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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A study on the Learning Method with Discussion for Reading out Movie Text 토론식 학습법을 원용한 영상 텍스트의 읽기 교육 방안 연구-영화 『친구』를 예로-
  • 비영리 CC BY-NC
ABSTRACT
A study on the Learning Method with Discussion for Reading out Movie Text
KEYWORD
learning method with discussion , discussion , reading out movies , reading out pictures , general education , the general education of movies , writing
  • 1. 머리말

    영상의 수용층이 확대되고 교육적 효과도 높은 것으로 판명되면서, 영화를 교육적으로 응용해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케이블TV 등 유료 채널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상 미디어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대학생들은 영화, 컴퓨터게임, CF, 소위 ‘미드’1) 등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상물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관련 과목들을 통해 미디어물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대학의 교양 교육 현장에서도 이미 ‘문학과 영상’, ‘영화와 문학’, ‘영화의 이해’ 등 영화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어 운영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목들이 학생들에게 영상 읽기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기존 교양 영화 교육의 문제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를 읽어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영화 자체를 가르치는데 초점이 놓여, 읽기 교육적 요소는 약화 혹은 간과된 경향이 있었다.2) 물론 영화를 잘 읽어내기 위해서는 매체(media)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교양교과의 목표가 학생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반적 교양을 기르는데 있다면, 영화 자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미디어 읽기의 기본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교양교과에서 영화는 읽기 제재의 하나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같은 맥락에서 교양 국어 교과에서 영화 제재의 수용도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3)

    둘째, 대상 텍스트가 걸작 중심이어서, 영화 자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학생들이 소위 ‘미디어의 홍수’ 속에 싸여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미디어 교육의 경우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학생들이 대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19세 이하 관람불가 등급의 미디어물, 곧, ‘19금’4)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5)

    셋째, 주로 ‘1:多’ 형식의 일방 교수 형태 위주로 수행되어 학습자의 참여도가 낮았을 뿐 아니라, 비판적, 창의적 교육도 어려웠다. 물론 이것은 영화 교육에 국한된 문제도, 국어 및 문학 교육만 지닌 문제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읽기 교육에서 “선생이 밑줄 좍-그어준 조각 정보를 외워 점수나 따는”6) 교습 형태는 고정된 읽기 지침을 학습자에게 강요하여 자발적인 참여 의욕을 저해하고 비판력을 감쇄할 수 있으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넷째, 수업 모형의 개발보다는 작품 분석이나 주제 중심 논의가 많아, 그것을 교육현장에서 직접 활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시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현대적 흐름에 걸맞는 영화 읽기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상 매체의 특성에 알맞을 뿐 아니라 학습자의 참여와 의욕을 고취시키고 교사가 참고하여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모형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토론식 학습법을 원용하여 영화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되, 그것을 통해 미디어 읽기, 나아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읽기까지 가르칠 수 있는 수업 모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토론식 학습법은 상반되는 주장을 지닌 학습자 그룹이 의견을 펼치거나 논의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적 목표를 성취하는 학습 방법이다. 이 학습법은 학습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학습 능률을 높일 뿐 아니라, 토론 과정에서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논리를 검증할 수 있고, 토론문 작성 등 그 준비과정까지 아우른다면 읽고 말하고 듣고 쓰는 전반적인 언어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영역을 골고루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중립적 사회자로서 적절히 참여하면, 효과적인 피드백(feedback)7)도 가능하다.

    기존 연구에서는 토론이 단순히 수업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간주되거나 토론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8) 바꾸어 말해서 작품의 의미에 접근하는 학습 방안으로 토론식 학습법이 원용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토론식 학습법이 작품의 의미를 깨우치고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활용도 높은 학습 방안임을 증명하고, 읽기 교육에서 토론식 학습법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한다.9)

    영화는 문학과의 친연성이 크고, 같은 서사물이므로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흔할 뿐 아니라, 작품성이 높은 것이 많아 읽기 제재로 적절하다는 점에서 미디어 읽기의 시발점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이 글에서는 2001년 개봉되어 818만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추산되는 영화 『친구』를 대상으로, 미디어 읽기에 부합하는 영상 읽기의 토론식 학습 모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영화가 ‘19금’이고, 비교적 잘 만들어진10) 영화이며, 폭력물에 노출되기 쉬운 학생들에게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하는 제재로 적합하기 때문이다.11)

    둘째, 이 영화의 중심 사건과 주제가 두 갈래로 읽히는데, 그것이 비판과 토론 대상으로 삼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12)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작품 혹은 인기 있는 작품이 독자에게 꼭 좋은 생각(ideology)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이 글의 의도와도 알맞다.

    요컨대, 이 글에서는 영화 『친구』를 대상으로 토론식 학습 모형을 제시하고, 토론식 학습법이 영상 읽기 교육에 매우 효과적인 학습법임을 증명해 보고자 한다. 분석을 위해 최근 서사학 이론을 원용하기로 하며, 보다 체계적인 분석을 위하여 읽기의 수준을 일차적, 이차적, 삼차적 수준으로 나누고 이에 따라 수업 모형을 세운다.

    1)신조어로서, 미국에서 제작, 수입된 드라마 시리즈물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2)이 점은 영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영화 전공자이거나 관련업계 종사자인 점과도 무관치 않다.  3)국어교과는 도구교과적 성격이 강한 교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교양국어 교육은 다양한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여 토의ㆍ토론 등 복합적 언어능력을 길러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대학에서 영화 제재를 국어교과에 수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4)19세 이하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 혹은 프로그램 미디어물. 이후 ‘19금’으로 약칭한다.  5)물론 19금을 교육현장에 도입하는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혹은 무차별적으로 19금 영상물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교육현장에서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친구』가 개봉되었던 2001년, 학원폭력에 시달리던 부산의 한 고교생이 수업도중 교사와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급우 박군을 칼로 찔러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 학생은 극장과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 영화를 40여 차례 본 후 결심을 굳혔으며 친구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대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중등학교 학생들이 19금을 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지도 대상 연령을 조금 낮추어 중등학교 학생들이 비판적 시각을 갖게끔 지도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6)최시한, 『소설의 해석과 교육』 (문학과지성사, 2005), 71면.  7)피드백은 교육학에서 “학습자의 행동에 대하여 교사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일”로 정의된다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두산동아, 1999).  8)기존 논의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토론식 학습법을 국어 교육에 적용한 논의로 최은경과 박민철이 (최은경, 「토론을 활용한 논술 교수-학습 방안 연구 ;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를 중심으로」, 전북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8, 박민철, 「토론 학습을 통한 고등학교 국어 교수-학습 능력 신장 방안」,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3), 문학 교육에 적용한 논의로 심은주, 김지선, 이수연 등이 있다 (심은주, 「토론을 통한 소설교육 연구」, 국민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3, 김지선, 「토론식 수업을 통한 비판적 사고력 신장방안」, 한신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8, 이수연, 「토론망식 토론을 활용한 소설 교육」, 부경대 교육대학원, 2006). 토의와 서사적 대화를 적용한 학습 모형 개발 노력을 기울인 논의로는 최인자와 선주원의 것이 있다 (최인자, 「서사적 대화를 활용한 문학 토의 수업 연구」, 『국어교육학연구』, 제29집, 2007, 283∼201쪽, 선주원, 「서사적 대화와 서사 교수-학습 모형 연구」, 『새국어교육』, 제82호, 2009, 171∼191쪽). 그러나 토론식 학습법을 읽기 교육 방안으로 원용한 논의는 「토론식 학습법을 원용한 소설 텍스트의 읽기 교육 방안 연구-‘벙어리 삼룡이’를 중심으로」(졸고, 『새국어교육』 84호, 2010, 4, 30)이 유일했다.  9)이러한 접근은 학습자 중심 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다.  10)well made.  11)『친구』는 소위 액션물 혹은 폭력물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된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이 영화가 영화수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많았는데, 영화가 폭력 자체를 미화한 점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될 수 있다. 기존 연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길자, 「 『친구』 영화 텍스트에 대한 수용자의 의미 해석」, 『교육인류학연구』(2003). 백선기ㆍ최민재, 「영상 텍스트의 맥락적 의미 구성에 관한 연구-영화 『친구』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기호학회, 『기호학 연구』(2003), 165∼209쪽.최민재, 「영상텍스트 수용자의 환상적 동일시에 관한 연구 : 영화 『친구』에 대한 수용자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48권 3호(2004, 6), 222∼248. 권은선, 「회고주의적 정조로 떠오른 우리 시대의 정치적 무의식」, 『당대비평』 통권 제17호(2001. 12), 409∼417쪽. 김필남, 「‘부산영화’로 보는 부산 공간의 의미-영화에 비친 부산의 모습을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 제2호(2009.10), 185∼220쪽. 김병재, 「시나리오의 변형양상에 관한 상호텍스트성 연구-『친구』와 『신라의 달밤』을 중심으로」, 『씨네포럼』제6호(2003.11), 9∼40쪽.  12)이 영화는 연구된 바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두 갈래로 읽힐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3장 ‘이차적 수준-심층적 의미 읽어내기’ 부분에서 상세히 논의한다.

    2. 일차적 수준-장면 읽기

    글 읽기의 일차적 수준은 작품이 생산하는 주제 혹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글을 잘 읽어 몰랐거나 부정확하게 알고 있던 어휘나 문장들이 가리키는 의미를 이해하고, 드러나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정보들을 해득해 내는 단계였다. 해석을 위해서는 읽어낸 정보들 가운데서나 그 정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중심사건을 찾고, 텍스트 심층에 존재하는 갈등의 양상도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 읽기의 일차적 수준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것은 정독(精讀)이었다. 정밀하게 읽지 않으면, 주어진 정보들을 놓쳐 의미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13)

    영화 읽기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읽는 방법 자체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문자로 되어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나 단서에 밑줄을 쳐가면서 조각 정보들을 모아 중심사건을 찾으면 되지만, 영화는 문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조차 모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학습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술자의 말로 초점화되어 문자로 전달되는 것이 소설이라면, 카메라에 의해 초점화 되어 영상으로 전달되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매체 대한 이해 없이 영화 읽기를 가르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영화 읽기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장면14)을 읽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시나리오만 가지고 이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므로 멀티미디어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또 이론부터 장황하게 설명하면 본래의 목적인 영화 읽기보다 전문 영화론에 가까워지므로, 이론적인 설명은 되도록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읽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수업을 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의 경우, ‘준석이 동수를 죽였는가’라는 문제에 관해 토론하게 하면, 학습자 스스로 장면 읽기가 무엇이며,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지를 쉽게 깨닫고 체득하게 할 수 있다.15) 이 문제에 관해 토론하는 과정을 보이면서, 장면을 읽는 방법과 중요성을 학습자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과정을 제시해 본다.

       1) 토론 주제 제시

    사전 준비로 학생들에게 작품을 보고 요약문 혹은 비평문을 써오라고 한다. 학생들이 작품을 본 상태라야 토론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준석이 동수를 죽였는가’라는 화제를 칠판에 쓰고, 먼저 장면 읽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 때, ‘준석이 사형을 당했다고 보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설명하면 효과적이다. 꼼꼼히 본 학생들이 영화 안에서 장면을 근거로 답할 수도 있다. 교사는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준석이 사형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한다. 다음과 같은 장면을 예로 들면 좋다.

    예시 장면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주인공 준석은 상택을 면회한 후, 【장면1】과 같이, 복도를 걸어 나간다. 카메라는 준석의 시선과 같은 지점에 놓이면서, 【장면2】의 빛으로 가득한 문을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가다가 페이드인(fade in, 溶明)된다. 준석이 사형을 당했다고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대개 이 장면을 어떤 의미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장면을 ‘삶의 끝’ 혹은 ‘천국에 감’이라고 보면, 준석은 사형 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것을 ‘죄사함’ 혹은 ‘새롭게 삶을 시작함’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준석은 사형 당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맥락이다. 바로 전 준석과 상택의 면접실 장면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상택은 눈물을 흘리며 준석에게 “또 올게. 다음 달에 또 올게”라고 말한다. 대사만 보면, 상택이 울 이유는 없다. 다음 달에 와서 또 만나면 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와서 만날 수 있다면, 상택이 왜 울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의견들을 근거로 하여, 학생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도 좋다. 네이버 영화 『친구』 게시판에는 준석이 사형 당하지 않았다는 논거로 다음과 같은 예들이 올라와 있다.16)

    한편, 사형 당했다고 주장하는 논거들은 대개 위에 제시한 페이드 인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상택이 우는 것은 준석의 사형 확정 소식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고, 죽었기 때문에 바다 위에 타이어가 떠 있는 장면으로 전환되고, 주인공이 죽었으므로 스토리도 거기서 끝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정상택이라는 인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맺는 점 또한 이러한 논리를 세우는 데 일조한다. 상택의 내레이션은 옛 친구들에 대한 ‘추억’, ‘기억’ 등을 환기시키는 맥락에서 발화되는데, 준석이 죽지 않았으면 ‘추억’하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다.

    두 가지 입장을 정리해 주면서, 교사는 영화의 특징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첫째, 영화는 허구라는 것이다. 1975년 이래로 사형이 집행된 적이 많지 않고 준석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이 살아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허구이므로, 실제 사실과는 얼마든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둘째, 영화는 상영된 순간 작가나 감독을 떠나 존재하므로, 언제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죄수번호판이 붉은 색이 아니라 흰 색이라는 것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준석이 사형수가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감독의 실수, 이른 바 ‘옥의 티’로도 읽을 수 있다.

    덧붙여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다. “소설 처음에 주인공이 벽에다 못을 박으면, 주인공은 그 못에 반드시 목을 매어 죽어야 한다”는 쉬클롭스키(Victor Shklovsky)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좋다. 이 문장을 반복해서 들려주면서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다른 쉬운 예를 들어준다. 예를 들어, 교사가 교단에서 기침을 하면, ‘선생님이 감기에 걸리셨구나’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기침을 하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대개 ‘암에 걸렸다’든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교사는 다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묻는다. 학생들 중 일부가 ‘암시’ 혹은 ‘복선’ 같은 용어를 써서 답할 수도 있다. 영화의 장면은 반드시 그 장면이 있어야 하는 존재 의미를 지닌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 장면은 불필요한 장면이거나 잘못된 장면일 수 있다.

    이와 같은 모범을 보이면서 교사는, 반드시 장면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단서들은 꼼꼼히 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그러한 연후, 같은 방식으로 ‘준석이 동수를 죽였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하라고 주문한다.

       2) 토론하기17)

    실제로 토론에 들어가면 교사는 사회자로서 관련 장면을 같이 찾거나 단서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도록 돕고, 양자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어떻게 읽어야 영상 읽기를 잘하는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목표가 있기 때문에, 교사의 해석이나 입장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는다. 곧 작품을 이렇게 해석하라는 지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저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는 어느 부분을 주의 깊게 보아야 했는지를 짚어가면서 잘 읽어낸 조를 격려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이끌어간다.

    토론 결과나 과정은 대상과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참고적으로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볼 수 있는지, 그 경위와 이유는 무엇인지 관련 장면을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이 영화는 보기에 따라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도, 죽이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 문제는 작품의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매우 중요한데,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작품의 주제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볼 경우, 준석은 이른 바 ‘조직의 이익’ 때문에, 친구 혹은 우정을 버린 것이 된다. 한편,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볼 경우, 준석은 친구인 동수가 소위 ‘쪽 팔릴까 봐’ 죄를 덮어쓰고 감옥에 간 것이 된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영화가 친구들 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인지, 그렇지 않은지 입장이 갈리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 『친구』 게시판에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18)

    이 영화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을 수 있는 것은 영화 자체가 이 문제를 애매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정이라는 소재를 그리면서 현실과 이상, 사실과 낭만 사이에서 갈등한 감독의 고민을 보여주는 ‘빈틈(gab)’19)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들에서 상세히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영화 속에서 근거가 되는 장면을 찾아 각각 왜 그렇게 볼 수 있는 지 논리를 세워 본다.

    먼저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혹은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논리이다. 이 영화는 준석과 동수가 서로 다른 조직에 들어가면서 우정이 점차로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 소독차를 쫓아다니고 문구점에서 함께 물건을 훔치기도 하면서 그들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한다. 준석과 동수의 우정이 갈라질 조짐을 보이는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레인보우의 공연에 갔던 네 친구 중 세 사람, 곧 준석, 동수, 상택은 싱어(singer)였던 진숙에게 반해버린다. 준석은 자신도 진숙이 마음에 있었지만, 그녀를 상택에게 소개시켜 준다. 그런 준석에서 동수는 원망을 품는다. 동수를 친한 친구로 여겼다면, 준석은 동수에게 진숙을 소개시켜 줬어야 마땅하다. 준석과 동수는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상택은 중학교 때에는 연락도 닿지 않던 친구였던 것이다.

    동수는 이러한 불만을 ‘화장실 장면’에서 표출한다. “와 그라노. 상택이한테 뭣 땜에 그리하노. 친구 아니가, 내는? 내는 뭔데?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는 말 속에는 동수의 불만이 함축되어 있다. ‘시다바리’란 부하 혹은 하수인이라는 뜻이다. 준석이 동수를 친구로 여겼다면, 일단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옳다. 그러나 준석은 “죽고 싶나?”라고 한다. 동수는 준석의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준석이 나간 다음 거울을 보며 그 말을 되풀이한다. 준석-동수 사이의 우정이 상하관계 혹은 주종관계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물론 결별은 훗날 이루어지지만, 준석-동수의 우정은 이때부터 금이 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 사람의 결별은 부친상(父親喪)을 당한 준석의 집 골목에서 이루어진다. 동수가 준석에게 상곤 형님 밑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하자, 준석은 “거기는 건달이 아니다. 양아치다. 모르나? 꼬마들한테도 약 파는 거.”라고 말하며 동수를 만류한다. 동수는 “장의사보다 낫다 아니가.”라고 하며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이후로 준석은 소위 ‘행두파’에, 동수는 ‘상곤파’에 몸을 담게 된다. 이 두 조직이 갈등관계에 놓여 있음은 영화의 발단부터 암시된다. 상곤파의 두목 차상곤은 행두의 부하 조직원이었다. 그는 행두파를 배신하고 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두 조직 사이의 갈등은 동수가 움직이면서 점점 고조된다. 동수는 경찰에 밀고하여 행두 형님을 감옥에 보낸다. 당연 행두파에서도 동수를 응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인다. 수하인 도루코가 “밑에 놈 하나 작업할까?”라고 묻지만, 준석은 “쓸 데 없는 생각 하지마라.”며 동의하지 않는다. 도루코는 단독으로 조직원 둘을 동수의 집에 보내 동수를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동수는 이를 막아내고 대대적으로 행두 조직을 친다.

    이 때 준석은 소위 ‘인턴사원교육’에 가 있다. 조폭집단의 인턴사원교육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준석이 인턴사원교육에 열을 올릴 동안, 동수는 상곤파 조직원들을 이끌고 행두파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시에, 도루코를 잔인하게 죽인다.

    상황이 이러한데, 조직에서 준석에게 어떠한 지령을 내렸을까. 아마도 동수를 죽이라는 지령일 것이다. 이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이른 바 ‘룸싸롱 장면’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인용해 본다.

    인용에서 준석이 어떤 맥락에서 이곳에 왔는지,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가 잘 드러난다. 여기서 ‘원망’이란 동수가 도루코를 죽이고 자신의 조직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데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수 개인의 의도나 판단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준석은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놈들’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울러 지금 내가 너를 죽이라는 지령을 받고 온 것도, 나의 의도가 아니므로 원망 말라는 의미 또한 함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면서 준석은 친구로서 ‘부탁’을 한다. 자신이 그 지령을 수행하지 않도록 하와이로 가달라는 것이다. 동수는 고민하지만, 이를 거절한다.21)

    바로 전 장면에서 준석은 가방을 싸면서 상택에게 “당분간 어디로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라는 편지를 쓰는데, 이 장면도 준석이 동수를 죽이고 이른 바 ‘잠수를 타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재판정에서 동수를 죽였다고 시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자신이 죽이지도 않았는데, 친구를 죽였다고 시인할 리 없다. 준석은 괴로워 술김에 사고를 치고 경찰에 발각되는데, 자신이 죽이지 않았으면 그렇게 괴로워할 리도 없다. 죽였으니까 응당 처벌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고, 죽였으니까 괴로워하는 것이다.

    준석이 아버지 제삿날 산소를 찾았을 때, 올린 술잔이 세 개였다는 점, 준석이 담배꽁초를 떨어뜨리는 것을 신호로 우산장수가 동수를 찔렀다는 점 등은 인터넷에서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는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들고 있는 주된 근거들이다.22) 우산 장수의 행동과 얼굴도 문제이다. 우산 장수는 동수를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다.23) 준석의 인턴사원교육 장면을 복선으로 본다면, 우산 장수는 결코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턴사원교육 장면은 동수가 도루코를 죽이는 장면과 겹치는데, 이렇게 겹쳐 보여주는 이유는, 준석의 설명과 아울러 전문가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전문가라면 우산 장수처럼 많이 찔렀을 리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산 장수는 인턴사원교육장에 있었던 신입 조직원 중 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동수의 부하 은기가 상곤파의 조직원이므로, 배신의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도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상곤파는 배신으로 생겨난 조직이다. 상곤은 행두를 배신했고, 동수도 행두 조직을 배신했다. 그렇다면 은기 역시 배신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근거는 횟집에 찾아온 상택에게 중호가 하는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호는 “그 때 준석이가 그리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고 말한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이 동수를 죽이려고 조직원들을 움직였다는 뜻이라고 보면, 더욱 논리를 굳힐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준석은 동수를 죽이라고 지시했고 죽였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보는 논리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친구’이다. 친구라는 제목은 독자들에게 ‘우정’이라는 말을 환기시킨다. 이 영화는 정상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데, 이 내레이션은 우정을 환기시키는 맥락에서 발화되고 있다. 시작 부분의 내레이션부터 살펴본다.

    소독차가 내뿜는 하얀 연기와 그것을 쫓아가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대체로 독자는 도입부를 통해 그 담론이 대략 어떠한 형식으로 서술될 것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첫 장면은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24)

    이 영화 담론(discourse)의 절반 이상은 네 친구의 초등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묘사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영화는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모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려가는데, 이 때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혹은 관점을 제공하고 있는) 인물이 상택이다. 곧 상택의 눈으로 비추어진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진숙을 소개받은 상택이 그녀와 롤러스케이트장에 놀러갔다가 진숙의 이전 남자친구를 만나 폭행을 당할 때 친구들(준석, 동수, 중호)이 구해주는 장면이라든가, 상택이 학교에 오지 않는 준석을 설득하여 학교에 돌아오게 하는 장면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네 친구의 우정과 청춘을 아주 생동감 있게 잡아낸다. 롱샷(long shot)으로 된 이른 바 ‘달리기 장면’은, 달리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면서 청춘의 폭발적인 힘과 조건 없는 우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25)

    그렇게 달려간 영화관에서 다시 진숙의 전 남자친구 패거리들을 만나는 바람에 준석, 동수, 중호, 상택은 대규모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준석과 동수는 퇴학, 중호는 강제 전학, 상택은 유기정학이라는 처분을 받는다. 상택은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돈을 훔쳐 나와 준석에게 서울로 가자고 제안한다.

    이 때 준석은 상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준석이 친구를 얼마나 생각하고 아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26) 준석은 상택 뿐 아니라, 친구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우정을 보여준 인물이다. 예를 들어, 동수에게 찾아와 함께 중호와 상택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하는 장면이라든지, 지령을 받았음에도 동수에게 ‘하와이로 가라’고 제안하는 장면 등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드러내 보여준다.

    친구(親舊)의 의미와 의리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 등에서도 살필 수 있듯이, 준석은 친구 혹은 의리를 저버릴 인물이 아니다. 준석은 재판정에서 동수를 죽였다고 시인하는데, 그것은 친구가 부하들에게 배신 당한 것이 드러나면 ‘쪽팔릴까봐’ 자신이 죄를 대신 뒤집어 쓴 것이다. 준석은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수도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기는 하다. 부두에서 은기에게 바다거북과 조오련이 수영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겠느냐고 묻고 있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와이로 가라’는 준석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으나, 곧 생각을 바꾸어 은기에게 “공항까지 얼마나 걸리노?”라고 물었던 것은 그가 옛날 친구들의 우정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우정을 기억하고, 친구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동수를 죽인 것은 상곤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동수를 죽였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은 은기와 우산 장수이지만, 그것을 지시한 인물은 상곤일 것이다. 동수가 너무 큰일을 벌여 자신의 조직에 피바람이 불게 될까봐, 혹은 이미 동수가 쓸모없어졌기 때문에 죽였다고 볼 수 있다.

    준석은 동수가 자신의 조직원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부하에게 배신당한 것을 동수가 ‘쪽 팔려 할까봐’ 죄를 덮어쓴다. 마지막 내레이션은 준석이 처음부터 끝가지 동수의 친구였음을 잘 보여준다.

    교사는 위와 같은 논리를 참고하여 토론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돕고, 학생들에게 생각을 유도할 만한 질문을 던져주도록 한다. ‘친구를 죽이지 않았는데, 과연 죽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준석과 동수 사이의 감정을 과연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진정한 우정을 지닌 친구가 친구를 죽일 수 있겠는가’ 등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사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면들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거나 주요한 대사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방식으로 토론을 이끌어가야 한다. 토론의 목표 자체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장면 읽기의 방법과 중요성을 알게 하는 데 있으므로, 텍스트에서 답을 구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고 논리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피드백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면 효과적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가 있다. 그는 의사인 친구에게 자신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제발 산소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부탁한다. 의사인 친구는 고민한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현행법상 안락사도 살인에 포함되므로, 자신은 살인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인 친구는, 괴로워하는 친구의 간청을 거절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산소 호흡기를 떼어준다. 이때의 우정을 준석-동수의 우정과 비교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

    필자가 토론을 진행해 본 바로는, 토론 그룹의 대상과 수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한편,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본 경우도 이 영화를 우정에 관한 영화로 보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27) 그런데 토론을 끝내고 난 후에는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보는 의견이 더 우세했으며, 많은 수가 이 영화를 우정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교사가 논리적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읽기 지침을 제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장면을 읽으면서 맥락까지도 읽는 방법이 체득되었기 때문이다.28)

    마지막으로 교사는 학생들이 지적한 부분을 확인하고 못 찾아낸 부분을 보충해 주는 방식으로, 텍스트에서 꼭 읽어야 했던 장면들을 꼼꼼히 짚어준다. 이러한 부분을 읽지 않으면 이런 의미를 놓칠 수 있었음을 강조하면 효과적이다. 이차적 읽기를 위해, 중심사건, 갈등, 대립 등의 용어 설명을 덧붙여도 좋다.

    일차적 읽기는 장면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어떻게 해야 장면 읽기를 잘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데 목표가 있으므로, 중심 맥락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중심사건을 읽어야 함을 강조하는 정도에서 마무리한다.

    13)졸고, 「토론식 학습법을 원용한 소설 텍스트의 읽기 교육 방안 연구」, 『새국어교육』 84호 (2010. 4. 30), 35면.  14)이 논문에서는 영화의 주요 요소인 대사(dialogue), 음향(audio), 그림(visual)을 모두 ‘장면’이라는 개념에 포함하여 논의한다. 장면의 경우, scene과 take의 두 개념이 혼용되어 쓰이는 수가 많다. 이 글에서는 주로 scene의 의미로 사용하기로 하며, 경우에 따라 take도 장면으로 통일하여 지칭한다.  15)이러한 토론 수업의 경우, 작품의 주제와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된 주제를 정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6)아래는 필자가 네이버 영화 『친구』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댓글들을 분석, 정리한 것이다.  17)실제 토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토론 주제 제시 → 토론 그룹 만들기 → 그룹별로 토의하게 하기 → 토의사항 발표하게 하기’의 단계가 더 필요하다. 이 과정은 앞의 논문에서 제시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졸고 참고).  18)네이버 영화 『친구』 게시판에는 2011년 1월 현재, 총 138건의 리뷰가 달려 있는데, 그중 이 문제에 대한 글이 가장 많았고, 두 입장이 거의 비슷한 정도로 팽팽히 맞서 있다.  19)이런 종류의 틈을 기점(cruxes)이라고 한다. 비평에서 기점은 곧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작품의 구성 요소이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작품 전체의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H. 포터 애벗, 우찬제ㆍ이소연ㆍ박상익ㆍ공성수 옮김, 『서사학 강의』, 문학과지성사, 2010, 182쪽).  20)인용은 필자가 맥락을 고려하여 간추린 것이다.  21)내용 자체는 대사로도 전달되지만, 배우의 연기와 분위기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동수의 고민은 연기로 드러난다. 장동건이 연기한 ‘니가 가라, 하와이’ 부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번민하는 동수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배우 장동건은 이 영화로 제46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2001)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2)네이버 『친구』 게시판 댓글 참고. 그러나 이러한 근거들은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근거들이어서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혹은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근거로 적합지 않은 면이 많다.  23)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29∼31번 찔렀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24)이러한 현상을 ‘초두효과’(the primacyeffect)라고 한다. 독자가 초기에 만들어낸 첫인상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H. 포터 애벗, 앞의 책, 174쪽).  25)이 장면은 배우와 카메라가 함께 움직이면서 찍은 것으로 유명한데, 기법적인 면뿐 아니라 의미 전달 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26)학생들이 우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은 장면이다. 언급했던, 골목길에서 준석이 동수에게 상곤파로 가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우정 어린 장면으로 꼽혔다. 우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들은 대개 준석-상택 두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점에 주의를 기울인 학생은 많지 않았다. 상택을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면, 이 영화는 우정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는 면이 많다. 이 영화에서 동수는 준석의 세계를, 준석은 상택의 세계를 동경한다. 엇갈린 우정이 비극을 낳았다고 볼 수도 있다.  27)준석이 동수를 죽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 영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28)필자는 2010년 우송대학교 1학년 32개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의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결과를 얻었다.

    3. 이차적 수준-심층적 의미 읽어내기

    영화 읽기의 이차적 수준은 글 읽기의 이차적 수준과 마찬가지로 일차적 수준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의 근간이 될 갈등 요소 혹은 대립소를 적절하게 읽어, 이를 중심으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해석을 위해서는 텍스트의 심층적 국면에서 의미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심도 있는 읽기가 필요하다. 읽어낸 의미가 작품과 어울리지 않거나 덜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의미를 심층에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수준부터는 독해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차적 수준에서 궁극적으로 읽어내야 할 것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곧 주제이다. 주제를 읽기 위해서는 중심사건을 먼저 읽고, 갈등이나 대립소를 읽어내야 한다. 작품의 중심사건을 읽는 것도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데, 언급했듯이 텍스트의 심층에서 읽어내야 보다 적절한 사건 요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석과 동수의 갈등을 이 소설의 주된 대립 혹은 갈등으로 볼 수 있는가’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제시한 예는 이 영화의 표면만을 읽은 것이다. 그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나 의미를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심층적으로 깊이 있게 읽어내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준석과 동수의 갈등을 크게 만들어, 친구가 친구를 죽이도록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준석과 동수 사이에 우정이 존재했는데, 그 우정을 변질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동수나 내나 건달 아니가. 건달이 쪽팔리면 안 될 거 아니가”라고 말하며 준석이 동수를 변호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교사는 이러한 단서들을 던져주고, 각 그룹에게 이 영화가 무엇에 대한 어떤 영화인지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심층에서 대립하는 주된 가치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곧 주제는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조장이 조원의 생각을 적어서 발표하라고 한다. 그러한 연후, 비교적 논리가 탄탄한 조를 선택하여 그 조의 조장이 사회를 맡고 전체 토론을 하게 한다. 발표하는 조원 모두 칠판 앞에 일렬로 앉게 하고, 작품에 대한 조원들의 생각을 발표하게 한 후, 다른 학생들이 이들에게 질문하고 답하게 하면 효과적이다. 교사는 칠판 오른편이나 왼편에 서서 토론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다.

    참고를 위해 이 영화의 중심사건이 어떻게 요약될 수 있는지 살피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친구』는 ‘준석이 동수를 죽였는가’라는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정을 그린 영화라고도,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립소 혹은 갈등의 요소도 달라질 수 있다. 준석이 동수를 죽였다고 볼 경우, 이 영화는 ‘준석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친구(우정)을 버린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에서 주되게 대립하는 가치는 ‘조직의 이익/우정’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 영화는 ‘조직이 이익이 우정보다 중요하다’는 주제를 그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볼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 때, 준석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것은, ‘조직의 이익/우정’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친구를 치졸하게 보이게 할 것인가/그것을 감추어 줄 것인가’이다. 이 경우, 준석의 우정은 매우 부각된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준석이 우정을 위해 친구의 허물을 덮어준 이야기’가 되며,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는 ‘우정은 친구의 치졸함마저도 덮어주는 것이다’라는 주제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전자로 읽을 경우, 곧 이 영화를 ‘조직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버린 이야기’로 읽을 경우, 준석이 조직의 이익 때문에 친구를 버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정하게 읽힐 여지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읽을 경우도 이러한 점은 많이 부각되지 않는다. 준석이 ‘멋지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준석이 그처럼 멋지게 느껴지는 데에는, 조직의 이익이 이른바 공적 가치로, 우정이 사적 가치로 치환되어 준석이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구현하는 인물처럼 미화된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

    준석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슬럼프에서 벗어난 이후로는, ‘건달이 쪽팔리면 안 된다’, ‘건달은 건달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랑스럽게 내세워 온 인물이다.29) 상대역인 동수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그려지는 것도 문제이다. 역으로 준석을 선한 인물로 여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30)

    어느 쪽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등장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교사의 생각을 밝힐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준석과 동수이다. 그런데 준석과 동수의 이야기가 상택의 내레이션으로 들려지기 때문에, 상택을 주인공으로 여길 가능성도 많다.31) 이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면, 일단 시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시점은 “시네아스트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선택한 것이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계산되고 구성된 지점”32)이다. 그것은 카메라에 의한 것이므로 물리적 의미의 시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심리적 시점, 나아가 정신적,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시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점은 영화가 독자에게 있어달라고 요청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의 경우, 시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다. 이 영화는 정상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이 내레이션은 시점 혹은 관점을 제공하는 효과를 낳는다. 처음과 끝의 내레이션을 다시 한 번 인용해 본다.

    상택은 네 친구들 중 가장 학력이 높을 뿐 아니라 모범적이어서, 독자의 신뢰감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학생들은 그를 신빙성이 높고 객관적인 화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신빙성이 높은 화자로도, 객관적인 화자로도 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친한 친구인 A와 별로 친하지 않은 B가 싸웠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황에서 주로 누구의 편을 들게 되는가? 당연히 친한 친구 A의 편일 것이다. 상택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상택은 동수보다는 준석과 친한 사이였다. 팔이 안으로 굽듯, 상택이 준석을 옹호하는 쪽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 있는 상택의 내레이션은 ‘추억’이나 ‘기억’을 환기시키면서 안의 이야기, 곧 친구가 친구를 죽였다고도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옹호’하거나 ‘포장’해 버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 영화가 준석이 동수를 죽인 이야기, 곧 친구를 버리고 조직의 이익을 선택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감독은 상택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런 비정한 이야기를 향수, 추억, 기억, 그리고 우정의 이름으로 덮어버린 것이 된다.

    이 영화를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주로 이 내레이션과 준석-상택의 우정을 그린 스토리라인(storyline) 때문이다. 감독의 의중이 어찌되었든, 상택의 내레이션은 거칠고 생경한 준석과 동수의 이야기를 친구(우정)의 시선을 동원하여 포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그 안에 싸여진 것이 조폭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설명하면서, 이 영화가 개봉된 2001년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는 것도 좋다. 2001년 이 영화가 개봉되고 얼마 안 되어서, 조폭들이 이 영화를 이른 바 ‘교과서’로 지정하고 단체관람을 왔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일이 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쓸모없어진 조직원을 죽이고 오라고 친구인 조직원에게 지령을 내렸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정이나 의리일 수 있다. 같은 솥에서 밥을 먹던 친구를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조폭이라 해도 쉬운 일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를 버려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버린 준석을, 선공후사 정신을 구현한 인물로 멋지게 그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조폭 세계뿐 아니라, 이른 바 ‘넥타이부대’로 통하는 40∼50대의 남성들도 이 영화에 열광하였다. 그 이유는 70, 80년대의 학창시절의 향수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가장 안 보는 계층이 40∼50대의 남성들이라고 한다. 물론 시간에 쫓기고 바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19세 미만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을 동원한 데에는, 이들 40∼50대의 남성들을 영화관에 불러들인 요인이 컸다. 의리 없이 팍팍한 현대인들에게 머리를 굴리지 않는 무식하지만 순수한 우정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는 평가도 있다.33) 팍팍한 인간관계에 싸여 살다보니, 이 영화에서 그려진 우정이 아름다워 보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준석을 끝까지 우정을 지킨 인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위와 같은 논리에 의거한다면 영화를 잘못 읽은 것이다.34)

    작품의 주제는 작품과 밀착한 아주 구체적인 것이라야 한다. 그것이 그 작품이어야 하는 이유, 그 작가만의 세계 인식, 그 작품의 정체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는 문장으로 표현되어야 그 의미를 더욱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제가 ‘조직의 이익이 친구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임을 위의 도식을 통해 알려주는 것도 좋다.

    작품의 해석은 독자 개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공통분모를 지닌 것이라야 한다. 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논리적인 답, 보다 적절한 답이 있을 뿐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정답이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논리적이고 적절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더 논리적인 답에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학습 의욕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주제 곧 작품의 의미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해서 찾아내는 것이라야, 학생 스스로 더 주제적이고 참여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이차적 읽기를 마무리 한다.

    29)준석의 건달에 대한 신념은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전문직 중의 하나로 여기게까지 만드는데, 이 점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피기로 한다.  30)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도 준석이 멋진 인물로 그려지기는 매한가지다. 이 맥락에서 준석은 우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곧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인물인 것처럼 미화된다. 어느 쪽으로 보든 준석이라는 인물이 미화되고 있는데, 그가 조직폭력집단의 행동대장이고 폭력을 주모하거나 실행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폭력 자체가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31)수업을 진행해 본 결과, 상택을 주인공으로 여긴 학생들도 많았다.  32)조엘 마니, 김호영 옮김,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4-시점』(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31쪽.  33)서울이 아니라 부산을 배경으로 선택한 점도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보다는 부산이, 표준말보다는 경상도 사투리가 인간적인 느낌, 향수 등을 자극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34)필자가 수업을 진행해 본 결과, 이 영화를 좋아한 것은 주로 남학생들이었다. 여학생들은 오히려 『친구』에서 말하는 우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경우가 많았다.

    4. 삼차적 수준-사회적ㆍ문화적 맥락 읽어내기

    영화 읽기의 삼차적 수준은 일차적, 이차적 수준에서 읽어낸 내용, 곧 작품에 드러난 의미와 문제점을 비판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입하여 사회적,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내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구체적 인물과 사건으로 구축된 있을 법한 세계이다. 때문에 독자는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직ㆍ간접적 경험들을 하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작가 혹은 감독이 궁극적으로 구현한 이념이나 가치, 곧 주제 외에도 그와는 다른, 혹은 상반된 여러 가지 이념이나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작품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작품에서 만난 이념이나 가치가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국면을 깨닫게 하여 가치관의 수정이나 재정립을 가져오게 할 때 감동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간접적 경험이 현실에까지 이어지는 경우이다.

    영화 읽기가 삼차적 읽기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시절은 앞으로 버젓한 사회인이 되기 위하여 기본적 소양을 기를 뿐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도 정립해야 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다양한 이념이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비판해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생이 경험할 수 있는 삶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간접 경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독서 및 영화 읽기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화는 작자의 관점이 직접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에, 인물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게 하면 감정적 영향을 받지 않고 그 문제를 객관적, 논리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였으며, 그러한 선택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기 교육이 인간 교육이 되는 것은 이러한 지점에서이다

    참고적으로 이 영화를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문제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마지막 문제인 ‘이 영화에서 이준석은 건달과 양아치가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건달/양아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준석의 생각을 긍정 혹은 비판해 보라’를 중심으로 3차적 읽기에 접근하는 예를 제시해 본다.

    사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달과 양아치의 구분은 매우 단순하다. 준석은 양아치를 ‘꼬마들한테까지 약 파는 존재’라며 건달과 구분한다. 영화의 내적 논리에 따르면, 양아치는 ‘19세 미만, 판단 능력이 없는 청소년들한테까지 약을 파는 사람들’이고, 건달은 ‘19세 이상,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들한테 약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 이상은 판단 능력이 있으니까 약을 사 먹고 안 사 먹고는 그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므로, 약 파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준석의 논리에는 일면 그럴 듯한 점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약’이 일반 의약품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19세 이상이든, 19세 미만이든 마약을 팔고 사는 것은 불법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소위 ‘조폭영화의 원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가 조폭영화의 원조가 된 이유가 바로 이 구분에서 시작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 이전에도 조폭 영화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전의 조폭영화는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조폭 영화는 주로 한 인물이 조폭 세계에 발을 디딘 후,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궁극에는 무참히 파멸되는 과정을 주로 그렸다. 곧 조폭집단의 비정함을 드러내어 비판적 시선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강한 영화들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35)

    그런데 『친구』 이후로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후에 양산된 영화들은 주로 좋은 조폭과 나쁜 조폭이 싸우다가 좋은 조폭이 승리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가문의 영광』,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등 그 예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좋은 조폭과 나쁜 조폭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구분이 시작된 지점이 바로 ‘건달/양아치’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지만, 좋은 조폭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실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003년 이준석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은 곽경택 감독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자기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도용해서 돈을 벌었으니, 수익금 중 일부를 물어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소송은 재판까지 갔고, 곽경택 감독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 곽경택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36) 이 돈을 이준석에 해당하는 인물에게 물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를 친구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학생들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문제를 던져보는 것도 좋다. 진숙, 준석의 엄마 등 다양한 의견이 등장할 것이다. 교사는 동수가 행두 조직을 치러왔을 때, 라면을 먹던 조직원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준다. 그는 ‘준석이 형님처럼 되고 싶어서’ 조직에 들어온 애송이였다. 그러나 먹던 라면도 다 못 먹고 칼받이로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다. 아마 조폭집단에 들어간 100명 중 99명은 그라면 먹던 조직원처럼 칼받이, 총알받이로 사라질 것이다.

    오늘날의 케이블 TV에서 성업 중인 대출 광고도 비판해 보게 한다. 무이자 몇 개월을 내세워, 엄청난 이자를 받아가는 구조를 감추는 사채업이 이제 버젓이 사업가의 옷을 갈아입고 양지로 올라와 케이블 TV 광고를 장악하고 있다.37) 『가문의 영광』 같은 영화의 예를 들어, 조폭이 대한민국 검사와 결혼하고 김치 사업까지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광고 심의가 없는 케이블 TV 시스템을 지적하고, 앞으로 어떻게 광고를 읽어야 좋을지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본다.

    컴퓨터게임의 실태도 비판해 본다. 컴퓨터의 많은 게임들은 내가 죽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실제 인간 세계에서는 협동이 필요할 때도 있고, 선의의 경쟁을 할 때도 있다. 경쟁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를 죽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임이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버리고 있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 비판해 보게 한다. 삼차적 수준의 읽기는 사회적, 현실적 맥락을 읽어내게 하여, 현재 우리의 위치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연습인 셈이다.

    영화의 허술함을 비판하게 하면서, 영화에 대한 해석의 눈을 가지게 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차상곤이 “니 의리가 뭔지 아나. 이기 바로 의린 기라.”라고 말하며 동수에게 돈와 칼을 건넨 장면 뒤에, 바로 준석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이 이어져 있다. 따라서 예민한 독자는 동수가 준석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언급은 영화 끝까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장면은 장면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셈인데, 감독의 편집 착오라고 볼 수 있는 점이 많다.

    위와 같이 영화 읽기에 접근하면, 영화를 단지 허구인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재로 쓸 수 있고, 읽고 듣고 말한 여러 내용을 글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글쓰기 지도가 가능하다. 아울러 세상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가지게 할 수 있다. 영화가 그려낸 우정에 대해 비판하고 그렇다면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논의하는 글을 써오라고 주문하는 단계에서 삼차적 읽기를 마무리 한다.

    35)같은 맥락에서 소위 ‘깡패영화’와 ‘조폭영화’를 구분한 논의도 있다 (정하제, 「영화적 액션 밑에 깔린 진지한 이야기 셋」, 현대미학사, 『공연과 리뷰』 제63호, 2008.12, 201쪽).  36)실제로 곽경택 감독은 당시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37)이 광고들은 대체로 20대를 목표로 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대출광고의 실상와 문제점을 적확히 알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다음 과제로 남겨둔다.

    5. 맺음말

    이 글에서는 읽기의 수준별로 토론식 학습법을 적용하여 영화 읽기의 학습 모형을 제시하는 동시에, 토론식 학습법이 영화 읽기에 매우 효과적인 학습법임을 증명하였다.

    영화 읽기는 단순히 흥미꺼리로 이용될 것이 아니라, 심층적 의미를 이해하고 미디어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토론식으로 영화 읽기에 접근하면, 영화를 단지 허구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읽고 듣고 말한 여러 내용을 글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글쓰기 지도가 가능하다. 아울러 세상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가지게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전자책(디지털북 혹은 e-book)이 종이책을 대신하고, 전자 교과서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38) 대학 교양 교육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미디어 읽기 교육에 더욱 천착하여야 할 때이고, 이미 그러한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문학과의 친연성이 크고, 같은 서사물이므로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흔할 뿐 아니라, 작품성이 높은 것이 많아 읽기 제재로 적절하다는 점에서 미디어 읽기의 시발점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이 글에서는 영화를 대상으로 미디어 읽기까지 나아갈 수 있는 토론식 학습 모형을 제안하였다.

    이 글에는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학습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데까지 나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필자의 문제 제기와 고민이 담겨 있다. 이 글은 『친구』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학습 방안 자체는 여러 작품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편, 더욱 현실적인 미디어 읽기 교육을 위해서는, 영화뿐 아니라 CF, 애니메이션, 드라마, 컴퓨터게임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작품들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38)『디지털 타임스』 , 2010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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