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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Meaning of Cinema-Verite in the film of <Chronicle of a Summer>” <어느 여름의 기록>(Chronique d’un ete)>(1961)를 통해서 본 ‘시네마-베리테(cinema-verite)’의 의미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Meaning of Cinema-Verite in the film of <Chronicle of a Summer>”
KEYWORD
, Jean Rouch , Edgar Morin , cinema-verite , participatory camera , camera as catalyst , self-reflexivity
  • 1. 들어가는 말

    1959년 12월, 사회학자 애드가 모랭(Edgar Morin)과 영상인류학자이자 다큐멘터리영화감독인 장 루쉬(Jean Rouch)는 이탈리아의 프로렌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민족지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애드가 모랭은 장 루쉬에게 차후 <어느 여름의 기록>(Chronique d’un été)이 될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본인의 구상을 말하면서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애드가 모랭은 당시 새롭게 개발된 경량(輕量) 카메라를 사용하여 파리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계획했는데, 이 영화에 적격인 사람이 바로 장 루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미 장 루쉬는 서아프리카에서 여러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면서 핸드헬드 카메라 방식으로 촬영하는 기술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드가 모랭은 영화제에서 돌아온 직후인 1960년 1월, <프랑스 옵세르바뙤르(France Observateur)>에 「새로운 시네마 베리테를 위하여」라는 글을 발표하고, 차후 만들어질 새로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애드가 모랭과 장 루쉬가 구상한 영화는,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1960년에 파리에서 살았던 한 집단의 젊은 파리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진실’의 본질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 사는 이상한 종족에 대한 연구‘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인 <어느 여름의 기록>에 대해 애드가 모랭과 장 루쉬는“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하나의 연구이자 인간을 연구하다는 의미에서의 민족지적 영화의 성격을 가진 것”이며, “감독들과 연기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실험이자 영상커뮤니케이션의 실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2)

    <어느 여름의 기록>의 내용을 보면, 이 영화는 1960년 여름, 파리에 거주하는 일단의 젊은이들을 밀착촬영하면서 노동, 사랑, 행복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당시 아프리카에서 진행되었던 식민지 전쟁 및 인종차별 등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탐구하고 있다. 영화는 내용상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분량이 긴 영화의 전반부는 이른 아침 파리의 출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 식사시간에서의 토론, 애드가 모랭과의 일대일 인터뷰,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직장이나 집에서의 일상생활 모습과 함께 주인공들의 다양한 진술이 엮여 진행된다.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이 중심인물의 역할을 하는 것도 전반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두 번째 부분은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알제리 전쟁 및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로 주제를 바꾸어 진행된다. 영화의 세 번째 부분은 주인공들이 여름휴가를 위해 파리를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이들이 각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후반부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휴가에서 돌아오고, 당시까지 촬영된 러쉬 필름을 함께 보면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어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평가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 <어느 여름의 기록>이 만들어진 1960년대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소형카메라 및 동시녹음장비의 발전을 보았고, 영화사조의 측면에서는 두 가지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장르가 출현한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대에 나타난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와 북미의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는 이후 다큐멘터리영화의 대표적인 장르로 확립되었다. 특히“시네마 베리테의 실험(une experience de cinéma vérité)”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여름의 기록(Chronique d’un été)>(1961)3)은 ”최초의 시네마 베리테 영화“4)로서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 시네마 베리테의 장르를 규정하고 이를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5).

    본 논문의 목적은 <어느 여름의 기록>에 나타난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데 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어느 여름의 기록>의 텍스트 분석에 의존하기보다는 영화의 기획 및 제작과정, 그리고 영화텍스트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영화적 방법론 및 제작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특히 장 루쉬의 영화적 방법론에 초점을 두면서 ‘참여적 카메라‘,’촉매제로서의 카메라’, ‘자기성찰성’의 세 개념을 중심으로 <어느 여름의 기록>에 나타난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고찰하기로 한다. 그럼 이에 앞서‘시네마 베리테’라는 용어의 출발점이자 <어느 여름의 기록>의 제작에 영향을 준 찌가 베르토프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을 살펴보기로 한다.

    1)Morin,“Chronicle of a film”, Cine-Ethnography,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3(1962), p.229.  2)Morin, ibid, p.232.  3)영어명은 .  4)Dornfeld, “Chronicle of a Summer and the Editing of Cinéma Vérité”, Visual Anthropology 2(3-4), 1989.  5)Mamber, Cinéma Vérité in America, The MIT University Press, 1974, p.1.

    2. 찌가 베르토프의 ‘시네마 베리테’

    애드가 모랭은 「새로운 시네마 베리테를 위하여」를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찌가 베르토프(Dziga Vertov)에 의해 명명된 ‘키노-프라브다(Kino-Pravda)’ 즉 ‘시네마-진실(cinema-truth)’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이를 새로 만들어질 영화에 연결시키려 했다. 장 루쉬 또한 ”나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찌가 베르토프의 기계적 눈과 귀, 그리고 플래허티의 감각적인 카메라를 갖는 것이다“6)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의 영화방법론이 이 두 감독의 영화적 시각에서 출발하였음을 밝혔다. 따라서 <어느 여름의 기록> 및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찌가 베르토프 및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철학이나 제작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 루쉬의 영화적 방법론과 로버트 플래허티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먼저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 관련하여 찌가 베르토프와 <어느 여름의 기록>의 연관성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1960년대 당시 베르토프는 러시아에서는 거의 잊혀진 존재였으나, 프랑스에서는 몇몇 대표적인 영화비평가에 의해 평판이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맑스 계열의 영화사학자인 조르쥬 사둘(Georges Sadoul)7)과 애드가 모랭8)이 자신들의 책을 통해 찌가 베르토프의 영화이론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A Man with a Movie Camera)>(1929)라는 영화로 널리 알려진 찌가 베르토프는 1922년 뉴스릴을 제작하면서 그 명칭을 ‘키노-프라브다’라고 불렀다. 또한 찌가 베르토프는, 자신의 동생이자 카메라맨인 미카일 카우프만(Mikhail Kaufman) 및 부인이자 영화 편집자였던 옐리자베따 스빌로바(Yelizaveta Svilova)와 함께 만든 ‘키노키(Kinoki)’, 즉 ‘카메라-눈(Cine-Eyes)’이라는 영화집단을 이끈 사람이었다. 이 영화집단은 1923년 자신들의 영화철학을 담은 성명서를 통해, “’카메라-눈‘은 세계를 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며, 삶의 사실들은 영화 특유의 기술과 표현양식에 의해 ’영화적 사실들‘로 전환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사실들을 영화 특유의 진실이라는 의미에서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라고 이름 지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베르토프의 이른 바 ‘시네마-베리테’는 영화에 의해 전달되는 객관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아이’ 즉 영화적 장치에 의해 가능해진, 영화 특유의 세계를 보는 방식을 일컫는다. 베르토프에 의하면, 이러한 ‘시네-아이’ 즉, 카메라는 인간의 눈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새로운 지각기관’이며,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삶을 포착하는(to catch life unaware)” 능력을 지닌다고 보았다:

    찌가 베르토프에 의하면, 카메라는 인간의 눈과 다르며, 영화는 객관적인 리얼리티의 기록이 아니라 ‘영화적 리얼리티(cine-reality)’를 기록한다. 이처럼 베르토프는 현실세계의 극적(劇的)인 재연(theatrical enactment)과 상반되는 영화적 리얼리즘(cinema realism)의 구조를 밝히는데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베르토프의 영화에 대한 생각과 영화적 표현방식은 주로 모스크바의 하루를 담은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 잘 나타난다. 베르토프는, 영화 특유의 클로즈 업, 트랙킹 숏 등의 다양한 종류의 쇼트와 이중노출 등 시네-아이에 의해 촬영된 영화 이미지는 몽따주나 병렬화면, 겹친 화면, 그리고 다양한 영상효과(예를 들어 저속도 촬영 화면, 분할 화면, 빠른 화면, 느린 화면, 뒤로 가는 화면) 등과 같은 편집과정을 통해 새롭게 재현된다고 보았다. 그 후 사운드가 출현하자 베르토프는 영화의 사운드를 영화 특유의 기관이라는 의미에서 ’라디오-귀(radio-eye)‘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베르토프는 ’시네-아이‘와 ’시네-이어‘에 의해 지각되고 만들어지는 영화 특유의 재현체계를 ’시네마-베리테‘라고 부른 것이다.

    장 루쉬 또한 실증주의적인 입장의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배격하면서 카메라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진실을 ‘영화적 진실,’ 즉 ‘시네마 베리테 (cinéma-vérité)’라고 불렀다:

    이런 측면에서 장 루쉬는 찌가 베르토프처럼 카메라는 “또 다른 리얼리티를 파고드는 능력을 가진 개체”10)라고 말하면서 ‘시네마 베리테’는 진실의 영화(cinema of truth)가 아니라, 기계적인 눈과 전자적인 귀를 가진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진실(truth of cinema)’이라고 주장하였다.11)

    이처럼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은 찌가 베르토프의 영화적 방법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면 베르토프의 영화적 개념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폴 헨리의 주장처럼12) 영화적 리얼리티의 본질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적 측면에서는 장 루쉬와 찌가 베르토프가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졌지만, 실제적인 영화제작방식의 측면에서는 상이한 점이 많다. 애드가 모랭 또한 1960년의 논문에서 장 루쉬와 찌가 베르토프의 영화적 접근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밝히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장 루쉬의 영화적 표현방식은 주로 롱 테이크와 시간적 순서에 의한 편집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 나타난 베르토프의 영화적 표현방식은 시간적 순서에 의한 편집을 따르고 있지 않다, 또한 베르토프는 화려한 몽타주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적 효과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장 루쉬는 몽타주의 사용이나 영화적 효과를 배격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는 주로 촬영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반면, 찌가 베르토프의 영화적 진실은 주로 편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네마-베리테의 개념과 관련하여 찌가 베르토프와 장 루쉬 간의 영화적 방법론의 차이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여름의 기록>에 나타난 시네마-베리테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음 장에서는 ‘참여적 카메라’,‘촉매제로서의 카메라’, ‘자기성찰성’이라는 세 가지 분석틀을 통해 <어느 여름의 기록>에 나타난 시네마-베리테의 의미를 고찰하기로 한다.

    6)Fulchignoni,“Conversation between Jean Rouch and Professor Enrico Fulchignoni”,Visual Anthropology 2(3-4), 1989. p.265.  7)Sadoul, Dziga Vertov, Editions Champs Libre, 1971.  8)Morin, The Stars, Grove Press, 1960.  9)Henley, The Adventure of the Rea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p.149에서 재인용.  10)DeBouzek, J., “The Ethnographic Surrealism of Jean Rouch,” Visual Anthropology 2(3-4), 1989, p.305.  11)Fulchignoni, op. cit, p.283.  12)Henley, op. cit, p.149.

    3. <어느 여름의 기록>과 시네마 베리테

       1) ‘참여적 카메라(Participatory Camera)’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이 찌가 베르토프에게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찌가 베르토프의 시네마 베리테와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영향 때문이었다. 애드가 모랭 또한 자신의 논문에서 베르토프의 관음증적인 촬영기법을 넘어선, 고전적인 인류학의 참여관찰이나 현지조사기술과 유사한 방식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시네마-베리테를 개발할 필요를 강조하면서 한 걸음 더 나가 새로운 시네마-베리테의 ‘진정한 아버지’는 베르토프라기보다는 플래허티가 더욱 더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13).

    장 루쉬 또한 자신의 영화방법론의 근거를 1920년대에 활동하였던 로버트 플래어티의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North)>(1922)14)에서 찾았다. 장 루쉬가 <북극의 나눅>에서 중요시 여긴 것은 바로 로버트 플래허티와 촬영대상인 나눅 사람들 간의 친밀한 ‘관계’와 이에 바탕을 둔 영화제작방식이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당시 이른바 ‘문화적 타자’에 대해 풍물기행식으로 영상을 만들던 관례와는 달리, 나눅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관계(rapport)와 장기간의 관찰 및 참여를 통해 <북극의 나눅>을 완성하였다. 장 루쉬는 이러한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 제작방식을 모델로 삼으면서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제작방식을 ”영화제작자와 대상 간의 상호참여를 통해 거리를 없앤다”는 의미로서 ’참여적 카메라(participating camera)‘15)라고 불렀다.

    장 루쉬의 ‘참여적 카메라‘는 영화적 대상인 원주민이 함께 영화제작의 과정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장 루쉬는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은 매우 주관적”16)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삶을 카메라가 그대로 복사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참여와 ’민족 간 대화(ethno-dialogue)‘를 통해서만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같은 맥락에서 장 루쉬는 ‘참여적 카메라’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자신의 영화작업의 목적은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끼리 인류학적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장 루쉬의 ‘참여적 카메라‘ 의 개념은 <어느 여름의 기록>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느 여름의 기록>은 장 루쉬 및 애드가 모랭이 여섯 명의 젊은 파리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여름의 기록> 이전의 장 루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재규어(Jaguar) > 및 <나는 흑인 남자(Moi, un Noir)>의 제작방식에 매우 유사하다. 예를들어, <재규어)는 서아프리카에서 이주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세 명의 젊은 아프리카인들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세 주인공이 경험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나는 흑인 남자> 또한 주인공의 일인칭 목소리를 통해 주인공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영화화하고 있다. 이처럼 장 루쉬는 서아프리카에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면서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하였으며, 이들이 제작과정에 최대한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도 이어졌다. 즉,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은 <어느 여름의 기록>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영화감독과 등장인물이 서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애드가 모랭은 “이 실험에서 감독들과 등장인물들 간에 장벽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독이 대상자들의 삶에 직접 참여할 것이기 때문”17)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영화제작방식과 제작 분위기에 대해 “우리들이 만드는 이미지는 (등장인물의) 노동 현장이나 길거리,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몸짓이나 태도를 그릴 것이며, 대화나 즉흥적인 토의가 오고가는 친근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18)이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장 루쉬에 의하면, 가장 좋은 영화작업은 영화화되는 사건에 감독이 최대한 참여하는 것이다. 사실 애드가 모랭이 장 루쉬를 높게 평가한 것 가운데 하나는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커뮤니티에 파고들어가 대상들의 삶의 세계에 뛰어드는 영화감독(filmmaker diver)”19)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여기서도 장 루쉬와 찌가 베르토프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즉 장 루쉬는 영화적 대상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화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 반면, 찌가 베르토프는 종종 숨겨진 카메라에 의해, 영화적 대상들이 촬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촬영하는 방식을 취하곤 했다.

    또한 장 루쉬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대상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장 루쉬는 촬영현장에서 최소한의 스탭과 적은 장비를 갖추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전문적인 영화기술자를 고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너무 많은 스텝이나 장비, 그리고 기술적인 측면 및 영상미학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영화감독과 대상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 루쉬는 현장에서 16mm 카메라와 테이프 레코더만 당랑 매고 촬영에 임하였다. 그리고 장 루쉬는 이전의 작품에서처럼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도 삼각대 및 줌 렌즈에 의한 촬영방식을 거부하고 같은 장면을 반복 촬영하거나 예쁜 이미지를 우선하는 촬영방식을 반대하였다. 또한 장 루쉬는 자연광을 이용하여 촬영하는 것을 선호하였으며, 캐나다 출신의 촬영기사 미쉘 브롤(Michel Brault)과 함께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개발한 일명 ‘걸어가는 카메라(walking camera)’20), 즉 트랙킹 숏을 즐겨 사용하였다.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걸어가는 카메라‘의 촬영방식이 잘 나타나는 곳 가운데 하나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마르셀린이 2차 대전 중 나치의 수용소에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콩꼬르드 광장을 걸어가는 씬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 루쉬가 소규모의 장비 및 스탭 인원, 그리고 ’걸어가는 카메라‘의 기법을 선호한 것 또한 영화감독과 대상 간의 상호참여를 원활히 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장 루쉬의 ‘참여적 카메라’의 개념은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여섯 명의 젊은 파리인들이 영화제작과정에 최대한 참여하게 하는 방식이며, 다른 한 가지는 영화감독들이 영화대상자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장 루쉬가 <어느 여름의 기록>의 영화작업에서 중요시했던 것은 로버트 플래허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과 영화적 대상 간의 친밀한 관계와 상호참여였다. 다시 한 번 이를 찌가 베르토프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찌가 베르토프의 영화적 방식에서는 영화감독과 대상들 간의 실제적인 관계성이나 상호행위에 대한 인식이나 성찰은 보이지 않는 반면, 장 루쉬의 영화적 방식에서는 영화감독과 대상들 간의 관계성이나 상호행위가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영화기술의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1960년대 들어 등장한 소형카메라와 동시녹음장비는 장 루쉬에게 자신의 영화적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어느 여름의 기록>은, ‘참여적 카메라’를 근간으로 하는 장 루쉬의 영화철학과 새롭게 개발된 영화기술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영화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여름의 기록>는 당시 새롭게 선보인 핸드 헬드 카메라 및 동시녹음기술을 십분 활용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목소리와 등장인물들의 일상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거의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1962년 장 뤽 고다르는 <어느 여름의 기록>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노동자가 영화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21)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2) ‘촉매제’ 로서의 카메라

    시네마 베리테와 관련하여 장 루쉬의 영화적 방법론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또 하나의 개념은 ‘시네-트랜스(ciné-trance), ’즉, 영화적 신들림’이다. 장 루쉬는 (민족지적) 영화촬영 시 영화적 대상이나 사건,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종의 신들림(trance)과 같은 상태에 빠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영화감독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며, 시네-트랜스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 루쉬는 카메라가 ‘시네-트랜스’를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즉, 장 루쉬는 카메라가 영화촬영을 하는 사람과 영화화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네-트랜스‘를 촉발한다고 보았다. 장 루쉬에 따르면, (민족지)영화감독은 감독과 대상 간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일인칭‘으로 보여 줄 수 있다. ’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개념은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믹 이튼(Mick Eaton)의 지적대로 <나는 흑인 남자>(1957) 이후 장 루쉬의 카메라는 더 이상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인류학적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촉매제’가 되었는데23), <어느 여름의 기록>은 이보다 진일보하여‘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영화적 방법론을 광범위하게 실험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개념은 이후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 시네마 베리테 계열 영화의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촉매제로서의 카메라’는 전체적으로 <어느 여름의 기록>의 제작방식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다. 즉,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카메라는 카메라 밖에 존재하는 ‘진실’이나 ‘사실’을 기록하는 매체가 아니라 역사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체이며, 감독과 영화대상 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촉진시키면서 영화적 사실을 유발시키는‘촉매제’이다. <어느 여름의 기록>의 카메라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의 삶 밖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말을 건넨다.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인터뷰나 대화가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가 말한 것처럼 인터뷰 텍스트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고 의미가 창출된다는 면에서 능동적이고 수행적이며(performative), 타인의 삶을 재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내러티브 장치로 볼 수 있다.24)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도 인터뷰 및 영화참여자들 간의 대화는 이러한 수행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내러티브의 틀로서 사용되었다. 즉, <어느 여름의 기록>은 인터뷰라는 기제를 통해 이들의 삶에 개입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어느 여름의 기록> 이후 시네마베리테 기법의 다큐멘터리영화를 규정할 때 인터뷰 기법을 기준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 루쉬는 <어느 여름의 기록>을 만들면서‘촉매제로서의 카메라’가 영화참여자의 퍼포먼스를 유도할 뿐 아니라 일종의 싸이코 드라마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장 루쉬는 카메라의 존재가 영화적 대상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 감정, 태도와 꿈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촉발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장 루쉬에 의하면, 모든 영화제작 행위는 영화 스탭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변화시킨다. 즉 이들은 카메라를 통해 얻어지는 영화 특유의 진실은 실제 세계에서의 카메라의 존재에 의해 드러나며, 카메라는 영화감독이나 영화적 대상자들의 퍼포먼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하였다.

    애드가 모랭 또한 영화는 전적으로 카메라에 의해 촉발된 퍼포먼스에 의존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어느 여름의 기록>을 기획하면서 영화참여자들에 대한 질문은 사전에 준비 할 것이지만,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이루어 질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사전에 준비된 대본이란 있을 수 없었다. 영화제작 동안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정교하게 정해놓는다는 것은 감독과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리 준비된 각본 대신 애드가 모랭이 영화촬영의 허가를 얻기 위해 국립영화센터에 제출한 영화 시놉시스를 보면, “많은 등장인물들을 모아 그들에게 “어떻게 사십니까(Comment vis-tu?)”25)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질 뿐이고, 등장인물들의 응답이 영화의 방향을 결정한다”26)고 적혀 있다.

    또한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이 의견을 공유한 것 가운데 하나는 <어느 여름의 기록>이 싸이코 드라마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즉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은 <어느 여름의 기록>를 기획하면서 영화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자 싸이코 드라마, 또는 모랭이 가끔씩 언급한 ‘소시오드라마(sociodrama)’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이를 실제로 실험에 옮겼다:

    또한 이들은 “연출이나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과 등장인물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가는 싸이코 드라마를 시도하는 것”28)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애드가 모랭과 장 루쉬는 영화의 프로포잘 단계에서, 모든 영화촬영이 이루어진 뒤 극장상영 전에 영화참여자들을 위한 사전영화상영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장 루쉬가 <어느 여름의 기록>을 촬영하기 바로 전 서아프리카에서 만든 영화 <인간 피라미드(The Human Pyramid)>(1961)>에서 시도한 방식이었다. 즉 이들은 영화상영 후, 등장인물들에게 영화촬영 기간 중 자신들이나 다른 등장인물들, 또는 감독과의 관계나 영화제작과정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프로포잘에서 제안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영화작업 동안 대상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삶을 드러내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장 루쉬는 초현실주의의 측면에서 카메라가 영화대상자의 무의식을 끌어내어 퍼포먼스를 유도한다고 생각한 반면, 모랭은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영화제작과정을 통해 무의식 속에 억눌려있던 생각이나 감정들을 표면으로 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30) 하지만 영화가 싸이코 드라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영화대상자의 퍼포먼스나 반응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주로 영화감독의 적극적인 개입 및 인터뷰, 또는 대화이다.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영화감독이 인터뷰 및 대화를 통해 영화참여자의 삶에 개입하면서 카메라가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있는 대표적인 예로 애드가 모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와 함께 나치수용소에서 생활을 했던 마르셀린에게 팔에 새겨진 문신에 대해 묻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어느 여름의 기록>은 질문이나 대화의 형식을 통해 영화참여자의 과거의 기억이나 현재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참여자의 반응을 유도한다. 또한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길거리 인터뷰 장면에서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비롯하여 파리에서의 생활이나 주택문제 등의 사적인 생활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알제리 전쟁이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질문을 통해 파리 사람들이나 영화참여자의 삶과 생각에 개입하고 대화를 이끌어낸다.

    한편, <어느 여름의 기록>의 많은 부분이 인터뷰나 참여자들 간의 대화로 구성된 것은 소형카메라 및 동시녹음기술의 발전에 기인한 면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동시녹음의 발달로 인터뷰나 대화의 형식으로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은 <어느 여름의 기록>와 같은 시네마 베리테 영화가 “진정한 토킹 시네마(talking cinema)”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에 대한 해석이나 영화적 방법론은 찌가 베르토프뿐 아니라 동시대에 활동하였던 민족지 영화감독들이나 북미의 다이렉트 시네마 그룹들과 차별화된다. 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개념과 관련하여 장 루쉬와 찌가 베르토프의 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을 비교하자면, 찌가 베르토프는 영화적 장치에 의해 새롭게 포착되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재현 행위를 강조한 반면, 장 루쉬는 영화적 장치를 통해 변화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인지가 아니라 세계 자체라는 점을 중요시 하였다고 할 수 있다32). 또한 장 루쉬는 영화적 대상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카메라의 존재가 대상들의 행위를 촉발시키는 촉매제로 본 반면, 다이렉트 시네마 집단은 영화적 대상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카메라가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관찰자적 방식’을 택하였다. 이처럼 역사세계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 및 재현방식에 대한 차이점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장 루쉬에 의해 대표되는 시네마 베리테의 ‘참여적인 양식(participatory mode)’또는 ‘상호행위적 양식(interactive mode)’이 나타났으며, 북미에서는 디 에이 페니베이커(D. A Pennebaker), 프레데릭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이나 데이빗 메이즐스(David Maysles)가 주축을 이루는 아메리칸 다이렉트 시네마의 ‘관찰자적 양식(Observatory Mode)’이 나타났다.33)

       3) 자기성찰성(self-reflexivity)

    <어느 여름의 기록>의 시네마 베리테 개념과 관련하여 언급해야할 것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자기성찰성(self-reflexivity)’이다. 장 루쉬나 애드가 모랭은 자기성찰성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여름의 기록>은 <카메라를 가진 사나이>와 함께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자기성찰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로 손꼽힌다. 그렇다면 왜 장 루쉬는 <어느 여름의 기록>을 만들면서 자기성찰적인 영화의 구조를 선택하였을까?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본 장에서는 <어느 여름의 기록>과 자기성찰성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넓은 의미에서 ‘자기 성찰적’이라는 것은 사회과학자 자신이, 연구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며34), 중립적인 자세로 진실의 반영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양식에 대한 반작용 내지 반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35) 영화의 제작방식이나 영화텍스트의 구성과 관련하여 좁혀 말하자면, 성찰적인 영화란, “모든 영화제작의 과정을 영화텍스트 안에 포함시키는 것”36)이다. 즉, ‘성찰적’이라는 것은 “영화제작자가 의도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일련의 질문을 설정하고, 이러한 질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질문을 찾아가고 발견된 내용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시하게 된 인식론적인 가정들을 드러내는 것“37)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찰적인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메시지 뿐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빌 니콜스는 성찰적인 양식의 다큐멘터리가 다른 양식의 다큐멘터리보다 “영화감독과 관객 간의 절충과정을 강조한다”38)고 말하였다

    성찰성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영화의 객관성, 주관성, 리얼리즘의 문제 및 시네마-베리테의 개념과 연결된다. 성찰적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카메라가 직접적으로 리얼리티의 세계에 접근한다는 생각을 해체하고, 관객이 영화가 아닌 현실을 본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뒤엎는데 있다. 또한 성찰적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넘어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시하는 리얼리즘의 영화적 장치와 형식, 구조, 관습에 대해 질문하고 도전한다. 이처럼, 성찰적인 다큐멘터리영화가 ‘객관성의 신화’를 깨고 다큐멘터리영화 또한 객관적인 기록이 아닌, 영화감독에 의해 주관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다큐멘터리영화의 진실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시네마-베리테 영화 또한 실증주의 시각에서 재현 을 바라보는 시각을 부정하고, 영화이미지와 재현 대상 간의 지표적인 결속 관계에 의한 리얼리즘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자기성찰성과 시네마-베리테는 실증주의적인 시각이나 객관적인 리얼리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는 객관적인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영화적 진실’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의 시네마 베리테를 주장한 장 루쉬가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자기성찰적인 접근방식을 취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느 여름의 기록>은 형식면에서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성찰적 양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자기성찰성과 관련하여 <어느 여름의 기록>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이 자주 영화 속에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등장인물이 영화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종용하고 그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간다. 또한 두 영화감독이 영화를 기획하고 질문을 던지고 찾아가는 과정, 즉 재현의 구성 과정 및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과 영화의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제작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느 여름의 기록>은 자기성찰성의 특징을 지닌 영화로 규정할 수 있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소 긴 내용이지만, <어느 여름의 기록>의 자기성찰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인용하기로 한다:

    이어 마르셀린과 다른 여인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아침 출근을 하는 파리 시민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이러한 인터뷰 장면과 현장의 제작진의 모습을 여과 없이 관객에게 보여준다.

    또한 <어느 여름의 기록>은 노동자들이나 등장인물과의 대화. 알제리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인종차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장 루쉬와 애드가 모랭, 그리고 등장인물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끝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관객들이 보고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환기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영화내용은 영화제작의 참여자들이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화면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 영화제작과정과 성과에 대해 평가하고 토론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두 감독이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자신의 영화작업에 대해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어느 여름의 기록>은 ’영화에 대한 영화‘이며, 메타 텍스트적인 성격을 지닌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말 이후 자기성찰성의 성격을 가진 다큐멘터리영화가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나39), <어느 여름의 기록>이 만들어지던 1960년대에는 성찰적인 다큐멘터리영화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여름의 기록>은 자기성찰성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폴 헨리40)의 말 대로 영화의 제작과정을 등장인물 뿐 아니라 영화관객과도 공유하려 했다는 면에서 이는 앞서 논의한 ’참여적 카메라‘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네마 베리테의 근본적인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13)Morin, 2003, p.231.  14)<북극의 나눅>에 대해서는 이기중, 「북극의 나눅」, 커뮤니케이션북스(2008)를 참조할 것.  15)Rouch,“The Camera and Man”, Principles of Visual Anthropology. Mouton de Gruyter, 1974, p.82.  16)Yakir, “Ciné-trance: The Vision of Jean Rouch,” 1978, p.7.  17)Morin, op. cit, p.233.  18)Morin, ibid. p.233.  19)Henley, op. cit, p.148.  20)일명‘걸어가는 카메라(walking camera)’와 관련된 촬영기술의 측면에 대해서는 Henley, pp.157-61을 참조할 것.  21)Henley, op. cit, pp.171-72.  22)Eaton, Anthropology-Reality-Cinema, British Film Insititute, 1979, p.48.  23)앞의 책 참조.  24)Dillard, Living by Fiction, Harper & Row, 1982, p.32.  25)사실 영화제목도 원래는 애드가 모랭이 생각했던 <어떻게 사십니까?>라고 정했으나, 영화가 완성된 후 장 루쉬의 의견을 받아들여 <어느 여름의 기록>으로 바뀐 것이다.  26)Morin, op. cit, pp.232-34.  27)Morin, ibid, p.260  28)Morin, ibid, p.233.  29)Morin, ibid, p.233.  30)Henley, op. cit, p.152.  31)Morin, op. cit, p.252.  32)Henley, op. cit, p.148.  33)Nichols, Representing Reality, Indiana University Press, 1991; Introduction to Documentary, Indiana University Press, 2001.  34)Hammersley & Atkinson, “What is ethnography?”, Ethnography: Principles in Practice, Tavistock, 1983, pp.1-26.  35)Allen, “Self-Reflexivity in Documentary”, Cine-Tracts 1(Summer), 1977, pp.37-43.  36)Bank, “Which films are the ethnographic films?”, Film as Ethnograph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2. pp.120-21.  37)Myerhoff and Ruby, “Introduction,”, Crack in the Mirror: Reflexive Perspectives in Anthropology. University of Pennsylvania, 1982, p.5.  38)Nichols, Representing Reality, Indiana University Press, 1991, p.60.  39)대표적인 영화로는 <딸이 되는 의례(Daughter’s Rite)>(1978), <결혼과 낙타(Wedding Camels)>(1980), <재합성(Reassemblage)>(1982), <머나먼 폴란드(Far from Poland)>(1984), <얇고 가는 선(The Thin Blue Line)>(1988), <성은 비에트 이름은 남(Surname Viet Given Name Nam)(1989)과 같은 영화를 손꼽을 수 있다.  40)Henley, op. cit, p.151.

    4. 나오는 말

    <어느 여름의 기록>은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 ‘시네마 베리테‘를 탄생시킨 작품으로 손꼽히며, 장 루쉬의 영화경력에서 볼 때도 새로운국면의 시작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장 루쉬는 <어느 여름의 기록>을 만들기 전에 이미 서아프리카에서 많은 민족지영화(ethnographicfilm)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 영화계나 인류학계에 이름이 나있었다. 하지만 장 루쉬는 유럽에서 만든 첫 작품인 <어느 여름의 기록>의 개봉과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화적 방법론은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나 크리스 마르께르(Chris Marker) 및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와 같은 당시 뉴 웨이브 영화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이점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뤽 모예(Luc Moullet)는 장 뤽 고다르와 장 루쉬의 영화적 기법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고다르는 프랑스의 장 루쉬가 되기를 원했다”41)고 밝혔다. 장 루쉬에게서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뉴 웨이브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는 “장 루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모든 프랑스 영화의 뒤를 받혀준 힘이었으며, 프랑스 영화의 진화에서 고다르보다 더 중요하다”42)고 지적하였다. 또한 브라이언 윈스톤43)<어느 여름의 기록>을 일컬어“어떤 면에서 장 루쉬의 전체작품”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어느 여름의 기록>이 장 루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동사에 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어느 여름의 기록>에서 시도된 시네마 베리테의 영화적 방법론 때문이다. 장 루쉬는 <어느 여름의 기록>를 완성한 후 1963년, 1965년, 1966년, 파리에서 세 편의 픽션영화를 만들었다. 세 편의 영화 또한 시네마 베리테의 영화적 방법론을 픽션영화에 적용하려 한 일련의 시도이자, 장 루쉬가 <어느 여름의 기록>의 오프닝에서 말한‘시네마 베리테의 실험’이었다.

    본 논문은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밝히기 위해 <어느 여름의 기록>의 제작 배경, 기획 및 제작 과정, 그리고 영화텍스트에 나타난 영화적 방법론을 ‘참여적 카메라’, ‘촉매제로서의 카메라’, ‘자기성찰성’이라는 세 가지의 시각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특히 본 논문은 <어느 여름의 기록>의 제작에 주요 역할을 한 장 루쉬의 영화적 방법론에 보다 초점을 두었다. 또한 그의 영화제작방식 및 영화적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장 루쉬 자신이“토템적인 조상들(totemicancestors)”44)이라고 말한 찌가 베르토프 및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적 방법론과의 관계를 통해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 논문은 먼저 찌가 베르토프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을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 비교분석하면서 고찰하였으며, 이어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향으로 정립된 ‘참여적 카메라’의 개념이 어떻게 <어느 여름의 기록>에 적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장 루쉬가 명명한 ‘시네 트랜스’의 개념과 ‘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개념을 통해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밝히려 했다. 또한 본 논문에서는 ‘자기성찰성‘의 개념이 어떻게 시네마 베리테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어느 여름의 기록>은 자기성찰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반면, 자기성찰성과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본 논문에서는 자기성찰성의 개념 또한 시네마 베리테의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음을 밝혔다. 물론 여기서 필자는 모든 자기성찰성적인 영화가 시네마 베리테 계열의 영화라든가, 모든 시네마 베리테의 영화가 자기성찰성적인 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여름의 기록>에 나타난 시네마 베리테의 의미를 자기성찰성의 개념과 연관 지어 고찰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1960년대는 영화기술의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진 시대이다. 이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제작방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으며, 결과적으로 리얼리티와 영상적 개현을 바라보는 시각과 영화적 방법론의 차이로 인해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와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두 가지 상반된 영화전통이 탄생하였다. 이 가운데 시네마 베리테의 효시로 손꼽히는 <어느 여름의 기록>은 영화기술의 혁신과 시네마 베리테의 영화적 방법론 및 제작방식의 결합을 통해 일반 사람들의 일상의 경험을 보다 직접적으로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샘 딜로리오(Sam Dilorio)의 말처럼“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에 관한 생각을 영화로 옮기는 노력에서 그 이전의 영화보다 진일보한 영화”45)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영화적 리얼리즘‘을 실험한 영화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41)Henley, ibid, p.176에서 재인용.  42)Henley, ibid, p.176에서 재인용.  43)Winston, “Rouch’s “second legacy”, Building Bridges: The Cinema of Jean Rouch, Wallflower Press, 2007, p.298.  44)Rouch, “Our Totemic Ancestors and Crazed Masters”, Principles of Visual Anthropology, Mouton de Gruyter, 1974, pp.217-84.  45)Henley, op. cit, p.172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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