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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영화의 콘텐츠(Contents) 차용 현황과 독창성(Originality)의 위기* ‘Appropriation’ of Contents and The Crisis of ‘Originality’ in Korean Cinema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영화의 콘텐츠(Contents) 차용 현황과 독창성(Originality)의 위기*

Films have scenarized the concepts or ideas from literature, dramas, cartoons, web-toons, and even other movies, ever since it came to the world. However, in recent years, the stories and contents adapted from other arts and medias have oversupplied to the movies, and this causes the crisis of‘originality’through storytelling in cinema.

‘Storytelling’ contains‘story’ itself as well as ‘the arts of telling a story.’Therefore, losing the originality of the story means depleting the creativity of storytelling. Plot, character, theme, diction, music, and spectacle, these six basic elements of drama could be creatively developed, as long as the author can interpretate adapted contents with cinematic languages and grammar for storytelling such as well-scenarized text, dramatic characters, camera works, sounds, and editing. However, the recently refashioned movies don’t seem to have these kinds of cinematic esthetics, and they expose the crisis of loosing originality in Korean cinema by the imprudent process of dramatization.

This overheated trend of ‘appropriation’ has mainly come form the rise of the total production cost, as film equipments have gotten more expensive and the star system has caused unreasonable casting expenses. The burden of cost-rising makes show-business people disvalue degree of artistry and creativity, but only focus on the commercial viability and popularity of film. In other words, enterprises prefer those contents which are already approved by the public good sellers, to reduce the risk of exploring the new items, and to maximize possibilities of investment and marketability. This undesirable current of film-making has become worse after the decay of ‘Korean merchandising movies’ in 1990s, based on the preparatory analysis of audiences’s tastes and the social trends.

The originality of arts depends on time. The deformed system in contemporary film industry does not enable film-makers to take time and effort for creating artistic works with both cinematic quality and popularity. Therefore the efficient producing system, which puts high value on exploring the stories in pre-production, and also guarantees the freedom and responsibilities for film-makers, needs to be set up first, for providing movies to lead the trend of society, not just to reflect the taste of the audience.

KEYWORD
독창성 , 영화의 콘텐츠 , 창의성 , 웹툰 , 차용 , 스토리텔링 , 머천다이징형 영화 , 한국영화
  • 1. 들어가며

    프랑스의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는 2차 대전 직전과 종전 후의 프랑스를 풍미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영화’, 즉, ‘심리학적 리얼리즘(réalisme psychologique)’에 입각해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원작이나 소재를 차용해 만들어진 ‘각색영화’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무장하고, 영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 방식을 통해 텍스트(text)를 이미지(image)로 형상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영화 형식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세대, 당시 기성세대의 부조리 속에서 방황하는 십대의 이야기를 통해 기존 영화의 전통에 대한 단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 1959)로 누벨바그의 화려한 탄생을 알렸던 프랑스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1932∼1984) 감독 역시 ‘문예영화’에 회의적이었으나, 앙리 피에르 로셰의 장편 소설 『줄과 짐』(Jules et Jim)에 매료되면서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화씨 451>(Fahrenheit 451, 1966) 또한 레이 브래드버리(Ray Douglas Bradbury)의 동명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트뤼포는 이 영화를 통해 아름답지만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책에 대한 오마주(hommage)를 완성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책을 암기해 인간의 몸과 소리로 생성해내는 인간–책(hommes-livres)들이 눈발이 흩날리는 숲을 걸으며 책을 낭송하는 장면이다. 자크 오몽(Jacques Aumont)이 밝혔듯이, 책을 사랑하고, 책의 전통 속에서 사유하고, 문학의 역량을 영화적으로 전유하려 했던 누벨바그 작가들은 문학과 영화, 글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독창적인 양식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트뤼포와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양식들이 두드러진다.

    영화의 발전사는 표현주의 연극과 건축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시작한 이후부터 문학과 다른 예술, 혹은 다양한 미디어에서 차용한 텍스트의 변이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소설과 희곡, 만화와 웹툰(web-toon), 인터넷 소설에서 같은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문학과 매체에서 소재와 형식을 취하고 각색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콘텐츠 차용 현상은 한 시대의 문화적 트렌드(trend)를 넘어서 영화의 독창성을 위협할 정도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 연구는 동시대 한국 영화의 콘텐츠 차용 현황과 원인을 살펴보고, 과도한 각색 작업이 초래한 독창성 상실의 위기와 그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모방’과 ‘차용’을 구분 짓는 날카로운 경각심을 깨우고, 영화 언어의 특수성이 반영된 독창적 콘텐츠 개발을 장려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창의성’과 ‘다양성’을 회복하고 지켜내기 위해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영화 창작의 내적 과제와 외적 환경 조건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1)Truffaut, François, Truffaut: A Biograph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2000, pp. 103∼104

    2. 영화의 콘텐츠 차용과 독창성의 위기

       1) 콘텐츠 차용의 흐름과 원인

    영화의 가장 일반적인 소재가 되어왔던 소설의 영화화 경향은 시간성을 기준으로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질 수 있다. 그 하나는 고전 소설이나 역사 소설의 영화화, 둘째는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근대 소설의 영화화, 마지막으로 동시대 소설의 영화화이다.2) 임권택 감독의 마지막 영화화 작업을 포함해 총 9번 영화로 제작된 <춘향전>을 비롯해,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등이 고전 소설이나 역사 소설의 영화화 작업에 해당된다. 영화법 제정과 개정이 영화 산업 발전의 주된 변수로 작용했던 60년대는 소위 ‘문예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벙어리 삼룡>(신상옥, 1964), <물레방아>(이만희, 1966), <메밀꽃 필 무렵>(이성구, 1967) 등의 근대 소설이 활발히 영화로 제작되었다. 60년대 ‘문예영화’들이 단편소설들을 원작으로 했다면, 70년대 이후부터는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등 동시대의 대중소설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까지 ‘문예영화’로 포함시키며 그 개념이 확장되었다.

    이처럼 과거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는데 한정되었던 각색 작업은 최근 미디어의 폭발적인 급증과 함께 장르와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만화, 인터넷 소설, 웹툰(web-toon) 등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콘텐츠의 재료가 되는 미디어와 장르도 다양해졌다.3)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서는 박범신의 『은교』, 미야베 미유키(Miyabe Miyuki)의 『화차』, 히가시노 게이고(Higashino Keigo)의 『용의자X의 헌신』, 노나미 아사(Nonami Asa)의 『하울링』,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26 년』, 『이웃사람』, 이종규, 이은균 작가의 『전설의 주먹』,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의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1782)등 소설과 웹툰, 이미 영화로 제작된 고전 소설까지 영화화 작업이 활발히 이뤄져 왔다. 2013년에 개봉한 <미스터 고>(감독 김용화)와 <설국열차>(감독 봉준호) 등 거대한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영화들 역시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다.

    영화 콘텐츠로 각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원작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 잡은 것은 웹툰이다. 2006년 강풀의 『아파트』가 영화화된 이후로, 탄탄한 서사구조와 역동적인 이미지, 영화의 열린 구도를 연상시키는 ‘칸’의 미학을 강점으로 한 웹툰은 2013년에도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은밀하게 위대하게>(원작 최종훈, 감독 장철수)를 시작으로 정연식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은 『더 파이브』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윤태호 작가의 『미생』(감독 변영주),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감독 김태용),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감독 이정섭)등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영화 콘텐츠의 차용이 증가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다각적인 환경들에 기인하고 있으나, 대략 세 가지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 번째 요인은 영화 관객층의 다각화와 콘텐츠 수용에 대한 이들의 성향과 욕구 변화에 기인한다. 특정한 소설이나 만화, 혹은 웹툰이 영화로 재생산되는 것은 영화 제작 현장의 특수한 환경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소비하는 시대의 속성과 맥락을 같이해야 한다. 영화의 스토리(story)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담화양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적 습성을 반영하여 차별화된다. 전쟁 후 참혹한 현실과 산업의 발달이 가져오는 비인간적 사회현상을 인지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시민들이 극 사실주의적 표현 양식을 선호했다면, 다소 삶의 여유와 시간은 있으나 쌍방향적 소통을 통한 인간관계의 형성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21세기의 관객층은 건조하고 각박한 일상을 타파하고 흥미로운 환상을 심어줄 새로운 콘셉트(concept)의 영웅과 만화적 상상력에 열광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소통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의 접근 없이 오로지 영화와 함께 상상력을 키우며 성장한 세대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도 콘텐츠 재활용의 광기어린 유행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시대와 관객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관객 확보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비롯되었다.4) 동시대의 미디어 시장은 7,80년대에 비해 참을성이 부족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치열한 생존 경쟁의 전장이다.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번성한 뉴미디어(new media) 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낡고 오래된 소통의 매체로 여겨지는 영화는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조치가 필요했다. 대중성이 검증된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은 흥행 실패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시켜 영화에 투입된 자본을 회수하고 콘텐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콘텐츠 차용이 활발해진 세번째 원인은 HD(High definition)와 CG(Computer Graphics)등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환상적이며 과장된 만화의 표현이 영화와 TV 드라마에서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5) 이 두 가지 요인들은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는 값비싼 기술의 발달과 불공정한 스타시스템의 부작용으로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상업성과 대중성을 지향하는 영화의 산업적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영화 창작의 예술적, 질적 완성도는 무시되는 세태의 결과들이다.

    이와 같이 자본과 산업의 논리에 의해 시작된 콘텐츠 차용의 과열현상은 90년대 한국 영화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던 ‘기획영화’, 타깃(target) 소비층의 경향과 삶의 패턴(pattern)을 철저히 분석해 반영했던 ‘머천다이징(merchandising)’형 영화의 퇴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90 년대 기획영화는 영화 콘텐츠의 기획과 개발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기업의 자본을 유치해 ‘제작’과 ‘투자’가 분리된 제작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거대투자사와 배급사의 영향력 또한 과도해져 영화 창작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역기능의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제작과 투자를 분리시키고 전문화된 분업을 효율적으로 주도했던 프로듀싱(producing) 중심의 기획영화가 쇠퇴하면서 제작사와 투자사의 견제와 균형은 무너졌고,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제작사의 역할 범위가 작아지면서 영화 콘텐츠의 기획 개발 과정을 경시하는 기형화된 제작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영화의 기획이 ‘무엇을’로부터 시작돼 계획된 ‘어떻게’로 옮겨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프리 프로덕선(pre-production)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무엇을’을 개발하는 시간과 정성을 무시한 제작 방식은 콘텐츠 차용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고 영화의 독창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2) 콘텐츠 차용의 위험과 부작용 : ‘차용’과 ‘모방’의 경계 상실

    콘텐츠 차용으로 인한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할지라도 다른 예술과 미디어의 콘텐츠를 영화로 각색하는 작업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누벨바그의 영화작가들처럼 매체의 특성과 형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무엇을’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그 내용을‘어떻게’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충만한 관객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영화적 스토리텔링을 신중하게 연구한다면 독창성과 다양성에 대한 영화적 미학을 지킬 수 있다. 허영만의 만화 『다모』가 당시 2/3이상의 사전제작으로 TV 드라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MBC 미니시리즈 <다모>(이재규 감독, 2003)로, 다시 이명세 감독의 섬세한 미장센(mise-en-scène)이 돋보이는 <형사 Duelist>(2005)로 만들어지며 원작 만화의 캐릭터와 기본 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TV 드라마, 영화로서 각기 다른 내러티브의 독창성을 보존한 것은 각색 작업의 좋은 예다.

    그러나 콘텐츠 재활용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들을 살펴보면 원작 스토리 훼손에 대한 부담에서 파생된 한계라고 하기엔 지나친, 거의 모방에 가까운 유사성들이 발견된다. 특히 문자를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소설의 각색 작업보다 기존의 이미지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옮기는 웹툰이나 만화의 영화화 작업, 혹은 이미 완성된 영화를 다른 문화권이나 다른 시대의 영화로 만드는 리메이크(remake)작업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림 1]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그대를 사랑합니다>(원작 강풀, 감독 추창민, 2011)의 원작 웹툰과 영화 장면을 비교한 컷(cut)들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면들은 서로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만화나 웹툰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 속성인‘과장’이 드러나는 익스트림 하이앵글(extreme high-angle)과 로우 앵글(extreme low-angle), 사각 앵글과 버드아이뷰(bird’s eye-view) 등을 가능한 피해가며 구도를 형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한 쇼트(shot)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영화 쇼트의 ‘형용사’에 해당하는 앵글이 만화나 웹툰처럼 자유롭게 표현될 때 작은 책이나 모니터 화면이 아닌 대형 스크린에서 이것을 관람해야 하는 관객들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장애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장면들 역시 웹툰의 ‘칸’을 영화의 ‘프레임’에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앵글과 구도, 쇼트의 사이즈까지 원작과 영화의 이미지들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만화나 웹툰의 영화화 작업은 원작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미 형상화된 이미지를 옮겨오는 데 충실하지 않으면 원작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주고 이는 곧 흥행의 적신호가 되므로, 최대한 비슷한 구도와 톤(tone)으로 영화 프레임(frame)을 구성하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이끼>(감독 강우석, 2010)의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는 웹툰 원작 영화의 증가 원인을“이미지와 이야기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화화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6) 그러나 영화화작업에 있어서 웹툰의 이러한 장점은 원작, 특히, ‘이미지가 존재하는’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 곧 단점이 된다는 각색영화의 위험성을 [그림 1]에서처럼 증명하기도 한다. 실사 영화(live-action)의 미학은 원작 ‘그대로’가 아닌,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와 웹툰은 표현 언어와 방식, 작가와 관객의 호흡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매회 기승전결이 있는 연재물을 긴장감과 응축력이 살아 있는 영화의 호흡에 맞춰 재창조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고정된 ‘침묵’의 이미지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가청(可聽)’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압축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변방의 사람들을 향한 추창민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메시지(message)가 담겨있지만 그 배려가 원작자 강풀이 그려낸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 치우치면서 영화 특유의 색깔과 분위기 창조에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은밀하게 위대하게> 또한 속도감 있는 액션(action)과 이야기 전개로 대중적 리듬을 창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사 구조상 가장 큰 줄기이자 캐릭터 관계 설정의 중요한 키(key)에 해당하는 ‘오성조’ 이야기와 원류한(김수현 분)을 살리고 싶어 하는 국정원 요원 서수혁(김성균 분 분)의 배경을 매몰차게 잘라내면서 원작을 보지 못한 관객들의 동감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화의 독창성은 텍스트의 소재와 전개에 해당하는 ‘무엇을’과 그것을 이미지 위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어떻게’에 두루 걸쳐 타진된다. 헐리우드 상업 영화와 유사도가 높은 영화들이 2012년 한 해 한국의 영화 시장을 장악해 1천만 관객을 동원하거나 한국 멜로 영화의 흥행을 다시 썼다는 사실은 영화 미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다양성과 독창성이 흥행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위기의 식을 불러일으킨다.

    류철균 교수(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가 개발한 ‘스토리헬퍼(Story Helper)’는 2300여 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분석해 34,000여 개의 스토리 모티프(motif)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텍스트의 유사도를 평가하는 소프트웨어(software)다. 이것을 작동해보면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2)는 영화 <데이브>(Dave, Dir. Ivan Reitman, 1993)와 75%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 2011)은 <아포칼립토>(Apocalypto, Dir. Mel Gibson, 2006)와 79%가 비슷하다고 한다.7) 직접적인 데이터 값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2012)은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Dir. Steven Soderbergh, 2001)을, 조성희 감독의 <늑대 소년>(2012)은 팀 버튼(Tim Burton)감독의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을 연상시키고, <타워>(감독 김지훈, 2012)는 ‘한국판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Dir. John Guillermin, 1977)’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기획과 홍보를 진행했다.

    서사의 패턴은 한정돼 있으므로 익숙한 패턴 속에서 독창성을 펼쳐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류철균 교수의 주장대로, ‘스토리헬퍼’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허구의 콘텐츠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창작에 활용하고자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다. 작가가 원하는 스토리 모티프를 입력하면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기억과 상상의 범위를 예측해 그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사건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리다. 그러나 ‘스토리헬퍼’는 영화의 주된 담화 형식, 즉, 이미지와 사운드(sound)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방식을 제외하고 스토리 창작에 제한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작품들을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주된 양식인 시청각적 장치의 구성과 활용 면에서도 그 유사도를 평가한다면 독창성이 결여된 아류작이라는 비판 앞에 당당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서울신문과 네이버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mobile application) 이용자 6766명을 대상으로‘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바라는 점’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는 현재 영화 콘텐츠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웹툰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영화에 소재를 제공하고 있는 모든 형식의 원작들에 적용시킬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설문 결과는‘실사 영화에 맞는 각색과 연출’(2439명, 36.0%), ‘원작 스토리의 정확한 재현’ (1782명, 26.3%), ‘캐릭터와 배우들의 싱크로율 100%’(1698명, 25.1%), ‘새로운 결말 등 원작을 비튼 줄거리’(847명, 12.5%)순으로 나왔다.8)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영화가 원작에 충실하기를 바라면서도 원작에는 없는 특별한 영화적 요소가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객들이 요구하는‘실사 영화에 맞는 각색과 연출’이란 영화언어가 지니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특수성, 굳이 단순화시켜 설명하자면, ‘말에 우선하는 행동(pre-verbal language)’을 인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활용해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속성을 의미한다. 영화의 이러한 속성과 미학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무분별한 콘텐츠의 차용은 ‘모방’과 ‘차용’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있는 ‘독창성’과 ‘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 영화 독창성 상실의 배경

    영화는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자본과 독립해 발전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영화의 독창성 위기를 초래한 실질적 배경에는 자본의 섭리가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 한 편을 상영하기까지 인건비와 기자재 비용, 촬영, 편집 진행비에서부터 극장 상영을 위한 마케팅과 프린트 비용까지 적지 않은 자본이 필요하다. 투자, 제작, 배급, 상영이 수직 계열화 된 한국의 영화산업은 이러한 자본의 절대성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으며, 결국 영화 제작의 외적요소인 자본 환경에 의해 영화의 내적 요소까지 엄격하게 통제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본의 절대적 권력 행사가 불러 온 문제적 환경은 첫째로 영화 창작 과정에 있어서의 ‘자율성 상실’을 들 수 있다. 2012년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을 기준으로 한국영화 배급의 36.7%를 차지한 CJ(CGV)와 15.7%를 점유한 롯데엔터테인먼트(롯데시네마)등 제작과 투자, 배급과 상영을 총괄하는 거대 기업의 입김이 영화 창작에 미치는 영향은 가공할 만하다. 영화의 가편집본을 10회 차마다 의무적으로 투자배급사에게 검토 받는 것은 물론, 개봉 전 파인 컷(fine cut)을 수정하고 승인하는 것도 투자배급사의 주도권 아래 진행된다는 사실은 영화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들, 시나리오 창작에서 각색, 캐스팅, 촬영과 편집까지 감독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영화 ‘독창성’위기의 주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투자배급사가 작품 제작 현장과 인력을 가이드(guide)하며 창작 과정의 전반을 책임지는 감독을 촬영 도중 교체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현 체제 속에서, ‘이것이 관행이다’는 말을 습관처럼 들으며 자신의 이상과는 판이한 제작 현실에 부딪혀 고민하던 감독들은 다음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위축되고 소극적인 자세로 작품에 임하게 되거나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 시간의 타협과 조율을 거쳐 창작의 기회를 잡는다 해도 감독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져 왔던 제작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본연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한계를 경험하면서 감독들은 창작에 대한 의욕은 물론 작품에 대한 책임감마저 상실하고 있다.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현실이 영화의 독창성 부재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모차르트 타운>(2008), <애니멀 타운> (2009), <댄스 타운>(2010)등 ‘타운’영화 시리즈를 제작한 전규환 감독은 영화 <무게>(감독 전규환, 2013)의 언론시사회에서 영화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는 거대 투자배급사와 여론, 그리고 이러한 여론을 형성하고 부추기는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한 “현재 충무로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관습적 문법을 나이 어린 감독들이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문법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 음악, 편집조차도 그러하다. (중략) 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감독은 없다고 본다. 투자사 자본이 주는 대로 연출하고 캐스팅한다. 그들은 엔지니어일 뿐이며 감독으로 거만을 떨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하며 영화 언어의 미학적 특징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자본의 권력에 복종하는 감독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했다.9)

    독창성 상실의 두 번째 배경은 창작의 자율성 박탈을 부추기는 ‘프로듀서(producer)의 역할 범위 축소’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형 기획영화의 퇴보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영화 산업의 절대 ‘갑’으로 자리 잡은 대형 투자배급사와 이들과의 균형 있는 견제와 협력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역부족인 소형 영화제작사의 기형적 공존 체제의 결과물이다. 투자 대비 이윤확보가 제1의 목적인 투자배급사는 영화의 특수성이나 영화 언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없이 정해진 흥행 공식을 강요하고, 이러한 간섭으로부터 감독의 작가정신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인 프로듀서는 영세한 작업 환경에서 생활고를 심하게 겪은 탓에 부당한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소형 영화 제작사들이 거대 투자배급사에 의해 도태되면서 거기에 속해있던 프로듀서들이 독립해서 설립한 소형 제작사의 궁핍한 제작 환경 역시 독특하고 참신한 발상과 보편적 가치관을 갈고 닦아야 할 영화인들의 창작 시간과 여유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 문제적 배경은 전문화된 분업이 영화 창작의 기본 전제라는 사실을 무시한‘제작, 투자, 배급의 기형화된 일원화’ 체제이다. 투자배급사들은 제작사나 프로듀서의 중재 없이 대중성을 인정받거나 전도유망한 감독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금을 지불한 전속기간 동안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집필하도록 지시하고 영화제작과 흥행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결정한다. 기간이 아닌 편수로 전속 계약을 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2편에서 5편까지 전속계약을 체결한 감독들은 자신들이 개발해 온 시나리오가 상업적 잣대에 의해 제작 가능성에서 부적합 판단을 받을 경우, 다른 제작사에 속해 작품 활동을 할 수도 없으며, 계약서상 ‘갑’의 허락을 속절없이 기다리며 그들의 구미에 맞게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보완하게 된다. 이러한 불공정한 계약은 한창 창작력이 왕성한 젊은 감독들의 실험과 도전정신을 위축시키고 판에 박힌 흥행 공식을 따른 시나리오를 생산하는 결과로 나타나 결국 영화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2006년 영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2005)가 조기 종영 됐을 때 제작사 현진씨네마의 이순열 대표는 국내 최대 한국영화 배급사의 횡포를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이면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 있는 투자배급사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다. 향후 이것이 한국영화계의 침체를 몰고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혼이야기>(감독 김의석, 1992)의 비디오 판권선 지급으로 삼성의 자본이 영화계에 처음 유입된 이후로 점점 규모가 커진 대기업의 투자는 이제 독점적 투자와 제작, 배급의 형태를 갖추면서 프로듀서의 참신한 기획력과 감독의 작가정신을 위협해 영화를 ‘예술’의 속성을 버린‘오락’으로 전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미 현실화된 이순열 대표의 우려대로 창작의 자율성과 예술성을 존중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앞으로의 한국영화는 기존에 흥행한 일부 할리우드 영화들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타 예술 장르와 다른 미디어에서 차용한 소재와 이야기들을 과다 섭취해 그동안 쌓아 올린 영화 내러티브의 특수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2)노지승, 1960년대, 근대 소설의 영화적 재생산 양상과 그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20권, 2006, 507쪽  3)이문행, 「미디어 콘텐트의 장르 간 영역 이동에 관한 연구: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9권 10호, 2011, 148∼158쪽 참조, 김은영, 김훈순, 「미디어텍스트의 재매개 연구」, 『언론과학연구』 제12권 2호, 2012, 242쪽 재인용  4)Jowett, G. & Linton, J. Movies as Mass Communication, Newbury Park, CA: Sage. 김훈순 역, 『영화커뮤니케이션』, 서울: 나남출판사, 1994 참조, 김은영, 김훈순, 「미디어텍스트의 재매개 연구」, 『언론과학연구』 제12권 2호, 2012, 242쪽 재인용  5)박석환, 「소재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화의 득과 실」, 『대중서사연구』 16호, 2006, 81∼103쪽 참조  6)배경헌, ‘[주말 인사이드] 웹툰 영화 <미생>, <신과 함께> ⋯ <은밀하게> 돌풍 넘으려면 버려야 한다?’, 서울신문, 2013. 6. 22, 16면 참조   7)김에리, ‘김에리의 대중문화: 한국영화, 크리에이티브 실종’, 뉴시스, 20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4833982  8)배경헌, “위의 기사”  9)박주연, ‘다양성 영화 존중, <무게> 전규환 감독은 왜 분노 했나’, 리뷰스타, 2013. 10. 29, 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147294

    3. 영화의 ‘독창성(Originality)’회복의 과제

       1) 영화 창작의 내적 과제: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완성

    고다르는 문학이 영화의 이미지를 죽인다는 생각으로 문학과 철저히 단절된 영화 창작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전 시대 영화인들이 영화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문학적 소재를 그것에 적절히 대입하고 응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학이 영화를 죽게 만들지 않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창조적 공존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되돌아봄의 허용은 문학적 소재를 취해 영화를 만드는 영화 창작 방식에 대한 반성과 경계의 시선이다. 누벨바그는 작가정책과 영화 자체를 통해서 이러한 반성적 시선을 제기하며 기존 영화의 제작 방식을 답습할 수도 있는 자신들의 한계를 경계했다.11)

    영화의 독창성은 텍스트를 결정하는‘무엇을(Story)’과 그것을 풀어가는 영화적 표현 방식, ‘어떻게(Story-telling)’에 동시에 적용된다. 여기에서 ‘무엇을’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관계들을 관찰하고 상상해 엮어내는 힘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진화를 거듭해 온 스토리텔링은 문화의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일상적인 소통 양식으로서의 ‘순수성’을 벗고 대중 의식과 소비성을 주도하는 상업적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12)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문화의 산업성과 상업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한 대표적 소통 양식으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몰입정도를 높이기 위해 시청각적 장치를 정교하게 활용하므로 문학적 내러티브에 비해 소통의 오해가 적고 반응의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영화는 또한 소설이나 만화, TV 연속극과 달리 2시간 내외의 한정된 시간 동안 내러티브를 전개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제작 과정의 특수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이미지’와 ‘사운드’, ‘내러티브의 기술 집약적 속성’등 표면에 드러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스토리를 차용해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의심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의 창작과 ‘말하기’의 기술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의 독창성을 잃는다면 스토리텔링 역시 독창적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드라마의 구성요소들, 즉, 플롯(plot)과 캐릭터, 주제(혹은 사상, theme), 언어(혹은 대사, diction), 음악적인 요소(Music)와 시각적인 요소(Spectacle)들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적인 언어로 융통성 있는 변형과 개발이 가능하다.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스토리와 캐릭터, 이를 표현하는 영화의 시청각적 요소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 적용된다면 원작과의 차별화는 물론 매체의 독립성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영화 <렛미인> (Låt den ratte komma in, Dir. Alfredson, Tomas, 2008)은 스웨덴 작가 욘 린드크비스트(John Ajvide Lindqvist)의 장편소설에서 영화로, 다시 미국 영화 <렛미인>(Let Me In, Dir. Reeves, Matt, 2010)로 거듭나며, 각기 다른 문화와 배경, 관객의 속성과 기술력에 맞는 분위기와 캐릭터를 창조해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림 2]의 포스터와 프레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렛미인>이 가장 중점적으로 원작 영화와의 차별성을 추구한 것은 캐릭터와 그들 관계에 대한 표현이다. 스웨덴 영화에서 12살 소년 오스칼(Oskar)과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Eli)가‘우정’과 ‘이성’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캐릭터 자체도 건조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면, 미국의 <렛미인>에서 오웬(Owe)과 애비(Abby)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서로에게 이끌리는 ‘변화(peripety)’와 ‘발전(developement)’에 중점을 둔 미국적 ‘이성’관계로 설정되었고, 그 설정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해 미세한 구도의 변형을 시도했다.

    미국 영화 <렛미인>이 이처럼 캐릭터의 관계와 시각적인 표현에 있어 원작 영화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면 스웨덴 영화 <렛미인> 은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캐릭터 해석과 주제전달에 독창적 시도를 가미했다. 원작에서 소아성애자로 이엘리와 성과 피를 교환하는 계약관계로 맺어졌던 중년남자 호칸(Håkan)은 영화에서는 이엘리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죽는 순정적인 남자로 등장하며, 이 세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엘리와 함께 떠나는 오스칼의 미래를 호칸을 통해 미리 지켜 본 관객들에게 행복하지만 서늘한 엔딩(ending)을 제공한다. 스웨덴 <렛미인>은 원작자가 각색에 직접 참여해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이에 대한 다른 해석과 설정을 적용한 바람직한 각색영화의 모델(model)이다. 작가는 영화의 이미지를 구상한 후 그 연결점에 캐릭터를 배치하는 방법으로 소설 속 상상의 공간을 스산하면서도 탐미적인 영화의 공간으로 옮겨 놓는데 성공함으로써,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긴 휴먼(human)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 작가들은 원작의 독자들을 영화의 관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잇속 챙기기를 넘어서 그 원작의 이야기를 왜 영화로 만들고 싶은지, 또 그것을 어떻게 영화적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갈 것인지를 철저히 검토하고 계획한 후 창작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작을 의식하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개연성이 살아있는 범위 내에서 과감한 생략과 재창조가 이뤄질 때 비로소 원작과 차별화된 영화적 미학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영화 창작의 외적 환경 조건: 주체적 ‘기획 프로듀싱 시스템’확립

    영화 스토리텔링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환경은 제작과 배급으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영화 제작환경은 소재 개발부터 촬영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내적인 요소를 완성하는 창작의 단계를 포함하고, 배급 환경은 극장부터 IPTV, 케이블, 온라인 상영관까지 영화 작품을 상영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마케팅과 판매 과정을 아우르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전반적으로 작용되는 자본의 논리는 이 모든 과정에 연쇄적인 문제점을 불러일으키게 되므로, 기술적 분석과 대안 마련을 위한 특별한 구분작업이 쓸모없을 정도로 전 방위적인 고찰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과 산업의 논리가 영화 현장에 불러 온 가장 큰 모순은 자본의 존재가 곧 시간적 여유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개봉작의 평균 제작비가 46.8억 원(2012년 기준)에 도달해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놓여 있는데도 창작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13) 또한 산업이 발달할수록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분업화가 이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객 1억 명 시대를 맞은 한국 영화의 산업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영화산업 현장의 제작 공정과정은 획일화되고 일원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제작과 투자, 배급이 분리되지 않은 현재의 제작시스템은 창작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원하며 인내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분업, 즉, 제작과 투자, 혹은 투자와 배급에 대한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작업 분리로 거대 자본의 횡포를 줄여 창작하는 주체와 소비하는 주체 각각의 개성이 중시된 영화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기획 프로듀싱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이것은 관객의 취향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그들의 편향된 입맛을 개선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기획력과 다른 예술과 차별화된 영화의 독창적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는 감독의 역량을 바탕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프로듀서 집단은 90년대 영화 산업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태도를 가지고 급진적으로 성장했던 ‘기획 프로듀서’들의 긍정적 측면, 첫째, 투자자의 이윤 추구와 감독의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각자의 독립된 영역을 지켜주는 적극적인 중재자의 모습, 둘째, 시대와 사람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참신하면서도 보편적인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도전적인 자세를 적극 수용하고 응용할 줄 아는 인재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들은 시나리오 개발부터 제작, 마케팅과 배급에 이르기까지 실질적 경험을 통해 현장 감각을 습득한 ‘감독(작가)형 프로듀서’, 또는 ‘프로듀서형 감독(작가)’으로 예술적 감성을 지니면서도 비즈니스(business)적인 마인드(mind)를 잃지 않고 진정한 ‘맨 파워(man power)’를 발휘할 수 있는 인력을 의미한다.

    다음 과제는 이와 같은 프로듀싱 시스템을 바탕으로 사전 기획 개발 단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감독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표 1]에서 제시한 할리우드 영화의 예산은 영화제작 각 부문별로 예산항목을 세분화하고, 작업의 시간과 중요도에 비례해 예산 편성 비율을 결정한 것을 보여주는데, 제작비 20억 이상의 한국 영화와 비교해 볼 때, 기획개발 단계와 마케팅, 홍보 단계의 예산 비중과 기간 책정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1〉]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 과정 및 예산 편성 비율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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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 과정 및 예산 편성 비율14)

    한국 영화의 대략적 홍보 예산 비율은 전체 예산의 30%에 가깝고, 기획개발 단계의 예산 집행 인정 기간은 대부분 투자가 결정된 시점을 전 후로 최대한 6개월 정도이다. 작가가 영화의 소재를 발굴하고 시나리오로 발전시키는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고, 투자는 대부분의 경우 시나리오까지 검토한 후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영화의 콘텐츠 기획개발을 위한 예산 배정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기획개발 단계의 예산 집행 기간을 작가와 제작, 투자사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무에 적용 가능하도록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영화는 기획개발 단계를 포함한 프리프로덕션, 즉 사전 준비 기간이 길고,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이 한국 영화에 비해 짧은 편이다. 다시 말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단기간에 집중해서 촬영과 편집을 끝내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줄여 경제적인 효과를 얻는 제작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제작비 절감이라는 가시적 이득을 취하고,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를 담보로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 받거나 투자사가 개입할 시간적 여유를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의 기획 프로듀싱 시스템이 유념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는 항목이다.

    마지막으로, 실험 정신과 미학적 도전이 돋보이는 다양성 영화들을 위한 효율성 있는 투자, 제작, 배급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인디영화(Independent films) 제작사들은 투자 단계에서 ‘지분투자(Equity Investment)’, ‘갭 파이낸생(Gap Financing)’, ‘로케이션 인센티브(Location Incentives)’ 등 다각적으로 투자 유치와 배급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15) 그러나 저예산 인디영화나 예술영화를 제작하는 경우에도 메이저 영화사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들과 ‘제작/투자/배급 계약 (PFD Agreement)’, ‘네거티브 픽업 (Negative Pick-up) 계약’, ‘사전 판매(Pre-sales) 계약’, ‘시스템 대여 (Rent-A-System) 계약’등을 체결해 영화 제작비용과 배급채널 등을 확보하는 것이 그 공생 관계의 목적이다.16)

    독립영화제작사가 메이저 스튜디오(studio)에서 의뢰한 영화를 제작하는 하청형식의 ‘제작/투자/배급 계약 (PFD Agreement)’은 제작사가 일정 지분만을 배당받고 모든 위험을 메이저 스튜디오가 부담하기 때문에, 영화 창작 과정을 전면적으로 통제받으며, 대부분의 수익과 권리 역시 메이저 스튜디오가 가져가는 다소 불공평한 계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약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영화의 기획에서부터 투자, 제작, 배급의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 확보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 제작 방식으로 평가된다. ‘네거티브 픽업 (Negative Pick-up)’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독립 제작사가 제작한 영화를 특정 가격에 구입하겠다는 사전 계약으로, 제작사는 스튜디오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지는 않지만, 이 계약서를 이용해 제작비를 대출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의 계약들은 한국의 영화계에서도 일반 상업영화나 저예산 영화의 구분 없이 부분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제작 방식이다. 그러나 다양성 영화나 인디영화라는 범위 제한과 배려 없이 부분적으로 응용된 계약의 조건들은 현재의 기형적 제작 시스템에서 ‘갑’의 위치만 강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했다. 여전히 한국의 다양성 영화는 메이저급 투자 배급사들과 연계 없이 1억에서 10억 미만의 제작비로 작품을 완성하고 영화제 진출 등의 가치 창조를 개별적으로 진행한 후에야 배급의 가능성을 타진 받는다.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독창성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저예산 예술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대한 투자와 제작, 배급에 관한 지원을 하도록 강력한 제도적 방침을 마련한다면 ‘제작/투자/배급 계약 (PFD Agreement)’과 ‘네거티브 픽업 (Negative Pick-up)’ 등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열악한 제작과 배급 환경을 극복하는데 좋은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보다 체계적이고 활발한 인디영화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배급 환경에서 가장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시급한 제도적 장치는 역시‘파라마운트 판결’이다. 2012년 한국의 전국 스크린 수는 2,081개로 2011년 1,974개에 비해 107개가 늘었지만 저예산 영화들의 상영 기회를 증가시키는 순기능을 제공하지 못했다. 천만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도둑들>은 전국 스크린 수의 과반수가 넘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령하다시피 해 개봉했고, 오랫동안 수백 개의 상영관을 유지함으로써 작은 영화의 상영관 확보에 큰 타격을 안겼다. 이러한 독과점 배급은 다양성 영화 전체(58편)의 상영 횟수가 <광해, 왕이 된 남자> 한 편의 25% 정도에 그치는 극단적 폐해를 드러내면서 문화부와 영진위의‘동반성장’이행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김지영⋅유준상 주연의 저예산 영화 <터치>(감독 민병훈, 2012)의 제작진은 개봉 8일째 종영을 선언하며 불공정한 배급사의 횡포에 공식적인 경고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17) 메이저 스튜디오가 배급시장을 독점할 수 없도록 조치한 ‘파라마운트 판결’과 같은 제도를 마련해 현 상황의 폐해를 차단시키지 못한다면 작은 영화의 존재와 가치는 퇴색되어 영화 제작 현장의 축소로 이어지고 영화인들의 생존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18)

    10)Jean-Luc Godard, Jean-Luc Godard par Jean-Luc Godard, Ed. de l’Etoile-Cahiers du Cinéma, 1985, pp. 415-416  11)이정하, 「누벨바그의 ‘작가정책’: 문학적 행위와 영화적 행위 사이」, 영화와 문학, 15쪽 참조  12)허은희, 「인문학적 상상력과 영화의 스토리텔링」, 『부산발전포럼』 제 129호, 2011, 20쪽 참조  13)영화진흥위원회, 「201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12. 1쪽 참조  14)이진권 외, 「미국 콘텐츠 금융 시스템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2012, 56쪽 [표 Ⅰ-10] 참조  15)유은정, 『미주지역과의 영화 공동제작을 위한 프로듀서 가이드북』, 한국영화아카데미, 2013, 10쪽 참조  16)이진권 외, “앞의 논문”, 38-39쪽 참조  17)송호진, ‘다양성 영화 58편 합쳐 5만회 상영, <광해>의 25%’, 서울–한겨례뉴스, 2012.11.19,   18)1948년 미국 대법원은 5개 메이저 스튜디오(MGM, 파라마운트, RKO,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폭스)가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것은 독점 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컬럼비아, 유니버설에게도 영화관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4. 나가며

    영화 콘텐츠 독창성의 상실은 이미 상업적으로 성공한 콘텐츠를 찾아 내 새로운 미디어로 재생산하면서, 제작비에 들어가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투자 유치의 가능성과 마케팅의 상업성을 최대화 하겠다는 전략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업적 전략을 자양분으로 번식한 각색 작업은 영화의 사회적, 예술적 기능을 등한시하는 열악한 제반 환경과 작가의식의 결여가 더해지면서 다양한 형식의 문화예술 콘텐츠에서 소재와 줄거리를 차용하는 정도를 넘어서, 다른 영화의 촬영과 편집 등 영화적 표현 기법까지 빌려오는 그릇된 모방 현상으로까지 나타나 영화의 독창성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 콘텐츠의 과다한 콘텐츠 차용을 통한 독창성 상실의 문제는 비단 한국 영화계에만 나타나는 위기가 아니다. <헝거게임>(The Hunger Games, 2012), <호빗: 뜻밖의 여정>(The Hobbit: An Unexpected Journey, 2012),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 <파이이야기>(Life of Pi, 2012) 등 거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헐리우드 영화의 무분별에 가까운 콘텐츠 차용은 영화의 소재 고갈과 타 미디어에 대한 경쟁력 퇴보에서 오는 위기감을 반영한다. 2012년 한국에서 흥행한 외국영화 10위권 내 작품 중에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않거나 <스파이더 맨>이나 <다크 나이트> 시리즈처럼 전작의 후광을 등에 업지 않은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을 정도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모방이며, 드라마는 인간 행동의 모방이므로 결국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만 작금의 영화계는 그 정도를 벗어난 지 오래다. 흥행 실패의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적 이윤창출을 위해 관객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오락성 영화만을 반복 재생산하고, 문학을 포함한 다른 매체에서 손쉽게 소재를 차용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재창조, 독창적인 이미지 구성과 형식에 대한 고민 없이 무난하고 식상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영화가 전대 예술에 많은 빚을 진 상태에서 독립적 예술 장르로 거듭나기까지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오락의 욕구를 가진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 이를 수용하고 즐기도록 만드는 것은 픽션(fiction)이 지닌 특별한 섭리이자 스토리텔링의 미학이다. 인간세상의 현실에 내재되어 있던 동경과 상상의 세계를 끄집어 내 그럴듯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감동을 주고받고자 하는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분석이 바탕이 될 때 실현 가능하다. 특히, 영화 스토리텔링의 본질은 인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관객과 작가 간의 심리적 행동과 반응을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시킴으로써 영화 속 등장인물이 관객을 대신해 행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형식과 도구를 개발해 보다 효과적으로 관객의 동의를 얻어내는 설득의 방법을 찾고, 간접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던 행동의 역사다. 물질과 정신의 세계가 쉴 새없이 변하는 현 시점에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성실하고 참을성 있는 관찰과 이해가 선행될 때, ‘모방’과 ‘차용’의 정도와 범위에 대한 중용을 잡을 때, 영화는 비로소 다른 예술과 타 매체로부터 온전하게 독립한 스토리텔링의 독창성을 획득하고, 시대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예술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19)정중헌, 「오늘의 우리 영화가 나아갈 길–뉴 코리안 시네마를 위한 제언」, 『영화』 150호, 영화진흥공사, 199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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