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결혼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삶을 고찰함으로써 그들이 생애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개입 방안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D 광역시 소재 여성장애인 관련 협회의 도움을 통해 결혼, 임신, 출산 및 양육을 경험한 5명의 지체장애여성들을 연구 참여자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심층면접을 통해 질적 자료를 수집한 후, 생애사 접근으로 분석하였다. 생애사적 접근은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생애과정에서 체험된 억압적 경험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장애를 가진 여성 당사자들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에 연구자들은 연구 참여자들의 각 생애사를 분석한 뒤 전체 사례들을 재검토하여 4개의 주제로 통합할 수 있었다. 도출된 4개의 주제를 제시해 보면 ‘장애에 대한 편견에 스며듦’, ‘관계맺음을 통한 벽 허물기’, ‘자녀에 대한 양가감정’, ‘여성으로써의 삶에 대한 아쉬움’ 등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여성지체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도록 돕는 인식개선의 노력, 사회적 관계의 활성화, 자녀양육과 관련된 서비스의 확대 실시, 그리고 올바른 양육기술을 교육하고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 등과 같은 사회복지 실천적 지침들을 제언하였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아 왔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난 수 세기 동안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가정과 사회로부터 늘 배제되어 왔던 여성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익은 두드러지게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경쟁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장애인들은 여전히 온전한 사회참여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약 2,247천명으로 2000년을 기준으로 연평균 11.2% 상승하고 있고, 이 중 여성장애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40.1%인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 2009).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및 인식 개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 여성의 평균 수명 증가, 그리고 인구의 고령화와 같은 여러 사회적 변화들로 인해 향후 우리나라 여성장애인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관망되고 있다.
여성장애인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사회적으로 표면화되면서 여성장애인들을 위한 적절한 정책 방안들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장애인은 장애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결혼 후, 임신, 출산, 양육과 같은 삶의 과업들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간 여성장애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돕기 위한 정책 변화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장애는 성별, 인종, 문화적 경계를 넘어 어느 사회나 당사자들에게 많은 심리적, 사회적 제약을 주게 된다. 무엇보다 여성장애인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 소외와 차별로 남성에 비해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더욱 가중된 부담감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이소희, 변화순, 박애선, 이행숙, 김희자, 도향미, 정혜선, 2001; 오혜경, 김정애, 2000). 여성장애인들은 비장애 여성에 비해 높은 우울과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고(Nosek & Hughes, 2003) 장애정도가 심할수록 자신들이 성적(性的)으로 부적절하고 매력적이지 않다고 인지하고 있다(Hassouneh-Phillips & McNeff, 2005).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 형성 측면에서도 장애가 있는 여성들은 비장애 여성보다 친밀한 애정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워(Rintala, Howland, Nosek, Bennett, Young, Foley, Rosssi, & Chanpong, 1997) 대인관계 형성에도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즉, 여성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삶의 체험들은 남성 장애인들과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선행연구들은 남성 장애인에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시행되어 왔다. 이 때문에 여성장애인의 문제를 여성 고유의 시각이 아닌 일률적으로 규정해 왔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한국여성장애인협회, 2002). 결국 장애인의 사회통합이라는 이상적 목표 하에 여성장애인들은 정책 입안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통계자료에서도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여성장애인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여성장애인 당사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어 이들이 처한 삶의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성장애인 시각 중심의 연구들이 보다 풍성하게 시행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본 연구는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적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장애인들의 주관적 시각을 통해 그들의 삶의 경험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여러 장애 유형 가운데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결혼한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전체 등록 장애인의 53.2%를 차지하고 있는 지체장애인 가운데 여성은 4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지체장애인의 결혼평균율은 52.8%로 조사되었다(보건복지가족부, 2009, 2010). 또한 2명의 자녀를 갖고 있다고 답한 여성지체장애인이 54.8%, 1명이 25.5%를 각각 차지하였다(보건복지가족부, 2009). 이처럼 점차 많은 여성지체장애인들이 결혼과 함께 자녀출산과 양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동안 이들의 욕구 파악을 위한 실증적 자료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부터 결혼과 여성장애인 관련 항목이 조사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지체장애는 신체적 손상으로 일상생활수행능력이 제한되는 대표적인 장애로 신체상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차별, 사회참여 여부,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따라 열등감 혹은 정서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보인다(황보옥, 2011). 그리고 지체장애의 특성상 이동하는데 어려움을 갖기 때문에 여성과 배우자, 어머니라는 중첩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여성지체장애인들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결혼한 여성지체장애인이 살아온 전체 삶의 경험에 대한 심층적 이해는 향후 이들이 어떤 욕구를 갖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복지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Nosek과 Hughes(2003)는 장애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선행 연구의 흐름을 설명하는 논문을 통해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장애 여성들의 욕구에 초점을 두는 연구들이 시작되었지만 주로 척수장애를 가진 남성들의 성(性)기능과 관련된 방대한 문헌들에 대한 여파로 여성장애인의 성(sexuality)에 초점을 두는 연구들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여성장애관련 연구들 대부분이 임신, 출산과 같이 협소한 성(sexuality)의 일부분을 다룬 주제에 한정되어 진행되어온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여성 운동 안에서조차 여성 장애인의 문제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고, 여성운동과 남성중심의 장애권 운동 모두에서 배제되어 온 집단이 바로 여성 장애인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를 검토한 Lloyd(1992)는 장애가 여성에 의해 경험되는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이라고 판단하고 여성 장애 문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모델을 강조한 바 있다. 즉, 장애는 여성 개인의 속성이 아닌 상당 부분 사회 환경에 의해 조성되는 여러 제약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결과라고 설명하면서 여성운동은 비장애 여성 지향적이고 장애운동(disability movement)은 남성장애인 중심으로 진행되어오면서 여성 장애인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권한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 여성장애인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단순 실태조사들이 주를 이루어 오다가 이 후 여성 장애인의 차별 실태를 파악하여 관련 정책을 제언하고자 한 연구들(문혜숙, 2003; 이진숙, 안은숙, 2004; 임은자, 2004; 오혜경, 2006)에서부터 여성장애인들의 모성역할 수행과 관련된 질적 연구(김경화, 2003), 임신, 출산, 자녀양육 경험을 살펴본 질적 연구들(김나영, 2009; 유명화, 엄미선, 2007; 유봉례, 2002; 정세연, 2011), 여성장애인의 삶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김미옥, 2002), 장애 발생 이후의 생애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이효선, 2007), 자녀 양육과 장애의 심리적 극복 간의 관계 연구(김정우, 이미옥, 2000), 여성장애인의 가사 및 양육 여건 및 스트레스를 조사하여 지원방안을 제언한 연구들(나응문, 2003; 오순옥, 2011; 이갑숙, 손진현, 2008; 이소영, 이숙향, 2008; 이정선, 2007; 윤동주, 2010; 홍승아, 이영미, 2009)로 다양화 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선행 연구 가운데 김미옥(2002)의 연구는 여성지체장애인의 청소년기와 중년기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삶의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외의 연구들은 여성지체장애인의 결혼과 임신, 출산, 자녀양육문제처럼 좀 더 구체적이지만 제한된 영역에서의 삶의 경험들을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의 질적 선행연구를 통해 기술된 여성지체장애인의 삶의 경험은 여성과 양육자로써 연속적인 사회적 배제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결혼과 어머니 역할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더 많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과 함께 부모가 되는 과정은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여성에게 중요한 생애 사건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여성지체장애인의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여성과 장애라는 공통요소를 갖고 다른 삶의 길을 걸어온 결혼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이 풀어내는 삶의 공통성과 다양성을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전체 생애 과정에서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써 어린 시절의 삶과 주요 사건들, 그리고 성년이 된 후 결혼을 하는 과정과 자녀의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체험한 생생한 경험 등을 통해 그들이 겪은 고뇌와 갈등 그리고 장애의 극복과 승화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질적 연구방법은 일반적으로 심층면접(interview), 직접 관찰(direct observations), 문서활용(written documents) 등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가 심층면접을 통해 자신의 삶의 경험과 의견, 생각, 느낌 등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연구자는 이러한 자료에 근거하여 여성지체장애인의 삶의 경험들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질적 조사 방법은 기존의 양적 연구들을 통해 드러나지 못했던 여성지체장애인의 욕구를 구체적으로 규명해 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본 연구의 참여자는 D 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지체장애인 5명으로 이들은 질병이나 외상 등으로 신체적 기능이 손상되어 운동장애를 갖게 된 여성들이다. 지체장애는 유연성, 순발력, 평행성, 민첩성, 지구력 등 다양한 운동 기능에 장애를 갖는 대표적인 신체적 장애로써 여성지체장애인은 전반적인 일상생활수행은 물론 행동범위의 제한으로 사회적 활동에 큰 불편을 경험하게 된다(황보옥, 2011). D 광역시의 한 여성 장애인 관련 협회의 도움을 얻어 여성지체장애인으로써 결혼, 임신, 출산, 양육과 같은 여성 고유의 생애 과업들을 수행해 본 대상자를 목적적 유의 표집방법(purposive sampling)에 의해 선정하였다.
질적 연구의 대표적 표집방법인 목적적 유의 표집방법은 특정 현상에 대한 서술, 해석, 통찰과 발견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연구자가 연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표본을 선정하기 위해 사용된다(강형주, 2010). 협회로부터 의뢰된 대상자 가운데 인터뷰 참여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대상자는 선정하지 않았고, 인터뷰를 먼저 마친 대상자들이 협회 활동을 통해 알고 있는 지인들을 다시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최종 5명의 연구대상자를 선정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인구사회적 특성은 다음 <표 1>에서 제시되는 것과 같다.
참여자들의 인구?사회학적 특성
심층면접을 통한 자료 수집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연구자들이 참여자들에게 연구의 목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참여 의사를 물어본 후,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줌으로써 참여자들의 자기의사결정권을 존중하려고 노력하였다. 인터뷰 진행은 연구자들의 학교 연구실 또는 회의실이 겸비되어 있는 카페나 시설을 이용하였고 참여자들 모두 휠체어나 이동보조기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성을 고려하여 면담 장소를 정했다.
심층면담은 참여자 1인당 평균 1회, 시간은 1회당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신체적 제약으로 이동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1회 인터뷰를 통해 많은 정보를 이끌어 내려고 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참여자 개개인의 동의를 구한 후, 녹음기를 사용하여 녹취하였다. 녹취 내용은 연구 목적 이외로는 사용하지 않고 연구 내용에 참여자의 실명이나 개인적인 신상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충분히 하였다. 또한 언제든지 참여자가 원한다면 인터뷰를 중단할 수 있다는 점과 자료의 정확한 의미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전화나 이메일로 다시 연락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경험들에 대해 보다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인터뷰 참여 전에 과거 사진들이나 기록들을 한번 살펴보고 참여하도록 협조를 구했다. 실제 한 참여자는 인터뷰 참여 전에 옛날 앨범들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자료의 엄격성을 보존하기 위해 두 명의 연구자가 전체 인터뷰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인터뷰가 체계적으로 진행되도록 상호 협조하였고 현장에서 참여자의 행동, 표정, 감정 등을 기록한 관찰노트도 함께 병행하여 차후 분석과정에서 필사본과 대조하여 분석하였다. 인터뷰 초기에 비공식적인 일상적 대화로 라포 형성을 하고 이야기의 진행방향은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 전체의 기억들을 재조명하고 재구성하기 용이하도록 생애주기단계 순으로 진행하였다.
기존 선행 연구에는 여성지체 장애인들의 전체 삶의 과정과 경험들을 면밀하게 조사한 질적 연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심층면접을 통한 생애사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자료를 분석하였다. 심층면접을 이용한 연구는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생애 과정에서 체험된 억압적 경험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장애를 가진 여성 당사자들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도록 한다.
생애사 연구 분석은 생애사를 통해 나타난 연구 참여자의 주관적 의미들을 연구자가 다시 재해석하는 작업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참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평가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자신에게 유의미한 경험들을 통합하고 조망하는 과정이다(박경숙, 2004). 즉, 여성지체장애인이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적 부담을 갖고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등과 같은 삶의 과정에서 체험한 경험들을 현 시점에서 이야기를 통해 다시 전체로 통합해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연구방법이다. 더불어 한 개인의 생애사를 풀어내는 것은 연구 참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고, 이 기회를 통해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이효선, 2007).
생애사 자료는 연구 참여자의 출생 이후부터 전체 생애를 살펴보는 전체 생애사(complete history)와 참여자가 기술하는 특정 삶의 주제들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는 주제별 생애사(topical life history)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박재홍, 1992). 본 연구는 주제별 생애사 방법을 사용하여 각각의 참여자의 삶의 이야기를 연구자들이 반복적으로 정독하면서 이해한 후, 시간 순서대로 구성하여 그 이야기에 담겨진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효선(2007)의 생애사 연구에서는 중도장애인들이 사고 이후 자신의 삶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는 장애 발생이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삶 전체를 탈바꿈시키는 위기 사건이기 때문에 지나온 삶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장애 전보다는 이후의 삶에 갈등, 회한, 역전, 기쁨 등의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어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도 장애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주로 장애 발생 이후의 삶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도 장애 발생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비중을 두고 내용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연구자들은 필사된 내용을 반복적으로 비교하면서 판독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진술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함으로써 본 연구 결과의 타당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1) 참여자 A
A는 J시에서 태어나 걸음을 배우기 직전 열병으로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되었다. A는 어린 시절을 자신으로 인해 고생하신 부모님, 그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한 남동생 그리고 학교 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의 놀림을 기억하며 미안함과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생활을 통해 A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려했지만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으로 도전해보지도 못한 채 포기됨에 따라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A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사건을 떠올렸는데 그 첫 번째를 '세뇌'로 표현하였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던 A는 약사가 되고픈 자신의 꿈과 장애에 대한 주변인식의 차이로 생애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체육활동에서의 배제였는데 학교생활에서 원하지 않았던 배려가 오히려 친구들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A는 결국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한복집에서 기술을 배우며 일을 하게 되었다. 바쁘게 보내던 20대에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여성으로써의 삶은 자신과 동떨어진 세계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A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장애인 단체 활동에서 한 자원봉사자로부터 결혼 제안을 받고 갈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결혼과 상대자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자기에 대한 비난과 불안감이었다. A에게 장애는 초기에 주변 환경에 의해 포기되어지고 인지되어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주변의 편견에 내면화되어 힘겨워하고 있었다.
A는 결혼을 결정하게 되지만 비장애인과의 결혼은 여전히 많은 부담감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했다고 말한다. 특히 시부모와의 갈등은 구강의 모양이 변화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A는 장애인이 당연히 참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A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를 “두려움 반 기쁨 반”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은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게 될까라는 두려움이었으며 기쁨은 아기라는 끈으로 남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A는 아이를 출산할 때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꺼내며 여성으로써 자신의 몸에 또다시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했다. A는 결혼한 이후에도 자신의 몸에 있는 상처들을 보고 남편이 실망할까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A는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오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 중에서 장애로써 가장 큰 한계를 느낀 사건에 대해 서슴없이 “엄마역할”이라 말하고 있다. 자녀가 미취학 때의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회고했다. 또한 자신의 장애로 인해 자녀가 피해를 볼까 걱정이 되는 부분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A는 자녀에게 엄마의 역할을 못해준다는 미안함을 갖고 있었지만 오히려 기존의 대응과는 달리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직업, 운동선수)들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모델은 자녀들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A에게서 장애는 더 이상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현재 A는 과거에 해보고 싶었던 일(예쁘게 차려입고 일을 하는 일)들을 한 가지씩 이루어가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2) 참여자 B
B는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줄곧 D시에서 생활하였다. 22살이 되던 해 B는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 나사 빠진 기계에 의해 장애를 입게 되었다.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B에게 장애를 받아들이기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이었다. 더욱이 자신을 간호해주던 조카마저 아무런 말없이 떠남에 따라 B는 막막함과 불안감에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힘겨움 속에서 B는 다시금 삶의 희망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병원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아르바이트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입원한 청년(현재의 남편)과의 인연은 B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B는 병원 내 교제를 통해 청혼을 받게 되지만 결혼은 자신과 동떨어진 사건이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결국 B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해야겠다’가 아닌 ‘한번 해 보기는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믿지 않은 채 결정하였다고 말한다.
결혼식만큼은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었지만 짐같이 따라 다니는 휠체어 때문에 ‘우아하게’ 보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여성으로써 채울 수 없었던 욕구들에 대해 오랫동안 호소하였다.
결혼 후 B는 딸 둘을 낳아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음을 호소하였다. 특히 자녀가 갓 걷기 시작할 때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엄마의 역할을 잘 해주지 못해 B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장애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어렵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만 B에게 자녀는 삶의 목적이고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자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B는 살아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뒤 삶을 포기하려했지만 병원 사람들, 남편, 자녀, 복지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희망을 갖게 됨에 따라 B는 장애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3) 참여자 C
C는 K시에 1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지만 백일이 채 되기 전 열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가족이 모두 상경하게 되지만 당시 가족이 많으면 전세를 구할 수 없어 결국 C만 고향에 남아 할머니와 지내는데 C는 이를 매우 큰 서글픔으로 회상하였다. 또한, C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스스로가 불편함과 한계를 느끼기보다 주변 환경에 의해 다름과 포기라는 것을 경험한다. 예컨대, 혼자서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이라는 부모님의 판단에 의해 3년이나 늦게 동생들과 입학해야 했고, 입학 후에도 원치 않았던 선생님들의 배려, 자신이 중성일 것이라고 믿은 부모님이 자신의 첫 생리를 보고서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 등으로 인해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C는 어린 시절을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주변 환경에 의해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게 된 C에게서도 삶에 대한 꿈이 있었고,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부모님의 강한 편견은 C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이로 인해 C는 20대 후반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후 한 장애인단체를 통해 작업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친구와 남편을 만난다. 친구를 통해 버스 및 은행 업무 등을 경험할 수 있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남편과의 결혼 결심은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을 느꼈다’고 회고하였다. 부모님의 결혼 반대는 남편의 장애가 C보다 컸기 때문이었는데 C는 오히려 남편의 장애가 결혼결심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C는 결혼 후 장애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녀를 낳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아이를 낳은 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C에게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자녀가 초등학교 때 가장 힘들었음을 회상하였다.
현재 중학생이 된 자녀는 C에게서 자긍심이며 미래로 표현되고 있었다. 즉, 장애로 인해 낮았던 자존감도 자녀를 통해 회복될 수 있었으며, 현재의 삶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4) 참여자 D
D는 전라도 한 농촌에서 1남 6녀 중 넷째로 태어나 결혼을 했고 세 자녀까지 두고 있다. 하지만, 막내가 태어나던 해 남편은 갑작스런 뇌수술을 받아야 했고 생활 여건이 더 어려워지자 D의 가족은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들어가게 된다. 뇌수술을 받은 남편은 기억의 어려움으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하기도 했으며, 공장에서 일하던 D는 기계에 의해 팔이 절단되어 지체장애 3급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D가족은 고향을 떠나 친언니가 살고 있는 타 도시로 옮겼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D에게 또 다른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애이후 D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은 장애가 자신에게 불편함으로 인식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에 의한 편견과 시선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의 편견은 D에게 자기화 과정이 이루어졌고 이는 자녀양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애 이후 가장 힘겨웠던 사건에 대해 D는 아이들을 보살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손꼽고 있었다. 사고로 인해 단기기억력이 부족해진 D는 자신의 장애가 아이들의 양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D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의 장애까지 이해하기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자녀들과 단절됨을 인식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D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자 했다. 특히, 자녀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고 야학을 찾던 중 신문을 통해 한 장애인 단체를 알게 된다. 이후 D는 장애단체를 통해 자녀 상담, 일자리 등을 소개 받을 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공부와 일을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D는 장애로 인한 자녀양육의 힘겨움을 딛고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D는 이에 대해 아이가 상담과 교육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고 남편이 건강을 조금씩 되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5) 참여자 E
E는 충청도 한 농촌마을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으며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까지 평범히 살아왔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자 했던 E는 부모님 몰래 시험을 치렀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 이후 E는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한의사에 의해 약을 처방받게 되는데 한 첩을 채 먹기도 전 고열로 전신마비증상이 왔다. 약 4개월 동안 누워서만 지낸 E에게 가족은 큰 지지체계가 되어주었고 그 도움으로 점차 건강해져 목발과 휠체어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운동을 하면서 E는 어린 조카들을 돌보게 되는데 아이를 직접 낳지 않아 자신의 양육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어린 조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E에게 쉽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시골에서 조카를 키우던 E가 22살이 되던 해 도시로 나오라는 친오빠들의 권유로 고향을 떠났다. 문구점을 하던 오빠를 도우며 생활하던 중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과의 왕래가 생겼고 이는 E가 장애인단체 또래들과 펜팔을 하게 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장애인단체와 상호작용이 있기 전까지 E는 자신이 무엇을 한다라는 것에 대해 ‘엄두도 못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E가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요’ ‘편지를 통해서 제가 투병 생활을 어렵지 않게 했던것 같아요’라고 말하게끔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특히 장애인 단체에서의 여행은 E가 장애이후 처음으로 가게 되는 여행이었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장애인 단체와의 상호작용은 E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E는 자신이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은 채 자신의 성(性)을 ‘실험대상’으로 하락시켜 표현하기도 했으며, 장애로 인해 ‘여성임을 좌우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기도 했다.
E는 39살이 되던 해 모임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에게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딸이 있었는데 현재 E에게 그 딸은 매우 소중한 존재로써 인식되고 있었다.
현재 E는 남편과 딸의 존재가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워 하며 인생에서 결혼이 주는 행복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E는 자신의 삶에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내 핏줄이 하나 있었으면’이라는 말로써 표출되었고, 이전에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담고 있었다.
1) 장애에 대한 편견에 스며듦
“단칼에 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이건 안 돼!” (사례 C)
연구 참여자들은 장애에 대해 스스로가 인식하기도 전에 사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편견이라는 틀에 맞춰지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어린 시절 무엇이든 해낼 수 없는 대상으로 판단되어졌으며 그로 인해 무조건적인 배려대상이 되어버려야 했다. 불편함으로 인해 장애의 한계를 경험하거나 타인과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기 보다는 주변인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세뇌’ 되어지고 있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연구 참여자들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었고 이는 인생에서 결단을 내려야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사례 A는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여성장애인으로서의 삶과 약사라는 자신의 꿈이 서로 상충되었던 시점에서 가장 힘들었으며 그 결정의 끝은 결국 자신에게까지 이미 깊이 스며든 사회 속 편견이었다. 한편, 장애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경우일지라도 그 반응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이었다. 여성이 아닌 중성일 것이라는 주변의 확신으로 자라온 사례 C의 첫 생리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C에게 잊지 못할 아픔으로 남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와 전혀 무관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배려라는 이름하에 또 다른 배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사례 C는 친구들과 동일하게 잘못을 했어도 늘 제외되어야 했고 사례 B, D 또한 무엇이든 ‘못한다고 생각하고 미리 해주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들 때문에 힘들었음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장애가 차이 또는 불편함이 아닌 차별과 불쾌함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장애를 갖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수용이라 할 수 있다. ‘수용’이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와 관련된 사항(이경희, 1998)으로 사회가 원하는 것에 자신을 맞추어 변화시키기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체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때문에 자신의 장애에 대해 수용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 참여자들은 삶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 속에서 자신의 장애가 수용되어지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결과, 여성장애인들에 대한 사회 속 편견으로부터 수용된 참여자들의 장애는 당시의 갈등으로써 끝나고 있지 않았다. 이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혹은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하게끔 만들었는데 특히, 결혼 전에 장애를 갖게 된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은 결혼을 포기했었거나 혹 하게 될지라도 배우자가 자신을 떠나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라고는 생길 수 없는 상황(사례C)’들 속에서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했다. 연구 참여자들의 처해진 각 상황들은 다르지만 무조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변의 편견 혹은 세뇌교육들로 인한 폐허들을 아픔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장애가 여전히 다름이 아닌 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 덩어리로써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속 편견에 의해 수용된 장애가 연구 참여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이것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은 연구 참여자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만 이는 “관계맺음”을 통해 극복되기도 했으며 자신의 장애에 대해 재수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2) 관계맺음을 통한 벽 허물기
연구 참여자들에게 장애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세상과의 분리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 장애와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서도 원치 않은 배려를 받아야 했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야 함을 강요받았기에 포기해야만 했던 상황들 속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특별함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추구하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채워가고 있었는데 모두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관계맺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의 관계맺음은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사회 속 관계맺음이다. 장애 이후 산재처리만 해결되면 자살할 생각까지 갖고 있었던 사례 B는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장애 이후에도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한,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례 A, C, D, E도 장애 단체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자신의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갔고 현재는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이 체험하는 사회 속 타인들의 다가옴은 ‘몸이 그런데도... 이상하게...’ 라는 표현으로 관계맺음의 어색함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기를 얻어 두렵기만 했던 평범한 일상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문화적 집합체로서의 장(field)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장을 통해 공통된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장애인들에게 관계형성은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라온 편견의 영향이 컸다. 실제 그들이 체험한 사회는 일상의 평범함도 누릴 수 있는 장(field)이였으며 이것은 관계형성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자녀를 통한 관계맺음이다. 여성장애인들에게 자녀는 인생의 ‘보물’로써 전체의 삶을 통합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자녀와의 관계형성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해줄 수 있게 한 결정체였다. 아내 혹은 어머니로서의 전통적인 성역할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혔던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녀는 평범함이라는 일상으로 들어가기에 충분조건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신감을 제공해 주었고 장애에 대한 성찰까지 이루어질 수 있게 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특히 사례 B는 자녀가 없는 인생을 ‘뿌리가 막힌 나무’와 같은 삶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자녀를 통한 관계맺음은 자신의 장애를 오히려 삶의 감사함으로 변화시킨 매개체(사례 C)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관계맺음의 유지는 단지 그 존재로써만이 아닌 서로 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공존했을 때 가능함을 연구 참여자들은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연구 참여자들은 ‘장애 때문에’ 그 동안 잠재우고 있었던 도전이라는 것을 시도하게 되는데 특히 사례 A는 운동선수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사례 D는 야학을 통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해 연구 참여자들은 자녀들에게 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닌 당당한 엄마로서의 관계맺음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연구 참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살아갈 힘이 생기고 또 자식으로’ 맺어진 관계들을 통해 높게만 보였던 세상과의 담을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 자녀에 대한 양가감정
본 연구에서는 자녀출산 및 양육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이 자녀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게 됨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임신소식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여성장애인에게 자녀는 큰 의미를 부여해주는 존재였지만 출산을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계획이었거나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임신소식은 참여자들에게 두려움과 기쁨의 감정을 교차하게 했는데 이것은 장애유전에 대한 두려움과 배우자와의 ‘끈’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의 기쁨이었다. 현대에 들어와 비장애여성의 장애아 출산 비율이 급증하고 있어 출산은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사건이지만 특히 장애인으로써의 삶을 살아본 여성장애인들에게 이러한 두려움은 매우 크게 다가왔다. 한편 자신의 배우자가 비장애인이거나 참여자들보다 경증의 장애를 갖고 있을 때 참여자들(사례 A, B)은 결혼한 이후에도 곧 배우자가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신소식은 아이 자체에 대한 기쁨보다 배우자와 연결해주는 ‘끈’으로써의 기쁨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자녀 양육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녀는 보살펴주고 싶은 존재이자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써 인식되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는 대상에서 배제되어왔다. 그러나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게 해줬다. 이것은 참여자들에게 삶의 큰 만족감을 주고 있었는데 특히 사례 A, B는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녀는 도움을 제공해줄 수 있는 존재로써 인식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써 인식되기도 했다. 사례 B, C, D, E는 자녀를 ‘울타리이자 디딤돌’, ‘버팀목’, ‘보호자’로써 표현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녀가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 참여자들(사례 A, B, C, E)은 ‘장애 있는 엄마를 가진 애기들은 눈치가 엄청 빨라요' 또는 '스스로 그 환경에서 애들이 그걸 다 깨달아요'1)라며 자녀들이 실제 가사활동 또는 자신의 불편한 부분을 해결해주고 있는 중요한 존재로써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대 가족의 특성 중 한 가지는 자녀를 더 이상 피부양자로써 기대하지 않고 있는 반면 연구 참여자들(사례 B, C, E)은 자녀가 자신의 미래이고 자신을 돌보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써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체계가 형성되기까지는 참여자들의 삶 속에서 ‘도움 청하기 어려웠던 이웃’과 사회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자녀를 도움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믿고 있는 연구 참여자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게 되는 시점에서 자신이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에 연구 참여자들은 아직 부딪히지 않은 미래이지만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 여성으로써의 삶에 대한 아쉬움
여성장애인들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적 또는 그 이상의 고통을 지닌 존재로써 인식되어지고 있다(김나영, 2009). 동일한 육체적 손상이라 할지라도 남성은 기능적인 장애로서만 받아들여져 남성성의 상실까지 의미하고 있지 않는 반면 여성장애인은 여성성이라는 범주에서 제외(김경화, 1999)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육체적 손상과 사회가 만들어낸 미(美)의 기준에 의해 여성장애인들은 무성적인 존재로 비추어지고 있다. 실제 본 연구에서도 연구 참여자들(사례 B, C, E)의 초경 및 임신 등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실망감과 호기심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본 연구자들은 분석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 ‘여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아쉬움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성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들에 대한 아쉬움과 전통적 사고에 의한 여성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아쉬움이었다.
먼저, 여성성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들에 대한 아쉬움을 살펴보면, 셋째 아이까지 출산한 이후 장애를 갖게 된 사례 D를 제외한 모든 연구 참여자들은 ‘뾰족구두’라는 용어를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뾰족구두’는 여성성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로써 사례 A, B, C, E는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뾰족구두’를 갈망의 대상으로 손꼽고 있었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의 추구는 당연함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자신감이라고는 생길 수 없었던(사례C)’ 상황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연구 참여자들은 ‘나는 저런 시절 다 어디 갔을까(사례 A)’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논의된「관계맺음」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연구 참여자들은 이를 아쉬움으로서만 끝맺지 않고 조금씩 실현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사례 A는 직업 선택에 있어서 미래의 전망보다는 ‘예쁘게 차려입고’ 일하는 사무직을 선택하며 기뻐하기도 했고, 사례 C는 과거에 하지 못했던 화장들을 자신감 있게 시작하기도 했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표현을 넘어 새로운 삶을 도전(사례 A)할 수 있는 용기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자신감(사례 C)으로써 표출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전통적 사고에 의한 여성역할의 아쉬움이다. 여성의 전통적 역할로 구분되는 것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결혼과 자녀출산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으로 입문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함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참여자들은 자녀에게 엄마의 역할을 해주지 못할 때 가장 힘겹고 장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역할수행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매우 다양하지만 연구 참여자들에게 장애의 한계를 가장 크게 느끼게 했던 것은 자신의 장애로 인해 자녀가 심리적 위축감을 경험할 때였다. 실제 참여자들(사례 A, B, C, D)은 양육과정에 있어서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 영유아기 때보다 운동회와 같은 학교행사에 함께 참여해주지 못할 때 더 큰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할 수 없는 참여자도 있었지만 함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창피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참여자들이 더 많았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비장애 자녀의 출산은 일상의 평범함으로 입문하기에 충분조건이라 판단되어지고 있었지만 양육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단순히 안타까움 또는 아쉬움의 차원이 아닌 사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던 커다란 장애의 벽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1)반면 자녀가 초등학교 이후에 장애를 갖게 된 사례 D의 경우는 엄마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을 오히려 힘들어하고 있었다.
본 연구는 결혼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삶의 경험들을 당사자 중심의 시각을 통해 심층적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문제와 욕구들을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5명의 결혼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심층면담을 진행하였고 수집된 질적 자료를 생애사적 접근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연구자들은 참여자들의 각 생애사를 분석한 뒤 전체 사례들을 재검토하여 4개의 핵심 주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추출된 4개의 주제를 살펴보면 ‘장애에 대한 편견에 스며듦’, ‘관계맺음을 통한 벽 허물기’, ‘자녀에 대한 양가감정’, ‘여성으로써의 삶에 대한 아쉬움’ 등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기존 선행연구들과 차별성을 갖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지체장애인들에게 자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보살펴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준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능력 혹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는 대상에서 배제되어왔다. 그러나 연구 참여자들에게 자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음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즉, ‘어머니 됨’의 경험이 기존 선행연구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행복감을 넘어 당사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기술되고 있다.
둘째, 본 연구에 참여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은 여성으로써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누려보지 못한 회한(悔恨)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존 선행연구들과 달리 어머니, 배우자가 아닌 한 여성으로써의 소소한 삶도 갈망했지만 장애라는 굴레 속에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셋째, 본 연구를 통해 여성지체장애인들이 일찍부터 가정 및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며 ‘주인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관계맺음’을 통해 자아를 찾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첫 ‘관계맺음’은 두려움으로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노력은 어린 시절 꿈도 꾸지 못했던 결혼과 가정생활의 연을 맺게 하기도 했다. 즉 여성지체장애인들의 ‘관계맺음’은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사회와 통합시키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본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사회복지 실천 방안들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지체 장애인들의 장애수용을 돕기 위한 인식개선 노력들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장애 발생 후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는 태도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장애를 이해하는 긍정적 반응의 유형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것이 바로 장애수용으로 이는 장애로 인해 생긴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제약들을 당사자가 직시하고 변화된 역할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 당사자는 자신의 장애를 폄하하지 않고 올바르게 해석하여 수용함으로써 건강한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다. 특히 여성장애인은 결혼과 함께 배우자와 모성 역할이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 때 자신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수용이 선행되어야만 가족 내에서의 다른 역할들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지체장애 여성들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기도 전에 이미 주변 사람들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었다. 즉, 연구 참여자들은 장애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변인들에 의해 미리 판단되어졌고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로 세뇌 당했음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주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은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는데 있어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여성지체 장애인들은 성(性), 결혼 및 출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있어 더욱 더 불가능할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감에 따라 자신의 능력 및 욕구에 대해 고심해보지도 못한 채 인생의 중요한 사항들이 결정지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장애인은 물론 가족 구성원 전체가 장애를 수용하도록 돕는 장애 인식 개선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장애 당사자 중심의 논의가 아닌 장애가정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시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사회적 관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되어져야 한다. 건강한 대인관계는 장애라는 자기 낙인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본 연구에서도 모든 참여자들이 사회적 관계 형성을 통해 세상과 소통됨에 따라 편견에 의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장애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성지체 장애인의 경우 자칫 가정 안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회적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교육 및 여가 활용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여성지체 장애인들에게 자녀 양육과 관련된 서비스가 보다 확충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 여성지체 장애인들은 자녀양육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고 있었다. 출산과 양육의 경험은 자신의 여성성을 완전하게 채울 수 있는 귀한 경험이지만 자녀양육 과정에서 오는 중압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낮은 자존감을 갖기도 했다. 이는 자녀양육과 가사의 책임을 여성의 역할로만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온 장애여성들이 모성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편견으로 좌절감을 경험하는 것이었다(오혜경, 김정애, 2000). 따라서 여성 장애인들이 보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출산 및 자녀양육에서 오는 부담감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 서비스, 경제적 보조와 가사 도우미 제도들을 더욱 확대 실시해야 할 것이다.
넷째, 여성장애인들이 올바른 양육기술을 습득하여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증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양육기술은 여성지체장애인이 자녀와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아동이 장애 부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궁극적으로 모성 역할에 대한 자신감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이상의 자녀를 둔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자녀양육 방법에 있어 혼란스러움을 느꼈고 이로 인해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성장애인은 임신,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서 비장애 여성과 차별화된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장애인 대상의 부모교육, 정보제공, 상담 서비스 등을 통합적으로 연계하는 정책적 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는 장애인이라는 획일적 시각이 아닌 여성장애인 고유의 시각에서 그들의 욕구들을 반영한 차별화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여성장애인들의 권익을 더욱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지체장애인들의 삶의 경험을 생애사적 질적 접근 방법으로 탐색해 보았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기존의 양적 연구에서 도출해 내지 못한 여성지체장애인들의 문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데 큰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지체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여러 장애 유형가운데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들의 삶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장애는 장애유형 및 장애정도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문제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다른 장애 유형을 갖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풍부한 질적 연구들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