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전쟁미망인 표상 연구

A Study on the Representation of Korean War Widows in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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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study is on the representation of Korean war widows in three films of 1950s and 60s : <The Widow>, <Dongsimcho>, <Hun’s Mother>. Three years of the Korean war experience brought a huge change in the South Korean society. The biggest change was the collapsing of existing class structure, which meant every member of the society needed to start over from nothing. Especially, women who had stayed at home before were forced to labor for survival and it caused the unexpected discourse on these women. Even though the diffusion of liberty and self-indulgence which had been accelerated by the influx of American culture was a society-wide phenomenon, particularly the war widows engaged in prostitution were blamed as a cause of the chaos.

    Actually, the Korean War was a struggle between all conflicting values in the homogeneous nation rather than a struggle of classes and ideologies. Because the conflict was not completely resolved due to the ceasefir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ried to resolve the confusion by making people to think the nation as one big family. In order to subjugate the individuals to the big family, it was required to suppress the prevalent licence in the society.

    For this situation is well reflected in the films, looking to the representations of widows is quite interesting. Produced in 1954, the film <Widow> covers the reality of widows who were faithful to their individual desire under the crisis of patriarchy and shows related post war questions of 1950s. In the film <Dongsimcho>, the social discourse on dissolute women of the day are projected and shows the reality of repressed life of a widow due to the discourse.

    On the other hand, the war widow in <Hun’s mother> is portrayed as a extremely passive being who does not speak out for herself at all. According to the ending of the film, her happiness was reached by being completely incorporated into the new patriarchal system. It is the result of reflecting the then ruling ideology.

    While each representation of war widows is consistent with the real life, there also are differences according to how they were defined in the eyes of society. And those differences tells us that the post war Korean society of the day underwent certain changes. However, these changes brought further attention to the negative images of the widows and they were still described as a wounded being who needed to be protected by males eventually.

  • KEYWORD

    전쟁미망인 , 미망인 , 동심초 , 동대문시장훈이엄마 , 가부장제 , 여성가장 , 젠더 , 50년대 한국영화

  • 1. 서론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동족상잔의 커다란 상처와 상실만을 남긴채 1953년 휴전이라는 미완의 상태로 마무리 된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이 파괴되고, 전후 세계는 파괴・상실된 것을 복구하고 흐트러진 가치관을 재구성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승리도 패배도 아니며 철조망 사이로 적과 여전히 대치해야하는 휴전이라는 미봉책 아래의 재건설은 결코 전쟁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1950년대 전후 한국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외적으로는 냉전체제의 한 축으로 자유진영에 편입되었고, 미국이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 걸친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내적으로는 전쟁의 결과로 계층의 변동, 개인주의적 경향, 약화된 공동체 의식, 국가에 대한 불신, 인구 변동과 인구이동에 따른 가족의 변화, 전통윤리의 해체 등 사회구조와 의식의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1) 특히 미국 문화의 유입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체제의 정착 과정 아래 ‘자유’ 개념의 확산, 대중의 근대적 욕망의 분출, 물질만능주의의 팽배 등을 원인으로 한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척하게 된 남한 사회는 혼란을 종식시키고 경제발전과 체제안정, 국가와 민족의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그 방법론으로 국가권력 중심의 전통적인 가부장제로의 회귀를 내세웠다.2) 여기서의 자유민주주의란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소극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국가권력은 반공주의의 기치아래 당시 사회담론을 주도하였던 언론계, 학계 등의 지식권력과 결탁하여 가부장적“지배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도모”하였다.3) 그 과정에서 남성 지식인 위주의 담론 주체들4)이 가부장 질서로 부터의 이탈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논하였던 것이 바로 여성의 윤리적 타락이었다. 이들의 발언은 “남성이라는 특권적 위치와 결합해 일상 속에서 가부장적 규범들을 자동적으로 형성”하였으며 “여성을 교화하고 인종의 미를 설파”했다.5)

    당시 이러한 비판적 담론의 중심에는 전쟁미망인이 있었고, 그들은 성적・도덕적 규제와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미망인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을 계기로 가정 안에서의 경제권을 장악한데다 그들을 규제할 수 있는 권력, 즉 남편의 부재라는 조건이 정절과 부덕이라는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둘째, 미망인들이 어린 자녀들의 생계와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6) 이에 따라 여성이 가장의 위치에 자리한 사실 자체와 부도덕에 빠져 바람직한 가장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지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으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전쟁미망인의 소위 ‘타락’에 대한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이들 타락의 근원인 남성 가부장의 부재는 전쟁이라는 불가항의 폭력에 의해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타자화 된 전쟁미망인은 위험한 여성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이기도 하다.7) 1950년대 여성담론의 또 다른 대상인 ‘아프레걸(aprè girl)’과 ‘자유부인’에 대한 시선이 전쟁 경험과는 분리되었던 것과 차이를 보인다.8)

    이러한 사회적 담론화와 동시에 전쟁미망인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미망인>(1955), <청실홍실>(1957), <유혹의 강>(1958), <동심초>(1959) 등의 영화를 통해 재현되었다. 영화에 재현된 미망인이 실제 미망인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영화를 제작하는 주체가 주로 남성이며, 통용되는 고전적 서사구조 역시 가부장적 시선 아래 전개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회담론이 말하고 있는 미망인상을 영화가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앞서 말한 담론의 이중성을 생각할 때 ‘위험하지만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려운 여성’인 미망인의 존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재현되었는가는 흥미로운 문제이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전쟁미망인들에 대한 사회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9) 영화 속 재현과 실재의 비교도 일부나마 가능해졌다.

    여성주의 문화 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전적 서사구조는 통일- 위기-해결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 함께 남성 응시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즉, 행위는 남성의 시점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여성”10)이며, 결말의 재현은 “여성을 처벌(죽음, 창피)하거나 결혼과 핵가족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여성의 위치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파괴된 세계를 해결하려 한다.”11) 이는 한국 전후사회의 담론이 전쟁미망인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질서가 회복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본고에서는 먼저 전후 50년대에 만들어진 전쟁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2편 <미망인>(1955)과 <동심초>(1959)에서 미망인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고전적 서사구조와 비교 분석해보고, 그 안에서 미망인의 여성성, 모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혹은 가부장적 특징들을 찾아 보려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의 두 영화와 시차를 두고 정권교체로 인한 사회전환기에 만들어진 영화 <동대문 시장 훈이 엄마>(1966)를 분석함으로써 전쟁미망인의 표상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였는지 살펴볼 것이다.

    1)정성호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참고  2)신문기사 등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믿고 의지할 인자한‘아버지’라고 자연스럽게 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전략)⋯이러한 면과 반공포로석방과 같은 과감한 처사를 보면 집안에서와는 달리 밖에서는 매우 강한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든다.”(「해방 십년의 인물들(1) 이승만 박사」경향신문, 1955.8.7. 1면) “우리 나라 대통령 이승만 박사/ 우리 나라 아버지 이승만 박사/ 젊었을 때부터서 여든살까지/ 우리 겨례 위해서 싸우셨다오 // 우리나라 독립시킨 우리 대통령/ 왜놈들이 무서하는 우리 대통령/ 공산당이 무서하는 우리 대통령/ 세계에서 제일가는 우리 대통령// 머리털 하야신 우리 대통령/ 교실에만 가며는 매일 뵙지요/ 걱정하고 계시는 우리 대통령/ 남북통일 되며는 웃으시겠지” (「이대통령 제80 탄신경축 학생작◯ 당선작-우리 대통령. 전남 광주 계림 초등학교 제2학년 김영걸」경향신문, 1955.3.25.4면)  3)이봉범, 「폐쇄된 개방, 허용된 일탈 : 1950년대 검열과 문화 지형」, 권보드래 외 지음,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1950년대 문화의 자유와 통제』, 동국대학교출판부, 2009, 18쪽  4)심지어 발간의 주체가 여성인 『여성계』와 같은 잡지에서도 특집⋅논단 등의 권위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란의 필자들은 대체로 교수, 문인, 공무원, 기업인, 정치인 등 그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성공한 남자들로, 누구나가 필자가 되어 여성에 대한 칭찬과 비난의 권한을 부여 받았다. (김은하, 「전후 국가 근대화와 ‘아프레걸’(전후여성) 표상의 의미」,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원> 연구모임, 『<여원>연구-여성,교양,매체-』,국학자료원,2008, 255쪽)  5)김은하, 위의 책, 255-256쪽  6)이임하, 『1950년대 여성의 삶과 사회적 담론』,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 대학원, 2003,149-151쪽  7)당시의 신문 혹은 잡지에서 ‘전쟁미망인의 보호’를 주제로 하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생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양재기술 등 직업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8)‘아프레걸’은 전후의 패륜에 가까운 타락과 반항, 방종 및 각종 범죄사건을 지칭하는 ‘아프레 겔(aprè guerre)’이라는 용어에서 비롯한 조어이지만, 서구적 향락을 추구하면서 권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동과 경박한 성윤리를 지닌 여성(특히 미혼 여성)을 뜻하며, 특히 “성적 방종이라는 의미로 편향된”(권보드래, 「실존, 자유주인, 프래그머티즘 : 1950년대의 두 가지 ‘자유’개념과 문화」, 권보드래 외 지음,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1950년대 문화의 자유와 통제』, 동국대학교출판부, 2009, 79쪽) 단어로 변용되었다. 한편, ‘자유부인’의 경우 가정에 속해있으면서 금전적 여유가 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발로로 인해 탈선을 일삼는 여성들을 가리킨다.  9)대표적으로 이임하의 박사학위 논문 『1950년대 여성의 삶과 사회적 담론』(2003)을 시작으로 구술사 작업 등 전쟁미망인의 삶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10)월터스, 수잔나 D.,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여성들: 여성주의 문화 이론을 향해』,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1999,96쪽  11)위의 책, 97쪽

    2. 여성이 응시하는 전쟁미망인-<미망인>

       1) 욕구에 충실한 여성가장

    참혹한 한국전쟁의 결과로 여성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1950년대 남한사회에는 전쟁미망인을 포함하여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미망인들과 미망인이 부양해야할 100여만 명의 가족이 남게 되었다.12) 집안의 노동력을 담당했던 가장 및 남성의 부재로 인해 생활고로 인한 가정의 해체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문제13)가 속출했다.

    1955년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이 연출한 영화 <미망인>14)의 묘사는 전쟁미망인의 가장으로서의 현실을 비교적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15)16) 영화는 서울의 풍경을 다큐멘터리적 영상으로 비추고 있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이어 주인공 딸 주가 학교공과금이 필요하다며 눈물짖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망인 신은 모자 가정의 가장으로 아이의 학교공과금을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 실제 미망인들 대부분이 극빈상태였고 그 상태를 벗어날 만한 기술이나 지식, 사회경험이 없었지만,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게 되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하였다. 본인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매춘도 불사했으며 어떤 일이라도 해내야했다. 여성노동의 범주는 행상이나 좌판등의 영세 상업이나 도시에서의 서비스업, 가사노동의 연장인 삯바느질과 식모살이, 방직공장 여공 등으로 확대되었다.17)

    생존이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고난과 역경을 뜻했다. 그러나 동시에 일종의 자유가 동반되었다. <미망인>의 주인공 역시 빈곤을 겪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녀의 행동을 구속하는 것은 거의 없다. 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하여 처음부터 적극적 성격을 명시하고 있다. 카메라는 전쟁미망인을 연민, 동정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응시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의 입장에 선다. 신은 자신의 미모와 능력을 내세운 작은 행동들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뤄나간다. 이사장과의 적정한 선을 지키면서 그에게 환심과 돈을 얻어내며, 다른 남성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랑을 한다. 이사장의 후원으로 열게 된 양장점 사업도 순탄해서 경제적 자립까지 가능하게 된다. 언제나 한복차림이던 그녀가 이사장 부부와 양장점 앞에서 만나는 씬에서 보이는 화려한 양장 차림에서도 사랑 이외에는 어떠한 권위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어긋난 사랑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에서도 그녀는 순종적으로 참는 대신 칼을 들고 본인의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가부장적인 서사 결말에 의하면 그녀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거나 안정된 가족 구성원으로 돌아가야 마땅하지만, <미망인>에서는 다시 불안한 모자 가정을 되돌아간다.

    어머니로서의 미망인의 모성과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성, 이 둘의 관계 또한 영화 속 미망인의 묘사에 있어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요소이다. <미망인>의 첫 장면에서 울먹이는 딸에게 주말에 뚝섬에 놀러가자며 달래고 돌아서서는 눈물을 훔치는 신의 모습에서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의 신의 어려움과 아이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초반 부 따뜻한 모성의 소유자 신은 극이 전개되면서 반전처럼 신의 여성성18)에 우위를 빼앗긴다. 딸 주는 초반부에 사건의 계기를 제공하거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장면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초반의 상황설명적인 장면, 택이 물에 빠진 주를 구해주는 바람에 연인이 되는 계기가 되는 뚝섬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다가 신과 택의 관계가 깊어지고 동거를 시작하면서 주는 택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신은 택을‘아빠’라고 지칭하지만 주는 받아들이지 않고 투정을 부린다. 이 투정은 미망인에게 있어 아이는 떨치기 어려운 죽은 남편의 유산이자 흔적이다.

    그런데 신은 남자와의 사랑을 택하고 주를 다른 집에 맡겨버림으로써 과거와의 결별을 고한다. 신은 자신의 욕망을 취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모성보다 우위에 놓지만 그녀는 자식을 버린 것에 대해 처벌 받지 않으며, 비난의 시선 역시 받지 않는다. 남자를 잡아 쉽게 돈을 벌라거나 술장사인 다방 운영을 해보라는 같은 집에 사는 양공주의 권유도 마다한 채, 당당한 사업인 양장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번 돈으로 주에게 새 옷을 보내고 아이를 돌보는 송서방에게 사례도 한다.

       2) 무력한 남성 앞에 당당한 여성

    반면 신의 주변 인물들, 특히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미망인의 위험한 성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19) 그러나 영화가 전쟁미망인의 삶의 현실을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빌어 사뭇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개인적 욕망에 대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묘사가 적다는 것에도 주목해 볼만 하다. 이 개인의 욕망은 주로 남성들과의 관계와 사건에 의해서 설명된다.20)

    <미망인>에 등장하는 남성캐릭터는 이사장, 청년 택, 송서방 3인이다. 이 남성인물들과 미망인 사이의 관계는 당시 사회의 불안한 현실의 투영이기도 하다.21) 이들은 모두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들이다. 일단 신의 죽은 남편의 친우로서 신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는 이사장은 성공한 사업가이다. 이 인물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이를 핑계로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미망인의 성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사장부인의 불안을 조성하고 그녀의 외도라는 탈선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미망인의 애인인 청년 택은 그림을 그리지만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인들 사이를 부유하는 인물이다. 영화 후반부에 나타난 옛 약혼자의 존재로 인해 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상실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사장부인이나 신을 보호하거나 보살펴주려는 의지나 능력이 전무하다. 신과의 관계를 갖고 애인의 역할을 하면서도 아이의 아버지로서 위치하고자 하지는 않으며 종국에는 신을 배신하게 된다. 또한 신의 가족과 같은 집에서 쪽방 생활을 하는 송서방은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주를 보살필 정도의 연민과 정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주를 맡아주는 대가로 미망인에게서 돈을 받아 챙긴다. 결국 사회적,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택과 송서방은 미망인 신의 능력에 기대고 있다.

    이들 남성 캐릭터는 전쟁의 직접적인 상처와 상실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미망인들에게 사회가 더 이상 전과 같은 남성성과 가부장의 권위 아래 그들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남성들이 누구도 미망인을 비난하지 않는 것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전쟁미망인의 고난과 타락이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하는 불가피한 외적 상황”22)의 폭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있기에 그를 보호해 줄 수 없는 사회는 비난의 자격 역시 없다. 단지 신의 행동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겪은 여성 캐릭터와 아이가 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주는 어머니의 새로운 사랑을 불만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반항하는데 이 시선이 주인공을 ‘더러운년’이라고 비난하는 사장 부인의 시선과 사뭇 비슷하다.

    12)“1957년 보건사회부에서 조사한 전쟁미망인의 수는 505,845명으로 당시 20세 이상 여성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였다. 그들이 부양해야할 노인과 아이들의 수는 916,273명에 달했다.”(윤해동 외 저, 『근대를 다시 읽는다 1』,역사비평사, 2006, 442쪽)  13)빈곤으로 인한 기아와 성폭력의 문제 등이 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여성들의 매춘업 종사나, 자녀들과 함께 동반자살 혹은 자녀를 살해하는 등의 ‘악독한 어머니’ 등이 1950년대 소위 문제 여성의 전형이었다. (이임하, 앞의 책, 52 쪽)  14)영화 <미망인>이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경우가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감독 박남옥은 1945년 영화계에 입문하여 편집기사, 스크립터로 일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국방부 촬영대로 입대하여 종군영화를 만들었다. 1953년 극작가인 남편 이보라를 만나 결혼하고 출산 직후인 1954년 7월 남편이 써준 시나리오로 이민자・유계선・이택균・최남현 등이 출연한 16mm영화 <미망인>을 찍었다. 1955년 4월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하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박남옥”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8b3453n9 (2013. 4. 7자 기사) 참고]  15)휴전 직후 1년 만에 제작에 들어갔다는 시기적인 이유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딸 주(이성주 분)를 키우며 살고 있는 신(이민자 분)은 남편 친구인 이사장(신동훈 분)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친구의 아내에 대한 이사장의 도의는 차츰 신에 대한 애정으로 변한다. 이를 눈치 챈 이사장의 부인(박영숙 분)은 질투와 히스테리로 남편을 추궁하고 신에게도 찾아와 경고를 한다. 한편 신은 딸을 데리고 뚝섬에 갔다가 익사할 뻔한 딸의 목숨을 구해준 청년 택(이택균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택과 신은 동거생활에 들어가고 신은 어린 딸 주도 다른 집에 맡긴 채 사랑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젊은 택의 가슴에는 옛 애인 진(나애심 분)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 그는 떠난 줄 알았던 진이 나타나자 신에게 이별을 고한다. 택과의 애정 생활에서 삶의 진실과 보람을 찾으려던 신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택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영화의 결말 부분은 소실되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관계로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www.kmdb.or.kr)의 줄거리를 참고함.  16)1955.2.27자 동아일보 영화소개란의 기사에 의하면 결말 부분은 “信이 평생 처음으로 술을 입이 댄 날 澤 이 信에게 謝過하고 門간을 나설 때였다. 信은 모든 鬱憤을 果刀에 맡기고 澤에게 앙가품을 하였다. 이틑날 信은 珠를 데리고 낡은 둥지를 떠나 새로운 希望과 抱負를 안고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었다.”라고 소개되어있다.  17)이임하, 「한국전쟁과 여성노동의 확대」, 『한국사학보』, 제 14호,고려사학회, 2003.3, 258-274쪽  18)여기서 여성성은 남성과의 육체적 혹은 심리적 관계에 있어서의 여성을 지칭하려고 한다.  19)1955년 2월 27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조남사는 영화의 주제를 “미망인의 생리적 욕구, 사회에서 돌보아 주는 이 없는 미망인의 육욕”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심리적 묘사는 미진하지만 사실성을 예리하게 포착한데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오영숙, 『1950년대, 한국영화와 문화담론』, 소명출판, 2007, 172쪽, 재인용)  20)당시의 관객들에게 미망인의 육욕 자체는 문제될 것은 없으며 오히려 관능적인 묘사의 성공여부가 중요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오영숙, 위의 책, 172쪽) 실제 <미망인>의 신문광고(경향신문 1955.3.29. 3면)를 보면 주인공이 아닌 이사장 부인과 택의 수영복 차림의 선정적인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21)<미망인>의 개봉 당시 영화를 소개하는 한 신문 기사(동아일보 1955.2.27. 4면)는“우리들은 오늘 퍽으나,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다.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가, 어떻게 살아 나아가야 하는가 등”이라는 문구로 시작되고 있다. 당시의 영화소개나 평에 의하면 <미망인>의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22)이영미, 「신파성, 반복과 차이 : 1950년대 악극・영화・방송극」, 권보드래 외 지음,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1950년대 문화의 자유와 통제』, 동국대학교출판부, 2009, 316쪽

    3. 감시 아래 갈등하는 전쟁미망인-<동심초>

       1) 죄책감 아래 욕망을 숨기는 여성

    <미망인>이 전쟁과 휴전의 피해자인 미망인이 가장으로서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회현실을 묘사하면서, 전후의 상흔으로 인해 보호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기존 가부장 사회에서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면, 영화 <동심초>(1959, 신상옥)23)에는 혼돈을 종식시키고자 노력했던 사회 담론이 투영되어 있다.

    전쟁은 여성의 경제적 활동을 촉진 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미망인들이 일선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살아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적극적인 활동으로 남성의 보조자의 위치를 벗어나 상업 등의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미망인들의 타락을 사회혼란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가부장의 권위 아래 놓이지 않아 온갖 문제에 빠지는 예로써 담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망인을 힘없고 연약한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남편의 부재는 즉 경제적 무력함과 직결되며 그들의 노동활동과 능력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이미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죽은 자의 아내로 불렸으며 여전히 죽은 남편의 권위 아래서 행동하도록 강요당했다.24) 그리고 심지어 남편을 대체할만한 가부장적 권력, 즉 국가와 사회의 보호 아래 종속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정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동심초>는 8년간 죽은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며 딸이 장성할 때까지 훌륭하게 키워낸 미망인 이여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 영화는 딸만 바라보고 살아온 미망인이 젊은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발생한 내외적인 갈등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것은 여성으로서의 미망인의 개인적 자아와 미망인을 전통적 가치관 아래 가두어두려는 사회담론의 충돌에 의해 생긴 갈등으로도 볼 수 있다.

    <동심초>의 여주인공 이여사(최은희 분)은 딸 경희(엄앵란 분)를 8년간 혼자 키웠지만 양장점 실패로 인해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위기에서 그녀를 구해주는 것은 출판사 전무인 김상규이고, 구원자로서의 가능성을 가진 그에게 이여사는 사랑을 느낀다. 여기에서 바로 전통적,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의 정조 관념과 이여사의 내면의 갈등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총각 김상규에게는 약혼자가 있기 때문에 이여사의 사랑은 다른 이들의 직접적인 반대에 부딪힌다. 앞서 살펴본 <미망인>에서 여주인공에게 죽은 남편에 대한 정조라는 개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사랑 앞에 일말의 죄책감도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이여사는 ‘유교적으로 정숙한’ 여인으로써 정조를 잃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자아의 내적인 갈등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담론이 말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는 타락에 대한 비난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여사는 재혼을 권하는 딸과의 대화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오면서 받았던 미망인에 대한 사회의 숨 막히는 감시의 시선에 대해 직접 언급하면서 그 괴로움을 토로한다. <동심초>에서는 관객이 여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미망인에 대한 감시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이여사가 윤리적 결정에 따라 사랑을 포기하게 되고 지난 8년간 본인을 괴롭혀오던 감시와 규제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결말을 맞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인들이 이와 비슷하게 본인의 문제를 가부장적 질서에 합류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여사가 죽은 남편에 대한 정조와 사회적 관습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도, 김상규의 약혼자 옥주의 경우 부유한 사장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상규의 그늘로 옮겨가는 것이 목표이다. 이여사의 딸 경희는 감당하기 힘든 집안의 빚을 해결해볼 방안으로 부자 남자와의 결혼을 고려한다. 상규와 이여사의 사이를 극구 반대하는 상규의 누이 역시 혼자 살고있지만 그는 또 다른 가부장적 체계인 종교에 완전히 의지하고 있다.

       2) 욕망의 대상으로 감시 받는 미망인

    <동심초>의 이여사의 내적 갈등을 초래하는 감시의 시선은 바로 이여사가 성적주체로 활동하는 것이 사회의 위험요소라는 전제로부터 비롯한다. 생존을 위한 미망인들의 경제활동이 그들에게 경제력과 자유를 가져다주었고, 사회는 기존의 지배논리의 통제에서 벗어난 존재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은 비약적 단정으로 이어져서 그들을 잠재적 가정파괴자로, 문란한 성행위자로 낙인찍었으며 2세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래사회의 파괴자로 취급하였다. 그래서 전쟁미망인들은 죽은 자에게 정조를 지키기를 강요당하고 끊임없는 감시와 규제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꾸어 말하면 전쟁미망인은 가부장의 통제에 벗어난 성적인 대상으로 여차하면 모든 남성들에게 열릴 가능성이 있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심초>에서는 이여사와 딸 경희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사회상을 좀 더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미망인>과 <동심초> 두 영화 모두 한 명의 자녀와 사는 모자가족을 그리고 있는데, <미망인>에서 아이는 모성의 문제를 다룬다면, 이여사와 딸 경희의 관계는 마치 분리된 자아와도 같아 보인다. 신의 딸 주가 어머니를 모성의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했다면 경희는 이미 장성하여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기서의 이해는 어머니의 새로운 사랑을 ‘허락 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미망인의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인정하고 있다. 경희는 대학을 나오고 화려한 양장 차림이며, 댄스홀에도 드나드는 신세대이다. 항상 단정한 한복차림을 하고 있으며 처해진 상황에 인내하고 순응하려는 이여사와는 달리 딸은 어머니가 처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미망인>의 신처럼 적극적으로 남성을 이용해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에게서 돈을 구하는 여성은 육욕의 대상으로 취급되며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욕망을 숨기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면서 성숙의 과정을 거친다.25) 이 경희의 에피소드는 어머니 이여사가 가장으로서 살아오면서 겪어야했던 어려움과 남성들에게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 타자화 되는 것에서 오는 곤란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홀아비가 이여사가 과부라는 것을 알고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이에 이여사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쉽게 보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다.

    <동심초>는 미망인의 사랑과 개인적 욕망에 대해 다루면서도 정숙하고 순종적인 여성상,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적인 결말을 보여주지만, 미망인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태도 아래 살아가는 미망인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23)영화 <동심초>는 작가 조남사의 동명의 인기 방송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서울 개봉관 기준으로 21일간 상영에 관객 수 11만 8448명(동아일보 1959. 12. 23), 1959년 제작된 국산영화 110편 중 한국영화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했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25때 남편을 여읜지 8년. 이숙희(최은희 분)는 양장점을 하다가 빚을 지고, 출판사 전무 김상규(김진규 분)가 빚청산을 도와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상규는 사장딸 옥주(도금봉 분)과 약혼한 사이고 누이(주증녀 분)는 그의 출세를 위해 이 결혼을 서두른다. 숙희의 장성한 딸 경희(엄앵란 분)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상규와의 재가를 권유하지만, 숙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도덕관 때문에 갈등한다. 숙희와 상규는 진실로 사랑하지만, 숙희는 헤어지는 길을 택하고 서울 집을 팔아 고향으로 떠난다. 몸져 누워있던 상규는 이 소식을 듣고 고향까지 직접 찾아가 숙희를 설득하려하지만 숙희는 상규와의 사랑을 포기하기로 하고 상규는 슬퍼하며 서울로 돌아간다.”  24)이임하, 앞의 책, 146쪽  25)이러한 점은 원작인 라디오 드라마에서 더욱 극명하게 잘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진,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2000, 57-58쪽

    4. 가부장제에 복속한 전쟁미망인-<동대문 시장 훈이 엄마>

       1) 욕구가 제거된 무력한 여성가장

    영화 <동대문시장 훈이 엄마>(1966, 서정민)26)는 전쟁미망인 훈이 엄마(김지미 분)가 동대문 시장에서 작은 자리를 잡고 저고리 행상을 하면서 홀로 아들을 키우고, 주변 남자들의 무수한 유혹과 그로 인한 역경을 견뎌내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앞서 살펴본 <미망인>, <동심초>와 다른 점은 전쟁미망인을 서술하는 주체가 아들인 훈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주인공은 이름이 아닌 ‘훈이 엄마’라고 불리면서 여성보다는 어머니로서의 존재감이 더욱 강하다. 그리고 남편의 부재에 대해 앞선 영화들의 두 주인공보다 훨씬 힘들어하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훈이 엄마는 아들 혹은 주변의 남자들에게 보호받아야하는 연약한 존재이고 동정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영화는 훈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시작되고 시종일관 어머니로서의 훈이 엄마가 정조를 지켜내는지 아닌지의 문제를 다룬다. 동대문 시장에서 작은 자리를 잡고 한복 장사를 하는 훈이 엄마는 아들 훈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한다. 그러나 이런 고생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고난만 겪게 된다. 그녀의 고난의 이유는 보호의 부재이다. 아들 훈이는 너무 어려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그녀가 ‘정조’를 지키고 어머니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어머니로서만 존재해야하는 훈이 엄마의 의무와 의지가 여성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성적 욕망과 충돌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망인의 어려움은 모두 그녀의 ‘여성성’ 때문에 발생한다. 생계를 위해 노력하는 미망인의 모습은 ‘억척 어머니’라고 하는 당시의 미망인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지만, 훈이 엄마는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미망인 이미지의 판타지27)가 결합된 인물이다. 같은 시장에 점포를 가진 홀아비 상인들은 모두 그녀를 흠모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장사 자리를 관리하는 경비과장(허장강 분)은 그녀를 강제로 취하려다 실패하고 보복으로 훈이 엄마를 시장에서 쫓아내고 화냥년이라고 모함을 한다.

    세 영화 모두 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주체성의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각각 다른 묘사를 하고 있다. <미망인>의 주인공은 자신의 성에 대해 사뭇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선택하는 반면, <동심초>의 이여사는 사랑과 성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는 있으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에 조심스럽다. 이 점에 있어서 <동대문시장 훈이 엄마>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훈이 엄마는 대단히 수동적인 성적욕구의 대상일 뿐 모성을 제거하면 그 어떤 능동성도 갖지 못한 인물이다. 모성의 의무를 잘 수행할만한 경제적인 능력도 부족하며 여성으로서의 욕구가 부재하다. 가부장의 질서에서 벗어난 여성은 고난과 역경만을 겪을 뿐이며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전제이다. 훈이 엄마는 영화 속 거의 모든 사건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된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강한 어머니가 되어야하지만, 가난을 버텨내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매우 연약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2) 새로운 가족으로의 편입

    이 영화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다른 방식을 취한다. 영화는 여자로서의 훈이 엄마의 고난과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훈이의 이야기가 동시에 병치로 진행된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게 된 훈이는 엉겁결에 아버지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임기응변으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가짜 아버지 행세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흔쾌히 이 부탁을 들어준 가짜 아버지는 실은 동대문시장의 상점연합회 회장으로 훈이 엄마의 생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로, 후에 훈이 아버지의 전우로 밝혀지면서 훈이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새로운 가장이 된다. 훈이가 남자아이, 즉 아들이라는 것도 앞의 두 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미망인>의 주와 <동심초>의 경희 역시 미망인들의 자유를 감시하는 시선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결국 다른 집에 보내지거나 결혼을 통해 다른 가정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들인 훈이의 경우에는 어머니를 연약한 여성으로 여기며 ‘정숙함’에 대한 감시와 동시에 어머니를 보호할 의무를 갖고 있다. 바로 가부장 남성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를 보여주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훈이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훈이 역시 기댈 성인 남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앞의 영화들이 미망인과 미혼의 총각들과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결국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결말을 맺는 것과는 달리, 훈이 엄마와 회장과의 관계는 남녀의 사랑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다는 점이 특이하다. 회장은 부인과 사별한 홀아비로 딸 한 명이 있고, 전쟁 중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저는 인물이다. 훈이 엄마와 같이 전쟁으로 인해 무언가를 상실했지만 그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다. 전우에 대한 의리라는 의무감을 갖고 훈이네를 도와준 회장은 유사 가장으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데, 이로써 서로 결여되어있는 부분을 채우면서 이상적인 4인 가족의 모습을 완성하게 된다. 영화는 훈이가 명문 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는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동대문시장 훈이 엄마>는 기존의 전쟁미망인에 대한 모든 담론에서 제기되었던 전통적 가치관으로의 회귀라는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경제적 몰락과 성적인 타락의 위험에 내몰린 훈이네의 문제는 의무감을 갖고 있던 죽은 남편의 전우가 가장을 대신함으로써 그 가부장 체계 안에 편입함으로써 해결된다. 훈이 엄마는 타락에의 유혹을 떨치고 보호를 받을 명분이 있는 가장의 품 안으로 돌아감으로써 훈이의 교육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전쟁미망인의 수동적 모습은 50년대를 거쳐 60년대에 이르러 우리사회가 빠른 속도로 이룬 경제발전과 근대화와 연관이 있다. 가부장적 질서로의 회귀를 주장하던 기존의 사회담론들은 근대화된 국가와 경제 발전이라는 하나 된 목표 아래 국민을 통합하려했던 당시 국가권력의 논리와 노선을 같이하며 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공고화되었다. 여성은 “가정에 소속된 피보호자”,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 통제해야할 여성”, “현모양처로서의 자질을 향상시켜 사회에 봉사해야 할 여성”28) 만이 주제가 되어 영화 속에 등장한 것이다. 앞서 살펴 본 영화들이 제한적이나마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선택을 준 것에 비해 지나치게 경직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26)이만희 감독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한 촬영기사 출신 서정민의 연출 입봉작으로 1966년 3월 아세아・파고다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27)시장에서 행상을 하는 젊은 과부의 역할을 당대 최고의 미녀스타 김지미가 연기한다는 자체가 미망인과 아름다운 여성이 일치할 때의 판타지를 잘 충족시켜주고 있다.  28)홍석률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엮음, 『박정희시대 연구』, 백산서당, 2002, 244쪽-245쪽

    5. 결론

    3년간에 걸친 전쟁은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계급, 계층 구조가 붕괴되어 휴전 후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다는 부분이다. 특히 이전에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만 있던 여성들이 생존을 위한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경제인구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하게 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인 담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가속된 자유와 소위 방종의 확산은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매춘, 매음의 직업에 뛰어든 전쟁미망인들이 대표적 타겟이 되어 사회적인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데올로기, 계급투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던 제 갈등들이 폭발하여 분출되는 계기였다. 휴전으로 인해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대치되는 상황이 되자, 남한사회는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새로운 혈연 체계를 만들어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을 꾀하고자 했다. 국민들을 국가라는 커다란 가정 안에 복속시키기 위해 사회에 만연한 자유분방함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앞서 다룬 3편의 영화가 각각 보여주는 전쟁 미망인의 재현은 흥미롭다. 영화 <미망인>은 여성중심의 서사전개와 함께 당시 가부장제의 위기 아래 욕망에 충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인간 군상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휴전 직후 5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과 제 문제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다. 이어 <동심초>는 <미망인>보다는 다소 남성 중심의 서사를 보이며 고전적 이야기 구조가 전개되지만, 그 안에서 미망인에 대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시각을 투영하고 그에 따른 미망인의 감시 받는 삶의 현실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60년대에 제작된 영화 <동대문시장 훈이 엄마>의 전쟁미망인은 더 이상 발화하지 않는 수동적 존재로 그려지며, 새로운 가부장 체제아래 완전하게 편입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결말을 맺으면서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

    이렇듯 각각의 전쟁미망인의 재현은 어떤 현실을 그리고 있는지, 또 시선의 성별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겪는 생존의 위기와, 한 남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이라는 공통된 이야기이지만 가부장제를 벗어난 위험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미망인의 표상은 모성, 여성성, 가장 등 다양한 층위의 정체성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록 본 연구에서는 서사에서 드러나는 재현만을 제한적으로 살펴봤지만, 전쟁미망인 재현의 표상이 좀 더 심도 있게 연구된다면 우리 문화 안에서의 젠더 연구 지평을 좀 더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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