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영화이미지학』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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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탄생은 움직임의 환영을 기계장치로 재생한 이미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연구는 영화이미지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존재론적 성찰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이런 점에서 11명의 이론가들의 사유를 가로지르며 영화이미지의 본성과 매체에 대한 질문들을 넓고 깊게 던지면서 ‘영화이미지(학)’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추적해 가는 이 책의 출간은 반가우면서도 때늦은 감이 있다. 이 책의 중요성과 의의를 결정짓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영화 탄생 초기부터 영화 고유의 미학적 효과와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탐색을 벌이며, 이미지의 운명을 영화와 인접 예술 간의 풍요로운 상호작용 속에서 포착해 낸 프랑스 영화이론계의 지적 풍토가 『영화이미지학』의 구성과 사유의 계보들 속에 치열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1970년대의 거대 이론 Grand Theoy이 붕괴된 이후 시각적 사유로서의 영화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분석에 천착하는 이러한 접근방식은 한편으로는 영화탄생 이전 시기의 이미지론에서부터 모던 시네마의 순수 시지각적 이미지에 이르는 영화사에 대한 존중과 역사적 테제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부상한 시각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미학적 테제를 이론화 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영화 철학 film philosophy의 전통에 기반한 이러한 영화이미지학의 지적 여정은 베르그손으로부터 시작해 들뢰즈로 (잠정적으로) 마무리되며, 그 여정 속에서 탐험한 사유들의 지도를 이미지-지각, 이미지-정신, 이미 지-기호, 이미지-운동과 시간이라는 범주들로 제시한다.

    이 범주들이 갖는 의미는 이 책의 구성이 단지 보편적인 영화이론사의 흐름을 따라 서술되었거나 이론가들의 이름에 기대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본령을 겨냥한 저자의 시각과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이미지의 ‘정신성’에 주목한 제 2부는 다른 이론서들과 가장 구별되는 범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포토제니’ 개념을 중심으로한 엡슈타인의 사유가 이후 영화이론의 흐름에서 영화이미지의 본질과 위상을 재고하게 만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3부에서도 기존의 크리스티앙 메츠 위주의 언어 기호로서의 논의에서 나아가 실재로서의 이미지-기호에 대한 파솔리 니와 바르트의 사유에 상당한 열정을 할애한 것도 그동안의 영화이미지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이미지학』은 총 13장에 걸쳐 11명의 이론가들의 영화이미지에 대한 그들의 독창적인 철학적 연대기를 펼쳐놓고 있는데, 무엇보다 흥미롭고 주목해야할 지점은 개별 이론가들이 만나고 교직되는 ‘결절’과 ‘에필로그’ 부분일 것이다. 즉, 각각의 논의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과 성좌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각자 시대와 입장을 달리 했던 학자들이 이 책의 기본구성인 ‘네 개’의 울타리를 초월해 ‘8개의 사유의 줄기’ 속에 뒤섞여 대화의 향연을 나누는 ‘에필로그’는 그러므로 이 책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실재로서의 영화 이미지’ 줄기는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시작된 현실의 기록으로서의 영화 이미지, 물리적 우주의 축소판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베르토프의 입장, 실재의 일부, 즉 가리개로서의 영화프레임을 통해 ‘사실-이미지’에 대해 주장했던 앙드레 바쟁의 논의, 한 편의 영화를 ‘무한 시퀀스 숏’으로부터 몽타주를 통해 분리한 실재의 일부로 간주하는 파솔리니의 사유, 나아가 우주로부터 영화 카메라의 지각을 통해 절단해낸 이미지-실재의 집합으로서의 들뢰즈의 ‘메타시네마’ 개념을 한데 엮는다. 이줄기는 ‘실재로서의 영화이미지’에 대한 사고를 근간으로 여러 이론가 들이 공유하고 중시했던 영화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핵심적 문제제기를 추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론가들 사이의 영향 관계 연구나 향후 영화이미지학의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무한한 갈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이미지학』은 야심찬 기획과 결실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지점들을 갖고 있다. 첫째로, 이 책이 ‘영화이론들에 대한 이론’의 성격으로 집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언급을 함께 다루었더라면 이론이 더욱 입체적으로 조망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방법론적으로 각각의 챕터를 하나의 작품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해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든지, 베르토프나 엡슈타인, 파솔리니처럼 이론과 창작을 동시에 했던 사람들이나 실제로 구체적 영화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이론을 전개시켰던 벤야민, 발라즈, 들뢰즈 등의 경우, 이론과 더불어 영화적 그림이 함께 그려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둘째, 저자 자신도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바쟁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이론가가 누락되었다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다. 영화사적 전개를 한 축으로 하는 이 책의 구성에서 2부의 ‘이미지-정신’에서 3부 ‘이미지-기호’ 사이에는 일정한 시간적 비약이 존재하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이미지-실재’에 해당하는 바쟁과 크라카우어 등의 논의가 보완되었더라면 더 풍요로운 사유의 계보학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아울 러, 세르주 다네, 자크 오몽, 레이몽 벨루, 파스칼 보니체 등을 비롯해 들뢰즈 이후의 다양한 논의의 흐름과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이론에 대한 외연의 확대 또한 개정판 혹은 후속편을 통해 기대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시각으로 주도적 논의를 이끌고 있는 2부 및 3부에 비해 베르그손과 들뢰즈에 대한 챕터들은 상대적으로 해제적인 성격에 가깝기에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이미지에 기반해 탄생했지만 시각예술로서보다는 서사예술로서 기획되어 왔고, 영상철학에 토대를 둔 이미지 연구는 오늘날 우리의 영화연구에서 충분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영화에 대한 모든 연구는 영화이미지의 본질과 특성에 바탕을둔 영화이미지에 대한 연구를 피해갈 수 없다. 이 책을 계기로 국내 영화연구가 비결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미지의 역동적 삶과 이에 대한 무한대의 사유를 향해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이 영화이 미지 연구의 출발선 위 어딘가에 위치할 수 있기를 희망했던 저자의 목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