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Film Industry

디지털 기술과 감성 패러다임 시대의 영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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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In this article I compare Korean popular films to those of Hollywood's, especially its blockbusters in terms of digital technologies and affects. As filmmaking has been transformed from an analogue process to a heavily digitized one, film theorists have been concerned about the lack of investment in narrative construction and the general tendency toward increasing pace in order to generate audience excitement. I argue that while this may be true to Hollywood blockbusters, the Korean commercial films still value accurate continuity, for the Korean audience prefers believability and internal consistency to the spectacle of images that have no sense of meaningfulness and coherency. Consequently, there are also formal differences in editing in such a way that instead of rejecting classical continuity, the Korean films seem to follow what Bordwell called ‘intensified continuity’ in order to meet the demand of audience thrills. I, take this contextual difference to suggest that it would be a mistake if we apply directly to the Korean films the theory of affect that assumes the radical new form of power characterized not by disciplinary institutions, but by free-floating control through cybernetic systems., namely ‘control society’. I argue that as the theory constructs a direct relationship of causality between affect and the control of the body, it tends to ignore the importance of mediation and thus contextual differences between the Korean film and Hollywood blockbusters. I finally turn to the importance of narrative in Korean films to support the idea that, unlike Hollywood blockbusters that no longer signify and focus only on producing affect, they may be better explained by the concept of emotion, that is signifying practices articulated through meaning effects and power relations. The task facing Korean film studies is, then, to identify the strategies and sites where emotional investments make transformation possible. To do so, I propose to make use of both cognitive and affective mapping.


  • KEYWORD

    digital technologies , the affective turn , Korean film industry , control society , intensified continuity

  • 1. 차이로서 한국영화

    2010년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순위를 보면 전체 1위가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이고 <아저씨>가 600여만 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2011년에도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3>이 <최종병기 활>을 약 30여만 명의 차이로 제치고 종합순위 1위를 차지했다. 2012년에 이르러서는 1,000만 관객을 훨씬 상회한 <도둑들>의 압도적인 위세에 눌려 <다크나이트 라이즈>조차도 개봉 초반의 무서운 흥행돌풍을 지속하는데 실패한다. 2009년 또한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대결구도가 펼쳐지는데 <해운대>와 <국가대표>의 월등한 성적으로 인해 <트랜스포머 패자역습>이 3위를 차지하는데 그친다.1)

    간단하게 이 통계로만 살펴보아도 한국영화시장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로 양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2012년 8월을 기준으로 한다면 <도둑들>로 시작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이웃 사람>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점유율 70.2%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결과일 뿐 상시적 상황이라 할 수 없으며 한국영화시장은 대체로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영화가 양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영화산업 전체의 부침을 가장 간단하게 조감해볼 수 있는 통계는 국내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상회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시장의 분담비율은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이 결과를 조금 더 파헤쳐보면 흥미로운 결론을 얻게 된다. 한국관객들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를 즐겨 소비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한국영화를 선호하는데, 이 때 영화의 흥행조건 중 빼놓을 수 없는 점은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근접하면서도 전개 되는 이야기의 내용이 ‘우리’ 정서에 알맞게 진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의 짜임새 또한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스토리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한국영화의 ‘얼터 에고’(alter ego)로서 롤 모델임에 틀림없지만 한국영화에는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결핍된 부분을 채워 넣는 ‘플러스알파’가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다. 한국영화에서조차 흥행을 리드해 나가는 영화들의 ‘약한 스토리구조’를 비판하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2) 스토리의 약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관객 또한 적지 않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기시감’을 갖게 할 만큼 할리우드 영화와 유사한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관객들은 구체적으로 어느 장면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따온 것인지, 그 분석 결과를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관객의 치밀한 검증과정은 정보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영화소비 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와 경쟁해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나 할리우드가 가지지 못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들도 한국영화를 선호하는 이유를 할리우드와의 차이점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은 둘 사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코 같지 않음을 인정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고 난 어느 한 관객이 “<아포칼립토>의 그림 속에 <원티드>를 넣어두었지만 한국형으로 잘 만들어져서, 나름 비교하면서 재미있게 봤다”는 영화평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3) 이는 할리우드 영화가 혼성모방의 소스로 이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형’ 영화로 불릴 수 있을 만 한 차이를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 판권을 사들이고, 한국 감독과 배우를 고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혼성모방의 벡터가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로의 일방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 자체가 지구화된 현재의 맥락에서 보면 크게 비판 받을 일은 아니다. ‘고유’했던 문화, 특정한 장소에 한정됐던 ‘인구이동’, ‘기술’. ‘국가자본’, 을 포함해서 ‘내셔널 시네마’의 개념까지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교통수단이 매개된 지구화로 인해 원래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4) 문화는 이제 동질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차이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유사한 상황에서 작은 차이가 커다란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가 지구적 층위에서 동질화가 촉진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적 표면은 차이로 가득한 모순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문화적 차이가 유통되는 통로로서 상품이 폭발적으로 생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차이마저도 잠정적으로 교환가치가 내재한 상품관계로 흡수, 통합되기 때문이다. 러더포드(Jonathan Rutherford)가 오래 전에 주장했듯이 문화적 차이가 곧 상품과 직결되는 세상인 것이다.5) 차이를 경험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품적 관계를 전제로 한 논리인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차이는, 그렇다면 한국영화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그 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복잡한 변수의 조합으로 제시될 수 있지만, 결국 할리우드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 만들기라는 말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 대신 짜임새가 촘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환상적인 스토리보다 리얼리즘에 치중한 내용일 수 있으며,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스타일을 참고하면서도 한국정서에 맞도록 장르를 혼합하고 변주시켜 새롭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을 포함한 차이인 것이다. 그 차이가 한국영화의 상품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로서 한국에서 시도된 환상적 블록버스터가 대부분 실패했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이 개입된 <7광구>나 <마이웨이>는 흥행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령>, <예스터데이>를 포함해서 무협영화 <무사>나 <중천>의 경우도 서사의 부족함으로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은 작품들이다. 반대로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괴물> 등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공 요인은 예외 없이 한국적 상황과 정서에 기초하거나 전통적 장르에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개입시킨(<도둑들>의 경우 배제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이처럼 차이나는 상황에서 할리우드와 한국영화를 동일한 잣대로, 즉 동일한 이론으로 조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연구문제를 설정하는 이유는 첨단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전 지구적 문화취향을 동질화시키고 있는데 반해, 성공한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의 최신 유행을 뒤쫓는 디지털 블록버스터라기보다 고전 장르영화와 첨단 블록버스터의 틈새에서 절충의 산물로 만들어진 차별화 된 ‘잡종’의 산물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구의 첨단이론을 한국영화에 아무런 수정 없이 직접적으로 대입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특히 들뢰즈에서 마수미로 이어지는 감성이론이 유행처럼 한국영화에 적용되는 경향에 대해 그것이 과연 한국 상업영화의 맥락과 현실에 초월적으로 대입될 수 있을 것인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의 편집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이 차이가 디지털 기술과 감성이론 그리고 영화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접합하고 있는지, 그 삼각관계의 이론적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글에서는 최근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이에 따른 감성 패러다임의 등장을 한국 영화산업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망함으로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뉴미디어 이론이 얼마나 한국 상황에 적합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논의를 위해 한국 대중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전체를 통계적이고 객관적 증거로 제시하기보다 가장 극단적인 편집의 예를 통한 담론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실증이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중시하지만, 담론분석은 반대로, 푸코의 연구에서 등장하는 주변부 인물이 보여주고 있듯이,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경우가 의미 있는 것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는 정상적인 것이 밝혀내지 못한 구조의 변화를 극단적인 사례가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6) 따라서 이 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의 사례를 비교할 때 각각의 경우를 모두 망라한 객관적 정보를 증거로 제시하기보다 전형적인 특정한 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화의 징후를 담론과 이론중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1)이 글에서 제시한 통계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을 종합한 것이다.  2)예를 들어 어느 한 관객은 <도둑들>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천만 관객 영화를 보면 <왕의 남자>, <쉬리>, <괴물>, <태극기 휘날리며> 등 스토리가 중심인 드라마가 아트잖아요. 근데 <도둑들>은 그런 영화들과 달리 스토리는 약한 부분이 있죠. 대신 화려한 배우들을 2시간동안 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트인거죠.” <천만 관객 영화 바라보는 시선1. 도둑들>, http://V.daum.net/link/33770892 참조.  3)<기대 이상의 한국형 아포칼립토 원티드 영화>, http://timecook.tistory.com/608.  4)지구화 시대의 문화적 동질성과 차이에 대해서는 아르준 아파두라이, 『고삐 풀린 현대성』, 현실문화연구, 2004, 51-87쪽을 참조.  5)Rutherford, J. “A Place Called Home: Identity and the Cultural Politics of Difference,” Identity: Community, Culture, Difference, London: Lawrence and Wishhart, 1990. pp.9-27.  6)담론분석의 방법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조종흡, 「미시ㆍ거시 영화텍스트 분석의 통합 가능성 연구: 연구방법을 위한 이론세우기」, 『영화연구』 33호, 2007, 505-538쪽 참고. 여기서 담론분석은 실증이론과 달리 이론에 앞서 존재하는 데이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작업 그 자체를 결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연구자가 총체적인 현상분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데이터가 필연적으로 전체에서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이 분리/선택의 과정은, 따라서 매우 정치적이고 이론적이라는 것이다.

    2. 디지털 기술과 감성 패러다임

    많은 학자들이 지구화된 경제체제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산업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일상적 경험을 접합하는 방식 또한 급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제를 영화로 좁혀서 이 문제를 접근할 경우에도, 역시 다수의 학자들이 영화와 영화가 처해 있는 거시 정치경제적 맥락과 매체환경을 살펴본 뒤 관람행위의 조건이 변화한 것에 주목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물론 디지털이다. 디지털 기술이 영화를 지각과 시각적 촉각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몸과 지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까지 영화이론이 주로 의식과 인지에 주력했다면, 디지털 매체의 환경에서는 몸과 지각에 관계된 감성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즉, 영화가 이제 감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 그 변화의 배경인 상품 페티시즘과 후기 자본주의를 체화된 지각과 상호텍스트적 관계로 연결시키는 이론인 것이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지각 공간은 머리로 깨우치기보다 몸으로 느끼는 개념임으로 해서 이데올로기와 재현을 건너뛰고 있으며, 바로 그런 이유에서 프레드릭 제임슨의 주장대로 추적하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7) 그 어떤 비판 작업도 거부하는, 따라서 ‘폭로’가 쉽지 않은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영화연구를 통해 불가능에 가까운 이 작업을 최소한 파악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는 영화연구가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감정구조’를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8) 영화는,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감성을 생산하고 그 감성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조나던 벨러(Jonathan Beller)는 영화와 그 이후 등장한 영상미디어는 탈영토화 된 공장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생산노동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시네마 기계는 동영상의 유통과 소비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잉여 노동력을 차출해 상품 경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9)

    이렇듯 시선의 주목, 감성, 정보 등과 같은 비물질적 대상이 상품으로 기능한다는 주장은 영화를 통한 자본경제 체제의 유추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곧이어 논의될 내용을 미리 얘기하자면, 고전 할리우드의 연속편집 시스템이 포디즘 생산양식에 상응하는 논리로 작용했듯이, 디지털 영화의 편집방식과 형식적 장치는 후기 자본사회의 신자유주의 경제, 즉 포스트포디즘 경제를 떠받드는 컴퓨터, 정보기술의 작동원리와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10) 디지털 영화의 편집방식이 보다 더 생생하고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생산하기 위해 선택과 조합이라는 디지털 합성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은, 또한 디지털 경제를 바탕으로 한 포스트포디즘의 ‘통제사회’적 특징과 논리를 그대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디지털 경제의 공간 안에서 산출되는 일상적 경험이라는 재현하기 어려운 생활양식을 이제 ‘인식론적 지도그리기’(cognitive mapping)대신 ‘감성적 지도그리기’(affective mapping)를 통해 현재의 시대적 느낌과 감정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식의 지도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새로운 공간관계를 경험하는 것과 관계된 프레드릭 제임슨의 용어로 개인의 몸을 초월해 외부세계에 자신의 위치를 지도처럼 파악할 수 있는 인식의 과정이다. 이는, 다시 말해 광활한 지구 자본주의를 어떻게 지도 그릴 것이며 우리를 그 곳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지에 관한 인식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개념이다.11)

    그러나 오늘날 제임슨의 주장대로 인식의 주체가 사려져 가는 상황에서12) 감성은 넘쳐나고 이 과잉적 현상이 지속적으로 주체를 넘어서 주체로부터의 자기 자신을 휩쓸어 가면서 현대인들을 압도하는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감성지도는 이 맥락에서 문화가 사회적 관계를 단순히 재현 또는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관한 느낌과 흐름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용어다.13) 영화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임은 당연하다. 영화는 이제 감성지도로서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의미과정으로 파악되는 대신 현대사회의 관계와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사회 구조 그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에서 감성으로 영화이론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논리적 근거는 들뢰즈와 이를 정교하게 발전시킨 마수미(Brian Massumii)의 감성이론이다. 여기서 느낌과 감성은 주관적 상태이거나 이미 의미가 개입되어 있는 감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나 약호화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에너지로서의 감성의 흐름이나 감각 또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14) 따라서 감성은 절대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전개인적(pre-individual) 과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감성은 주체가 인지할 수 없음으로 해서 의미가 개입될 수 없고 아직 소유할 수 없으며 비판이 불가능한 개념인 것이다.

    감성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주체의 정체성, 재현, 트라우마에 관한 논의에서 탈피해 정보와 감성의 주제를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기적 몸을 우선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비유기적 생명체까지 탐구하는 연구 관심사이고, 닫힌 체제의 균형보다는 그렇게 안정적이지 못한 조건 아래서 찾아볼 수 있는 복잡한 열린 체제를 주목하는 변화를 말한다. 또한 경제생산과 소비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전 개인적 몸이 가진 수용능력의 경제적 유통 또는 생정치적ibiopolitical) 통제의 영역에서 나타난 감성에 주목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인간의 몸과 생활 그 자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기술과학의 배치가 자리 잡고 있다.15)

    한국에서 영화제작 현실이 이제 디지털 기술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음으로 해서 이런 감성이론은 한국영화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해운대>를 비롯한 다수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은 필수요건이 되었으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합성된 이미지는 마치 관객의 지각을 확장시켜 놓은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효과 또한 환상적이다. 이미 20세기 초 벤야민이 주장했던 ‘찌르듯이 관객을 엄습’하는 ‘촉각적 충격’16)을 극장을 찾은 천만의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시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합성 세계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느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드문 예외적인 경우다. 대대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그런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극소수의 영화에 속한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 한국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은 리얼리티를 보완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추격자>의 경우처럼, 우주를 나르는 비행선이나 도시가 갑자기 파괴되는 자연 재해 또는 로봇이나 외계인으로 합성된 이미지와 같이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장면을 위해서 CG를 동원한 사례보다 범인이 도주하는 골목길에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자동차 몇 대를 주차시켜 놓는 것이 훨씬 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어 합성 이미지를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보완하는 수단으로 CG작업을 동원한다는 주장은 영화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직까지 한국 관객들은 SF나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스타워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개봉 때마다 흥행기록을 새로 썼던 이 시리즈가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본 적이 없다.17) 이 맥락에서 한 영화제작자는 이 문제를 ‘핍진성’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18) 다시 말해 한국 관객의 경우, 그래픽의 현란함보다 잘 짜놓은 사실적인 스토리 중심의 영화가 흥행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많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흥행에 실패한 것도 부분적으로 이 박진성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서구의 영화이론이 인지에서 감성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한국 영화산업이 디지털 기술을 전면 수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얼핏 감성이론의 대입이 무리 없이 가능할 것 같지만, 정작 한국 영화산업과 관객 수용의 실상을 파고들면 아직도 한국 대중영화가 전통적인 영화문법에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로 인한 효과나 결과는 감성과 지각 개념을 우선해서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적 조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상업영화가 일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의미를 배재한 채 새로운 감성의 구축에 몰두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디지털 기술과 감성을 직접적인 관계로 살펴보기에는 두 변수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매개 조건이 한국영화라는 맥락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각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의 제작과정이 전적으로 과거 아날로그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영화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제작과정에서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급진적인 단절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혼합과 상호작용으로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타난 스타일의 경향을 따르면서도 내용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Jameson, Fredric,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 Press, 1991, pp.53-4.  8)Shaviro, Steven, Post Cinematic Affect, Winchester: Zero Books, 2010, pp.2-3.  9)Beller, Jonathan, The Cinematic Mode of Production: Attention Economy and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Hanover: Dartmouth Univ. Press, 2006, pp.1-13.  10)Manovich, Lev,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IT Press, 2002.  11)Jameson, Fredric,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 Press, 1991, p.44.  12)Ibid, p.10-12.  13)인식의 지도와 감성지도 두 개념에 관한 비교분석은 Bruno, Giuliana, “Traveling Domestic: The Movie “House”,” Atlas of Emotion: Journeys in Art, Architecture, and Film, New York: Verso, 2002, pp.247-79를 참조.  14)Massumi, Brian, Parables for the Virtual: Movement, Affect, Sensation, Durham: Duke Univ. Press, 2002, pp.22-45.  15)Clough, Patricia Ticineto, “Introduction,” The Affective Turn: Theorizing the Social, Durham: Duke Univ. Press, 2007, pp.1-33.  16)벤야민의 시각적 촉각성에 관해서는 정용환, 「새로운 매체와 예술의 변화」,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2, 2010, 331-44쪽을 참고.  17)콘텐츠진흥원, 『미국 문화코드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3쪽.  18)이 내용은 차승재 제작자와 2012년 9월 4일 가진 개인 인터뷰를 통한 결과임.

    3. 한국영화와 ‘연속성의 강화’

    보드웰은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와 국제 상업영화에서 나타난 빠른 속도의 편집, 카메라 렌즈 거리의 양극성 그리고 클로즈 프레임 등과 같은 영화 형식의 특성을 ‘연속성의 강화’(intensified continuity)로 설명한 바 있다.19) 이런 스타일은 강렬한 순간적인 기대감을 유도하는 것으로 1940년대 감독들이 극적인 서스펜스를 위해 아껴뒀던 기술이었는데 현대 영화에서는 흔한 테크닉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변화가 근본적으로 1910-20년대 정립된 전통적인 연속성까지 바꾸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스타일로 등장한 ‘파편화’나 내러티브의 ‘모순성’은 기존의 고전 스타일을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드웰은 영화가 형식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방법에서 최근의 변화를 단순히 부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단이 바뀔 수는 있지만,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관객이 항상 그러 했듯이, 극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인지 과정을 통해 고전서사의 스토리라인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얘기하는 1970년대 이래 등장한 ‘뉴 할리우드는’, 따라서 고전 할리우드와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더욱 더 닮아있다는 것이다. 보드웰의 관점은 아무리 영화가 변한다 해도 그 구조적 바탕에는 고전 서사체계가 구축한 규범들이 인과율과 선형적 시간의 논리로 수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20)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지난 10 여 년 동안에 제작된 블록버스터들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고전 서사 규범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결과 보드웰의 ‘연속성의 강화’ 논리는 도전을 받게 된다.21) 이런 배경에는 특히 할리우드 액션 장면이 점점 ‘인상적’으로 변하면서, 예를 들어 전투나 추격 장면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쇼트와 쇼트를 연결 짓거나 액션과 연관시켜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빠르게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카메라와 편집은 여기서 액션의 구체적인 연결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서 연속성을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드웰의 이론은 1970-8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의 경향을 ‘연속성의 강화’로 설명할 수 있어도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주류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무나 혁명적인 디지털 기술이 현대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관객이 열광한 <트랜스포머>나 <본>시리즈 같은 경우, 영화가 즉각적인 효과를 우선시 할 뿐 쇼트와 쇼트의 층위나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연속성의 문제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 이 영화를 연출한 마이클 베이(Michael Bay) 감독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영화제작은 대중을 위한 것이지 디테일을 위한 것이 아니며, 연속성에 연연하다보면 영화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 없고, 예산 또한 낮출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22)

    실제로 <트랜스포머>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럴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액션이다. 이 영화에서는 로봇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고, 때로는 인간이 로켓과 미사일을 로봇에 발사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로봇이 인간 병력을 말살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치열한 전투장면의 당위성이나, 예를 들어 어떻게 로봇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공격하다가 시공을 초월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에펠탑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 그 어떤 논리적 흐름이나 연속성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파괴를 위한 파괴와 로봇의 전투장면 만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감독의 말대로 편집의 속도와 제작비 절감인 셈이며, 오로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소비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이전 아날로그 시대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도구화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환경이 변화한 상황에서 비평가 브루스 레드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이 영화는 ‘모든 그럴 법한 가능성이나 내부적 일관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도 찾아보기 어렵다. 편집은 작위적이고, 영화문법의 모든 법칙이 내동댕이쳐지고, 단지 앞으로의 전진만이 전부인 것이다’.23)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영화관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드웰은 이런 현상이 베이의 영화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고전 서부극이나 코미디에서 한 때 찾아볼 수 있었던 명쾌하고 우아한 움직임이 오늘날 영화에서는 발작적인 전투와 원거리 추격 신으로 대체되고 있는 사실을 개탄하고 있다. 처음에는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와 마이클 베이에서 시작한 것이 이제는 거의 모두가 이런 스타일을 차용함으로서 일종의 새로운 규범이 됐다는 것이다.24)

    이렇게 보면 서사파괴가 오늘날 모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쇼트를 믹스매치하고 전통적인 시공간적 연속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놀랄 만 한 일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관객이 할리우드 영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영화의 일관된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 보다 디지털 컴퓨터 시대에 걸 맞는 이미지의 전개를 즐기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이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지고 있고, 이는 곧 컴퓨터 코드가 의미를 생성하는 언어, 즉 기표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액션을 처리하는 명령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현대영화 편집이 의미 또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데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관객의 정서적 상태를 순간순간 조작하는데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편집의 내러티브 기능을 중시하는 ‘해석적 모드’는 커트와 페이스를 우선하는 ‘실행적 모드’의 편집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5) 이에 따른 결과는 영화의 박진성과 내부적 일관성을 무시한 채, 즉 기존의 영화문법을 외면한 채 자의적인 편집을 통한 관객의 흥분과 감성을 극대화 하는 디지털 스펙터클의 생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가능하다. 만약 현대 할리우드 영화가 내러티브 구성이나 연속성에 소홀하고 의미 있는 표현에 집중하기 보다 영화의 ‘쇼크효과’를 극대화 하여 강화된 감성에 몸이 반응하도록 만들고 있다면 흥행에 성공한 한국 상업영화들도 이와 동일한 경향을 보이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서 예외적인 독립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를 제외하고 관객동원에 성공한 주류 상업영화만을 놓고 봤을 때 한국영화와 <트랜스포머>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차이는 보드웰의 ‘연속성의 강화’(intensified continuity)와 이에 맞선 ‘포스트 연속성’(post continuity)의 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오늘날 한국영화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변화는 여전히 이야기를 중시하는 고전 스타일의 ‘강화’에 가깝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런 판단은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여전히 영화를 통해 시대적 ‘감정구조’를 담아내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 것이다. 특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련의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조차 범행 장면의 시각적 센세이션을 추구하면서도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포함한 영상문법을 지키는 영화로 구축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유도하는 흥분을 위한 감성의 생산에 몰두한 영화로 분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기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영화적 박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오로지 스릴의 강도를 높일 목적으로 페이스를 가속화 하는 일은 현명한 영화산업의 비즈니스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와의 차별성에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이 범죄영화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이거나 박진성이 담보된 리얼리즘 텍스트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추격자>의 경우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영화로서 현란한 첨단기술을 동원하는 대신 시나리오, 연기, 촬영 등 영화로서 갖춰야 할 기본에 충실한 영화다. 관객이 이미 뉴스로 체험한 사건을 영화에서 다시 확인하도록 하는. 즉 경험이 영화에 개입하도록 함으로서 공포의 극적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으로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후 출시된 동일한 장르의 영화에서도 최소한 ‘있을 법한 이야기’의 원칙은 고수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지극히 고전적인 권선징악의 서사구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범죄영화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겟 어웨이>가 범인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래 절대 악이 완전 범죄를 성취하거나 영웅보다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이제 진부할 정도로 흔한 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한국의 범죄영화에서는 여전히 주인공이 직접 범죄자와 맞닥트려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이야기 구조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추격자> 이후에 등장한 동일한 장르의 영화들이 소재의 특이성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각기 처해 있는 상황이 특별하지만 마지막 결말은 주인공이 승리하는 서사구조를 유지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주목할 부분은 이 영화들이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범죄의 추적과정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액션이 강조되고 이 과정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각효과는 할리우드의 경우처럼 현실보다 더 장대한 과장된 스펙터클이라기보다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편집을 통한 ‘강화된 연속성’ 의 규범으로 서스펜스를 유도하고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수법은 특히 범인을 영화 초반에 노출시키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추적을 계속하는 <추격자>,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강철중> 등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적 이미지가 공통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이 영화들이 제시하는 국면적 정서는 아마도 광기와 불안과, 공분이 뒤섞인 불확실성의 감정 구조일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광기에 불안해하고, 공권력의 무능과 가진 자의 횡포에 공분하며 사적 복수에 해결책을 기대어 보지만 돌아오는 결말은 아무 것도 보장할 수 없는 불확실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공공성과 사익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성취하기 어렵지만, 바로 그 불가능성 때문에 더욱 더 성취할만한 가치가 있는 당위로, 즉 의미의 영역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몫은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19)Bordwell, David, “Intensified Continuity: Visual Style in Contemporary American Film,” Film Quarterly 55(3), 2002, pp.16-28.  20)Ibid, p.25.  21)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김지훈, 「우발성의 테크놀로지들: “마음-게임 영화”에서의 디지털 미디어 인터페이스 효과들」, 『문학과영상』 10(1), 2011, 47-85쪽 참조.  22)Transformer DVD Review: http://io9.com/5301898/michael-bay-finally-made-an-art-movie.  23)Reid, Bruce, “Defending the Indefensible: The Abstract, Annoying Action of Michael Bay”, http://www.thestranger.com/seattle/Content?old=4366.  24)Bordwell, David, “A Glance at Blows”, http://www.davidbordwell.net/blog/?p=3208.  25)Shaviro, op. cit., p.118.

    4. 할리우드 불록버스터와 ‘미학적 가속주의’

    그러나 할리우드의 동일한 장르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은 한국영화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할리우드의 자체 내에서도 폭력을 재현하는 방식이 과거와 다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변화는 할리우드 영화 전반의 변환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제작의 층위에서 스튜디오 시절의 대량 제작에서 오늘날 대기업화 된 미디어 정보산업으로 보다 유연하게 무장한 결과 나타난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관객이 영화를 단순하게 소비하는 추세에 맞춰, 또는 역으로 그런 성향으로 길들이기 위해 제작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의 디테일에 충실하기보다 낮은 코스트로 최대의 소비를 유도하는 영화제작, 즉 빠른 페이스에 집착하는 기업환경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26)

    전통적인 문화와 미학적 체계가 붕괴되고 고전 영화형식과 생산양식이 새로운 스타일로 뒤바뀌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영화는 서로가 서로를 참고 할 뿐만 아니라 영화와 타 미디어(특히 텔레비전)의 역사에서 자유롭게 스타일과 내용을 차용하는 혼성모방의 수법으로 영화를 제작함으로서 영화에서 깊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27) 유사한 맥락에서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진정한 과거를 재현하는 대신 오직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나열함으로서 현재의 결핍을 시각적 쾌락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깊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타난 폭력성도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나타난 폭력 또한 현실 세계나 전통적인 사회적 관계를 통해 내러티브의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그 깊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의수호라는 국가적 신화나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이 승리한다는 문화코드가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28) 이는 곧 가장 생생하게 묘사된 폭력적 이미지에서 그 어떤 오리지널리티도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미를 비운 균질화 된 다른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인 것이다.

    샤비로는 이처럼 새로운 할리우드의 환경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의미를 상실한 이미지들의 관계를 추적하는 영화분석을 통해 이 영상 이미지들이 실제로 우리의 몸과 감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풀어내고 있다.29) 이 텍스트들은 오늘날 디지털 정보사회가 우리의 지각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과 산재하지만 유연한 권위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로 무장하고 있는 ‘통제사회’의 징후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또한 광란적이고도 추적 불가능 한 추상적인 자본의 흐름이나 현실과 시뮬레이션을 구분할 수 없는 실상과 연결되기도 하며, 비디오 게임의 논리가 문화 전반에 확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감성 생산기능, 또는 감성 패러다임이 디지털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그레이스 존스의 뮤직 비디오 <재벌 식인자>(Corporate Cannibal)를 분석한 대목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영상에서 주인공 존스의 얼굴과 몸통이 담긴 실사 이미지는 디지털로 변환되어 늘려지고, 으깨지고, 뒤바뀌는 변형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디지털 영상이 이항코드로 표현되고 알고리즘의 절차에 따라 처리되지만, 이 영상에서는 이런 기술적 수단이 영상의 내용 자체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이 디지털 신호로서 하나의 기계장치로 변해 ‘주체’의 개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변조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맥루언의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30)

    샤비로는 이 변조의 개념을 시시각각 지속적으로 변화와 자체변형을 가능케 한 ‘형성하기’라는 들뢰즈의 ‘통제사회’(control society)와 연결시켜 설명하면서 디지털 변조체제에서는 고정되거나 미리 주어진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31) 푸코의 기율사회에서는 포디즘 산업 생산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고정된 형상이어야만 해서 노둥자는 작업라인에서 훈련된 동일한 노동의 리듬을 가져야 했고, 상품 또한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상호 교환이 가능했지만, 통제사회, 즉 포스트 포디즘의 디지털 정보경제에서는 언제라도 의도하는 대로 형태가 바뀌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이 필요한 때는 오로지 유동성을 확보해야 할 상황일 뿐이라는 것이다.

    샤비로는 바로 이 유동성이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유동성은 생산의 층위에서 상품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법이자 생산을 수요에 맞춘 ‘just-in-time’ 체제를 운영할 수 있는 가치 창출의 기제라는 것이다. 유동성은 또한 노동의 영역에서 이러한 새로운 체제에 맞춰 적응성, 유연성, 다목적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의 층위에서 유동성은 더 이상 포디즘의 표준화와 통일성을 따를 필요가 없어져 소비자 자신만의 선호하는 것을 주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변조의 개념은 이렇듯 상품의 차이와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근원적 통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32)

    이렇게 샤비로는 영화를 거시 정치경제와 연결시키면서 영화에서 나타난 스피드, 통제, 착취 그리고 게임 속 인물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암울한 감성을 징후화 할 뿐만 아니라 이 감성들이 관객의 몸에서 어떻게 직접적으로 생산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가 분석한 영상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미학적 가속주의’(aesthetic accelerationism)의 전략에 포섭되어 있다는 점이다.33) 영화가 과장과 과잉의 전술을 통해 현대 디지털 문화의 특정한 측면을 부풀려 더욱 더 눈에 띄게 만들고 더욱더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영상 이미지들이 단순히 감성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흐름 그리고 느낌을 적극적으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샤비로는 문화정치의 측면에서 이 감성의 가속화를 유용하고 생산적인, 심지어 필요한 미학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 효과를 담보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 불가능성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여기서 감성은 그 과정에서 필요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네마 시대에 벤야민이 영화의 가치가 쇼크효과에 있다고 주장했듯이,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샤비로는 영화가 일에 대한 불확실성과 생활 조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비인간적인 자본의 흐름을 방임한 결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강화된 감성을 일상적인 것으로 대중들을 습관화 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34)

    이렇게 보면 결국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영화 모두 시대적 감성을 ‘과잉’으로 산출하는 사회기구로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작동방법에는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한국영화가 일관된 서사가 바탕이 된 이야기로서 사회적 징후를 나타내는 지표, 즉 감정구조를 제시하고 있다면, 일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그 재현과정을 생략하고, 따라서 인식과정을 대신한 신체의 직접적인 반응을 유도함으로서 고조된 에너지로서의 감성이 우리를 통제사회의 일원으로 조정하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차이는 ‘인식’과 ‘감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6)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Slocum, J. David, “Violence and American Cinema: Notes for an Investigation”, Violence and American Cinema, New York: Routledge, 2001, pp.1-34를 참조.  27)볼터와 그루신은 이 맥락에서 뉴미디어가 구매체를 모방하는 과정을 ‘재매개’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Bolter, Jay David and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IT Press, 2000.  28)Slocum, pp.20-1.  29)Shaviro, op. sit., pp.6-7.  30)Ibid, p.15.  31)들뢰즈의 통제사회에 관한 논의는 Deleuze, Gilles, Negotiations 1972-1990, New York: Columbia Univ. Press, 1995, p.179참조.  32)Shaviro, p.14.  33)Ibid, p.136.  34)Ibid, p.137.

    5. 결론의 대신하여: 감성, 매개, 영화산업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질문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만약 영화적 표현이 징후적이면서 생산적인 양면의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면 각각의 층위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첫 번째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징후적 층위는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가 맥락과 방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불확실성을 미학적 가속화를 통해 징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기서 영화적 표현은 담론으로서 실제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각기 다른 맥락에서 유사한 감성이 생산됐다는 것은 공통의 매개적 조건, 예를 들어 자본의 지속적인 위기나 다른 공통적인 요소가 작동한 효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어서 이 유사한 감성의 생산적 효과는 과연 무엇인가의 질문이 가능하다. 여기서 생산적이라 함은, 샤비로의 관점을 따르자면 사회적 과정을 영화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노의 ‘감성지도’의 논리대로 영화가 이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 자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35) 이는 영화가 감성을 산출하는 기계이며, 이 감성으로부터 ‘시선의 주목’이라는 가치를 창출하는 기계라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라고 할 수 없으며, 대신 영화는 사회적 생산, 유통, 그리고 분배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이 부여한 통제사회의 질서를 생산하는데 영화가 일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통제사회가 데이터와 정보로서 몸에 나타난 모든 것을 조정하는 것과 인간의 몸 자체를 정보와 데이터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한국의 상황이 서구의 어느 사회와 비교해도 훨씬 앞서 있는 디지털 정보사회의 문화적 토대를 갖추고 있음을 감안할 때 통제사회는 서구보다 한국에서 더욱 더 공고히 구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잉의 폭력적 이미지가 ‘연속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단지 페이스가 강화된 스타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통제사회의 논리적 조건인 이미지의 변조가 한국영화의 우선적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감성의 작동원리가 한국에서 다소 차이 나게 작동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사회는, 다수의 감성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생정치학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이다. 즉 생활방식의 감성적 배경, 예를 들어 무드, 능력, 감성과 잠재력, 선호 리스트 등을 모두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36) 그러나 이는 감성의 관계를 아무런 중재도 없이 자극과 반응의 관점으로 취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푸코의 기율개념이 국가의 탈중심화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이 이론은 존재론적 권력을 국가자본주의 권력 그 자체로 포섭하는 논리로 발전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매개의 개념이 충분하지 못하고 권력의 복잡한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37)

    이 주장의 논리는 또한 실천정치가 그 내부에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수미(Brian Massumi)의 경우 “정부가 신경조직이나 대중의 신체적 표현에 접근해서 전통적으로 의존했던 담론적 중재를 직접적으로 건너 뛸 수 있게 된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38) 이는 비록 마수미가 복잡성에 의해 우연성이 개입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해도 생활의 복잡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논리다. 감성이 직접적인 경험적 효과를 필연적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담론과 비담론적 매개의 아셈블라지 조합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마수미의 논리를 영화에 대입했을 경우에도 영화를 통해 생산된 감성이라는 경험적 권능 혹은 에너지는 존재론적 범주로 취급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몸이 반응하는 감성과 그 환경 사이에 어떤 분리도 허용치 않으면서 그 에너지가 신경체제를 통해 행동을 유발시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39) 물론 어떤 감성이 작동될지는 작동되는 ‘외부신호체제’, 즉 감성이 산출되는 맥락, 그 맥락에서 살고 있는 몸에 각인된 체화된 억제기술, 미디어와 관련된 ‘주목의 기술’ 등에 달려 있다는 조건을 명시함으로서 직접적인 인과관계의 한계를 제시하기도 한다.40)

    이는 감성기구와 중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직면한 도전은, 그렇다면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라는 각기 다른 감성적 양식의 구체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연구가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각자는 그 자체로서의 감성체제를 가질 것이며, 그 결과 감성의 조직으로서 자체의 구성효과를 가질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디지털 변조를 통해 생산한 영상 이미지의 감성적 효과가 포스트포디즘 시대에 자본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해서, 한국영화 또한 오로지 동일한 디지털 기술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동일한 감성을 구축한 것으로 그 인과관계를 직접적인 것으로 전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설령 결과가 유사하다고 해도, 각자가 가진 매개의 맥락은 매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맥락의 차이는 감성정치의 전략 또한 다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감성의 가속화를 추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영화의 감성전략은 분명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의 전면적인 활용을 통한 할리우드 영화는 그것이 비록 서사파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해도, 바로 그 일사분란하지 않은 서사의 붕괴야말로 의미체제를 와해시키는, 따라서 지배적인 의미가 무화되는 소극적 효과를 산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포스트포디즘 시대에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시선의 주목이 필요하고 영화는 바로 이 체제에서 고도의 감성 에너지를 제공하는 디지털 경제의 일부이지만, 고조된 감성이, 제임슨의 비관론과 반대로, 예를 들어 복잡한 다국적 자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접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그리 긍정적인 것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산업 또한 주목의 기술을 통해 감성을 자본의 편으로 포섭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감성의 가속화를 넘어 ‘뉴로 시네마’(neurocinema)를 실험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실시간으로 영화에 대한 뇌 반응을 fMRI기술을 이용해 측정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영화사가 어떤 장면이 관객에게 최대의 스릴을 제공하는지 과학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41) 오늘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서사 대신 오로지 강도 높은 센세이션의 경험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한국 영화시장에서도 관객들의 지지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 지지가 반드시 흥행으로 보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전략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상업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은 수준의 지각 실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예산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강도로 감성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영화제작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격자>, <강철중>시리즈, 그리고 <도가니>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바로 이 상황에서 순수한 자극으로만, 즉 감성의 고조만으로 한국 관객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감성에 의미화를 더했을 때 비로소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한국 영화시장의 현실인 것이다.

    한국 영화와 <트랜스포머>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차이를 감성과 의미화라는 두 개의 판이 접합된 지점에서 감정이 발생한다는 그로스버그의 정의에 따라 다시 분류한다면, 두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은 지각자극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감성 중심의 할리우드 제작과 영화를 통해 당대의 일상적 삶의 질을 감지할 수 있는 ‘감정구조’를 담아내는 한국영화 만들기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42) 이는 물론 고정된 범주적 분류가 아니라 변화와 예외적 가능성의 한계를 수용한 차이이며 현재의 국면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구분이다. 이 논의에서 도출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함의는, 따라서 감성이론을 감정구조를 드러낸 영화에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매개적 변수를 외면한 초월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영화의 매개적 차이는 물론 내러티브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영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위험부담을 최소화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서는, 따라서 디지털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과정에서 파편화된 각종 이미지와, 텍스트와 조각과 부분들을 내러티브를 통해 연결함으로서,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이미지 중심과 시간(플롯)의 상실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소비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갈등이 제시되는 서사구조를 관객이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갈등구조는 또한 한국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를 중시하는 한국영화에서 감성은, 따라서 항상 권력관계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추격자>, <악마를 보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등의 스릴러 범죄영화에서 재현된 범죄자와 희생자,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다양한 권력관계의 대립구도를 통해 생산된 감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닥쳐올 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성찰적 숙고를 가능케 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적 감성은 일상생활의 지형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구조적 문제를 인지하는 구조적 느낌 또는 감정구조로 접합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영화는, <트랜스포머>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여전히 인식의 영역인 의미가 거세된 순수한 에너지로서 감성의 생산보다는 감성이 권력의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적 의미와 접합되어 형성된 감정적 관계를 중요한 흥행요소로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론적 층위에서 감성이론, 혹은 감성지도의 개념을 한국영화산업의 맥락에서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 디지털 경제의 시대를 과잉의 감성적, 자본적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유사한 유추로 한국영화를 감성과 인식의 대립 쌍에서 어느 하나만의 영역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는 ‘인식의 지도’와 ‘감성지도’를 동시에 소환했을 때 영화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고 재현하는지의 인식론적 층위와, 영화가 또한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흐름과 느낌을 구축하는지의 감성적 영역을 포함한 총체적인 지형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맥락에서 영화가 생산하고 반영한 느낌과 성찰 또는 감성과 인지는 여전히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35)Ibid, pp.2-3.  36)Clough, op. sit., p.54.  37)이 주제에 관해서는 Grossberg, Lawrence, “Contextualizing Culture: Mediation, Signification, and Significance,” Cultural Studies in the Future, Durham: Duke Univ. Press, 2010, pp.169-226 참조.  38)Massumi, Brian, “Fear(The Spectrum Said),” Positions 13(1), 2005, p.34.  39)Ibid, p.37.  40)Ibid, p.44.  41)Shaviro, op. cit., pp.120-1.  42)감성과 감정의 구분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조흡, 「포스트헤게모니 문화이론을 위한 ‘감정구조’와 ‘감성경제’의 비판적 분석」, 『영상예술연구』 14, 2009, 97-12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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