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shi Kitano’s Self-referential Aesthesis in Takeshis’

기타노 다케시의 자기반영의 미학* -<다케시즈>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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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akeshis’, Kitano Takeshi’s 12th work, was embroiled in highly controversy over whether it was an esoteric art film or a mediocre. He is underestimated auteur in Korea where Japanese culture had been regulated since the nation was liberated from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us Japanese films also had been banned officially until the open door policy took effect on 1998. After HANA-BI received Golden Lion Prize in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as also screened in PIFF, Kitano has been considered as very Japanese auteur in Korean film critics, not much caring about critical appraisals of his works in homeland, his dual identities as televisual Beat Takeshi and cinematic Kitano Takeshi, and details of his postmodern esthetics. To understand Takeshis’ made out of the first part of self-referential trilogy, one should surely consider the rest two parts, Achilles and the Tortoise and Glory to the Filmmaker! not having been screened yet in Korea. Kitano directed, wrote, edited, and played the leading roles in this trilogy, which has self-referential narrative and citations, therefore Takeshis’ needs to be analysed on the continuity of the other two parts rather than being approached separately. This paper questions the critics to read it as a linear narrative rather focusing on the film’s self-denial aspect on the continuity of Kitano’s aesthetics. In conclusion, I discuss how the recursive narrative denying the director’s artistic identity in the film, paradoxically, can work as an opportunity to create art.


  • KEYWORD

    Takeshi Kitano , Beat Takeshi , Self-referential , Self-denial , Self-similarity , Recursive Narrative , TAKESHIS’ , Achilles and the Tortoise , Glory to the Filmmaker!

  • 1. 한국에서 <다케시즈>의 수용 문제

    2005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감독의 <다케시즈TAKESHIS’>가 상영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출연한 배우들조차 어떤 영화인지 설명하기 난감해했고 비평가들은 난해한 예술영화인지, 기대 이하의 범작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영화제 측의 제안으로 상영 당일까지 극비에 부쳐진 서프라이즈상영이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지만 영화는 그 같은 기대와 거장의 아성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감독 자신은 난해하다는 평가에 대해 “이 영화는 머리로 이해한다거나 논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체감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만들었”고 “신체로 느껴봤으면 했다”고 답했다.1) 그러나 여간한 기타니스트(Kitanist)2)가 아니고서야 초점 없는 플롯과 실험적인 형식에서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유머를 ‘체감’하고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란 힘든 일이다. 따라서 <하나비HANA-BI> 이후에 비로소 기타노 영화3)에 주목하기 시작한 한국에서 “장난치듯 혹은 일기를 쓰듯 정신없이 혹은 제멋대로 만든 영화”4)라거나 “형식의 야심이 내용의 존재 이유를 덮어버린 경우”5)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잠시 기타노 영화의 국내 수용을 살펴보자면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던 일본문화에 대한 쇄국정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1998년 10월의 1차 개방을 통해 일본문화에 문호를 개방했고 그전까지 일본영화는 영화제를 통하거나 불법비디오를 통해 음성적으로 수용되었다. 1차 개방 당시 최초로 개봉한 일본영화는 기타노 감독의 일곱 번째 작품 <하나비>이다. 1997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같은 해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었다.

    기타노 영화는 초기작에서부터 일본보다는 해외, 특히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하나비> 이후 각종 국제영화제를 통해 예술영화라는 레이블로 소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3×4-10月>에서부터 그를 작가로 발견하여 영국에 소개한 토니 레인즈(Tony Rayns)의 노력이나 칸영화제의 <소나티네> 초청과 같은 사건은 서구의 비평담론이 일본 으로 역수입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국내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기타노는 이미 ‘검증된’ 작가로서 등장하여 서구에서의 비평담론이 국내 비평에 참조되었으며 특히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인 PIFF는 기타노가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레이블링 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6) 그러나 내셔널 시네마와 작가주의의 패러다임으로 영화를 분류하고 전시하는 국제영화제의 성격상7) 기타노가 일본에서의 평가나 코미디언이자 배우로서의 정체성, 기타노 미학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측면이 무시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동안 꾸준히 기타노의 신작을 초청해오던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케시즈>를 비롯하여 기타노 감독이 ‘자기반영 삼부작’이라 부르는 <감독만세監督ㆍばんざい!>(2007)와 <아킬레스와 거북이アキレスと亀>(2008)를 건너뛰고 <아웃레이지アウトレイジ>로 넘어갔고, <다케시즈>만 2006년 12월에 개봉되었을 뿐 나머지 두 작품은 현재까지 미개봉 상태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자기반영 삼부작에 대한 비평적 무관심 또는 공백은 영화 외적인 상황에도 원인이 있다. 저널리즘에서의 무관심뿐만 아니라 학술논문에서조차 자기반영 삼부작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8) 더욱이 삼부작의 첫 작품으로 기획된 <다케시즈>의 궁극적 의미는 나머지 두 작품을 통해 사후적으로 구성되기때문에 <다케시즈>만을 보고 기타노 영화의 몰락을 선언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기타노 감독은 <다케시즈>는 하나의 사이클의 끝이자 자신의 초기 영화 스타일의 끝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9) 이는 <감독 만세>와 <아킬레스와 거북이>에도 해당된다. 감독이 각본, 편집, 주연을 겸했다는 점, 자기반영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점, 과거 자신의 작품(영화 및 회화)을 인용하거나 언급한다는 점, 예술가(배우, 감독, 화가)로서의 자기부정을 전면화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 영화의 공통된 특징이다. 따라서 <다케시즈>는 개별 작품에 대한 작품론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 기반영 삼부작과의 관계, 더 나아가 초기부터 현재까지 기타노 미학의 연속선상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다케시즈>의 자기반영성에 주목하여 감독 자신의 정체성과 영화 예술에 대한 부정이 역설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창조의 계기로 작용하는가를 논하기로 한다.

    1)하시바 시게후미羽柴重文의 기타노 감독 인터뷰 「TAKESHI’S MESSAGE─北野 武「俺 としては、本当に頭でなく、身体で受け止めてほしい」」, 『別冊 カドカワ 総力特集 北 野 武』(이하, 『別冊』으로 줄임), 角川インタラクティブㆍメディア, 2005, 16쪽.  2)기타노 다케시와 기타노 영화의 광적인 팬을 일컫는 말로 주로 일본보다 먼저 그를 작가로서 발견했던 유럽에서 이렇게 불린다.  3)이 글에서 ‘기타노 영화’란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한 영화인 동시에 그가 소속되어있는 탤런트 메니지먼트 회사 ‘오피스 기타노Office Kitano’에서 제작한 영화라는 의미로 쓴다.  4)김봉석, 「폭력의 피와 뼈를 경험하라: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 속 순수한 폭력의 세계」, 『씨네 21』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 데일리 2010. 10. 8. http://www.cine21.com/Index/magazine.php?mag_id=62798. 2011년 4월 5일 접속.  5)정한석, 「기타노 다케시의 야심찬 시도 <다케시즈>, 절반의 실패와 성공」, 『씨네21』 No.581, 2006년 12월 6일자, http://www.cine21.com/Index/magazine.php?mag_id=43211. 2011년 4월 5일 접속.  6)역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기타노 영화는 다음과 같다.   7)국제영화제의 내셔널 시네마 패러다임은 기타노에게 ‘일본의 작가’라는 위상을 부여했고 그의 미학을 ‘일본적인 전통’과 결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는 이지연, 「내셔널 시네마의 유통과 ‘작가’ 감독의 브랜드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 기타노 다케시와 임권택의 경우를 중심으로」, 『영화연구』30호, 2006을 참조. 한편 오피스 기타노는 영국에서 호평을 얻은 <소나티네>(1993) 이후 일본 국내에서 저평가되어왔던 기타노영화의 배급을 위해 국제영화제 출품을 통해 화제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일본 시장에서의 셀링 포인트로 삼는 선전 전략을 추구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기타노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오피스 기타노의 사장인 모리 마사유키의 森昌行, 『天才をプロデュース』, 新潮社, 2007 참조.  8)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다케시론’은 <다케시즈> 이후로 급격한 경사를 보인다. 거기에 더해 한국에서기타노 감독은 현존하는 일본 감독 중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유명세에 비해 학술적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비단 기타노 감독뿐만아니라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같은 이른바 일본영화의 거장들에 비해 현대로 올수록 일본 작가에 대한 연구는 일천한 편인데 이는 많은 부분해방 이후 일본영화와 단절되었던 한국적인 사정에 기인한다고 본다. 참고로 한국에서 현재까지 발표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 대한 학술적 고찰은 다음과 같다. 오정현, 「일본대중영화와 일본의 내셔널리즘 담론 연구: <자토이치 座頭市 ざとういち>시리즈 (1962-1989年, 2003年)에 대한 수용적 측면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2004년. 이지현의 앞의 논문과 이병담이 2001년부터 2005년에 걸쳐 『일본어문학』 및 『 일어일문학연구』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론(그 논문들은 모두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영화의 서사론과 미학』, 행복한집, 2006에 재수록 되었다) 최정현, 「요지 야마모토 의상에 표현된 미의식에 대한 연구: 일본 영화 <돌스>를 중심으로」,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Vol.15 No.3, 2009.  9)앞의 책, 『別冊』, 15쪽.

    2. 프랙탈 구조: <다케시즈> 속의 다케시들

    기타노 다케시는 1974년부터 비트 다케시ビートたけし라는 예명으로 코미디언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배우 경력의 초반기에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1983)에 출연했는데 진지한 역할이었지만 관객으로부터 웃음을 사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감독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기 때문에その男、凶暴につき>(1989)에서부터 코미디언으로서의 정체성과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전략을 세우고 감독으로서는 본명을, 배우로 서는 예명을 구분해 써왔다. 그럼에도 한동안 비트 다케시의 텔레비전적인 정체성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적인 정체성과 충돌을 일으키며 그의 초기작이 일본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 다. <하나비>의 수상 이후 기타노 다케시는 비로소 일본에서도 작가 감독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비로소 ‘세계의 기타노世界の北野’라는 칭호를 얻었다.

    <다케시즈>는 바로 이와 같은 기타노/비트 다케시의 유동적인 정체성(fluid identity)10)에 대한 자기반영적인 영화이다. “기묘함과 자기우 롱으로 넘치는 자화상”이라거나 “감독의 강박관념이 그대로 스크린으로 뛰어든 것 같다”11)라는 외신의 평가처럼 <다케시즈>는 다케시가 다케시를 연기한 다케시들의(Takeshis’) 영화이다. 금발의 기타노 다케시와 흑발의 비트 다케시의 얼굴을 담은 두 가지 버전의 영화 포스터는 한 인간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표상한다. 그런데 그 다케시들의 얼굴은 큐비즘 회화처럼 수많은 작은 사진들, 주연을 맡은 그 자신과 <다케시즈>에 출연한 배우들의 얼굴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사진 속의 사진들이 의미하는 바는 기타노/비트 다케시의 이중성은주체의 상상인 동시에 타자로부터 상상된 것의 총체라는 점이다.

    기타노 본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연예인이면서 영화감독이고, 비트 다케시이기도 하고 기타노 다케시이기도 한 지금의 인생은 정말로 지친다”12)고 토로한 바 있다. 삶에 대한 피로는 <다케시즈>뿐만 아니라 기타노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소나티네ソナチネ>의 야쿠자 중간보스 무라카와나 <하나비>의 형사 니시를 떠올려 보자. 비트 다케시가 연기한 두 인물의 무표정한 얼굴과 실어증적 침묵은 감각의 한계에 다다른 자들의 방어본 능에 다름 아니며 반어적으로 죽음만이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한편 비트 다케시의 죽음으로 끝나는 두 영화가 각각 초기 기타노 영화의 완성과 새로운 기타노 영화의 시작이라는 점에 상기한다면 상상적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기타노가 다케시를 죽이는 <다케시즈>는 <하나비> 이후 기타노 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임이 분명하다.

    그 점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다케시즈>가 기타노 감독이 <하나비> 이전부터 품어왔던 기획으로, <소나티네> 무렵부터 <프랙탈フラクタル>이라는 가제로 시나리오의 처음 버전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13) 공교롭게도 기타노가 이 기획을 현실화하기 전(<소나티네> 직후)에 여러 비평가들이 기타노 영화의 전환점이라고 보는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 했던 이 사고로 기타노는 오른쪽 얼굴이 마비되었고 재기불능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1996년 <키즈 리턴Kids Return>으로 문자 그대로 ‘리턴’했다. 그런데 이때 그가 복귀작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것은 <키즈 리턴>이 아니라 <프랙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프로듀서 모리 마사유키森昌行의 충고에 따라 미루어 두었는데 감독은 <하나비>의 차기작, <기쿠지로의 여름菊次郎の夏>의 차기작으로 번번이 거론할 만큼 이 기획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14)

    모리에 따르면 <프랙탈>은 <자토이치座頭市>(2003) 다음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영화였다. “<소나티네>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기타노다케시를 탤런트가 아니라 감독으로 인식하는 최소한의 토대도 없었던 일본에서”15)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타노’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하나비>, 헐리우드 진출작 <브라더BROTHER>(2000), 마지막으로 비평과 흥행의 정점에 올랐던 <자토이치> 다음에라야 비로소 ‘작가 기타노’의 자기부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십여 년의 숙성 기간을 거쳐 택시 운전수의 이야기였던 <프랙탈>은 기타노/비트 다케시의 자기반영적인 영화 <다케시즈>로 진화했다.

    한때 공학도였던 감독에 따르면 ‘프랙탈fractal’이란 부분들이 전체를 닮는 자기유사성, 무한반복, 소수(小數) 차원을 특징으로 하는 기하학적 구조를 말한다. 즉, 다케시의 작은 사진들이 집합이 다케시를 구성하는 <다케시즈>의 포스터의 구조는 의미론적으로 프랙탈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요약하다보면 황당무계해지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도 처음과 끝이 없이 자기유사성을 가지고 순환하는 서브플롯들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프랙탈적이다. 그럼에도 프랙탈적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영화의 자기반영성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잠시 여기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다케시즈>의 오프닝 신은 일본군의 시체가 널려 있는 폭격당한 건물 안에서 시작된다. 죽은 체 엎드려있던 한 일본군(다케시)이 슬며시 실눈을 뜨다 미군 병사와 눈이 마주친다. 병사가 총을 겨눈 순간 암전하면서 (그림자가 파랗게 반전된)붉은 글씨16)로 영화 제목이 뜨고영화 속 영화가 시작된다. 어느 어둑한 건물 안. 야쿠자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혼자 살아남은 다케시가 유유히 그곳을 떠난다. 그런데 다케시의 뒷모습 위로 느닷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줌 아웃으로 텔레비전의 프레임이 드러나면서 이 신이 비트 다케시가 주연한 영화<작열>의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런 트릭은 <모두∼ 하고 있나!みんな∼やってるか!>의 도입부를 연상시킨다. 또한 텔레비전 이 놓인 장소는 <소나티네>의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마작클럽이다. 돈을 날리고 나오던 다케시는 스토커(기시모토 카요코岸本加世子)에게 물세례를 받는다. 매니저(오오스기 렌大杉漣)와 애인(교노 코토미京野ことみ)과 함께 방송국에 도착한 다케시는 연예계의 선배인 미와 아키히로三輪明寛17)에게 “괴물”이라는 말을 듣는다. 한편 같은 시각 방송국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배우지망생 기타노가 단역을 맡아 피에로로 분장 중이다. 기타노는 분장실에서 만난 다케시의 친구(데라지마 스스무寺島進)의 주선으로 다케시에게 사인을 받는다. 다케시는 다음 촬영을 위해 엎드려서 등에 문신을 그려 넣다가 잠에 빠진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다케시와 기타노의 꿈, 등장인물들의 상상과 회상이 교차되면서 한층 복잡해진다. 방송국에서 집으로 돌아온 기타노는 다케시의 팬(그녀는 기타노를 다케시로 착각한 것일까?)에게서 받은 다케시 인형을 책장 위에 올려놓고 잠에 빠진다. 이어지는 신은 방송국에서의 드라마 촬영 장면이다. 오키나와의 바닷가가 보이는 실내 세트는 <소나티네>에서 무라카와와 부하들이 숨어들었던 이시가키지마石垣島의 안전가옥을 연상시킨다. 머리에 총을 겨눈 다케시를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결말도 무라카와의 자살을 연상시킨다. 촬영을 마친 다케시는 뜨거운 조명 때문에 불평한다. 다케시의 시점으로 보이는 눈부신 조명은 점프 컷되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잠에서 깬 기타노의 얼굴로 연결된다. 각각 조명과 햇빛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리는 다케시와 기타노의 동작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관객은 다케시의 드라마 촬영 장면이 기타노의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꿈과 현실이 여러 차례 교차되면서 기타노는 점점 다케시를 닮아간다. 야쿠자(데라지마 스스무의 1인 2역)의 애인인 옆집 여자(교노 코토미의 1인 2역)와 은행을 터는 꿈속에서 기타노는 그녀와 함께 붉은포르쉐를 타고 스튜디오 No. 9에 도착한다. 그곳은 검은 가발 쓴 미와 아키히로의 노래와 송충이 쇼, <자토이치>의 라스트신에 출연한 탭댄스 그룹 더 스트라이프스THE STRiPES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의 무대이다. 거기서 흐르던 음악의 가사 “꿈속에서 만납시다”가 암시하듯 꿈은 <다케시즈>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열기 위해서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본의 비밀상자(秘密箱)처럼 꿈속의 꿈, 또 그 꿈속의 꿈으로 연결된다. 그러는 사이 다케시가 기타노의 꿈인지, 기타노가 다케시의 꿈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감독은 기타노와 다케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에게 1인 2역 내지 3역을 맡기고 같은 대사를 다른 상황에서 반복하게 함으로써 해독의 실마리를 한 층 더 복잡하게 숨겨놓았다. 즉, <다케시즈>라는 영화는 제멋대로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프렉탈적인 자기유사성을 구현하는 내러티브로 교묘하게 짜놓은 비밀상자인 것이다.

    예를 들어 ‘도라이치’(마작 용어)라는 라면가게의 팩터(factor)가 그렇다. 마작클럽을 나와 방송국으로 향하던 다케시의 차는 신호에 걸려 도라이치 앞에 정지한다. 매니저는 그 가게의 라면이 맛있지만 요리사가 괴팍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도라이치의 요리사가 주문하려는 손님에게 “내가 말하기 전에 묻지마” “맛에 불만 있냐?”라고 하는 숏이 인서트 된다. 다케시가 “요리사가 조마훈ゾマフン18)이라면 재미있겠는 데”라고 대꾸하자 요리사가 된 조마훈이 같은 대사를 부족어로 말하는 숏이 인서트 된다. 계속해서 도라이치의 팩터는 기타노의 꿈과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그는 도라이치에서 라면을 주문하는데 요리사(와타나베 테츠渡辺哲)와 조수(다카키 준야高木淳也)가 위의 대사를 반복한다. 이 장면은 다케시가 참가한 오디션으로 점프 컷된다. 라면가게의 괴팍한 요리사 역을 뽑기 위한 오디션에서 주어진 대사는 그가 도라이치에서 들은 것과 똑같다. 뿐만 아니라 도라이치의 요리사와 조수와 똑같이 생긴 단역배우(와타나베 테츠의 1인 2역)와 야쿠자 보스(다카키 준야의 1인 2역)가 이 오디션에 응모해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오디션에서 낙방한 기타노는 그날 밤 부상당한 야쿠자에게서 뺏은 총을 가지고 가 도라이치에서 스파게티를 주문하는 꿈을 꾼다. 덧붙여 <다케시즈>의 도라이치 신은 세트가 아니라 실제로 도쿄에 존재하는 같은 이름의 라면가게에서 촬영되었다. 즉, 궁극적으로 도라이치의 팩터는 관객의 꿈(영화가 어두컴컴한 극장 속에서 보는 백일몽이라고 한다면)과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자기반영과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전개되는 <다케시즈>의 내러티브는 반복되는 입몽(入夢)과 각몽(覺夢)을 통해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19) 그러나 기타노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비밀의 상자가 열렸다고 생각한 순간 영화는 상자 속 보물을 보여주지 않은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기타노는 스타 다케시가 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찍는 백일몽에서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온 그는 며칠 전 다케시에게서 받은 사인을 버린다. “기타노씨에게라고 써주세요”라고부탁했건만 다케시는 조롱하듯 “피에로씨에게”라고 썼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케시 인형이 피에로 얼굴로 바뀌어 조롱하듯이 그를 바라본다. 충동적으로 뛰쳐나간 기타노는 애인과 함께 귀가하던 다케시를 칼로 찌른다. 옆구리를 찔린 다케시의 신음. 그런데 그 신음소리는 영화의 초반부에 문신을 하다 잠이 든 다케시의 신음으로 보이스 오버된다. 등을 콕콕 찌르는 타투이스트의 붓놀림 때문에 그는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즉, 밑도 끝도 없이 황당무계한 이 이야기는 모두 다케시의 꿈이었다는 결말이다. 그러나 또 한 번 반전의 순간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오프닝의 일본군과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던 다케시가 악몽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순간, 다케시의 시점 숏으로 총을 겨눈 미군 병사가 보인다. 그리고 병사가 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는 마작클럽에서 흘러나오던 영화 <작열>의 총격전의 한 장면으로 점프 컷되면서, 내러티브는 순환되고 영화의 의미는 유보된다.

    10)애런 제로는 <다케시즈>를 ‘다케시’라는 유동적인 정체성을 형성한 대중매체의 기대로 부터 끊임없는 도주를 정당화하기 위한 영화라고 분석하면서 기타노 감독이 이제까지 유동적 정체성의 정치학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감안한다면 그 같은 도주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Aaron Gerow, World Directors: Kitano Takeshi,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2007, p.225.  11)전자는 르 피가로LE FIGARO에 실린 뜨랑샹Marie-Noëlle Tranchant의 언급, 후자는 디프레세Die Presse의 후버Christoph Huber의 언급. 앞의 책, 『別冊』, 9-10쪽.  12)기타노 다케시, 권남희 옮김,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북스코프, 2006, 26쪽.  13)앞의 책, 『別冊』, 16쪽.  14)야마네 사다오山根貞男의 기타노 다케시 인터뷰「俺は日本映画のガン。早く駆逐しなさい!-『HANA-BI』をめぐって」, 『ユリイカ 臨時増刊 総特集─北野武そして/あるいはビートだけし』No. 400, Vol. 30-3, 1998. 2, 33쪽 및 37쪽 참조.  15)森昌行, 앞의 책, 77쪽.  16)기타노는 대본을 쓸 때부터 적색과 청색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앞의 책, 『別冊』, 20쪽 참조). 적색은 다케시의 색으로 그는 붉은 상의를 입고 등장하고 극 중에서 그가 출연한 영화 <작열>의 포스터도 붉은 톤으로 처리되어 있다. 반면 청색은 기타노의 색으로 그는 파란 톤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러나 다케시와 기타노의 정체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청색과 적색은 각자의 공간에 혼재하게 된다.  17)1957년부터 활동해온 일본의 가수 겸 배우, 본명은 마루야마 아키히로丸山明宏.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금발로 물들인 머리에 화장을 한 국적, 연령, 성별을 알 수 없는 외모로 유명하다.  18)조마훈 이도수 루핀Zomahoun Idossou Rufin. 서아프리카의 베냉공화국 출신의 유학생으로 현재 학업을 그만두고 오피스 기타노에 탤런트로 소속되어 있다. <감독만세>에서도 조마훈 역으로 출연했는데 기타노 영화에서 민족의상을 걸치고 나오는 아프리카인 조마훈은 원시적인 타자로 표상되는 것 같다.  19)<다케시즈>는 기타노 영화의 집대성이자 비트 다케시를 텍스트로 삼은 자기반영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 드러난 자기반영적 편린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3. <다케시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다케시즈>를 해독하기 위한 첫 걸음은 누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가를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먼저 감독이 단역배우가 아니라 텔레비전 스타이기 때문에 기타노가 아니라 다케시를 주인공으로 가정해볼 수 있다.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기타노는 다케시의 꿈이다. 그러나 다케시를 주인공으로 볼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다케시가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주인공이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몽유록처럼 동양문학의 전통에서는 흔한 내러티브이다. 그런데 <다케시즈>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몽유록의 액자구성을 취하면서도 프레임의 경계가 모호하다. 프레임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순환하는 내러티브에서 다케시는 또 누군가의 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를 앞에서 언급한 유동적인 정체성, 즉 텔레비전 스타비트 다케시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기타노 다케시 사이의 갈등을 다룬 예술가영화라고 해석한다면 주인공은 기타노가 될 것이다. 코미디언 지망생이었던 감독은 스트립 극장이었던 아사쿠사의 프랑스좌フランス座에서 콩트를 시작했는데 스트립쇼의 막간에 코미디에 무관심한 관객들을 웃겨야 했다.20) 그 시절 경험한 웃음과 시선의 폭력성은 피에로로 분장한 단역배우 기타노에게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에서 밝혔듯이 기타노의 다케시 살해는 다케시의 자살로 마감하는 <소나티네>와 <하나비>의 결말과 일맥상통한다. 비트 다케시의 죽음을 텔레비전적 정체성과 결별하려는 감독의 원망(願望)으로 본다면 <다케시즈>의 결말은 영화적 정체성의 승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케시즈>에는 이런 가설이뒤집어지는 신이 있다는 점이다. 다케시의 사인을 받고 방송국에서 돌아온 기타노는 다케시 인형을 책장 위에 올려놓고 잠이 든다. 책장옆에는 다케시가 주연한 <작열>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카메라는 인 형의 시점에서 오른쪽으로 팬하여 잠든 기타노를 내려다본다. 이 인형은 나중에 기타노가 다케시의 사인을 버렸을 때 피에로로 변해 비웃듯 그를 마주본다. 즉, 이 두 신에서 바라보는 주체는 다케시 인형이고 기타노는 보여지는 객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화에서 기타노가 주인공이라는 두 번째 가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타노 감독은 이미 <돌스>에서 인간과 인형의 시점을 뒤집어 인형이 본 인간사를 그려낸 바 있다. <소나티네>의 스모 인형, <기쿠지로의 여름>의 유리 천사, <돌스>의 분라쿠 인형, <자토이치>의 허수아비, <다케시즈>의 다케시 인형, <감독만세>의 기타노 인형 등 그의 영화에는 인형이 등장하는 신이 유달리 많다. 게다가 이 인형들은 인간을 대신하는 분신이라기보다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인간을 응시하며 오히려 인간이 인형을 모방한다. 아마도 기타노 영화에 반복되는 인형의 모티프는 인간 기타노 다케시의 몸을 신의 인형이라고 느끼는 감독 특유의 생에 대한 감각에서 왔을 것이다. 그런 감각을 잘 드러내주는 감독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본다.

    윗글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신이 기타노 다케시라는 인간에게 여러가지를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다케시즈>라는 세계를 창조한 감독 역시 기타노와 다케시라는 두 인형에게 자기의 일부분을 뒤집어씌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결국 두 개의 인형을 사용하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 실제 나는 감독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 인형을 출연시켜서 어느 쪽이 닮았네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내 인형일 뿐이야라는 거지. 그러니까 감독 자신이 가장 나다운 것인지도 모르지”22)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결국 <다케시즈>는 두 가지 인형을 조작하는 인형조종사의 이야기이며 따라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러티브 안의 두 인형이 아니라 그것을 조종하는 내러티브 밖의 인형조종사, 기타노 다케시 그 자신이다.

    20)기타노 감독의 아사쿠사 시절에 대해서는 ビートたけし, 『浅草キッド』, 新潮社, 1988참조.  21)기타노 다케시, 앞의 책, 216-217쪽.  22)앞의 책, 『別冊』, 19-20쪽.

    4. 보유(補遺): 창조를 위한 파괴

    기타노 다케시는 왜 <다케시즈>를 만들었을까? 그에 따르면 “<자토이치>를 해서 관객이 들어와 돈이 남았으니 아무도 안 들어오는 영화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23)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기에는 일본 연예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이 담겨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몰락한 1960년대부터 텔레비전과의 경쟁으로 빈사상태에 있는 일본영화계에서 예술영화 제작은 고위험 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타노 영화가 성립하기 위해 탤런트 비트 다케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기타노 영화의 제작비가 탤런트 비트 다케시의 수입으로 충당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의 영화가 비트 다케시라는 배우 때문이아니라 ‘세계의 기타노’라는 작가 감독의 브랜드명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대사회의 스타가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화신이라고 한다면 자본의 흐름이 유동적인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스타의 조건은 다양한 소비자로부터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유동적인 정체성일 것이다.25) <다케시즈>는 기타노 다케시의 유동적인 정체성, 즉 작가 감독이자 탤런트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서로를 참조하여 소비되고 순환되는지를 보여준 일종의 메타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기타노 다케시는 작가 캐리어의 정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돌연 이제까지 쌓아온 명성과 미학을 허무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다케시라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밝히는 일은 곧 비트 다케시의 스타덤뿐만 아니라 세계의 기타노를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다케시즈>에서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해체한 감독은 <감독만세>에서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감독인가를 이야기한다. 작가 이론은 한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공통된 미학적 특징을 추출하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작품 해석에 발전론적인 관점을 적용한다. 여기에 반기라도들 듯 <감독만세>에서 기타노 감독은 관객이 드는 영화를 만들어 내려고 고민하지만 늘 실패로 끝나고 마는 무능한 감독으로 스스로를 희화화한다. 자신만만한 갱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타노 감독은 이제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장르의 영화에 도전을 해본다. 오즈小津保次郎를 흉내 내어 다다미 쇼트로 촬영된 <정년定年>은 오즈만큼 품격이 없다는 이유로, 이제까지 감독이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멜로드라마 <추억의 문追憶の扉>은 몇 번이나 수정을 거쳤는데도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각본 때문에, <감독만세>와 같은 해 일본에서 크게 히트 한 <3번가의 석양三町目の夕日>처럼 쇼와昭和 30년대(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초반)를 배경으로 하는 복고 취미에 영합해보려고 한 <콜타르의 역도산コールタールの力道山>26)은 그때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 자신의 너무나 리얼한 체험 때문에 상업적 코드가 안맞아 중단된다. 계속해서 무섭다기보다는 웃기는 호러, 유일한 히트작 <자토이치>를 흉내 낸 시대극, 일본의 CG기술을 도입해본 SF 등 완성되지 않은 영화들이 넘쳐난다. 어쩌다보니 완성된 한 편의 영화마저도 장르를 규정할 수도,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만다. 즉, <감독만세>에서 기타노 감독은 뻔뻔스럽게도 영화에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라는 미디어를 이용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반대하는 전자의 영화는 관객과 비평가의 취향에 길들여진 영화이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기타노 감독은 영화의 관습과 장르가 찢겨져나가고 내러티브가 표류하며 의미는 포기되는 상황을 저항의 한 형식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런 저항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에서도 예술을 통한 예술 비판으로 반복된다. 비트 다케시가 연기한 재능 없는 화가 구라모치 마티스 倉持真知寿는 유복했던 어린 시절 주변의 가식적인 칭찬으로 화가가 되는 꿈을 주입 당한다. 그는 결혼한 뒤부터는 아내 사치코에게 생업을 맡기고 그림에 몰두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화풍 때문에 화상(畵商)으로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을 뿐이다. 그럴수록 마티스는 예술에 집착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얻기 위한 실험은 점차 광기로 치닫는다. 그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아내조차 그가 영안실에서 죽은 딸의 얼굴을 탁본하려고 하자 떠나고 만다. 이윽고 마티스는 예술적 광기의 상징인 해바라기(고흐의 인용) 한 송이를 스케치하면서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이 죽음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에서 여섯 번째 죽음이다. 미술애호가였던 마티스의 아버지는 파산 후 게이샤와 동반자살을 했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절벽에서 투신자살을 했으며, 청년시절 미술학교의 동기들은 집단미술을 실험하다가 죽거나 자살했다. 마지막으로 가출한 딸의 죽음은 마티스의 자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그러나 인생과 예술에서 실패한 마티스는 죽음에서조차 실패하고 만다. 미적인 죽음을 시도했지만 한쪽 눈을 제외한 전신 화상을 입고 살아남아 비웃음거리가 된다. 투명인간처럼 붕대를 감은 마티스가 사치코가 내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희극적이라기보다는 자조적이다. 더구나 마티스가 그린 그림이 실은 감독 자신의 그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의도는 의도적인 자기부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예술이라는 이 비생산적인 생산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인 것 같다.

    이상과 같이 이 논문에서는 <다케시즈>를 중심으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기부정의 미학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비트 다케시라는 연예인으로서, 또는 세계의 기타노라는 작가 감독으로서 대중에게 자신의 삶을 스펙터클로서 전시해왔던 그에게 <다케시즈>를 비롯한 자기반영 삼부작은 그 스펙터클을 파괴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텔레비전적인 괴물로 규정하고 그 허상을 파괴한 <다케시즈>나 영화의 관습과 장르를 파괴한 영화 만들기를 시도한 <감독 만세>, 그리고 예술의 패러독스를 확인시킨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기타노 영화가 가진 자기부정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에게 자기 부정은 늘 새로운 창조의 계기가 되어왔다. 그 자신이 만든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만들고는 부수고, 부수고는 다시 만드는 작업을 우리는 이미 <소나티네>의 뒤를 이은 <모두∼ 하고 있나!>와 <하나 비>의 뒤를 이은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목도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자기반영 삼부작 역시 창조를 위한 파괴가 되리라고 기대해본다. 그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종잡을 수 없음’27)을 저항의 한 형식으로 삼아 끝까지 영화와 화해하지 않을 것이므로.

    23)위의 책, 16쪽.  24)야마네 사다오, 앞의 글, 33쪽.  25)Aaron Gerow, op. cit, p.5.  26)영화 속의 영화 <콜타르의 역도산>은 기타노 다케시의 자전적인 소설 『소년』(少年)에서 중요한 모티프를 따왔다는 점에서 자기반영적이다. ビートたけし, 『少年』, 新潮社, 1987.  27)“좋은 영화입니다, 훌륭한 영화입니다 라는 것도 아니고 시시하거나 하찮거나 한 것도 아니다. 내 머릿속에 그 영화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만들어도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중략) “뭐뭐 같다”라는 게 아닌 그런 영화가 만들고 싶었다.” 앞의 책, 『別冊』\』,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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