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presentation of Korean Japanese in Japanese Film, 2000s

2000년대 일본 영화 속 재일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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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e “Break Through!(パッチギ!)” is a Japanese film which released by Director Kazuyuki Izutsu on January 22, 2005. This movie is the work that makes it along the current trends connected to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the opening of Japanese cultural exports to South Korea 1998, the 2002 World Cup Korea-Japan, and the Korean wave to Japan from 2003. There was double-faced view going around in Japan at that time. In other words, Korean wave spread over positive images of culture in Japan, whereas Kim Jong-il acknowledged Japanese kidnapping in 2002 and the consequential negative images about North Korea were building. The product of double-faced images concerning the Korean Peninsula is typical case confirmed insufficiency of history recognition. Such a contradiction in Japan pointed out and concerned discourse with discourse about South-North Korea reproduced. However, on the cultural thing, in the movie especially, the South-North Korea related discourse in partial reproduced. The “Break Through!(パッチギ!)” is movie raised a question in the same vein without any objection. Therefore, in this paper, contradictory view about the Korean Peninsula criticized and analyzed the relevance which inheres in the Korean Japanese description and discourse in this movie as text indicated insufficiency of history recognition, distortion and concealment of history in Japan. Through analytical researches, this paper confirmed a reflection on unilateral North Korea hatred discourse set up with not Korean nationality but Korean-Japanese as Chosun nationality, and pointed out the criticism about Korean-Japanese discrimination acculturation in Japan such as the discrimination concerning Korean-Japanese as Chosun nationality is used as scapegoat.


  • KEYWORD

    Japanese film , Korean Japanese , Chosun nationality , representation , discrimination , aversion , contradiction , historical awareness

  • 1. 들어가며

    영화 『박치기!(パッチギ!)』는 2005년 1월 22일 이즈츠 카즈유키(井筒和幸) 감독에 의해 “일본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캐치카피(catch copy)를 내세우며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8년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을 계기로 촉발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심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3년~2004년으로 이어지는 드라마 『겨울연가』1) 붐에 따른 ‘한류 열풍’이라는 시대적 흐름2)에 영화의 완성도가 더해져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3)

    영화 개봉 당시 일본사회는 한반도에 대해 양가적(兩價的)인 시선이 표류하고 있었다. 이는 남한에 대해서는 한류로 인한 문화이미지확산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북한에 대해서는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사실 인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구축되어져 가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는 일본사회의 역사인식 부재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써 일본사회의 모순을 지적 혹은 우려하는 담론들 또한 남북한 관련 담론들과 함께 양산되고 있었다. 그러나문화물 특히 영화에서는 담론 중 어느 한쪽의 이미지만을 구현하고 있을 뿐, 이러한 현상 및 담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화는 부재한 상황 속에서 영화 『박치기!』는 처음으로 일본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본 사회의 한반도에 대한 모순된 시선을 비판하며, 일본사회의 역사 인식 부재 및 왜곡과 은폐를 조장하는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지적한 영화 『박치기!』를 분석 텍스트로 삼아, 영화에서의 재일 묘사 양상을 살피고, 영화와 동시대 담론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영화 『박치기!』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대표적으로 1968년이라는 시대성과 소통에 주목하여 분석한 신명직의 연구4)와 영화에서 특징적인 3가지 사항을 뽑아 정리한 신하경5)의 연구가 존재한다. 이들 연구는 영화 『박치기!』가 다루고 있는 사건과 특징에 대해 적절하게 분석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론적 의의가 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바와 같이 영화 개봉 당시의 시대상, 특히나 북한에 대한 일본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영화와의 관련양상과 관련된 언급은 누락되어 있다.

    영화 『박치기!』는 재일차별에 대한 비판이라는 재일을 주제로 한영화의 기본적인 스탠스에, 2000년대의 한반도에 대한 일본사회의 시선, 특히 북한에 대한 혐오론을 덧씌운 조선적 재일에 대한 차별의 현재성을 투영시킨 영화라는 점에서 분석의 가치가 충분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를 수렴하면서도 영화 개봉 전후의 시대적 상황에 보다 주목하여, 영화와의 관련성을 살피고 이를 통해 영화의 테마성과 의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1)『겨울연가』는 2003년 4월 NHK BS2에서 첫 방영을 시작으로 일본사회에 붐을 일으키며, 2004년 4월~8월까지 지상파 방송인 NHK 종합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한국드라마 최초), 2003년 12월 20일~30일까지 무삭제일본어 자막판(배용준의 실제 음성을 듣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으로 NHK BS2에서 재방송하는 등, NHK 방송에서 『겨울 연가』를 무려 4차례나 방영하며 일본사회에서 욘사마 열풍, 한류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NHK에서는 『대장금』 『천국의 계단』 『내 이름은 김삼순』 『가을연가』 이외에도 여러 작품을 방영하며 시청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 대한 관심, 한국인에 대한 친밀감의 상승, 국가 이미지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일본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전환을 이루어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2)『박치기!』 이외에도 시대흐름의 영향으로 제작된 드라마와 영화가 다수 존재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일 합작 드라마가 제작(『프렌즈』(2002), 『소나기, 비 갠 오후』 (2002) 등) 되었으며, 2004년 한류붐의 영향으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재일한국인을 등장시킨 드라마 『동경만경』(2004)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2004)이 지상파에서 제작 방영 되었고, 재일을 등장시킨 영화 『피와 뼈』(2004) 『꽃 할매』(2004) 『HARUKO』(2004) 『닭은 맨발이다』(2004) 『칠석의 여름』(2004) 『커튼콜』(2005) 『해녀양씨』(2005) 한일합작 영화인 『역도산』(2004) 등이 제작 상영 되었다.  3)영화 『박치기!』는 제 29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작품상, 우수 감독상, 신인배우상, 화제상을 비롯하여 제79회 기네마순보 베스트 10, 일본영화 1위, 감독상, 여우주연상, 제60회 매일영화콩쿨 일본영화 대상, 영화음악상, 제 48회 블루리본상, 제48회 아사히 베스트 10 영화제 일본영화 1위 등 이외에도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4)신명직은 「68의 임진강을 넘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영화 『우리학교』,『박치기』 『박치기LOVE&PEACE』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작품을 가지고 각각의 영화분석을 행하였다. 그리고 분석을 통해 『우리학교』가 한국인과 재일조선인 혹은 조선학교의 새로운 소통을 기획한 것이라면, 『박치기』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68전후의 재일조선인들과의 소통을 기획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역시 중층적인 재일조선인 내부의 성철과 또 다른 재일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덧붙여 이들 영화의 한계로서 『우리학교』가 조선학교를 넘어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로까지 영역확장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점, 『박치기』가 재일조선인 사회와일본인 사회의 이분화만을 부각시켜 여타의 중층적이고 다양한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재일조선인 영화를 핍박받는 재일조선인 혹은 저항하는 재 일조선인상에 초점을 맞출것이 아니라 지금의 재일한국 조선인 사회에 어울리는 열린 아이덴티티에 맞춰 감상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신명직 「‘68’의 임진강을 넘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 영화<우리학교><박치기 1,2><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에 대하여」, 『역사비평』Vol.81, 역사문제 연구소, 2007, pp.442~463)  5)신하경은 논문의 서론을 영화 박치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면서, 박치기에서 주목해야 할 3가지 특징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영화 속 주제가인 임진강에 주목하여, 노래의 주제에 해당하는 남북분단의 현실을 일본인/재일조선인의 관계로 병치시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와 타자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이 고발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둘째로 제목 박치기는 메이져리티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일방적 이해에 의한 화해가 아닌 메져리티와 마이너리티가 동등한 인간으로서 맞부딪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마지막으 로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68년에 대해 언급하며, 주인공 마츠야마가 경자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타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과정이며, 이는 수많은 사회제도적, 인식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과정으로 그 출발점을 196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합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신하경 「1960년대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영화 속의 재일조선인 표상」, 『일본문화학보』Vol. 45, 한국일본문화학회, 2010, pp.187~188)

    2. 2000년대 일본사회의 한반도 인식과 재일

    2002년 9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수뇌회담에서 과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였다. 그리고 일본인 피랍자 중 5명의 생존, 8명의 사망과 2명의 입국 미확인6)사실을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사회는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이전보다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며, 북한 때리기에 한층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사회 전반에서 규합하며 강력하게 등장한 네오내셔널리스트(neo-nationalist)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이 사건을 계기로 보다 강력하게 북한 혐오론을 설파하였으며, 이들과 다른 성향의 매체들에서도 강도를 달리하며 특집으로 북한 때리기에 동조하였다. 특히 네오내셔널리스트들의 경우, 자신들의 북한에 대한 기존의 주장이 옳았음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명분을 드높이기 위해 북한에 대한 매도를 한층 강화해갔다.

    위의 인용문은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스트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와 중의원 의원인 니시무라 신고의 대담 중발췌한 부분이다. 평양선언 이후 잡지 쇼쿤(諸君)에서는 납치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데, 특집호의 첫머리에 위의 두 사람의 대담을싣고 있다. 이들은 특집호의 첫 머리답게 납치사실과 관련된 북한 비판, 네오내셔널리즘의 정당화, 정부 비판, 구국운동 주창, 보통국가론지향 등 기존 우익 단체가 주창해오던 고전적인 레토릭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무게를 두며 보다강력하게 발언하면서 북한 이미지를 조장해간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일 수뇌회담과 관련된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수뇌회담과 관련하여 “김정일이 지옥에서 부처(일본)를 발견한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일본이 북한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 = 사기국가라는 도식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조장된 북한 이미지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 통치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날조가 동반된다.

    이시하라는 2004년도 1월호 잡지 쇼쿤에서 식민통치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일본 - 인용자주) 결코 무력으로 침범한 것이 아니다. 조선반도가 정리되지 않으니까(まとまらないから)총의로써 일본을 선택한 것이다” 라거나, “그들 선조의 책임”, “중국이나 러시아에 병합될 것 같아 일본에게 일임한 것이다”, “일본이 행한 식민지주의는 인도적이고 인간적 이었다”8)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쓰는 모임에서 사용되는 역사 날조를 위해 주장되는 발언들과 맥을 나란히 하는 것으로, 네오네셔널리스트들이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수사법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납치사실 시인 이후 북한이 취한 행동에 대해서도 묵인하려 하였다. 북한은 납치 사실 시인 이후 2002년 10월 15일 납치된 일본인 중 생존사실이 확인된 5명을 특별기편으로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며,9) 일본 측에 2002년 정상회담 시 선언한 9.17 평양선언을 전체적으로 협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동시에 피랍 일본인 잔류 가족들의 송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북한방문을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 5월 22일 북일 정상은 제2차 회담을 갖고, 납치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에 의해 납치 되었다가 1년 7개월 전 귀국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薫) 부부와 지무라 야스시(地村保志) 부부의 북한 잔류 자녀 5명을 정상회담 당일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며, 소가 히토미(曾我ひとみ)의 가족 4명이 제3국에서 재회하는 것에 양국정상이 합의하였다. 북한이 사망 등으로 납치를 일부 인정한 피랍의혹자 10명과 관련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조사를 약속10)하였 으며, 또한 일본이 확인을 요구해 왔던 11명의 생사 여부 이외에 확인 요구가 없었던 3명의 생사 여부를 통보11)해주었다. 이는 북한으로써는 매우 이례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네오내셔널리스트들은 북한이 취한 일련의 행동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오히려 북한에서 사망한 소가 히토미의 남편인 젠킨스(R. Jenkins) 가족 의 귀환문제와 북한이 일본 정부에 건낸 요코다 메구미(横田めぐみ)의 유골이 과학적 분석 결과 거짓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북한을 거짓 정부로 매도하였다. 그러나 메구미의 유골이 조작되었다는 점도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과학적으로 명확한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증언이 존재한다.12)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북한 혐오론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별되고 이용되어 조작되어지고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앞에서 언급했듯 네오내셔널리스트들만의 언설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좌파성향의 진보적 미디어라 할 수있는 아사히(朝日) 신문과 마이니치(毎日) 신문, 그리고 잡지 세카이 (世界)에서 조차 북한에 대한 혐오론을 강도를 달리할 뿐 설파하고 있 다. 특히나 잡지 세카이의 경우 창간호부터 “친북적 편집노선에 매몰돼 ‘환상적’ 북한관을 만들어냈고, 진실과 먼 기사를 독자에게 전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13)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북한에 대한 옹호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납치사실이 부각되면서 여론에 밀려「조선 문제에 관한 본지의 보도에 관하여」14)라는 사고(社告)를 통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북한 혐오론에 일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일본 사회의 일부에 불과했던 우경화가 일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납치 피해자 가족과 납치피해자에 대한 인도적 조치는 분명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정부나 일본사회에 피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히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위시하여 일본 사회의 분위기전체를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심지어 북한 사회의 권익단체라 상정된 조총련과 그 교육기관인 조선학교, 그리고 조선적 재일에게까지 차별을 가하는 행위15)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자신들의 명분을 쌓기 위해 납치사실을 이용하는 네오내셔널리스트들에 대해 테사모리스 스즈키는 “납치사실이라는 핵심이 국민적 강박관념이 되어 일본과 북한의 관계를 둘러싼 중요한 현안들을 소거시켜버리 고 말았다. 그 중요한 과제 중에는 조선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 북조선의 경제와 정치체제의 장래, 핵병기 문제 등이 있다. 그 결과 일본이 주변지역의 정치적 미래를 구축할 중요하고 유익한 역할을 행할 유니크하며 획기적인 기회가 대부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16)고 비판하였다. 이와 함께 “북조선에 ‘관계된’ 인간과 특정 사람들에 대해 꺼림칙해하는 배외주의의 촉발할 계기가 되었다(관련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북조선 정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인간들이며, 또한 그 정책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는 또한 일본에서 북조선적을 지닌재류자의 권익단체인 조선 총련-(이 단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제쳐두고라도)일본의 안녕 질서에 현재 그 어떤 위협을 가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단체-을 (파괴활동 방지법 조항에 의해) 정치적으로 위법하다고 보아야한다라는 등의 요구가 발생하는 결과마저 초래하고 있다”17)고 하며 일본사회의 북한 혐오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후지타 히사카즈(藤田久一) 역시 “국제적으로 악의 축이라 불리며 핵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는 북한이 일본사회에서만은 오히려 납치 문제로 집중포화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북한을 향해 거짓말쟁이에 인권을 무시하는 범죄국가라며 중상모략 하는 일본사회에 대해 일본인 납치 사건이 어떠한 역사적 문맥 속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우선”18)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일본 사회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확산은 재일조선인의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면서 조선적 재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하여 2003년 8월 14일자 한겨례 21의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반북한적 담론이 대대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재일조선인을 상대로 한 일련의 범죄가 벌어졌다”19)고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민족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칼에 찢기는 등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폭언, 폭행, 협박은 끊이지 않았으며, 한 재일조선인 인권협의회의가 약 2002년 9월 이후 8개월간 행한 설문조사 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23.5%의 학생이 이러한 폭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특히 중학교 여학생들의 비율은 48.3%였다. 이밖에도 조총련 사무실에 총탄과 협박편지가 배달되 는 등 일본 사회 전체적인 대 재일 조선인 이지메가 유례없이 오래 지속되었다”고 보도20)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사회의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 바로 이즈츠 감독의 영화 『박치기!』이다.

    『박치기!』에서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조총련 집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선학교, 그리고 조선적의 재일을 테마로 하여 북한 = 조선적 재일이라는 구도로 변용되어진 일본사회의 재일 차별을 그려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반면 서론에서도 언급했듯, 남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은 긍정적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이전까지 독재정권, 군부정권이라 불리우며 폐쇄적이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회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8년 일본 문화개방, 2002년 월드컵과 이어지는 한류열풍에 힘입어 이웃나라 한국이라고 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나 2004년 『겨울연가』 방영 이후 일본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2004년 10월에 실시한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친밀도가 상승하여 56.7%에 달하고 있음21)이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에 대한 관심은 2004년도 기네마 순보의 외국 영화 베스트 10에서 한국 영화가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되어 진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 특히 한류 열풍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만 양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대중문화가 열풍을 일으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으며, 더욱이 과거 식민지 역사에 의해 한국에는 여전히 강한 반일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일본에도 넓게 인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한류를 수용하고 언급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22)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우익세력과 남성지를 중심으로 『겨울연가』에 빠진 중년 여성들을 폄하하고, 한류 드라마의 내용이 일본의 예전 드라마의 내러티브와 흡사하다는 등의 보도와 언설로 한류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한류붐과 그에 따른 한국인 및 한국이미지 상승에 대한 반발은 북한 혐오론을 더욱 심화 시키는 역할 또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비판 의견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한류붐과 한국의 이미지에는 크게 반영되지 못한 채 긍정적인 이미지의 표류가 계속 되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일본 내 재일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류로 인해 그동안 터부시되던 재일의 존재와 문제가 가시화되었고, 이들과 관련된 문화물들이 속속 제작되면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한류의 영향을 받은 재일의 경우, 한국 국적의 재일한국인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바로 조선적 재일에 대한 기피와 배제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코리언 중에는 한류에 의해 한국이 친근해진 만큼 ‘재일한국인’이라는 이름을 쉽게 거론하게 되었지만, 조선적에 대해서는 핵무기와 납치 문제로 연결해 버리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하는 이도 있다.23)

    이는 일본인의 역사 인식 부재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하는 것에서 초래된 결과라고 해석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즈츠 감독은 인터뷰에서 “앎의 견실함(知るということのたくましさ)”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면서 “인간은 앎으로써 강인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이것이 우리들의 박치기다”24)라고 하며 『박치기!』제작의 의의를 밝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2000년대 일본 사회는 한반도에 대해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모순된 시선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나아가 일본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모순된 형태로 일방적인 조선적 재일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일본사회에 남북한이 한반도를 함께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및 남북한 분단과 관련한 역사인식의 부재로 인한 재일 차별의 변용된 양상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영화 『박치기!』는 어떤 위화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6)김경일, 「북한과 일본 관계의 전개과정에 대한 분석」, 『일본어문학』제38호, 일본어문학회, 2007, p.540.  7)이시하라 신타로/니시무라 신고, 「‘납치사찰’ 시행하라!」, 『쇼쿤』, 문예춘추, 2002년 11월, p.25.  8)이시하라 신타로, 「나는 捏造보도를 용서할 수 없다」, 『쇼쿤』, 문예춘추, 2004년 1월, pp.24~25.  9)그들은 당초 열흘에서 2주일 정도 일본에 머물 예정이었나, 국민의 격양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들이 잔류 의사를 밝혔고, 일본정부도 그들의 영주 귀국을 결정했다. 이에 북한은 납치 생존자 5명을 평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은 약속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한상일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기파랑, 2008, pp.329~330.  10)김경일, 앞의 논문, pp.538~539.  11)한상일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기파랑, 2008, p.329.  12)2005년 2월 2일자 네이쳐(Nature)지의 보도에 따르면,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감정한 제국(帝国)대학토미오 요시이(富夫吉井) 교수와의 대담 중 토미오 교수는 분석결과가 확정적인(non conclusive) 것이 아니며 유골 샘플이 이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네이처는 제국대학의 요시이 교수를 포함해 일본에서 화장 유골을 감정한 경험이 있는 법의학 전문가가 거의 없고, 1,200℃에서 화장된 유골에서 DNA가 장시간 남아있을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감정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김경일, 앞의 논문, p.540)  13)한상일, 앞의 책, p.319.  14)편집부, 「조선문제에 관한 본지의 보도에 관하여」, 『세카이(世界)』, 이와나미서점, 2003년 2월, pp.260~266.  15)이정화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인정 이후 드러나는 납치 가족들을 둘러싼 철저한 언론 통제와 사회적 언술의 균일화가 서민들의 일상에 퍼져가고 있는 와중에 수많은 재일의 삶들이 기호로서의 ‘납치’로 요약되어 버림을 개탄하고, 북한이라는 용어가 범람하면서 재일의 존재를 그 기호에 맞추어 들춰내고 그들에게 어느 쪽 재일인가를 질문하는 일본의 국가적 장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정화, 「재일 재한 이정화」, 『한겨례 21』488호, 2003년)  16)테사모리스 스즈키, 「히스테리의 정치학 - 미국의 이라크, 일본의 북조선」, 『세계』no.710, 이와나미 서점, 2003, p.231.  17)위의 논문, p.231.  18)후지타 히사카즈, 「조일 ‘부정상(不正常)’ 관계와 국제법 -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no.710, 이와나미 서점, 2003, p.220.  19)한겨례 21, 2003년 8월 14일.  20)한겨례 21, 2003년 8월 14일.  21)이와부치 고이치, 「한루가 재일한국인과 만날 때 : 초국가적 미디어 교류와 로컬 다문화 정치이ㅡ 교착」, 『한국방송영상진흥원』제11호, 2004, pp.100~107.  22)김경희, 「한류를 통한 한국ㆍ일본ㆍ재일코리언의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제언」, 『재외한인연구』제22호, 재외한인학회, 2010, p.190.  23)위의 논문, p.195.  24)이즈츠 카즈유키, 「인간은 앎으로써 강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이것이 우리의 박치기다.」, 『기네마 순보』 2005년 1월, p.11.

    3. 영화 『박치기!』속 재일 표상

    영화 『박치기!』는 2장에서 살펴본 일본 사회의 한반도에 대한 모순된 시선 및 이로 인한 재일 차별의 변용양상을 영화를 통해 지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고찰에 앞서 간략히 영화 『박치기!』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영화는 일본 고교생 코스케가 조선학교 여학생 경자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을 하면서 경자의 가족을 포함한 재일에 대해 알아가고 그들을 이해해가면서 본인 또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전체적인 테마는 임진강이라는 주제곡의 내용25)처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일본인과 재일의 화해 또는 화합의 도모, 나아가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적 화합(세계평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는 주인공 코스케가 화합의 매개체적 인물이 되어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끌어간다.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축은 재일을 막연히 두려워만 하던 코스케가 임진강이라는 노래에 이끌려 경자를 만남 → 경자에게 첫 눈에 반함 → 임진강 노래와 재일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어감 → 친구가 된 재덕의 죽음으로 재일 부락 사람들로부터 내쳐짐 → 일본인과 재일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강이 있음을 깨달으며 괴로워함 →라디오 노래 경연에 참가하여 임진강을 부름 → 경자와의 사랑 성취로 구성되어져 있다.

    여기에 경자의 오빠인 안성과 모모코의 사랑이야기, 조선고등학교 와 일본인 고등학교 학생들 간의 반목과 대립, 재일의 역사, 북송문제, 베트남 전쟁, 문화에 대한 자주규제 문제, 한반도 분단 문제, 68운동의 일본 내적 발현(전공투 등), 재일 차별의 문제 등 과거 되돌아보기 라는 계몽적 서사가 함께 전개된다.

    이처럼 영화 『박치기!』는 1968년이라는 시대성을 이용하여,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는, 고착일로의 재일차별에 대해 지적하며, 그중에서도 북한 = 조선적 재일이라는 도식을 이용하여 재일 차별을 지속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현주소를 비판하고 계몽하려 하는 영화라 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에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 일본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조선학교 여학생들을 겁박하는 일본인 남학생들의 장면을 배치하면서 치마저고리로 상징되는 고전적 수법의 재일차별의 양상을 묘사하고 있다.

    하교 중이던 조선학교 여학생 경자와 친구는 나가사키에서 수학여행을 온 일본인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치마 저고리를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은 경자의 저고리를 더럽히며 그녀들의 학교를 조선 고급 불고기학교라고 멸시하 듯 말한다. 경자와 친구는 일본인 학생들의 괴롭힘에 반항하지만 남학생들에게 힘으로 제압당하고 만다. '치마 고리'로 상징되는 조선학교 교복의 여학생들은 끊임없이 일본사회의 표적이 되어왔다.26) 치마저고리와 관련된 각종 사건들은 문화물에서 끊임없이 묘사되는 대표적 재일 차별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또한 끊임없이 지속되는 차별의 대표 사건으로 이어져오고 있기도 하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 일본에서는 치마 저고리에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조선= 현재의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차별을 계속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일본사회의 현주소를 연상시키듯, 영화 초반에 배치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와 관련된 경제적 원조- 배상책임을 감춘 -, 정치적 담화 발표 - 발표 후 바로 망언이 이어지지만 - 등에서 보여지는 외피 뒤에 감추어진 내부적 차별을 그려내고 있다. 즉 국제화, 다양화를 주창하면서도 이면에는 북한 혐오론을 덧씌우며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일본사회의 이면적인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남학생들의 괴롭힘에 앙갚음을 하기 위해 조선학교 학생들은 단체로 달려들어 수학여행 버스를 전복시켜 버린다. 보복이라 하기에 는 다소 과격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차별에 대한 응집된 울분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재일을 테마로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재일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 즉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재일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면서 서로간의 생각과 이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는 재일과 일본인의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일본이라는 국가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서로간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고 차별과 저항이 지속되고 있는 두 집단간의 대립관계의 문제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영화 의 시선은 매우 적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간의 시 선의 차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강구한다고 하는 영화의 방법적 선택은 재일과 일본인이 역지사지 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27)

    버스 전복사건 이후, 신문에서는 버스가 전복된 모습을 찍은 커다란 사진과 함께 “조선학교 학생들의 대난투”라는 큰 글씨의 기사를보도하고 있다. 위의 장면은 바로 그 기사를 클로즈업한 장면이다. 이 기사에서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기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일본 학생들이 조선학교 여학생을 괴롭혀 생겨난 사건이라는 '인과관계' 보다는 조선학교 학생들 이 버스를 뒤집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어 조선학교 학생들의 가해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면은 1968년의 미디어의 실태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보도형태가 약 30년이 지난 21세기 현재까지도 변함 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건의 전말에 대한 편향된 보도, 즉 일본인 학생의 가해사실에 대해서는 소거하고, 일방적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의 가해성을 강조하여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전도시켜 버리는 것으로 재일의 폭력적 이미지를 생산및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근대 식민통치 및 전쟁 유발의 책임을 소거시키고 전쟁의 피해자로써의 일본의 일반 국민들, 유일한 피폭민족이라는 피해자 도식을 구축해갔던 일본의 역사왜곡의 궤적을 이어가는 또 다른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2장에서 살펴보았던 현재 일본 사회의 북한에 대한 보도 실태와도 연결되어진다. 사실에 대한 소거, 은폐, 조장을 유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 그리고 이를 확장시키는 미디어 매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투영된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위의 장면에 이어 일본학교 선생님은 청춘의 열정을 패싸움 대신 좋은 곳에 사용할 것을 권하면서, 노리오와 코스케에게 조선학교에 친선축구경기를 제안하고 오도록 시킨다. 이에 노리오와 코스케는 하교길 조선학교를 찾는다. 다음은 조선학교 화장실에서 안성, 재덕, 범호가 나눈 대화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일본사회에서 사회 제도적 제약으로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재일의 현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본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의 경우 프로 축구선수와는 달리 일본국적 보유자, 타국에서의 공식 대표 전 출장전력이 없는 자에 한해 국가대표 선수권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재일 포함-들에게는 국가대표 선수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1960년대에도, 세계화, 국제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2000년대에도 변하지 않는 일본민족의 단일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인성과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모순된 일본의 폐쇄적 제도 및 구조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범호의 “적투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오랫동안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으로 느끼는, 재일들의 마음의 불안과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학교를 찾아 우여곡절 끝에 친선경기를 제안하고 돌아온 후, 코스케는 친구인 노리오와 기타를 사기위해 기타가게에 들렀다가 임진강에 대해 알고 있는 사카자키와 만나게 된다. 임진강은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 코스케의 귀를 자극했던 노래였다. 사카자키는 임진강에 대해 설명하면서 포크송과 자주 제작판에 대해 알려주는데, 코스케가 관심을 보이자 직접 보여주겠다고 자신의 가게로 둘을 데리고 온다.

    위의 인용문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에 대해 어른들이 코스케와 노리오에게 알려주는 장면이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사카자키는 『하렌치』 LP판을 직접 들려주면서 노래의 테마인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재일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리고 뒤이어 함께 있던 손님들이 한반도 분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면고찰에 앞서 우선 영화의 테마곡이기도 하며 영화 내러티브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노래 ‘임진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한다. 노래 임진강은 북한인 고종한이 작곡하고 박세영이 작사하여 1957년 7월에 발표된 음악이다. 이것을 일본의 더 포크 크루세더스라는 밴드의 작사가인 마츠야마 타케시(松山猛)가 번역하여, 1967년 일본에서 동(同)그룹의 싱글 앨범 『하렌치(ハレンチ)30)』에 수록하여 발표하였는 데, 1968년 임진강은 발매 중지31)되었다. 마츠야마는 영화 『박치기!』의 원작인 『소년M의 임진강(少年Mのイムジン河)32)에서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임진강을 번역하여 부르게 된 구체적인 과정을 밝히고 있는 데,33) 발매 중지 되었던 이 노래는 1995년에 인디즈 앨범 『하렌치+1(ハレンチ+1)』에 다시 임진강을 추가 수록하여 발매되었고, 2002년 3월 21일, 발매 중지 이후 34년만에 AGENT CON-SIPIO에서 첫 싱글앨범이 발매되어 오리콘 싱글차트 14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후 일본의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지게 된34) 노래이다. 영화에서 는 이 노래가 재일과 일본인의 관계가 전환되는 중요한 지점들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는 임진강의 노래와 역사에서처럼 심리적 거리가 큰 일본인과 재일 사이의 임진강을 건너고자 하는 영화의 의도라고 보여지며, 결국 이것이 전체 영화의 테마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과 재일의 화합을 이루기 위한 문화적 시도로써 영화 박치기는 북한에서 제작되고 일본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노래 임진강처럼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위의 인용문은 코스케가 노래 임진강을 통해 재일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임진강이 라는 노래와 재일 소녀 경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코스케는 사카자키와 의 만남을 계기로 재일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재일 부락과 일본인 마을을 가르고 있는 가모강(鴨河)-임진강의 은유-을 지나면서 코스케와 노리오는 소련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만약에 지금 서 있는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선이 갈라진다면, 전쟁을 하는 이유는 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재일과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교토에서만이라도 일본에서 독립하여 독립국을 건설한다면 재일부락과 일본인 마을이 한나라가 되어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기에 이른다.

    둘의 상상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근대에 만들 어진 공동체 개념의 탈구축이 상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사 회의 재일문제에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재일과 일본인의 대립 은 일본이라는 국가 경계 안에서 생겨난 메이저 일본인과 마이너 재일이라는 에스닉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절충되지 못하고 대립이 이어지면서 발생된 차별구도이다. 좀 더 역사적으로 회귀해보면 식민 통치를 행한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조선이라는 민족문제가 현재까지 지속된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관계가 일본인과 재일의 관계인 것이며, 이들의 관계에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라는 근대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둘의 상상을 통해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대립의 역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 경계의 탈 구축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장면이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는 이유이다.또한 이것은 앞에서 서술했듯이 감독이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한 “안다고 하는 것, 배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을 통해 인간이 견실해져 가는 것”35)이 주인공 코스케와 친구를 통해 강조되어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이를 통해 일본인과 재일간의 일그러진 관계가 결국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와 조선의 식민통치로 인한 것이라는 역사적 인 식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고 정지 상태에 있는 일본의 현재 젊은이들에게 앎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아는 것을 통해 이해와 관계개선으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장면이 의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위의 대화가 술집이라 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대화’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와의 좌담회에서 1960년대에는 “언어가 중요한 시대였다”고 말하며, “당시는 이데올로기적인 언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다방이나 술집같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설명하거나 했다”고 회상하였다.36) 이처럼 1960년대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2000년대, 그리고 어른과 젊은이들의 소통이 부재해져 더욱 배우는 것이 어려워진 일본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직접적인 대사와 장면으로 일본사회 비판하면서 현재 사고가 정지해버린 일본인들이 행하는 북한과 조선적 재일에 대한 차별 및 적대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가모(鴨)강을 지나던 코스케는 강 건너에서 플릇 연습을 하고 있는 경자를 발견한다. 그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일본인 마을 쪽강 근처로 뛰어가 “슈왓치(シュワッチ!)”37)를 외치고 강으로 뛰어들 어 경자가 있는 곳을 향해 건너간다.

    힘차게 슈왓치를 외친 코스케는 강물을 거슬러 경자가 있는 곳까지 건너간다. 영화에서는 코스케가 강물을 헤치고 건너는 장면을 롱샷,미디엄샷, 클로즈업샷으로 표현하며 험난한 강 건너기의 과정을 관객 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심리적 거리인 임진강을 건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은유한다. 강을 건너온 코스케와 코스케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경자는 임진강 가사와 고향에 대한 이야 기를 나누며 보다 가까워진다. 그리고 코스케는 경자와의 대화를 통해 재일에 대해 더욱 알아가게 된다. 둘의 관계가 개선되어가는 장면에서 는 임진강 노래가 흐른다. 느리고 잔잔하게 흐르던 임진강 노래는 코스케가 경자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후 이어진 경자의 대사에서부터 점점 크게 흐르기 시작한다. “만약 말이야, 나와 코짱이 쭈욱 사귀어서,만약 결혼 같은 걸 하게 된다면, 조선인이 될 수 있어?”위의 3번째 장 면은 바로 경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코스케를 클로즈업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 바로 이어 영화에서는 암흑 씬을 배치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부여한다.

    이후 친구가 된 재덕의 갑작스런 죽음이 발생한다. 그리고 장례식에 함께 참여한 코스케에게 재덕이의 숙부와 재일 어른들은 일본사회의 재일 차별을 이야기한다.

    위의 인용문은 재덕의 큰아버지가 코스케에게 재일의 역사, 재일로 써의 삶의 애환을 토로하며 나가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다. 여기에 큰어머니와 주변의 어른들도 일본에서 재일로 살아온 힘겨운 과거에 해토로한다. 큰아버지는 코스케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 쪽바리, 멍청이들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무지한 재일 젊은이들을 향해 격노한다. 그리고 역사에 대해 무지하면서 재일을 차별하는 일본인들 을 비판한다. 이 장면은 현재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재일에 대해서 무지하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고가 정지해버린 일본인들.39) 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재덕이 어머니의 통곡소리와 재일 부락 사람들의 한탄소리가 더해져 한층 깊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일본사회의 재일 차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재일들의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 또한 지적하고 있다. 재일부락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코스케에게 재일 사람들은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쪽바리, 멍청이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들 또한 일본인을 배척하고 있다. 즉 재일 집단 또한 일본인과의 관계에있어 우리와 다른 너희들이라는 경계를 설정하여 그들만의 테두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이해의 부족을 두 집단사이의 관계개선이 힘든 장애라 설정, 묘사하면서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두 집단 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렇게 갈등이 계속 되고 있는 두 집단의 관계개선에 있어 선행되어야 할 올바른 역사인 식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역사문제와 함께 변용된 재일 차별로써의 조선적 재일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현재 일본사회에 만연된 북한 때리기와 재일 차별의 실태를 비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5)임진강의 원시(原詩)는 “물새는 자유로이 넘나들며날건만/내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임진강 흐름아 원한 실고 흐르느냐/강건너 갈밭에서 갈새만 슬피울고/내 마음 들판에서 뿔뿌리를 캐건만/이삭바다 물결위에 춤추니/임진강 흐름아 원한실고 흐르느냐/내 고향 북녁땅 가고파도 못가니/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 이다. 그러나 마츠야마가 원시를 번역하면서 내용을 바꾸고 있으며, 또 한 1절 밖에 없는 가사가 너무 짧아서 2,3절을 만들어서 붙여 넣었다.바뀐 시는 다음과 같다. “イムジン 河水きよく/とうとうと ながる/水鳥自由に/むらがり とびかうよ/我が祖國 南の地/おもいは はるか/イムジン河 水きよく/とうとうと ながる/北の大地から 南の空へ/飛びゆく鳥よ 自由の使者よ/誰が祖國を 二つに分けてしまったの/誰が祖國を 分けてしまったの/ムジン河空遠く/虹よかかっておくれ/河よ思いを傳えておくれ/ふるさとを いつまでも 忘れはしない/イムジン河水きよく/とうとうとながる.” (마츠야마 타케시 『소년M의 임진강』키라쿠샤(木樂社), 2002, pp.44~47) 번역과 첨가로 내용상 달라지기는 했지만, 두 곡은 모두 임진강을 보며 분단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감독은 이 점에 착안하여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6)김태영, 『저항과 극복의 갈림길에서』, 지식산업사, 2005.  27)그러나 재일에 대한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묘사는 왜 재일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재일의 부정적 이미지가 정형화되게 하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28)이즈츠 카즈유키, 『박치기! 프리미엄 에디션』, happynet pictures, 2005.  29)이즈츠 카즈유키, 『박치기! 프리미엄 에디션』, happynet pictures, 2005.  30)ハレンチ란 살린다(いかす), 멋지다(かっこいい)라는 의미의 감탄사. 1968년에 주로 사용된 속어로, 원뜻은 破廉恥, 즉 창피함을 모른다(恥知らず)는 뜻인데, 가타가나로 하렌치(ハレンチ)라고 표기할 경우 살린다, 멋지다, 훌륭하다(ニクい), 최고(サイコー)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어 속어사전 「ハレンチ(はれんち)」の意味, 2005~2012, http://zokugo-dict.com/26ha/harenchi.htm)  31)발매 금지는 법적으로 판매를 금지시키는 것이지만, 발매 중지는 자발적으로 매체나 판매자가 음악에 정치성을 투영시켜 음악의 발신을 제재하는 을 의미한다. 실제로 임진강은 북한의 노래를 번역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레코드 회사에서 일본과의 국교가 없는 북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이 북한의 음악이 일본에서 히트하는 것을 경계하여 레코드 회사에 압력을 넣어, 자발적으로 판매를 중지시키게 되었다. (http://ja.wikipedia.org/wiki/イムジン河, 2012.10.05,20:43)  32)마츠야마 타케시, 앞의 책.  33)마츠야마 타케시, 앞의 책, p.32, pp.44~45.  34)新井英一(1997) 『オールドファッション・ラブソング』, 高石友也(1997) 『高石友也フォー クㆍアルバム第3集(+4)』, RIKKI(1998) 『miss you amami』, キム・ヨンジャ(2000) 『虹 の架け橋』, ばんばひろふみ(2001) 『Hello Again』, 杉田二郎(2001) 『Ba.Ba.Lu de Jiro』, キ ムㆍヨンジャ(2002) 『夢千里』, 新垣勉(2003) 『青い空は』 등.  35)이즈츠 카즈유키, 「인간은 앎으로써 강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이것이 우리의 박치기다.」, 『기네마 순보』, 2005년 1월, p.11.  36)고모리 요이치/이즈츠 카즈유키, 「<특별대담> 『박치기!』의 시대와 현재 - 감각과 언어 가 동시에 존재했던 그 시대, 완전한 사고정지 상태인 현재, 이건 그런 일본사회에 대한 박치기였다.」, 『시네프론트』, 시네프론트사, 2006, p.30.  37)이것은 코스케가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한 주문으로, 슈왓치라는 단어는 천재바카봉(天才バカボン)이라는 아카츠카 후지오(赤塚 藤雄)의 만화에서 사용된 의성어이다. 아카츠카는 개그만화로 유명한 만화가로 끊임없는 인기를 누린 작가이다. 이 만화는 1967년 4월 9일 발행된 주간 소년 매거진(週刊少年マガジン)에 처음으로 실렸으며, 슈 왓치라는 말은 등장인물 중 한명인 하지메짱(はじめちゃん)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울트라맨이 좋겠다. 슈왓치!(ウルトラマンがいいのだ、シュワッチ)라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감독은 바로 이 만화에서 사용된 슈왓치!라는 단어 를 제재로 사용한 것이다.  38)이즈츠 카즈유키, 『박치기! 프리미엄 에디션』, happynet pictures, 2005.  39)고모리 요이치/이즈츠 카즈유키, 앞의 논문, p.33.

    4. 나오며

    이상으로 영화 『박치기!』에 내포된 조선적 재일의 묘사 양상을 살펴보고 동시대 담론과의 연관성을 도출해 보았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대사와 장면 묘사를 통해 일본사회의 부조리와 재일사회의 폐쇄성을 비판하면서, 서로간의 인식과 이해의 차이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1960년대라는 설정을 통해 비판의 효과를 부가시키고 있다. 또한 기존의 재일을 다룬 영화에서와 같이 일본사회만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인이 재일을 인식하는 시선까지도 영화에 포함시키면서 양쪽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다시 생각할 여지를 남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고에서 주목한 점은, 재일 묘사와 관련하여 한국적 재일이 아닌 조선적 재일이라는 설정을 통해 당시의 북한 혐오론의 희생양이 된 조선적 재일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학교로 대표되는 조선적 재일 집단, 치마 저고리로 상징되는 조선적 재일, 그들이 귀국코자 하는 조국이 명시하는 북한, 북한에서 만들어진 노래 임진강이라는 영화적 설정을 통해 조선적 재일의 삶을 그리면서, 조선=북한이라는 도식과 기호화가 부가한 일본사회 속 차별의 실체를 시각화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 일본사회에서행해지고 있는 조선적 재일에 대한 차별에 반성과 재고를 촉구하는 자성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 1. 김 경일 2007 [『일본어문학』]
  • 2. 김 경희 2010 [『재외한인연구』]
  • 3. 신 명직 2007 [『역사비평』] Vol.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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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이 정화 2003 [『한겨례 21』]
  • 7. 이시하라 신타로, 니시무라 신고 [『쇼쿤』]
  • 8. 이시하라 신타로 [『쇼쿤』]
  • 9. 이즈츠 카즈유키 2005 [『기네마 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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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http://zokugo-dict.com/26ha/harenchi.htm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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