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의 일본 대상화 방식 및 효과 연구

A Study on the Peculiarity of Way and Effect of Representation Japan in <The Sea Knows>(Kim Gi-yeong,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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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In this study, I analyzed the film <The Sea Knows>, directed by Kim Gi-yeong in 1961, focusing on the peculiarity of narrative and expression aspects of early 1960s as a cinematic techniques. This film has positioned ‘Japan’ in the center of narrative elements including characters, cases, and backgrounds. It also focused on imaging the Japanese scenery, customs, and landscapes and embodying Japanese, especially Japanese female characters. Therefore, the film pursued for Korean public to relieve national resentment and also stimulated exotic nostalgia of Korean people towards Japan. This has accomplished box office success and also audience mobilization. Seen in this light, the film served as a cornerstone on the follow-up films of a similar pattern dealing with ‘Japan’ that were sparingly produced in 1960’s. After ‘performance images’ were disseminated to the public in the early 20th century, films have been continuously in an antagonistic relationship with Japan (Japanese) in Korea. The film <The Sea Knows> specifically delineated sweeping turbulence in the Korean history in early 1960s entailing with changes and reconstruction of the relationship with Japan.

  • KEYWORD

    Korean film , 1960s , Japan , Japanese , The Sea Knows , Kim Gi-yeong , Han Woon-sa , colonial memory

  • 1. 서론

    본 연구는 한국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의 ‘일본’ 대상화가 어떠한 표현 및 재현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또한 그것이 어떠한 파생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이 작품의 내용적, 형식적 특수성과 더불어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의 원작은 1960년 8월부터 1961년 1월까지 KBS 라디오(KA)에서 방송된 연속극으로, 해방 이후 라디오 연속극 사상 가장 높은 청취율을 올린 작품이었다.1) 극본은 당대 최고의 라디오 드라마 작가 한운사가 썼다. 이 작품은 영화화되기 직전인 1961년 5월 소설로 각색되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신문 지면을 통해 연재되기도 하였다. 2) 원작이 이처럼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서사가 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1945년 해방 이후 반복되어 온 ‘독립 운동가’라는 당위적 인물 설정에서 벗어나 한국 대중문화로는 처음으로 ‘식민지/제국’의 과거를 군국주의 침략 전쟁에 동원된 엘리트 지식인의 경험에 기반하여 다룬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 대한 대중적 반향 역시 다대하였다. 1961년 11월 10일 명보극장 개봉 이후 “십오만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하였음은 물론, 3) 1962년 3월 24일 열린 제5회 부일영화상에서 조연남우상(이예춘), 촬영상(최호진), 신인상(공미도리) 등 3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4) 또한 이미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에 관련 소식이 전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일본 현지 촬영을 강행하고 일본 출신의 재일교포 여배우를 주연급으로 섭외하는 등 파격을 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러한 데에는 당시 거의 유일한 대중 영상 매체로서 영화가 지니는 시청각적 특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동명의 라디오 연속극과 단행본과 신문 연재소설이 연이어 히트한 직후 영화화되었을 때는, 적어도 이 작품의 영상 버전에 관한 특성이 전제되어 있었을 터이다. 여기서 ‘일본’을 어떻게 대상화하고 재현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중심을 차지하였음은,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 쉽사리 유추 가능하다.

    4.19혁명 이후 한국 대중문화계는 여러 변화 양상을 경험하였는데, 5) 그 중에서도 일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시기보다 높아졌고 이는 소설, 가요 분야에서의 ‘일본(풍)’의 유행이라는 기현상을 낳기도 하였다. 일본 대중 소설과 가요가 암암리에 유통-소비되고 한국의 문학, 음악 작품 속에 일본(일본인, 일본어)이 표현-암시되는 사례도 늘었다.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도 이렇게 특수한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 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영화사는 동시기 또는 김기영 감독의 여타 작품들에 비해서도 이 영화를 특별히 주목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6) 이영일 정도만이 “특이한 사회문제를 배경으로” 하며 “일군의 비인도적 만행과 이 속에서 학대받는 조선학도병을 일본 여인이 사모하는 상황설정”을 통해 “한일 양국 간의 국교정상화 이전에 나온 한일 소재의 영화로 화제가” 된 작품 7) 또는 “1960년대 전반기의 흥미로우면서도 이색적인 작품” 8) 으로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9) 이러한 상황 속에 이 작품을 부분적으로나마 연구의 대상으로 포함시켜 1960년대 문화계에서의 ‘일본’ 현상에 대한 조명을 시도한 학술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 할 만하다. 10) 하지만 그 경우들조차도 거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 비평에서 필수적인 영상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파악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권보드래⋅천정환은 일본 대중문화가 갑자기 유행한 1960년대부터 김대중 정권 출범을 계기로 일본 문화 개방이 단행되는 1990년대 말까지 “문학은 ‘고급’으로 간주되고 영화나 음악은 ‘저급’이나 ‘대중’에 귀착”되어 수입에 대한 ‘허용/금지’의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11) ‘고급/저급’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야기 줄거리와 시간 구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장르인 소설과 영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은, 적어도 대중문화 교류 또는 전파/수용(수출/수입)에 있어 두 장르 간의 매체적 차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에 본고는 <현해탄은 알고 있다>가 영화화되면서 어떠한 ‘영화’ 적인 이야기 구조 및 캐릭터 형성을 통해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미장센과 프레이밍과 몽타주 등을 통해 어떻게 화면을 구성-조합하는지를 파악한다. 아울러 이 작품에서 일본의 풍물과 인물에 대한 표현기법 상의 특징이 어떠하며 이것이 문화, 산업,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함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하려 한다. 영화 작품 분석을 주요 방법론 으로 삼으면서 당대 신문 기사 확인을 통해 실증성을 높이는 한편 관련 선행 연구를 참고하여 연구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1)<[주간라디오] 종막 고하는 “현해탄은 알고 있다”>, ≪서울신문≫, 1961.1.22, 4면.  2)<한운사 작 아로운전 제1부: 현해탄은 알고 있다>, ≪한국일보≫, 1961.5.24, 4면.  3)<방송극과 영화>, ≪동알일보≫, 1962.7.22, 4면.  4)<부일영화상 15개 부문에 수여>, ≪경향신문≫, 1962.3.9, 4면.  5)허정 과도정부 시기 영화계의 경우를 예로 들면, “영화 단체의 정비와 민간영화 심의 기구의 설립을 추진하”는 등 “자기반성의 모습을 보였고 과거청산에 대한 움직임도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사회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이권 다툼 및 자기분열”이 자행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영화예술의 순수함을 추구하자는 목소리”나 “영화 평론 및 영화 저널리즘 활동”, 그리고 “뉴스영화와 기록영화를 중심으로 4.19혁명이 영화 작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일 등의 긍정적인 변화상이 많이 펼쳐졌다. 함충범, 「허정과도정부시기 한국 영화계 연구 -4.19혁명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26집,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88∼89쪽.  6)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호현찬은 1961년 개봉작들 가운데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 <연산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등에 집중할 뿐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는 주목하지 않는다.(호현찬, 『한국영화 100년』, 문학사상사, 2000, 130∼136쪽) 이효인 역시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장르”를 중심으로, 이 해 개봉된 영화들을 <춘향전>과 <성춘향>이라는 “같은 소재의 컬러영화”, <로맨스 빠빠>(신상옥 감독, 1960) 계열의 코미디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과 같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노다지>(정창화 감독)나 <오인의 해병>(김기덕 감독) 등의 액션 영화 또는 전쟁영화, <상록수>(신상옥 감독)를 대표작으로 하는 계몽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오발탄>, <마부>(강대진 감독), <돼지꿈>(한형모 감독) 등 일련의 “사회성 짙은 멜로드라마”로 구분한다.(이효인, “제1부 1960년대 한국영화”, 이효인 외, 『한국영화사 공부 1960∼1979』, 이채, 2004, 12∼15쪽) 정종화의 경우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세명의 작가감독”으로서 유현목, 신상옥과 함께 김기영을 드러내면서도 대표작으로 <하녀>(1960)만을 내세운다.(정종화, 『한국영화사』, 한국영상자료원, 2007, 127쪽) 한편 정중헌은 김기영 감독의 다른 연출작들과 함께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소개하면서도 “학도병인 조선 청년으로 하여금 인분을 묻은 자신의 군화 밑바닥을 핥게 하는 일본군 모리의 행위”를 통한 “김기영 특유의 가학성 음란증(세디즘)”을 강조하는 선에서 설명을 멈춘다.(김종원⋅정중헌, 『우리영화 100년』, 현암사, 2001, 290∼291쪽)  7)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351쪽.  8)이영일, 『한국영화주조사』, 영화진흥공사, 1988, 432쪽.  9)이영일이 이 작품과 함께 예로 들고 있는 영화로는 정진우 감독의 <국경 아닌 국경선>(1965), 김기풍 감독의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1965), 이봉래 감독의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1965) 등이다.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351∼352쪽.  10)김예림, 「불/안전국가의 문화정치와 포스트콜로니얼 문화상품의 장 : 1960년대 영화와 “현해탄 서사” 재고」, 『현대문학의 연구』 42집, 2010. / 오영숙, 「한일수교와 일본표상: 1960년대 전반기의 한국영화와 영화검열」, 『현대영화연구』 10호,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2010.  11)권보드래⋅천정환, 『1960년을 묻다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상상, 2012, 546쪽.

    2. 인물 형상화의 특징 및 다양한 일본인 설정의 허와 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주인공인 조선인 학도병 아로운이 자신이 배속된 부대가 위치한 일본에 건너가 모욕과 탄압을 당하고 계략을 통해 위기를 맞이하면서도 일본인 여성 히데코를 만나 위안을 얻고 애정을 나누며 끈질기게 생존하는 과정을 중층적으로 그린다. 또한 그 외부에 미군의 나고야 공습이나 일본군의 남양 출격 등의 공적 역사가 덧입혀짐으로써 아로운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의 삶이 사실성을 띠며 복합적으로 박제화된다. 다음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 구조이다.

    영화는 조선인 학도병들을 태운 수송선이 ‘현해탄’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가운데는 ‘요주의 인물’ 아로운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군 간부들은 “고이소 총독 각하” 12) 에게 대든 경력이 있는 그를 대화의 화제로 삼으며 주시한다. 구슬픈 음악 속에 현해탄 바닷물 화면 위로 영화 타이틀과 주요 배우 및 스텝 이름이 쓰인 자막이 올라간 후 인트로가 일단락되면, 영화는 ‘1944 日本 名古屋’이라는 자막을 통해 1944년 일본 나고야로 구체적인 시공간을 명시하며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메인 플롯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향하는데, 하나는 조선인 학병인 아로운이 일본 군인들의 멸시와 계략을 극복하며 군대 내에서 어떻게 ‘생존’하느냐에, 다른 하나는 조선인 남성인 그가 일본인 여성 히데코와 만나고 통하고 어떻게 ‘사랑’을 실현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조선인이면서 일본군인인, 피식민지 출신이면서도 지식인인, ‘열등한’ 남성이면서도 일본인 여성과 사랑을 하는 아로운은 이름만큼이나 외로운(alone) 존재인 듯 비춰진다.

    하지만 여느 서사물의 경우처럼 이 작품에도 주인공을 둘러싼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이 등장한다. 주요 주동인물로는, 부대 내에서는 아로운과 같이 입대하여 그와 함께 일본 사병들에게 갖은 고초를 겪는 리노이에가, 부대 밖에서는 아로운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보듬어주는 히데코가 있다. 아로운과 비슷한 처지에서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웃음을 유발하고 결국 승진하여 그들을 괴롭히던 모리를 혼내주는 리노이에를 통해 영화는 일본(인)에 의한 민족적 가학을 상쇄시키고 심지어는그 원한을 일정 부분 해소해준다. 보통의 일본인과 같이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히데코는 아로운을 만나면서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의 애정을 키워 나가는데, 이를 통해 영화는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주선한다. 13)

    이들 외에 일본인 출신의 군인이면서도 아로운을 비롯한 조선인 학병 편에 서 있는 나카무라 일등병과 스즈키 이등병은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 관여하며 아로운의 생존과 사랑을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나카무라의 경우, 아로운처럼 대학을 나온 점잖은 사람으로서 더구나 아로운의 고교 선배이자 군대 선임으로서 지식인 그룹의 동질성을 암시하는 한편 다른 병사들이 ‘색싯집’에서 게이샤와 함께 외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를 데리고 친척집을 방문하여 자신의 친척 여동생 히데코와 인연을 맺는 기회를 제공하는 인물로 나온다.

    한편, 주요 반동인물로는 조선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선임병 모리와 헌병대장 미야모토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따르는 후임 및 부하 병사와 함께 아로운을 괴롭히고 위기에 내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구분되는 부분도 엄연히 존재한다. 모리의 경우 인성과 학식의 부족함, 그리고 이로 인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 언행이 미숙하여 도리어 자신이 당하면서 때때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반면, 미야모토의 경우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적대적 감정에 철저히 사무쳐 있는 바 다분히 맹목적인 수준에서 조선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인물로 제시된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 간의 신분-계급 설정으로도 연결되는데, 모리는 농민 출신으로 언젠가는 간부후보생으로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될 조선인 학병의 예정된 부하인 반면, 미야모토는 군인의 ‘경찰’인 헌병 그것도 대장으로서 언제까지나 조선인을 감시⋅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리는 부대 내에서 계급의 한계를 실감하는 데 반해 미야모토는 임신 중인 히데코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녀의 모친을 칼로 베어 죽이는 등 민간인에게도 잔인하게 권력을 휘두른다.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차이가 모리와 미야모토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모리의 경우 남양 출정을 피하기 위해 스즈키를 위협하여 일부러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부상을 입고 ‘사고사’하는 데 반해, 미야모토의 경우는 장검으로 아로운을 베어 죽이려고 좇다가 그의 방어 행동에 불에 타 죽으면서 ‘처단’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불평이 많은 조센징”을 ‘성전(聖戰)’의 “총알받이”로 위치시키며 그들을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하면서도 군대의 규율과 원칙을 우선시하며 ‘쓸모 있는’ 그들을 포섭하려는 수송부대장 사이토나 중대장 사루하다와 같은 장교들과, 모리의 언행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그가 조선인 이등병을 괴롭히는 것을 자극하거나 혹은 나카무라의 주변에서 악당 보다는 정의의 편을 선호하는 듯 보이는 일본인 사병들, 그리고 히데코의 어머니처럼 군인은 아니지만 조선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 채 아로운을 경계하고 자신의 딸을 못마땅해 하는 여러 종류의 일본인도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일제강점 말기 일본 본토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는 한편 조선인 학병과 일본인 여성의 ‘한일연애’라는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는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해방 이후 일본(인)을 다룬 여타의 영화들과는 달리 일본인을 모두 악인으로 전형화하지 않는 대신 인물형을 보다 세분화하여 주동인물들과 반동인물들을 보다 다양하게 그려낸다. 아울러 일본인 군인 중에 상당수의 배역 비중을 줄이면서 미묘하게 중립적인 자리에 위치시키고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민간 대중들을 히데코와 같은 입장으로 집단화시 키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과거 일본(인)의 행동에 대한 층위를 가늠하고 평가하게 하며 일본(인)과의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한다.

    반면, 그것들이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영화 속 이야기 개연성은 자연스레 약화된다. 모리와 미야모토, 히데코의 어머니의 태도에 대해서는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탄압, 경멸, 무시라는 시대적인 사실성과 결부시켜 이해한다 하더라도, 나카무라나 스즈키처럼 조선인 편에서 있는 일본인 병사의 사정과 동기가 불분명하다. 특히 아로운의 2세를 임신하기까지 히데코가 어떠한 계기로 조선인에 대한 그동안의 인상을 바꾸고 그의 여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나아가 주인공 아로운과 리노이에가 무슨 의식과 사상을 토대로 용기 있게 일본인과 맞서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유나 원인이 부재하다. 영화에 서는 간혹 아로운의 내레이션이 보이스 오버로 흐르기는 하나, 그 내용이 다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데에는 작품의 영상화 과정에서 강조되고 덧입혀진 관객성에 기인한 대중적 요인이 작동되어 있다. 196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관람객은 이전까지의 중장년 여성층 이외에도 동시기 젊은 세대를 포함하게 되었으나, 이우석의 주장에 따르면 이른바 ‘청춘영화’ 의 경우조차 주요 관객층은 “농촌을 떠나” 상경한 “도시하층민”들이 었다. 14) <현해탄은 알고 있다> 역시 당시 ‘방화관’ 중에 하나였던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 작품이 특수한 소재를 지녔다고는 하나 그것이 영화화되면서 저학력의 서민 계층이 주를 이루던 보통의 한국영화 관객층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음이 어렵잖게 추정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일까. 영화는 작품의 주제성을 특정 ‘역사’나 ‘민족’이 아닌 ‘생존’이나 ‘사랑’ 등으로 보편화하면서 서사 구조의 정교함 대신 시각 이미지의 오락성을 보다 부각시킨다. 인물 형상화에 있어서도 인간적 성격, 세상에 대한 가치나 사상, 타인과의 관계 등에 따른 내면의 세계보다는 외모와 말투와 대화와 행동에 의해 단순하고 과장되게 캐릭터가 구축되는 경향을 띤다. 물론 시청각적 자극을 통한 ‘볼거리’ 위주의 영화적 흥행 전략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내러티브만큼이나 표현기법 상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 존재한다.

    12)실제로 1942년 5월 29일부터 1944년 7월 24일까지 재임한 제9대 조선총독은 육군 대장 출신으로 조선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2년여 간 총독 생활을 한 뒤 곧이어 일본 내각 총리대신 자리까지 오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였는데, 영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영화에서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13)이에 대해 오영숙은 “내적⋅외적으로 고운 일본 여성으로 하여금 한국인 남성에게 순정을 바치게 하고 희생적 삶을 살게 만드는 서사는, 일본이 갖는 매혹은 부각시키면서 일본 스스로 자신의 죄과를 사죄케 함으로써, 일본을 바라보는 이중적 심리의 모순들을 상상적으로나마 극복하고 싶어 했던 대중들의 심리에 대한 일종의 미메시스라고”(오영 숙, 앞의 논문, 289쪽) 해석한다. 일리 있는 설명이긴 하나, 영화 매체에서 ‘멜로’가 갖는 특징을 살펴볼 때 연애나 결혼의 서사는 다분히 필수적인 내러티브 장치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그렇기에 양 국민(혹은 민족) 사이의 연애나 결혼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 자체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각 영화가 ‘어떻게’ 양 국민(혹은 민족)의 연애나 결혼을 묘사하는가 하는 부분에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이다.  14)이우석, 「1960년대 청춘영화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 중앙대 석사논문, 2003, 29쪽 및 31쪽.

    3. 일본풍의 시각적 강조를 통한 관객성의 소구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영상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고 장치를 마련하여 시각적으로 ‘일본풍’을 강조함으로써 나름의 흥행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 대해 주로 영화의 장면화(mise-en-scène) 및 화면구성(framing)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캐스팅에 있어 당시 활약 중에 있던 유명 배우들을 주로 조연 또는 단역으로 배치하고 주인공 아로운 역을 1939년생 데뷔 신인인 김운하에게, 비중 있는 리노이에 역을 인지도가 약한 이상사에게 맡기는 등 “주요 캬스트”에 있어 신선한 변화를 시도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5) 모리 역은 동시기 악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예춘이, 16) 미야모토 역은 중견 배우로 활동하던 박암이, 나카무라 역은 신사적 인상의 주연급 배우 김진규가, 히데코의 모친 역은 중산층 부인 풍모의 주증녀가 맡았다. 김진규와 주증녀는 1960년 11월 3일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도 나란히 주인공 부부 역할을 소화한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 학병을 관리하는 수송부대장 역에는 1960년대 대표적인 서민 아버지 역할을 도맡던 김승호가, 소속 부대 중대장 역에는 액션 배우로 명성을 구가하던 박노식이, 모리의 계책에 따라 아로운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잠시 유치장에 투입되는 졸병 역에는 희극 배우로서 인기몰이를 하던 양훈이 낙점되어 연기하였다.

    특히 당대 이미 스타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던 김지미에게 잠시 등장하는 경숙 역을 맡긴 데 반해, 여주인공 히데코 역에 재일교포 출신의 공미도리(孔美都里, 본명 공순경)를 낙점한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이름은 영화 필름 상의 자막에도, 포스터 그림의 지면에서도 부각된다. 또한, 8월 18일부터 있을 영화 촬영을 위해 그녀가 방한(訪韓)하여 숙소에 여장을 풀거나 17) 한국에서 촬영을 마치고 ‘귀일(歸日)’하는 소식이 신문 지상에 전해질 정도로 18) 그녀의 연예계 활동은 이미 영화 개봉 이전부터 커다란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였다.

    그만큼 영화의 홍보와 흥행에 있어 여배우 공미도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커 보인다. 한일 교류가 거의 없던 시절, 재일교포라는 신상은 보통의 관객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그녀는 일본 여성에 대한 판타지적 이상을 발산한다. 자신이 택한 남성을 위해서는 가족의 반대와 목숨의 위협을 불사하는 담대함과 강인함을 보이면서도, 차분하고 얌전한 이미지와는 달리 처해진 상황과 환경에 망설이는 아로운에게 먼저 다가가 신체적 접촉을 통해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하기 때문이다. 19)

    이러한 장면은 모리, 리노이에 등이 게이샤(芸者)들과 시간을 보내는 색싯집 신의 모습과 함께, 그러면서 조금은 색다르게 성적 상상을 유도하며 주의를 집중시킨다. 관객의 입장이라면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재일교포 출신 공미도리를 일본 여배우를 대표하는 존재로 동일화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이 한국인 남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성적인 교감을 이끈다는 설정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하였을 수도 있다. 나아가, 흔히 ‘제국/식민지’ 관계를 ‘남성/여성’으로 의인화하여 구별 짓는 데 대한 전복의 경향도 드러난다.

    특히 일본 남성으로부터의 학대에 대한 사과와 위로를 일본 여성에게 받는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인들에게 공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아로운의 내레이션을 통해서도 엿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극 중 다른 인물의 사례를 통해 보다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승급을 한 리노이에가 유치장에서 근무하는 아로운을 찾아와 모리를 ‘매다 꽂은’ 사실을 자랑한 후 아로운이 그에게 훈련소에서 사고가 있었냐고 확인하고 그 이유가 일본 여성 때문이냐고 묻는 장면에서 리노이에 역시 일본인 여성과의 연애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러면서 리노이에는 “일본 녀석은 미워도 일본 여자는 좋드래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천연덕스럽게 털어놓는다.

    둘째,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일본의 풍물과 풍경이 다채롭게 전시된다. 여기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경험으로 공유하면서도 역사적 격동을 통과하며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던 제국주의 일본 및 식민지 말기 전시의 모습과, 비록 과거로 설정되었을지언정 1961년 ‘현재’에도 지속되던 이웃 나라이면서도 가장 먼 나라인 일본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장소 세팅과 의상, 분장, 소도구 활용을 통해 일본의 군부대와 가옥, 군복과 기모노, 식기와 악기 등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특히 히데코와 그녀의 모친이 착용하는 여성 전통의상과 가정 내에서의 평상복, 전시에 장려되던 일명 ‘몸뻬(もんペ)’ 바지, 경숙이 입고 있던 여학생복, 색싯집 게이샤들의 화려한 치장 등은 극적 사실성을 강화하는 한편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히데코의 집에 마련되어 있던 히나마쓰리(ひな祭り) 장식과 그 앞에서의 그녀의 춤, 그리고 일본 전통 현악기의 연주 장면 및 음악 또한 시청각을 자극한다. 영화는 이렇게 여성 중심의 일상 장면을 통해 남성 중심의 군대 장면에서 기대할 수없는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자연스레 표출시킨다.

    영화 속에 일본영화의 구체적인 장면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모리의 ‘똥 사건’ 이후 미야모토의 “가는 길에 잠바라 영화나 봐. 일본도의 세력을 알게 될 테니까.”라는 말에 아로운은 영화관에 들른다. 스크린에는 일본에서 전설적인 검객이자 예술가로 추앙받게 된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난투 장면이 한창이다. 미야모토무사시(1584∼1645)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곳에서 검술을 익혀 쌍검을 사용하는 검도인 니토류(二刀流)를 개발하고 니텐이치류(二天一流)의 시조가 된 일본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실존 인물로서, 특히 일본 무도의 비법을 기록한 그의 병법서인 『고린쇼(五輪書)』가 유명하다. 60여 차례나 되는 결투에서 전승하였다고 전해지는 최고의 검술가이기에 근대 이후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문예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소재화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21)

    무엇보다 나고야 시내의 전경이나 대표적인 장소, 나고야성 등 문화유산의 경치가 일본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이들 이미지는 주요 시퀀스나 신이 전환되는 지점에 인서트 쇼트로 삽입되어 보는 재미의 강도를 높여준다.

    사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일본 여성 히데코 역을 맡을 배우를 정하기도 전에 도일(渡日)하여 약 40여 일 간 나고야 시와 치타(知多) 반도 일대에서 “영화의 배경과 인써트로 쓰여질” 장면을 촬영한 후 국내 로케에 돌입한 바 있었다. 22) 그런데 5.16으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김기영 감독 일행이 “최초의 일본 로케를 감행한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매우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음이 주목된다. 23)

    셋째,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체로 다양한 크기 및 움직임의 변화를 통해 여러 인물과 사건을 주목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내무반, 식당, 휴게실, 상황실, 영창 등 부대 곳곳에서 발생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렌즈를 돌리면서도 롱 쇼트와 미디엄 쇼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집단화된 공간 속에서 군인 개개인의 표정과 감정을 포착한다. 이러한 몽타주의 활용으로 ‘군대’로 상징되는 전체주의 일본 군국주의(일본 군대 50년 전통)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식민지 조선인 학병) 간의 가치의 충돌이 가시화된다.

    줌과 트래킹을 이용한 시선의 확보 또한 특징적이다. 물론 신이 바뀔 때 줌 인이나 트래킹 인으로 대상에 다가가거나 줌 아웃이나 트래킹 아웃을 통해 상황을 드러내는 장면전환 기법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인 리듬의 조율을 저해하고 있다는 단점도 눈에 띄지만, 히데코의 집 곳곳이나 색싯집 등의 공간을 역동적으로 훑는 화면은 마치 정물화처럼 찍힌 나고야를 담은 인서트 장면의 밋밋함을 보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와 같이,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인물, 사건, 배경 등 서사 요소의 중심에 ‘일본’을 위치시키면서 일본인, 특히 일본 여성의 형상화와 일본 풍물과 풍경의 이미지화를 통해 한국 대중의 공감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일본에 대한 이국적 향수를 자극한다. 이를 통해 오락성을 확보하고 관객을 소구하는데, 이는 영화의 상업적 속성에 기인한 특정 소재의 대중화라는 매체적 특성이 작품 내에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5)<주역에 모두 신인 픽⋅업 현해탄은 알고 있다 촬영 개시>, ≪동아일보≫, 1961.7.13, 4면.  16)이예춘은, 이 영화로 앞서 언급한 제5회 부일영화상 외에도 같은 달 30일 개최된 제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최우수 국산영화상 대종상 수상식>, ≪동아일보≫, 1962.3.31, 3면.  17)<구김살 없는 동경 아가씨>, ≪동아일보≫, 1961.8.17, 4면.  18)<공항왕래 출국 18일>, ≪경향신문≫, 1961.9.19, 2면.  19)영화에서 아로운의 팔을 터치하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욕실에서 등을 닦아주는 것도, 얼굴을 비비는 것도, 볼에 입맞춤을 하는 것도, 포옹을 하는 것도 모두 히데코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헌병대에 출두하여 신체 접촉에 대한 심문에 당당히 대답하며 “키스의 기술”을 보이라는 야마모토의 요구에도 서슴지 않고 소등을 요청한 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한다.  20)녹음용 대본에는 존재하나, 사운드 필름의 소실로 현존 필름을 통해서는 들을 수가 없다.  21)문학 분야에서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연재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가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제작된 무려 10편의 모든 미야모토 무사시 소재 영화의 원작이 되었다. 이렇듯 미야모토 무사시는 특히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는데, 전전(戰前)의 경우만 하더라도 1929년 이노우에 긴타로(井上金太郎) 감독의 <미야모토 무사시>부터 1944년 기쿠치 칸(菊池寛) 각본,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감독의 <미야모토 무사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12편의 작품이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인명에 약간의 단어를 조합해가며 다양한 제목의 영화화되었다.  22)<현해탄은 알고 있다 국내 『로케』 시작>, ≪동아일보≫, 1961.6.24, 4면. / 김기영 감독 일행의 귀국 시점은 6월 3일이었다. <공항일기 3일 상호 입국>, ≪동아일보≫, 1961.6.4, 3면.  23)<61년의 국내 영화>, ≪동아일보≫, 1961.12.21, 4면.

    4. 일제강점기에 대한 사실 재현의 시도와 역사 의식의 한계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이 작품이 시간의 흐름 및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띠어 간다는 점이다. 영화를 통한 역사 재현 시도의 일면이라 할 만하다.

    첫 번째로, 영화는 처음부터 시공간적 배경은 물론 ‘고이소’ 총독의 이름과 ‘13부대’ 등의 이름을 노출시키며 역사적 사실과 연계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당대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과 태도를 스테레오타입화하여 드러낸다.

    인물형에 있어 아로운과 히데코를 비롯한 주동인물을 괴롭히는 반동인물의 경우, 악인으로서의 비중이 ‘일본군 전통 50년’을 운운하면서도 실상은 권력 구조의 하부에 위치하는 농민 출신으로서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 모리에서 ‘일본 정신’으로 무장된 채 ‘일본검’의 위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차별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조선인을 경멸하는 미야모토로 옮겨 간다. 그렇기에 모리와 미야모토의 광기와 죽음에 대한 영상 표현 또한 둘 모두 과장적이지만 모리보다 미야모토 편이 그 정도가 더욱 심하게 이루어진다.

    물론, 조선인에 대한 선입견과 거부감은 일부를 제외한 여타 일본인 등장인물들에게도 공유되어 있다. 특별하게 조선인을 싫어하거나 아로운을 위기에 넣으려고 하는 인물에 속하지 않는 사루하다 중대장 역시 영화 초반에서부터 ‘조선인은 불만이 많다’고 강조하며 조선인도 일본군이 될 수 있느냐는 부하의 질문에 일본군에는 개도 말도 있다고 대답한다. 히데코 역시 아로운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옆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 범인은 보나 마나 ‘할 일 없는 조선인’일 거라며 편견을 드러낸다. 그녀의 모친의 경우 구체적인 이유 없이 아로운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딸과 그의 교제를 격렬하게 반대한다. 심지어는 색싯집에서 리노이에를 상대하는 여성조차도 그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이렇게 작품에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 의식이 표출되며 이는 모리, 미야모토 등의 악인은 물론 히데코와 같은 긍정적 인물의 언행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모리나 미야모토처럼 조선인에 대한 증오의 강도가 높은 사람들과 보통의 일본인들처럼 일상적 편견을 지니는 사람들과 나카무라 등과 같이 그것이 없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는지에 대한 원인과 배경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히데코의 경우 어떠한 계기나 이유로 조선인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두 번째로, 볼거리의 측면에서 카메라의 초점이 나고야 시내의 평화롭고 이국적인 거리 장면이나 문화유산 등에서 갈수록 급박하고 치열한 태평양전쟁 중의 전투 또는 폭격 장면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고야 공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개입되며 폐허가 된 시내 장면이 화면에 펼쳐진다.

    영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치열한 전투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거나 재현된 전시 다큐멘터리 필름 및 모형 세트 특수 촬영 등을 이용하여, “또한 이 영화의 B29 폭격 장면을 찍기 위해서 한국에서 최초로 미니츄어 촬영을 시도”함으로써 점차 화면을 채우고 시청각적 감각을 장악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스펙터클을 극대화한다. 24)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으로 설정되어 내러티브의 한 요소로서 기능하기도 하나, 25) 스토리와의 연관성 정도나 화면 연결 상의 흐름에 비해 다소 긴 시간 과도하게 등장하는 편이다. 26)

    그러면서 이 작품에서는 “시선의 기하화이며, 상상적인 축, 즉 예전에 사람들이 믿음의 선 ligne de foi이라고 부른 바 있는 관념적 선 위에서 시각을 기술적으로 정렬시키는 방식” 27) 인 이른바 ‘조준 행위’의 주체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즉, 영화에서 특수세트 촬영 및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구성된 전투 장면은, 그것의 시선 및 시점이 일본군 또는 연합군(미군)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영화에 삽입된 전투 장면은 제3자의 관점으로 비춰지며, 이를 통해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은 따로 없으며 전쟁 그 자체가 인간의 생존과 사랑과 삶의 행복과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점이 부각되는 듯하다.

    이는 전쟁을 대하는 영화 속 조선인 학병들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관념적이어서 고독해 있는 아로운이나 진지하지 못한 채 다소 충동적 성향과 가벼운 행동을 보이는 리노이에 등 조선인 학병들의 모습에는 그들이 동원된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나 판단이 투영되어 있지 않다. 가령 미군의 나고야 시내 공습 장면에 대해, 민족주의 관점에서 식민지 현실로부터의 해방 실현을 위한 당위적 옹호 혹은 일본 군복을 입은 개별 군인의 처지에서 대량 살상에 대한 인륜적 차원의 반대 중에 어느 쪽도 대변하지 않는다. 이들의 존재성은 개개인으로서 자신의 생존이 달려 있는 전투 장면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조선인 학병으로 시대를 대표하며 태평양전쟁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전하는 데에서는 약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 재현을 통해 과거 ‘식민지 시기’를 충실히 묘사하나, 그 바탕이 되는 ‘일제 강점’에 대한 역사 해석과 의미 부여가 제대로 병행되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영화 속 조선인 학병의 역사관과 시대 인식은 희미하고 모호하다. 가령, 아로운이 자기 고백적으로 생각을 드러내는 장면의 내레이션 내용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유보된 채 생존 본능 위주의 현실 도피성의 사변만이 제시됨으로써 주어진 상황에서 다소 빗겨나 있는 경향을 띤다.

    그 대신, 영화는 아로운 등 조선인 학병의 사상을 지나치게 인류보편적인 것으로 치환해 버린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 또한 방향성을 잃은 채 실존의 일면만을 천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에 과거 식민지 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과 해석에 객관성이 유지되거나 중립성이 보장되거나 정당성이 표명되지 않을 것임은 당연하다. 반대로 해방 이후 15년간의 한국 역사에 각인되고 적립되어 오던 제국주의적 힘의 원리에 대한 용인과 그러한 사고방식에의 경도의 가능성을 개방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과 거북함을 경험케 할 가능성을 봉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아로운은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실천하려 한다. 예를 들면, 고참과 졸병이 같은 대우를 받고 그들은 서로 인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조선의 독립이라기보다는 비료로 쓰이는 콩깨묵을 먹는 조선인과 밥을 먹는 일본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다소 비약적으로 말하면 일제말기 일본의 ‘대동아공영’의 논리를 내면화한 당대 조선 지식인들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러한 점은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교제 및 교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아로운과 히데코의 발언을 통해서도 발견된다. 그들의 논리는 남성과 여성의 자유연애를 보장하는 ‘인류평등’의 차원에 두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 간 사랑의 계기 또는 인간적 감성 보다는, 인종적 호기심 또는 생물학적(진화론적) 근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이 ‘근대적’ 팽창-침략 정책의 이론적 토대로 삼은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적 논리를 연상 시키며 제국주의의 잔재를 엿보인다는 데 문제점이 존재한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영화화 단계에서부터 지식인층을 ‘문화 소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냈으며 따라서 작품에는 여전히 당시 한국 사회에 잔존해 있던 일제강점기 한국인 엘리트 계층의 무의식이 묻어 있기도 하다. 일례로 아로운이 히데코와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받던 다방 신에서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내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맛본 게 똥맛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쓸모있느냐는 헌병대장 미야모토의 질문에, 부대에서는 자동차를 소중히 여기지만 자기는 자신의 운전 실력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애초 이 작품은 비교적 고학력자 계층이 주요 라디오 청취자와 책 독자층으로 설정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그것이 영화화되면서 당시 한국영화의 주요 관객층을 형성하던 서민층까지를 소구하려 하였을 것이나, 동시에 일제강점기 학교 또는 군대에서 제도화된 일본식 교육을 받았던 이들을 겨냥한 차별화된 장면 또한 과감하게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는 개인적 경험에 대한 환기와 호기심 자극을 통해 보다 넓은 계층에 대한 관객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표출되었을 터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 대중에게 왜곡된 역사 기억이나 상대적 소외감 등 의도치 않은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요한다.

    물론, 작품 내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방어 기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와 보통의 일본인들을 구분한다. 이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집약되어 나타난다. 나고야 시내 공습 후 가족의 시체를 찾으려는 시민들을 막아서는 군인들이 사망 확인을 허락지 않은채 시체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모습, 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 걸어오는 아로운의 모습과 오열하는 일본 시민들의 모습이 교차로 편집되면서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즉, 영화는 일본 대 한국을 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 전체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가치의 차이를 역설한다. 따라서 같은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일본 군대 50년을 떠받드는 모리나 철저하게 천황제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미야모토의 경우 악인으로, 지식인 답게 점잔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나카무라 같은 사람은 긍정적으로, 아울러 히데코의 모친처럼 단순히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고통을 감수하는 보통의 일본인들은 군국주의 시대의 피해자로 묘사한다. 특히, 일본의 검술을 맹신하고 순수한 혈통을 강조하며 조선인을 처단하기위해 사력을 다하는 미야모토의 최후의 순간이 일본 공습 시퀀스로 몽타주되면서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 제국의 무모함이 일본인들의 피해를 불렀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비록 식민지 조선인이라 할지라도 정규 교육을 거쳐 국가 조직에 편성된 지식인 엘리트 계층은 평범한 일본인만큼의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근대적 제도의 혜택을 받은 조선인은 아로운과 같이 일본인 여성을 차지하는 일도 가능하며, 리노이에처럼 보통의 일본인보다 높은 계급에 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대적 제도’란 결국 어디에서 온 것인가. 제국주의가 제시한 ‘문명’의 조건에 합의하여 민족성을 변용하는 한편, 차별의 논리를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던 일제말기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 보여짐은, 영화가 제작된 196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제국주의적 원리가 잔존하는 한편 거기에 과거 ‘식민지 시기’의 잔영이 도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28)

    24)<주역에 모두 신인 픽⋅업 현해탄은 알고 있다 촬영 개시>, ≪동아일보≫, 1961.7.13, 4면.  25)영화에서 연합군과 일본군의 공중 전투 및 연합군의 나고야 시내 공습 장면은 세 곳정도 나오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플롯 내용을 담은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 연합군의 공습으로 공장에서 폭사한 히데코 아버지의 영전 앞에 앉아 있는 히데코 모녀의 모습. 두 번째 - 나중에 아로운이 근무하는 영창에 들어오는 미군 병사 2명의 재판 광경. 세 번째 - 아로운이 속한 부대의 출정 준비 과정.  26)영화에는 주요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군부대임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시퀀스가 전환될 때마다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계를 지니지 않는 나고야 시내 풍경이 인서트 쇼트로 삽입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27)Paul Virilio(폴 비릴리오), 권혜원 역, 『전쟁과 영화: 지각의 병참학』, 한나래, 2004, 62쪽.  28)이와 관련하여, “1960년식 ‘민족’과 ‘자유’의 주체였던 대학생들”에 주목하며 “그들은 한편 미국⋅일본⋅유럽 문화에 ‘환장’하면서도 민족적 열등의식과 종족본질론에 들씌워진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점에서“1960년대 한반도 남쪽에 살던 신식민지인은 분열적이었다”는 권보드래와 천정환의 설명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권보드래⋅천정환, 앞의 책, 516∼517쪽.

    5. 결론

    지금까지 영화 비평에서 필수적이고도 중추적인 영상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과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하며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의 ‘일본 대상화’ 방식과 효과를 탐구해 보았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세 가지 차원에서 이 작품의 영화적 특수성을 확인하였다. 우선, 내러티브 상 극적 긴장감 생성을 통한 오락성의 확보를 위해 다양한 ‘일본인’을 다소 과장되게 묘사한다. 다음으로, ‘일본풍’의 시청각적 전시에 의해 대중적 공감의 확보와 이국적 향수의 자극을 시도하며 관객을 소구한다.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적 사실을 고증-재현하고는 있으나 역사적 관점과 인식이 제대로 표명되지 못한다.

    로버트 W. 그레그(Robert W. Gregg)는 제국주의-식민주의 관련 영화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식민주의 열강의 편에 서거나, 제국의 전초기지를 지키는 군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다룬 영화이다. 둘째, “독립을 쟁취하려는 피식민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셋째, “식민종식을 위한 투쟁을 그린 영화”로서, <인도차이나 Indochine>와 같이 “지나치게 역사적 이야기에 얽힌 로맨스를” 담은 영화이다. 29) 그는 첫째와 둘째의 경우 “두 종류의 영화에서 민족주의는 식민제국을 해체 또는 분해시키는 중요한 소재로서 주목받는” 반면, <인도차이나>가 속한 셋째의 경우 “식민통치의 용해제로서의 민족주의를 다룬 많지 않은 영화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굳이 따지자면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세 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흔하지 않은 편에 속하는 작품이다. 4.19혁명의 기운 및 여파, 5.16 군사정권의 초기 대민⋅외교 정책, 문화적 호기심에 대한 대중적 요구 등 시대의 영향에 따른 측면이 컸던 것으로 보이나, 라디오 원작 자나 영화 감독의 연출 방향 및 의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원작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30) 한운사는 이미 신문, 잡지 기사나 책 지면 등을 통해 “탈식민주의”를 표명하였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히데코의 경우 이미 원작에서부터 ‘일본인’을 넘어 ‘여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고도 볼 만하다. 31) 그런데 김기영 감독에 의해 관객성이 개입됨으로써, 작품 속 부담스러운 과거가 가볍게 평준화되고 상품화되는 경향을 띠기도 하였다. 타이틀 자막에 명기되어 있듯, 한운사의 원작과 김기영의 각색을 거친 후 비로소 영화화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 중심의 라디오 드라마, ‘글’ 중심의 단행본 소설과는 구별되는 총체적 전달 매체인 영화의 기본 속성을 감안할 필요가 생긴다. 즉, 말과 글로 이루어진 한운사의 작품에는 인간의 생각과 사상이 보다 깊이 개입될 수도, 그것이 더욱 정밀하게 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아무리 그것을 원작으로 하더라도 공간이 펼쳐지고 배우가 등장하며 시간이 지속되는 영화를 통해 시청각적으로 구현-재생되는 이상, 해방 후 철저하게 금기시되어 있던 일본인의, 일본풍의, 일제강점기의 모습이 무엇보다 먼저 눈과 귀에 자극되었음은 제작자의 입장이든 관람자의 입장이든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더욱이,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식민지 시기 영화관을 가득 채우던 일본영화 속의 일본 현지의 모습이 독립된 한국 영화인의 카메라에 담겨졌다는 점에서, 아울러 일제말기 조선영화 속에 등장하던 조선인의 엉성한 일본어가 일본인 역할을 맡은 배우의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치환되었다는 점에서 영화 개봉 시점에서 약 15년 전까지의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분명 신선한 자극과 전치의 쾌감을 선사하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은 여느 시기보다도 불안정하였던 바 오영숙의 언급대로 같은 시기 전쟁 기간 초토화되었던 국토 재건에 박차를 가하며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질시가 뒤섞여 있었” 32) 을 런지도 모른다.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일본과의 문화 교류는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고도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이라면 누구나 비자 없이 일본을 드나들 수 있으며, 각 지역의 공항에는 연일 다수의 일본인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은 날로 심화되는 동북아 국가 구도 속에 국제 관계 및 무역 방면에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으며,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와 과거 역사 문제 등에 있어서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기도 하다.

    이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과의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 소통과 경제적인 효과의 창출은 국익 확보와 국위 선양을 위한 중요한 사안이라 할 만하다. 이제는 대중문화계의 ‘한류’ 현상에 익숙해져 있기까지 하나, 이럴 때일수록 과거 ‘일본’ 현상의 재고를 통해 현재를 진단 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1960년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일본을 다룬 한국영화의 효시작이면서 대표작인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내용적, 형식적 특수성을 파악해 볼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 존재한다.

    29)로버트 W. 그레그(Robert W. Gregg), 여문환⋅윤상용 역, 『영화 속의 국제정치』, 한울, 2007, 101∼106쪽. 한편, 그는 첫 번째의 예로 <줄루 Zulu>(사이 엔드필드 Cy Endfield, 1964)와 <카슘 공방전 Khartoum>(배질 디어든 Basil Dearden, 1966)를, 두 번째의 예로 리처드 어텐보르(Richard Attenborough) 감독의 전기 영화인 <간디 Gandhi>(1982)와 질로 폰테코르보(Gillo Pontecorvo) 감독의 다큐멘터리성 영화인 <알제리 전투 Battle of Algiers>(1966)를 들고 있다.  30)원작자 한운사는 도쿄에 있는 주오대학(中央大學) 재학 중인 1944년 1월 20일에 결정된 ‘반도인 학도 특별지원병제’에 따라 나고야에 위치한 군부대에 배속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31)김기영 영화에서의 ‘여성’을 통한 인간 본성에 대한 탐험(탐구)의 경우, 비록 1960년 <하녀>가 나왔지만 <충녀>, <화녀> 등으로 이어지는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되었으며 그것이 평단에서 주목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후라 할 수 있다. 물론, 가학, 인간 군상을 통한 세계의 발견이라는 주제적 탐구는 이미 당시 작품을 통해서도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양산도>, <십대의 반항>, <하녀> 등을 작품과 이후 <고려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활동의 기조에 특별한 고집 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소재를 통해 많은 관객들을 소구하는 모습도 비춰진다.  32)오영숙, 앞의 논문, 287쪽. 한편, 그는 이를 1960년대 한국영화로 확장하여 그것이 “일본에 대한 호의와 증오가 모순인 채로 혼재하는, 식민지 피지배자였던 복잡한 자신의 정체성을 상상의 행위를 통해 응시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고자 싶어 했던 사회적 요구(public need)를 반영한다.”라고 주장한다. 위의 논문,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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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플롯 구조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플롯 구조
  • [<사진 1>] 영화의 주요 배역이 소개된 광고 전단지
    영화의 주요 배역이 소개된 광고 전단지
  • [<사진 2>] 두 신인 남녀 주인공을 다룬 ≪동아일보≫ 1961년 8월 17일자 4면 기사(좌)와, 이들의 애정 표현을 묘사한 영화 속 장면들(우)
    두 신인 남녀 주인공을 다룬 ≪동아일보≫ 1961년 8월 17일자 4면 기사(좌)와, 이들의 애정 표현을 묘사한 영화 속 장면들(우)
  • [<사진 3>] 일본(인)의 모습들 담은 영화 속 다양한 장면들
    일본(인)의 모습들 담은 영화 속 다양한 장면들
  • [<사진 4>] 영화 속 미군의 나고야 공습 장면들
    영화 속 미군의 나고야 공습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