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xious Masculinity: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and Victorian Masculinities

불안한 남성성: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빅토리아조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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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fin-de-siècle masculinity in crisis that is visible both within a man and between men in Robert Louis Stevenson's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In order to understand anxious masculinity in the broader context of Victorian concepts of masculinity, I analyze the changes from a Carlylean fascination with monastery to a failure of male-bonding, on the one hand, and from a mid-Victorian exaltation of the primitive to a fin-de-siècle despairing fear of it, on the other. Celibate professional men in Dr. Jekyll and Mr. Hyde favor a male-male friendship over a heterosexual relationship, privileging male homosocial bonding that is expressed in the socially sanctioned form of professionalism. However, they only reveal the tenuous and fundamentally unstable boundary between homosociality and homosexuality. Furthermore, the cohabitation of divinity and bestiality within a male body, which Kingsley saw as the very source of masculine vitality, turns out to be disastrous in Dr. Jekyll and Mr. Hyde. Whereas Carlyle and Kingsley were confident in managing male sexuality and primitive forces, Stevenson's professional men can neither contain nor elevate them.


  • KEYWORD

    Robert Louis Stevenson ,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 masculinity , male-bonding , homosociality , bestiality , Carlyle , Kingsley

  • 1. 빅토리아조 남성성

    애초에 선정적인 저가 소설(shilling shocker)로 출판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1886)는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거듭 각색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 분열된 자아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초판이 출간되었을 당시 명민한 평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하나의 육체 안에 공존하는 두 인격이라는 소재만큼이나 이 작품이 여타 빅토리아조 소설들과 달리 남녀 관계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여성은 하인이나 길거리의 행인 등으로 일회적으로 등장할 뿐 의미 있는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 초기 평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어떤 여성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고 로맨스는 암시도 되지 않는다”(Wedgwood 223)는 점에 주목했으며,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이 작품에서 스티븐슨이 “숙녀들의 도움 없이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낸다”(170)고 평했다. 나아가, 앤드류 랭(Andrew Lang)은 스티븐슨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나 『보물섬』(Treasure Island, 1883)처럼 여주인공이 없는 소설에서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하는 작가라고 결론지었다(201).

    비록 지킬(Jekyll)과 하이드(Hyde)의 이성 파트너들을 삽입하고 심지어 지킬의 아내까지 등장시킨 여러 형태의 각색들에 의해 가려지긴 했지만,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이성간의 관계 묘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전문직에 종사하는 독신 남성들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이드가 이 독신 남성들의 눈을 통해 묘사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이들의 불안에 찬 호기심이야말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전체 서사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소제목들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하이드의 악행과 그와 지킬의 수상한 관계를 암시하는 엔필드(Enfield)의 목격담(Story of the Door), 하이드의 정체를 파헤치는 변호사 어터슨(Utterson)의 동분서주(Search for Mr. Hyde), 하이드의 정체를 알게 된 의사 래년의 서술(Dr. Lanyon's Narrative), 지킬의 최후 진술(Henry Jekyll's Full Statement of the Case) 등 하이드에 대한 중산층 남성들의 추측과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를 “이상한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 자체만큼이나 이 이야기가 중산층 남성들로 이루어진 동성사회적(homosocial) 환경에서 해석되고 회자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원작 속 여성 인물의 부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비평에 강력한 근거를 제공해왔다. 1950년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코넬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19세기 말 “런던에서 흔히 있었던 동성애적 행위”(Linehan 90 재인용)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보코프의 해석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세기말의 동성애 공포증, 동성애적 자아의 발견과 저항의 우화”(Showalter 107)로 읽으면서, 이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의 근원을 남성 동성애에 대한 공포에서 찾은 일레인 쇼왈터(Elaine Showalter)에 의해 비평적 정교함과 구체성을 얻었다. 나보코프와 쇼왈터 뿐 아니라, 이 소설을 가부장(제)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로 접근한 윌리엄 비더(William Veeder)나 남성 신경증의 사례로 이해한 스티븐 히스(Stephen Heath)는 모두 남성성의 좌절, 실패, 혹은 불안에 주목한다. 본 논문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나타난 전문직 독신 남성들의 불안한 남성성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들 연구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 크게 기댄 이들의 접근과 달리, 이 글에서 필자는 세기말 남성성의 불안을 빅토리아조 초, 중반에 걸친 남성성의 개념사 속에서 살핀다.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빅토리아조 남성성의 개념을 형성하고 지탱하던 전제들에 문제제기하는 지점에 주목함으로써, 남성성을 특정 시기의 문화적 구성물이자 그 자체로 역사를 가진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불안한 남성성’은 사실 중복적”(Schwarze 73) 표현일지 모른다. 남성성은 이질적이고 때로는 상충하는 사회, 문화적 요구와 욕구를 응축하며, 때문에 남성성을 이루는 이질적 요소들, 상충하는 기대, 그리고 다양한 욕구의 부단한 절충과 타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남성성의 개념에 내재하는 잠재적 균열과 긴장에 주목할 때, 남성성이 늘 어느 정도의 불안과 함께 경험되고 표출되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의 구체적 내용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특정 시기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빅토리아조가 사회적으로 용인된 형태의 이성애와 그에 따른 성역할, 그리고 가정성(domesticity)의 이데올로기가 어느 때보다 강조된 시기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남성성에 관한 연구들은 빅토리아조 남성성의 개념에서 수도승(monk)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1830년대에서 1860년대에 걸친 남성성에 관한 연구에서 허버트 서스만(Herbert Sussman)은 중세 수도승과 수도생활이 남성 에너지, 특히 성욕의 적절한 관리와 통제라는 빅토리아조 남성성의 핵심적 문제를 위한 시험적인 사례로 19세기 남성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고 설명한다. 독신 남성 예술가로서 수도승은 빅토리아조 남성 예술가들에게 성적 에너지를 예술적 생산력으로 승화시키는 모범적인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Sussman 3-4).

    성욕을 생산적 에너지로 효과적으로 전환시키는 (푸코 식으로 말해) 남성 '자아의 기술'(technology of the self)은 산업사회의 부르조아지 남성성에 핵심적인 것이다. 부르조아지 남성성은 남성적인 것을 “성적 에너지가 건설적 노동으로 변환되는 [. . . ] 남성적 영역에서의 성공”으로 정의했고, 더불어 남성의 생산력 혹은 활력을 섹슈얼리티로부터 분리해 냈다(Sussman 4). 서스만은 19세기 중반 수도승과 수도원에 대한 이상화가 직업 세계에서 남성 동성사회적 유대의 중요성이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그는 규범적 부르조아지 남성성이 결혼제도와 이성애적 가족관계 내에서의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스만은 직업적 생산성과 성공을 좌우하는 동성사회성(homosociality)과 사회적으로 강요된 이성애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초기 빅토리아조 작가들의 수도원에 대한 이상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역설한다(5). 강요된 이성애와 결혼제도에 불만을 느낀 중산층 남성 작가들에게 먼 과거에서 불러들인 중세의 수도원은 독신 남성들만의 세계를 탐구할 안전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했다. 한편 남성 독자들에게 수도원은 이성애적 결혼제도의 현실적 대안은 아닐지라도 동성사회적 욕구를 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일종의 남성 판타지를 제공했던 것이다.

    스티븐슨이 한 산문에서 영국문학의 “용감한 전통”을 일군 “위대한 선배들”("Morality" 43) 중 한 명으로 칭송하기도 했던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중세 수도승의 이미지로부터 “산업사회 남성성의 기초 신화를 만들고자”(Sussman 16) 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칼라일의 남성성 개념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영웅숭배론』(Heroes and Hero-worship, 1841)에서 제시하는 문인-영웅(the hero as man of letters)의 개념이다. 통상적으로 글쓰기는 (가령 노동자 계급 남성의 육체노동에 비해) 충분히 남성적이지 않은 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칼라일은 문인을 근대적 영웅으로 제시하면서 중산층 남성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칼라일에게 문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자질은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speaking of man to men," Carlyle 159)하면서 동료 남성들에게 정신적, 지적 감화를 주는 능력이다. 칼라일은 결혼을 포함한 이성애적 결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고, 남성의 내적 에너지가 강력하고 또 잠재적으로 위험하긴 하지만 여성이 없는 동성사회적 환경에서 섹슈얼리티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Sussman 17). 섹슈얼리티가 제거된 남성적 에너지는 영웅을 인정하고 그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써(Carlyle 179), 그리고 영웅숭배를 통해 남성들과 강한 정서적 교감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남성의 내적 에너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빅토리아조 중기에 이르러 지배적인 남성성 유형으로 부상한 찰스 킹즐리(Charles Kingsley, 1819-1875)의 '근육질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에서도 중심적 문제였다. 칼라일과 달리 확고한 이성애 예찬론자였던 킹즐리는 남성의 성욕을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진정한 남성성의 원천으로 긍정했다. 데이비드 로젠(David Rosen)이 설명하듯이, 킹즐리의 남성성 개념을 관통하는 것은 “화산과 교회”(the volcano and the church)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이다(23). 킹즐리에게 남성의 어두운 심연에서 용암처럼 분출하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힘은 자연스럽고도 신성한 것이다. 그는 성욕, 열정, 심지어 호전성도 신이 부여한 온전한 남성의 필수적 자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수성(bestiality)을 신성(divinity)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Rosen 24-26). 따라서 그에게 원시적인 힘의 재발견과 긍정은 소년에서 남성으로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크리미아 전쟁(Crimean War, 1853-1856) 등을 거치면서 영국 남성의 육체적 강건함은 곧 영국의 국가적 강인함과 동일시되고 남성의 근육은 국력의 기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킹즐리의 근육질 남성성 개념은 19세기 중반 영국인들에게 막대한 호소력을 지녔다. 원시적인 에너지는 산업화와 더불어 유약해지고 여성화된(effeminate) 영국 남성과 문화를 재생시키는 힘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동성사회적 환경에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하며, 동물적 원시성의 추구는 활력을 가져다주기는커녕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칼라일과 킹즐리의 모델로 대변되는 빅토리아조 남성성의 실패를 선언하는 세기말적 작품으로 읽힐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선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묘사하는 전문직 독신 남성들의 관계를 칼라일적 남성성 개념과 관련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후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티븐슨이 지킬/하이드를 통해 남성의 몸에 대한 빅토리아인들의 생각에 어떠한 수정을 가하는지 살펴본다.

    II. 남성 유대: 프로페셔널리즘과 욕망 사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금욕적이고 고독한 남성들의 연대를 통해 칼라일적 수도원을 19세기 말 전문직 남성들의 관계 속에 재연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이성애적 관계에 무관심하며 “지적이고 명망 있는 남자들”(44)과의 사교나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즐긴다. 동성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은 어터슨과 엔필드의 산책을 묘사하는 소설의 첫 장면에서부터 나타난다. 일요일마다 반복되는 이들의 산책은 “재미있는 일”이나 “사업상의 일”도 방해하지 못할 만큼 “한 주의 가장 중요한 일과”(chief jewel of each week)로 여겨진다(31-32). 어터슨의 통상적인 일요일 저녁은 산책을 마치고 “혼자 사는 집”(bachelor house)으로 돌아와 “독서대에 무미건조한 신학책을 펼쳐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근처 교회의 시계가 열두시를 치면 엄숙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37)으로 마무리된다. 또한 그는 자제력을 훈련하기 위해 좋아하는 와인을 마다하고 일부러 진(gin)을 마시는가 하면, 연극을 즐기면서도 20년 동안이나 극장 출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31)하고 금욕적인 인물이다. 서술자는 지킬과 어터슨이 교류하는 “명망 있는 남자들”이 “풍요로운 침묵 속에 마음을 경건히 하고 고독을 연습하며” 어터슨과 단둘이 앉아있는 것을 즐긴다고 알려준다(44). 이 소설의 중상류층 남자들이 침묵 속에 나누는 이러한 정신적 교감이야말로 칼라일이 생각한 남성 동성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라 할 만하다.

    지킬, 어터슨, 엔필드, 그리고 래년 등 이 소설의 남성 인물 공동체는 “빅토리아조 후기 영국 남성 유대의 관계망”을 보여준다(Veeder 108). 이들의 유대는 지킬과 어터슨, 래년의 경우처럼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먼 친척인 어터슨과 엔필드처럼 혈통에 기초해 있으며, 이러한 유대를 지탱하는 것은 상호간의 신뢰와 비밀 유지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신사들(gentlemen)은 서로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공언하며 비밀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들은 “의학 박사, 민법학 박사, 법학 박사, 왕립학회 회원 등등”(37)의 긴 수식어가 보증하는 지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단결함으로써 신뢰에 보답한다. 예컨대, 잔악무도한 하이드가 지킬의 집 뒷문 열쇠를 지니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아는 엔필드와 어터슨은 “이 일에 대해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한다(36). 게다가, 어터슨은 커루 경(Sir Carew)을 살해한 후 하이드가 쓴 편지의 필체가 지킬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동료 변호사 게스트(Guest)에게 함구할 것을 당부하며 하이드의 편지를 금고에 보관함으로써 지킬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 심지어 지킬의 연구방향을 못마땅해 하며 사이가 소원해진 의사 래년 마저도 정작 하이드와 지킬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진실을 비밀에 부친다. 결국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중상류층 남성들에게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는 지킬이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문제”(45)인 것만은 아니다. 빅토리아 사회 지배층의 모범적인 구성원 지킬이 기실 하이드의 이름으로 법과 도덕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거꾸로 흉악한 하이드가 “의학 박사, 민법학 박사, 법학 박사, 왕립학회 회원 등등”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상류층 남성 집단의 지배력을 근간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무서운 진실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에서 지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전문직 남성들의 결속이 직업윤리의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지킬은 의사 래년에게 자신의 실험과 하이드의 정체에 대해 고백하면서, 이 모든 내용이 “직업상의 비밀로”(under the seal of our profession, 76) 누설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치명적 진실을 알게 된 래년은 곧 죽음에 이르지만, 지킬이 죽거나 실종되었을 때 개봉하라는 당부와 함께 어터슨에게 봉인된 편지를 남김으로써 비밀을 공유한다. 어터슨은 “찾는 자”(Mr. Seek, 40)가 되기로 결심할 정도로 하이드의 정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서의 “직업적 명예와 죽은 친구에 대한 신의”(56)를 지키기 위해 래년의 편지를 봉인된 채로 금고에 보관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은 중산층 남성들이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 속에서 비밀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동성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암묵적 약속이다.

    이 소설의 전문직 집단은 금욕적인 남성들 사이의 정신적 교감, 고백과 비밀 공유, 그리고 상호 신뢰에 기초한 동성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칼라일적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남성들 사이의 정신적 교감이 섹슈얼리티로부터 안전하게 분리되어 공적 영역에서의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칼라일의 자신감을 공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킬의 자살과 래년의 죽음은 폐쇄적인 남성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이 어떠한 창조적 성과도 낳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남성 유대의 실패”(Veeder 122)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칼라일적 남성성 모델에 대한 스티븐슨의 회의는 사실 19세기 말 남성 동성사회성에 대한 영국인들의 점증하는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리처드 델라모라(Richard Dellamora)가 설명하듯, 19세기 말 소년들을 위한 사립 기숙학교(public school)는 중상류층 엘리트 집단으로의 진입과 전문직 진출의 주된 통로 역할을 했다(196). 그런데 신사계층을 양성하고 소년을 남성으로 교육시킨다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기숙학교의 동성사회적 환경에서 정서적 유대가 동성애적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이후 전문직에 진출한 졸업생들의 동성애로 이어졌다(Dellamora 196).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동창이면서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독신 남성 전문직 종사자들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남성 교육이 한편으로는 동성사회적 유대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동성애를 금기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출판은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킨 1895년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재판을 10여년 앞선다. 하지만, 남성 동성애 금지를 포함한 1885년 법안(Criminal Law Amendment Act)과 이를 둘러싼 의회 논쟁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출판 당시 이미 남성 동성애가 영국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가시적인 현상으로 부상했음을 짐작케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볼 수 있는 남성 유대의 좌절은 생산적 남성성과 소모적 섹슈얼리티의 분리에 바탕을 둔 칼라일적 남성성 개념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성 동성사회성과 동성애의 경계가 모호해졌을 때, 동성애 혐오증적 영국인들은 은밀한 고백이 오가는 동성사회적 집단을 불안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에 걸친 영국문학에 나타난 남성 동성사회적 욕망(male homosocial desire)을 분석한 『남성들 사이』(Between Men)에서 이브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은 남성 동성사회성과 동성애의 불안정한 관계에 주목한다. 그녀는 이 저서의 도입부에서부터 ‘남성 동성사회적 욕망’이 역설적인 개념임을 밝히고 있다. 통상적으로 동성사회성은 동성애와는 구별되는 동성 간의 사회적 유대 및 공통의 목표를 향한 결속과 협력 관계를 지칭한다. 특히 남자들의 관계에 있어 동성사회성은 이성애에 기초한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전승하기 위한 결속과 동성애 혐오(homophobia)를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즉, 남성 동성사회성은 동성애와의 거리두기와 심지어 대립을 통해 현재의 의미를 획득했다. 그런데 ‘남성 동성사회적 욕망’은 동성사회성과 섹슈얼리티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태, 즉 “동성사회적인 것과 동성애적인 것 사이의 연속체가 잠재적으로 깨어지지 않은 상태를 가정”하는 것이 된다(Sedgwick 1). 세즈윅은 성적이면서 동시에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적 기능을 담당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 소년과 남성의 관계를 균열 없는 ‘동성사회적 연속체’(homosocial continuum)의 예로 들면서 근대에 와서 이 연속성이 깨어졌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에 대한 공포와 금기는 이러한 균열의 극명한 표현이다.

    남성지배 사회에서 동성사회적 남성 유대는 가부장제의 유지와 전수 및 남성의 교육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동성애적 욕망은 금기시된다. 세즈윅에 따르면, 가부장적 이성애 관계는 남성 유대를 강화함과 동시에 동성애를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편이다. 그녀는 가부장적 이성애의 핵심을 ‘여성의 거래’로 보는 게일 루빈(Gayle Rubin)의 시각과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욕망의 삼각형’(triangle of the desire)을 원용하여,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남성들 간의 교환의 대상이며 여성의 거래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남성들 간의 유대라고 설명한다(25-26). 윤조원의 표현을 빌면, 세즈윅의 연구가 보여주는 바는 일견 “이성애적 관계처럼 보이는 많은 남녀관계들이 사실은 남성들 사이의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남성의 동성친화적(homosocial) 관계”라는 점이다(138-39). 나아가, 세즈윅은 “여성의 거래를 남성들 간의 동성애적 관계를 금지하기 위한 동성애 공포증적 금기와 연결”한다(이명호 166). 결국 세즈윅이 역설하는 것은, 가부장적 이성애가 실은 동성사회성과 동성애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한편으로 동성사회성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동성애를 억압하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세즈윅의 주장은 이성애적 관계 이면에 동성애에 대한 억압과 남성 유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는 남성 동성애와 동성사회성을 가시적으로 구분해주는 기제로서의 남녀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남성 동성사회성과 동성애의 경계는 한층 더 모호해지고, 동성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남성들의 불안은 극대화되고 전경화된다. 이들은 이성관계라는 제도화된 알리바이 없이, “서로를 향한 전복적 욕구를 차단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승인된 사회적 ‘형식’인 우정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사용한다”(Veeder 109 원문강조). 그래서 어터슨이 지킬을 걱정하느라 불면의 밤을 보내고, 늦은 밤 다른 독신 남성의 집을 방문하거나 심지어 문을 부수고 들어갈 때, 서술자는 이러한 행동이 변호사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친구를 향한 우정의 발로임을 재차 강조한다. 지킬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어터슨이 늦은 밤 래년의 집을 방문하자, 래년은 지나칠 정도로 상냥하게 그를 환영한다. 서술자는 래년의 환대가 과장되어 보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태도가 “진심어린 감정”(38)에서 나온 것이라 덧붙인다. “둘은 오랜 친구였고 학창시절(school)과 대학(college) 짝꿍이었으며 스스로와 서로를 철저히 존중”했을 뿐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긴 남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8). 이들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일지라도, 교양 있는 남성들의 상호 인정과 존중, 그리고 건전한 동료애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지킬의 유언장에 대한 어터슨의 지나칠 정도의 염려는 “변호사이자 삶의 분별 있고 관습적인 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37)의 판단으로 강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우정과 프로페셔널리즘은 남성의 욕망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한다(Veeder 122). 특히, 이 소설에서 지킬/하이드에게 가장 집요한 관심을 보이는 어터슨이 지킬의 사적인 공간을 염탐하고 그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치며 심지어 지킬의 연구실 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갈 때, 그는 프로페셔널리즘의 경계를 넘어서는 듯하다. 쇼왈터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핵심에 억압된 남성 간의 에로티시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문과 뒷문이 있는 지킬의 집이 남성의 몸을 상징한다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113). 의미심장하게도, 엔필드는 지킬의 집이 위치한 곳을 “퀴어 가”(Queer Street)라 부른다(35). 쇼왈터를 비롯한 학자들은 ‘퀴어’가 남성 동성애를 뜻하는 은어로 일반적으로 통용된 시점을 1900년 무렵으로 보고 있다(Showalter 112). 그렇다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출판된 19세기 말 경 적어도 하위문화(subculture)에서는 ‘퀴어’가 남성 동성애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퀴어 가에 있는 집에서 독신 남성 지킬은 자신의 몸으로 은밀한 실험을 행한다. 이 집에는 음침한 런던 뒷골목을 향한 뒷문과 밝고 안락한 복도로 이어진 앞문이 있다. 뒷문으로는 하이드가 은밀히 드나들고, 앞문을 통해서는 어터슨을 비롯한 교양 있는 친구와 동료들이 출입하며 동성사회적 유대를 쌓는다. 주목할 점은, 하이드가 뒷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반면, 어터슨의 출입은 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이다(Showalter 110). 게다가, 이 뒷문은 “문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의 첫 장(chapter)에서 처음 묘사되는데, 이는 어터슨과 엔필드가 산책을 하던 중 지킬의 집 뒷문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은 부랑자들이 성냥으로 불장난을 하고 학생들이 벽에 칼을 그어대고 있는 런던의 뒷골목이 어째서 명망 있는 신사들의 산책코스에 포함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엔필드는 한 겨울 새벽 3시경 이 골목에서 자신이 목격한 “매우 이상한 이야기”(32)를 어터슨에게 들려주는데, 하이드가 길거리에서 부딪힌 여자아이를 무참하게 폭행한 후 뒷문을 통해 지킬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도 스티븐슨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즉 신사 엔필드가 새벽 3시경 퀴어 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또한 “매우 이상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엔필드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하이드를 직접 보고 싶다는 “이상하게도 강렬한, 터무니없을 정도의 호기심”(39)에 이끌려 퀴어 가를 서성이는 어터슨의 모습은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설명되지 않고 어쩌면 어터슨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욕망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이 욕망이 엄밀히 동성애적인 것이라 단정하기는 힘들지라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독신 남성들이 동성사회성과 동성애를 양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의 어딘가를 불안하게 떠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빅토리아조 사회에서 이 독신 남성들의 관계는 우정과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고 특히 법의 수호자인 변호사 어터슨은 남성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다른 이름을 인정할 수 없겠지만, 이들은 동성사회성과 섹슈얼리티의 경계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III. 남성의 몸과 야수성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은 “남성의 이중성”(man's dual nature, 78)을 “발견”함으로써 파국을 맞이한다. 그러나 사실 남성의 몸에 다양하고 심지어 상충하는 힘들이 동거하고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스만이 설명하듯, 칼라일은 남성의 몸이 내부의 “불안정한 유동체”(unstable fluidity)와 딱딱한 외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불안정하고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내적 에너지의 흐름을 적절히 관리하고 순화하는 것을 산업사회 남성성의 핵심적 과제로 파악했다(19). 킹즐리에게도 남성의 폭발적 에너지를 거세하지 않으면서 통제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칼라일과 달리 남성의 강력한 힘을 규제할 수 있는 힘을 남성 자아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두었기 때문에, 그는 남성의 몸을 자제력과 폭발적 충동, “경찰과 깡패, 성자와 죄인,” 야수성과 신성, 욕망과 신성함과 같은 상반된 본성이 한꺼번에 구현된 것과 같은 상태로 생각했다(Rosen 37). 요컨대, 칼라일과 킹즐리에게 남성성의 본질은 무정형의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고, 이 에너지는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순화되거나 통제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킹즐리가 남성적 힘의 원천으로 생각한 야수성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다. 빅토리아조 초기와 중기에 걸쳐 지배적인 남성성 개념을 제시한 칼라일과 킹즐리가 남성의 내적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과 달리, 지킬은 자기 내부의 야수성을 봉쇄하지도 승화시키지도 못하며, 그것과 공존하지도 못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남성의 몸 안에서 꿈틀대는 원시적 에너지는 봉쇄되기에는 너무 집요하고 승화되기에는 너무 거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지킬은 회고조로 쓴 최후진술에서, 자신의 몸속에서 신사이자 학자로서의 고매하고 진지한 모습과 쾌락과 방탕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충돌하고 있음을 인식했고, 이 둘 다를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본성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쾌락에 대한 욕구를 억압하기 보다는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지킬의 모습은 킹즐리의 자전적 성장소설 『효모』(Yeast, 1851)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연상시킨다. “나를 만들었다는 신이 욕구를 나의 일부로 만드셨다. 어째서 나의 다른 부분들보다 욕구를 더 억눌러야 하는가?”(Rosen 24 재인용) 지킬은 이와 같은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상충하는 두 성격을 독립된 개체로 분리하기로 결심하고, “자제심을 제쳐두고 수치스러운 일에 빠져들 때에는” 하이드로, 그리고 “대낮에 학문에 매진할 때는” 지킬의 모습으로 생활하게 된다(78).

    하이드의 외양은 매우 모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스티븐슨이 하이드를 형상화하기 위해 다윈의 진화론에 크게 기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엔필드와 어터슨을 포함해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하이드의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역겨움, 혐오감과 두려움”(41)을 느꼈다고 전한다. 하이드는 “왜소하고”(dwarfish, 41), 근육이 매우 발달되어 있음에도 쇠약해 보이는 체격을 갖고 있다(74). 그는 선사시대의 유인원(troglodytic)에 비유되거나(42), 몸놀림이 가볍고 재빠른 “원숭이 같은”(ape-like) 모습으로 묘사된다(46). 지킬의 하인인 풀(Poole)도 하이드가 “원숭이처럼 약품들 사이에서 뛰어올라 연구실로 재빨리 사라졌다”(65)고 말하면서 유인원을 연상시키는 하이드의 모습을 확인해준다. “야위고 울퉁불퉁하게 마디가 튀어나왔으며 [. . .] 무성한 털로 거무스름하게 덮여있는” 하이드의 손은 “크고 단단하며 희고 예쁘장한,” 지킬 자신의 표현을 빌면 “전문직에 걸맞은”(professional) 지킬의 손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84). 세련되고 교양 있는 지킬이 “원숭이 같은” 하이드로 변모하는 것은 원시에서 문명으로의 인류 진화 과정을 뒤집는 퇴화의 사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킬/하이드의 이중성은 빅토리아조 남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원시와 문명의 갈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이드는 지킬의 개인사적으로 중년에서 어린 시절로의 퇴행의 산물이다(Veeder 126). “친구들에 둘러싸여 정직한 희망을 간직한 나이 들고 욕구불만인 의사” 지킬은 하이드로 변하면서 “자유, 상대적 젊음, 경쾌한 발걸음, 고동치는 맥박과 은밀한 쾌락”을 다시 경험한다(84). 하이드는 무모하고 폭력적이지만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삶의 에너지”(raging energies of life, 91)로 충만해있고, 그렇기 때문에 따분한 전문직 남성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결국, 지킬이 하이드에게서 찾는 것은 킹즐리를 비롯한 19세기 영국인들이 위험하지만 생명력으로 가득한 원시성에서 발견한 것, 즉 여성화되고 단조로운 문명의 삶에 대한 해독제와 같은 것이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신하기 위해 마시는 약은 그를 과거로 데리고 간다는 점에서 퇴화와 퇴행을 가져오지만, 그것은 또한 독신 남성 지킬의 내부에 있는 야수성과 원시적 생명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와 같은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찬양은 원시적인 힘의 재발견을 통해 활력과 남성성을 회복한 후 보다 정력적인 문명인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지킬의 곤경을 통해 19세기 영국인들의 원시성에 대한 환상을 지탱한 이러한 가정과 결별한다. 더불어, 남성의 자아 안에서 원시성이 제어되고 통합될 수 있다는 킹즐리의 자신감은 원시적 생명력에 압도되고 통제를 잃은 지킬의 공포와 절망으로 대체된다. 지킬은 실험에 처음 성공할 당시에는 지킬의 몸을 벗어던지고 하이드가 되는 것이 힘들었던 반면, 실험이 거듭될수록 거꾸로 하이드에서 지킬로의 변신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이드가 지킬 속에 통합되기를 거부하고 점차 그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성과 자율성을 획득해 나감에 따라, “원할 때 하이드를 제거할 수 있다”(45)는 지킬의 확신은 공포로 변한다. 지킬은 자기 안의 야수성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위협적임을 깨달으면서 자살이 하이드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그에게 자기 안의 야수성과 대면하는 일은 목숨을 건 모험이 되고, 이 모험은 결국 자기 파괴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제 [지킬과 하이드] 사이에서 선택해야한다고 느꼈다”(85)는 지킬의 고백이 암시하듯, 킹즐리가 남성적 강인함의 필수적 요소로 긍정했던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힘은 지킬의 자아와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을 비롯한 남성 인물들은 야수성을 통제하거나 동화시키는데 실패하고 원시적인 힘은 끝내 길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는 지킬 내부의 야수적 에너지이자 돌이킬 수 없는 퇴화와 퇴행의 결과로서의 하이드는 지킬의 자아뿐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하이드에게 “아버지 이상의 관심”을 가졌고 하이드는 “아들보다 더한 무관심”으로 자신을 대했다고 술회하는 대목에서 지킬은 자신과 하이드의 관계를 실패한 부자관계에 빗댄다(86). 하이드를 아버지의 훈육과 통제를 거부하는 아들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가 지킬의 책에 불경한 말들을 쓰고 지킬의 아버지의 초상화를 부수는 장면(92)은 하이드의 폭력성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대변하는 가부장적 질서로 향해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하이드가 늦은 밤 길거리에서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46) 커루 경을 지팡이로 때리고 짓밟아 죽인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커루 사건은 온 런던을 공포와 충격에 빠뜨리는데, 이 사건은 “희생자의 높은 지위”(46) 때문에 더욱 경악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커루 경은 노신사이자 하원의원으로, 목격자에 의하면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순수하고도 고풍스러운 친절한 품성”과 “고매함”(46)은 먼발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소설 속에서 하이드의 폭행은 이유 없는 것이고 이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커루 경을 향한 하이드의 격렬한 분노는 “모범적인 가부장”을 향한 아들의 분노와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Veeder 127). 더군다나, 하이드가 커루 경을 죽이는 데 사용한 것이 남근(phallus)을 연상시키는 지팡이라는 점에서, 커루 사건은 남성의 몸 안에서 풀려나온 야수적 에너지가 남성적 자아를 강건하게 만들기는커녕 가부장적 위계질서 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이드를 통해 은밀한 쾌락을 추구하지만 가부장제 바깥을 꿈꾸지는 않는 지킬이 이 사건 이후 하이드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이드는 지킬에게 일시적인 활력을 주지만, 지킬의 몸은 이 날 것 그대로의 야수적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과의 대면은 자기 파괴적인 모험으로 끝난다.

    IV. 불안한 남성성: “창가에서 일어난 사건”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전문직 남성들의 동성 유대, 동성애에 대한 불안, 가부장의 위기의식, 원시주의에 대한 관심과 영국 남성의 퇴화에 대한 우려와 같은 19세기 남성성을 둘러싼 핵심적 문제들을 두루 다루며 남성의 몸 안팎에서 벌어지는 남성성의 위기를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전문직 독신 남성 공동체는 동성사회적 유대에 대한 칼라일적 관심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나 남성 유대를 추구하는 스티븐슨의 독신 남성들은 세기말 한층 가시화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불안에 보다 자의식적으로 반응하며 프로페셔널리즘과 이름 붙일 수 없는 욕망 사이에서 불안하게 서성인다. 또한, 스티븐슨은 하이드를 통해 남성의 몸 안에 있는 원시적인 힘을 탐구하지만, 이 힘이 보다 강건한 남성성으로 승화될 수 있으리라는 킹즐리의 낙관적 믿음과는 거리를 둔다. 요컨대,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남성 인물들의 실패를 통해 칼라일과 킹즐리가 제시한 빅토리아조의 지배적인 남성성 개념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을 지배하는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는, 남성 인물들이 빅토리아조 초, 중반의 남성성 개념들을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대안적인 남성성 모델을 찾지도 못한 데서 오는 남성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창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짧은 장은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장은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화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재현하는 남성성의 불안을 핵심적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엔필드와 산책하던 어터슨이 지킬의 집 창문 아래에 서서 집 안에 있는 지킬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어터슨은 지킬이 집 안에 너무 많이 머무른다고 지적하며 산책에 합류할 것을 청하지만, 지킬은 이를 정중히 거절한다. 이어 지킬은 집 안으로 어터슨과 엔필드를 초대하고 싶지만 이 또한 적절하지 않다며 양해를 구한다. 결국 이들은 창문을 통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동의한다. 지킬은 언제 하이드로의 변신이 시작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변신이 시작되자 황급히 집안으로 몸을 숨긴다. “창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독신 남성이 혼자 집 안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남성들 간의 유대가 지킬의 궁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하며, 지킬이 자기 내부의 에너지를 봉쇄하지도 승화시키지도 못하는 상황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이성애적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이들 전문직 독신 남성들은 우정과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동료 남성들과 교류하고, 이를 통해 부르조아지 남성성을 확인하고 강화한다. 동성애에 대한 공포와 금기로 인해 이러한 동성사회적 결속은 남성들 사이의 적절한 육체적 거리를 유지한 채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도 지킬과 어터슨 사이에 놓인 창문만큼 효과적으로 정신적 교감과 신체적 거리를 동시에 구현하는 이미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터슨은 퀴어 가를 서성이지만 지킬의 집 뒷문으로 차마 들어가지 못하며, 대신 창 밖에 서서 지킬에게 공적 공간으로 나와 다른 신사들과 어울리도록 조언할 뿐이다. 이 충고는 지킬에게는 공허한 것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집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야수적인 에너지에 압도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창문을 사이에 둔 두 남자, 그들의 남성성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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