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KN-TV의 특성과 문화적 영향(1957~1996)*

Characteristics of AFKN and Its Cultural Influences in Korea, 1957~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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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AFKN-TV는 1957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의 대중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경로 중의 하나였다. AFKN-TV 편성의 가장 큰 특징은 오락프로그램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었다. AFKN-TV는 특히 젊은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오락매체였다. AFKN-TV의 존재는 한국인들의 미국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속적으로 미국 TV프로그램을 접촉함으로써 한국인들이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접촉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한국의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AFKN-TV의 오락프로그램을 시청함으로써 새로운 한국의 대중문화를 창조하는 데 영향을 받기도 했다.


    AFKN-TV had been a major channel for disseminating American popular culture from 1957 to 1996. The most distinguishing feature of AFKN-TV programming was compelling proportions of entertainment programs. AFKN-TV was one of the most popular entertainment media among younger Koreans in particular. The presence of the AFKN-TV itself was a contributing factor toward the Americanization of Koreans. By being exposed to incessant American TV programs, Korean people had grown familiarity with the American mass culture. But many Koreans did not take favorable attitudes toward the U. S. despite the exposure to American mass culture through the AFKN-TV. Many Korean artists in popular culture were inspired to create the new Korean popular culture by watching the AFKN-TV entertainment programs.

  • KEYWORD

    주한미군방송 , 대중문화 , 오락프로그램 , 미국화 , 문화제국주의

  • 1. 서론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은 당연히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영어방송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한국인들도 청취 또는 시청했다는 점에서 그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상당히 컸다. 무엇보다도 AFKN이 한국인들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중파로 라디오 방송을 했고,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VHF(초단파)채널로 텔레비전 방송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57년 9월 15일에 개국한 이후 1996년 4월 30일에 VHF채널을 반환하기까지 거의 40년 동안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시청해 왔기 때문에  AFKN-TV는 미군방송이었음에도 40년 동안 사실상 한국의 TV방송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다.

    AFKN-TV를 통해 한국인들은 미국방송의 오락적 프로그램을 일상적으로 접촉하며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즉, AFKN-TV는 “한국에서 미국 대중문화 전파의 가장 중요한 채널”이었고, “한국에 미국문화를 전파하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파이프라인”이었다(강현두, 1994, 108쪽). 또한 AFKN-TV는 “세계문화의 변방인 한국을 미국 방송문화의 가시청권으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이성욱, 2000, 221~222쪽).

    원우현은 AFKN-TV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정보추구욕구를 만족시켜 주며, 미국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국내프로그램의 제작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영어습득의 훈련장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문화종속 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고급문화취향의 쇠퇴현상을 가져 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원우현, 1983, 66~70쪽). 특히 1983년에 위성을 통해 직접 미국의 상업적 프로그램들이 AFKN-TV를 통해 대거 방송되면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AFKN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별로 많지 않았고, 특히 AFKN-TV의 역사에 대해서는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AFKN-TV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AFKN-TV의 특성이나 영향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전혀 없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나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한국 대중문화의 형성 과정에 작용하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던 AFKN-TV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이렇듯 AFKN-TV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문제의식의 부족과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우선 AFKN-TV의 문화적 영향력에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이런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여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AFKN-TV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영향을 주었다.

    본 연구에서는 AFKN-TV가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AFKN-TV의 역사적 특성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한국인의 AFKN-TV 수용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AFKN-TV가 개국한 1957년부터 초단파(VHF) 채널을 반환한 1996년까지를 대상으로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AFKN-TV의 특성과 수용의 40년사를 정리하려고 하는 것은, 기존 연구가 전혀 없는 가운데 일단 AFKN-TV의 전체적인 변화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앞으로 특정 시기의 특정 주제를 중 심으로 AFKN-TV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자료1), 미군신문인 ‘태평양판 성조지’(Pacific Stars and Stripes)의 기사, 전 세계 미군방송을 관장하는 AFRTS(Armed Forces Radio and Television Service)의 자료 등도 활용할 것이다. 또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AFKN-TV 관련 기사는 물론 AFKN-TV의 수용 실태를 다룬 논문이나 보고서 등도 적극 이용할 것이며, AFKN-TV의 수용 경험을 기술한 각종 온라인 자료들도 활용할 것이다. AFKN-TV의 40년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데는 우선 문헌자료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문헌 자료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4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의 남녀 8명을 대상으로 구술 면접을 실시하였다.2) AFKN-TV를 주로 시청한 시기에 따라 수용 양상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세대별로 면접 대상자를 선정하였다.

    1)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자료 중에 AFKN 라디오의 한국인 청취에 관한 자료는 비교적 많은 반면 AFKN-TV의 한국인 시청에 대한 자료는 매우 드물다. 군사방송의 특수성 때문인지 AFKN의 한국인 수용에 대한 조사를 별도로 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한국어 방송의 청취를 연구하며 AFKN 라디오의 한국인 청취는 함께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2)구술자 1(62세, 남, 사업), 구술자 2(61세, 여, 전 대학강사), 구술자 3(남, 56세, 대학교수), 구술자 4(남, 기자, 51세), 구술자 5(남, 51세, 변호사), 구술자 6(여, 46세, 대학교수), 구술자 7(남, 41세, 회사원), 구술자 8(여, 41세, 주부) 등 8명으로 모두 청소년기 이후 서울에서 생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다. 구술 면접은 6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가능한 한 구술자들의 “기억‧소회‧느낌 등을 추적, 재구성”하고자 시도하였다(김영찬, 2011, 345~350쪽).

    2. 문화 제국주의, 미국화, 그리고 AFKN-TV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이론은 서구에 의한 비서구 사회로의 문화의 일방적인 흐름과 이로 인한 문화의 동질화 현상 및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비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Tomlinson, 1991, pp.2~8). 특히 문화 제국주의 이론을 통한 비판에서 주된 대상이 되었던 것은 바로 미국 대중문화의 확산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패권을 행사하게 된 미국이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문화 확산을 통해 자신들의 패권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의 진전 속에 문화제국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던 나라들 중 일부가 이제는 오히려 새롭게 ‘미디어 신제국주의’ 또는 ‘하부 제국주의 역할’을 하고 있고, 비록 문화의 일방적인 유입에도 불구하고 수용자들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반면에 미국 기업이 중심이 되는 초국적 미디어 기업의 세계적 지배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문화적 지배를 분석하는 데 문화 제국주의 이론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임동욱, 2009; 진달중, 2011).

    문화 제국주의 이론의 주장처럼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력하고 전면적인 것이 아닐 수는 있다. 수용자들이 나름대로 미국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있고, 때로는 이런 미국 문화를 기반으로 스스로 재창조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임동욱, 2009, 169~170쪽). 따라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다양한 제도와 가치가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 재편성과 (정보)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토대로 세계 각 지역에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그 결과 수용 지역에서 자발적이거나 강요에 의해 그런 것을 베끼고 따라잡는 현상과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김덕호‧원용진, 2008, 17쪽). ‘미국화’라고 표현한 이런 관점은 미국 문화 수용 과정의 복합성을 강조하여, 실제 미국 문화의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즉,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확산 과정뿐만 아니라 수용자들의 취향의 역동성(the dynamics of audience preference)을 고려한 수용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수용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적 변화는 물론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 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바로 미군방송이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미군 진주와 함께 시작된 미군방송은 미국 문화 확산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미군방송은 미국 상업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고, 그 나라의 방송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Morly, 2001). 의도적인 선전 수단이라고 인식되던 '미국의 소리 방송'(Voice of America, 이하 VOA)과는 달리 미군방송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오락방송으로서 ‘실제의 미국’(real United States)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Craig, 1988). 또한 미군방송은 미국의 다른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 대중문화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미군방송은 미국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주한미군 텔레비전 방송인 AFKN-TV는 다른 경로로는 보기 어려웠던 미국의 각종 오락 프로그램들을 방송했고, TV수상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은 누구나 AFKN-TV를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 문화의 확산 경로로서 AFKN-TV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AFKN-TV에 대한 한국인의 수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바로 AFKN-TV가 ‘미국화’의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AFKN-TV의 구조적 특성을 정리하고 한국인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3. AFKN-TV의 변화 과정과 편성의 특성

       1) AFKN-TV의 변화 과정

    미군은 1942년 5월에 세계 여러 곳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라디오 서비스를 담당하는 AFRS(Armed Forces Radio Service)를 창립했고, 이러한 AFRS는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에 방송국을 창설하고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1954년에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AFRS는 'T'를 추가하여 AFRTS((Armed Forces Radio and Television Service)로 확대되었다. AFRTS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그 가족, 군무원 등에게 '고국과의 연결고리'(link with home)가 되어 왔다(김이호, 1998, 33쪽).

    한국에서는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한 1945년 10월 22일에 WVTP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처음으로 미군방송이 시작되었다. 이 방송국은 극동네트워크(Far East Network)의 지역국과 같은 위상이었는데, 1949년 6월의 미군 철수 후 미국 공보원이 맡아서 운영하다가 6‧25 발발 후 방송이 중단되었다. 미군방송은 서울 수복 이후인 1950년 10월 4일에 다시 방송을 시작하였고, 이후 여러 곳에 방송국을 두며 한국만의 독자적인 네트워크인 AFKN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1957년에 들어서면서, AFKN은 확실한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하고, 서울  용산에 있던 배가본드는 지역국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중앙국(key station)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AFRTS, 1993, p.76).

    주한미군사령부는 라디오의 네트워크 체제가 구축되고 난 이후 텔레비전 방송의 개국을 준비했다. 1957년 7월에 남산에 방송국을 완성했고. 같은 달 말일에는 용산의 배가본드 힐에 라디오와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통합한 방송국 설립 공사를 시작했다.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면서 제작 인력도 크게 늘어났다. 1957년 7월에 장교 6명, 하사관 74명, 민간인 1명 등 총 81명이었지만, 정확히 1년이 지난 1958년 7월에는 장교 5명, 하사관, 116명, 민간인 2명 등 총 123명으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RG 338, 8th U. S. Army, Box 1495). 이런 인력의 증가는 텔레비전에 필요한 인력을 추가로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장비와 인력을 확보한 후 AFKN-TV는 1957년 9월 15일에 개국했다.

    15일 하오 3시 시내 남산 꼭대기에 설치된 주한미군 텔레비전 방송국(AFKN-TV)은 덱커 대장 및 뷰저 미8군 통신참모 등 미군장교 다수의 참석 하에 개국식을 거행하였다. 먼저 동방송국 개국식을 축하하는 이 대통령을 비롯한 스탐프 대장, 화이트 대장 및 덱커 대장의 메시지 녹음방송이 있었다. 주한미군 텔레비전 방송국 책임자 로버트 H. 노더어프트 소령에 의하면 동 방송국은 출력 오백 와트 채널(수신파장번호) 3으로 방송할 것이라고 한다. 실연방송을 위한 스튜디오는 내년 초에 완성될 예정이며 그때까지는 녹음과 필름만을 취급할 것인데 일반 시민이 갖고 있는 텔레비전에도 수상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평일은 하오 6시30분부터 10시 30분까지이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하오 2시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방송되리라 한다(『경향신문』1957.9.17).

    용산에 새로운 스튜디오가 완공되기 전까지 AFKN-TV는 남산에 임시방송국을 개국했던 것이다. 남산에 AFKN-TV 방송국이 머무르는 동안에는 자체 제작을 거의 하지 못하고 주로 AFRTS에서 가져온 필름들을 방송하다가, 1959년 1월 4일 용산에 스튜디오가 완공되면서 비로소 자체 제작을 하고 생방송도 할 수 있었다. 1959년 3월 1일에는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 휴전선 근처인 카이저 캠프(Camp Kaiser)에도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치했다(AFRTS, 1993, p.83). 이후 AFKN-TV는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 중계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1961년까지 전국에 약 20개 정도의 중계소를 설치해 가시청권을 확대하였다(한국방송공사, 1987, 261쪽).

    한국에서도 1956년 5월 12일에 HLKZ-TV가 시작되었지만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59년 2월 1일에 발생한 화재로 방송이 중단되었다. HLKZ-TV는 1959년 3월 1일부터 AFKN-TV가 매일 30분씩 임시방송을 위한 채널과 스튜디오를 대여해주어서 방송의 명맥을 이어가다가 5‧16 이후인 1961년 10월 15일에 방송을 중단하였다(강명구‧백미숙‧최이숙, 2007, 6쪽). HLKZ-TV가 중단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61년 12월 31일에는 KBS-TV가 개국했다. 이렇듯 AFKN-TV는 한국 TV 방송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1964년 경에는 서울의 AFKN-TV 채널이 3에서 2로 변경되었다.3)

    AFKN-TV는 1964년에 서울, 대구, 화악산(캠프 카이저), 대전, 파주, 군산, 부산 등 7개 지역에서 하루 평균 8시간 가량을 방송했다(방송연감 편찬위원회, 1965, 567쪽). 또한 1970년에는 서울, 화악산,4) 파주, 군산,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8개 지역에서 하루 평균 9시간을 방송했다(방송연감편찬위원회, 1970, 197쪽). 이렇듯 AFKN-TV는 사실상 전국망을 갖춘 TV방송국이었다. 1973년 경에는 주당 20시간가량 방송 시간을 늘리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편성을 시도하였다(Pacific Stars & Stripes, 1973.11.6). 1979년 현재 전국에서 시청 가능한 인구의 비율이 AFKN-TV의 경우 54.75%로 나타나, KBS-TV 90.42%, MBC-TV 83.25%, TBC-TV 68.25%보다는 낮았지만, 그래도 국내 시청자의 과반수가 수상기만 켜만 AFKN-TV를 시청할 수 있었다(원우현, 1980, 194쪽). AFKN-TV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방송시간을 늘리고 가시청권을 넓혀왔던 것이다.

    AFKN-TV는 KBS-TV가 컬러방송의 시험방송을 시작한 1980년 12월 1일보다 3년 8개월이나 빠른 1976년 4월에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1979년 3월에는 비용을 지불하고 금산 지구국의 비상 위상회선을 5년간 사용하기로 한 후 일부 프로그램을 위성으로 받기 시작했고, 1983년 10월 4일부터는 위성네트워크(SATNET: Satellite Network) 계획에 따라 태평양 통신위성을 통하여 프로그램 위성 전송을 실시했다(문성규, 1983). SATNET를 통해 미국의 상업 방송사가 방영하는 뉴스, 스포츠 프로그램 등 시의성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 주둔 미군들도 미국에서 방영하는 시간과 같은 시간에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20시간을 방송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당시 한국 TV방송보다 9시간 정도 많은 것이었다.5)

    AFKN-TV는 1980년대 말부터 한국 정부와 VHF채널 환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여 1991년 10월에 기본 합의를 하였다(한진만, 2003, 11~12쪽). 1995년에 AFKN-TV는 전국에 14개의 지역방송국을 운영하였는데, 그 중 서울, 부산, 진해, 회덕, 대구 등 5개 지역방송국이 VHF채널이고, 9개 지역방송국은 UHF(극초단파)채널이었다(최득룡, 1995, 56~58쪽). 1991년 10월에 체결된 ‘채널 전환 합의 각서’에 따라 AFKN-TV는 1996년 4월 30일에 VHF채널을 한국 정부에 반납하고 UHF채널 및 케이블TV방송망으로 시청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2) AFKN-TV 편성의 특성

    AFKN-TV는 프로그램의 거의 대부분을 미국 LA에 있는 AFRTS(Armed Forces Radio and Television Services)로부터 공급받았다. AFRTS는 초기에 주로 미국의 3대 상업방송인 ABC, NBC, CBS 등의 프로그램을 선택해 공급하였다. AFRTS는 닐슨의 시청률 조사와 자체적인 설문조사 등을 통해 가장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을 주로 선택하였다(김이호, 1998, 69쪽). AFKN-TV 방송은 군인방송으로서 “주 대상을 고졸 정도의 18~25세의 젊은이로 잡고 있다”고 밝혔는데(『조선일보』1985.10.25), 당연히 젊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오락프로그램이 주로 편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AFKN-TV는 미국 3대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모아서 방송하는 터이라 미국 본토의 방송보다도 더 오락적인 방송이 되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강현두, 1983, 127쪽).

    AFKN-TV는 개국 초기에는 미국 상업방송의 프로그램 외에 한국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AFKN-TV는 1957년 11월부터 미군 병사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프로그램(Command's Community Relations Program)으로서 ‘한국 이야기’(The Story of Korea)를 일주일에 3번 5분씩 방송하도록 편성했는데, 주된 내용은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었다(RG 338, 8th U. S. Army, Box 1495). 1961년에는 일주일에 3번 5분씩 한국어를 배우는 ‘한국어를 배웁시다’(Learn the (Korean) Language)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다(RG 330, AFRTS, Box 12).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어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던 것은, 미군병사들이 한국 근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런 프로그램들은 한국인 시청자가 AFKN-TV를 친근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1959년 3월부터 약 2년 반 동안 HLKZ-TV가 오후 7시부터 30분 동안 AFKN-TV채널을 통해 한국어로 방송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인이 영어 장벽을 넘어 AFKN-TV에 좀 더 쉽게 접근하고 미국 프로그램에 노출되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결정”의 산물이었다(강명구‧백미숙‧최이숙, 2007, 26쪽).

    AFKN-TV는 자체 제작을 제대로 할 수 없던 기간에 당연히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AFRTS로부터 공급받았고, 때로는 미공보원(USIA)이나 한국 공보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1958년 라디오에서 방송하고 있던 ‘한국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작업을 한국 공보처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고, 1958년 8월에는 미공보원이 제작한 필름을 AFKN-TV를 통해 방송하기도 했다(RG 338, 8th U. S. Army, Box 1495). 기본적으로는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탓이었겠지만, 여기에는 미공보원이 가능한 한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해 선전활동을 하려고 했던 의도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허은, 2008, 245~246쪽).

    자체 제작과 생방송이 가능해진 1961년에 AFKN-TV가 제작한 프로그램들은 ‘Tonight in Korea', 'Concert on the Hill', 'Teen Canteen', 'Saturday Morning Children Show' 등의 음악쇼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고, 비무장 지대를 심층보도(depth report)한 'The DMZ-A Special Report'를 방송하기도 했다(RG 330, AFRTS, Box 12). 이렇듯 AFKN-TV는 제작이 비교적 쉽고 시청자들의 호응도 좋았던 음악 프로그램이나 한국의 현실을 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방송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자체 제작한 이런 “약간의 로컬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AFRTS로부터 공급받은 “미국 3대 방송망의 프로그램과 극영화, 보도 및 교육영화 등”이었다(방송연감 편찬위원회, 1965, 567쪽).

    AFKN-TV의 프로그램 중에서 전반적으로 오락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1969년의 AFKN-TV의 프로그램 편성비율은 보도 22%, 스포츠 8%, 종교 3%, 오락 67% 등으로 오락프로그램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방송연감 편찬위원회, 1970, 197쪽). AFRTS가 주로 젊은 미군들의 오락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프로그램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AFRTS로부터 비디오테이프로 전달되는 프로그램 공급방식으로는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보도프로그램을 제때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AFKN-TV의 오락프로그램은 한국 TV방송을 통해 볼 수 있던 미국의 오락프로그램보다는 비교적 최신의 것이었고, 장르도 다양했으며, 선정성도 강한 편이었다.

    1983년 10월 4일 위성을 통한 프로그램 공급이 가능해진, SATNET 방송 실시 이후 AFKN-TV의 프로그램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1983년 10월 4일 전후 일주일의 편성비율을 비교하면 보도는 8.3%에서 26.7%로 늘어난 반면에 드라마‧영화는 44.4%에서 29.1%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이지연, 1986, 31쪽). 위성을 통해 뉴스 방송이 가능해지면서 보도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의 비중은 낮아진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1984년 현재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스포츠나 예능을 포함했을 때의 전체 오락프로그램의 비율은 여전히 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안준국, 1985, 37쪽).

    위성방송이 실시된 이후인 1985년 AFKN-TV의 자체 설문 조사에서도 뉴스, 영화, 시트콤, 스포츠 순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뉴스의 비중이 다소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많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Pacific Stars & Stripes, 1985.6.1). 더 많은 뉴스를 원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더 많은 영화 등의 오락프로그램을 요구하기도 하는 시청자들을 고려한 편성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조사결과들은 미국 본토의 뉴스에 대한 욕구도 컸지만, 미군 병사들에게는 여전히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젊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었기 때문에 AFKN-TV는 오락적인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AFKN-TV는 미국의 대중문화 중에서도 비교적 수준이 낮은 문화를 전달하는 경로가 되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던 것이다. 즉, AFKN-TV가 “미국의 저수준의 대중문화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하였고, 이런 프로그램들에서 음란성이나 폭력성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는데, 이런 선정성은 1970년대부터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강현두, 1983). 이런 경향은 당연히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고, AFKN-TV의 프로그램들은 한국 TV의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선정성이 두드러진다”는 비판을 받았다(『경향신문』1992.4.18).

    3)1963년 7월 신문에는 AFKN-TV가 서울에서 채널3과 채널 12를 사용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경향신문』1963.7.30). 1964년 1년 동안의 내용을 정리한 연감에는 AFKN-TV가 서울에서 채널2와 채널12로 방송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방송조사연구실, 1965, 567쪽).  4)1970년의 자료에 ‘학산’(채널 12)이라고 나와 있는데(방송연감 편찬위원회, 1970, 197쪽), 이는 캠프 카이저가 있던 ‘화악산’의 착오인 듯하다. 1964년의 자료에 화악산(채널 12)으로 기록되어 있고(방송연감 편찬위원회, 1965, 567쪽), 이후 다른 자료들에도 화악산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5)AFFN-TV는 위성방송 실시 전에는 평일에 정오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16시간 방송하다가 위성방송 실시 이후에는 오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20시간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동아일보』1983.10.6). 반면 한국 방송은 당시에 평일에는 오전 5시 30분경부터 10시까지 방송을 하고 중단되었다가 다시 오후 5시 30분부터 자정까지 방송을 하였으며, 주말에만 오후 방송을 1시부터 시작하여 평일보다 4시간 30분가량 더 방송을 하였다.

    4. AFKN-TV의 수용과 영향

       1) AFKN-TV의 한국인 시청의 실태

    TV 수상기는 1957년 7월에 600대, 1958년 6월에 2,700대(한국인과 미국인 소유), 1959년 3월에 3,000대, 1961년 1월에 5,000대에 불과했다(장영민, 2013, 681~684쪽). 당시 TV수상기가 대단히 고가였기 때문에 극히 일부 계층만이 이를 소유할 수 있었다. 1958년 1월에 HLKZ-TV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HLKZ-TV만 보는 시청자는 20%, AFKN-TV만 보는 시청자는 5%, 나머지는 양쪽을 골라가며 모두 본다고 응답했다(한국방송공사, 1977, 525쪽). 1961년 12월에 KBS-TV가 개국하였지만 한 동안 AFKN-TV를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1962년 5월에 공보부가 조사한 자료에서 시청자들은 하루 평균 KBS-TV를 2시간 49분, AFKN-TV를 1시간 22분 동안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경향신문』1962.7.3). KBS-TV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흥미를 끌만한 프로그램이 부족했고, 당시 TV 수상기를 소유한 계층의 미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에 TBC-TV, 1969년에 MBC-TV가 개국하여 시청자들은 비교적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TBC-TV는 서울과 부산에서만 방송을 하여, 시청자들이 전국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이렇듯 3개의 한국 TV방송국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한국인 중 일부는 AFKN-TV를 주로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7년 7월에 TBC 부산지국에서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TV채널로 1%가 AFKN-TV를 선택했다(『중앙일보』1964.7.3). 중앙일보사가 1967년 12월에 전국에서 2,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TV방송국으로 2.6%가 AFKN-TV를 꼽았다(『중앙일보』1968.1.4). 고려대 사회경제연구소가 1968년 12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가장 많이 시청하는 방송으로 1.5%가 AFKN-TV를 꼽았다(『중앙일보』1969.1.1). 이렇듯 1960년대에 전국적으로 대략 1~2% 정도가 가장 많이 시청하는 TV 채널로 AFKN-TV를 꼽았다. 주로 한국 TV방송을 보면서도 가끔 AFKN-TV를 시청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한국인 중 상당수가 AFKN-TV를 보았을 텐데, 이를 감안해 한국 신문들은 AFKN-TV의 주요 프로그램 안내 기사를 게재하였다.

    1968년 8월에 미국 문화원이 전국에 걸쳐 ‘엘리트’ 1187명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서 주로 시청하는 방송국으로 TBC-TV가 63%, KBS-TV가 31%, AFKNTV 5%로 나타났다(RG 306, USIA, Box 67). <표 1>에서 나타나듯이 AFKN-TV를 주로 본다는 비율이 5%로 나타난 것은, 상대적으로 학력수준이 높은 엘리트들이 AFKN-TV를 더 많이 시청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엘리트 중에서도 작가나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 언론인, 대학교수 등이 AFKN-TV를 시청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령적으로는 25~34세 사이가 10%, 35~44세가 6%로 높게 나타나, 주로 20대나 30대의 젊은 층들이 주로 AFKN-TV를 시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6년에 실시된 한국방송보호협회의 조사에서도 ‘채널별 선호도’에서 AFKN-TV가 3%로 나타났다(오순정, 1994, 348쪽). 1978년에 전국 1,752명을 대상으로 한국방송보호협의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AFKN-TV를 주로 시청한다는 비율이 전체적으로 6.91%로 나타났다(오순정 외, 1978, 203~209쪽). 이 조사는 사실상 복수응답을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비율이 높게 나왔는데, 만약 주로 시청하는 TV방송국을 하나만 고르라고 했다면 AFKN-TV를 주로 시청하다는 비율은 이보다는 상당히 낮아졌을 것이다.6) 1979년 7월에 2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서울, 부산, 대구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AFKN이나 일본방송’을 ‘거의 모두 시청함’이 0.4%, ‘상당히 많이 시청함’이 5.9%, ‘경우에 따라 시청함’이 45.1%로 나타났다(박기성, 1979, 75쪽). 이런 두 조사결과를 통해 1970년대 말에 AFKN-TV를 가끔이라도 보는 시청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8년의 조사에서는 15~19세의 시청률이 16.0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25~29세는 12.5%, 20~24세는 9.62%, 30~34세는 9.3%로 나타나 젊은 사람들이 주로 AFKN-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력에서는 대학원졸 10.87%, 대졸 9.76% 순으로 나타나,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AFKN-TV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자료에서 10대 청소년들도 상당수가 주로 AFKN-TV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매우 특징적인 것이었다. 다만 직업별로 분류한 자료에서 대학생들의 AFKN-TV 시청률이 23.21%인데 비해 중‧고생은 5.86%였던 것을 통해, 만 나이로 10대 말인 대학생들이 중‧고생보다 더 많이 AFKN-TV를 시청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1981년에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표 2>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강수, 1981, 179~181쪽).

    <표 2>를 보면, 가장 즐겨 보는 TV 방송으로 AFKN-TV를 선택한 비율이 대학생은 25.0%였는데, 남고생은 10.5%, 여고생은 5.3%로 나타나, AFKN-TV를 주로 시청하는 시청자는 대학생 중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끔 시청한다는 비율까지를 포함하면 남고생의 84.2%, 여고생의 81.4%, 대학생의 78.8%가 AFKN-TV를 보는 것으로 나타나, AFKN-TV를 가끔이라도 접촉하는 비율은 오히려 고등학생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중고생이나 대학생 중 약 80% 정도가 가끔이라도 시청할 정도로 청소년층에서 AFKN-TV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AFKN-TV의 청소년 시청자들이 늘어났던 데는 1970년대 들어서서 청소년들의 TV 시청이 전반적으로 늘어났다는7) 점과 이들이 좋아할 만한 AFKN-TV의 오락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 작용했다.

    중고생이나 대학생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는 하지만 다른 연령층에서도 AFKN-TV를 비교적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에도 전국적으로 전연령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AFKN-TV를 주로 시청한다는 비율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났다. 1981년에 한국광보문화연구원이 전국에 설쳐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9%가 AFKN-TV를 가장 많이 시청한다고 응답했다(『중앙일보』1981.5.15). 1984년 9월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전국의 12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AFKN-TV를 주로 시청한다는 비율이 0.6%로 나타났고, 학력에서는 대재(1.9%)나 대졸이상(2.2%)이 비교적 많이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상희‧추광영, 1985, 179~181쪽). 1988년 12월에 KBS 부설 한국방송문화연구소가 전국에서 조사한 결과에서 가장 자주 시청하는 채널로 1%가 AFKN-TV를 들었다(『중앙일보』1989.2.10).

    한편 1984년 4월 조사한 결과에서 방송언론인 중에서 AFKN-TV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은 16.7%에 불과하여 대부분이 AFKN-TV를 시청했고, 또한 전 응답자의 일일시청 평균시간은 51.6분으로 시청시간도 상당히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지연, 1986, 41쪽). 1984년 10월 조사한 자료에서 교수들 중 AFKN-TV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7.3%에 불과했고, “대단히 자주 본다”(13.4%), “자주 본다”(20.7%), “보통 본다”(30.5%), “가끔 본다”(28.0%)로 나타나 교수들의 대부분은 AFKN-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안준국, 1985, 50쪽). 이렇듯 방송언론인이나 교수들이 다른 집단들보다 훨씬 더 많이 AFKN-TV를 시청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영어 실력이 더 좋고 뉴스에 대한 관심도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84년 4월의 조사에서 대학생들은 하루 평균 48분 정도 AFKN-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강종근, 1985, 236쪽). 1984년 10월의 조사에서 대학생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시청한다”는 비율이 70.9%로 가장 많았고, “방학 때 주로 시청한다”가 5.4%, “1년 전후로 (계속) 시청했다는 정규시청자가”가 전체의 7.8%를 차지하여, 틈틈이 AFKN-TV를 보는 대학생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김희동, 1985, 36쪽). 1987년 4월의 조사에서 중고생들의 95%가 AFKN-TV를 시청하고 있으며, 이들 중 하루 평균 30분 이하 시청하는 경우는 32%였고, 30분에서 1시간 시청하는 집단은 35%였으며, 1시간 이상 시청하는 비율은 33%로 나타났다(김원용‧강종근, 1990, 176~177쪽).

    1980년대 내내 전체적으로 중고생이나 대학생들이 AFKN-TV를 많이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FKN-TV가 위성방송을 실시한 1983년 이후 AFKN-TV를 접촉하는 비율이 더 늘어났고, 특히 청소년층에서 비교적 자주 보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당시 한 신문은 “KBS와 MBC 등이 차체 조사한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AFKN의 국내 시청률은 83~86년 사이에 크게 높았다가 2, 3년 전부터 다소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특히 젊은 층 사이에 적지 않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방송학자들이 추산하는 AFKN의 국내 시청률은 대략 3% 정도”라고 평가하였다(『동아일보』1989.5.25). 여기에 가끔 보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980년대에도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AFKN-TV를 시청했고, 1990년대에 가면 프로레슬링 등을 보기 위해 초등학생들까지 AFKN-TV를 시청하게 되면서 시청자 층이 더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중앙일보』1990.11.19.).

       2) AFKN-TV의 한국인 선호 프로그램

    AFKN-TV 시청은 한국 방송이 하지 않는 시간대에, 한국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주로 보았다. 구술자 1은 1960년대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하면 보곤 했어요. 로하이드(Rawhide)나 컴뱃(Combat) 같은 것들을 주로 보았지요.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어서 끝까지 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요. 심야 영화도 볼 때가 있었는데 한국 방송에 비해 다소 야했지요”라고 응답했다(구술자 1). 1960년대까지 텔레비전은 대개 안방이나 거실에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틈 날 때마다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반면 구술자 2는 고교 시절까지는 AFKN의 TV보다 라디오를 더 많이 접촉했지만, 1970년대 초 대학 시절에 학원이 AFKN-TV 뉴스청취반을 수강하면서 뉴스를 보게 되었고, 이후 재미있는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고 한다(구술자 2).

    1970년대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한국 TV 방송이 끝난 심야 시간대에 AFKN-TV를 주로 시청하였다. 심야 시간대 AFKN-TV 시청은 ‘성인 시청용’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청소년들의 호기심도 작용한 것으로, 1970년대에 이미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경향신문』1974.12.11). 한 구술 대상자가 “아주 저학년 때가 아니라면 주로 형제들끼리, 특히 AFKN 같은 경우는 주로 야한 것을 찾아서, 국내방송보다는 좀 더 야했기 때문에” 시청했다고 대답한 것을 통해서도 청소년들이 한국 TV방송에서는 보기 어려운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AFKN-TV를 시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김영찬, 2011, 357쪽). 1970년대에도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았지만,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컸던 만큼 “미국 팝가수들의 공연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소울 트레인(Soul Train) 같은 것을 자주 보았어요”라는 대답도 나왔다(구술자 3). 팝송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 몰라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에 한 신문은 “최근 AFKN-TV를 시청하는 사람의 수가 급작스럽게 늘고 있다. 영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어에 익숙치 못한 사람까지도 AFKN으로 채널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식상한 사람의 수가 급증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보도했다(『경향신문』1979.2.6). 한국 TV방송의 진부한 프로그램에 대한 식상함도 한국인이 AFKN-TV를 많이 보도록 만든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군사정권 하에서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져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못하던 현실이 AFKN-TV로 채널을 돌리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1970년대 말에 “제네랄 호스피탈(General Hospital)이나 소울 트레인을 주로 보았지요”라거나(구술자 4) “제네랄 호스피탈이나 달라스(Dallas)를 본 기억이 납니다”(구술자 5)라는 대답들을 보면,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음악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구술의 내용은 조사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80년의 조사에서 고교생들과 대학생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으로는 “Midnight Special”(10.4%), “Movie in Motion”(10.1%), “Sports”(10.0%), “Soul Train”(9.1%), “General Hospital”(8.1%), “CHIPS"(6.2%) 순으로 나타났다(이강수, 1981, 183~184쪽). 이것을 보면 젊은 층들은 주로 “Midnight Special”이나 “Soul Train”같은 음악프로그램, “Movie in Motion,” “General Hospital,” "CHIPS" 같은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다양한 “Sports” 프로그램을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1984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오후에는 15.7%가, 심야시간에는 37.2%가 AFKN-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당시 한국 TV가 방송되지 않던 오후나 심야 시간대에 대학생들이 대체매체로서 AFKN-TV를 접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김희동, 1985, 35쪽). AFKN-TV가 1983년부터 20시간을 방송했기 때문에 1980년대 내내 한국 TV방송국이 방송을 하지 않는 시간대에 AFKN-TV를 보는 시청자가 많았던 것이다. 가족이 모두 잠든 심야시간에 혼자서 몰래 AFKN-TV를 시청했다는 회고가 많은 것을 통해서도 여전히 한국 TV방송이 끝나고 난 뒤 AFKN-TV를 보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4년 10월의 조사에서 대학생들은 “영화”(34.5%), “연예‧스포츠”(18.8%), “뉴스‧보도‧시사기획프로”(17.0%) 순으로 즐겨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김희동, 1985, 36쪽). 중고생이나 대학생 모두 오락프로그램을 즐겨 보았지만, 다만 대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위해 뉴스도 즐겨 보았다는 점에서만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AFKN-TV 시청동기 중 학습동기(3.43)가 가장 강하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대체오락동기(3.38), 미국선호동기(2.7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습동기가 강한 대학생들이 학습동기가 약한 대학생들보다 “뉴스‧보도‧시사기획프로”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김희동, 1985, 41~45쪽). 사회 전반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AFKN-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특히 이런 경향이 대학생들에게서 잘 나타났다.8) 1980년대 중반에 “영어공부를 위해 부모님이 보라고 하셔서 뜻도 잘 모르면서 뉴스나 토크쇼를 보는 경우가 있었죠”라는 대답을 통해(구술자 6) 여전히 영어공부를 위한 AFKN-TV시청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방송언론인이나 교수의 경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984년의 4월의 조사에서 방송언론인들은 “CNN뉴스”(27.1%), “Night Line"(12.5%), "영화”(8.3%), "Solid Gold"(6.8%), "Johnny Carson Show"(5.7%), “60 Minutes"(4.2%), "Donahue Show"(4.2%) 순으로 자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전체적으로 보면 뉴스‧보도‧교양 프로그램이 50.0%, 오락프로그램이 15.6%, 영화 8.3%, 드라마 1.6%로 나타났다(이지연, 1986, 50~51쪽). 1984년 10월의 조사에서도 교수들은 “시사”(24.1%), “토크쇼”(24.1%), “뉴스”(10.3%), “드라마”(8.0%), “영화”(6.9%) 순으로 즐겨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안준국, 1985, 51쪽). 이같은 경향은 외국 언론의 한국 보도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AFKN TV가 최근 각광을 받은 것은 6‧29 선언 이전 6월 10일을 전후한 무렵, 미국 본토로부터 직접 받는 뉴스로 최루탄과 돌, 화염병이 난무하는 서울을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중앙일보』1987.10.3). 이렇듯 청소년들의 오락프로그램 선호와는 다른 지식인들의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욕구도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1987년의 조사에서 중고생들이 즐겨보는 AFKN-TV의 프로그램으로는 “All-Star Pro-wrestling”(13.3%), “General Hospital”(12.5%), “Late Movies”(12.2%), “American Top 10”, “Guiding Light”(7.3%) 순으로 나타났다(김원용‧강종근, 1990, 177쪽). 1980년의 조사 결과와 대체로 비슷했지만, 프로레슬링이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과거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80년대 말부터 시청 연령이 낮아지면서 한국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던 미국의 스포츠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침 방송이나 심야 방송이 없던 시절에도 꼬맹이들을 TV 앞에 잡아 두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AFKN. 신문의 방송 편성표에는 당연한 듯이 AFKN의 방영표가 따로 나왔었고 각 가정에서는 TV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한 번씩은 틀어보게 되는 채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토요일 아침에는 고맙게도 몇 시간씩 연달아 만화를 방영해 주어서 영어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기를 쓰고 2번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 토요일 오후 3시 경엔 미국 프로레슬링을 방영해서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우리와는 꽤 터울이 지는 형들과도 함께 그 화려한 액션에 넋을 잃었습니다. ⋯ 레슬링 외에도 새벽 시간에 방영해 주던 NBA 경기에 일찌감치 취미를 붙인 친구도 있었고 메이저리그나 미식축구를 찾아보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me mory&no=15053).

    프로레슬링이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이 AFKN-TV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오락프로그램들을 즐겨 보면서, “청소년 정서가 날로 멍든다”고 하며 이러한 프로그램 시청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기도 했다(『서울신문』1990.12.4.). 1990년대에 남학생들이 “토요일에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와 레슬링을 보고 친구들끼리 흉내를 냈다”는(구술자 7) 것이 이런 염려를 낳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9) 한편 비슷한 연배인 여성 구술자는 “주로 토요일에 만화를 많이 봤어요. 영어를 몰라도 우리나라 만화보다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돼요”라고 하여(구술자 8), 여학생들은 주로 만화영화를 즐겨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 등을 통해 미국 영화를 볼 수 있는 경로가 늘면서 AFKN-TV를 통한 영화나 드라마 시청이 다소 줄고,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AFKN-TV의 음악프로그램 시청도 다소 줄었지만, 시청 연령이 낮아지면서 프로레슬링이나 만화영화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던 것이다.

       3) AFKN-TV의 한국인에 대한 영향

    1961년 초에 TV수상기 보급대수는 5,000대에 불과했던 만큼 당시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다. 사실상 AFKN-TV만 방송되던 1950년대 말에 이미 집에 TV수상기가 있었다고 하는 가수 정미조의 회고는 초기 미국 대중문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느 날 AFKN에서 미국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가수들의 노래와 춤은 어린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전혀 새로운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TV를 보는 어른들 뒤에서 그 춤 동장과 노래 부르는 모습을 따라 했다. 당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어린아이가 춤을 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문화였다. 그럼에도 그는 거리낌 없이 흉내를 내곤 했다.

    초기에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AFKN-TV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경험은 곧 이런 문화의 ‘흉내’로 이어지곤 했고, “미국 중심의 서구문화에 대한 이국정서를 더욱 조장시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박기성, 1985, 347쪽). 또한 AFKN-TV는 초기 한국 TV 프로그램의 제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1961년 12월에 개국한 KBS-TV는 1957년부터 이미 방송을 하고 있던 AFKN-TV를 참조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KBS-TV 개국 당시 입사했던 황정태는 ”당시 AFKN-TV 프로그램은 미국의 3대 네트워크에서 방영된 우수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고 하며, 개국을 앞두고 이런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토의”하며 프로그램 제작을 준비했다고 밝혔다(황정태, 2001, 448쪽).

    1969년에도 TV수상기 보급대수가 아직 223,695대밖에 안 되었을 정도로 1960년대에 TV 수상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적었다. 따라서 1960년대에 TV 수상기 소유자들은 경제 수준이나 교육 정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1960년대에 TV 수상기를 갖고 있었다는 한 인물은 AFKN-TV 등을 통한 외국 프로그램의 수용이 “서구 선진 민족국가와 국민의 경제적‧문화적‧지적 우월성을 체화”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구술하고 있다.

    당시의 텔레비전을 보는 맛은 역시 미국과 같은 잘사는 서양을 경험하는 것이었지. 우리 채널이 하나였던 시대에 그랬고, 또 미군채널(AFKN)에서도 ⋯영화도 그렇고 무슨 다큐멘터리들도 모두 외국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아. 당시 일본은 물러났고 감정이 안 좋았을 때였으니 서양 얘기만 했는지는 몰라도(마동훈, 2001, 199쪽).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AFKN-TV를 보았고,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후반에 AFKN-TV를 본다는 것은 “마치 나만이 미국 문화를 빨리 접하는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지”라는 말처럼(구술자 1), 미국 대중문화 수용의 경로가 많지 않던 시절에 AFKN-TV 시청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요인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 AFKN-TV의 음악프로그램을 보고나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는 것도(구술자 3)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1980년 이전까지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은 ‘새롭고 선진적인’ 문화를 모방하거나 미국에 대한 호의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AFKN-TV는 미국 대중문화를 확산시킴으로써 한국인의 문화적 취향이 미국의 문화적 영향 하에 형성되는 데 영향을 주었고,10)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이 미국을 ‘혈맹’ 또는 ‘구원자’로 생각하고, “그 어떤 나라도 따를 수 없는 특별한 국가”로 받아들여 왔던 ‘대미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김진웅, 2010, 324~325쪽).

    AFKN-TV를 시청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시청 시간도 늘어나면서 그 영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1980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AFKN-TV를 매일 시청하는 사람과 거의 시청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미국의 대중문화는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이강수, 1981, 191~210쪽). 즉, AFKN-TV 시청량이 많을수록 미국에 대해 호의적인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AFKN-TV가 제공하는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긍정적 대미인식이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말에 우리 사회와는 무척 다른, 드라마 속의 미국을 보며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대답은(구술자 4) AFKN-TV 시청이 미국에 대한 동경을 낳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AFKN-TV의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위성방송을 실시한 1983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84년 4월에 방송언론인 1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AFKN-TV 시청량이 많은 방송 언론인일수록 한국TV방송의 뉴스에 비해 AFKN-TV의 뉴스에 대해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지연, 1986, 63~64쪽). 이것은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한국방송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한국 TV방송이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던 현실에서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한국의 실상을 어느 정도 그대로 보도하던 AFKN-TV를 즐겨 시청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저널리즘적인 역할을 통해 AFKN-TV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위성방송 실시 이후 AFKN-TV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염려는 어느 정도 현실로 나타났다. 1984년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AFKN-TV 시청시간이 길수록 ‘서구적 가치관’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김희동, 1985, 46~47쪽). 유교주의나 남녀평등,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윤리관의 비교 등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AFKN-TV의 시청량이 많은 집단이 상대적으로 서구적 가치관에 일정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볼 수는 있다.

    대학교수와 같은 지식인들에게 AFKN-TV가 미치는 영향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4년의 조사에서 대학교수들은 AFKN-TV의 뉴스를 즐겨 보면서도,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서는 수준 낮은 대중문화적 특성들을 지닌다는 비판적 의식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안준국, 1985, 58~60쪽). 지식인들의 경우 AFKN-TV의 오락 프로그램을 별로 시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오락프로그램에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4년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는 AFKN-TV의 수용이 미국문화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고는 있지만, 그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AFKN-TV 시청시간이 길수록 미국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AFKN-TV 시청량이 반드시 한국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강종근, 1985, 249~250쪽). 1987년에 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AFKN-TV의 시청이 서구적 가치관의 수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서구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을 낳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원용‧강종근, 1990, 182~183쪽).

    이런 조사들을 통해 AFKN-TV의 영향력이 염려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다는 사실을 엿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조사들이 AFKN-TV 시청이 미국 또는 미국문화의 인식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서구적 가치관 형성에 끼친 영향을 물어본 것이라는 점에서 AFKN-TV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80년대에 AFKN-TV를 즐겨 보았다는 한 시청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당시 제 또래들이 배워 온 미국이란 나라는 청교도적 신념과 정의를 소중히 여기며 약한 자를 감싸 주는 선의의 힘을 가진, 성은이 망극한 나라였습니다. 거기에 미국방송(우린 AFKN을 이렇게 불렀지요)에 나오는 전국의 관광지나 사람들 사는 모습, 마천루 등을 통해 미국을 자유와 풍요와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파악한 꼬꼬마로서는 자기 마음 속의 이상향으로 꼽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거기서 무엇을 보게 되던 우리에게는 그것이 가장 첨단의 것이었고 최상의 표현이었고 최고의 장면이었으니까요. 기꺼이 추종하여 흉내 내기라도 내고픈 궁극의 목표였지 않았나 싶습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memory&no=15053).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AFKN-TV를 즐겨 보았다는 다른 시청자도 “국민들이 외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대라 AFKN의 등장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미국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방송에 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http://www.lostmemory.kr/xe/memory/15371). 이렇듯 청소년들의 AFKN- TV 시청이 이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80년대 중반에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함께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볼’을 보며 미국을 동경했다는 진술을 보아도(구술자 6), 이런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AFKN-TV 프로그램의 시청이 반드시 미국에 대해 무조건 호의를 갖게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1970년대부터 AFKN-TV를 즐겨 보았다는 기자 유재용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처음 AFKN을 보면서 느끼게 됐던 건 일단 미국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나라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 나오는 프로그램들에 비친 미국은 우리를 훨씬 앞서가는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 이른바 세계 수준의 것들을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있었다. ⋯ 그렇다고 철이 없던 그 시절에도 그런 감정이 부러운 것을 넘어서 미국을 좋아한 것으로 가는 건 자존심과 나의 현실감각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건 당시 우리의 현실도 그렇고 내 나이도 그렇고 미국문화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유재용, 2008, 205~206쪽).

    청소년 시절의 AFKN-TV 시청이 미국을 ‘부러운’ 나라로 생각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라고 인식하게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이 미국의 대중문화를 선호했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이라는 나라까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AFKN-TV를 통해 프로레슬링이나 만화영화를 즐겨보았지만, “그냥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것들을 즐겼을 뿐”이지,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구술자 7; 구술자 8). 즉, 1980년대 중반 이후 청소년들이 AFKN-TV를 통해 ‘미국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미국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기도 했는데, 이를 ‘미국과 미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 분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원용진, 2008, 205~206쪽).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런 변화가 나타났던 것은,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싹텄던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김진웅, 2010, 325~332쪽).

    한편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수용이 때로는 새로운 문화 생산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AFKN-TV를 통해 미국영화를 즐겨 보았다는 봉준호는 "극장보다 TV로 영화를 더 많이 봤고, 특히 주한미군 방송인 AFKN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밝히고는, “리얼리즘 영화의 고전이랄 수 있는 '자전거 도둑'부터 폭력미학의 거장 샘 페킨바의 작품까지를 AFKN에서 섭렵했다”고 밝혔다(OSEN, 2006.5.29). AFKN-TV를 통한 다양한 영화 시청이 영화감독이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10대들은 AFKN을 통해 갖가지 뮤직비디오를 접하며 90년대 이후 등장한 영상세대(혹은 신세대, X세대)의 감수성을 갈고 닦고 기름칠하고 있었다”다는 평가도 나왔다(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090808).

    AFKN-TV를 통해 처음 보게 된 다양한 뮤직비디오들은 한국의 신세대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키워주었고,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양한 분야의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수용 경험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즉, 이제는 단순한 동경을 넘어서서 주체적인 수용이 이루어기도 했던 것이다.

    6)이 조사에서는 “주로 시청하고 있는 TV방송국을 지적하되 2개국 이상을 비슷한 비중으로 시청할 때는 2개국 또는 3개국을 같이 지적하도록 하였으므로 한 번 지적을 1점으로 하여 그 TV방송국별 합계 점수를 전체 응답자수로 나누는” 방법으로 측정했다고 한다(오수정 외, 1978, 203 쪽). 사실상 복수 응답을 허용하고는 각 “TV방송국을 지적한 점수”를 응답자수로 나누었기 때문에 AFKN-TV를 본다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7)1970년대에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어린이들을 ‘테돌이’와 ‘테순이’로 불렀고, 실제로 초‧중‧고 학생들의 TV 시청시간은 상당히 길었다고 한다(임종수, 2008, 55~63쪽).  8)한 구술자는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닐 때 영어공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학교의 ‘Sound Library’에서 대형스크린으로 AFKN-TV를 틀어 놓았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 자주 가서 보았다고 응답하기도 했다(구술자 4).  9)“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활약한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 워리어가 올 해 4월 초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자 손민호 기자는 ‘AFKN키즈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추모의 글을 통해 “워리어(Warrior)가 나온 날이면 AFKN키즈들은 나름 비장한 의식을 치렀다. 머리를 잔뜩 헝큰 다음, 아직 가는 팔뚝에 형광색 신발 끈을 묶고 꽥꽥 악쓰며 빨랫줄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엄마한데 맞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중앙일보』2014.4.16).  10)안정효가 장편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미국 영화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을 ‘할리우드 키드’라고 이름 붙였듯이(안정효, 1999), 유재용은 AFKN-TV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을 ‘AFKN 키드’라고 불렀다(유재용, 2007). ‘할리우드 키드’들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AFKN-TV를 통해서도 보았다는 점에서, ‘AFKN 키드’는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전체적으로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5. 맺는 말

    TV 수상기가 대량 보급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치고 AFKN-TV를 시청하지 않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다. 영어 공부를 명분으로 내세웠든 선정적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었든, 당시 청소년들이 AFKN-TV를 즐겨보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청소년들의 문화적 의식은 미국의 대중문화 산물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한데, 그런 미국 대중문화를 접하는 경로로서 AFKN-TV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한편 지식인들에게 AFKN-TV는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었던 것은 물 론 한국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해주는 창이 되기도 했다.

    AFKN-TV는 기본적으로 젊은 미군병사들을 상대로 하는 방송이었다. 당연히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오락프로그램이 편성될 수밖에 없었다. 오락프로그램은 먼 타국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의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본국 소식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보도프로그램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위성을 통한 방송이 가능해지면서 뉴스의 중요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 본토 TV방송체제의 영향을 받은 AFKN-TV는 한국의 TV방송보다 더 긴 시간 방송했고, 컬러방송도 먼저 실시 했으며, 위성을 이용한 방송도 더 일찍 실시하였다.

    많은 한국인들이 AFKN-TV를 시청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VHF채널로 방송을 하여 TV수상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국 TV방송이 나오지 않는 시간대에도 시청할 수 있었고, 한국 TV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의 프로그램도 시청할 수 있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한국 TV방송이 나오지 않던 심야시간대나 오후 시간대에도 방송을 하여 한국의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고, 한국 TV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다양하며, 선정적인 오락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AFKN-TV를 통한 미국 오락프로그램의 접촉이 일상화됨으로써 한국인들이 미국 대중문화의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AFKN 키드’라고 부를 만큼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이 이루어졌고,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에 대한 동경과 호의가 형성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AFKN-TV를 통행 형성된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선호가 곧 미국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의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또한 1980년대 말 이후 미국 대중문화의 접촉 경험이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AFKN-TV의 수용 과정에서 1980년 이전의 시기를 ‘미국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 수용과 미국에 대한 동경의 형성’ 시기였다면, 1980년 이후의 시기를 ‘미국 프로그램에 대한 선별적 수용과 미국적인 것의 향유’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FKN-TV의 수용 과정에서 1980년대 이후 나타난 변화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미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다양한 문화의 수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AFKN-TV를 통한 미국 대중문화의 수용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동시에 긍정적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AFKN-TV는 1996년에 한국인이 쉽게 시청할 수 있던 VHF채널을 반환하고, 2001년에는 AFKN이란 명칭도 AFN(American Forces Network) Korea로 변경하였다. 1996년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UHF채널이나 케이블TV로 AFN-Korea의 방송을 볼 수 있었지만, 2008년부터 케이블TV로도 AFK-Korea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주한미군이 미국 방송사나 제작사로부터 공급받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AFK-Korea를 케이블TV에서 재송신할 경우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며 재방송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판매시장으로서 한국이 지니는 가치를 간파한 미국의 방송사나 제작사들이 한국인들이 AFN-Korea를 통해 최신 프로그램을 그냥 보도록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 새로운 미디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런 미디어들을 채워 줄 프로그램이 부족해지면서 다시 미국의 TV프로그램들이 몰려오고 있다. AFN-Korea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을 통해 쉽게 미국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다. 한편, 이른바 ‘한류 열풍’ 속에 한국은 TV프로그램을 외국에 파는 수출국으로 변모해 있다. TV프로그램에 관한 한 한국은 더 이상 불평등 관계 속의 피해자만은 아니다. 새삼스럽게 다시 몰려오는 미국 TV프로그램과 한류 바람을 타고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한국 TV프로그램, 그 사이 어디쯤에 한국 방송이 위치해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방송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AFKN-TV의 경험이 끼친 부정적, 긍정적 영향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AFKN-TV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을 청산하고, 긍정적 계기들을 되돌아보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특정 시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AFKN-TV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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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집단별 AFKN-TV 주시청 비율
    집단별 AFKN-TV 주시청 비율
  • [<표 2>] 가장 즐겨 시청하는 TV 방송국
    가장 즐겨 시청하는 TV 방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