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파생금융거래에 사용되는 ‘ISDA 기본계약서’상의 선행조건 조항* - 계약해석 및 도산법상의 쟁점을 중심으로 -

What if Your Creditor is in Default: Condition precedent of the ISDA Master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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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Section 2(a)(iii) of the ‘ISDA (International Swaps and Derivatives Association) Master Agreement’, which is a standard contract form used in most international financial derivatives contracts, provides that each payment obligation of each party is “subject to the condition precedent that no Event of Default or Potential Event of Default with respect to the other party has occurred and is continuing.” This so-called ‘flawed-asset clause’ (“Condition Precedent”) has been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issues on derivatives contracts that came up after the bankruptcy of Lehman Brothers.

    The function of Condition Precedent can be analyzed in two ways. Firstly, it reduces the credit risk of non-defaulting party. This is similar to the right of the obligor in executory contracts provided in the section 536(2) of Civil Code of Korea, which exempts the obligor if the counter party cannot reasonably be expected to perform its own obligation. Secondly, by permitting the non-defaulting party not to perform, Condition Precedent allows her to determine when to exercise the right to Early Termination of the master agreement, and gives her breathing space. Accordingly, this provision does not preclude the Early Termination or the settlement of defaulted contracts; rather, this provides the preparatory phase of Early Termination.

    In the face of the bankruptcy of Lehman Brothers and the Great Recession, however, non-defaulting parties who were out of money refused to either perform their payment obligation in pursuance of the Condition Precedent or give the notice of Early Termination, which resulted to the prolonged unsettlement of those defaulted transactions. This seemed to be too harsh for the defaulting party, and several interpretations limiting the way Condition Precedent operates were brought up, bringing conflicting court decisions in England. These issues include: whether payment netting, provided in section 2(c) of the Agreement, could apply when the Condition Precedent is not satisfied; whether the Condition Precedent is of an ‘once-and-for-all’ character; and what happens to the payment obligation if the Condition Precedent is not satisfied until the maturity date. It seems that on most of those issues, under contract law of Korea, which takes a rather textualistic approach to contract interpretation, the Condition Precedent would be interpreted similar to the most recent English decision, in which the court stressed “commercial reasonableness.”

    Moreover, there have been several attempts to limit Condition Precedent where the Event of Default is a “bankruptcy,” in which case the Condition Precedent results in depriving the insolvent party of his right to payment, the asset which could have been available to other creditors pari passu. In this regard, applying Condition Precedent to the insolvent counter party provokes “anti-deprivation principle” in England and “prohibition of ipso facto clause” in the US Federal Bankruptcy Act.

    Although no provision in the Rehabilitation and Insolvency Act of Korea, which governs the insolvency procedure commenced in Korea, prohibit the ipso facto clause, the Condition Precedent would be invalid in two exceptional cases: where a non-defaulting party neither pays nor gives Early Termination notice for such a long time that this kind of opportunistic behavior is deemed as abandoning the right to safe-harbour clause in the Act; and where the relevant master agreements govern only the transactions such as prepaid swaps or plain vanilla options. As regards to the latter, since a non-defaulting party has no possibility of bearing credit risk in such transactions, the Condition Precedent does not function as intended; therefore, the interests of insolvent’s other creditors should prevail.

  • KEYWORD

    ISDA 기본계약서 , 장외파생금융거래 , 선행조건 , 불안의 항변권 , 지급정산네팅 , 해석적 개입 , 형식주의적 계약해석 , 도산해지조항 ,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

  • Ⅰ. 序論

    어떤 거래에서든 일방 당사자는 상대방이 그 자신의 의무를 불이행할 것에 대비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계약상 장치를 두고자 한다. 「민법」은 쌍무계약에 대하여 그러한 당사자의 의사를 추단하여 기본적으로 同時履行의 抗辯權 및 不安의 抗辯權을 인정(제536조)함으로써, 일방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하지 못할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반대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도 채무불이행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쌍무계약에서의 이해관계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외파생금융 거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특히 대부분의 국제 장외파생상품거래에서 대표적인 표준계약서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는1) 국제스왑파생상품협회(International Swap and Derivatives Association: ISDA)의 ‘ISDA 기본계약서(ISDA Master Agreement)’2) 에서는일방 당사자에게 채무불이행 사유(Event of Default)3) 또는 잠재적 채무불이행 사유(Potential Event of Default)가 없는 것을 상대방의 지급의무에 대한 선행조건(condition precedent)으로 삼는 계약조항을 두고 있다(제2조 (a)항 (iii)호). 이를 통하여 당사자들은 일응 귀책사유가 없는 일방[이른바 ‘비유책당사자(Non- defaulting Party)’]이 외가격(out-of-money)에 있어 유책상대방에 대한 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될 상황에 있더라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위 조항이 삽입된 계약상의 채권은 애초 채권자 자신의 채무불이행이 없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하자’가 있는 재산이라는 맥락에서, 영국에서는 위 제2조 (a)항 (iii)호와 같은 취지의 조항을 “하자 있는 권리 조항(flawed-asset claus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ISDA 기본계약서 및 거래확인서(Confirmation)를 이용하는 장외파생상품거래의 일반적인 계약구조와 내용 내지는 채무불이행 사유나 일괄정산 네팅(close-out netting)의 법리 등에 관하여는 이미 많은 설명과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본고는 그 일반론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최근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 그룹의 도산4) 을계기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목표로 한다. 특히 본 조항과 같이 포괄적으로 일방의 채무불이행이 없을 것을 상대방 의무의 선행조건으로 삼는 유형의 계약조항은 다른 금융계약에서도 자주 포함되는 것인 만큼 본고에서의 검토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본고는 먼저 선행조건 조항의 내용 및 기능을 소개한 후(II.), 선행조건 불충족 시의 법률효과를 둘러싼 각종 계약해석상의 쟁점들을 살펴본다. ISDA 기본계약서는 표준 준거법으로 영국 법 내지 뉴욕주 법을 정하고 있으므로 본고는 우선 다소 길지만 최근 선행조건 조항과 관련하여 내려진 영국 법원의 두 판결례를 소개한 후, 거래당사자들이 대한민국 법을 준거법으로 하도록 수정한 경우 내지는 국제사법에 의하여 대한민국 법이 준거법으로 정하여지는 경우에 선행조건 조항이 어떻게 해석될지 여부를 검토한다.5) 그리고 표준계약서로서의 ISDA 기본계약서 전반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 선행조건 조항에 관한 그와 같은 논란이 가지는 시사점을, 준거법 선택조항을 통한 ‘계약해석방법의 표준화’라는 맥락에서 설명한다(III.).

    한편, 선행조건 조항에 대하여는 도산채무자의 상대방이 비유책당사자로서 선행조건을 주장하는 것이 도산재단이나 그에 관한 관리인의 관리처분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도산법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특히 영국의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anti-deprivation principle)’과 미국 연방파산법의 ‘도산해지조항(ipso facto clause)의 금지’와 관련하여 양국에서 각기 상반되는 결론의 판결이 내려졌는바, 우리나라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고만 한다) 하에서 선행조건 조항이 유효하게 인정될 것인지 여부를 분석한다(IV.).

    마지막으로는, 위와 같은 계약해석 내지 도산법상의 문제를 고려하여 ISDA에서 최근 발표한 본 선행조건에 대한 개정안의 내용을 소개한다(V.).

    1)영국 고등법원은 국제장외파생상품거래의 90% 가량이 ISDA 기본계약서를 사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ISDA의 조사결과를 인용한 바 있다. Anthony Victor Lomas & Others v JFB Firth Rixson, Inc. & Others [2010] EWHC 3372 (Ch), at [5]. 한편 파생거래가 내재된 주요 금융거래의 계약에 있어서는 ISDA 기본계약서의 주요 조항들이 차용되어 계약내용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하고, 실제 외국 금융기관과 사이에서 신용부도스왑이 내재된 대출거래를 한 경우에 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4. 13. 선고 2009가합46335 판결이 그러한 사례이다.  2)ISDA 기본계약서는 1987년 이자율스왑거래와 관련하여 처음 마련(Interest Rate and Currency Exchange Agreement: IRCEA)된 이래 1992년과 2002년 대폭 개정된 바 있다. 현재 사용되는 것은 대부분 1992년 판과 2002년 판인바, 아직 상당수의 거래에서 1992년 판이 사용되고 있으며 다만 리만 파산 사태 이후에는 2002년 판의 사용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Schuyler K. Henderson, Henderson on Derivatives (London: LexisNexis, 2010) 및 Josh Clarke, “Why Corporates Are Slow to Use New Isda Standard”, 23 Int‘l Fin. L. Rev. 64 (2004)(조기종료에 따른 지급금액 산정방법 및 교차불이행과 관련한 개정사항이 사실상 딜러보다 금융소비자인 일반 기업들에게 불리하고, 그 때문에 2004년 당시까지 2002년 판이 사용된 예가 별로 없다는 것). 이 글에서는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는 한 1992년 판과 2002년 판 모두를 “ISDA 기본계약서”라 통칭하기로 한다.  3)ISDA 기본계약서상 만기 이전에 기본계약을 중도에 종료시키는 ‘조기종료(Early Termination)’ 사유로는 채무불이행 사유(Event of Default)와 종료 사유(Termination Event. 법률의 개정과 같이 일반적으로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어려운 계약종료사유들로 정하여진 것)의 두 가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용진, 「장외파생상품 거래계약 해설」 (형설출판사, 2013), 58쪽의 각주49에서는 “Event of Default”를 ‘기한이익 상실사유’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본고에서는 ‘종료사유’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채무불이행 사유’로 이를 번역하는 것이 그 의미를 살리는데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4)본고에서 ‘도산(insolvency)’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상의 회생절차 및 파산절차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외국의 절차가 개시된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다. ISDA 기본계약서 제5조 (a)항 (vii)호의 “파산(Bankruptcy)”은 그 규정내용상 위 도산사유가 발생한 경우 전반을 포섭하고 있다.  5)그 논의는 내용이 유사한 금융투자협회 작성의 ‘장외파생상품거래 한글약정서 권고안’ 제4조 제3항과 관련하여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Ⅱ. ISDA 기본계약서상 선행조건 조항의 의의와 기능

       1. 제2조 (a)항 (iii)호의 내용

    지급의무에 관한 선행조건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2002년 판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은 지급의무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정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6)

    위 제2조 (a)항 (iii)호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1)목 부분이고 (2)목 및 (3)목은 큰 의미가 없다.8) 일단 조기종료일이 지정되어 조기종료가 이루어지면 평상시의 지급의무를 정하는 제2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아니하는 만큼(제6조 (c)항 (ii)호.9) 그렇기 때문에 부속서에서 자동조기종료 특약을 선택하면 본 선행조건 조항은 의미가 없게 된다) (2)목 역시 적용되지 않고, ISDA 기본계약서 자체에는 이것 외에 다른 선행조건이 정하여진 바가 없으므로 계약당사자들이 직접 기본계약서를 수정하여 별도의 선행조건을 포함시킨 경우가 아닌 한 (3)목 역시 적용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하에서 ‘선행조건 조항’이라 할 때는 특별히 구별의 필요가 없는 한 위 제2조 (a)항 (iii)호 (1)목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다.

       2. 본 조항에서 정하는 ‘선행조건’의 법적 성질

    본 선행조건 조항은 (1), (2), (3)목의 각 내용이 일방의 지급의무에 대한 “선행조건(condition precedent)”이 된다고만 정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행조건’은 ‘시간의 경과 외의 일정한 사건으로서 어떤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반드시 존재 또는 발생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10) 이와 관련하여 ISDA에서는 이행기 당시 각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며 선행조건이 불충족한 상태에서는 아예 지급의무가 발생조차 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취지라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고,11) 본 조항에 관한 문헌들 역시 그러한 취지로 위 조항을 이해하고 있다.12) 여기서 나아가 영국 항소법원은 이를 보다 자세히 분석하여, 債務(debt obligation)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일정 금액에 대한 ‘支給의무(payment obligation)’를 구별하고 본 조항은 지급의무를 규율 할 뿐이고 채무는 이와 상관없이 유효하게 발생하여 존속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본 조항이 포함된 제2조 자체가 ‘지급의무’에 관한 조항이라는 이유에서다.13)

    대한민국 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체결된 기본계약에서라면 위와 같은 내용의 ‘선행조건’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불명확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지급의무가 발생한다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본 조항은 일응 우리 민법상의 停止條件에 상응하는 계약상 부관을 정한 것이라고 보인다. 반면 ‘지급의무’와 이를 발생시키는 기본적인 ‘채무’를 구별하는 위 영국법원의 태도를 염두에 둔다면, 본 선행조건은 우리 민법상의 동시이행의 항변권과 같이 채무의 성립 여부와 상관없이 그 채무의 ‘이행의무’를 연기시킬 뿐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제 기능 면에서도 본 선행조건 조항은 동시이행의 항변권 내지 불안의 항변권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선행조건에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본 조항에 따라 자기 지급의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기간 동안 이자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보면, 후자에도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1992년 판의 경우 규정이 없어 채무불이행 사유가 치유되지 아니한 이상 이자가 붙지 않는다고 해석되어 왔지만,14) 2002년 판의 경우에는 제9조 (h)항 (3)호 (A)문에서 연기된 기간 동안 일정한 이자(지급의무자가 주요 은행으로부터 제시받은 익일물 수신금리)가 붙는다고 정하는바 이는 우리 민법상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나 불안의 항변권에 따라 자기의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경우 지연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점과 다른 것이다.

    선행조건의 법적 성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해석상의 문제들(아래 III. 참고)을 해결하기 위하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영미법 상의 ‘선행조건’이라는 개념에 일대일로 대응되는 우리 법상의 개념을 찾기 쉽지 않을 뿐더러15) 이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계약해석의 문제인 만큼, 당사자들이 ISDA 기본계약서를 편입시키면서 대한민국 법 하에서 ‘선행조건’이라는 문언을 사용하였을 때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각 쟁점별로 살펴보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3. 계약이행의 측면에서 본 선행조건 조항의 기능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아래와 같은 가상의 사례를 상정하여 보기로 한다. 이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본 선행조건은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조기종료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즉 기본계약서의 부속서에서 자동조기종료가 선택되지 아니하였음을 전제함), 그리고 유책당사자가 아니라 그 상대방인 비유책당사자가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외가격에 있는 경우)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3.1. 不安의 抗辯權으로서의 기능

    먼저 본 조항은 기본적으로 일방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사유가 있어 그로부터의 지급을 기대할 수 없는 사유가 있음에도 비유책상대방이 특정 거래‧특정 시점에 외가격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급을 강제 당하지 않도록 한다. 통상 장외파생상품거래를 하는 당사자들은 하나의 거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거래를 하나의 기본계약 하에서 하게 되는바, 특정 거래에서 비유책상대방이 외가격인 포지션에 있더라도 다른 거래에서는 내가격인 포지션에 있을 수 있다.16) 또한 특히 스왑거래의 경우와 같이 계속적 거래의 성질을 띠는 거래의 경우17) 라면특정 시점에 외가격이었다고 하더라도 기초자산의 가치가 변동함에 따라 향후 내가격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위 사례에서 비유책당사자인 A로서는 현재 B가 외가격에 있는 위 ②거래상의 지급의무를 이행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움에도 위 ①·③거래의 바로 다음 지급일인 2009. 1. 1.이 도래하였다는 이유로 A로 하여금 그 지급의무를 그대로 이행하게 한다면 A로서는 더 큰 신용위험을 부담하는 셈이 된다. 이와 같이 비유책당사자는 본 조항을 들어 자신에게 반대채무를 이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한 유책상대방에게 자기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게 되고, 이로써 자신의 반대채권과 관련한 신용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 민법상 불안의 항변권과 유사하다.18)

    3.2. 조기종료 권한 행사를 위한 시간적 여유 부여

    한편 일방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 비유책당사자인 상대방은 이를 이유로 ISDA 기본계약서 제6조19) 에따라 당해 거래를 포함한 기본계약 하의 모든 거래를 일괄적으로20) 조기종료(Early Termination)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본 선행조건이 없다면,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존재함에도 비유책당사자는 다음 지급일이 도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지급을 강제당하게 되고, 그렇다면 사실상 그때까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야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채무불이행이라는 비상 상황 하에서 유연한 대처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가령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더라도 이것이 얼마 안 있어 치유될 수 있다면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될 수 있기를 기다리고자 할 수 있고, 또한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금액을 산정하는데 있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21)

    선행조건 조항은 전통적으로 이와 같이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할 시점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되어 왔다.22) 따라서 선행조건 조항은 조기종료를 만연히 미루게 하려는 것에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조기종료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정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비유책당사자가 장기간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본 선행조건 조항만을 원용하는 사안들이 다수 발생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이 파생금융거래의 특징 내지는 ISDA 기본계약서상 조기종료에 따른 정산방법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4. 거래의 정산을 무한정 미루려는 비유책당사자와 선행조건 원용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그의 반대채무 이행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면 상대방으로서는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 유책당사자와의 계약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파생금융거래의 경우에는 위 사례에서의 A은행과 같이 비유책당사자가 본 선행조건 조항을 들어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거래를 계속하면서 자기 의무의 이행만을 거절할 유인이 있다.

    우선, 다른 상사거래의 경우와 달리 특히 파생상품거래에서의 각 당사자의 이해관계는 일반적으로 ‘기초자산의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것이기에 시간이 흘러 기초자산의 가치가 변동하게 되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도 변하게 된다. 그러한 만큼, 비유책당사자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조기종료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함으로써 향후 시장상황이 변동하여 자신이 유리한 포지션에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자 할 수 있다.

    한편, ISDA 기본계약서상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는 비유책당사자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당시 외가격에 있는 이상 최종적인 지급의무를 부담할 수도 있다.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일을 지정할 때에는, ① 1992년 판의 경우 「그 때까지 각 당사자에게 이미 발생하여 있는 미지급채권금액(Unpaid Amount)과 향후 잔존 거래에서 발생하였을 채권채무의 가치를 시장호가(Market Quotation)에 따라 평가한 금액을 합한 금액」(‘시장호가방식’을 선택한 때) 내지 「조기종료에 따라 거래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비유책당사자가 입는 손해(Loss)액」(‘손해방식’을 선택한 때)을, ② 2002년 판의 경우 「미지급채권금액과 잔존 거래의 가치를 종합하여 정하여지는 ‘일괄정산금액(close-out amount)’」을 산정하여 같이 통지하여야 한다.23) 이렇게 하여 정하여진 단일한 금액만이 조기종료 시 지급의무 있는 금액(이하 이를 ‘조기종료금액’으로 통칭한다24) )이 되는바,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 당시 외가격이어서 조기종료금액이 음수라면 1992년 판 하에서 일방향지급방식25) 을 택한 것이 아닌 이상 비유책당사자가 그 금액을 지급하여야 하게 된다. 이 경우 비유책당사자로서는 조기종료권한을 행사하기 보다는 제2조 (a)항 (iii)호에 기하여 자신의 채무 이행을 거절하면서 기초자산의 가치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동하기를 기다리고자 할 수 있다. 위 사례에서도 세 개 거래를 합쳐 보면 유책당사자인 B가 조기종료로 약 230만 달러 만큼 손해를 입는다는 것이므로 조기종료금액은 ‘마이너스 230만 달러’로 정하여져 오히려 비유책당사자인 A가 B에게 그만큼을 지급하여야 하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A로서는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특히 채무불이행 사유가 일방의 도산인 경우와 같이 장기간 계속되는 성질인 경우 그 거래 역시 장기간 미결제 상태로 방치되는 결과로 되고, 이에 아래에서 설명하는 [쟁점 4]와 같이 본 선행조건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6)본고에서 언급하는 ISDA 기본계약서의 원문은 모두 수 개의 영국 판결에서 인용되었던 바 있는 부분을 재인용한 것임을 포괄적으로 밝혀둔다. 본 조항의 원문은 VII.에 소개하였다.  7)1992년 판에서는 (3)문이 “본 계약에서 명시한 기타 적용 가능한 선행조건”이라는 문언으로 되어 있었다.  8)Edward Murray, “Lomas v Firth Rixson: a curate’s egg?”, 7(1) CMLJ 5 (2011), pp. 7-8의 각주 9 참고.  9)조기종료일 지정의 효과가 발생하게 되면 종료된 거래와 관련하여 제2조 (a)항 (i)호에 따른 지급의무는 이행될 필요가 없으며 조기종료에 따른 지급액은 제6조 (e)항에 따라 정하여진다는 취지의 조항이다.  10)Black’s Law Dictionary (9th), p. 334. 영국의 계약법 교과서에서도 이른바 “조건(contingent condition)”은 선행조건(condition precedent)과 후행조건(condition subsequent)로 구별되고, 전자는 특정 사건이 발생하여야만 계약의 구속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며 반대로 후자는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일단 발생한 계약의 구속력을 종료시키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Ewan McKendrick, Contract Law (London: Palgrave, 2013), pp. 175-176.  11)ISDA, “Guidance Note on the form of Amendment to ISDA Master Agreement for use in relation to Section 2(a)(iii)” (2014), p. 3, n. 4.  12)Edward Murray, “Lomas v Firth Rixson: ‘As you were!’”, 8(4) CMLJ 395 (2013), p. 401의 각주 29 및 Mark I. Greenberg, “Proposed Changes to ISDA Section 2(a)(iii) and “Flawed Asset” Approach”, 2(17) Bloomberg Law Reports (2011)의 미주 2 등.  13)아래 III.에서 소개하는 Lomas v Firth Rixson 판결의 [24]~[28], [35]문단. 그 외에도 본 조항에 의하여 채무 자체가 소멸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점도 근거가 되고 있다. 한편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선행조건으로 정하는 조항이 들어간 증권대차거래가 문제된 Primebroker Securities Ltd v Fortis Clearing Sydney Pty Ltd (No 2) [2010] VSC 358 판결에서 호주 빅토리아 주 대법원 역시 선행조건은 ‘이행(performance)’에 대한 조건이라고 설시한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는 Scott Farrell/Jeremy Green, “Close-out Netting: Even More Reassurance”, 28 Int’l Fin. L. Rev. 36 (2009).  14)Henderson, supra note 2, p. 917  15)석광현, 「국제사법과 국제소송 제1권」(서울: 박영사, 2002), 581~582쪽도 국제대출계약의 맥락에서 선행조건은 ‘대출의무의 발생에 대한 정지조건’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 민법상의 ‘정지조건’과 동일한 개념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16)실제로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Marine Trade 판결의 사안이 그러하다.  17)옵션·선도와 달리 스왑거래는 일련의 지급이 반복·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고, 그 구조를 분석하여 보더라도 이는 반복되는 선도거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된다. 박준, “파생금융거래를 둘러싼 법적 문제 개관”, 박준/정순섭, 「파생금융거래와 법」(서울: 소화, 2012), 21쪽 및 Alastair Hudson, The Law on Financial Derivatives (London: Sweet & Maxwell, 2012), p. 57 참고.  18)신용진, 전게서(주 3), 59쪽은 이를 同時履行의 抗辯權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엄밀하게 따지면 채권·채무가 서로 동시에 이행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도 본 조항은 적용되므로 불안의 항변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19)제6조 (a)항에 따르면, 일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계속 중인 경우 그 상대방인 비유책당사자는 그 사유와 조기종료를 특정하여 통지함으로써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20)기본계약 하에서 이루어진 수 개의 거래는 모두 하나의 계약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되고[이른바 제1조 (c)항의 ‘단일계약 조항(Single Agreement Clause)’], 따라서 일부 거래만 선택하여 조기종료 할 수 없다.  21)물론 자동조기종료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대처가 불가능하지만 반대로 정산이 미뤄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조기종료의 경우 조기종료 시점이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한 당시로 소급하게 되어 조기종료 금액을 산정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자동조기종료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Henderson, supra note 2, p. 965 이하 및 p. 1003 이하.  22)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 모든 거래를 종결시키기까지 어느 정도 ‘숨쉴 공간’을 마련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HM Treasury, “Establishing resolution arrangements for investment banks” (2009), p. 119 및 Edward Murray, supra note 8, p. 8의 설명이나, 조기종료를 선택하여 거래관계를 완전히 종결시키지 않고 어느 정도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기다릴 시간을 벌어주는 기능을 한다는 Scott Farrell, “Court Upholds Isda’s Flawed-Asset Provision”, 23 Int’l Fin. L. Rev. 33 (2004), p. 33의 설명도 결국 같은 취지다.  23)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으로는 김홍기, “2002 ISDA 기본계약서의 내용과 장외파생상품거래를 위한 국내용 표준계약서의 필요성”, 부산대학교 법학연구 제47권 제2호(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2007), 91~96쪽. 또한 조기종료 시 시장호가방식에 따른 정산이 문제된 사례로 서울지방법원 2001. 11. 23. 선고 99가합52591 판결이 있다.  24)조기종료금액(Early Termination Amount)은 2002년 판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의미상 1992년 판과 관련하여서 사용하더라도 무방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이는 ‘미지급금액’과 ‘손해(Loss)’의 합계 또는 ‘미지급금액’과 ‘시장호가금액(Market Quotation Amount)’의 합계가 된다.  25)1992년 판에서는 채무불이행 사유로 거래가 조기종료된 경우 비유책당사자는 어떠한 지급의무도 부담하지 않는 일방향지급방식(“First Method”)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시장에서의 관행을 고려하여 ‘쌍방향지급방식(Second Method)’이 선택된 경우를 전제로 설명한다.

    Ⅲ. 선행조건 조항의 해석상 쟁점들

       1. 문제의 소재

    제2조 (a)항 (iii)호는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에서 언제까지 당해 조항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문언이 없어 그 적용 범위에 대하여 논란이 있어 왔다.

    1.1. [쟁점 1] 선행조건 불충족 시 지급정산네팅의 가부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c)항26) 에서는쌍방 당사자의 대립하는 복수의 채권‧채무가 「동일한 이행기(지급일)에 동일 통화로 이루어질 것」[제1문 (i)호]으로서「동일한 특정 거래로부터 발생한 것」[제1문 (ii)호]이라면 이를 모두 차감 내지 상계하고 남는 하나의 지급의무만을 이행하도록 하고 있는바, 이를 ‘지급정산네팅(payment netting)’이라고 부른다. 나아가 제2조 (c)항 제2문부터 제4문은 계약당사자들이 특약으로 (ii)호를 배제함으로써 이른바 ‘복수거래 지급정산네팅(multiple transaction payment netting)’ 특약을 할 수 있다고 정하는데, 이 경우에는 당해 기본계약 하에서 이루어진 어떠한 거래상의 지급의무도 이행기와 통화가 같다면 지급정산네팅이 가능하게 되며 실제로 많이 이루어진다.27)

    그런데 일단 복수거래 지급정산네팅이 선택되었음을 전제로 할 경우에, 선행조건이 불충족되었다는 이유로 위 지급정산네팅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위 사례에서 B회사에 대한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한 후 각 거래의 지급일인 2009. 1. 1.이 도래하면 ①‧③거래에서 외가격에 있는 A은행에게는 그에 따른 차액 지급의무가, 반대로 B회사에게는 ②거래에서의 차액지급의무가 각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때 B회사가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들어 A은행은 자신의 차액 지급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②거래에서의 차액 전액의 지급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가 문제될 수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영국 고등법원의 Marine Trade 판결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항소법원의 Lomas 판결은 반대로 선행조건이 불충족되었더라도 지급정산네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2. [쟁점 2] 선행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

    설명의 편의상 앞서 설정한 가상의 사례에 다음과 같은 사안을 추가하여 본다.

    선행조건은 그것이 부가된 지급의무의 지급일(이행기)에 충족되어 있으면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지급의무자인 비유책당사자는 이행기와 상관 없이 유책상대방의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물론 위 <사안 1>과 같이 비유책당사자인 A은행이 외가격에 있는 ①·③거래에서의 지급일인 2009. 1. 1. 당시에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 있었다면 그 전에 선행조건 불충족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선행조건의 문언(“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계속 중이지 않을 것”)에 비추어 분명하다. 또한 합리적인 금융거래당사자의 입장에서 선행조건 조항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불안의 항변권’으로 기능하도록 의도된 것인바 비록 상대방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한 바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이행기에 이르러서는 정상적인 채무이행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면, 불안의 항변권에서 말하는 ‘불안할 사유’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사안 2>에서와 같이 이행기 당시에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 있었음에도 그 후 상대방의 선행조건 불충족이 있었음을 이유로 이미 발생하여 있는 지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문언상 분명치가 않다.

    1.3. [쟁점 3] 유책당사자가 일단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에 채무불이행 사유로부터 벗어난 경우

    이와 같이 일단 이행기 당시에 유책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있었다면 본 선행조건이 불충족되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후에라도 유책상대방(B회사)이 채무불이행 사유로부터 벗어나 선행조건을 충족시켰다면 다시 비유책당사자는 그 지급일(2009. 1. 1.) 당시의 지급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아래의 Marine Trade 판결에서는 일단 선행조건이 불충족되었다면 그 후 이를 다시 충족시키더라도 지급의무는 완전히 소멸되어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보았으나(이른바 “once -and-for-all test”로 지칭됨), 항소법원의 Lomas 판결에서는 그와 반대로 선행조건이 이후 충족되었다면 지급의무도 되살아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1.4. [쟁점 4] 도산과 같이 선행조건 불충족이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

    도산에 해당하는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이는 사실상 종국적이고 사후적으로 그 치유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본 조항을 들어 계약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잘못한(즉, 속칭 베팅을 잘못한) 비유책당사자가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기화로 시장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이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유책당사자의 선행조건 불충족 주장에 어떤 시간적 제한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즉, 본 선행조건 조항의 취지를 고려하여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합리적 시간’, 내지는 최소한 거래종료일(만기)까지만 선행조건을 주장할 수 있고 그 후에는 지급의무를 이행하든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항소법원은 그러한 시간적 제한의 존재를 부정(Lomas 판결)하였지만, 미국 뉴욕주 남부지구 지방법원에서는 연방파산법을 들어 일정한 시간적 제한을 부가하였다(후자는 IV.에서 설명).

       2. 영국 법원의 판결례

    2.1. 영국 고등법원 상사부의 Marine Trade v Pioneer 판결28)

    2.1.1. 사실관계

    원고(Marine Trade)는 2007. 5.경부터 피고(Pioneer)와 사이에서 발틱해운거래소에서 발표하는 운임지수를 기초로 차액결제를 하는 수개의 운임선도거래(이른바 ‘FFA’)를 하여 왔다(판결문 [1], [2], [10] 문단. 이하 대괄호 안의 숫자는 이를 말한다).29) 그 각 거래는 통상 운임선도거래에서 사용되는 표준계약서 양식인 ‘2007 운임선도거래중개업자협회(FFABA) 계약서’을 사용하여 체결된 기본계약 하에서 이루어졌는바, 위 표준계약서 제9조는 1992년 판 ISDA 기본계약서를 계약내용으로 편입하면서 쌍방향지급방식을 정하고 있었다([9]). 그런데 피고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 1.경부터 지급불능 상태(제5조 (a)항 (vii)호 (2)목에서 정하는 채무불이행 사유에 해당)에 빠졌다([13]~[19]).30) 당시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서, 자신이 매도인이었던 거래들에서 결제금액으로 미화 약 700만 달러만큼 내가격에 있었으며 반대의 거래들에서 결제금액으로 약 1,200만 달러만큼 외가격에 있게 되었고([3], [4]), 위 각 채무의 이행기는 2009. 2. 6.이었다. 다른 한편 2009. 5.경 원고에 대하여도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다.

    2.1.2. [쟁점 1]과 관련한 판단

    원래대로라면 원고는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c)항의 네팅조항에 의하여 위 금액을 차감한 약 500만 달러를 지급할 의무가 있게 될 것이었다.31) 그러나 원고는 오히려 외가격에 있던 금액은 무시하고 자신이 내가격에 있던 약 700만 달러 전부를 자신에게 지급할 것을 요구하였는바, 이는 유책당사자인 피고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본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비유책당사자인 원고 자신이 외가격에 있던 약 1,200만 달러에 대하여는 지급의무가 없게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즉, ISDA 기본계약서의 지급정산네팅에 관한 조항인 제2조 (c)항의 문언은 각 당사자가 각자에게 “지급되어야 할 금액(amounts ⋯ otherwise be payable)”이 있다면 동일한 금액의 한도에서 ‘지급의무(“obligation to make payment”)’가 이행된 것으로 보고 남은 금액에 대한 일방의 지급의무만이 각자의 의무를 대체한다고 규정하는바, 피고의 선행조건 불충족으로 인하여 원고는 1,200만 달러에 대하여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지급정산네팅의 대상인 ‘지급되어야 할 금액’ 내지 ‘지급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19]). 영국 고등법원 상사부 플록스(Flaux) 판사 역시, ISDA 기본계약서 전반을 고려하면 ‘지급되어야 할 금액(amounts ⋯ payable)’이라는 문언은 ‘즉시 집행될 수 있는 지급의무의 대상인 금액’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므로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지급의무가 없게 되었다면 그 지급액은 지급정산네팅의 대상에도 해당할 수 없다고 보았다([22], [23]).

    2.1.3. [쟁점 2]에 관한 판단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 역시 2009. 5.경 후속적으로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여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위 약 700만 달러에 대한 지급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위 법원은, 위 선행조건은 그 지급의무의 이행기에 충족되어 있으면 충분한 것이고 따라서 2009. 2. 6. 당시 원고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없었던 이상 그 후에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더라도 원고는 위 지급의무에 관한 선행조건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57]). 만약 이렇게 보지 아니하면 이행기에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일방 당사자가 그 후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무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59]).

    2.1.4. [쟁점 3]에 관한 판단

    나아가 FFABA 계약서 전반의 구조를 고려하면 위 선행조건의 충족 여부는 매월 특정 결제금액에 대하여 그 이행기에 평가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위 결제금액의 이행기인 2009. 2. 6. 당시 피고가 일단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던 이상 그 후 피고가 지급불능 상태에서 벗어나 채무불이행 사유가 치유되었다고 하더라도 비로소 그 선행조건이 충족되어 원고의 위 결제금액 지급의무가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부수적 의견(obiter dictum)까지 피력하였다([60], [61]).

    2.2. 영국 항소법원의 Lomas v JFB Firth Rixson판결32)

    이 판결은 ISDA 기본계약서를 사용한 이자율스왑거래 내지 위 FFABA 계약서를 사용한 운임선도거래에 있어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가 문제된 네 개의 1심 판결을 병합하여 판단, 정리한 판결로서 ISDA가 직접 소송에 제3자로 참가하여 본 조항의 해석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기도 하였는바, 이 판결은 앞으로 중요한 선례가 될 만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이하에서는 먼저 앞서 본 해석상의 쟁점들을 직접 다루고 있는 두 개의 항소에 대한 판단 부분을 살펴본다.

    2.2.1. 첫 번째 항소사건(Lomas v JFB Firth Rixson & Ors)

    리만 브라더스 인터내셔널의 유럽지사[Lehman Brothers International (Europe). 이하 ‘LBIE’라고만 한다]는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일반 제조회사인 JFB 퍼스 릭슨(JFB Firth Rixson) 등 네 개의 회사(이하 ‘피항소인’으로 통칭한다)와 사이에서 이자율스왑거래를 하여 오다가 2008. 9. 15. 관리절차(administration)33) 에 들어가게 되었다. 로마스(Lomas) 등이 LBIE의 관리인으로 선임될 당시 위 각 거래의 만기(종료일)는 모두 위 2008. 9. 15. 이후로 정하여져 있었고(판결이 내려질 당시에는 그 각 거래의 만기가 이미 도래하였다), 그 2008. 9. 15. 당시 LBIE가 내가격에 있어 상당한 금액을 지급받아야 하거나 지급받을 상황에 있었다([10], [11], [13]). 유책당사자에 해당하는 위 관리인 측은 비유책당사자인 피항소인들이 조기종료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채 제2조 (a)항 (iii)호를 들어 그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자 그 지급을 구하는 취지에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1) [쟁점 2]에 관한 판단

    먼저 항소법원은 본 조항에 따른 선행조건은 이행기까지 충족되어 있으면 충분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LBIE가 관리절차에 들어간 2008. 9. 15. 전에 이미 이행기가 도래한 지급의무에 대하여는 피항소인들이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하였다([21]).

    (2) [쟁점 3]에 관한 판단

    이를 전제로 위 일자 후에 이행기가 도래하는 지급의무에 관한 피항소인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이행기 당시 선행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지급의무가 종국적으로 소멸한다는 Marine Trade 판결의 태도는 비유책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34) 에 비추어 본 조항에 따른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였더라도 지급의무는 ‘연기’될 뿐이며 향후 선행조건이 충족되면 지급의무는 다시 되살아난다고 보아야 한다([35])고 보았다.

    (3) [쟁점 4]에 관한 판단

    관리인 측에서는 제2조 (a)항 (iii)호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여 지급의무가 연기된 상태에서 그것이 치유되지 아니한 채로 당해 거래의 만기가 도래하게 되면 더 이상 위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없고 그 지급의무는 되살아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1심 법원은 본 조항이 적용되는 동안 무한정 조건부 권리가 존속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오히려 거래 만기가 도래하면 지급의무가 소멸하게 된다는 피항소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14], [49]).

    그러나 항소법원은 다음과 같이 1심 법원의 이러한 판단 중 만기 도래시 지급의무가 소멸한다는 부분을 파기하면서, ISDA 측 대리인의 주장에 따라 선행조건 불충족 시 지급의무는 채무불이행 사유가 치유되거나 비유책상대방이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한 무한정 연기되는 것이며 거래의 만기가 도래하더라도 지급의무가 되살아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먼저 지급의무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근거로, 지급의무가 소멸한다는 명시적 계약문언이 없고 계약당사자들은 그에 따른 결과를 수인하여야 한다는 점([57]),35) 그리고 거래 만기 후에 비로소 조기종료가 이루어지더라도 조기종료금액의 산정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59])36) 등을 들었다.

    또한 반대로 일정 시점 후에는 채무불이행 사유가 치유되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의무가 되살아나야 한다는 관리인 측의 주장에 대하여는, 당사자들이 자동조기종료 특약을 선택함으로써 당사자들은 조기종료 권한의 행사를 강제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였다는 점과 조기종료 권한은 비유책당사자를 보호하는 장치라는 점을 지적하였다([41], [42]).

    2.2.2. 두 번째 항소사건(LBSF v Carlton Communications Limited): [쟁점 1]에 대한 판단

    리만 브라더스의 특수금융 부문(Lehman Brothers Special Financing. 이하 LBSF라고만 한다)과 칼튼 통신회사(Carlton Communications Limited) 사이에서 이루어진 두 개의 이자율스왑거래와 관련하여, 항소법원은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지급액도 지급정산네팅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 위 Marine Trade 판결과 본 사건의 1심 판결의 태도를 뒤집었다. 즉, 1992년 판 ISDA 기본계약서의 취지가 동일한 이행기에 있는 한 개 이상의 거래상 반대되는 채권채무를 서로 자동으로 상계되도록 함으로써 상대방 신용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것에 있는 만큼 이러한 명백한 상업적 목적을 존중하는 해석을 하여야 하며, 지급정산네팅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게 되면 비유책당사자에게 지나친 이익을 부여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는 것이다([74], [75]).

    이 부분 판단은 사건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항소법원은 이러한 해석이 아래 IV.에서 설명하는 본 조항의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 위반 여부 판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3. 대한민국 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경우

    이와 같이 현재 영국에서는 본 조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대립되는 두 개의 판결이 내려져 있는 상황이다. 처분문서의 문언과 함께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등에서 드러나는 ‘표시상의 효과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계약문언해석에 관한 태도37) 를 전제로 하면, ISDA 기본계약서 중 준거법을 한국 법으로 수정하여 체결된 기본계약상의 선행조건 조항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3.1. [쟁점 1] 선행조건 불충족과 지급정산네팅

    먼저 제2조 (a)항 (iii)호의 문언상 그 선행조건이 부착된 것은 ‘제2조 (a)항 (i)호에 따라 이행할 의무’인데, 제2조 (a)항 (i)호에 따르면 그 의무는 거래확인서와 기본계약서상의 제반 조항에 따라 정하여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제2조 (c)항의 지급정산네팅까지 모두 이루어져 차감된 하나의 지급의무가 제2조 (a)항 (iii)호의 선행조건에 걸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문언에 맞다.38)

    또한 이는 ISDA 기본계약서라는 ‘기본계약’의 형식을 통하여 수 개의 거래를 하나의 계약 하에 묶으려고 하였다는 점으로부터 추단되는 거래당사자들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ISDA 기본계약서 양식이 고안된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다수거래를 포괄하는 ‘기본계약’이라는 계약 구조를 사용하여 실질적으로 당사자들 사이에 지급되어야 할 채권채무의 액수를 차감하여 신용위험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기본계약 하에서 이루어진 거래들은 모두 ‘하나의 계약’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취급되도록 하고[제1조 (c)항의 ‘단일계약조항(single agreement clause)’], 그 수 개의 거래들에서 발생한 동일한 이행기의 쌍방 지급금액에 대하여 한꺼번에 기본계약상의 지급정산네팅조항[제2조 (c)항]을 적용하여 차감한 하나의 채무만을 ‘지급의무’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거래당사자들이 ISDA 기본계약서를 사용하는 목적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관 사용의 일반적인 목적’을 고려하여 본 선행조건 조항을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약관의 객관적, 통일적 해석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유책당사자가 지급정산네팅을 주장하는 것은 본 선행조건에 의한 항변권이 붙어 있는 지급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를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들어 대한민국 법 하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합의를 하였을 리 없다고 의문을 제기할 여지도 있다.39) 그러나 다른 한편 대법원은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붙어 있는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더라도 그 수동채권과 사이에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경우라면 상계가 허용된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바,40) ISDA 기본계약서상 지급정산네팅은 원칙적으로 동일한 이행기에 있는 수 개의 채권채무들에 대하여 적용되도록 되어 있어 이들은 서로 동시이행관계에 있는바 본 포괄적 선행조건에 따른 항변권은 불안의 항변권이나 동시이행의 항변권과 같은 맥락에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계가 허용되는 경우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 게다가 본 네팅 조항에 따른 채무액의 차감은 일방의 의사표시에 의하지 아니하고 계약상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41) 여기에 미리 합의한 비유책상대방이 ‘항변권 행사의 기회를 박탈’ 당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이 문제와 구별하여야 하는 것은 위 제2조 (c)항의 네팅조항과 상관 없이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상계의 경우이다(ISDA 기본계약서 제14조 정의조항에서는 일반적인 ‘상계’ 역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정하고 있다). 가령 복수거래 지급정산네팅 특약이 없는 경우라면 동일한 기본계약 하의 거래들이라도 상이한 거래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채무에 대하여는 지급정산네팅이 적용될 수 없으며, 또한 지급일이 서로 달리 정하여진 지급의무들 간에는 그 특약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정산네팅이 불가능하다. 이때에는 일반적인 상계법리에 따른 상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인바,42) 상계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으로 정하여지는 경우라면43) 항변권이 부착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상계가 금지된다는 점에 비추어 유책당사자가 ISDA 기본계약서에 따라 체결된 기본계약 하의 지급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비유책당사자의 별개의 채권과 상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채무불이행 사유가 ‘파산(Bankruptcy)’인 경우에 있어 그 절차가 대한민국에서 개시되었다면 도산법정지법인 채무자회생법상의 상계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44)

    3.2. [쟁점 2] 선행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

    앞서 설정한 <사안 2>와 같이 일방당사자(A은행)가 지급일 당시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그 후 상대방(B회사)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이유로 기존 지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에 있어서는 영국 법원과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우선 Marine Trade 판결에서와 같이 A은행이 선행조건이 충족되어 있던 이행기 당시 자신의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던 점에 주목한다면 그에게 보호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일단 B회사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한 이상 A은행이 상대방의 반대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 역시 사실이고 선행조건 조항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상황 하에서 지급의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신용위험을 규율하기 위하여 포함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경우에도 A은행은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는 계약해석 기준(합리적 거래당사자라면 무엇을 의도하였을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가치판단의 문제이다.45) 그런데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정한 민법 제536조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은 아무래도 후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고 사료된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쌍무계약의 일방이 선이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후이행의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그 각 채권채무가 서로 동시이행관계에 있게 된다고 하는바(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1다27784, 27791 판결 등 다수),46) 이는 곧 일방이 이행을 지체하여 보호가치가 없다는 사정보다는 쌍무계약으로부터 기대되는 ‘이행의 견련성’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안 2>와 같은 경우에 있어 대한민국 법을 준거법으로 하였다면, A은행은 자신의 지급일이 지났더라도 후속적으로 B회사의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며 이미 발생한 지급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것이 대법원이 상정하는 합리적 거래당사자의 가치판단에 부합한다.

    3.3. [쟁점 3] 유책당사자가 선행조건을 사후에 충족한 경우 지급의무가 되살아나는지 여부

    ‘선행조건’에 정확히 대응하는 우리 법 상의 개념은 찾기 어렵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그렇더라도 ISDA 기본계약서에서 정하는 선행조건은 대체로 ‘정지조건’ 또는 ‘불안의 항변권’과 유사한 것이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어느 측면에서 보나, 유책당사자(B회사)에게 이행기 당시 채무불이행 사유가 있어 선행조건이 불충족 되어 있었더라도 그 후 채무불이행 사유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선행조건을 충족하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비유책당사자(A은행)는 지급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계약당사자들이 대한민국 법 하에서 의도한 바라고 봄이 타당하다.

    (가) 우선 정지조건에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본 선행조건 조항은 “선행조건”이라는 문언상 ‘지급의무의 발생에 대한 조건’을 정한 것이지 ‘지급의무의 소멸에 관한 조건’을 정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므로,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면 선행조건에 의하여 단순히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못한 상태가 될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지조건은 기한이 아니므로 특약이 없는 한 특정 시점까지 정지조건을 충족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다음으로 불안의 항변권에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일단 이행기 당시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있어 자신의 지급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안할 사정이 있어 그 이행을 거절하는 것이 타당하였더라도 그 후 그러한 불안할 사정이 사라졌다면 그 불안의 항변권도 소멸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3.4. [쟁점 4] 본 조항에 따른 지급연기의 한계와 지급의무의 소멸?부활 여부

    결론부터 말하면, 비유책당사자가 제2조 (a)항 (iii)호를 주장하여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고 있는 이상 그의 지급의무는 거래만기와 관련 없이 존속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47) 즉, 선행조건이 불충족한 상태로 만기 또는 조기종료 권한 행사에 필요한 합리적인 기간이 지난 일정 시점이 도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지급의무가 되살아난다는 등으로 비유책당사자가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는 데 시간적 제한이 있다고 볼 것은 아니고, 또한 반대로 그 상태로 만기가 지나면 아예 지급의무가 소멸한다고 볼 것도 아니다.

    (1) 먼저 후자에 관하여 보면, 비유책당사자는 일정 시점이 지났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유책당사자가 채무불이행 사유를 사후적으로 치유함으로써 ‘지급할 의무(앞서 II. 2.에서 본 “payment obligation”을 말한다)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부담’을 안은 상태에서만 거래를 조기종료하지 아니하고 본 조항에 따른 지급 연기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① 이러한 해석은, 어떤 거래의 ‘만기’라는 것은 계속적 거래의 종료일을 뜻할 뿐이고 거기서 나아가 이미 발생한 지급의무의 존속기간을 정한 것은 아니라는 일반적인 이해에 부합한다. ② 또한 본 조항에 따라 연기된 지급의무에 대하여 일정한 이자가 부가됨을 정한 2002년 판의 제9조 (h)항 (3)호 (A)문 역시 지급의무에 대한 어떤 시간적 제한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 ③ 한편, 이렇게 봄으로써, 그러한 대차대조표상의 부담을 무한정 안고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비유책상대방으로 하여금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 그 포지션을 해소하도록 하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도 있다.48)

    (2)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예 비유책당사자는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합리적인 시점까지만 본 조항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역시 시간적 제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선행조건 조항의 문언에 비추어 지나치다.49) 또한 ISDA 기본계약서 부속서에서는 당사자들이 자동조기종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음에도 이를 선택하지 아니하였다면 이는 일응 비유책당사자에게 조기종료에 관한 재량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법원이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비유책당사자인 일방이 오랜 기간 동안 ISDA 기본계약서상의 선행조건을 주장하며 이행을 거절하는 것이 일반 민법상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 권리남용이라고 보아 이를 불허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50) 선행조건 조항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는 데에 기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행을 피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오랜 기간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는 것은 그 선행조건을 남용하는 것이라 볼 여지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권리의 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짐이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한다고 보는바(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다68941 판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계약조항을 주장하는 것이 그러한 상황에 해당한다고 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유책당사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는 사정 내지는 금융기관의 도산 시 그가 당사자가 된 장외파생금융거래의 신속한 정산을 유도하여야 한다는 정책적 방향51) 은,아래 IV.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산법제의 개입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고 또 기본적으로는 그로써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4. 선행조건 조항의 적용이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들과 배제 특약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할 당시 쌍방 사이에 존재하는 잔존 지급관계에 있어 유책당사자의 지급의무는 존재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가령 현금결제형의 기본적인 옵션거래(plain vanilla option)에 있어 옵션매입자가 프리미엄을 이미 지급한 상태에서 파산한 경우 옵션의 특성상 비유책당사자인 옵션매도인이 옵션행사에 따른 차액지급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은 있어도 옵션 권리자가 지급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일방이 만기까지의 고정금액의 현재가치를 거래 체결 시 미리 지급하도록 정하는 ‘선불스왑(prepaid swap)’52) 에서먼저 그 지급의무를 이행한 자가 파산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통상의 이자율스왑거래에서 유책당사자가 내가격인 상태에서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고 이어 만기가 도래하여 더 이상 그 거래상으로는 유책당사자가 지급의무를 부담할 여지가 없는 경우53) 도 같다.

    기본계약 하에서 위와 같은 거래만 이루어진 경우에 있어서는, 비유책당사자가 지급의무를 부담할 뿐이고 지급채권을 가지게 될 여지는 없기 때문에 상대방 신용위험을 감소시킨다는 본 조항의 ‘불안의 항변권’으로서의 취지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유책당사자로서는 계약당사자들이 이러한 경우들에까지 본 조항을 적용시킬 의도는 없었다는 주장을 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아예 계약 체결 시점에 이러한 경우의 불합리함을 고려하여 부속서 제5부(Part 5)에서 ‘상대방이 지급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고 아울러 장래에 그러한 채무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2조 (a)항 (iii)호 (1)목의 선행조건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약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기본계약 하에서 그러한 거래만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특약이 실제로 추가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하지만,54) 금융소비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이루어지는 파생금융거래라면 일회적으로 그러한 거래만 이루어지는 경우를 상정 못할 것도 아니다.

    그러한 특약이 편입되지 아니하였더라도 본 선행조건을 그와 같은 경우에까지 적용하는 것의 불합리함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른바 ‘도산해지조항’에 관한 도산법제의 규제에 의하여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55)

       5. ISDA 기본계약서의 해석방법 전반에 관한 시사점

    5.1. 일반적인 계약해석의 원칙과 위 논의의 한계

    ISDA 기본계약서는 복잡한 파생금융거래를 수행하기 위하여 작성된 표준계약서이고 실제로도 상당한 분량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흔히 ISDA 기본계약서가 거의 모든 상황에 대비한 계약 조항을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선 논의에서 볼 수 있었듯이 선행조건 조항만 놓고서 보더라도 정확한 문언이 없어 보충적인 해석이 필요한지 여부가 문제되는 쟁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또한 계약서 양식의 분량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은 그 표준계약서가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56) 결국 ISDA 기본계약서에 따라 체결된 기본계약에 있어 그 문언을 놓고 계약해석의 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계약해석은 근본적으로 계약당사자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합치된 의사를 계약문언의 의미를 통하여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이므로 당사자와 사실관계에 따라 그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야말로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고, ISDA 기본계약서를 사용한 계약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제반 사정에 따라 그 해석 결과가 이상의 논의와는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비교법적으로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른바 ‘표시상의 효과의사’를 발견하기 위하여 계약 문언뿐 아니라 여러 가지 구체적인 제반 사정들을 고려하고 있어, 영국 법이나 뉴욕주 법에 비하여 강학상 脈絡主義(당사자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하여는 주변 정황도널리 고려하여 당해 계약당사자가 의도하였던 바를 밝혀야 한다는 태도)57) 적인 입장에 있다고 평가된다.58) 그러한 입장일수록 개별 사안의 특수성이 강조될 것이다.

    5.2. 준거법 조항을 통한 ISDA의 ‘계약해석방법의 표준화’ 시도

    일반적으로 계약당사자들마다 계약문언이 달리 해석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파생금융상품을 규율하는 ISDA 기본계약서에 있어서는 이것이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ISDA 기본계약서는 장외파생금융거래의 대부분에 있어 표준계약서로 사용되어 오고 있으므로, ISDA 기본계약서의 문언에 관한 법원의 해석은 그 동일한 문언을 계약조항으로 사용한 다른 시장참여자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ISDA 기본계약서의 동일한 조항에 대하여 여러 해석이 나오게 되면 거래의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준거법이 다르면 그에 따라 당사자들이 부담하는 위험의 내용이 달라져 그 경제적 가치에도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에 따라 ‘파생금융상품 가치의 표준화’도 불가능59) 하게된다. 그리고 이는 정확한 위험회피거래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비하여 ISDA는 ISDA 기본계약서상 표준 준거법으로 엄격한 문언해석의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법 또는 뉴욕주 법을 정하고 그 관할법원 역시 영국법원 내지 뉴욕주를 관할하는 연방법원으로 정하여 놓았다.60) 영국 계약법은 일반적으로 유럽계약법원칙(PECL)이나 기타 영연방 국가들의 경우보다 계약문언을 중시한다고 평가되고,61) 뉴욕주 법 역시 구두증거배제법칙 및 완결조항(merger clause) 존중 등의 법리를 통하여 엄격한 문언해석의 태도를 취하여 왔다.62) 결국 ISDA는 계약해석방법에 관한 형식주의를 이용하여, ISDA 기본계약서 작성 당시 내포된 ISDA 내지 ‘(ISDA가 생각하기에) 시장에서 통용되는 의사’와 달리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특수한 계약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통일적 해석이 이루어기를 기대하였다고 할 수 있다.63) 64)

    그러나 그러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위 선행조건 조항에 대한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까지 있었던 장외파생금융거래에 관한 일련의 판결들은 그러한 의도된 결과들을 항상 불러오지는 못하였다. 가령 선행조건이 불충족된 경우 지급정산네팅이 불가능하게 된다거나 지급의무가 완전히 소멸되어 그 후 치유의 가능성이 없게 된다는 Marine Trade 판결의 판시사항은 시장이 생각하고 있던 선행조건 조항의 효과와는 다른 것이었고 그리하여 그 후 Lomas 사건에서는 아예 ISDA가 영국 민사소송절차상 제3 당사자로 개입하여 직접 계약 해석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65)

    또한 최근에는 준거법을 영국 법으로 정한 경우와 뉴욕주 법으로 정한 경우 사이(또는 재판관할을 영국법원과 미국 뉴욕주 남부지구 지방법원으로 정한 경우 사이)에도 차이가 없지 않다는 점이 각종 금융 관련 분쟁들에서 드러나고 있다.66) 이론상으로도 영국 법원은 종래 계약문언의 의미를 밝힘에 있어 모든 제반 사정이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왔고, 계약문언의 의미는 ‘상업적 합리성(commercial reasonableness)’에 맞도록 해석되어야 한다는 법리가 인정되어 왔다.67) 반면 뉴욕주 법에서는 계약문언의 의미가 모호한 경우에만 다른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확정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아래 IV.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법정지법에 위반되어 무효인지 여부와 관련하여서도 미국 연방파산법과 영국 법은 그 태도를 달리하였다.

    5.3. ISDA의 새로운 대응방안: 금융중재의 활용?

    일부 판결들이 장외파생금융상품시장의 통용되는 인식에 배치되는 것이었다는 생각에서, 최근 시장에서는 관련 분쟁을 중재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68) 장외파생금융거래 전문가들에 의한 중재로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관련 계약을 시장에서 통용되고 기대되는 방식으로 해석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립취지로 한 이른바 ‘프라임 파이낸스(P.R.I.M.E. Finance69) )’라는금융분쟁 전문의 중재기관이 만들어졌고, ISDA는 최근 ‘2013년 ISDA 중재 가이드’를 마련하여 ISDA 기본계약서 내에 삽입할 수 있는 표준 중재조항[기존 ISDA 기본계약서 제13조 (a)항을 수정]을 발표하였다. 전통적으로 금융분쟁은 그 복잡성 등으로 인하여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에 친하지 아니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만큼,70) 앞으로 금융중재에 의한 ISDA 기본계약서의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물론 이를 통하여서도 도산절차에서의 법원의 개입을 막을 수는 없다.71) 나아가 파생금융거래에 관한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려는 그러한 추세에 대하여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볼 만하다.

    먼저, 금융위기에 영향을 끼친 요인 중 하나로 장외파생상품 시장의 불투명성72) 이 중요하게 부각된 바 있다. 그런데 그에 관한 분쟁이 소송이 아닌 중재에 의하여 해결되는 경우 그 불투명성이 오히려 더 심화될 수 있다.73) 또한 그러한 중재기관의 중재인들은 금융산업에 종사하던 자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금융소비자와의 분쟁에서 금융산업에 경도된 판정경향을 보여줄 우려도 없지 않고, 그러한 점에서 분쟁해결절차 자체도 불투명하게 될 수 있다.

    5.4. ‘약관’으로서의 ISDA 기본계약서와 대한민국 법 하에서의 해석원칙

    계약조항의 해석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표준계약서를 사용한 계약에 대하여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른 접근 방법이 이루어질 여지가 있다. ISDA 기본계약서 역시 계약 일방이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양식으로서 이를 사용하여 체결된 계약의 내용은 ‘약관’에 해당[「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 제2조 제1호]하는바,74) 이러한 약관의 해석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5조 제1항 후단과 대법원이 ‘객관적·통일적 해석원칙’75) 을 인정하여 오고 있기 때문이다.76) 이때 계약문언해석의 기준이 되는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은 ISDA 기본계약서의 경우, 장외파생상품시장에서 ISDA 기본계약서가 애초 제정된 취지(장외파생상품의 표준화 및 신용위험의 감소), 1992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어 온 연혁 내지 경과, 그리고 ISDA가 발간한 해설서(“User’s Guide” 등)의 내용 등을 기초로 하는 것이 될 것이다.77) 근사한 예로 서울고등법원 2001. 6. 20. 선고 2000나56752 판결은 금융기관 종합보험계약(이른바 ‘비행담보보험’의 일종) 조항을 해석함에 있어 ‘피용자 등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피보험자가 입게 되는 손해를 담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강도보험증권이 발전, 확대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행담보보험의 연혁을 중요한 고려요소로 설시하였다.

    이와 같이 약관의 객관적‧통일적 해석 원칙은 장외파생금융계약의 해석에 있어 국제적인 정합성을 맞추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위 원칙 자체에 대한 비판78) 은 차치하더라도 이를 위와 같이 적용하게 되면 국제적인 대규모 금융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해석으로 귀결될 문제는 있다. 특히 대규모 금융회사들은 건전성 규제의 대상이 되고 일반적으로 금융거래에 익숙하기에 금융소비자에 대한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비유책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본 선행조건 조항과 같은 조항은 일반적으로는 금융회사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ISDA 기본계약서가 약관에 해당하더라도 이는 원칙적으로 금융업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약관으로서 약관규제법 제6조 이하의 내용통제가 적용될 수 없으며(같은 법 제15조,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2호 및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8다9038 판결 참고), 이러한 점에서 금융중재 조항에 대한 내용통제도 불가능한 만큼 장외파생금융거래에 나서는 금융소비자들의 보호 문제가 제기될 여지는 더욱 크다.

    물론 약관규제법 제15조에 의하더라도 배제되지 않는 제5조 제1항 전단은 약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79) 이에 주목하면,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기업고객에 대하여 거래상대방인 금융기관이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의 선행조건을 주장하는 것을 두고, 우리나라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이를 제한하는 계약해석을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객관적, 통일적 해석원칙을 고려하면 법원이 금융소비자가 당사자라는 구체적인 사정을 이유로 특별히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26)원문은 VII.에 소개하였다.  27)다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동일한 유형의 파생금융상품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 실제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결제시스템에서 상이한 유형의 파생금융상품들 사이의 결제를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Alastair Hudson, The Law of Finance (London: Sweet & Maxwell, 2013) §[41-40].  28)[2009] EWHC 2656 (Comm); [2009] 2 CLC 657. 참고로 영국의 고등법원(High Court)은 중요 사건을 담당하는 1심 법원이다.  29)위 거래소의 운임지수를 기초로 산출되는 ‘결제운임(Settlement Rate)’과 미리 거래당사자들이 합의한 ‘계약운임(Contract Rate)’의 차이에 계약수량을 곱하여 매월 산정되는 금액을 기준으로, 결제운임이 더 높으면 매도인이 그 금액의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반면 계약운임이 더 높으면 매수인이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30)이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위 조항의 ‘파산’의 의미에 있어 이행기가 도래한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경우는 영국의 1986년 도산법(Insolvency Act 1986) 제123조 (1)항 (e)호의 의미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13]). 최근 내려진 Deiulemar Shipping SpA v Transfield ER Futures Ltd. [2012] EWHC 928 (Comm) 판결 역시 단순히 대차대조표상으로 채무초과상태에 빠졌다고 바로 ‘파산’으로서의 채무불이행 사유에 해당하도록 의도하였을 리 없고, 그러한 채무초과상태가 자산부족으로 인하여 회복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위 1986년 도산법상 도산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충족하여야 ISDA 기본계약서상의 채무불이행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31)FFABA 계약서 제9조는 당해 계약서에 편입되는 ISDA 기본계약서의 제2조 (c)항 (ii)호는 배제된다는 조항을 두어 복수거래 지급정산네팅 특약을 표준조항으로 정하고 있었다.  32)[2012] EWCA Civ 419.  33)영국의 관리절차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회사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재건형 절차로서 우리의 회생절차에 상응한다.  34)경미한 채무불이행 사유들로서 가령 ① 모자란 금액만을 지급하고 그로부터 3일 내에 부족분을 더 지급하지 아니한 경우 내지는 ③ 정당하지 아니한 청산신청 또는 파산신청이지만 30일 내에 그 신청이 기각되지 아니하는 경우(‘잠재적’ 채무불이행 사유에 해당)들도 존재하는바, 이러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다른 지급의무가 종국적으로 소멸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31]).  35)명시적인 계약문언이 없음에도 보충적 해석을 통하여 일정한 내용이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것인지 여부는 이른바 묵시적 계약조건(“implied terms”)에 대한 영국 계약법상의 논의에 따라 해결된다. 판례에 따르면, 결국 계약문언의 해석에 의하여 계약당사자들이 의도하였으리라고 인정되는 계약조건만이 보충적 해석에 의하여 추단될 수 있고, 단순히 그러한 계약조건을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McKenrick, supra note 10, pp. 170-172.  36)1심 판결은 거래 만기 후에는 그 거래를 대체할 수 있는 거래를 찾을 수 없어 ‘시장호가’를 상정할 수 없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은 그 시장호가 부분의 가치가 0이 될 뿐이지 금액 산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37)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2다23482 판결 등 다수.  38)Henderson, supra note 2, p. 1074도 같은 취지. 결국 이에 따르면 차감된 하나의 지급의무만이 기본계약상의 채권 내지 채무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본고에서는 지급정산네팅이 이루어지기 전에 산정된 쌍방의 서로에 대한 지급금액도 편의상 ‘채권’·’채무’로 일단 지칭하기로 한다.  39)항변권이 붙어 있는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는 그 채무자의 항변권 행사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2001. 11. 13. 선고 2001다55222 판결 참고.  40)가령 대법원 2006. 7. 28. 선고 2004다54633 판결  41)물론 Henderson, supra note 2, p. 480-481은 지급정산네팅이 ‘일괄정산네팅(close-out netting)’과 비교할 때 전형적인 계약상 상계(contractual set-off)와 유사하다고 설명하나, 일방의 의사표시 없이 미리 합의된 바에 따라 채권채무의 차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상계와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박준/홍선경/김장호,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20조의 해석 -지급결제제도, 청산결제제도 및 적격금융거래에 대한 특칙의 적용범위 -”, 박준/정순섭, 「파생금융거래와 법」(소화, 2012), 353쪽의 각주 34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상계’와 ‘일괄정산네팅’의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42)한편 1992년 판에서는 부속서에 상계에 관한 표준조항을 삽입할 수 있었고(“User’s Guide to the 1992 ISDA Master Agreements”, ISDA (1993), p. 54 이하) 그 조항은 2002년 판에서는 아예 제6조 (f)항으로 들어가 있는바, 그 조항에서는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금액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별개의 채무와 상계할 수 있음을 정한다.  43)상계의 준거법에 관하여는 「국제사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바, 수동채권과 자동채권의 준거법이 중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수동채권의 준거법에 따르면 된다는 입장이 있다. 한민, “국제금융과 국제도산법에 관한 소고: 실무상의 문제점 분석을 중심으로”, 석광현/정순섭, 「국제금융법의 현상과 과제」(서울: 소화, 2009), 394~395쪽. 특히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의 견해는 결과적으로 두 준거법을 모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상계에 대하여 보다 엄격하게 요건을 정하는 준거법만을 적용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는 견해로 이헌묵, “영국법상 상계제도와 영국법이 적용되는 채권의 상계와 관련한 국내법상의 문제”, 저스티스 통권 제142호 (한국법학원, 2014. 6.), 49~51쪽이 있다. 이에 따르게 되면 결국 비유책당사자가 가령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ISDA 기본계약서에 따른 기본계약 하의 지급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를 주장하는 경우에도 수동채권이 되는 별개 채무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이라면 상계의 가부 역시 대한민국 법에 따르게 된다. 한편 영국에서 ‘보통법상 상계’가 절차법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제기되는 준거법 관련 문제는 같은 논문, 55~56쪽.  44)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28782 판결(대우독일법인에 대하여 독일에서 도산절차가 개시된 사안) 및 임치용, “국제도산사건의 실무상 문제”, BFL 제53호 (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 2012. 5.), 56~59쪽의 논의 참고  45)계약해석은 계약당사자들 사이의 합치된 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이지만, 본문의 쟁점과 같이 계약문언이나 제반 사정으로부터 그에 대한 의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합리적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로 표상되는 가치판단이 개재될 수밖에 없다. “계약당사자들의 현실적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계약해석이 의제(擬制)적, 구성(構成)적 성격을 갖는 것은 불가피”하고 “의제나 구성의 기준은 원칙적으로 합리적 다수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최준규, “계약법상 임의규정을 보는 다양한 관점 및 그 시사점”, 법조 제62권 제9호(법조협회, 2013), 97쪽도 유사한 취지라고 사료된다.  46)반면 지급금지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가 그 후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민법 제498조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론은 반대의 가치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은, 제3채무자가 자동채권으로 삼으려는 채권이 이미 압류 전에 가지고 있던 채권으로서 압류 당시 아직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있지 아니하였다면 제3채무자의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보다 나중에 도래하는 것이 아닌 한 이 경우에도 상계가 금지된다고 보고 있는바, 이는 수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음에도 제3채무자가 이를 변제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여야 상계적상이 될 수 있는 제3채무자라면 압류채권자보다 보호가치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대법원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 중 양창수 대법관의 보충의견)이다. 그러나 위 상계금지의 법리는 ‘압류채권자’라는 제3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으로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계약해석과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위 민법 제498조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압류채권과 제3채무자의 자동채권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것이라면 설사 그 자동채권을 압류 후에 취득하였더라도 상계가 가능하다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리 역시 대법원이 쌍무계약에서의 견련성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최준규, “계약해석과 관련된 최근 대법원 판례들의 개관 -사회제도와 사적자치-”, 비교사법 제20권 제4호(한국비교사법학회, 2013b), 967~968쪽도 참고.  47)Murray, supra note 12, p. 407은 이것이 시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온 본 조항의 해석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48)Murray, supra note 8, p. 12. 또한 Jeremy D. Weinstein/Bruce McIntyre/William F. Henze II, “Escape From the Island of the One-Way Termination: Expectations and Enron v. TXU”, 24(8) Futures & Derivatives Law Report 1 (2004), p. 4에 나타난 ISDA 사내변호사의 견해(제2조 (a)항 (iii)호에 불구하고 같은 취지에서 비유책당사자들은 결국 조기종료를 선택하고자 할 유인이 있다)도 참고.  49)이는 그러한 제한이 있는 계약조항을 두는 것(가령 ISDA에서 본 조항과 관련하여 새로이 발표한 개정양식)이 타당한지 여부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50)한편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 내지 권리남용 금지를 정한 민법 제2조 등이 국제적 강행법규라 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가 제기되는바, 이헌묵, “국제적 강행규정의 판단기준”, 인권과 정의 제442호(대한변호사협회, 2014. 6.), 91쪽은 이를 긍정하고 있다.  51)HM Treasury, supra note 22, p. 122~123. 물론 이러한 신속한 조기종료를 촉진하는 것에 대하여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될 여지는 있다. 예컨대 마치 뱅크런에서와 같이 금융시장에 위기가 발생하면서 파생금융거래의 비유책당사자들이 모두 조기종료에 나서게 되면서 유책당사자가 유동성위기에 빠질 수도 있고 이것이 시스템위험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Tamar Frankel/Mark Fagan, Law and the Financial System - Securitization and Asset Backed Securities: Law, Process, Case Studies, and Simulations (Vandeplas Publishing, 2009), p. 202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인 측면과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인 계약해석은 다른 문제다.  52)실제로 엔론은 특수목적법인을 개입시킨 3당사자 간의 선불스왑거래로 실질적인 대출거래를 달성하면서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령 JP Morgan Chase Bank, for and on behalf of Mahonia Ltd and Mahonia Natural Gas Ltd v. Liberty Mutual Insurance Co, 189 F. Supp. 2d (SDNY, 2002) 사건에서는, Mahonia라는 특수목적법인이 JP Morgan Chase로부터 대출을 받고 엔론이 자회사를 통하여 Mahonia와 선불스왑거래를 통해 실질적으로 그 대출금을 계약체결일에 일시금으로 수령하면서, 동시에 다른 특수목적법인과 반대의 선불스왑거래를 하여 실질적으로는 대출거래만 경제적 의미를 가지게 되도록 거래를 하였다(뉴욕주 남부지구 지방법원은 위 거래가 실질적으로 대출에 해당한다고 봄). 또한 Mahonia Ltd v JP Morgan Chase Bank [2003] EWHC 1927 (Comm) 사안에서는, 엔론과 특수목적법인 마호니아(Mahonia), 그리고 JP Morgan Chase 3당사자 간에 각각 선불스왑거래를 하여 ① 계약 체결일에는 JP Morgan Chase로부터 Mahonia를 거쳐 엔론에 선금이 지급되고, ② 만기에 지급될 가스선물가격에 따라 정하여지는 변동금액은 엔론으로부터 마호니아 및 JP Morgan Chase를 거쳐 다시 엔론에 되돌아오며, ③ 엔론과 JP Morgan Chase 사이의 스왑거래에 의하여 엔론이 만기에 원리금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하여진 고정금액을 JP Morgan Chase에 직접 지급하는 거래를 구성하였다(영국법원은 그 일련의 거래를 법적으로 하나의 대출거래로 인정하지 아니함). 각 판결에 대한 분석으로는 Henderson, supra note 2, p. 441 이하 및 Tamar Frankel/Mark Fagan, supra note 51, p. 67 이하를 참고.  53)James Grand/Perry Sayles, “Bankruptcy code trumps Isda”, 28 Int’l Fin. L. Rev. 34 (November 2009), p. 35도 이 마지막 사례를 특히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로 들고 있다.  54)신용진, 전게서(주 3), 260~261쪽  55)한편 보장매도자 자신을 준거자산으로 하는 CDS 거래(소위 self-referenced CDS)에 있어 보장매도자가 파산하는 경우에는, 보장매도자의 파산을 이유로 보장매도자가 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로 되므로 본 조항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아래에서 보는 영국법상의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Timothy Cleary, “Lehman Brothers and the anti-deprivation principle: current uncertainties and proposals for reform”, 6(4) CMLJ 411 (2011), pp. 446-447.  56)앨런앤오버리(Allen & Overy LLP)의 미국지사 설립파트너로서 ISDA 기본계약서의 작성 과정에 상당 부분 참여하였던 제프리 골든 변호사에 따르면, ISDA는 ISDA 기본계약서가 너무 복잡하고 방대한 분량으로 되어 시장에서 통용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였고 상세한 내용은 기본계약서가 아니라 각 파생금융상품 별로 경제적 조건을 정하는 정의집(ISDA Definitions)에 담도록 하였다고 한다. Jeffrey Golden, “Interpreting ISDA terms: when market practice is relevant, as of when is it relevant?”, 9(3) CMLJ 299 (2014), p. 301.  57)이와 대비되는 것으로 形式主義(계약문언에 최우선적인 의미를 두고 그 외의 주변정황은 계약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태도)가 있다. 이에 관한 논의를 정리한 문헌으로 최준규, “계약해석에 있어 형식주의의 정당성 및 한계”, 민사법학 제60호 (한국민사법학회, 2012). 形式主義에 근사한 입장에서 근래 발표된 가장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Alan Schwartz/Robert E. Scott, “Contract Theory and the Limits of Contract Law”, 113 Yale L.J. 541 (2003) 및 Alan Schwartz/Robert E. Scott, “Contract Interpretation Redux”, 119 Yale L.J. 926 (2010) 이 있는바, 이들은 상사계약의 문언을 엄격히 존중함으로써 계약당사자들이 ‘계약해석방법’을 선택할 자유까지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전통적인 脈絡主義의 입장으로는 Arthur L Corbin, “Interpretation of Words and the Parol Evidence Rule”, 50 Cornell L. Q. 161 (1964)(주변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계약문언만으로 의미를 확정하는 경우 이는 실질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지는 E. Allan Farnsworth, ““Meaning” in the Law of Contracts”, 76(5) Yale L.J. 939 (1967)(언어의 본질적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맥락 없이 계약문언이 뜻하는 바를 확정할 수 없음을 강조)가 있다. 한편 전통적으로 법률행위 내지 그 구성요소인 의사표시에 관한 해석론으로 표의자의 진정한 내심적 의사가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 표시된 의사의 객관적 의미가 중요한 것인지에 따라 이른바 의사주의이론(내심적 효과의사설)과 표시주의이론(표시상 효과의사설) 사이에 대립이 있어 왔으나, 이는 사실 계약당사자 사이에서 표시에 부여된 의미에 관한 이해가 다른 경우 등에서 더 의미가 있고 법률행위해석에 있어서는 어느 견해든 결과적으로 표시상의 효과의사를 통해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효순, “법률행위의 해석의 쟁점 –법률행위해석의 본질 및 방법에 관하여,” 서울대학교 법학 제41권 제1호(2001), 147· 153~154쪽 및 임형택, “법률행위 해석에 관한 연구,” 민사법학 제37호(2007), 385·405~ 406쪽. 결국 의사주의이론이나 표시주의이론 모두 기본적으로는 맥락주의에 입각해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58)원칙적으로 의사표시 내지 법률행위의 해석은 그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발견하는 것이되 그 대상은 표시행위를 통하여 추단된 효과의사로서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는 것(대법원 2000. 10. 6. 선고 2000다27923 판결)인바, 계약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그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나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에는 “문언 내용과 법률행위가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37813 판결).  59)Stephen J. Choi/G. Mitu Gulati, “Contract as Statute”, 104 Mich. L. Rev. 1129 (March 2006), p. 1140. 또한 David Murphy, OTC Derivatives: Bilateral Trading and Central Clearing (London: Palgrave Macmillan, 2013), p. 26의 미주 4는 과거 표준계약서가 마련되기 전까지 딜러들마다 특유의 약관을 사용하여 각 파생상품들이 거래구조 자체는 동일함에도 법적 조건이 달라졌고 이로 인하여 경제적 가치가 달라졌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60)사실 많은 상사거래들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 준거법을 영국법 내지 뉴욕주법으로 정하고 있다. 국제중재와 관련하여 사내법무실 및 사내변호사들에 대하여 수행된 한 실증연구에 의하면, 응답자의 40% 가량이 영국법이 가장 자주 실체의 준거법으로 선택된다고 응답하였고, 뉴욕주법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Loukas Mistelis/Penny Martin, “2010 International Arbitration Survey: Choices in International Arbitration”, White & Case LLP, Centre for Commercial Law Studies (2011).  61)McKenrick, supra note 10, pp. 165-166(영국 계약법이 계약해석에 관하여 비교적 문언중심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연유를, 영국법원에서 다루는 계약해석 문제가 대부분 변호사들이 정교하게 작성한 계약문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62)Golden, supra note 56, pp. 305-306.  63)John Biggins, “‘Targeted Touchdown’ and ‘Partial Liftoff’: Post-Crisis Dispute Resolution in the OTC Derivatives Markets and the Challenge for ISDA”, 13 German L.J. 1297 (2012)는 이를 두고 ‘법원의 해석적 개입(interpretative intervention)’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64)여기서 나아가 표준계약조항은 아예 법률조항과 같이 개별 계약당사자가 아닌 그 작성자의 의사대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은 표준계약조항의 작성자에게 그 의미와 의도를 물어보고 그에 따라 그 계약조항을 해석하여야 하며 형식주의적 해석이 부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Choi/Gulati, supra note 59. 한편 ISDA가 종래 기본계약서나 정의집(Definitions)의 해석과 관련하여 형식주의적 입장을 지지하여 왔으나, 최근 ISDA에서 CDS 거래의 중앙청산에 대비하여 ‘신용사건의 발생 여부’ 등과 같은 거래당사자들의 법적 질의에 회신하여 주는 역할로 창설한 ‘신용파생상품질의회신위원회(Credit Derivatives Determinations Committee)’에서는 맥락주의적 계약해석을 자발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보는 Anna Gelpern/Mitu Gulati, “CDS Zombies”, 13(03) EBOR 347 (2012)도 참고.  65)그 외에도 영국 지방자치단체의 파생금융거래에 관한 권리능력을 부정한 Hazell v Hammersmith and Fulham London Borough Council & Ors [1992] 2 AC 1 판결, 그리고 1992년 판에서의 조기종료에 따른 정산을 위하여 ‘손해’를 산정함에 있어 당사자들의 실제 이행의 가능성(신용도)이 전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완전가치평가의 법리(value-clean principle)’를 세워 온 일련의 영국 판결들(Peregrine v Robinson 등)도 그러한 사례로 들 수 있다.  66)Golden, supra note 56, p. 305 또는 선불스왑계약과 관련하여 주 51에서 소개한 영국 법원과 뉴욕주 법원의 판결 사이의 차이, 그리고 국채발행조건에 포함된 ‘채권자평등취급조항(pari-passu clause)’에 관한 해석의 차이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 관하여는 Henderson, supra note 2, p. 441 이하, 후자에 관하여는 홍성균, “금융계약상 채권자평등취급조항에 관한 NML Capital v. Argentina 판결 - 국가채무의 재조정 및 뉴욕주 법상 표준계약조항의 해석 -”, BFL 제69호(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 2015. 1.) 각 참고.  67)최근 영국 대법원은 Rainy Sky SA v Kookmin Bank [2011] UKSC 50 판결에서 이를 재확인하였다. 결국 영국 계약법 하에서는 구두증거배제법칙에 따라 계약 체결 전 단계에서 이루어진 협상 내용이 계약내용을 이룬다는 취지의 증거로 제출될 수는 없지만, 동시에 계약문언의 의도된 의미를 밝히기 위한 일련의 전제사실로서 “협상 과정에서 일방이 상대방에게 표시한 객관적 사실(objective facts)”은 증거로 제출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구별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McKendrick, supra note 10, p. 164 및 Oceanbulk Shipping and Trading SA v TMT Asia Ltd [2010] UKSC 44.  68)Jean-Pierre Douglas Henry/Oliver Perez, “Financial Disputes In The UK And Alternative Systems For Resolution”, 2(1) Sogang Journal of Law and Business 83 (2013), p. 83.  69)Panel of Recognized Market Experts in Finance의 약자이다. 파생상품거래에 관한 계약의 통일적 해석을 위하여 하나의 기관이 주요한 분쟁해결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P.R.I.M.E. Finance가 설립·운영된다는 점에 관하여 D. Baragwanath, “How should we resolve disputes in complex international financing transactions?”, 7(3) CMLJ 204 (2012).  70)Klaus Peter Berger, “The aftermath of the financial crisis: why arbitration makes sense for banks and financial institutions”, 3(1) Law and Financial Markets Review 54 (2009), p. 54  71)Biggins, supra note 63, p. 1327. 도산절차에 관한 분쟁은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관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개별 쌍방당사자 사이의 중재합의를 전제로 하는 중재절차는 적합하지 않아 중재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석광현, “국제상사중재법의 기초이론”, 「국제상사중재법연구 제1권」(박영사, 2007), 38~39쪽.  72)Glenn Morgan, “Reforming OTC Markets: The Politics and Economics of Technical Fixes”, 13(03) EBOR 319 (2012), pp. 401-403은 특히 신용부도스왑을 비롯한 장외신용파생상품은 장외에서 당사자들에 의하여 어떤 모습으로든 구성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 파생상품시장의 불투명성으로 인하여 각각의 상품의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그 거래를 중개하거나 한 쪽 당사자가 되는 대형 금융회사들(이들은 ISDA의 구성원이기도 하다)에 있어 중요한 수익원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Joseph E. Stiglitz, The Price of Inequality (London: Penguin Books, 2012), p. 44도 같은 취지다.  73)Joanne P. Braithwaite, “OTC Derivatives, the Courts and Regulatory Reform”, 7(4) CMLJ 364 (2012), p. 371은 장외파생상품거래에 관한 분쟁이 소송에 의하여 해결됨으로써 시장의 투명성이 일부 증대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74)그 조항에서는 일방이 ‘마련’하면 되고 ‘작성’하였을 것은 요구하지 않고 있다. 석광현, “FIDIC 조건을 사용하는 국제건설계약의 준거법 결정과 그 실익”, 사법 제29호(사법발전재단, 2014), 52쪽 역시 국제건설계약에서 사용되는 표준계약서인 이른바 ‘FIDIC 조건’을 사용한 계약 내용이 약관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75)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0다21849 판결(보통거래약관의 내용은 개개 계약체결자의 의사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평균적 고객의 이해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여 객관적, 획일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76)물론 이는 기본계약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으로 결정되었을 때에 한정된다. 약관규제법은 국제적 강행법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10. 8. 26. 선고 2010다28185 판결.  77)영국 법원은 2002년 판에서의 조기종료 금액의 산정에 관한 LBIE v LBSF [2013] EWCA Civ 188 판결에서 ISDA 기본계약서의 연혁과 “User’s Guide”의 내용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78)김진우, “약관의 해석에 관한 일고찰”, 재산법연구 제28권 제3호(한국재산법학회, 2011), 185-187쪽(개별당사자들의 공통된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만 객관적, 통일적 해석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 그러나 윤진수, “한국법상 약관규제법에 의한 소비자보호”, 민사법학 제62호 (2013), 327-328, 337, 358쪽은, 개별약정 우선 원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객관적, 통일적 해석 원칙을 법문언보다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대법원이 실제로 약관에 관한 해석 통제나 내용 통제를 함에 있어서 개별 고객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79)내용통제의 일환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수정해석(약관규제법 제6조 제1항 및 대법원 1991. 12. 24. 선고 90다카23899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구별된다.

    Ⅳ. 도산채무자에 대한 선행조건 조항의 효력

       1. 문제의 소재

    ISDA 기본계약서상 내가격에게 있던 일방이 도산절차에 들어가게 된 경우 이는 제5조 (a)항 (vii)호의 채무불이행 사유에 해당하므로 상대방은 선행조건이 불충족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지급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본 조항을 들어 지급을 유예하면서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리만 브라더스의 경우와 같이 그 자체로 대규모의 도산 금융기관의 신속한 정산을 방해하여 시스템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80) 나아가 특히 앞서 본 논의에 따라 비유책상대방이 무한정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경우에는 파산채무자가 당시 내가격이더라도 상대방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이행을 구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81) 물론 회생채무자의 경우 회생절차에 따른 재건이 종료되어 채무불이행 사유가 치유되었다면 선행조건을 다시 충족시키게 될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회생채무자의 재산이 일탈된 상태에서 절차가 진행되어 재건에 방해가 된다는 문제는 존재한다. 각 국마다 도산법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나,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도산절차가 개시되는 것을 조건으로 도산채무자의 채권을 제한하는 것은 도산법제를 당사자들의 약정으로 회피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효력에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선행조건 조항을 두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 파산법원과 영국 항소법원에서 각기 이 문제가 다루어졌고 서로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2. 영국의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anti-deprivation principle)’

    2.1.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의 의의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도산절차 개시 전에 체결된 계약에서 도산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도산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계약조항을 두고 있다면 그 계약조항은 위법하여 무효라는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anti-deprivation principle)’이 판례 법리로 인정되어 왔다.82) 그 정의에 비추어 본 선행조건 조항과 같이 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될 자가 상대방의 ‘도산절차 개시’를 이유로 자신의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조항이 있다면 이는 위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내가격에 있는 일방은 애초부터 존재하였던 선행조건 조항에 의하여 ‘제한된 상태의 조건부 권리’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므로 도산절차 개시를 이유로 새롭게 권리를 제한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가 개발되어 왔고, 그러한 맥락에서 선행조건 조항과 같은 조항을 이른바 ‘하자 있는 권리에 관한 조항(flawed-asset clause)’이라 불러 왔다.

    그러나 최근 영국 대법원83) 은 LBIE의 합성 부채담보부증권(syntehtic CDO)84) 발행조건상의 이른바 ‘우선순위 전환 조항(flip clause)’85) 이 문제된 사안에서, 단순히 처음부터 계약구조상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위와 같은 논리만으로 그 조항이 위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설시하였다([107]). 위 ‘하자 있는 권리’에 관한 논리를 인정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계약당사자들은 일방이 도산할 것이라고 예견하거나 그것이 임박한 상태에서 그 계약조항을 삽입한 것이 아니고 이는 오히려 ‘선의의 상업적 목적(bona fide commercial [purpose])’에서 도산절차상의 제한을 회피할 의도 없이 이루어진 복잡한 상사거래인 점([102] 이하), 그리고 이 사건에서 그 박탈 금지의 대상으로 문제된 ‘담보’는 애초 위 조항으로 우선권을 취득하게 되는 증권소지인들의 투자금으로 매입된 것이어서 도산채무자(LBSF)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결국 위 원칙에 위반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86)

    2.2. ISDA 기본계약서상 선행조건 조항의 경우

    앞서 본 Lomas 판결의 두 번째 항소사건에서 영국 항소법원은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 역시 위 영국 대법원 판결의 태도에 비추어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았다([87]). 도산법제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에서 본 조항이 삽입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기 때문이다 ([107]). 또한 이 사건은 칼튼 통신회사와 LBSF 사이의 이자율스왑거래가 문제된 것이었는바, LBSF가 파산절차에 들어가기 약 3주 전에 이미 위 거래상 신용보강당사자였던 리만브라더스 홀딩스(Lehman Brothers Holdings, Inc.: LBHI)가 파산절차에 들어가면서 본 조항에 의하여 LBSF는 지급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87) LBSF의 파산이 원인이 되어 책임재산이 박탈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93])고도 하였다.

    이 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LBHI가 파산절차에 들어가 처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할 당시, 위 이자율스왑거래상 이행기가 한 번 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 이행기가 도래하여 본 조항에 따라 연기된 칼튼의 지급의무 외에는 향후 더 지급의무가 발생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향후 비유책당사자(칼튼)가 가지게 될 수 있는 유책상대방에 대한 지급채권의 신용위험을 감소시킨다는 본 조항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1심 고등법원은 어떤 계약조항이 위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계약 전반을 보아야 하는 것으로서 계약의 이행상황과 파산개시 시점에 따라 위 원칙의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보았고, 이 점은 항소심에서 다투어지지 않았다.

    결국 영국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가 도산법상 무효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 Lomas 판결을 비롯하여 영국 법원은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위반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사자들이 도산법제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따지고 있고 이는 개별 사안 별로 달라지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3. 미국 연방파산법상 ‘도산해지조항(ipso facto clause)의 금지’

    미국의 연방파산법(Bankruptcy Code) 제365조는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executory contract)에 있어 관리인의 이행 여부 선택권을 규정하는 조항인바, 특히 그 (e)항 (1)호에서는 채무자의 도산 내지 재정적 상황을 조건으로 하여 기존 계약상 권리나 의무를 변경·실효시키는 계약조항[이른바 ‘도산해지조항(ipso facto clause)’]의 효력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같은 법 제541조 (c)항 (1)호 역시 도산재단의 구성과 관련하여 같은 취지를 정한다.

    그런데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는 실질적으로 상대방에게 ‘도산’에 해당하는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는 것을 조건으로 도산채권자의 지급의무를 연기(즉 도산채무자의 권리행사를 제한)시키는 것이기에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여부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하여 미국 뉴욕주 남부지구 파산법원은 Metavante 판결88) 에서 위 선행조건 조항은 원칙적으로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여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 관한 원칙으로 돌아가 LBSF의 관리인이 그 이행 여부를 선택할 때까지 그 이자율스왑거래의 상대방인 메타반테社(Metavante Corporation)는 그 도산해지조항에 불구하고 계약을 계속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메타반테社는 설사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더라도 연방파산법 제560조의 안전항 조항이 적용된다고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제560조는 파생금융거래의 당사자가 거래를 종료시킬 권한 및 산정된 지급금액을 정산하고 상계할 권한은 그것이 도산해지조항에 의한 것이더라도 자동정지 내지 부인권, 미이행쌍무계약 이행 여부 선택권의 대상이 되지 않고 유효하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89) 법원은 연방파산법상의 안전항 조항이 파생금융거래의 신속한 조기종료 및 정산을 허용하려는 데에 입법목적이 있다고 보면서, 메타반테社가 1년간 지급의무를 연기하며 조기종료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그가 조기종료 및 정산을 하기 위하여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려 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위 안전항 조항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포기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결국 선행조건도 무효이고 안전항 조항도 적용받을 수 없으므로, LBSF의 관리인이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서 이행을 선택한 이상 메타반테社는 지급의무를 이행하여야 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결과는 위 영국 대법원의 Belmont 판결에서 유효한 것으로 판단되었던 ‘우선순위 전환 조항’도 마찬가지이었다. 그 사안과 관련하여 미국 뉴욕주 남부지구 파산법원은 위 우선순위 전환 조항 역시 위 연방파산법상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하면서 안전항 조항 역시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안전항 조항은 ‘종료 및 정산’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인데 우선순위 전환 조항은 이와 관련이 없으며, 또한 그 계약조항은 직접적으로 파생금융거래에 관한 계약 내에 삽입된 조항이 아니고 단순히 신탁증서에 포함되었던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 법원은 같은 사안에서 영국 대법원과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90)

    결국 미국 연방파산법상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는 도산해지조항에 관한 법리에 따라 무효이며 나아가 이행을 거절하고 있다가 상당기간 후에야 종료 및 정산을 하려고 하는 때에는 안전항 조항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비유책당사자로서는 자신이 외가격인 상태에서 상대방이 미국에서 도산절차에 들어간 경우, ① 되도록 신속하게 조기종료를 선택하고 상당한 금액의 조기종료금액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② 제2조 (a)항 (iii)호에 불구하고 계약상 지급의무를 이행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91)

       4. 대한민국 도산법에 따른 검토

    4.1. 國際倒産과 대한민국 도산법제의 적용 범위

    우리나라의 채무자회생법과 「국제사법」에서는 도산저촉법적 측면에 관하여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다만, 종래 ‘도산절차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에 관하여는 도산법정지법 내지 도산개시국법에 의한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주장되어 오고 있다.92)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파산 내지 회생절차가 개시된 당사자에 대하여는 그 기본계약의 준거법이 미국 뉴욕주 법 내지 영국 법으로 정하여져 있더라도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와 관련하여서 우리나라의 도산법인 채무자회생법 등이 적용된다.

    일정한 계약조항이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한다고 보아 무효로 보려고 하는 것은, 계약당사자들이 약정을 통하여 도산법제를 회피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데 이유가 있기 때문93) 인만큼,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가 ‘도산해지조항’에 관한 법리에 의하여 무효인지 여부는 위에서 말하는 ‘도산절차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산전형적인 법률효과’와 관련된 것으로서 도산법정지법에 의하여 해결될 사항이다. 앞서 본 LBSF와 수탁기관 사이의 ‘우선순위 전환조항’이 문제된 동일한 사안을 두고 미국 연방파산법원은 연방파산법에 따른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보았던 반면 영국 대법원은 영국의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에 관한 법리에 따를 때 무효가 아니라고 보았던바, 후자는 별다른 설시 없이 계약의 준거법을 적용한 것이기는 하나 도산법정지법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위 논리에 따르더라도 그 결과는 같다.

    4.2. 우리나라의 ‘도산해지조항’에 관한 법리

    우리나라의 채무자회생법에서는 미국 연방파산법의 경우와 달리 도산해지조항에 관하여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나, 강학상 도산해지조항은 당사자의 약정으로 강행적인 도산법제 내지는 파산관재인·관리인의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 이행·해지 여부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무효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94)

    반면, 합작투자계약에서 회사정리절차의 개시를 해지사유로 하는 계약조항이 문제된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38263 판결은 “계약의 당사자들 사이에 채무자인 회사의 재산상태가 장래 악화될 때에 대비하여 지급정지, 회사정리절차의 개시신청, 회사정리절차의 개시와 같이 도산에 이르는 과정상의 일정한 사실이 그 회사에 발생하는 것을 당해 계약의 해지권의 발생원인으로 정하거나 또는 계약의 당연 해지사유로 정하는 특약”을 도산해지조항으로 지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유효성을 인정하였다.

    먼저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 한 구체적인 사정을 도외시한 채 어떤 계약조항이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무효인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도산해지조항의 적용 결과가 정리절차개시 후 정리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당해 계약의 성질과 그 내용 및 이행 정도, 해지사유로 정한 사건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반대로 이를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것은 “상대방 당사자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는 것이며(①-1), 회사정리법상 관리인은 정리절차개시 당시 존재하는 회사 재산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취득하는 데에 불과하여 “채무자인 회사가 사전에 지급정지 등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처분한 재산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관리처분권이 미치지 아니”하므로 그 계약조항이 이를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①-2).

    다음으로,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한 관리인의 선택권을 정한 취지에 비추어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무효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였다(②). 그러나 당해 사건에서 문제된 합작투자계약은 조합계약으로서 조합 구성에 관한 채무의 이행을 마친 이상 미이행의 쌍무계약이라고 할 수 없고 또한 고도의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상대방 당사자로서는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어 장차 계약당사자 아닌 제3자인 관리인이 상대방으로 되는 상황에 대비할 정당한 이익도 있어 역시 무효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95)

    결국 대법원의 태도는, 명문의 금지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도산해지조항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계약조항이 바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①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상대방에게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정당한 보호가치가 없는 등으로 도산재단 내지 그에 대한 관리권을 침해하는 경우이거나 ② 파산관재인 내지 관리인의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 이행‧해제 여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인 경우에는 무효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4.3. ISDA 기본계약서상 선행조건 조항의 경우

    4.3.1.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앞서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도산해지조항은 그 명칭 그대로 ‘해지권한’이 문제된 것이었던 반면 본 선행조건 조항은 도산 등을 이유로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뿐이고 나아가 계약 자체를 해지·종료할 권한은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산해지조항이 도산법상 문제가 되는 이유는 (1) 도산재단에 포함될 권리 일부를 감소·일탈시킴으로써 회생채무자의 재건을 방해하거나 그로부터 파산채권자들의 배당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 및 (2) 특히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파산관재인·관리인의 이행 여부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ISDA 기본계약서 제2조 (a)항 (iii)호와 같은 이른바 ‘광의의 도산조항’ 역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96) 따라서 비록 ‘도산해지조항’이라는 명칭에는 맞지 않지만97) 도산해지조항으로서 (또는 최소한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 유효성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사료된다.98)

    4.3.2. 도산재단 내 재산의 일탈·감소라는 측면

    명확한 학설대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에서의 ‘하자 있는 권리(flawed-asset)’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본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절차 개시’를 이유로 도산재단 내 재산을 일탈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99) 실제로 대법원 역시 당해 도산해지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도산채무자가 ‘사전에 도산절차 개시를 정지조건으로 삼는 조건이 붙여진 채 취득한 계약상 권리’는 이미 제한된 상태에 있던 것에 불과하여 파산관재인·관리인의 관리처분권이 미치지 아니한다(위 ①-2)고 하여 그 논리를 든 바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계약조항의 구조만을 이유로 관리처분권이 침해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도산법제의 강행적 특성(도산재단 및 관리처분권을 강행적으로 보호하여 일반채권자들의 만족과 회생채무자의 갱생을 추구한다는 특성)보다 계약자유의 원칙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 결국 ISDA 기본계약서상 선행조건 조항이 위와 같은 논리로 항상 채무자회생법상 유효하다고 볼 것은 아니고, 위 대법원 판결이 언급하였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하여야 할 상대방의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과 도산재단 내 재산을 보호할 필요성(회생채무자의 충실한 재건 또는 파산절차에서 강행적으로 보호되는 파산채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성)을 서로 비교형량 하여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대규모의 명목금액이 문제되는 금융거래에 있어 상대방의 신용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고, 선행조건 조항을 통하여 보호되는 비유책상대방의 이익은 민법이 이미 불안의 항변권을 통하여 쌍무계약에서 일반적으로 보호하는 부류의 이익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본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재단 내 재산을 일탈·감소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공서양속 내지 도산법에 반하여 무효가 된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2.5.에서 언급하였던 제2조 (a)항 (iii)호가 적용되는 것이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들(프리미엄이 지급된 옵션이나 선불스왑 내지 비유책당사자의 지급의무만이 남은 일반적인 스왑의 경우 등)에 있어서는 비유책당사자의 이익이 보호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그러한 경우들에까지 도산채무자에 대하여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100)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당해 계약의 성질과 그 내용 및 이행 정도”를 면밀히 고려하도록 요구하는 위 대법원 판결의 설시에도 부합한다.

    4.3.3.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 대한 이행 여부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측면

    대법원은 도산해지조항이 특히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 관하여 파산관재인·관리인에게 인정되는 이행·해지 여부 선택권(채무자회생법 제119조 및 제335조)을 침해한다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위 판시내용 ②). 일단 ISDA 기본계약서가 사용되는 기본계약 하의 파생금융거래는 일반적으로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 해당할 것이다.101) 102) 즉, 하나의 기본계약 하에서 수 개의 파생금융거래가 이루어진 경우 그에 따라 발생한 채권·채무는 향후 지급정산네팅조항이나 일괄정산 조항에 따라 정산될 것이 예정되어 있어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선행조건 조항에 의하여 이행상 견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 선행조건 조항은 기본계약의 해지·종료권한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하여 파산관재인·관리인은 도산채무자가 내가격에 있는 거래의 이행을 선택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행을 받을 수 없게 되는바 그러한 측면에서 그의 선택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는 있다.103) 따라서 본 선행조건 조항이 이 측면에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본계약 하에 이루어진 적격금융거래를 위 선택권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3항의 특칙을 고려한다면 본 포괄적 선행조건 조항은 원칙적으로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위 특칙은 적격금융거래의 “종료 및 정산”을 위 선택권의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되어 있는바,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채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하는 것은 ‘종료 및 정산’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본 선행조건 조항은 본고 II.에서 설명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비유책당사자가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할 시점을 선택할 여유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는 것 역시 “종료 및 정산”에 수반되어 있는 것이라고 못 볼 바 아니다.

    따라서, 종료 및 정산 과정에 있다고 보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유책당사자가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3항의 특칙이 적용되어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에서의 이행 여부 선택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104) 다만,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예컨대 미국의 Metavante 판결과 같이 비유책당사자가 지나치게 긴 기간 동안 선행조건을 주장하며 지급의무를 거절하는 것은 사실상 조기종료 권한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아 위 특칙의 적용대상에서 벗어난다고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다시 선행조건 조항이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의 이행 여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고, 파산관재인·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하면 비유책당사자는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결과로 된다.

       5. 소결

    이와 같이 영국 항소법원에서는 (비록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유보하였으나) 선행조건 조항이 도산법제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던 반면,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1년이 넘게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조기종료 권한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연방도산법에 위반되므로 더 이상 선행조건 조항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결과는 영국과 미국의 도산법제 내지 법원의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105) 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겠다.106)

    대한민국에서 도산절차가 개시되어 선행조건 조항의 효력이 문제되는 경우 이는 일단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지만, ① 특별한 경우(프리미엄이 지급된 옵션이나 선불스왑 등)가 아닌 한 이러한 조항을 두어 보호하고자 하는 비유책상대방의 이익이 정당하고 보호가치가 있어 도산재단을 침해하여 무효라고 볼 수 없고, ② 조기종료 권한을 포기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 한 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3항에 비추어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 이행·해지 여부 선택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사료된다. 결국 일반적인 스왑거래에 있어 비유책당사자가 지나치게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는 것은 도산절차에 불구하고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선행조건 조항이 원칙적으로 무효이므로 관리인이 해지 여부를 선택할 때까지 지급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미국의 Metavante 판결보다는 선행조건 조항의 유효성을 넓게 인정하는 것이되, 영국의 Lomas 판결에 비하여 무효가 되는 구체적 사유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0)한편 HM Treasury, supra note 22, p. 119에서는, 도산채무자가 특정 장외파생금융거래의 존속을 전제로 그에 관한 위험회피거래를 유지‧관리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어려워 이는 결국 도산재단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회생절차와 같은 재건형 절차에서라면 그러한 관리행위야말로 관리인이 하여야 할 행위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81)이른바 ‘walk-away clause’와 유사한 결과이다.  82)처음 이를 인정한 판결로는 Ex p Jay (Jay) (1880) 14 Ch D 19가 들어지며, 이 법리에 관한 설명으로는 Alastair Hudson, supra note 27, p. 683 및 Louise Gullifer/Jennifer Payne, Corporate Finance Law: Principles and Policy (Oxford: Hart Publishing, 2011), pp. 100-101. 이는 영국 도산법(Insolvency Act 1986) 제238조 이하에서 정하는 부인권과는 별개의 법리이다. 참고로 齊藤 崇/上田 瓦, “デリバティブを組み込んだ証券化商品に関する近時の諸問題”, 事業再生と債權管理 No.131(2011. 1. 5), 161쪽의 각주 14는 이를 沒收禁止法理로 지칭하고 있다.  83)Belmont Park Investments Pty Ltd v BNY Corporate Trustee Services Ltd [2011] UKSC 38  84)LBIE는 특수목적기구를 설립하여 (1) 그 특수목적기구로 하여금 투자자들로부터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받은 투자금으로 담보자산을 취득하도록 하고, (2) 동시에 그 특수목적기구는 LBIE 및 계열사가 보유한 자산에 대한 신용보장매도자로서 LBSF와 신용부도스왑(CDS) 거래를 하고 LBSF로부터 일정 프리미엄을 지급받으며, (3) 그 프리미엄과 담보자산으로부터의 수익으로 증권보유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4) 만기가 되면 그 담보를 처분하여 처분대가로 증권보유자들에게 원금을 상환하는 합성 CDO거래를 구성하였다.  85)위와 같이 합성 CDO를 발행하면서 포함된 CDS에서 정한 신용사건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일단 CDS거래가 종료되고 담보자산의 처분대가는 그 CDS거래의 상대방인 자산보유자에게 지급할 보장지급금(protection payment)에 우선 충당되며 남는 금액은 증권 원리금 상환에 충당되도록 되어 있다(이른바 ‘스왑거래 상대방의 우선권’). 그런데 자산보유자가 파산하는 등으로 그에게 CDS 거래상의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CDS 거래가 조기종료되면서 그 포지션에 따라 자산보유자가 내가격에 있어 잔존 시장가치를 지급받아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위의 경우와 달리 위 담보자산의 처분대가는 증권보유자들의 원리금회수에 우선 충당되도록 하는바(이른바 ‘증권보유자의 우선권’) 이를 ‘우선순위 전환 조항(flip clause)’이라 부른다. 이에 관하여는 김성용, “합성 CDO 거래에서의 Flip Clause의 도산절차상 효력”, 성균관법학 제23권 제3호(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소, 2011. 12.), 1043-1047쪽.  86)이와 같이 계약당사자들이 도산 여부를 예견하고 체결하였는지 여부와 같이 선의 여부를 주로 문제 삼는 판결의 태도에 대하여는, 어차피 (도산할 것이 명백하거나 임박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거래당사자들이 자기 또는 상대방이 도산하리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계약을 체결할 텐데 그렇다면 모두 선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닌지 모호하고, 또한 위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 자체가 궁극적으로 일반채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계약당사자들의 선의 여부만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게 사적 자치에 기운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Cleary, supra note 55, pp. 415-416.  87)ISDA 기본계약서 제5조 (a)항 본문은 거래당사자 또는 신용보강당사자에게 각 호의 사유가 발생하는 것이 ‘채무불이행 사유(Event of Default)’가 된다고 정하고 있다.  88)In re Lehman Brothers Holdings Inc, et al (Metavante) Case No.08-13555 (2009).  89)우리의 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3항과 같은 취지이다.  90)In re Lehman Brothers Holdings Inc., et al, Lehman Brothers Special Financing Inc. v. BNY Corporate Trustee Services Limited, 422 BR 407 (US Bankruptcy Court, SDNY 2010). 이 사건은 항소되어 항소심 단계에서 합의로 종결되었으며, 앞서 언급한 영국 대법원 판결은 위 수탁기관을 제외한 다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91)Peter Marchette, “The Bankruptcy Court's Ruling in the Lehman-Metavante Matter – Has the Ticking Time Bomb of Enron vs. TXU Exploded or Been Defused?”, New York Law School Legal Studies Research Paper No. 09/10 #29 (2010), p. 27. 이 문헌은 위 판결의 태도를 지지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이 사건에서는 계약상대방이던 LBSF보다 그 보증인이던 LBHI의 도산이 먼저 발생하였으므로 메타반테社는 계약상대방이 아닌 보증인의 도산에 따른 교차채무불이행 발생을 이유로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인바, 위 판결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 판시내용도 법적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는 취지에서 이를 비판하는 견해로 Stephen H. Moller/Anthony R. G. Nolan/Howard M. Goldwasser, “Section 2(a)(iii) of the ISDA Master Agreement and the Emerging Swaps Jurisprudence in the Shadow of Lehman Brothers”, [2011](7) J.I.B.L.R. 313 (2011).  92)석광현, 「국제사법과 국제소송 제5권」(서울: 박영사, 2012), 571~574쪽.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도산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는 미이행쌍무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더라도 우리나라의 채무자회생법에 따른 미이행쌍무계약의 이행 여부 선택 내지 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실제 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다30469 판결은 그와 같은 사안에서 구 파산법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EU도산규정이나 독일에서의 도산법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93)오수근, 「도산법의 이해」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8), 403쪽  94)학계의 논의에 관하여는 김영주, “계약상 도산해제조항의 효력”, 선진상사법률연구 통권 제64호 (법무부 상사법무과, 2013. 10.), 4~5쪽  95)그 외 서울고등법원 2009. 7. 10. 선고 2008나53555 판결은 주채무자의 채무를 감면하여 주면서 감면된 채무가 모두 이행되면 연대보증채무도 이행된 것으로 보는 채무변제약정상에 채무자의 회생절차 개시 시 그 변제약정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조항이 있던 사안에서, 그 조항이 도산해지조항이라 하더라도 무효는 아니지만 4년간 채무가 성실히 변제되어 온 점 등에 비추어 이를 들어 채무변제약정을 해지하고 연대보증채무 전액의 이행을 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보았다.  96)齊藤 崇/上田 瓦, 전게논문(주 82), 164쪽 역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면 본 선행조건 조항에 따른 이행거절권능이 법적으로 제한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97)우리나라에서 ‘도산해지조항’의 명칭은 다양하게 쓰이고 있고(도산실효조항, 도산해제조항, 도산조항 등), 실제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제하는데 이르지 아니하고 단순히 계약상 권리를 변경시키는 계약조항도 포함하기 위하여는 ‘도산조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민, “미이행쌍무계약에 관한 우리 도산법제의 개선방향”, 선진상사법률연구 통권 제53호 (법무부 상사법무과, 2011. 1.), 63~64쪽도 같은 취지. 다만, 일단 본고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용례를 따라 ‘도산해지조항’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98)한민, 같은 논문, 63~64쪽 및 임지웅, “도산해지조항의 효력 및 범위: Flip-In 조항의 효력에 관한 영국과 미국의 판례분석을 중심으로”, 도산법연구 제1권 제2호(도산법연구회, 2010), 38쪽. 한편 임치용, “지급결제제도에 관한 회생 및 파산 절차의 특칙 - 제 120 조의 해석론”, 인권과 정의 제356호 (대한변호사협회, 2006), 107쪽은 도산절차 개시 후 거래를 계속하는 것은 개별집행금지원칙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거래를 존속시켜 지급채권을 발생시키는 것과 그 채권을 집행하는 것은 다른 것이므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99)한민, 같은 논문, 71~72쪽에서 상정하는 유효설의 논리이다.  100)더 나아가 Cleary, supra note 55, pp. 443-444는, 거래 만기에 이르더라도 선행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지급의무 이행을 계속 거절할 수 있다고 하는 해석을 취하는 한 본 선행조건 조항이 그 자체로 책임재산박탈금지원칙의 위반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경우에는 도산한 비유책당사자가 당해 거래상의 지급채권을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101)대법원은 여기서의 “쌍무계약”이란 ‘쌍방 당사자가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는 계약으로서, 쌍방의 채무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계약’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다(가령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다52759 판결).  102)물론 프리미엄이 이미 지급된 기본옵션거래나 선불스왑거래만이 남아있는 기본계약은 미이행의 쌍무계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103)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1. 11.자 2009회확562 결정 역시 관리인의 선택권 행사 전까지 상대방은 계약을 이행하여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 판결문은 등록되어 있지 아니하여 구할 수 없었으나 석광현, 전게서(주 92)에 소개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결과에 주목하여 본 선행조건이 도산관리인의 ‘체리피킹(cherry-picking)’을 막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Andrew McKnight, The Law of International Finance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p. 612.  104)이와 달리 원칙적으로 선행조건 조항이 무효라고 보게 되면 비유책당사자는 시간적 여유 없이 바로 지급의무의 계속적인 이행 내지는 기본계약의 조기종료라는 선택을 강제당하게 되는바, 이것이 바로 본 선행조건 조항이 피하려는 결과이었음은 앞서 설명하였다.  105)가령 도산법제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하나는 계약관계를 신속하게 종료하고 정산하도록 하여 채권자에게 친화적인 것으로, 다른 하나는 도산채무자에게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에 따라 미이행쌍무계약의 이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눈 뒤, 영국은 비교적 전자에 가까운 반면 미국은 후자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Henderson, supra note 2, p. 483.  106)이와 같이 영국과 미국에서의 결론이 달라지면서, 내가격에 있는 거래당사자로서는 영국에서 도산절차를 개시하려 할 유인이 생겼다는 견해로 James Grand/Perry Sayles, supra note 53, p. 35.

    Ⅴ. ISDA에서 새로이 발표한 선행조건 제한의 특약

    영국 재무부에서는 2009년 말경부터 본 포괄적 선행조건 조항으로 인하여 도산한 대규모 금융기관의 정리가 지연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관한 표준계약 양식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왔다. 이에 대응하여 ISDA는 2014. 6.경 선행조건 불충족을 주장하며 지급을 거절하는 기간에 시간적 제한을 두는 취지의 표준 특약조항을 발표하였다.

    그 특약은 제2조에 (e)항(2002년 판의 경우) 또는 (f)항(1992년 판의 경우)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유책당사자는 비유책당사자에게 “조건종료일자(Condition End Date)”가 지나면 선행조건 위반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의 통지를 할 수 있다[(i), (ii)호]. 그리고 그 통지 후 위 조건종료일자가 경과하는 경우 제2조 (a)항 (iii)호의 선행조건 위반의 효과가 소멸된다[(iii)호]. 위 조건종료일자는 기본적으로 위 통지 후 90일로 하되 기본계약 체결 시 이를 달리 정할 수 있다(제14조의 정의조항에 삽입). 그 외 추가적으로 채무불이행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위 통지는 효력을 잃도록 하되 기존 채무불이행 사유가 ‘파산’인 경우에는 그러지 않고 기 통지된 날로부터 90일이 기산하도록 하고 있다[(iv)호, (v)호]. 그리고 ISDA에서는 위와 같이 ‘선행조건 불충족의 효과가 소멸’한다는 것은, 비유책당사자의 지급의무가 되살아난다(발생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107)

    이와 관련하여서는 세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위 ‘조건종료일자’의 기간을 설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거래의 각 이행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1년에 네 번 미만 지급일이 돌아오도록 되어 있는 거래에서 위 기간을 90일로 정하게 되면 다음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에 비유책당사자가 먼저 지급의무를 일단 부담하게 될 여지가 있다.108)

    두 번째는 위 제한특약을 통하여 ‘도산해지조항’에 관한 미국법 또는 대한민국 법의 제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연방파산법상의 안전항 조항 내지 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3항을 적용 받기 위하여 비유책당사자는 어느 정도 기간 후에는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여야 할 것인데, 90일로 기간을 정하였더라도 그보다 빨리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는 것인지 등의 문제가 있다. 사견으로는, 계약당사자들이 위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정하여 놓은 것이 아닌 한109) 일단 기간을 제한하여 놓았다는 것 자체로 선행조건이 조기종료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이로 선행조건 조항이 쌍방 미이행의 쌍무계약상 관리인의 이행·해지 여부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특별한 거래들에 있어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비유책당사자의 이익’이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도산재단 또는 그에 대한 관리인의 관리처분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 번째로는 본 특약 조항이 실제로 얼마나 사용될지 의문이 있다. ISDA는 기본계약서 양식 자체를 수정하거나 ‘보충협약(protocol)’110) 을 발표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쌍방 계약당사자들이 동의하는 경우 추가적으로 조항을 삽입할 수 있는 양식을 마련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111) 다만, 그 개정양식을 마련함에 있어 영국 재무부 내지 FCA가 강력하게 개입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국에 소재한 금융기관과 장외파생금융거래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개정양식을 채택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107)ISDA, supra note 11, pp. 3-4  108)Catherine Gurney, “Calling Time on Section 2(a)(iii) of the ISDA Master Agreement: ISDA Publishes an Amendment”, 8 JIBFL 520 (2014), p. 521  109)영국의 영업행위감독기관인 FCA는 위 90일을 넘는 기간은 지나치게 긴 것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표시한 바 있다고 한다. Jeremy Jennings-Mares/Peter Green/David Kaufman/Julian Hammar/Akihiro Wani, “Breaking the ISDA Section 2(a)(iii) Insolvency Stalemate”, Morrison & Foerster LLP (2014) available at, p. 3.  110)ISDA에서 발간하는 ‘보충협약(Protocol)’이란, 그 보충협약에 동의한다는 취지를 ISDA에 통지한 당사자들의 경우 그들 사이에서 ISDA 기본계약서에 따라 체결된 모든 기본계약의 내용이 그 보충협약에 따라 변경되도록 작성된 양식이다.  111)Margaret Scullin, “ISDA publishes bilateral amendment to condition precedent in Master Agreements” SwapsLaw(https://swapslaw.wordpress.com/tag/metavante/) (2014)

    Ⅵ. 결론

    지금까지 「ISDA 기본계약서」를 사용하여 체결된 기본계약에 있어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을 지급의무의 선행조건으로 정한 제2조 (a)항 (iii)호에 관한 계약해석상의 쟁점과 도산법상의 쟁점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법 하에서 그 선행조건의 해석은 그 문언과 기본계약서가 작성된 취지에 비추어 최근 영국 항소법원의 Lomas 판결의 태도와 유사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도산해지조항에 해당하여 무효가 될 여지가 있는 범위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미국 파산법원의 Metavante 판결(원칙적 무효)과 영국의 Lomas 판결(원칙적 유효)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금융계약의 준거법을 우리나라 법으로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위험회피거래 등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약관 해석에 관한 객관적·통일적 해석의 원칙이 인정되며 ISDA 기본계약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금융업에 관한 약관으로서 약관규제법상의 내용통제에서도 배제된다. 또한 대법원은 정지조건부 처분 재산에 대하여는 애초 관리인의 관리처분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설시함으로써 도산해지조항의 효력과 관련하여 영국의 하자 있는 권리 조항(flawed-asset clause)에 관한 논리를 추상적으로나마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대한민국 법과 법원은 현재 영국 법이나 뉴욕주 법만큼이나 ISDA 기본계약서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국제파생금융거래에 있어 대한민국 법이 준거법으로 결정되더라도 국제적인 정합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하지만, 동시에 내가격에 있으나 채무불이행에 빠진 금융소비자에 대한 관계에서 본 선행조건이 국제적인 대규모 금융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해석으로 귀결될 여지도 없지 않다. 금융회사는 건전성 규제의 대상이 되고 금융거래 자체에도 익숙하기에 그렇지 않은 금융소비자들에 비하여 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더 낮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민법상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 내지는 약관규제법 제5조 제1항의 ‘공정한 해석’을 통하여 법원이 적정한 결론에 다다르고자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본문에서 논한 바와 같은 한계가 있으며, ISDA 기본계약서에 금융중재 조항이 포함되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투자권유 단계 뿐 아니라 약관 해석 및 통제의 단계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어디까지 고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Ⅶ. [별첨] 관련 계약조항 원문

       1. 제2조 (a)항

    (a) General Conditions.

    (i) Each party will make each payment or delivery specified in each Confirmation to be made by it, subject to the other provisions of this Agreement.

    (ii) [중략]

    (iii) Each obligation of each party under Section 2(a)(i) is subject to (1) the condition precedent that no Event of Default or Potential Event of Default with respect to the other party has occurred and is continuing, (2) [후략]”

       2. 제2조 (c)항

    (c) Netting of Payments. If on any date amounts would otherwise be payable: ―

    (i) in the same currency; and

    (ii) in respect of the same Transaction,

    by each party to the other, then, on such date, each party‘s obligation to make payment of any amount will be automatically satisfied and discharged and, if the aggregate amount that would otherwise have been payable by one party exceeds the aggregate amount that would otherwise have been payable by other party, replaced by an obligation upon the party by which the larger aggregate amount would have been payable to pay to the other party the excess of the larger aggregate amount over the smaller aggregate amount.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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