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과 우산

The “Sausage” and the “Umbrella”

  • ABSTRACT

    One of the most popular domestic novels, Little Women, has shown the fundamental value of family and family love through attractive Tomboy Jo’s growth and her life. Surrounded by her beloved sisters and her mother dear Marmee, Jo knows the importance of family and home as a refuge in a troubled world. She wants to live as an independent person or as “the man of the family,” saying, “I can’t get over my disappointment in not being a boy.” Jo, who has a strong desire to be a writer and live by her own will, avoids Laurie’s love and runs away to the wider world, New York, where she may “see and hear new thing s, g et new ideas.” Leaving Laurie and home behind, Jo seems to fall into an unfamiliar isolated situation. Fortunately, she works as a governess in Mrs. Kirke’s safe domestic environment and has a chance to write her “sensational stories” in the newspaper.

    Two objects are used in the novel to represent Jo’s state of mind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Laurie and Professor Bhaer. One is a pillow called the “sausage,” which signals that Jo’s temporal and spatial sphere is not to be interrupted, and “being used as a weapon of defence, a barricade,” especially against Laurie, it is a sign not to approach Jo. Jo uses this “sausage” to protect her immature, innocent, and unstable world from potential collapse. The other is the “umbrella,” which Professor Bhaer has and uses to shelter Jo before his proposal. Jo, who forg ets to bring her own “little umbrella,” already under the influence of Professor Bhaer’s harsh but sincere advice about her “sensational stories,” rushes under “his” umbrella and accepts the proposal of marriage.

    The “sausage” can be interpreted as a tool for Jo to keep her own will and freedom. Even though young Jo’s desire to be a writer and an independent person is an immature and imperfect one, she tries to keep it with her full heart. However, “the umbrella” means, unlike the case of the “sausage,” that Jo gives up her independent life. By standing together with Professor Bhaer under his umbrella, permanently losing her “so crumpled and underscored” manuscripts, which she had once written for the paper, attractive Tomboy Jo returns to the nineteenth century’s traditional value for “women” as “Mother Bhaer.“

  • KEYWORD

    Little Women , gender role , patriarchy , mothering , writing , Jo March

  • I. 들어가기

    루이자 메이 앨콧(Louisa May Alcott)의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이 1868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 당시 독자들은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 중 하나인 가족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네 자매의 매력을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 많은 지지를 보냈다. 결혼과 사랑이 삶의 목표인 현실적인 메그, 순수하고 병약한 천사 같은 베스,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아직은 물질에 더 관심을 갖는 어린 에이미와 더불어,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독립적인 삶을 이루기를 바라는 주체적 인물인 조로 이루어진 네 자매의 성장기는 여성들의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공동체인 마치 가에서 자애롭고 현명한 마치 부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정의 소중함과 노동의 신성함, 검약 정신과 종교적 헌신, 관대함과 신의 등 미국인들이 신대륙에 건설하고자 했던 새로운 나라의 미덕과 가치가 이 작품 곳곳에 녹아 들어있다. 황량하고 광활한 신대륙에서 개간되지 않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선 채, 비록 손은 노동으로 거칠어졌으나 얼굴은 신심으로 경건하게 불타며 이상을 잃지 않은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작은 아씨들』을 읽고 난 후 독자들에게 남는 강렬한 이미지이다.

    독자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던 이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작은 아씨들』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서야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문학 비평가로부터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Showalter vii). 특히 조와 로리의 낭만적 결말을 원했던 독자들이나 조의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정립을 바랐던 비평가들은 수많은 논쟁적인 비평을 쏟아냈다. 더글러스(Ann Douglas)는 미국 남성작가들의 주인공들 못지않게 앨콧의 여성인물들이 “미국 문학의 신전에 영원한 구성원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진정한 다원성, 여성주의 미국의 꿈(a feminist American dream)을 성취했다”(62)고 평한다. 아우얼바흐(Nina Auerbach)는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작은 아씨들』과 비교 분석하면서 두 작품의 공통점 중 하나는 “어머니가 주재하는 여성 세계의 집단 거주지에서 남성 보호의 공식적 권위로 향해가는 자매들의 여정”(8)이라고 설명한다. 페털리(Judith Fetterley)는 이 작품이 여성작가를 인정하지 않고 억압했던 “19세기 미국 여성작가의 위치를 반영한다”(40)고 분석한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조가 작가로서의 열망을 포기하고 결혼하는 것이 가부장제 사회의 가치관을 답습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씨들』은 딸로서 지니는 여성적 구속과 예술적 자유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Showalter ix)이라는 평을 동시에 받는다. 조는 글을 쓰려는 자신의 열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항상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작은 아씨들』이 조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가족이야”(484)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가족과 성장, 사랑과 우정, 일과 직업 등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것으로 보아, 가족의 의미가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이 논문에서는 작가가 되려던 창조적 열정을 품었던 조가 작가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를 조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준 남성인물들, 로리와 바에르 교수와의 관계를 통해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조가 사용한 물건들인 “쿠션”(the sausage)과 “우산”(the umbrella)이 그녀의 선택과 결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라는 것을 이들 남성인물들과의 연관성을 토대에 두고 밝힐 것이다. 나아가 선머슴 같던 소녀 말괄량이 조가 어떻게 자신의 불꽃같은 성격을 억누르고 다스리면서 마치 부인과 같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리게 되는가를 19세기의 젠더 이데올로기로 고찰한다.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전면에 부각시킨 이 작품이 조의 성장과 독립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핀다.

    1)Louisa May Alcott. Little Women (New York: Penguin, 1989). 이하 원문 인용은 이 책을 따른다.

    마치 부인은 남북전쟁으로 떠나 있는 남편 마치 씨를 대신하여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십대 소녀들을 양육하고 가르친다. 그녀는 “‘도와줄게’하는 표정을 지닌 풍채 좋고 자애로운”(7) 어머니로, 네 자매와 더불어 마치 가를 이상적인 여성공동체로 만든다. 마치 부인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교육과 양육을 담당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녀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따끔한 충고와 훈계를 잊지 않는다.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없어”(1)라고 투덜대는 조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작품의 첫 장면은 마치 가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안한 전시상황과 전쟁에 참여한 마치 씨에 대한 걱정, 각자가 겪는 생활의 고단함 등이 네 자매의 개성을 드러내는 대화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메그는 “갖고 싶은 예쁜 물건들”(1)을 떠올리고, 조는 사고 싶은 책을, 베스는 “새로운 음악”(2)을, 에이미는 “드로잉 연필 한 박스”(2)를 떠올린다. 아우얼바흐는 “소설 전체에서 마치 가의 여성들은 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물건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묘사된다”(13)고 설명한다. 메그는 드레스와 물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로,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소 허영심을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네 자매 중 가장 병약하며 조용한 성품을 지닌 베스는 18세기나 19세기의 아동문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천사 같은 어린이의 재현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녀의 도덕성과 이타적인 행동, 사고방식은 흠결 없이 매끄럽고 완벽하여, 오히려 매우 비현실적인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런 베스가 현실의 가혹함과 변화무쌍함을 견뎌낼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에이미는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활력적인 어린 소녀로, 자신에 대한 과시욕과 자신감을 거리낌 없이 내보인다. 예술적 기질과 자존감으로 본다면 조와 에이미는 상당히 닮아있다.

    네 자매가 지닌 삶의 가치관은 부모와 당대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19세기 아동문학에 대해 헌트(Peter Hunt)는 “식민적, 가부장적 가치가 문화에 적극적으로 새겨졌다”(122)고 주장하며, “소녀에게는 여성을 젠더화시키는 특성들(순수, 복종, 의존, 자기희생, 봉사)과 ‘여성적 여성애의 이미지, 즉 영적인 지식, 자기 존중, 그리고 잠재적인 경제적 의존’ 등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122)고 설명한다. 메그와 에이미는 물질적 세계를 즐기려는 세속적 인물들로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몹시 괴로워한다. 반면 조와 베스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세계를 개선시키려 노력한다. 그들은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정신을 선호하고 탐욕에 굴복하지 않는다. 베스는 그녀 특유의 박애와 봉사정신으로 물질적 세계의 언저리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 하지만 조와 에이미가 스스로를 계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보이려는 적극성을 지닌 것과는 달리, 베스와 메그는 순종적이며 주어진 성역할에 충실하다. 베스의 비현실적인 선함은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고, 메그와 에이미의 지나친 물욕은 “잠재적인 경제적 의존”(122)을 키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이바지하게 된다.

    조는 19세기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여성성의 틀을 벗어나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불가능한 꿈이었던 ‘독립’을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당시의 여성들이 마음속으로는 원했을지언정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선머슴 같은 모습으로 당대의 교육과 답답한 남성위주의 시스템에 당돌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그녀는 치마를 걷어 달려다니고, 필요하다면 변장을 하며, 몸을 꾸미는 데 관심이 없고, 어른들에게 예의상 빈 말을 한다거나 아첨하지 못한다. 그녀는 섣불리 로맨스를 꿈꾸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많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독립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꾼다. 그녀는 “소년이 아니라는 실망감을 극복할 수 없어. . . 아빠랑 같이 가서 싸우고 싶어 죽겠는데, 집안에 앉아서 굼뜬 할머니마냥 뜨개질이나 해야 한다니”(3)라고 괴로워하는데, 이런 조를 바라보는 마치 부인과 다른 자매들은 조의 거친 행동과 말에 대해 “무례하고 숙녀답지 않은 소녀”(3)라고 꾸짖는다. 그녀들은 여성적인 행동이나 말이 본래부터 여성에게 주어진 것, 여성이 지켜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버틀러(Judith Butler)는 “여성”이나 “젠더”의 정의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언제나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늘 가변적이고 모순적으로 성립되었다”(4)고 설명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여성적인 태도, 혹은 젠더 역할과 같은 개념들을 작가로서 성공하려는 열망에 가득 찬 조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여성성과 모성성의 강조는 가부장제 사회의 존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특히 마치 부인이 보여주는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상은 가정 내의 부재한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치 부인을 가장 닮고자 하는 인물은 표면적으로는 메그인데, 그녀는 다른 동생들과는 달리 사랑이나 결혼, 가정을 꾸리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마치 부인이 부재한 남편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야말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가장 유사하게 따라가는 인물이다. 조는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며 스스로 “아빠가 떠나 있는 동안 내가 집안에서 남자야”(Alcott 5)라며 어머니와 다른 자매들을 돌보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녀는 소년 같은 행동과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까지 갖추고 있는데, 병든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어머니가 길을 떠날 때 부족한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받은 돈을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조의 얼굴에 “즐거움과 두려움, 만족과 후회가 섞여있었다”(161)는 설명은 그녀가 스스로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는 “내 것[그녀의 머리카락]을 팔아”(161)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여”한다. 이것은 조가 단순히 생각이나 언어, 의복과 같은 개인적인 영역, 혹은 사적 영역에서 여성에게 틀 지워진 한계를 벗어나려 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독립에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며 나아가 그녀 자신이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낸 것으로, 다른 자매들과 매우 다른 특성인 것이다.

    조가 간절히 독립적인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직업도 없고 글쓰기의 재능이 아직 채 펼쳐지지 않은 상태의 조가 돈을 손에 쥐는 방법이란 이렇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파는 일 밖에 없다. 따라서 머리카락을 팔아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는 이 행동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우선 자신의 신체 일부를 팔아 경제적인 힘을 얻으려는 의도이다. 페털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사업’이라는 영역이 남성들의 세계에 속해있다고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 자본이나 소유물이 없는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체 일부를 파는 일 밖에 없다. 또 다른 해석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가 그녀의 여성성을 지워버리려는 잠재적 의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조는 그녀를 옭아매며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긴 머리카락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볼 때 이런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조는 여성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돈이 자본화되어 확장되는 것과 달리, 그녀의 머리카락은 돈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자본화되어 확장될 수 없다. 경제적 자립을 향한 조의 첫 번째 시도인 머리카락 판매는 자본이 주도하는 교환의 시장에서 일회성의 수입을 보장하는 데 그치고 만다.

    아버지의 부재로 마치 가는 표면적으로 여성들만의 영역이 된다. 마치 부인을 중심으로 한 이 여성들의 천국에 끼어드는 첫 번째 남성은 로리이다. “고독하고 굶주린 눈빛”(50)의 로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자매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자매들의 연극공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끼어든다. 로리는 조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보이는데, 우선 그들은 전통적인 성역할을 거부한다. 조는 여성적 의복에 관심이 없고 다소곳한 숙녀의 태도를 보이는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로리는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남성적 영역인 사업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음악 같은 여성적 영역을 추구한다. 로렌스 씨는 조가 로리의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 칭찬하자 “너무 많은 사탕발림은 좋지 않아. . . 나는 그가 더 중요한 일을 잘 하기를 바란다네”(55)라고 말하며 로리의 음악적 재능과 성향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조는 반면 글쓰기와 같은 생산의 영역, 특히 언어를 이용한 창조의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한다. 게다가 둘은 자신들의 본래 이름인 조세핀과 시어도어를 좋아하지 않아 스스로 조와 로리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리와 조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데, 로리와 조가 많은 유사점을 갖는다고 해도 “오로지 로리만이 능동적으로 잘못된 이름을 강요하고 잘못된 역할을 그에게 부여하는 사람들을 ‘때리고’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다. 조는 수동적으로 ‘견뎌야’ 한다”(Estes and Lant 106). 로리는 남성이며 부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세상으로부터 최소한 도망칠 수는 있다. 자신을 시어도어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때려준다”(28)고 말하는 로리의 적극적인 태도는 그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조는 자신을 조세핀이라고 부르는 숙모를 ‘감히’ 때릴 수 없으며, 세상을 바꾸거나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또 다른 차이점은 로리가 “사업가”(51)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경제적 궁핍함에 시달리며 어떻게 경제적 자립을 이뤄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생존의 문제가 된 여성 공동체의 조와 달리 로리는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할 수 있는 것이다. 로리는 유명한 음악가가 되어 “돈이나 사업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내 자신을 즐기면서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것”(142)이 미래의 꿈이라고 말하는데, 이미 풍족한 생활을 하는 그는 생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꿈꿀 수 있다. 조는 “아라비아산 말이 가득 찬 마굿간과 책이 쌓인 방을 갖고 싶다”면서 유명한 작품을 쓰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은 책만으로 살 수 없어”(52)라고 말하는 로리는 조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에게 주어진 좁은 영역에 사로잡혀 있는 조는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고 스스로를 정립하려 하고 이것이야말로 더 확장된 세계에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여성에게는 쉽사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책은 조가 갈망하는 교육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녀가 탐구하고자 하는 광활하고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지만, 사업의 영역에서 이미 자본을 소유한 로리에게 책이란 생기 없고 지루한 것들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와 로리는 매우 유사해보이지만, 실은 아주 다르다. 집을 벗어나 멀리 떠나자는 로리에게 조는 “내가 소년이었다면 우리가 함께 도망쳐서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난 비참한 소녀여서 제대로 행동하며 집에 있어야만 해”(213)라고 대답한다. 그녀에게 로리의 청은 “유혹하지 말라”(213)고 당부해야만 하는 위험한 것이다. 로리는 도망칠 수 있지만, 조는 그럴 수 없다. 우선 성별의 차이가 조를 가로막고, 다음으로는 가난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성별의 차이나 빈부격차보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조에게 내면화된 여성성인데, 이것은 조가 뉴욕을 떠나 바에르를 만날 때 분명하게 가시화된다.

    로리가 이미 사업가여서 달리 스스로를 정립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과 달리 조는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다듬으려 애쓴다. 조는 작가가 되려는 소망을 지닌 채 글을 쓰지만, “19세기 사회에서는 바늘이 아니라 펜을, 침묵이 아니라 목소리를 선택하는 여성의 표현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Blackford 9).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글은 “불태워”(75)지거나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269) 보라는 말만을 듣게 된다. 조가 쓴 이야기의 초고가 불태워지는 것은 여러 층의 의미를 갖는다. 조는 자신의 이야기가 매우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에서건 초고가 완벽할 수는 없다. 초고는 여러 번에 걸쳐 수정되고 퇴고되어야 하는데,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지도 못한 상태의 조가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에이미가 조의 초고를 불태운 것은 조의 글이 한 단계 성숙하는 데 도움을 준 사건이 된다.

    재로 사라진 초고의 흔적을 되살리는 대신 조는 여러 번의 노력 끝에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여 인정받고 마침내 그에 대한 고료를 받게 된다. 이 고료는 조가 머리카락을 팔아 번 돈 이후로 자신의 경제적 힘을 증명하는 두 번째 시 도가 된다. “글쓰기는 조가 대리 남성(a surrogate man)으로 그녀의 가족을 부양하도록”(Stimpson 73) 해 주지만, 막상 편지 봉투 속의 수백 달러가 조의 무릎 위에 떨어질 때 조는 돈다발이 “마치 뱀인 것처럼”(268) 쳐다본다. 머리카락이나 작품 모두 조의 것으로 그녀가 “내[그녀의] 것을 팔아”(161)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을 번 것인데, 반응은 사뭇 다르다. 머리카락을 팔았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놀라운 행동을 경탄스럽게 바라보지만, 작품을 팔아 돈을 벌었을 때 그녀가 쓴 작품의 고료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마치 뱀인 것처럼’ 여기고, 마치 씨는 나아가 “네 책을 망치지 말거라. [. . .]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 보렴”(269)이라고 충고한다. “작가인 조는 그녀 자신이 독립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을 언어의 사용으로 편안하게 만들도록 언어를 통제하기를 원하”(Estes and Lants 107)지만, 그녀가 글을 써서 벌어들인 돈은 열정적인 노력과 신성한 노동의 가치로 대우받지 못하고 폄하된다. 돈, 자본, 돈을 버는 행위 등이 오로지 남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 마냥, 여성인 조가 이 영역에 발을 내딛자 그녀의 소중한 가치를 팔아버린 것처럼 당혹스럽게 반응한다.

    조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간섭받지 않아야만 한다고 여긴다. 그녀는 글을 쓸 때 자신만의 특별한 의상을 착용하는데, 그것은 “글쓰기용 작업복”(scribbling suit, 265)이라고 부르는 모자로, 조가 이 모자를 쓰고 있으면 가족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려고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소시지라고 부르는 쿠션”(325)을 이용한다. 모자가 조의 작업의 상태를 나타내며 단지 타인의 방해를 차단하는 물건이라면, “딱딱하고 둥글며 말털 같은 걸로 덮여 있고 양 끝에 단추가 달려있는”(325) 이 쿠션은 보다 분명하게 타인, 특히 로리와의 관계와 얽혀있다.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그녀만의 시간과 공간을 담보하는 일종의 장벽인 “쿠션”은 동시에 로리의 접근을 막는 “바리케이드”(325)이기도 하다. “심장보다는 뇌가 더 일찍 발달한”(324) 조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대하는 로리를 가까이하지 않기 위해 이 쿠션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작가로서의 꿈을 완성하여 여성에게 강요되는 전통적인 젠더역할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는 조는 “쿠션”으로 불완전한 자신의 세계가 침범당하는 것을 막아낸다. “『작은 아씨들』에서 물품(material objects)은 어머니, 집, 어린시절의 편안한 세계를 재현할 뿐 아니라 텍스트 내의 여성의 예술, 노동, 창조성의 다양성을 재현”(Blackford 3)하는데, 조는 작업할 때 쓰는 모자와 소파에 놓는 쿠션을 이용하여 자신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조는 로리의 사랑을 이성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로리와 조는 여러 측면에서 형제이며 “경쟁자”(rebel, 330)이다. 스스로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조는 “로리처럼 되기를 원하지만, 로리를 얻고자 하지는 않는다”(Quimby 1). 남녀간의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조는 로리와의 결혼이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로리의 사랑을 거절하는 이유는 삶의 목표가 결혼이 아니며 작가라는 지향점이 말해주듯이 ‘언어’를 소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어의 과정을 통해 조는 마침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329)을 수 있는 뉴욕으로 향한다. 뉴욕은 조가 작가로서, 그리고 성숙한 여인으로서 길을 가는 중요한 장을 제공한다. 친밀한 가족내에서 사는 것은 안정적이고 평화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장점은 동시에 단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 조가 쓴 소설에 날카로운 지적을 할 수 있는 비평가는 집 밖의 인물인 것이다. 쇼월터(Elaine Showalter)는 “여성과 작가로서의 완전한 삶을 이뤄내기 위하여 조는 사랑과 의식의 여성적 세계를 떠나야만 한다. . . 조는 무비판적 사랑의 가족 연대로부터 벗어나 성숙해진다”(xxv)고 분석한다. 조의 글을 실어주겠다는 신문사는 조에게 “약간의 수정”(347)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실제로는 마치 “새 요람에 아기를 맞추기 위해서 아기의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들은 다정한 부모가 느끼는 심정”(347)으로 “모든 도덕적 언급에 줄이 그어진”(347) 자신의 원고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집과 뉴욕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낯설음인데, 이 낯설음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마치 부인과 자매들이 있던 ‘여성’의 영역에서 조는 충분히 ‘남성적’일 수 있었으며, 미숙한 글쓰기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마치 부인과 자매들, 그리고 로리는 다정한 배려를 통해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조의 꿈을 지지한다. 하지만 도시라는 장소야말로 남성적인 공간으로, 이곳은 양육과 교육, 자상함과 박애 정신이 있는 재생산의 가정공동체와는 달리 자본과 사업, 이윤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생산 공동체이다. 수백 달러의 상금을 ‘뱀’처럼 바라보고 더 나은 작품을 위해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보라”(269)던 다정한 순진무구의 세계에서 소년이 되기를 갈망하며 소년처럼 굴었던 조는 이제 냉혹하고 가차 없는 ‘남성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346) 주간지 편집장을 용감하게 만나러 가지만 “구름 같은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발꿈치를 모자보다 더 높이 올리고 앉은 세 명의 신사가 그녀의 등장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346) 당황한 채 자신의 글을 “친구”(346)의 것이라고 둘러말하며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가족의 유대가 끊어진 낯선 공간에서 조는 꼼짝없이 여성적이며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녀의 글쓰기와 언어는 무시당하고 부정당한다. 조는 그토록 열망하던 자신의 언어를 소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언어는 결코 그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는 뉴욕에서 남성들의 언어적 기준에 휘둘린다. 처음에는 신문사 편집자의 기준에 맞추어 “통속 소설”(349)을 쓰며 자신의 언어를 잃게 된다. 신문사에서 조의 원고를 훑어보는 남성들은 조의 등 뒤에서 “웃음”(347)을 짓는데, 그녀의 글을 “너무 구겨지고 줄이 확확 그어진”(347) 상태로 평가절하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재단하며 심지어 적절한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 조는 그녀가 가치있다고 여겼던 도덕적 언급들을 그들의 요구대로 삭제하고 어두운 사건들과 인물들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349)로 가득 찬 통속소설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곧 바에르의 비판에 직면한다. “사탕에 독을 넣어 아이들에게 그것을 먹게 할 권리는 없다”(355)며 통속소설을 지적하는 바에르의 말은 작가로서의 성공에 무게를 두고 있던 조를 뒤흔든다. 작가로서의 성공은 자본의 획득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녀 자신이 믿었던 가치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 가치의 상실은 공허함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데, “여성의 특성 중 가장 여성다운 속성을 잃어가고 있었”(349)던 조는 자신을 지탱해 준 것이 바에르의 인간됨이라고 여긴다.

    결국 자신의 원고를 “교수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안경을 쓴 듯이”(345-56) 다시 검토하다가 “쓰레기”(356)라고 생각하며 난롯불에 던져 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돈 때문에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있다”(356)는 것이다. 조는 자본의 순환구도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 그녀는 셔우드 부인이나 에지워스가 쓴 지루하기 그지없는 교훈과 도덕적 가르침을 따라 책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모호한 고딕 스릴러를 쓰는 대신 아이들을 위한 도덕적 설교를 쓰는 것을 배우게”(Gilbert and Gubar 64)된 것이다. 경제적 자립과 독립적 삶을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나와 직업작가가 되고자 했던 조의 꿈은 이렇게 좌절한다. 경제적 힘을 발휘하려는 조의 세 번째 시도조차 남성의 세계에서 그 순수성이 의심받고 검열당한다. 원고료가 봉투에서 떨어졌을 때 ‘뱀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던 조는 자신의 글에 대한 바에르의 냉정한 비판에 굴복하고 마침내 다시금 도덕의 틀로 되돌아간다.

    뉴욕에서의 좌절은 조에게 자기검열을 내면화하도록 가르친다. 아버지의 충고와 바에르의 비판으로 조의 글쓰기 작업은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고 거창한 야망을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조는 “단순하고 작은 이야기”(436)를 쓰게 된다. ‘단순하고 작은 이야기’란 고딕 소설이나 선정적 소설과는 다른 것인데, 한편으로는 소소한 일상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크기를 의미한다고 분석한다면 조에게 가해진 또 다른 한계가 된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통속 소설이 아니라 ‘단순하고 작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조에게 마치 부인은 “그 안에 진실이 있으니까. . . 명성이나 돈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네 마음을 넣은 거야”(436)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어둡고 거친 이야기들을 자극적으로 그려내는 소설들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이 작품의 기본적인 지향점이 가족이며 가족적 삶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조와 로리, 바에르와의 관계를 은유하는 두 가지 물건은 그녀의 성장과 독립, 혹은 포기와 순종의 과정을 설명해준다. “쿠션”은 작가의 꿈을 지닌 조의 분투와 로리와의 관계를, “우산”은 여인으로서의 조의 자각과 바에르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쿠션’이 불완전하나마 로리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면, ‘우산’은 조가 독립적 세계를 버리고 바에르 교수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에르는 조가 “작은 우산”(469)을 집에 두고 그를 배웅하기 위해 달려왔을 때, “당신에게는 우산이 없으니 같이 가 줄까요”(470)라고 제안한다. 글 쓰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로리와의 사이에 놓였던 쿠션이 일종의 장벽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달리, 바에르의 우산은 ‘같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물건이다. 로리에게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365)라고 말하던 조는 바에르에게 “여성의 특별한 임무는 눈물을 닦고 짐을 드는 것”(480)이라고 말하는 여성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안에 들이고 문을 닫”(480)는데, 남자 못지않은 “강인한 마음을 지닌”(480) 매력적인 선머슴 같던 소녀 조 마치는 이리하여 19세기 “여성”의 틀, 한계 지워진 전통적인 젠더 역할로 되돌아간다.

    조가 로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여성인 그녀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202)며 메그의 결혼소식에도 진저리를 쳤었다. 또 하나는 로리의 여성성 때문이다. 조에게 로리는 남성이라기보다 자매와 같은 여성으로 여겨졌으며, 그녀가 지녔던 소녀시절의 결핍, 소년이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나눌 수 있는 상대일 뿐이었다.

    조와 로리는 각각 전통적인 성역할의 한계 안에 갇혀있다. 그들은 각자 갖지 못한 것들을 서로에게서 발견하며 위로받지만, 이 위로는 어린시절에만 가능한 일시적인 것이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 때의 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면, 뉴욕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성숙의 과정에 접어든다. 사업과 자본의 확장에 몰두하며 “비판적 시선을 던지는”(346) 진짜 남성들의 거친 도시에서 조는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고 돈을 벌기 위해 그녀의 순수한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통속소설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순수한 경험”(349)의 세계를 벗어나 폭력과 기만, 선정적인 로맨스와 범죄 등으로 가득 찬 통속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성에 접근할 기회를 얻는다. 이런 경험으로 집에 돌아온 조는 자신의 마음이 “가족에게 만족했던” 어린시절과 달리 “더 많은 결핍”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438). ‘더 많은 결핍’은 물론 조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 즉 섹슈얼리티로부터 비롯되며, 또한 그녀가 현실의 냉혹한 세계의 제약으로부터 얻은 좌절에서 비롯된다.

    바에르의 청혼을 받아들인 조가 나란히 우산 아래 서는 것은 결코 놀랍지 않은데, 조는 어린 시절의 열망, 넓은 세상으로 나가 결혼 대신 작가로서의 꿈을 펼치며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고자 하던 열망을 포기한다. 온화한 성품으로 그려지는 바에르가 로리보다 더 조의 독립을 방해하는 인물로 보이는 이유는 항상 조를 관찰하면서 그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키서(Elizabeth Lennox Keyser)는 조가 바에르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그녀가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잃었기 때문이며, 달리 보면 교수가 그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직업인 글쓰기를 빼앗았기 때문이다”(“Domesticity” 168)고 분석한다. 쇼월터는 바에르 교수와 조의 결혼을 “소설의 빅토리아적 틀 내에서 가족으로부터 조가 분리되는 것은 오로지 결혼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xxvi)고 분석한다. 19세기에 여성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가족으로부터 홀로 독립하여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뉴욕에 도착한 조는 표면적으로 가족공동체에서 멀어져있지만, 일종의 유사가족공동체에 다시 속하게 된다. 그녀가 머무른 커크 부인의 집은 조가 “집처럼 편히 지낼”(333)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는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작가의 일과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지만, 그녀의 시도와 좌절은 주로 여성들의 영역 내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조의 예술적 자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남성의 권위이다. 남성의 공적 영역과 여성의 사적 영역이 엄격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사회에서 남성의 공적 영역에 여성이 들어서는 순간, 그 여성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남성이 여성의 영역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남자답지 못한 일이 된다. 로리가 음악에 관심을 가질 때 로렌스 씨의 태도, 로리의 엄마에 대한 로렌스씨의 완고한 편견은 남성들에게 음악이란 여성의 영역, 한가로운 여가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정도의 취미로 여겨질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집을 가꾸고 아이들의 양육과 남편에 대한 지지를 담당하는 여성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런 가부장 사회에서 권위적인 신문사 편집장과 남성들이 글을 쓰려는 조에게 조롱 어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예견할 만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펜의 독점권을 여성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 여성이 그 펜을 제대로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성의 글을 유린하고 짓밟는다. 남성들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그들의 무참한 폭력은 질서가 잘 잡힌 사회를 위해서 정당화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조가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감히 항의할 수 없다. 물론 설익은 글이 훈련과 퇴고를 거쳐 더욱 나은 글로 바뀌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의 글에 비판과 비난을 가하는 주변 사람들과 편집장의 지적은 조의 글쓰기를 숙성시키기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판과 비난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녀가 통속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통속소설이 대중적 인기를 끈다고 해도 이런 소설을 ‘독’과 같다고 말하는 남성들은 여성이 ‘단순하고 작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여긴다. 남성들이 쓰는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여성은 펜을 쥐는 것도 쉽게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가 조차도 수많은 제약을 받는다.

    또 다른 장애물은 물론 바에르이다. 그는 조의 통속소설을 비판하고 “그녀의 창조적 힘에 야유를 던지며”(Keyser, “Families” 88) 그녀로 하여금 글쓰기를 그만두게 만든다. 바에르는 “그녀의 글쓰기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Estes and Lant 117).

    조는 단지 통속소설을 쓰는 것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그만두게 된다. 조는 이 순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정교사, 당시 보통의 여성의 역할로 스스로를 낮춘다. 도슨(Janis Dawson)은 “바에르 교수가 조의 글쓰기를 검열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적은 조의 통속소설을 겨냥한 것이지, 그녀의 문학적 야망이 아니다”고 말한다(121). 그러나 도슨의 지적은 바에르가 조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화시켰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애물은 바에르와의 만남과 결혼을 통해서 조가 명백히 깨닫게 되는, 그녀 자신에게 내면화된 ‘여성성’과 ‘모성’이다. 이 여성성과 모성성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조와 자매들 곁에 존재하던 마치 부인의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이상화되고 강화된 모성의 역할은 여성의 경제적 기여보다는 심리적, 정서적 기여에 강조점을 두는데, “어머니인 여성은 어머니노릇 능력과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딸을 재생산한다”(7)고 초도로우(Nancy J. Chodorow)는 분석한다. 메그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 현명한 아내란 “가정에 볕을 들게 하는 사람”(392)이라고 충고하는 마치 부인의 말은 메그뿐만 아니라 다른 딸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대한 이런 욕망은 결국 가부장제 사회의 강화에 맞닿아있다. 홀랜더(Anne Hollander) 역시 조가 아버지에 대해 갖는 존경심과 태도를 언급하면서 그녀가 “남성의 제도와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한 것이 아니다”(31)고 설명한다. 마치 씨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있다고 해서 그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가시적이지 않더라도 가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아버지의 비어있는 자리는 마치 부인과 조에 의해서 대체되어 실제로는 비어있지만 늘 채워져 있다. 마치 부인을 비롯한 네 명의 딸들이 집안을 잘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씨는 “여전히 가정의 가장으로, 집안의 양심이고 닻이자 위로하는 사람”(237)으로 건재하게 집안의 중심에 자리한다. 더글러스에 따르면 “마치 씨는 도덕적선을 위한 영향력이다. 거의 보이거나 들리지 않지만 언제든지 느껴지며, 가족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서는 거의 기여하지 않지만 정신적 복지를 위해서 많은 것을 기여한다”(58). 사회를 지탱하는 가정공동체는 이렇게 더욱 단단하게 가부장제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되려는 조의 꿈을 방해하는 것은 19세기의 전통적 이데올로기이다. 어머니와 딸이 지켜야 할 여성의 의무는 남성의 영역에 섣불리 발을 디디기보다는 여성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나아가 결혼을 통해 여성의 자기실현은 다음 세대를 잘 길러내는 양육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성취와 성장, 혹은 성공 대신 조는 자신을 희생하고 녹여내어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데 힘을 쓴다. 로리와 다시 만나게 된 조는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리와 조를 가로막던 쿠션은 사라졌지만, 실제적인 벽이 존재한다. 그 벽은 단지 로리와 조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시간과 부재, 마음의 변화’로 인한 벽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은 조와 자기실현 사이의 장벽, 조가 속한 19세기 가부장제 사회와 그녀가 소망하던 다른 삶 사이의 장벽이며, 보이지 않는 그 장벽을 감지한다는 것은 성장한 조가 보이는 쿠션을 치워버렸음에도 여전히 그녀를 한계 내에 가두는 보이지 않는 쿠션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장벽은 모습을 바꾸어 조를 관찰하는 바에르의 안경이 되고 다시 바에르의 우산이 된다. 우산을 같이 쓴 조는 기꺼이 자신의 ‘문을 닫는다.’ 이 문은 “기혼여성이자 소년들의 교사로서의 조의 삶이 그녀 자신의 철학적 도덕적 태도로 미래의 세대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잠재력을 지닌 채 현재의 가부장적 규범 내로 수용된다”(Webb 38)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어린시절 최소한의 독립적 공간을 담보해주던 ‘쿠션’과 달리, ‘우산’은 조의 주체적인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어린 소녀인 조는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녀가 거부하는 여성성이란 19세기 사회가 틀지워놓은 여성적인 특성이다. 그녀가 여성적인 특성을 거부하려 들 때마다 조에게는 조신한 행동에 대한 요구가 따라온다. 마치 고모가 에이미를 데리고 프랑스로 떠난 사건은 조에게 부과된 일종의 처벌로,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의 당연시된 지식이 현실의 선제적이고 폭력적인 경계선으로 작동한다”(xxiv)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남성적인 여성만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남성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부자연스러운 성역할의 뒤바뀜, 즉 여성이 여성적인 특성을 거부하고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나, 남성이 남성적인 특성을 거부하고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은 결말에 이르러 매우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조는 그녀가 거부하던 여성성을, “어머니의 따뜻함과 부재중에 현명한 마치 씨의 영향력”(Douglas 56)을 지닌 바에르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아가 자신의 욕망을 기꺼이 지우고 다음 세대의 양육에 온힘을 기울인다. 쇼월터는 이 작품이 “자신의 성적, 지적 욕구를 둘 다 채운 여성으로부터 가장 충만한 예술이 나온다는 앨콧의 믿음을 드러낸다”(xxvii)고 주장한다. 로리 역시 에이미와의 결혼을 통해 가정에 정착하며 자신의 남성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을 택한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네 자매의 이 이상적인 여성공동체가 지향하는 것은 가정을 안정적으로 지키고 계승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인데, 아버지를 위해 조는 자신의 여성성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기꺼이 포기한다. 아버지의 자리는 비워진 듯 보이지만 결코 비워져 있지 않다. 마치 가의 여성공동체 역시 남성들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쓰는 동안 모성성을 강조하고 가정 내의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낸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는 훼손되지 않으며 오히려 강화되고, 젠더의 불평등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보고 자란 자매들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자신들의 미래의 모습이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습득한다. “여성에게 가장 행복한 왕국은 가정이며, 여성의 가장 고귀한 명예는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현명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그 왕국을 다스리는 것이다”(399)라고 깨닫게 되는 메그는 마치 부인의 삶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명백하게 전달한다.

    조는 가정공동체 혹은 교육공동체를 이상으로 여기는 인물이 된다. 조는 자신의 작가적 능력, 글을 쓰고 창조하는 생산적 능력을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성적 능력으로 대치한다. 물론 이것이 또 다른 생산적 창조적 능력일 수 있다. 쇼월터는 조와 바에르가 공통적으로 갖는 가치를 지적하면서 “그들은 교육개혁, 새로운 아이디어, 실질적인 자선행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바에르는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그녀의 욕구를 이해한다”(xxvii)고 말한다. 조는 바에르와 함께 이상적인 교육/양육공동체인 “플럼필드”를 건설하여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가 양육하는 아이들이 모두 소년들이라는 점에서, 어린시절 자신이 겪었던 갈등과 좌절의 문제를 ‘소녀가 아닌 소년으로서’ 여전히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그렇다면, 조는 안락한 그녀만의 이상적 공동체로 들어가 “문을 닫고”(480)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린시절 자신을 얽어매던 사회적 시선, 망아지처럼 뛰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관습의 제약,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교육적 기회, 능력 있는 여성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남성 사회를 변혁시키고, 그 경험을 소년들이 아니라 소녀들에게 전달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플럼필드”의 “바에르 어머니”(Mother Bhaer 485)가 된 조에게는 어린시절 그녀가 손에 쥐었던 펜, 머리에 썼던 모자, 혼자만의 공간을 담보해주던 쿠션 등은 다락방 속 먼지가 앉은 지난 시절의 추억거리로 남을 뿐이 다. 그녀의 손이 기억하는 펜대는 다시 조의 손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여성이 감히 펜을 쥐고 글을 생산한다는 것, 남성/이성/합리/옮음의 영역만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여성이 감히 손을 댄다는 것을 허용하기 어려웠던 19세기의 여성인물 조는 ‘문을 닫고’ 학교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학교의 바깥은 무례한 남성들이 그녀의 글쓰기에 줄을 쫙쫙 그어대며 한편으로는 도덕적인 교훈을 버리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를 끼워 넣으라고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작은 이야기’만을 쓰라고 요구한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감히 그런 이야기를 여성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전복일 수 있지만, 조는 이 전복의 행위를 “현명한 아내와 어머니”(399)답게 포기한다. 이로써 이중적인 남성 가부장제의 면모가 낱낱이 드러난다. 여성은 순종적이거나 도발적이어야 된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가부장제는 순종적인 여성을 칭송하면서 그들의 계급적 우월성을 강화하고 도발적인 여성을 멸시하고 깎아내리는 동시에 교화하면서 기득권을 행사한다.

    마치 씨가 돌아오고 조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으며 성숙한 여성이 되어 결혼할 대상을 찾게 되자, 소년이 되고자 했던 열망은 사라진다. 그녀는 더 이상 대리남성이 되어 가족을 부양하거나 스스로를 부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성 가부장제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자 조의 선머슴 같은 역할은 사라지고, 가정이라는 여성적 영역에 기꺼이 머무른다. 모두의 결혼으로 끝맺는 행복한 결말은 앨콧의 지향점을 다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앉아있는 딸들에게 마치 부인은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491)고 말한다. 가정을 이루고 가정 내의 일원이 되는 것, 이 마지막 장면은 마치 가가 마치 부인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여성공동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마치 부인의 행복은 가정을 지키며 남성에게 사랑받고 선택받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마치 부인과 네 딸들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 혹은 울타리와 시선이 있으며, 그것은 부재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현존하는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 남성중심의 서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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