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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제조하기 Manufacturing ‘Hall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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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한류? 제조하기

Hallyu’(or Korean wave) is a global phenomenon of cultural consumption and appreciation for the Korean popular-cultural products and their derivatives. Under what critical juncture and institutional context, has Hallyu been born and alive well so far as a global trend? Under what context, has Hallyu acquired authentic form and contents, and direction? This is an attempt to answer these questions through insights from the historical institutionalism. Since its inception in late 1990s in China, Hallyu has been institutionalized along the two path-dependent currents in Korea. The unexpected sociocultural events in China are considered to be functioned as a ‘critical juncture’ for Hallyu. While a Fordism ‘as a metaphor’ in culture industry has been consolidated by Korean cultural entrepreneurs, a state-led industrialization in the sphere of popular culture has been launched by the Korean state. To initiate a state-led popular-cultural industrialization on the one hand, however, and to consolidate a Fordism(and Post-Fordism) in culture industry in Korea on the other are contradict in-itself respectively, and both are anachronistic. This constellation of institutions is responsible for the authentic characteristics of Hallyu, i.e., hyper-dynamics but lack of diversity in K-drama, over-emphasis of technicality in K-Pop, over-commercialism, and ever-present the stateness, and its future direction.

KEYWORD
한류 , 국가주도 문화산업화 , 역사제도주의 , 포드주의
  • Ⅰ. 서론 및 문제제기

    일찍이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에서 예상치 않게 일어난 한국 대중문화의 소비 열풍인 ‘한류’를 “중국을 위시하여 대만, 홍콩, 베트남등의 주민,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한국의 가요, 드라마, 패션, 관광, 영화 등 대중문화를 향유/소비하는 경향”으로 정의하였다(조한혜정, 2002: 4). 평소 문화변동 현상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 왔던 문화인류학자에게도 한국 대중문화의 ‘이상 소비’ 현상은 이해하기 힘든 “너무 급격하게 들이닥친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앞에서 당황한 것은 정부나 문화 산업분야 전문가나 기업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벌써부터 앞으로 한류를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콘텐츠’나 ‘전략’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한류는 이렇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시작된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서 당시 누구도 그 정확한 원인은 물론이고 지속가능성, 향후 진행방향, 그리고 앞으로의 파장등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2005년경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볼 수 있었던 다음과 같은 한류의 풍경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즈음에서 한류는 “광복이후 한국의 최대걸작”(강철근, 2006)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가슴이 뿌듯한 문화적 자부심”(김수이, 2006)을 한국인들에게 선사하였다. 2010년경 미국의 CNN 방송은 상하이발 기사로 중국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슈퍼주니어’를 소개하면서, 이 보이그룹은 “아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 수출품인 TV 드라마, 영화, 비디오 게임, K-Pop(Korean Pop)이라는 대중음악 중에서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지난 10년 사이에, 5천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한국은 일본에서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팬들을 매혹시키는 엔터테인먼트를 대량생산해내는 동방의 할리우드가 되었다”고 보도하였다(2010.12.31).

    2011년 6월 ‘SM Town Live’ 파리 공연은 유럽 최초의 공연으로서 1만 4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황을 이룬 한류에 관한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르 몽드」는 “파리의 공연장 ‘르 제니스 드 파리스’에서 열리는 콘서트 ‘SM타운’은 15분 만에 표가 매진되었고, 개최에 앞서 유럽 팬들 사이에서 공연 재개최 청원 운동이 벌어졌다.”고 보도하였다(경향신문, 2011.06.10). 또한「르 피가로」 는 ‘한류가 제니스에 몰려든다.’는 제목과 함께 “한국의 보이그룹과 걸그룹들이 프랑스인들을 열광시킬 예정이다.”라는 부제의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5년 전부터 한류는 일본음악을 압도하여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며 이는 “K-Pop이 서양에서 차용한 춤과 음악 등을 아시아인의 취향에 맞게 적용해 완전하고 스펙타클한 종합세트를 선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하였다(경향신문, 2011.06.10).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에서 최초로 ‘SM Town Live’ 공연이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렸으며, 이후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의 도시에서 K-Pop의 공연이 이어졌다(The New York Times, 2011.10.24). 블룸버그 TV는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에서 K-Pop을 주축으로 하는 한류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하였다(파이낸셜뉴스, 2011.02.20).

    2014년 현재 시점에서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2년 당시 조한혜정 교수가 내린 한류에 대한 정의는 한류의 생애주기에서 ‘태생기’ 국면에 한정된다. 그 이래로 한류는 ‘폭풍적’ 성장을 거듭하였고,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한류 열풍’의 풍경은 그 시점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그러나 역사적으로 문화적 변방에 위치해 있다는 자의식 속에서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문화가 남으로부터 존중받기를 학수고대해 왔던 ‘오래된 미래’였다.

    그리하여 한류는 일시적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거듭 부정하면서 하나의 독특한 글로벌 트랜드로 자리를 잡고 지속, 확산되어 왔다.1) 한류는 처음 시작된 이래 양적, 질적 변환을 거듭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특성들을 부가해 왔다. 첫째, 한류를 구성하는 대중문화의 장르가 다양화되었다. 한류는 TV 드라마에서 시작하였으나 이제 K-Pop을 중심으로 영화, 비디오 게임, 음식, 애니메이션, 패션, 한국어, 한국관광 등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둘째, 매체의 다각화와 향유·소비층의 확대이다. TV와 스크린, 음반 등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던 한류는 이제 위성과 인터넷, 휴대전화 등 유·무선 네트워크와 결합하였고, 국경과 시차를 쉽게 넘나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튜브(YouTube)나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쌍방향, 실시간 소셜네트워크(SNS)와 춤, 노래, 연기에 능한 ‘아이돌’(idol)들의 결합이 한류의 핵심이 되었고,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성별 구분이 없는 젊은 층이 한류의 주요 수용층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셋째, 지역적 확산이다. 한류는 중국에서 발원하여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그리고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중남미를 거쳐, 마침내 현대 대중문화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유럽과 미국까지 거의 전 세계 지역으로 확산되어 왔다.2) 이에 따라 한류에 대한 정의도 ‘한국의 대중문화 및 파생상품이 전지구적으로 향유되고 소비되는 현상’으로 확장되었다.

    이처럼 장르의 다양화, 매체의 다각화, 소비·향유층의 확대, 그리고 지역적 확산과 같은 진화 발전적 특성과 더불어 한류만의 독특한(authentic) 내용적, 형식적 특성인 역동성을 지녔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TV드라마 콘텐츠, 현란한 세련미를 갖추었으나 몰개성적인 K-Pop의 획일성, 과도한 상업성, 그리고 국가주도성이 지목되었다.3)

    그동안 이렇게 역동적으로 진화 발전하는 특성을 갖는 한류가 발생하고, 지속되는 기제에 대하여 사회심리학적, 문화론적, 정치경제학적 설명이 시도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화 이론적, 정책적 함의가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분석들은 주로 한류의 특정 측면이나 국면을 부각하는 일면적 설명이나 기술에 그치고 있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었던,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현상으로서 한류가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그리하여 한류가 언제, 어디서 발생하여,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어떻게 전 세계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왔는지에 대한 현상적 기술과 이에 근거한 전망은 풍부하나, 한류는 왜 그러한 특정한 내용과 형태를 갖게 되었고,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는가와 같은 한류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이론적 질문과 응답은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일회적일 수도 있었던 중국 TV방송에서의 한국드라마 방영이 어떤 제도적 맥락 속에서 한류라는 하나의 문화적 조류를 구성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왜 다른 때, 다른 많은 경우에는 한류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즉 한류의 발생과 특성화, 확산, 그리고 지속은 어떤 제도적 조건에서 가능하였는가?

    이 논문은 신제도주의적 접근, 그중에서도 역사제도주의적 입장의 이론적, 분석적 통찰력을 빌어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이 논문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다음 장에서 한류에 대한 기존의 설명들이 갖고 있는 기여와 한계를 분석한다. 그런 다음 역사제도주의적 접근의 이론적 특징 및 분석적 개념을 소개한 뒤, 한류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을 시도할 것이다. 결론에서 분석적 함의를 논의한다.

    1)유튜브는 2011년 12월 K-Pop 페이지를 처음으로 개설하였으며, 이는 23개의 독자적인 음악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는 의의를 갖는다. 구글 코리아(Google Korea)의 평가에 따르면, 2011년은 K-Pop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전지구적 흐름(a global trend)의 하나로 당당하게 서는 첫 해’였다.  2)2011년 현재 전 세계 235개국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K-Pop 비디오를 조회한 수치는 23억회를 기록하였다(중앙일보, 2012.01.02). 이 수치에는 싸이(Psy)의 ‘강남 스타일’ 조회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14년 10월 현재 누적 조회수 21억회를 넘긴 ‘강남스타일’은 2012년 7월에 출반되었다.  3)장원호 등이 수행한 4개국 한류 수요자 FGD(Focused Group Discussion) 조사결과에서 전반적으로 ‘철학적 깊이가 없고,’ ‘다양성이 부족한’ 드라마, ‘빠른 리듬과 현란한 댄스’가 있으나 ‘비슷한 노래가사’와 ‘느낌이나 감정적 몰입이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는 세뇌적 노래’(brainwash song), 그리고 과도한 상업성 등이 한류의 문제적 특성으로 지목되었다(Jang, Kim, Cho, and Song, 2012: 83, 86). 또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이 시행한 9개국 한류 수용자조사에서도, 한류의 지속적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점으로 콘텐츠의 획일성(19.1%), 지나친 상업성(16.4%)이 1, 2위에, 그리고 정부주도성(12.4%)은 5위로 나타났다.

    Ⅱ. 이론적 배경

       1. 문화수용론 및 사회심리학적 관점

    한류는 1997년경 중국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에서 비롯된 한국문화에 대한 폭발적 반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최초 반응은 어떻게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중국에서 통할 수 있는가라는 의아심과 호기심이었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었던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등장한 해석은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cultural proximity and discount)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문화수용론이었다. 문화적 근접성은 한 국가의 구성원들이 여러 국가의 문화를 수용할 때 자신들의 문화적 경험에 비추어 더욱 친숙하고 공감하기 쉬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Straubarr, 1991; 유승호·김민규, 2005). 한편 문화적 할인율은 어느 한 국가의 문화적 산물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관, 신념, 스타일에서의 독특성이 타국의 소비자들의 문화수용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정도를 의미한다(Hoskins and Mirus, 1988). 즉 양국간의 문화적 친숙도가 높고, 국가간 문화교류에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을 의미하는 문화적 할인율이 낮아서 한국의 문화 콘텐츠에 중국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할인율을 낮추는 데 기여한 양국 공통의 문화적 기반으로서 유교적 가족주의, 집단주의, 위계서열 및 예절 등이 거론되었다(박광해, 2004; 윤경우, 2006). 이후 동남아시아로 확대해가던 한류는 마침내 2003년경에는 동아시아에서 하나의 문화 중심국이라 자임하는 일본에서 TV방송 드라마 ‘겨울연가’의 방영을 계기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에서의 한류에 대한 최초의 설명 역시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이었다(윤경원·나미수, 2005: 29; 오미영, 2006; Hanaki, Singhal, Han, Kim, and Chituis, 2007).

    한편 일본에서 나타난 한류의 기원을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시간차’에서 찾는 사회심리학적 시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과거 일본 사회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 중심적이고 순수한 인간관계와 같은 가치나 규범을 ‘대리 체험’한다. 중년 여성들은 자신들이 잃어 버렸다고 가정되는 것들을 ‘노스텔지어’(nostalgia) 형태로 소비하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과거를 ‘상상 체험’한다(Iwabuchi, 2002; Nakatani, 2003; 윤경원·나미수, 2005: 30). 또한 한국의 대중문화는 일본인들에게 ‘약한 타자’(the other below)로서 작용하여 자신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전근대적 순수성, 유교적 가족주의나 집단주의적 가치 등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전후 일본 대중문화의 형성 및 발달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강한 타자’(the other above)로서 서구 및 미국의 대중문화와 구별되는 것이다.4) 중국 역시 문화혁명 시기에 잃어버린 유교적 전통에 대한 본원적 향수에서 한국 드라마를 소비한다고 분석된다(윤경우, 2006).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은 아직도 한류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활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에 의한 한류의 설명은 애당초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대중들에게 ‘착근’할 수 있었던 초기 ‘국면’, 즉 한류의 ‘지역적’ 기원을 설명하는 데서는 유효하지만, 한류가 동아시아의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가는 ‘국면’을 설명하는 데서 제한적이다(윤평중, 2006). 그리고 왜 이전에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상품이, 여전히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류를 형성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문화적 근접성이나 할인율은 한류 발생의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또한 노스텔지어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한국 TV 드라마를 매개로 자신들의 잃어버렸던 꿈을 상상 속에서 되찾으려 했던 사회심리학적 기제였을 개연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한류는 일본인들에게 잃어버린 과거를 되살리는 퇴행적인 약한 타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국면적’인 설명이다. 2005년경부터 일본에 진출한 K-Pop 남성 아이돌 그룹과 2010년경 진출한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더 이상 약한 타자로서 일본인들의 노스텔지어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존 일본 대중문화에 다양성을 더하는 기여를 넘어서,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나름의 독자성도 갖추어 오히려 위협으로 간주될 정도에 이르렀다.5) 한국의 K-Pop 아이돌 그룹들은 약한 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강한 타자에 가깝다. 따라서 노스텔지어나 약한 타자론은 한류의 발생 국면에 적합할 수 있으나 한류의 역동적 지속성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2. 문화제국주의, 문화적 근원주의, 그리고 문화민족주의

    국가 간 문화교류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관점인 문화접변(acculturation)이 국가간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하여, 문화제국주의는 특정 중심(core) 국가가 문화적 지배를 통하여 자국의 신념, 가치관, 지식, 행동규범, 라이프스 타일 등을 주변부(periphery) 국가에 강제하는 권력관계를 전제한다(Tomlinson, 1991; Crane, 2002; 임동욱, 2009). 그러나 문화제국주의론은 정치, 경제 구조적인 요인의 결정성을 과다 강조하면서 제국주의적 전지구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의 고양 및 주변부 문화영역의 내적 역동성과 문화 행위자들의 자발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근원주의적 입장과 문화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한류에 대한 대안적 설명이 시도되었다.

    먼저 문화근원주의적(cultural primordialism) 접근은 외국의 한류 소비자들을 매료시킨 ‘한국 대중문화’의 특성을 ‘한국 문화’의 원형에서 찾고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학술적 노력이다. 예컨대 사회학자 최석만(2007)과 이동인(2007)은 한류의 뿌리를 유교적 가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전통문화에서 찾고 있다. 최민성(2005)은 한류의 특성인 ‘열정’의 기원을 우리의 ‘문화적 원형질’인 샤머니즘에서 찾는다. 그는 이제까지 잠재되었던 원형질이 90년대 중반 탈이데올로기적 문화 환경을 맞아 일탈의 욕망을 강조하는 대중문화 부문에서 분출하였다고 본다. 이상훈(2006)은 현재의 한류와 유사한 ‘고려무’(高麗舞), ‘고려악’(高麗樂)과 같은 한국 바람이 고대와 중세에도 끊임없이 중국 대륙 내에서 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물론 한류가 한국의 전통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문화적 진공상태에서 발생하고 지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전통과 현재는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 전통문화의 어느 요소가, 어느 정도로, 어떤 기제와 경로를 통하여 현재의 한류와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특정(specify)해야 할 과제가 아직 남겨져 있다. 전통문화적 요소가 구체적 매개 고리 없이 현재와 연결된다면, 과거 수많은 역사적 시점과 계기에서 왜 ‘한류’가 발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에도 역시 전통문화가 동원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민족주의적 관점 또한 이러한 ‘양날’의 위험이 있다. 적어도 한류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한국은 중심부 구미(歐美)문화를 공식적으로, 그리고 반주변부의 일본문화를 비공식적으로 수입하여 왕성하게 소비하는 전형적인 문화적 주변부 국가의 위치에 있었다(박현주, 2006; 송도영, 2007). 그러나 한국은 압도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쇄도에 대해서는 ‘스크린 쿼터제’로,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수입금지 조치’와 같은 문화민족주의적 방어기제를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심부 및 반주 변부의 문화를 나름대로 현지화(glocalize)하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한류를 구성할 수 있었던 ‘시공간적 말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러한 ‘방어적’ 국면에서 한국의 문화민족주의적 전략은 의도하지 않은 순기능적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여기서 한류는 서구중심의 매체 제국주의적(media-imperialistic) 세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균열로 볼 수 있다(손승혜, 2009). 그러나 문화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한류가 한국 국민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느 사이에 이를 넘어 타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도취감을 팬서비스’하면서 집단적으로 균형감각을 잃게 하는 ‘공세 도구’로서 사용될 우려도 실재한다(조한혜정, 2002). 한류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이나 한류 수용국들 중에서 서구권과 비서구권에 대해 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의 태도에서 이러한 서열적 문화민족주의 정서가 보다 자주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6) 이처럼 한류에 대한 문화민족주의적 해석도 수세적 방어 국면뿐 만이 아니라 공세적 국면까지도 포함해야 할 과제가 추가된 셈이다.

       3. 문화 혼종화론

    문화적 혼종화(cultural hybridization) 개념은 문화제국주의론 및 문화민족주의론의 핵심적 개념인 ‘중심부의 문화적 강제와 이에 대한 주변부의 저항’이라는 이분법적인 도식 대신에, 중심과 주변 사이의 문화적 교류가 ‘정합적’(positive-sum)일 수있으며, 쌍방의 문화가 상호 풍부해질 수 있다는 이론적, 실천적 함의를 갖고 있다(Canclini, 1995; Golding and Harris, 1997; 이수안, 2012). 나아가 문화적 혼종화는 주변부의 문화가 다른 주변부나 중심부에서 수용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권능화’(empowerment)를 인정한다(Bhabha, 1994). 서구에 기원을 둔 팝음악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변형을 통해 J-Pop이나 K-Pop으로 형성되었고, 이제 K-Pop은 일본뿐 아니라 “팝의 고장인 서구에서 팬덤(fan-dom) 현상을 창출하면서 열광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은 전지구화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탈식민주의적 대안으로서 한류의 의의를 잘 드러내고 있는것으로 볼 수 있다(신현준, 2005: 10). 이처럼 한류 현상은 ‘서구의 콘텐츠에 바탕’을 두었으면서도 비서구지역에서 발원한 대중문화가 비서구지역(혹은 서구지역)에서 유통되면서 어떻게 지역적 정체성과 접합되는가, 그리고 비서구지역내 문화적 ‘중심’과 ‘주변’(혹은 반주변) 사이에 어떠한 양상의 권력이 존재하는가를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윤경원·나미수, 2004: 12).

    다만 주변부적 권능화의 개연성이 큰 제도적 조건에 대한 구체적 제시가 없는 혼종화 논의는 추상적이며, 결과론적 기술에 그칠 위험이 있다. 왜 식민지 경험을 갖고있는 모든 나라들이 나름대로 문화적 혼종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권능화를 갖지 못하는가? 어떻게 한류는 일본이나 서구로 역수출되는 동력을 가질 수 있었는가? 권능화의 조건은 문화적 혼종성의 정도인가 아니면 구성적 속성인가? 이러한 질문을 포함하지 않는 문화적 혼종화론은 한류에 대한 ‘설명’이기보다는 ‘기술’에 그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살핀 문화수용론 및 사회심리학적 관점, 문화제국주의 및 문화근원주의와 문화민족주의, 그리고 문화 혼종화론과 같은 다양한 입장에서 한류의 기원 및 성격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은 각기 나름대로 고유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이론의 핵심적 개념들인 문화적 근접성 및 할인율, 노스텔지어와 약한 타자, 문화적 제국주의 및 문화적 원형, 문화민족주의, 그리고 문화적 혼종성 등은 한류가 발생하는 개연성을 높이는 기여조건(contributing condition)으로서, 그리고 기왕 일어난 한류의 성격이나 완급, 방향을 변환, 조정하는 상황조건(contingent condition)으로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한류의 발생 및 지속, 그리고 확산과정에서 작용하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7) 그리하여 우리는 기존의 분석들을 통해 역동적으로 진화, 발전하는 한류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보다는 일면적이거나 국면적인 해석에 그치거나, 과도하게 근원적이고, 규범적인, 혹은 추상적인 설명을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한류가 발생하고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작용한 제도적 맥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희박하였다. 이러한 분석적 경향은 한류에 대한 학술적 관심 분포에 잘 반영되어 있다. 현재 한류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주로 경영학, 관광학, 문화콘텐츠, 그리고 신문방송 및 언론학 등 주로 실천적 학술부문에 몰려있으며, 사회학 및 철학, 문화인류학 등 이론적 부문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희박하다(김수정, 2009).

    한류라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이 발생하고 진화, 발전해 온 제도적 맥락과 역동성을 살피고자하는 이 연구는 역사적 제도주의의 이론적, 분석적 통찰력에 크게 의존하고자 한다. 역사제도주의적 입장은 특정 역사적 국면에서, 다른 경로가 아닌, 어떤 특정 경로를 취해 제도화된 맥락적 조건에 관심을 갖는다(Pierson and Skocpol, 2002). 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구조, 혹은 유형이 그곳에서, 그 시점에서 일어났으며, 어떤 맥락에서 제도화되고 정당화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을 살펴본다.

    4)몬테이로와 자야산카는 외국영상물 수용자들이 권력의 위계에서 자신들에 비해 강한 위치에 있는 ‘강한 타자’(the other above)와 약한 위치에 있는 ‘약한 타자’(the other below)를 구별하는 경향을 발견하였다(Monteiro and Jayasankar, 2000).  5)카라, 소녀시대 등 여성 그룹들은 “일본 걸그룹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가창력이 눈에 띄며, 비주얼과 댄스를 겸해 일본 젊은 여성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이다(여성동아, 2010.10에서 재인용). 또한 저명한 J-Pop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이마이 료스케가 트위터(http://twitter.com/ryosukeimai)에 올린 글은 일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잘 드러낸다. 이마이는 “(일본의 걸그룹) AKB48의 무대를 시청하고 있다. (⋯) 음악의 곡조, 발성처리, 춤, 스타일 등이 모두 소녀시대보다 뒤떨어진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 나처럼 위기를 느끼는 작곡가, 아티스트들이 많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스포츠투데이, 2011.02.14).  6)예컨대 한국의 언론들은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프랑스 파리 공연에 대한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도시 전체가 K-Pop에 열광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다. 그러나 정작 그곳 방송에서 한국 가수의 노래가 소개된 적도 없고, 대형 음반가게에서 한국 가수의 앨범을 구할 수 없으며, K-Pop은 그들이 선호하는 여러 가지 장르 중 하나라는 사실은 누락되어 있다(손승혜, 2011). 한편 서구인의 눈에 한국은 “한류를 앞세워 가난한 나라들에게 ‘소프트 파워’를 과시하면서” ‘아류 문화제국주의’를 실천하는 것처럼 보인다(The Economist, 2012.02.18).  7)산소, 불씨, 인화물질은 화재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가연성 소재로 지은 밀집형 건축물은 대형화재가 일어날 개연성을 높이는 ‘기여조건’이다. 가연성 소재의 건축자재 사용을 규제하는 법률이 없거나 있더라도 단속이 유명무실한 상황은 ‘일단 일어난’ 화재가 초대형 화재로 발전할 개연성을 높이므로 (기여조건의 범위나 정도를 변환, 조정하므로) ‘상황조건’이다(Vago, 2004). 즉 기여조건이나 상황조건 만으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Ⅲ. 역사제도주의적 관점

    전통적으로 제도주의적 관점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식적인 제도의 규범적인 측면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제도의 정의도 인간행위를 제한하는 공식적인 구조로 한정 짓고 분석의 범위를 제도 자체 및 제도의 규범적인 역할에 한정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주의적 관점이 현대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삶을 규정하거나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제도의 역동적인 역할을 분석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이러한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하여 새롭게 등장한 것이 신제도주의적 관점이다(Pierson and Skocpol, 2002).

    신제도주의는 제도에 대하여 상당히 폭이 넓은 정의와 분석 범위를 갖고 있다. 신제도주의에서 제도(institution)는 공식적인 제도 뿐 아니라 비공식적 제도, 문화, 이데올로기, 아이디어, 관습, 심지어 풍문까지도 포함한다(Pierson and Skocpol, 2002). 여기서 제도는 개인 및 집단의 이해와 선택을 제한하는 독립변수이자 동시에 개인 및 집단의 행위에 의해 생성되거나 변화하는 종속변수로 간주된다. 행위자들은 역사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역사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신제도주의적 관점은 3가지로 발전해 왔다.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rational-choice institutionalism)는 인간행위의 합리성과 제도적 균형을 강조하는 경제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Bates, 1984), 사회학적 제도주의(sociological institutionalism)는 제도의 합리성보다는 정당성에 주목하며(DiMaggio and Powell, 1983), 그리고 비교정치학 중심의 역사제도 주의적 관점(historical institutionalism)은 개인이나 집단 행위의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인 제도의 형성요인으로서 역사와 맥락을 강조한다(Thelen and Steinmo, 1992; Pierson and Skocpol, 2002). 이들은 각기 나름의 고유한 독자성을 갖고 있지만 분 석대상이나 방법론에서 점차 상호교차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학적 제도주의와 역사적제도주의 간에는 연구대상이나 방법론적 융합이 활발하다(Mahoney, 2000; Rueschemeyer and Stephens, 1997; Thelen, 1999; 마호니·루쉬마이어, 출간 예정).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의 핵심 분석개념은 ‘결정적 국면’(critical juncture)과 ‘경로의존’(path dependancy)이다. 먼저 어떤 사건이 단속적인 에피소드로 그치느냐 아니면 지속적으로 일어나 제도화 되느냐하는 것은 이 사건이 어떠한 후속적인 조치들과 함께 ‘경로의존적 자기강화 메커니즘’(path-dependant self-reinforcing mechanism)을 갖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특정 유형이 미래에도 지속되게 하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의 방아쇠를 당기는 사건이 바로 ‘결정적 국면’이다(Pierson and Skocpol, 2002: 6).

    그리고 ‘경로의존’은 어떤 한 시점에서의 선택이 ‘자기강화적인’ 역동성, 혹은 ‘긍정적 피드백’을 가지면서 결과적으로 다음 선택과정이 제한되는 경향을 말한다(Pierson, 2000; Mahony, 2000). 초기단계에는 비교적 작은 자극에도 크게 좌우되는 ‘초기 조건의 민감성’을 갖지만 일단 행위자들이 어떤 경로를 선택하여 어느 정도 계속하면 처음에 선택한 경로를 거스르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초기에는 선택가능성이 커 보였던 대안들도 점차 택하기가 만만치 않아 진다. 따라서 결정적 국면 직후에 진행된 사건이나 과정들이 경로의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해 진다. 경로의존은 초기의 ‘우발적’이고 사소한 권력차이가 점차 자기강화적 과정을 거치며 조직과 제도에 내재화되어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경로의존적 경향을 자극했던 최초의 사건이 사라진다 해도 그 경향은 지속되는 속성을 갖는다.8) 즉 특정한 제도를 가져오는데 작용한 힘과 이를 지탱하는 힘이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현재적 결과로부터 과거의 원인을 유추할 수 없는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을 갖고 있다.

    결정적 국면과 경로의존을 분석적 개념으로 활용하는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은 이러한 과정이 시계열적으로 진행되는 ‘제도적 맥락’(institutional context)을 중시한다. 역사적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에 앞서느냐 아니면 뒤에 오느냐라는 순서는 경로의존의 진행 및 결과에서 결정적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타이밍’(timing)과 ‘순서’(sequence)가 중요해진다.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나 유형은 결정적 국면을 거치면서 형성된 경로의존이라는 제도적 맥락 속에서 제도화된다. 일단 형성된 제도는 긍정적 자기강화 기제가 작용하는 경로의존 속에서 지속되고, 공고화 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을 갖는다. 나아가 제도는 변화무쌍한 환경의 도전에 대하여 ‘제도적 중층화’(institutional layering)나 ‘제도적 변환’(institutional conversion)과 같은 기제를 통해 응전하며 진화한다(Thelen, 2004).

    8)이러한 경로의존의 속성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구조가 형성되고 큰 권력이 주어진다는 기능주의적 설명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Ⅳ. 한류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

    우리는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에서 한류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있다. 한류 발생의 ‘결정적 국면’은 무엇이었고, 한류는 어떤 경로의존적 자기강화 메커니즘을 통해 제도화되어 나름의 독특한 형식과 내용, 그리고 방향성을 갖게 되었으며, 지속성을 갖게 되었는가?

       1. 결정적 국면

    대개 한류의 시발점을 중국의 CCTV에서 1997년 6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방영된 한국의 TV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찾는다(신진호, 2005).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한 이 드라마는 외국드라마로서는 경이적 시청률인 4.2%를 기록하였으며,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해 황금시간대로 옮겨져 재방영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9) 이후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서 인기를 끌며 속속 진출하였다. 이와 함께 H.O.T를 비롯한 한국 가수들의 진출도 두드러졌다.10)

    이처럼 한국 TV방송 드라마의 중국 방영이라는 ‘일상적 사건’이 향후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적 조류를 형성하는 ‘결정적 국면’으로 작용하는 데에 어떠한 조건들이 부가적으로 중첩 되었는가 살펴보자. 애초에 중국에서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가능했던 구조적 유인이 있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 대도시 및 해안도시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해 온 중국은 1990년대 중반 즈음에 이르러서는 대중문화 소비층의 급속한 성장 및 소비욕구의 팽창, 그리고 자체적으로 이를 충족시킬 만한 문화적 자원의 공급부족이라는 일종의 문화지체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폭발적으로 개설된 지역 방송국들의 프로그램 수요를 메워야할 구조적 유인이 발생하였고, 한국의 방송 콘텐츠가 이를 채우게 되었다(윤경우, 2006: 49-50; Leung, 2008).

    한편 중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문화개방의 정책적 유인이 있었다. 중국의 TV와 라디오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대중매체는 국가소유이다. 대중매체를 어떻게 운영하고, 기준을 세워 집행하고, 과정 및 결과를 감독하는 주체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이다. 중국정부가 1990년대에 들어서 대외적인 문화개방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인 것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의 대내외적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는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신진호, 2005: 233). 이러한 문화개방정책에 힘입어 1990년대 초, 중반 중국의 안방극장에 먼저 진출한 것은 일본과 대만의 드라마나 가요였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반환, 대만과의 활발한 양안 교역, 일본과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영토문제가 촉발되면서 문화개방의 초점이 한국으로 옮아진 것이다(윤경우, 2006).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방송 드라마나 K-Pop은 비록 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하여 제작한 수출상품이 아니었지만 중국의 특수한 구조적, 정책적 요구에 부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유인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TV드라마나 K-Pop은 유교문화와 미국의 상업주의적 대중문화의 독특한 혼종적(hybrid) 결합으로서 전통과 현대의 충돌, 글로벌화와 지역화의 충돌을 내포하는, 그리하여 미국 문화의 직접적인 수입과 이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문화 콘텐츠로 간주되었다(Leung, 2008).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로서 문화적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하는 「인민일보」는 “한국 드라마에서 나타난 유행과 휴머니즘, 사회세태 반영 및 문화적 함의는 동방문화 특유의 멋과 끝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하여 문을 열었다(신진호, 2005: 229에서 재인용). 더욱이 당시 IMF 위기를 겪은 한국의 TV방송 드라마 가격이 품질에 비해, 그리고 일본의 방송 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대량 수입이 용이하였다는 시장적 유인도 호의적으로 작용하였다(Shim, 2006; Yang, 2012: 136).

    이처럼 문화 수용국의 구조적,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유인과 공급국의 내용적, 시장적 유인이 ‘선택적 친화력’을 갖고 ‘중첩되는’(overdetermined) 중국이라는 시공간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상소비 열풍이 일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와 민간으로부터 ‘경로의존적’인 제도적 반응을 유발하는 ‘결정적 국면’이 되었다.

       2. 경로의존적인 제도적 맥락의 형성

    중국에서 일어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일련의 이상소비 ‘현상으로서’(as a series of events) 한류는 한국의 일반인 뿐 아니라 학자, 정부관료, 그리고 문화기업가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가운데 ‘너무 급격하게 들이닥친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이었지만, ‘제도로서’(as an institution) 한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문화기업가들과 정부의 이해는 일치하였다. 한편으로는 협소한 국내시장의 경계를 넘어 동아시아 지역, 나아가 전지구적 수준의 대중문화 수출을 통하여 경제적 수익을 창출, 확대하려는 문화산업 기업가들의 이윤 동기와, 다른 한편으로는 한류를 통한 국가 이미지 상승과 한국산 상품의 이미지 상승, 그리고 이를 통한 수출증대 효과를 기대하는 국가 정책 담당자들의 의도가 ‘제도로서’ 한류에서 겹쳤다. 다만 이러한 대중문화에 대한 산업적, 정책적 의도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경험이나 전략적 모델이 민간에도 그리고 정부에도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정부와 민간부문은 중국에서 일어난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건을 제 각각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기회로 포착하였고, 각기 나름의 경로를 설정하여 실천하였는데, 국가는 자기가 주도하는 문화산업화 경로를 택하였고 민간 문화산업부문에서는 기왕의 포드주의(Fordism)를 심화시키는 경로로 나아갔다.

    1) 국가주도의 문화산업화

    한국의 국가에게 한류는 구체적인 문화산업 정책의 방아쇠였다. 한류 이전의 정부 당국자들에게 ‘문화’는 추상적인 정책구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예컨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1998)는 ‘선진문화복지국가 진입’을 문화정책의 이념으로 삼고, ‘신한국 창조를 선도하는 문화창달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문화부문 예산이 정부예산의 1%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은 정 책적 ‘구호’에 그쳤을 뿐 실천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1998-2003)시기 문화정책 담당자들은 중국에서, 그리고 시차를 두고 일본에서 예기치 않게 일어난 한류의 불씨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기 위하여 문화산업 발전 모델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가졌고, 이전 6-70년대 발전국가가 민간부문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 모델’을 되살려 원용하였다. 그리하여 국민의 정부는 ‘21세기 문화국가의 실현’이라는 정책이념 아래 문화산업의 ‘국가 기간산업화’를 구체적 목표로 내세웠다. 문화산업에 대한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강화하여 문화 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정부예산의 1% 이상이 배정되도록 예산을 증가시켰다. 1999년에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제정을 통해 문화산업의 예산을 전년도에 비해 500% 이상 증액시키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스스로 ‘문화대통령’을 자임하고 소설가 출신을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한류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 정책을 시작하였다.11) 뒤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2003-2008)에서는 ‘문화산업 5대강국 실현’이라는 정책적 기치아래 문화산업의 경제적 효용이 강조되었다. 청와대가 발표한 ‘참여 정부 문화산업정책 비전’에서는 한류를 전체 문화산업 발전구도에서 파악하고 있다. 2005년초 국무총리실에서 주최한 ‘한류대책회의’는 한류가 문화관광부의 틀에서 벗어나 범정부적인 종합대책의 대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이병민, 2007).

    국민의 정부 초기에 한류의 조짐에 의해 촉발된 문화산업 정책은 참여정부를 거쳐 마침내 이명박 정부시기에 이르러서는 ‘문화콘텐츠산업화’로 정점에 달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2008-2012)는 한류에 관련된 콘텐츠만을 중점적인 육성대상으로 선정하고 여타 문화예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배제하는 ‘1960-70년대 발전국가식’ 산업육성정책을 시행하였다(최영화, 2013: 256). 문화관광부는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콘텐츠강국’의 목표 달성을 위해 총리 직속으로 기획재정부 등 11개 부처가 참여하는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를 구성하고 ‘제1차 콘텐츠산업진흥 기본계획(2011-2013)’의 이행을 위한 ‘2012년 콘텐츠산업진흥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한류를 국가전략 산업으로 등장시키는 ‘범국가적 콘텐츠산업 육성’을 문화산업 정책으로 구체화하였다. 정부가 특정 산업부문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이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제휴하여 재정을 확대하는 방식은 과거 발전국가 시기에 많이 보아왔던 산업육성 정책이다.

    그러나 애당초 자유분방함과 창발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무한대의 새로움을 창조해 나가는 속성을 지닌 ‘문화’ 영역을 관료제적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산업화를 통하여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모순적’이었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가 문화산업을 국가기간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내세운 시점은 이미 과거 발전국가 주도의 산업화에 따른 혹심한 정치, 경제, 사회적 후유증을 고쳐나가는 시기였다. 주지하는 바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과도한 국가개입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였고, 이후 5, 6 공화국 정권들을 거치며 발전국가는 급속히 해체되어 갔다(김명수, 1990). 더불어 발전국가의 상징인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과 산업정책도 포기되었다. 이미 해체된 과거 발전국가가 시행했던 제조업 중심의 산업육성정책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국가와 민간부문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재설정하고, 이를 통해 수출주도 문화산업의 일환으로서 한류를 발전시키겠다는 국가의 의도는 다분히 ‘시대역행적’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 필요한 정책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발전국가가 해체된 상황에서, 즉 산업정책의 수립이 공식적으로 포기된 상황에서 발전국가식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려하니 ‘소리는 요란하나 실효성이 적은’ 부작용이 양산되기 쉬웠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 중국에서 한류가 대활약하는 것에 고무된 한국정부가 대대적인 한류진흥책을 마련하여 공표하자, 중국 정부가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여 한류에 대한 규제책을 마련해 실시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윤경우, 2006). 손승혜(2009: 127)는 “한류만큼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공공연하게 홍보한 정책도 드물지만, 한편으로는 정책의 효과와 효율성에 대해 그만큼 논란이 많이 제기된 현상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 및 산하기관들의 문화산업에 대한 부적절하고 직접적인 개입은 이제까지 민간이 주도한 문화현상으로 서 한류를 국가주의적 ‘문화 침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치환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낳았다.12)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베트남 정부의 한류방송에 대한 제한조치는 이를 잘 말해준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용국 국민들에게 한국 정부가 ‘뒤에서 조종’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 한국의 대중문화를 적대시하는 ‘혐한류’(嫌韓流) 나 ‘반한류’(反韓流)를 조장하기도 하였다(한영균, 2013; 주정민, 2013).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 일본에서 일고 있는 반한류는 과도한 상업주의와 함께 국가개입주의에 대한 문화민족주의적 반작용의 성격이 크다.

    이처럼 한류는 결정적 국면 이후 정부 관료조직에 내재화되고, 정책적으로 심화 확대되면서 제도로서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제도로서 한류의 형성과 공고화는 정부의 정책적 성과나 정부 관료조직의 효능(effectiveness)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경로의존적 타성(inertia)의 효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가주도 문화산업화가 야기한 모순과 시대착오성, 부작용과 역기능, 그리고 비효율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류에 대한 국가개입은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작 한류의 발전에 적합한 정부의 역할은 민간부문의 문화적 창발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병참적’(logistic)인 지원에 국한하는 것이겠지만, 과거로부터 축적된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한국사회의 ‘문화적 기억’(cultural inventory)에는 민간에 대하여 ‘적절한 거리’(arm’s length)를 유지하면서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 모델은 없었고, 새로이 만들어 나갈 역량(state capacity)도 없었다. 그 대신 정부는 과거 발전국가 주도에 의한 제조업 중심의 수출산업화 모델을 원용하여 국가 주도에 의한 문화산업화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였으며, 여기서 민간부문 연예기획사들은 문화산업화의 ‘하위 파트너이자 산업역군’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원용진·김지만, 2011).

    2) 문화산업 부문의 포드주의

    한류의 발전적 증후를 본 한국의 국가가 ‘관성적’으로 문화산업발전 정책을 수립하여 개입을 시작하기 전부터 민간부문은 이미 문화산업에서 ‘은유’(metaphor)로서 포드주의를 수립하여 실천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의 한류 열풍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주지하는대로, 포드주의는 미국의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유래한 생산성 혁신으로서, 노동자들이 일관조립공정(assembly line)에서 단순화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연장들을 사용해서 표준화된 상품을 제조하는 생산방식이다(이영희, 1994). 포드주의는 자동차 산업에서 비롯되었지만 전체 산업분야 및 사회전반에 걸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1) 복잡한 과업이 단순하게 분할되며, 이를 통해 복잡한 전체(complex whole)의 생산이 표준화된 부품(standardized parts) 생산으로 분할된다; (2) 표준화된 부품들이 교체가 용이하게 되어 상황에 따른 적응력과 유연성이 높아진다; (3) 표준화된 생산공정에 따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포드주의의 키워드는 파편화, 표준화, 유연화, 그리고 대량화이다. 점차 포드주의가 제조업 생산의 원리로서 일반화되면서 파편화된 노동의 소외와 표준화된 상품의 몰개성적 취향은 포드주의가 가진 역기능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러한 포드주의 생산방식이 지배적인 대중소비사회는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반발 및 점차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선호, 그리고 급변하는 환경에 부응하기 위하여 유연생산체제(Flexible Manufacturing Systems) 등 다양한 생산 혁신을 도입하면서 후기 포드주의(Post-Fordism) 사회로 전환되어 왔다(Jessop, 1992).

    여기서 활용하는 ‘은유’로서 포드주의는 제조업부문의 생산혁신으로서 포드주의의 핵심원리가 문화산업에서 원용되는 상황을 의미한다.13) 한류 드라마의 변화무쌍한 스토리 전개에 내재한 획일적 패턴의 무한 반복성과 화려하고 세련된 K-Pop 아이돌 그룹의 거의 완전무결하지만 과다하게 강조된 기계적 테크닉과 같은 한류의 문화적 형식과 내용에서의 독특성은 바로 한국 문화산업에서 드러나는 포드주의적 ‘증후군’(syndrome)이다. 물론 ‘은유적’ 포드주의는 영화, 게임 및 애니메이션 산업을 포함하는 한국의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보편적 ‘작동 원리’이지만, 여기서는 한류의 진원지에 가까운 TV 드라마와 K-Pop에 분석을 국한시킬 것이다.

    먼저 한류 발생의 결정적 계기에서 단초를 제공하였던 한국 TV드라마는 내용이 매우 역동적이나 천편일률적 유형이 되풀이된다는 것이 특성으로 간주되고 있다. 짧은 시리즈 안에 출생의 비밀, 엇갈린 양육과정, 기억상실, 신분계층적 상승이동에 의한 인생역전, 복수, 그리고 화해와 해피엔딩과 같이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소재들이 모두 들어가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또한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주제가 역동적이고 압축적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다른 문화권의 시청자들조차도 쉽게 빠져들 수 있다. 더구나 문화적 세계체제의 반주변부적 위치에 있는 한국의 TV드라마 콘텐츠들은 중심부 국가의 문화 소비자들에게는 노스텔지어의 대상으로, 그리고 주변부에는 ‘강한 타자’의 대상으로 각기 차별적으로 작용하여 전지구적으로 ‘전방위적’인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 TV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소재의 천편일률성은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사이의 권력관계, 시청률 지상주의, 스타시스템, 그리고 작가주의와 같은 한국 TV드라마 제작을 둘러싼 제도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방식은 하나의 드라마를 방영 이전에 제작하여 작품의 완성도 및 작품성을 보고 방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사전제작 방식이 아니다(장규수, 2011; 매일경제 한류본색팀, 2012). TV방송사는 무엇보다도 시청률을 최우선시하고, 외주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방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작품성이라는 불확실성보다는 시청률 확보에 용이한 스타를 앞세우는 작가를 택하며, 작가는 완성된 전체 대본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청률에 따라 변경이 가능한 ‘쪽 대본’을 제공하고, 이에 따라 TV 드라마는 임기응변적으로 순발력 있게 제작된다. 이처럼 시청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한국의 드라마 제작방식은 하나의 전체 드라마를 부분으로 분할하고, 시청률 상황에 따라 언제든 부분 교체가 가능한 방식으로 현장 제작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청자들의 기호에 맞추다보니 자극적인 소재에 뻔한 결말로 이어지는 ‘표준화된’ 상품으로 매번 귀결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시청률 지상주의 아래 ‘최대 다수의 소비’를 위한 생산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포드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제작방식은 시청률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역동적이긴 하지만, 시청자들의 기호에 영합하다보니 전체적으로 균형감 및 작품의 완성도(integrity)가 떨어지며, 매번 되풀이되는 ‘진부한 패턴’(cliche)에 점차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한편 K-Pop 부문에서 처음부터 한류를 선도하고 지속적으로 주도해 나간 것은 ‘문화 기업가’(cultural entrepreneur)들이었다. 이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해외로부터 주어진 ‘우발적’ 기회를 포착하여 ‘사업’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창안들을 모색하였고 실천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슘페터(Schumpeter)적인 의미의 ‘기업가’(entrepreneur)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14) SM기획과 A-Stars 등은 일본 연예매니지먼트 산업의 프로덕션 시스템을 모방적으로 도입하여 ‘기획사’라 는 연예기업 조직을 수립하였다. 연예인을 충원하는 ‘도제’ 훈련기구로서 ‘연습생’ 제도도 일반화되었다. 특히 SM기획은 1990년대 말 자기회사 내에 캐스팅과 트레이닝 부서를 설치하고 전문적인 스타양성 시스템을 구축하여 H.O.T, S.E.S. 신화 등을 ‘성공적인’ 아이돌로 등장시켰다. 마침내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SM, YG, JYP는 기획-훈련-제작-매니지먼트를 일관하는 ‘인하우스(in-house)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이를 통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였다. 그 결과 K-Pop의 남녀 아이돌은 세련된 매너와 용모, 뛰어난 테크닉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이동연, 2014). 이후 국내 대다수 연예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모방하였다.15) 이처럼 한국의 연예산업에서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시장상황과 조직기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적인 일본의 조직 모형이나 국내의 선도기업 모형을 따라서 기업을 조직하는 ‘모방적 동형화’(mimetic isomorphism)가 왕성하게 일어났다(DiMaggio and Powell, 1983).

    한류의 핵심적 요소가 된 K-Pop 아이돌 그룹은 수년 단위(3-5년 혹은 7-8년)의 장기간, 고강도, 규율적 훈련과정으로 짜여진 연습생 제도를 거치면서 균일적인 멤버를 육성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부품화,’ ‘유닛화’되어 교체가 가능한 멤버들로 편의적으로 결성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연습생 과정에서 ‘기예적’(acrobatic) 그룹 댄스와 부르기 쉬운 반복적인 ‘훅송’(hook song)을 끝없이 연마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세계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수 백곡 중에서 취사선택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포드주의 원리를 차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K-Pop의 선도적 제작자인 이수만 회장이 창안하여 기획사를 통해 구현한 ‘문화기술’(CT: Cultural Technology)은 포드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테일러(Taylor)의 ‘과학적 관리론’(Scientific Management)을 연상케 한다. 그가 일컫는 문화기술은 문화산업적 환경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적 장인들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형식지’(formal knowledge)로 전환하여 매뉴얼로 만들고, 이를 장기간의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연습생들에게 습득시켜 ‘연예인’을 만든다는 것이다(이지훈, 2011). 주지 하는 대로, 과학적 관리론은 제조업부문에서 생산성 혁명을 가져왔지만, 장인들의 탈숙련(deskilling)을 통한 기계화, 노동자들의 ‘구상과 실행의 분리’, 전체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가의 통제와 지식의 독점, 그리고 노동과정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의 소외를 불러왔다(Braverman, 1974). K-Pop 아이돌 그룹들의 세련미와 현란한 테크닉이 소비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할 정도로 매혹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룹 멤버들이 자기들의 노래로부터 소외를 경험하며,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factory girl, cookie-cutter)과 같이 몰개성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소지가 바로 이러한 포드주의의 문화 기술적 속성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16) 나아가 K-Pop 아이돌 그룹의 유닛화, 개별화, 다국적화 등 유연화 시도는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선호와 기계적 획일성에서 오는 몰개성화, 그리고 아이돌 그룹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라는 포드주의적 문화산업의 역기능에 대한 후기포드주의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17)

    한편 한국의 문화기업가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그룹 활동을 통하여 각자 전문성을 심화시켜 궁극적으로 완숙한 예술인이 되도록 돕기보다는, 그들의 그룹 활동을 예능이나 연기 등 다른 부문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지명도를 얻기 위한 ‘한시적’ 과정으로 여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아이돌 그룹의 대중문화 활동을 ‘상업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로 인해 아이돌들의 ‘예술적 일관성’ (artistic integrity)이 의심 받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으며, 문화기업가를 비롯한 한류 종사자들은 과도하게 상업성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를 남기고 있다.

       3. 한류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의 의의

    이제까지의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회성에 그칠 수도 있었던 중국에서의 일련의 사회문화적 사건들은 한국 내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에서 ‘경로의존적인 제도적 맥락’(path-dependent institutional context)이 형성되게 하는 ‘결정적 국면’으로 작용하였다. 이로써 한류가 일시적 ‘유행’(fad)을 넘어서 하나의 ‘흐름’(current)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구성된 ‘제도적 복합’(constellation of institutions)의 성격은 향후 한류의 성격, 방향, 지속성 여부, 확산 정도를 크게 좌우하였다.

    사실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이었던 포드주의가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지배적인 원리로 작용하는 양태는 모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시점에서 국가기구가 수출중 심적 문화산업화를 주도하면서 한류를 문화산업의 핵심으로 육성하려고 시도하는것 역시 모순적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모순적인 경로의존적 경향은 공생적(symbiotic) 상호작용을 하면서 공존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한류만의 독특한 성격인 전방위적인 역동성과 함께 TV드라마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천편일률성, K-Pop에서 보이는 기계적 몰개성, 과도한 상업성, 그리고 국가주도의 편재성이 비롯되었다.

    이러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은 기존의 한류에 대한 설명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먼저 기존의 문화적 근접성과 할인율에 의존한 설명은 한류가 문화적 유사성을 넘어서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제한적이다. 이 논문에서 시도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한류의 전지구적 확산은 한국의 문화산업이 제조업으로부터 차용한 포드주의를 제도화한 것에 힘입은 것이다. 포드주의적 생산체제를 갖춘 한국의 문화산업은 문화적, 지리적 할인율이 대폭 낮아진 대중문화 소비재로서 한류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생산, 보급할 수 있었다. 대량소비에 부응하는 보편적 문화 상품 생산에 적합하면서도 소비자 선호 및 매체 기술의 변동 등 시장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도적으로 수요를 창출하기도 하는 생산체제로서 포드주의(혹은 포스트-포드주의)를 제도화한 한국의 문화산업은 각종 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천후적’으로 한류가 지속되게 하였다. 더구나 한국의 문화적 반주변부적 위치는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하여 같은 한류 상품이라 할지라도 중심부 소비자들 에게는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 주변부 소비자들에게는 ‘강한 타자’로 작용하여 ‘전방위적’으로 시장이 확산되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국 문화산업에서의 포드주의가 한류의 전천후적, 전방위적 역동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기업가들을 과도하게 상업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예술적 성실성을 훼손하며, 한류의 내용 및 형식에서의 예술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한류의 양면적 특성은 문화산업에서의 포드주의가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적 한계일 것이다.

    문화산업에서 국가의 개입 역시 ‘양날의 칼’이다. 어느 국면에서 국가는 중심부의 문화제국주의적 공세에 대한 문화민족주의적 방어기제로서 방어전선의 선봉에 서있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국가는 문화산업화를 주도하면서 문화부문에 깊숙이 개입하는 동시에 주변부 문화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상품수출 시장의 확대를 노리는 최전선에 서서 ‘아류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반한류’를 유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역시 문화산업에 개입하는 국가의 모순적 위치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한류를 둘러싼 ‘포드주의 문화산업화’와 ‘국가주도 문화산업화’라는 두 개의 제도적 맥락은 각기 모순적이면서도 하나의 제도적 복합을 구성하면서 공생적 상호작용을 통해 한류를 지탱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제도적 복합이 한류를 지속시키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제도의 경로의존성 자체가 지속성을 담보로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류가 유난히 끈질긴 생명력과 왕성한 환경 적응력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의 독특한 문화에 ‘배태’(embedded)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릇 모든 제도는 그 사회의 문화에 배태되면서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한다.18) 온갖 외적, 내적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지속되며 확산해 나가는 한류의 지구력은 바로 한류가 한국문화의 혼종적(hybrid) 특성에 배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세울 수 있다. 아무튼 한류가 비록 문화적 주변부에 위치한 한국에서 발원하였으면서도 전방위적·전천후적 역동성을 갖고서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지속, 확산되어 왔던 데는 바로 ‘국가부문’과 ‘민간부문’의 모순적이지만 공생적인 제도적 복합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 논문의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은 혼종화 이론을 통해 한류를 설명하려는 기존의 시도들이 결여하고 있는 ‘권능화’의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시도한 한류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의 의의는 기존의 일면적이거나 국면적인 설명들을 일관된 설명틀 안에서 맥락화(contextualize)하여 전체로서 설명력을 높인데 있다.

    9)당시 평균 외화시청률이 1%대였으며, 역대 순위 2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경이적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동아일보. 2004.12.27).  10)중국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잡지의 2002년 6월 인기순위 상위 10위는 한국인 4인을 제외하고, 6명 모두 일본 연예인들이었다. 그러나 2004년 5월 인기순위에서는 한국 연예인들 8명이 10위 안에 자리를 잡았고, 2명은 미국인이었다. 한국의 부상과 일본의 퇴조가 뚜렷하였다. 2005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한국드라마 5편 이상 시청자가 44.8%인데 반하여 중국 드라마 시청자는 37.3%에 불과하였다(국민일보, 2005.04.15).  11)한국의 문화산업은 1990년대 이래 급속히 성장하였다. 특히 국민의 정부시기인 1999-2003년 기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6.1%씩 성장한 반면, 한국 문화산업의 총매출은 매년 평균 21%씩 성장하였다. 비록 2003년 이래 전지구적 경기후퇴에 따라 문화산업 매출 성장률도 4.2%로 낮아졌지만(문화관광부, 2003; 문화체육관광부, 2010), 같은 기간 문화산업의 총 수출액은 1998년 4.1억$에서 2004년 9.4억$로 배가되었고, 다시 2008년에 18.8억$로 배가되었다. 그러나 전체 산업의 수출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영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12)「르 몽드」는 유럽의 한류에 대해 “음악을 수출 가능한 제품으로 만든 제작사의 기획대로 만들어진 소년과 소녀들이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진출한 것”으로 본다(르 몽드, 2011.06.11. 오마이뉴스, 2011.06.13에서 재인용). 「이코노미스트」역시 한류를 ‘대중문화를 이용한 국가선전’의 일환으로 간주한다(The Economist, 2012.02.18). 언론 보도 뿐 아니라 학술연구들도 한류를 한국 정부의 정책적 산물(government  construct)로 보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Walsh, 2014).  13)최우영은 60-80년대 한국에서 지배적이었던 미국 대중문화의 대량수용 및 대량소비 행태를 ‘문화적 포드주의’로 개념화하고 있으며(최우영, 2007: 92), 여기서 활용하는 문화적 생산방식으로서 ‘은유적’ 포드주의와 구별된다.  14)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은 한국 연예산업의 선두에서 기술적 창안을 선도해왔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을 바탕으로 SM 제작시스템을 만들어 실천하였으며, 그 결과 보아, H.O.T,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f(x), EXO 등과 같은 수많은 남녀 아이돌 그룹을 배출하였다(이지훈, 2011).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등이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15)한류의 초기 성공으로 삼성(삼성영상사업단), 현대(금강기획), LG(LG소프트), 선경(SKC) 등 대형 자본이 엔터테인먼트 기업부문으로 대거 유입되었고 기업들도 대형화되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시에 투자처를 찾아 자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장규수, 2011: 109). 2000년 4월 SM 엔터테인먼트가 연예매니지먼트 업계 최초로 코스닥(KOSDAQ)에 상장되었고, 이후 40여 개의 기업이 상장되었다.  16)The New Yorker는 걸 그룹들을 ‘Factory Girls’로 묘사한다(2012.10.08). 이처럼 K-Pop 비판자들은 “한국의 연예학원이 쿠키 찍어내듯 비슷한 안무와 부르기 쉬운 노래, 복장들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때로는 성형수술까지 시술하는 엔터테이너들을 길러내지만 개성이 없어 쉽게 잊혀진다”고 지적한다(The New York Times, 2013.08.09).  17)예컨대 슈퍼주니어는 중국과 태국 멤버를 포함하고, 엑소(EXO)는 한국그룹과 중국그룹으로 별도 구성하여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소녀시대는 유닛화를, Got7은 각기 개성적인 ‘스토리’를 갖는 다국적 멤버로 구성되었다.  18)일찍이 뒤르켐이 설파한대로, 제도의 형성과 실천과정에서 작용하는 ‘계약의 비계약적 요소’(non-contractual elements of contract)로서 문화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Durkheim: 1933). 비록 지면 관계상 이 논문에 포함시키지 못하지만, 제도로서 한류의 문화적 배태성(cultural embeddedness)을 적극적으로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

    Ⅴ. 요약 및 결론

    일회적일 수도 있었던 중국 TV방송에서의 한국드라마 방영이 어떤 계기와 제도적 맥락 속에서 한류라는 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갖는 조류를 구성하게 되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가? 이 논문은 한류 발생의 결정적 국면, 그리고 한류의 특성화 및 지속의 경로의존적인 제도적 맥락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한류가 발생한 이래 그동안의 진화발전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은 전방위적, 전천후적 역동성이다. 한류 내부의 장르가 역동적으로 다양화되었고, 정보통신 혁명의 성과와 접합되어 획기적으로 매체가 다각화되었으며, 향유·소비층이 세대간 위아래로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도 확산되어 주변부 및 중심부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확산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일시적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다수의 예상과 다르게 20여년 간 지속되어 온 것이 한류의 특징이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으로서 한류에 대응하여 한국에서는 국가기구가 주도하는 문화산업화 경로가 설정되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간부문에서 포드주의적 문화산업의 심화 경로가 선택되는 경로의존적인 제도적 복합이 구성되면서 ‘제도로서’ 한류는 형성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문화산업화를 주도하면서 한류를 육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또한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이었던 포드주의 원리가 문화산업에서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양태 역시 모순적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제도적 복합은 한류를 지탱해 온 기반이었으며 한류의 독특한 성격을 구성해 왔다. 그리하여 한류는 내용과 형식적으로 역동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편일률적인 획일성, 기계적 테크닉에 대한 과다 강조, 과도한 상업성, 그리고 국가주도의 편재성과 같은 다면적(multi-faceted)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시도한 한류에 대한 역사제도주의적 해석은 한류의 발생과 진행, 지속, 그리고 성격에 대한 기존의 측면적이고 국면적인 설명들을 맥락화하여 한류에 대한 하나의 일관된 설명으로 종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한류에 대한 보다 완성된 설명은 제도로서 한류를 문화적으로 정당화하면서 지속, 확산시키는 기제로서 ‘문화적 배태’가 보완되어야한다. 나아가 종단적으로 한국의 IT산업화와, 횡단적으로 홍콩의 항류(港流)나 일본의 화류(和流)와의 비교역사 사회학적인 연구도 필요하며, 이는 다음 과제로 남겨둔다.

    마지막으로, 한류의 긍정적 의의는 한국인들이 한류로 인하여 비로소 진정한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에게 이제까지 문화적 상호주의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구호적 언사였을 뿐 그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였으며 실행을 위한 어떤 실질적 노력도 할 수 없었다. 우리 문화가 남에게 인정받았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남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온 처지에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자기를 살피는 것을 전제하는 상호주의적 태도를 갖기에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를 계기로 이제 비로소 역지사지가 가능하면서, 남의 입장에 서서 우리를 볼 수 있는 여유와 입지를 갖게 되었고, 진정한 문화적 자아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따라서 한류의 진정한 의의는 한국인들 이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적 상호주의를 실제로 체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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