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ghting Girl Under the Audience's Gaze: Action and Performance in The Hunger Games

관객의 시선 앞에서 싸우는 여성: 『헝거 게임』속의 행동과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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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possibility of representing a positive, strong and capable female hero who does not reproduce the masculinist ideology in the blockbuster film through the examinations of The Hunger Games (2012). The Hunger Game is a recent Hollywood blockbuster, which is known for its strong female protagonist and has achieved international commercial success. The article demonstrates that The Hunger Games presents the female hero who neither is a phallic figure in the guise of a woman nor is reduced to a sexual object by analyzing on the two aspects of the film: (a) the multifaceted role of the protagonist which often function simultaneously as the subject of action and the object of gaze; and (b) the performative nature of the protagonist’s actions that oscillate between the extreme masculinity and the typical femininity. While the dual role of the protagonist invites the audience to identify with her while looking at her as a spectacle, her gender-flexible performances expose the contingent relationship among anatomical sex, gendered roles, and the identity of hero. The article concludes that, despite its limitations, The Hunger Games indicates the possibility of the entertainment cinema that does not reproduce the existing gender hegemony. (197 words)


  • KEYWORD

    The Hunger Games , gaze , spectatorship , performativity , popular culture , female action hero , action film , feminist film analysis

  • 1. 서 론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의 영 어덜트 소설을 영화화한 <헝거 게임> (The Hunger Games, 2012)이 제작되었을 때, 많은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청소년을 겨냥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는 드물게 능동적이고 지나치게 성적 매력이 강조되지 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와이어드』 (Wired)의 안젤라 워터커터(Angela Watercutter)는 개봉 전부터 주인공 캐트니스(Katniss Everdeen)를 “지금 이 세계에 필요한 히로인,” “진정한 액션 히로인”이라고 극찬하며, 그녀처럼 “마음도 몸도 강인하며 남자 주인공의 연애 대상이 아닌 진정한 여성 액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혁명적인” 주류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데 대해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마찬가지로,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의 피터 트래버스(Peter Travers), 『뉴욕 타임즈』 (New York Times)의 마놀라 다기스(Manohla Dargis), 그리고 『네이션』 (The Nation)의 캐사 폴릿(Katha Pollitt) 등도 캐트니스를 “젠더의 틀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여성 캐릭터로서 환영했다.

    주류 영화중에서도 유난히 남성적이며 남성중심적인 장르라고 인식되는 액션 영화에서, 남성 주인공의 상대역으로서의 ‘히로인(heroine)’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여성 액션 히어로의 존재는 많은 충돌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래서 그 등장 이후 줄곧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액션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은 구출 혹은 보호의 대상, 남성 주인공을 돕는 조역, 혹은 남성 주인공이 처벌하거나 구제해야 할 악역에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가 연기한 능동적이 독립적인 여성 ‘엘렌 리플리(Ellen Ripley)’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에일리언> (Alien, 1979)과 그 후속편의 상업적 성공 이후, 남성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으로 내러티브를 이끄는 여성 주인공은 액션 장르에서 점점 늘어났다. 여성 액션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는 특히 1990년대에 급격히 늘어나고 가시화되었으며, 2000년에는 그 중 상당수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킬 빌> (Kill Bill) 3부작이나 좀비와 싸우는 여전사의 활약을 그린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시리즈 등이 이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이는 영화 뿐 아니라 다른 매체에도 공통된 추세이다. 텔레비전에서도 1990년대 이후 남성을 압도하는 여전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전사 제나> (Xena: Warrior Princess, 1995-2001), 피해자인 여성과 가해자인 (남성) 뱀파이어의 구도를 역전시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뱀파이어 슬레이어 버피> (Buffy the Vampire Slayer, 1997-2003), 그리고 테러 조직과 싸우는 유능한 여성 스파이의 활약을 그린 <앨리어스> (Alias, 2001-2006)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물들이 다수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남성적 매체로 알려진 비디오 게임에서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액션 게임 <툼 레이더> (Tomb Raider) 등이 크게 성공했다. 2012년 현재 여성 액션 히어로는 영화에서도 기타 영상물에서도 더 이상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여성 액션 히어로가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중 상당수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여성 액션 히어로들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특히 기존의 의존적이며 무능력한 여성 인물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던 여성 관객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헝거 게임>을 비롯하여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최근의 영상물과 출판물에 대한 여성 팬들의 (그리고 이들과 공감하는 남성 팬들의) 반응이, 그리고 리플리와 버피 등 초창기의 여성 액션 히어로들이 여전히 누리고 있는 인기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평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일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팬들의 의견을 공유하며, 여성 액션 히어로의 등장과 확산을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Hills; McCaughey and King). 이들은 남성의 전유물로만 생각되던 액션 히어로의 역할을 여성에게 맡기는 영화들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한다고 주장하며, 리플리나 버피와 같은 여성 액션 히어로들이 변화한 여성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롤 모델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낙천적인 해석을 비판하며,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결국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며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 액션 히어로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들이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 내러티브 안에서는 남성적 동일시의 대상인 남근적인 존재(phallic figure)로 작용하므로,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아무런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여주인공, 즉 “최후의 여자(final girl)”에 대한 캐롤 클로버(Carol Clover)의 분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는 남성을 압도하는 동등한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과시하며 같은 장르의 남성 주인공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는 여성 액션 히어로들이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성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영화의 내러티브, 이미지, 혹은 둘 모두가 그들을 가부장적 질서 안에 가두고 편입시킨다는 것이다. 쥬디스 뉴튼(Judith Newton)과 로스 제닝스(Ros Jennings)는 리플리와 같은 여성 액션 히어로가 비록 내러티브 안에서 능동적인 주체로서 활약하기는 하지만, 시각적인 이미지에서는 계속해서 성적 대상(sexual object)로서 부각되므로, 이들이 가지는 능동성과 주체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박에 없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메리 매고울릭(Mary Magoulick)은 여성 액션 히어로를 내세운 내러티브가 결국 여성 액션 히어로의 남성 캐릭터와의 이성애적 결합으로 귀결되거나, 이들의 능력과 능동성, 그리고 폭력성 등에 모성, 남성의 폭력, (실패한) 로맨스 등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길들인다고 말한다.

    매고울릭의 비판이 <헝거 게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평론가가 지적한 바 있고, 텍스트를 보더라도 자명하다. 10대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로서는 드물게 로맨스가 내러티브에서도, 주인공의 삶이나 정신세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개봉 당시부터 <헝거 게임>이라는 영화와 캐트니스라는 인물의 큰 특징으로 부각되어 왔다(Davidson; Pollitt; Watercutter). 오히려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 왔다는 배경과 프림로즈, 루, 피타 등 다른 캐릭터들을 보호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 등이 보여 주듯이, 캐트니스의 성격과 역할은 동성의 주인공들보다는 남성 주인공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이 점은 캐트니스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는 두 명의 소년과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헝거 게임>에는 캐트니스에게 호감을 가지는 두 명의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 중 어느 쪽도 캐트니스나 내러티브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 명 모두 캐트니스와의 관계에서 성역할이 철저하게 전도된 모습을 보인다. 캐트니스의 소꿉친구인 게일(Gale)은 지극히 남자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하러 떠나는 캐트니스를 기다리며 그녀 대신 그녀의 가족을 보살핀다는 정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을 맡는다. 캐트니스를 오랫동안 좋아해 왔으며 그녀와 함께 헝거 게임에 참가하게 되는 소년 피타(Peeta)는 처음부터 캐트니스보다 온화한 성격으로 묘사되며, 영화의 후반부에는 캐트니스가 보호하고 구출해야 할 대상이 된다.1) 이러한 캐트니스의 남성적인 역할과 성격은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에 의해 그녀를 기존의 여성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을 파괴하는 새로운 타입의 캐릭터로 평가할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헝거 게임>이 나머지 두 비판을 반박하는 방식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남성 주인공과 많은 공통점을 갖는 캐트니스는, 클로버가 지적한 대로 해부학적 성만 여성일 뿐 남근 대신 활을 휘두르는 “여장한 남자(a male in drag 56)”이 될 위험을 다분히 가진다. 또한 캐트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의 아름다운 얼굴과 육체는 이 캐릭터가 성적인 시각의 대상이라는 위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헝거 게임>이 페미니스트 영화도, 영화에 대한 관습을 해체하려는 목적을 가진 아방가르드 영화도 아니고, 오히려 특이한 주인공을 제외한다면 막대한 자본과 지나치게 어렵지 않은 흥미로운 스토리를 기반으로 감각적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우려는 더더욱 신빙성을 가진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거 게임>의 텍스트는 캐트니스의 남성적 특성을 남근적이라고 보거나, 그녀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성적 시각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영화 안에서 그녀가 행동의 주체(subject)인 동시에 스펙터클(spectacle)이라는 상반된 위치를 동시에 점유하며, 그녀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이 모두 이 모순된 위치에서 하는 ‘연기(performance)’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다면성을 통해 <헝거 게임>은 액션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의 의미, 그리고 그녀와 관객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낸다. 본 연구는 영화 <헝거 게임>을 여성 액션 히어로의 다면성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보고, 여주인공 캐트니스와 영화가 설정하는 그녀와의 관계가 어떻게 행동의 주체 혹은 시각의 대상, 남성성 혹은 여성성 등의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여성 히어로의 복잡다단한 모습을 구현하는지 탐구한다.

    1)캐트니스와 피타의 히어로/히로인으로서의 성역할 역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세 명의 참가자인 한 명인 케이토(Kato)가 피타를 인질로 잡고 무기를 든 캐트니스를 위협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액션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흔히 그렇듯, 캐트니스는 번번이 피타를 구출하여 결국 함께 살아남는다. 반면에 피타가 캐트니스를 돕는 두 장면─피타가 굶주리는 캐트니스에게 빵을 던져 주는 플래쉬백과 게임의 초반부에 스스로의 위험을 무릅쓰고 캐트니스를 도망시키는 장면─은 모두 가정적이거나 자기희생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2)원작인 3부작 소설에서는 후반으로 갈수록 개인의 사회적․정치적 책임, 폭력의 정당성 등 정치적인 사색이 드러나지만, 1권만을 영화화한 <헝거 게임>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II. 시각적 즐거움과 여성 액션 히어로

    남성적 성향을 가진 여성 액션 히어로가 남근적이라는 비판과 주인공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영상이 내러티브를 이끄는 그녀의 주체성을 상쇄한다는 주장은 모두 로라 멀비의 정신분석학적 영화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그녀의 대표적 저서 「시각적 즐거움과 서사 영화」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에서 멀비는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주류 상업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즐거움의 핵심을 가부장적 질서의 언어로 표현된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통한 “교묘하고 만족스러운 시각적 즐거움의 조작”이라고 주장한다(16). 두 가지 상반된 시각적 기능이 이 즐거움의 구조를 구성하는데, 그 중 하나는 “보는 행위를 통해 타인을 성적 흥분의 대상으로 이용”함으로써 얻어지는 “절시증적(scopophilic)”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보는 영상과 (스스로를) 동일시(identification)”함으로써 얻어지는 “자기애적(narcissistic)” 즐거움이다(18). 가부장적 체제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화의 텍스트에서, 이 상반된 즐거움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성애적 이분법과의 편리한 조화를 통해 관객에게 제공된다. 즉, 시각적 이미지와 내러티브 구조를 통일하는 능동적/남성과 수동적/여성이라는 역할 분담이 관객으로 하여금 두 가지의 상반된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남성이 내러티브 안에서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사건이 일어나게 만드는 능동적인 역할”로서, 시각적으로는 “관객의 시선의 보유자”로서 관객의 동일시의 대상이 된다면, 여성은 “스펙터클”로 전시되어 “영화 안에서는 다른 인물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 그리고 영화관 안에서는 관객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19-20). 스크린 위에서 춤추는 쇼걸이 그렇듯, 영화 속의 여성은 “관객의 시선과 영화 속의 남성 인물들의 시선이 내러티브의 사실성을 해치지 않고 깔끔하게 일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19). 그러므로 멀비는 “현실과 착각하도록 만들어진 내러티브 영화”를 가부장제가 “가장 선호하는 영화 형식”이라고 보고, 이러한 형식의 영화가 가부장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25).

    영화 비평에서, 특히 페미니스트 영화 비평에서, 멀비의 이론은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큰 이론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스크린 위의 인물을 능동적 남성/수동적 여성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한 관객의 관계를 자기애적 동일시/관음증적 시선으로 규정하는 명료함은 그녀의 이론에 다양한 활용 범위와 가부장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힘을 부여하는 강점인 동시에, 다른 이론가들의 비판을 초래하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 여성 관객의 상업적 중요성이 점점 커져 영화 산업에도 이러한 추세가 반영되고 있고, 남성의 육체도 여성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성적 대상으로서 전시되는 일이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 매체에서 매우 빈번해진 지금, 멀비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더욱 그 필요성과 설득력을 갖는다.

    메리 앤 도운(Mary Ann Doane), 재키 스테이시(Jackie Stacey), 그리고 스티브 닐(Steve Neale)은 동성의 이미지를 보는 관객을 중심으로 이성애적인 욕망의 이분법에 기반한 멀비의 이론을 비판한다. 도운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을 언제나 시선과 욕망의 대상으로 규정한다는 멀비의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러므로 여성이 시선의 주체로서 이를 지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반드시 여성 관객이 자신을 시선의 대상과 동일시하여 매저키스틱(masochistic)한 즐거움을 느끼거나 스스로의 성을 위장(transvestize)하여 남성의 관점에서 그 대상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성성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쓸 수도 벗을 수도 있는 가면 (a mask which can be worn or removed 235)”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닮은 “이미지를 여성이 이용하고 생성하고 읽을” 수 있는 “거리(distance)”를 만들어내는 “매스커레이드(masquerade)”를 대안으로 제시한다(234, 240). 반면 스테이시는 다양한 여성들이 다양한 컨텍스트 안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맺는 관계를 한 가지 이론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반박한다. 그녀는 모든 여성 관객이 항상 같은 관점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이 이미지와 형성하는 관계도 항상 같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의 이미지와 여성 관객의 관계가 복잡하고 유동적인 관계임을 강조하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역사적․문화적 컨텍스트를 고려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도운과 스테이시가 여성의 이미지와 여성의 관객의 관계를 중심으로 멀비의 이론을 비판한다면, 닐은 남성의 이미지와 남성 관객의 관계를 중심으로 멀비가 이를 설명하기 위하 사용한 동일시라는 개념을 문제시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멀비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의 이미지가 스펙터클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남성 관객의 동일시라는 반응도 보다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간혹은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이다(10). 스크린 위의 이상적인 남성의 이미지는 남성 관객의 자기애적 동일시를 유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이상적인 모습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강조함으로서 거세 공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상반된 이상적 남성성의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서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13-4). 또한 주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남성의 육체는 “항상 동일시의 대상과 응시의 대상 사이를 오간다”(13). 이는 주인공과 관객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이 액션이 되는 장르...닐의 표현을 빌자면 전쟁 영화, 서부극, 갱스터 영화 등의 “남성 장르(‘male’ genres 16)”...에서 이러한 성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전투, 싸움, 결투 등 둘 혹은 그 이상의 남성의 육체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은 내러티브를 결정하는 정점인 동시에, 남자 주인공의 육체가 관객과 다른 남성 등장인물들에게 “관음증적 관람(voyeuristic looking 16)”의 대상으로 제공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닐은 액션 장르를 언급하지 않지만, 사실 이러한 성향이 극에 달하는 장르는 주인공의 움직이는 몸, 특히 격렬하고 과장되게 움직이는 몸을 보는 것이 즐거움의 핵심인 액션 영화이다. 종종 스펙터클이 내러티브를 압도한다는, 혹은 내러티브가 스펙터클을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을 받는 액션 영화에서, 그 스펙터클의 중심에 있는 것은 많은 경우 주인공의 몸이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성별을 불문하고, 그 외관에서도 움직임의 효율성에서도 만화적일정도로 이상적인 육체를 가진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제프리 A. 브라운(Jeffrey A. Brown)과 말로 에드워즈(Marlo Edwards)가 지적하듯, 남성이든 여성이든 액션 영화의 주인공의 이 “영웅적인 육체 (heroic body)”는 언제나 내러티브를 지배하는 행동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제공되는 성적 시선의 대상이다(Brown 68; Edwards 44). 그렇기 때문에 액션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이 갖는 육체는 더욱 그 의미를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격렬히 활동하고 관객에게 전시되는 여성 액션 히어로의 육체는 과연 클로버가 주장하듯 남성적인가, 이본 태스커(Yvonne Tasker)가 경고하듯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는 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니면 브라운이 제시하듯 젠더와 섹스의 임의적 관계를 폭로하는가?

    엘리자베스 힐즈(Elizabeth Hills)는 여성 액션 히어로를 남근적 존재 혹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규장하는 비평들이 여성 액션 히어로들의 문제점보다는 오히려 페미니스트 비평 이론의 한계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비유적 남성’에서 액션 히로인으로: 영화 속의 능동적 여성에 대한 고찰」 (“From ‘Figurative Males’ to Action Heroines: Further Thoughts on Active Women in the Cinema”)에서 영화 <에일리언>에서의 주인공 리플리의 캐릭터와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에 초점을 맞추며, 그녀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오히려 “능동적 남성/수동적 여성(active male/passive female 39)”의 이분법에 갇혀 기존의 성관념을 깨뜨리는 리플리와 같은 캐릭터의 급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힐즈에 따르면, <에일리언>과 같은 영화를 보는 과정은 관객이 “히어로로서의 여성(female-as-hero 42)”이라는 외계 생명체만큼이나 낯선 존재를 만나고, 알아 가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리플리가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를 겉보기에만 여성인 남근적 캐릭터나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리플리와 같은, 능동적이며 영웅적인 여성 주인공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이론이라고 힐즈는 주장한다.

    브라운과 에드워즈가 주장하는 것처럼 액션 영화가 항상 내러티브와 행동의 주체와 스펙터클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주인공에게 부여한다면, 그리고 따라서 여성 액션 히어로는 언제나 남성적이고 능동적인 역할과 여성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면, <헝거 게임>은 주인공의 양성적인 역할이 보다 강조되었다는 것 외에는 예외적인 특징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확실히 캐트니스는 리플리와 같은 전 세대의 여성 액션 히어로들과 전혀 다른 유형의 캐릭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 타입에 가깝다. 그러나 남성성/여성성, 능동성/수동성, 그리고 행동의 주체/시선의 대상이라는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주인공의 다면성과 역동성이 유능하고 터프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모든 액션 영화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헝거 게임>은 두 가지 장치를 통해 그 특징을 표면에 드러내고 문제화한다는 데서 예외적이다. 그 두 장치 중 하나는 주인공을 비롯하여 모든 게임의 참가자가 그 게임을 보고 즐기는 영화 속 관객들에게 스펙터클로 제공된다는 설정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컨텍스트 안에서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이 관객을 상대로 한 ‘연기’일 수 있음을 강조하는 내러티브이다.

    III. 주체로서의 스펙터클, 스펙터클로서의 주체: 여성 액션 히어로의 이중성

    <헝거 게임>의 무대는 ‘판엠(Panem)’이라는 독재 국가가 다스리는 미래의 북아메리카 대륙이다. 판엠은 부와 권력의 중심지인 수도 ‘캐피톨(Capitol)’과 이의 지배를 받는 12개의 디스트릭트(District)로 구성되어 있다. 판엠에서는 해마다 각 디스트릭트에서 한 쌍의 소년 소녀를 무작위로 뽑아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헝거 게임’을 벌이고 이를 운동 경기처럼 생중계하며 즐긴다. 주인공 캐트니스는 가난한 탄광촌인 디스트릭트 12에서 사는 16세의 소녀이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그녀는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와 어리고 연약한 여동생을 돌보며, 밀렵으로 생계를 부양하는 당차고 독립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동생이 헝거 게임의 참가자로 뽑히자 캐트니스는 대신 게임에 참가하겠다고 자원하여, 디스트릭트 12의 또다른 참가자 피타(Peeta)와 함께 게임이 열리는 캐피톨로 보내어진다.

    영화는 캐트니스가 헝거 게임에 참가하기 전, 개막식과 트레이닝, 인터뷰 등을 거치며 준비를 하는 전반부와, 게임이 시작된 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과 싸우고 협력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게임에서 캐트니스는 디스트릭트 12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며 쌓은 생존 능력과 지혜, 그리고 그 동안 사냥을 하며 연마한 활쏘기 실력에 힘입어 그녀를 죽이려는 다른 참가자들과 유전자 조작 괴물 등 여러 가지 위험을 거치고 살아남는다. 뿐만 아니라, 결국은 참가자를 농락하는 규칙과 이를 보고 즐기는 관객을 역이용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피타의 목숨까지 지켜 낸다. 영화는 게임의 공동 승리자가 되어 살아남았지만 혹독한 경험으로 조금씩 변한 캐트니스와 피타가 디스트릭트 12로 함께 귀환하여 환영받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헝거 게임에서 참가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미디어를 통해 스펙터클로 제공되며 관객이 이를 보고 즐긴다는 설정은 액션 영화의 인물들과 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계를 영화 안에 반영함으로써 가시화하며 시선에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이 폭력적의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이 수동적이거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한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능동적인 육체라는 사실은, 등장인물과 관객을 시선의 주체 혹은 대상으로 나누고 그들과 관객의 관계를 동일시 또는 관음적 소비로 규정하는 멀비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 <헝거 게임>에서도 같은 이름의 영화 속 게임에서도, 참가자들은 언제나 스펙터클인 동시에 게임, 즉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기능한다. 능동적으로 싸우고 협력하고 계획하며 게임을 진행시키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카메라와 화면을 거쳐 영화 안팎의 관객들에게 시선의 대상으로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액션이 곧 스펙터클인 헝거 게임에서 시선의 대상으로서 가장 적합한 것은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의 주체이다. 이는 게임의 진행이 더뎌지면 돌연변이 괴물을 등장시키거나 참가자들이 충돌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 내어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게임의 진행자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가장 효과적인 행동과 계획으로 게임에서 승리하여 영화 안팎의 관객에게 가장 큰 보는 즐거움을 주는 주인공 캐트니스는 이러한 복잡한 시선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능동적/남성적 주체와 수동적/여성적 대상이라는 이분법은 헝거 게임에서 관객이 “스폰서”가 되어 선호하는 참가자에 식량․의약품․도구 등을 보내어 그의 승리를 도울 수 있다는 설정으로 한층 더 해체된다. 관객이 참가자를 스펙터클로서 소비할 뿐 아니라 그들의 승패에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정은 한편으로는 이미 시선을 소유하고 지배함으로써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관객과 그들의 시선의 대상인 참가자들 사이의 비대칭적인 힘의 관계를 더욱 강조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가자이 스펙터클로서의 스스로의 위치를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실제로 관객의 시선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게임에 승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부각된다. 이는 게임 전 훈련 과정의 대부분이 캐트니스가 육체적 기술을 연마하는 것보다는 관객과 자신의 관계를 올바로 인지하고 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밀렵으로 가족을 부양해 온 캐트니스는 게임의 참가자로 지원하기 전부터 이미 뛰어난 활솜씨와 생존에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갖춘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에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캐트니스는 이 관계가 자신에게도 그들의 시선을 이용할 힘을 준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한정된 이해는 그녀로 하여금 관객을 적대시하고 스펙터클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강한 거부감을 품게 하여, 그녀가 관객의 관심과 호감을 사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조언을 요구하는 캐트니스에게 멘토인 헤이미치(Haymitch)가 처음으로 해 주는 말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관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도중에, 굶어 죽거나 얼어 죽게 생겼을 때, 생사를 결정하는 건 물 몇 모금이나 칼 한 자루, 하다못해 성냥 몇 개 같은 것들이거든. 그런데 그런 것들은 스폰서가 보내 줘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스폰서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널 좋아하게 만들어야 해.” 그 순간부터, 캐트니스의 가장 큰 과제는 관객과 스펙터클의 관계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그 관계가 스펙터클인 자신에게 주는 제한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힘을 자각하여 그 힘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캐트니스와 관객은 함께 헝거 게임의 참가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행동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이라는 이중의 위치를 동시에 점유한다는 것, 그리고 그 두 위치는 쉽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전반부의 두 상반된 장면이 이 복잡한 이중의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중 하나는 캐트니스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활을 쏘는 장면이다.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많은 스폰서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잡담에만 전념하자, 캐트니스는 심사위원석의 테이블에 차려진 과일을 쏘아 맞추어 충격을 받은 심사위원들이 일제히 말을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게 한다. 그 결과 그녀는 스스로를 실력 있는 참가자로 각인시켜 게임에서 우위를 확보한다. 다른 하나는 캐트니스가 게임을 앞두고 텔레비전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인터뷰가 시작될 무렵,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되어 전시된 캐트니스는 자신을 대상화하는 청중의 시선에 위협을 느끼고 긴장한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조금씩 자신 있게 질문에 답하며 그들의 시선을 주도하기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불꽃을 입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면서 스스로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캐트니스가 일어서서 빙글빙글 돌아 특수 제작된 드레스 자락이 펼쳐져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녀의 의도대로 관객이 환호하는 순간,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의 권력 구도는 역전된다.

    표면적으로, 이 두 장면에서 캐트니스의 역할은 상반된다. 활을 쏘는 장면에서 그녀는 지극히 공격적인 행동으로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행동의 주체이다. 반면 인터뷰 장면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관객들 앞에서 전시하는, 전형적인 스펙터클로서의 여성이다. 두 장면에서 그녀의 상반된 차림...타이트하게 몸매를 드러내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검은 훈련복을 입고 활을 든 모습과, 어깨를 드러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한 모습...도 이러한 차이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두 장면은 공통되게 캐트니스를 스펙터클이자 동시에 행동의 주체로 묘사한다. 활을 쏘는 캐트니스와 드레스를 입고 춤추듯 회전하는 캐트니스는 결국 똑같이 청중을 위해 전시된다. 뿐만 아니라, 두 장면에서 모두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청중의 시선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이를 쟁취한다. 활을 쏘는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행위와 치장된 육체를 전시하는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행위는 결국 관객의 시선을 최대한 사로잡는다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달성한다. 두 장면에서 모두, 처음에는 캐트니스를 무시하거나 지배하던 시선은 마지막에 그녀의 지배 아래 놓인다. 이렇듯 활을 쏘는 장면과 인터뷰 장면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행동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이라는 위치가 양면처럼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뿐만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방식에 의해 시선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힘의 역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남성성과 능동성, 그리고 여성성과 수동성의 관계가 임의적이고 가변적임을 드러낸다.

    행동의 주체/시선의 대상, 능동성/수동성, 그리고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더 해체된다. 동물을 사냥하고, 돌연변이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다른 참가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지략으로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을 살해하는 캐트니스의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은 모두 관객들에게 스펙터클로 제공된다. 이 관계 안에서는 가장 남성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의 주체라도, 도처에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시선의 대상으로 변신하여 관객이 응시하는 스크린 위에 전시된다. 반면 같은 카메라는 지극히 여성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행위의 이면에 숨겨진 치밀하고 적극적인 계획을 암시하기도 한다. 캐트니스가 부상당한 피타를 돌보며 애정을 표시하는 모습들이 캐피탈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상황은 일견 관음증적 관람의 극단적인 예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항상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으며 그 행동 중 상당 부분이 관객의 호감과 공감을 사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 저변에 내재된 관객과 스펙터클 사이의 힘의 구도를 역전시킨다. 사실 피타와 캐트니스가 서로를 죽여야만 할 상황에 처한 “비운의 연인”(star-crossed lovers)이라는 관객의 인식은 인터뷰에서 피타가 한 일방적인 고백에서 비롯한 오해로, 캐트니스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확실한 연애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과 피타를 응시하는 관객의 관음증적 욕망을 알아차리고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그들의 감정을 조종한다. 이 관계 속에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시선의 대상인 캐트니스를 이용하여 관음증적 즐거움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는 관객이다. 친밀한 자세로 피타와 서로 얼싸안고 누운 캐트니스의 모습이 관객에게 전시될 때, 그녀는 어느 때보다 능동적인 힘을 관객에게 행사한다.

    이러한 구도의 해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게임 종반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게임의 후반부에 진행자는 갑자기 규칙이 바뀌어 같은 디스트릭트에서 온 두 명의 참가자가 공동 승자가 되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고 알린다. 그러나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고 캐트니스와 피타만이 살아남자, 그는 규칙이 다시 바뀌어 최후의 한 명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타는 캐트니스에게 자신을 죽이고 살아남을 것을 권유하지만, 캐트니스는 관객이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피타에게 독이 든 열매를 먹고 동반 자살하는 척 연기할 것을 제안한다. 둘이 열매를 입에 넣은 순간, 캐트니스의 예상대로 진행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두 사람 모두가 승자임을 선언한다. 그 순간, 행동의 주체라는 위치와 스펙터클이라는 위치는 뒤엉켜 불가분의 것이 된다. 스펙터클인 캐트니스를 향한 관객의 시선은 그녀의 무기가 되고, 그녀의 능동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행동으로 게임에서 승리함으로써, 캐트니스는 최고의 미디어 스펙터클인 헝거 게임의 승자가 된다.

    IV. 여성성, 남성성, 그리고 히어로: 여성 액션 히어로와 연기

    캐트니스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활을 쏘는 장면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는 장면은 또한 그녀의 행동이 연기(performance), 특히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반영한 특정한 역할의 연기임을 드러낸다. 그것은 앞서 언급된 다른 장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임 도중 피타를 간호하고, 그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나중에는 그와 함께 자살을 기도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캐트니스의 행동은 단지 관객의 기대를 염두에 둔 것일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진 소녀라는 특정한 젠더와 상황에 관련된 문화적 관습을 따르는 연기이다. 그녀가 관객이 원하는 스펙터클이 되어 그들을 이용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쥬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젠더 트러블』 (Gender Trouble)에서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인 젠더(gender)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연관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젠더 아이덴티티에도 아무런 본질(substance)이나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아이덴티티로서의 젠더도, 그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젠더의 특징들도, 어떤 내재된 본질을 표현하는 것(expression)이 아니라 연기(performance)를 통해 외부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이다(19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가 타고나는 것처럼, 그리고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되는 젠더의 특징들 사이에 일관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연기된 규제 행위들이 젠더의 일관성을 당연시하는 사회·문화적 매트릭스를 통해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23-4). 그래서 버틀러는 젠더의 일관성에 대한 환상을 파괴하고 해부학적 성, 젠더 아이덴티티, 그리고 연기된 젠더 사이의 임의적인 관계를 폭로하는 드랙(drag)과 같은 젠더 패러디(gender parody)에서 전복과 저항의 가능성을 찾는다(187).

    브라운은 버틀러의 이론을 여성 액션 히어로에 대한 분석에 적용하여, 여성의 육체로 남성성을 구현하는 여성 액션 히어로가 남성성과 여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기존의 성관념을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63). 그는 <암호명 니나> (Point of No Return, 1993)의 주인공 매기처럼 필요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를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오가는 여성 액션 히어로는 두 성 정체성이 공존할 수 없다는 믿음을 반박 하며, 정형화된 여성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기’하는 여성 액션 히어로의 “2중 드랙(dual drag)”은 결국 모든 성 정체성이 모두 연기의 산물이라는 점을 폭로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에드워즈는 <바브 와이어> (Barb Wire, 1996)의 주인공처럼 남성적인 폭력성과 여성적인 성적 매력이 모두 극단적으로 강조된 “믿을 수 없는 (implausible)” 여성 액션 히어로가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사회·문화적 컨텍스트 안에서 연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고 주장한다.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전사로서의 모습과 여성적 매력이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을 모두 연기하는 캐트니스는 브라운이 말하는 “의도적으로 연기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63). 다른 참가자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관객에게 승산이 있어 투자할 가치가 있는 참가자로 보이기 위해 그녀는 육체적 강인함, 유능함, 대담함, 그리고 지능 등 남성성과 연관된 특성들을 과시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폰서의 호감을 얻기 위해 “갖고 싶은(desirable)” 매력적인 여성과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영화는 이 두 종류의 이미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캐트니스가 해야 하는 연기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캐트니스는 게임의 개막식을 위해 화려하게 치장되어 전시되고, 트레이닝 룸에서 훈련을 하며, 심사위원들 앞에서 활을 쏘고,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와 청중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 게임 도중에도 그녀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위험과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지키는 한편, 연인을 보살피고 그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무분별한 소녀의 모습을 연기한다.

    캐트니스가 여성적인 역할보다는 남성적인 역할을 연기하는 데에 훨씬 더 능숙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생물학적 성이 그녀가 수행하는 젠더 역할과 근본적인 연관이 없음을 더욱 강조한다. 이것은 캐트니스가 남성인 피타에게 남성성을 과시해야 할 상황과 그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시나(Cinna)와 헤이미치 등 남성 인물들이 그녀에게 관객에게 여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법에 대해 조언해 주는 역전된 구도에서 잘 나타난다. 훈련 도중 다른 참가자들이 피타를 비웃자, 캐트니스는 곧바로 이 상황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깨닫고, 피타에게 무거운 물건을 던져 그의 육체적인 힘을 과시하라고 말한다. 피타는 자신의 장점을 숨기라는 헤이미치의 충고 때문이 잠시 망설이지만, 곧 캐트니스의 말을 따른다. 피타의 육체적 능력을 파악하고 웃음을 거두는 경쟁자들의 모습은 캐트니스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녀가 남성인 피타나 헤이미치보다도 남성성의 연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듯 남성성을 연기하는 것은 캐트니스에게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개막식과 인터뷰 등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상황에서, 그녀는 훨씬 긴장되고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게임 도중 부상당한 피타를 살리기 위해 사랑에 빠진 소녀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처음에는 신빙성 있는 연기를 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에서 캐트니스에게 핀잔 어린 조언을 보내는 것은 남성인 헤이미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성과 여성성 중 어느 쪽도 연기가 아닌 캐트니스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남성인 피타에게 남성성을 과시해야 할 상황과 그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캐트니스가 그보다 더 ‘남성적’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남성성은 해당 젠더에 연관된 사회적 함의와 문화적 표상에 대한 이해와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캐트니스가 피타에게 남성성을 과시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녀가 그만큼 연기로서의 남성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적인 연기에 점점 익숙해지는 캐트니스의 모습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피타에 대해 확실한 연애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 모두의 생존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전형적인 사랑에 빠진 소녀를 연기하며 그 연기에 점점 더 능란해지는 캐트니스의 모습은, 그녀가 점점 더 치밀해지고 목적을 위해 감정을 숨기는 일에 능숙해짐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표면적인 여성성은 그 아래 내재하는 여성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히 남성과 연관되는 냉철함과 치밀함 등의 성질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헝거 게임>에서 캐트니스가 연기하는 것은 단지 남성성과 여성성만이 아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연기해야 하는 것은 게임의 승자이며, 다양한 남성적인 특징과 여성적인 특징들은 이 최종 목적 아래 선별되고 조합되어 연기된다. 이는 캐트니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참가자들에게도 공통된다. 헝거 게임의 모든 참가자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한편으로는 스폰서의 관심과 호의를 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강하고 매력적인 승자의 이미지를 연기한다. 관객의 시선을 염두에 둔 이들의 연기는 헝거 게임의 승자라는 미디어 셀러브리티(media celebrity)에 대한 대중적 상상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육체적 능력과 성적 매력을 겸비한 승자의 이미지는 우리가 갖는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하므로, 헝거 게임의 참가자들은 제각기 액션 히어로를 연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헝거 게임>은 액션 히어로를 내재된 자질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컨텍스트에 기반한 연기의 산물로 표현한다.

    캐트니스가 태어나거나 선택받은 영웅(hero)이 아니라 행위와 연기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것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타 영화들과 대비되는 <헝거 게임>의 큰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 영웅의 아이덴티티는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 아이덴티티와 마찬가지로, 내재된 자질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컨텍스트 안에서 끝없이 연기되고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웅, 더 세부적으로 액션 히어로라는 개념은 타협되고 재구성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부학적 성과 무관하게 점유할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이 된다. 드랙이 해부학적 성과 젠더 아이덴티티, 그리고 연기된 젠더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인 연관이 없음을 드러내듯이, 캐트니스라는 캐릭터는 해부학적 성과 젠더는 물론, 이들과 액션 히어로의 아이덴티티 사이에도 어떤 내재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폭로한다.

    IV. 결론을 대신하여: 주류 대중문화의 한계와 가능성

    <헝거 게임>은 독립적이고 유능한, 그리고 남성에게 귀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미국 주류 대중문화에 면면히 이어져 오던 강인한 여성 히어로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그녀로 하여금 해부학적 성을 거부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남성성과 여성성을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함으로써 그 전통을 한 단계 더 전진시켰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행동이 주체이자 스펙터클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내러티브 안에서도 반복함으로써, 여성적 수동성/남성적 능동성, 시선의 대상/내러티브의 주체, 그리고 관음증적 감상/자기애적 동일시라는 이분법으로 간단이 정의할 수 없는 여성 액션 히어로의 다면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윤 창출이 그 첫째 목표인 주류 대중 영화로서, <헝거 게임>은 그 급진성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캐트니스라는 캐릭터가 헐리우드에, 그리고 모든 주류 대중문화에 뿌리 깊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여성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젠더의 파격성은 섹슈얼리티의 파격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 영화 안에서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미미하지만, 그렇다 해도 성적 결합의 가능성이 이성애적인 관계 안에서만 고려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주인공인 캐트니스도 그녀와 가까운 두 남성도 모두 백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성적·로맨스적 상상력이 이성애라는 틀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인종의 울타리도 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캐트니스를 이해하고 가장 큰 지지를 보내는 인물들 중 하나인 스타일리스트 시나와 그녀와 우정을 나누는 어린 소녀 루(Rue) 등 긍정적인 중요 인물들 중 상당수가 흑인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토리를 이끄는 것은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캐트니스이며, 그녀와의 로맨스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암시되는 것 역시 백인 남성들이다. 그런 면에서, <헝거 게임>은 백인 배우가 스토리를 이끌고 유색인종 배우(들)가 그를 돕는다는 헐리우드의 오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3)

    현실적으로 보면 캐트니스와 같은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액션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모험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유색인종 혹은 혼혈 배우가 주역을 연기하게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상업성을 무시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루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된 사실이 밝혀지자, 그녀를 백인으로 상상하고 있던 일부 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여 화제가 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또한 백인 여성의 몸과 유색인종 여성의 몸이 대중문화의 매트릭스 안에서 갖는 성적 함의가 판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유색인종, 혹은 혼혈 배우가 연기한 캐트니스가 백인 배우가 연기한 캐트니스처럼 지나친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고 내러티브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이라는 상반된 위치를 동시에 점유할 수 있었을지, 그리고 관객의 동일시를 유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주류 대중문화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또 다른 의문을 제시한다. 다수의 소비자를 만족시켜 상업적 이익을 확보해야 하는 주류 대중문화의 특성상, 그 텍스트가 내용과 형식의 급진성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면, 과연 젠더나 섹슈얼리티, 인종 등의 문제를 주류 대중문화의 틀 안에서 다루어야 하는가?

    멀비는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주류 대중문화에서는 정치적 변화나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본다. 그녀는 “아무리 헐리우드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비웃더라도, 결국에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정의하는 영화의 개념을 반영하는 미장센의 형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하며, 그래서 결국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15). 그러므로 멀비에 따르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내용에서 나타나는 정치적인 입장은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주류 영화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대안 영화(alternative cinema) 뿐이다(15). 그러나 마가렛 힐렌브란트(Margaret Hillenbrand)는 비주류 영화에도 대안과 변화를 제시하는 매체로서심각한 한계가 있다고 대답한다. 「신화와 인간에 대하여: <베터 럭 투머로우>와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의 주류화」 (“Of Myths and Men: Better Luck Tomorrow and the Mainstreaming of Asian American Cinema”)에서 그녀는 미국 문화에서의 동양인 남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도전이 비주류 예술·독립 영화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저항은 주류 대중문화에서 이루어져야만 효과를 거둔다고 주장한다. 주류와 타협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외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을 이미 아는 세계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양계 미국인 남성 같은 소수자의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주류 영화라는 이미지 공장”에 뛰어들어 “헐리우드의 영화 언어”로 이야기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녀는 주장한다(55-6). 그런 면에서, <헝거 게임>처럼 진보성과 보수성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다수의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또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중문화 텍스트를 논할 때에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각 텍스트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매트릭스 안에서 다른 텍스트와 상호 연관되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 장르에서는 선구자적으로 능동적인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던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양들을 침묵> 등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엇갈리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범죄 영화와 액션 영화라는 남성적인 장르에서 여성의 역할을 다양화하고 대중 영상 매체에서 유능하고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다 흔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면에서, <헝거 게임>의 의의는 그 텍스트 자체보다도 앞으로의 주류 상업 영화계에 미칠 영향에 더 있을지 모른다. 워터커터가 지적했듯, 이 영화의 성공은 성적인 대상으로 상품화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과 다름없게 다루어진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액션 블록버스터도 남성 관객의 호응을 얻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들 수 있다는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2001)>의 성공 이후 영 어덜트 소설의 영화화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구도가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양성의 관객을 노리는 액션·모험 영화와, 상대역 남성과의 관계로 고민하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여성 관객을 노리는 로맨스 영화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헝거 게임>은 이러한 장르의 성적 이분화를 뛰어넘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4)

    3)이러한 영화의 한계는 원작 소설이 이미 인종이 무관해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검은 머리와 올리브빛 피부를 가진 캐트니스의 인종을 모호하게 남겨둔다는 점에 대조되어 더 아쉽게 느껴진다.  4)전자를 대표하는 영화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나르니아> (Narnia) 시리즈, 그리고 후자를 대표하는 영화로는 <트와일라이트> (Twilight) 시리즈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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