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영화 제작사의 삶

The Controlled Lives of the Korean Film Productions in the First Decade of the New Millenn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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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밀레니엄 이후 10년 동안 한국영화산업의 모든 영역은 대기업 3대 투자·배급사, CJ E&M,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이들이 소유한 극장체인,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90년대부터 하나둘 사라져갔던 단관극장들은 2000년대 들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멀티플렉스 상영관들로 변신했다. 영화의 흥행은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마케팅, 개봉시기의 적절성, 그리고 독점적 스크린 확보와 같은 배급과 상영의 완성도가 결정했다. 메이저 배급사 체제에 기반 한 독점적 스크린 확보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욕망을 더욱 부추긴 토대가 되었고, 영화는 시대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문화상품이 아닌 시대와 대중의 욕망을 생산하는 소비상품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동안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제작사들은 메이저 3사에게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비상품으로서의 영화를 찍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투자, 배급 그리고 상영에 통제된 생산자, 즉 메이저 3사의 하청업체로의 전락이라는 제작사로서의 위상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본 논문은 호황 속 짙은 그림자라 할 수 있는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지형도를 초래한 2000년대 투자·배급과 상영 중심의 영화산업 구조개편을 제작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For a decade after the new Millenium, the Korean cinema industry was completely reorganized by three major film investment&distribution companies, CJ Entertainment, Showbox Mediaplex, Lotte Entertainment and their cinema chains, which newly emerged in the late 1990s. The results of the major reorganization were not locale, but global enough to give the brand name of Hallyu(韓流) to Korean cinema. Also, by investing mainly on Korea blockbusters and dominating the screen through their multiplexes, they redefined the traditional concept of cinema as a cultural commodity within Korea before the Millenium into a perfectly capitalistic one, consumer goods. Throughout such changes, the three majors became to put under their control the major production companies, which had led the Korean film industry since the 1990s. This paper will attempt to show these fundamental transformations in its all sectors, focusing on the decline of the major productions.

  • KEYWORD

    2000년대 한국영화 , 대기업 3대 투자·배급사 , 3대 극장체인 , 스크린 독과점 , 대기업 투자·배급사 독과점 , 영화흥행의 양극화 , 1000만 관객 , 교차상영

  • 1. 서론: 한국영화의 호황 속 짙은 그림자

    2014년 7월 30일에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명량>은 개봉 12일 만에 스크린 수에서 좌석점유율에 이르는 흥행에 관한 모든 기록을 갱신하면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첫날 <명량>은 전국 총 1159개 스크린(스크린 점유율 33.6%)에서 총 6147회(상영점유율 42.3%) 상영했다. 4일 이후 스크린 수는 1568개로 늘어 61.4%의 스크린 점유율을 기록했고, 개봉 7일째 되는 날 <명량>은 당일 전국 영화관의 총 상영횟수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52.3%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다. 즉, 이날 전국 영화관의 프로젝터에서 스크린으로 투사된 이미지의 절반 이상은 <명량>의 것이었다. 이에 더해 <명량>은 개봉 당일 68만명의 관객을 기록한 이후, 1000만 관객 달성까지 일일 평균 약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1) 15년 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렸던 한 편의 영화가 <명량>과 유사한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영화산업을 뒤흔들었다. 1999년 2월 13일에 개봉한 <쉬리>는 한국영화사상 최단 기간 “서울 관객 200만 돌파라는 대 기록”을 세우며 그해 총 582만명의 관객을 기록한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쉬리>가 전국관객 100만 돌파하는 데는 11일이 걸렸다. 서울관객 기준으로 보았을 때, <쉬리>는 개봉 22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개봉 2달 만에 200만명을 동원하는 “폭발적”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 “신들린” <쉬리>가 기록한 하루 최대 관객동원 수는 역대 최고인 9만명이었다. 개봉 10일째인 2월 22일 <쉬리>를 상영한 24개 극장이 끌어들인 극장 당 관객 수는 1600여명이었고, <쉬리>를 상영하지 않은 극장은 평균 15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2) 다시 말해, 서울소재 전체 스크린 수를 고려했을 때, 당일 스크린에서 서울영화관객의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의 57% 정도가 <쉬리>의 것이었다.3)

    민족주의적 소제와 대량의 영화적 스펙터클을 통해 최다 관객 기록을 갱신했던 <쉬리>와 <명량>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출현과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 한국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두 작품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쉬리>가 “대기업의 잇단 영화산업 철수로 위축되었던” 밀레니엄 직전의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빛 이였다면, <명량>은 그 엄청난 관객동원력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역동적 성장에 드리운 짙은 ‘그늘’로 보이기 때문이다.4) 15년 전과 달리 <명량>이 이룩한 최단기간 천만관객 돌파는 대기업의 스크린독과점과 흥행 영화 몇 편만이 수익을 다 가져가는 승자 독식 현상의 대표적 사례였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명량>은 한국영화산업의 고질병인 흥행 성적이 좋은 영화는 대박을 내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쪽박을 차는 양극화 현상, 이른바 영화흥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며, 영화의 다양성을 해친 한국영화의 최고의 포식자이자 독식자였을 뿐이다.

    밀레니엄의 첫 10년을 지나온 한국영화에 대해 이러한 대규모 영화의 시장 독식⋅독과점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첫째, 현재 한국영화의 흥행을 결정하는 것은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마케팅의 효과, 개봉시기의 적절성, 그리고 스크린 확보량과 같은 배급과 상영의 완성도라는 것.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결과가 보여주듯, 대기업 3대 투자⋅배급사(CJ E&M,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롯데엔터테인먼트)와 3대 극장체인(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이 안정적인 이익창출을 위해 구축한 독과점에 이르는 한국영화산업의 장악력과 특히 이들의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5) 둘째, 제작사 중심의 한국영화산업의 생태계가 투자⋅배급과 상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본 논문이 주장하듯, 영화는 시대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문화상품이 아닌 시대와 대중의 욕망을 생산하는 소비상품으로 바뀌었으며, 제작사는 이를 찍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투자, 배급 그리고 상영에 통제된 생산자, 즉 “하청업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6) 본 논문은 호황 속 짙은 그림자라는 현재의 한국영화산업의 지형도를 초래한 2000년대 한국영화산업의 이러한 투자⋅배급과 상영 중심의 구조개편을 제작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기 제작사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에게 그들이 직배이후 구축해왔던 한국영화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하청업체로의 전락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제작사는 영화제작의 주체라는 자신의 위상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1)<명량>의 흥행 기록에 대해서는 다음 신문자료를 참조함. <명량 1000만명 돌파>, ≪서울신문≫, 2014년 8월 10일. <천만 영화 빛과 그늘>, ≪서울신문≫, 2014년 9월 13일 13면. <명량 12척의 배가 집어삼킨 1568개의 스크린⋯큰 영화 독식>, ≪아시아투데이≫, 2014년 9월 18일.  2)<쉬리>의 흥행기록은 영화진흥위원회 역대박스오피스 기록을 참조했으며, 그 외 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국산영화 「쉬리」흥행 타이타닉 제쳤다>, ≪세계일보≫, 1999년 2월 25일 17면. <‘쉬리’ 오늘 100만 돌파>, ≪서울신문≫, 1999년 3월 5일 21면. <‘쉬리’ 한국영화史 다시쓴다>, ≪매일경제≫, 1999년 4월 7일 3면.  3)박지은, 구동회, 「한국영화상영관의 공간적 분포 변화」, 『국토지리학회』, Vol. 43, No. 3, 353-372쪽.  4)<기업, 금융권 영화투자 봇물>, ≪경향신문≫, 1999년 3월 17일 15면. <천만 영화 빛과 그늘>, ≪서울신문≫, 2014년 9월 13일 13면.  5)김성경, 「한국 영화산업의 신자유주의 체제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영화산업의 정치경제학」,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통권 19호, 2011, 71-93쪽. 안호근, 「대형 영화배급사들의 수직적 결합과 영향력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이근재⋅최성희⋅최병호, 「한국 영화산업에서 수직 결함이 영화 상영에 미치는 영향 : 상영배제, 상영기간 차별 및 다양성을 중심으로」, 경제학연구, 제57집 2호, 2009, 63-92쪽.  6)청어람 최용배 대표는 “지금 대부분의 투자와 배급, 상영 등이 모두 똑 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독과점적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영화계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를 만드는 영화사들과 영화인들은 이들의 피고용인 및 하청업자로 전락하는 처지가 됐다”며 “하루 빨리 공정한 산업환경을 만들어 영화인들이 과감하고 독창적인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만, 다행중 불행>, ≪충청투데이≫, 2014년 10월 10일.

    2. 2000년: 제작사 중심의 합종연횡

    한국 영화산업에서 2000년은 투자 및 배급사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메이저 제작사가 안정적인 자본과 배급망의 구축을 본격화했던 해였다. 1988년 본격화된 직배와 1993년 금융실명제 이후 충무로 영화산업에 진출했던 삼성, 대우, 현대 그리고 SKC 등의 대기업은 1997년 12월 IMF 경제 위기로 시작된 구조조정을 통해 일제히 영상산업에서 철수했다.7) 이들이 남긴 결론은 “영화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였다. 하지만 충무로 제작사가 내린 결론은 달랐다. 이들은 “지금 같은 위기”는 오히려 안정적인 제작환경을 구축하여 영화산업의 새로운 지형도를 구성할 역사적 계기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보였다.8) 대기업의 자본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간 상황에서 한국영화 자생력을 위한 제작사의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판짜기 노력은 제작사간의 전략적 제휴, 토착자금 유입, 투자금 다변화와 제작비의 공통투자를 통한 위험부담 분산, 영화진흥공사의 제작비 지원 조건 완화, 그리고 배급망 확보 등으로 가시화 되었다.

    2000년 제작사 중심의 본격적 합종연횡은 1999년의 다음과 같은 한국영화 제작사의 연합,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의 증가와 그에 따른 투자활성화라는 일련의 변화상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9년 영화 배우 문성근, 이창동 감독 그리고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가 모여 영화 투자 및 제작사 유니코리아 문예투자(주)를 발족시켰다. 30억원의 운영자금으로 출발한 유니코리아 문예투자는 연간 5∼8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9) 배급업에서 시네마 서비스는 20세기 폭스 코리아의 연대를 발표했다. 대기업 자본으로 성장했던 충무로의 “잘 나가는” 제작사 신씨네, 우노필름, 그리고 명필름은 각자의 영화사 영문 이니셜을 따 섬(SUM)이라는 명칭의 협의체를 구성하여 자금조달, 제작, 배급 연대를 선언했다. 특히 이 협의체는 영화투자 공동유치를 목표로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신씨네 대표 신철의 연대 선언문이 강조하고 있듯 “제작사가 영화자본에 종속돼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고 “대기업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투자자를 공동으로 유치하고 배급도 모색하면서 괜찮은 영화를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한국영화 제작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10)

    1999년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98년 19%보다 96% 이상 증가되어 약 40%에 이르렀으며, 이에 비례해 한국영화 관객수와 매출액 모두 2배 가까이 늘었다.11) 중소기업과 금융권의 영화제작 지원에 의한 투자금 다변화는 <쉬리>의 돌풍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했지만, 단발성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활성화와 체계화를 목표로 했기에 자생력 성장을 목표했던 영화 제작사에게 커다란 기대를 안겨주었다. 1999년 3월 16일에 발족한 제조기업과 금융회사로 구성된 영화투자단 ‘에인절클럽’은 당시 <용가리>를 제작중인 제로나인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하였다. 에인절클럽은 제로나인의 차기작 투자와 함께 “중장기 프로젝트인 영상 테마파크 사업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적 금융서비스와 자문” 그리고 “국내외 투자를 유치하여 체계적 합리적인 경영을” 돕기로 약속했다.12) 또한 통신업체 한솔PCS는 강제규 감독의 차기작에 15억원을 투자하고 영화제작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금 전액을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공익기금화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다각화된 영화 투자금이 안정적인 한국 영화제작 환경의 구축을 목표로 제작사에 지원되었던 것은 당시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과 관객의 급증이라는 가시적 변화, 한국영화의 배급망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성장을 이끌어 낸 흥행작의 제조사인 제작사의 기획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투자 및 배급회사로 확장한 시네마서비스는 흥행 1위인 <쉬리>를 제외하고 흥행 순위 2위에서 4위에 오른 <주유소 습격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텔미 썸딩>를 포함하여 한국영화 10편을 배급했다. 당시 개봉한 44편의 한국영화 중에서 시네마서비스가 배급한 10편이 차지한 관객 점유율은 60%에 이르렀다. 특히 <텔미 썸딩>은 1998년 <고질라>의 서울 30개관 동시 개봉을 훌쩍 넘어 36개관에서 상영되었다. 시네마서비스가 보여준 이러한 한국영화 배급망 확대와 관객점유율 상승은 단지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결과만은 아니다. 이는 시네마 서비스의 메인 투자사의 팀장이 강조했던 것처럼 1988년 <위험한 정사>로 시작된 본격적인 할리우드 직배영화와의 경쟁 속에서 “우리 영화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의미”였고,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의 의견과 같이 한국영화 산업이 상품성 있는 영화를 생산할 수 있는 제작과 투자에 있어서 “일정한 시스템”을 갖춘 결과였다.13) 이에 더해, “기획과 제작 능력이 입증된 우노필름의 대표 차승재를 중심으로” 결성된 ‘무한영상투자조합’이라는 금융자본과 전문프로듀서가 공동 출자한 투자조합의 결성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당시 한국영화산업의 재편과정에서 투자와 배급망은 흥행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작사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었다.14) 2000년 명필름은 <공동경비구역 JSA>, 강제규 필름 <단적비연수>, 우노필름 <행복한 장의사>와 <플란다스의 개>, 그리고 시네마서비스는 <주노명 베이커리>로 이러한 벤처와 금융권의 투자금을 안정적인 수익으로 변화시켰다.

    2000년 한국 영화산업은 1999년부터 시작된 이러한 제작사 중심의 합종연횡이 대규모의 투자금의 형성과 함께 본격화되던 해였다. IMF 이후 흥행성 강한 ‘콘텐츠’를 찾는 투자사, 배급사, 그리고 상영업자와의 다양한 공존관계를 주도적으로 형성했던 제작사들로는 시네마서비스, 명필름, 우노필름, 그리고 강제규 필름 등이 있다. 향후 한국 영화산업에서 한류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이들은 확보된 거대한 투자금과 배급망 속에서 안정적인 영화제작 환경을 구축하면서, 영화산업에서 제작사 우위의 구조를 뚜렷이 형성해 나아갔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와 <단적비연수> 흥행으로 200억 가량의 이익을 가져갔던 CJ엔터테인먼트는 이 “엄청난 무형의 이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제작사와의 안정된 제휴선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앞다투어 명필름, 강제규 필름, 신씨네 등과 전속관계를 맺었다. 이 제휴관계 속에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간의 역학관계는,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강복의 태도가 보여주듯, “확실한 아웃소싱, 제작자에게 철저한 독립권을 준다는 원칙”이 우선되는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2000년 강제규 필름에 몰려든 벤처산업 육성의 성격을 가진 투자금 역시 제작사 우위구도의 형성을 보여주었다. 종합기술금융(KTB)으로부터 57억 5천만원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 강제규 필름은 인터넷방송 ICBN 공동설립, 극장운영, 엔터테인먼트사 ‘아이스크림’ 공동투자를 발표하며, 그해 코스닥에 등록하겠다고 공표했다. 하나로 투자전문기관이 평가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사”를 꿈꾸는 강제규 필름의 브랜드 가치는 2,000억원 규모였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투자와 영상관련사업에서는 같이 “손을 잡자는”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특히 강남에 개관한 멀티플렉스 ‘ZOO 002’를 시작으로 서울과 지방까지 극장사업을 확장해 전국 배급망을 갖출 계획을 발표한 강제규 필름은 제작-배급-상영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메이저 영화사로의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15) 영화사의 코스닥 상장은 강제규 필름만의 목표만은 아니었다. 시네마서비스, 명필름, 그리고 우노필름 모두 역시 안정적인 제작환경의 구축과 메이저 영화사로 거듭나기 위해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노필름은 매니지먼트사 EBM과 정보통신업체 웹시네마 세인멀티미디의 자본과 손잡고 싸이더스로 재탄생했다. 이후 코스닥 등록 기업인 로커스 홀딩스(Locus Holdings)에게 인수됨으로써 코스닥에 진입했다.16) 시네마서비스는 2000년 4월 미국투자전문회사 워버그 핀커스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유치를 이끌어 냈다. 싸이더스를 인수했던 로커스홀딩스가 2001년 398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했다.17) 이러한 코스닥 등록 업체와의 인수⋅합병을 통해 그 동안 협력관계에 있었던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는 로커스홀딩스라는 모회사 아래에서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 배급, 그리고 상영에 있어서 수직통합을 이룬 영화사로 새롭게 탄생했다. 물론 로커스 홀딩스의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의 인수는 “충무로가 금융 또는 정보통신 자본”에게 예속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는 누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와 연합하는가라는 투자⋅배급사의 생존전략이 낳은 결과였다. 플레너스의 탄생은 한국영화 제작, 투자 그리고 배급 중심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가 그 동안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양자 모두와 투자와 배급 관계를 맺고 있었던 싸이더스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배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우려보다는 당시 강우석 대표의 표현이 보여주듯 “배급 공세를 펴는 일” 없이 작품을 통해 제작 중심으로 성장한 플레너스와 같은 영화사가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한국 영화계에 팽배했다.18)

    명필름의 경우 2001년 CJ엔터테인먼트와 상호지분참여 형식을 통해 제휴관계를 맺었다. 이는 CJ가 명필름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여 30억에 해당하는 10%의 지분을 확보하고, 동시에 명필름은 CJ의 일정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었는데, 제작 분야가 없는 CJ에게 명필름이 그 역할을 그리고 투자 그리고 배급 및 상영 부문이 없는 명필름에게 CJ가 그 역할을 하는 상호보완적 제휴관계를 이룸으로써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는 수직통합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양질의 콘텐츠 확보와 시너지효과에 가장 큰 의미”둔 제휴라는 점, 그리고 결코 “CJ가 한국영화제작사를 휘하”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CJ의 의견이 말해주듯이, CJ와 명필름간의 제휴는 앞의 시네마서비스와 강제규필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자와 배급사가 기획력 있는 한국 영화제작사 끌어안기 경쟁의 결과였다.19)

    이처럼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명필름은 CJ엔터테인먼트와, 강제규 필름은 KTB네트워크와 그리고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는 로커스홀딩스와의 인수, 제휴, 투자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전략적 파트너가 되면서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는 수직통합의 구조를 마련했다. “충무로에 돈이 넘친다”라는 표현으로 서두를 연 2001년 9월 한 신문기사는 1500억 원 가량의 영화진흥기금, 당시까지 19개의 영상전문펀드로 조성된 1600여억 원,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등 투자배급사의 자금 300억에서 400억 원 등을 합쳐, 총 4000억원 가량의 돈이 한국영화계에 투입되어 있음을 보도했다. 이 신문기사가 말하듯이 대규모 투자금의 형성은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신라의 달밤>,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 등의 흥행작을 만들어낸 메이저 제작사가 성취한 결과였다.20) 하지만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한국영화는 -8%에서 -9% 사이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게 되면서 리스크가 높은 산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또한 극장업으로 출발해 2000년대 초반 이후 시네마서비스를 제치고 투자-배급-상영에 있어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메이저 영화사로 등장한 CJ엔터테인먼트로 대표되는 대기업 3대 투자⋅배급사(CJ E&M,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롯데엔터테인먼트)와 3대 극장체인(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이 한국 영화산업내에서 헤게모니를 키워나가면서 이들 메이저 제작사의 입지는 좁아져갔다. 2004년 CJ엔터테인먼트의 시네마서비스 모회사 플레너스 인수와 싸이더스 10억원 투자는 이들 대기업의 제작사 통제시대의 서막이었다.

    7)대기업의 충무로 영화산업 진출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 <한국영화기획실모임, 21세기 우리영화시대 준비>, ≪경향신문≫, 1991년 11월 2일 18면. <충무로 전문기획시대 연다>, ≪한겨레≫, 1992년 6월 6일 9면, <금융실명제 충무로 지각변동>, ≪한겨레≫, 1993년 8월 28일 9면. <대기업 영화 산업 진출>, ≪매일경제≫, 1993년 5월 23일 8면, <영상⋅CATV 앞다퉈 진출>, ≪매일경제≫, 1994년 2월 22일 12면. 대기업의 한국영화 투자 규모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 참조. 이현주, 「한국영화유통산업의 구조, 행위, 성과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논문, 1995, 50쪽. 미국영화 직배와 한국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 연구자료를 참조할 것. 강병규, 「1980년대 한국영화산업구조의 변화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김병재, 「한국 영화산업의 연구: 미국 영화산업의 직접배급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채창락, 「외국영화 직배 이후의 한국영화산업 발전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8), ≪한국일보≫, 1998년 2월 20일. <대기업 철수한 영화계 판도 급변>, ≪매일경제≫, 1999년 2월 11일 2면. <대그룹들, 영상산업 철수 잇따라>, ≪세계일보≫, 1999년 6월 2일.  9)<기업, 금융권 영화투자 봇물>, ≪경향신문≫, 1999년 3월 17일 15면.  10)협의체 섬에 대한 신문기사는 다음을 참조. <신씨네, 우노, 명필름 ‘연대선언’ 3사협의체 섬(SUM)구성>, ≪경향신문≫, 1999년 2월 3일 29면. <충무로 ‘뭉치면 산다’ 영화 제작-배급 공동으로>, ≪동아일보≫, 1999년 2월 5일.  11)1999년 9월 기준 한국영화 서울관객수 집계 현황에 따르면 1998년 343만명에서 673만명으로 증가했고, 매출액 역시 1999년 전년도 188억원에서 369억 5천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기준으로 <쉬리> 2백 44만, <주유소 습격사건> 95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71만, 그리고 <용가리>가 40만을 기록했다. 또한 이들 영화는 해외로 수출되어 매출액은 더 상승했다. 이 통계자료는 다음 신문자료 참조.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40% 기염 3박자가 맞았다>, ≪한겨레≫, 1999년 11월 30일 17면. <도약의 발판 마련 1999년 영화계 9대 뉴스>, ≪국민일보≫, 1999년 12월 21일 29면.  12)<기업, 금융권 영화투자 봇물>, ≪경향신문≫, 1999년 3월 17일 15면.  13)<흐름: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 40% 기염 ‘3박자’가 맞았다>, ≪한겨레≫, 1999년 11월 30일. 17면.  14)‘무한영상벤처투자조합’은 정보통신과 의료장비분야 투자에서 성과를 거둬온 벤처캐피털인 무한기술투자㈜가 막강한 배급력을 과시하고 있는 시네마서비스, 유력 제작사 인우노필름과 손잡고 만든 영상투자조합이다. 이 조합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출자금(20억원), ㈜시네마서비스의 출자금(20억원)이 투입되는 등 공적 자금과 영화인 지분이 함께 참여했다. 여기에 ㈜새한, ㈜로커스, ㈜네띠앙 등이 참여해 총 자본금은 115억원 규모였다. 이는 영상조합으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으며, 미래에셋창투 등 기존 영상 펀드와는 달리 영화인이 직접 운영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투자조합의 공동운영자로 선정된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가 제작을 맡고, 강우석 감독은 배급을 담당하며 비디오 보급은 새한이, 온라인홍보는 네띠앙 등 전문업체가 맡았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신문기사을 참조할 것.<투자조합 영화산업 진출 잇따라>, ≪서울경제≫, 2000년 1월 5일. <무한영상투자조합>, ≪헤럴드 경제≫, 2000년 1월 10일 1면. <강우석, 차승재, 최재원등 영상전문 투자조합 결성 115억 투자>, ≪경향신문≫, 2000년 1월 12일 33면.  15)KTB는 57억 5천만원 투자를 통해 강제규 필름의 지분 20%를 소유하게 된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사 만들 것>, ≪한국일보≫, 2000년 8월 21일 15면. <벤처바람 부는 영화산업>, ≪경향신문≫, 2000년 2월 25일.  16)<연예계도 벤처 열풍>, ≪국민일보≫, 2000년 3월 20일 20면.  17)<영화감독 강우석 200억원 해외자본 유치>, ≪한겨레≫, 2000년 4월 10일 21면. <로커스 홀딩스 시네마서비스 인수>, ≪한겨레≫, 2001년 2월 13일 21면.  18)<충무로 세력판도 다시 바뀌나>, ≪한겨레≫, 2001년 3월 3일 34면.  19)<명필름-CJ 전략적 제휴>, ≪문화일보≫, 2001년 4월 19일 18면. <충무로에 합종연횡바람>, <서울신문>, 2001년 4월 20일 17면.  20)<대박 꿈꾸며 너도나도 투자 충무로는 ‘돈홍수’>, ≪동아일보≫, 2001년 9월 7일, 52면.

    3. 시네마서비스의 추락

    2004년 CJ엔터테인먼트의 플레너스 인수 그리고 이듬해 2005년 시네마서비스의 극장 배급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성사된 CJ엔터테인먼트의 시네마서비스 150억원 투자는 한국 영화산업의 우위구도가 제작사에서 대규모 극장체인을 소유한 투자⋅배급사로 이동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충무로 제작사에서 출발해 한국 영화의 투자와 배급을 주도하며 ‘충무로의 자존심’으로 불리었던 시네마서비스의 추락이라는 점에서 그랬으며, 이는 이후 한국 영화산업은 대기업 3대 투자⋅배급사와 3대 극장체인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투자금 조달, 수익배분 구조 그리고 영화 제작에 있어서까지 제작사들의 교섭력과 독립성이 위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95년 시네마서비스는 서울의 중심극장인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와 배급계약을 맺으며 충무로 토착 자본을 바탕으로 제작, 투자, 배급 통합 영화사로 출발한 이후, 충무로 제작사와의 연합과 금융자본과 전문투자회사와 결합을 통해 2000년대 들어서 이른바 수직통합 영화사로 성장했다. 2000년 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의 200억원 투자, 2002년 코스탁 상장회사인 로커스 홀딩과의 합병 이후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로의 변신, 자사 멀티플렉스영화관인 ‘프리머스 시네마’ 설립을 통한 극장사업 진출, 그리고 배급망 확보를 위한 외화배급과 스타메니지먼트 사업 진출을 통해 ‘수직통합’을 향해 나아갔다.21) 제작-투자-배급-상영의 수직통합 시스템 구축의 결과로 시네마서비스는 2001년 한국영화배급의 총 44.91%, 2002년 32.88%를 장악하며 제작과 투자를 통한 배급력에 있어 1위의 위치에 올라섰다.22)

    로커스 홀딩스의 투자 속에서 플레너스라는 이름으로 이룬 시네마 서비스의 성공적 수직통합 체제의 구축은 ‘프리머스 시네마’와 싸이더스의 적자로 인해 분해되기 시작했다. 2002년과 2003년 동안 한국영화가 지속적으로 -8% 이상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동안 싸이더스는 2002년 3분기까지 13억 8천만원 규모의 누적 손실을 만들었으며, 2003년 시네마서비스의 적자는 총 18억원에 달했다. 2004년 프리머스가 상반기 동안 기록한 적자액은 대략 30억원이었다.23) 연이어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기록한 적자로 플레너스는 2003 초반부터 자사 매각을 위한 행보로 나아갔다. 우선 플레너스는 2003년 1월 15일 싸이더스 주식 보유지분율을 대폭 낮추어 플레너스 인수를 희망하는 업체에게 출자 부담을 줄여 주었다.24) 그 주인공은 CJ엔터테인먼트였다. 바로 다음 날 CJ엔터테인먼트가 싸이더스에 10억원 자금 대여 발표를 함으로써, 싸이더스의 흥행 기대작에 대한 영화배급권을 가져갔다. CJ엔터테인먼트는 같은 달 29일 ‘플레너스 인수 MOU’체결을 발표하고, 이듬해 4월 8일 CJ와의 공동 출자를 통해 플레너스를 인수했다.25) 싸이더스 투자에서 시작된 CJ엔터테인먼트의 ‘충무로 통일’은 시네마서비스의 배급망을 매수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실미도>이후 투자⋅배급한 영화들의 흥행 실패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왔던 시네마서비스는 2005년 자사의 프리머스 소유권을 CJ엔터테인먼트에게 넘겨주고 대신 150억의 투자금을 지원받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배급의 50%와 전체 극장의 4분의 1을 소유한 투자⋅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거대한 영화사가 되었다.26)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의 CJ엔터테인먼트로의 예속은 첫 번째, 이두 회사가 그동안 CJ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구도를 이루었던 충무로의 메인제작사와 투자⋅배급사였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산업이 대규모 극장체인을 소유한 재벌 계열사의 투자⋅배급사의 독점체제로 급속히 재편됨을 의미했다. 둘째, 그동안 시네마서비스와 협력관계 속에서 자생력을 이어왔던 영화사 봄과 튜브 엔터테인먼트 등의 여타 중소 제작사는 더 영세해져 이들 재벌 투자⋅배급사의 통제의 그늘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의미했다.

    21)‘프리머스’시네마는 MVP창업투자의 공동투자로 운영되었으며, 총 230억 투자로 시작했다. 플레너스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광주, 전주, 제주, 경주 등 4개 지역 24개 스크린을 시작으로 서울 신림역과 대전 등을 포함하여 2004년까지 전국 총 100개 스크린에 2만 4,00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004년까지 전국 100개 스크린>, ≪서울경제≫, 2002년 8월 14일 1면.  22)영화진흥위원회, 『2001년도 한국영화연감』, 집문당, 2001, 영화진흥위원회, 『2002년도 한국영화연감』, 집문당, 2002.  23)<플레너스 2분기 손실 4억, 상반기 순익 32억원>, ≪이데일리≫, 2003년 8월 7일.<게임-포털 지분법 평가손 ‘도마위에’>, ≪이데일리≫, 2004년 2월 4일. <플레너스, 싸이더스 지분감소 매각목전?>, ≪머니투데이≫, 2003년 1월 15일.  24)<플레너스, 싸이더스 지분감소 매각목전?>, ≪머니투데이≫, 2003년 1월 15일.  25), ≪매일경제≫, 2004년 4월 8일 2면. , ≪이데일리≫, 2003년 1월 29일.  26), ≪문화일보≫, 2005년 4월 4일 37면.

    4. 투자?배급사의 제작사 통제 시대

    2005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투자자들이 좋은 콘텐츠 확보를 위해 경쟁을 했던 제작사 우위의 시대는 지나갔다.27) 대신 이 우위에 오른 이들은 이른바 1998년 1기 대기업이 물러난 자리에 극장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바탕으로 우회적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하여 공격적인 멀티플렉스 확장 전략으로 기존의 극장 체계를 완전히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투자와 배급은 물론 케이블 TV등 부가판권 시장까지 장악한 CJ, 오리온, 그리고 롯데라는 식품산업의 대기업 이었다. CJ는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를 통해, 오리온은 쇼박스와 메가박스를 통해, 그리고 롯데는 롯데엔터테인먼트와 롯데시네마를 통해 투자⋅배급과 상영의 수직계열화 체계를 이루었다. 특히 이들 메이저 3사는 철저한 산업적 전망과 상업적 손익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영화산업에 투입되는 자본의 성격을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완전한 투자금으로 변화시키며 한국영화 산업의 헤게모니를 장악해나갔으며, 스크린과 투자⋅배급의 독점을 통해 그동안 한국영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제작사의 생산력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28)

    대작 영화의 투자와 대규모 마케팅 그리고 신규 영화관 개장을 통해 메이저 3사는 스크린 점유율을 2005년 45.7%에서 2006년 54.7%, 그리고 2007년 57.2%까지 확대 했다.29) 이렇게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던 메이저 3사는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인한 한국영화 극장 점유율 감소 그리고 2003년 -8.12%의 5배에 이르는 2007년의 한국영화 마이너스 수익률 기록으로 형성된 한국 영화산업의 불황을 겪으면서 과거 미래산업으로 규정했던 것을 바꿔 한국영화 제작을 리스크가 큰 분야로 재규정하였고, 자신들의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에서 재투자에 이르는 한국 영화산업의 생태계를 변화시킨다.30) 메이저 3사는 그동안 제작사의 독립성과 창의적 작품의 제작을 가능하게 했던 이른바 ‘묶은 투자’와 프로젝트 개발비 지원, 투자창구의 다양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던 메인 투자 시스템, 그리고 제작사의 자생력이 적절히 보장되었던 제작사와 투자사의 6대4 부율 등을 자사의 수익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이들 메이저 투자배급 3사는 메인 투자 비율을 바꾸었다.31) 투자 부문의 손실을 감당해왔던 메이저들은 한국영화의 투자수익이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을 맞자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6년 하반기부터 투자 비율을 50%에서 30%로 낮추었다. 또한 배급수수료를 8%에서 10%로, 제작관리 수수료를 1.5%에서 2%로 인상하였는데, 이는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액을 줄이고 대신 영화의 흥행에서 오는 이익보다 배급과 투자금 관리에서 오는 수익을 증대시켜 수익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작비 분담 및 수수료 체계 변화에 따른 투자사의 수익률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케팅 비용 10억을 포함한 50억을 투자했을 때, 극장 매출이 100억을 기록할 경우, 메이저 투자사는 총매출액에서 변화 이전에 비해 6억 3천만원의 감소를 보았지만, 순이익은 기존보다 약 23% 상승해 결국 4.3억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32)

    이에 더해, 메이저 3사는 제작사의 전문성 부족과 제작 관리의 불투명성을 이유로, 지금까지 제작사가 담당해 왔던 제작 관리와 기획개발 영역에 직접 개입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익분배 과정에서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투자사의 몫으로 변환 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우선 메이저 3사는 그동안 제작사에게 지급해오던 프로젝트 개발비 지급을 중단하거나 특정한 영화의 투자금의 일부를 타 프로젝트 개발비로 사용되는 관행을 폐지했다. 투자자로부터 들어온 프로젝트 개발비는 그동안 한국 영화산업의 부흥을 이끌어 왔던 이른바 ‘기획’시대의 제작사들이 다양한 시나리오의 개발, 신인 감독 및 작가의 발굴, 그리고 영화 제작 인력 네트워크의 구성을 가능하게 했던 자금원이었고, 한국 영화산업을 전망 있는 산업으로 이끈 흥행작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2006년 한국영화 수익성 악화 이후 메이저 3사는 이러한 투자자 부담의 프로젝트 개발비와 제작사 경상비 지급을 공동제작에 의한 투자금으로 변환시켰다. 그 결과 시나리오 발굴에서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의 관리라는 제작사의 독립 영역에 투자사가 공동제작사로 개입하게 되어, 프로젝트가 개발단계에서 끝날 경우 기존에 100% 투자사의 부담이었던 손해를 일정 부분 제작사에게 부가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실제 영화제작단계로 발전하여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공동제작의 몫으로 제작사에게 배당되는 40%의 수익금의 절반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투자사의 제작 개입은, 반현정이 강조하듯, “제작사의 자금 축적을 더욱 힘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과 배우의 출연 확정으로 흥행성이 일정 이상 보장된 프로젝트만이 개발비를 받는 제작환경이 만들어져 영화의 기획은 “다양성을 잃게 되었다.”33) 또한 이들 메이저 3사는 유명감독들과 직접 제작을 추진해 시나리오 개발에서 감독의 발굴, 그리고 배우 캐스팅에 이르는 제작의 중추적 역할까지 침범하여 영화산업에서의 자신들의 안정적 이익창출 구조를 마련해가는 데 몰두했다.34) 특히 이와 함께 금융기관 등 투자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분 투자자들은 제작 완성 리스크 및 투자 정산의 투명성 문제 등에 있어서 불확실한 제작사를 상대하는 것보다 메이저 투자배급사를 선택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 투자금의 유입을 메이저 투자배급사로 획일화 시키며 기획개발 역시 메이저 투자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형성했다.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이러한 제작사 통제는 수익구조 개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배급력의 행사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개봉영화의 조기 종영과 무료초대권 발급, 그리고 무료 초대권 발급 행위와 같은 이들이 가진 배급과 상영의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거래를 통해 제작 부문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편취하여, 결과적으로 제작사의 자본 축적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대한 규제조치를 취했지만, 이에 대해 제작사는 향후 투자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눈치만을 보아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별다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웠다.35)

    이렇듯 메이저 3사는 영화 제작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영화를 배급⋅유통시키는 과정을 통한 수익 확보 즉, 산업 전체에서 얻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에 주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작사의 영역이었던 자금 운용 및 정산 그리고 프로젝트 완성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확보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메이저 3사가 제작사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했다.36) 한국영화산업이 메이저 3사의 독점체제로 재편되면서, 작품은 성공하더라도 제작사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로 한국 영화산업은 불균형을 이루었으며, 제작회사가 투자⋅배급사의 계열사로 편입되는 ‘인 하우스’제도가 도입돼 영세 제작사의 메이저 3사의 하청기업화가 가시화 되었다. 또한 독점적 배급망과 마케팅을 이용한 대작영화의 투자와 배급 그리고 상영관 독점은 대작 영화의 흥행 독식과 중소영화의 상대적 흥행 실패라는 상영영역에서의 양극화만을 낳았다.37)

    2004년 CJ엔터테인먼트의 플레너스 인수 이후, 메이저 3사의 한국 영화시장 독점이 본격화되고 수익구조 개편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대형 제작사들은 메이저 3사와 대등한 협상력을 가지기 위해 합병과 코스닥 상장으로 몸집을 키우는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합병에 참여했던 제작사의 대다수가 통신 업체에게 예속 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대표적으로 명필름과 강제규 필름의 합병으로 2004년에 만들어진 MK픽쳐스는 수공구업체 세신벌팔로의 자회사가 되어 코스닥에 진입했다. 그후 MK픽처스는 합병 후 첫 기획물인 <안녕 형아>의 제작비 19억 원을 익명투자조합 형태로 전액을 모집했고, 간접투자자산운용법에 근거해 51억원 규모의 뮤추얼 펀드를 결성했다.38) 2005년 MK픽처스는 투자배급업과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확장하지만, 실적부진으로 만 3년만에 강원방송에 주식과 경영권을 양도함으로써 주식시장 밖으로 나오게 된다.39)

    2008년 메이저 3사가 점유한 배급 점유율이 80%을 넘어선 상황에서,40) 콘텐츠 수급을 목적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한 KT는 싸이더스 FNH의 주식 51%를 인수함으로써 메이저 3사가 지배하는 구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로 인해 2005년 메이저 3사와의 대등한 협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싸이더스와 좋은영화의 합병으로 탄생했던 싸이더스는 FNH는 다시 독자성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2009년 싸이더스 FNH의 차승재 대표가 자리에 물러났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상은 앞서 언급했듯 2004년을 기점으로 투자 및 배급사로 넘어 왔던 한국 영화산업의 우위구도가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어느 영화기자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한국 영화산업에서 영화제작사의 영향력이 “퇴진”한 것을 의미했다.41)

    27)반현정, 위의 논문, 4쪽. 김미현, <한국영화 자본조달 구조와 유형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31호, 2012, 40쪽.  28)김형준, <자본의 변화 및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한국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72쪽.  29)<멀티플렉스 또 스크린 확대 경쟁>, ≪문화일보≫, 2006년 9월 30일 14면. 『한국영화동향과 전망』(2008년 6월호)  30)2006년 7월 1일부터 스크린쿼터제가 종전의 146일에서 73일로 감소되었고, 이후 한국 영화 투자수익률은 2000년대 들어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05년 7.9%를 기록했던 수익률은 2006년 -24.46% 그리고 2007년 -40.53%까지 내려갔다. 이 시기 한국영화 투자수익률 변화 추이는 다음 자료 참조.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2008년 11월호).  31)메인 투자 시스템은 삼성영상사업단이 출범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산업에 도입되었고, 극장을 기반으로 새롭게 영화산업에 진입해 투자 및 배급사로 성장한 이들 메이저 3사의 투자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메인투자 시스템 하에서 제작사는 투자금으로 제작을 담당하고, 메인 투자사는 제작비의 50%를 투자하는 대신 판권을 소유한다. 이에 더해 메인 투자사는 투자금 관리 및 감독, 배급 및 부가판권 창구 역할, 금융권이나 영상펀드 부분에서 부분 투자자를 모집 통한 자금 조달과 수익 분배, 작품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총괄한다. 메인투자 시스템에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반현정의 논문, 27-30쪽 참조.  32)<한국영화 동향과 전망>, 2006년 9월호.  33)반현정, 위의 논문, 50쪽.  34)2009년 CJ가 제작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해운대>가 그 사례이다. , ≪한겨레≫, 2009년 1월 15일 17면.  35)반현정, 41-42쪽.  36)김미현, <영화산업 수익성 분석과 투자 활성화 방안>, 영화진흥위원회, 2005, 57-58쪽.  37)<영환산업 빅3가 독점>, ≪한국일보≫, 2004년 10월 20일 15면. <영화배급 독식 논란 재점화>, ≪서울경제≫, 2006년 8월 17일.<제작사들에 내일의 태양이 뜰까>, ≪씨네21≫, 2008년 1월 8일. <영화계, 참회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씨네21≫, 2008년 10월 7일.  38)≪헤럴드 경제≫, 2004년 12월 20일. , ≪서울경제≫, 2005년 1월 11일.  39)MK픽처스의 주식시장 진입과 비상장회사로의 복귀에 대해서는 반현정의 논문(51-58쪽) 참조.  40)<덩치 커졌지만 ‘속병’앓는 한국영화>, ≪문화일보≫, 2007년 1월 20일 14면.  41)<포스트 차승재, 싸이더스FNH의 향방은?>, ≪씨네21≫, 2009년 5월 12일.

    5. 결론: 2010년, 제작사의 생존문제

    메이저 3사의 영화산업 독식체계가 완성된 이후 500만이 넘은 영화들이 매년 몇 편씩 등장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밀레니엄을 알리며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었던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과 같이 작품의 완성도와 폭발적 관객의 반응이 만들어 낸 흥행작과 달리 배급의 힘과 스크린 독과점이 만들어낸 흥행작이라는 시각과 함께, 영화 제작 분야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만을 낳았다.42) <괴물>의 전국 620개 스크린 상영(점유율 37%), <한반도> 520개(32%), <타짜> 620개(37%), 그리고 <가문의 부활> 420개(25%)처럼 2006년 40%미만에 머물렀던 대작영화의 스크린 독점 비율은 2010년 이후 50% 이상으로 증가되었다. 2011년 쇼박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1341개(64.%) 스크린에 상영했으며, 이듬해 쇼박스가 투자⋅배급한 <도둑들>은 1091개(점유율 52.5%)의 스크린에서 상영돼 역대 한국 영화 최다인 1301만명을 기록했다. 2012년 CJ E&M은 <광해>를 1001개 스크린에(점유율 48%) 상영해 천만 관객을 넘겼다.43) 또한 개봉 첫주 스크린수와 관객수가 흥행 성패를 좌우하는 영화산업 생태계는 마케팅 비용의 상승에 더해, 앞서 언급했듯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한국영화 흥행의 양극화를 낳았다. 2011년의 흥행 상위 5편이 전체 관객 수의 35.6%에 해당하는 2,957만을 끌어들였다. 2013년 한국영화 개봉작 169편의 2.9%에 불과한 흥행 상위 5편이 전체 관람객 1억 1,689만명의 38.8%에 해당하는 4,539만명을 차지했으며, 이는 지난해 흥행 상위 5편의 시장 점유율보다 2% 증가한 수치였다.44)

    2009년 11월 12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실에서 영화 <집행자>의 제작사 대표 조선묵, 최진호 감독, 그리고 주연배우 조재현은 교차상영 철회를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본래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삭발식을 대신해 진행된 이 자리에서 이들은 극장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집행자>의 ‘교차상영’ 통보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3사에 의한 대작 영화의 투자 집중과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된” 제작사의 현주소이며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개봉 첫주에 20만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인 저예산 영화 <집행자>의 흥행 순위는 전국 500여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개봉 2주만에 <집행자>의 교차상영이 결정되었던 12일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2012>은 전국 80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는데, 스크린의 힘을 받은 이 영화가 단 7일만에 끌어들인 관객 수는 스크린 독과점의 벽에 막힌 <집행자>의 2주 관람객의 8배에 달하는 163만명이었다.45) 이렇듯 메이저 3사는 자사가 투자⋅배급한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기 위해 그 이외 영화들에 상영방식의 차별을 가해 영화시장의 독식을 추구했으며, 그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중소 영화제작사는 영화산업의 호황 속에서도 생존의 기로에 서야 했다. 흥미롭게도 <집행자>는 정부가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계획으로 중소영화제작사에 지원한 투자금을 받은 작품이었다.

    2013년 10월 1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리얼라이즈픽쳐스 등 23개의 투자, 제작사가 대형 멀티플렉스 4개사 CJ CGV, 프리머스시네마,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무료초대권 발권으로 인한 손실금액 약 31억 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대형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지난 10년 가까이 장악한 한국 영화산업 헤게모니의 지각 변동을 알리는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46) 같은 해 10월 21일 대기업에 편중된 국내 영화시장의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필름의 이은 회장,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 그리고 청어람 최용배 대표가 주축이 되어 배급사 리틀빅픽쳐스를 설립했다. 제작사 중심의 ‘소규모’ 배급사의 등장은 한국 영화산업이 “특정 대기업 몇 곳이 배급사와 극장을 모두 소유하면서 영화 시장에 적절한 경쟁이나 긴장 관계가 사라진 상태”에 대한 그리고 “영화 산업 전체가 극장을 소유한 대기업에 종속”됨에 따른 제작의 하청화에 대한 제작사 생존을 위한 대안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47)

    42)<한국영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오마이뉴스≫, 2007년 2월 7일. <1000만⋯꿈의 숫자인가 숫자놀음인가 - 영화인들이 말하는 1000만 관객의 허와 실>, ≪경향신문≫, 2011년 7월 7일 22면.  43)언급한 영화의 스크린 점유와 점유율은 다음 신문자료 참조함. <스크린 독과점 ‘타짜’도 별수 없네>, ≪한국일보≫2006년 10월 12일. <영화배급 독식 논란 재점화>, ≪서울경제≫, 2006년 8월 17일. <영화 스크린 독과점 수직계열화 해법 없나>, ≪한국경제≫, 2014년 3월 25일.  44)<2년 연속 1억 관객 돌파⋯그러나 쓴웃음 짓는 충무로>, ≪한국일보≫, 2013년 12월 10일.  45)<집행자 제작사 조선묵 대표 교차상영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들었다>, ≪투데이코리아≫, 2009년 11월 12일. <중소영화들 돈줄 끊겨 아우성>, ≪서울경제≫, 2009년 11월 20일.  46)<23개 영화제작사 멀티플렉스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승소>, ≪매일경제>, 2013년 10월 11일.  47)<대기업 위주의 영화 환경 바로잡겠다>, ≪서울신문≫, 2013년 10월 25일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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