으로 각 요소에 해당하는 색을 대입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런데 오정색이 합성되어 다시 오간색이 만들어지는데, 이 역시 상생의 방향 혹은 상극의 방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규합총서』에 의하면 상생의 방향으로 합성된 오간색과 상극의 방향으로 합성된 오간색은 그 종류가 다른데, 상생의 방향으로 합성된 오간색은 “정(?, 짙은 보라), 훈(?, 주황), 규(硅, 연두록), 불(?, 재빛), 암(?, 천청색) 또는 참(?, 민색)”이며, 상극의 방향으로 합성된 오간색은 “벽(碧, 연남), 녹(綠, 연초록), 유(?, 유록), 자(紫, 자적), 홍(紅, 분홍)”이다. 이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정리하면 Fig. 26, Fig. 27과 같다.

    상극의 방향으로 합성된 오간색의 합성 과정 및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禮記(Liji)』 (1998) 옥조 권29 ‘의정색상간색(衣正色裳間色)’의 소(疏)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바른 것을 일컬어 청, 적, 황, 백, 흑 오방정색이라 한다. 바르지 않은 것은 오방간색인데 녹, 홍, 벽, 자, 유황(?黃)이 이것이다. 청(靑)은 동방 정색이며, 녹색(綠色)은 동방 간색이다. 동은 목이 되고, 목색은 청이다. 목은 토를 이기고, 토황(土黃)을 아울러 이김으로써 간색 혹은 녹색, 즉. 청황색이 된다. 주(朱)는 남방 정색이며, 홍(紅)은 남방 간색이다. 남은 화가 되며, 화적(火赤)은 금을 이긴다. 금은 백인 고로 홍색, 즉 적백색이다. 백(白)은 서방 정색이며, 벽(碧)은 서방 간색이다. 서는 금이 되며, 금백은 목을 이기는 고로 벽색, 즉 청백색이다. 흑(黑)은 북방 정색이며, 자(紫)는 북방 간색이다. 북방은 수이고, 수의 색은 흑이다. 수는 화를 이긴다. 화는 적인 고로 자색, 즉 적흑색이다. 황(黃)은 중앙 정색이며, 유황(?黃)은 중앙 간색이다. 중앙은 토가되며, 토는 수를 이긴다. 수는 흑인 고로 유황의 색, 즉 황흑색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볼 때, 녹, 홍, 벽, 자, 유는 비록 간색이지만 그 위치가 정색들의 정 가운데에 있기 보다는 이기는 색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Fig. 27). 이는 녹색을 동방 간색으로, 홍색을 남방 간색으로, 벽색을 서방 간색으로, 자색을 북방 간색으로, 유황색을 중앙 간색으로 상정한데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상생 및 상극 관계를 논할 때, 벽색은 백색으로, 녹색은 청색으로, 유록은 황색으로, 자적은 흑색으로, 홍색은 적색의 자리에 의탁하여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 간색의 상생 상극 관계는 이러한 방식에 의해 분석되었다. 이는 곧 달리 말하면, 전통 사회에서 오정색을 쓰기 어려운 경우, 백색 대신에 벽색을, 청색 대신에 녹색을, 황색 대신에 유황색을, 흑색 대신에 자색을, 적색 대신에 홍색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4.2. 무동 및 여령 복식의 배색

    4.2.1. 무동 복식의 배색 관계

    오행의 상생상극관계에 기초하여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무동 복식의 배색 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Table 7에 정리된 바와 같다. 상하 배색에서는 ‘홍포-남상’처럼 상생의 배색이 보였으며, 표리 배색에서는 ‘홍포-백중단’, ‘남포-백중단’, ‘홍의-백중단’과 같이 모두 상극의 배색이 나타났다. 전체와 부분의 배색에서는 ‘홍포-남대’, ‘백중단-흑선’, ‘남포-홍대’, ‘남상-흑선’과 같이 모두 상생의 배색이 나타났다. 상하 배색과 전체와 부분의 배색에서 모두 상생의 관계를 보이고, 표리 배색에서는 모두 상극의 관계가 나타난 것은, 이면보다는 표면에 드러나는 복식의 배색 관계를 중시하여 이를 모두 상생의 관계로 배치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4.2.2. 여령 복식의 배색 관계

    오행의 상생상극관계에 기초하여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여령 복식의 배색 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Table 8

    [Table 7.] Color arrangement of the boy dancers' gar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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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 arrangement of the boy dancers' garments

    [Table 8.] Color arrangement of the female dancers' gar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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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 arrangement of the female dancers' garments

    정리된 바와 같다. 상하 배색에서는 ‘황삼-홍상’과 같이 상생의 배색이 보였으며, 표리 배색에서는 ‘홍상-남상’과 같이 상생의 배색이 보였다. 전체와 부분의 배색에서도 ‘황삼-홍대’와 같이 상생의 배색이었다. 무동 복식의 배색에서 표리 배색이 모두 상극 관계였던 것과는 달리 여령 복식의 배색에서는 표리 배색도 상생 관계인 점이 특이하다.

    4.2.3. 여령 한삼의 배색 관계

    여령 복식에는 오색 한삼이 포함되어 있어서 오색 한삼 내에서 부분과 부분의 배색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했다.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여령 오색 한삼의 배색 순서를 살펴보면, 손목부위에서 바깥을 향해 ‘적-청-자-황-백’의 순서인 경우(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무신진찬도, 유물번호 본13243), ‘자-녹-황-홍-청’의 순서인 경우(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무신진찬도, 유물번호 동2649), ‘백-홍-녹-황-청’의 순서인 경우(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정해진찬도, 유물번호 덕6184) 등이 있었다. 오색의 종류 및 배치 순서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정색과 간색을 혼합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오정색 중에서 한삼에 사용되지 않은 색은 흑색이었으며, 흑색 대신에 간색인 자색과 녹색 등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모든 정재 여령 복식에 사용된 오색 한삼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으나, 조선 후기에 오색으로 대표된 색이 어떤 종류의 색들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의미 있는 결과로 생각된다.

    상생상극관계에 의거하여 세 종류 한삼의 배색을 분석해 보면, ‘적-청-자-황-백’ 한삼은 3개의 상생(적-청, 청-자, 황-백), 1개의 상극(자-황) 관계를 보였으며, ‘자-녹-황-홍-청’ 한삼 역시 3개의 상생(자-녹, 황-홍, 홍-청), 1개의 상극(녹-황) 관계를 보여 상생 배색이 상극 배색보다 많은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백-홍-녹-황-청’ 한삼의 경우에는 1개의 상생(홍-녹), 3개의 상극(백-홍, 녹-황, 황-청) 관계를 보이고 있었다.

    5. 결 론

    본 연구는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무동 및 여령 복식의 종류 및 형태, 변화 특징을 살펴보고, 이들 복식에 사용된 색채의 배색 특성을 고찰한 연구이다. 연구의 결과이자,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무동의 복식은 춤의 종류, 무동의 역할, 시간의 변화 등에 따라 복식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4개 정재 전부에서 공통적으로 홍포와 백질흑선중단의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연백복지무에서는 원무 무동과 선모 및 죽간자 무동의 옷이 달라서, 원무 무동은 홍포를 입었으나 선모 및 죽간자 무동은 남포를 입었다. 홍포에는 각건, 남야대, 흑화를 입었으며, 남포에는 복두, 홍야대, 흑화를 썼다.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에서 무동은 주로 홍포를 입었지만, 후대로 오면서 일반 무동의 복식인 홍화주의를 입게 된다. 순조 29년(1829)에는 홍포, 백질흑선중단의, 남야대, 각건, 흑화를 사용하던 제도가 고종 29년(1892)에는 홍화주의, 홍화주상, 백단의, 홍남야대, 화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무동의 홍포는 여령의 황초삼과 달리 대수 단령포 형태였다.

    둘째,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여령의 복식은 모두 화관, 황초삼, 홍초상, 수대를 기본으로 하는 일반 여령의 복식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일반 여령의 복식 품목의 종류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약간의 형태 및 장식의 차이를 보였다. 여령의 화관이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족두리 모양으로 변했으며, 황초삼의 곡선 배래가 완화되었다. 홍초상은 옆선이 곡선적이고 폭이 좁은 형태에서 폭이 넓은 일상복 치마 형태로 변했으며, 수대의 장식 위치와 문양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오행의 상생상극관계에 의거하여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복식의 배색 관계를 살펴본 결과, 무동및 여령 복식 전반에 걸쳐 상생의 배색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동 복식의 경우, 상하 배색과 전체와 부분의 배색에서 모두 상생의 관계를 보였으며, 표리 배색에서는 모두 상극의 관계를 보였다. 여령 복식의 경우에는, 상하 배색, 표리 배색, 전체와 부분의 배색에서 모두 상생 관계를 보였으며, 오색 한삼의 부분과 부분 배색에서는 상생과 상극 관계가 모두 공존하고 있었다. 정재 복식의 배색관계는 이면보다는 표면에 드러나는 복식의 배색 관계를 중시하여 상생의 관계로 배치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색동과 같이 작은 부분들이 연결될 때는 상생 상극의 관계보다는 다채로운 색을 추구하는 것에 더욱 주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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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 ]  Jangsaengboyeonjimu,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Jangsaengboyeonjimu,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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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2. ]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Gichuk, 1829,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53.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Gichuk, 1829,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53.
  • [ Fig. 3. ]  Jukganja[bamboo staff] 『Sunjo Gichuk Jinchan Uigwe』 (1829), Gyu14370, from http://ekyujanggak.snu.ac.kr
    Jukganja[bamboo staff]
『Sunjo Gichuk Jinchan Uigwe』
(1829), Gyu14370, from http://ekyujanggak.snu.ac.kr
  • [ Fig. 4. ]  Dresses worn by boy dancers,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boy dancers,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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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5. ]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Sunjo Gichuk Jinchan Uigwe』 (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Sunjo Gichuk Jinchan Uigwe』
(1829), Gyu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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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6. ]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Illustrations of record of King Jeongjo's visit to his father's tomb, 19C, National Museum of Korea (2012), p. 159.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Illustrations of record of King Jeongjo's visit to his
father's tomb, 19C, National Museum of Korea
(2012), p. 159.
  • [ Fig. 7. ]  Jangchunboyeonjimu, 『Heonjong Musin Jinchan Uigwe』 (1848), Gyu14372. http://e-kyujanggak.snu.ac.kr
    Jangchunboyeonjimu,
『Heonjong Musin Jinchan Uigwe』
(1848), Gyu1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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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8. ]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Musin, 1848,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01.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Musin, 1848,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01.
  • [ Fig. 9. ]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Jeonghae, 1887,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45.
    Jangsaengboyeon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Jeonghae, 1887,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45.
  • [ Fig. 10. ]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left『Heonjong Musin Jinchan Uigwe』(1848), Gyu14372; right『Gojong Jeonghae Jinchan Uigwe』(1887), Gyu14405.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left『Heonjong Musin
Jinchan Uigwe』(1848),
Gyu14372; right『Gojong
Jeonghae Jinchan Uigwe』(1887),
Gyu1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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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1. ]  Jangsaengboyeonjimu,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Jangsaengboyeonjimu,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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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2. ]  Dresses worn by boy dancers,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boy dancers,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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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3. ]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female dancers,
『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 [ Table 1. ]  Dancing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長生寶宴之舞)
    Dancing garments of the Jangsaengboyeonjimu(長生寶宴之舞)
  • [ Fig. 14. ]  Yeonbaekbokjimu,『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Yeonbaekbokjimu,『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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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5. ]  Yeonbaekbokjimu,『Gojong Jeonghae Jinchan Uigwe』(1887), Gyu14405. http://e-kyujanggak.snu.ac.kr
    Yeonbaekbokjimu,『Gojong Jeonghae
Jinchan Uigwe』(1887), Gyu1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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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6. ]  Yeonbaekbok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Jeonghae, 1887,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50.
    Yeonbaekbokjimu,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Jeonghae, 1887, National Museum
of Korea (2010), p. 150.
  • [ Fig. 17. ]  Yeonbaekbokjimu,『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Yeonbaekbokjimu,『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 [ Table 2. ]  Dancing garments of the Yeonbaekbokjimu(演百福之舞)
    Dancing garments of the Yeonbaekbokjimu(演百福之舞)
  • [ Fig. 18. ]  Jesuchang,『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Jesuchang,『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 [ Fig. 19. ]  Jokja[hanging scroll] and Hwanggae[yellow cover],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Jokja[hanging scroll] and Hwanggae[yellow cover], 『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 [ Fig. 20. ]  Jesuchang,『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http://e-kyujanggak.snu.ac.kr
    Jesuchang,『Gojong Imin Jinyeon
Uigwe』(1902), Gyu1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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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21. ]  Jesuchang, shown in Jinyeondo screen, 1901, Nam(1995), p. 190.
    Jesuchang,
shown in Jinyeondo
screen, 1901,
Nam(1995), p. 190.
  • [ Table 3. ]  Dancing garments of the Jesuchang(帝壽昌)
    Dancing garments of the Jesuchang(帝壽昌)
  • [ Fig. 22. ]  Choehwamu, 『Sunjo Muja Jinjak Uigwe』 (1828), Gyu14364. http://e-kyujanggak.snu.ac.kr
    Choehwamu,
『Sunjo Muja Jinjak Uigwe』
(1828), Gyu1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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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23. ]  Dresses worn by boy dancers, 『Sunjo Muja Jinjak Uigwe』(1828), Gyu14364. http://e-kyujanggak.snu.ac.kr
    Dresses worn by boy dancers,
『Sunjo Muja Jinjak Uigwe』(1828),
Gyu1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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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24. ]  Choehwamu,『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http://e-kyujanggak.snu.ac.kr
    Choehwamu,『Sunjo
Gichuk Jinchan Uigwe』(1829),
Gyu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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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25. ]  Choehwamu,『Gojong Imjin Jinchan Uigwe』(1892), Gyu 14428. http://e-kyujanggak.snu.ac.kr
    Choehwamu,『Gojong
Imjin Jinchan Uigwe』(1892), Gyu
1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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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able 4. ]  Dancing garments of the Choehwamu(催花舞)
    Dancing garments of the Choehwamu(催花舞)
  • [ Table 5. ]  Boy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Boy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 [ Table 6. ]  Female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Female dancer's garments of the Jangsengboyeonjimu, Yeonbaekbokjimu, Jesuchang, and Choehwamu
  • [ Fig. 26. ]  Circle of the mutual generation[相生]
    Circle of the mutual
generation[相生]
  • [ Fig. 27. ]  Circle of the mutual overcoming[相剋]
    Circle of the mutual
overcoming[相剋]
  • [ Table 7. ]  Color arrangement of the boy dancers' garments
    Color arrangement of the boy dancers' garments
  • [ Table 8. ]  Color arrangement of the female dancers' garments
    Color arrangement of the female dancers' gar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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