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레이가다스 <침묵의 빛>의 형식 스타일과 세계관 분석

A Study on the Formal Style and World-view of Carlos Reygades’s Silent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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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arlos Reygadas’s Silent Light exhibits a special relationship with Carl TH. Dreyer’s Ordet, because you can perceive a certain attempt beyond homage in Silent Light. In order to make the special connection with Ordet, Silent Light bares similar situations and main conflicts from Ordet. However, Silent Light gives us an opposite conclusion and shows us a different world view by using a formal system that is quite different from the Ordet’s.

    Carlos Reygadas’s world view and formal system in his movies are important to study, because he has developed consistently this world-view and formal system through his previous works such as Japon and Battle in Heaven. Miracles may happen in Ordet’s world through faith in God, sacrifice, and forgiveness. However, it does not exist in Silent Light even though people desire, because people nowadays do not believe miracles. Unlike Ordet’s formal system that drives people to focus on its message and story, the formal system in Silent Light isn’t the factor that supports its story but the means of communication as itself. The long-take shots and breaking visual grammar require people to look around the things that they do not pay attention to and face up to the reality.

    The reason that Carlos Reygadas chooses Carl TH. Dreyer’s Ordet is not to undermine it, but it is to hold Ordet’s classical world view and formal systems. In fact, he has a great regard for the concept of redemption and belief in Ordet and this is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his choice. He passes a judgement that Ordet can’t reflect the present time. Thus, he tries to adapt it to the present time’s circumstances by using his own formal systems. Silent Light is the result of his such attempt.

  • KEYWORD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 침묵의 빛 , 롱테이크 , 하폰 , 천국에서의 전쟁 , 오뎃트 ,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 형식 시스템

  • 1. 서론

    카를로스 레이가다스(Carlos Reygadas)는 1971년 멕시코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고 법률계에 종사하다가 영화계에 입문했다. 레이가다스는 아마추어로 구성된 촬영팀을 데리고 자신의 첫영화 <하폰 Japon>(2002)을 완성하여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데뷔를 한다. 두 번째 작품인 <천국에서의 전쟁 Battle in Heaven>(2004)도 역시 칸느영화제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신성모독의 논란속에 수상하지 못하였다. 그 이후 <침묵의 빛 Silent light>(2007)로 돌아온 레이가다스는 예술영화작가로서 세계적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와 같이 레이가다스는 비교적 늦게 영화계에 입문하였으나 짧은 시간에 세계적 예술영화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충격적 성적표현, 종교적 신성모독이 담긴 내용과 긴 롱테이크 그리고 영상문법 파괴를 담은 형식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 Post Tenebras Lux>(2012)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며, 등급 판정의 문제가 제기된 <천국에서의 전쟁>은 논란 끝에 같은 해 잠시 상영된 적이 있다.1)

    레이가다스와의 인터뷰와 작품 리뷰기사에서 주로 언급되는 것은 주제와 관련된 세계관과 형식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레이가다스의 작품은 종교와 연관된 일관적인 세계관과 롱테이크 스타일 때문에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모방으로 취급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레이가다스는 작품을 거듭 할수록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스타일에 있어 타르코프스키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레이가다스의 세 번째 작품인 <침묵의 빛>은 이러한 그의 세계관과 스타일이 완성되어지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Carl TH. Dreyer)의 <오뎃트 Ordet>(1955)2)와 가끔 비교되는데3) 레이가다스 스스로 <오데트>의 동생4)이라 표현 할 만큼 사실 리메이크작이라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그러나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단순한 오마쥬(Homage)나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이가다스는 오히려 <침묵의 빛>을 통해 고전의 세계관과 영화형식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거꾸로 레이가다스의 작품을 읽는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가 칼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작품을 해석하고 변용할 때 고려했던 것들이 결국 레이가다스 자신이 보여주고자 했던 작품세계를 더욱 확연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우선 톰프킨스(Cynthia Tompkins)가 <하폰>과 <천국에서의 전쟁> 내러티브의 ‘고의적인 약한 고리(deliberate weak link)’, ‘애매 모호성(ambiguity)’ 등을 주목한다. 톰프킨스는 레이가다스 작품의 이러한 특징들이 1990년대부터 멕시코 영화의 부흥을 가져왔던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기예르모 델토로(Guilermo del Toro) 그리고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s Inarritu)의 전통과는 전혀 무관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들뢰즈가 언급한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이 할리우드 모델의 대안을 개척했던 전통을 잇는 것으로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증후를 대변하는 새로운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가와 감독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한다.5)

    네이슨(Niel Niessen)의 논문6)은 <침묵의 빛>을 주요 텍스트로 하고 <오뎃트>를 간헐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네이슨은 <침묵의 빛>의 장면들을 공간과 이미지 그리고 운동에 이르는 들뢰즈의 개념으로 분석을 시도하고 작품에서의 레이가다스의 세계관을 스피노자의 종교관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네이슨은 특히 레이가다스가 보여준<침묵의 빛>의 롱테이크 미학을 스피노자의 직관적인 통찰과 견주어서 설명한다.7)

    테오도르(Jose Teodoro)는 <침묵의 빛>과 <오뎃트>를 직접 비교한다. 테오도르는 레이가다스가 <침묵의 빛>을 통하여 <오뎃트>와 시대, 공간, 문화를 뛰어넘는 공통의 분모를 껴안으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구원과 믿음의 개념 그리고 영화적인 구성과 표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영역을 개척했다고 주장한다.8) 그러나, 테오도르의 에세이는 명쾌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빛>과 <오뎃트>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분석이 없고 레이가다스가 개척한 다른 영역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본 연구는 테오도르의 통찰력에 동의하면서 <침묵의 빛>과 <오뎃트>의 비교 분석을 통해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네이슨이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 레이가다스의 종교관을 중점으로 다룰 것이다. <침묵의 빛>과 <오뎃트>의 비교분석은 형식 스타일의 제 요소들인 서사구조, 장면화, 촬영기법, 편집, 음향으로 각기 나누어서 하며9) 두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세계관을 비교하고자 한다. 또한 레이가다스의 <하폰>과 <천국에서의 전쟁>을 같이 살펴봄으로써 전작들과의 연관 속에서 논의를 진행하며, 최종적으로는 레이가다스가 <침묵의 빛>을 만들기 위해서 <오뎃트>를 선택한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이영진, 「7년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천국에서의 전쟁>」, ≪씨네21≫, 2012-4-12. “<천국에서의 전쟁>은 2005년 수입되었으나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다. 수입사인 월드시네마는 4번의 재심의를 거치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해 ‘제한 상영가등급 기준’에 대한 헌법불일치를 끌어낸다. 하지만 결국 문제의 성기 노출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에야 2012년 4월 12일에 개봉된다.”  2)Christopher Lyon, The Macmillan dictionary films and filmmakers: volume II, MACMILLAN PUBLISHERS, LONDON, P 148. 원제는 Ordet(The Word)로 병기되어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DVD 제목인 <오뎃트 Ordet>로 표기한다.  3)William Johnson, “BETWEEN DAYLIGHT AND DARKNESS: FOREVER AND SILENT LIGHT”, ≪FILM QUARTERLY≫, SPRING 2008, P 23.  4)Jose Teodoro, “ON EARTH AS IT IS IN HEAVEN”, ≪Film Comment≫45, Jan/Feb 2009, p 48.  5)Cynthia Tompkins, “A Deleuzian Approach to Calos Reygadas’ Japon and Batalla en encielo”, HISPANIC JOURNAL, Vol.29 No.1, 2008.  6)Niels Niessen, “Miraculous Realism: Spinoza, Deleuze, and Carlos Reygadas’s Stellet Licht”, Discourse, Vol.33 No.1, 2011.  7)Niels Niessen, 같은 책, p 32.  8)Jose Teodoro, 같은 책, p 50.  9)데이비드 보드웰 & 크리스틴 톰슨, 주진숙 외 역, 『영화예술』, 이론과 실천, 1993, 67∼94쪽.

    2. 본론

       1) 서사구조

    <오뎃트>와 <침묵의 빛>의 서사 구조의 차이점은 작품의 스토리, 시간 그리고 인과율에 걸쳐서 나타난다. 스토리에서는 <침묵의 빛>이 <오뎃트>의 설정과 주요 갈등을 유사하게 가져간 반면 결말에 이르러서는 <오뎃트>와는 다른 해결 방식을 보여준다.

    < 오뎃트>에서는 아버지 모튼을 중심으로 큰 아들 미켈, 며느리 잉거, 둘째 요하네스, 막내인 아네스가 농장을 이루며 살고 있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건의 시작은 막내인 아네스가 아랫마을에 사는 재단사 피터의 딸 안나에게 청혼을 하면서이다. 모튼은 현세의 충만함을 축복으로 여기고 피터는 내세의 행복을 위해 현세의 청빈과 경건함을 중요시하기에 두 집안은 오랫동안 서로 반목해왔었다. 결국 아네스의 청혼은 이러한 종교관의 차이에 의해 거절당한다. <침묵의 빛>에서 주인공인 요한은 종교문제로 집단생활을 해온 이주민의 후예이며10) 부인인 에스더 그리고 6명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요한이 같은 마을에 사는 마리안느라는 여인을 만나 불륜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요한에게 주어진 선택은 에스더와 가족으로 대변되는 종교적 경건한 삶 또는 마리안느로 대변되는 현세의 충만함이다. 이와 같이 <오뎃트>와 <침묵의 빛>은 종교적인 이유로 공동생활 하는 사람들이라는 유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갈등의 대립 항 역시 현세의 충만함 대 종교적인 경건한 삶으로 유사하다.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뎃트>에서는 모튼의 며느리인 잉거가 아이를 낳던 중 죽는다. 잉거의 장례식 날, 피터는 모튼에게 화해를 청하며 안나와 아네스를 결혼시키겠노라고 한다. 잉거의 관 뚜껑이 덮여지는 순간 그녀의 어린 딸이 삼촌만이 엄마를 살릴 수 있다며 기적을 일으켜주길 간청한다. 자신을 재림한 그리스도라고 여기는 요하네스는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만류 속에서도 잉거를 부활시키는 이 적을 행한다. <침묵의 빛>에서는 요한의 부인인 에스더가 요한과 차로 이동하던 중에 심 장마비로 죽게 된다. 에스더의 장례식 날, 마리안느가 찾아와 키스를 하자 에스더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뜬다. 에스더의 어린 자녀들은 다시 눈을 뜬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문밖의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잉거의 희생으로 반목했던 두 집안이 화해되는 <오뎃트>와는 달리 <침묵의 빛>에서 에스더의 희생이 현실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마리안느의 키스는 <오뎃트>에서 피터가 모튼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와 같다. 마리안느의 키스로 에스더가 눈을 뜨고 아이들과 대화 를 나누자 관객들 눈에는 마치 에스더가 부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에스더의 방안을 맴돌던 나비 한 마리가 창문을 빠져나와 들판과 계곡을 지나 먼 곳으로 향하고 아이의 손에 이끌린 요한은 에스더에게 향하지만 그녀를 만나기 전에 영화는 끝을맺는다. 나비는 분명 에스더의 영혼을 뜻 하는 것으로써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만 네이슨의 지적처럼11) 에스더의 부활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줄 수 있다. 결국 <오뎃트>에선 어린 아이의 믿음으로 사람이 부활하는 기적이 실제로 가능 하지만 <침묵의 빛>에서는 이러한 기적은 불가능하며 오직 이를 믿는 사람들의 바램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뎃트>의 시간적 배경은 인물들의 복장과 모튼의 대사로 미루어 볼 때 크리스마스가 근접한 초겨울 정도로 짐작된다. 스토리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달 정도에 마무리된다. 반면 <침묵의 빛>의 시작은 밤하늘에 해가 뜨는 장면으로 매우 긴 롱테이크(Long-take)로 구성되고, 영화의 마무리 역시 같은 장소에서 해가 지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으로 보면 단 하루에 생긴 일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족들이 야외에서 목욕하고 추수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요한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할 때는 사방이 흰 눈으로 뒤덮여있다. 1년의 모든 계절이 다 표현된 셈이다. <오뎃트>는 연대기적 시간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플롯의 시간 구성이 단순하다. 반면 <침묵의 빛>에서의 시간 개념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심리적이다. <침묵의 빛>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플롯 구성요소를 넘어서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요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난 일수도 있고 단 하루에 벌어진 일수도 있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매듭이 잘 짜여진 <오뎃트>와 달리 <침묵의 빛>은 인과율에 있어서 다분히 선택적이며 대안적이다. 유부남인 주인공이 불륜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자 그의 아내가 실의에 빠져 죽는다. 이 같은 스토리의 큰 줄기는 인과율에 따른다. 그러나 작은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부분에서는 이성에 의한 인과율을 따르기보다는 감정적인 정서에 의존한다. 요한이 마리안느와 들판에서 만나 밀회를 즐긴 후 가족들과 야외에서 목욕하는 시퀸스를 살펴보면, 1. 요한과 마리안느와의 긴 키스 장면 2. 벽돌로 만들어진 샤워시설에서 요한과 마리안느가 섹스하는 장면12) 3. 요한이 가족들을 데리고 야외에서 목욕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은 여섯 명의 아이들을 일일이 비누칠해서 씻기고는 심지어 에스더도 씻겨준다. 이 장면은 마치 천국의 모습을 묘사하듯이 아름답게 촬영되어있다. 하지만 요한의 모습에서는 죄책감과 1.2에 대한 그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요한이 가족들과 차로 돌아오는 길에서 눈물을 흘릴 때에서야 비로소 그 역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음을 관객은 확인하게 된다. 톰프킨스는 레이가다스 작품의 이러한 내러티브구조에 있어서 고의적인 약한 연결성을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고의적인 약한 연결성은 불확실성과 애매모호성을 만들어 내며 이를 결국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메우기를 유도하는 뛰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의 특징이다.13) 톰프킨스의 정의를 적용하면 위의 1.2.3.과 요한의 눈물 장면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은 관객들을 능동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메우게 되는 부분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때로는 이성적인 인과율을 적용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섹스를 한 다음에도 가족들을 목욕시켜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또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길 수도 있다. 또한 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한참을 지난 후에야 올 수도 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부조리한 실제의 모습이다. 레이가다스는 문법상의 인과율보다는 이러한 부조리한 인간 감정에 의거한 연결을 보여주고자 한다.

    레이가다스는 서사구조를 유사하게 가져가서 <침묵의 빛>이 <오뎃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품인 것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스토리 결말부분의 변용을 통해서 <오뎃트>의 고전적인 종교관과는 다른 본인의 종교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또한 시간과 인과율에 있어서는 <오뎃트>의 절대적이고 이성적인 개념과는 상반되는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장면화, 촬영기법, 편집에 이르는 형식스타일 전반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2) 장면화

    <오뎃트>에서는 주된 장면화의 공간이 모튼과 피터의 집이며 스튜디오 세트 촬영을 했고, 야외 로케이션촬영은 들판과 길로 한정되어있다. 세트는 내부만이 아니라 모튼의 집 마당같이 외부도 같이 제작해서 등장인물의 동작선을 확장 시키는 동시에 창문을 통한 시간의 변화 등을 무리 없이 연출하고 있다.

    캐스팅은 완고한 모습의 모튼과 피터 그리고 순종적인 모습의 잉거등 모두 다 그럴법한 전형적인 캐스팅을 통해서 관객의 몰입을 순조롭게 한다.14) 등장인물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향하는 정면성15)의 원칙을 지키고 카메라 움직임은 인물들의 동작선을 선행하지 않고 뒤따르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게 한다.16) 상황을 선도하는 인물이 존재하며 그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가 함께 움직여서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조명은 콘트라스트(Contrast)가 있는 로우키(Low-key)와 인공광을 위주로 구성하며 강조를 위해서 하이라이트(High-light)를 사용한다.

    <침묵의 빛>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로케이션을 주된 장면화의 공간으로 한다. 들판, 길, 경작지, 냇가 등의 야외 로케이션이 많으며 오픈세트(Open set)를 보여줄 때도 자연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요한과 마리안느의 공간은 원래 있는 장소를 촬영했으며 스튜디오 세트촬영은 없다. 대자연속에 인물을 배치하는 로케이션 촬영을 통하여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한낱 구성 요소 일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이가다스는 자연을 배경으로 놓는데 그치지 않는다. 가족 야외목욕 씬에서 꽃을 포커스 아웃하고 카메라가 다가가서 강조한다. 또한 요한이 마리안느와 그녀의 침실에서 정사를 나눈 후에는 천정에서 느닷없이 빨간 단풍잎이 떨어진다. 그리고 요한과 에스더가 차를 타고 마지막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요한의 눈에는 에스더의 원피스 보라색 꽃문양이 들어온다. 행복함, 정열 그리고 슬픔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각기 상징적인 소품들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프레임 안의 배경을 이용하여 의미전달을 하는 시도는 그의 전작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폰>은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는데 거친 야산과 가뭄을 겪는 들판의 모습이 주인공의 황폐해진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며 <천국에서의 전쟁>에서도 멕시코시티의 혼잡하고 무기력한 모습은 역시 주인공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등장인물 캐스팅은 레이가다스의 영화에서 논란이 많이 되어왔던 부분인데 <침묵의 빛> 역시 비켜가지 않는다. 요한은 아내 에스더 대신에 마리안느를 선택하게 되는데 문제는 마리안느의 생김새가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라는 것이다. 얼굴 절반을 반원추 형태의 코가 차지하고 있고 팔다리는 마르고 길며 등은 전체적으로 약간 굽어 있다. 이에 반해 에스더는 전형적인 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서도 같은 실험을 해왔다. <하폰>에서 주인공은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할머니와 섹스를 갈망하고 <천국에서의 전쟁>에서는 무기력하고 비만인 중년 주인공이 빼어난 미모의 상사의 딸과 구강성교에 이어 섹스를 펼친다.레이가다스는 인터뷰에서 이러한 캐스팅과 관계 설정에서 관객들이 갖는 충격과 불편함은 대부분 관객 자신들의 편견에 근거한다고 말한다.17) 그는 이를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충격적인 캐스팅을 감행함으로써 사랑을 포함한 본질적인 인간관계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이다. <침묵의 빛>에서 등장인물들의 동작선(Blocking)18)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경직되어 있다. 고정된 롱테이크로 촬영된 인물의 움직임은 매우 정적이며 특별한 동작 없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연스러운 인물 동선은 레이가다스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인 특징으로 누구도 삶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침묵의 빛>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밝은 하이키(High-key) 조명으로 칼라의 색감을 풍부하게 표현하며 특정 인물 또는 부위를 강조하지 않는다. 로케이션과 오픈세트 촬영이 대부분을 이루는 <침묵의 빛>은 일광(Day-light) 사용을 중요시한다. 실내장면의 경우 창을 통하여 들어온 빛이 닿도록 인물들을 배치한다. 몇몇 로케이션 촬영의 경우에는 렌즈에 반사된 일광을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빛의 존재를 인식케하는데 이는 <하폰>과 <천국에서의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오뎃트>의 장면화는 스튜디오 세트에서 전형적인 인물들이 자연스러운 동선 과 카메라 움직임으로 무대화를 이루며 여기에 로우키 조명과 하이라이트 조명이 더해진다. 이러한 장면화는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스토리와 메시지를 밀도 있게 전달하려는 의도이다. 반면에 <침묵의 빛>의 장면화는 로케이션 또는 오픈 세트에서 비전형적인 인물들이 어색한 동선과 카메라의 롱테이크의 숏으로 무대화를 이루며 여기에 하이키 조명이 더해진다. 이러한 장면화는 관객들을 하여금 관습적인 사고를 피하게 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하려는 의도이다. 레이가다스는 이러한 장면화를 통하여 전통과 관습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도전을 시도한다. 관객들은 <침묵의 빛>을 보는 동안 일방적인 수용자에서 주체적인 참여자로 변화되길 요구 받고 자신들이 가졌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3) 촬영기법

    <오뎃트>에서의 촬영기법은 등장인물의 동작선을 따라가는 패닝(Panning)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무대세트의 출입구를 좌우에 배치해 세로축인 화면의 깊이 보다는 가로축을 이용한 움직임이 많이 생기는데 기인한다. 인물들이 등퇴장할 때 또는 대화를 위하여 위치를 옮길 때 카메라는 좌우로 패닝해서 따라가 정지해 있다가 다시 인물이 움직이면 같이 이동을 한다. 또한 심도(Depth of field)촬영을 하지않고 표준렌즈(Standard lens)를 사용하여 대부분 무릎 숏(Knee-shot)사이즈로 촬영한다. 특별히 두 인물의 대화 장면 구성에 있어서 투숏(Two-shot)에서 원숏(One-shot)으로 바뀔 때 편집커팅을 하지 않고 트래킹(Tracking in-out)으로 장면을 만든다. 심도가 얕은 촬영 그리고 패닝과 트래킹으로 구성된 단조로운 카메라의 움직임만을 봐서는 <오뎃트>는 연극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져야 한다. 그러나 흑백필름의 콘트라스트를 더한 로우키 조명이 화면의 입체감을 살리고 배우들의 잘 짜여진 안무(Choreography)가 이를 충분히 보완한다.

    <침묵의 빛>에서의 촬영기법은 롱테이크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카메라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부터 동이 트는 지평선까지 매우 느리게 카메라가 패닝하는 도입부는 한 개의 숏으로 이루어지며 러닝타임만 4분40초에 이른다. 관객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하늘에서 지평선으로 옮겨가며 하늘색이 변하는 과정과 아침이 시작되어 만물이 깨어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관객들은 매일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세히 주목한 적이 없는 자신들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된다.19)

    <침묵의 빛>은 또한 클로즈업(Close-up)으로 포착한 일상의 단면에서도 롱테이크를 통하여 의미를 창출한다. 요한과 아버지의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버지의 목과 턱의 측면을 클로즈업하여 주름을 보여주고 천천히 얼굴로 옮겨간다. 요한의 정면 바스트(Bust) 숏 다음에 리버스(Revers) 숏20)으로 쓰인 이 장면은 영상문법에 안 맞을뿐더러 의미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더욱 난해한 다른 예로는, 요한이 에스더를 데리고 자동차 드라이브를 할 때 자동차 속도 계기판을 오랜 시간 보여주는데 좀처럼 문맥 내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기가 힘들다. 계기판의 바늘도 주행 중 50km와 멈추었을 때 0km로 일정하며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숏의 지속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아버지의 주름에서 삶의 연륜과 지혜를 기대하게 되고 에스더에게 고백을 한 후 마땅히 시선을 둘 데가 없는 요한의 심정을 느끼게 된다.

    <오뎃트>의 촬영기법은 패닝과 트래킹을 중심으로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하게 따라 주는 방식으로 실행되었다. 이러한 촬영기법은 관객들이 극의 흐름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 세심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것이다. 반면에 <침묵의 빛>은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는 롱테이크 숏이 주를 이룬다. 레이가다스는 이러한 롱테이크 숏 기법을 통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평소에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사고하게 하여 결국 촬영대상(Object)의 의미를 확장 시킨다. 촬영기법이 주제를 전달하는 수단 역할에 머무르는 <오뎃트>달리 <침묵의 빛>의 롱테이크 숏은 그 자체로 메시지이기도 하다. 레이가다스는 바쁜 현대의 일상속에서 또는 정보의 홍수가 만들어낸 선입견들 속에서 묻히거나 간과 되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태도를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편집

    <오뎃트>에서는 컷 분할(Cutting)을 최소화하면서 등장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편집을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후면이나 정측면이 정면을 향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필수적으로 정면 컷이 필요치 않게 된다. 또한 좌우로 이동시 카메라가 동작선을 따라 움직여 프레임 안에 인물을 놓이게 함으로써 새로운 컷의 분할이 필요 없도록 한다. 무릎 숏 정도의 사이즈로 시종일관 촬영되어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감정을 구별할 수 있게 되므로 강조를 위한 또 다른 컷이 필요치 않는다. 이렇듯 <오뎃트>의 편집구성은 마치 마스터 숏(Master-shot)21)같은 끊이지 않는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합성기법은 시간경과를 표현하기 위해 디졸브(Dissolve)를 사용하며 실종된 요하네스를 찾는 몽타쥬 장면에서는 화면이 한쪽으로 밀리면서 새로운 화면이 등장하는 와이프(Wipe)기법을 사용한다.

    이에 반해 <침묵의 빛>은 등장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고 컷들의 지속시간에 거의 차등을 두지 않아 편집의 리듬을 찾아보기 어렵다.22) 또한 시선의 일치도 가끔 지켜지지 않으며 매칭 숏(Matching shot)구성 역시 마땅히 따라야 할 리버스 숏(Reverse-shot)의 일치 가 흔히 무시된다. 이러한 편집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침묵의 빛>은 정적이면서도 급하게 호흡이 끊기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레이가다스는 전작들을 통해 롱테이크를 구사하고 영상문법 파괴를 시도했지만 전체적인 편집의 리듬을 잃지 않는 범위였다. 그러나 <침묵의 빛>에서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롱테이크를 통해 대상에 대해 관조하기를 강요하지만 관객들이 스토리에 몰입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영상문법 파괴를 통한 비정형적인 숏을 제시함으로써 다시 거리를 두게 만든다. 롱테이크와 영상문법 파괴의 작품 안에서 목적은 같다. <침묵의 빛>에서의 롱테이크는 도입부에서 사용된 것처럼 관객들에게 무심했던 것들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기를 원한다. 또한 영상문법파괴는 주인공이 겪는 고통이 영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관객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임을 환기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침묵의 빛>에서는 페이드(Fade)나 디졸브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합성 기법조차 배제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엔 거의 실시간으로 찍은 일출과 일몰장면이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을 대신한다. 시퀸스 사이엔 페이드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시종일관 컷으로 연결된다. 또한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디졸브나 어떠한 합성기법도 작품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합성기법들이 적절히 사용된 그의 전작들과도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표면적으로는 영화의 스토리가 마치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단 하루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시도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롱테이크로 촬영하고 합성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편집한다는 것은 최대한 인공적인 가공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인 것이다. 레이가다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공간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삶을 관객들에게 던져주고 스스로 판단케 하려는 것이다.

       5) 음향(Sound)

    <오뎃트>는 후시녹음을 기반으로 대사를 강조하고 그 외 음향은 최대한 절제한다. 전체 분량이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된 실내장면에서는 외부의 음향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전원마을의 특성상 사람들 소리는 드물겠지만 가축들을 비롯한 바람 소리마저도 없다. 오직 외부의 상황을 대신하는 청각–시각의 대위법23)으로만 존재한다. 대위법으로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또는 손님이 현관문을 열 때의 종소리 등이 장면 컷을 효과적으로 대신한다. 로케이션 촬영에서도 마찬 가지이다. 공간음(Ambience)에 덧붙여진 효과음(Sound effect)은 스크린 안에 보이는 요소들에 맞춰 최소로 보태어져 진다. 등장인물이 마차를 타고 마을을 향하는 장면을 보면 스크린 안에는 마차 외에도 샛강에 흐르는 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이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차소리뿐이다.

    <침묵의 빛>은 동시녹음을 기반으로 공간음을 강조하면서 배경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배경 음악은 레이가다스 전작들에서는 작품을 읽는 주요한 열쇠 역할을 해왔다. 특히 <하폰>에서는 마태수난곡을 비롯한 종교색이 강한 여러 음악들을 작품에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침묵의 빛>에서는 TV에 등장하는 가수의 노래24)와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성가 외에는 어떠한 음악도 사용하지 않는다. 배경음악을 대신해서 현장에서 녹음한 채 가공되지 않은 공간음이 주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침묵의 빛>의 공간음은 전원의 고립된 마을에서 들을 수 있는 것으로써 바람, 풀벌레, 가축, 물을 비롯한 자연의 소리와 자동차 소리, 시계소리 같은 기계음으로 나뉠 수 있다. 대화의 적막함을 파고드는 자동차 소음은 유난히 크게 들려서 단절감을 강조하고 가족들의 식사장면에선 강조되는 시계소리는 숨막히게 의무와 규칙을 강요한다. 반면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롱테이크에서는 온갖 자연의 소리들이 뭉쳐서 들린다. 그 소리들 가운데 가축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 소리는 나중에 에스더가 심장마비로 죽은 후 요한이 울부짖는 소리와 동일한 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슬픔조차 매일 가축들이 지르는 소리처럼 대자연 흐름의 작은 일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침묵의 빛>에서는 또한 음향을 사용할 때 촬영기법과의 공조를 통해 효과를 높인다. 작품의 전반부에 요한 가족의 식사장면을 보면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인물배경이 포커스 아웃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계소리가 들려온다. 포커스 아웃된 배경은 추상화되어 요한과 에스더의 심리적 상태와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들려오는 시계 소리도 중간의 빈 공간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그들의 촉수에 닿는 느낌을 준다. 또한 영화 도입부의 롱테이크를 보면 카메라가 밤하늘에서 해가 뜨는 지평선으로 천천히 움직임에 따라 자연으로부터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해가 뜨는 구체적인 자연의 변화를 담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더한 음향은 마치 자연의 변화처럼 스토리가 있게 느껴진다.

    <오뎃트>의 절제된 음향 사용은 작품의 종교적인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 관객들은 주변 요소들의 방해 없이 진지하게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통하여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음향의 절제 속에 오직 배경음악만이 작품의 감정선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작곡된 배경음악은 주제를 예시하거나 극의 흐름을 선도하지 않고 차분하게 감정을 증폭시킨다. 반면에 <침묵의 빛>은 편집기법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음향 역시 인공적으로 가공된 느낌을 피한다. 레이가다스는 계획되고 통제된 음향은 배제하면서 롱테이크 숏 속에 담긴 소리들에 대해 관객들이 경청하기를 원한다.

       6) 세계관

    <오뎃트>와 <침묵의 빛>의 가장 큰 차이는 작가의 세계관으로써, 이것은 작품 안에서 신의 존재, 기적과 구원, 인간 행복의 조건을 묻는 다양한 질문으로 나타난다. 신은 존재하며 기적은 현실에서 가능하고 이를 믿을 때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오뎃트>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침묵의 빛>에선 단순하지 않다. 목사인 요한의 아버지는 불륜에 빠져 있는 요한을 부럽다고 말한다. 종교 때문에 집단 운둔생활을 하고 있는 메노나이트교도에게 결혼이란 신이 맺어준 것을 뜻하는 경건한 삶의 약속이다. 그런데 목사인 아버지가 이러한 약속을 저버린 아들을 부럽다고 말한 이유는 <오뎃트>에서 보여준 양쪽 집안의 종교관 차이와 같다. 내세의 행복을 위해 종교적이고 경건한 삶을 지키고 있는 자신보다는 현세의 충만함을 위해 마리안느와 불륜을 택한 아들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네이슨은 <침묵의 빛>이 단지 종교집단을 소재로 했다는 점을 넘어 종교적인 믿음의 체계를 구현하는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점에서 단연코 종교적인 영화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오뎃트>가 시종일관 신성한 실체가 중심인 절대적인 종교적 집단의 이야기인데 비해 <침묵의 빛>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하는 간접적인 의지가 신이나 자연뿐만 아니라 로맨틱 내러티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간파한다.25) <침묵의 빛>이 비록 <오뎃트>처럼 직접적으로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두 여인과 얽혀진 요한의 갈등은 분명 종교적인 갈등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침묵의 빛>내의 갈등이 사실은 종교적인 갈등인데도 불구하고 <오뎃트>와 똑 같지 않은 것은 기적과 구원에 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레이가다스의 전작들과 연결 지어 살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하폰>의 <마태수난곡>과 구름위에서 찍은 부감숏 그리고 <천국에서의 전쟁>의 종교화가 작품에 종교적인 배경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말해주지만 등장인물들은 신에 의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폰>에서는 자살하고자 하는 화가가 산골외딴마을에서 정착하면서 집주인 할머니와 교감을 나누지만 그녀는 곧 열차사고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천국에서의 전쟁>에서는 주인공이 직장상사의 딸과 교감을 통하여 구원을 바라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채 쓸쓸하게 최후를 맞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침묵의 빛>에서 요한의 고난은 인간이기에 그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오뎃트>에서는 잉거가 부활한 뒤 남편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알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침묵의 빛>에선 에스더가 다시 눈을 뜬 뒤 처음 던진 말은 “불쌍한 요한!”26)이다. 인간의 모습은 애초부터 불완전한 존재로서 그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에스더는 요한을 불쌍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레이가다스 세계관 속의 신은 존재하되 더 이상 현실에서 기적을 일으키거나 작용을 하지 않는다.27)

    10)기독교의 일파인 Mennonite 일파로 사회와 떨어져 집단운둔생활을 하며 17세기에 신대륙으로 이주하였으며 20세기 초반 나찌가 침공한다는 소문에 캐나다에 거주하던 일군의 집단이 멕시코로 이주하였다.  11)Niels Niessen, 같은 책, p 30. 여기에 대해서 네이슨은 잉거와 에스더는 둘 다 실제로 눈을 뜨지만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퍼스펙티브(Perspective)라고 말한다.  12)마리안느와 긴 키스를 나눈 후에 보여주는 이 장면은 사실 요한의 둔부만 보여준다. 전 장면과의 연결과 요한의 자세로 볼 때 섹스장면으로 판단된다.  13)Cynthia Tompkins, 같은 책, p162∼164.  14)제프리 노엘–스미스편집, 이순호 외 번역,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열린책들, 2005, 140쪽. ‘드레이어는 배우의 선택과 연기 지도에 있어서 대단한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15)스티븐 디 캐츠, 김학순 외 역, 『영화연출론』, 시공사, 1998, 186쪽. 정면성(Frontality): “이것은 서구미술의 관습이다. 정면성은 그림의 대상물들이 관객을 향해 있거나 영화의 경우에는 카메라와 마주하고 있는 방법이다. (중략) 이는 대화하는 주체들이 서로를 마주보기 보다는 오히려 카메라를 마주 보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16)메리 엘렌 오브라이언, 최상식 역, 『영화연기』, 연극과인간, 2003, 25쪽. “르위스 재콥스저서는 <미국영화의 발생>에서 초기 영화의 연기 방식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연기자는 반드시 카메라를 바라보고 수평으로 움직여야한다.” 이를 참조하면 <오뎃트>에서 배우들의 정면성과 동작선은 무성영화시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경력 또한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17)Karin Badit, “No Slave to Realism: An interview with Carlos Reygadas”, ≪CINEASTE≫ Summer 2006, p 23.  18)마이클 래비거, 김진해 역, 『영화의 연출』, 지호, 1996, 133쪽. “배우와 카메라를 연관지어 배치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인물이 어디에서 왜 움직여야 할지는 각본에 씌어진 내용과 배우들이 인물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또 감독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19)Niels Niessen, 같은 책, p 41. 네이슨은 이를 직관(Intuition)이라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직관이란 대사와 가능성과 개념을 담은 형식 그리고 합리적인 소통 구조를 동시에 초월하는 것이다.  20)로이 톰슨, 권창현 역, 『숏의 문법』,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144∼145쪽. 매칭 숏(matching shot)이라고도 하며, 화면구성이 거울처럼 반대가 되게 카메라 앵글,렌즈, 피사체로부터의 거리가 매치 되어야 한다.  21)스티븐 디 캐츠, 같은 책, 374쪽. “한 신(Scene)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물 사이의 관계가 그 안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며 다른 숏들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한 장면 전체의 극적 행위들이 이해될 수 있도록 롱테이크로 촬영한 숏”  22)캔 댄시거, 오명훈 역, 『영화편집』,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535쪽. “숏들의 호흡을 조절할 때, 리듬은 각 숏의 길이에 다양성을 요구한다.”  23)미셀 시옹, 지명혁 역, 『영화와 소리』, 민음사, 2000, 109쪽. 청각–시각의 대위법을 뜻하는데, 소리의 출처는 화면 밖에 있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화면 밖 이미지와 대조해서 유추 하는 것으로 상업영화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법이다.  24)벨기에 출신 가수, 쟈크 브렐(Jacques Brel)로 코미디를 곁들여서 을 부르는데 그 모습이 슬픈 감정과 즐거운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마치 요한의 처지를 노래로 부르는 듯하다.  25)Niels Niessen, 같 은 책, p 54.  26)작품에서 영문 표현은 “Poor Johan !”  27)Niels Niessen, 같은 책, p 31∼32. 여기에 대해서 네이슨은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어서 기적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신은 마치 자연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침묵의 빛>은 이러한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3. 결론

    <침묵의 빛>은 상황설정과 서사구조의 유사성을 비추어 보았을 때, 칼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오뎃트>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레이가다스는 드레이어와는 다른 자신의 세계관과 형식 스타일로 <오뎃트>를 해석을 해서 새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오뎃트>는 고전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신과 인간 또는 세계와 인간은 아직 분리 되어 있지 않고 믿음과 용서로 화해할 수 있다. 드레이어는 이러한 주제의 일관성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 내러티브를 연대기적인 시간개념과 인과율에 따라 구성하며, 형식 스타일은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했다. 반면에 <침묵의 빛>은 현대의 포스트 모던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와 인간은 더 이상 합일될 수 없으며 소통조차 어렵다. 레이가다스는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하면서 관객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서사구조에 있어서 애매모호성과 약한 연결 고리를 의도적으로 배치해서 관객들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심리적인 시간 개념을 사용해서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과 해결이 물리적인 시간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침묵의 빛>의 형식 스타일은 메시지를 전달하며 내용을 보조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써 레이가다스가 말하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장면화와 편집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전통과 관습에 대하여 거리를 두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대신 롱테이크로 촬영하고 합성기법과 인위적인 음향이 배제된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주변의 일상을 가져와서 관객 스스로 해답을 찾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가다스의 이러한 시도가 <오뎃트>에 담긴 종교적인 세계관을 전부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레이가다스의 작품들은 네이슨의 표현을 빌면 믿음의 체계를 구현하는 사회적 관계를 보여줄 정도로 종교적인 영화들이다.28) 이러한 그에게 고전적인 종교관을 기반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이룬 <오뎃트>는 흠모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비록 그가 <침묵의 빛>에서 현실에서 더 이상 기적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신은 존재한다는 자신의 종교관과 기적의 가능성까지 포기 한 것은 아니다. <오뎃트>에서 요하네스는 한 아이의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키지만, <침묵의 빛>에선 아이가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이 본 기적을 증언을 해도 요한과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에스더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 요한이 에스더를 만나서 생사를 확인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작품의 주제와도 연관이 있다. 요한이 에스더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하고 믿는 것은 현대인들의 이성적인 사고이며 믿음의 본질과 상반되는 것이다. 요한은 결국 아이의 말을 믿지 않음으로 해서 이미 기적의 가능성을 포기 한 것이다. 레이가다스는 현재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과거와 달리 신과 기적이 부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오뎃트>를 선택한 것은 우선적으로 작품에 담긴 구원과 믿음에 대한 개념이 그동안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추구해온 가치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침묵의 빛>을 <오뎃트>에 대한 단순한 오마쥬로 남게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오뎃트>가 가진 고전적인 종교관과 형식 스타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가다스가 선택한 길은 <오뎃트>를 현대에 걸맞게 변용하는 것이다. 서사구조를 통해서 과거에는 가능했던 기적이 현재의 <침묵의 빛>에선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고, 형식 스타일을 통해서 관객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게 유도한다.

    28)Niels Niessen, 같 은 책,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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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오뎃트>와 <침묵의 빛> 스토리의 설정과 갈등의 유사점.
    <오뎃트>와 <침묵의 빛> 스토리의 설정과 갈등의 유사점.
  • [<표 2>] <오뎃트>와 <침묵의 빛> 스토리 중 결말의 유사점과 차이점.
    <오뎃트>와 <침묵의 빛> 스토리 중 결말의 유사점과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