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기 노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A Sociological Inquiry into Pains in the End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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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임종기의 고통은 죽음에 관련된 고민일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의 삶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주제이다. 이 연구는 임종과 임종의 고통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신체와 정신, 자아와 사회의 이항적 대립 개념이 아닌 통합적 관점을 제시하고 고통을 신체, 정신, 자아, 사회의 일여 관계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임종기 노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증상과 대처방식, 그리고 죽음을 맞는 태도를 해석하면서 고통과정의 유형적 특징을 탐색하고 있다. 임종의 고통은 생명의 신체적 기반이 무너지는 고통, 사회적 존재로서 집착하게 되는 욕망, 책임, 역할, 관계로부터의 고통, 그리고 유한한 생명을 인정해야 하는 고통이 함께 응축되어 있다. 한편으로 임종은 삶의 모든 비참함과 괴로움을 담고 있지만, 고통이 치유되고 인간이 가장 성스럽게 전환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자기통합적 대응으로 삶의 가치를 통합하거나 무아적 대응으로 번뇌의 근원인 자아집착에서 벗어나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죽음을 맞는 태도를 고통 속의 죽음, 고통의 도피처로서 죽음, 편안한 죽음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있다.


    Pains in the end of life are not just the subject of the death. Pains in the end of life help us integrate the meaning of life and world in which life is made. This study aims to inquire into the meaning of pains in the end of life from a sociological perspective. For this purpose, the problem of dichotomous concepts between body and mind, and between self and society is raised and a synthetic concept between body, mind, self, and society, ie the sameness of body, mind, self, and society is proposed. From this synthetic approach, this study finds some typological characteristics in which pains are expressed and adopted, and death is admitted. Pains in the late life condense physical suffering, throes of social being tied to desires, responsibility, and social relations, and the suffering of a mortal life to admit death. Despite the misery and suffering in the end of life, however, pains could be healed and the self could be sacred by getting away from self-anguish and integrating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Whether people integrate their life or get away from self-anguish in turn differentiates the attitude toward death, such as death as pain, death as escape from pain, and death as peace.

  • KEYWORD

    임종 , 고통 , 일여 , 자기 통합적 대응 , 무아적 대응

  • Ⅰ. 머리말

    임종기가 언제인가. 현장에서는 의학적으로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진단된 시점이라고 하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점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의료 수준이 발전될수록 임종기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구인회, 2004). 현재 대부분의 노인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중증의 말기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분도 있지만 만성적인 신체·인지상태의 취약 상태에서 어느 순간 병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운명하는 경우도 많다. 의료비용의 상당부분이 노년의 질병과 관련되어 지출되고 또 노인 의료비 중 상당부분이 임종기 의료와 관련되어 지출되고 있다.1)

    ‘살려고 병원에 왔는데 죽을 것 같고 죽으러 호스피스에 왔는데 살 것 같다.’ 이말은 한국에서 처음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갈바리 수녀회 출신인 카리타스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인이 죽음을 맞는 장소는 병원이고 병원에서는 오직 환자를 살리기 위한 처치방식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임종기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생명연장의 실패의 결과로 맞이하게 된다.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규제하고 편안한 죽음을 돌볼 수 있는 합의된 가이드와 교육을 실행하는 병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완화의료/호스피스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아직 체계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과정은 심각한 고통 상황이 되고 있다(윤영호, 2013).

    임종기 노인 환자가 겪는 고통은 복합적이다. 그 고통은 악화된 병의 증세와 관련되거나 공격적인 치료와 연관된 신체적 고통을 포함하고, 자기 의사와 의지가 허락되지 않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일어나는 무력감, 사회관계로부터의 고립과 상실감, 역할 변화에 따른 심리·정신적 고통, 가족과 사회에 부담이 된다는 의식, 지연된 의료치료와 돌봄에 수반된 막대한 비용에 대한 우려 등 실로 복합적이다(능행, 2010). 이처럼 누구나 임종기에 복합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고통이 발생하였는지 그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다.

    이 연구는 임종기 노인 환자가 겪는 고통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고통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상당히 많지만 고통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되지 않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몸과 마음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다양하게 전개된 논의들을 검토하면서 임종기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사회학적 관점의 기본 틀을 정리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임종기 노인이 호소하는 신체적 고통 안에는 이미 사회적인 영향과 생리적인 반응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임종기의 고통은 오직 생리기관의 이상이거나 개인이 어떤 상황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감정 표출이거나 성격장애가 아니라, 생명이 멸하는 과정의 신체적 통증과 상징적 상호작용, 제도, 권력, 이데올로기적 환경안에서 구조화된 삶의 부조리가 신체과정과 의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임종기 개인의 삶이 놓여 있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서 그리고 고통에 대처하는 상황에 따라서 고통의 양상과 정도, 결과가 다르고 그 과정에서 자아가 전환될 수 있고 고통이 치유될 수 있다는데 주목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임종기 노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의미와 대처방식 그리고 죽음의 의미가 어떤 유형적 특징을 갖는지를 밝히고 있다.

    1)2013년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전체 건강보험진료비중 65세 이상 노인진료비의 비중이 35.5%로 계산된다(건강보험공단, 통계DB). 건강보험공단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1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에서 65세 이상 노인진료비의 비중은 17.7%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최근 10년간에도 노인 진료비가 크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인진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노인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요인 이외에도 노인의 진료비와 수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박경숙, 2003: 222). 이선미 외는 건강보험 진료비 분석을 통해 전체 진료비 중에서 사망한 시민들의 진료비가 매우 높은 것을 밝히고 있다(이선미·이희영·김재원·강성욱, 2011: 3, 141). 사망 위험이 고령에 집중되는 점을 고려할 때 노인진료비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데에는 임종기 진료비 비중의 영향도 크다고 여겨진다.

    Ⅱ. 고통의 사회·심리적 차원

    노년기 삶의 전반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몸은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된다. 우리의 상식은 나이가 들면 인성이 변한다고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의 성격은 나이에 관계없이 고정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정체성이 어떻게 지속되거나 변하는지는 노년의 의미를 밝히는데 중요한 주제가 된다. 한편으로 노년의 신체·정신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체적 변화와 자아,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밀한 개념화나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 같다. 노년과 관련된 연구는 크게 의료계와 사회과학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의료적 연구들은 노화된 몸의 특성과 건강한 신체유지에 도움이 되는 의료적 환경과 기술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다양한 분야의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노년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복합적인 사회 환경과 돌봄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노년 연구에서는 두 접근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이 가 들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 변화와 개인의 주관적 안녕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관계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 심리, 사회, 철학, 종교학의 관점을 연결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상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왜 임종기 노인은 많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인지, 더 중요하게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의 임종이기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개인의 신체·심리적 웰빙이 사회적인 환경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사회학의 오래된 상식이다. 고통은 삶의 조건의 해체적 특성과 연결될 수 있다. 빈곤, 자산의 상실, 가족의 상실, 각종 사고등 삶의 자부심과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스런 사건에 접하는 위험은 늘 존재한다. 이런 사건들은 분명히 큰 고통을 야기한다. 그러나 같은 고통스런 사건이라도 대처과정과 결과는 개인이 놓여 있는 보다 포괄적인 사회 구조적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피어린이 고통을 유발하는 단기적 사건과 만성적 긴장 요인을 구분하였듯이(Pearlin, 1989), 단기적 스트레스 사건은 살면서 바람직하지 않거나, 계획되지 않았거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위험스런 사건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고통은 일회적인 충격 보다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인을 일련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행동하게 하는 상황들에서 지속된다. 하나의 불행이 다른 불행으로 이어져 복합적이고 만성화된 삶의 긴장으로 작용하는 것은 삶의 조건이 복잡한 지위구조와 교환체계에 의해 구속되기 때문이다.

    임종기 고통은 개인이 오래 동안 익숙하게 행하였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역할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 결과와도 연관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익숙했던 역할과 사회적 인정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때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와 함께 고통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Dowd, 1975; Longino and Cart, 1982). 고독감은 관계나 역할로부터 배제되었을 때 혹은 스스로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여 관계를 거부하는 존재의 위기를 의미할 수 있다(Seeman, 1989).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이나 성취를 중심으로 살다가 더 이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의 회의로 괴로워 할 수 있다. 그동안 바람직하다고 믿었던 가치나 의미가 무너질 때,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와 규범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때,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에 휘말릴 수 있다. 세계와 자아의 의미는 더 이상 명확성을 잃고 정의하기 어려워지고 삶의 무의미함에 방황한 다. 삶과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기만하면서 살았던 것에 대해 회의감이 크게 밀려올 수 있다. 역할 상실과 삶의 의미에 대한 방황은 특히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극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병이 깊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생존전략 안에 고통의 원인이 자리하기 때문일 수 있다(Elias, 1998[1982];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2012). 과거 어느 시대보다 현대에서는 죽음이 사회로부터 기피되고 배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현대사회는 경쟁 속에서 자아를 계속 확장해야 하는 압력이 크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건강과 지능, 체력과 능력의 회복과 유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나의식과 나의 것이 확장해가면서 세계는 점점 타자화되고 나와 세계의 관계는 약화된다. 젊음과 생산성이 강조되고 자기가 과시되는 사회에서 임종과 죽음의 공포는 증폭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피하는 전략이 발전됨으로써 고통이 확대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각종 질병이 늘어난 것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병들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과거에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고 감내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상태가 지금은 두렵고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있는 병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전략 중의 하나가 질환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환으로 접근될수록 불안이 늘어나고 그만큼 고통을 내적으로 통제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은 약해질 수 있다.

    고통은 심리학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프로이드(Freud)와 융(Jung)이 대표하는 초기 정신분석학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심각한 고통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Jung, Hall, and Jacobi, 1986). 마음이 무너지면 주체와 세계가 무너진다. 개인은 지식을 배우고 외부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관계를 경험하고 적지 않은 좌절과 방황을 겪어나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일상의 행동과 의식을 조정하는 심층의 강한 에너지에 초점을 둔다. 정상적인 인격에서도 여러 상충된 행동과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심층의 인성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심층의 분열이 너무 커서 통합된 인격을 갖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병이고 고통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사회 전체가 고통에 휩쓸린 것 같은 오늘날 한국인의 정서에 초기정신분석학의 메시지는 깊이 공감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은 경제 불안과 자연재해, 물리적 위험 환경 뿐 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마음에서 오고 있다는데 수긍하게 된다. 환각, 파라노이아, 피해망상 등의 고통은 인성적 요인과 생활사 그리고 욕망 등이 결합되어 마음이 파괴될 때 일어난다. 정신분석학은 편집증, 히스테리, 다중인격, 환각과 같은 분열현상을 보이는 사람은 심층의식에 상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이 무너진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겪었던 그리고 무의식에 은밀하게 감쳐진 좌절과 고통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이드(Freud)는 그 상처의 비밀을 성적억압으로 설명하지만 융은 삶에서 겪었던 다양한 억압이 인격통합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융(Jung)은 환자와 마찬가지로 의사도 마음의 분열을 갖고 있다는 것을 터놓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마음의 병을 겪고 있는 환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환자를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해해야 한다. 치료자는 그가 환자에게 반응하고있는 방법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하며 의사가 갑옷처럼 위엄을 몸에 두르고 있을때 아무런 치료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한다(Jung 외, 1986: 50-55).

    고통의 원인으로서 자아와 사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는 설명들은 사회학과 심리학 내에서도 점점 분화되고 있고 다양한 의료와 상담, 치료적 접근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분과적 인식의 경계와 제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심리·의료적 접근은 우울증이나 고통의 증세를 진단하는 척도 개발이나 고통에 대한 개별화되고 생리적 설명에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이상문, 2005). 그러나 개인의 마음에만 초점을 둘 때 자아의 분열과 긴장의 비밀은 충분하게 대답되지 않는다. 반대로 고통의 근원으로서 자아의 심층에 작용하는 억압이나 권력 이데올로기적 영향에 대한 논의는 자유의지의 자아와 사회화된 자아의 대립적 구도 사이에서 내면의 갈등을 설명하려 하였던것 같다(김홍중, 2013). 자아는 외적인 세계인 관계와 타자와 환경에 적응하려고 하지만 또한 외부 세계와 갈등한다. 자아와 세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통합되기 어렵고 자아와 세계는 모두 선험적으로 대립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개인의 심리적 안녕과 사회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논의가 많지만, 개인과 사회의 이항적 대립이 충분히 해소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개인 환원적이거나 과잉사회화된 접근 사이에서 한편으로 지나치게 미시적이거나 다른 한편으로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구조적인 설명으로 귀결됨으로써 복잡해진 사회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몸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개인의 심리·신체적 고통이 자아라는 개체와 그리고 사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 자아와 사회의 이항적인 구분을 넘어서 서로의 상호작용적인 관계를 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는 깊이가 일천하고 분명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지만 몸과 마음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상호관계의 관점에서 임종기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자아와 세계를 실재하는 그리고 근원적 중심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바꾸기 때문에 그것은 다소 전도적이다.

    Ⅲ. 몸, 마음, 자아, 세계는 일여

    우선 몸, 마음, 자아, 세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로부터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2014년 12월 13일 BBC 채널에서 방송된 <고통에 대한 보고서> 내용에 기초한다. 집의 지하실에서 일하다가 팔이 송풍기에 들어가 버린 남성이 있다. 그는 주변의 도움을 청하였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채 24시간 이상을 절박한 상황에 있다가 살기 위해서 스스로 팔을 절단해야 한다고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팔을 자르는 동안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환자는 오토바이로 큰 화상을 입었는데 사고 난 상처도 아팠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치료하는 과정 자체였다고 한다. 상처부위에 가제를 떼고 붙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담당의사는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가 좋아하는 게임에 주의를 집중하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환자는 열심히 살았던 젊은 여성인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뇌졸중 이후 심각한 후유증으로 만성적인 고통이 따랐다고 한다. 팔에 기분 나쁜 통증이 늘 붙어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뇌졸중 전의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상당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환자의 뇌의 여러 기능을 검사한 결과 운동피질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었다고 의사는 진단하였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뇌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었는데 고통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치료과정에서 환자는 그 동안의 정신적 고통을 표출하듯이 서럽게 흐느끼면서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거듭 의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사이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도 소개하고 싶다. 필자가 인터뷰하였던 노인 중에는(BJH, MYJ, KYJ, KSJ)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만성적으로 겪었던 분이 포함되었다.2) 전직 교사출신인 BJH씨는 뇌병변으로 쓰러진 뒤 1-2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아 가까스로 혼자 먹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환각 증세가 너무 심하고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꿈이 너무나 현실 같아서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일상생활 중에도 나쁜 기억들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고 한다. 몸이 점점 굳어져서 하루에 20-30분 걷는 것도 힘들다.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을 준비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하루 겪는 고통이 크기 때문인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대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전직 약사 출신인 MYJ씨는 일찍 남편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랑스럽게 여기는 두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그의 이야기에서 인내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고통에 대한 감성과 자아가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고통을 체감하는 정도는 보통 사람보다 작았다. 20살에 사고로 척추를 다쳤지만 수술하면 불구가 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여 수술하지 않고 버티다가 60살에 너무 아파 수술하였다. 5년 전 뇌졸중 증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려 하다가 복지관에서 가족에게 연락하여 병원에 실려 갔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파야 아픈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 남들도 그 정도는 아프겠지 하면서 산다고 한다.

    MYJ씨와는 반대로 KYJ씨는 구술당시에도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격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19살에 결혼할 때부터 시어머니의 구박이 컸다고 한다. 결혼해서 시댁과 친정 동생들을 돌보고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하며 살았는데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자신도 힘이 없어졌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억울하여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 신경안정제를 6년간 복용하였다고 한다. 처음 증세는 39살 즈음이었는데 등이 아프고 가슴이 벌렁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나고는 그 증세가 더 지속되고 또 5년 뒤 부터는 계속 잠이 안와 수면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사례들에서 주목되는 것은 고통에는 신체·정신적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3) 그리고 고통의 강도는 신체의 부상이나 외적 상처 정도와 반드시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현대의 뇌과학은 뇌의 복잡한 기능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고통이 외적 상처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 아니고 뇌의 복잡한 기능의 표현이라는 주장은 1950년대부터 주목되었다고 한다(波平惠美子, 1990). 신체에 상처가 나면 여러 신경으로 뇌에 전달되어 통증을 보내게 되는데, 뇌는 여러 신호를 모아 통증을 느낄 수 있는 통로를 열거나 닫을 수 있다고 한다. 심각한 외상으로부터 오는 고통 자체는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팔을 절단하는 상황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 살아야 한다는 (뇌의) 판단이 고통을 느끼게 하는 통로를 막는 신호를 보내거나 화학물질을 일으켜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고 설명할 수 있다. 진통제의 개발은 고통을 완충하는 신경화학작용이나, 대뇌에서 고통통로를 막도록 하는 작용이나, 정서와 기분이 인지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波平惠美子, 1990: 85-86). 현대의 뇌연구에 따르면 고통에는 주의를 하고 판단하고 기억하고 정서를 조절하는 뇌의 복합적인 기능이 관여하고 있다. 또한 뇌의 복합적인 기능에서 나라는 인성과 내가 인지하는 세계가 구성되고 뇌 기능의 통제에 따라서 매우 다른 인성과 세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미래의 변화를 예고한다. 뇌과학이 제시하는 흥미로운 관점은 무엇보다 자아를 비물질적인 실체로 보는 관점을 전도하여 뇌의 신호와 정보를 전달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작용에 서 인성과 나아가 세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합리적인 의식이 인간 존재의 핵심이고 이성은 육체와 감정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인간관과 세계관을 도전한다(Damasio, 1999[1994]). 의식과 자아는 뇌라는 매우 정교한 화학·생리·신체적 기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외적 자극에 반응하고 외부세계를 지각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수집된 정보와 이미지 그리고 기억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과거의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복잡한 의식적이고 신체적인 기능이다. 외부환경을 지각하는 과정에 이미 앞서 내면에서 주의하고 과거의 정보를 기억하고 정서적으로 판단하는 복잡한 기능이 거의 자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인성과 세계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뇌과학이 자아와 세계의 존재를 뇌의 기능으로 전도하고 있는 방식은 몸, 마음, 자아, 세계의 다이나미즘을 통찰하는 불교적인 시선과 겹치는 부분이 크다. 달리 표현하면 자아와 외부 세계와 몸과 마음이 서로 인과로 연결되고 그 관계가 자기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불교사상의 직관적인 통찰이 뇌과학에 의해 증명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불교사상에서는 나라는 인성의 통합성과 내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생명작용 자체로 본다. 살아있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도 세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어떤 생명도 외부 세계와 연결되면서 생존의 자원을 획득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집착으로 지속된다. 태아도 엄마의 몸 환경에 적응하고 위험요인에 싸우면서 부단히 살려고 노력한다. 외적 자극을 이해하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는 아주 기초적인 자극-반응의 행동으로부터 믿을 수 있는 어른의 행위를 모방하고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생존력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세계와 타자와 상호작용하면서 구성된 통합된 인성이 자아가 되는것이다.

    불교사상에서 바라보는 자아는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작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몸과 마음의 작용을 오온(五蘊)이라고 하는데 오온이란 물리적 대상과 연결되는 신체과정(色)과 지각하고(受) 느끼고 이미지를 형성하고(想) 의지적인 생각을 하고(行) 구분하고 판별하는 의식(識)과정이 뭉쳐진 움직이는 덩어리 같은 것이다(한자경, 2006). 이렇게 외부 세계와 연결될 때 오감과 의식과정의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이 동시에 움직인다. 몸과 마음의 작용은 지향성을 가진다. 보고 싶은 것을 보도록 정보를 만들고 이 정보는 현재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현재의 행위는 다시 심층에 각인된다. 몸과 마음의 작용은 어느 순간 자기 발생적이 된다. 스스로 구성요소를 산출하고 그 구성요소가 다시 시스템을 구성한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주의하고 반응하고 그 행동을 다시 기억하고 세계에 반응하는 것이다. 자아는 이 자기생성적 생존전략을 지휘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다(大井玄, 2013: 108).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생명이 유지되고 그 생명의 주체로서 살아있는 몸과 마음의 통합체라는 나라는 인성이 구성되는 모습은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화고 외재화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모습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화학적이다. 피터버거와 루크만은 사회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내적으로 구성된 가치를 외재화하면서 자아와 사회가 연결된다고 설명하였다(Berger and Luckmann, 1971). 그런데 자아와 세계가 연결되는 과정은 이미 앞서 존재하는 조건들의 영향 뿐 만 아니 라 주체적인 대응에서 새로운 조건이 창조되는 매우 화학적인 과정일 수 있다. 몸과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변한다. 외부세계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무수히 많은 환경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혹은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지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반응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혼돈 속에서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느끼는 나름의 해석과 감정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 해석과 감정의 틀을 통해서 통합된 자아를 인식하게 되고 세상을 인식한다.

    불교에서 해석하는 오감과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의 관계는 현상학에서 강조하듯이 인식과정에 작용하는 선주관성과 지향성의 개념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받아들이는 경험적 세계는 지각된 현상이다. 대상은 지각된 현상으로 존재하고 현상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Husserl, 1988: 126). 그래서 현상학에서는 대상과 인식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인식의 모든 기본 형태와 인식의 내부에서 존재하는 대상의 모든 기본 형태들을 직관적 방법으로 하나씩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Husserl, 1988: 130). 인식과정에 선험적으로 작용하는 주관성은 나에 앞서 존재한 상호주관적인 세계와 연결되면서 익히고 다듬은 전형화된 지식으로 파악되기도 한다(강수택, 1998: 141-160). 이렇게 우리가 경험적 세계를 지각하는 과정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생활세계에 대응하면서 자기본위로 익히고 습관화한 심층의식에 의해 인식하는 과정일 수 있다.

    세계를 지각하고 통합된 나 의식을 가지고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무의식적으로 방향성을 지닌다. 그 방향성은 세계와 연결되고 자기인식을 통합하게 하고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고 자신의 삶과 보다 큰 사회 맥락을 해석하고 의미 짓는 해석 틀로 전환된다(Geertz, 1973). 나의 인식과 행동의 방향성은 또한 지배적인 문화가치 뿐아니라 계급이나 젠더와 같은 다중적 타자 관계에도 영향을 받아 다양한 맥락에서 구성된다. 그렇지만 세계와 나를 해석하는 방향성이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사회 역할들을 수동적으로 내면화한 결과나 지배적 권력의 영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와 연결된 세계는 생존과 실천적인 관심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다. 나는 세계 안에서 행위 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행위를 한다. 생생하게 세계를 경험하고 욕망하면서 상징과 의미들을 지속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통합된 자아를 유지하려고 한다.

    통합된 인성을 지속하는데 또한 기억과 해석의 역할에 주목한다. 자아의 지속성은 무의식의 구조나 역할관계에서 자동적으로 방향 지워진 성향이 아니라 세계에서 행위하고 경험의 의미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면서 통합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Kaufman, 1986). 노년에는 건강 상실, 사회적 역할의 감소,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등 많은 역할변화가 이루어진다. 더욱이 생산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 서 기능 쇠퇴로 인식되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쇠퇴를 크게 경험하는 노년기의 중요한 도전이 통합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에릭슨이 강조하듯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노년의 매우 중요한 도전일 수 있다(Erikson, 1978). 박경숙(2004)은 한국노인이 자신의 생애사와 현재의 삶의 조건을 해석하고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을 관찰할 때 노년의 자아 인식은 이전 생애와 분리되거나 단절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노인은 살아오면서 경험하였던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재해석하면서 지속된 자아 의미를 추구하고 있었다. 나를 존재하게 하고 나와 세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데 기억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억되는 경험의 의미는 젠더, 계층, 거시 권력구조와 연관되어 해석된다(권귀숙, 2004). 정치적 격변기, 빈곤, 가부장적 권위 속에서 살아온 한국의 현 남성 노인은 분단과 전쟁의 기억과 정치적 주체에 대한 자부심으로 통합된 자기상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여성노인은 가족과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감내하였던 고생에 대한 자부심으로 통합된 자기상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시대가 많이 변하였는데도 생생한 지금의 경험이 아닌 오래된 경험을 기억하면서 통합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인에서 존재 의미의 원천이 풍요롭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항상 변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마치 부정하듯이 노년의 지속된 자아 모습은 폐쇄적이고 변화를 부정하고 점점 외적 환경으로부터 후퇴하여 자신의 세계에 갇히는 모습과도 중첩되어 보였다.

    불교사상의 가장 도전적인 명제는 자아와 세계가 허구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외부세계와 무수한 인과로 연결되어 반복되고 습관화된 심층의식 그리고 그 속에서 굳어진 자아에 대한 집착을 불교에서는 인간의 근본번뇌라고 한다. 결국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어버리고 자기 본위로 믿어버리고 자기에 애착하고 그런 자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아상, 무명), 이렇게 자기본위로 믿은 것이 자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자아는 항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과의 과정에 따 라 뭉쳐서 형상화된 것이고 인과관계가 흩어지기에 무상하며 공하다. 자아는 항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지속된 집착의 산물이고 상황적으로 구성되는 형상이다. 그리고 세계도 앞선 세대와 지금 세대에 걸쳐 무한의 인연으로 구성되고 그 인과에 따라 사라지게 되는 상호주관적 세계이다.

    2)이 심층조사는 노화, 만성질환, 임종에 대하여 노인, 가족, 의료인, 요양기관담당자, 종교/사회단체활동가를 대상으로 2014년 2-3월에 걸쳐 실시되었다(〈표 1〉참조).  3)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정신 과정도 신체적 기능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인 의미에서 의식적인 차원을 정신과정으로 구분한다.

    Ⅳ. 고통의 연금술

    고통은 이처럼 몸, 마음, 자아,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생명작용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생명작용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통제하려고 한다. 어떤 살아있는 존재도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살기에 편하고 익숙한 것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고통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몸과 마음이 작용하면서 전형화된 인성과 세계가 구성될 수 있다. 이렇게 나라는 인성은 생존의 전략에서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작용하여 세계를 주관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통은 인성발달과 자아통합에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어떤 생명체도 환경에 대응하여 고통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성장이 지체된다고 한다.4) 외적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은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협하고 힘들게 하는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명체는 고통에 대응해가면서 외적 환경을 보다 잘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고통을 극복해 가면서 생존력을 강화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인내하는 능력은 인성발달과 통합된 인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고통은 나라는 인성의 통합성을 심하게 파괴하고 나와 세계의 연결을 끊어버림으로써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존을 위협하는 고통은 외적인 상처자체 보다는 나의 의식이 더 이상 통합성을 유지할 수 없고 세계와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몸과 마음의 붕괴 과정일 수 있다. 오이겐(大井玄, 2013)은 불안이라는 감정이 고통의 심층 정서라고 주장한다. 불안은 자의식이 분열될 때,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질 때 작용하는 격정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라는 인성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고통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자아를 통합하려고 하면서도 순간순간 내적인 분열을 경험한다. 달리 말하여 우리 모두는 다중인격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의식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심층의식은 자아전환도 마다하지 않는다(大井玄, 2013: 169). 어떤 사람은 극심한 고통의 상황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믿었던 자아와 세계의 집착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자의식을 분열시키고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끊어버릴 수 있는 심각한 고통은 몸, 마음, 사회적 상태에 어떤 스트레스적인 상황이 일어나 서로 영향을 주면서 원인과 결과로 엮이어 심화될 때 작용할 수 있다. 한편으로 몸은 자립성의 도구이고 외부와 연결되어 주체성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몸의 변화에 따라 자기의식이 새롭게 구성되는 부분이 있다. 깨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자극에 반응하고 새로운 정보를 체득하는데 주의력과 지향이 활발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변하지만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새로움과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정보를 주의 깊게 선택하여 인지할 수 있게 하는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리하여 외부환경에 적응하는데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여 신체적 손상이나 노화과정은 주체과정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상당한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이에 점점 몸과 마음의 작용은 편안함과 안전을 추구하는 상황이나 방법을 발전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이전의 통합된 인성과 다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연결되어 새롭게 의미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집중력이 떨어진 것에 대응하여 이미 구성된 의미와 상징과 정보에 의존하여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는 관성이 강해진다. 물론 그렇게 구성된 세계는 과거에 경험했던 세계도 아니고 현재 일반사람들이 상호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도 아니다.

    심각한 신체적 기능의 손상에 따라 자의식과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긴장하여 심각한 고통을 겪고 그 과정에서 나와 세계가 크게 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치매환자의 행위가 유의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의 중심증상과 주변증상이 구분되고 있다. 중심증상은 뇌기능의 쇠퇴나 손상과 직접 관련된 증후이다. 치매의 주된 질환인 알쯔하이머의 경우, 뇌 손상의 정도에 따라 언어능력이 쇠퇴하고 장소와 시간을 판단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구별하는 기능이 쇠퇴해간다(Levine Madori, 2012: 14-18). 한편 치매 상황의 스트레스가 표현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배회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의심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환자의 심층의식작용과 밀접히 연관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우리가 환경을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자극 반응 과정이 아니라 주의하고 이미 수집된 정보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적절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억하고 활용하는 몸과 마음의 기능이 훌륭하다면 생존에 유리하다. 그런데 치매환자는 뇌 기능의 손상으로 주의하고 분석하고 느끼고 판별하는 기능이 약화되어 통합된 인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세계와 연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해석하지 못하는 고통스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작용하지 못하고 통합된 자아의식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심각한 불안 정서에 쌓이게 되고 이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와 의심으로 표출된다. 오이겐(大井玄, 2013)의 해석에 따르면 치매환자가 나타내는 분노, 혼돈, 환각 등의 증세는 환자의 주관적인 생활세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정의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고통은 주관적으로 구성된 생활세계가 위협될 때 일어날 수 있다. 치매노인이 현재 일반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계가 아닌 그만의 세계를 이야기하는데 요양사가 구박을 한다면 자명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의심되면서 상당한 혼란과 격한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닫아버리고 내면의 세계도 사라지게 된다. 멍한 상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치매환자처럼 뇌 기능이 크게 손상되었거나 몸과 마음 작용이 극심하게 약화된 임종상황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려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 지속되는 것이다. 종합적인 의식과 판단 기능이 상실되어 현실세계를 해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심층의식의 정보, 특히 가장 좋게 기억되는 정보로 자신과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보통의 인지력을 가진 사람도 그렇듯이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더 절실하게 자신의 안전하고 자명한 생활세계를 심층의식으로 구성한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을 때 20살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돌봐주는 딸을 언니라고 믿고 집에 가서 식구들 밥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편안한 돌봄 환경속에 있는 치매환자는 현재 세계와 과거 세계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동시에 연결되어 자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우리가 체험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치매환자와 비슷하게 정신분열을 겪는 사람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체험한다고 믿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중 인격은 살아가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구성한 자아이고 세계일 수 있다. 그 세계는 환자들이 경험했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스스로 구성한 허구의 현실이다. 그리고 허구의 현실을 실재하는 세계라고 믿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외적 환경에 연결되어 몸과 마음이 계속 기능하면서 통합된 인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아와 세계는 몸과 마음과 사회와 인과 관계로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체 외적 환경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몸과 마음의 기능이 나를 살게 하고 나의 인성을 주조한다. 그리고 생명과 고통의 과정에서 나라는 인성과 세계의 인식은 지속적으로 변화된다.

    4)BBC <고통에 대한 보고서>에 포함된 인터뷰에 따르면 미숙아는 어떤 유전적인 문제나 뇌 기능의 장애 때문에 정상아에 비해 고통을 더 많이 느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Ⅴ. 임종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만남

    임종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는 의학적으로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진단된 시점이라고도 하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점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도 인식하지만 의료 수준이 발전될수록 임종기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구인회, 2004). 임종은 또한 다양한 돌봄 환경과 이해와 관계 속에서 독특하게 경험되고 있다. 그리고 노인, 가족, 의사, 전문 돌봄 제공자 그리고 종교 및 사회활동 행위자는 다양한 임종현장에서 죽음과 임종을 경험하고 있다.

    노화를 경험하고 오래된 인생 경험을 갖고 있는 노인은 죽어가는 과정을 가장 절실하게 의식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고 사회적으로 아직 쓸모 있게 살아가야한다는데 압박감을 갖고 돌봄이 필요한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전사회적인 수준에서 개인화가 진행되는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생애를 조직하고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것 같다. 천선영의 통찰처럼 한국 사회도 나의 존재는 오로지 나의 삶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의 유한성과 투쟁하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변하여 온 것 같다(천선영, 2012: 145-147).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임종 의료 결정, 호스피스, 안락사, 자살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삶의 환경이 급속하게 개별화되면서 임종과 죽음을 맞는 과정도 개별화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과정이나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영향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가족은 임종과정의 환자가 믿을 수 있는 대리자로서 인식된다. 한국사회에서 연명의료 문화가 확장된 데에는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연명의료를 선택하는 것이 환자를 최대한 잘 돌보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평가를 의식하는 태도 때문일 수 있다(Searight and Gafford, 2005). 가족의 연명의료 결정이 환자의 요구와 관계없이 택해지는 경우도 많다(이재리·이정권·황선진·김지은·정지인·김시영, 2012). 환자의 입장에서도 가족이 존재의 의미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임종이나 죽음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가족부양이 약화되고 있듯이, 가족의 부양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가족이 돌볼 수 있는 조건이 크게 제약되면서 가족들도 임종 돌봄에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의료적인 관점은 노화과정과 임종과 죽음의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서이종, 2014). 만성질환 관리에 있어 의료적 관점이 중요해지고 노화과정이 신체·생리적으로 해석되면서 노화는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라 관리의 관점으로 파악된다. 나아가 임종과 죽음에 대한 인식도 신체화되고 의료화되고 있다. 고통을 제어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료적 개입이 늘어나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있듯이 임종에 대한 의료적 관점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임종 상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연명의료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중증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신체적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문적인 장기요양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나는 한편 계속 길어지는 임종과정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요양시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불우노인의 수용소나 인권유린의 장소 혹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약화되는 가족 돌봄의 불가피한 대안이거나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서비스의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있다. 요양시설 돌봄자들은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직접 대하면서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는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혹은 반대로 기관의 존속 이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지연되는 임종현상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요양시설에서는 임종이나 죽음 상황을 관리하는 독특한 전략이 개발되고 있다.

    임종에 대한 신체·의료적인 관점이 확장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삶에 대한 성찰적인 시각에서 임종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시민사회 내에서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종교는 죽음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다고 할 만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상징과 의례를 체계화하고 있다(이창익, 2013). 유한성과 초월성의 관계를 강조하는 종교적 인식은 삶의 의미를 통합하는데 그리고 임종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현장에서 임종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노년 전반에 대한 의료적 개입이 확장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였다. 공동연구 의 일환으로 노화의 경험과 임종 현장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노인, 가족, 의료집단, 요양기관종사자, 그리고 종교 사회단체 종사자 600여명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이 중 20 여명에 대해 심층조사를 하였다. 조사 선정 방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이종·박경숙·구미진·정령·안경진(2014)을 참조할 수 있다.

    여기서는 심층인터뷰 대상자 중 임종기 고통의 의미를 찾는데 중요하다고 판단된 사례들에 기초하여 임종기 고통 과정의 유형적 특성을 탐색해보고자 하였다(〈표 1〉). 고통에 작용하는 몸, 마음, 자아, 사회의 상호작용을 경험적으로 고찰하는데 여러 어려움과 제약이 있었음을 밝혀 둔다. 임종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임종기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작위적이다. 중증만성질환의 다양한 상황과 임종상황의 경계가 상당히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중증만성질환상황과 임종과정의 고통이 어느 정도 겹칠 수 있으므로 중증질환의 경험에서 임종상황의 의미를 추정하는 것도 유용한 연구 방법이 될 수 있다. 연구자가 관찰하거나 인터뷰한 사례 중에는 직접 임종과정을 관찰하거나 경험한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분도 있어 그들이 의식하고 전하는 고통의 의미를 임종기의 고통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례마다 전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들을 심도 있게 해석하고 분류하고 개념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음을 고백한다.

    노인 세 분은 심각한 중증질환을 갖고 있으며 삶에 있어서도 상당한 상처들을 갖고 있었다. 중증질환에 따른 신체적 고통도 컸지만 살아오는 동안 누적된 다양한 스트레스적인 상황들에서 심리적 고통을 갖고 있었다. 세 분은 고통과 삶과 죽음의 의미를 통합하는 방식에 있어서 고유한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BJH씨는 뇌병변으로 신체적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뇌병변을 겪게 된 이유로서 도박에 빠졌던 시간을 강조하였다. 굳어져 가는 몸의 상태를 느끼면서 자신 때문에 가족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는 것을 우려하고 가급적 빠른 죽음을 희망하고 있었다. MYJ씨는 남편과 아들 둘을 잃은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삶의 유한성과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다. 죽음과 삶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KSJ씨는 평생 가난과 가족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사회에서 소외받으면서 살아왔다. 중병이면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고 미련 없이 삶을 정리하기를 기대하였다.

    가족 세 분은 임종 돌봄 경험이 있고 가족 돌봄 상황에서 갈등을 크게 경험하였다. KTY씨는 남편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인내하면서 남편의 임종을 돌봤고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중환자실에서 임종기 환자를 돌본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삶에 있어 독립적인 태도가 강하였고 자신의 임종과 죽음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결정을 강조하였다. LSJ씨 가족은 여러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오랜 시간 돌보면서 가족 간에 갈등을 크게 경험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맡아 억척같이 살면서 일군 집과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요양시설에 가는 것을 죽기만큼 싫어하신다고한다. KYJ씨는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에서 누적된 원망과 시어머니의 마지막을 끝까지 돌보았는데 제대로 된 용서와 인정을 받지 못하여서 심한 분노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요양시설종사자 두 분은 전직 간호사 출신으로 요양시설의 관리와 총괄책임을 맡고 있었다. KJH씨는 가족보다 전문요양시설에서 노인들을 더 잘 모시고 있고 그래서 노인들이 오래 산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임종기에는 의료적 처치보다 심리적으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KHJ씨는 요양시설에서 발생한 죽음이나 임종상황에 대한 가족들의 이중적인 태도, 요양사의 돌봄자질과 돌봄노동의 저평가,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시선, 호스피스와 요양서비스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였다. 아픈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의사 두 분을 통해서는 임종의료와 호스피스의 관계와 고통에 대한 의료적 관점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MS씨는 임종상태의 환자라도 회복가능성을 고려하고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을 할 때도 주의하고 신체적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적인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호스피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 중소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LK씨는 임종상태의 환자가 회생불가능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경우 엄격하게 제한된 상태에서 안락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일반적인 것은 죽음은 끝이며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의료처치와 방어적인 연명 처치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종교인과 사회단체 종사자의 구술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강조되었다. KKU씨는 전직 목사로서 요양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많았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이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 평화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는 LYK씨는 물질과 영혼의 균형적인 삶을 강조하였다. 죽어가는 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며 스스로도 나이 들고 쇠퇴할 때 위축되고 불편하지만 병을 수행삼아 죽음으로 담담하게 가고 싶다고 한다. 지역복지 활동을 하고 있는 LSJ씨는 노인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오래 사는데 이중적인 감정이 든다고 말하였다. 한편으로 노인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주체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삶을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설령 건강하더라도 100세까지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호스피스 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능행스님과 카리타스 수녀님은 삶을 절대 가치화 하고 죽음을 피해야 할 악의 원천으로 만드는 현대 문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였다. 생명존중은 삶을 절대가치화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고통을 치유와 성찰의 주제로 삼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통합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Ⅵ. 임종기 노인의 고통과정에 대한 유형화

    앞에서 논하였듯이 고통은 몸과 마음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기능으로 통합된 인성을 유지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다. 심각한 고통은 삶의 조건이 해체되거나 위협되는 몸과 마음의 상황일 수 있다. 그리고 인성이 분열되고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몸과 마음 상태는 만성화된 갈등관계, 삶의 존재를 위협하는 해체적인 환경, 부조리한 권력과 이데올로기, 역할상실, 고립과 단절을 심화하고 삶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개체 중심적 생존전략 등 다양한 사회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서두에서 제기하고 있듯이 임종기 노인은 많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죽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조건이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그 안에서 부여하는 삶의 의미는 우리 세계의 권력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해석과 감정 틀에 의해 주조되며 고통을 느끼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기의 고통은 죽음에 관련된 고민일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의 삶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주제이다. 또한 임종기 고통의 사회적 의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대로 보게 한다. 마지막 삶의 순간들이 생명연장의 처치 속에서 끝나거나 무정하게 끝나는 현상의 의미를 직시하고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주제이다.

    여기서는 임종기 노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의미와 대처방식, 그리고 죽음을 맞는 태도의 유형적 특성을 탐색해보고 있다. 임종기 노인의 고통의 증상과 대처방식 그리고 죽음을 맞는 태도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간적으로 꼭 선후 관계는 아니고 정확히 선형적인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신체적 고통과 함께 환자의 심층의식에 기억된 사회관계와 가치, 욕구, 그리고 자기상이 어우러져 고통이 표현되고 고통에 대응하고 죽음을 맞는 태도가 상황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고통과정에는 몸과 마음과 사회적 상황이 연결되어 있고 삶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고통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자원은 문화와 역할규범과 권력구조에 영향을 받고 이런 사회적 환경에 대응한다.

       1. 고통의 복합적 양상

    임종기에는 신체적 고통이 심각하다. 심폐기능이 약화되고 평소 갖고 있던 합병증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요양병원에서 사망하는 환자들은 심장마비, 질식사, 욕창, 간경변, 폐부종, 다양한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들 증상의 고통은 매우 심각하다. 또한 가장 사망 위험이 높은 말기암 환자의 경우 변비, 식욕부진, 장폐색, 욕창, 구내염, 복수, 부종, 설사, 구역, 구토, 호흡곤란과 같은 증상과 극도로 피로하고 허약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약화되어 환각 증세나 섬망 상태가 일어나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고 발작이 심해져 혼수상태가 된다고 한다. 몸의 신경과 각 기관의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약간의 외부적 자극에도 심한 고통을 느낀다. 물을 마시는 행위나 일상의 신체적 접촉도 매우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런 신체적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서 다양한 완화 의료적 조치와 세심한 돌봄이 요구된다. 통증의 정도에 따라 비마약성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되고, 부종과 복수 관리를 하고, 호흡을 도울 수 있는 보조 장치를 이용하고, 환자의 체위를 조심스럽게 변경하고, 음식물 섭취를 도우는 등 임종 현장에서 신체적 통증을 완화하는 의료와 돌봄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 멸하는 과정에서 신체를 이루는 기관들이 무너지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 고통에 압도되어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요양사들도 어떻게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지 몰라 당황스럽고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종현장이 고통과 절망감에 함몰된 것은 아니다. 오래 동안 임종 현장을 돌보고 있는 능행스님은 임종기 환자들은 영적으로 가장 순수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오래 동안 요양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임종기 환자를 돌본 KKU 목사님은 온몸에 진통제를 맞고 있으면서도 환하게 웃으면서 목사님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은 여성과, 할머니와 단둘이서 산 어린 여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나누었던 순수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남은 가족들과의 이별도 슬프지만 화해, 용서, 사랑의 감동을 확인하는 장소도 임종현장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모습과 영적이고 순수하고 화해와 사랑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교차하는 임종의 현장은 임종기 고통의 정신적 차원과 고통이 승화되고 치유되는 의미에 주목하게 된다. 실제 임종의 고통에는 신체만큼이나 정신적 차원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 때문에 신체적 고통을 더 크게 호소하고 진통제 효과가 없다고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5) 고통의 정신적 차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고통을 표현하는 감정의 단어들이 다양하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 고통의 정서는 통증 뿐 만 아니라 심리적 허탈감, 무력감, 분노, 배신감, 자괴감, 고립감, 버려짐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포함된다. 이런 감정은 관계 속에서 관계에 대한 자기 평가와 밀접히 연관된다. 감정은 자기에 의한 자기에 대한, 자기에 의한 타자에 대한, 타자에 의한 자기에 대한 행위이다(박형신·정수남, 2009; 김남옥, 2012). 몸과 마음으로 표현되는 고통은 자기와 타자를 지향한 관계 작용이 다. 고통의 표현은 타자를 지향한 사회적 행위이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고통은 살아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의식·무의식적으로 그물처럼 엮어진 관계로부터 파생된 갈등 인식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어가는 과정의 고통은 신체기능의 손상 뿐 만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여러 관계에 내재된 갈등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오랜 동안 호스피스 현장에서 환자와 함께 있었던 성직자와 봉사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임종시의 정신적 고통은 지난날의 삶의 고통을 비춘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만성적인 고통이 임종의 과정에서 밀려온다. 추억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서럽고, 좀 더 오래 전에 마음을 나누지 못하여 후회스럽고, 사랑이 결여된 가족관계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고, 돈 때문에 버려지고, 자신의 잘못된 분별과 차별로 외롭게 되었듯이 임종에서의 고통은 지나온 삶의 족적과 상처를 고스란히 비춘다.

    그리고 고통의 상당부분이 살아가면서 맺은 강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 관계의 특성은 다양하지만 특히 가족관계로부터의 상처가 두드러진다. 이는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가족에 대한 몰입과 집착이 강하고 한국의 가족 문화 안에 부당한 억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가족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였던 원망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하찮게 여겨진다고 느껴질 때, 가족들을 열심히 돌봤는데 제대로 된 감사와 인정도 받지 못하고, 더 이상 힘이 없어졌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심한 상실감, 배신감, 상처, 고립감, 절망, 무력감 등의 번뇌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혼자 죽음을 맞는 노인이 많아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존전략에 익숙한 서구 사회 노인과 비교할 때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고립감은 더욱 클 수 있다. 서러움과 버려졌다는 감정은 평생을 가족을 돌보면서 살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시설에서 임종을 맞는 여성 노인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역할 상실도 고통의 중요한 차원이 된다. 심각한 질병상태나 임종기에는 관계 변화가 다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자기중심의 삶의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은 자괴감을 가질 수 있다. 역할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을 호소할 수 있다. 이제까지 살아가는 의미의 버팀이 되었던 역할들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더 이상 없다고 느낄 때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된다. 열심히 살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긍심도 컸지만 더 이상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괴로워할 수 있다. 또한 남은 가족이 걱정되어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자기다움을 잃어버렸다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자기를 비하하면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여 관계로부터 분리되어 고독해하기도 한다.

    또한 지나온 삶의 의미를 통합하지 못하여 혼돈과 불안을 겪게 된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 같고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체험하지 못하였다고 심각한 후회감이 밀려올 수 있다. 삶이 무엇인지, 잘 살았는지, 죽음을 어떻게 맞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면서 불안해 할 수 있다.

    임종시의 정신적 고통은 죽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커질 수 있다. 누구나 죽는다는것을 알지만 무의식에서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상당한 자기 성찰과 수행을 필요로 한다. 죽을 고비를 겪었거나 그와 비슷한 충격을 겪었던 사람들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는 것은, 셀리 케이건이 강조하듯이 평소 죽음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반증한다. 죽는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 직면했을 때 비명을 지르고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Kagan, 2012).

    죽음을 맞는 장소와 환경도 죽음을 임종 순간까지 믿지 않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카리타스 수녀님과 능행스님을 비롯하여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분들은 호스피스를 찾는 분들은 거의 모든 신체·정신적 기반이 붕괴된 상태에서, 대체로 남은 삶의 시간이 일주일이나 보름이 채 안 돼서야 호스피스로 온다고 증언한다. 목사로서 호스피스에 참여했던 KKU씨는 자신이 돌본 환자 중에 방사선치료를 10번 받고 호스피스에 온지 4일 만에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연명의료의 확장으로 신체기능을 기계가 대체하여 신진대사를 유지시키고 생명의 종말을 연기하게 되면서 임종의 경계는 명확성을 잃었고 임종과정은 마지막까지 죽음과 싸우는 응급상황이 되고 있다. 응급상황에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임종현장은 죽음을 수용하고 삶을 정리하는 장소가 아니라 생존투쟁의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임종의료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가 없다. 환자는 애초 임종의료 결정에서 배제되어 있고 의사는 방어적인 입장에 있고 가족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면서 적지 않은 의료비용을 감내하게 된다. 현대의료로 회복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서야 어떤 처치도 무의미한것으로 여겨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죽음은 신속히 밀봉된다. 의사의 사망진단부터 몸의 온기가 남아 있는 상태로 급속 냉동되어 한 두시간만에 재로 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살아오면서 만성화된 고통과 상처, 마지막까지 삶과 죽음의 의미를 통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가장 비참한 인간의 모습일 수 있다. 임종은 생명을 보살피고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성스러운 현장이기도 하였는데 의료기술이 확대되고 생명집착과 생명경시의 풍조가 만연한 오늘날 임종의 고통이 쉽게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찰하게 된다.

       2. 고통에 대처하는 방식

    고통은 생명작용에 불가피한 요소이다. 고통을 극복하면서 자아가 확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은 통합된 인성과 세계와의 연결이 심각하게 위협되는 상황이다. 이런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미치광이가 되거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와 세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심각한 질환 상태에 있는 환자에서도 관찰된다. 아마도 우리는 마지막 생명의 순간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상처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혼돈스러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체일 수 있다. 임종기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첫 번째 유형은 자기통합적 대응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 유형의 특성은 평안하게 임종을 맞는데 이는 그들의 이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얼마나 주체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살아오면서 만들었던 관계가 인성에 통합적인가에 따라 죽음을 평안하게 맞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지난날의 삶의 가치와 자신의 욕구를 잘 통합할 수 있다면 살아오면서 소중하게 여겼던 삶의 가치들을 유지하면서 그리고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다.

    자기 통합적 대응에서는 당당함과 자기결정을 중시한다. KTY씨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겪고 중환자를 간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는 권위적이고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지만 아들 둘을 일찍 여윈 친정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하고 또 자신의 자식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남편의 정서를 편안하게 하여 주변 관계를 좋게 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고 노력하였다. 외부에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한다.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을 하였지만 인내하고 남을 원망하기보다 용서하고 불화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자식들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노후에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독립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크게 의지하였지만 결국 자식에게 대접도 받지 못하고 서럽게 돌아가셨는데 친정어머니는 가족들과도 분리의식을 갖고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면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기억한다. 오랜 시간 다져진 인내심과 책임감, 독립된 태도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한 노력의 결과 노후와 자신의 임종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눌린 상처를 충분히 치유 받지 못한 슬픔도 인터뷰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또 다른 방식은 무아적 대응으로 명명하고 싶다.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평안하게 임종을 맞는 태도를 보인다. 능행스님은 고통과 깨달음은 진흙과 연꽃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고통을 잘 견뎌낼 때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최고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노인들의 생애를 들으면서 느꼈던 것도 인생의 가치를 크게 깨달은, 이른바 인생의 여정에서 큰 자아를 경험한 분들은 세속적인 성공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자신을 넘어서고 더 넓게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고통의 연금술이 적용되는 것 같다. 생명의 유한성과 고통을 수용하면서 나의 근본적인 전환을 경험한다.

    인성에 따라서 고통을 인지하는 정도가 다르다. 실제의 상처는 작아도 고통을 크게 느낄 수 있고 반대로 어느 정도가 되어야 고통인지 고통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양가적 의미를 가진다. 스스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철저히 쌓은 것일 수 있다. 혹은 자신을 넘어섬으로써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MYJ씨는 고통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반문한다. 어릴 때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열이 높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신 부모님 덕택에 명문대학을 나오고 약사 전문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이 병약하였고 일찍 세상을 떠나 아들 셋을 손수 키우며 살아왔다. 남편을 잃고 상실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남편을 잃은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생존의식이 더 컸었던지, 남편을 잃은 상처는 시간 속에 옅어졌다. 그에게 더 큰 고통은 믿음직스럽던 두 아들과의 이별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세상을 보는 눈, 인생을 보는 눈, 죽음을 보는 눈이 다르게 되었던 것 같다. “나만 왜이래 생각하면 못산다. 거기에 집착하면 못나온다. 하루 살면 사는만큼 남에게 싫은 소리 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하루 더 살아봤자 죄 한 번 더 짓는 것이다. 인생은 잠깐 순간이다. 이 순간을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고통과 비방 속에서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는 타자가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감정이 휘둘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다잡는다. 오히려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보면서 스스로 남에게 기분 나쁘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MYJ씨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쇠퇴해 가는 것이 좋을 것 없지만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고 잘난 척 할 필요 없어 나이든 게 좋다고 한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이다.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쇠퇴하면 거기에서 거기다.” 이렇게 그는 고통을 통해서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아상에서 깨어났다. 자명한 객관 세계와 자아가 사실은 수많은 관계와 아집이 모여서 구성되고 그 관계가 흩어지면 사라지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통합된 인격을 유지하거나 나를 넘어서는 마음의 수행을 통하여 죽음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아픔이나 부당한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함을 유지하고 용서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마음을 갖게 되어 보다 큰 나로 전환될 수있다. 그러나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임종의 두려움이나 살아오면서 겪은 만성적 고통 속에서 괴로워한다. 살아가면서 만들었던 원망과 나쁜 감정들과 자기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죽고 싶지 않아 절규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억울해하고 자기 존재 기반을 잃어버렸다고 소중한 것들과 이별하는것에 힘들어하면서 괴로워한다. 살면서 만들어온 자아가 사라지려는 죽음의 앞에서 격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스피스적인 돌봄이 강조된다.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분들은 임종을 맞는 환자에 대한 전인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종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여 어떤 치료도 무의미한 상황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대한 전체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종교나 직업적 배경에 따라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방식과 이념적 지향은 다를 수 있지만 호스피스는 임종 상황에 놓인 환자의 고통에 초점을 두고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한 상태로 죽음을 맞는 것을 도우려고 한다. 그리고 임종기 고통을 돌보는데 의료적 처치도 중요하지만 정신· 심리·영적인 돌봄이 더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임종기 고통에 대한 전인적 돌봄에 종교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크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종교인이나 성직자에게 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인도 죽어가는 자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혼돈과 갈등을 겪는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돌보는 과정 자체가 수행의 방법임을 깨닫는다고 한다. 죽어가는 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많은 삶과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치유하기 위해서는 돌보는 자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거짓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자를 돌보는 것일 뿐 아니라 돌보는 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보다 더 큰 나로 정진하는 수행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종교가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스럽고 영적인 갈구에 종교가 도움을 주기 때문일 수 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한 목사 KKU씨는 환자들의 반응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불안해하고 공포감을 가진다.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포기를 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매일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고 세례를 받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생명을 자기중심으로 보지 않고 관계, 생태, 우주 속에서 보면서 죽음을 성스럽게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종교는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제공한다. 죽음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삶의 유한함을 진심으로 인식할 때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음으로써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남아 있는 삶이 좀 더 기쁘고 보람 있게 만들어진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삶에 생명을 불러 넣을 수 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죽지 않는 묘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종교가 강조하는 영적인 세계는 나를 현세, 과거, 미래의 무한한 시공간으로 연결한다. 필자가 호스피스교육에 참여하면서 크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수억 겁의 시간을 통해 이어진 생명 속에 내가 존재하고 나라는 응집된 형체, 정신, 육체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무에서 다시 생명이 반복해서 창발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렇게 영적인 통합을 통해 평안한 죽음을 유도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중요한데, 죽음이란 다른 세계로 떠나는 다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능행, 2010).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가장 빛나는 적멸에 이르는 사람도 있고, 업을 잘 닦아서 좋은 생각으로 다음 생애에 재생하는 사람도 있고, 원한과 고통의 업을 안고 다음 생애에 윤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육신이 다 쇠하여 분리된 영혼이 좋은 길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 위해서 평안하게 임종을 맞게 도와주는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3. 죽음을 맞는 태도

    임종상황에서 겪게 되는 고통의 양상과 고통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환경에 따라 죽음을 맞는 태도가 매우 다양할 수 있지만, 여러 연관된 의미들이 모여지고 구별되어 몇 가지 유형적 특성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고통 속의 죽음으로 명명하고 싶다. 고통의 원인을 치유하지 못하고 삶의 가치를 정리하지 못하고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죽는 경우이다. 고통이 꼭 죽음에 본질적인 것은 아닐 수 있지만 한국 사회의 여러 제도적 특성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현상을 만성화하고 있을 수 있다. 생존투쟁의 장소는 죽음의 장소까지 침습하여 생존을 위한 절규와 원망이 가득하고 무정하고 차가운 손길에서 죽음은 무가치한 것으로 처리되고 있다.

    죽음 인식의 두 번째 유형으로 주목되는 것은 임종기 고통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혹은 삶의 고통이 너무 커서 죽음을 고통의 도피처로 해석한다. 앞의 유형과 다른 것은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고 끝이라고 생각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나 자살도 신중하게 고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가족문화가 중시된다고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노인 뿐 만 아니라 의료인과 가족도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을 신중하지만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뜻 밖 이었다.6) 죽음의 두려움을 덮고도 남는 임종상황에 대한 고통은 자기 기능이 떨어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대한 부담인식을 상징한다. 의미 없는 삶을 치료하겠다고 자신과 가족 모두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모은 재산을 제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가족 중심사회에서 구성된 사회적 죽음 인식일 수 있다.

    또한 고통뿐인 삶에 미련이 없어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분도 이 유형에 포함된다.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온 분은 가급적 빨리 생을 마감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KSJ씨는 “몸뚱이가 힘이 드니까 만사 귀찮다. 평생을 고생만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 이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죽음은 왔다가 가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삶에 미련도 없고 오래 살고 싶지 않고 아파서 남 성가시게 하지 않고 조용히 가고 싶다고 말한다.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KSJ씨는 진짜 죽을 병이라면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유형은 평안하게 죽음을 수용하고 죽음과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임종기를 옆에서 지켜본 호스피스 담당자들은 정말 새처럼 가볍게,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평화롭게 인생을 살다 죽음도 평화롭게 맞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기를 넘어서는 분, 평생을 한으로 살았지만 마지막 진심으로 용서하면서 순결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영면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소중한 관계를 발견한다. 인터뷰에서 만난 뇌병변을 앓고 있는 BJH씨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주에 대한 되갚음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말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죽음으로써 다른 생명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아들 지게에 업혀 산에 올라갈 때 자식이 내려올 때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만히 길표시를 남겨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고려장과 안락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자아는 다른 세계에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MYJ씨는 죽음은 가장 큰 고통이고 동시에 해방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살아가는 만큼 죄를 지으면서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죽음으로써 육신은 다 없어지지만 영혼은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한다. 흙으로 만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죽음 뒤에 영원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기도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느님이 그 기도를 받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설사 죽음 이후 편안한 곳으로 간다는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든지 왔다가 땅속으로 가는 것만 믿어도 된다고 말한다.

    5)2014년 12워 4일 개봉한 이창재 감독의 <목숨>은 모현 호스피스 병원을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에 등장한 무연고 노인 신창열씨는 후두암 선고를 받고 자살시도를 하였다가 복지사의  의뢰로 호스피스에 들어왔다. 너무 고통스러워 약을 처방해 달라고 재촉하고, 약으로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짜증을 냈다. 주변에서 말도 시키고 관심을 보이자 처음에는 다 귀찮다 하였지만  점점 사람들과 어울렸고 병세도 놀랄만하게 좋아졌다.  6)인터뷰에 참여한 의료인 MS, LK씨, 노인 BJH, MYJ, KSJ씨, 가족 KTY, KYJ씨 모두 안락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지하였다.

    Ⅶ. 맺음말

    생명이 멸하는 과정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임종기 고통은 또한 지나온 삶의 상처와 고통을 비춘다. 부당한 관계로부터 누적된 상처, 자기존재를 지탱하였던 역할들의 상실, 자기집착과 미움과 몰이해로 소통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였던 삶에 대한 회한,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기회의 상실, 삶과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는 아상 등이 엉켜있다. 또한 임종기의 고통은 의료적 접근에 의존하면서 마지막까지 죽음을 믿지 않으며 절규하거나 삶의 고통의 도피처로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종용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임종의 고통은 생명의 신체적 기반이 무너지는 고통, 사회적 존재의 욕망, 책임, 역할, 관계의 고통, 그리고 유한한 생명을 인정해야 하는 고통이 함께 응축되어 있다.

    한편으로 임종은 삶의 모든 비참함과 괴로움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통이 치유되고 인간이 가장 성스럽게 전환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가치를 통합하고 사랑과 용서로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번뇌의 근원에 대한 명증한 통찰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또한 호스피스와 같은 전인적 돌봄이 임종기 고통을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신체·정신 기능이 극도로 쇠약한 상황에서 의료인과 가족, 그리고 봉사자의 행위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임종을 돌보는데 무엇보다 갖추어야 하는 것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무장한 돌봄의 효과는 매우 제한된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임종을 상상하면서 일부 노인들은 안락사나 자살을 차악의 선택이라고 고려한다. 임종의 고통과 삶의 고통의 도피처로서 죽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믿을 수 있는 돌봄 환경이 취약함을 반증한다. 회생 가능성만을 중시하고 정신적 돌봄이 결여된 임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나아가 삶의 고통의 도피처로서 죽음을 인식하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삶을 해체하는 환경과 고립과 단절을 심화하는 삶의 방식과 사회 환경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노력이 요구된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자아와 세계의 고통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고통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백세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지만 더 오래 살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들이 있다. 암 발생, 치매 발병율, 각종 만성질환의 제일 원인은 다름 아닌 오래 사는 것이다. 물론 얼마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였는가에 따라 노화의 양상은 상당히 다를 수 있지만 의료진 역시 노화과정이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설명되고 관리되는 부분에 비해 나이라는 요인의 영향이 더 근본적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래 살게 되면서 생애 어느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만성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만성질환과 함께 죽어갈 가능성도 매우 높다.

    개인 수준에서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여러 노력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제도적 수준의 정비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임종 돌봄 체계는 아직 기초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임종기 의료비용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고, 지난 10년간 말기암환자의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병원을 중심으로 완화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완화의료제도의 정립 방안을 탐색하고 있는 수준이다(이영숙, 2013). 비정부 조직이 주관한 한국의 호스피스의 역사는 짧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노상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 대한 돌봄으로 가톨릭계에서 1960년대 출발하였고 죽음, 사후세계, 나와 우주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사상체계를 갖고 있는 불교계에서도 지난 20년간 평안한 임종을 돌보는 일을 보살의 수행으로 실천하고 있다. 고통스런 임종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모든 시민의 편안한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제도가 마련되는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호스피스의 이념, 방법, 자원체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의견수렴이 중요하다. 어떻게 우리가 죽어가고 있는가. 그 과정에 무엇이 상실되었는가. 나와 세계가 하나이고 생명은 감성과 이성과 영성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임종의 고통을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집합인 사회도 좀 더 살기 좋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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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인터뷰 참여자의 특성
    인터뷰 참여자의 특성
  • [?표 2?] 임종기 고통과정의 유형화
    임종기 고통과정의 유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