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laneuse in Postwar Hollywood: A Study on Breakfast at Tiffany’s

전후 할리우드의 여성 산보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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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e film Breakfast at Tiffany’s (Dir. Blake Edwards, 1961) was adapted from Truman Capote’s novella with the same title published in 1958. With the angelic beauty of the main actress Audrey Hepburn, the sentimental theme song, and also its attractive urban backdrop of the city of Manhattan, it has became one of the globally beloved nostalgic film to date. Despite its popularity, the film has received scarce academic attention. I find the primary reason in the period in which the film was produced. The films in the 1950s reflected the postwar social atmosphere in which the conservative family ideal was emphasized to reposition returning veterans in the society. The decade after the mid-1960s, on the other hand, witnessed a new era of Hollywood filmmaking, experimenting in messages, techniques, and the mode of production. However, the early 1960s, as an in-between period, has relatively been less discussed. This paper aims to redefine the films in the 1960s, and especially suggests the importance of Breakfast at Tiffany’s as one of the representative films illustrating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Hollywood films at that time. Applying Walter Benjamin’s concept of the “flaneur” to understand the main characters and closely reading the way in which the film changes the narrative from the original novella, I argue that this film demonstrates the ambivalent aspect of both the conservative and renovative Hollywood in its transitional period.


  • KEYWORD

    flaneur , flaneuse , Breakfast at Tiffany’s , Audrey Hepburn , Postwar Hollywood , Production Code

  • 1. 들어가는 말

    2012년은 미국 대중문화에서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기억되고 있고 수없이 재창작 되었던 『스파이더 맨』이 만화로 탄생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할리우드에서는 불과 10 여 년 전에 영화화 되었던 이 시리즈의 50주년 기념 리메이크작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The Amazing Spider-Man, Marc Webb 감독, 2012)을 제작하며 이 작품의 오랜 인기와 역사를 기리고 있다. 이처럼 반세기 넘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또 하나의 미국 대중문화 작품이 바로 전 해인 2011년에 50주년을 맞이한 블레이크 에드워즈(Blake Edwards) 감독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이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일약 전 세계의 연인으로 등극시키며 티파니 보석상을 세계 여인들의 꿈의 공간으로 기억되게 한, 더불어 잊을 수 없는 주제가 ‘문 리버’(Moon River)로 지금도 관객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특히 뉴욕이라는 도시의 세련미를 인상 깊게 묘사한 영화로 기억된다. 뉴욕 맨하탄의 스크리닝 룸(Screening Room)이라는 영화관에서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상영될 정도로 이 영화는 수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Lehman and Luhr 23). 그러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달리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반세기가 넘도록 리메이크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 영화의 가치가 그 이야기만큼이나 영화의 시대적, 사회 문화적, 그리고 인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창출해 내는 분위기에서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줄거리와 인물의 관계가 초점인 영화들과는 달리, 사회적 배경 및 배우의 고유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는 이후 다른 시대 및 문화에서 다시 만들어져서는 관객이 소중히 여기는 그 최초의 느낌에 근접하기 어렵다. 이는 이러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복제될 수 없는 ‘아우라’(aura)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1)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이러한 영화들은 영화로서의 미학적 가치와는 별도로 당대 사회의 현실 및 지배적 사상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중요성이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재창작으로는 되살리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영화로서 특히 당대 미국 사회 및 문화 현실을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가치를 고려해 볼 때, 이 영화는 지금껏 상대적으로 그 문화적 의미의 해석이 미흡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점을 전후로 하여 1950년대에는 할리우드가 텔레비전의 파급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가족중심주의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는 ‘새로운 할리우드 영화’(New Hollywood Cinema)의 시기라 불리며 전에 없던 혁신과 미학적 실험이 시도된 시기로서 영화 연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이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초반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며, 1961년에 제작된 <티파니에서 아침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는 물론 1958년 출판된 영화의 원작인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의 동명 단편 소설 자체가 문학사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가벼움을 추구”(Scott 129)하는 작품이라 평가되어 온 전력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수 없다. 영화 역시 고급 매춘부와 고전하는 작가라는 뉴욕의 “가난하지만 매력적인 백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인종적 측면이 수반되는 실직과 가난의 문제”는 간과하고 있다(Lehman and Luhr 27)는 등의 주제적 한계가 종종 지적되어 왔다. 이 같은 비평이 보여주듯, 이 영화는 여주인공 헵번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펼쳐 보이는 파리의 디자이너 위베르 지방시(Hubert de Givenchy)의 패션, 그리고 감상적인 주제곡에 대한 향수 등 영화의 피상적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그저 보기 좋은 한 편의 감상용 영화로 치부될 뿐, 중요한 예술 텍스트로서 분석의 대상이 된 적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마도 이 영화가 학술적인 맥락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경우는 주인공의 일본인 이웃인 유니오시(Mr. Yunioshi)를 영화에서 미국 배우 미키 루니(Mickey Rooney)가 우스꽝스런 분장과 연기로 열등하게 묘사함으로써 할리우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거론될 때일 것이다. 그 외 지금껏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대한 단독 학술 연구는 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Holly Golightly)가 반영하는 팜 파탈(femme fatale)과 순결한 여인이라는 이중적 여성 이미지에 대한 논의(D’Arcy), 60년대 미국 대도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독신 여성 인물에 대한 논의(Wojcik),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1960년대 뉴욕의 이미지(Lehman and Luhr)에 대한 연구가 주요하며, 그 외 영화의 제작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한 비학술서(왓슨) 또는 리뷰(Krämer), 그리고 커포티의 소설을 설명하면서 영화를 간단히 언급하는 글 등이 대부분이다.

    본 논문에서는 영화의 의미를 텍스트의 완성도에만 두는 입장에서 벗어나 이 영화가 1960년대 초반 미국 사회의 영화 제작 현실에 작동하는 다양한 제도적 사상적 요인을 그대로 체화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 시대적 및 문화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먼저 이 영화에 대한 기존 연구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면서도, 위에 언급된 이전의 어떠한 연구도 이 영화가 1950년대 보수적 분위기에서 1960년대 혁신의 시대로 발돋움하는 할리우드 과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논문의 주요 관점은 따라서 이 영화를 통해 당시 과도기를 겪고 있는 할리우드 산업내의 양가적 도덕의식을 읽어내며, 특히 이 영화에서 원작 소설과 달라지는 남녀 인물들의 변화 및 그 성역할의 묘사에 이와 같은 전환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음을 제시하는 데에 놓여있다. 이를 위하여 우선 벤야민이 개진한 ‘산보자’(flâneur)의 개념을 여주인공 홀리에 적용시켜, 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등장한 여성 산보자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더불어 당시 할리우드의 검열 제도 및 성 정치학이 어떻게 커포티가 창작했던 소설 속 홀리 및 그녀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변화시키면서 신구 가치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하게 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본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여하고자 한다.

    1)물론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아우라’의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정의했던 이 용어의 의미를 어느 정도 수정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아우라’의 개념이 기계복제 시대 이전의 예술품 원본이 지니는 복제될 수 없는 진품의 권위를 지칭한다고 할 때에, 영화는 이미 최초 탄생 시점부터 수많은 복제본이 만들어지기에 과연 ‘원본’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는 매체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불어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원본’에 대한 질문은 다시금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영화의 ‘아우라’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현재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섬으로,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리메이크로는 되살릴 수 없는 ‘모방하기 어려운 가치’ 정도로 단순화 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아우라’에 대한 논의는 Benjamin, Illuminations 217-52 참조.

    II. 1960년대 초, 뉴욕의 여성 산보자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은 새벽녘에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자리한 티파니 보석상 앞에 한 대의 택시가 서면서 시작된다. 차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주인공 홀리. 고혹적인 지방시의 검은 드레스를 입고 이른 새벽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티파니 상점의 진열대 앞에서 보석을 구경하면서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후 카메라는 그녀가 다시금 길게 뻗은 5번가 거리를 홀연히 걸어 내려가며 멀어지는 모습을 롱 쇼트(long shot)로 보여준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이 첫 장면은 배우 헵번과 등장인물 홀리라는 중첩된 인물이 걷고 있는 대도시 뉴욕의 거리를 한 순간에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깊이 각인시킨다. 동시에 서구 근대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에게라면 이 장면은 매우 익숙한 어떠한 ‘전형’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장면에서의 홀리가 다름 아닌 보들레르 및 벤야민이 언급하던 ‘산보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초 보들레르가 목격한 산보자는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당대 파리 거리에서 유유히 바깥세상을 향유하며 시간을 보내던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이었다. 후에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대에 대하여 논하면서 “아스팔트 위에 채집을 하러가는”(Benjamin, Charles Baudelaire 37) 듯하다고 표현한 이 산보자는 이후 19세기 근대 도시 및 자본주의의 발달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호로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다.

    파리의 상업지구인 아케이드 주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이러한 산보자는 딱히 물건을 사기 위하여 상점가를 거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비자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그는 “산업사회의 사회적 통제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며 “생산 과정에 저항하고” 또한 “어딘가에 가려고하기보다는 서성거리는” 이들이다(Buck-Morss 136). 또한 그는 거리에서 “관찰은 하지만 결코 상호작용은 하지 않으며 . . . 경치를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이로써(Pollock 67) “일하지 않기라는 일을 연습”하는 이이다(Buck-Morss 102). 단지 시공간적 배경이 19세기 파리에서 20세기 중반 뉴욕의 중심가로 옮겨지고 보들레르 및 벤야민의 논의에서 주로 남성으로 등장하는 산보자가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데에 차이가 있을 뿐, 이 같은 산보자의 이미지는 영화 속 홀리와 매우 닮아있다. 실제로 커포티의 원작은 홀리의 동생의 이름인 프레드(Fred)로 불릴 뿐 실명이 밝혀지지 않는 화자가2) 옛 이웃인 조 벨(Joe Bell) 및 유니오시를 통해 최근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의 홀리에 대한 목격담을 전해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소설 속의 홀리는 뉴욕 거리의 배회를 끝내고는 자신의 애인을 찾아 브라질로 떠나며, 이후 독자 및 소설 속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아프리카에까지 흔적을 남긴 미지의 방랑자와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홀리는 뉴욕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 거리 안에 머문다는 점에서 19세기 유럽인들에게 익숙했던 산보자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갖게 된다.

    사실 보들레르 및 벤야민의 글에 나타나는 산보자는 늘 남성으로 상정되는데 이는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가정 및 실내 공간에 속하고 공공 영역은 남성의 공간이라고 여겨졌던 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벅-모스는 이 시대에 남성들만큼이나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은 매춘부 등 계급적 및 도덕적 편견을 짊어져야 하는 계층이 대다수였음을 주지시킨다.

    이처럼 점잖은 중산층 여인은 혼자서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시대에 산보자로 목격되는 이의 대부분은 당연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상가 진열장 안의 상품처럼 산보자의 응시의 대상”일 뿐이었다(Auslander 91).

    물론 이후의 여러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19세기에조차 여성 산보자의 개념이 정립될 수 있다고 보는데, 헬렌 리차즈(Helen Richards)는 앤 프리드버그(Anne Friedberg), 미카 나바(Mica Nava) 및 엘리자베스 윌슨(Elizabeth Wilson)의 의견에 기초하여 특히 쇼핑과 백화점을 통해 여성들이 도시의 공공 영역에 접근하기 용이해졌음을 주장한다(151). 거리에 늘어선 상가의 진열대 사이를 거니는 것이 ‘점잖지 못한 여성’이라는 오명을 안길 수 있는 행위라면, 여성들을 유혹하는 상점들이 실내에 집약되어 있는 형태인 백화점의 등장은 딱히 ‘거리의 여인’이 아니더라도 중산층 여성들이 편견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백화점은 아케이드 이후 발달된 쇼핑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산층 여성 산보자의 등장은 아케이드 위의 남성 또는 창녀로 여겨지는 여성 산보자보다 이후의 시기에 활성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벤야민에게 있어 무엇인가 구매를 염두에 두고 찾게 되는 백화점은 진정한 산보자를 목격할 수 있는 곳에서 제외된다. 백화점에서 응시의 대상에 대한 산보자의 관계는 “거리를 둔 관찰자라기 보다는 깊이 개입되어 있는 소비자”이기 때문이다”(Auslander 151). 그러나 본 논문은 벅-모스나 리차즈 등이 여성주의 시각에서 개진하고 있는, 19세기 시대의 변화와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산보자의 양상과 개념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19세기 유럽의 아케이드 사이를 걷고 있는 산보자, 특히 이에서 파생된 여성 산보자에 대한 논의가 1960년대 초반 미국 대도시를 걷고 있는 여성 홀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이유는, 19세기 파리와 1960년대 초반 뉴욕이라는 대도시 사이에 묘하게 감도는 공통된 사회적 기운 때문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남성 산보자의 존재와는 달리 여성 산보자의 존재가 도덕적 비판을 받고 사회적 안정에 해가 되는 불순한 요인으로 여겨졌다면, 전후 미국 사회에서 공공 영역에 진출한 여성들의 존재 역시 환영받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 셰이프(William Chafe)에 따르면 2차 대전의 발발과 동시에 참전중인 남성들을 대신해 수많은 미국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곳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전후 평화시대 경제 재건의 과정에서 그들은 귀환한 남성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가정과 가족에게 헌신하는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가도록 “격려”되거나 심지어 “강요”되기까지 하였다(D’Arcy 380 재인용). 따라서 1960년대 초반 여전히 상징적으로 남성의 공공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도시 거리를 집보다 편안히 여기는 홀리와 같은 여성들은 남성들에게는 불편함과 위협의 존재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홀리라는 인물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당대 사회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중반 미국 대도시의 홀리가 19세기 유럽에서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었던 여성 산보자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이유에 역사적 인과관계를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처럼 홀리를 19세기 산보자의 은유를 차용하여 해석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아케이드 시대에 등장한 남성, 여성, 그리고 이후 백화점에 등장한 중산층 여성 산보자의 모습이 모두 투영되는 보다 복합적인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홀리가 이미 벤야민이 정의한 산보자에서 많이 변화한 모습이듯이, 이 논문 또한 벤야민의 개념을 논의하기 위하여 홀리를 개입시키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본 논문은 19세기 산보자가 사회의 전환기에 등장하여 이내 다른 모습으로 사라지면서도 당대 도시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듯, 홀리라는 인물 역시 할리우드의 전환기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로서 영화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겪으며 그 시대를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적 기호가 된다는 인물의 내력에서 둘의 공통점을 찾는다. 즉, 이 개념을 차용하는 목적은 벤야민의 산보자의 시대적 의미를 논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홀리와 그녀가 등장하게 되는 1960년대 초 할리우드라는 시대적 배경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수사학적 유추 관계(analogy)를 구성하는 데에 있음을 밝힌다.

    홀리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여주듯 대도시의 화려한 상가 사이를 거닐며 시각적으로 그녀 주변의 정경을 섭렵하는 여인일 뿐 아니라, 동시에 낯선 남성과 데이트를 해 주면서 파우더 룸에 갈 때마다 룸 도우미에게 줘야하는 팁 명목으로 50불씩 남성들에게 받아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급 매춘부이다. 그녀는 거리 위에서 고객을 만나며 또 다른 고객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일 년여를 살아온 아파트조차도 오래된 거주자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고 정돈되지 않은 짐들이 함부로 나뒹굴고 있다. 전화를 빌려 쓰기 위해 그녀의 방에 처음 들어왔던 폴이 그녀에게 “최근에 이사 왔느냐?”고 물을 정도이다.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 위에서 남성을 찾고 이렇게 만난 이들과 데이트하는 데에 보내며, 동시에 언제든 현재의 그녀의 삶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남성을 따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한 그녀가 유일하게 정착을 꿈꾸는 시점은 남동생 프레드가 군대에서 돌아와 함께 멕시코로 이주해 동생이 좋아하는 말을 키우며 사는 미래이다. 그녀는 우울할 때에는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위로를 받기보다는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보석상을 구경하며 마음을 달랜다. 그곳에서는 “어떤 나쁜 일도 벌어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특히 홀리가 뉴욕 거리를 즐기는 모습이 소설보다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홀리가 폴에게 “지금껏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하자”고 제안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에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소설에서 이 부분은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되어, 맨해튼 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거닐며 하루를 보낸 두 남녀가 “뭔가를 훔쳐보자”는 홀리의 제안에 따라 즉흥적으로 울워스(Woolworth’s) 잡화상에 들어가 두 개의 할로윈 가면을 훔쳐 쓰고 도망 나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장면은 좀 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채 확장되어 19세기 거리 및 백화점에서 종종 목격되었을법한 여성 산보자의 모습을 홀리에게서 찾을 수 있게 한다. 홀리를 만난 이후 받은 영감으로 오랜만에 집필한 단편소설이 팔려 기뻐하는 폴에게 홀리는 원작에서처럼 즉흥적인 모험을 제의하고, 이내 그들은 티파니 보석상을 찾는다. 무수히 전시되어 있는 보석 진열대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이 두 남녀는 티파니의 고급 보석이 자신들의 경제적 형편과는 맞지 않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딱히 보석을 사고자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이 보석들을 시각적으로만 향유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돈이 없다고 하여 이 둘이 티파니 상점을 구경만 하고 나온 것은 아니다. 이 고급 상점에서 자신이 가진 돈 10달러 이내로 홀리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해 줄 수 없음을 아는 폴은, 이 가난한 연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티파니 매니저의 마음을 움직여 과자 상자 속에 들어있던 장난감 반지에 무언가 문구를 새길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것이다. 물론 돈을 들여 거래를 하였다고는 하나, 이는 티파니 상점에서 이 두 연인에게 매우 예외적인 관용을 베푼, 평상시 같으면 거의 일어날 수 없는 극적 상상일 뿐 전형적인 소비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상점에서 나와 울워스 잡화상에서 고양이와 개의 가면을 훔치는 장면 역시 상품을 구매할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둘을 소비자로 보기 보다는 상품들 사이를 유유히 거닐며 산보를 하는 이들로 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그 둘은 장난스런 모험을 위하여 이곳에 들렀고, 그 모험을 완성시켜줄 가장 용이한 상품을 임의로 취했을 뿐이다.

    홀리가 이처럼 뉴욕의 상가를 배회하며 즐기는 태도는 일견 그녀가 자기 주변의 남성들을 대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영화의 도입부에 홀리가 티파니 보석상 구경을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집 앞에는 어젯밤 그녀가 만났던 남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홀리 및 그녀의 일행의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으니 그녀가 자신에게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남자에 별 관심이 없는 홀리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련의 엉뚱한 이름으로 그를 부른다. 이후 폴에게 그녀는 “나는 쥐새끼 같은 놈들밖에 모른다”며 자신이 만나는 남자들은 단지 돈벌이의 수단일 뿐 어느 누구에게도 크게 관심이 없음을 밝힌다. 그녀의 결혼 상대 역시 사랑이 우선 조건이 아닌, 자신에게 좀 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어느 누구여도 상관없다. 그녀의 파티에 친구인 맥 와일드우드(Mag Wildwood)가 50세 미만의 미국인 중 아홉 번째로 부유한 러스티 트롤러(Rusty Trawler)를 데려왔을 때 그녀는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와의 결혼을 계획하지만, 며칠 후 신문에 러스티와 다른 여인의 결혼 기사가 나자 이내 별 흥미 없다는 듯, 그 다음 대상인 브라질의 부호이자 관료인 호세 빌라롱가(Jose Vilallonga)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마치 19세기 파리의 산보자가 진열장 안의 상품들에 잠시의 관심만을 보인 후 스쳐 지나가듯, 자신 주변의 남성들을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홀리가 한 세기 전 파리의 아케이드를 거닐던 산보자의 이미지를 닮아 있기에, 19세기 그녀의 전신이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존재라는 데에서 그녀의 서사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보들레르 및 벤야민이 논하였던 산보자는 19세기에 발달된 도시 및 자본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형상이지만 그들이 거리에서 목격되는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다.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이러한 아케이드를 거니는 산보자는 군중 속을 바쁘게 가로지르는 보행자와 구분되게 되며 “그의 느긋한 모습의 개성은 사람들을 전문인으로 만들어내는 노동 분화에 대한 저항”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Benjamin, Charles Baudelaire 54). 벅-모스는 산보자의 사라짐에 대해 “대량 생산의 속도전 원칙이 ‘산보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거리로 흘러넘쳤다”(102)고 지적함으로써 산업 사회의 비약적 발달과 그에 따른 도시인의 바쁜 생활양식 및 교통의 혼잡이 거리를 유유히 거니는 산보자의 존재로 하여금 점차로 설 자리를 앗아갔음을 주장한다. 그녀의 말대로 “산보는 아케이드의 유행 초기에 맞춰 짧은 기간 동안 번성”(103)했다가 사라진 문화적 현상으로 산보자는 근대 자본주의 물결에 휩싸인 도시에서 탄생하는 도시 문화의 중요한 상징이자, 동시에 자본주의의 속도 및 발전 논리에 위배되기에 이내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후 남성 산보자의 상당수는 19세기 중반의 작가 폴 라티에(Paul Ernest de Rattier)가 이야기하듯 “농부, 포도주상, 린넨 업자, 설탕 제조자, 또는 강철 부호”(Benjamin, Charles Baudelaire 54 재인용)가 되는 등 자본주의의 일원으로 흡수되거나, 다른 일부는 자신이 거리에서 관찰한 것을 쓰는 작가 또는 언론인으로(Buck-Morss 111; Richards 150) 진화하는 여정을 겪는다. 비슷하게 여성 산보자 중 대부분 역시 가정의 영역으로 회귀하거나, 이 중 중산층 일부는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이후 발달하게 되는 안전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백화점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도시의 뒷골목으로 분산되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시대의 전환기에 나타나 사회적 변화를 체화하는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 변화로 인해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불안정한 계층이었던 19세기 산보자가 홀리를 설명하는데 의미 있는 유추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1960년대 할리우드의 전환기 영화 속에서 미국 대도시를 떠도는 인물인 그녀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이전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은 그녀를 재위치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1960년대 초반 할리우드 및 이 영화 산업이 반영하는 미국 사회의 성 역할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고찰한다.

    2)이 점에서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있는데, 영화에서도 홀리는 그를 여전히 프레드로 부르나 그는 자신의 본명은 폴 바작(Paul Varjack)으로 소개한다. 본 논문에서는 소설을 언급할 때는 이 남성 인물을 프레드로, 영화를 언급할 때에는 폴로 칭한다.

    III. 산보자에서 연인으로

    홀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19세기 유럽의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했던 산보자의 개념을 차용하는 것은 이 여성 인물을 넘어서서 이 영화 자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각을 열어준다. 우선 홀리라는 인물이 보들레르와 벤야민이 설명하는 산보자의 모습은 물론 이후 개진된 이 형상에 대한 주요 담론까지도 복합적으로 체화하는 인물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폴에게도 19세기 남성 산보자가 사라지면서 등장하는 그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폴은 자신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 작가라기보다는 자신의 주변 일상에 의해 영감을 얻고 간간이 ‘산보하듯’ 글을 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작가이며, 동시에 부유한 유부녀에게 사랑을 파는 남성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은 앞 장에서 언급된 바, 몇 몇 학자들이 산보자의 진화형 중 하나로 논의하고 있는 신변잡기류의 글을 쓰는 언론인 또는 작가와 흡사하며, 동시에 그의 사생활은 고급 매춘부인 홀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이러한 폴의 현실은 이 영화의 인물 해석에 산보자의 은유를 적용하는 접근의 적합성 및 타당성을 한 층 더 부여한다. 19세기 말 자본주의 및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서 또 다른 위치를 찾아야 했던 산보자처럼, 20세기 중반의 홀리와 폴 역시 전후 미국 사회에서 불안정하게 거리를 배회하는 계급으로 새롭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그들이 보기에 그리고 당대 사회가 가장 용인하기 쉬운 방식으로 이들에게 새로운 위치를 찾아주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커포티의 원작에 많은 변형을 가한다.

    우선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인 홀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수정이다. 일단 1960년대 초반 영화의 소재로 당대 꽤나 논란이 많던 단편 소설을 선택한 것 자체가 꽤나 파격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왓슨에 의하면 커포티의 소설은 “홀리 골라이틀리같이 막 나가는 캐릭터가 나오는 이런 소설을 출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1958년 잡지 『하퍼스 바자』에 게재를 거부당한 전적이 있다(111). 매춘부를 그리는 영화에서 그녀에 대한 어떠한 도덕적 단죄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묘사한 것도 당시의 윤리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과감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화되면서 수정된 홀리라는 인물은 동시에 상당히 보수적인 당시 할리우드의 도덕률 또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애초에 원작자인 커포티는 이 역으로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왓슨 124). 커포티의 단편 소설에서의 홀리는 1940년대 텍사스 주에서 뉴욕으로 혈혈단신 건너와 남자와 남자 사이를 유랑하는 여인으로, 우연히 길에서 주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름 없는 고양이를 키우며 누군가에게 구속되기를 거부한 채 자유분방하게 살고자 한다. 플래쉬백(flashback)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의 현재 시점인 글의 초반에서부터 최근 아프리카를 떠나 또 다른 낯선 지역을 향하고 있음이 암시될 정도로 그녀는 이야기 전체에서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은 채 끝없이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떠돌고 있다. 한 때 홀리가 배우지망생이었을 때 그녀의 매니저였던 O. J. 버먼(Berman)은 프레드에게 그녀를 “진짜 가짜”(a real phony 30)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녀가 무언가 내면에 숨긴 채 가짜인 채 하는 것조차 아닌 그야말로 “내면의 의미를 제거해 버린, 또는 그것을 표면으로 끌어올린 결과 보이는 것이 전부인” 인물임을 의미한다(Scott 140). 이처럼 내면적 분위기보다는 공허하고 부유하는 듯한 외양이 강조되는 인물로 작가는 당시 복잡한 사생활 및 다양한 역할로 이와 부합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먼로가 제격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자들은 이미 고급 매춘부의 이야기, 동성애, 거친 언어 등으로 할리우드 심의에서 아슬아슬한 선을 밟고 있던 커포티의 원작을 순화할 필요를 느꼈고, 결국 매춘부의 역으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Dir. William Wyler, 1953)의 공주인 헵번을 선택했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빈약한 체격”에서 풍기는 인상이 “연약하고 부서질 듯하며 남자의 지도가 필요한 여성의 이미지”(D’Arcy 375)를 자아내는 헵번의 기용에서 예고되듯, 영화에서의 홀리는 소설 속의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소설 속의 홀리는 소년처럼 짧은 머리에 글의 마지막에서도 홀로 아무 연고도 없는 브라질로 모험하듯 떠날 정도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자립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녀는 비록 매춘부일망정 “절대 자존심을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 필수적”(39)이라는 이유로 배우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피아 두목인 샐리 토마토(Sally Tomato)를 일주일에 한 번씩 감옥으로 방문하는 것도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Hassan 111). 이처럼 자아가 강한 홀리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는 샐리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삭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자유분방한 생활만큼은 잘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홀리 주변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목격할 수 있는 파티 장면이다. 홀리의 집에서 그녀 주변인물을 초청하여 개최한 칵테일파티는 두 명의 돈 많은 남자를 과시하듯 양 팔에 끼고 온 그녀의 모델 친구 맥,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화장실에 숨어 열렬히 키스하는 버먼, 혼자 거울을 보며 하염없이 웃다가 또 우는 이름 모를 여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아파트를 가득 채운 채 뒤섞여 있다. 트래킹 쇼트(tracking shot)로 현장감 있게 촬영된 이들 군중 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러 다니는 홀리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불안정한 가면을 쓴, 색종이 가루를 흩날리는 듯한 삶”(Clark 239)을 살고 있다.

    파티 장면 이후 영화는 의도된 듯, 홀리의 이처럼 복잡한 사생활보다는 그녀와 폴이 함께 있는 장면에 중점을 두어 전개되며, 소설에서 그녀가 승마에 서툰 프레드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과 같은 주체적이고도 강인한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은 모두 삭제해 버린 채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섬세하고, 이상적”(Dyer, D’Arcy 376 재인용)인 미의 소유자인 헵번의 매력을 강조하는데 이는 특히 그녀가 영화에서 처음으로 샐리를 만나러 가는 목요일 아침 차림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미디엄 클로즈업 쇼트(medium close-up shot)에서 두드러진다. 몸에 달라붙는 매력적인 검은 드레스와 화려한 리본 장식이 있는 커다란 모자를 쓴 그녀의 모습은 감옥에 면회 가는 옷차림으로는 부적합할 정도로 우아하며 동시에 그녀의 가녀린 몸매 및 얼굴은 관객들을 일순간 매혹할 만큼 아름답다. 매춘부의 역할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육감적이기보다는 기품 있고 오히려 청순한, 홀리를 연기하는 헵번에 대해 다르시는 그녀의 소녀 같은 몸매는 당대에 열띠게 토론되던 여성해방이나 성적 자유과 같은 개혁 담론에 대한 남성의 무의식적 불안을 진정시키고 “남성의 보호본능에 영감을 주어 남성의 자아(ego)를 유지시키게끔 한다”(377)고 주장한다. 영화는 이처럼 헵번/홀리를 등장시켜 당대 남성들의 가부장적 남성성을 견고히 하는 서사 전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이 같은 보수적 성역할을 강화하는 데에는 당시 영화계를 통제하고 있던 검열 시스템 또한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대 할리우드 산업 내의 자체 검열 시스템인 ‘프로덕션 코드’(Production Code)는 1930년에 제정되어 1968년 검열 시스템이 등급 시스템으로 바뀔 때 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검열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 제작 규정은 “보는 이의 도덕적 수준을 강등시키는 영화는 제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전제 중의 하나일 정도로 주로 기독교 원리에 입각한 도덕성을 영화 판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삼았다. 이 같은 대전제 하에 수십여 가지의 보다 구체적인 상세 항목이 존재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 도착”(sexual perversion)에 대한 금기로 이는 당시 동성애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역시 이 같은 검열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우선 홀리가 습관처럼 이야기하던 룸메이트로 여자 동성애자를 맞이하는 문제 또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에서는 모두 배제되었다. 아버지뻘인 전 남편과 홀리가 미성년자일 때에 결혼했던 사실도 소설에서는 단지 홀리가 유효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부정하는 것에 그치지만, 영화에서는 명확히 “법적으로 무효화”되었다고 나오는 것도 검열을 염두에 둔 처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검열 제도에 의해 변화한 내용 중 가장 주목할 것은 폴의 성 정체성이다. 커포티의 소설에 공공연히 거론되지는 않으나 다양한 장면에서 작가는 프레드가 동성애자임을 암시한다. 그 중 타이슨 푸(Tison Pugh)는 특히 세 가지 장면을 꼽는데, 첫째는 홀리가 남자가 야구와 말 중 하나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는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하나 프레드는 이 둘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홀리가 그를 남자 동성애자를 부르는 속어인 “모드”(maude)라 부르는 점, 그리고 또한 프레드가 자신이 한 때 “낸시 랜딩”(Nancy’s Landing)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현존하지 않는 지명으로 당시 ‘낸시’는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속어로도 쓰이기에 이는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지역을 지칭할 수 있다는 점이 이에 속한다(52). 이처럼 소설 속에서 동성애자임이 은연중 암시되는 프레드가 영화에서는 이성애자로 등장할뿐더러 심지어 귀부인 2-E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종의 매매춘까지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같은 폴과 2-E의 관계는 소설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영화에서 새롭게 더하여진 이야기로, 동성애나 마약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엄하게 규제되던 영화 검열 시스템이 지배하는 1960년대 초반 미국 영화의 남성 인물 설정으로는 상당히 급진적이자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물 구성의 과감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당시 지배적 사회 윤리에 반기를 드는 시도로 읽히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폴의 설정이 오히려 당시 할리우드가 지향하는 가부장제 논리의 실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길 위의 여자이자 스스로를 “야생 동물”(a wild thing 74)에 비유하는 홀리를 잘 길들여 가부장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하여 그녀를 받아줄 남성이 필요한데, 폴이 유부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그가 피 끓는 이성애자”(Krämer 63)임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는 뿐만 아니라 홀리와 폴이 비슷한 처지로 서로에게 쉽게 이끌려 결국은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었던 두 인물이 “사랑으로 구원”(Krämer 62)될 수 있는 계기 또한 제공해 준다.

    홀리를 든든한 남성, 그리고 종국에는 그 남성이 약속하는 가정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감독은 폴이 홀리에게 훈계를 하는 장면 또한 포함시킨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샐리의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던 홀리가 보석으로 풀려나 친구인 프레드와 조 등의 도움으로 그 즉시 브라질로 떠나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나온다. 자신의 브라질 애인이었던 호세가 그녀가 범죄에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녀를 버렸음에도 그녀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단지 비행기 티켓을 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브라질에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는 이유로 여행하듯 브라질로 향한다. 가는 길에 그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고양이를 길에 버리고, 이 고양이는 한참이 지난 후 프레드가 어느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어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를 이처럼 끝없이 방랑하도록 남겨두지 않는다. 풀려난 즉시 폴이 준비한 택시에 올라 공항으로 향하고자 하는 홀리에게 폴은 사랑을 고백하며 “당신은 내게 속한다”고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은 자신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그의 사랑을 거부하며 비오는 거리에 고양이를 내 쫓은 채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그녀에게 폴은 그녀가 “인생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딘가에 속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티파니 보석상에서 문구를 새겼던 장난감 기념 반지를 던져주고 택시에서 내린다. 그 순간 눈물을 머금은 채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홀리는 마음의 동요가 인 듯 택시에서 내려 폴과 함께 고양이를 찾고, 빗속에서 한참을 헤맨 끝에 마침내 골목 구석에서 고양이를 찾아내어 품에 안고 폴과 짙은 키스를 나누며 영화가 종결된다. 지금껏 홀리와 다를 바 없이 부유한 이성의 돈에 젊음을 팔며 살고 있던 폴이 한 순간 홀리를 책망하고 끝내 교화시키는 도덕군자처럼 돌변하는 이 장면은 서사 상으로는 너무나 갑작스런 인물의 변화로 어색함을 떨칠 수 없으나 홀리를 ‘길들여진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필연적인 이야기의 전개일 수밖에 없다.

    사실 홀리가 폴이 제공하는 가부장제의 ‘든든한 보호막’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암시는 영화의 전반부터 배치되어 있다. 소설에서 그녀가 프레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주며 “결코 살아있는 생물을 이 안에 넣지 말아 달라”(59)고 당부함으로써 속박을 싫어하는 그녀 자신과 대비되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했던 새장은, 영화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앞서 언급했던 파티 장면의 초반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카메라에 잡힐 뿐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는 홀리의 ‘구속’을 권장하는 내용이므로 소설에서 강하게 부각되었던 이 새장이 갖는 부정적 의미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인상적인 설정은 두 남녀의 거주 공간의 대비에서 찾을 수 있다. 홀리가 사는 아파트는 일 년여를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있고, 막 풀어 놓은 듯한 또는 어디론가 떠나려고 채비를 하는 듯한 짐가방들이 함부로 널려있다. 그녀에게 있어 아파트는 “거주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시 들르는 장소”(Wojcik 143)일 뿐이다. 그곳은 “통과하거나 들어가기 쉬운” 곳으로 “대개 기회와 우연에 의해 만남이 일어나는 곳”(Wojcik 147)이다. 이에 비해 같은 아파트의 위층이지만 폴의 방은 살림살이가 잘 갖춰져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안정된 ‘주거지’의 느낌을 준다. 물론 옷장에 즐비하게 진열된 고급 양복이나 그 외 이 아파트의 모든 세간이 2-E가 장만해 준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남성들과 사귄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리의 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홀리는 그녀를 찾아오는 귀찮은 남성 손님들을 피해 아파트 소방 계단을 타고 폴의 방에 피신해서야 쉼을 얻고, 또한 폴의 방이 올려다 보이는 자신의 아파트 창 난간에 걸터앉아 ‘문 리버’를 부를 때 영화 속에서 가장 가식 없는 자연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결정적으로 영화에서 새롭게 삽입된 또 하나의 장면인, 홀리와 폴이 울워스 잡화상에서 훔쳐 온 개와 고양이 가면이 모두 폴의 방의 조각상에 걸려 있다는 것 또한 홀리의 공간이 아닌 폴의 공간이 그 둘이 연인으로서 함께 지내야 하는 곳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르시는 특히 폴이 썼던 개의 가면이 홀리가 썼던 고양이 가면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이 장면이 “확립된 질서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남성의 의무이자 그의 이타적인 사랑과 신의라는 잠재력이 궁극적으로 야생의 자주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길들일 것”을 예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378).

    이처럼 거리 위를 배회하는 산보자인 홀리를 흔들림 없이 잡아줄 남자 인물을 구성해내기 위해 영화에서는 남녀 인물들의 이름 역시 소설과 차이를 둔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홀리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이름을 부정하며 “나는 룰라 매(Lula Mae)도 아니고 홀리 골라이틀리도 아니예요.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라고 울부짖지만, 소설의 화자와 달리 영화에서 폴은 홀리에게 “나는 프레드가 아니라 폴”이라며 자신의 본명을 강하게 선언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홀리를 지켜주기 위한 남성은 자신의 정체와 위치에 대해 혼란을 겪지 않는 자존심과 자아를 가진 또는 이를 회복한 이가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또 다른 비중 있는 여성 인물인 2-E 역시 홀리와 달리 귀부인임에도 폴과의 관계에서 본명이 아닌 암호와도 같은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홀리와 2-E가 처음 택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쳤을 때 폴은 그녀를 “팰런슨 부인”(Mrs. Falenson)이라고 소개하지만 이 역시 그녀 남편의 성일뿐 그녀 자신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다. 파티에 등장한 홀리의 모델 친구인 맥 역시 홀리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암시되기에, 그녀의 이름은 예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에서 모든 남성 인물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면 모든 여성 인물들이 복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가능성 역시 경제적 사회적 계급을 떠나 남성이 여성보다 안정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고 있음을 은연중 강조하는 할리우드의 성적 보수주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커포티의 단편 소설의 내용 및 인물에 다양한 수정을 가함으로써, 원작에서의 자존심 강하며 당대 도덕주의를 비웃듯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구가하는 홀리라는 인물을, 천사처럼 아름답고 연약하며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남성 폴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서사 변화의 배후에는 전후 미국 사회에서 높아져 가는 여성의 사회적 영역에서의 활동, 경제적 자립 및 성적 자유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들을 남성의 통제 하에 있는 가정으로 복귀하여야 할 존재로 그림으로써 전후 귀환한 미국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 및 정체성의 재확립을 꾀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듬직한 가부장으로서의 미래를 예고하는 폴에게 홀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순응하는 로맨스로 끝맺게 된 이면에는 1960년대 초 미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던 변화하는 사회상 및 남녀 관계에 대한 당대 할리우드의 보수적 해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V. 결론: 1960년대 초 전환기의 영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전후 미국 사회에서의 남녀의 사회적 역할 및 자아의 재확인과 정비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던 1950년대를 지나 개혁과 민권 운동의 시대인 1960년대 중반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제작되었다. 1950년대 미국 사회가 교외(suburbs)를 중심으로 경제 사회적 안정 및 공통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중산층 삶의 확산에 주력하면서 영화계 또한 이러한 세대를 반영하는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50년대를 거쳐 기성의 가치를 전복하는 반문화의 시대인 60년대에는 특히 그 중반 이후로 다양한 실험적 기법 및 메시지를 시도하는 영화 제작의 움직임이 할리우드에 새로운 역사를 펼친다. 그러나 이 두 시기 사이의 전환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초기의 미국 영화는 영화사에서도 그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 50년대의 연장선, 또는 60년대의 시작이라는 애매한 입지에 휩쓸려 논의에서 간과되곤 하였다.

    한 입지에 휩쓸려 논의에서 간과되곤 하였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그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당대 영화감독들 및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제도적으로 보호 및 지향하려던 가치를 잘 드러냄으로써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계의 인식 및 경향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텍스트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설이 영화화 되면서 거리위에서 남성들 사이를 누비며 또한 화려한 상점을 들여다보며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던, 19세기 보들레르가 묘사했던 파리의 산보자와도 같은 여인 홀리를 결국 모든 방황을 접고 한 남성의 여인으로 정착하게 하는 결말에서 당대 미국 사회를 지배하던 보수적 가부장제를 옹립하는 측면을 읽을 수 있다. 더불어 당시 영화계를 지배하던 검열 시스템의 영향으로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내용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순화되어 전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이러한 할리우드 도덕주의에 도전하는 서사적 요소 역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레흐만과 루어가 주장하듯 이 시기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홀리와 폴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존 할리우드 산업의 주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26). 수많은 남성들 사이를 오가며 사회적 통념상 부도덕한 여인인 홀리를 기존의 멜로드라마에서처럼 ‘처벌’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녀를 나이 많은 전 남편에게 돌려보내는 것도 아닌, 그보다 훨씬 젊고 멋진 남성 파트너와 로맨스를 이루게 한다는 설정은 영화가 이 인물에 대해 흑백 논리로 도덕적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다는 점만으로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는 단순히 작가로 나오는 남성 화자를 홀리와 마찬가지로 돈을 위해 젊음을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지적인 매춘남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검열 제도가 냉혹하게 영화의 도덕성을 판단하던 시대에 허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외일 정도이다. 이러한 전에 보기 힘들었던 급진적인 설정 및 내용은 이 영화가 단순히 가부장제를 옹호하며 그 가치를 전파하는 과거의 영화와는 차별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던 1950년대와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1960년대 중반의 할리우드 사이의 과도기에 만들어져, 변화하는 할리우드의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듯 이전에 볼 수 없던 도덕적 판단이 보류된 새로운 인물형을 그려내는 과감함과, 그러나 이 인물들을 여전히 안락한 가부장제의 체재 내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보수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가적 가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지금껏 연구가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1960년대 초반 할리우드 영화 및 영화 산업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텍스트로 재정의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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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뉴욕의 여성 산보자
    뉴욕의 여성 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