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의료인문학의 살아있는 텍스트1)

Drama, a Living Text for Medical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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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드라마는 인생을 경험하고 인간관계를 관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연극공연은 “살아있는 텍스트”로서 배우가 관객 앞에서 체현하는 과정을 통해 의료전문인들과 환자들에게 질병과 죽음에 대한 논의와 성찰을 촉발하는 효과적인 교재가 될 수 있다.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는 난소암 선고를 받은 주인공 비비안 베어링이 자신의 전공분야인 존 돈의 성시를 통해 질병의 고통과 죽음을 넘어가는 과정을 존 돈 시세계의 특징적 장치인 아이러니와 역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위트>의 독창성은 사실주의적인 재현과 서사극적 기법을 활용한 극적 구성, 병치와 대조를 통해 상호보완적으로 설정한 등장인물, 육체의 소멸을 통해 찾아지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주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생의 실존적인 진실을 정교하게 엮어낸 극작술에 있다. 브로드웨이 공연과 에마 톰슨의 영화로성공한 <위트>는 이후 의료인들에게 환자가 겪는 질병의 고통과 죽음에의 두려움을 공감하고 그들과 전인적으로 소통하도록 교육하는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드라마의 의료인문학적인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위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심층적인 소개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드라마를 활용한 교육 방법론 개발을 제안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적인 상황에 적합한 의료드라마 교재를 개발할 수 있는 예술가와 의료인의 창의적인 협업을 유도하고자 한다.


    Drama lets people experience life and observe human relationships. Furthermore, as “living text,” theater has the potential as a creative textbook for medical humanities that can be a vehicle of holistic identification and communication to medical professionals and patients. Margaret Edson’s Wit depicts how Vivian Bearing, diagnosed with ovarian cancer, deals with her illness as juxtaposed with John Donne’s Holy Sonnets. The irony and paradox, that she only learns the wit behind the Sonnets when she faces death herself, stands out in Wit. Wit’s originality lies in its narrative and characterization that demonstrate the power of literature to overcome illness and death. The distinctive feature of Wi’s narrative structure is its use of epic theater which provides direct introspection into the protagonist. What stands out in characterization is the contrast between medical personnels who deal with physical ailments and the literary experts who pursue spiritual/mental salvation. Thematically, salvation of the soul through deterioration of the body completes the aesthetic paradox. Produced as a play and film, Wit received a turnaround as a training text for medical professionals. The play’s depiction of a cancer patient’s pain and how she subsequently overcomes her fear of death show 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medicine and the arts. I hope that the case can be illuminating to playwrights and educators who pursue the creative fusion of the arts and medicine.

  • KEYWORD

    의료인문학 , 존 돈 , 질병과 죽음 , 소통과 공감 , 아이러니와 역설

  • 1. 들어가며: 드라마, 체현과 성찰의 예술

    드라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했듯이 “행동하는 인간의 모방”으로 관객들에게 생활 속 각종 사건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관찰하며,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대면하게 하는 힘이 있다.3) 드라마 속의 사건이 위중할수록, 상황과 인물들이 정교하게 구성될수록 드라마는 삶의 조건과 아이러니에 대한 깊은 성찰과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하는 교육적/정서적 효과를 자아낸다.

    “삶에 대한 살아있는 텍스트 (living text about living)” 로서의 연극은 살아있는 배우가 살아있는 인물을 관객들 앞에서 체현(體現)하기 때문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질병과 죽음으로의 과정을 실제와 가장 유사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매체이다. 그러므로 질병을 소재로하는 연극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과 질병을 겪는 환자 모두에게 공감과 소통의 장(場)을 열어줌으로써 창의적인 의료인문학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있다.4) 의료인문학이 지향하는 바가 의료인들에게 인간 삶의 조건, 고통, 서로에 대한 책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의학과 의료 실천에 대한 역사적 전망을 제시하며, 예술을 통해서 관찰, 분석, 공감, 자기 반영 등 의료 활동에 필수 적인 기술과 관점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마가렛 에드슨의 1999년 퓰리처상 수상작 <위트 (W;t)>는 문학 교수인 주인공이 난소암 통고를 받고난 후 최신 요법으로 치료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희곡으로서 육체의 질병을 다루는 의료와 영혼의 문제를 논하는 문학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탁월하게 드라마로 융합한 대표적인 의료인문학적 사례로 손꼽힌다.5) 2001년에는 영국 배우 에마 톰슨 (Emma Thompson, 1953- )이 이 희곡을 영화 로 제작하는 동시에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6) 이후 이 희곡과 영화는 불치의 병이나 죽음을 대면해야하는 환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하도록 할 것인가를 교육하는 교재로 사용되기 시작해서 수많은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으로 확산되었다.7)

    <위트>는 2005년 국내에서도 공연되어 흥행에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8)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아직 의료인문학적인 담론이 보편화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내재된 의료인 교재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제시한 논문이나 비평은 나오지 않았었다.9) 그러나,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의료인문학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 있고,10) 의과대학들에서 그에 대한 커리큘럼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므로.11) <위트>의 내용을 새롭게 소개하고 의료인문학적인 의미와 가치를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위트>의 대본이 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있지 않고 영화 DVD도 유통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12) 우선 내용에 대한 소개와 드라마의 구성요소들, 즉 인물, 시간, 공간, 주제에 해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와 필요성을 바탕으로 연극과 의료의 융합적인 협업을 촉발시키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으로써 <위트>의 내용을 소개하고, 극적 구조와 인물 설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며, 의료인문학 교재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와 같은 목적을 위해서 논문의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드라마의 여섯 가지 요소 중 희곡 텍스트의 핵심인 플롯, 인물, 주제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 하고자 한다. 첫째, 희곡 <위트>의 장면을 요약하면서 구성의 특징을 서술하고, 둘째, 인물, 시간, 공간에 나타난 극작술을 분석하며, 셋째, 주제에 나타난 질병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성찰을 해석해 볼 것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이 작품이 의과대학에서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간략하게 소개함으로써 추후 이 작품을 활용한 의료인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효과에 대한 후속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한다.

    1)의료인문학이란 의학연구와 교육, 그리고 의료 활동에 인문학 (어문학, 철학, 윤리학, 사학, 종교학), 사회과학 (인류학, 문화연구, 심리학, 사회학), 예술 (문학, 연극, 영화, 미술)을 접목시킨 융합 학문을 말한다. http://www.medhum.med.nyu.edu.  2)Margaret Edson,W;t,NewYork: Faber and Faber, inc. 1999, p. 37.  3)여기에서 “드라마”라는 용어는 연극, 영화, TV 등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기본 수단으로 하여 극적 상황을 표현하는 작품”을 지칭하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4)“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나타난 질병의 증례 연구로 이용되어, 질병 경험이 환자와 의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려줌으로서 임상에서 의사와 환자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대화와 몸짓을 통하여, 의사 소통의 방법을 더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한다.” 권상옥, 「의료 인문학의 개념과 의학 교육에서의 역할」, 『한국의학교육』, 제17권, 제3호, 2005, 220쪽.  5)처음 출간된 희곡대본의 제목을 로 표기한 것은 작품 안에서 인용되는 존 던의 성시(Holy Sonnets) 중 한 편에 대한 철자 표기가 극의 주제와 연결된 것을 강조하고 상징화하기 위해서이다. 이후에는 가 공동으로 사용된다. http://en.wikipedia.org/wiki/Wit_(play)  6)희곡 <위트>는 1995년 로스앤젤리스 드라마비평가상, 1997년 코네티컷 드라마비평가상을 받은 후 1998년 가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장 공연을 거듭하면서 드라마비평가상, Drama Desk, Drama League, Dramatists Guild 와 Outer Critics’ Circle등의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영화 는2001년 에미상을 비롯해서 후마니타스상, 피바디상, 베를린 국제영화제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7)그 중의 대표적인 ‘위트’ 필름 프로젝트 “Wit Film Project”는 2002년 미국내과의학회로부터 “의료 교육 혁신상”을 받은 후 의료기술과 의료인문학적인 통합 교육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져서 수많은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http://www.grothhouse.org/witfilmproject/  8)한국 공연 <위트>은 2005년 PMC에서 기획했던 <여배우 시리즈>의 첫 공연이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희준과 김운기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고 윤석화가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세 번의 연장 공연을 거칠 정도로 화제작이었다. 문학과 의학의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고 영혼의 초월적 자유라는 내용에 대해 일반 관객들은 난해하다는 반응도 보였지만 언론들은 연기력과 스타성을 아울러 갖춘 “윤석화의 힘”을 입증한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http://www.gaeksuk.com/propose/p_wjatson.asp?number=2&sy=&st=&ct=  9)국내 공연을 즈음해서 <위트>에 관련된 다음 논문 두 편이 발표되었다: 주혜랑의 「경계에서 말하는 침묵: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 효원영어영문학 제23호,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005 김현자의 석사학위논문 「육체 통제의 권력과 초극적 죽음: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4. 이들은 모두 부산대학교 영어영문과에서 발표한 것으로서 문학적 상징성이나 남성과 여성, 의사와 환자의 권력 관계에 대한 해석과 비평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0)“고려의대 안덕선 교수는 먼저 인문의료학이 배제된 의과대학의 교육 문제로 ▲질병 담론의 과학적 해석으로 인한 인간 조명 불가능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거시적 이해 결여 ▲인간과 생명현상의 다양한 이해 결여 ▲타 보건의료직에 대한 이해 부족 ▲자기 성찰적 사고 및 비판적 사고 문제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발표했다.” 김효정, 「의료인문학 국내연구, 재정문제 “걸림돌”」, 『청년의사』, 2012. 1. 11.  11)현재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학교육 인증평가 기준에 따르면 의대는 의료인문학 전임교수 1명 또는 전담교수 3명 이상을 학보해야 한다. 송수연,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의료인문학」, 『청년의사』, 2013. 5. 3.  12)국내 초연 공연 대본을 번역했던 이희준 작가에게 번역대본을 요청했지만 파일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한 에마 톰슨 주연의 영화도 한국어 자막을 갖춘 DVD으로는 공식적으로 유통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 소개되는 대본의 내용과 대사는 필자의 번역이다.

    2. <위트>의 장면 요약 및 구성적 특징: 관찰과 공감의 교차

    <위트>의 작가 마가렛 에드슨 (Margaret Edson, 1961- )은 신문 칼럼니스트인 아버지와 의료사회복지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르네상스 역사학을 전공한 후 수녀원에서 일년 간 생활하기도 했다.13) 이후 워싱턴 연구병원의 에이즈와 암병동에서 삼 년 간 일하면서 경험했던 환자, 의료인, 병원 환경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14) 에드슨은 당시 에이즈 치료 약 AZT의 임상 실험과 난소암 치료 요법을 개발하는 병동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환자들이 실험대상이 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심한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이 간병인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들이 비인간적이고 어수선한 병원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병과 싸워가는지를 관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특히 난소암을 앓는 여성 환자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존엄성과 용기를 유지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15) <위트>에는 위와 같은 작가의 성장 배경과 전공 분야, 경력, 그리고 그녀의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망라되어 있다.

    <위트>의 전체 구조는 비비안이 마치 환자 역할을 하는 것 같은 극중극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극이 시작되자 마자 비비안은 관객에게 자신이 두 시간의 공연 끝날 때에는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는데 실제 극이 끝날 때에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사이 각 장면은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고 신속하게 오가는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장면이 서로의 의미와 상징성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런 서사극적인 장치들은 관객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서사극적인 특징은 비비안이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점이다. 검사와 치료를 받는 사이, 의사와 대화하는 사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사이, 비비안은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한다.

    희곡 <위트>는 막이나 장의 구분 없이 모두 16장면으로 구성되어있고 공연은 휴식 없이 진행된다. 작가는 대본에서 각 장면의 구분을 한 줄의 선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극적 구성의 함의는 매우 복합적이다. 작가는 주인공 비비안이 난소암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병원이라는 공간과 투병과정이라는 시간 안에 의료 현장의 장면들과 문학 연구와 강의라는 학문적 행위를 치밀하게 병치시킨다. 비비안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비인격적인 치료 행위를 견디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떠받들고 있던 문학, 그 중에서도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의 세계에서 심정의 위로와 영혼의 정화를 받는다. 그녀가 육체의 극심한 고통을 거쳐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결말에 도달할수록 문학적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에서 정제된 위트가 힘을 발휘해서 그녀는 마침내 죽음과 생명 사이를 가볍게 건너가게 된다.

    지금부터 다소 길기는 하지만 <위트>의 내용을 각 장면 별로 소개하고자 한다.16) 장면 구별은 작가가 설정한 단위들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인물들의 등퇴장에 따라 장면을 나누는 ‘프렌치씬’ (French scene)의 개념을 따라 더 잘게 구분해서 설명할 예정이다.17)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장면의 핵심 내용을 표현하는 대사를 제목처럼 제시했고, 주인공 비비안이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상자 안에 넣어서 재현 장면들과 구별했다.

    2장: 암에 걸리셨습니다(You have cancer).

    비비안, 저명한 종양전문가 켈리키언박사가 난소암을 통고하고 치료과정을 설명하는 동안 그가 사용하는 의학 용어들을 해체하고 조립하며 대항하듯 독백을 내뱉는다. 켈리키언, 고도의 화학요법을 받아보라고 제안하면서 그것이 지식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2장-2: 지식에의 중요한 기여(Significant contribution to knowledge)

    28년 전 애쉬포드교수 연구실. 애쉬포드교수는 스물 두 살인 학생 비비안이 돈의 성시 6편에 대해 쓴 에세이의 오류를 비판하며 이런 식으로 공부하려면 세익스피어나 읽으라고 말한다.

    애쉬포드 교수는 비비안이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라고 표기한 것을 “And death shall be no more, comma, Death thou shalt die.”로 고쳐주며 철자법에서 오는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직 한 호흡, 즉 쉼표가 인생과 영원한 생명을 가르는 것이지. 아주 간단해. 그런데 원래의 부호대로 쉼표를 붙이면 죽음은 무대 위에서 느낌표로 존재하지 못해. 쉼표, 그리고 정지.…생명, 죽음, 영혼, 신, 과거, 현재는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닌 거야. 세미 콜론이 아니라 쉼표인 거라고.”

    2장-3: 단순한 인간적 진리, 타협불가능한 학문적 기준, 그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Simple human truth, uncompromising scholarly standards? They’re connected?)

    애쉬포드 교수 퇴장, 혼자 남은 비비안, 교수의 말들을 되뇌다가 지식에 의미있는 기여라는 켈리키언 말을 기억하며 최신 치료 요법 받기를 동의한다.

    3장: 난, 간단히 말하자면, 권력이에요(I am, in short, a force).

    간호사 수지가 비비안을 휠체어에 태우고 검사를 받으러 다닌다. 비비안은 엑스레이 기사가 담당 의사 (doctor)가 누구냐고 묻자 자신이 박사 (doctor)라며 자신이 영문학을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힘 (force)이라고 말하지만 검사관은 관심이 없다. 다른 기사가 이름을 물어볼 때 비비안은 자신이 “베드포드의 공작부인 루시”20)라고 농담을 하지만 기사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3장-1 그게 내 인생 역사 전부예요(That’s all there is to my life history).

    진찰실, 켈리키언의 제자 제이슨이 비비안의 병력(病歷) 문진(問診)과 산부인과 촉진(觸診)을 한다. 제이슨은 학부 때 비비안의 강의를 수강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후 비비안의 나이, 부모의 사망 원인, 가족 관계, 건강 상태, 생리 현상, 생활 방식 등에 대해 기계적으로 질문한다. 제이슨이 비비안의 국부검진을 위해 간호사를 부르러간 사이 비비안은 누워서 존 던의 “죽음이여 자만하지 말라…” 시를 암송한다. 제이슨, 비비안에게서 치명적인 징후를 발견하고 도망치듯 퇴장한다.

    4장-1: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You okay all by yourself here)

    비비안, 자신의 토사물 측정을 위해 수지를 부른다. 수지, 비비안에게 방문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기를 부르라고 말한다. 비비안, 수지의 친절한 태도를 불편해한다.

    5장-1: 저들이 날 책처럼 읽어요. 한땐 내가 가르쳤는데 이젠 내가 가르치는 대상이 되었네요(…they read me. Once I did the teaching, now I am taught).

    켈리키언과 제자들의 회진 시간, 켈리키언의 지시를 받은 제이슨이 온갖 전문용어를 쓰면서 비비안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비비안은 의사집단에서 보이는 복종, 아첨, 위계질서, 감춰진 경쟁의식 등이 대학원 세미나와 같다고 관객에게 지적하며 “그 때는 내가 가르쳤지만 이제는 내가 그들의 교재가 되어 읽히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6장: 소-포-리-픽, 무슨 뜻이예요(Sop-or-i-fic. What does that mean)?

    어린 비비안, 5세 생일 선물로 받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플롭시 토끼이야기』22)를 읽다가 상추를 많이 먹으면 최면증 (soporific)에 걸린다는 구절을 보고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에게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

    7장: 암의 역설, 존 던의 역설(The paradox of cancer, the paradox of John Donne).

    비비안, 퇴원했다가 고열로 병원 응급실로 들어오자, 수지가 체온, 맥박, 호흡을 체크하며 안심시킨다. 제이슨 등장, 잠이 덜 깬 채 당장 격리 입원시킬 것을 지시. 수지, 약 투여량을 줄이라고 부탁하지만 제이슨은 비비안은 그 치료를 받기에 충분히 강하다며 감량하기를 거부한다.

    7장-1: 휴가라고 생각하시죠(Think of it as a vacation).

    켈리키언, 마스크 쓰고 등장, 비비안에게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고 안심시킨 후 격리 치료를 휴가로 여기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고 떠난다.

    7장-2: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지금 내 건강에 치명적이죠… 특히 의료 전문가들(…every living thing is a health hazard to me… particularly health-care professions).

    제이슨, 환자를 보기 위해 번거롭게 무장하는 것을 불평하며 비비안에게기 분이 어떠냐고 묻지만 오한을 호소하는 비비안의 상태는 살피지 않은 채 계속 토하라고 지시하고 떠난다.

    8장: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 너무 간단하지. 의심스러울 만큼 간단해(… only to accept God’s forgiveness. It is very simple. Suspiciously simple).

    비비안 절정기 때의 강의실, 학생들에게 17세기 초반 형이상학파 시인들 중에서 위트를 가장 탁월하게 사용했던 시인은 존 던이었다고 설명한다. 비비안은 존 던이 위트를 사용해서 어떻게 생명, 죽음, 신과 같은 거대한 것들을 이야기하는지 말한 후 성시 5편을 낭송한다. 무대에 스크린이 내려오고 시 전문 (全文)이 비비안의 몸에 영상으로 비쳐진다.

    낭송을 마친 비비안, 이 시는 공격적 지성, 경건한 멜로드라마, 그리고 놀라운 최후의 한 방이라고 정리한다. 그녀는 묻는다. 첫째 단락에서 그토록 뽐내던 지성은 어디로 갔는가? 둘째 단락에서 쏟아져 나오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가? 이 시의 화자는 결국 신의 용서를 믿을 수 없어서 바위 틈으로 기어들어가 숨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교리에 의하면 모든 죄인에게는 용서가 베풀어지기 때문에 화자는 신의 심판으로부터 숨을 필요가 없이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너무 단순해서 믿기 어려운 용서의 역설을 설명한다.

    8장-1: 난 아직 가고 싶지 않단 말이야(I don’t want to go now)!

    수지, 초음파 검사를 하라는 제이슨의 지시가 있었다며 비비안을 데리러 온다. 비비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며 검사를 완강히 거부하지만 결국 휠체어에 앉아서 검사실로 이동한다.

    10장: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나(Do you ever miss people)?

    비비안, 이동식 변기를 옆에 놓고 토한다. 제이슨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습관적 인사와 함께 토사물 배설량을 체크한 후 신장 상태 확인에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비비안이 설명이 단순해서 좋다고 하자 제이슨은 의대에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수업이 시간 낭비이었다고 불평한다. 비비안은 제이슨에게 환자들이 죽으면 그리울 때가 있는지, 또 환자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는 뭐라고 말해주는지 묻는다. 제이슨,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배설에 더 힘쓰라며 퇴장한다.

    11장: 위트 뒤에 숨는다고(Hides behind wit)?

    전성기 때 비비안의 강의실, 전문 지식과 엄격한 태도로 무장한 비비안이 학생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에게 싫으면 학교를 그만두라고까지 면박을 준다.

    다른 학생이 왜 존 던은 모든 것을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는지 질문하면서 자기는 던이 신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 그 복잡한 언어와 문학적 장치 속으로 숨는 것 같다고 말한다. 비비안, 학생의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하는 대신 정확한 발음에 주의하라며 수업을 끝낸다.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다가와 외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페이퍼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비비안 냉정하게 거절한다.

    12장: 날 끝까지 돌봐 줄 거죠(You’re still going to take care of me, aren’t you)?

    새벽 4시, 잠 못 이루는 비비안, 수지를 호출하자 수지, 비비안을 ‘sweetheart”라고 부르며 등장.

    비비안, 두려움을 호소하며 운다. 수지, 비비안과 아이스케이크를 나눠먹으며 비비안을 위로하면서 비비안의 상태에 대해 쉽게 설명한 후 심장이 멎을 때 비비안이 미리 해놓을 수 있는 선택들을 알려준다. 비비안, 수지와의 솔직하고 긴 대화 끝에 의학적으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을 것을 (DNR, Do Not Resuscitate.) 결정하고 수지에게 끝까지 자신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13-1 베어링 박사님, 아프세요(Dr. Bearing, are you in pain)?

    수지, 비비안에게 진통제 주입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켈리키언과 제이슨,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비안을 보며 아프냐고 묻는다. 수지, 비비안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켈리키언과 언쟁하지만 켈리키언은 수지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비안에게 걱정 말라며 퇴장한다.

    14장: “최면”은 “졸리다”는 뜻이야(“Soporific” means “makes you sleepy.”)

    수지가 비비안에게 모르핀을 놓고 있다. 비비안이 이 주사가 최면 (soporific)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단어 뜻을 모르는 수지에게 설명해주자 수지는 자신의 무지함을 웃어넘기며 비비안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비비안, “난 선생님이니까”라며 같이 웃는다. 비비안 잠에 빠져든다. 긴 침묵.

    15장: 인생의 의미 같은 쓰레기를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 미쳐버릴 거야 (You can’t think about that meaning-of-life garbage all the time or you’d go nuts).

    제이슨과 수지, 비비안에게 도뇨관을 삽입하고 있다. 제이슨, 수지에게 비비안이 얼마나 훌륭한 학자인지, 얼마나 업적이 많은지, 얼마나 완벽한 교수이었는지 말해준다. 수지는 비비안이 의식이 없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모든 시술절차를 설명한다. 제이슨은 비비안의 경우처럼 치료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환자들이 많아서 연구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제이슨은 17세기 시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런 감상적인 것들은 잊어버려도 좋다는 사실뿐이었다며 인생의 의미 같은 쓰레기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면 미쳐버릴 거라고 말한다. 제이슨, 비비안의 맥박을 체크한 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나간다.

    16장: 이것 봐. 영혼에 대한 작은 알레고리(Look at that. A little allegory of the soul).

    바람 불고 추운 날, 80세 애쉬포드교수, 비비안의 소식을 듣고 병실로 찾아 온다. 비비안, 애쉬포드교수를 보자 통증을 호소하며 운다. 애쉬포드, 비비안 침대에 함께 누워서 안으며 존 던의 시를 읊어줄까? 묻는다. 비비안이 싫다고 하자 증손자에게 주려고 산 책 를 읽어준다.25) 끊임없이 도망가려는 토끼를 엄마가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애쉬포드는 “영혼에 대한 작은 알레고리, 신은 네 영혼이 어디 있든지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지”라며 비비안에게 속삭인다. 비비안은 은사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애쉬포드는 <햄릿>에서 호레이쇼가 죽은 햄릿을 향해 하는 대사를 낭송하고 퇴장한다.26)

    16장-1 그녀는 연구대상이란 말이야(She’s Research)!

    제이슨, 병실에 들어와 차트를 체크하며 묻는다.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 반응이 없는 비비안을 보고 비상 구급팀을 호출한다. 수지, 비비안은 인공연명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제이슨은 “그녀는 연구대상이야!”라고 소리치며 응급처치를 계속한다. 수지가 켈리키언의 지시를 적힌 차트를 보여주자 제이슨은 실수를 인정하며 응급팀을 중단시킨다. 수지가 그들을 비비안에게서 밀쳐낸 후 담요를 벗겨내자 비비안, 조용히 일어나서 모자와 환자 인식 팔찌, 그리고 환자복을 하나씩 벗어 바닥에 떨어뜨리며 마침내 알몸이 되어서 빛을 향해 걸어간다. 조명 아웃.

    이상에서 다소 길지만 <위트>의 내용을 장면별로 요약해보았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희곡 <위트>에서 장면 구성의 특징은 서사극적 장치, 하이퍼텍스트적인 서술, 그리고 상호텍스트적인 병치의 세 가지로 나타난다. 작품 전체에는 비비안이 겪는 질병의 체현과 치료의 체험이 교차하면서 그 과정을 바라보고 언급하는 그녀의 시선이 들어있고 그녀 일생의 연구 과제이자 업적 인문학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는 통찰이 병치되어 있다. 그와 같은 내용과 의미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작가는 감정이입을 추구하는 사실주의적인 재현과 이성적 분석을 제시하는 서사극적 기법을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이 겪는 상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토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질병을 체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평생 지식으로 연구해온 17세기 형이상학적인 시가 어떻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해석되는지를 관객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비비안의 몸과 정신, 육체의 질병 과 영혼의 구원, 그리고 의료와 문학의 상호텍스트적인 의미가 서로 상승된다.

    「육체 통제의 권력과 초극적 죽음: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라는 논문에서 김현자는 비비안이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행위는 병원이라는 권력 공간에서 물질화되거나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는 그녀만의 저항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즉, “권력의 작동 위로 행해지는 ‘외부적 화자로서의 그녀의 주석달기와 ‘되받아 말하기’로서 주체로 서고자 하는 능동적 몸짓이라는 것이다.28) 이런 비비안의 하이퍼텍스트적인 서술에는 자신이 겪는 치료 경험과 의사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 육신의 질병을 통해 깨닫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자성적 회한, 존 던의 시에 내재된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갈망과 아이러니 등이 섬세하게 들어있다.

    13)에드슨은 미국의 명문 여자사립대학인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1991년 <위트>의 초고를 완성한 후에 조지타운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유치원 교사를 거쳐 현재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위트>는 현재까지 그녀의 유일한 작품이다.  14)“나는 병동에서 말단 사무원으로 일했는데 아주 미미한 일이었지만 마치 무대감독같이 모든 액션의 중심에 있었지요. 내 위치는 너무 하찮은 것이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의료인들의 행동들과 그것에 반응하는 환자들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어요.” http://www.pbs.org/newshour/bb/entertainment/janjune99/edson_41-4.html  15)http://neboliterature.mrkdevelopment.com.au/poetry/donne/Comparison-Donneand-Edson's-Wit.html  16)이 부분이 전체 논문에서 양적으로 편중되는 점은 있으나 작가의 장면 구성이나 인물 설정이 워낙 치밀하고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모든 장면을 다 요약하기로 한다.  17)프렌치 씬 (French Scene)은 연극의 장면 구분을 인물들의 등퇴장으로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다. 무대 위 인물의 등장과 퇴장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것 자체가 드라마의 진행에 기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18)이 대사는 세익스피어 초기 로맨스극인 <페리클레스>에서 시간의 흐름을 담당하는 가우어가 5막에서 하는 말이다. 가우어는 주인공 페리클레스가 겪을 사건을 말로 해설하거나 마임으로 보여주면서 그리스비극의 코러스처럼 극을 진행시키며 관객들에게 전지적(全智的) 시점을 제공한다.  19)John Donne, The Complete Poetry and Selected Prose of John Donne, ed. By Charles M. Coffin, New York: Modern Library, 2001. P. 262. 존 던, 김선향 편역, 『존 던의 거룩한 시편』 청동거울, 2001, 52-53쪽. 본 논문에서는 존 던의 원문은 원서에서 인용하고, 번역문은 김선향 편역본에서 인용했다.  20)Lucy, Countess of Bedford (1581-1627), 영국 엘리자베스여왕과 제임스왕 시대 연극, 문학, 음악등의 예술가들에게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후원자. 존 던의 중간시기 작품 대부분이 이 공작부인에게 헌정된 것이라고 한다. 존 돈의 딸 Lucy의 대모이기도 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http://www.luminarium.org/encyclopedia/lucyharington.htm  21)세익스피어 <햄릿> 2막 2장에서 폴로니어스가 햄릿이 실성한 사실을 거트루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며 하는 대사.  22)Beatrix Potter (1866-1943), 영국의 동화작가이자 삽화가. The Tale of the Flopsy Bunnies 시리즈로 유명하다.  23)존 던, 앞의 책, 50-51쪽.  24)존 던, 앞의 책, 43쪽.  25)1942년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이 쓰고 클레멘트 허드가 삽화를 그린 동화책.“옛날에 도망가고 싶어하는 작은 토끼가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죠. ‘나 도망갈거야.’ ‘너 도망가면 내가 뒤쫓아 갈 거야. 왜냐하면 넌 나의 소중한 아기토끼니까.’ ‘엄마가 쫒아 오면’ 토끼가 말했어요. ‘나는 물고기가 되어서 멀리 헤엄쳐 갈 거야.’ ‘네가 물고기가 되면’ 엄마가 말했어요. ‘나는 어부가 되어서 널 낚을 거야.’ ‘엄마가 물고기가 되면,’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난 산 위의 바위가 되어서 엄마보다 높이 있을 거야.’ ‘네가 산 위의 바위가 되어서 나보다 높이 있으면,’ 엄마가 말했어요. ‘난 등산해서 네가 있는 곳까지 올라갈거야.’ ….’엄마가 등산해서 날 찾아오면’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난 아기가 되어서 집으로 도망갈 거야.’ ‘네가 아기가 되어서 집으로 도망가면,’ 엄마가 말했어요. ‘난 네 엄마가 되어서 널 내 팔 안에 넣어 안아 줄 거야.’ ‘에잇’ 토끼가 말했어요. ‘그럼 그냥 지금처럼 엄마의 아기 토끼로 있을래.’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어요. ‘당근 먹자,’ 엄마 토끼가 말했어요“ (필자의 번역과 요약) http://drbristow.blogspot.kr/2006/07/runawaybunny.html  26)여기에서 애쉬포드교수가 비비안에게 호레이쇼의 대사를 속삭이는 것에 대해 Jacqueline Vanhoutte는 햄릿처럼 비비안도 회의적이고 이성적인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하다가 결국 “우리의 끝을 만들어가는 신이 있다 there’s a divinity that shapes our ends” (햄릿, 5.2.10.)라는 고백으로 죽음을 넘어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Vanhoutte, Jacqueline, “Cancer and the Common Woman in Margaret Edson’s W;t,” Comparative Drama 36. 3-4, 2002, p. 401.  27)Now cracks a noble heart. Good night, sweet Prince. And flights of angels sing thee to thy rest; Why does the drum com hither? Shakespeare, Hamlet, Act. 5, Scene 2  28)김현자, 「육체 통제의 권력과 초극적 죽음: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 부산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4, 5쪽.

    3. <위트>의 인물, 공간, 시간: 병치와 대조

    <위트>의 장면 구성이 재현과 관찰을 오가면서 질병과 치료 현장을 목격하게 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개인적인 고통을 공감하게 하는 시선이 교차하도록 한다면, 등장 인물의 설정에서는 직업과 젠더에 따라 이분화된 병치와 대조가 두드러진다. 작가가 대본에 표기한 인물 목록에 따르면 모두 6명의 주요 캐릭터(비비안 베어링박사, 하비 켈리키언박사, 제이슨 포스터의사, 수지 모나핸 간호사, E. M. 애쉬포드 박사, 비비안의 아버지 미스터 베어링) 와 다수의 보조 인물들(검사실 기사들, 의사들, 학생들, 구급팀)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중 켈리키언박사와 비비안의 아버지를 1인2역으로 하고 보조 인물들은 네 명의 배우들 이 일인다역으로 소화하도록 하라고 명기하고 있다.

    <위트>의 주요 인물들은 젠더와 전문 분야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항대립적으로 구분된다. 아래의 표를 보면 비비안과 켈리키언이 50세 동갑, 수잔과 제이슨이 28세 동갑으로 설정되어 있다. 희곡에서 비비안이 20세 때 심장마비로 별세한 것으로 언급되는 아버지가 생존해있었다면 애쉬포드교수와 동갑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대조를 표면적으로 보면 작가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인물들을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도식적으로 설정한 것 같이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조금만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일 수도 있다.

    비비안과 켈리키언은 문학과 의학에서 각자 지식을 권력으로 여기는 쌍생아 같다. 인생의 진리와 영혼의 구원을 노래한 시들을 연구하는 비비안은 그 시들에 담겨있는 고통과 환희를 느끼지 못한다. 시는 그에게 쪼개고 붙이고 분석하는 학문의 대상일 뿐이다. 육체의 고통과 죽음을 겪는 환자들을 대하는 켈리키언에게는 환자를 치료하고 의학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열정과 책임감은 있지만 환자를 향한 연민이나 공감의 시선은 없다. 환자는 그에게 실험 사례이며 질병은 그에게 싸워서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켈리키언과 비비안의 젊은 시절을 비춰주는 인물이 제이슨이다. 그에 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쓸데없는 짓이고, 환자와 소통하도록 배우는 시간은 낭비이며, 심지어 한때 존경했지만 이제 자신의 환자로 죽어가는 은사도 그에게는 연구 대상일 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애쉬포드교수 앞에서 주눅들면 서도 대학자였던 스승을 동경하며 그녀에게 인정받는 것을 인생의 보람으로 여겼던 비비안의 모습을 상기시켜준다.

    전문 분야로 보면 의학/간호학 영역과 문학/언어 영역으로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 그 구분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육체/의학/지식과 정신/문학/공감으로 대조된다. 종양학의 권위자 켈리키언박사와 의학계의 성공 사다리에 집착하는 제이슨이 사제지간인 것처럼 문학연구가의 대표로는 가장 난해하다는 존 던의 시를 일평생 연구한 애쉬포드교수와 학자의 절정기에 이른 비비안도 사제지간이다. 켈리키언은 최강의 치료 요법을 선택하는 것을 망설이는 비비안을 설득하기 위해서 지식의 진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의 수제자 제이슨은 암으로 죽어가는 비비안 앞에서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이나 심리적인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암덩어리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열광적으로 토로한다. 학창시절 그토록 경외하던 교수 비비안도 의사인 자신에게 이제는 한낮 연구대상일 뿐이다. 애쉬포드는 존 던 연구에서 철저한 원칙으로 제자를 숨막히게 압도하고, 그녀의 수제자 비비안은 어린 학생들에게 올바를 지식과 태도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이 선생에게 갈망하는 친절과 배려를 거부한다. <위트>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을 보면 고도의 전문성을 소유함으로써 권력적 지위를 쟁취한 자들은 모두 치유와 교육이라는 자신의 분야에서 필요한 진정한 소통과 공감은 결여된 채 지식 전문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뿐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젠더와 사회적 역할의 구분 이외에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성향도 이분화시키고 있다. 남성이자 의학계의 인물들은 대화 방법에서 직설적인 선언과 통보라는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익숙하며, 환자의 몸을 물리적으로 진단하고 기술적으로 처방하는 것을 지향하면서 그들의 일터인 병원을 전투적 공간으로 꾸려간다. 그에 비해 여성이자 문학 연구에 종사하는 인물들은 상대방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고통을 위로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면서 그들이 가는 곳을 안식처로 바꾼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수지와 비비안은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에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지의 경우는 의학 분야에 속하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의사를 보조하는 직업에 속한 여성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인물이 된다. 그녀는 오히려 남성전문가들에 의해 무시당하면서도 환자와 마음으로 소통하고 그들을 돌보는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에 비해 주인공 비비안의 경우, 여성이자 문학에 속한 인물이긴 하지만 고도로 지적인데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권위적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방적인 소통방식으로 학생들을 억압하는 냉정한 권력형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 문학은 삶을 이해하기 위한 성찰의 수단이 아니라 지적 성취의 대상일 뿐이다.

    <위트>의 드라마의 진행은 이렇게 명확하게 대비되는 인물들 속에서 비비안이 자신이 속한 전형적인 집단에서 벗어나 지식과 권력을 하나씩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각성의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육체의 질병, 수치와 모멸감을 견뎌내야 하는 치료 환경,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간호사 수지의 보살핌이다.

    수지는 존 던은 고사하고 어려운 단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평범한 직업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환자인 비비안의 투병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두려움을 완화시켜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비비안을 만져주고 비비안과 함께 아이스케이크를 먹으며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누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어도 개의치 않고 함께 웃어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비비안이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자신의 최후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병의 상태와 선택 가능성을 정직하게 알려준다. 여성/간호사라는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수지가 친절한 돌봄과 연민어린 공감을 통해서 비비안의 고독한 아성을 허물고, 죽음에의 두려움을 위로하며, 폭력적인 의료행위로부터 보호하면서 죽음의 입구까지 동행한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핵심 아이러니 중의 하나이다.

    등장인물들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작가가 사용한 병치와 대조 기법은 언어에 대한 선택과 장면의 연결에서도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언어에 대해서는 2장에서 비비안과 켈리키언이 환자와 의사라는 불평등한 관계로 처음 만날 때 잘 드러난다. 켈리키언은 비비안이 난소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사무적으로 선고한 후에 온갖 의학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비비안의 상태와 치료방법을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아직 환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교수/학자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비비안은 켈리키언이 쏟아놓는 의학 용어들을 언어적으로 해체하고 문학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마치 언어로 결투를 하는 것 같이 비장하고 비판적으로 대항한다. 하지만 환자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켈리키언을 향해 정면으로 대꾸하지 못하고 관객에게 독백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극이 진행될수록 비비안의 언어는 켈리키언의 언어에 압도된다. 이 불가피 한 상황에서 비비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전략은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얼핏 보면 문학의 언어가 의학의 언어에 의해 덮어쓰기를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비안의 질병이 악화되고 죽음이 가까이 올수록 의학의 언어도 곧 힘을 잃어버린다.29) 그런데 아직 두 가지 언어가 남았다. 수지가 비비 안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언어, 비비안의 의학적 상태와 선택을 의사들과는 달리 일상적인 말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언어, 즉, 관계의 언어, 생활의 언어, 공감의 언어이다. 또 하나는 비비안이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존 던의 시의 언어들이 생명의 언어로 연마되는 점이다. 존 던의 시들이 비비안의 연구대상에 불과했을 때에는 그 시의 메마른 구조, 난해한 아이러니와 역설, 율법적인 철자에 불과했지만 비비안이 질병을 통해서 그 시들을 자신의 존재론적인 회한 안에 끌어들일 때 존 던의 언어들은 수사적인 껍질을 깨고 죄, 용서, 구원, 은혜, 영원한 생명 등을 이야기하는 영혼의 언어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비비안이 5살 때 처음 언어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된 단어 “soporific”을 배우는 6장은 후에 수지가 비비안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으면서 그 단어를 배우는 14장과 상응한다.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비비안을 일평생 이끌었던 욕망이자 성취였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진입하면서 비비안은 자신에게 모르핀을 투여하는 수지가 알아야 할 단어를 가르친다. 하지만 수지는 라틴어에 어원을 둔 이 어려운 용어를 모른 채 일상적인 언어 sleepy로 동어반복을 한다. 그리고 비비안이 같은 뜻임을 설명해주자 스스럼없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웃으며 고백한다. 그것은 교육자로서의 비비안에게 모처럼 큰 기쁨을 주는 장면이자 비비안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언어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순간이다. 비비안의 질병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수지의 친절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이렇게 친밀하게 만나 마지막 진액을 토하듯이 지식의 과잉을 덜어내고 결핍을 채울 수 있었을까?

    장면의 병치와 대조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갈등이나 드라마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예로는 2장과 3장의 병치, 5장과 5장-1의 대조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2장에서 켈리키언박사가 비비안에게 난소암을 통고하는 장면은 곧 이어 3장으로 연결되면서 28년 전 애쉬포드교수가 비비안에게 존 던 시에 대한 철자법과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장면과 바로 연결된다. 작가는 두 장면에서 같은 책상을 사이에 놓고 켈리키언과 비비안, 애쉬포드와 비비안을 차례로 위치시킴으로써 육체의 질병에 대한 의사의 충격적인 선고에 대해 느꼈을 비비안의 충격과 학문적 미숙함에 대한 지도교수의 질책으로부터 받았을 심리적인 억압을 병치시킨다. 관객에게는 두 장면에서 비비안이 느꼈을 충격의 무게가 각자 동일하게 느껴지면서 또한 누적되는 효과를 제공한다.

    5장에서는 비비안이 홀로 침대에 누워서 병원의 지루함과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간결함의 용기에 대해 말한 후 곧이어 마치 서커스 사회자같이 의사들의 회진 장면을 시작하게 해서 병원의 번잡한 일상으로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장면의 병치는 조용함과 부산스러움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장면 흐름에 리듬감을 줄 뿐만 아니라 문학의 성찰적 시간과 의료의 실천적 행동들을 대비시킨다. 비비안은 젊은 레지던트들이 켈리키언의 인정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하며 애를 쓰는 장면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원 세미나를 연상한다. 그 가운데에서 제자들의 굼뜬 생각과 틀린 대답에 답답해하는 지도교수로 서의 심정을 켈리키언과 눈짓으로 나누며 비록 자신은 환자로서 병상에 누워 있고 켈리키언은 의사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여전히 그와 같은 권력 적인 위치에 자신을 대입시키려고 한다.

    <위트> 안에 담긴 시간과의 중첩과 공간의 병치는 위와 같은 장면 구성에 더 큰 상징성을 제공한다. 이 작품의 공간은 크게 의료 공간인 병원과 학습 공간인 대학교가 있다. 의료 공간은 켈리키언의 사무실, 각종 검사실, 중환자실, 입원실 등이고 학습 공간은 애쉬포드의 연구실과 비비안의 강의실이다. 의료 공간은 검사하고 실험하고 진단하는 과학적 지식의 공간이자 치료의 공간이다. 학문 공간은 연구하고 사색하고 가르치는 교육 공간이다. 극이 시작되면 이 두 종류의 공간의 병치는 두 분야가 얼마나 다른지, 또한 육체와 정신의 거리는 얼마나 먼지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는 두 공간 모두 의학과 문학에 있어서 지식의 권력 관계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병원 공간은 비비안에게 학습 공간이 된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공간이 육체의 치료에는 실패하지만 오히려 환자로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새 언어를 배우며, 자신의 과거 모습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타인의 친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과 공감, 그리고 자아 성찰을 배우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 작품에는 또한 세 겹의 시간이 있다. 첫째, 연극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두 시간, 그녀가 관객을 맞이해서부터 관객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넘어가는 데까지 허락 받은 시간으로 극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다. 둘째, 비비안이 암 선고를 받고 치료 과정을 겪는 12개월간의 시간으로 극중에서는 각 장면이 현재로 제시된다. 그 사이 그녀는 건강한 모습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육체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셋째, 그녀의 기억 속 시간이다. 5살 때 동화책을 읽으며 아버지에게 새로운 단어를 배우다가 경이로운 언어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순간부터 대학생 때 존 던의 시에 대해 지도교수에게 개인 지도를 받던 어느 봄 날, 그리고 권위 있는 교수가 되어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그 시를 자신만만하게 강의하던 시점을 오가는 과거의 시간이다.30) 공연 도중 이 모든 시간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비비안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고통, 그리고 존 던 시에 대한 묵상에서 길어 올린 구원에의 믿음으로 영원한 미래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작가 에드슨은 등장인물, 공간, 시간에서 문학과 의료, 남성과 여성, 지식과 공감 등의 대조와 병치를 뚜렷하게 설정해놓았다. 이들의 이항대립적인 관계는 처음엔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설치하고 극적 갈등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상호보완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서로 대립적인 인물들은 실은 서로의 연약함과 일그러 짐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각자가 지닌 결핍과 과잉은 상대방을 보완할 수 있는 돌봄과 학습의 도구가 되게함으로써 희곡텍스트의 표상적 요소들이 심층적 의미망을 드러내며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비비안의 질병이 심화될수록, 그리고 그녀가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각 요소들은 대조와 병치를 넘어 변증법적인 통합의 단계로 승화되는 것이다.

    29)<위트>의 언어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제물이면서 동시에 대안인데 고통과 죽음 앞에서 점점 축소되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Rimmon‐Kenan, Shlomith, “Margaret Edson’s Wit and the art of analogy,” Style, Northern Illinois Univ., Dekalb, 40:4, winter 2006.  30)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체험을 관객에게 말하는 서사의 중첩은 이 작품에 지적인 거리와 비평적 시선을 제공한다. Katherine Margaret Rossiter, “Undoing Wit: A Critical Exploration of Performance and Medical Education in the Knowledge Economy,” Diss. University of Toronto, 2009. P. 148.

    4. <위트>의 주제: 죽음의 경계를 넘는 위트의 힘

    <위트>의 독창성은 육체의 질병과 죽음에서 안식과 생명으로 옮겨가는 경계를 비장하고 심각한 철학이나 교리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틀고 조롱하는 역설과 아이러니로 웃으며 통과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천진한 유희로 근엄한 질서를 무력화시키는 역설,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무너지게 하는 전복 (顚覆)의 아이러니,31) 웃음으로 눈물을 무색하게 만드는 위트의 힘이다.32) 에드슨은 객관적 관찰과 정서적 공감이 교차하도록 구성한 장면들, 이항대립적으로 대조되고 병치되지만 오히려 상호조응적이고 변증법적 통합을 이뤄내도록 창조한 극중 인물과 언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공간, 시간 안에 역설과 아이러니를 유기적인 그물망으로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러한 위트의 원천으로 존 던의 성시들을 인용한다. 그녀는 또한 존 던의 “시에 대해 적절한 철자법까지 세밀하게 “해부”하는 작업은 의학 연구자들이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지식의 습득 과정으로서의 문학과 의학의 유사성을 연결한다.

    주인공 비비안 베어링교수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 (John Donne, 1572-1631) 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존 던은 가장 난해하다는 형이상학파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법률가이자 영국 성공회 목사로서 일평생 소넷, 애가 (Elegies), 성시, 라틴어 번역, 서한집, 추도사, 노래, 풍자와 설교집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작품을남겼다.33) 그는 왕성한 저술활동으로도 유명하지만 당시 종교적인 격동기에서 겪은 혼란과 개인적 삶의 고난을 처절하게 겪으면서 고통을 역설과 아이러니로 승화시킨 위트로 더욱 유명하다.

    돈의 생애를 점철한 것은 죽음이었다.34) 당시 런던에서는 1만5천명이 흑사병으로 죽었고, 길거리는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공개 처형당한 시체들이 널려있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동생이 카톨릭 신부를 은닉시켰다는 죄목으로 옥사를 했고 후에 12세 연하의 아내와의 사이에 난 12명의 아이들 중 2명이 사산이었고 3명은 1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의 아내 또한 33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이런 불행 속에서 그는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성시들을 썼고, 위암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으면서 경험했던 반응을 메모했다가 “인간은 섬이 아니다: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를 써서 그가 겪은 질병의 고통을 영적인 묵상으로 승화시켰다.35)

    작가 에드슨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진행된 미국 공영방송 (PBS)과의 인터뷰에서 왜 주인공을 가장 난해하다는 고전시인 연구가로 설정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작품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문학에서는 고도의 지식을 구축했지만 갑자기 자신의 기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지게 되어 다시 학생처럼 새롭게 자신과 인생에 대해 배워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라고 정리하면서 이 작품의 핵심을 “사랑과 지식(love and knowledge)”라고 말한다.36) 작가는 또한 이 작품에는 지식에 대한 것 이상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구원에 대한 것인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놀랍다며 “은혜”는 당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신을 경험하는 것인데 베어링박사가 궁극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덧붙인다.37) 에드슨은 사람 사이의 하모니가 삶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상태, 신과의 관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초반에 인물들을 공감할 수 없도록 묘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주인공 비비안이 갖고 있는 학자로서의 능력과 권위를 지지하기 위해 선택한 존 던의 성시는 희곡 <위트>의 의미와 상징성, 그리고 아이러니에 생명을 불어넣는 심장과도 같다.38) 에드슨은 비비안이 난소암을 통고받는 장면에서부터 존 던의 성시들을 인용하고 병치시킴으로써 고난과 질병으로 점철 되었던 던이 불행한 생애 속에서 연마한 구원에의 갈망과 위트를 비비안이 겪는 투병의 여정에 대입시킨다. 최고의 학자가 죽음을 마주 대하고 나서야 일생 지식의 대상으로만 연구하던 존 던의 시 안에 감추어진 인생에 대한 진실과 위트가 몸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비안이 “숨어들어가는” 위트는 그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부조리한 상황과 존재론적인 두려움에 대해 거리를 두게 하는 장치이다.39) 결국 육체의 쇠락을 대가로 찾아낸 실존적 진리가 그녀를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나게 해서 진정한 생명으로 나간다는 아이러니와 역설이 돋보이도록 하는 설정이다.

    이 작품의 중심적인 역설은 암이라는 질병과 그것을 다루는 의료인들이다. 제이슨은 왜 심장외과를 선택하지 않고 암연구를 선택했느냐의 비비안의 질문에 자신은 처음부터 암에 매료당했다고 말한다. 그는 암을 경이로운 존재로 설명하면서 암으로 죽어가는 비비안 앞에서 암의 가장 큰 매력을 끊임없이 번식 하는 “배양에서의 불멸성 immortality in culture”라며 흥분한다. 암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그것을 몸속에 보유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무한히 번식하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를 유한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암의 번식을 종식시키기 위해 최대의 약물 요법을 쓰지만 그 치료법은 오히려 환자를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다. 비비안은 “나를 위한 치료가 내 건강을 위협하네요(My treatment imperils my health).”라며 암보다도 치료가 더 위험한 역설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40) 비비안은 병을 치료해줘야 할 의료 전문가들이 오히려 환자인 자신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한탄하면서 존 돈이라면 이런 역설을 즐거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트>의 또 하나의 역설은 육체와 영혼, 죄와 용서,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 항대립적인 요소들을 대조하고 병치하면서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의미망이다. 육체의 질병을 통해서 영혼의 상함을 드러내고, 육체의 소멸을 통해서 영혼의 강건함을 회복하는 과정, 육체의 죽음을 넘어가야 영원한 생명에 도달한다는 아이러니와 역설은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실존이기도 하다. 존 던은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죄의 고백과 용서, 심판과 은혜, 저주와 구원의 차이, 영혼의 치료가 있다고 전제하며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신이 직접 우리를 수술해야 가능한 과정이라고 설파한다. 비비안은 학문의 대상으로 존 던의 시를 연구할 때에는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질병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위트>의 가장 심오한 아이러니는 동화책에 들어있다. 애쉬포드교수가 증 손자 생일선물로 산<도망가는 토끼>를 비비안에게 읽어주면서 감탄하는 말 “영혼의 알레고리”는 그 책에 대한 언급이면서 동시에 <위트> 전체를 축약하는 펀치 라인이다. 일생을 존 돈 연구에 바쳐 일가를 이룬 대학자 애쉬포드교수, 그의 수제자로 막강한 학문적 권력을 누리던 비비안, 두사람이 춥고 바람 부는 날 함께 침대에 누워서 나누는 책은 존 돈의 성시도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대하드라마도 아닌 5살짜리 어린아이를 위해 산 동화책이다. 집에서 도망가겠다는 아기 토끼를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말로 집에 머물게 하는 엄마 토끼는 틈만 나면 도망가려는 인간을 추적하는 신의 끈질긴 사랑, 인간의 배신과 거절을 불사하는 은혜의 알레고리이다. 우리를 마지막에 영원히 있어야 할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심오한 교리나 난해한 시, 거창한 의학 용어, 복잡한 의료 기기들이 아니다. 영혼의 진실을 담은 소박한 통화책 한 권 (아기토끼), 인격적으로 돌봐줬던 부드러운 손길 (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탱했던 자부심과 지식을 겸손함과 지혜로 바꾸는 여정을 힘겹게 통과한 주체 (비비안)이라는 사실, <위트>의 마지막이 던지는 감동이자 충격이다.

    이상 희곡 <위트>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드라마 구성 요소들의 핵심인 등장인물, 시간, 공간 나타난 극작술을 분석했으며, 주제를 해석해 보았다. 장면 구성에서 작가가 관객에게 주인공이 경험하는 질병의 고통과 치료과정을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서사극적 장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인물 설정에 있어서는 지식을 권력화하는 학자와 환자를 연구대상으로 물질화하는 의료인에 대한 자성적 시선을 도출하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인물간의 대조와 병치를 중심으로 분석했으며, 주제 면에서는 육체의 소멸을 통해 영혼의 생명을 얻기 위해 죽음의 장벽을 넘어가게 하는 위트의 힘, 즉 인간 실존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중심으로 해석해보았다.

    31)아이러니는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가지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학적 장치인데 존 돈의 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다. http://neoenglish.wordpress.com/2010/11/01/the-wit-of-john-donne/  32)위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신, 기억, 이성적인 힘, 지성, 정신적 건강함, 정신적 능력이나 풍성함, 날카로운 지각 능력과 판단력, 서로 상이한 것을 연결해서 조명하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 재치” 등이 있다.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wit?show=0&t=1389230920 보다 고도의 위트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가운데에서 숨겨진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 사상이나 감정의 이항대립적인 것들을 하나로 녹여내는 힘을 말한다.  33)존 던은 이탈리아식 소넷 형식을 사용한 반면 셰익스피어는 영국식 소넷 형식을 사용한 것으로 대비된다. 희곡에서 젊은 시절 애쉬포드교수가 비비안에게 존 돈의 시를 그렇게 멜로드라마로 왜곡할거면 셰익스피어나 공부하라고 비꼬는 데에는 이런 시대적이고 문학적인 배경이 있다. http://faculty/smu.edu/tmany/witguide.htlm  34)http://en.wikipedia.org/wiki/John_Donne  35)존 던, 김명복 옮김, 『인간은 섬이 아니다: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 나남, 2009, 265쪽.  36)http://www.pbs.org/newsh-our/bb/entertainment/jan-june99/edson-4-14.html  37)Martini Adrienne. “The Playwright in Spite of Herself,” American Theatre, 16.8, 1999, p. 22.  38)“세속적인 것에 대한 결단력 있는 거절과 일상적인 삶을 거룩하게 사는 것, 그리고 매일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면서 인내와 신중함, 그리고 진실한 기쁨을 누리는 것 등은 이 시의 특징들이다… 이러한 변함없는 순수한 열정은 죄의 회개와 탄원, 그리고 신의 용서와 구원을 확신하는 승리자로서의 자세임을 보여준다.” 오혜경, “John Donne의 종교시 연구: 죄의식과 구원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논문, 2008, 37쪽.  39)Sykes John D. Jr., “Wit, Pride and the Resurrection: Margaret Edson’s Play and John Donne’s Poetry,: Renascene” Essays on Values in Literature, Marquette Univ., 2003.  40)Edson, W;t, p. 47.

    5. 나아가며: 드라마, 의료인문학 텍스트로의 활용 가능성

    희곡 <위트>는 주인공 비비안이 난소암 진단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사실주의적인 재현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환자의 입장에서 각 단계에 갖는 생각과 감정을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소통하고 심정적으로 공감하도록 하는 독창적인 교육 효과를 자아낸다. 이와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이 희곡을 의료교육에서 활용되는 사례로는 공연을 이용한 “The Wit Educational Initiative”와 영화를 이용한 “The Wit Film Project”가 있다.

    The Wit Educational Initiative프로그램은 지역 연극인들을 병원 현장으로 초대해서 의과대학 학생들과 레지던트들, 직원들까지 함께 관람한 후 연극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활동이다. 구체적인 실행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각 단계별 상세한 안내서를 발간하고, 공연 후 설문조사 내용들로 피드백을 제공하기도 했다. 설문에 응했던 참가자들은 이 작품이 가진 호소력, 감정적 충격이 임종 교육의 교재로 활용하기에 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연극 공연을 통한 드라마가 의료훈련생들에게 환자의 상황과 심정을 체험하게 하는 효과적인 인문학적 교육 방법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41) 하지만 <위트>를 학교의 필요에 맞춰 공연할 극단들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자 영화로 대체해서 “위트 필름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42)

    드라마 <위트>를 활용한 의료인 교육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인 훈련생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대할 때 어떤 능력들이 필요한지를 배우게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환자들에게 어려운 의학 정보의 소통과 치료 방법에 대한 논의,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그리고 존재론적인 필요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임종 환자 진료를 배우는 의료 지망생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성찰하고 동료들과 나누면서 임종의 인간적인 측면을 경험하도록 한다. 셋째, 임종 환자 진료 교육에서 있어서 전통적인 교수법에서 탈피해 감정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대안을 제시한다.

    <위트> 교육 프로그램의 형식은 희곡에 담긴 임종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는 사전 강의, 영화 관람, 그리고 이후 소그룹 토론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룹 토론은 훈련생들이 영화에 담긴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반응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인데 특히 훈련생들이 말기 환자들의 상태와 요구를 잘 파악하도록 하는 한편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말기 환자 진료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도록 해준다. 여기에서 조금 더 확장된 형식에는 희곡 장면들을 발췌해서 훈련생들이 돌아가면서 역할 놀이극을 하거나 독회를 하는 방법이 있다.

    <위트>를 활용한 위의 프로그램들에서 나타나듯이 드라마는 질병에서 오는 고통과 치료 과정에서 의료인들에게 받는 상처를 환자의 1인칭 관점에서 몸으로 직접 보여주기 때문에 타인이 환자의 입장과 욕구에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드라마 속에 투영된 의료인들의 모습과 의료 환경을 관찰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위트>를 의료인문학 교재로 활용하는 사례는 완성도 있는 희곡의 경우 연극의 본질인 예술 활동을 충족시킨 후에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다른 영역으로 유용하게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본 논문이 소개한 희곡 <위트>의 내용과 의미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의료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세 단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영어권 나라 의학대학에서 <위트>를 소재로 시행하고 있는 의료인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교육적 효과에 대한 피드백을 추후의 논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둘째, 국내 의료교육자들과 함께 외국 대학의 사례들을 참고로 한국 상황에 맞는 <위트> 활용 방법론을 고안하며, 셋째,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나라 의료 환경과 문화에 적합하면서 의료교육에 활용될 수 있는 희곡의 창작과 의료인문학적인 작품들을 작가와 의료인의 협업으로 진행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자 한다.

    희곡 <위트>의 극적 구성, 극작술에 대한 분석, 그리고 주제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연극이나 영화의 영혼인 드라마가 사회 각 영역에서 보다 심층적인 영향력을 갖고 쓰임새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교한 극작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자신의 작품 세계에 등장하는 타 분야에 대한 전문성 등을 갖춘 작가와 작품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본 논문에서 소개한 <위트>의 사례가 드라마의 새로운 소재 찾기와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들과 드라마의 사회적 쓰임새를 실천하고 있는 연극인들의 상상력과 활동에 도전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다른 전문 분야의 교육자들이나 현장 실천가들 또한 자신의 분야가 더 성숙한 소통과 공감의 공동체가 되도록 드라마에서 살아있는 교재를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조적 융합의 길을 열어가길 기대한다.

    41)“위트 교육 선도 프로그램 (WEI: The Wit Educational Initiave)”는 2004년 세 명의 의사들이 발표한 논문 “드라마 예술을 활용한 임종 교육: End-of-life education using the dramatic arts: the educational initive”에서 그 내용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UCLA) 병원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실험적으로 실시한 후 미국과 캐나다 의과대학들로 확장된 프로그램이다. 이 논문은 실험기간 중 <위트> 공연을 초대했던 병원 54개중 32개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냈다고 보고한다. http://www.ncbi.nlm.nih.gov/pubmed/15107289  42)“위트 필름 프로젝트”는 <위트>의 영화 버전을 사용해서 의료인들에게 임종 환자들 진료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과 인문학적인 통찰을 배우도록 하는 독창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Robert Wood Johnson 재단의 재정지원, 영화 <위트>의 제작사인 HBO의 무료 영상 배포, 희곡 작가 마가렛 에드슨의 저작권 기부, 그리고 미국의과대학협회 (AAMC: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의 추천에 힘입어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의과대학들의 정규 커리큘럼이나 특강, 워크숍 등으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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