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seeing in <Six Daughters> and Wandering in <The Way to Sampo>

<팔도강산>의 유람(遊覽)과 <삼포 가는 길>의 유랑(流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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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Six Daughters> and <The Way to Sampo> were both produced during the time of Part Chung-hee's regime. Both have a journey for their subject matter. However, they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on Developmental Dictatorship enforced by Park Chung-hee's regime. This paper attempt to identify the aesthetic and historical differences of two films. <Six Daughters> being a governmental project, by depicting the results achieved by Developmental dictatorship through an elderly couple's trip take a role of propaganda tool supporting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On the contrary, <The Way to Sampo> views the same subject critically through the journey in search of a homeland. The old couple's trip becomes a sightseeing tour as they move around having defined destinations. Three friends of <The Way to Sampo> are more wanderers than tourists. They choose to escape a reality searching for a homeland which is rather a humanist ideal than a place. Through comparing two films, we can see different perspectives on Developmental Dictatorship enforced by Park Chung-hee's regime. In conclusion, while <Six Daughters> can be viewed as empowering of Development Dictatorship's Myth, <The Way to Sampo> attempts to see the realities behind it.


  • KEYWORD

    , , , , Lee Man-hee , road movie , Developmental Dictatorship , propaganda

  • 1. 들어가며

    로드무비(road movie)는 말 그대로 길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旅程) 그 자체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르다. 이 때 로드무비의 여정은 어떤 상징성을 띠는데 주로 삶에 대한 도피나 저항, 모험과 일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자유에의 열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장르가 갖는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의 특수한 사회ㆍ문화적 배경 속에서 한 나라의 장르적 특성이 형성되는 것처럼 한국의 로드무비 역시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채윤정은 미국의 로드무비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하여 “미래의 다른 곳을 향한 시간적 여행”이란 “역동성과 유동성”을 담는 데 반해, 한국의 로드무비는 고향으로의 회귀라는 “순환성”과 “공간성”을 강조하므로 미국식 용어에서 이식된 로드무비와는 구별되는 ‘길영화’라는 용어를 붙이며 그 차이점을 부각시키려 했다.1) 또한 주창규는 한국적 로드무비를 유신체제 이후 군사독재기(1972~1987년)의 문화적 산물로 보고 “길 위에서 상상하는 상징적 고아들의 가족 로망스”2)를 그 특징으로,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련의 영화들을 “충무로 로드무비”3)라 칭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로드무비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채윤정과 주창규 모두 <삼포 가는 길>(1975, 이만희)을 한국적 로드무비의 원형으로 삼고 있다. 이들 외에도 유지나4)와 주진숙5) 역시 한국의 로드무비를 언급하면서 <삼포 가는 길>의 인물구성과 성격이 이 후 한국적 로드무비의 원형임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로드무비가 갖는 삶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정은, 그것이 도피나 저항 혹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반영할지라도, 그 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과도 큰 관련을 맺는다. 거리에서 거리로 이러지는 로드무비의 형식이야말로 외시의미의 차원에서 사회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6) 특히 로드무비는 여정의 원인을 통해 그 사회의 정체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여정의 과정은 그 문제를 끊임없이 재확인시키고 주인공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 관객의 자아성찰을 수반한다. 따라서 한국의 로드무비가 미국의 로드무비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팔도강산>(1967, 배석인)과 <삼포 가는 길>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란 공통된 사회의 문제의식을 로드무비의 형식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책영화의 성격을 가진 <팔도강산>과 삼엄한 검열 속에서 제작된 <삼포 가는 길>은 그 성격 뿐만 아니라 10년 가까운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두 영화가 제작된 60년대와 70년대는 1972년 유신체제를 기점으로 사회ㆍ정치적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지점이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을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 <팔도강산>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민관합작 프로파간다이며 가장 성공적인 정권홍보 이벤트로7) 유신체제 이전 박정희정권의 근대화를 다룬 로드무비이다. 공보부가 깊이 개입하여 기획ㆍ제작하고 상영과 배급에도 영향을 끼친 <팔도강산>은8) 서울 국도극장에서 단관 개봉하여 32만 5천명을 동원하며 대흥행했다.9) <팔도강산>의 흥행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에 대한 대중적 공감 및 합의를 간접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이면, 뿌리 뽑힌 채 표류하는 소외된 하층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유신체제 이후를 반영하는 로드무비이다. 7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의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했으며, 유신체제로의 이행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정권 당시 문화예술계 탄압의 대표적 장본인이었던 이만희 감독은 <삼포 가는 길>을 통해 모더니즘의 화법으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렇듯 두 영화의 시기적 간극과 영화의 성격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를 바라보는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본고는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의 여정과 그 여정을 다루는 방식을 비교ㆍ분석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바라보는 당대의 정체성과 문제의식을 파악하고자 한다.

    1)채윤정, 「길을 바라보는 시선들-로드무비와 길 영화의 문화사회적 비교」,『한국가족학회지』 3권, 한국가족학회, 1997, 146쪽.  2)주창규, 「충무로 로드무비 장르 연구」,『영화연구』 34호, 2007, 395쪽.  3)<삼포 가는 길>, <바보선언>(1983, 이장호), <고래사냥>(1984,배창호), <고래사냥 2> (1985, 배창호)가 여기에 해당. 주창규, 위의 글, 376쪽.  4)유지나, 「한국사회의 영화적 수용에 관한 텍스트 읽기: <삼포 가는 길>, <고래사냥>, <세상밖으로>」,『영화연구』 10호, 1995.  5)주진숙, 「세상밖으로: 로드무비의 새로운 지평」,『영화연구』 10호, 1995.  6)유지나, 위의 글, 26쪽.  7)김한상,『조국근대화를 유람하기』, 한국영상자료원, 2007, 13쪽.  8)김한상, 위의 책, 15쪽.  9)이영일,『한국영화전사』, 도서출판소도, 2004, 354쪽.

    2. 유람하기와 유랑하기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 두 영화 모두 길을 떠나 어딘가를 찾아간다는 로드무비의 공통된 서사를 갖는다. <팔도강산>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떠나 각 지방을 돌아다니는 노부부의 여정을, <삼포 가는 길>은 일용직 노동자와 술집 작부 등 밑바닥 떠돌이들의 귀향의 여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 영화의 여정이 갖는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로드무비는 여러 개의 이야기를 차례로 제한된 시점에서 연속시키는 배열, 사슬 모양의 서사 구조를 지닌다.10)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는 장소의 이동을 통해, 여정에서 만나는 고난을 통해 진행된다. 서사의 진행 방식에서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두 영화가 갖는 여정의 성격과 중요한 관련을 맺는다.

    <팔도강산>의 여정은 전국의 딸 내외와 아들을 방문한다는 확실한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어 있으며, 노부부는 자신들의 의지대로 자식들을 방문한다. 또한 노부부의 여정의 끝은 결국 제자리로의 돌아옴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향이 확실하기에 <팔도강산>은 관광하듯 각지를 도는 ‘유람’이다. 앞서 밝혔듯이 <팔도강산>은 공보부가 제작과 배급에 깊이 개입한 실질적인 국책영화로, 박정희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홍보용으로 기획ㆍ제작되었다. <팔도강산>이 개봉한 1967년은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있는 중요한 시기로 박정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유신체제 이전 박정희 정권은 5ㆍ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기에 최소한이나마 민주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따라서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의 결과물들을 전시하고 홍보하는 제작의도에 부합하여 충실하게 국가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재현한다. 자식들을 방문한다는 서사의 연결고리를 제외하면 각각의 자식들과의 만남은 독립된 에피소드와 같은데 이는 자식과의 만남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서사의 진행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팔도강산>의 서사는 여정의 과정, 즉 장소의 이동보다는 장소를 중심으로 이뤄지므로 연속적이지 못하고 정적이다. 그 이유는 <팔도강산>의 여정의 성격이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유람’한다는 데 있다. 결국 <팔도강산>은 서사의 진행보다는 근대화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로드무비의 여정으로써 길이 갖는 문제의식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은 여정의 과정 자체가 중요한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구조를 따른다. <팔도강산>이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근대화를 전시하는 목적에 맞게 장소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삼포 가는 길>은 여정 그 과정 자체와 인물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삼포 가는 길>의 여정은 고향을 찾아 떠나는 것이며 <팔도강산>의 두 노부부처럼 돌아올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결국 떠난다는 것은 현실의 부정이다.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의 결과 1960년 노동자계급의 비율이 26.6%였던 것이 1975년에 이르러서는 43.2%로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였다.11) 이는 도시로의 인구집중을 의미하며 도시빈민의 증가로 이어졌다. 78년 당시 절대 빈곤 인구의 44%가 도시에 분포하였는데 이 시기 도시인구는 이미 60%를 넘어서고 있었다.12) 일용직 노동자와 술집 작부라는 영화 속 세 주인공의 직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포 가는 길>의 여정은 정착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도는 당시 빈민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포 가는 길>이 유신체제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72년 유신체제로의 이행은 독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민적 동의라는 최소한의 절차상 민주주의마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이미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 변화는 1971년 5ㆍ25 총선에서 감지할 수 있다. 선거 결과 여당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신민당이 개헌저지선인 69명을 뛰어넘어 89개의 의석수를 확보했다.13) 이는 1967년 6ㆍ8 총선의 압도적 승리와 달리 국민이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견제할 필요 혹은 지지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1969년 3선 개헌과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마지막 출마라는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박정희 정권은 스스로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하게 된다. 한편 1970년대는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성장하면서 국가주도의 근대화에 대한 저항이 나타났다.14) 이처럼 70년대 좌절된 민주주의와 개발독재의 폐해 위에서 등장한 <삼포 가는 길>은 황석영의 동명 단편소설(1973)을 영화화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화 시대의 인간 소외’15)라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즉, 세 주인공은 자신들의 현실을 회의하고 거부하기 때문으로 길을 떠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포 가는 길>의 세 주인공은 뚜렷한 방향이 없다. 다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막연한 고향 ‘삼포’가 있을 뿐이다. 또한 이들의 여정은 불분명한 방향만큼이나 표류한다. 혹독한 날씨와 우연찮은 만남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정이 진행된다. 따라서 이들의 여정은 정처 없는 ‘유랑’이다.

    한편, 로드무비는 여정의 과정에서 정체성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춘 인물중심의 장르일 수밖에 없다. 영화의 장소 변화만큼 인물들의 관계와 성격 변화 역시 동적이기 때문이다. <삼포 가는 길>의 서사 진행이 중단되지 않고 철저히 길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것은 길이 갖는 도상학적 의미 때문이다. 이 때 ‘길’은 사회적 상황과의 실질적인 관계를 드러내는데 <삼포 가는 길>의 황폐하고 눈 덮인 고난의 길은 주인공이 처한 외로움, 소외감, 무력감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16) 따라서 <삼포 가는 길>이 갖는 길의 의미를 통해 여정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난은 유신체제 이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의 이면, 뿌리 뽑힌 채 표류하는 소외된 하층민의 삶이라는 문제의 식인 것이다.

    이렇듯 두 영화가 가진 여정의 의미와 성격은 두 영화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즉, <팔도강산>의 여정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로써 박정희식 근대화의 발전상을 구경하는 ‘유람’이라면, <삼포 가는 길>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에서 소외된 술집 작부, 뜨내기 노동자처럼 산업화 시대 갈 곳 없는 소외 계층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유랑’인 것이다.

    10)서정남,『영화 서사학』, 생각의 나무, 2004, 96쪽.  11)허상수, 「사회 계급 구조의 변화와 민족 민주 운동」,『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1945-1991: 고난과 희망의 민족사』, 소나무, 1994, 281쪽.  12)허상수, 위의 글, 283쪽.  13)<민주역량의 성장>, «동아일보», 1971년 5월 28일 자.  14)박지연, 「영화법 제정에서 제4차 개정기까지의 영화정책(1961~1984년)」,『한국영화정책사』, 나남출판, 2005, 217쪽.  15)장병호, 「산업 사회의 소외와 극복-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한국어문교육』, 2000, 292쪽.  16)채윤정, 위의 글, 150쪽.

    3. 조국근대화를 전시(展示)하기와 회의(懷疑)하기

    로드무비는 서사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여정이다. 그리고 로드무비에서 장소의 이동과 이정(里程)은 주제와 맞닿아 있다.17) 그러나 두 영화가 보여주는 장소와 이동의 과정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가 근대화를 바라보는 두 영화의 태도를 읽어내는 단서가 된다.

    먼저 <팔도강산>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홍보용의 성격에 맞게 충실하게 박정희식 근대화의 장밋빛 미래를 ‘전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팔도강산>이 총 5편의 영화 시리즈와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의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노골적으로 정부의 업적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노부부의 관광하듯 유람하는 여정을 통해 그것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노부부의 여정 과정에서 거대한 공장과 기계, 잘 닦인 고속도로와 버스, 기차, 비행기와 선박 등을 과시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팔도강산>의 이동은 박정희식 근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속도로가 “정권의 통치이념을 시각화ㆍ공간화 하는 상징적인 장치”18)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도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대표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동의 과정이 내러티브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로드무비와 달리 <팔도강산>의 이동은 단지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의 전시일 뿐이다.

    그리고 <팔도강산>은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친밀감을 심어주기 위해 각 지역의 문화ㆍ역사적 특징을 십분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사투리를 쓰는 각 지역의 토박이 사위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사투리는 그들이 근무하는 산업화된 공간과 더불어 근대화의 이미지를 친근한 것으로 만든다. 또한 관객은 노부부를 통해 산업화와 문화유산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팔도강산>은 각 지역의 산업현장을 그 지역의 전통문화와 함께 관광의 대상화시킴으로써 급격한 근대화의 이미지를 오랜 전통의 문화적 유산과 동렬에 위치시킨다. 즉, 산업현장을 그 지역의 문화적ㆍ자연적 특징들과 병치하여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산업적 상징물들을 그 지역의 장소신화로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19) 그리하여 각 지역의 산업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혹은 상징하는 공간적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은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우회적으로 취한다. <팔도강산>과 달리 <삼포 가는 길>이 보여주는 장소는 눈 덮인 허허벌판과 산, 시골마을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영화말미에 등장하는 고향 ‘삼포’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는 위압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며 그 다리를 건너는 주인공 ‘정씨’의 표정 또한 복잡하고 모호하다. 고향의 친근한 이미지를 상상했던 ‘정씨’에게 고향이 개발되고 있으며 과거의 정취가 사라졌다는 소리는 충격적이었음을 관객은 짐작할 수 있다. ‘정씨’의 모호한 표정은 당시 서슬 퍼런 검열 속에서 창작자가 취할 수 있는 표현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또한 <팔도강산>은 끊임없이 고속도로와 기차, 비행기, 배 등 산업화의 속도를 부각시키는데 반해 <삼포 가는 길>의 뜨내기 노동자와 술집 작부의 느릿한 여정은 그 자체로 근대화의 속도전에 뒤쳐진 낙오자들, 산업화에서의 소외를 의미한다. ‘정씨’와 ‘노영달’은 돈을 아끼기 위해 혹은 험악한 날씨 때문에, ‘백화’는 안전한 도주를 위해 버스를 포기한다. 이들에게 근대화의 이기(利器)는 대가가 따르거나 필요할 때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또한 로드무비는 여정을 다루는 특성상 일반적으로 광활한 공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담아낸다. <팔도강산>은 도시와 산업공단, 고속도로위주의 근대화 산물을 전시하는데 이것을 활용한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공간은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규모의 공장과 기계들로 웅장함을 넘어 다분히 과시적이다. <팔도강산>의 이러한 성격은 그 후속작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마치 블록버스터의 후속작이 원작을 넘어 더 크고, 더 강한 충격을 주기 위해 강박관념처럼 외형을 부풀리는 것처럼, <팔도강산>의 후속작 역시 내러티브의 발전 없이 외형적 스펙터클에 치중한다. <속 팔도강산-세계를 간다>(1968, 양종해)는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전시하고 과시하기 위해 국내를 넘어 해외로 그 영역을 넓혀 발전해가는 조국근대화의 위상을 설파한다. 그리고 마침내 <팔도강산>은 영화를 넘어 TV드라마까지 끊임없이 확장한다. <팔도강산>과 비교하여 <삼포 가는 길>은 산골과 시골 등 근대화되지 않은 곳을 담아내는 한편,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듯 황량한 벌판을 포착해 낸다.

    이처럼 두 영화가 담아내는 시대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팔도강산>이 산업화된 도시와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보여준다면 <삼포 가는 길>은 의도적으로 도회지와 문명의 기기들을 피하고 시골의 풍경을 전전한다. 시골의 축제와 상갓집, 쥐불놀이 등 소박한 전통은 <팔도강산>의 공장의 과시적 이미지와도 대비된다. 또한 <삼포 가는 길>은 전진하지 못하고 점차고립되고 후퇴한다. 도회지를 떠나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섬인 삼포로 돌아가려는 ‘정씨’의 모습은 단적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점차 인적을 피해 눈 덮인 산과 들판을 유랑하는 세 명의 이미지는 극단으로 고립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육지와 고향 삼포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는, 결국 고향인 삼포가 근대화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삼포 가는 길>의 전체 이미지와 상충하는 위압적인 다리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정씨’의 착잡한 표정에서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요 약호 가운데 하나는 발견, 보통 자기 발견이다.20) 앞서 언급했듯이 로드무비의 여정은 그 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과 관련을 맺는다. 로드무비의 관객은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자아 발견, 즉 정체성의 확인 또는 획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팔도강산>이 갖는 사회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근대화에 대한 긍정적 자각이다. 산업화의 결과물들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바라보는 <팔도강산>의 주인공 ‘김희수’ 노인을 통해 관객은 조국의 성장을 자각하게 된다. 기계에 대한 ‘김희수’ 노인의 긍정적 반응은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근대화의 속성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추구한 조국근대화는 성공적으로 포장된다. 따라서 <팔도강산>이 그리는 산업화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에 대한 긍정적인 미래상이며 성공과 부, 풍요와 번영을 의미한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와 제7대 국회의원총선서를 앞두고 개봉한 <팔도강산>이 “지나친 정부업적 PR의 인상을 짙게 풍”21)긴다며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의 여정은 세 인물의 현실을 통해 우회적으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추운 겨울 일거리가 떨어진 ‘정씨’와 ‘노영달’의 처지는 사회적 기회의 한계와 소외된 계층이 떠돌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의 문제를 제시한다.22) 백화는 보다 직설적으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인물이다. 백화의 직업은 술집 작부다. 이는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호스티스 멜로드라마가 암시하는 리얼리티에 주목하면,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그 자체가 1970년대 영화가 검열로 인해 재현해내지 못했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23) <삼포 가는 길>에 짙게 드러나고 있는 노동계급의 좌절과 우울함의 정서가 백화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24) 그리고 이들은 모두 떨칠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범죄자였던 ‘정씨’, 아내가 자살한 ‘노영달’ 그리고 술집에 팔려온 ‘백화’는 이미 현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들이다. 결국 산업화에서 소외된 이들이 상상적 고향 ‘삼포’로 떠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며 이것은 곧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의문이다. 그리고 산업화의 이기들로부터 떨어져 느릿하게 시골길과 산길을 걸으며 세 사람은 점차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한다. <삼포 가는 길>이 자연의 풍광과 소박한 시골의 삶 속에 세 명의 방랑자를 위치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와 인간성 상실은 결국 고향으로의 회귀하는 여정, 즉 근대화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유신체제로 독재정권이 수립된 이후 제작된 <삼포 가는 길>은 근대화에 대해 자기성찰과 정치적 근대화가 배제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17)서정남, 의의 책, 279쪽.  18)김한상, 위의 책, 61쪽.  19)김한상, 위의 책, 86쪽.  20)수잔 헤이워드, 이영기 역,『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한나래, 1999, 79쪽.  21)<영화 <팔도강산> 곳곳서 말썽 군경유자녀부모 모아 상영>, «동아일보», 1967년 3월 27일 자.  22)채윤정, 위의 글, 152쪽.  23)이호걸, 「1970년대 한국영화」,『한국영화사공부 1960~1979』, 이채, 2004, 103쪽.  24)이호걸, 위의 글, 103쪽.

    4. 가족(국민)과 유사가족(민중)

    <팔도강산> 시리즈가 대중적 호응을 받으며 10여 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친근함을 활용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25)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는 딸 내외를 방문한다는 기본 내러티브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팔도강산>의 또 다른 장르적 성격은 건전한 홈드라마 혹은 가족코미디다. <팔도강산>은 훈훈한 가족애를 내세워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양식을 통해 강압된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발적 동조를 이끌어 내며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은 다층적인 사회상을 담아내고 가족의 사적인 이해를 공적인 이해로 포장해 낸다. 그리고 이 중심엔 ‘김희수’ 노인이 있다. 60년대 초반 가족드라마의 아버지상이 무능하고 전근대적이었던 반면 <팔도강산>의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유능하고 권위 또한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1967년 대선을 거치며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 권력의 부활’로 해석할 수 있다.26) 인상 좋은 ‘김희수’ 노인 얼굴 뒤엔 박정희 정권이, 그들의 여정 속엔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논리가 친숙한 이미지 뒤에 교묘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팔도강산>의 가족은 가장 ‘김희수’를 정점으로 혈연으로 맺어진 수직화된 관계이다. 그리고 <팔도강산>의 가족 구성원은 제목처럼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직업 역시 농수산업부터 무역업, 공업, 군인 등 다양하며 계급적으로도 노동자와 농민, 자본가까지 다채롭다. <팔도강산>의 이러한 가족 구성은 바로 국민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분산적 개인을 특정의 집단 주체로 호명하는 것은 근대 대중사회의 일반적 양상이다.27) 이로써 산업화의 동조자로써 국민을 적극적으로 호명한다. <팔도강산>의 가족은 국민국가를 상정하며, ‘김희수’노인으로 제시된 아버지상은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팔도강산>의 ‘김희수’ 노인이 그리고 있는 것은 가족(국민)을 아우르는 존재이며 모범적이고 존경의 아버지(박정희)의 이미지를, 가족은 국민 전체의 통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팔도강산> 마지막 장면에서 각 지역의 가족들, 계층과 직업이 다른 가족 전체가 아버지를 중심으로 화합하는 장면은 국민 통합의 은유이며 국가 이미지의 완성이다. <팔도강산>에 내면화된 조국근대화의 논리는 각 지역에서 산업일꾼으로 활동하는 사위들을 통해 완성된다. 근대화가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경제 발전은 결국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개인을 국민이라는 등가물로 전환시킴으로써 봉합하고자 했다.28) 잘 사는 사위나 못사는 사위 모두 조국근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국민’이란 동렬의 지위로 호명됨으로써 현실적 불평등은 국민적 통합의 이름으로 봉합되는 것이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의 세 주인공은 제대로 된 직업은커녕 거처조차 일정치 않다. 말 그대로 뜨내기 인생인 이들은 <팔도강산>의 가족과 비교하여 철저하게 밑바닥 인생이다. 그리고 영화 속 세 주인공은 모두 혈연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묘사된 ‘상징적 고아’들이다.29)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에겐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의 공백과 맥을 같이 한다. ‘노영달’은 아버지(가족)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으며 소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임신한 아내의 죽음으로 스스로도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백화’ 역시 소설에서는 고향에 가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천애고아로 그려지고, ‘정씨’는 소설에는 없는 딸이 영화상에 존재하지만 헤어진 지 10년이 넘어 생사여부는 물론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성장의 기회를 줄 아버지가 부재하며 그들 스스로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아를 상실한 상태다. 따라서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버지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정씨’와 ‘백화’, ‘노영달’의 관계는 유사가족과 같다. 그러나 <팔도강산>처럼 아버지를 정점에 둔 수직적 관계가 아닌 형제와 같은 수평적 관계에 가깝다.

    <삼포 가는 길>의 부재한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否定), 즉 박정희 정권에 대한 거부로 읽을 수 있다. 현실의 부정으로써 고향으로의 회귀, 근대 이전으로의 고향으로의 회귀라는 근대화에 대한 역행을 단행한 이들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국민적 통합을 거부하며 스스로 ‘국민’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대신 <삼포 가는 길>의 세 등장인물은 유대감으로 맺어진 유사가족이며 수평적인 관계다. 정씨가 유사 아버지처럼 등장하기도 하지만 세 사람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평등하다. 따라서 이들이 맺는 유사가족은 ‘민중’이다. 한완상은 민중의 개념을 통치수단과 생산수단을 공유하지 못한 존재로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국민으로 정의했다.30) 이런 의미에서 <삼포 가는 길>의 세 인물은 박정희 정권에서 ‘국민’으로 통합되지 못한 ‘민중’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삼포 가는 길>의 세 인물은 사회로 통합되지 못한 아웃사이더이다. 이들을 맺어주는 것은 동류의식과 상실감이다. 뜨내기 노동자와 술집 작부는 모두 몸을 밑천으로 한다는 점에서 하층민이라는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맺어졌다.31) 그리고 이들 모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인간성의 상실은 ‘정씨’는 범죄자로 ‘노영달’은 임신한 아내가 쥐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백화’는 천애고아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상처가 주는 상실감은 여정을 통해 서로가 완벽하진 않지만 회복의 기회를 준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순 없지만 그 상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다. 즉, 개개인은 스스로를 의식화시키지 못하는 즉자적(卽自的) 민중이지만 함께 있으므로 해서 서로를 의식화시키는 대자적(對自的) 관계이다.32)

    결국 두 영화가 제시하는 가족상의 차이는 귀향의 의미로도 귀결된다. 혈연을 중심으로 만족감을 야기하는 가족의 모습을 상영하는 <팔도강산>의 귀향은 근대화란 강력한 지향성을 띤다. 그리고 근대화를 통해 하나의 국민으로 포섭하며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통합의 과정을 의미한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사회의 주변부 인물들이 여행을 통해 가족과 유사한 관계를 맺으며 가족을 상상한다. 이드의 귀향은 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들의 심리적 안식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잃어버린 정체성의 회복, 대안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다.

    <팔도강산>엔 민족과 국민, 즉 민족국가가 당위로 존재하지만 <삼포 가는 길>의 서사에는 민족도 국가도 없다. <팔도강산>은 혈연(민족)으로 구성된 필연의 관계(국가와 국민)가 서사를 지배한다면, <삼포 가는 길>은 유대감(동지애)으로 조성된 우연의 관계만이 존재할 뿐 서사를 좌우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개발독재의 추진력이 위로부터의 동원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조응이 필수적이란 점에서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1970년부터 시행된 새마을운동이 국가 주도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적극적 참여, 권력의 요구에 부합하는 ‘국민’으로의 자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33) 강한 경제적 상승욕구와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대중의 욕망을 ‘국민’으로 호명함으로써 개발독재의 논리를 강압적인 것이 아닌 주체적인 것으로 내면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팔도강산>에서 가족으로 상징되는 국가와 국민의 통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성질을 띤다.

    25)김한상, 위의 책, 26쪽.  26)김한상, 위의 책, 34-35쪽.  27)황병주,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과 대중의 국민화」,『근대를 다시 읽는다 1』, 역사비평사, 2008, 474쪽.  28)황병주, 위의 글, 478쪽.  29)주창규, 위의 글, 388쪽.  30)한완상,『민중과 지식인』, 정자사, 1978, 13쪽.  31)장병호, 위의 글, 297쪽.  32)한완상은 민중을 즉자적 민중과 대자적 민중으로 나누었다. 즉자적 민중은 스스로를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는 민중이며 대자적 민중은 반대로 자기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의식화된 민중이다. (한완상, 위의 책, 15-16 쪽 참조)  33)황병주, 위의 글, 494쪽.

    5. 정착과 통합, 방랑과 헤어짐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의 여정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차이는 전자가 정착과 통합을 의도한다면 후자는 방랑과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팔도강산>은 전국에 흩어져 사는 딸 내외의 행복한 가정을 방문하여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확인하며,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결합은 통합을 의미한다. 따라서 <팔도강산>의 정착과 통합은 앞서 언급한 가족 서사, 국민국가의 정체성 형성과 국민 통합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은 필연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다. 온전한 가족이 아닌, 유사가족이기 때문에 이들의 결합은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으며 정착하지 못한 이들의 삶 또한 결합을 방해한다.

    <삼포 가는 길>의 방랑과 헤어짐은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산업화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점에서 인간 소외와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삼포 가는 길>의 허구의 공간인 ‘삼포’의 의미와 관련을 맺는다. 소설과 영화 속 삼포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허구의 공간 삼포는 세 인물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이들이 꿈꾸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이상향이다. 특히 <팔도강산>의 지명이 구체적인 것에 반해 <삼포 가는 길>의 ‘삼포’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란 점에서 그 상징적 의미는 부각된다. ‘정씨’가 개발로 인해 더 이상 육지가 아닌 고향의 소식을 듣는 순간 삼포는 더 이상 ‘정씨’의 고향이 아니다. 단지 사라진 고향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또한 <삼포 가는 길>의 ‘백화’가 가고 싶은 곳으로 실제 지명 목포를 지칭하는 순간 삼포의 상징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삼포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이상향이다. 결국 ‘정씨’, ‘노영달’, ‘백화’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을 찾아 표류하는 셈이다.

    한편 <삼포 가는 길>의 방랑과 헤어짐은 영화의 모더니즘적 양식과 부합한다. 모더니즘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 중심의 서사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근원을 찾아 방황하고 정체성에 대해 고통스럽게 탐색하는 자기성찰적 서사를34) <삼포 가는 길>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만희 감독은 1964년 12월 18일 <7인의 여포로>의 몇몇 장면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위반혐의로 입건되어35) 박정희 정권의 본격적인 문화예술계에 대한 억압을 상징적으로 체험한 장본인이었다. 이 사건 이후 스릴러와 액션 등의 장르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만희 감독은 <만추>(1966)와 <귀로>(1967)등의 문예영화와 <암살자>(1968)와 같은 독특한 스릴러 등의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유신체제 이후 개정된 제4차 영화법으로 독립영화 제작자의 제작을 비롯한 자유로운 영화제작이 불가능해진 상황과36) 더욱 강화된 검열 상황 속에서 모더니즘 영화가 갖는 모호함과 문학적 상징성은 감독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었다. 모더니즘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로부터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37) 한국 영화에서 모더니즘은 자유의 축소와 반공법이라는 반자유적ㆍ반예술적 흐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 영화의 모호함과 주관성, 문학적 상징성과 이미지의 강조는 모더니즘의 성찰적 특성과부합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삼포 가는 길>은 고향으로의 회귀라는 서사를 통해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해 회의를 던진다.

    또한 삼포라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 이상향을 찾아 유랑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고통스런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직면하고 자신들의 근원을 찾아 방황하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산업화 사회의 소외와 인간성 상실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고통스런 과거를 회피하고 싫은 ‘노영달’은 과거 회상과 내레이션의 불일치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고 ‘백화’는 노영달의 독설에 되받아치는 도중에 자신의 끔찍한 현실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된다. 결국 한 여자를 책임지지 못한 ‘노영달’의 고통스런 과거 기억과 술집 작부라는 씻을 수 없는 ‘백화’의 현실은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마저 산업화로 훼손당한 ‘정씨’는 “정처를 방금 잃어 버렸던 때문”에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38)

    근대 이후 길을 떠난 이들의 서사는 거대 사회의 억압과 모순에서 기인하므로 대부분은 귀향이 존재하지 않는다.39) 돌아갈 곳이 이미 오염되었거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삼포 가는 길> 역시 박정희식 근대화에서 발생한 소외와 인간 상실로 인해 길을 떠난다. 따라서 <삼포 가는 길>의 귀향은 부정을 의미한다. 즉, 영화의 귀향(길 떠남)은 산업화에 대한 회의이며 근대화 공간으로의 복귀를 부정한다. 그러나 <삼포 가는 길>의 열린 결말은 이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방황할 것을 암시한다. 다시 일을 찾아 뜨내기 생활로 들어선 ‘노영달’과 ‘노영달’이 끊어준 기차표로 기차를 타지 않은 ‘백화’, 고향 삼포로 돌아간 ‘정씨’마저도 그가 그렸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아 떠난 여정이지만 이들은 고향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방랑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두 영화의 여정이 갖는 의미는 <팔도강산>의 ‘팔도’와 <삼포 가는 길>의 ‘삼포’에서 명확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전자의 ‘팔도’는 발전된 근대화의 모습을, 후자의 ‘삼포’ 근대화의 낙오자들이 치유되는 과정의 심리적 공간으로 정리할 수 있다. <팔도강산>은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있는 자식들을 둘러보며 조국근대화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산업화 과정에 놓여있는 지방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모두 딸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각 지역의 토박이에게 시집간 딸들은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그들에게 남편이 산업화의 과정에 매진한 지역은 그들의 고향이 된다. 따라서 <팔도강산>은 정착의 영화다. 반면 <삼포 가는 길>의 인물들은 국민적 정체성에 통합되지 못한 계층, 뜨내기 노동자와 화류계 여성이다. 이들에겐 모두 고향이 없다. 이들에게 삼포는 상상의 고향이며 치유의 장소이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은 뿌리조차 뽑힌 하류계층일 뿐이다. ‘정씨’에겐 삼포라는 고향이 있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에서 소외된 ‘정씨’의 심리적 안식처는 역시 산업화의 여파로 파괴된다. 영화는 산업화에 소외된 이들의 심리적 안식처조차 뿌리 뽑힌 냉엄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던 70년대 한국의 답답한 현실이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끝내 삼포라는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40) 이들에게 고향은 이상일 뿐이다. 자기성찰과 반성 없는 급속한 박정희식 근대화 속에서 유일하게 되돌아 볼 수 있으며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고향이라는 점에서 <삼포 가는 길>의 삼포는 현실화되지 못하는 상상의 공간이며 이상향일 뿐이다.

    34)오영숙, 「한국 영화의 근대성에 관한 소고」,『영화연구』 19호, 한국영화학회, 2002, 195쪽.  35)<반공법에 걸릴 <7인의 여포로>>, «동아일보», 1964년 12월 18일 자.  36)박지연, 위의 글, 226쪽.  37)존 오르, 김경욱 저,『영화와 모더니티』, 민음사, 1999, 23쪽.  38)황석영, 「삼포 가는 길」,『황석영 중단편전집 2 삼포 가는 길』, 창작과비평, 2000, 225쪽.  39)성미란, 「지금 여기가 낙원일 수는 없는가?: 황석영 원작, 이만희 감독 <삼포 가는 길>」,『문학과 창작』 34호, 1998.  40)진회숙, 「곤궁한 시대의 자화상을 창조적으로 그리다」,『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청아출판사, 2009, 218쪽.

    6. 나가며

    재현(再現)은 세계를 ‘다시 보이게’ 하는 재해석, 즉 새로운 해석본이다.41) 이렇듯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은 길을 따라 이동한다는 로드무비의 장르적 특징을 가지고 공통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재현내고 있지만, 시기적 차이만큼 다른 관점으로 그것을 재현해낸다. <팔도강산>은 1967년을 시작으로 TV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까지 <팔도강산> 시리즈의 존립기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체제 수립과정과 절묘하게 겹친다.42) <팔도강산> 시리즈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시대 꾸준히 자가 복제 되어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팔도강산>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자발적 호응을 얻었다는 점이다. 산업화가 한창인 1960년대 후반기의 한국영화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과 같은 복고적인 신파멜로나43) <여자가 더 좋아>(1965) 등의 저속 취향의 코미디44) 그리고 <남자식모>(1968)와 같은 성역할이 전도된 넌센스 코미디가45)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영일은 이러한 경향을 대중매체인 영화가 근대화의 산물이나 생활의 고민 혹은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퇴행하거나 비정상성이 대두되는 현상은 정부 주도의 근대화에서 대중이 소외되었다는 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46) 이런 흐름 속에서 건전한 가족코미디를 표방한 <팔도강산>의 엄청난 인기는 의외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독재의 희생양임과 동시에 개발의 수혜자라는, 저항과 동조가 공존하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이 시기의 영화 경향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한편, 부정선거 논란이 일긴 했지만, 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116만여 표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했으며47) 7대 국회의원 선거 역시 공화당이 원내 3분의 2선을 돌파하는 압승을 거뒀다.48) 두 차례 선거의 승리에서 알 수 있듯이 유신체제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최소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박정희 정권이 단지 위로부터의 강압에 의한 폭력적 지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자발적인 동의가 권력을 지탱하는, 독재권력이 일정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합의독재”의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49) 그리고 <팔도강산>의 유람은 위로부터의 동원에 대중이 어떻게 조응하며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내면화하는지를 잘 보여준 예이다.

    반면 <삼포 가는 길>에서는 막바지에 다다른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찾아 낼 수 있다. <삼포 가는 길>은 1972년 유신체제 수립으로 박정희 정권의 독재체제가 완성된 시점과 미디어의 중심이 TV로 이동하며 영화산업이 침체를 겪었던 75년에 제작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영화사 허가제, 시나리오와 필름의 이중검열, 국책영화나 우수영화 제작을 통한 외화수입권 보상 등 다양한 정책으로 영화계를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유신체제의 성립과 함께 영화 진흥공사가 설립되어 영화산업을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통제며 유신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 국책영화를 제작하는50) 등 ‘건전한 영화’를 육성하려 시도했지만 70년대 한국영화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면서 국가가 의도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흘러갔다.51) 관 주도의 국책영화에 대한 관객의 외면과 영화계의 경향은 박정희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중이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삼포 가는 길>은 <팔도강산>이 개봉된지 8년 뒤에 개봉되었지만(소설은 <팔도강산>이 개봉된 후 6년 후 발표), 오히려 <삼포 가는 길>은 <팔도강산>이 제시한 산업화되고 근대화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남루한 일상과 주변부로 밀린 민초들의 삶을 담아내며 의도적으로 산업화의 포장을 회피한다. 원작 소설 근저에 깔려있는 비관적 정서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인간 소외라는 주제의식과 이만희 감독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즉 박정희 정권에서 직접 문화예술계의 억압을 체감했던 당사자로써 그가 갖는 이미지가 결합하여 영화 <삼포 가는 길>에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삼포 가는 길>은 유신체제 이후 80년대 군사독재 시대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산업화에서 소외된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의 여정이라는 한국형 로드무비의 원형을 창조하며 군사독재 시대에 대한 환멸적 시선을 담았고 있다.52)

    유신체제를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를 전적으로 동조와 부정으로 가를 수는 없다. 각종 노동문제가 발생하고 정치적 저항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70년대 새마을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는 “위로부터의 발전주의적 동원에 대중 욕망이 긴밀하게 결합”53)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화에서 오는 각종 노동문제와 사회문제를 목도하고 정치적 무력감의 팽배라는 대중의 심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제시하는 근대화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당시 대중의 태도는 양가적이었다 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강제와 금지, 폭력과 억압이 근대화에 대한 대중적 욕망과 조응하여 정당화되었던 60~70년대 양끝자락에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이 존재한다. 근대화의 과정과 그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팔도강산>과 <삼포 가는 길>은 전자가 개발독재의 신화를 두텁게 했다면 후자는 개발독재의 신화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했던 것이다.

    41)일레인 볼드윈 외, 조애리 외 역,『문화코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09, 74쪽.  42)김한상, 위의 책, 21쪽.  43)이영일, 위의 책, 354쪽.  44)이영일, 위의 책, 363쪽.  45)이영일, 위의 책, 364쪽.  46)이영일, 위의 책, 354쪽.  47)<6대 대통령에 박정희씨>, «동아일보», 1967년 5월 5일 자.  48)<표의 역류 6ㆍ8총선분석>, «동아일보», 1967년 6월 10일 자.  49)임지현 외,『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3, 7쪽.  50)박지연, 「영화법 제정에서 제4차 개정기까지의 영화정책(1961~1984년)」,『한국영화정책사』, 나남출판, 2005, 220쪽.  51)주창규, 위의 글, 380쪽.  52)주창규, 위의 글, 373쪽.  53)황병주, 위의 글, 4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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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임 지현 2003
  • 9. 진 회숙 2009
  • 10. 한 완상 1978
  • 11. 황 병주 2008
  • 12. 황 석영 2000
  • 13. 볼드윈 일레인, 조 애리 2009
  • 14. 오르 존, 김 경욱 1999
  • 15. 헤이워드 수잔 1999
  • 16. 김 중철 1996 [『한국언어문화』] Vol.14
  • 17. 성 미란 1998 [『문학과 창작』]
  • 18. 유 지나 1995 [『영화연구』]
  • 19. 오 영숙 2002 [『영화연구』]
  • 20. 장 병호 2000 [『한국어문교육』]
  • 21. 주 진숙 1995 [『영화연구』]
  • 22. 주 창규 2007 [『영화연구』]
  • 23. 채 윤정 1997 [『한국가족학회지』] Vol.3
  • 24. 1964
  • 25. 1967
  • 26. 1967
  • 27. 1967
  • 28.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