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서 산업으로, IMF 이후 한국영화의 위상 변화와 인식의 전환***

A Change of Status and a Conversion of Recognition on Korean Films after the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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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1997년 IMF 사태로 한국영화산업은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IMF 사태의 혼란과 위기를 거쳐 2000년대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하여 놀랄 만큼 격상되었다. 더불어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문화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속하게 전환되었다. IMF 이후 한국영화의 가능성이 안정적인 자본과 결합하여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졌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으며 이 과정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살펴보면 2000년대 한국영화의 발전과 위상의 변화 그리고 인식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건은 크게 멀티플렉스와 미디어기업의 등장,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영화산업노조 설립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세 사건은 신자유주의 시장 환경과 IMF 이후 혼란스런 국내의 상황과 맞물려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특히 한국영화의 인식 전환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미디어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재편은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를 확대하면서 영화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더불어 영화는 산업의 영역으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멀티플렉스가 대형 쇼핑몰에 입점하는 형태로 발전함으로써 영화관의 개념은 외식과 쇼핑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몰(mall)의 개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영화 역시 상품이라는 인식이 점차 강화되었다. 스크린쿼터제 논란은 영화(목표개념)가 산업으로(근원개념) 전환되는 계기 혹은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영화산업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미투자협정 대상으로서 스크린쿼터 논란이다. 결국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이어진 대응과정을 통해 영화는 산업의 영역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산업으로서 영화라는 인식의 전환의 결과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식의 전환에 방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합리적인 영화제작 환경과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였으며 예술과 상품, 문화와 예술이라는 모호한 영화의 성격을 산업의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결국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신자유주의 시장 환경에서 영화의 인식의 전환을 초래하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종합해보면, IMF 경제위기로 인한 신자유주의 논리의 급속한 전파와 멀티플렉스로 대변되는 미디어기업의 등장과 한국 영화의 빠른 성장이 상호간 맞물리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문화의 영역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속하게 전환된 것이다.


    The IMF led to rapid structural change of Korean film industry. And through the confusion and crisis of the IMF, 2000s Korean films, compared to the previous, was surprisingly improved. And recognizing on Korean film was also rapidly converted an area of culture to an area of industry. After the IMF, Korean films have been developed in conjunction with stable capital of media company. The incidents that affected the changes in the recognition on the Korean film were the advent of multiplex theaters and media company, the screen quota system discussion and film industry union establishment. The three incidents, in neoliberalism environment and confusion after IMF, have affected each other and more particularly played a crucial role in recognition transformation of Korean movies. The role of multiplex theaters made a great contribution in these industrial development. And multiplex theaters in commercial space, as like ‘mall’, started to convert a concept of film as art to a concept of product as industry. The Screen quota system discussion will be understood as a trigger or unavoidable process that concept of film(target concept) is converting to concept of industry (source concept). Korean film industry also entered the neo-liberalism environment, thereby the Screen quarter system had to follow the logic of the economy as the Korea-US investment agreement subject. Establishment of the film industry unions and collective wage consultation could be understood as part of the result of the conversion of the recognition that movie as an industry. The film industry unions and collective wage consultation must be understood in conjunction with the new liberalism abd other elements to bring the conversion of recognition.

  • KEYWORD

    2000년대 한국영화 , 스크린쿼터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산업노조) , 영화인식의 전환 , 멀티플렉스 , 미디어기업

  • 1. 산업과 문화의 경계

    영화는 문화이면서 산업, 예술이면서 상품이라는 다면적 성격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화산업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유한 산업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매년 개최되는 수많은 영화제에서는 예술적 성취와 탁월함으로 영화의 위상을 고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칸,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선전에 환호하면서도 1000만 관객과 한국영화의 해외 수출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한국영화의 전망과 관심을 신문지상에서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산업과 문화의 어느 한 측면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영화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으로 대학의 영화 관련 학과가 인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에 위치한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영화를 바라보는 본질적인 관점이 예술과 문화에 조금 더 치우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학문적 영역의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90년대 초⋅중반까지는 비교적 문화의 영역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 영화산업이라고 부를만한 산업적 기반이 미약하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제도가, 비록 통제와 감시의 목적이긴 했지만 문화의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까닭이다. 관객의 인식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0년대 복합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 체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관은 말 그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었다. 콘서트홀이나 공연장에 가는 것처럼 영화관에 가는 것, 즉 영화 관람이 문화생활의 일환이라는 인식은 영화가 문화의 영역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90년대 초반 대기업이 영화업에 진출했으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쥬라기 공원>과 자동차 산업을 직접 비교하면서 산업으로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국내 재계 순위를 앞다투던 삼성, 대우, 현대 등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은 영화의 산업으로서 가능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으며, 결정적으로 “<쥬라기 공원> 1편이 현대자동차 1백50만대 수출과 맞먹는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1994년 발언은 영화의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일으켰다.1) 이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영상산업국부론’이라는 슬로건이 정치적으로 등장했으며 영화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영상산업’의 한 갈래로 분류되기 시작했다.2) 그리고 IMF 이후 2000년대, 영화는 문화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격하게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IMF 사태로 사회 분위기와 가치관이 급변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멀티플렉스를 앞세운 복합 미디어기업의 진출로 한국영화는 본격적으로 산업으로서 면모를 갖춰나갔으며 1000만 관객 영화가 속속 등장하면서 산업의 영역으로서 한국영화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아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경영⋅경제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심심찮게 영화산업을 다루는 것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만큼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인식이 큰 고민이나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산업의 영역으로 전환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2000년대 한국영화의 급성장으로 영화의 위상은 상승했지만 그와 비례하여 영화를 대하는 인식 역시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소한 문화로서 영화의 위상과 역할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는 영화진흥위원회를 설립하여 산업과 문화의 영역에서 그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IMF 외환위기 이후 영화에 대한 인식이 문화에서 산업의 영역으로의 급격하게 이동하는 것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2000년대 영화에 대한 인식이 문화의 영역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격한 전환을 초래한 사건은 크게 멀티플렉스와 미디어기업의 등장과 98∼99년 그리고 2003∼2006년 두 차례에 걸친 스크린쿼터 논란을 들 수 있다. 그리고 2005에 설립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등장과 2007년 영화산업노조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의 체결은 실질적으로 영화가 산업의 영역으로 안착했음을 알리며 동시에 영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역시 마무리되는 마침표로 이해할 수 있겠다.

    우선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극장의 개념이 외식과 쇼핑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몰(mall)의 개념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관람 환경의 변화가 관람 문화의 변화를 초래했으며,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또한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심에 위치한 미디어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등 영화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전략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멀티플렉스와 미디어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재편은 한국영화산업의 규모 확대와 안정화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인식 또한 문화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속도로 전환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한편 스크린쿼터 논란의 핵심은 영화를 산업과 문화의 영역에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스크린쿼터 논란은 그간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문화주권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며 영화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인식을 문화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미국은 한미투자협정의 선결조건으로, 즉 경제적 관점에서 영화를 교환가치로써 바라보고 협상을 진행했다. 반면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논리는 문화주권과 문화적 예외 인정 즉 문화의 영역으로서 영화에서, 반복되는 스크린쿼터 논란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영화의 산업적 가능성과 스크린쿼터가 축소 혹은 폐지되었을 때 우려되는 산업적 타격을 내세우는 등 산업적 관점으로 이행되었다. 결국 스크린쿼터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투자협상’의 대상으로, 대체불가능한 문화에서 잠재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으로 영화를 바라봄으로써 영화에 대한 인식이 산업의 영역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주목 이 프로그램] 영화 ‘쥬라기 공원’ 外>, ≪경향신문≫, 2005.01.14.  2)<디워-중천-괴물⋯상품과 애국심 사이>, ≪뉴시스≫, 2007.01.14.

    2. 영화, 문화에서 상품으로

       1)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영화관의 개념 전환

    영화가 문화이면서 동시에 상품으로 인식된 가장 큰 이유는 창작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인 영화(상품)가 극장이란 플랫폼(시장)을 통해 금전적 교환의 대상으로 관객(소비자)에게 상영(소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의 변화가 영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IMF 이후 한국영화의 성장에는 멀티플렉스가 존재했으며 ‘산업으로서 영화’라는 인식 또한 공교롭게도 이 시기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멀티플렉스는 영화 상영이 목적이었던 과거의 영화관과 달리 대형 쇼핑몰 내에 위치한다.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영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목적은 같지만 ‘영화관’에 가는 것과 ‘쇼핑몰’에 가는 것은 인지하는 과정에서 개념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과거에는 “영화 보러 간다.”는 것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 보편적인 영화 관람은 주로 쇼핑몰 내에 위치한 멀티플렉스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영화 보러 간다.”는 것은 멀티플렉스가 있는 쇼핑몰에 간다는 경험이 추가되면서 영화 관람이 쇼핑의 개념으로 확장 된다.3) 즉, 영화를 위한 전용 공간인 과거의 영화관과 달리 쇼핑을 위한 공간 내에 위치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결국 쇼핑의 연장선상 혹은 일부로 여겨지는 것이다. 쇼핑몰 내에 위치한 영화 관람의 장소의 변화가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는 행위와 결합되면서 영화를 문화에서 상품으로 인식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초래하는 것이다.

    한 극장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통해 다수의 영화를 상영하던 방식이 강변 CGV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87년 소극장 3개로 이뤄진 강남의 다모아극장을 시작으로 89년 5개관을 갖춘 씨네하우스와 3개관을 갖춘 서울시네마타운이 개관하였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강남의 힐탑과 다모아극장에서 이름을 바꾼 뤼미에르 극장, 7개관으로 확장한 종로의 서울시네마타운, 충무로의 명보극장, 신촌의 녹색극장 등 복수의 스크린을 갖춘 복합상영관이 생겨났다. 그러나 강변 CGV가 이들 극장과 다른 점은 상영방식뿐만 아니라 관람 환경과 문화마저 바꿨다는 데 있다. 강변 CGV의 성공으로 대한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등 기존의 단관극장들이 멀티플렉스로 빠르게 재편되었으나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았다는 점은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가 상영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관람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단성사이다. 최초의 영화관이라는 상징성을 띠는 단성사 역시 멀티플렉스의 확대로 현대식 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전환하였으나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와 경쟁에 밀려 2008년 부도를 냈으며 결국 2014년 6월 경매로 나왔다.4) 순수 멀티플렉스가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와 비교하여 시설 면에서 떨어지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00년대 중반 이후 변경된 대한극장 등의 멀티플렉스는 고급화되고 안락한 환경, 3D나 최신식 사운드와 영사장비 등 시설의 우위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영화관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CGV와 롯데시네마 등의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는 전통적인 개념의 극장이 아닌 대형 쇼핑몰과 연계한 체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1996년 1월 유통시장이 개방함에 따라 국내 유통환경은 몰(mall) 중심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97년 IMF를 거치면서 합리적 소비문화가 정착함으로써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는 소비행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행태의 변화에는 쇼핑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편의시설과 오락 시설을 갖춘 대형 상업시설의 복합화가 트렌드로 정착하였다.5) CGV 극장체인, 프리머스와 합병한 극장 외 순수 CGV 극장을 살펴보면 주로 대형 할인점이나 신세계 등 계열사 백화점과 같은 건물에 입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시네마 역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아울렛 입점하고 있으며 메가박스는 삼성동 대형 지하 쇼핑몰에 입점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의 특징은 수평형 멀티플렉스 구조라는 점이다. 삼성동 코엑스 몰, 용산 아이파크 몰, 전국의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상암경기장 등 복합매장에 입점한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들이 대표적인 수평형 멀티플렉스이다. 수평형 멀티플렉스는 인위적으로 고객의 진출입 동선을 유도 가능하기에 자연스럽게 영화 관람과 쇼핑이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수평형 멀티플렉스인 미디어기업의 멀티플렉스는 공간의 효율적인 연출과 다양한 공간의 변경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용도의 전환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극장 대신 다른 시설로 전화되어도 대형 쇼핑몰이나 할인점의 기능에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 반면 대한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등 기존 단관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변경한 영화관은 수직형 멀티플렉스 구조로 영화관 전용건물의 기본적인 구조 형태로 단일구조의 수직이동 동선체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미디어 기업의 멀티플렉스는 처음부터 쇼핑의 연장선상으로 영화관의 배치를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쇼핑몰 내의 멀티플렉스의 핵심은 영화 관람이 쇼핑의 과정과 경험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쇼핑몰 ‘내’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마치 물건 고르듯 영화를 선택하는 행위는 결합된다. 또한 미디어기업이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쇼핑몰 등 유통업을 겸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전략적으로 쇼핑몰과 영화관의 융합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미디어기업의 체인 멀티플렉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멤버쉽 제도는 영화 관람에 대한 혜택은 물론 미디어기업 내 계열사 상품 또는 서비스까지 활용이 가능하다.7) 영화 관람을 통해 쌓은 포인트를 편의점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사용하거나 반대의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처럼 영화 관람과 상품구매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경험에서 영화는 문화에서 상품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 즉,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과거처럼 영화를 보러 가는 행위가 아니라 소비의 영역 일부가 된다. 경험이 확장되면서 사고의 틀이 전환되고 그것을 이해하는 인식 역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다른 상품들 중 하나의 상품, 소비의 형태 중 하위의 항목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IMF 이후 합리적 소비문화의 결과와도 관련이 있다. 결국 영화 관람의 환경 변화가 영화 관람의 개념을 바꾸며 관람문화를 바꾸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미디어기업의 안착과 코스닥 상장

    미디어기업은 전국적 규모의 멀티플렉스 체인을 구축하며 공격적으로 한국영화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사실상 한국영화산업이 2000년대 들어 CJ와 롯데, 오리온 그룹 등 미디어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이들 미디어기업은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배급과 투자, 제작 등 영화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중반 삼성, 대우, 현대 등의 대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영화시장에 진출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흥미로운 일일 수밖에 없다.

    90년대 영화산업에 진출한 대기업이 케이블TV와 위성방송 진출과 홈비디오시장 등 콘텐츠 확보를 목적으로 영화시장에 진출한8) 것과 달리 2000년대 대기업은 영화를 목적으로 한 미디어기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들 미디어기업은 90년대 대기업이 투자와 제작부터 영화 산업에 뛰어든 것과 비교하여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배급과 상영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성장했다. 미디어기업은 전국 단위의 멀티플렉스를 바탕으로 거대예산의 영화 투자와 제작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1000만 관객 영화가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졌다. 1000만 관객이 든 한국영화의 연이은 등장은 미디어기업의 성공적인 안착을 의미하며 동시에 과거 영세적이라는 영화 산업의 이미지 역시 탈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산업의 이미지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 관련 업체의 코스닥 상장 열풍이 불었던 것이다.

    언론에서는 영화관련 업체가 연20%의 고도성장을 전망하는 등 유망 업종으로 평가하며 영화산업의 위상이 점차 고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를 다루는 섹션이 경제 분야의 ‘증권’이라 것이다. 2000년대 영화 관련 기업의 코스닥 상장 열풍이 불면서 ‘영화산업’이란 용어가 관념적 표현이 아닌 구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데 영향을 끼쳤다.

    2001년 11월 하나은행이 시네마서비스와 로커스홀딩스와 손잡고 ‘하나 시네마 투자신탁 1호’를 출시하였는데 일반고객의 신탁자금을 영화 제작에 투자해 흥행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배당하는 신탁상품이었다. 또한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사로서는 처음으로 코스닥 심사에 통과해 코스닥에서 일반 투자자의 돈을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사건은 한국 영화산업이 제작 및 투자비용을 은행권과 코스닥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었다.10) 또한 CJ엔터테인먼트나 로커스홀딩스의 경우 처럼 단독 상장은 아니지만 2004년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이 공구 업체인 세신버팔로와 주식 교환을 통해 영화사로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경우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와 플레너스(시네마버시스) 등 영화 배급사와 제작사가 코스닥에 등록된 경우와 달리 영화사가 증권거래소 시장에 진입한 것은 이 경우가 첫 번째이다.11) 세신 버팔로를 통한 우회상장의 방식이지만 안정적인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영화산업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화 관련 업체의 ‘상장’은 ‘산업으로서 영화’로 인식이 전환되는 상징성을 띤다. 이들 업체의 상장소식은 ‘영화산업’이라는 용어가 관념적 표현이 아닌 구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과거, 열망의 표현으로서 ‘영화산업’이 아닌 산업의 영역으로서 영화산업이란 개념이 안착한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한국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은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에 큰 영향을 끼쳤다.

    3)기존의 개념에 새로운 경험이 추가되면서 의미가 풍부해지고 확장되는 인지언어학적 개념화를 체험적 견해라고 한다.(프리드리히 웅거러⋅한스-요르그 슈미트, 임지룡⋅김동환 역, 『인지언어학개론』, 태학사, 2010, 24쪽)  4)<국내 최초 영화관 단성사 경매로>, ≪한국경제≫, 2014.06.17.  5)김오성⋅이명식, 「구매패턴변화에 따른 상업공간의 시설변환 방향에 대한 고찰-할인점과 백화점 및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통권 80호, 2010, 158쪽.  6)김오성⋅이명식, 위의 글, 161쪽.  7)영화진흥위원회, 「지역극장 현황과 지원방안」, 2013, 14쪽.  8)김학수, 『한국영화산업개척자들』, 인물과사상사, 2003, 116쪽.  9)<영화관련 업체 년 20% 성장 전망-영화산업이 뜨고 있다>, ≪한국일보≫, 2001.12.19.  10)김학수, 위의 책, 192쪽.  11)<명필름⋅강제규필름, 세신버팔로 통해 상장>, ≪이데일리≫, 2004.01.27.

    3.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제도, 영화의 위상과 인식의 전환

    스크린쿼터제 논란은 신자유주의 시장질서 하에서 문화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논란은 1985년에 있었던 한미영화협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무역보복을 무기로 지적재산권을 무역과 연계하여 한국의 영화시장 개방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 협상에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요구사항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여 제 6차 영화법에 이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미국측이 강력히 요구한 핵심 사항 중 하나인 스크린쿼터제 철폐 및 완화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주목할 점은 한미영화협상 이전에 개정되고 시행된 제 5차 영화법 개정은 순수하게 국내 영화산업을 진흥하려는 목적 하에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 거세진 미국 영화업자들의 시장개방 압력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영화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법을 정비한다는 목적 또 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12)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스크린쿼터제 인정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제5차 영화법 개정에서 한국영화 상영 스크린쿼터는 기존 상영일수의 ‘3분의 1’ 이상에서 ‘5분의 2’ 이상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가 본격적으로 논란의 대상으로 불거진 것은 1998년도 한미투자협정의 선결조건으로 미국이 스크린쿼터 제도의 폐지를 다시 거론하면서이다. 1998년 한미투자협정은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IMF로 한국을 이탈한 외국자본을 다시 유치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가장 중요한 투자국 중 하나인 미국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13) 1998년 ‘1차 논란’이14) 중요한 이유는 말 그대로 스크린쿼터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1998년 이전에도 미국의 스크린쿼터제 폐지 압력은 지적재산권과 자동차협상 등 수차례의 한미통상협상에 항상 제기되었으나 정부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에도 유럽연합(EU)의 결사적 반대로 결국 개방화 품목에서 제외된” 문화적 예외 사항임을 들어 “스크린쿼터가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15)하게 피력하며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했다. 반면 1998년는 당시 문화관광부와 통상관련 부처가 의견을 통합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다.

    1차 논란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계의 범국민적 저항이 불거지면서, 급기야 스크린쿼터제 유지에 대한 국회 결의와 문광부의 공식적 입장이 확인되면서 협상 대상에서 스크린쿼터제를 제외하기로 잠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라면 스크린쿼터제 문제가 공론화되고 문화주권으로써 스크린쿼터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주목할 점은 1차 논란 시기 스크린쿼터제와 관련된 기사들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문화주권”, “문화자주권”이란 용어이다. 1차 논란 당시 스크린쿼터제 수호를 위한 학자들의 담론을 엮은 책 제목 역시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문화주권”이라는 용어는 ‘영화는 문화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며 동시에 역으로 그 인식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은유는 인지적 도구로서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6) 이러한 사실에서 기본적으로 1차 논란 시기 스크린쿼터제 폐지의 대응논리는 ‘영화는 문화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중심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98년 한미BIT협상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외환위기로 조성된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1998년 전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직배영화 <타이타닉> 안보기 운동이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했으며 대다수의 언론들도 앞 다투어 스크린쿼터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스크린쿼터제 사수에 동참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투자협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긴 했지만 반대로 민족주의 분위기 역시 못지않아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이었다. 결국 영화계의 강력한 반발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스크린쿼터는 일단 유지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부와 관련부처는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40%에 달할 때까지 스크린쿼터 폐지나 축소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미투자협정도 유예되었다. 그러나 1차 논란 과정에서 향후 불씨를 남겨놓게 된다.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외교통상부와 문화관광부의 의견차는 여전했으며 한미투자협정 역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가 논란이 된 가장 큰 원인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은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영화를 산업의 영역으로 보는 입장이 강하다. 반면 우리의 입장은 스크린쿼터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를 문화의 영역에서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상반된 관점이 충돌하는 장이 바로 ‘투자협상’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은 한미투자협정의 대상에 스크린쿼터제를 올려놓음으로써 ‘영화는 투자협정의 대상’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하였다. 즉 ‘영화=상품’이라는 은유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제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미국이 구축한 프레임이 빠르게 유포되었다. 즉, 영화는 투자협정의 대상, 상품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던 것이다.17) 이미 1차 논란 당시에도 강한섭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정부의 “문화개입 정책 실효가 적”기 때문에 “시장의 자유경쟁이 문화의 질을 더 확실히 보장해 준”다며 보호정책에 반대하는 한편 “경쟁력은 경제용어”이므로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논지를 피력했다.18) 스크린쿼터제가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가 문화냐 산업이냐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협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논란으로 불거져 나왔다는 사실이 이미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목표개념이 ‘산업’과 ‘문화’ 어느 근원개념과 결합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개념화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3년 3월부터 다시 시작된 한미BIT 체결 움직임으로 스크린쿼터제는 2차 논란으로 접어들게 된다. 2차 논란이 1차 논란과 다른 점은 결과뿐만 아니라 그 대응과정에도 있다. 우선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미국의 통상압력에 보다 전문적이고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1차 논란 당시 구성되었던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로 재결성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2차 논란이 일자 곧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영화인회의, 시네마떼끄협의회, 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축소 및 폐지 논의에 대항하기 위해 유관기관들이 모여 정책팀, 대외협력팀, 영화인 섭외팀을 구성하여 활동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크게 세 가지 과제를 진해했다. 첫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대응논리를 체계화 한 보고서 발간, 둘째, 즉각적으로 효과적인 언론 대응을 위한 Q&A 자료집 배포, 셋째, 홍보물 제작 등 크게 3가지 관제를 진행하였다.19) 그러나 조직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2006년 7월 1일부로 기존 146일에서 73일로 한국영화 상영 스크린쿼터는 50% 축소되었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1차 논란 시기와 달리 스크린쿼터제 유지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등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크린쿼터제가 1998년 한미투자협정의 선결조건이었음을 거론하며 스크린쿼터제가 “한미투자협정을 좌초시켜버렸다”고 비난하는 목소리 역시 제기되었다.20)

    흥미롭게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시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있었다. 스크린쿼터제를 한미 FTA와 무관하게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앞서 영화를 대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미 이뤄지기 시작했고 2차 논란의 대응과정에서 급격하게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는 사건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차 논란의 대응이 1차 논란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대응 방향의 차이였다. 2003년 2차 논란의 시작과 동시에 대책위원회는 발빠르게 논리적인 대응방향을 설정했다. 대표적으로 대책위원회와 영화진흥원회가 공조하여 발간한 스크린쿼터 현안연구 보고서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를 들 수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한국영화산업의 풍부한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이었다. 대응논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장 ‘한미투자협정과 한국영화산업’은 문화산업으로서 한국영화의 가능성과 경제효과를 중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쟁이 한미투자협정과 신자유주의 무역질서의 경제논리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 따라 한미투자협정의 문제점과 영화의 경제효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무역질서에 대응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고 있는 해외의 자국영화보호 사례 역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스크린쿼터 폐지 이후 위기에 처한 다른 국가의 사례 분석도 실려 있는 등 다각적인 대응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2차 논란의 대응의 핵심은 바로 ‘영화산업으로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인 것이다.

    1차 논란 당시 스크린쿼터제 유지에 붙은 단서, 향후 ‘한국영화 점유율 40%’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었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는 단기간에 빠른 성장률을 보여주며 점유율 역시 40%를 웃돌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 역시 이 점을 언급하며 스크린쿼터제도의 축소 및 폐지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01년 <친구>와 의 잇단 흥행으로 “스크린쿼터제 폐지가 바람직”하며21)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을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라는 영화계의 요구는 충족”22)되었으므로 한미투자협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할 것이라는 기사도 등장했다. 결국 1차 논란과 같은 논리로 대응할 수 없게 되면서 한국영화산업의 가능성으로 방향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산업적 관점으로 접근한 미국의 논리에 맞서 똑같이 산업적 측면에서 대응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한국영화 역시 보호해야 할 문화에서 경쟁의 대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맞물려 극장의 입장료 수입을 나누는 부율 문제가 불거지면서 마치 스크린쿼터제가 영화계의 밥그릇 싸움 양상으로 비쳐지기도 했다.23) 이미 극장업계는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증폭되어 급기야 2차 논란 시기에는 스크린쿼터제 유지를 주장하는 영화계를 가리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24) 스크린쿼터제가 영화인들의 밥그릇 다툼이라는 외부의 인식은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변화된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개별 제작사의 수익성이나 영화 노동자들의 지위와는 별도로 거대한 미디어기업의 투자와 배급, 상영 시스템이 한국영화산업의 전면부로 제시되면서 생긴 인식의 괴리인 것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영화는 더 이상 보호해야 할 문화가 아닌 공정한 경쟁으로 발전해야 할 산업의 영역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스크린쿼터제도가 전 세계 영화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와 한국영화를 대하는 인식은 이미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2006년 스크린쿼터제 관련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영화계의 경쟁력과 자신감을 강조하면서 영화는 ‘경쟁’의 대상임이 재차 확인되었다.

    이전까지 수차례의 미국의 통상압력에도 스크린쿼터제를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가 문화적 예외, 즉 영화가 문화의 영역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1998년 투자 협정 과정에서 문화적 예외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스크린쿼터제의 명분이 되는 영화의 문화적 지위와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2006년 스크린쿼터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반토막이 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스크린쿼터를 협상의 대상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이 구축한 프레임에 갇혀 그들이 제시한 개념으로 방어하려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인식이 문화에서 산업으로 급격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바뀌었음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리해보면,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인식의 문제이다. 문화관광부와 영화계는 영화가 문화의 영역이므로 ‘문화적 예외’를 적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경제적 관점에서 투자협정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폐지입장에서는 상품이며 산업이므로 경쟁의 대상이라는 논리이며, 반대 입장은 영화는 문화이기에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가 과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던 점은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가 없어 논란으로 확산되지 않았던 것도 있겠지만, 스크린쿼터제를 문화적 예외로서 협상의 대상에서 제외하여 ‘영화는 협상의 대상’이라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여 반대로 ‘영화는 문화’라는 프레임을 구축하며 논란 자체를 불식시켰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1, 2차 논란을 통해 문화적 관점에서의 대응이 아니라 산업적 관점에서의 대응으로 의도치 않게 산업으로서 영화라는 인식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12)안지혜, 「제 5차 영화법 개정 이후의 영화정책(1985∼2002년)」, 『한국영화정책사』, 나남출판, 2005, 273쪽.  13)최병일, 「문화와 무역의 충돌」, 『한국의 통상협상』, 오름, 2004, 354쪽.  14)2003년에 또 다시 스크린쿼터제가 논란이 되는데 한미투자협정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논쟁 양상은 다르므로 편의상 1998년 스크린쿼터제 논란은 ‘스크린쿼터제 제 1차 논란(이하 1차 논란)’, 2003년 이후 논란을 ‘스크린쿼터제 제 2차 논란(이하 2차 논란)’이라 한다.  15)<미, 이번엔 스크린쿼터 폐지압력>, ≪한겨레≫, 1997.08.05.  16)프리드리히 웅거러⋅한스-요르그 슈미트, 임지룡⋅김동환 역, 『인지언어학개론』, 태학사, 2010, 172쪽.  17)우리가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원근화법은 무엇이 우리의 주의를 끄는가에 의존하며 프레임을 통해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대상을 정할 수 있다.(프리드리히 웅거러⋅한스-요르그 슈미트, 위의 책, 290쪽)  18)<타이타닉과 한국영화의 경쟁력>, ≪동아일보≫, 1998.03.29.  19)영화진흥위원회, 현안연구2003-1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2003, 서문.  20)최병일, 위의 책, 342쪽.  21)<국산영화 잇단 흥행⋯스크린쿼터 폐지 바람직>, ≪국민일보≫, 2001.06.09.  22)<스크린쿼터 축소 곧 발표>, ≪동아일보≫, 2002.01.20.  23)<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에 영화계 ‘밥그릇 싸움’조짐>, ≪동아일보≫, 2002.01.21.  24)1998년 당시 언론에는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자는 영화계의 대응에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반면 2003년에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영화계의 집단 반발에 대해 ‘국익을 저해하는 집단이기주의’라는 언론의 비판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4. 영화산업노조의 출범과 산업으로서 영화

    멀티플렉스로 대변되는 미디어기업의 등장, 그리고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몇 차례 논란으로 영화에 대한 인식은 산업의 영역으로 크게 이동하였다. 여기에 덧붙어 영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마침표를 찍은 중요 사건이 바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산업노조’)의 결성이었다. 2005년 12월 영화산업노조의 설립과25) 2007년 4월 영화산업노조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의 체결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산업노조 출범은 영화 스태프(이하 ‘영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노동자로 확고하게 전환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노동조합의 등장으로 영화 역시 산업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임단협 체결은 노사관계 시스템 도입과 합리적 제작 시스템의 발판을 마련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화산업노조의 결성과 임단협 체결은 영화 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 신장과 제작환경 및 처우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본질적인 의의가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비약적 발전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제작환경과 영화 노동자의 비현실적인 임금 문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영화를 단위로 고용이 결정되는 프로젝트형 고용구조라는 영화산업의 독특한 노동시장과 현장 경험의 숙련도에 따른 도제(徒弟)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한국영화의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으며, 영세한 한국영화산업의 규모와 불안정한 영화시장의 상황, 열악한 제작환경이 영화 노동자의 자발적 희생을 강요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도제 시스템 아래에서 노동자로써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요원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도제 시스템에서 팀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일명 ‘통계약’을 통해 영화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제작사에 고용된 상태이지만 고용관계상의 계약주체는 제작사가 아닌 각 직무의 감독이나 감독급 기사가 된다. 제작현장에서의 부당한 근로행위와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사용자와 영화 노동자의 문제가 팀원 간의 문제로 전화되는 책임소재의 문제가 발생하며, 이것을 빌미로 부당한 노동착취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던 것이다.26) 효율적 관리 시스템의 부재와 감독 중심의 제작현장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화 노동자의 처우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으며 불합리하고 열악한 처우의 문제는 영화 창작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며 때로는 낭만으로 미화되기도 하는 등 예술을 위한 자발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 현장 중심의 실무교육과 유연한 현장 운용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도제 제도는 상하관계와 가부장적인 성격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럼으로 영화산업노조의 등장으로 ‘오야’와 ‘오야붕’이 수평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노동자의 지위로 바뀐 것은 상징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산업노조의 단체협약은 열악한 영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화산업 구조의 합리적 개선과 영화제작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노조설립 이후 비로소 영화는 산업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노조설립 이전의 한국영화는 산업이라 부르기엔 산업구조의 영세성과 자본의 불안정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사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전문화되는 것은 영화산업의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므로 산업 자체가 성장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의 설립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임단협의 체결은 영화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의 개선과 복지 향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화제작현장의 투명화와 합리화에도 기여했기 때문이다. 임단협이 제작현장에 미친 긍정적 효과는 다음과 같다. 스태프들의 근로조건 등 노동환경 개선, 시간급의 적용에 따른 일정관리의 효율성 강화, 노동시간 및 노동력의 계량화와 제작예산 관리의 효율성 증대, 스태프의 고용에 대한 효율성 증가 등이 그것이다.27)

    중요한 것은 영화산업노조의 설립과 임단협 체결이 한국영화의 제작 시스템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제 축소 압력 등 신자유주의 환경 역시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제영역에서 신자유주의는 구조조정이나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조합과의 갈등을 초래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영화 제작의 합리성과 자본 흐름의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맞물리면서 영화산업노조의 설립과 임단협 체결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마련되었다.28) 기존의 전근대적인 제작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한 제작자들과 90년대 초중반 대기업과 90년대 후반 금융 자본, 2000년대 미디어기업의 영화진출로 제작 시스템의 변화 역시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한국영화의 제작환경과 시스템 변화란 거대한 흐름의 시발점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영화산업노조의 출범과 임단협의 체결은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디어기업과 멀티플렉스의 등장 그리고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논란이 개념의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었다면 영화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영화의 근원 개념을 예술의 영역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일순간에 전환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며 문화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산업노조의 출범은 영화가 산업의 영역에 있다는 강력한 상징성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영화산업노조의 출범과 임단협의 체결은 그간 한국영화산업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한국영화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25)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노동조합설립필증 취득은 2006년 1월 2일.  26)최인이, 「한국영화산업의 노사관계 시스템 형성에 관한 연구」, 한국산업노동학괴 『산업노동연구』, 제16권 제2호, 2010, 208쪽.  27)영화진흥위원회, 『노사협약 이후 영화제작현장 변화 및 개선 방향 연구』, 영상산업정책연구 07-7, 2008, 14쪽.  28)최인이, 위의 글, 215쪽.

    5. 한국영화의 위상 변화와 인식의 전화

    한국영화사에서 영화산업은 오랜 열망의 대상이었다. 영화산업이라고 쓰고 열망이라고 읽었던 오랜 시기를 지나 대기업의 진출로 90년대 영화산업화의 가능성에 대한 높아져가는 기대감이 2000년대 들어 미디어기업의 등장과 정착으로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이라 할 만한 기반이 조성되면서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 2000년대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하여 놀랄 만큼 격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영화의 위상 변화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질적 발전의 의미인지, 산업적 관점에서 발전의 의미인지, 두 개념을 모두 포함한 것이겠지만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에는 후자의 관점이 좀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살펴보면 2000년대 한국영화의 발전과 위상의 변화 그리고 인식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건은 크게 멀티플렉스와 미디어기업의 등장,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영화산업노조 설립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세 사건은 신자유주의 시장 환경과 IMF 이후 혼란스런 국내의 상황과 맞물려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특히 한국영화의 인식 전환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1998년 이후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미디어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재편은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를 확대하면서 영화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더불어 영화는 산업의 영역으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미디어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재편은 한국영화산업의 규모 확대와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미디어기업은 목표는 이윤극대화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미디어기업의 전략은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등 영화의 전 분야를 아우르며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그리고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전통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극장의 개념에서 외식과 쇼핑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몰(mall)의 개념으로 전환되면서 관람 문화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영화관의 개념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상영환경의 변화로 영화 관람에 쇼핑의 경험이 추가되었으며, 두 번째는 멤버쉽 제도 등 관람 문화의 변화가 영화의 기본 개념을 확장시켰다. 더 이상 영화는 문화의 개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개념 또한 강하게 정착하게 된 것이다.

    스크린쿼터 논란은 그간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문화 주권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며 영화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스크린쿼터제 논란은 영화(목표개념)가 산업으로(근원개념) 전환되는 계기 혹은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영화산업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미투자협정 대상으로서 스크린쿼터 논란이다. 결국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이어진 대응과정을 통해 영화는 산업의 영역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또한 스크린쿼터 논란과 관련하여, 사실 유무와 책임의 문제와는 별개로 국가 지도자의 발언은 선언적 의미를 지닌다. 언론의 관심은 물론이고 국가 지도자라는 상징적 지위가 주는 의미 역시 크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94년 김영삼 대통령과 98년 김대중 대통령,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영화에 대한 대외적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의 위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영화의 위상이 상승하는 만큼 그에 따른 관심과 논란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결국에는 2000년대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영화의 급격한 성장과 발전이 동반한 성장통과도 같은 것이다.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산업으로서 영화라는 인식의 전환의 결과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식의 전환에 방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합리적인 영화제작 환경과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였으며 예술과 상품, 문화와 예술이라는 모호한 영화의 성격을 산업의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결국 영화산업노조와 임단협 체결은 신자유주의 시장 환경에서 영화의 인식의 전환을 초래하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종합해보면, IMF 경제위기로 인한 신자유주의 논리의 급속한 전파와 멀티플렉스로 대변되는 미디어기업의 등장과 한국영화의 빠른 성장이 상호간 맞물리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문화의 영역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급속하게 전환됐다. 감독 중심의, 소규모의 제작사에서 제작되는 과거의 제작환경이 거대 미디어기업의 참여로 재편되고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멀티플렉스에서의 영화 관람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듯 것 관람문화 역시 바뀌었으며 미국과의 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단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한국영화의 가능성이 안정적인 자본과 결합하여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졌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으며 이 과정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질적 발전과 별도로 산업적 관점에서의 관심과 접근이 현재의 성장과 발전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방화(邦畫)가 자조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을 상기해보면29) 이러한 변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29)영화진흥위원, 『한국영화사 開化期개에서 開花期까지』, 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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