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을 보는 세 가지 방식

Three Ways of Viewing Movie <Roaring Currents (Myeong-r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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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이 논문은 영화 <명량>을 절제와 집중을 통한 주제의 극대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충돌,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라는 3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았다.

    <명량>은 가장 절제된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주제 전달을 명확히 하고 있는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진 영화이다. <명량>은 영화 전반부 스토리 라인의 과감한 삭제를 통해 영화 후반부의 해상 전투씬의 집중도를 배가 시킴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극대화시킨다.

    <명량>의 폭발적 인기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간의 충돌 양상이 보여준 판타지성에서 기인한다. 명량대첩은 아웃사이더인 이순신과 역시 아웃사이더인 백성들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 기득권자인 왜적과 조선의 국가권력을 동시에 패퇴시킨 싸움이다. 결국 이 시대의 관객들이 영화 <명량>을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는 이순신과 백성이라는 아웃사이더가 왜적과 조선이라는 기득권자에게 명량대첩을 통해 통쾌한 복수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명량>은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 지점에서 해석이라는 부분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사극이다.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진위 여부가 아닌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의식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명량>은 화려한 해상 전투씬으로 승부를 건 상업영화 이상의 현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낸 역사극으로서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This study examined movie <Roaring Currents (Myeong-ryang)> in three viewpoints, which are the maximization of theme through control and concentration, collision between those with vested interests and outsiders, and the borderline between the distortion and interpretation of history.

    <Roaring Currents> is a movie with an elaborate structure that conveys the theme clearly through highly controlled stories and conversations. By cutting a large chunk from the storyline of the first half, <Roaring Currents> doubles concentration on the scene of naval battle in the second half and, by doing so, maximizes the theme of the movie.

    The explosive popularity of <Roaring Currents> comes from the fantasy-like characteristic shown by the collision between those with vested interests and outsiders. The Great Battle of Myeongryang defeats both the Japanese invaders and the state power, which are those with vested interests, simultaneously through horizontal solidarity between outsider Lee Soon-shin and another outsider people. After all, the catharsis that the audience feels from movie <Roaring Currents> is possible because outsiders Lee Soon-shin and the people revenge themselves upon the Japanese invaders and Joseon, those with vested interests, through the Battle of Myeongryang.

    <Roaring Currents> is a historical drama in that the borderline between the distortion and interpretation of history is inclined slightly more toward interpretation. It is because what is most important in a historical drama is not the truthfulness of specific events or characters but the author’s historical consciousness.

    In conclusion, <Roaring Currents> is a movie meaningful as a historical drama that read the spirit of the contemporary times rather than as a commercial movie equipped with gorgeous naval battle scenes.

  • KEYWORD

    영화<명량> , 명량대첩 , 이순신 , 해상전투 씬 , 역사극 , 절제와 집중 ,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 역사왜곡과 해석

  • 1. 머리말

    2000년대 이후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일고 있는 사극 열풍은 이전의 정통 사극과는 양상을 달리하며 역사를 대중적으로 소비케 하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특히 ‘사극 불패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에 상상력을 가미한 탄탄한 스토리, 화려한 볼거리까지 갖춘 사극영화는 T.V사극과 마찬가지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계의 이러한 현상은 2005년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2008년 <쌍화점>, 2011년 <최종병기 활>,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2013년 최고의 흥행작 <관상>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으며 2014년 현재 이재규 감독의 <역린>, 윤종빈 감독의 <군도>, 이석훈 감독의 <해적>, 김한민 감독의 <명량> 등으로 재현된다. 한때 많은 제작비로 모험 장르나 다름없던 사극영화가 지금은 영화계의 가장 대세 장르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명량>은 우리 영화계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명량>은 종전 관객동원수 1위였던 <아바타>의 1330만 명을 개봉 18일만에 넘어선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4년 10월13일 현재 <명량>의 누적 관객수는 1700만명을 넘어섰으며 누적 매출액 역시 <아바타>의 기록을 깨고 점차 격차를 더 벌려가고 있다.1) 이는 한국 영화사에 남을 엄청난 기록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사극영화계의 대세였던 <광해:왕이 된 남자>와 같은 팩션사극류와 달리 영화 <명량>은 스펙터클한 해전 장면은 물론이고, 당시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처한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영화 <명량>이 보여준 명량대첩은 실제 역사가 픽션보다 판타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무능한 군주, 열악한 전투상황, 부하 장수들의 비협조를 극복하고 이순신이 이뤄낸 것은 단순한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닌 시대의 절망과 암울함을 희망으로 바꾼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명량>은 해상전투를 다룬 단순히 졸작이라 폄하될2) 상업영화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4년 현재를 사는 관객들이 영화 <명량>을 통해 위로 받았으며 자신들의 잠재된 힘과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의 평자들이 영화 <명량>이 졸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대부분의 근거가 스토리의 빈약함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좀 더 세밀히 관찰한다면 <명량>이 빈약한 스토리가 아니라 절제와 집중을 통해 주제를 극대화한 잘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명량>은 아웃사이더와 기득권자의 충돌 과정을 통해 충과 백성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현재를 사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 <명량>의 인기가 단순히 역사적 실존 인물 이순신의 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량>은 배설 장군 후손들에 의해 역사왜곡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역사왜곡과 해석의 위험한 경계 지점에서 해석이라는 부분 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역사극이다. 루카치의 주장대로 명량의 역사왜곡 논란 부분은 ‘필수불가결한 시대착오’이지 역사왜곡으로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제 명량대첩에 거북선이 참여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반영해 명량대첩 전에 거북선이 불태워진다는 설정으로 거북선을 영화에 출연시킨다.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거북선과, 실제 거북선이 출현하지 않은 명량대첩의 접점을 진실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적 픽션이 가해지긴 했지만 정탐꾼 임준영을 통해 작가가 해석해 낸 민중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렇듯 역사적 진실의 범위를 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화 <명량>은 명량대첩의 의미를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냄으로써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 시대의 시대적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본고에서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우리 영화계의 신기록을 갱신한 <명량>을 절제와 집중을 통한 주제의 극대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충돌,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라는 3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여러 가지 방식의 분석 방법을 통해 영화 <명량>이 단순히 화려한 해상 전투씬으로 승부를 건 상업영화가 아닌 현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낸 역사극으로서 의미가 있는 영화임을 밝혀보고자 한다.

    1)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http://www.kobis.or.kr/kobis/business/main/main.do)에 따르면 2014년 10월13일 현재 명량의 누적 관계수는 17,606,954명이며, 누적 매출액은 135,695,206,910원에 이른다.  2)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그러나 <명량>의 대중적 성공을 단순히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모든 이순신 영화가 흥행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규웅 감독의 ‘성웅 이순신’(1971)의 대참패 및 김성칠 감독이 맡은 극장 애니메이션 ‘구국의 태양 성웅 이순신’(1981)이나 변강문 감독의 애니메이션 ‘난중일기’(1997) 또한 흥행에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 절제와 집중을 통한 주제의 극대화

    영화 <명량>은 후반부의 한 시간이 넘는 화려한 전투씬과 달리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평으로는 ‘침몰하는 캐릭터들’, ‘인물은 흐릿하고 해전만 요란하다’, ‘해전의 치열함 속에 묻혀버린 캐릭터’3) 등 캐릭터의 활용도를 지적하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일단의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비해 스토리가 못쫓아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왜냐하면 영화 <명량>은 기존의 사극영화와 전혀 다른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 영화 <명량>이 화려한 해상전투 씬으로 승부를 건 전쟁영화로 보일 수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 영화를 주의 깊게 관람하다보면 <명량>이 사실은 가장 절제된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주제 전달을 명확히 하고 있는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명량>은 영화 전반부 스토리 라인의 과감한 삭제를 통한 절제미를 통해 영화 후반부의 해상전투 씬의 집중도를 배가시킴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극대화한다. 게슐탈트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지각되는 정보의 복잡함과 애매함을 정리하고 단순화하여 수용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게슈탈트 이론 중 ‘삭제의 법칙’은 어떤 특정한 내용을 표현하려 할 때 불필요한 부분들을 가능한 삭제하여야 의도하는 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4)

    생략에 의한 표현은 미니멀리즘(minimalism)5) 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없애 버림으로써 극도의 절제와 단순미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는 꼭 필요한 것만을 취함으로써 대상의 본질 파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실적인 것보다 더 완벽하고 완결된 이미지를 발산할 수 있게 만든다.6) 이러한 생략에 의한 절제미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와 닮아 있다. 동양화에서 여백의 의미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닌 유로 존재하는 무, 즉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닌 의미를 가지고 있는 추상적 공간이다.7) 이러한 사유적 여백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공간이 아닌 작가가 의도적으로 삽입 한, 감상자로부터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한 사유의 공간이다.8)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철학적인 의미, 스스로 해석하기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여백이기 때문이다.9)

    그동안 사극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친절한 스토리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영화 <명량>의 불친절한 스토리 라인은 일단의 평자들에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낯설음이 영화 <명량>의 특별한 전개방식인 셈이다. 영화는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이 승전보를 올리던 몇 년의 이야기는 과감히 삭제한다. 그리고 이순신의 백의종군의 이유라든지 그런 이순신 장군이 다시 돌아오게 된 배경 같은 건 아예 관심도 없다는 듯 모두 없애 버린다. 그리고 그가 고문을 당했고 다시 복귀했다고만 설명한 후 모든 것을 명량대첩에 집중한다. 이러한 <명량>의 구성 방식에 대해 관객들 역시 해상전투 씬에 비해 영화의 내적인 요소가 너무 부실하다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혹자에게는 내적인 요소의 부실로 비춰진 영화 <명량>의 절제된 스토리 라인으로 인해 관객들은 1시간이 넘는 해상전투 씬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명량>은 절제된 스토리 라인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심지어 이순신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의 대사 역시 관객들이 보기에 2시간이 넘는 영화 주인공의 대사량이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적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약점을 상쇄하는 부분이 극중 인물들의 얼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아낸 연출이 다. 특히 주인공 이순신의 얼굴은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화면에 점점 타이트하게 잡히는데, 카메라는 어떤 위기에도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줄만 알았던 이순신의 눈동자며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다.10) 이러한 감정전달의 절제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배우는 단순히 대사가 아닌 몸짓과 눈빛으로 주인공 이순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객은 과묵한 이순신 장군의 감정을 각자의 감정으로 해석하며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 <명량>은 전투씬 이외의 스토린 라인을 통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를 가장 짧고 여운 있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주제 전달에 가장 일조를 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일상에서 툭 하고 내던지듯 하는 아주 간단한 대사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대사가 이순신이 밥상머리에서 아들 이회에게 하는 “같이 하니 좋구나!”라는 대사이다. 생선 한 마리와 백김치 한 종지에 희멀거연 죽이 전부인 밥상을 두고 이순신은 “좋구나”라는 표현을 한다. 초라한 밥상이지만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이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같이 할 수 없는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작가는 초라한 밥상으로 상징되는 우리들의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사실은 사랑 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음을 이 간결한 대사에 담아 관객들에게 전한다. 관객들은 이 절제된 대사의 여백 공간을 각자 채워 나가면서 이 짧은 대사가 의미하는 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느끼게 된다. 이 짧고 평범한 이순신의 대사 장면은 해상전투 영화로 보이는 영화 <명량>을 가장 휴머니즘적인 영화로 끌어올리는 부분이다. 가장 짧고 평범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순신 장군의 아들을 향한 따뜻한 정과 비극적인 전쟁을 당한 조선 백성들의 안타까움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대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명량 해전에서 승리한 후 전사한 부하 장수의 아들 수봉이 건넨 토란을 먹고 이순신이 하는 짧지만 강렬한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는 대사 역시 <명량>을 전쟁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 영화로 끌어올려 주는 명대사이다. 이순신은 어머니 위패에 마지막 절을 하고, 한쪽 팔을 부상당해 싸움에 출전할 수 없었던 이순신의 아들 이회는 뭍에서 전선으로 떠나는 대장선 위의 아버지 이순신을 행해 큰절을 올린다. 이순신 자신도 그리고 그의 아들 이회도 그것이 이순신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을 불사한 명량대첩 에서 이순신은 싸움에 승리하고 기적적으로 생환한다. 그 때 수봉이 바친 토란 하나를 먹으며 이순신이 하는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는 대사는 사지에서 승리하고 살아 돌아온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대사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에서의 승리후 승리에 도취하거나 기뻐하지 않는다. 백성들이 뭍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감사의큰 절을 올릴 때도 이순신 장군은 “이 쌓인 원한들을 어이할꼬?”라는 짧은 대사 한 마디로 명량대첩의 의미를 정의해 버린다.

    이러한 절제된 스토리 라인과 대사를 전달해 주는 배우의 연기 역시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이순신 이란 역사적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을 극도의 절제미로 표출한다. 일부러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려 눈물샘을 쥐어짜거나 애국심을 자극하려 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30척11)의 왜선을 상대해야하는, 도저히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를 회피하고 육지로 도망치려는 부하들을 바닷가에 모아놓고 병영을 불태워버린다.

    이렇듯 죽기를 작정하고 출전하는 최민식의 극도의 절제된 연기는 명량대첩에 출전하면서 하는 “전군 출정하라!”라는 대사에서 극대화 된다. 일반적으로 싸움 출정의 대사 “전군 출정하라”는 전군이 들을수 있도록 크게 혹은 힘차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최민식이 연기하는 낮은 톤의 “전군 출정하라!”라는 대사에는 죽으러 가는 길의 비장함과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그대로 묻어난다. 관객들은 이러한 절제된 스토리 라인과 이를 표현해 주는 절제된 대사 속에서 겉으로 표현된 그 이상의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은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명량대첩이지 이순신 장군이 아니다. 따라서 <명량>이 선택한 스토리 라인의 방향성은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에서 명량대첩과 연관된 일부에 초점을 맞춰서 집중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따라서 영화 <명량>은 선조의 실정과 악행을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거나 주인공들의 감정라인을 위한 구체적 사건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해전이 시작되기 전의 스토리 라인은 오로지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위한 극도의 절제된 과정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조차 명량해전의 일부로 묘사될 뿐이다. 이러한 <명량>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기존 대중영화가 택하는 방식과 동떨어진 방식이다. 영화 <명량>은 친절하고 구체적인 기승전결의 이야기 줄거리라든가, 각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 혹은 입체적 묘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대신 명량대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사건을 빠른 속도로 보여주며, 각 인물들의 절제된 대사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영화가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그 질문의 해답을 명량대첩이라는 해상 전투씬을 통해 관객들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3)전문가들의 <명량> 20자평, 『씨네21』, 2014.8.12.  4)오병권, 『디자인과 이미지 질서』, 이화여자 대학교 출판부, 1999, 36쪽.  5)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데이비드 배츨러, 정무정 옮김, 『미니멀리즘』, 열화당, 2003.  6)최보나, 「동화일러스트레이션에서 극적 효과를 위한 과장과 생략의 시각표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시각정보디자인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7.8, 29쪽.  7)최연건, 『사진의 공간적 여백에 대한 사유적 고찰-작품 ‘여백의 미’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예술 대학원 사진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8.8. 1쪽.  8)백기수, 『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15쪽.  9)삼성미술관 리움, 『한국미술 여백의 발견 전시도록』, 2007.  10)이와 유사한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영화감독은 그리피스였다. 그는 카메라가 배우를 향해 보다 가깝게 접근할 때 웅변적인 제스처와 과장된 얼굴표정은 오히려 어색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배우들이 자연스럽고 친밀한 연기로서 관객에게 다가가길 원했다. 그리피스 영화에서 과장된 표현은 최대한 절제되었으며 클로즈업을 통한 미세한 표현들이 강조되었다. 최상식, 『영상으로 말하기(셔레이드, 몽타주, 미장센의 해부)』, 시각과 언어, 2001, 45쪽.  11)명량대첩은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진도 울돌목에서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다. 실제로는 12척의 배에 차후 합류한 한척까지 총 13척의 배가 참전했지만 영화에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 내용을 토대로 12척의 판옥선만 담겼다.  12)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 2014, 이순신의 대사 중에서.

    3.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충돌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간의 충돌 양상이 보여준 판타지성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싸워야할 대상은 단지 왜적만이 아니다. 아들 이회의 말처럼 이순신을 고문하고 죽이려고까지 한 몰염치한 군주와, 권율 장군으로 대표되는 조선에서 수군의 의미를 모르는 기득권 세력마저 이순신이 대적해야할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순신 장군의 편에 마지막까지 서 준 이들은 힘없는 조선의 백성들이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노를 놓지 않는 백성들, 낫과 창을 들고 전투에 뛰어든 승병들, 치맛자락과 도포자락을 흔들며 대장선의 위험을 알리는 백성들, 이순신 장군의 배가 울돌목 물살에 끌려들어가려하자 어선을 타고와 필사적으로 건져내는 어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결국 이 영화가 현재를 사는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 결코 기득권자가 아닌 자신들과 같은 아웃사이더였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순신은 철저히 기득권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웃사이더 집단의 사람과 교류함으로써 기득권자로서의 삶에서 추방당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에서 기득권자들의 배타성은 자기 집단의 권력우위를 유지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아웃사이더 집단의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규범을 파괴한 것이다. 결국 아웃사이더와 교류하는 인사이더는 집단내의 지위 하락이라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다.13)

    기득권자는 자기편 사람들을 아웃사이더와 격리시키고 아웃사이더를 배척하고 모욕 주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러한 기득권 세력내로부터의 추방을 무릅쓰고 이웃사이더와 교류한다. 그는 기득권자들이 아웃사이더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동원했던 아래와 같은 민중들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조선 백성들의 힘을 재해석해낸다. 아래의 대화는 <명량>에서 이순신의 싸울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백성에게 있음을 이야 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존의 충이 임금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순신의 충은 백성을 향한 것이며 그리고 이 백성을 향한 충은 한 마디로 의리라는 말로 재정의 한다. 의리(義理)의 사전적 정의는 1.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16) 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이순신의 충은 임금을 향한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자신과 백성의 관계를 수평적인 의리관계로 재정립한 충이다.

    영화 <명량>은 백성위에 군림하는 이순신의 영웅성이 아닌 자신들에게 의리를 지키고자 한 이순신의 의리를 의리로 화답한 백성들의 힘을 재해석해낸다. 결국 이 영화의 제목이 이순신이 아닌 명량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결코 이순신 개인이 아닌 당시 힘 없는 그러나 어떤 군주보다도 가장 큰 힘을 가진 조선백성이었음을 의미한다. 영화는 군주에 대한 충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충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순신은 왕의 핍박과 탄압에도 불구 하고 의리, 즉 충을 위해 죽기를 다해 일본군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의 충은 국가나 임금, 윗사람 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함을 뜻하는 말이다.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충성으로 지키려 하다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충신이다. 그러나 정몽주로 대표되는 우리가 충신이라 일컫는 이들의 충은 사전적 의미대로 대부분 국가나 임금을 향해 있다.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정몽주가 지킨 충은 권력의 원천을 독점하지 못한 과거의 기득권자가 새로운 기득권자로 부상하려는 아웃사이더의 권력 부상을 봉쇄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기득권자를 대변하는 정몽주는 아웃사이더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모욕함으로써 아웃사이더를 역성혁명의 반역자로 낙인찍고 자신을 희대의 충신으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과 백성들의 적은 사실상 왜군이 아닌 선조와 선조를 대변하고 있는 권율로 대표되는 기득권자들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마자 백성을 버리고 북쪽 의주로 도망간 임금답지 못한 임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여년19)에 걸친 임진왜란 기간 중에도 권좌를 유지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승전의 모든 성과물을 자기가 챙긴다. 뿐만 아니라 아웃사이더인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반면 선조는 전쟁이후에도 제 수명을 누리다 죽은 철저한 기득권자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마자 북쪽 의주로 도망간 기득권자 선조와, 불과 수십척의 배로 왜의 해군을 연패시킨 아웃사이더 이순신은 기득권 자와 아웃사이더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다른 집단에게 열등함의 낙인을 찍는 것은 우월한 권력투쟁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우세를 주장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방은 대개 약한 집단의 자화상 안으로 유입되고 이를 통해 그들은 더욱 약화되고 무장 해제된다.20) 기득권자에게 백성은 열등함으로 낙인찍어 야할 대상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주요한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 아웃사이더가 자신들이 독점한 권력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충 개념은 이러한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수직관계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 <명량> 속 이순신은 기득권자인 선조가 버린 아웃사이더인 백성들과 연대한다. 그리고 열등한 존재로 기득권자에게 낙인찍혔던 아웃사이더인 백성들의 의미를 재해석해낸다. 결국 이순신의 이러한 연대는 기득권자 집단의 규범과 금기를 파괴했다는 혐의를 받게 할 뿐 아니라 이순신을 아웃사이더로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명량>은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택한 이순신과 원래부터 아웃사이더였던 백성들의 연대과정을 통해 그동안 국가주의적으로 해석되었던 ‘충’의 의미를 수평적 의리관계로 재정립할 뿐 아니라 가장 휴머니즘적인 보편윤리로 재정의 하는데 성공한다. 기존의 국가주 의적 충이 약자의 강자에 대한 일방향적인 관계였다면 <명량>이 재해 석한 충은 평등한 자들의 쌍방향적인 의리관계이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 <명량>의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의 충에 보답하며 의리를 지킨다.

    <명량>에서 병사들은 이순신 장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병사들을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따르게 한다. 영화는 전쟁에 자원한 청년이 격군이 되어 이순신의 대장선 밑바닥에서 손에 피가 나도록 노를 젓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배 위에서 지휘하는 장군이나 갑판에서 백병전에 나서는 병사뿐만 아니라,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격군들의 모습까지 사려 깊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순신의 대장배가 ‘충파’와 같은 위험한 전술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격군들의 혼연일체 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량대첩의 이순신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순신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너와 네 아비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왜군에게 죽은 부하 장수의 갑주를 그의 아들 수봉에게 전하며 이순신이 건넨 대사이다. 이순신은 수봉에게 싸움에 이기면 큰 상을 내리겠 다는 식의 이야기 대신 “너와 네 아비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건넨다. 이순신이 수봉 부자를 대하는 마음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의리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탐망꾼 임준영과 그 부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통해 이러한 수평적 의리 관계를 극적으로 표출해낸다. 일본 진영을 염탐하던 탐망꾼 임준영은 왜군의 포로가 되어 왜선에 갇힌 몸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왜선은 이순신의 대장선을 격파하기 위한 화약선이다. 결국 탐망꾼 임준영은 왜적의 계략대로 자신이 타고 있는 폭약이 든 배를 이순신에게 보내지 않으려 스스로를 희생하려 결심하고 아내에게 자신이 탄 배가 화약선임을 다른 배가 알게 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정씨 부인은 이런 남편의 뜻을 알고 치맛자락을 흔들며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에게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구경하던 다른 백성들도 대장선의 위험을 알리려 고함을 지르며 옷을 흔들자 이를 알게 된 안위의 배가 포탄을 쏘아 임준영이 타고 있는 화약선을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대장선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편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위한 남편의 마음을 잘 아는 정씨 부인은 이순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을 구하기 위해 절벽 위에서 눈물을 머금고 치맛자락을 뜯어 흔들었던 것이다. 임준영이 자신의 목숨과 그리고 정씨 부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목숨과 바꾼 것은 단순히 이순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죽을 줄 알면서도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의리로써의 충이다. 임준영과 정씨부인은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림으로써 이순신 장군과의 의리를 지켰으며 이순신 장군은 그들의 의리로 또 다른 백성들과의 의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준영 부부로 대표되는 백성과 이순신 장군과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수직적 충의 관계가 아닌 수평적 의리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평적 의리관계는 울돌목의 회오리에 빠져 침몰 중인 이순신이 탄 배를 백성들이 어선을 이용해 구조하는 장면에서 극대화 된다. 이순신은 왜군의 배와 함께 회오리치는 바다에 같이 휘말릴 뻔하지만, 백성들이 자신들의 어선과 대장선을 밧줄로 연결해 회오리치는 바다에서 끌어당겨준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이제는 임준영과 정씨부인으로 국한되는 특정인이 아닌 이름 모를 다수의 백성들마저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을 구해낸 것이다. 이 장면은 일방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보호받거나 구해지는 수동적 모습의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순신 장군이 위험에 처했을 때 수평적인 관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동적인 백성들의 모습을 형상화해낸 장면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순신의 아들 이회가 이순신에게 묻는다.

    명량대첩은 아웃사이더인 이순신과 역시 아웃사이더인 백성들의 수평적 연대로 기득권자인 왜적과 국가권력을 동시에 패퇴시킨 싸움이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자신의 천행이 백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듯 이순신에게 백성들의 수평적 연대가 없었다면 명량대첩의 기적적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시대의 관객들이 영화 <명량>을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는 이순신과 백성이라는 아웃사이더가 거대 권력을 상징하는 왜적과 조선의 기득권자들에게 명량대첩이란 싸움을 통해 통쾌한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속 이순신과 백성들은 서로 연대하여 현실세계에서 철저한 기득권자였던 선조를 비겁하고 무능한 임금으로 낙인찍는데 성공한다.

    이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얘기한 대로 강한 집단이 주요한 권력의 원천을 독점하지 못하고 상대 집단-과거의 아웃사이더-이 원천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을 비방할 수 있는 능력도 감소하고 심지어 비방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22)는 주장을 증명한 단적인 사례이다.

    13)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외, 박미애 옮김,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한길사, 2005, 28쪽.  14)위의 책, 30쪽.  15)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 2014, 이순신과 아들 이회가 주고받는 대사 중에서.  16)의리(義理), 네이버 국어사전(http://krdic.naver.com).  17)충(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encykorea.aks.ac.kr).  18)충 [opposition], 브리태니커 백과사전(www.britannica.co.kr).  19)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부터 31년(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1597년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한다.  20)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외, 앞의 책, 24쪽.  21)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 2014, 이순신과 아들 이회가 주고받는 대사 중에서.  22)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외, 앞의 책, 24쪽.

    4.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

    일반적으로 사극이란 역사적인 사실성에 바탕을 두지만 작가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므로 허구성이 가미된 것이다. 역사나 역사제재 문학, 이 둘은 모두 그 역사에 대한 판단과 해석을 토대로 써진다. 서술된 역사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과 판단이라면 역사제재 문학은 그 서술된 역사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문학이라는 미학적 양식으로 형상화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제재 문학의 서술된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는 부분에는 단순히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만이 아닌 역사 제재문학 창작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적 의미가 부여된다.

    루카치는 서유럽 역사극의 가장 훌륭한 대표자였던 만쪼니의 말을 인용하면서 역사를 예술화하는 작가에게 남겨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라는 말을 하고 있다.

    바로 만쪼니가 얘기하고 있는 시의 영역이 역사가의 기술에 대한 작가의 해석부분이다. 역사극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작가의 창작 의도에 따라 이러한 역사적 소재의 정확성이나 일관성이 크게 중요시되지 않는 이유는 사극에 있어 이 시라는 부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24) 그리고 이 시의 부분은 작가의 다양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부분이다. 모든 사극은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 사극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 루카치는 ‘필수불가결한 시대착오’라는 말로 설명한다.25) 역사극이냐 아니냐를 분별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특정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의식이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사실과 허구성의 여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에서는 갈등 그 자체가 그것의 역사적 본질에 따라 깊고 진실 되게 파악되기만 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루카치는 거대한 역사적 갈등들만이 극에 적합한 소재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극적으로 묘사된 많은 갈등들이 비록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허다한 만인주지의 역사적 사건들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성격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극은 핵심적 갈등의 역사적 진실성을 해치지 않고서도, 이 사건들로부터 수백년 동안 격리되어 있었던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현재적인 공감을 불어넣어 줄 인간적인 특징들을 제시해야 한다. 극은 모든 인간들로부터, 역사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가장 보편적이며, 합법칙성으로 존재했던 특징들을 이끌어내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카치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핵심적 갈등의 역사적 진실을 해치지 않고서도”라는 말이다. 작가의 해석에 의한 상상력 발휘는 바로 “핵심적 갈등의 역사적 진실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명량>은 1597년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주한 수군들과 12척의 배를 수습한 뒤, 명량에서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스펙터클한 해전 장면은 물론이고, 당시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처한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영화는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무기와 배, 전술을 그대로 재현해낼 뿐 아니라 해상전투 씬에 61분의 시간을 배정, 당시의 명량대첩을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명량대첩에 대해 무지한 관객들이 영화 <명량>을 보다보면 이순신의 대장선만이 유일하게 홀로 싸우는 장면이 마치 극적 설정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명량대첩이 이름난 해전인 만큼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을 기대하고 영화 <명량>을 본다면 이 역시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 스스로 명량대첩에서 자신들이 이긴 이유가 천행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 싸움의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이 없어 보이는 영화 <명량>의 해상전투 씬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명량대첩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영화는 두려움에 빠진 병사들과 이 싸움을 홀로 이끌어 가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순신의 외로운 싸움은 영화상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듯이 <명량>의 해상 전투씬은 이순신이 기록한 명량대첩의 기록과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대장선이 죽기 살기로 싸우며 버틴 지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른 배들도 전투에 참가해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싸움의 승리 뒤에는 백성들의 조력이 있었다. 결국 이 부분이 루카치가 이야기한 명량대첩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진실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작가의 해석에 의한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루카치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역사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이저가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할 때 이 사실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 라고 해서 그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일들이 거의 대부분 역사적 사실의 범주 속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A⋅샤프의 주장대로라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역사적 사실, 그렇지 못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도 이러한 범주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면 역사적 사실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명량>의 역사 왜곡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들이나 사건들 역시 역사적 사실로 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영화상 과거의 사실과 다르게 나오고 있는 명량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논란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상 대표적 역사왜곡의 논란에 되었던 위의 내용들은 과거 사실에 대한 왜곡이긴 해도 사실상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고 보긴 힘든 부분들이다. 위 사례들이 명량대첩이라는 사건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명량대첩에 대한 작가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 사건들 중 <명량>의 역사왜곡 논란의 정점에 서게 한 대표적 사건은 배설이라는 역사상 실존 인물에 대한 묘사이다. 그렇다면 배설장군 후손들에 의해 야기된 영화 <명량>의 역사왜곡 논란문제를 통해 역사왜곡과 역사해석의 경계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배설 장군 후손들이 영화 <명량>의 영화제작 관계자 3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경주 배씨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영화 <명량>의 배설 장군(1551∼99) 왜곡 논란과 관련, 성주경찰서에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명량 제작자 겸 감독 김한민, 각본가 전철홍, 소설가 김호경씨를 고소한 것이다. 배씨 문중이 명량 관계자를 고소한 이유는 영화에 선조인 배설 장군이 역사적 기록과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영화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은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 시도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다음 혼자 도망치다 안위의 화살에 맞은 것으로 나온다. 실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은 거북선을 불태우거나 안위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지 않는다. 대신 배설은 1597년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전 병을 칭한 후 자신만 살겠다고 이순신 장군과의 의리를 저버렸으며 그 일로 1599년 고향인 선산에서 권율에 의해 참수된다. 영화 상 배설에 대한 부정적 설정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면 이순신 자신이 배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그가 쓴 난중일기를 통해 살펴보자.

    선조실록 역시 배설에 대한 모든 기록에서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대표적인 몇 가지 기록들을 살펴보자.

    이상의 실록을 보면 알겠지만 배설 후손들의 주장과 달리 배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매우 나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배설의 후손들이 주장하고 있는 대로 배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난중일기뿐 아니라 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방형(邦刑)을 받을 적에는 여정(輿情)이 모두 통쾌하게 여겼습니다”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당시 배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게다가 배설은 선산에 숨어 있다가 권율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끌려가 처형당한 인물이다. 후손들이 주장하고 있는 역사 왜곡의 대표적 항목은 이순신이 배설을 암살하려 하지 않았고, 거북선을 불태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부적 사실에 있어서는 배설 후손들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 영화는 과거의 사실에 대해 왜곡된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샤프의 주장대로라면, 배설이 이순신을 암살하려다 안위가 쏜 화살에 맞고 죽었건, 또는 명량대첩이 무서워 도망가 있다 권율에게 참형을 당했건 그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배설이라는 인물은 명량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어떤 중요한 결과도 초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량>이 그리고 있는 배설 장군에 대한 묘사가 과연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상 배설이 거북선을 불태운 것도 이순신장군을 암살하려 했던 것도 모두 배설 장군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량대첩에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거북선이 출전해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영화가 이야기를 한다면 이 사실은 엄연히 역사왜곡이 된다. 명량대첩 당시 우리 수군을 승리로 이끈 것은 거북선이 아니라 13척의 판옥선이기 때문이다. 실제 명량대첩에서는 불태울 거북선도 그것을 불태운 사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모두 픽션이기 때문이다. 만약 명량대첩 당시 거북선이 실제로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명량 대첩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거북선을 배설이 불태웠다고 한다면 그것은 엄연한 역사왜곡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거북선이 존재 하지 않았으므로 배설 역시 거북선을 불태울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배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거북선을 불태웠다는 픽션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배설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배설이 이순신 장군을 암살했다고 영화가 이야기한다면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지만 암살하려했다는 설정자체를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리한 싸움에서 배설의 도망은 이순신에게 거북선의 부재와 암살의 위협 이상 큰 상실감을 줬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결국 작가의 배설에 대한 부정적 해석과 평가가 드라마 스토리로 재구성된 것이지 이러한 해석자체를 역사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 <명량>이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에서 해석의 지점에 있다는 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이 거북선의 방화 사건이다. 통상 우리는 이순신 하면 거북선을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12척으로 330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투중 가장 위대한 전투에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거북선과 이순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하면 누구나 거북선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명량대첩에서 거북선이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명량대첩의 주력선은 거북선이 아닌 판옥 선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화에 거북선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북선은 배설장군에 의해 불태워지는 장면에서 한 번, 그리고 우리의 판옥선이 일본군과 충파전을 하는 장면에서 거북선의 부활을 암시하는 듯한 환영 장면에서 한 번, 그리고 마지막 영화 끝 무렵 한산대첩 장면에서 한 번 등 도합 세 번에 걸쳐 거북선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거북선의 등장은 결국 명량 대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징적인 역할만을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명량>은 역사왜곡과 해석의 위험한 경계 지점에서 해석이라는 부분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사극이다. 이를 루카치의 말대로 정의한다면 <명량>의 역사왜곡 논란 부분은 ‘필수불가결한 시대착오’이지 역사왜곡으로 보기는 힘들다.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의식이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사실과 허구성의 여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3)루카치, 이영욱 옮김, 『역사소설론』, 거름, 1997, 149∼150쪽.  24)괴테와 헤겔, 뿌쉬킨과 벨린스끼로 대표되는 역사주의의 입장은 작가의 충실성이란 역사상의 중대한 위기나 전환점, 즉 중대한 역사적 갈등을 문학적으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 역사적 파악을 문학적으로 적합하게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개별사실들을 아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상의 개별사실들에 대해 자유로운 취급 태도를 갖지 못하고 그것들에 대해 단순히 충실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문학적으로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25)루카치 앞의 책, 204∼211쪽.  26)이순신, 노승석 옮김, 『난중일기』, 민음사, 2013, 400∼401쪽.  27)위의 책, 401쪽.  28)A⋅샤프, 김택현 옮김, 『역사와 진실』, 청사, 1982, 221쪽.  29)이순신이 돌격선 개념의 거북선을 만들 때, 기존 판옥선에다 뚜껑을 덮은 후 1200여개의 날카로운 쇠못을 꽂았던 것도 왜군들이 거북선에 올라탄 다음 칼로 백병전을 벌이려는 등선육박전술을 사전에 차단시키기 위함이었다. ‘명량’에서는 명량해전 후반에 조선 배가 일본 배를 들이받아 부수는 충파(衝破) 장면이 나오는데, 본래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용어는 당파(撞破)이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은 이 당파를 ‘조선 배로 일본 배를 들이받아 깨뜨리는 전술’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의 해석으로는 이 당파가 직접 배와 배가 들이받는 것이 아니라는 쪽이다.  30)이순신, 앞의 책, 413쪽.  31)이순신, 위의 책, 437쪽.  32)「선조실록」국역본, 『조선왕조실록』, 선조 110권, 32년(1599 기해 /명 만력(萬曆) 27년) 3월 6일(을유) 5번째 기사.  33)「선조실록」국역본, 『조선왕조실록』, 선조 122권, 33년(1600 경자 /명 만력(萬曆) 28년) 2월 20일(갑오) 1번째 기사.  34)김수정 기자, <배설 후손 측 ‘명량’ 제작사 비겁⋯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 2014.9.21.

    5. 맺음말

    지금까지 이 논문은 영화 <명량>의 대중성을 절제와 집중을 통한 주제의 극대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충돌,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라는 3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았다.

    영화 <명량>은 일단의 평자들에게 후반부의 한 시간이 넘는 화려한 해상전투 씬과 달리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세밀히 관람하다보면 <명량>이 사실은 가장 절제된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주제 전달을 명확히 하고 있는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명량>은 영화 전반부 스토리 라인의 과감한 삭제를 통해 영화 후반부의 해상전투 씬의 집중도를 배가시킴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극대화시킨다. 영화 <명량>은 절제된 스토리라인 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영화 <명량>은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대사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를 가장 짧고 여운 있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영화 <명량>의 폭발적 인기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간의 충돌 양상이 보여준 판타지성에서 기인한다. 기득권자에게 백성은 열등함으로 낙인찍어야할 대상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주요한 사회적 권력을 독점 하고 아웃사이더가 자신들이 독점한 권력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충 개념은 이러한 기득 권자와 아웃사이더의 수직관계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 <명량>은 그동안 국가주의적으로 해석되었던 ‘충’의 의미를 수평적 의리관계로 재정립함으로써 충의 개념을 가장 휴머니즘적인 보편윤리로 재정의 한다. 명량대첩은 아웃사이더인 이순신과 역시 아웃사이더인 백성들의 수평적 연대로 기득권자인 왜적과 국가권력을 동시에 패퇴시킨 싸움이다. 결국 이 시대의 관객들이 영화 <명량>을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는 이순신과 백성이라는 아웃사이더가 왜적과 조선이라는 기득권자에게 명량대첩을 통해 통쾌한 복수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화 <명량>은 역사왜곡과 해석의 위험한 경계 지점에서 해석이라는 부분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사극이다. 역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의식이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사실과 허구성의 여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A⋅샤프는 사실이지만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역사적 사실, 그렇지 못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명량>의 역사 왜곡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사실상 역사적 사실로 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량>의 대표적 역사 왜곡논란의 중점에 있던 배설장군과 탐망꾼 임준영, 백병전과 충파에 관련된 내용들은 과거 사실에 대한 왜곡이긴 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은 아니다. 이 사례들이 명량대첩이라는 사건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명량>의 작가는 역사적 사건이 아닌 과거의 사건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역사왜곡이 아닌 명량대첩에 대한 작가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명량>은 단순히 화려한 해상 전투씬으로 승부를 건 상업영화 이상의 현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낸 역사극으로서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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