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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Study on Oriental Style of Art and Montage Shown in Im kwon tak’s flim 임권택 영화에 나타난 동양화론의영화적 수용과 몽타쥬에 관한 연구*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Study on Oriental Style of Art and Montage Shown in Im kwon tak’s flim
KEYWORD
attraction montage , the style which embraces the sprit in the shape , Im Kwon tak , Local color , globalizaion , the scenary of korean nature
  • 1. 들어가는 말

    시간이 거목의 나이테를 만든다면 작품은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작성한다. 거장의 반열은 여러 기준에 따라 오르내린다. 임권택은 작품편수와 작품 활동 기간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거장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영화가 동아시아영화담론의 장에서 논의될 때 중심에 임권택이라는 텍스트가 자리했다. 한국 영화의 대표성으로 임권택을 주목했다면 임권택은 외부의 시선보다는 한국이라는 존재내로 천착해 들어갔으며 이를 영화의 장으로 견인하는데 주력하였다. 한국영화 담론의 중심에 임권택 텍스트가 놓여있었다면 임권택의 영화 중심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중핵을 이룬다. 그동안 임권택 연구는 작가주의방법론에 입각한 연구에서 인본주의를 다루는 이데올로기적 연구를 경유하여 개별 텍스트의 분석에 이르는 방대한 성과를 축적해 왔다. 임권택 연구는 한국 영화연구의 가늠자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발하게 진행되어왔으며 이를 통해 임권택은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에서 출발하여 국민감독으로 승격된 다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임권택 영화의 중핵을 이루고 있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임권택의 텍스트에 어떻게 개시되고 있으며 영화적 모자이크를 구성하였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본고는 임권택 감독이 왜 한국에 천착했으며, 한국의 문화는 임권택의 텍스트를 통해 어떻게 탈은폐되었으며 영화적 이미지로 개시되어 영화적 완결성에 기여하는 지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임권택의 텍스트는 한국 불교를 다루는<만다라>와 판소리를 배경으로 한 <서편제> 그리고 한국화인의 삶을 통해 한국화와 한국의 자연을 프레임으로 견인해온 <취화선>을 중심으로 논의하도록 할 계획이다. 방법론은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토대로 하여 한국이라는 존재가 영화를 통해 탈은폐되고 개시되는 양상에 대한 고찰과 동양화론인 이형사신론(以形寫神論)을 통해 전신적 사실주의와 심원법(深遠法)의 구도를 통한 진경 산수화가 임권택 영화와 어떻게 접맥되고 있는가에 대해 규명할 예정이다.1) 아울러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쥬론과 화론이 접맥되어 임권택의 영화미학으로 수렴되는 장면에 대해서 논의하여 영화언어와 화론의 예술적 접맥 가능성에 대해 탐구해 본다. 임권택의 텍스트에 사용된 몽타쥬는 잠재된 의미와 감정을 배치하여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에 근접하며 이는 은근하게 드러내는 한국미를 표현하는 방식에 부합하지 않는가라는 사실을 입증해보려고 한다.

    1)이형사신론은 객관 형체의 묘사를 토대로 하여 정신을 드러내는 조선 후기 한국의 대표적인 화론이며 심원법은 유동적인 하이앵글에 가까운 구도법이다.

    2. 임권택의 한국에 대한 자각과 한국문화의 영화적 탈은폐

    임권택 영화의 예술적 자궁은 한국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임권택 영화의 샘물이며 미학적 거점이다. 임권택의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 자각과 한국영화사에서 제기되어 온 한국적 영화제작 담론에 대한 호응이라는 두 갈래에 맞닿아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1974년 대만 영화제 방문 여행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은 “나는 그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다른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2)을 했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서러운 삶의 체험과 함께 처절한 삶을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삶을 보듬어 보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영화다>”3)는 영화론을 피력하였다. 임권택의 영화론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살고있는 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일본에서 연설을 통해 ‘제 영화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 것’으로 재천명되었다. 또한 다른 인터뷰에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반복해서 피력하여 ‘한국이 자신의 영화의 원형질’임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임권택 감독은 “내 영화들에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비극에서 발견한 것, 이 비극의 원인, 우리 삶의 장애물들, 왜 우리가 이런 장애들을 지니고 있는지 등등 한국인의 삶을 형상화하려고 시도”했으며 동시에 “우리는 미국영화들처럼 재미있는 영화들을 만들 수 없으므로 우리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른 이들은 말할 수 없는 우리 이야기에 기초한 영화들을 만들어야합니다.”4)고 역설하였다. 한국인 삶의 형상화와 한국 문화에 기반 한 영화 만들기는 우리 영화가 존중 받기 위한 것과 산업적 경쟁력을 토대로 자국 영화의 자생력 갖기로 귀결된다.

    서인숙은 이와 같은 임권택의 연출의지는 ‘과거와 역사에 집착하는 영화’로 이끌었으며 “‘우리’가 잘 할 수 있지만 ‘그들’(서구)이 얘기할 수 없는 ‘차이’를 기반으로 한, 민족 내러티브로 선택된 유교적 전통은 임감독 전 작품들을 관통하며 한국 고유의 미덕”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임권택 감독의 텍스트는 한국의 자연과 한국의 인물이 원형질로 자리하며 이데올로기 관습은 유교적 전통이 내재해 있다.

    임권택의 한국문화와 풍경 재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임권택 영화를 서구에 소개했던 데이비드 제임슨의 시각이다. 민족예술영화에 임권택의 작품을 범주화하여 두 가지준거틀에 배치하였다. 첫 번째 준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며 두 번째는 식민지 경험 이전의 토속적 문화 습속 중에서 영화 언어를 찾는 것이다. 임권택은 후자에 속하며 “한국의 근대성과 식민지 이전의 민족문화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것”5)이 그가 선택한 방법으로 단정하였다. 또한 자국의 풍경은 이국적 볼거리라는 스펙터클의 요소로 견인한다고 축소해석하였다. 데이비드 제임스는 ‘한국 풍경의 이상화는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중층결정된 경험을 가진 국내의 관객들을 위한 것이며 농촌사회를 휴양과 정신적 회생의 장소’ 재배치하였으며 “영화라는 문화관광주의가 전지구적 관광산업의 정치학과 힘을 합쳐 외국관객들을 유혹하는데, 이는 자연풍광의 매춘화에 다름 아니며 한국은 국제적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쓸 때 마다 노골적으로 이를 활용해왔다6)”고 폄하하였다. 임권택의 한국풍경이 외국관객을 유혹하려는 관광 홍보물로 전락시키는 평가는 재고해 볼 부분이 존재한다. 임권택의 한국주의는 문화관광 상품주의의 소산도 아니며 외국 영화제에서 평가 받으려는 엑조티즘(exotism) 의 산물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미학적 해명이 선행되어야하며 동시에 감독의 개인사와 한국영화사의 담론을 통해 임권택 텍스트의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임권택의 프레임에 배치된 자연풍경은 한국의 진경산수와 접맥된다는 사실을 통해 홍보물과 엑조티즘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국이라는 존재의 발현과 탈은폐라는 예술의 존재 방식으로 해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예술작품이 작품이라는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의 존재 속에 개시됨으로 가능하다.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은 “존재자의 진리의 -작품-속으로의 -자기-정립”7)이라고 간명하게 규정하였다. 예술은 소리는 울림 속으로 되돌아가고, 돌은 돌의 묵직함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자기정립하면서 드러낸다. 한국의 영화도 한국인의 심성, 한국의 풍경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이야기를 드러낼 때 한국영화의 본질과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진리처럼 밝게 드러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한국의 풍경을 카메라가 사실에 가깝게 포착해내는 것은 서구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국적인 낯선 곳을 광고하기보다는 한국의심성과 서사를 배치하여 한국의 예술로써 영화를 자기정립시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포착해낸 느린 인물의 움직임 그리고 직선과 구불구불한 길은 한국의 풍경이라는 존재자를 탈은폐시킨다. 카메라로 끄집어내진 한국의 풍경은 바로 한국영화에 부합한 한국적 이미지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며, 모호한 한국존재가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다. 예술의 본질이 진리를 작품 속으로 정립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자연과문화가 한국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미장센으로 안착되는 것은 예술의 기본이자 본령에 속한 것이다. 임권택 영화의 특징은 한국 풍경의 이상화라기보다는 은폐된 한국풍경을 적극적으로 탈은폐하는 작가적 노력과 그 흔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임권택 영화의 프레임은 은폐된 한국문화를 견인하여 거대한 모자이크로 완결시킨다. 모자이크화는 이국적 볼거리로 전시되거나 문화적 호객 행위가 아닌 자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무한한 자긍심의 산물에 가깝다.

    임권택 감독의 한국 문화와 한국적 삶에 대한 관심은 한국영화사적맥락에서 볼 때 1930년대 로컬 담론에서도 제기되었으며 1970년대에도 다시 소환된 담론이었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영화 감독인 나운규는 “세계 각국 사람이 다 느낄 수 있는 共通된 感性을 잘 붙잡아서 조선의 山河와 조선의 情調를 基調로 하고 만들어낸다면 나는 반드시世界市場 進出이 어렵지 않을 줄 알어요”8)라고 주장하였다. 이 시기의 로칼 칼라 영화의 필요성은 대부분 조선에 대한 강조로 귀결되며 이는 자국의 시장에서 세계 시장으로 확장을 통한 조선 영화의 산업적 활로를 찾으려는 자구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성률은 “제작자와 감독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뀐 상황에서 과다한 제작비를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로칼 칼라의 영화를 주장하면서 실제 그런 영화를 제작”9)했다고 결론지었다. 1930년대 로칼 칼라의 주창은 자국영화의 산업적 자생력과 경쟁력 갖추기라는 산업적 맥락에서 도출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카프의 해산과 한국영화 산업의 위축과 친일영화가 제작되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이는 검열의 부담과 현실 비판적 영화 제작의 실패로 인한 반대 급부로 부상한 조선적인 정조와 조선의 풍경이라는 스펙터클의 영화적 수용으로 귀결된다. 로칼 칼라로 이름 붙여진 조선의 풍경과 정조는 조선의 현실을 일부 거세하고 조선의 스펙터클만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일제강점기 영화인들의 기우뚱한 영화적 타협이거나 산업적 재건을 명분으로 한 우리 것의 호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유신체제기에서 다시 담론으로 귀환하면서 산업적 요구와 정부 정책에 대한 소극적 수용이라는 물밑에서 타협적 균형을 찾기로 재론된다.

    임권택 감독은 대만 여행에서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을 하였다고 술회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유신체제기에 영화진흥공사에서 지원한반공영화 <증언>과 새마을 국책영화 <아내들의 행진>을 제작한 이력은 영화제작을 위한 순응적 자세를 엿보게 한다.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은 예술가로서 창작의 모태가 자신이 뿌리박고 있는 모국의 문화적토양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국책영화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지닌 점을 염두에 둘 때 국내 시장과 해외에서 평가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창작자로서 고뇌에 찬 결단도 가미되었을 것이다. 한국존재라는 창작의 토대를 예술가의 감수성으로 체득했다면 우리 문화를 잘 알 릴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정책적 권장에 대한 고려 그리고 해외 영화제와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문화에 대한 소환이 삼각형을 이루어 임권택의 한국적 소재의 영화 제작으로 귀결된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담론이 세계화를 주장한 김영삼 정부에서 거듭 주창되었다. 1994년 시드니에서 국정핵심목표로 세계화가 등장하였다. 세계화는 민족의 생존 전략이며 발전 계획임을 천명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모든 부문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이를 위한 전 국민의 동원”10)을 의도하였다. 세계화가 김영삼 개혁 정책에 대한 보수언론과 대기업의 방어 이데올로기였다 하더라도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주도의 민족주의로 호명되면서 문화영역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화의 부문에서 영화의 경쟁력 강화 일환으로 우리 것으로 지칭되는 민족주의적 담론이 주창된다.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민족성과 세계성을 연결시키려는 국가적 시도는 국민감독 임권택의 영화를 주목받게 하였을 것이다. 임권택은 자국 문화에 대한 영화적 관심을 오랫동안 기울여왔으며 <만다라>를 통해 한국 불교를 천착하였으며 <씨받이>를 통해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의 폐해인 남아선호사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이어왔다.1993년 <서편제>의 제작과 산업적 성공은 세계화를 표방하는 당시의 국정핵심 과제에 부합하였으며, 동시에 한국 판소리라는 우리 소리(민족)를 세계화 시대에 동원하는 가능성의 상징으로 부각시켜 ‘세계화시대에 호명되는 민족 문화에 대한 활성화’를 실천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된다. 임권택 감독은 개인적인 성찰을 통해 1980년대부터 한국문화에 대한 천착을 시작하여 국내에서 국민감독으로 부상되었으며 해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다. 그의 브랜드는 한국 문화의 영화화였으며 이는 임권택의 한국주의로 명명되기도 했다. 임권택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인 성찰에서 촉발되어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문민정부시대에는 세계화라는 국가 핵심 과제에 부응하여 새삼스럽게 주목받게 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국민감독의 지위를 획득하게 했으며 작가 임권택의 산업적 성공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국외에서는 한국문화의 영화적 재현을 통해 해외영화제 수상을 통한 작가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어 예술영화의 배급망을 통한 산업적 활로도 개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권택이 영화로 소환한 한국문화는 <만다라>를 통한 한국 불교,<씨받이>를 통한 한국의 남아선호와 유교적 가부장제도, <아다다>를 통한 과거 신분사회의 폐해, <서편제>를 통한 한국의 소리, <태백 산맥>을 통한 한국 전쟁, 그리고 <취화선>을 통한 한국화로 이어진다. 임권택 감독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프레임에 담은 국민감독이며, 그의 영화는 한국이라는 창조적 자궁에서 잉태된 것이다.

    한국이라는 상상의 이미지는 한국인이라는 인물이 움직이는 공간으로서 한국의 풍경을 프레임에 배치하면서 탈은폐된다. 임권택의 프레임에 배치된 한국의 풍경은 이미지를 통해 정신을 표현한다는 동양화의 전신사조의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특히 자연 이미지와 인물의 정서와 관련성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전신사조는 조선 후기진경 시대를 이끌었던 진경산수의 화법에 일정한 예술적 관련성을 갖고 있다. 임권택은 한국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필생의 화두를 풀어내면서 전신론적 사실주의와 진경산수화가 보여준 심원법(深遠法)을 통한 한국풍경 드러내기로 실천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적 소재와 풍경은 한국의 진경산수미학과 접맥되면서 한국풍경의 프레임을 통한 해외에서의 평가와 작가로서 독창성을 견인해낸다. 임권택의 영화의 내용이 한국이라면 형식은 화론의 영화적 수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한다.

    2)이효인 편저, 『한국영화감독 13인』, 열린책들, 1995. 50쪽.  3)이효인 편저, 앞의 책, 50쪽.  4)서인숙, 「한국영화미학 탐구 Ⅰ: 임권택 영화, 탈식민지주의 문화이론을 중심으로」, 『영화연구』제 23호, 2004. 242쪽.  5)김경현ㆍ데이비드 E 제임스 외 엮음, 김희진 옮김, 『임권택ㆍ민족영화 만들기』, 한울,59쪽. 주유신은 다른 맥락에서 임권택의 민족주의를 비판하였다. 주된 기조는 ‘민족의고통과 비극을 육체적으로 훼손되고 정신적으로 모욕당한 여성에게 투사하여 알레고리화하는 동시에 그들을 구원하고 보상해주는 주체를 남성의 몫으로 돌린다.’는 것이다.(주유신, 「임권택 영화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족미학 비판」, 『대중서사연구』 제13집, 2005.6.30) 여성의 수난 서사에 대해 임권택은 “전쟁같은 외부적 수난을 겼을 때도 여성은 남성보다 이중 삼중으로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되지 않습니까…….(중략)…….남성보다도 더 불행한 입장에 있는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더 극명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할 수 있다”는 연출 의도를 피력하였다.(임권택ㆍ유지나,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행』, 민음사. 2007. 169-170쪽.)  6)김경현 외, 위의 책, 67쪽.  7)하이데거 저, 오병남ㆍ민형원 공역, 『예술작품의 근원』, 예전사. 1996. 41쪽.  8)좌담, <명배우, 명감독이 모여 [조선 영화]를 말함>, <<삼천리>>, 1936년 11월호. 98쪽.강성률, .1930년대 로칼 담론 연구., 영화연구, 제 33호. 243쪽. 재인용.  9)강성률, 위의 논문, 247쪽.  10)이인화, 「세계화시대 민족국가 및 민족주의 담론에 관한 연구」, 서강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64쪽.

    3. 동양화론의 영화적 적용 : 이형사신론을 통한 전신적 사실주의와 심원법을 통한 진경 산수화와 접맥

    한국의 미는 여러 개념으로 정의되지만 여백의 미, 청초의 미, 자연미 등을 들 수 있다. 한국 예술의 특징은 “한국민이 살아온 주변 환경 즉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한국적 지형과 자연을 떠나서는 한국적 미의식의 뿌리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며 이는 한국의 미의식의 토양은 한국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임권택의 영화는 한국의 풍경을 프레임에 포착하면서 한국의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수렴된다. 여기서 한국의 풍경을 프레임에 포획하는 미학적 선택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임권택의 작품도 한국의 풍경과 자연을 프레임에 포획하기 때문에한국의 풍경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표현해내는가라는 질문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임권택 영화의 특징은 이효인의 주장대로 “여백을 활용한 수직 분할, 롱테이크, 롱쇼트, 그리고 고정 카메라의 활용”11)을들 수 있다. 여백은 익스트림 롱쇼트와 롱쇼트라는 일정한 크기를 지닌 프레임에서 자연스럽게 들어난다. 특히 임권택의 영화에서 롱쇼트로 잡힌 자연은 여백의 미가 잘 살아나 있다.

    물론 서인숙은 ‘한 프레임의 미장센을 이루고 있는 구도의 측면에서 여백의 미를 찾아 보기 힘들다’라고 주장하였지만 일부 장면은 꽉 찬 프레임을 구축하였지만 익스트림 롱숏과 클로즈업으로 리듬을 만드는 미장센에서 익스트림 롱샷의 경우 여백을 잘 살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사이즈나 여백 같은 외적인 형상에 대한 기술과 평가에 머무는 한계를 노정한다.

    이육호는 ‘풍경을 우리식으로 구별하고, 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임권택 영화의 질문이자 딜레마라고 했다. <취화선>은 이와 같은 질문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그것은 서구 풍경이미지로부터 탈풍경으로 표출되며 장승업이 꿈꾸는 진경이며 이상적인 진경과는 거리라 있다고 평가했다.12) 한국의 풍경을 자연이 아닌 예술가의 눈으로 거리를 두고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임권택 감독이 던지고 서구의 풍경에서 벗어나 한국적 자의식을 드러냈다는 시선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취화선>의 풍경 재현이 탈 서구적 풍경화에 논의가 맞추어져 있어서 동양화론이나 한국의 진경산수화의 구도와 관련성에 대한 논의까지 확산되지 않았다.

    임권택 영화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 자연이기 보다는 구도를 통한 작가적 개입이 가미되어 눈에 보이는 형상 보다는 그 형상을 통해 표현하는 정신과 주제에 방점이 찍혀있다. 동양화론 입장에서 볼 때 전신론에 가깝다. 전신론은 고개지의 전신사조(傳神寫照)에서 기인하며“대상의 정신을 옮겨 겉으로 드러난 대상의 구체적인 특징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일”13)을 생명으로 한다. 전신론에 의거하면 “인물을 그리면 (인물이) 돌아보고 이야기하듯 해야하고, 꽃과 과일 나무(를 그리는)경우에는 바람을 맞고 이슬을 머금은 듯해야한다.”14) 전신론은 대상의 생생한 형상화를 통해 살아 꿈틀거리는 기운생동이 일어나게 한다. 고개지의 전신론은 천상묘득(遷想妙得)과 이형사신(以形寫神)론으로 구체화된다. 천상묘득론은 “작가가 대상이 되는 인물의 사상과 감정에 대한 기초로 ‘전신’의 예술형상을 만들어내며, 이형사신은 전신은 반드시 객관 형체의 묘사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15)”는 입장이다. 전신론이 이미지의 형상보다 정신세계의 표현에 방점이 찍혔다면 임권택 영화의 화면구도와 화면 이미지도 주인공의 내면과 삶을 표상하는 전신론적 태도에 가깝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형상에 기대어 정신을 표현하는 이형사신론에 가깝다.

    <만다라>는 길에서 시작하여 길에서 끝맺는다. <만다라>는 법운(안성기 분)과 지산(전무송 분)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구도의 길을 추구하는 로드무비다. 영화가 시작하면 동한거 장면이 몽타쥬로 처리된다. 그 다음 장면은 넓게 펼쳐진 길을 따라 시외버스가 도착한다. 그림 1에서와 같이 시외버스가 도착하는 길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야할수행의 길을 암시한다. 좌측에 폭넓은 여백이 펼쳐져 있으며 앞으로 채워야할 구도의 행적을 남겨둔다. 두 번째 이미지는 법운과 지산이 검문소에서 만나서 길을 가는 장면이다. 길이 잘 닦인 탄탄대로가 아닌 신작로 길이다. 길은 길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주인공들이 가여 할구도의 길이다. 이미지는 주제를 암시한다. 세 번째 이미지는 법운이 어머니와 헤어진 다음 홀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장면이며 처음의 길보다는 훨씬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법운은 지산의 유품을 전해주고 자신의 어머니와도 화해하면서 구도를 향한 용맹정진만 남았다. 그의 구도행에 대한 희망적 미래는 시원하게 뻗어있는 신작로를 통해 암시된다. 세 이미지는 길이라는 한국의 자연을 프레임에 담아냈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구도에 대한 이야기임(그림 1)을 암시하고 앞으로 가야할구도행의 힘겨움(그림 2)과 희망적인 수행(그림 3)을 시각화한다. 이쇼트는 형상을 통해 정신과 주제를 드러내는 전신사조의 철학이 영화에 배어있음을 입증해준다.

    구도의 과정을 보여주는 <만다라>에 거듭 등장하는 만행하는 길의 이미지는 그들의 구도의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이미지로 표현하며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만행 또한 그의 화인으로서 길을 암시한다. 이미지와 인물이 서로 상응하여 이형사신의 전신론적 표현으로 귀결된다. 인물의 내면과 이미지가 서로 조응하여 드러내는 것을 전신적 이미지로 명명하고자 한다. 이형사신은 형상을 통해 정신을 드러내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절충적 화론이다. 이형사신론에 입각한 전신적 이미지는 다양한 층위로 드러낸다. 이는 임권택 감독이 동양화의 전신론을 서양의 기계인 카메라에 담아내는 자기화의 과정이라는 미학적 공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첫 번째 전신적 이미지는 시각적 자연과 주인공의 내면적 연관성으로 서로 조응한다.

    임권택 감독은 한국의 자연과 주인공의 감정이 닮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한 바 있다. 그림 4는 수관과 법운이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수행길이 첩첩산중처럼 가야할 먼 길임을 굽이굽이 펼쳐진 산을 통해 암시한다. 지산과 법운의 깨달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익스트림 롱샷으로 굽이굽이 펼쳐진 산을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은“인물을 작게 확보함으로써 아직도 그들의 길이 멀었음을, 즉 쉽게 도달할 수 없음”16)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에 대해 설명하였다.<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걸어가는 앞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험한 산들은 넘어서야할 초극의 대상으로 버티고 있다.

    두 번째 한국의 풍경을 프레임에 담는 전신적 방식은 심원법이다. 이는 신선의 눈으로 바라보는 심원법을 통해 내려다보거나 곡선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의 풍경을 재현하기도 한다. 한국의 풍경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곡선과 심원법은 한국의 풍경을 담아내려는 예술가적 모색을 통해 도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임권택의 구도는 기술적인 문제나 크기의 문제 보다는 한국의 풍경을 프레임에 담아서 등장 인물과 어떻게 호응시키느냐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도출된 자기 해답에 가깝다. 한국인은 한국의 자연과 닮았으며 자연은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대신 드러낸다는 미학적 태도는 임권택과 한국의 미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배병우는 “각 나라 소나무는 그 나라 사람과 닮는다. 닮는 순서는 소나무가 먼저고 사람이 나중”17)이지만 자연과 인간이 닮는다는 점에 대한 확신을 피력했다. 한국 미학자 최순우 선생은 한국 예술과 한국의 상호 닮음에 대해 거듭해서 넌지시 강조하였다.

    한국의 미술이 한국인의 마음씨와 닮았다는 것은 한국의 예술이 한국과 닮았다는 사실과 부합된다. 우리의 길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한국의 길은 서양의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한다. 곡선과 구불구불한 길은 인위적인 길이기 보다는 자연이 빚어낸 길이다. 직선은 인공의 폭력이 가미된 선이며 산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은 대부분 불규칙하고 완만한 곡선이다. 인공은 직선을 선호하고 자연은 곡선에 가깝다.<만다라>와 <취화선>에서 지산과 오원이 걸어가는 길은 대부분 곡선이며 가끔은 굳센 각오를 할 때 직선의 신작로가 펼쳐지기도 한다. 굴곡이 있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곡선은 주인공의 행적과 닮았으며 이는 한국의 곡선미와도 부합한다. 이 곡선은 “남산에서 바라본 한옥 지붕의 곡선의 물결, 석굴암 제상과 성덕대왕신종의 부조가 보여주는 流線의 아름다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유선과 첨성대의 곡선, 고려 청자의 곡선, 그리고 이러한 곡선들은 버선이나 신발에 이르기까지 같은 곡선의 혈연이 맺어져 있음”19)으로 인해 한국의 곡선미를 영화적으로 수용하고 완결시킨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길을 따라 걷기를 거부하고 벗어난 뒤쪽으로 뱀처럼 곡선이 흐른다. <만다라>에서 지산과 수관은 만행을 하고 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산에서 흘러내려온 곡선이다. 배경의 산도 완만한 곡선으로 산등선과 산등선이 이어져 있다. 심지어 무리를 지어허공을 날고 있는 새떼들도 무질서한 비행을 하면서 곡선의 형상을 그려낸다. 여기서 임권택의 프레임은 한국 곡선미의 영화적 재현으로 강조되며 이는 형상을 통해 인간의 삶의 태도와 정신을 드러내는 이형사신의 전신론이라는 동양화론의 영화적 접맥과 닿아있다. 전신론이 형상과 이미지를 통해 정신을 드러내는 정신이 강조된다면 임권택의 한국 풍경의 영화적 재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임권택의 이미지가주인공의 정신을 자연을 통해 드러낸다는 전신론을 1차 수용하지만한국의 자연이라는 스펙터클의 제시는 사상의 강조보다는 인물과 자연의 어울림에 관심을 쏟는다. 즉 전신론의 직접적인 영화적 인용보다 한국의 예술가가 한국의 풍경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풍경과 인물의 어울림에 더 연출의 강조점이 찍혀있다. 이는 자국의 국민이 자국의 자연과 풍경과 상호 소통하는 한국적 전신사조론에 가깝다.

    한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임권택의 영화적 태도는 진경시대의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태도와 흡사하다. 겸재는 ‘북경화단의 추종에만 급급하던 당시 이조 화단의 폐풍 속에서 범속에 물들지 않고 각고한 수련을 쌓아 드디어는 독자적인 산수 준법을 대성하여 이조 산수화풍에 청신하고 자주적인 생기’를 일깨워주었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한국의 자연을 그리는 것이며 여기에 걸맞는 필법과 화법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소시부터 한국의 산야를 열애했으며 일반 화가들이 보통 주제로 그리는 중국산수화풍의 소재나 인물보다는 한국의 자연과 풍정을 즐겨서 사생했고 그 자연 속에 점철되는 인물들은 한복을 입은 진짜 한국사람들”20)이었다. 겸재가 지향한 것은 한국의 자연을 재현하는 한국산수이며 한국인물이었다. 겸재는 한국의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한국의 자주적 화풍을 확립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진경산수화를 창출한 것이다. 단원 김홍도도 ‘그 어느 것이나 한국의 산하와 현실에서 유리하지 않다는 것은 항상 그가 情愛로써 우리 자연을 바라보고 또 그 속에서 즐겨한 그 인간과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준 화가이다. 겸재의 대표적인 산수화인<금강산도>, <장안사 비홍교>, <삼일포> 등은 한국의 자연을 대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심원법을 통해 진경 산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단원의 <금강산>은 한국의 명산인 금강산을 내려다보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송석원 시사 야연도>는 한국인 9명이 벌인 시회도를 심원법으로 그려냈다. 진경 산수시대 화가들은 한국의 자연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이 한국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인의 삶과 정서와 정신을 담아내는 것 작가적 태도는 진경산수시대의 화가들과 한국을 사유하는 태도와 표현하는 방식에서 볼 때 예술사적 맥락에서 맞닿아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세 번째는 심원법의 시점을 통한 진경산수와 임권택 영화 이미지와 접맥된다. 임권택의 장면이 보여주는 하이앵글(심원법)은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산수화 구도에서 산점투시와 경영위치가 주로 사용되지만 삼원법도 중요한 시점이다. 삼원법은 고원과 평원 그리고 심원으로 나누어진다.21) 삼원법은 곽희의 <임천고치>에서 논한 구도법이다. 겸재는 곽희의 화론을 탐독했다는 기록이 있다. 심원은 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보며 이는 영화의 하이앵글에 가깝지만 산과 산 사이를 거니는 공간이 확보되어 신선들이 노니는 시점이므로 시점이 이동하는 산점투시와도 결합된다. 심원법의 구도는 자국의 자연을 사생하고 그려내는 진경산수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진경산수는 우리 강산에 있는 그대로 실재하는 경치를 표상하는 것을 지향한다. 조선후기 진경시대에 개화한 진경산수는 “우선 우리 나라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과 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독특한 화풍까지를 포함하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22)”한다. 진경 시대는 숙종에서 정조에 걸치는 125년간을 지칭하며 이 시대는 “조선왕조후기 문화가 조선의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난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던 문화 절정기”23)였다. 진경 시대에 꽃피운 진경 산수의 특징은 우리 산천의 사실적 표상과 독창적 표현법의 창출로 요약된다.

    <취화선>은 부감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프레임에 담았다. 승업은 소운이 소천하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유랑길에 오른다.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의 장면에 대해 ‘전체적인 영상은 한국화’를 염두에 두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조선화를 염두에 두었다고 정성일과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 임권택이 말한 조선화는 구체적으로 진경시대의 진경산수에 가까우며 구도로는 심원법 구도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화조영모화나 기명절지화는 차이가 있다. <취화선>의 유랑길의 구도와 정선의 <금강전도>와 김홍도의 <도담삼봉도>는 모두 심원법의 구도로 잡힌 진경산수의 백미다. 유홍준은 <금강 전도>에 대해 “겸재의 진경산수는 실경의 사생화가 아니라 실경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이형사신의 미학”24)으로 평가하였으며 단원의 <도담삼봉도>는 “마치 헬기를 타고 가며 사진을 찍은 듯 먼 부감법”으로 삼봉의 기운생동함을 표현했다고 했다. 겸재는 이형사신을 통한 사실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임권택의 영화적 태도와 부합하며 단원은 영화적으로 볼 때 하이앵글로 항공촬영을 연상케하며 구도론으로 보면 심원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를 통해 진경산수 시대의 이형사신적 전신론과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실적인 심원법은 임권택 영화의 하이앵글 촬영을 통한 익스트림 롱 쇼트와 접맥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전신론과 부감법은 회화와 영화를 통해 한국의 풍경과 정신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지향점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홍도의 『단원 절세 보첩』에 포함된 진경 산수인 <옥순 봉도>, <사인암도>, <도담 삼봉도>가 실경을 묘사했지만 일부에 작가의인위적 첨삭이 시도되었다. 일부의 첨삭에 대해 최완수는 “조형상의제조정은 오로지 주제의 부각”25)을 위한 작가적 개입이라고 했다. 진경 산수가 중국의 고답적인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한국의 자연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독자적이나 조형적 완성도를 위한 인위성의 가미라는 작가적 개입이 사실성에 일정한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진경산수와 영화가 더 근접해간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도 리얼리즘은 생생한 현실보다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흡사한 태도를 보여준다. 진경 산수와 임권택의 프레임은한국의 자연을 정면에 내세웠다는 점과 한민족의 정서를 중심으로 삼았다는 태도에서 서로 다르지 않은 입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한국풍경에 대한 공통된 입장은 진경 산수에서는 조형적 완결성을 위한 작가적 개입이라는 최소한의 예술적 변형을 통한 이형사신적 사실주의로 표출되었으며,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한국의 자연이 이에 호응하는 인물의 정서와 영화적 서사를 견인해 내는 이형사신적 몽타쥬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산수화 미학의 예술적 개시 혹은 영화적 접맥으로 귀결된다.

    김홍도와 정선이 금강산과 단양팔경을 대상으로 사경(寫景)한 작품은 다양한 산점투시의 시점을 보여준다. 시점의 다양화는 동양화의 시점이며 영화는 앵글과 움직임을 통해 산점투시의 시점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포착해낸다. 진경산수화 작가들이 한국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채택한 시점은 삼원법으로 볼 때 심원법이 두드러지며 이는 신선의 시점이다. 동양화의 심원법은 신선이 거닐면서 자연을 드러낸다면 임권택의 이미지는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피사체인 인물들이 거닐고 있다. 동양화가 상상의 인물에 의한 변화무쌍한 시점을 보여준다면 영화는 카메라의 시점을 통해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탈목점이 되고 있다. 영화에서 인물이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는 풍경을 강조한다. 심원법의 깊은 시점은 영화의 부감에서 표현되면서 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더욱 사실적인 생생함이 가미된다. 자연 이미지는 인물의 삶과 정서를 드러내는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이형사신적 사실주의로 귀결된다. 영화는 움직임의 예술이라는 것을 임권택은 이미지 안에서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임권택은 한국의 풍경과 문화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라는 동일한 화두에 매달렸으며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으로 <만다라>에서 느린 걸음과 <취화선>에서 동양화같은 화면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과 한국의 풍경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임권택이라는 작가를 매개로 하여 진경 산수의 한국화 구도가 개시되고 탈은폐된 것이다. 한국의 자연을 보다 사실적으로 어떻게 재현할 것이냐의 화두를 앞에 두고 붓을 든 진경 산수 시대의 화인과 카메라를 든 임권택이 서로 다른 도구와 장르에서 출발하였지만 정상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임권택의 영화 장면과 진경산수화는 한국예술사의 흐름에서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이는 한국예술사의 뿌리 깊은 체관과 물관을 통해 서로 다른 장르가 한국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통해 만나고 있는 광경이다.

    11)이효인, 앞의 책, 46쪽.  12)이육호, 「영화에서 자연풍경 재현에 관한 연구, <어머니 아들>, <취화선>을 통한 풍경과 탈풍경의 문제를 중심으로」, 동국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64-65쪽.  13)동기창, 변영선 외 옮김, 『화안』, 시공사, 2004. 11쪽.  14)동기창, 위의 책,103쪽.  15)진조복 지음, 김상철 옮김, 『동양화의 이해』, 시각과 언어, 1995. 59쪽.  16)임권택ㆍ유지나,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행』, 민음사. 2007.180쪽  17)최재천 엮음, 『감히 아름다움』, 이음, 2011.  18)최순우, 『최순우 전집 5』, 학고재. 1994. 56쪽.  19)최순우, 위의 책, 43쪽.  20)최순우, 같은 책, 192쪽.  21)왕백민 지음, 강관식 옮김, 『동양화 구도론』, 미진사, 1997. 高遠,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올려다 보는 것이며平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 바라보는 것, 深遠,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다 보는 것이다.  22)안휘준, 『한국회화사』, 일지사, 1980. 250쪽  23)최완수 외, 『진경시대』, 돌베개, 2002. 13쪽.  24)유홍준, 『화인열전 1』, 역사비평사. 2001. 259쪽  25)최완수외 지음, 『진경시대 2』, 돌베개, 1998. 195쪽.

    4. 몽타쥬론과 동양화 화론의 접맥 가능성

    임권택 영화의 대표적인 한국 이미지는 길이다. 길은 인간이 다니는 길이면서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주인공의 삶과 길의 형상이 닮은 것은 이미지와 의미의 상호연관성 때문이다. <만다라>에서 길은 법운과 지산의 수행을 시각적 이미지로 예시해주며 <취화선>에서 부감으로 잡힌 곡선의 길과 여기서 벗어난 장승업의 행보는 제도적 질서에서 벗어난 예술가의 자유분방하고 일탈된 행적과 닮아있다.

    그림 13에서 장승업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한국의 자연을 관찰하고 사생하기 위해 유랑길에 오른다. 장승업의 뒤로 길이 구불거리면서 S자로 펼쳐져있다. 장승업은 이미 나있는 길 위를 걷지 않고 자신이 길을 개척하면서 힘들게 걸어간다. 이는 장승업이 길로 표상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가는 자유분방함을 암시한다. 또한 그가 걷는 길은 마르고 건조한 길이 아닌 질척거리는 길이다. 화인으로서 장승업이 가야할 길의 힘겨움을 토양으로 보여주며 길에서 이탈은 담을 넘어서 빈집에 들어가는 장승업의 일탈과 조응되면서 탈속적인 자유분방함의 캐릭터로 일관성을 지닌다. 이처럼 이미지를 통해 주인공의 삶의 철학과 방식을 표상해내는 것은 ‘형상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이형사신적 사실주의화의 프레임’이며 동시에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어트랙션 몽타주가 지향하는 연상적 비교를 통한 주제의 도출이라는 미학적 원리와도 부합한다.

    에이젠슈테인은 러시아 혁명정신을 다수의 인민들에게 강렬하게 전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를 모색하였다. 그는 메이어홀드 연극에서 영향과 한자의 원리를 통해 영화 몽타쥬를 완성시켜나갔다. 에이젠슈테인은 1923년에 메이어 홀드의 연극에서 착안한 어트랙션 몽타쥬를 발표하였다. 어트랙션 몽타쥬는 ‘단편적 조각들 사이의 비교 혹은 연상적 비교(associational comparison)’를 통해 의도된 주제를 전달한다. 어트랙션 몽타쥬가 진화하여 충돌의 몽타쥬로 확장되고 수직의 몽타쥬에 이르기까지 몽타쥬론은 에이젠슈테인의 자신의 영화를 통해 실험하고 정초하고 싶은 영화언어이자 미학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어트랙션 몽타주가 “독립적인 효력들의 결합 → 이미지 연상 → 의미창조”를 지향한다면 이후 충돌의 몽타쥬는 “독립적인 효력들의 결합 → 이미지 연상 → 새로운 의미로의 비약”26)을 강조한다. 충돌의 몽타쥬는 이미지나 영화적 구성 요소들이 상호 충돌시키거나 대비시켜서 정서적 충격을 가한다면 어트랙션 몽타쥬는 “개별적인 숏이 ‘어트랙션’으로 작용하여 관객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며 이는 대립과 유사한 것의 비교 까지 포함한 넓고 모호한 개념이다.27) 전자가 충돌과 대립에 방점이 찍혔다면 후자인 어트랙션은 유사한 연상 작용이 대립과 비슷한 비중을 두는 합집합의 개념에 가깝다. 어트랙션 몽타쥬에서 충돌이보다 강조되는 것이 충돌의 몽타쥬이며 연상 비교가 부각된 조어가연상의 몽타쥬이다. 연상 몽타쥬(association montage)는 “화면의 눈에 보이는 요소들 뿐만 아니라, 주로 심리적 연상의 사슬과의 정서적 결합”28)한다. 연상의 몽타쥬는 충돌의 원리를 수용하되 정서적 연상들혹과 심리적 연상을 강조한 몽타쥬이다. 임권택의 영화는 충돌의 몽타쥬 보다는 어트랙션을 통한 연상의 몽타쥬에 가깝다. 에이젠슈테인은어트랙션 안에 충돌의 몽타쥬와 연상의 몽타쥬를 포함하여 동일한 몽타쥬의 원리로 설명하기도 했다. 필자는 어트랙션에서 연상 비교를 강조한 부분을 어트랙션적 연상 몽타쥬로 충돌과 대비를 통한 정서적 강조를 지향하는 것을 충돌의 몽타쥬로 재정립하여 논의를 진행하도록 한다. 임권택의 텍스트에 사용된 몽타쥬는 관객에게 충격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충돌의 몽타쥬 보다는 은근하게 의미와 감정을 감추어두는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에 가깝다. 한국미가 은근하게 드러내는 방식에 적합한 표현법으로 보이며 또한 각 장르에 두루 통용되는 원리로서 몽타쥬의 재확인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의 텍스트에서 한국의 풍경과 길이 주인공의 심성과 인생역정과 닮은 것으로 시각화되는 것은 이미지를 통한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 기법에 가깝다. 에이젠슈테인이 선명한 비교적 연상을 통한 정서적 효과를 지향했다면 임권택의 영화는 모호한 닮은꼴을 통해 은근한 주제적 표현에 가깝다. 이는 몽타쥬와 동양화의 전신론과 접맥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시인이 시를 쓰는 방법, 배우가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자기내부를 추동하는 방법, 그 배우가 화면에서 행위를 완성시키는 방법, 몽타쥬적 서술과 영화의 모든 구성 수단을 통해 연출가의 수중으로 들어가게되는 방법-이들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는 것이다”.29) 이는 모든 예술적 원리로 몽타쥬적 적용 가능성이라는 에이젠 슈테인의 가설을 입증해주기도 한다.

    전신론에 입각한 이형사신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영화 이미지가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로 사용된 결합 사례는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로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이미지 내에서 서로 조응하는 것이다. 조응은 동양화 구도의 원리에서 그림 속의 형상이 전후, 상호 연관성을 지닌 호응의 원리에 기인한다. 호응은 “인물의 표현적인 호응도 있고 사상과 감정의 내면적인 호응”30)도 존재한다. 호응과 함께 구도론에서 허와 실, 큰 여백과 작은 여백의 호응하여 자리한다. 임권택의 쇼트는 자연과 인간이 호응하거나 피사체와 인공물이 상호 조응한다. 자연과 인간은 <만다라> 길 이미지가 대표적이며, 인공물과 인공물이 조응하는 것은 <취화선>의 매향과 장승업이 재회하여 그림을백자의 아름다움을 언급한 다음 담백한 그림을 그려주고 떠나는 장면이다.

    길 이미지는 <서편제>에서 소리꾼의 삶과 동물 창자같은 구불구불한 길이 서로 호응한다. 이는 소리꾼의 굴곡 많은 신산한 삶이 구불거리는 곡선과 오르내리는 경사와 호응한다. <만다라>에서 이미 언급한 바대로 구도를 향한 수도승의 행적과 길이 내면적으로 닮았다.

    동호의 가출은 길을 떠나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길은 오르막길이며 이는 동호의 앞으로 전개될 가파른 삶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직선의 길로 동호가 오르는 것은 기존의 한국의 길과 차이가 있는 인위적인 분위가가 남아있다. 이 길은 동호의 가출 씬을 만들기 위해 스텝들이 줄을 기저 오르내리면서 급조한 길이라고 한다. 급조한길은 시간의 흔적을 남기지 못했으며 자연스러운 곡선이기 보다는 직선에 가까워 인위성을 배가한다. 이 장면은 길을 통해 동호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연출의도가 너무 생경하게 드러나 부자연스럽게 된 사례에 속한다. 길의 이미지와 인물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연상적으로 비교하여 주제를 녹이는 장면은 <서편제>의 진도아리랑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임권택의 롱테이크와 한국의 자연을 담아내는 익스트림 롱숏트가 이상적으로 결합한다. 의기소침했던 유봉의 가족들은 소리를 통해서 다시 흥을 불러일으키면서 삶의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임권택 감독은 “거기가 돌밭길이오.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면서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은 또 따스한 느낌이 있는 그런 길이지요. 만일 우리가 삶이라는 역경의 여정을 늘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바로 그런 길”31)일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한국의 전통 음악을 지키려는 소리꾼의 신산한 삶은 구불구불한 한국의 길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된다.

    또 다른 사례는 프레임 내의 피사체와 소도구 사이의 호응도 있다. 오랜 방랑의 끝에 승업은 기생 매향과 재회한다. 매향은 자신의 방에서 승업의 발을 씻어주고 정갈한 옷을 승업에게 입혀준다. 그 방에는 이조백자가 놓여 있다. 이 백자는 ‘심심하고 무덤덤한 항아리’이며 승업은 매향에게 백자 항아리처럼 꾸밈없는 담백한 그림을 남기고 사라진다. 전경의 장승업이 그린 그림과 후경의 백자는 꾸밈없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로 호응하여 장승업의 달라진 작품세계를 암시한다. 매향이 장승업의 발 씻어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매향의 마음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과거의 장승업에서예술가로 깊어지고 한결 초극한 장승업으로 다시 태어남을 암시한다. 질박하고 담백한 백자는 도자기에 그린 그림이 표상하는 꾸밈없는 선경을 예시하기도 한다. 백자와 담백한 승업의 그림이 상호 호응하여 군더더기 없는 작품의 세계에 도달할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줄 장승업의 도자예술의 경지를 은근하게 알려준다. 이는 미장센으로 배치된 백자와 그림이라는 두 피사체가 서로 호응하여 장승업의 깊어지고 간결해진 예술세계의 가시화로 수렴된 보이지 않는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이다.

    두 번째는 이미지와 이미지가 서로 다른 쇼트로 조응하는 것이다. <만다라>에서 현재의 법운이 과거의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법운은 창녀촌에서 나와 만행을 하다가 고향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는 길을 보면서 과거의 회상에 잠긴다. 법운의 시점샷으로 길게 펼쳐진 길로 소년이 달려온다. 그 길은 유년시절 어머니가 서울로 가출한 소식을 듣고 이모에게 확인하러 달려가는 길이다. 그 길은 현재의 구도의 길을 걷는 법운이 떠나왔던 길이지만 과거로 기억을 거슬러 가게 하여 현재 자신의 구도행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길이기도 한다. 동일한 길을 통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서로 마주치면서 속세의 인연과 세속적 번뇌를 끊어야할 과제를 제시한다.

    영화에 나타난 장면은 이미지 내에서 서로 비교연상을 통해 견인되어 몽타쥬와 화론이 호응된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더욱 정치하게 들어가면 가로로 줄지어 늘어선 직선의 길을 걸어가는 세로로 직립한 인물은 도형적 방향이 서로 충돌하는 충돌의 몽탸쥬와 탈목점으로 배치된 인물로 해석해 낼 수 있다. 영화의 몽타쥬는 보다 많은 언어적 선택여지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프레임에 배치된 이미지 사이의 연상과 충돌에서 확장되어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 화합하거나 갈등할 수 있으며 롱테이크와 롱쇼트가 결합하여 동양화처럼 배치되었지만 카메라와 인물이 운동을 하면서 탈목점을 만들어낸다. 회화의 탈목점이 한 곳에 배치된다면 영화의 탈목점은 움직이는 운동성을 지닌다. 산점투시도 회화에서 시간과 공간과 시점을 다양하게 펼쳐보여주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과 인물의 움직임이 산점투시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풍경을 서양의 풍경과 다르게 배치하면서 한국의 이야기에 맞게 장면화하면서 동양화론과 서양의 몽타쥬론이 교묘하게 접합되고 있는 점은 두 가지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한국의 풍경에 맞는 프레임을 구축하면서 한국영화언어를 모색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동양화론의 구도와 역동적인 몽타쥬가 내적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한 한국 영화 미학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다.

    26)김용수, 『영화에서의 몽타쥬이론』, 열화당, 1999. 234쪽.  27)김용수, 위의 책, 123쪽. 어트랙션은 넓은 의미에서는 에피소드 장면과 같은 공연의 구성단위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독백, 노래, 춤과 같은 작은 공연의 단위이다. 영화에서는 장면과 장면에서 시작하여 컷과 컷으로 발전하여 이미지 내에서 피사체와 피사체로 축소해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8)에이젠슈테인, 이정하 옮김,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쥬 이론>』, 영화언어, 1996. 193쪽.  29)에이젠슈테인, 위의 책, 465쪽.  30)왕백민, 강관식 옮김, 동양화구도론, 미진사. 1997. 29쪽.  31)정성일 대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현문서가, 2003. 292쪽.  32)문관규 외, 『씨네 클래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66-67쪽.

    5. 맺는 말

    영화는 자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하는 예술의 꽃이다. 임권택의 영화는 한국문화에 대한 성찰에서 촉발되었다. 한국적인 것의 천착은1930년대 로칼 칼라 담론에서 시작되어 세계화를 표방하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세계화 담론에 이르기까지 거듭 소환되었던 문화적 아젠다였다. 임권택은 한국의 문화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국에서는 국민감독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해외에서는 한국의 대표성을 지닌 작가로 승인받게 되었다. 임권택의 영화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문화가 줄기며 미학적 뿌리였다. 그의 영화적 실천은 한국인의 삶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과 한국의 풍경을 사실적인 미장센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과제는 형상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이형사신적 태도로 표출되었다. 이는 전신적 사실주의에 가까우며 특히 길 이미지를 통한 주인공의 내면을 표상하는 것으로 반복되어 등장하였다. 구도자가 주인공인 <만다라>, 예술가의 초극적인 삶을 다룬 <서편제>와 <취화선>에서 길의 이미지는 돋보였다. 예를 들어 <서편제>의 진도아리랑 부르는 장면은 롱테이크이며 구불 구불한 길의 형상의 한국적 곡선의 미학을 잘 드러내며 동시에 소리꾼의 굴곡있는 삶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이 장면은 예술가의 신산한 삶과 한국인의 고난의 여정을 길이미지로 통합해낸다. 이를 통해 동양화론의 이형사신적 사실주의와 에이젠슈테인의 어트랙션적 연상의 몽타쥬가 미학적으로 접맥하게 된다. 몽타주와 이형사신적 사실주의로 귀결되는 전신론의 영화적 수용은 임권택이라는 매개를 통해 진경산수의 정신이 개시된 한국예술사적 광경을 목도하게 한다. 진경산수시대를 열어갔던 화가들이 붓을 통해, 화론을 통해 한국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면 임권택은 세계화 시대에 카메라를 통해 한국의 풍경을 보다 사실적으로 포착하려고 시도하였다. 장르와 시대는 달랐지만 한국의 자연에 대한 사실적 재현이라는 공동의 예술적 목표를 지향하였다는 점과 전신론의 지지라는 길에서 합류한다. 진경산수의 전통의 맥은 임권택의 장면을 통해 영화적으로 개시되고 탈은폐되었다. 예술사는 단절보다는 불연속적 계승을 통해 불멸의 예술적 흐름을 이어간다. 최완수 선생이 역설한 바대로 “오래된 호수가 자생의 원천을 가지고 있으면서 외래의 객수를 필요한 만큼 받아들여 자기 수준을 높이고 한계 수준에 이르면 다시 방출”33)하면서 문화의 강이 흘러간다. 자생의 줄기와 외래의 자극이 연동되어 한시대의 문화를 이끌고 간다면 임권택의 영화에서 성취한 동양화의 전신론과 러시아의 몽타쥬론의 미학적 통합은 한국영화의 미학적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성찰할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33)최완수, 앞의 책, 5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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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이 육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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