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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한국어 어휘 유창성과 평가 구인에 대한 인식 연구
  • 비영리 CC BY-NC
ABSTRACT

Lee, Kyung. 2015. 3. 31. Evaluators’ Perceptions of the Concept and Test Constructs of Korean Lexical Fluency: A study of evaluators’ comments. Bilingual Research 58, 59-86.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concept and constructs of Korean lexical fluency by researching Graders’ perception. In a KSL or KFL class which stand on the communicative approach, the concept of Fluency is dealt with as a important content and goals of education due to the fact that fluency is rather a overall linguistic competence and could be observed by real performance premise communication context. In this perspectives, vocabulary also taught and measured in the communication context and premise performance, since lexical competence also should be expected to contribute to communicative competence. In this reason, this study introduced the concept of ‘lexical fluency’ as a vocabulary use ability in a performance dimension. The concept of ‘lexical fluency’ is not concerning the lexical knowledge, is related to qualitative ability that vocabulary use in a performance situations, so that can be the goal of Korean lexical education and assessment. Nevertheless, up to the present, There is no explicit agreement relative to concept and constructs of fluency and the lexical fluency, naturally. Therefore, This study conduct assessment specialists’ perception survey for draw a concept and scale of lexical fluency and the constructs of it. To conclude, Graders look at lexical fluency from a broad perspective. They assessed vocabulary use in two ways ; microscopic dimension, macroscopic dimension. The former contains lexical diversity, level, accuracy, and the latter, macroscopic dimension is related to discourse competence and pragmatic competence.(Human Resource Development Program in Korean history, BK21 PLUS project, Korea Univ.)

KEYWORD
어휘 유창성 , 어휘 사용 능력 , 인식 연구 , 채점자 논평
  • 1. 서론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어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를 밝히고, 채점자 인식 조사를 통해 어휘 유창성을 평가하기 위한 구인을 탐색해 보는데에 있다.

    한국어 교육 및 연구에서 어휘는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온 영역이다.1) 언어 숙달도가 높아짐에 따라 학습자가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이 확장되며, 어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질수록 학습자의 이해·표현 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들에서 검증된 바 있다(CA Engber, 1995; Meare, 1996; A Zareva, 2005 등). 이러한 연구의 성과들을 기반으로, 어휘는 한국어 교육의 내용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보다 효과적인 어휘 교육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이 다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휘 교육 분야에서의 다양한 성과에 견주어 볼 때, 어휘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및 논의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2). 의사소통 중심의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한국어 교실에서 어휘 교육은 자연스러운 맥락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지향하고 있으며, 의사소통 기능과 결합하여 어휘를 적절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신장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고립된 맥락에서의 어휘 지식 평가가 아닌 실제 의사소통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학습자가 지니고 있는 어휘 능력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평가 구인의 타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현재의 어휘 평가는 다른 기능과 통합하여 간접적으로 어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단편적인 어휘 지식 평가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어휘 평가를 통해 궁극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학습자의 어휘 사용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지 못했으며3), 어휘 평가의 구인 및 범주 설정에 대한 논의 역시 초기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소통 수행 맥락에서의 어휘 사용 능력을 타당도 높게 평가하고 설명하기 위한 평가 구인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이때 의사소통 수행을 전제로 한 어휘 사용 능력은 곧 ‘어휘 유창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될 것이며, 학습자가 수행한 작문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채점자의 논평을 중심으로 어휘 유창성 평가의 구인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제2언어 및 한국어 교육에서 ‘유창성’ 개념은 교육 내용이자 목표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평가 영역에서도 핵심적인 구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숙달도 차원에서 언어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면서 유창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유창성이 단순히 지식을 보유하고 있느냐의 차원을 넘어 실제로 의사소통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것이며4) ‘수행의 질(質)’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어 교육 및 평가의 제 영역에서 ‘유창성’ 개념이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창성의 본질과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까지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경(2015)에서는 수행 차원에서의 어휘 능력을 교육하기 위해 ‘어휘 유창성’ 개념을 도입하고, 그 결정 요인에 대해 밝힌 바 있다5). 본고에서는 이러한 ‘어휘 유창성’의 개념을 평가 맥락에 도입하여 수행을 중심으로 한 어휘 사용의 유창성을 평가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어휘 사용의 유창성을 평가하기 위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유창한 정도를 판단하는 구인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고는 채점자들의 인식 조사를 통해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 그리고 어휘 사용이 유창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평가의 구인들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1)강현화(2013:14)에 따르면, 2013년까지 이루어진 어휘 연구의 수는 총 785편이었으며 2011년도, 2012년도에 이르러서는 각각 110편, 131편의 연구가 발표되는 등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2014년에도 학술연구정보서비스(KERIS)에 등록된 한국어 어휘 교육 관련 학위 논문의 수가 국내 기준 약 244편, 국내 학술지 논문의 수는 약 65편에 달하고 있어 어휘 교육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이경(2015:4~7)에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한국어 어휘 평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대부분의 연구들이 기존에 이루어지고 있는 숙달도 평가의 어휘 영역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반면, 어휘 능력과 구인에 대한 기초 개념 연구가 부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어휘 평가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기초 연구가 필요함을 찾아볼 수 있는 지점 이라고 할 수 있다.  3)김광해(1993), 이영숙(1997), 이충우(2001), 신명선(2004) 등에서 어휘 능력의 본질과 요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들 연구는 어휘 능력에 대한 정의와 어휘 능력의 구조 및 요소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그 연구의 범위가 언어 사용자의 머릿속에 축적되어 있는 어휘 능력에 한정되어 있어,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어휘 평가의 직접적인 구인으로 끌어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위 연구들을 통해 축적된 성과를 기반으로 수행 맥락에서의 어휘 사용 능력과 그 평가 구인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4)이정희(2010:185)에서도 유창성은 주로 말하기 능력과 관련하여 고찰되어 왔는데, 이는 유창성이 ‘의사소통능력’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용(use)’에 초점을 두고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이경(2015)에서는 이론적 검토를 통해 어휘 유창성 결정 요인을 도출해 내었으며 학습자 작문을 양적, 질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각각 검증하였다. 연구 결과 도출된 결정 요인은 질적 요인으로는 형태, 통사적 결속성, 의미적 응집성, 화용적 적절성이 있었으며 양적 요인으로 어휘 오류 빈도, 어휘 다양도, 어휘 세련도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학습자가 수행한 작문을 통해 어휘 유창성 교육의 내용과 방안을 도출해 내는 데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가의 차원으로까지는 확장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본고는 어휘 유창성 평가의 개발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그것에 선행되는 기초적 연구로서 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였다.

    2. 한국어 어휘 유창성과 평가 구인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라는 말에는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을 수행하기 위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구성하는 측면, 그리고 수행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절차적 지식과 전략적인 능력에 관련된 측면 등이 포괄된다. 따라서 유창성은 단순히 언어 지식 이나 메시지에 실리는 ‘기술(skill)’로 다루어지기에는 그 범위가 넓으며 의사소통 수행의 전반을 관장하는 하나의 능력(competence)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6).

    지금까지 제2언어 및 한국어 교육 분야에서의 유창성은 말하기 혹은 쓰기 평가의 한 구인으로 다루어져 왔으며, 정확성, 복잡성 등의 개념과 영역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가 재조명받으면서 유창성을 정확성, 자연스러움, 풍부함, 복잡성 등의 요소중 일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하는 연구가 나타나게 되었다(김영서, 1998;김유정 외, 1998; 박경자 외, 2001; 이을지, 2007 등)7).

    이정희(2010)에서는 Fillmore(1979), Lennon(1990), Hedge(1993) 등의 논의를 고찰하여, 유창성을 의사소통능력과 언어 능력의 전체적인 양상을 표현하는 종합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해당 연구에서 유창성은 발음 및 억양의 자연스러움, 문법 사용의 정확성, 어휘 사용의 실제성 및 적절성, 담화 전개의 자연스러움, 표정과 몸짓언어 사용의 자연스러움, 자신감 있는 태도 등 전반적인 양상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일반인과 전문가 집단의 인식 평가 방식을 통해, 유창성에 대한 인식 속에 언어 능력 전반이 관통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이정희, 2010:202).

    이러한 관점에서 어휘 유창성 역시 어휘 지식8)이나 어휘량, 사용된 어휘의 종류, 단어 재인 속도 등의 양적,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 의사소통 수행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어휘 사용 능력을 타당성 있게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유창성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 가는 현시점에서도 유창성 논의에서 어휘가 가지는 지위는 사실상 매우 축소되어 있다. 유창성 평가 연구에서 어휘와 관련한 항목으로는 잘못 사용된 어휘의 재선택 (Fulcher, 2003), 단어 반복의 횟수, 대용어 사용 유무(이을지, 2007), 어휘 사용의 실제성 및 적절성(이정희, 2010), 단어 반복, 어휘 종류(신유경, 2013) 등이 있어, 이정희(2010)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가 양적인 관점에서 어휘를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창성을 의사소통 수행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언어 사용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정의할 때, 어휘 유창성의 범주에는 어휘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의사소통 맥락에 대한 이해, 절차적 지식 등이 포괄되어야 할 것이며 특별히 어휘를 통해 의사소통의 단위인 담화를 구성하는 능력, 의사소통 맥락과 참여자를 고려하여 어휘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화용적인 능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김광해(1993), 이영숙(1997), 신명선(2004), 이기연(2012, 2014)에서 논의하고 있는 어휘 능력 및 구조는, 어휘 사용 측면에서의 지식 혹은 능력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김광해(1993)에서 정의하고 있는 어휘 능력은 ‘어휘 의미’에 대한 지식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기존 논의를 벗어나 ‘어휘를 구사’하는 일에 관한 능력까지를 어휘 사용자의 능력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이영숙(1997)에서는 질적 어휘력을 언어 내적 지식과 언어외적 지식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는데, 언어내적 지식은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에 대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때 선언적 지식은 형태, 의미, 통사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상황에 따른 제약, 사용 효과 등과 관련된 화용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며, 선언적 지식과 별개로 단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지식은 절차적 지식으로 따로 지칭하고 있다. 기존의 논의에서 살핀 어휘 능력의 범위가 개별 어휘, 혹은 어휘 간의 관계 차원에 머무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영숙(1997)의 논의는 의사 소통 상황에 맞게 어휘를 선택하는 지식과 더불어 실제로 단어를 선택하고 처리하는 수행 과정에서의 지식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수 있다.

    한편 신명선(2004)의 연구는 어휘 능력의 하위 요소로서 상징 능력과 지시 능력을 들고 있는데, 상징 능력은 어휘의 형식과 내용 간의 관계에 대한 것, 지시 능력은 내용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의미론, 화용론 등과 주로 관련되는 능력으로 설명되고 있다. 특별히 지시 능력은 ‘적절성’, ‘맥락성’과 관련된 능력으로서, 상황에 적합한 개념의 어휘를 사용할 수 있는지, 어휘를 심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의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기연(2012, 2014)에서도 어휘 능력을 어휘를 실제로 다루는 능력으로서 정의하며, 지식, 운용(기능)9) , 태도의 세부 요소가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어휘의 의미, 구조, 형태, 화용에 대한 내적인 지식 외에 어휘 외적 지식, 그리고 변별, 추론, 정의, 생성과 같이 어휘를 실제로 운용하는 과정에서의 능력, 어휘 사용과 능력에 대한 태도가 모두 어휘 능력에 해당된다.

    이들 연구들은 모두 어휘 능력에 대한 정의가 ‘어휘와 어휘를 둘러싸고 있는 제 영역에 대해 아는 것’과 더불어 어휘 사용 과정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능력’의 차원에서 기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어휘 능력과 그 구조 및 범위를 보다 발전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본고의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본고는 이들 논의와 지향점을 함께 하여 의사소통 수행 차원에서 어휘 능력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나아가 어휘 유창성을 ‘수행 맥락’을 전제로 할 때 온전히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즉, ‘어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어휘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의 근거가 어휘를 사용하는 의사소통 맥락에서 확보되어야 하며 어휘를 많이 알고 사용하는 것 이상의 질적인 영역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10).

    ‘수행 맥락’에 대한 논의는 Chapelle(1994)에서도 이미 강조된 바 있다. 이에 의하면 어휘 능력은 ‘어휘 사용의 맥락(context)’, ‘어휘 지식과 기본적인 처리 과정’, ‘어휘 사용을 위한 초인지적 전략’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통해 설명될 수 있는데, ‘어휘 사용의 맥락’에서 말하는 맥락은 특정 상황에서부터 문화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 수행 과정에서 언어 사용자로 하여금 언어적 선택을 하게끔 하는 모든 맥락을 포괄한다고 보았다(Chapelle, 1994:164).

    한편 이도영(2011)에서는 담화 구성 능력을 어휘 평가에 포함하고 있다. 이도영(2011)은 어휘 교육 평가의 내용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하면서 어휘 평가의 핵심은 곧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며 의미를 안다는 것은 곧 (1) 기호 체계로서의 어휘 의미, (2) 상황 맥락으로부터 추출한 어휘 의미, (3) 어휘 사용 규칙(조건)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중 ‘어휘 사용 규칙을 안다’는 것은 결국 의미 구성과 관련된 능력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도영(2011)에서도 어휘를 사용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은 최소 문장 단위 이상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능력은 결국 의사소통의 단위가 되는 문장 이상의 단위, 담화를 구성하는 능력으로도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어휘 유창성 평가의 구인은 크게 미시적인 차원과 거시적인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시적인 차원은 개별 어휘 혹은 어휘 간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어휘의 양과 수준, 어휘 사용의 정확성 등을 평가 구인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개별 어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수준 높은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지의 유무가 어휘 유창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어휘를 사용함에 있어 발음 또는 철자를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휘, 문장과의 연결에 오류는 없는지 등에 대한 측면 역시 미시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한편 거시적인 차원은 어휘 단위를 넘어 의사소통 단위 전반에서 관찰될 수 있는 것으로서 담화 능력, 화용 능력 및 전략적 능력과 관련한 구인을 도출할 수 있다. 김정숙 · 원진숙(1993:25~26)에서는 담화 능력을 ‘담화 구성 능력’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를 어휘와 연결지어 살펴보면, 화자 또는 필자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주제 관련성 있는 어휘를 선택하고 있는지, 의미적으로 응집성 있게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지11), 담화의 결속 기제로서의 어휘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화용적 능력과 관련한 어휘 평가 구인으로는 어휘 사용의 적절성을 예시할 수 있으며 언어사용역에서의 적절성이나, 맥락상의 적절성 등과 같은 구인이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어휘 유창성 평가의 한 구인으로 전략적인 능력을 고려해 볼 수있다. 신명선(2009)에서는 표현 과정에서의 어휘 사용 전략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에 의하면, 학습자는 개념을 선택하고 이를 형식적으로 구성해 나가기 위해서 개념화 전략, 초점화 전략, 언어화 전략 등의 어휘 사용 전략을 사용하며, 표현의 맥락을 구체화하여 적용하기 위한 맥락 이용 전략, 자신의 표현 과정을 메타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자기 조정 전략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일련의 전략적 능력들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보다 적절한 어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기여한다. 따라서 어휘 사용의 유창성을 판단하기 위한 구인으로서 위와 같은 전략적인 능력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미시적, 거시적이라는 큰 두 가지 측면에서 어휘 유창성 구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구인들은 선행 연구의 성과에 기대어 고찰된 것으로, 이들이 실제 평가 구인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평가자들 간에 그 개념과 범위에 대한 일치된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살펴보고자 하는 어휘 평가 구인에 대한 평가자의 인식은 향후 어휘 유창성 평가의 구인을 마련하고 공고히 하는 데에 있어 기초적인 자료로서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어휘 영역’이 그동안 한국어 교육에서 평가 범주의 하나로 다루어져 온 만큼 평가의 내용과 구인이 평가자들 간에 잘 공유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역시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3장에서는 수행 과정에서 ‘어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어휘적인 요인으로 무엇을 평가하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로 설정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번 장에서 다룬 어휘 유창성과 평가 구인을 검증해 볼 것이다.

    6)Lennon(1990:391~392)에서는 유창성의 개념을 재조명하며, 유창성을 순수한 수행 현상에서 관찰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유창성을 두고, ‘(구어) 수행 계획이나 산출의 모든 과정이 기능적으로 쉽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청자의 인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유창성이 포괄하는 수행의 단계에 발화를 계획하고 이를 산출하는 전반적인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7)이들 연구는 유창성을 하나의 능력으로서 다루고 있으며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창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창성을 평가하는 구인으로 여전히 휴지의 수, 머뭇거림, 발화 속도 등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들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8)van Gelderen et al.(2011:287)에서는 어휘적 유창성(lexical fluency)과 어휘 지식(vocabulary knowledge)은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동일한 개념은 아니라고 밝히며, 머릿속에 축적된 어휘의 양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유창함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9)이기연(2012)에서는 ‘기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기능’이 환기하는 의미가 의사소통 기능, 즉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 관련된 영역 같은 인상을 주며, 기존에 다루고자 한 인지적 사고 활동으로서의 능력을 드러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이후 이기연(2014)에서 ‘운용’이라는 용어로 대치하고 있다.  10)이러한 견해는 Riggenbach(1991)의 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에 의하면 유창성은 맥락 의존적(context-dependent)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발화의 양만큼이나 주제 도입, 맞장구치기, 실질적인 답변 등이 유창성을 판단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J. Kromos, M. Denes, 2004:149에서 재인용).  11)의미적 응집성에 대한 부분은 일면 주제 관련성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제 관련성이 높은 어휘를 쓴 담화의 경우, 의미적인 응집성 또한 높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제에 관련된 어휘를 단순히 많이 쓴 것이 의미적인 일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듯이, 의미적 응집성에 대한 부분은 별도로 설정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의미적인 응집성은 담화의 결속성과도 구분되는데, 이는 이선영(2013:421)에서 밝히고 있듯이, 담화 결속 장치 없이 심층적인 의미 응집성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존재하며 반대로 결속 장치의 사용이 지나치게 남발되어 오히려 의미 응집성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선영(2013)을 참고할 수 있다.

    3. 전문가 인식 조사

       3.1. 자료 수집 및 연구 절차

    본고에서는 한국어 어휘 유창성의 범위와 평가 구인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채점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인식 연구를 실시하였다.

    채점 전문가가 인식하고 있는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 및 유창성에 관련된 평가 구인을 파악하기 위해 본고는 일차적으로 한국어 숙달도 평가에 능숙한 채점 전문가를 선정하였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학습자 작문 평가를 의뢰하였다.

    연구를 위해 본고는 33, 34회 차 한국어 능력 시험(TOPIK)에 응시한 초, 중, 고급 학습자의 작문 70매씩을 수집하였으며, 숙달도별로 주제는 동일하게 통제하였다12). 각 급의 작문을 수집한 것은 채점 전문가가 학습자의 숙달도에 따라 어휘 유창성의 범위와 구인을 다르게 적용하는지를 검토하기 위함으로, 이를 통해 초급, 중급, 고급 수준에서 비중 있게 평가되어야 할 어휘 유창성 구인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텍스트양이 평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일정한 길이 내의 텍스트만을 선정하여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작문 평가에 참여한 채점 전문가는 모두 10명으로, 한국어 교육 분야 에서 박사 수료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별히 이들 집단은 한국어 능력 시험과 관련된 평가 경험을 최소 4회에서 최대 8회까지 보유하고 있어 전문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채점 전문가 집단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표 1>] 채점 전문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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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점 전문가 정보

    채점은 35매씩 2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1회 차 채점이 종료된 이후 10주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차 채점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채점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어휘 유창성의 범위와 평가 구인에 대한 인식이 대체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회 차당 채점은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1차 채점에서는 학습자 작문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 평가를 하도록 안내하였으며, 2차 채점에서 평가에 영향을 미친 어휘 요인에 대한 인상을 논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하였다.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한 이유는, 어휘 요인에만 초점을 두고 평가를 진행하도록 하였을 경우, 전반적인 수행과 어휘 요인 간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우며 본고에서 의도하는 수행 차원에서의 어휘 유창성을 살펴보기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채점을 통해 채점 전문가들이 실제로 잘 썼다고 판단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나누고, 이후 1차 채점에 영향을 끼친 어휘 요인에 대한 평가가 2차 채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1차 채점이 진행된 답안지 모두에 대해 2차 채점을 진행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어휘 요인이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논평을 하도록 안내하여 어휘 외의 다른 요인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1차 채점을 실시한 답안지는 채점자당 70매였으며, 논평이 진행된 답안지의 수는 채점 전문가에 따라 최소 35매부터 최대 70매까지로 나타났다.

    또한 본고의 목적이 채점 전문가들의 인식 연구를 통해 어휘 유창성의 범위와 평가 구인을 살펴보는 데에 있으므로, 채점자들 간에 별도로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 합의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평가 과정에서 어휘 사용의 어떠한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의 절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2. 연구 문제

    인식 조사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연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습자의 수행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과정이 끝난 후, 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는 경우 어휘 요인에 대해 논평하도록 하였다. 채점자의 논평에 나타나는 핵심어(keyword)를 중심으로 평가 구인을 도출해 낼 것이며, 이렇게 도출된 어휘 요인의 범위를 살피고 범주화함으로써 두 번째 연구 문제를 밝혀 보고자 하였다.

    또한 초, 중, 고급 답안지 각각에 대한 채점을 의뢰함으로써 각 급에서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는 어휘 요인을 살펴보고 급에 따라 더 비중 있게 반영되는 어휘 요인 범주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12)초급 작문의 경우 34회차의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 중, 고급의 경우 33회차의 ‘내가 존경하는 사람’, ‘직업 선택의 조건’을 주제로 한 작문이었다. 이들 작문은 이경(2015)의 연구에서 담화 차원에서의 한국어 어휘 유창성의 결정 요인과 각 요인이 실제 담화에서 발현된 양상을 살피는 목적으로 수집된 것이다.  13)채점자 B4의 경우 1회 차 채점에만 참여하여 총 35매의 답안지에 대해서만 평가하였다. 그러나 평가한 모든 답안지에 대해 논평을 진행하여 일정한 개수가 확보되었으며, 숙달도에 영향을 끼친 어휘 요인에 대한 논평 역시 일관된 관점과 기준에서 기술되었으므로 분석에 포함하였다.

    4. 인식 조사 결과

       4.1. 어휘 유창성 평가 구인에 대한 인식

    초급의 경우 채점 전문가들은 어휘 사용의 다양성, 정확성 그리고 그해당 어휘의 수준에 대해 주로 논평하고 있었다.

    ‘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예처럼, 채점자들은 공통적으로 어휘 사용의 다양성을 평가에 반영하고 있었다. 학습자가 사용한 작문에 사용된 어휘가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은 곧, 학습자가 보유하고 있는 어휘의 양이 많음을 의미하며 그만큼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다’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학습자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수준 역시 평가에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나’에 해당하는 어휘 사용의 정확성에 대한 논평 역시 전 채점 자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들 논평을 살펴보면, 어휘 사용의 정확성에 대한 범위가 상당히 폭넓게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있다.

    위의 예들을 살펴보면, 채점자들은 어휘 사용의 정확성에 대해 발음및 철자에 기인한 형태적인 오류뿐만 아니라, 활용과 관련된 어휘 내적 지식에 대한 결여로 나타나는 오류, 그리고 조사, 어미 등의 문법 요소와의 결합 혹은 어휘와 어휘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오류까지 포괄하여 평가 하고 있다. 또한 유의어 사용과 관련된 오류 역시 평가에 반영하고 있었 는데, 이러한 오류는 어휘의 의미 관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들은 모두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어휘 유창성과 관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2.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시적 측면의 어휘 유창성 에는 어휘의 양과 수준, 어휘 사용의 정확성 측면이 포함될 수 있었다. 채점자 논평에서 도출한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어휘 요인 역시 이러한 측면에 맞닿아 있었으며, 이에 본고는 어휘 유창성의 미시적 측면에 어휘 사용의 다양성과 정확성, 그리고 어휘 수준이라는 구인을 설정할 수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휘 유창성의 거시적인 측면과 관련한 논평 역시 존재하였다. 채점자 들은 개별 어휘에 대한 평가 외에, 담화 구성과 관련된 어휘 사용의 측면 역시 평가에 반영하고 있었다.

    위의 논평들을 살펴보면, 담화의 주제와 관련된 어휘를 적절하게 선택 하여 사용하고 있는지, 전반적인 의미 응집성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담화 결속 기제를 잘 사용하는지 등의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통해 채점 전문가들이 어휘 평가의 단위가 개별 어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개별 어휘를 넘어서는 문장, 혹은 담화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어휘 유창성의 개념 및 범위가 담화 차원을 포괄해야 한다는 본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채점자들은 어휘의 적절성 측면 역시 중요한 평가 요인으로 다루고 있었다. 어휘 사용의 적절성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의사소통 맥락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지, 의사소통 상황 및 상대방 과의 관계 등에 따라 어휘를 잘 선택하였는지 등을 토대로 판단될 수 있다. 채점자들의 논평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이러한 논평은 모두 화용적인 측면에서 그 적절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특별히 문/구어의 구분이나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한 어휘를 적절히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평 내용은, 어휘 사용의 화용적 측면이 어휘 유창성 평가의 구인으로 설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말해 준다. 즉, 학습자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황 맥락에 대해 인식하고 그에 적절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발화(또는 글)의 대상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어휘를 사용할 수 있는 언어사용역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등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중급 수준에서도 다양성과 정확성, 사용 어휘의 수준 등 미시적 측면에서의 평가 구인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별히 중급은 초급과 비교 하였을 때, 어휘 사용과 관련하여 학습자에게 요구하는 지식의 깊이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초급의 경우 어휘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초급 수준에서 배우는 어휘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평가에 반영하였다면 중급은 다음과 같은 기술이 나타났다.

    채점자들은 중급 이상의 학습자들에게 일상적 어휘를 넘어서는 학문 분야, 직업 분야에 관련된 어휘를 다양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것을 기대 하고 있으며 또한 관용어나 연어 등 보다 복잡한 덩어리 표현의 사용 역시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중급 수준에서 학습자들이 확장된 의사소통 맥락에서의 주제를 다루고, 빈도수가 높은 관용어와 사자성어, 속담 등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14).

    또한 담화적 측면에서의 어휘 사용에 대한 논평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어휘의 주제 관련성은 초급과 마찬가지로 중급에서도 중요한 평가 구인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특별히 중급에서는 담화 표지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관찰되었는데, 어휘 또는 문장을 연결하는 차원에서의 결속 기제가 아니라 담화의 전체적인 짜임에 기여하는 구조적인 응집에 대한 언급이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한편, 문어/구어의 구분을 포함하는 화용적인 측면에 대한 언급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외에 어휘의 화용적 측면과 관련된 논평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었다.

    이를 통해, 중급 수준의 평가에서도 초급에서 고려되고 있는 어휘 사용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초급 수준을 넘어서는 영역에서의 폭 넓은 어휘 사용, 수준 높은 어휘 등이 함께 기대 되었으며, 담화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히 결속 기제의 사용의 유무가 아닌,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응집을 염두에 두고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더하여, 화용적인 측면에서도 어휘 요인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문/구어의 구분과 높임이 중화된 종결 표현인 ‘-다’체, 언어사용역 등이 언급되고 있다.

    고급의 경우, 중급과 비슷한 맥락에서의 논평이 주를 이루었다. 특별히 문/구어의 구분에 대한 논평이나 주제와 관련된 어휘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논평이 주를 이루고 있어, 어휘 사용의 다양성이 주로 언급되었던 초급과는 차이가 있었다. 초급의 경우 새로운 어휘에 대한 학습이 빈번하게 나타나지만, 고급에 이를수록 어휘의 양적인 확장 폭이 줄어들며 기학습한 어휘를 얼마나 정교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동일한 맥락에서 고급의 논평에는 ‘정확성’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 역시 초, 중급에 비해 고급 학습자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정확성이 담보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고급에서는 초급에 비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평가 내용이 빈번히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때의 ‘자연스러움’은 이정희(2010)의 논의 에서와 같이, 모국어 화자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는 논평 역시 자주 등장하고 있는 데, 이를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 적인 측면에서의 어휘 사용을 평가하고자 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15) 이 외에도 글의 성격에 대한 언급이 두 차례 등장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채점 전문가들이 어휘 사용의 어떠한 측면에 집중하여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평가에 영향을 미친 어휘 요인의 범위와 범주는 어떠한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채점 전문가들이 평가에 관여하는 어휘 요인의 범위를 확장해서 보고 있었으며, 담화 능력, 화용적 능력과 같은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어휘 사용을 평가 내용에 포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숙달도(초, 중, 고급)에 따라 평가 구인의 비중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중, 고급에서는 초급에서 요구되지 않았던 추상적인 어휘, 관용어와 속담의 사용, 논리적 응집 등이 평가 내용에 반영되고 있었 다. 또한 급에 따라 더 중점을 두는 구인은 존재하였는데 초급의 경우 어휘의 미시적인 측면에 대한 논평이 집중되어 있었으며, 중, 고급의 경우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논평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4.2. 어휘 유창성 평가 구인의 위계에 대한 인식

    채점자들의 논평을 살펴본 결과, 평가 구인 간에 채점자 나름대로의 기준을 두고 적용하는 위계가 존재하였다16) .

    위의 논평은 글의 전체적인 숙달도에 어떠한 평가 구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채점 자들은 사용된 어휘의 수준이나 다양성 구인보다 주제와의 관련성을 더중요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논평을 받은 답안지의 숙달도 평균 점수가 17.8이었음을 감안할 때 주제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사용한 답안지는 비교적 높은 숙달도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에 대한 논평을 살펴보았을 때도, 어휘의 다양성이 충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와의 관련성이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숙달도 점수를 받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어휘 사용의 정확성’은 글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구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휘 유창성의 미시적인 측면, 거시적인 측면 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어휘에서 오류가 나타난다거나 정확성이 심각하게 떨어질 경우에는 채점자들이 숙달도 점수를 낮추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어휘를 다양하고 알고 사용하며, 사용된 어휘의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어휘의 정확성이 낮게 나타났을 경우 매우 낮은 숙달도 점수를 받았으며 주제에 맞는 글이라도 하더라도 사용의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았을 경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어휘의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이 높고 자연스러운 어휘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비교적 같은 수준의 어휘 사용을 보인 답안지에 비해 높은 숙달도 점수를 받았다. 이를 통해 어휘의 정확성 구인이 숙달도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밝혀볼 수 있었다.

    채점자들의 논평을 살펴본 결과, 채점자들은 유창성 평가 구인 간에 위계를 두고 평가에 임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었으며, 나름의 기준을 세워 일정하게 이를 적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본고의 연구 방법 및 절차가 가지는 한계로 인해, 채점자들이 인식하는 평가 구인의 위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는 추후 연구를 통해 보완되어야 할 점으로 보인다.

    14)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제공하고 있는 급별·영역별 평가 기준에서 3, 4급의 어휘 영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014년 7월 20일 이전 기준). 이에 따르면 채점에 참여한 평가자들이 중급 수준에서의 어휘 평가 기준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로 평가에 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5)심사 결과, 전략적인 측면’에 대한 내용 기술이 다른 범주와 달리 모호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지적된 바와 같이, 전략적인 능력에 대한 채점자들의 논평을 명확하게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는 전략적 능력을 평가 구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전략적 능력에 대한 인식이 다소 약하기 때문인 것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2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학습자들은 일련의 전략적 능력을 동원하여 적절한 단어를 맥락에 맞게 사용하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에 따른 성과를 채점자들은 ‘자연스러움’이나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향후 전략적 능력에 관한 후속 연구를 통해 어휘 사용의 측면에서 전략적 능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여야 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6)이경(2015:78)에서도 어휘 유창성을 결정하는 결정 요인이 영향력의 크기 및영향을 끼치는 순서에 따라 제1수준과 제2수준으로 나누어진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였으며, 어휘의 양적 · 질적인 분석 과정을 통해 이를 검증한바 있다.

    5. 결론

    본고에서는 한국어 어휘 유창성의 개념과 범위를 밝히고, 채점자 인식 조사를 통해 어휘 유창성 평가의 구인을 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의사소통 수행 맥락에서의 어휘 사용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어휘 유창성’ 개념이 필요함을 밝히며, 어휘 유창성 평가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기초 연구로서, 채점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어휘 유창성의 범위와 평가 구인을 탐색해 보았다.

    그 결과 채점 전문가들은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어휘 요인을, 개별 어휘, 혹은 고립된 맥락에서의 차원이 아닌 담화, 화용적 측면으로까지 확장하여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 평가에 반영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평가가 중, 고급으로 갈수록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채점자 논평에는, 평가 구인 간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평가 내용들이 일부 존재하였는데 이를 통해 채점자들이 어휘 유창성의 평가 구인 간에 위계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으며, 나름의 기준을 두고 위계를 적용하고 있을 가능성 또한 찾아볼수 있었다.

    그러나 채점자들이 어휘 평가의 내용과 범주에 대해 각자의 기준을 세우고 평가하고 있으나, 채점자들 간에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어휘 평가 구인 및 범주의 틀이 없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발전적이고 체계적인 평가틀을 마련하고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채점자들의 인식을 조사함으로써 어휘 유창성에 대한 보다 실제적이고 합의 가능한 구인과 범주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채점자의 수가 적어 일반화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 였다는 점과 구인 간의 위계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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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표 1> ]  채점 전문가 정보
    채점 전문가 정보
  • [ <표 2> ]  연구 절차
    연구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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