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랍스키의 모순에 대한 소고

Stanislavsky’s Contra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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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 논문은 스타니슬랍스키 동시대에 그의 연극미학과 체계적 연기훈련 방법론인 ‘시스템’에 반기를 든 네 이론가의 주장을 살펴보고, 시스템이 좀 더 큰 틀 위에서 이해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 탄생 150주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성과 영향력은 조금도 줄지 않고 있고,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스템만 따로 떼어 놓고는 그 체계의 위용을 제대로 체감할 수 없다.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콘텍스트와 그 대항자들과의 이론적·실천적 쟁투를 전체적으로 조망했을 때, 시스템이 홀로 선 외산이 아니라, 연극관과 세계관을 아우르는 거대한 산맥임을 목격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브류소프의 조건성 이론, 예브레이노프의 ‘연극 자체’ 철학, 메이예르홀트의 생체역학론, N. 데미도프의 ‘창조적 자유’론 등이 소개될 것이다. 이들 모두는 당대에 스타니슬랍스키와 협업, 혹은 대결을 하면서 시스템이 좀 더 완벽하고 효과적이며 철학적·역사적 맥락을 가진 이론으로 성장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이론과 논박들은 시스템의 결함과 모순을 향해 정조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면역력과 내성을 증대시켜 그 신뢰성을 높이는 역설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15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birth of Stanislavsky and 75 years have passed since his death. However, his reputation and teaching in the theatre area is still alive. It's difficult to list Stanislavsky's merits and influence on the russian art history and the world theatre history. If so, we can not help asking if this perception and evaluation is really correct? Stanislavsky's System is really an error-free theory? In this paper, we examine the theory of three theorists, who were opposed to the Stanislavsky's System at the time, and the Nikolai Demidov's theory, who was deeply involv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System, but later pointed out errors and defects of the System. Bryusov's Uslovnost' theory, Evreinov's theatrical instinct theory, Meyerhold's biomekhanika and Demidov's creative freedom commonly criticized flaws in the System, but as a result they have contributed to the completion of the System. Since establishment of th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Russia, we had a lot of opportunities to study the System in Russia. It's very encouraging that many majors in the area of theory and practice are active in Korea. In fact, the System is difficult to apply to us, to those who do not have a systematic method of acting training, cohesive strong theatrical troupes and repertory theatres. So we need to create our own System. This paper will help us make our own System.

  • KEYWORD

    스타니슬랍스키 , 시스템 , 브류소프 , 예브레이노프 , 메이예르홀트 , N. 데미도프

  • 1. 들어가며

    스타니슬랍스키가 탄생한지 150년이 흘렀고, 그가 사망한지도 7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연극 현장에서 그의 명성과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있다. 단순히 생존의 심박동만 들려주는게 아니라, 연극의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의 ‘시스템(Система)’ 이론은 연극의 술어로 추앙받고 있고, 그가 정착시킨 무대적 사실주의1)는 연극의 관용어로 대접받고 있으며, 그의 연극관은 연극 본래의 윤리학으로 존경받고 있다. 1897년 슬라뱐스키 바자르(Славянский базар)에서의 역사적 만남2) 이후로 백년이 넘는 시간의 풍화를 거쳤지만 그의 위세는 마모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관습에 대한 도전과 권위에 대한 반란으로 점철된 20세기 연극사의 파란만장을 회고해보면, 시스템의 생존력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유구하고 질긴 거시 연극사를 조망해보면 놀라움은 곧 미스터리로 변한다. 서양 연극사 3천년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제외하고 이처럼 빠른 시간에, 이처럼 강력한 지배력으로 연극의 이론과 실천을 장악한 사례는 없었다. 체계적인 배우훈련술 개척, 연출술(режиссура)의 위상 정립, 체호프 발굴을 비롯한 그의 기념비적인 공연들, 러시아연극 발전에 기여한 사회적・예술적 활동, 탁월한 기획력을 바탕으로한 극장경영학의 효시, 연극윤리학으로 불리는 숭고한 예술론 등 스타니슬랍스키가 러시아 예술사에, 세계연극사에 끼친 영향과 공로는 나열이 힘들 정도이다. 분야의 차이를 무시하고 감히 말하건대, 오늘날 연극에 있어서 그의 시스템은 『시학』의 권위에 맞먹는 유일한 이론체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세간의 인식과 평가가 과연 정당하고 적절한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은 무결점 이론이고, 무오류 체계인가? 혹시 그에 대한 과대포장이나 과잉해석의 여지는 없는가? 오늘날 신화화를 넘어 연극 자체의 물성까지 점유하고 있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름은 과연 ‘진리’인가? 본 소고에서는 당대에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에 반기를 든 세 이론가인 브류소프와 예브레이노프, 메이예르홀트의 논박을 살펴보고, 시스템의 구축에 깊이 관여했으나 이후 그 오류와 결함을 지적한 니콜라이 데미도프의 비판을 들어보고자 한다. 스타니슬랍스키를 반박한 논객들의 주장을 중심으로 시스템의 음영을 개론적으로 점검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조금이나마 심화시키고, 비판 없는 이론수용의 허약성과 무분별한 추종의 맹목성을 극복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본 소고의 목표이다.

    1)‘Сценический реализм’의 직역으로 널리 쓰이는 ‘무대적 사실주의’는 그리 바람직한 번역이 아니다. 먼저 ‘무대’에 접미사 ‘-적’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무대적 기술, 무대적 표현, 무대적 해석 등은 각각 무대기술, 무대표현, 무대해석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 ‘реализм’ 또한 ‘사실주의’가 올바른 번역어인지 논란이 있는 만큼 원어를 음차한 ‘리얼리즘’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сценический’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무대에 적합한’, ‘무대에서 사용되는’ 등의 의미로 정의할 수 있는데, 벨랴예프(Эстетика: Словарь / Под общ. ред. А. А. Беляева и др. М.: Политиздат, 1989)는 ‘сценическое искусство(무대예술)’을 연극창조와 관련된 분야, 좁은 의미로 연극공연제작예술, 즉 공연제작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총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сценический’는 어색하게 환유적 표현을 고수하기보다 차라리 그 원의미인 ‘연극’을 살리는 편이 더 낫다. 따라서 ‘무대적 사실주의’는 ‘연극리얼리즘’으로 바꿔불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2)1897년 6월 네미로비치-단첸코는 스타니슬랍스키에게 슬라뱐스키 바자르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초대한다. 6월 21일 2시에 시작된 이 둘의 만남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총 18시간동안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극장 창설을 결정하고, 그 기본 원칙들을 확정하는 합의문을 작성한다.

    2. 브류소프의 ?불필요한 진실?: 조건성의 문제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이론을 짤막하게 요약해 보자. 배우는 주어진 상황(предлагаемые обстоятельства)에서 배역의 정서와 감정을 교감(переживание)3)을 통해 동일시하여 자연스럽고 진실한 무대행위를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교감과 구현(перевоплощение)에 있어서 ‘진실’(правда)4)의 문제이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Система) 미학의 핵심적 가치는 바로 이 진실을 어떻게 체현하는가에 있다. 연극의 진실성은 희곡의 이념적 지향점을 최종과제(сверхзадача)5)로 설정하고, 그 최종과제의 실현에 부합하는 표현수단과 연극 기법들을 선택하고 제어하는 일련의 원칙과 기준을 의 미한다. 여기서 무대 행위의 능동성이 유출된다. 배우의 소임은 인물형상과 그의 욕망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속에서 능동적인 창조력으로 행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최종과제에 부합하는 유기적 창조를 위해서는 배우의 인간적 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인간적 본성과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 기계적인 것은 진실성에 위배된다. 한마디로 유기성과 자연스러움은 진실성의 중추이다. 무대행위, 교감, 정서적 기억, 상상력 등 시스템의 모든 개념은 결국 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인식론이고,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적 방법론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8권 전집 서문을 작성한 볼코프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창조여정은 이따금 고통스럽고 지난할 때도 있었다. 일시적인 혼란도 있었고, 분통터지는 좌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삶의 진실’ 이라는 지침을 신봉했고, 그것이 그가 구태의연하고 조잡한 구습의 함정에서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했다.”6)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내면적 교감과 그 신체적 구현뿐만 아니라, 무대장치를 비롯한 외적 환경의 구축에 있어서도 이 진실성을 유일한 최종심급으로 설정하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에게 진실성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지배하고,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옹립되고 있다.7)

    창립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몰이에 나섰던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창창가도 에 최초로 이론적인 직격탄을 날린 이는 브류소프였다. 브류소프는 1902년 봄에 있었던 모스크바예술극장의 페테르부르크 객연 공연들을 관람한 후 『Мир искусства』(1902)에 「불필요한 진실」(Ненужная правда)이라는 논문을 게재한다. 이 논문에서 브류소프는 물질적이고 형식적인 자연주의적 진실성이 예술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예술 본래의 조건성(условность)8)으로 복귀 할 것을 주장한다. 이론과 실제 측면에서 당대 연극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불필요한 진실」은 모더니즘 연극의 선언문9)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향후 이어지는 10년여 연극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10) 메이예르홀트는 “발레리 브류소프는 최근 우리 연극 무대에서 재현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그 ‘진실’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주창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면서, 그의 주장에 동조해 “동시대 연극들이 보여주는 불필요한 진실로부터 의도적인 조건성으로 이행해가도록 촉구”하기도 한다.11) 스타니슬랍스키가 무가지보처럼 옹호하는 ‘진실’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선언하는 브류소프의 주장은 강건하고 단호하다. 그는 외적 세계로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예술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삶의 그럴듯한 재현’(правдивое воспроизведение жизни)을 시도하는 것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2) 진실 자체가 예술성을 보장하는 만능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대는 그 자체의 본성상 조건적”(Сц ена по самому своему существу - условна)이기 때문이다. 이때 조건성은 일상적 행위가 무대 위로 호출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예술적 변형을 말한다. “날것으로서의 삶이 작가-연출가-배우로 이어지는 창조적 굴절을 통해 의미와 맥락을 가진 기호체로 가공되는 연극화 과정”13)이 바로 조건성이다. 시가 운율, 강세, 리듬이라는 형식적 문법에 따라 시로서 승인되듯, 연극도 고유의 장르 문법, 즉 조건성에 의해 가공될 때 연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연극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도 형식의 조건성을 피할 수 없다. 예술은 현실이 아니다.” 연극을 삶과 이분시켜 연극을 연극이게끔, 예술이 예술이게끔 보장해주는 것이 조건성의 기능이다. 바꿔 말하면, 연극이 현실이 아님을, 예술이 삶이 아님을, 기호가 물(物)이 아님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표지가 바로 조건성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 있는 곳에 조건성이 있다.” 연극이 재봉사의 예술적 의지로 제작된 한 벌의 정장이라면 조건성은 옷감의 접합부에 남아있는 시침자국이다. 누빈 흔적 없이 옷이 만들어질 수 없듯, 조건성 없이 예술이 탄생할 수 없다. 마치 대리석상이나 청동상에 색채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각상에 색을 입히는 것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조각에서는 색채가 아니라 형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니슬랍스키는 예술의 조건성을 억지로 지워내고 무대를 인위적 사실성으로 가득 채웠다. 무대는 완벽하게 현실로 대체되었다. 삶이 예술을 점령한 것이다. 사실 스타니슬랍스키에게 ‘연극은 현실 자체가 아니다’라 는 전제는 마치 연극은 현실보다 열등하다는 질책과도 같았다. 조건성은 연극이 허구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자백이었고, 그는 연극이 허구나 거짓으로 폄하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극을 ‘성전’(храм)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무대는 현실에 봉헌된 제단이었다. 연극 성전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고, 그의 연극은 거듭남을 위한 성사(聖事)에 해당했다.14)

    브류소프는 “연극이 현실모방을 중단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창조적 감정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현실모방이 아니라, 삶의 진실에 구속되지 않는 배우의 자유로운 창조가 연극의 본령이라 는 것이다. 바로 이때, 예술은 삶의 노리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된다. 연극은 현실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인 것이다. 기호는 더이상 물(物)을 지향하지 않는다. 연극 자체의 논리와 문법이, 연극의 자기지시적 숭고함이 의기양양하게 주도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후 스타니슬랍스키는 메이예르홀트를 앞세운 ‘스튜디오-극장’ 실험과 상징주의의 기수였던 고든 크레이그의 초청 등을 통해 자연주의적 집착을 극복하고 조건적 무대형식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 당시 예술계를 석권한 상징주의와 인상주의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15) 그가 1924년 해외 객연을 마치고 돌아와 소비에트 연극의 흐름을 읽으면서 메이예르홀트의 혁신적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낸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메이예르홀트의 공연에서 무대 막의 제거와 관객을 향한 무대 이면의 노출을 염두에 두고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렇게 썼다. “메이예르홀트는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몇몇 공연에서 배우와 연출가를 방해하는 무대전면기둥을 아주 재치 있게, 그리고 완전히 없애버렸다.<...> 메이예르홀트에게는 휘장으로 가려야 하는 무대전면기둥이 없고, 큰 공간을 차지하는 아치도 없다. 관객들은 그저 그것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고, 이를 통해 작은 병풍이든 하나의 사물이든 연출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무대 혁신과 발견을 해낸 발명가들의 무대 지식과, 구상, 재능, 다면성, 대담성, 기지, 재치, 미감 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위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16)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극은, 그리고 그 속의 무대장식은 그 자체로 조건적”17) 이며, “실제 현실은 예술이 아니다.”18)라며 조건성에 대해서도 유화적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조건성을 많이 드러낼수록 더 좋은 공연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창조의 핵심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조건성을 선택 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며, 조건성이 쓸모 있으려면 역시나 진실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불필요한 진실」 이후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연 주의란 비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감과 구현에 있어서 진실성의 문제는 시스템에서 일관적으로 고수하던 원칙이었다. 즉, 외면적 진실성이 외면적 과도함으로 오인되는 지점에서는 한발 물러서지만, 내면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지론을 유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브류소프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자신의 비판을 거둬들이고 지지의 뜻을 표했다는 것이다. 1905년 스튜디오-극장에서 전속 드라마투르그19)로 활동한 브류소프는 조건극 이론을 실제에 적용해본바, 그 약점이 분명하게 부각되었다고 고백한다. 브류소프는 논문 「연극에서 리얼리즘과 조건성」(Реализм и усл овность на сцене)에서「불필요한 진실」의 강경한 입장을 철회하고 조건성에 대한 과도한 몰두에 반대의 입장으로 선회한다. 셰익스피어 극에서 조건성과 리얼리즘이 공존하는 현상(리얼리즘 연기와 공연 형식의 조건성이 공존)에 주목한 브류소프는 조건극은 부적절한 암시들을 남발했고, 리얼리즘은 지나친 자연주의적 묘사로 배우의 창조성을 억압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연주의를 극복한 리얼리즘과 예술 본래의 조건성을 결합시켜 삶의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절충론을 펼친다.20) 모스크바예술극장의 혁신에 매료된 브류소프는 결국 1912년「모스크바예술극장의 <햄릿>」(<Гамлет> в Московском Худо жественном театре)이라는 논문에서 극장의 ‘놀라운 생동감’과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하기에 이른다.21)

    그렇다면 브류소프의 입장변화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변신에 따른 연계적 진화인가, 아니면 착각이나 변절에 불과한가?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적 가치인 진실성은 내적 교감과 외적 구현이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진실」에서 브류소프는 예술작품의 본질인 내용이 그 형식(나아가 그 질료들)과 맺는 관계는 유기적이 아니라 우연적이라 언급한 바 있다(“не органическая, случайная”). 동일한 내용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고, 다양한 질료들을 통해 발현될 수 있다는 것, 즉 인물의 내적 감정이라는 내용(나아가 희곡의 최종과제)이 무대표현이라는 형식(나아가 연극 형식 자체), 그리고 배우의 연기 질료(표정, 제스처, 목소리, 움직임 등)와 맺는 관계는 개연성・필연성・논리성・사실성 등 유기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임의적이고 즉흥적이며 비사실적인 우연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내용-형식-질료는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정합적 상응코드 자체가 없기 때문에(‘несоиз меримы’) 배우의 창조적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다. 배우가 현인이나 성인이 돼야하고 창조자(творец)가 돼야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22) 이런 주장에 비춰볼 때, 배우에게 진실성이라는 유일한 잣대만 제공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법은 창조적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자의 목소리이자 다채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전횡의 회초리이다. 이 모순에 대한 대답이 없다면 브류소프의 입장변화는 메이예르홀트의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예술의 조건성을 연극의 내재적 본질이 아니라 계륵 같은 잉여적 표현태로 간주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입장이 변전(變轉)의 기회를 상실한 것도 브류소프의 입장변화와 무관하지는 않다.

    3)“Без переживания нет искусства.”(교감 없이는 예술도 없다)란 스타니슬랍스키의 선언에서 보듯이 пере живание는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론이다. 흔히 ‘체험’, ‘경험’이란 직역어를 쓰지만 시스템의 전체적 의미를 고려할 때 그리 적합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переживание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설명을 보자면, “매번 배역이 가진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надо переживать роль, то есть испытывать аналогичные с ней чувства каждый раз и при каждом ее повторении” К. С. Станиславский Соб. соч. в 8 т. Т.2. М.: Искусство, 1954. С.25). 그 ‘유사한 감정’을 통해 배우의 연기는 생동감을 얻고 정당성을 확보한다(‘ожи влены и оправданы’, К. С. Станиславский Соб. соч. в 8 т. Т.4, 1955. С.337-338). переживан ие는 배우(주체)가 배역(타자)의 내면적 상태를 ‘정서적 기억’을 동원하여 추론한 후, 그것을 자기 내부에 재현시키는 과정이다. 추론의 능력과 재생의 능력이 동시에 필요한 점, 그리고 원어 ‘пере-’에 소통의미가 있다는 점, 또한 체험이라는 물리적, 육체적 현상이 아니라, 내면・감정・심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교감’(交感)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한편, 교감과 비슷한 의미 궤적을 지닌 сочувствие는 감정을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로 ‘공감’이라는 번역이 어울린다. 공감은 감정의 공유라는 동시성이 중시된 용어이다. 교감은 희곡분석과 연습 단계에서 배우의 인지작용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고, 공감은 무대에서 상대배역과 앙상블을 형성하고 관객들과 정서적 일체감을 느낄 때 필요한 덕목이다. 물론 맥락에 따라 ‘체험’이나 ‘공감’의 표현이 더 적합할 때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대부분의 경우 ‘교감’이 더 보편적이다.  4)여기서 진실이란 개념은 리얼리즘이 세계를 대면할 때 견지하는 미학적 지향으로서 ‘삶의 진실’과 그것을 연극에서 구현하는 ‘무대 위에서의 진실’을 두루 지칭하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에 따르면 무대의 진실은 “실제로는 없지만 다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На сцене же правдой называют то, чего нет в действительности, но что могло бы случиться.” К. С. Стан иславский Соб. соч. в 8 т. Т.2. VIII. Чувство правды и вера), 즉 명백히 부재하지만 존재한다고 간주해도 되는 개연적 사태나 현상을 일컫고 있다. 8장의 소제목에 사용된 개념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느낌’인 점과 ‘사실’이 아니라 ‘믿음’인 점을 보면 예술적 진실은 진실 자체이라기보다 진실에 대한 기대치, 혹은 근사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와 관련된 모든 논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진실의 근사치는 진실에 속하는가, 아니면 진실일 수 없음에 대한 반증인가 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5)‘최종과제’와 ‘초과제’가 혼용되고 있는 이 용어도 그 적확한 번역어가 서둘러 확정될 필요가 있다. ‘초과제’란 번역의 경우,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작품의 최종 의미, 즉 배역에 몰입한 배우를 초월적으로 통제하는 공연의 최종 의미를 말한다. 반면 ‘최종과제’는 배우가 배역의 구현을 위해 인지해야할 작품의 최종 목표를 지시한다. 전자가 무대 위 연기를 통제하는 인식론에 방점을 둔 번역이라면, 후자는 배역성격화 과정에서 최우선시해야 할 의미를 따지는 가치론에 방점을 둔 번역이다. 필자는 모든 배우가 달성해야할 공연의 최종적 의미, 배우가 인지해야할 작품의 최고 가치란 차원에서 ‘최종과제’가 적합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6)Волков Н. Книга К.С. Станиславского “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К. С. Станиславский Соб. соч. в 8 т. Т.1. М.: Искусство, 1954. С.14.  7)진실성의 개념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서 이에 대한 설명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수없이 등장하는 правда, правильно, правдивый, правдоподобие 등의 용어는 대부분 동어반복에 가깝다. 이론이라는 학적 체계가 갖는 엄밀성과 정교성까지 기대하진 않지만, 진실이 유추(аналогия), 느낌(чувство), 믿음(вера)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진실성 개념이 갖는 또 다른 약점은 브류소프의 조건성이 연극 본래의 속성으로, 예브레이노프의 연극성(театральность)이 인간 본래의 본능으로 이미 소여된 개념인 반면, 진실성은 ‘해야한다’는 당위적 요구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이 윤리의 영역에서 사유될 때, 과학으로서의 이론적 내구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8)조건성을 설명·번역하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아직 지지부진하다. 매번 주석을 달아서 변명과 핑계에 가까운 부연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전공자들의 처지는 암담하다. 정명법이 개념 이해의 첫걸음이자 완료태일진대, 우리는 항상 부적당한 번역의 돌부리에 걸려 중도하차하고 마는 것이다. 일단 ‘조건극’은 다의어 условие의 주요 의미 중 하나를 부적합하게 그대로 차용한 용어라는 점만 기억하자. 본 논문에서는 ‘조건적으로’ 조건극, 조건성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9)Герасимов Ю.К. Брюсов и условный театр, Театр и драматургиря. Л., 1967. С.258.  10)스트라시코바는 「불필요한 진실」에서 촉발된 연극논쟁이 『Театр. Книга о новом театре』 (1908), 『Кризис театра』(1908)를 거쳐 『В спорах о театре』(1914)에서 일단락된다고 보고 있다. Страшкова О.К. Драматург-экспериментатор. Ставрополь: Арт, 2002. С.11. 이 시대 연극 논쟁에 대해서는 백승무, “은시대 연극미학 연구,” 『드라마연구』, 제40호, 한국드라마학회 (2013년 가을), 64쪽을 보라.  11)Мейерхольд В.Э. К истории и технике Театра.,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1. 메이예르홀트는 자신의 실험적 연출술이 브류소프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메테를링크와 브류소프가 은밀히 일러준 계획에 따라 조건극 창조를 위한 첫 시도를 수행한 것은 스튜디오-극장이었다.” Там же. 브롯스카야도 스튜디오-극장 시절 메이예르홀트가 “브류소프의 「불필요한 진실」을 자기 연출 시스템의 근간으로 삼았고, 무대 언어와 그 형식을 탐색할 때도 그 논문을 수시로 참조했다.”고 말한다. Бродская Г.Ю. Брюсов и театр, Литературное наследство. Том 85: Валерий Брюсов. АН СССР. Ин-т мировой лит. им. А.М. Горького. М.: Наука, 1976. С.171.  12)Брюсов В.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7 т. Т.6. М.: 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75. С.62-73. 이하 브류소프 인용은 이 논문에서 따온다.  13)백승무, 『한국연극: 깊이』, 우물이 있는 집, 2013, 108쪽.  14)위의 책, 108쪽.  15)Станиславский К.С. 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Соб. соч. в 8 т. Т.2, М.: Искусство, 1954. С.218. 1904년에 메테를링크의 세 희곡(「맹인들」, 「침입자」, 「실내」)과 1907년에 자신이 초현실적이라고 정의한 함순의 「삶의 드라마」와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의 「인간의 삶」을 무대에 올린 것도 이에 포함된다. См.: Ростоцкий Б.Н.И. В.Э. Мейерхольд и его литературное наследие,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1. С.10.  16)Станиславский К.С. 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С.398-399. 1938년 메이예르홀트국립극장이 폐쇄되자 스타니슬랍스키는 다시 한 번 더 메이예르홀트를 불러들인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메이예르홀트의 무한한 상상력과 탐구정신을 항상 높이 평가했고, 그 구상의 대담함과 신랄함, 그 표현방식의 의외성과 새로움을 칭찬해왔다. 로스토츠키는 자신의 오페라극장에 메이예르홀트를 초청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는 순전히 예술적 성격이었음을 강조한다. См.: Ростоцкий Б.Н.И. В.Э. Мейерхольд и его литературное наследие. С.56.  17)Станиславский К.С. 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С.315-316.  18)Станиславский К.С.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 Соб. соч. в 8 т. Т.2, М.: Искусство, 1954, С.69.  19)브류소프가 맡은 직함인 문학부장(заведующий литературным бюро)은 독일의 드라마투르그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했다.  20)Брюсов В. “Реализм и условность на сцене”, Театр. Книга о новом театре. Шиповник, 1908. С.257.  21)Герасимов Ю. К. В. Я. Брюсов и условный театр. С.253-273. 메이예르홀트는 브류소프의 이러한 입장변화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훗날 「‘메이예르홀트극장의 창작 방법론’ 토론회 연설」(1930)에서 브류소프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고 비판한다. Мейерхольд В.Э. Из в ыступления на дискуссии “Творческая методология Театра имени Мейерхольда”, В.Э. Мейе 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229-240. 물론, 상징주의 선봉장이었던 고든 크레이그의 <햄릿>이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전향, 나아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전향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연극미학과 대척에 있는 연출가를 초청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 그리고 그 성과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었다는 게 대다수 연구자들의 평가이다.  22)창조적 자유에 대한 강조는 5장에서 보게 될 데미도프의 주장, 즉 배우의 진정한 ‘자유’의 문제와 직결된다.

    3. 예브레이노프: 연극 자체(Театр как таковой)의 옹립

    예브레이노프는 스타니슬랍스키 당대에 그의 연극이론에 대해 가장 신랄하고 냉소적인 비판을 가한 인물이다. 예브레이노프는 ‘연극적인 것’을 본능 차원에서, 일상의 삶 차원에서, 연극이라는 제도를 초월한 보편적 시공간에서 사유한다. 그가 내세운 삶의 연극화(театрализация жизни)는 신성함과 절대적 조화라는 종교적 이상을 전제한 상징주의 생예술(жизнетворчество)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견고한 이론체계를 구축했다. 연극성은 인간이 자신을 변형하고 재창조하고자 하는 고유의 본능이며, 연극은 이러한 본능을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형식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23) 예브레이노프는 삶의 진실로 무대를 포화시키려는 리얼리즘적 시도와 예술의 마스크로 삶 속으로 돌진하고자 한 상징주의적 시도 모두를 거부한다. 그는 삶과 연극의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고, 나아가 제도로서의 연극, 예술로서의 연극을 거부하며 반예술적, 반연극적 태도를 견지한다. 연극성은 예술의 속성이 아니라, 삶의 속성이며, 본능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성이 미학이 아니라 변형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미학에 앞서 존재하는 전(前)미학적 기질이라고 말한다.24) 이는 연극이 세계의 반영이나 삶의 메타포가 아니라, 실존 그 자체라는 선언이다. 인간에게는 외적 형상에 모순되려는 본능, 나를 포기하고 남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나’는 지워지고 나의 연극적 마스크만이 ‘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연극은 연극성의 본능을 미학의 범주로 제한시켜, 변형의 기쁨을 전문배우들에게 헌납하고 극장이라는 특수공간의 활동으로 협소화 시켜버렸다. 제도 연극은 희곡의 문학성이나 아름다운 무대장식을 자신의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아름다운 폐품’25)에 불과하다. 따라서 배우와 배역 간의 유추적 일치를 지향하는 스타니슬랍스키적 ‘진실’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화석화시키는 도그마가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를 가리켜 ‘연극성에 있어서 아무 한 일도 없는 작자’26)라며 극단적으로 폄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무대장식의 조건성은 인정하면서도 무대행위의 조건성은 인정하지 않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진실성은 결국 반쪽짜리가 된다. 무대에서는 “행위의 재현이 필요하지 행위 자체가 필요한 건 아니다.”27) 삶의 관점에서 보면 연극 속의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브레이노프는 진짜인 척 가장하는 교묘한 기술적 눈속임 대신에 자발적 기만, 매혹적 기만에 대한 연극적 결사(те атральное товарищество)를 맺자고 제안한다. “연극의 모든 것은 기만이다. 새빨간 기만이고, 의식적이며 고의적인 기만이다. 하지만 그거 하나만으로도 세상 살맛이 날 정도로 매력적인 기만이다.”28) 세계가 극장이고 인간이 삶의 배우이자 연출가라고 생각한 예브레이노프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미학이 관객들이 가졌던 연극성의 본능을 훼손시켰고, ‘현실로 몽상하기’29)의 재능을 소진시켰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들은 시급히 ‘연극의 연극화’(т еатрализация театра) 치료를 받아야할 환자로 취급된다.

    단일하고 고정된 마스크는, 그것도 유희나 본능과 무관하게 의지적 몰입으로 둘러쓴 마스크는 연극적이지 않다. 희곡의 최종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일상의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수동적 마스크는 변형의 파토스를 뿜어낼 수 없다는 것이 예브레이노프가 주장하는 본능 미학이다.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예브레이노프의 비판은<제4의 벽>(1914)에 와서는 패러디를 넘어 조롱의 수준으로 희화된다. 오페라 <파우스트>를 최신 유행하는 ‘울트라리얼리즘’(ультрареализм) 풍으로 준비하는 내용인<제4의 벽>은 전통적 오페라의 조건성을 지우고 삶의 진실로 진화를 시도하는 스타니슬랍스 키형 연출가를 등장시킨다. 여기서 예브레이노프는 무대의 진실성 문제를 부조리 상황으로 극단화시킨다. “모든 것을 삶에서처럼!”(63쪽)이라는 구호를 신봉하는 연출가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역에 몰입하고 그 역을 살아내”고, “역과 하나가 되어 타고난 자기 역할처럼 그 속에 몰입”31)하라고 요구하며,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60쪽)이므로 “완벽한 리얼리즘”(73쪽)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짓과 광대짓, 순수예술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타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극장”(83쪽)을 건설하고, “거짓으로 점철된 오래된 관습적 예술을 완전히 박멸”(88쪽)하며,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연극적 거짓의 매혹보다 생생한 현실의 진실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89쪽)는 스타니슬랍스키식 강론은 지독한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다.

    연출가는 이미 ‘138회’(62쪽)32)나 연습을 한 상태지만, ‘완벽한 리얼리즘’을 위해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도 지워내고, 가창과 서창이라는 오페라의 조건성도 제거해버린다. 파우스트가 젊어지는 비현실적인 설정도 거부하고 아예 대사도 삭제한다. 파우스트의 거주지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제4의 벽을 실제로 쌓아올리는 장면이 이 공연의 압권이다. 조건성과 어떠한 타협도 없이 ‘진실’만을 추구하겠다는 연출가의 논리는 결국 예술을 웃음거리로, 현실보다 열등한 누더기로 만들고 만다.

    23)См.: Евреинов Н. “Театрализация жизни”, Демон театральности. М.; СПб.: Летний сад, 2002. С.43.  24)Там же, 44.  25)Там же, 44.  26)Баканурский А. “Николай Евреинов: инстинкт театральности”, Николай Евреинов. Театр к ак таковой. Одесса: Студия Негоциант, 2003. С.6.  27)Евреинов Н. “К вопросу о пределах театральной иллюзии”, Демон театральности. М.; С Пб.: Летний сад, 2002. С.74.  28)Евреинов Н. “К вопросу о пределах театральной иллюзии”, С.75.  29)Джурова Т. “Николай Евреинов: театрализация жизни и искусства”, Евреинов Н.Н. Оригин ал о портретистах. М.: Совпадение, 2005. С.15.  30)Евреинов “Н. Новые театральные инвенции”, Демон театральности. М.; СПб.: Летний са д, 2002. С.95.  31)예브레이노프, 안지영 역, 『가장 중요한 것』, 문학과 지성사, 2012, 51쪽(이하 인용은 쪽수만 표시).  32)예브레이노프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을 가리켜 인간행위를 흉내만 내는 침팬지 훈련법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배우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스스로 창조하질 못하고 단지 훈련법에 의해 주입된 내용만 반복할 뿐이다.Евреинов Н. В школе остроумия. Восп оминания о театре Кривое зеркало, М.: Искусство, 1998. С.166. ‘138’은 본능적 유희와 자유로운 창조가 압살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황폐함을 증언하는 숫자이다.

    4. 메이예르홀트: 심리에서 생리로

    스타니슬랍스키의 뛰어난 제자였으며 한때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젊은 기대 주였던 메이예르홀트는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시스템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하지만 예브레이노프에 비하면 악의적이거나 조롱어린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비판은 주로 이념적 차원에서 우파 극장인 모스크바예술극장을 공격하는 데에 치중했고, 비판과 비난을 가할 때도 스타니슬랍스키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은 최대한 삼갔다. 젊었을 때부터 가졌던 스승에 대한 존경 때문이긴 했지만,33) 1930년대 후반부터 스타니슬랍스키의 미학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이론이 어떤 종합(синтез)의 방향으로 진화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볼만하다.34)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자연주의35)에 대한 메이예르홀트의 비판은 「연극의 역사와 기법에 관하여」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 메이예르홀트는 자연주의가 지나친 역사적 고증과 사실적 상황설정으로 인해 작품의 비의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 “<줄리어스 시저>와 같은 희곡의 리드미컬한 구조는 결코 포착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리드미컬한 구조는 재현될 수 없다. 그리고 자연주의 극장의 대표자들 중 그 누구도 ‘카이사리즘’의 종합이 ‘일상적인’ 장면들의 만화경이나 당대 군중에서 뽑은 유형들의 선명한 재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36) 또한 극작 자체가 조건성을 토대로 완성된 경우(주로 상징주의 드라마), 자연주의 연극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는 아마추어 사진사의 능력” 이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자연주의 연극은 배우에게 이미 완결되어 있는 분명하고, 정해진 표현을 가르치며, 암시의 유희나 의식적인 미완의 연기를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연극에서 과장된 연기가 그처럼 자주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상적 진실에 매몰되다보면 더 크고 더 고차원적인 예술의 표현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진실의 사슬을 풀어냈을 때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메이예르홀트는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있었던 <갈매기> 연습에 참관한 체 호프의 일화를 들려준다. 배우 중 한 사람이<갈매기> 공연 때 무대 뒤에서 개구리들이 울고, 잠자리들이 날고, 개가 짖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는 배우의 답변을 듣고 체호프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연극은 예술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기막히게 그려낸 크람스코이의 장르화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 그림 중 한 점에서 그림으로 그린 코를 베어내고 진짜 코를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코는 ‘사실적’이지만, 그림은 망가지고 말겁니다. <...> 연극은 모두가 알고있는 조건성을 요 구합니다. 이 극장에도 제4의 벽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연극은 예술입니다. 연극은 삶의 정수를 반영합니다. 불필요한 것들은 그 어떤 것도 무대로 끌어들 여서는 안 됩니다.”37) 삶의 정수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체호프의 설득은 「불필요한 진실」에서 조건성의 단순함을 옹호한 브류소프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메이예르홀트는 배우 훈련술에 있어서도 스타니슬랍스키의 교감연극과 대척에 놓여있었다. 메이예르홀트의 생체역학(Биомеханика)과 스타니슬랍스키의 심리술(Психотехника)는 어떤 면에서는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결로, 생리주의와 심리주의의 대결로 이해할 수도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교감론이 이상적인 가설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교감 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배역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기에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장을 하고 인물 형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38) 교감을 통해 배역의 심리상태를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은 진실의 근사치일 뿐 진실 자체는 아니다. 몰입을 통해 도출된 무대행위 또한 진실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라는 기대치이다. 게다가 배우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 배역과 동시에 행위 속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요구는 거의 억지에 가깝다. 그런 몰입 상태를 매 공연 때마다 반복하면 ‘신경쇠약’에 걸릴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들은 자주 병에 걸립니다.”라는 메이예르홀트의 발언은 농담이나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39)

    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메이예르홀트의 비판이 일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에 대해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시스템의 이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시스템과 그 반정립이라는 도식을 조망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모스크바예술극장과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에 대한 메이예르 홀트의 비판은 1930년대 초까지 계속 되었다.40) 하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이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발언을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각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이론을 향해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41)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이 자연주의로부터 완전히 탈피했음을 인정했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되었음을 말해준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이 활동 초기에는 매우 불건전한 유파인 이른바 마이닝겐 유파, 즉 지극히 자연주의적인 유파에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출발이 불건전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극장의 최고지도자인 스타니슬랍스키는 이후에 자신의 창작 방법론을 발전시켜나가면서 용기 있게 몇몇 단점들을 제거했습니다. 지극히 자연주의적이었던 이 극장은 다른 유파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자연주의적 기법과 리얼리즘적 기법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42) 1935년 스타니슬랍스키 계열의 연출가들로부터 질문을 받은 메이예르홀트는 자신과 스타니슬랍스키가 결코 극단적인 연출가가 아님을 선언하고, 둘 간에 접점이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한다. “메이예르홀트와 스타니슬랍스키가 정반대의 연출가라는 주장은 옳지 않소. 그런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은 무의미한 태도입니다. 제 이론도 그렇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도 그렇고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두 사람의 이론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43) 메이예르홀트도 1937년 12월 25일 자신이 운영하는 메이예르홀트국 립극장의 회의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이예르홀트와 스타니슬랍스키가 정반대의 연출가라는 주장은 옳지 않소. 우리는 각자 서로를 보완하는 두 개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마이닝겐주의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중 많은 것을 이미 폐기했습니다. 나는 활동초기에 스타니슬랍스키를 부정했지만, 이제 그때 부정한 것들 중 많은 것을 새로이 내 시스템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나와 스타니슬랍스키는 의견교환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집을 방문했으며, 세 시간 가량을 함께 보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원칙적으로 중대한 차이는 없으며, 두 사람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우리 시스템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진행한다면, 양자 간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44)

    이처럼 메이예르홀트는 자신의 이론이 점진적으로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에 다가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좀 더 정밀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 1930년대 중후반 두 사람의 이론적 근접이 그저 선언적 차원의 문제인지, 아니면 변증법적 상호발전의 결과인지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코피예프의 경우, 이 시기에 두 사람의 이론이 일종의 합치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메이예르홀트는 1922년 발표문 「미래의 배우와 생체역학」부터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스타니슬랍스키 또한 1920년대부터 자신의 배우훈련술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이다.45)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당사자들의 발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선언 이상의 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두 사람의 무대적 실천 차원에서 구체적인 논증이 필요하다. 왜냐면 메이예르홀트의 경우, 이 시기에 소비에트 주류 연극계와 잦은 마찰을 일으키면서 정치적·예술적 위상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신봉하는 예술가들과 치열한 논쟁46)을 전개하던 메이예르홀트는 어쩔 수 없이 스타니슬랍스키와 ‘전략적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두 사람의 협력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후반부 연극계의 구도와 메이예르홀트의 상황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47)

    메이예르홀트의 입장변화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점은 시스템이 다양한 비판과 지적에 대해 탄력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오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자신의 시스템을 계속 변화·발전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시스템이 가진 미덕은 메이예르홀트를 비롯해 브류소프, 예브레이노프 등 당대 비판자들의 주장을 발전을 위한 도약대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메이예르홀트도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적 유연성과 흡수성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1939년 1월 17일 있었던 「드라마 극장 연출가 수업에서의 강의」의 한 대목을 보자. “(스타니슬랍스키는 – 필자주) 시스템 속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이룬 일련의 발견 탐색을 통합시켰다. 오늘날 그의 시스템을 유일한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괴롭히던 문제들, 즉 연출가와 배우의 작업 문제, 미장센의 문제 등에 대해 이론적으로 작업한 것은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나의 예술 인생』과 그의 마지막 책(1938년에 출간된 『배우수업』을 말한다–필자주)만 보더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그의 시스템에 담겨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말년에 몇 달간 그와 만났다. 그는 내가 하는 말들, 그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열심히 자기 안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언급한 문제들 중에서 그가 모르고 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 식으로 논의의 방향을 돌렸다. 비록 그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흡수해냈다. 이 위대한 사람이 좀 더 오래 살지 못한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은 그가 혼자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다른 예술 동지들이 수행한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 속에는 네미로비치-단첸코가 수행한 것, 바흐탄고프가 수행한 것, 그리고 죄 많은 내가 수행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48)

    시스템은 고정되거나 완결된 것이 아니라, 경험의 교훈과 상황의 맥락을 통해 끊임없는 소통을 지향했다. 변화의 절실함과 내적 필연성을 돌아보지 않고 그 결과물을 따올 때, 시스템은 경직된 교리로 변질되고 만다. 100년 전 비판자 들의 주장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33)“메이예르홀트는 모스크바대중예술극장에 입단할 때부터 이 극장이 수행하고 있는 무대 개혁에 대한 열정과 특히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적 재능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었다. 이 도취가 너무나 심오하고 진실했기 때문에 입단 초기부터 스타니슬랍스키를 향한 메이예르홀트의 존경심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훗날 논쟁과 불화가 진행될 때도 그 존경심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Ростоцкий Б.Н.И. В.Э. Мейерхольд и его литературное на следие, С.8.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미학을 비판할 때도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모스크바예술극장을 먼저 앞세웠다. 특히,  34)대표적인 사례가 1936년에 행한 「메이예르홀트주의에 반대하는 메이예르홀트」란 강연이었다. 이 강연에서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오페라 「카르멘」이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을 때도 “무엇보다도 스타니슬랍스키의 작업은 여전히 최고 수준의 것이었다.”라며 스승을 옹호한다. 바로 이 강연에서 메이예르홀트는 종합(синтез)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Мейерхольд В.Э. Мейерхольд против мейерхольдовщины”,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 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334.  35)대다수 학자들은 모스크바예술극장이 초기 자연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연극리얼리즘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예브레이노프를 비롯한 모더니즘 기수들에게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여전히 자연주의의 전형이었다.  36)Мейерхольд В.Э. “К истории и технике Театра”,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1. С.114.  37)Мейерхольд В.Э. К истории и технике Театра. С.120.  38)Мейерхольд В.Э. “Идеология и технология в театре”,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279. 커튼콜에서도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는 배우를 보라. 그것은 진정성의 표지인가, 아니면 자질미달의 증거인가? 만약 그것이 진정성의 승리라고 한다면 배우의 몰입을 부정하고 커튼콜로 불러낸 관객들의 야만은 중지되어야 한다. 행여 강도 높은 몰입을 순식간에 기쁨과 감사의 제스처로 바꾸는 것도 ‘진실’의 한 덕목이라 한다면 관객들의 교감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 건가.  39)Мейерхольд В.Э. Идеология и технология в театре. С.282. 무대공연의 제작과 수용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한 윌슨은 메이예르홀트의 장난기어린 이 발언이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올리비에가 3년짜리 장기공연에서 매일 밤 오델로의 모든 정열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아마 죽고 말 것이다. 확실히 3년이 끝날 무렵, 그의 아드레날린은 바닥날 것이다.” 글렌 윌슨, 『공연예술심리학』, 김문환 역, 연극과 인간, 2000, 111쪽. 한편 메이예르홀트의 생체역학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현대 생리학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생체역학의 인식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행동한다.”가 아니라, “나는 행동함으로써 내 생각을 표현한다.”이다.  40)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정면비판은 1933년에도 발견된다. “우리와 그(이고리 일린스키를 말한다 – 필자주)는 환영주의 무대장식을 거부하는 노선을 수행했고, 자연주의 극장 연기 기법에 대해,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 기법에 대해 비판적인 노선을 걸어왔습니다.” Мейерхольд В.Э. “Путь актера. Игорь Ильинский и проблема амплуа”, В.Э. Ме 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260. 그렇다고 메이예르홀트가 자연주의에 대한 입장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주의자들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자연주의는 리얼리즘과 아주 유사하다.<...> 자연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Мейерхольд В.Э. “Лекция на курсах режиссеров драматических театров”,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470.  41)Прокофьев Вл. В спорах о Станиславском. М.: Искусство, 1962. С.163.  42)Мейерхольд В.Э. Идеология и технология в театре. С.271.  43)Гладков А. Мейерхольд. М.: Союз театр. деятелей РСФСР, 1990. С.236. 메이예르홀트는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이견이 없음을 확인한다. “스타니슬랍스키와 몇 차례 오랜 회담을 한 메이예르홀트는 이제 그들 사이에 더 이상 차이점이 없음을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Гладков А. “Из воспоминаний о Мейерхольде”, Москва театральная, М.: Искусство, 1960..352. Цит. по кн.: Прокофьев Вл. В спорах о Станиславском. С.164-165.  44)Февральский А. “Комментарии”, С.579. 강조는 필자. 한편, 1936년 무렵 스타니슬랍스키는 메이예르홀트를 자신의 후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분관을 메이예르홀트에게 맡기고, 그의 단원과 우리 단원을 합쳐야 한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은 네미로비치 단첸코)에게 내주고, 나는 스튜디오를 위해 분관을 맡으며(아직은 우리 오페라단이 그곳에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자신의 극장을 가지도록 한다. (나는 그에게 내 이론에 따라 훈련한 극단을 맡길 것이다. 그는 우리 극단을 생체역학 이론에 따라 훈련시킬 것이다). 이외에도 이 모든 극장을 공동으로 관리할 위원회를 조직한다. 거기에는 나와 네미로비치 단첸코, 메이예르홀트, 행정국의 아르카디예프, 라도미슬렌스키, 토르스키 등이 들어간다.” Там же. 메이예르홀트국립극장이 강제로 폐쇄된 이후, 1938년 3월 메이예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제안으로 스타니슬랍스키국립오페라극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938년 10월 스타니슬랍스키 사후 스타니슬랍스키국립오페라극장의 책임연출가로 임명되었다.  45)Прокофьев Вл. В спорах о Станиславском. С.163-164.  46)예를 들어, 1936년 3월 26일 행했던 「모스크바 극장노동자 회의에서의 발언」을 보라.  47)이에 관한 문제는 또 다른 한 편의 논문을 요한다. 여기서는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메이예르홀트의 입장변화를 일종의 개심(改心)이나 각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는 점만 강조하고자 한다.  48)Мейерхольд В.Э. “Лекция на курсах режиссеров драматических театров”, С.469-470. 강조는 필자.

    5. 데미도프의 ‘창조적 자유’

    위에서 언급한 주장들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진영논리를 토대로 각을 세운 대결이라면, 연출가이자 연기교육자인 니콜라이 데미도프(Николай Ва сильевич Демидов, 1884-1953)의 스타니슬랍스키 비판은 시스템 구축에 깊이 관여한 내부자의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그 타격 강도는 훨씬 더 크고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창작적 지향이나 미학적 성향의 호불호를 따지는 게 아니라, 배우훈련과 관련된 시스템의 본질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일면 치명적인 지점도 찾을 수 있다.

    데미도프의 연극론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토양 위에서 자라났고, 스타니슬랍스키와의 직접적인 교류와 공동작업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의견의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37년 결별 이전까지 두 사람이 동일한 예술적 이상을 보유했다는 점은 분명하다.49) 데미도프의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비판은 사후에 그가 남긴 메모들을 통해 공개되었다. 편집자인 필시틴스키의 말대로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에 관한 데미도프의 메모들은 다양한 시기에 기록된 것이고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관성과 논거의 타당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지적이 편협한 주장이라든가, 근거가 박약한 낭설이라는 비판은 부당하다. 날카로운 직관에 토대한 그의 기록들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스템에 대한 데미도프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스타니슬랍스키가 배우의 창조적 자유를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의 재능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비판에 대해서 데미도프는 “창조는 연습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공연에서도 필요하다.”50)고 주장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이 원하는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직접 시연을 통해 배우들을 ‘가르쳤다.’ 배우들이 엉뚱한 연기를 하면 그는 몸소 올바른 연기를 보여주며 고쳐주었다. 그의 유기적이고 창조적인 자유에 힘입어 배우들은 비슷하게 흉내 내듯 연기를 해낸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지거나 스스로 연기를 만들어내야 할 때면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그래서 “배우들이 모스크바예술극장을 떠나고 나면 하나같이 재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은 배우로서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연출가밖에 없다.”(С.352). 스타니슬랍스키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훌륭한 배우이긴 했지만, 재능이 모자란 배우가 창조적 자유를 키워나가는 교육의 과정에 대해서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해당 배역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는 뛰어났지만, 전반적인 배우훈련에 관해서는 맹점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스타니슬랍스키가 배우 자체의 양성에 종사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는 배우를 단지 역할의 수행자로서만 능숙하게 요리했다. 즉, 역할에 준해서만 배우에 대한 작업을 했던 것이다.”(С.356). 그런 의미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공연만들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였지만, 배우를 조련하는 교육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한 마디로 말해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에서 가장 부족한 요소는 창조적 자유라는 배우의 자질을 발전시키는 훈련 영역이다. 한 장면을 훌륭히 수행하고, 그 공연을 성공적으로 상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자질을 발견하고 육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창조적 자유를 발견하고 익히는 기초훈련에서는 그다지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데미도프의 주장이다.

    첫 번째 비판과 관련하여 데미도프는 아주 흥미로운 발언을 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영화감독이지 연극연출가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С.353). 스타니 슬랍스키는 연습과정에서 배우를 고차원적 창조 상태로 이끈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에 배우가 그 상태를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미도프는 이런 식의 배우작업은 연극보다는 영화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배우로부터 최고의 연기를 끄집어내어 그 상태로 촬영을 하고나면 더 이상 같은 연기를 반복할 일이 없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정반대이다. 배우는 연습이 아니라 공연을 보여줘야 하고, 그것도 수십, 수백 번의 반복된 연기를 펼쳐야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영감으로 승부하는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훈련법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적 자유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배우의 재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곡과 배역, 장면에 대해서만 작업을 했지, 한 번도 배우의 ‘재능’에 대한 작업을 한 적은 없다.(С.352). 작업을 했다 치더라도 그것은 배우가 배역과 장면을 재능있게 수행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다른 배역도 재능있게 수행하려면 어떤 수단과 어떤 속성을 지녀야 하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주의집중이나 긴장이완 등이 재능육성과 관련된 것 같지만, 그것들도 해당 장면만을 위한 것이지 무대 위에 선 배우의 창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배우에게서 창조의 근원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배우에게 배역을 잘 수행하도록 자극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배우의 창조력이 ‘과제’나 ‘물리적 행위’를 통해서 도출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배역의 주어진 장면에서만 쓸모가 있을 뿐이지 배우의 재능을 만드는 요소는 아니다.(С.352). 한마디로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 창조력의 비밀을 몰랐고, 그 육성 과정도 몰랐다는 것이 데미도프의 단언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공연 연습을 하는 배우들을 데리고 배우의 창조 과정을 밝히고 그 법칙을 포착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은 항상 공연제작이라는 의도 속에서만 진행되었다. 예술작품의 제작이라는 복잡한 과제 때문에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 창조의 핵심적 원칙들을 포착할 수도, 세밀히 연구할 수도 없었다. 원칙적이고 근본이 되는 핵심적 원리들은 작품제작의 복잡성에 의해 묻혀버렸고, 그가 간추려낸 창조의 요소들51)은 기본이나 원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С.356).

    데미도프의 비판은 한마디로 시스템은 배역과 장면을 위한 분석적 훈련법이지 배우의 근원적인 창조력 육성을 위한 훈련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시스템의 배우훈련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관통행위’(сквозное действие)와 여타 분석적 훈련법을 예로 드는데, 배역 구축에 창조적으로 접근하는 습관이 없는 경우에는 유효하지만 재능이 요구되고 매 장면마다 올바른 창조적 몰입이 필요할 경우에 이 분석적 훈련법은 효능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만약 데미도프의 비판이 정당하다면, 모스크바예술극장과 다른 창조 여건을 가진 극단이나 창조적 자유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연출가·배우는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교조적 도그마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49)두 사람은 1911년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하여 26년간 우정을 유지했다. 그 기간 동안 데미도프는 시스템 구축에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그 보급에 앞장섰다. 1926년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데미도프를 알게 된지 15년이나 되었다. 그는 진정한 예술 애호가이며, 헌신적인 열정가이다. 그는 늘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이론과 실제 상에서 시스템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4년간 내 오페라 스튜디오(Оперная студия)에서 일했고, 술레르지츠키(Сулержицкий)와 바흐탄고프(Вахтангов)에 이어 2년간 모스크바예술극장 학교를 운영하며 시스템에 따른 배우 양성교육을 맡아왔다.” См.: Ласкина М. Н.В. Демидов. “Но вые материалы.”, Фильштинский В.М. Открытая педагогика. СПб.: Балтийские сезоны, 2006. С.346.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론가이자 교육자로서 데미도프의 창조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가 데미도프에게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 집필을 위해 공동작업을 제안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책 서문에 스타니슬랍스키는 데미도프의 공로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시스템의 보급과 이 책의 완성에 있어서 그는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나에게 가치 높은 충고와 자료들을 제공했다. 그는 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고, 내가 범한 실수를 지적해주었다.” Станиславский К.С.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 С.8.  50)Демидов Н.В. “Вопросы «системой» не разрешённые”, Фильштинский В.М. Открытая педагогика. СПб.: Балтийские сезоны, 2006. С.360(이하 인용 쪽수만 표기). 이 주장은 메이예르홀트도 반복하고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내가 공연을 초연까지만 끌고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후론 나는 극장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예브레이노프를 비판하면서 “아주 필요한 현상, 아주 필요한 작업은 공연이 진행되어갈 때 지속적으로 교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Мейерхольд В.Э. “Искусство режиссера”, В.Э. Мейерхольд: Статьи, Письма, Речи, Беседы. М.: Искусство, 1968. Т.2. С.149. 관객의 반응을 토대로 배우의 연기를 지속적으로 교정해나가는 피드백 연출법은 오늘날 보편적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51)주의집중, 상상력과 공상, 진실함의 느낌과 믿음, 상호작용, 정서적 기억, 근육이완, 행위 등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등장하는 개념들을 말한다.

    6. ‘시스템’의 시스템을 위하여

    한러수교 이후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현지에서 직접 수련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많은 전공자들이 이론과 실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시스템은 그 출발부터 철저히 현장 실천을 통해 구축되었고, 그 실제적 의미도 무대를 통해서만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시스템을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는가? 교육 현장과 무대실천 속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름을 오용·남용하지는 않는가? 혹시 자신의 연기이론이나 연출미학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해 스타니슬랍스키의 권위를 도용·과용하는 것은 아닐까?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일부 연기훈련 개념과 기법을 발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명칭에서 보듯이 시스템은 부분과 전체, 하부와 상부, 이론과 실천의 통합성과 유기성을 생명으로 삼는 하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체계를 무시한 월반이나 통합을 거부하는 편식, 혹은 유기적 결합을 단절시키는 자의적 왜곡은 시스템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들이다. 그렇기에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찬사와 경외가 커질수록 우리의 결여와 소외감 또한 같이 자라난다.

    본 소고는 시스템의 정확한 이해·적용을 위한 발판을 놓고자 시스템에 저항한 주장들을 살펴보았다. 브류소프의 조건성, 예브레이노프의 연극본능론, 메이예르홀트의 생체역학, 데미도프의 창조적 자유는 시스템의 결함에 대한 목록인 동시에,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완결성에 기여한 선물들이다. 시스템은 비판자들의 논박을 자양분 삼아 자라났으며, 이들의 반론을 흡수하면서 몸을 불렸다. 이들의 주장과 반박이 그 주변에 포진했을 때, 시스템은 제대로 된 형체와 위용을 드러낼 수 있다. 이들의 영역까지 아울러야만 시스템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 전체, 하부의 토대와 연계된 상부, 이론의 완성도를 구현하는 실천이 될 수 있다. 본 소고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비판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는 것은 시스템의 결점을 노출하고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완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지향한다. 시스템은 그 내부에 변화의 필연성과 역동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것이 ‘상호보완적 체계’에서 ‘유일한 시스템’으로 진화한 비결이기도 하다. 닫히지 않는 원, 혹은 완결을 거부하는 완성이 시스템의 속성이고 본체이다. 이러한 탄력성과 유연성은 비판자들의 주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물론 체계적 연기훈련술도 부재하고, 극단결속력도 약하며, 레퍼토리 극장도 요원한 우리의 현실에서 시스템의 적용은 아직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자체도 새로운 조건이 될 수는 있다. 시스템을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취한다면 우리의 현실을 새로운 ‘시스템’을 위한 조건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스템’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고 진행형이다. 이것이 본 소고가 성과라기보다 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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