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타난 한국전쟁기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Military and an Civilian Population During the Korean War as Depicted in Korean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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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aspects of an otherized civilian population depicted in movies based on the Korean War from the viewpoint of the subject (in this case the U.S. military) and the other (Korean civilians). This paper starts by considering the awareness of Korean civilians that they were being treated as outsiders (the other) by U.S. soldiers during the Korean War. During this time, Korean civilians were often living as the other in the way that they were victims of U.S. bombings, exploited sexually, and made economically dependent on American charity.

    In the ethics of Immanuel Levinas, Conscience is the mind of devoting oneself to the other, as the subject is built by the other. Although the U.S. military did not intend to kill Korean civilians but to aid them, in the view of Levinas’s Conscience, they should be criticized for not being entirely devoted to help the Korean civilians. The U.S. military were standing in the place of the colonial subject, inflicting violence on Korean civilians by indiscriminate bombing, for instance. This paper will investigate how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ther appears in three Korean War films showing diverging aspect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U.S. soldiers and Korean civilians.

    This paper notes that the image of the U.S. military differs in terms of its public and private relationship with Korean citizens, and this dual viewpoint is represented differently in the three films – ‘Spring in My Hometown’ (1998), ‘Welcome to Dongmakgol’ (2005), and ‘A Little Pond’ (2010). The U.S. military seems to be regarded in two very different ways by Korean citizens from these films. The first view is that the American armed forces in Korea were a companion while the second viewpoint regards them as perpetrators of violence and oppression.

    In ‘A Little Pond’, the U.S military came to Korea to help them as an ally at first, though finally they became a group guilty of indiscriminate violence and massacres to keep Korean civilians from crossing the tactical wartime border. This movie portrays U.S. troops as aggressors in the war and the Nogunri villagers as being otherized and victimized - unable to resist at all.

    In ‘Welcome to Dongmakgol’, Smith crashes into Dongmakgol and becomes friendly with the village people. In contrast, the larger U.S.-led military force is portrayed as ruthless invaders who attacked and threatened the villagers – even bombing the village on one occasion. In reaction to this aggression, Smith and some Korean deserters join the People’s Army to resist the U.S.-led air force bombings of Dongmakgol, revealing the duality of the subject and the other.

    In addition, in ‘Spring in My Town’, the U.S. military does something good for the Korean civilian population by giving out chocolate to children and providing civilians with delivery jobs. However, they commit acts of sexual violence, traffic women, abuse children for digging through the trash, and stigmatize Sungmin’s father for siphoning off military equipment by spraying them with red paint. So, at first the U.S. military helps Koreans financially, but becomes the devil incarnate; exercising omnipotent power by raping and committing acts of violence. It leads Changhee to fire at watermill and kill an American soldier. Her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military and Korean civilians is expressed as a personal and emotional relationship.

    The present study first considers the differing aspects in each of the three films–‘A Little Pond’, ‘Welcome to Dongmakgol’, and ‘Spring in My Hometown’. The U.S. soldiers captured on camera show the diverging perceptions of the U.S. military at the time - allies and companions to Korean civilians, but also perpetrators of violence and oppression.

    In conclus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army and Korean civilians is another tragedy of the Korean War. It shows how the America-led forces initially came to Korea as an ally, but eventually committed indiscriminate slaughter in the name of military expediency–in so doing otherizing the Korean civilian population.

    This paper has significance in that it’s the first paper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military and citizens of Korea during the Korean War as depicted in Korean films.

  • KEYWORD

    U.S. military , Korean War ,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military and the civilian population , ‘A Little Pond’ , ‘Welcome to Dongmakgol’ , ‘Spring in My Hometown’ , the other , the subject

  • 1. 머리말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에 나타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이 주체가 아닌 타자로서 취급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미군이 한국을 도와준 것은 분명하지만, 무자비한 전술과 미군 주둔으로 빚어진 사건들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은 미군의 폭격을 당한 피해자로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성적(性的)으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영화에 나타나는 민간인들의 모습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재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한국전쟁기를 다룬 다양한 영화를 통해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를 분석하여, 그 양상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한국전쟁영화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남다은이 말한 것처럼 “궁극에는 국가정체성을 회복시키고 남한 가부장제를 공고히 한다”1)는 관점에서 진행돼왔다. 그동안 한국전쟁영화에 관한 연구는 분단문제까지를 포함하여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한국전쟁에 미군이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미군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적은 편이다.

    그 중 고동연이 「전후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주한 미군의 이미지 : 「지옥화」(1958)에서부터 「수취인불명」(2001)까지」에서 지적한 바 “영화 속에서 재현된 미군들의 이미지는 정형화되고 일반화된 침략군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하여 한국 내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척도 중의 하나”2)라는 점은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전후 미군주둔까지 다룬 고동연의 논문과는 달리 한국전쟁기를 다룬 영화만을 대상으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에 집중하여 살피고자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타자화된 양상을 놓고 미군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한 미군에 관한 연구는 남북한 소설이나 사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신영덕의 「한국전쟁기 남북한 소설과 미국‧중국군의 형상화 양상」에서 미군은 주로 부정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바, 미군은 매매춘 문제와 연관되어 있거나 비인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것으로 나타난다3)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김은정의 「『문학예술』에 나타난 폭격의 서사-한국전쟁기 미국 폭격을 중심으로」4)는 미군 폭격을 북한의 문예 잡지인 『문학예술』에 발표된 소설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김은정은 “폭격은 교전국의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량학살과 다를 바가 없다”5)고 보고 북한 소설에 나타난 미군 폭격서사의 특성을 밝히고 있다. 서희경은 「한국전쟁에서의 인권과 평화: 피난민 문제와 공중폭격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민간인에 대한 배려는 전쟁에 대한 광범한 지지를 확보함에 있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승리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이성적 설명’ 속에 민간인에 대한 책임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6)고 주장하며 인도적인 입장에서 폭격을 당한 민간인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주지하듯이 미군과 민간인의 문제는 주체와 타자의 관점으로 접근 가능하다. “타자를 도구적으로만 인식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의 역사를 배태하기도 했다. 가령 고도로 발달된(‘합리화된’) 과학 기술을 무기로 벌어졌던 20세기 전쟁과 대량살육의 참사가 그 대표적 사례들”7)이라고 본다면 미군이 자행한 민간인 피해의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민간인이 군사행위의 대상 또는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종종 민간인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는 적군을 살상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전투지에 민간인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1년 1월 초에 이르기까지 한국군과 미군의 전쟁 수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전선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피난민을 어떻게 조치하는가 하는 문제였다.”8) 이를 위해 미군은 피난민의 소개, 이동 제한, 그리고 치명적 무력 사용 등의 통제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는 미군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영화 내에서도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영화 중 미군과 민간인의 이러한 복합적인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를 통해 타자와 주체의 관계가 어떻게 다양하게 드러나는가를 검증하고자 한다.

    타자성에 대해서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적 주체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레비나스를 원용하고자 한다.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주체도 성립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주체의 타자에 대한 책임은 무한이 된다. 즉 “책임 속에 있는 타자를 위하는 자는 책임을 태만히 하는 것이 아니라면 회피할 수 없는 자의 숭고한 수동성 속에서 유일한 것으로 기소된 나(moi)”9)로서 “나아가 낡은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대치되어야”10) 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즉 “레비나스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 양심은 타자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마음11)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왔던 미군이 민간인을 살해할 목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한 마음으로 한국의 민간인을 위해 혼신을 다하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거나 주체로서 강압적인 폭력을 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타자화와 이에 대한 비판의식의 정도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대상에 있어서 미군이 민간인을 타자화시킨 양상을 비판적으로 그린 영화만을 분석하고자 한다. <지옥화>(1958)나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등의 영화에서는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든지 미군과 매매춘을 하는 여성을 그리고 있지만, 미군을 비판적으로 그리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 여러 논문에서 지적되어온 바다. “<지옥화>에서 양공주 문제는 미군과 양공주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퇴폐적인 양공주를 둘러싼 한국 남성들 사이의 문제로 변질”12)되거나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는 미군에게 성폭력 당한 “언례의 적은 미군뿐 아니라 자신의 겁탈을 쉬쉬하면서도 언례를 순혈주 의에 위배된 더러운 여인으로 벌하려는 마을 사람들을 포함하”13)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1996)에서는 <은마는 오지 않는다>와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미군에 대한 비판과 민간인의 저항의식이 영화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웰컴 투 동막골>(2005)에서는 동막골에 포격을 하는 미공군이나 인민군을 색출하려는 미특수부대원과 동막골에 불시착한 미공군 스미스와는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바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노근리 미공군 폭격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은 연못>(2010)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당하기만 하는 민간인들의 피해양상을 통해 미군과의 관계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이 세 영화를 통해 한국전쟁기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의 영화적 재현양상의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한국전쟁기를 다룬 영화에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작업은 결국 이들 영화가 무엇을 강조하고 부각시켜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1)남다은, 「전쟁기억의 표상들」, 『황해문화』67호, 새얼문화재단, 2010, 38쪽.  2)고동연, 「전후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주한 미군의 이미지」, 『미국사연구』30호, 한국미국사학회, 2009, 165쪽.  3)신영덕, 「한국전쟁기 남북한 소설과 미국‧중국군의 형상화 양상」, 『한중인문학연구』10 호, 중한인문과학연구회, 2003, 22쪽.  4)김은정, 「『문학예술』에 나타난 폭격의 서사 -한국전쟁기 미국 폭격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54호,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4.  5)위의 논문, 444쪽.  6)서희경, 「한국전쟁에서의 인권과 평화: 피난민 문제와 공중폭격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21호,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2012, 226-227쪽.  7)최진석, 「타자 윤리학의 두 가지 길 : 바흐친과 레비나스」, 『노어노문학』21권 3호, 한국 노어노문학회, 2009, 173쪽.  8)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 RG 338, Box 809, 25Id Hist Rpst 27ThRct, Activity Report For August, Nov 1950:[No Gun Ri File 9123-00-00569]/서희경, 앞의 논문, 206∼207쪽 재인용.  9)레비나스, 김연숙‧박한표 공역,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 인간사랑, 2010, 255쪽.  10)최진석, 앞의 논문, 191쪽.  11)김연숙, 「타자를 위한 책임으로 구현되는 레비나스의 양심」, 『윤리교육연구』25집, 한국 윤리교육학회, 2011, 107쪽.  12)고동연, 앞의 논문, 155쪽.  13)위의 논문, 157쪽.

    2. 한국전쟁영화 속 미군의 재현 양상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수상황은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전쟁당시부터 제작됐던 한국 전쟁영화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지금까지 전개돼 왔다. 지명혁은 한국전쟁영화는 ‘50년대는 생생한 살육의 상처를 그렸고, 60년대는 상처에 대한 반성, 70년대는 극단적인 반공주의, 80-90년대는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 2000년대는 개인과 휴머니즘의 재발견’14) 등으로 변천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영화가 전쟁의 상처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전개됐다고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권호는 ‘전쟁영화의 형성기(1949-1961)는 반공 이데올로기 주입의 시행착오, 양산기(1962-1971)는 양적 성장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안착, 침체기(1970-1979)는 국가주도의 국책영화로 전락, 이행기(1980년대)는 뒤돌아보기와 숨고르기, 재생기(1990년대 이후)는 이데올로기의 경합vs전쟁 스펙터클’15)로 분석했다. 이는 전쟁영화의 시대와 이데올로기와의 긴밀한 관련성을 추적한 것이다. 이 두 연구 모두 한국전쟁 영화 제작이 당대 국가의 정치상황과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특히 김권호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반공‧ 전쟁영화 제작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군 또는 경찰 당국이 직‧간접적으로 제작‧지원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지원방식은 이후 시기 반공‧전쟁 영화 제작관행에도 그대로 이어졌다”16)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변천과 전개과정 내에서 미군과 민간인과의 관계가 다양하게 드러난다. 한국전쟁영화는 분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까지 포괄하고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한국 전쟁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만을 대상으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고동연은 “미군의 원조가 절대적이었던 한국전쟁 직후의 국내 상황,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한국 영화계의 현실,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 그리고 1980년대 사회비판적인 시각과 민족주의의 등장 등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미군의 이미지와 미군과 양공주 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반영되어 왔”17)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본고에서 분석한 세 영화의 1998년, 2005년, 2010년 이라는 제작시기도 물론 1980년 이후의 사회비판시각이 강화되었던 문화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영화 속 미군의 재현 역시 1990년 이전까지는 혈맹으로서 우방으로 온 원조군의 모습으로 재현되었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2)에서부터 미군에 대한 비판의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막상 미군에 대한 비판의식은 다소 약하게 나타났으며, <아름다운 시절>(1998)에 와서야 비판의식으로 인한 저항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웰컴 투 동막골>(2005)은 이데올로기나 민족이 무화된 이상향인 동막골을 상정하여 비판의식과 동료애를 함께 보여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의미가 크다. 이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에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으로 남북한을 바라보는 영화 재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은 연못>(2010)에서야 본격적으로 미군의 민간인 폭격사건을 다룬 영화가 등장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미군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국군까지도 비판하는, 즉 한국 전쟁기에 국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청야>(2013)와 같은 영화까지 제작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하게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의 피해는 인민군의 색출을 목적으로 국군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세 영화를 통해 나타나는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주체와 타자의 관점에서 책임과 윤리의 테마로 영화적 재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한국전쟁기를 다룬 영화의 맥락에서 미군 재현 양상의 의미는 <아름다운 시절>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전쟁기 미군에 대한 비판의식이 <작은 연못>에 와서 미군이 주체가 되어 민간인을 타자화시켰다는 점을 강조하여 미군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14)지명혁, 「한국영화에서 나타난 한국전쟁의 양상과 시각의 변화」, 『영화교육연구』제 7집, 한국영화교육학회, 2005, 176-193쪽 참조.  15)김권호, 「한국전쟁영화의 발전과 특징-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쟁까지」, 『지방사와 지방 문화』9권 2호, 역사문화학회, 2006, 77-108쪽 참조.  16)김권호, 「전쟁 기억의 영화적 재현 : 한국 전쟁기 지리산권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68집, 한국사회사학회, 2005, 110쪽.  17)고동연, 앞의 논문 165쪽.

    3. 한국전쟁기의 미군과 타자화된 민간인의 관계

       1) 타자화에 대한 비판의식의 발로: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시절>의 도입부에서는 미군이 지프차를 타고 지나갈 때 아이들은 초콜릿을 달라고 차를 따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군이 초콜릿을 떨어뜨리자 마을 아이들이 초콜릿을 얻어먹으려고 지프차를 뒤따른다. 또한 딸을 미끼로 미군부대에 취직하려는 성민의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미군은 경제적 도움을 주는 대상이었다.

    위의 <장면 1>처럼 미군 장교와 사귀던 누나 덕분에 성민의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자막으로 처리돼 부각된다. 성민네 가족뿐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마을 사람들 역시 미군과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남편을 전쟁 중에 잃은 창희 어머니는 미군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창희 어머니가 물방앗간에 미군과 함께 들어오는 것은 아이들이 훔쳐보기도 한다. 이처럼 미군은 민간인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게 된다.

    신영덕은 한국전쟁기 남북한 소설에서 “미군은 주로 부정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바, 미군은 매춘 문제와 연관되어 있거나 비인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18)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주로 매춘부 문제와 연관되어 있거나 사람보다 짐승을 더 중히 여기는 비인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종군 활동을 한 종군작가들이 우군인 미군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미군에 대한 남한 작가들의 태도가 대부분 비판적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전쟁을 비판하면서 전쟁기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던 남한 작가들의 글쓰기 태도와도 관련 있”19)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에서도 미군은 매춘과 관련 있거나 폭력적 지배자로의 모습을 보인다. 동네 아녀자에게 성폭력을 가하거나 부대근처 쓰레기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들을 벌하고, 부대 물건을 빼돌린 성민 아버지에게 붉은 페인트를 뿌려 낙인찍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미군의 태도에 대한 민간인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군과 매매춘을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창희는 매매춘의 온상인 방앗간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있던 미군이 사망하게 만든다. 미군은 창희의 입장에서는 원수이며, 불지름으로써 이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부통령이 내한함으로써 우방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나는 임신한 채 미군에게 버려진다. 이처럼 <아름다운 시절>에서의 미군은 경제적 폭력적 주체로서 민간인을 타자화시키는 관점이 부각되고 있으며, 물방앗간을 불지르는 창희는 이에 대해 저항하는 양상을 보이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2) 타자화에 대한 비판의식과 동료애의 공존 : <웰컴 투 동막골>

    (1) 타자화의 측면

    <웰컴 투 동막골>은 무기를 싣고 가던 미군 수송기를 운전하던 미전투기 조종사 스미스 대위가 불의의 사고로 동막골에 추락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스미스와의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자 미공군 본부에서는 “동막골에 인민군의 대공포 기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면서 대규모 폭격을 감행할 뜻을 밝히자 국군 지휘부는 “아직 뚜렷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할 수 없다”며 반대의사를 밝힌다. 마침내 연합군은 추락한 미군 조종사를 찾을 특수부대를 파견한다. 아래 <장면 2>에서는 특수부대원 대장이 부대원들에게 지상 투하전 지상에 있을 적들이 자신들을 망설임없이 잔인하게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미공군이 주체적 입장에서 지상에 있는 적들을 잔인한 타자로 판단하고 있다.

    동막골에 내려간 특수부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자 결국 미공군 본부에서는 대규모 폭격기 편대를 출동시킨다. 동막골에 있던 “국군과 인민군 패잔병들이 평화로운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다 모두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은연 중에 전시작통권 환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20)으로 해석될 만큼 한국전쟁인데도 불구하고 국군보다는 미공군의 판단과 주도 하에 작전이 수행되고 있는 것을 재현하고 있다.

    <장면 3>에서의 ‘우리에겐 동정적으로 행동할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미군의 말처럼 미군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타자에 대한 동정심이나 배려없이 작전을 기획‧수행한다. 즉 <웰컴 투 동막골>은 미공군 폭격의 서사로 미공군과 민간인의 관계에서 여전히 한국의 민간인은 타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재현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리수화와 표현철 일행은 스미스 대위의 안내로 추락한 수송기의 잔해에서 기관총과 대공포 등 무기를 구한 후 표현철의 지휘로 방어 작전을 펼치기로 합의한다. 이 과정에서 스미스도 함께 싸우겠다고 하지만 “당신이 돌아가서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표현철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린 스미스는 포로로 잡힌 미공군특공대원과 함께 서둘러 동막골을 떠나 연합군 본대로 간다. 이에 대해 강성률은 “일원이 된 미군은 동막골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합군 본대를 찾아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미군은 폭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인민군과 국군이 동막골을 살리기 위해 죽어 갈 때 그는 살아남는다. 결국 그는 인민군과 국군과는 다른 존재임을 보여 주는 것”21)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 영화가 동료애를 나눈 스미스에게서조차 미군이 주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현한 것으로 보는 입장인 것이다.

    표현철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려 한다. 밤하늘을 수놓는 폭격기 편대가 나타나고 표현철 일행은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전투를 시작하여 몇 대의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등 선전한다. 그러나 그 후 이따른 미군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모두 전사한다. 마을을 떠나다가 미군기들의 폭격 장면을 보고 스미스는 절망적인 표정이다. 영문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한 밤중에 벌어진 때 아닌 불꽃놀이를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다.22) 이러한 상황은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사료와 기존 연구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미군이 설정한 폭격 안전선 밖에 적군과 섞여 있는 많은 피난민이 있다는 것이다. 공군이 이들에 대한 기총사격과 폭격 명령을 육군에게 구하지만, 육군은 민간인의 살상을 염려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고, 결국 공군이 폭격을 감행해야 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공중 공격은 이중효과의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적군을 죽일 수 있고, 동시에 근처에 있는 어떤 민간인이라도 사상될 수 있다. 미 공군은 전쟁 초기부터 우세한 항공 전력을 바탕으로 제공권을 장악, 공중폭격을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하였다. 한국전쟁 수행에서 궁중폭격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간 피난민을 위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였다.24) 이 사료와 연구에서도 증명되듯이 민간인들은 폭격에 노출돼 있었고, <작은 연못>이나 <웰컴 투 동막골>은 이러한 점을 재현하면서 타자화된 민간인의 피해를 환기시킨다. 영화 속 동막골은 국군 패잔병도 품고 미군도 품는 곳이다. 심지어 인민군까지 환대하며 품는 곳이다. 그러나 동막골에 내려온 미공군 특수부대원들은 인민군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하기도 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함으로써 이 영화 에서 가장 긴장감이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우방으로 왔으나, 군사적 작전이라는 편의주의에 의해 민간인을 무차별 폭격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이다. 미군이 자신들을 주체로 놓고 민간인을 타자화시키며 작전을 앞세워 민간인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측면을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동료애의 공존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앞 절에서 언급했던 미군과 민간인과의 타자화에 대한 비판의식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료애의 측면도 나타나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전투기 사고로 동막골에 불시착한 미공군 스미스는 본부와의 연락을 계속 시도하지만 불통이다. 곤란에 빠진 그는 동막골의 소년과 첫만남을 하게 되고, 이후 동막골에 들어와 함께 거주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언어적 소통은 어렵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로 교분을 쌓아간다.

    데리다는 그의 저서 『환대에 대하여』에서 기존의 질서 체계에서 이방인의 개념이나 이방인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데리다는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중 이제 막 콜로노스 숲에 도착한 오이디푸스가 다가오는 콜로노스인을 “이방인이여!”라고 불러 세우는 장면에서 ‘이방인’이 존재규정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호칭임을 보여준다.25) 현지에 살고 있는 콜로노스인에게는 오이디푸스가 당연히 이방인이겠지만, 처음 도착한 오이디푸스입장으로 보면 그가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동막골은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미군이든 모든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상 공간이다. 그러므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도 이방인의 태도를 버리고 친구가 된다. 민간인과 친해진 스미스는 손님이자 동료며 친구이다. 국군 패잔병, 인민군과 함께 스미스 역시 마을 사람들과 멧돼지도 잡고 마을축제도 함께 참여한다.

    심지어 동막골의 축제가 벌어지던 날 밤, 스미스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다 못해 총까지 쏘는 미특수부대원들을 국군 패잔병과 함께 힘을 합해 제압한다. 스미스는 동막골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동막골을 위한다. 동막골 사람들의 친구인 스미스가 주체로서 마을 사람들을 타자로 취급하는 장면은 없다고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영화 내에서도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타자화에 대한 비판의식과 동료애가 공존하는 등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3) 타자화에 대한 비판의식의 강화: <작은 연못>

    영화 <작은 연못>에서는 우방의 군인인 미군이 민간인을 비행기에서 무차별 학살한 폭력성을 지닌 집단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에 발생했던 노근리 사건26)이다.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재현하여 사회적 환기를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실제 사료와 분리시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도 사료와 영화를 오가며 논의하게 될 것이다. “노근리 사건 발생 기간과 가장 근접한 시점의 자료인 1950년 8월 19일자 『조선 인민보』 또한 ‘평화주민 400명 학살’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수는 대략 300∼400명 선으로 정리될 수 있다. 특히 쌍굴다리에서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약자와 어린이들이었다는 증언”27)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이었다.

    연극 연출가였던 이상우 감독이 영화제작을 결정한 것이 2001년이었지만, 2010년 4월 15일에 개봉돼 거의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제작 과정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 현장에서 자식을 둘을 잃은 정은용(노근리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실화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바탕으로 완성된 영화 <작은 연못>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되는 장면이 미 공국 폭격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 <장면 4>는 민간인 피난민을 폭격하는 미 공군 비행기 조종사를 주체로 놓고 민간인을 대상화하는 익스트림 롱쇼트이다. 처음 폭격이 시작되는 장면부터 미공군에게 폭격 당하는 민간인들은 주체가 아닌 타자로 표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연못>에는 아래 <장면 5>처럼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라는 군사통신이 자막으로 처리돼 대상화된 민간인들의 폭격 피해 사건 자체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은 연못>에서 미공군의 폭격을 재현하는 방식은 전쟁 중 작전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노근리 사건만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사건을 연구, 조사하여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한미관계를 재조명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28)이라는 입장을 대변한다.

    김태우는 논문에서 “이상우 감독은 미국 병사들의 총격 장면 또한 생생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미군 병사들 또한 전쟁의 피해자이며,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은 피난민 통제명령을 내린 정‧군 고위급 인사들, 혹은 전쟁이라는 폭력 상황 그 자체라는 관점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29)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연못>은 미군 병사들 또한 전쟁의 피해자라는 점보다는 민간인을 타자화시키는 미군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 텍스트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연합군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나는 민간인에게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는 미군의 모습이나 피난가는 민간인들에게 길 아래로 가라고 협박하는 미군의 모습도 자신들이 전쟁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또한 폭탄투하의 소식을 듣고 민간인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채 자신들만 도망가는 미군의 모습 역시 무책임한 점이 부각된다.

    전쟁 중에도 민간인은 보호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한 작전 수행이 불가피하다면, 비전투 민간인의 피해는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할 것인가?”30)하는 문제가 공중전의 작전에 따르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 상황이다. “1951년 1월 1일 오후 9시에 서울 철수에 앞서 미8군 사령부는 ‘행정명령 32호’를 공포하였는데, 이 행정명령의 핵심 내용은 유엔군의 작전 수행에 방해가 되는 모든 민간인의 이동을 통제하려는 것”31)이다. 그런데 서희경의 논문에 따르면 전군에 하달된 이 문서에서 민간인 보호의 일차적인 실행 책임을 대한민국 정부당국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7사단 민사9(Civil Affairs)기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38선 이남의 민사 문제는 도 단위 또는 지방 단위 당국을 포함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통하며, 지방 당국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경우에는 지휘관이 군사 작전수행에 필요한 선에서 통제한다”32)고 하고 있어 민간인 보호보다는 작전수행이 앞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있다. 이는 미군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주체가 되어 민간인을 타자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작은 연못>에서의 미육군은 아직 전쟁이 일어났다는 실감을 하지 못하고 지내는 산골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 군사지역이니 피난을 가라고 명령한다. 정작 명령에 따라 피난을 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며 타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장면 6>을 보면 미육군의 입장에서 마을 사람들을 오히려 수상한 사람들로 치부하며 민간인을 타자화한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은 “‘자아’ 이외의 모든 이질적인 것(他者)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체계를 구축해 나간 주체 중심주의적 사유가 버티고 있다는 것”33)을 비판하는 관점에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래 <장면 7>에서는 미군이 총을 겨누며 민간인을 마치 적군 포로를 대하는 것처럼 억압하며 위협하고 있는 점이 강조된다.

    <작은 연못>에서는 이처럼 미군이 민간인을 타자화시키고 사물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적인 영화 <작은 연못>의 에필로그 부분에서의 커다란 고래 두 마리가 노근리 하늘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판타스틱한 장면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타자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다. 이상우 감독은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고래 이미지를 넣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고래는 인간다움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래는 살리자고 하면서 왜 사람다움은 살리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며, “사람도 고래처럼 소중하고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34)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고래의 출현은 타자가 나에게 이미 알려지고 앎의 대상이 되었다면, 그는 더 이상 낯설고 이질적인 타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작은 연못>에서의 이 장면은 한국 땅에서 미국이 주체가 되고 한국인이 타자화된 상황을 고래라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는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8)신영덕, 「한국전쟁기 남북한 소설과 미국‧중국군의 형상화 양상」, 『한중인문학연구』10 호, 중한인문과학연구회, 2003, 22쪽.  19)위의 논문, 8쪽.  20)이영민, 「관객동원 기록 갱신하는 반한, 반미영화들(7):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미군이 박살낸 것으로 묘사한 <웰컴 투 동막골>」, 『한국논단』Vol.210, 한국논단, 2007, 111쪽.  21)강성률, 「영화로 보는 우리 역사 ⑤ <웰컴 투 동막골>과 한국전쟁:민족의 이상향과 과도한 민족주의의 함정」, 『내일을 여는 역사』Vol.22, 내일을 여는 역사, 2005, 291쪽.  22)이영민, 앞의 논문, 119쪽.  23)NARA, RG 342, Box 3539, Fifth Air Force, Office Of Tactical Air Research And Survey, Feb. 23 1951: [No Gun Ri File]/서희경,앞의 논문, 212쪽 재인용.  24)서희경, 앞의 논문 212쪽.  25)데리다, 남수인 역, 『환대에 대하여』, 78쪽.  26)1950년 7월, 전쟁초기 북한군에게 밀린 미군은 전선을 후퇴시켜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 저지선을 구축하게 된다. 노근리 주변 마을인 주곡리, 임계리에는 미군에 의해 소개령이 내려지고 500여명의 주민들은 미군의 강압적인 인솔하에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미군은 피난민 틈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확신하여, 피난민들의 저지선 통과를 저지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가던 피난민들을 향해 비행기 폭격을 감행한 다. 미군의 저지선이 후퇴하기 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 동안 폭격에 살아남은 300여명의 생존자들은 기차길 밑 쌍굴 다리에 갇힌 채 제 1기병사단 7기병연대 2대대 병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300여명에 달했던 쌍굴 다리 안의 피난민들 중 최후 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5명. 이들은 시체를 방패 삼고 핏물로 갈증을 달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영화 <작은 연못> 제작 노트 중에서(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42110&t__nil_main_synopsis= more)  27)이만열, 「노근리사건과 평화」, 제1회 노근리국제학술대회자료집, 2007, 17∼21쪽.  28)최득진,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법전논총』Vol.35,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2000, 2쪽.  29)김태우, 「영화<작은 연못>을 통해 본 한국전쟁 다시쓰기」, 『작가세계』Vol.87, 세계사, 2010, 405쪽.  30)서희경, 앞의 논문, 207쪽.  31)NARA, RG 550, Entry A-1, Box 80, Organizational Files, 8086 MHD, “Evacuation of Refugees and Civilians from Seoul June 1950 and December 1950 to January 1951.”/서희경, 앞의 논문, 213쪽 재인용.  32)NARA, RG 407, E-429, Box 3186, 7th Inf Div. Administration O No.8, Hq 7th Inf Div, 071200, Jan 1951./서희경, 앞의 논문, 213쪽 재인용.  33)최진석, 「타자 윤리학의 두 가지 길-바흐친과 레비나스」, 『노어노문학』제 21권 3호, 한국노어노문학회, 2009, 174쪽.  34)김종훈, 「<작은 연못> 이상우 감독 & 이우정 대표. “최고의 선택, 최선의 노력”」, 『무비위크』홈페이지(http://www.movieweek.co.kr/article.html?aid=22998): 이선희. [제작사‧배 우들 무보수 품앗이로 담은 반전메시지, <작은 연못> 이상우 감독], 『국민일보』, 2010 년 4월 18일자.

    4. 맺음말

    이 논문은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주체가 되고 한국 민간인은 타자로서 취급돼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한국전쟁영화 중 미군과 민간인의 이러한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타자와 주체의 관계가 어떻게 다양하게 드러나는가를 검증했다. 임마누엘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주체도 성립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주체의 타자에 대한 책임은 무한이 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관점에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를 고찰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절>, <웰컴 투 동막골>, <작은 연못>의 세 영화가 타자화된 민간인의 모습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 영화이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미군의 책임을 환기시키는 영화임을 밝혔다.

    첫째로 <아름다운 시절>(1998)에서 미군은 초반부에는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 주기도 하고, 미군부대에 납품을 하는 직업을 제공하는 등 원조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녀자에게 성매매를 시키며, 부대근처 쓰레기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들을 벌하고, 부대 물건을 빼돌린 성민 아버지에게 붉은 페인트를 뿌려 낙인찍는 등 폭력적 지배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경제적 도움을 주는 대상이었지만, 아녀자를 성폭행하며 지배자로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악인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된다. 어머니의 성매매 현장을 목격한 창희가 성매매의 현장인 물방앗간을 불지름으로써 미군을 불태워 죽이는 저항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웰컴 투 동막골>(2005)에서는 동막골 내 인민군 대공포대 여부를 조사하려는 미공군 특수부대원들이 마을을 침입해 민간인을 공격하고 위협하는가 하면, 미공군은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는 등 무자비한 존재로도 그려진다. 그러나 동막골에 추락하여 민간인들과 함께 지내게 된 스미스는 친구며 동반자의 관계를 형성한다. 동막골에 폭탄을 투하하려는 미공군에 대해 인민군, 국군탈영병, 미공군 스미스가 힘을 합해 폭탄이 피해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장면은 미군과 민간인 사이에 동료애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타자화에 대한 비판과 저항, 동료애가 공존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2010)에서는 우방으로 온 미공군이 작전 상의 편의로 민간인을 무차별 폭격으로 학살한 폭력성을 지닌 집단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미군은 주체로서 전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노근리 마을 주민들은 그저 타자화되어 피해를 당할 뿐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강조한다.

    결국 카메라에 비친 미군은 아군이며 민간인과 동반자로서의 관계가 표현되어 있는가 하면 폭력과 집단살해의 주범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처음에는 우방으로 왔으나, 군사적 작전 상의 편의를 위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으로 볼 수 있다.

    세 편의 한국전쟁영화 <아름다운 시절>, <웰컴 투 동막골>, <작은 연못> 등을 통해 본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는 전쟁기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군이 주체가 되어 민간인을 타자화시킨 상황에 대한 책임을 소환하는 방향으로 재현됐다. 이 논문은 한국영화에 나타난 한국전쟁기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집중해 밝힌 논문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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