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입은 여인』에 나타난 복장도착과 복화술*

Transvestism and Ventriloquism in The Woman in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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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ollins’s most famous novel, The Woman in White, depicts transgressive gender, yet the author’s Preamble seems to reaffirm the rigid Victorian gender system by emphasizing man’s action and woman’s passivity. Using Kahn’s notion of ‘narrative transvestism,’ this essay shows how Collins exploits the cultural associations of the feminine with a private, secretive space of intimate feeling. Drawing on the marginalization of Marian after her apparent illness and the reappearance of Hartright with editorial authority, this essay examines how the hero can be aligned with Fosco, the villain of the novel: silencing a female narrator, violating her private spaces, and even producing a relativized truth. While a feminized Fosco easily accesses a culturally defined female sensibility but runs no risk of losing his authority, a masculine Marian is punished for assuming a man’s position. By editing Marian’s diary at his convenience, Hartright reverses the previous hierarchical relationship with her from an employed instructor to a surrogate lawyer and editor, and consolidates his masculine identity. Ultimately, this essay argues that Hartright, who makes the novel into a marriage plot, encloses and confines a disruptive feminine principle within his authoritative narrative.

  • KEYWORD

    Wilkie Collins , The Woman in White , transvestism , ventriloquism , gender , male gaze , voyeurism , containment

  • I. 들어가기

    콜린스(Wilkie Collins)는 디킨즈(Charles Dickens)와 교류하며 『가정담화』(Household Words)와 이후의 『사시사철』(All the Year Round) 같은 문학잡지 간행에 참여하는 등 출판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중성만이 부각되어 동시대의 다른 작가에 비해 많은 비평적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최근의 논의 역시 그를 대중적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작가로 간주하며 대중문화/문학을 여성과 연결시키며 폄하하는 기존의 비평 경향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특히 그의 초기작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흰옷 입은 여인』(The Woman in White)은 출판 당시 아류작의 출현과 현대식의 캐릭터 연계 산업의 성공으로 일종의 문화적 “컬트”가 되었지만(Sutherland xiii), 그 상업적 성공이 오히려 문학 비평가들의 본격적인 관심을 약화시킨 측면도 있다. 출판 당시 평단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공통적으로 이 작품의 참신함과 플롯의 정교함에는 이견이 없었다.1) 리처드 콜린즈(Richard Collins)는 콜린즈가 디킨즈에 비해 평단의 악평을 받은 이유를 당시 성 담론의 틀을 전복적으로 위반한 데에서 찾고 있다(138). 실제 『흰옷 입은 여인』에서 주요 인물이 외모, 성격, 성 역할 면에서 빅토리아조의 전형적인 인물상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중요한 화자 중 하나인 마리언 핼컴(Marian Halcombe)은 지적이고 적극적이고 자기표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무력한 이부(異父) 자매인 로라 페어리(Laura Fairlie)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스스로 로라와 “모든 점에서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고 차이점을 지적하였듯이(34), 그녀는 당시 여성 교양의 필수라 여겨진 음악에는 관심이 없고, 체스나 당구 같은 게임에 더 열중하고, 하트라이트가 만난 비밀스런 여인의 정체를 찾고 범죄 음모를 추적하는 탐정 역할에 더 관심을 갖는다. 로라의 두통이 “본질적으로 여성의 질병”으로 간주되는 것처럼(33), 선정소설에서 신경과민과 육체적 흥분과 동요는 보통 여성성과 결부된다. 마리언이 여성성과 결부되는 신경증적인 전형에서 벗어났다면, 프레데릭 페어리(Frederic Fairlie) 같이 극단적인 신경증의 면모를 보여주거나, 포스코 백작(Count Fosco) 같이 섬세하고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 인물이 있다. 포스코 백작은 “남성의 옷을 입은 뚱뚱한 성녀 세실리아”로 언급되며(230), 살집이 있는 몸매와 어울리지 않게 주의 깊고 세심하며 음식, 옷, 예술에 민감하고 품위와 기품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여성적으로 묘사된다.

    『흰옷 입은 여인』의 주요 인물이 보여준 이러한 남녀 복장을 바꿔 입는 도착적인 젠더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황색 저널리즘에 열광하는 당시의 병리적 문화현상에 대한 반영이자 이 작품의 선정성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이해되어 왔다.2)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에 나타난 복장도착은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삶을 영위한 작가의 개인사의 측면에서 당시 억압적인 성 담론에 대한 도전으로 평가되어 왔다.3) 그러나 작품 전체의 전복적인 젠더재현과 달리 서문(preamble)이라 할 수 있는 첫 장은 “이것은 여성의 인내심이 무엇을 감내할 수 있고 남성의 결단력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시작하며 이분법적인 젠더 범주를 전제하고 있다(5). 여기서 “결단”의 능동성이 강조되며 작품의 여러 증인 중 하나일 수 있는 월터 하트라이트(Walter Hartright)에게 대표자이자 편집자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이 부여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트라이트가 수집한 자료로 구성된 범죄 사건의 전말에 대한 2권까지의 내용과 그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전면에 나서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3권의 내용이다.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1권에서 주로 등장하는 하트라이트는 중앙아메리카로 떠나 실연의 상실감과 패배감을 “감내”하였던 수동적인 인물이라면, 마리언은 가부장적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결단력”을 보였던 능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3권에서 하트라이트가 편집자로서 재등장하면서 2권까지의 전복적인 젠더 재현은 역전되고 남성 저자의 권위를 강조하는 기존의 성 담론은 재생산된다. 2권까지의 파편적이고 복잡한 서술 구조는 하트라이트가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이면서, 그가 편집자로서 여러 자료를 재구성하면서 권위를 갖는 과정이기도 하다. 콜린즈의 서문은 적극적이었던 증인 마리언 대신 여성화된 하트라이트에 남성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편집자로서 하트라이트의 이야기가 도전적이고 파격적이고 파편화된 이야기를 둘러싸고 가두고 봉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본 논문은 마리언, 포스코 백작, 하트라이트 등 복장을 바꿔 입은 인물의 역학 관계에 주목한다. 남성적인 마리언은 작품의 중반 갑작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난 반면, 여성화된 포스코 백작의 권위는 도전받지 않으며, 하트라이트는 마리언의 자리를 차지하고 로라의 신분과 재산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재확립한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흰옷 입은 여인』에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두 인물, 마리언과 포스코 백작의 복장도착의 면모를 살펴보고 이들의 전도된 성 정체성이 하트라이트에 의해 이해되는 방식을 살펴본다. 그 다음에 하트라이트가 얼핏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포스코 백작과 암묵적으로 연대하며 여성의 내밀한 공간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이고 전복적인 목소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조명한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남성 작가가 쓴 여성 감금에 대한 고발이야기가 아니라, 남성 작가가 여성의 전복적인 이야기를 전유하고 감금한 이야기이다.

    1)올리펀트(Margaret Oliphant)는 “소설의 새로운 학파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개성적인, 가장 놀랍고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며 이후 선정소설(sensation novel)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을 예견한다(Page 111, Sutherland xi에서 재인용). 출판 당시 동시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Sutherland x-xii 참조.  2)콜린즈와 선정소설의 특징에 대해서 Pykett 50-54 참조.  3)콜린즈는 디킨즈를 파리로 데려가 향락적인 삶을 소개하였다고 한다. 콜린즈의 개인사에 대한 언급은 Sutherland viii-ix와 Hutter 215-16 참조. 리처드 콜린즈는 마리언이 작가가 작품에서 모색한 여러 이질적인 형식의 상징이자 동시에 당시 성담론에 대한 “전복”이라고 주장한다(137).

    II. 복장도착과 계급의 정치학

    『흰옷 입은 여인』에서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인물, 마리언과 포스코 백작은 서로 옷을 바꿔 입은 복장도착의 면모를 보인다. 백작이 “그녀가 남성의 통찰력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330), 능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마리언의 태도는 당시 전형적인 여성적 모습과 거리가 먼 특질이다. 포스코 백작 역시 달콤한 디저트에 탐닉하거나 애완동물을 다루는 모습 등 그의 “여성적인 취향과 놀이”가 강조된다(225). 백작은 “단 것에 대한 취향은. . .여성과 아이들의 순수한 취향이에요. 난 그걸 그들과 같이 공유하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여성과의 “연대”를 강조한다(294). 그는 냉정하고 주도면밀하게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며 주변 인물을 조종하지만, 그의 부드럽고 섬세한 면모는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을 가진 퍼시벌 글라이드(Sir Percival Glyde)의 폭력적인 태도와 대조된다.4)

    흥미로운 것은 상류계층의 복장도착이 하트라이트가 미술교사로 페어리 가문의 리머리지 저택(Limmeridge House)에 도착해서 느낀 첫 인상이었다는 점이다. 거실로 들어서는 하트라이트의 눈을 통해 마리언의 모습은 점점 가까워지며 확대되어 묘사된다. 이 장면에서 하트라이트는 “잠깐 그녀를 본 순간, 보기 드문 아름다운 몸매와 꾸밈없고 우아한 태도에 매료되었다”고 진술하며, “코르셋에 의해 반갑게도 드러나게 형태가 변형되지 않은”, “남성의 눈에 완벽한” 마리언의 몸을 지켜보는 남성적이고 관음적인 시선을 드러낸다(31).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본 마리언의 외모는 자세한 묘사에 앞서 “그녀가 까맣다”와 이어지는 “그녀가 못생겼다”는 그의 실망 어린 반응이 먼저 제시된다(31). 두 문장 사이의 연상 관계가 암시하듯이, “그녀가 못생겼다”는 하트라이트의 결론은 일차적으로 이상적인 여성과 거리가 먼 그녀의 “까만” 피부와 관련이 있고, 더불어 이후 세밀하게 묘사된 그녀의 남성적인 면모와 연결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성의 몸’에 “남성적인 형태와 남성적인 모습을 가진 특징”이 깃든 마리언의 모습에 하트라이트가 느끼는 “혐오스럽고” “불쾌한” 감정이다(32). 하트라이트는 계속해서 마리안을 “남성”적인 것과 연결하는 장면에서 “혐오스러운”, “끔찍한” 같은 수식어를 사용한다(64). 비평가들은 마리언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충격을 소설의 도입부에서 그가 만난 흰옷 입은 여인, 앤 캐서릭(Anne Catherick)에 대한 인상과 연결시켜 동성애 혐오적인 태도로 설명한다. 밀러(D. A. Miller)는 애초에 관음적 남성 시선을 드러냈던 하트라이트가 곧 대상화를 거부하고 자신을 대상화 시키는 마리언의 남성적인 눈빛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한다(152). 비슷한 맥락에서 리처드 콜린즈는 당시 콜린즈, 디킨즈 등의 남성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멋있는” 수염 기르기 내기 일화를 소개하며 마리언의 윗입술에 있는 진한 솜털에 주목하여 그녀를 “양성적 인물”로 제시한다(133).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마리언의 ‘수염’은 남성적인 외모 외에 빅토리아조 성 담론의 행동 규범에서 벗어나는 그녀의 도전적인 태도를 암시한다. 그녀의 복장도착은 코르셋을 입지 않은 모습과, 이후 그녀가 범죄 음모를 목격하는 장면에서 여성성의 상징인 드레스와 “희고 거추장스러운 속옷”을 벗어 던지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326). 그녀는 포스코 백작과 퍼시벌 경 사이의 비밀스런 대화를 엿듣기 위해 여성스런 옷을 벗어던지고 “검은 색 여행 용 외투”와 모자를 뒤집어쓰며 자신의 여성성을 감춘다(326). 따라서 하트라이트의 혐오스런 반응은 젠더의 “이례와 모순”에 대한 혐오이자(32), 여성성을 부정하는 마리언의 복장도착에 대한 거부일 수 있다.

    하트라이트의 무의식적 혐오감이 남성과 동일시하는 마리언의 복장도착에서 유발된 것이라면, 페어리에 대한 그의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성화된 마리언과 더불어 하트라이트의 눈에 비친 리머리지 저택의 주인인 페어리는 극도로 유약하고 예민한 신경을 가진 여성화된 존재로 묘사된다. 페어리 스스로 자신을 “병자”(345), “사람 같이 보이게 옷을 입은 한 타래의 신경조직”이라고 말할 정도로(356) 극단적인 신경증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빛과 소리에 극도로 민감해 하며 그림, 동전 등을 수집하고 감상하며 식물처럼 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수염’이 있는 마리언과 달리 페어리는 “수염이 없는 얼굴”과 “섬세한 손”에, “발은 여자처럼 작고”, “여자에게 적합한 작은 황갈색의 가죽 슬리퍼”를 신고 있다고 묘사되며 여성성이 강조된다(39). 흥미로운 것은 하트라이트가 마리언의 남성적인 모습에 불쾌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였다면, 페어리의 유약하고 예민한 모습에는 자신의 감정 표출을 최소화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첫 만남에서 그의 모습을 “연약하고 기력 없이 짜증내고 과하게 예민한 모습—남성과 관련해서는 특이하고 유쾌하지 않은 가냘픈 것”을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노출한다(39). 그의 좀 더 직접적인 반응은 페어리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와서 “주인이 거처하는 방 쪽으로 더 이상 내 걸음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에서 드러난다(45). 하지만 그 저변에는 페어리의 과도한 여성성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라 그의 계급의식, 즉 “내 고용주의 오만한 친밀함과 무례한 정중함”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라는 점이 시사된다(45). 그의 불편한 감정이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다는 점은 작품의 결말에서 두 번째 만남을 앞두고 “[페어리와의 대화를]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경멸의 감정이 생겨, 기억 속에서조차 그 장면이 전적으로 역겹게 느껴진다”고 토로한 것에서 명확히 드러난다(632).

    따라서 두 인물의 전도된 성 정체성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다른 반응에는 젠더보다 그의 계급적 열등의식이 지배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페어리가 성 정체성의 측면에서 여성적인 면모를 보인다면 하트라이트는 상류 유한계층에 고용되어 경제적으로 의존적이고 불안정인 삶을 산다는 면에서 계급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소설의 첫 장은 가문, 재산, 연줄이 없는 중간계층의 젊은 예술가 하트라이트가 “남성 판 가정교사”(Cvetkovich 114) 또는 “바지 입은 제인 에어”(Sutherland xxii)라 할 수 있는 미술선생으로 귀족가문에 고용되어 집을 떠나는 이야기에 할애되며, 그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강조한다. 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 친구인 페스카(Pesca)가 “[학생이 될] 두 여성 중 한명과 결혼하고 페어리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고 존경하는 국회의원 하트라이트가 되어야지”(13)라고 농담 삼아 말한 것은 계급과 경제력에 대해 하트라이트가 가진 예민한 자의식과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시사한다. 실제 도입부의 앤과 만난 “원-장면”에서(Miller 152), 하트라이트가 앤을 보고 혼란스러워한 것은 비평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젠더 혼동”이 아니라 ‘계급’적 모호함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 하트라이트는 앤에 대한 첫인상을 “정확히 숙녀의 태도도 아니고, 동시에 삶의 가장 미천한 위치에 있는 여성의 태도도 아니다”라고 기술하며 그녀의 계급적 위상이 모호함을 지적한다(21). 그는 계속해서 “드레스, 모두 흰색인 모자, 숄, 긴 드레스는 내가 추측할 수 있는 한, 확실히 매우 섬세하거나 매우 비싼 소재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몸매는 왜소하고 평균 키보다 크며—걸음걸이와 행동은 조금만치의 무절제함도 없었다”(21)고 언급하며 옷차림과 겉모습에서 그녀가 속한 계급의 표지를 찾으려 노력한다. 하트라이트가 마리언을 만나기 직전 계속해서 앤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마리언에 대한 감정을 앤과 만남의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마리언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반응은 앤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즉각적으로 그녀의 계급적 신분과 관련 있다. 하트라이트는 마리언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 “자신과 신분에 대한 편안한 타고난 자신감”에 압도당하여 “심지어 생각에서조차 그녀와 조금이라도 허물없이 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언급할 정도로 계급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33). 여기서 그녀의 계급적 우월함은 남성성으로 치환되며, 그녀의 남성성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불편한 감정은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귀족계급 여성에 대한 반감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페어리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애매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그가 페어리와의 만남을 마치고 “평온한 마음을 되찾은” 이유는 그의 과민하고 유약한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남성적인 우월감을 확인 받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45). 즉, 그는 마리언에게서와 달리 여성화된 페어리에게 동성애 혐오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계급적 열등의식을 치유 받고 남성적 정체성을 재확인 받는다.6) 네메스베리(Richard Nemesvari)는 하트라이트가 작품의 여러 여성화된 남성 인물과 차별화함으로써 “브르주아의 규범적인 이성애”를 구현하고 자신의 남성성을 확립한다고 주장한다(96). 그가 페어리를 만나러 가기 전, 마리언으로부터 페어리 가문의 재산과 저택의 상속녀인 로라의 “많은 자산”과 주인이자 삼촌인 페어리가 “후견인”(34)이라는 점 등 중요한 재정적인 정보를 들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앞서 페스카가 예견한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하트라이트가 고용주이자 상속녀의 후견인인 페어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적인 페어리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이중적 태도가 그의 사회적 신분과 복잡하게 관련이 있다면 여성화된 포스코 백작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포스코 백작의 여성적인 면은 마리언의 일기를 통해서만 소개되고, 하트라이트와 그의 직접적인 만남은 작품의 말미까지 연기된다. 하트라이트는 마리언의 일기를 통해서 백작에 대한 “익숙함”(599)과 “잘 알고 있는” 친숙함을 언급한 반면(600), “절대적으로 약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 외에(575) 그의 여성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어떤 주관적 감정도 표출하지 않는다. 실제 멀리서 그와 마주쳤을 때 하트라이트는 오히려 그의 “끔찍한 신선함, 쾌활함, 활기”를 언급하며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581). 따라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백작에 대한 하트라이트의 반응은 그의 여성적 정체성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죽을 운명의 적”으로서 그와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것과 관련 있다(607). 중반 이후 다시 등장한 하트라이트는 신분적 상승을 획득하고 포스코의 방식을 암묵적으로 반복하면서 여성 화자를 통제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다.

    4)마리언과 포스코 백작의 전도된 젠더는 두 사람에 대한 페어리의 인식에서도 특징적으로 묘사된다. 페어리는 포스코 백작을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자신의 예민한 신경을 존중하고, “주의 깊은” 말과 행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느끼며, “우리 마리언과 아주 대조적이야! 모든 움직임에서 굉장히 사려 깊어!”라고 기술한다(356). 반면 그는 마리언의 “건장한 신경 조직”에 불만을 표시하며(178), 포스코 백작이 전해준 마리언의 병 소식에 “우리의 마리언 같이 건장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야”라고 반응한다(358).  5)예를 들어 피케트(Lyn Pykette)는 “그녀의 모습이 남성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젠더 범주에 문제제기하고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18).  6)비슷한 맥락에서 리처드 콜린즈는 하트라이트와 페어리가 예술가와 예술애호가의 측면에서 대립되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세상과 유리된 채 예술 자체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일종의 “탐미주의의 괴물”이 된 것을 경멸하며 하트라이트가 예술가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시사한다(146).

    III. 포스코 백작의 복장도착과 복화술

    칸(Madeleine Kahn)의 ‘서술적 복장도착’(narrative transvestism)의 개념은 복장을 바꿔 입은 이 세 인물의 다른 운명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칸은 18세기의 주요 소설이 특히 남성 작가가 쓴 여주인공 중심의 소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저자와 화자 사이의 옷 바꿔 입기가 작품과 더 나아가 독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한다. 칸에 따르면 남성 중심의 문학 시장에서 글쓰기의 불안감을 겪는 여성 소설가들이 “권위 있는 목소리”를 갖기 위해 남성 화자를 사용한다면, 남성 작가들은 여성에게 고유하고 자율적인 목소리를 주는 대신, 복화술사의 인형처럼 다른 여성 인물의 내밀하고 깊숙한 여성적 공간에 용이하게 접근하고, 그 뒤에서 자신의 가부장적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여성 화자를 이용한다는 것이다.7) 여성 작가는 복장도착이 드러난 경우 남성 중심적인 출판 시장에서 공격과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남성 작가는 여성 화자의 뒤에 숨어 “문화적으로 정의된 여성의 목소리와 감성에 접근하면서 폄하된 여성적 영역에 갇힐 위험은 겪지 않는다”(Kahn 6).

    ‘서술적 복장 도착’에 대한 칸의 개념은 『흰옷 입은 여인』에서 얼핏 대척점에 놓여 있는 포스코 백작과 하트라이트가 여성, 특히 마리언과 갖는 관계를 설명하는 데 효율적이다. 칸이 남성작가의 복장도착에 대해 주장한 것처럼, 포스코 백작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은 여성의 내밀하고 은밀한 감성에 용이하게 접근하여 여성의 환심을 사는 데 이용된다. 백작은 직접적으로 강제적 방법을 쓰는 대신 유화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의 저항감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자신을 경외하게 만든다. “퍼시벌의 폭력보다 그의 개입이 더 두려워”라고 마리언이 고백한대로(257) 여성의 감성에 대한 그의 이해와 존중은 오히려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된다. 그의 부드러운 권위는 오만하고 자부심 강한 엘리너 페어리(Eleanor Fairlie)를 남편에 순종하는 포스코 백작 부인으로 만들어낸다. 백작 부인은 무채색의 옷을 입고 “구석에 말없이 앉아” 수를 놓거나 남편의 담배를 말고, 가끔 “우리가 충실한 개의 눈에서 익숙한 무언의 순응적인 물음의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등 순종적인 삶을 산다. 마리언은 주체의식 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 복화술사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행동하는 그녀를 “충실한 개”와 “조각상”으로 비유하면서 비판한다(219). 결혼 전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의견을 가질 자유를 옹호하였던” 포스코 백작 부인은 “전 식견이 높은 남자들 앞에서 의견을 내기 전에. . .가르침 받기를 기다려요”라고 말하며 가부장적 담론을 재생하는 가정적인 여성으로 거듭난다(236).

    마리언은 “조용한 경의, 여성의 말을 들을 때 만족스럽고 주의 깊은 관심이 있는 표정, 여성에게 말을 할 때 목소리에는 비밀스런 부드러움이 있어. . .우리 아무도 거기에 저항할 수가 없어”라고 토로하며 포스코가 가진 영향력을 최면적인 것으로 묘사한다(221). 그녀는 백작이 “무엇이든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 평하며,8) “그 사람은 내 관심을 끌었고 나를 매혹시켰고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하며 그녀 역시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219). 그녀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그의 힘을 “엄청나게 비대한” 몸과, 상대방의 경계심을 해제하고 우호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태도에서 찾는다(220).

    여기서 마리언은 포스코 백작의 여성적인 감성과 섬세함을 특히 여성에 대한 영향력과 연결시킨다. 그는 자신의 여성성을 여성의 환심을 얻는데 사용하고, 상대방의 비밀스런 부분을 공유하고 존중하는 느낌을 전달하여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나보다 내 남편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231)라고 로라가 불평한대로 그는 주변의 모든 인물을 조종하고 “다른 모든 것의 지배자”가 된다(251). 백작은 작품의 여러 화자 중 가장 짧은 내용의 글을 남겼지만,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영향력은 심지어 하트라이트까지 압도한다. 따라서 허터(A. D. Hutter)같은 비평가는 그의 작품의 지배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자신의 죽음 역시 “위장”하여 비밀 조직의 살해 위험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에 대해 주장한다(221).9)

    백작이 마리언의 남성적인 태도에 대해 하트라이트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공통적으로 백작과 하트라이트 모두 마리언을 욕망의 대상으로 응시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트라이트는 그녀의 남성적 태도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녀가 코르셋을 입지 않은 모습을 관능적으로 지켜보았고, 포스코는 마리언에 대해 “열여덟의 화산 같은 열정”을 느낀다고 고백하며, 마리언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615). 다만 욕망과 혐오의 경계는 남성 응시자가 대상의 도전적이고 전복적인 성향을 통제할 수 있느냐와 관계가 있다. 포스코는 마리언을 통제하는 것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그녀의 남성적 태도를 오히려 관음적 시선으로 응시한다. 반면, 하트라이트는 마리언의 당당함에 위축당하고 그 순간 그녀는 관능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백작의 여성 복장 입기가 여성의 “부드러움과 감수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포스코 백작은 퍼시벌 경에게 “남자가 여성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329).

    여기서 백작은 환심을 사고 포섭하는 유화적인 방법이 여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효율적임을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강조하는 점이 계층적 우월의식과 방법론의 효용성이지 가치관의 차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즉, 그의 온화한 방법이 진정한 여성 존중 의식이 아닌 여성 비하적인 생각에서 유발된 것이며, 그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기능성과 유용성”이다(O’Neil 112). 위에서 여성, 동물, 아이 사이의 유사성을 시사하며 여성을 “다 자란 아이”라 정의한 그의 발언은 여성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반여성적 태도를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여성친화적인 태도는 여성과의 연대감을 형성하며 반발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장치이며, 그 뒤에는 냉혹한 범죄 의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칸이 주장한 것처럼 백작의 여성성 차용은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이나 권위를 잃거나 동성애 혐오자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포스코 백작의 감성적인 여성 옷 입기는 우선적으로 갈등 상황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며 “결국에는 더 확실”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는 퍼시벌 경이 남편의 권리를 강조하며 로라와 마리언을 위협할 때 “퍼시벌 경! 부드럽게—부드럽게”를 강조하고(242, 338), 백작 부인대신 마리언을 증인으로 추천하여 갈등의 상황에 개입하여 중재한다. 또한 퍼시벌 경이 법률 서류에 서명을 거부하는 로라를 위협하고 방에 가둔 것에 대해, “영국에는 여성을 잔인함과 유린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있어요. 만약 로라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감히 내 자유를 방해한다면, 법에 호소할 거예요”라고 마리언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자신의 부인을 이용하여 즉각적인 반발을 봉쇄한다(299). 이 상황에서 백작 부인은 마리언의 편을 들며 “오늘 여기서 당신 부인이나 핼컴 양을 대한 것처럼 숙녀를 대하는 곳에서는 머물고 싶지 않아요”라고 선언하며 여성 옹호적 목소리를 내는 듯 보인다(299). 외견상 여성 간의 연대로 보이는 포스코 백작 부인의 발언은 이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을 가장한 반페미니즘적 복화술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항의가 조카이자 동료 여성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가 아니라, 남편이 “그녀를 의미 있게 쳐다본 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남편의 지시에서 비롯된 것이고(299), 따라서 그녀의 발언은 주체적인 목소리가 아닌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남편의 목소리라는 점이 드러난다. “포스코 백작 부인의 견해는―내 것이요”라는 포스코 백작의 진술은 얼핏 부인의 주체성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299), 중간에 사용된 ‘대쉬’가 시사하듯이 부인의 자율성을 비웃으며 자신의 생각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제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실제 이미 이전의 상황에서 그가 “우리 사이에는 하나의 의견이 있고 그 의견은 내 것이요”라고 공표한 바 있고, 백작 부인은 항상 “남편의 눈과 마주치고 그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언급된 점을 고려하면(246), 부인을 통한 그의 지배력은 분명해 진다. 백작 부인은 로라와 마리언의 대화를 엿듣고, 마리언이 보낸 편지를 바꿔치기 하는 등 겉으로 품위 있는 숙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실제로는 남편의 충실한 대리인이자 반여성적 범죄의 공모자 역할을 한다. 실제 퍼시벌이 협박과 강요를 통해 로라를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한 점을 주목한다면, 백작의 차분하고 온화한 방법은 상대를 통제하는 데 성공적으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포스코 백작의 모습은 페어리와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포스코 백작과의 만남을 진술한 ‘페어리의 이야기’는 백작이 페어리를 완벽하게 조종하여 범죄행위에 일조하게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한편으로 페어리의 예민한 신경을 존중하는 듯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 과민함을 건드리고 압박하여 ‘기꺼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게 만든다.

    여기서 페어리를 조종하는 백작의 화법과 행동이 드러난다. 그는 “책임”과 “의무”를 언급하며 로라의 후견인으로서 그의 심리적 부담감에 호소하는 한편, “끔찍한 손을 나에게 흔들고” “감염된 가슴을 치며” 물리적으로 그의 신경을 압박한다(362). 페어리는 “무신경하게 태어났어, 확실히, 무신경하게 태어났어!”라고 불평하며 종국에는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정을 세밀하게 지시하는 백작의 “프로그램”에 따라 로라를 초대하는 편지를 쓴다(361, 362).

    포스코 백작의 부드러운 태도가 실제로는 자신의 목적을 감추는 위장인 점은 범죄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그는 입증된 경우만 범죄이고 “범죄자가 대담하고, 교양 있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면” 범죄를 효율적으로 감출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입증을 봉쇄하는 “발견되지 않는 범죄”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36). 그에게 절대적인 가치나 진실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만 있을 뿐이고, 윤리와 도덕은 완전 범죄자가 성취하는 전리품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퍼시벌과 돈 문제를 논의할 때 잘 드러난다. 퍼시벌의 재정 상황과 로라의 재산을 가로챌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한 후, “당신 부인이 살면 서류에 서명으로 빚을 갚는다. 당신 부인이 죽으면 그녀의 죽음으로 갚는다”라고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며(334), 로라의 서명과 사망 중 효과적인 방법을 고려하는 백작의 모습은 실제 퍼시벌 경이 놀랄 정도로 냉혹하고 더 폭력적이다. 따라서 그의 여성적인 부드러움은 냉혹함과 잔인함을 감추고 주변 사람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7)칸이 주목한 드포우와 리처드슨의 소설은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남성 편집자가 편집하고 제한하면서, 여성에게 고유한 목소리를 부여하는 대신 전복적 행동을 참회하거나, 여성의 미덕을 실천하고 설파하는 제한적인 역할, 즉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부응하고 재생산하는 기능만 수행하게 한다.  8)그는 심지어 거친 성질을 가진 카커투(cockatoo) 앵무새를 길들이고 사나운 사냥개를 말과 눈빛으로 제압한다. 카나리아와 생쥐도 새장이나 우리를 열어 놓아도 그의 손짓에 따라 돌아오는 등 완벽히 길들여진 모습을 보인다. 애완동물을 조련하는 그의 모습이 여성을 지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 시사된다.  9)허터는 페스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한 점, 어깨에서 비밀조직의 표식을 지운 것, 실제 플롯에서 로라와 앤 캐서릭의 신분이 바뀐 점을 예로 들어 결말에서 포스코가 다른 사람의 시신을 자신의 것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허터에 따르면, 그의 신분 위장은 일종의 “완벽한, 전혀 예상되지 않았던, 대칭”이 된다(222).

    IV. 마리언의 일기의 유린: 하트라이트의 포스코 따라잡기와 진실 만들기

    이 작품은 하트라이트가 로라의 신분을 입증하기 위해 수집한 목격자와 관계자의 증언록, 편지, 일기 등의 다양한 형식의 글의 모음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가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저자로서 그의 권위는 제한적이다. 실제 그는 작품 초반에 실연당하고 온두라스로 떠나면서 사건의 중심과 실체에서 멀어졌고, 그의 이야기는 범죄 사건의 전과 후에 배치된다. 이 점이 전체 자료를 아우르는 메타 이야기, 즉 자료를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분석하고 재구성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고, 여러 증인의 이야기가 부연 설명 없이 그저 나열되어 있는 이유이다. 그 구성 역시 실제 사건을 재추적한 과정도, 법정에서의 서류를 제시한 순서를 반영한 것도 아니다. 증인으로서의 그의 위상은 그의 증언이 마리언의 일기 다음에 배치된 여러 짧은 글의 모음의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로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다. 그의 짧은 증언은 로라의 무덤에서 그녀의 실물과 마주친 상황에서 느낀 혼란의 감정을 담고 있으며, 역시 간간히 ‘***’으로 편집된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라는 문장으로 3권을 시작하며 하트라이트는 저자이자 편집자로서 자신의 권위에 확신을 가지고 진술한다. 그는 “내 위치가 설정되었다”고 선언하며 “종종 끊기고, 종종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마리언과 로라의 증언을 “짧고 명료하고, 공들여 간결하게 한 개요”의 형태로 편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운다(422). 이는 그가 모은 자료 중, 변호사 길모어(Gilmore), 페어리, 포스코 등 남성 화자의 이야기는 “원래 획득된” 형태로 온전한 목소리를 가지고 제시된 것과 대조적이다(345). 그의 이러한 폭력적인 개입은 마리언의 일기를 가로채 자신의 글을 삽입하여 우월감을 과시한 포스코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하트라이트는 편집자로서 남성의 펜을 들어 마리언의 목소리와 글을 통제하면서 저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킨다. 마리언의 일기는 중앙에 해당하는 2권에 배치되어 있고, 소설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는 분량으로, 블랙워터 장원(Blackwater Park)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범죄의 상황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추적하며 상세히 기록한 핵심적인 자료이다.10) 일기에서 마리언은 포스코 백작과 퍼시벌 경의 비밀스런 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며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녀는 로라를 억압하는 퍼시벌 경의 가정 폭력에 맞서 항의하는 한편, 변호사와 페어리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포스코와 퍼시벌이 범죄를 모의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그녀의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목소리가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명목상으로 그녀가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비를 많이 맞아 열병을 얻은 것이지만, 적극적으로 비밀을 파헤쳐가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몸과 글에 대한 제어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기적으로 그녀의 부재가 로라의 납치, 신분 유린 및 정신병원 감금 등 일련의 범죄 행위에 필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의 현장 목격과 발병 사이의 개연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백작의 이야기가 시사하듯, 그녀의 갑작스런 발병은 그녀의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음모의 일환이라 할 수 있고, 포스코가 가진 “화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그에 일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343). 서덜랜드(John Sutherland) 같은 비평가는 포스코가 마리언 뿐만 아니라 로라, 백작 부인, 페어리에게 편지를 전달한 하녀 패니에 이르기까지 약제에 대한 지식을 전 방위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xviii-xix). 상징적으로 마리언의 발병은 그녀가 추리 활동을 위해 여성스런 옷을 벗어던지고 여성적 한계를 부정하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결론적으로 열병은 그녀에게 육체의 한계를 일깨움으로써 그녀의 전복적인 행동을 통제한다. 그녀가 로라처럼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열병은 여성성을 거부한 그녀의 행동에 대한 처벌을 의미하며 그녀에게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을 재확인시키는 교화의 기능을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녀의 일기는 중단되고, 범죄를 추적하고 문제를 해결하던 그녀의 역할은 하트라이트에게로 넘겨진다. 하트라이트는 일기를 편의대로 “삭제”하고 편집해서 배치하며 편집자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고용된 미술교사와 상류 계층 학생이라는 기존의 신분적 관계를 전복시킨다.

    일기에 덧붙여진 포스코와 하트라이트의 글은 여성의 글을 관음적 시선으로 유린하면서 동시에 그 가치를 폄하하는 남성 작가의 폭력성을 시사한다. 포스코는 그녀의 일기가 “예상치 못한 지적인 즐거움”을 주고 “나를 매료시키고, 활력을 주고 즐겁게 하였다”고 전하면서도(343), 그녀의 기록이 “자신의 본성에 있는 세밀한 감정들을 일깨워 준 것—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저자로서 그녀의 권위를 폄하한다(344). 또 다시 사용된 ‘대쉬’는 그의 이중적인 면을 시사하고, 그녀의 모든 노력이 “불가피한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그녀의 강요된 침묵을 조롱한다(344). 마지막 장에 남겨진 “펜의 얼룩, 긁적거림과 뒤섞여 파편화된 단어들”은 자율적 영역을 지키려는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의 흔적이며(342-43), (시간 상) 바로 뒤에 쓰인 포스코의 “크고, 굵고, 안정되게 곧은 남성의 글”에 유린당한 그녀의 존재를 보여준다(343). 이 후에도 백작은 마리언의 편지를 가로채서 변조하는 등 그녀의 행동을 계속해서 감시하며 통제한다. 마리언의 일기와 편지는 범죄에 대한 증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내밀하고 은밀한 사적 영역이라는 점에서 덧붙여진 포스코의 글은 관음적 유린이며 “가상의 강간”이다(Miller 162).

    3권에서 편집자로 등장한 하트라이트는 마리언과 로라의 이야기를 통제하면서 많은 부분 자신과 대척관계에 있는 포스코 백작과 유사해진다. 그는 마리언의 일기 마지막 장에 기록된 포스코의 ‘후기’ 앞에 편집자의 “주석”을 배치시킴으로써(342), 포스코의 유린 행위를 이중으로 반복하고 동시에 포스코보다 우위에 있는 자신의 권위를 강조한다. 오페라 공연장 장면 역시 하트라이트가 백작의 방법을 반복하며 그와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트라이트가 오페라 공연장에 페스카를 데려가 포스코의 미묘한 반응을 관찰하는 것은 경찰을 따돌린 “대담하고, 교양 있고 매우 똑똑한” 범죄자로서의 그의 방법을 차용하며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하트라이트는 이탈리아 비밀 조직을 배신했다는 백작의 약점을 찾아내 위협하면서 로라의 신분과 재산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증언을 받아낸다. 백작의 이야기는 파편화된 하트라이트의 자료에 완결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결말 부분에 하트라이트가 로라의 신분을 인정받기 위해 리머리지 저택의 페어리를 방문한 장면 또한 작품 초반의 첫 만남을 전복적으로 패로디하면서 동시에 포스코 백작의 방문 역시 연상시킨다. 그는 백작과 마찬가지로 페어리의 신경을 압박하며 “마침내 그가 짜증난 아이처럼 완전히 우는 소리를 내며 애원하게” 만들고(632), 그가 “모든 개인적인 불안으로부터 가장 빨리 벗어날 것이 보장된 선택지,” 즉 로라의 신분을 인정하는 방법을 택하도록 조종한다(632-33).

    하트라이트가 포스코의 방식을 반복하며 그의 증언과 페어리의 마지막 증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그가 추리하고 복원한 진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포스코가 “보도되지 않고”, “발견되지 않은”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며 범죄의 상대성을 주장하였고(236), 실제 증거를 변조하고 왜곡하여 법이 요구하는 진실을 ‘만들어’ 냈듯이, 하트라이트가 재확립한 진실 역시 상대적일 수 있다는 점이 암시된다. 다시 말하면, 포스코 백작의 음모와 유사하게 하트라이트가 로라의 신분을 증명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은 “진실 자체도 상대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O’Neil 101). 포스코 백작과 퍼시벌이 결탁하여 로라와 앤의 신분을 바꿨다면, 같은 방식으로 마리언도, 친척과 주변 인물도, 심지어 본인도 입증하지 못한 로라의 신분을 하트라이트가 확인하고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블로우(Rachel Ablow)는 하트라이트가 로라의 기억을 되살리도록 도운 것인지 “그녀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65). 결론을 보면 퍼시벌과 비교해 하트라이트가 로라의 재산에 사심이 덜 하다고도 볼 수 없다. 퍼시벌이 로라의 재산을 사용하기 위해 그녀의 서명이 필요했다면, 애블로우가 지적한대로 하트라이트는 로라의 자율 재산에 대한 조항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녀가 소유한 모든 재산은 자동적으로 그의 것이 된다”(170, n 8). 하트라이트가 “떨림”이라는 불확실한 몸의 반응을 근거로 로라의 신분을 확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정의 판결을 받기 전 리머리지 공동체 앞에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선행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애블로우에 따르면 하트라이트가 수집한 증거와 이야기는 그 자체가 설득력이 있다기보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173). 결론적으로 리머리지 공동체가 승인한 것은 월터가 제시하고 있는 확신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포스코 백작과 퍼시벌이 합법성을 가장하며 로라의 신분과 재산을 빼앗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트라이트는 서문에서 언급한 “법정 절차”를 재현한 구성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고 퍼시벌, 포스코와 페어리를 위협하여 법적 증거를 ‘만들어내고’ 로라의 신분을 복원한다.

    10)그녀의 일기는 1849년 11월 1일부터 11월 21일까지 로라가 결혼하기 전 리머리지 저택에서의 열흘간의 상황과 그 다음 해 1850년 로라 부부가 신혼여행 후 블랙워터 장원에 돌아온 이후 6월 11일에서 6월 20일까지의 또 다른 열흘간의 사건을 담고 있다.

    V. 콜린즈의 복화술과 여성 이야기의 감금

    지금까지 포스코 백작과 하트라이트가 관음적 시선으로 마리언을 유린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하트라이트가 자신의 계급적 열등감 때문에 그녀의 지성과 당당함을 남성성과 연결시키며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낸 반면, 포스코 백작은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응시하며 동시에 그녀의 전복성을 통제한다. 하트라이트는 로라의 신분과 재산을 복원하는 대리인이지 편집자가 되면서 마리언의 도전적이고 저항적인 목소리를 봉쇄하면서 자신의 우월한 남성성을 재확인한다. 하트라이트가 한낱 미술선생에서 리머리지 저택의 주인으로 신분이 상승하였다면,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적 목소리를 보였던 여성 화자의 운명은 작품의 전복성에 대한 평가를 무색하게 한다. 작품 초반 자신을 감금하고 통제하던 퍼시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병원을 뛰쳐나왔던 앤은 사망하였고, 자신을 조종하려는 퍼시벌에 저항하며 법률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로라는 신분과 재산을 잃고 사회적 사망 상태를 겪었고, 또한 그녀는 하트라이트와 재회 후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한 대가로 결말에서 리머리지 저택의 상속자를 생산한 엄마의 역할로만 기능한다. 비슷한 차원에서, 마리언은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로라를 탈출시켰지만, 하트라이트의 귀환과 함께 저자로서의 목소리를 빼앗기고 주변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 능력을 보였던 그녀는 종속적인 여성적 역할에 가두어지고, 하트라이트가 퍼시벌, 포스코와 경쟁하여 자신의 남성성을 강화시키는 과정을 응원하고 조력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결말에서 그녀에게 남겨진 중요한 역할은 하트라이트에게 그의 아들을 보여주며 리머리지 저택의 주인이자 가장인 그의 권위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마리언이 우리 이야기를 끝내게 하겠다”는 하트라이트의 말로 끝나는 작품의 결말은(643) 얼핏 마리안에게 최종 권위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침묵된 채 그녀의 침묵을 조롱하는 그의 마지막 말만이 맴돈다. 이는 남성 저자의 편집 없이 여성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목소리와 글이 봉쇄된 이 여성들과 달리 백작 부인은 남편의 사후 그의 가부장적 성취를 찬양하는 책을 출간하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로 억압적인 빅토리아조 사회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여성의 교조적인 목소리만 용인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 그녀의 책은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백작 부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하트라이트의 가족에 대한 묘사로 끝나는 결말은 감금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전복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낭만적인 결혼 이야기로 환원시키고, 콜린즈의 서문이 주장한 것처럼 하트라이트의 능동적 “결단”이 결국은 여성의 “인내”와 침묵을 만들어낸 방식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묘사한 복장도착적 젠더는 남성 작가가 여성의 내밀하고 주체적인 이야기를 유린하고 포위하고 감금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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